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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4. 10:01

Steven Pinker. 2018. Enlight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 Viking. 453 pages.

저자는 인지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는 진보해왔음을 객관적인 증거로 밝히며, 또한 어떻게 진보해왔고 진보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서술한다.

서구에서 1700년대에 시작된 계몽주의 (Enlightment), 즉 인간의 이성 reason 을 이용하여 세상을 파악하고 개입한다면 인류는 진보 progress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이전에 세상은 신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은 무력하며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대체하였다.

인간 삶의 주요 영역에서 진보가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한다. 객관적 삶의 질 영역인 건강과 수명에서부터 주관적 삶의 질 영역인 행복도에 이르기 까지, 전 영역에서 인류의 삶은 1800년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지난 150년간 크게 개선되었다. 일부 지역, 일부 집단, 일부 시기에 진보가 역전되거나 정체되기도 하였지만, 크게 볼 때 지구상 거의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진보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당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온 점진적 과정 incremental progress 이었다. 물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에 파생된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류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삶이 진보해 왔으며 지금도 진보가 계속되고 있음을 부정하고, 오히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거나, 인류 사회가 더 혼란해지고 과거보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인식하는 원인은 여러가지이다. 인간의 인지 기능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하고 그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편향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인접한 소수의 사례를 전체의 유형으로 일반화하는 버릇이 있다. 매스컴은 새로이 발생하는 자극적인 문제만을 보도하고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이 실제보다 더 나쁘며 과거보다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과 비평가들은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언급을 해야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항시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객관적 수치를 통해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를 이상화하고 전통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는 물론, 현실을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진보주의자 또한,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사회가 악화되어 왔으며 현재도 그러하다는 부정적 인식은, 인간의 이성을 이용하여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대신 비이성적 접근을 옹호하거나, 극단적인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새로운 지식이 축적되면서, 현재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하고, 이를 실행하여  그 결과를 통해 잘못을 고치고 더 나은 대응책을 찾아나가는 과정, 즉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과학하는 doing science 방식이 인간의 진보를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학자들 조차도 이러한 합리적 접근을 배격하려 한다. 예컨대 인문학자들은 깊고 신비하고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다는 구실하에, 과학과 객관적 사실 중심의 접근을 천박한 이해를 추구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인 것이며, 지식은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통해,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을 깍아내린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가고 있으므로, 절대자의 인도가 필요하다는 종교적 신념이, 인간의 이성에 의지하는 태도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자연은 가치를 제시하지 않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존재와 사건은 자연 법칙과 우연이 작용하는 장일 뿐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사람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인류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궤변이 아니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살고, 더 풍요롭고, 더 안전하고, 더 지혜롭게 살게 된다는 것은 인류에게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의미있는 성취이다.

그렇다고 인류의 점진적 진보가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없는 삶, 모든 사람이 항시 행복한 삶 혹은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가 확대된다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원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과 충돌할 것이며, 정신적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은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과 충돌할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확대된다는 것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선택지가 는 것이므로 불확정한 삶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행복과 보람있는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이 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 즉 인본주의 Humanism 는, 과거 신중심주의나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진보한 것이다.

저자는 기존에 학계나 소위 전문가들의 언급에 의문을 던진다. 예컨대 인문학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비판하며, 언론이나 문화비평가, 기타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비판한다. 그들은 자신의 밥벌이를 위하여 현실을 외곡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매사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부정적인 진단을 할 수록 무언가 있는 듯이 보는 세태를 비판한다. 소득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불공정과 빈곤이 나쁜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한 결과 보상의 불평등이 나타난다면, 빈곤이 제거된다는 조건 하에서 볼 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성취한 인류의 진보를 인정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길을 계속갈지 솔직하게 연구하고 실천하면, 인류가 지금까지 당면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예언한다. 대단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힘들었다. 인류의 진보를 통계 수치로 밝히는 부분과, 이성에 의지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부분은 글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별도의 책으로 엮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리고 저자는 장황하게 말을 많이 한다. 저자만큼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그의 장황한 생각의 흐름을 쫒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2023. 9. 8. 12:15

Avi Tuschman. 2019(2013). Our Political Nature: The Evolutionary Origins of What Divides US. Prometheus Books. 413 pages.

저자는 인류학 배경의 정치컨설턴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의 배경에는 성격 특성이 있으며,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보수적 혹은 진보적인 이유는 그의 성격과 연관되는데,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성격의 분포는 인류의 오랜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모든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이유는, 이 두가지 상반된 성향이 함께 하여 인류의 진화적 적응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측정한 결과, 보수에서 진보까지의 연속선에서 정규분포의 모습을 그린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부자 중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 중에는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보수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득과 재산의 분포는 하위로 심하게 편향된 분포이며, 이는 정치적 성향의 분포와 매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경제적 이익과 정치 성향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성격 특성을 반영한다. 성격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차원 중, 개방성(openess)과 성실성(conscienciousness) 의 두가지가 정치성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참고로 성격을 구성하는 나머지 세 차원은 외향성(extraversion), 상냥함(Agreeableness), 신경질적임(Neuroticism)이다. 성격이 개방적일수록 진보적 정치성향을 보이며, 성실할수록 보수적 정치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정치 성향 역시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정치 성향의 분포가 전체적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기는 하지만, 외적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여전히 정규분포를 유지한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많은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흡사한 반면, 태어나서 떨어져 성장한 이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서, 성격 특성과 정치 성향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 부족주의(tribalism), 불평등을 허용하는 정도(tolerance of inequality),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human nature)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차원은 생물학적인 진화적 적응(evolutionary fitness)과 연관되어 있다.

먼저 부족주의를 보자면, 이는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 종교성(religiosity), 성에 대한 개방성(sexuality)으로 구성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고 타 집단을 배격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리는데 유리하다. 친족선택이론 (kin selection)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연관된 사람을 중시할수록 자신의 유전자가 후세에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의 집단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살아간다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어느 정도의 개방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타집단과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태도가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부족주의에 편향된 보수적 정치성향과 새로운 환경에 개방적인 진보적 정치성향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약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선호한다. 어는 사회에서나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도 지나치게 진보적이지도 않은 중도 성향의 사람이 대다수인 반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이 소수를 이루는 이유이다.

모든 사회는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한다. 남성의 분방한 성생활에는 비교적 관대한 반면, 여성의 성행위는 엄격히 제한을 한다. 여성은 후손을 낳는 주체임으로 이들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핵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사회는 남성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다. 부족주의적이며 보수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은 여성의 성을 엄격히 제한하고 가부장적 권위를 지지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가족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줌으로 여성의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진화적 적응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자유를 허용하고 남성과 여성의 권위 격차를 줄이는 진보적 정치 성향 또한 진화적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여성의 경제활동 기여도가 높아지고, 여성이 폐쇄적이며 권위적 가족관계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지면서 남녀간의 권력 격차는 줄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성향은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가난이나 성공의 책임은 구조적 환경의 탓인지, 가족 내에서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부모가 자식을 자신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보수와 진보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사회와 가족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이렇게 서로 상반된 태도의 사람들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사회와 가족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다.

사람의 본성이 상호 협조적 (cooperative)인지 아니면 경쟁적(competitive)인지에 관해, 철학자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두가지 상반된 생각은 인간의 생존, 유전자의 확산에 필수적이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본성을 경쟁적으로 보고, 진보주의자는 협조적으로 본다. 인간의 본성을 맹목적으로 협조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반칙을 저지르는 (cheating)사람에 의해 망하며,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협동을 통한 시너지를 거두지 못함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사회에는 협조적이면서 경쟁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중도적인 정치 지향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저자는 사람들의 정치지향의 결정 요인을 성격 특성 및 진화적 적응에서 찾는 과정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논의를 인용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모든 다양한 잡다한 지식이 뒤범벅되어 있다. 저자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논의를 좀더 체계화하고, 핵심적인 증거 위주로 설명을 집약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9. 2. 22:32

Diego Olstein. 2021. A Brief History of Now: The Past and Present of Global Power. Palgrave Mcmillan. 354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에서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미국의 패권과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분석적으로 서술한다. 각 시기별로 각 세력 집단을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영국은 18세기 말 이래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반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가 결합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밀어붙였다. 독일과 미국은 영국의 압력에 맞서 보호무역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19세기 후반 후발 산업화와 민주주의 확대에 성공하면서, 20세기에 들어 영국에 대항하는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러시아, 오스만 터키, 중국 등, 자국의 신민을 권위적으로 억압하는 전통적인 제국들은,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산업화를 통해 군사력을 높이고 싶었으나, 국민의 참여를 높일 경우 권력자들이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개혁이 좌절되고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실패하였다.

독일은 후발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에 걸맞게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불만을 가지고, 결국 1914~18년, 1939~45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두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력은 소진되고 식민지를 잃은 반면, 미국은 영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일차대전 중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영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 대신 압도적 군사력과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여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국가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차대전후 유럽의 복구를 지원하고, 무역과 투자, 다국적 기업 등을 통해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와 미국인의 꿈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의식을 사로잡는 등, 세계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제이차대전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으로부터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결 원칙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국가주의가 결합된 체제를 채택하였으며, 미국과 소련의 패권에 추종하를 거부하고 비동맹의 제삼세계를 지향하였다. 중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가나 등이 이러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였으나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실패하였으며,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민주주의 형식을 갖춘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들 제삼세계 국가들은 1990년대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경제적으로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포함된 서구 국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속에서 케인즈의 경제정책을 따라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였으며, 이차대전 이후 고도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후 미국은 정보통신기술과 운송기술의 발달과 함께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을 지속하였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금융, 서비스, 리서치 등에 주력하는 국제분업 세계화의 선두에 올라섰다. 그 결과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소련은 중앙집중 경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이 갈수록 악화되었으며, 1980년대에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1980년대 후반,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에서 소련의 장악에서 벗어나 민주화 시도가 진행되어 결국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동구권은 서유럽에 편입되었으며, 러시아는 1990년대의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결국 민족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약화된 강국으로 복귀하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모택동 치하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1978년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 사십년간 고도 성장을 통해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선진산업국에서 1980년대 이래 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성공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분업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 산업국에서는 불평등이 높아지고 성장에서 소외된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민족주의와 반세계화의 목소리가 높아져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 등장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960~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의 실패, 2003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의 실패 등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력에 대한 세계의 존경은 사라졌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줄었으며, 미국의 이념과 문화의 매력 또한 빛바래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각 나라들은 각자 도생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높아지고 세계 질서는 다극체제로 이행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 이래 세계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20세기 후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혁명 information revolution 에 접어들었으며, 근래에 한단계 더 높아진 인공지능 혁명 Artificial Intelligence Revolution 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분야를 기계가 맡게 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은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아마도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중남미의 변화에 깊이있는 이해를 보인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제삼세계의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드문 역사 서술이다. 후반부에서는 분석의 정치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대해 높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2023. 8. 29. 16:38

John Mearsheimer. 2018.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실패 원인을 자유주의적 패권 (liberal hegemony) 추구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liberalism, 민족주의 nationalism, 현실주의 realism 원칙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천부적 인권 inalianable rights, 개인의 자유 individual freedom, 및 재산의 사유 private ownership 을 축으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선호에 차이를 허용하며 tolerance, 의견 차이와 이익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체인 국가를 필요로 한다.  존 로크의 천부인권과 계약 이론이 이를 대표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좋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다.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러한 이념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족주의란 자신이 속한 민족 nation의 생존과 번영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우선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권리와 민족의 생존이 충돌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보편적인 인권보다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내 국가의 생존에 더 목숨을 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과 자주적 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권을 보유한 민족 국가 nation-state를 탄생시켰다.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다민족 국가나 국가가 없는 민족은 모두 갈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간의 관계, 즉 국제정치는 국내 정치와는 다른 역학이 작용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간에 갈등이 발생할 때 이를 강제적으로 조정할 권위적 존재가 없다. 쉽게 말해 무정부상태 anarchy 이다.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해도 유효하게 제제할 수 없다.  소위 정글이라 표현하는, 힘의 원리만이 작용하는 장이다. 국제기구나 국제법이란 국가들간에 자발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 힘있는 국가가 이를 위반해도 강제할 수 없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 self-help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합종연횡, 즉 힘이 약한 국가들이 연합하여 힘있는 국가와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 balance of power 으로 각 국가들은 안보 위험을 해결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세계에 경쟁자가 없는 일극체제 unipolar system의 정점에 올라섰다. 일극체제의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전보다 더 미국의 자유주의 원칙을 세계 각국에 전파, 강요하였다. 문제는 미국의 개입을 받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침입하여 그 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미국식, 즉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으려 하면,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반발을 초래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개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살상과 혼란이 발생하여,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미국의 이념과 체제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개조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자유주의를 전파하겠다고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전쟁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라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정도에서 멈추어야 한다. 미국이 자유주의를 전파하려는 외교정책을 포기할 때,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국제정치는 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예외적으로 평화로울 것이라는 주장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평화와 번영과 인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국가 benign country 이므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또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자국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언제고 상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이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주의를 숭배하지만, 미국인들이 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를 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제한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을 받은 외국인들은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신의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이상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포기할 때 세계는 물론 미국 국내사정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들어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를 미국의 외교 무역정책에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러나 미국이 실패하고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무어라고 해도 한국은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정책의 최대 성공작이다. 넉넉한 형님같이 한국에 베풀어준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은 냉전체제에 공산주의에 대적하는 미국의 쇼윈도에 걸린 모델이 된 덕분에 운좋게 잘 풀렸지만 말이다.

2023. 8. 25. 21:14

Brian Greene. 2020. 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uving Universe. Vintage. 326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이 책은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소멸까지 서술하면서, 그 속에서 생명체와 인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진화, 엔트로피, 중력이 전과정을 지배한다.

우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것은 무질서의 증가, 혹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은 단계인 빅뱅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 공간으로 물질이 확산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전반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속에서, 부분적으로 엔트로피가 낮은, 즉 질서있게 조직된 것들이 출현한다. 별이나 생명체가 바로 그것이다. 별은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려 뭉쳐서 만들어진다.

생명체란, 자기복제를 하는 분자들이, 변이를 하고, 그들 간의 경쟁 속에서 더 복제를 잘하는 놈이 생겨나고, 그런 것들이 서로 합쳐져서 자기복제를 더 잘하게 되면서 생성됐다. 생명체는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metabolism)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생명체가 활동하면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생명체는 이러한 높아진 엔트로피를 환경으로 배출함으로서, 내적으로 낮은 수준의 엔트로피, 즉 질서를 유지한다.

사고와 의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물리적 법칙을 따르며, 물리적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입자의 집합체의 활동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입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다른 수준의 설명이 효과적이다. 물리적 최소 입자, 분자, 세포, 생명체, 인간과 같이, 집합적으로(aggregate) 상위 수준에 적합한 설명을 하기 위하여,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의 이론이 동원된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수준에서는 적합한 설명이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모든 설명을 물리적 입자의 수준으로 환원한다면, 집합적인 상위 수준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질문에 적합한 수준의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와 이야기(story)를 발전시켰다. 인간의 언어는 집단적 사회활동을 돕기 위해 발달했으며, 이야기 역시 자연과 인간사에 대응하는 활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발달하였다. 진화의 목적은 생존과 후손의 번영 (survive and thrive) 에 있지, 진리 (truth)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생존과 진리 추구는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시킨 행동과 지식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객관적으로 진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지식은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믿음이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세상이 그렇게 전개되는지에 대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화나 종교와 같이 과거에 믿었던 것들이 그릇되다고 밝혀졌다.

먼 미래에 우주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태양은 미래에 팽창하여 수성과 금성을 삼켜버리고, 그 후에는 수소와 헬륨이 다 소진되어, 탄소와 산소의 재 덩어리가 될 것이다. 지구는 이러한 태양에 끌려서 함몰할 것이며, 태양은 다시 은하수 속에 함몰할 것이다. 이러한 함몰 과정이 우주에서 계속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중성자까지 부서져 버리고, 결국 어떤 것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절대 0도에 근접한 차가운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물질간 중력의 힘이 작용하여 전개된다. 

이렇게 인류의 종말, 생명체의 종말, 우주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는 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소멸된다고 하면, 사실 현재 바쁘게 돌아가는 모든 인간 활동은 의미가 없다. 기여할 대상이 없고, 봐줄 사람이 없고, 물려받을 후손이 없는, 인간의 노력이란 헛될뿐이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인간의 활동이란, 물리적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물리 입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므로, 의미를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물리학의 관점에서 달리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존재란 빅뱅에서부터 시작한 우주의 전개과정 속에서 매우 매우 가능성이 희박하게 출현한 물리 입자들의 조직이다.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컸지만,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을 거스르고 출현하였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 속에서 출현한 존재와 활동, 즉 인간의 삶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소중한 가치는 인간의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확률적 가능성이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소중하게 충실하게 살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물리 학자이면서 훌륭한 이야기 꾼이다. 많은 비유와 재미있는 사례를 곁들이면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것들을 곳곳에서 소개하면서, 자신의 연구와, 자신이 읽은 것과, 자신의 생각과, 지나온 자신의 삶의 정리가 결합된 글을 썼다.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진화, 언어, 종교, 창조성, 등에 관한 서술은, 그의 독서를 통해 얻은 각 분야의 논의를 빌려와 서술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됬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물리학 이론을 총동원하여 우주의 종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욕심이 좀 지나친 것 같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은 뺐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8. 21. 16:41

 

Carles Boix. 2015. Political Order and Inequality: Their Found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가가 생겨난 기원 및, 국가와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와 함께, 인류학, 역사학, 기타 다양한 데이타를 이용해 수리적으로 검증한다.

수렵채취 단계나 낮은 기술 수준의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평등했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들 간에 불평등이 발생할 요소를 서로 감시하면서 억제하였으므로, 국가라는 제삼의 권위 기구 없이도 당사자들 서로간 개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는 특정인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억제했으므로, 성장이 없이 정체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생산력의 범위 내에서 인구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의 한계 수준 근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 생산물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생산자와 탈취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탈취자는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탈취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생산자는 탈취자에게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기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얻는다. 탈취자는 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생산자를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탈취해간다. 역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탈취자들이 세운 군주제 monarchy 를 택하고 있다.

고대의 아테네나, 근대 이전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공화정 republic이 존재하였다. 도시국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방어를 직접 담당하거나, 용병을 구입하여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북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이웃 나라의 탈취자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용병을 고용한 경우 무력을 보유한 용병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용병 출신의 무력 집단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이익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화정이 출현할 수 없었다.

무력 기술 수준에 따라 생산자와 탈취자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력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특별히 무력 수준이 우월한 사람이나 집단이 없었으므로 탈취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청동기 무기와 이후 말의 출현으로 무력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무장을 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탈취자로 군림하면서, 다수의 비무장 생산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13세기에 총포가 도입된 이후, 기마 무사의 무력적 우위가 사라지면서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대신 비싼 총포를 구입할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대규모 은을 수입한 스페인,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프랑스가 강국으로 올라섰다.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 간 및 지역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대는 기존의 탈취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지배집단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예외적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탈취자 집단이 상공업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이익을 신흥 부르주아지와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주와 상공업 계층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면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상업을 확장시켰으며,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도시로 인구가 모이면, 도시인들 사이에 분업과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 지역이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인구가 늘고, 도시가 발달하고, 군사기술과 자본 규모가 높아져서, 이웃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도시의 상공인들은 농촌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으며, 세금을 부담하고 총을 들고 전쟁에 직접 나가는 국민으로서, 왕과 지배층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져서, 결국 공화제로 이전되었으며, 과거 산업혁명 이전보다 소득 분포가 평준화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국가의 출현 및 불평등 수준 역시 생산 기술 및 군사기술의 수준과 연관된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학술서이다. 19세기 이전의 불평등 수준을 키의 분포로 측정하였으며, 생산기술의 발달 지표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설명하는 부분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용하며, 다양한 가용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논의를 뛰어 넘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대단한 비교 연구이다.

2023. 8. 17. 17:22

David Buss. 2016(1994). The Evolution of Desire: Strategies of Human Mating. Basic Books. 350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개척자 중 한사람이며, 이 책은 짝짓기 전략에서 남자와 여자간 차이가 나는 이유를 진화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전반적인 논의는 Trivers 의 '부모투자이론'(parent's investment theory)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자원을 많이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인 반면, 여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성관계의 상대를 선택하는 데 매우 까다롭고 신중한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의 전략이다. 남자는 건강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에 관심이 큰 반면, 여자는 자신과 아이의 부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남자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관심이 크다.

여성은 장기적으로 관계에 헌신할 상대를 찾는데 관심이 큰 반면, 남성은 가급적 적은 자원을 소모하면서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는데 관심이 크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일회성의 섹스에 관심이 적으며, 일회성의 섹스를 한다고 하여도 당장의 사회경제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일회성 섹스를 통해 상대를 탐색하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접근한다. 반면 남성은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회성의 섹스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상대의 성적인 의도가 확실치 않은 경우, 남성은 상대 여성의 애매한 행동을 성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고 편향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후손을 생산한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은 이렇게 편향되게 해석할 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상대의 성적인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여성은 상대 남성이 자신에게 신뢰와 헌신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들때까지는 자신과 섹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건 date rape 이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화적 남녀간 짝짓기 전략의 차이에 기인한다.

남성이 지위 획득에 관심이 많은 것은, 여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이는 다윈의 '성적 선택이론' sexual sellection theory 이 지시하는 바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 역시,  남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여성의 외모, 즉 건강한 후손을 낳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큰 관심이 없으며, 여성은 남성의 외모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역시 같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녀간 성적인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 짝에게 사회경제적 자원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여성은 자신의 짝을 버리고 다른 남성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여성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신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다른 여성을 찾는다.  결혼한 여성이 다른 남성과 외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남성의 부양능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앞으로 자신의 남성과 헤어질 것에 대비하는 전략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여성 짝에 만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을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짝이 자신 이외의 사람과 바람을 피울 경우 심한 감정적 질투를 느끼는데, 이러한 감정적 흥분의 이유는 남녀가 다르다. 남성은 자신의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에 집착하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자원을 나누는 것에 집착한다.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을 사랑하지 않고 일시적 성관계를 맺은 것을 용서할 수 있으나, 남성는 자신의 여성의 성관계 그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여성의 생식능력은 20대 초반에 가장 왕성하며 이때가 남성에게 가장 매력적인 시기이다. 여성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지속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반면 남성의 사회경제적 능력은 30대 중반 이후에 최고에 도달한다. 남성의 생식능력은 50대나 60대에도 어느 정도 유지된다. 여성과 남성이 상대에게 최고로 매력적인 시기가 서로 어긋남으로, 여성은 자신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며, 상대의 현재 능력보다 미래에 사회경제적 잠재력에 더 가치를 둔다. 여성의 생식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30대 후반 이후, 여성은 짝짓기 시장에서 퇴장하거나, 아니면 육체적 매력이 아닌 사회경제적 능력과 지혜와 경험 등으로 남성 상대에게 어필한다.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경제적 능력이 높아짐으로, 중년이후의 남성이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전략을 구사한다.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 일회성 섹스,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는 것, 헤어짐, 등은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데 가장 유리하도록 남녀 모두 구사하는 전략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처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남성은 물론 여성또한, 일회성 섹스나,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와 헤어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인류는 일부일처제라는 남녀 상호간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서 지구상에서 번성하였다. 그러나 남녀간 인구비율이 달라지거나, 개별적으로 남녀 각각 처한 조건에 따라, 앞에 언급한 다양한 짝짓기 전략을 구사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은 일부일처제를 옹호하지만, 사람들은 항시 일부일처의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 제도를 따르는 것이, 개별 남자 혹은 여자에게 후손을 만드는 데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일부일처제 이외의 짝짓기 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남녀간 짝짓기는 문화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물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녀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이론의 힘을 통감한다. 여성의 선택 때문에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추구 노력이 매우 치열한 것이며, 그 결과 이 사회의 사회경제적 지위 위계는 남성에 의해 장악되었다. 반면 남성의 선택 때문에 여성은 외모에 집착하며 외모를 높이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문제는, 외모는 많은 부분 타고난 것이라 당사자가 어쩔 수 없으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는  본인의 노력으로 획득가능한 것이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정의감이나 형평을 고려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naturalism fallacy)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과 정의에 맞추어 자연을 바꾸는 것이 인간의 문화라고 하지만, 이는 마치 강물을 거슬러 노젓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남녀 관계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녀관계는 생존에 필수적인 분야이므로, 지금까지 사회를 살아가면서 항시 관심을 갖고, 엄청나게 많은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어느 분야보다도 많은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니 통찰력이 더해진다.

2023. 8. 15. 11:51

Erez Aiden and Jean-Baptiste Michel. 2013. Uncharted: Big data as a lens on human culture. Riverhead Books. 212 pages.

저자들은 데이터 과학자들이며, 이 책은 구글의 Ngram Viewer 프로그램을 이용해 언어, 명성, 검열, 기억 등의 주제에 관해 분석한 결과를 소개한다. 

구글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스캔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Google Books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이 책이 쓰일 당시 3천만권의 책을 아카이브하였다. 저자들은 MIT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구글의 책 아카이브에서 특정 단어가 사용된 빈도를 추적하여 사회문화의 변화를 파악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이후 일반인이 웹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Ngram Viewer 프로그램이 구글의 무료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었다.

 그들의 첫번째 분석은 언어의 진화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영어에 일반동사와 불규칙 동사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인도유러피안 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모두 원래 동사들이 불규칙하게 시제 변환을 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경부터 -ed 를 붙여서 시제변환을 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는데, 이후 이러한 변환 방식이 주류로 자리잡았고, 기존의 불규칙 동사는 점차 규칙 동사로 전환되었다. 현재까지 불규칙 동사로 남아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사용하는 170개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새로이 상기되기 때문에, 규칙동사로 바뀌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Ngram Viewer를 통해 언제부터 사람들이 불규칙 동사를 점차 규칙 동사의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단어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서, 유행과 생활방식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번째 분석은 '명성' fame 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명성은 데뷔, 도약, 정점 도달, 쇠퇴 라는 생애주기를 보인다. 매년 최고의 명성을 기록한 사람에 대하여, 그들의 명성이 전개된 과정을 분석한 결과, 명성은 데뷔에서부터 정점까지 매우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며, 정점을 지나게 되면 서서히 감소한다. 근래로 올수록 데뷔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아지며, 과거보다 더 이른 나이에 정점에 도달한다. 분야에 따라 곡선의 모습이 다른데, 정치인이 가장 높은 정점에 도달하며, 가장 늦은 나이에 유명해진다. 반면 연예인은 젊은 나이에 정점에 도달하며 정점이 높지 않다. 한편, 유명했던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Ngram에서 갑자기 빈도가 줄어드는 모습을 통해, 검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세번째 분석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집단 기억의 궤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집단 기억은 사건 초기에 강도가 높으며, 일단 고점을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감소하는 곡선을 그린다. 문명의 이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의 경우, 대체로 개발된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인식이 확산된다. '진화' 와 같은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듯이 보이다가, 근래에 들어 더욱 활성화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간의 행위에 대한 디지털 기억이 넘쳐나고 있다. 사생활이나 저작권의 침해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양의 인간 행위에 대한 기록을 잘 이용한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구글의 Ngram Viewer 프로그램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컴퓨터 기술에 밝은 젊은 학도들이 번득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 본 결과를 가볍게 서술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것은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아직 시작 단계이다. 

2023. 8. 14. 10:53

Joshua Cole and Carol Symes. 2020. Western Civilizations: their history and their culture. vol1. 20th ed. W.W. Norton. 549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 대학의 교양학부의 대표적인 서구 문명사 교과서이다. 서구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로마, 비잔틴, 대서양 연안 서유럽으로 발전하였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 비교해 몇가지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과거의 역사책이 승자의 관점에서 승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이 책은 보다 중립적, 균형적인 접근을 한다. 둘째는 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역사 전개를 해석한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정치적 갈등에만 촛점을 두지 않고 경제와 사회적 요인을 고루 검토한다. 셋째는 역사 전개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는데 노력을 한다. 넷째는 서구 문명의 발전에서 중동과 이슬람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룬다.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자로 등극한 아테네가 다른 도시 국가들을 착취하는 지위에 올라서고, 아테네 내부에서도 소수의 시민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노예를 배제하였다. 결국 아테네에 대항하는 동맹이 결성되고, 도시국가들 서로간의 갈등에 과거의 적이었던 페르시아를 끌어들임으로서, 결국 그리스 도시국가들 전체가 페르시아에 먹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로마 제국은 피정복 신민을 체제 내로 포용하는 제도적 장치 덕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원래 신민들은 소수인데다 계급 구조의 최상층에서 향락에만 몰두한 반면,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군사를 포함한 실제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지나치게 불평등하고 외곡된 구조 때문에, 결국 내부 반란이 일어나 망하였다. 로마 제국이 망한후, 기독교 문명과 로마의 유산은 세갈래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그리스와 터키에 걸쳐 위치한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기독교 문명의 주축을 이어받았으며, 다음으로는 로마의 잔존 세력인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에 위치한 서로마 제국이며, 세번째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세력이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그리스 로마의 제도와 문물을 많이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중세는 경제사회 발전이 정체된 암흑의 시기가 아니었다. 이는 근세의 학자들이 씌운 굴레에 불과하다. 서구 문명은 중세 시기 즉 500~1500년의 기간 동안 꾸준히 발전했으며, 이러한 변화 덕분에 1600년 이후 근세의 발전을 낳았다. 중세시대 서구 문명의 중심은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어받은 비잔틴 제국에 있었다. 비잔틴 제국은 안정된 행정관료 제도 덕분에 거의 1,000년 동안 큰 변고 없이 체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행정 관료는 노예가 담당하였다. 똑똑한 노예들은 행정 관료의 훈련을 받고 승진의 길을 걸어 최고 지도층에까지 도달하기도 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과거의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신민들은 계급의 상층에서 놀고 먹는 반면 노예들이 모든 일을 다하는 지나치게 불평등하고 외곡된 구조 때문에 노예들의 반란으로 쇠퇴하였다.

1100년경 십자군 운동을 계기로 비잔틴 제국이 쇠하는 대신 베네치아와 제노아를 중심으로 한 북이탈리아가 흥하였다. 북이탈리아가 주도한 시기는 잠시로, 1400년대에 항해술의 발달 덕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주도하는 대서양 지역으로 중심이 이동하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적극적으로 대양을 개척한 덕에 아시아와의 교역을 선점했으며, 중남미 대륙을 식민지로 선점하여 엄청난 부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식민지로부터 획득한 부를 국내 생산 기반을 높이는 데 쓰지 않고, 유럽 대륙의 이웃 국가들과 전쟁으로 위세를 높이는데 써버렸다. 시간이 지나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부가 줄어들면서, 결국 새로이 부상한 영국과 프랑스에 무역을 제압당하여 쇠퇴하였다. 프랑스는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 덕분에 서서히 국력이 성장한 사례이며, 영국은 일짜감치 왕권을 견제하고 상공인들이 성장하면서 금융과 무역이 발달하여 국력이 성장하였다.  

왕과 귀족간의 갈등, 세속권력과 종교 세력 간의 갈등, 지배집단과 중간층 간의 갈등, 지주 세력과 상공인 간의 갈등, 등이 역사를 추진한 동력이다.  지배자의 전제적 통치에 대한 견제는 1300년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었다. 왕에 대한 견제는 오랫동안 대지주인 귀족이 주을 이루었는데, 1300년경 총과 대포의 도입으로 귀족의 중요성은 줄어든 대신, 전쟁 비용을 대는 상공인과 전쟁에 보병으로 참여하는 일반인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전쟁에서 일반 보병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국민 국가가 등장하였다. 국민 국가는 영토와 민족어를 바탕으로 한다. 과거에는 국가는 왕의 사유물로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유럽 전지역에 걸쳐 영토와 언어에 관계없이 전개되었다. 일반 민중은 왕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었으며, 왕은 일반 민중들과 언어 및 종교를 달리하는 경우도 흔했다. 전쟁은 귀족들과 용병들을 고용하여 왕들 사이에 벌어지는 게임에 불과했다. 

서구 문명의 발전의 동력은 전쟁과 상공업에 있는데, 이는 중국 문명과 뚜렷이 대비되는 특징이다. 그리스, 로마, 이탈리아 문명은 상업이 중심이었으며, 이후 대서양 제국들 역시 상업이 발전의 중심이었다. 토지는 귀족들의 권력의 기반이었으며, 이들은 군사력을 장악하였다. 전쟁기술이 발전하면서 군사력으로서 귀족의 중요성은 사라진 대신, 높은 전비를 부담하는 주축으로서 상공인의 세력이 부상하였으며, 일반 보병으로 뛰는 일반인의 세력이 점차 부상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 

서구 문명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고, 종교의 비중이 매우 큰 문명이었다. 서구 문명의 주도권은 시기에 따라 변천하였는데, 고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였고, 다음으로는 그리스와 로마였고, 이어서 북이탈리아와 지중해 지역이었고,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대서양의 서유럽으로 중심이 옮아갔다. 1941년에 1판을 시작으로 20번째 판을 개정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저자를 거치며 다듬어져서, 이해가 쉽고 균형된 논의를 제공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서구 사회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2023. 7. 28. 17:50

Daron Acemoglu and Simon Johnson. 2023. 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Public Affairs. 422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경영학자이며, 이 책은 역사적으로 기술발전의 방향에 대해 검토하고, 특히 근래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발전이 내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 발달이 노동자의 삶에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업의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높아진 생산성의 과실을 권력자들이 독차지 했을뿐, 농민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9세기 초반까지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지만, 공장 노동자의 삶은 나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더욱 비참해졌다. 기술 개발의 주도권을 자본가들이 쥐고 있었기에,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 통제를 강화하여 노동자의 노동력을 더욱 착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비젼에 노동자의 삶의 향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성이 향상되면, 소득이 높아지고, 수요가 증가하여,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기술발전의 혜택이 전계층에게 널리 퍼진다는 주류 경제학의 전형적인 발전모델 (productivity bandwagon effect)은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사회는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데, 19세기 중반까지 기술 발전은 노동 친화적이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도시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에 대항하는 세력을 형성하면서 노동조건과 임금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항하는 세력화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1970년대까지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모든 계층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갔다. 일반 노동자에게까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고루 돌아간데에는, 1930년대 뉴딜정책의 영향과 전쟁후 관대한 복지정책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반노동정책과,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산업구조조정은, 노동자의 힘을 크게 약화시킨 반면 대기업 집중을 심화시켰다. 이 시기 이래 노동자의 소득은 정체하거나 감소한 반면, 고급 기술을 보유한 엘리트들에게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집중되었다.

1990년대 이래 정보기술의 발달은 소수의 대기업에 산업이 집중되고 엘리트들이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독점하는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정보 기술의 발전 방향은 일반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자동화와 노동 통제에 맞추어졌으며, 데이터의 중앙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와 같이 기계가 노동자를 대치하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가 기계를 이용하여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새로운 연관 업무가 생겨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기술 발전 방향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의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기술 발전에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동원한 정부의 개입 및 노동자의 세력화를 통해, 노동 친화적인 방향으로 기술 발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가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거나, 노동 친화적인 기술 발전에 대한 그들의 아이디어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고, 그들이 제시하는 대응 방안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사적인 검토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구에서 노동자의 임금 향상과 복지제도의 발전은, 그들의 지적과 같이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의 결과였다. 물론 앞으로도 노동자의 힘이 반영된 정치적 개입이 정보기술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는 why nations fail 이라는 좋은 책을 썼기에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서술하는 내용의 깊이가 얕아 읽는 내내 의아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2023. 7. 25. 11:31

Daniel Lieberman. 2013. The Story of the Human Body: Evolution, Health, and Disease. Vintage Books. 367 pages.

저자는 진화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현대 사회가 인간의 신체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한다.

유인원의 진화과정에서 현대 인류의 가지가 갈라진 두가지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두발로 일어서서 다니는 직립보행이며, 두번째는 신체의 다른 내장기관에 비해 두뇌가 지나치게 커진 것이다. 기후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진화를 촉발시켰다.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프리카의 숲이 줄어들자, 일부 유인원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숲을 벗어나 초원 지대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직립보행이 발달하였다. 수렵 채취를 하여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확보하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소화하기 쉽게 익혀먹게 되면서, 인류의 내장 기관은 줄어든 대신, 집단적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두뇌 활동이 발달하게 되었다.

농업과 뒤이은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농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농업 사회에서는, 음식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해졌으며, 밀집 거주로 인해 질병이 빈발하고, 장시간의 고된 노동 등으로, 삶의 질은 이전 수렵채취 시대보다 열악해졌다. 19세기 산업화로 인구 증가는 지속되었지만, 도시의 삶은 매우 비위생적이고 열악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비로서 선진 산업국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이 수렵채취 시대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의 키의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인간의 몸은 오랜 기간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그러한 삶의 방식에 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인간의 몸은 현대 선진 산업사회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현대인은 과거에는 보기 어렵던 다양한 새로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병을 "부정합 질병" mismatch disease 라고 통칭한다. 당뇨병, 순환기 질환, 암, 허리 통증, 골다공증, 평발, 근시, 치통, 등등. 인간의 내장 기관은 나이가 들면 고장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수렵채취인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현대인의 새로운 질환은 단순히 노화 때문은 아니다.

수렵채취 시대의 사람과 비교할 때 현대인이 새로이 고생하는 질병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는, 너무 많이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한 경우 too much, 둘째는,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disuse, 셋째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삶의 방식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novelty 이다. 각각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로 너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는 과도한 영양 섭취이다. 수렵채취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의 몸은 당분과 지방에 대한 갈망이 크다. 현대 선진 사회의 사람들은 당분과 지방을 제한없이 쉽게 획득할 수 있으므로, 그결과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비만 상태이다. 이는 인간의 대사작용에 무리를 초래하여,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을 유발한다. 둘째로,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예는 사람들의 빈약한 운동양이다. 땀을 흘릴 기회가 적고, 하루종일 앉아서 생활하고, 거의 걷거나 뛰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은, 먹고 살기위해 항시 걷고 뛰어야 했던 수렵채취 시대 사람들의 몸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 몸이 섭취하는 에너지가 기초대사와 운동을 통해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항시 많기 때문에 다양한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며, 근육과 골밀도가 적어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에 적정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적게 사용하는 또다른 예는 현대인들이 애를 적게 낳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일생동안 월경횟수가 크게 증가하여 유방암의 위험이 높아졌다. 세번째 새로운 삶의 방식의 예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지나치게 편안한 생활이다. 실내의 조명에서 문자를 읽는 생활은 근시를 초래했으며, 부드럽게 가공된 음식을 탐닉하는 식생활은 턱과 치아구조를 변화시켜 사랑니 통증을 초래했고, 당분이 많은 음식은 충치를 유발했으며, 의자 생활은 허리 통증을 가져왔으며, 푹신한 신발은 평발의 위험을 높였다.

섬유질이 많고 당분과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으며, 운동을 많이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현대 산업사회의 생활환경은 이러한 방식의 생활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가져온 대사증후군 등에 대해, 현대 의학은 대체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질병은 수렵채취시절에 만들어진 인간의 유전자와 현대의 생활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생활환경을 바꾸는 길밖에는 없다. 과학 연구를 통해 치료 기술을 높이거나 교육을 통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의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해결책은 어떻게 생활환경과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저자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너지' nudge 방식을 광범위하게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건전한 삶의 방식을 유도하듯이, 성인에 대해서도 그러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서 생활환경을 바꾸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고 부정합 질병의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선진 사회의 인구 고령화가 되면서 부정합 질병의 빈도가 높아지고 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여 질병의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의 주 연구분야인 인류의 진화와 관련된 이야기와 농업사회 이후 인간의 부정합 질병에 대한 이야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두가지 이야기의 내용이나 서술 방식이 매우 달라서 두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후반을 별도의 책으로 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023. 7. 17. 17:04

Robert Cialdini. 2007(1984).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Harper Collins. 280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심리학 이론과 실험 사례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당하는지, 부당하게 설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설명한다. 사람들이 설득당하는 심리 기제로 다음 여섯가지를 제시한다.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 등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사안에 대해 이성적으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피한다. 복잡한 정보를 포함한 것이 내는 단순한 신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덜 쓰면서 산다. 사람들이 설득 당하는 심리 기제는 바로 이러한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체로 이렇게 행동하면 사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의 심리적 자동 반응을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득의 심리 기제를 부당하게 상대에게 구사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다음에서 여섯개의 심리적 기제를 간단히 설명한다.

첫번째,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은, 인간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것을 주려고 하는 강한 의무를 지게 된다. 상대로 부터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먼저 상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상대에게 선물로 인식될 것은 물론, 상대에게 양보로 인식될 것을 미리 제시하면, 이에 상응하여 상대의 마음을 내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세일즈맨이 이 원리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물건을 팔려 한다면, 상대가 나에게 미리 준 것이 선물이 아니라 물건을 팔기 위한 미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대에게 의무감을 갖지 않도록 생각을 의식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번째,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는, 사람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이후 그것과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향이다. 처음부터 큰 약속을 얻어내려 하기보다, 처음에는 작은 것에 대한 약속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규모를 높여 나가면, 큰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세번째,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는, 사람들은 불확실할 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 자신과 유사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사람들은 신뢰한다. 처음 몇 사람들이 선택을 한 것을 뒤에 온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따라하면서 눈덩이 효과 snowballing effect를 만들어 낸다. 

네번째,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는,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큰 요인으로, 하나는 외모이며, 두번째는 자신과 유사한 특성이다. 외모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크다. 세일즈맨은 고객이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고객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세일즈맨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관심을 갖는 물건은 자신이 세일즈맨을 좋아하는지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구입하려고 하는 물건의 특성에 집중하여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다섯번째,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는, 사람들은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심지어 권위있는 사람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에까지 확장하여 그의 의견을 추종한다. 권위의 근거가 되는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와 관련하여서는, 권위있는 사람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으로 거짓 권위에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여섯번째,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는, 사람들은 물량이 부족하거나 가용 시간의 제한이 있는 물건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며 더 선호한다. 이는 손실을 보는 것을 이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꺼리며, 선택이 제한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 때문이다. 세일즈맨들은 물량의 제한이나 가용 시간의 제한을 거짓으로 설정하여, 고객이 열등한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구매하도록 압박한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바꾸게 되는지, 어떻게 설득에 넘어가는지를 심리학 이론과 실험 연구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세일즈 회사에 지원하여 참여관찰자로 3년이나 일했다고 한다.  책이 나온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잘 팔리는 데에는, 저자가 제시한 설득의 심리 기제가 현실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책의 최근 판에서 하나를 더 덧붙인다. 일곱번째 심리기제로 '상대와 동일한 집단에 속하면 따른다 unity'를 추가한다. 본인과 상대가 같은 집단에 속하며, 한 배를 탔다는 점을 인식시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부족주의 tribalism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을 선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설명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설득의 심리 기제에 자동 반응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의도적으로 전환하는,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면, 자동반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동반응의 심리기제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자동반응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일순간에 사고하는 방식을 전환하여 자동반응을 멈추고 이성적으로 따져보기는 힘들다.

저자는 상대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래에 대해서는 상대를 설득하는 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제외하겠다고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남의 설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일견 당연한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됨에도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름진 음식을 탐닉한다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술 담배를 하는 등은 자신의 건강에 해가 됨을 잘 알고 있지만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지 못한다. 상대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바람직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심리적 기제를 활용하거나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실 아무리 심리적 기제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게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심리적 조작을 통해 상대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는 것은 일시적 피상적으로만 가능할 듯하다. 예컨대 보험을 판매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고객의 욕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심리적 조작을 하여 구매하도록 설득한다고 하여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그런 관계에는 신뢰가 쌓일 수 없고, 그런 회사는 오래 버틸 수 없다.

 

2023. 7. 13. 10:23

Robin Dunbar. 1996.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Harvard Univ. Press. 207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과정을 본인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가 집단내 사람들 사이에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침팬지를 포함한 유인원은 많은 시간을 서로 털을 골라주는데 (grooming) 소비한다. 이러한 행위는 위생적 목적도 있지만 서로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주이다. 유인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 관계는 복잡한데, 서로 유대를 맺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집단으로 사는 것이 단독으로 사는 것보다 생존에 득이 되지만, 대신 집단내 구성원들 간 관계를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영장류의 두뇌 크기와 집단의 규모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비례관계를 인간에 적용할 때, 인간의 뇌의 규모에 대응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수치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던바의 수'라고 지칭한다. 실제 인간 사회를 둘러보면, 구성원들 사이에 직접적 대면 관계와 정보를 공유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을 넘지 않는다. 150명을 넘으면, 간접적 익명의 관계가 급속히 불어나며, 위계구조와 규칙에 따른 형식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자연부락, 종교 집단, 군의 병사 집단 등의 예에서 150명이 최대 상한임을 확인한다.

인간의 두뇌가 그렇게 큰 이유는 '남들의 생각을 읽는 데' theory of mind 엄청난 정보처리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대 5중까지 중첩된 reflexive 정도까지 남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1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2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3단계), 등으로 사고의 복잡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관리하고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침팬지는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 수록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조율해야 할 필요는 커지기 때문에, 남들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은 집단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침팬지 집단의 규모는 50명이 넘지 않으며, 이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약 20%를 그루밍에 할애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유인원들로부터 추정할 때, 인간은 깨어있는 시간의 45%를 관계를 관리하는데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시간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비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할 시간이 부족해지게 된다(time budget limitation). 인간은 이문제를 언어를 통해서 해결했다.

연구결과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할 때, 전체의 3분의 2의 시간과 내용을 사회적 관리에 할애한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남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gossip)은 직접 대면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그룹은 4명을 넘지 않는데, 이는 한명이 말하고 다른 세명이 듣는 구조이다. 한번의 말을 통해 세명과 관계를 맺으므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 개개인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과 비교할 때,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3분의 1로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직접 행동으로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깊이가 얕기는 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호간 담화를 통해 유대를 맺으며 일탈자 freerider를 억제함으로서 집단을 유지한다. 이렇게 언어를 이용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시간을 절약한 결과, 인간은 다른 유인원과 비슷하게 깨어있는 시간의 20~25% 만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쓰면서 더 큰 집단 속에서 살 수 있다. 수렵 채취인의 생활을 보면, 저녁에 불 주변에 모여 앉아서 하는 일의 절반은 바로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는 일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추적해 보면 불이 사용된 후, 인간의 두뇌 크기가 이전보다 크게 커졌는데, 이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언어를 통한 효율적인 관계 구축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언어가 사회적 목적을 위해 발달했다는 증거는, 방언의 발달에서도 확인된다. 사람들의 집단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멀어지면 바로 방언이 나타난다. 방언은 사람들의 집단 소속을 확인시켜주는 효과적인 징표이다. 언어 습관은 어린 시절에 고정되고 이후에는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가 우리 집단 소속인지를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영국의 노동계층의 남성은 노동자 집단의 방언을 사용하나, 여성은 중류층의 말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자신보다 상위계층의 남자와 혼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 반면, 남성은 자신이 속한 노동자 집단 속에서 신뢰를 구축하여 생계를 확보해야 함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구사할 필요성이 여성보다 더 크다.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를 관계의 관리를 위하여 더 많이 사용할 것 같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여성이나 남성이나 대화 내용의 3분의 2는 누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뒷담화가 차지한다. 다만 이는 동성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 그런 것이고,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대화를 할 때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한다. 남성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목적에서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동성 집단 내에서 말할 때에도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에 대해 떠벌이는 시간이 더 많은 반면, 여성은 남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 역시 남성은 자신을 광고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더 주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언어를 더 많이 쓴다. 남성과 여성간에는 '성적인 선택' sexual selection 의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들 간에는 말의 내용이나 기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동성들의 모임보다는 이성이 섞인 모임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배경으로 유인원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2023. 7. 9. 21:57

박지향. 1997. 영국사: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까치글방. 496쪽.

저자는 영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영국의 역사서이다. 주요 주제에 따른 서술을 먼저 하고, 이어서 시대에 따른 서술을 한다. 주요 주제로는 영국인의 정체성, 통치제도, 영제국, 지성사, 지주와 중간계급과 자본주의, 노동계급, 영국의 현안과제(북아일랜드, 유럽통합, 경제적 쇠퇴)를 다루고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에 유럽 대륙의 정치 군사적 갈등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1060년대 노르만의 침공 이래 20세기까지 일천년 동안 외세로부터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덕분에 정치가 안정되었으며, 유럽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영국은 중세시대부터 왕권에 대한 지주 귀족들의 견제가 컸으며, 이는 1200년대의 마그나카르타에서 명문화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전통이 1600년대에 이미 정착되었으며, 1688년의 명예혁명에서 의회의 승인없는 세금의 부과를 금하고, 국가의 자의적 권력 행사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넘어 왕과 국가가 개인과 사회 위에 군림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이는 대륙 국가의 왕들이 자의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프랑스 및 스페인 등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를 거두는 결정적 원인이다.

영국의 지주계급은 상공업 자본으로 전화함으로서 경제 변화의 흐름을 잘 탔다. 17세기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소규모 농민을 몰아내고 농업의 대형화, 효율화를 이끌었으며, 이들은 이후 상업자본가, 금융자본가로 성장하였다. 이는 영국의 장자상속제에 힘입었다. 장자는 토지를 통째로 상속받아 지주로 남지만, 차남 이하는 상업과 금융 부분에 진출하거나 성직자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지주계급과 상공업 자본가 계급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영국은 세습적 신분 못지 않게, 근대 초기부터 부의 축적에 의한 지위 상승이 가능했다. 상업, 금융, 전문직, 등을 통해 부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토지 귀족 못지 않은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상공인은 대지주 귀족과 함께 의회에 참여하였다. 성공한 부르주아들이 토지를 획득하여 지주계급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욕구는 강하지 않았기에 산업 자본은 재투자되었다. 경제발전을 향한 자본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국은 대륙과 달리 어느 정도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있는 개방된 사회였다. 이것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시작된 이유 중 하나이다. 영국은 개인의 자유와 성취 동기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 강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영국을 상인의 나라라고 경멸했으나, 상공업의 부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영국의 발전을 이끈 동력이다. 

175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서 독보적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후 미국 식민지를 잃기는 했으나, 인도, 캐나다, 호주, 등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19세기 말에는 전세계의 5분의 1을 식민지로 거느리는 제국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하여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의 어느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으며, 세계 상공업의 생산과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의 경쟁력은 후발 산업국인 미국과 독일에 의해 추월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발 산업국의 이점은 사라지고, 기득이권이 버티면서 새로운 파괴적 혁신을 추진할 능력을 상실하여, 후발 산업국보다 산업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 영국은 경쟁국가에 뒤지고, 두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제국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여,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 제국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18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사회주의 물결 속에서 급진 노선보다는 자본가와의 타협을 선택한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였으며, 19세기 말 이래 노동자의 요구를 정치 과정에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노동조합의 후원을 등에 없은 노동당이 집권하였으며, 노동자의 요구의 상당 부분이 복지국가의 확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위기에 더하여 노동자들의 파업이 격렬했을 때,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집권하여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신보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영국은  금융부문을 제하고는, 낮은 생산성 때문에 산업 경쟁력이 낮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와 강의 경력을 잘 배합하여 쓴 책이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계급과 노동 분야를 깊이있게 잘 썼다. 영국인은 세계의 가장 선진적인 모범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한 때 가졌지만, 지금은 선진 산업국들 중 상대적으로 뒤쳐진 나라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대단한 폭력적 갈등이나 혁명 없이 헌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국은 사회 청산의 경험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불확실하지만, 한국과 비교할 때 한 수 위의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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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6. 12:30

Giovanni Federico. 2005. Feeding the World: An Economic History of Agriculture, 1800~2000. Princeton Univ. Press. 232 pages.

저자는 경제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구를 포함한 전세계의 농업의 발전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많은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서술한다. 농업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정치적 사회적 요인과 얽혀 있어서 일반화가 힘들며,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많지 않다.

1800년대 이래 근래까지 농업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농업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 그동안 크게 증가한 인구를 먹여살리는 데서 넘어, 잉여 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생산요소들, 즉 토지,노동,자본을 이전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더 많은 양을 생산하였으며, 1900년대 이후에는 생산성의 증가가 생산량의 증가를 이끌었다. 1900년대 이후 화학 비료와 농약, 기계화, 종자 개량, 등으로 생산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지 않다. 대규모 농장은 감독의 어려움과 인센티브의 한계 때문에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다. 1800년대까지는 토지에 대해 전통적 소유권이 지배했다.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경작하는 가족농 family farm, 지주와 생산물을 나누는 소작농 share-cropper, 미리 정한 임대료를 지불하는 임차농 tennant, 마을 공동 소유의 농지 common, 빚에 구속되어 자신이나 남의 토지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농민 debt-peonage, 많은 일꾼을 고용하여 자본주의적으로 경영하는 농장 management farm, 강제적 혹은 자발적 집단 농장 collective farm,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20세기 들어 토지 소유권을 경작자에게 주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이러한 개혁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효과는 일관되지 않다. 한국과 타이완의 토지 개혁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개별 농가의 토지 규모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꾸준히 감소한 반면, 선진 산업국에서는 1950년대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이후에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전통사회에서도 시장경제가 농업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상업 작물을 재배했으며, 일꾼을 일시 혹은 장기적으로 고용하였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까지 정부는 농업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진국 정부의 농업 정책은 소비자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인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농민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제조업과 도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선진국에서 농민들은 도시 주민과 유사한 수준의 소득에 도달했으며, 투표권을 매개로 강력한 로비력을 행사하여 자원 배분의 비효율과 생산성을 외곡하고 있다.

이 책은 농업경제사 분야의 전문학술서이다. 데이타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막상 이론적인 서술은 많지 않다.  농업은 인류의 역사와 경제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통찰력을 주는 좋은 책을 찾기는 어렵다. 이책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으나,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여하간 끝까지 대충 읽었다.

2023. 7. 3. 10:53

Eric Hoffer. 2002(1951). The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 Harper Perennial. 168pages.

저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막노동자로 일생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명성을 얻은 특이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으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이 참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종결되는지 서술한다. 경험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생각을 제시한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궁핍과 좌절과 억압이 극에 달하는 저점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이 발생하기 이전 한동안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올라가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기존 질서를 뒤없는 사회혁명이 발생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억압이 굳건할 때에는 체제를 전복할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제주의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시점, 즉 국민을 조금 풀어주는 시점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다고 하여 혁명을 하지는 않는다. 극빈하면 일상의 생계를 확보하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소련의 스탈린 시절, 중국의 모택동 시절, 정책 실패로 수백만이 굶어 죽었지만, 정권의 장악력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반발이 유의미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부류는 현재의 질서에서 잘 맞지 않는 주변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거나 현재의 질서에서 주변적인 사람은 현재의 질서를 뒤업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열성을 보인다. 이들은 혁명을 방해할 어떠한 장애물도 부숴버리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광신도 fanetics 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무료해 하고 암담해 할 때, 사회를 뒤집어 업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과 목표에 쉽게 빠져든다. 이들은 혁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변화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막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광신도들이 없다면 기존 질서를 뒤업는 작업이 수반하는 혼란과 폭력과 저항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은 실패한다. 

광신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 이념에 엄청난 열정을 투입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추진력이 약하며 기득권의 저항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 시작하려 하기보다 기존의 질서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예컨대 지식인, 예술인이나, 자신의 가진 것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이념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또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혁명은 기존 체제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발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안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만 혁명의 동력이 작동한다. 혁명의 시작은 지식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의 말이며, 볼셰비키 혁명의 시작은 맑스와 레닌의 말이며,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말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 현실을 대치하는 대안에 대한 희망에 끌려서 혁명에 참여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꾼다는 희망, 자신을 일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망과 환상에 모두 설득당하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광신자들은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 증오하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고 처단한다. 

폭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혁명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 몫을 하여야 한다. 혁명의 이념과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지식인,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혁명의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광신도, 혁명 사업을 실행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실행인, 광신도와 실행인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혁명이 성공했을 때 뒤정리를 담당하며 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제도로 구체화시키는 관료, 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실행인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 광신도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지도자가 없는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했을 때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혁명은 혼란으로 끝나게 된다. 혁명의 초기에는 광신도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이들은 혁명 후반 제도화의 단계에는 오히려 정착을 반대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들은 안정을 원치 않고,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것을 계속 부르짖으며, 질서를 만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끌면 실패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존 질서에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고 그대로 지내려 한다. 혁명적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라는 충격에 짧게 노출되어야만 견딜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기간의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면, 시간을 두고 충격의 여파가 퍼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탄생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도 혁명의 충격이 가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가 전개되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답게, 글쓰기 방식이나 논지의 전개에서도 파격적이다. 다르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논의 위에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과 반추의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토해낸다.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과장이 엿보이지만, 독창적인 신선함이 엿보인다. 다만 이 책에서는 혁명의 중요한 요소를 누락시키고 있다. 저자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혁명 참가자에 촛점을 맞추는데, 혁명은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참가자의 심리에 있기보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 저자는 이부분을 처음에 약간 언급한다.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2023. 6. 30. 11:05

Carol Tavris and Elliot Anderson. 2020(2007).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 Mariner books. 377 pages.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의 인지불일치 이론에 근거해 설명한다. 가족, 기억, 상담, 사법 기관, 편견, 갈등과 전쟁,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하여 논의한다.   

1950년대에 페스팅거라는 심리학자가 제시한 인지 불일치 cognitive inconsistency 이론은 현재까지 다양한 사회관계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적용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이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행동을 내적으로 동시에 수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반된 것 중 하나를 바꾸어 인지적 일치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진화의 산물로 보인다. 상반된 생각과 행동을 유지하는 것은 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여 추진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하여 상황이 어그러진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과소평가하거나, 상대나 주위 환경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서 자신을 정당화 justification 한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의 잘못이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것과 밀접히 연관된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상이한 의견이나 행동이, 상대의 비판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고 추가적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차이가 벌어져, 마침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는 상태로 발전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메카니즘이다. 즉 처음에는 사소한 잘못이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지내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다보면, 그것이 처음보다 훨씬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되어, 도저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 잃어야 할 것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기억을 연상할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바뀐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이 바뀌면 과거에 벌어진 것과 정반대로 기억하기도 한다. 과학적 검증 결과, 실제 발생한 것과 기억하는 내용 간에는 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기억하며, 불리한 부분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또한 사람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인지한다.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관여한 동일한 현상에 대해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곡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적발하는 과정에 상담심리분석이 많이 활용됬다. 상담심리사들은 피해 아동에게 피해 상황을 진술받기 위해, 아동의 억압된 기억을 떠올린다는 구실로 유도 신문을 하였다. 아동들이 이러한 유도 신문에 계속 노출되게 되면 없는 사실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무고한 사람이 많이 피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담심리 기법이 잘못된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상담심리사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유사한 상담 기법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상담분석기법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그들이 해왔던 행위가 모두 부정되고, 자신의 직업을 잃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떠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법기관에서 피고를 취조할 때, 그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취조한다. 이는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를 상정한다는 사법원칙 benefit of doubt 과는 정반대의 관행이다. 그들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 행위를 자백받는 것이기 때문에 강압적 방법을 써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강압적 방법으로 자백을 받는 경우, 그 자백은 대부분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과학적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법기관에서는 강압적 방법을 애용한다. 형사는 일단 자신이 범인을 지목하면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기때문에, 자신의 확신과 어긋난 증거는 소홀히 하며, 심지어 정반대의 결정적 증거가 나와도 이를 부정한다. 그러한 증거에는 오류가 있다거나, 혹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한다. 

도날드 트럼프를 지지한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행한 그의 비도덕적 행위와 무능에 대해 눈을 감는다.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거짓되게 그를 모함을 하고 있다거나, 설사 그가 잘못이 있다고 해도, 이는 그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불과하다고 과소평가한다. 혹은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자위한다. 특히 이익이 걸려 있는 단체나 기독교 신자의 경우, 트럼프가 인간적으로 비난받을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추진한 법안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그의 부정적 인간성을 외면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은, 그가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아첨하거나 그의 충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일을 하여 나라의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고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벌어진 피해가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하고, 피해자의 상처에 감정적으로 크게 공감할 경우, 드물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즉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선순환 사이클로 진입하게 된다. 실수와 잘못을 거듭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결국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과학의 강점이다. 사람도 자신의 잘못을 반추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하거나, 감추고 잊어버리려 한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잘못을 반복할 위험은 제거되지 않으며, 자신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시키 않으려고 할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 착하고 유능한 사람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부정적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와 정체성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잘못이 심각한 경우, 피해가 큰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보상을 해야 하는 부담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능한 사람으로 찍혀, 자신의 지위를 뺏길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늑대 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저자들은 단단한 사회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하는 폭이 넓다. 살면서 주위에서 흔히 보고, 누구나 스스로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이것이 3개정판까지 나온 이유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제시한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며 설득력이 크지 않다. '결국 이것이 인간의 한계란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온다.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경쟁에서 패하거나 죽어서 무대에서 사라져야만 잘못된 관행이 고쳐질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개선이 더디고 힘든 이유일 것이다. 잘 쓴 책이다. 

2023. 6. 24. 23:05

Nassim Nicholas Taleb. 2010(2007).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2nd ed. Penguin books. 397 pages.

저자는 증권딜러를 거쳐 통계학자로 변신한 사람이며, 이 책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관해 논의한다.

검은 백조란 매우 드물게 일어나지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세상사는 예상할 수 있는 위험보다는 예상하지 못하며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의해 좌우된다. 근래로 올수록 이러한 경향이 과거보다 더 심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이 발생한 뒤에 사후적으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narrative fallacy), 사전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남겨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아무런 사전적 이유 없이 랜덤하게 발생하거나, 원인이 있다 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전에 일어났지만 우리가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검은 백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problem of silent evidence). 검은 백조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실재의 현상은 이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모두 이론에 따른 가정을 바탕에 깔고 현실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랜덤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론적 접근을 버리고 데이타에 충실하여, 현실로부터 잠정적으로 패턴을 추정하는 귀납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 검은 백조 현상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칠면조는 주인으로부터 1000일동안 먹이를 받아먹으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먹이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1000개의 사건에 대한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1001번째 날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1001번째 날이 크리스마스라 주인은 칠면조를 잡아먹는다. 칠면조의 입장에서 볼 때 1001번째의 죽음은 검은 백조이다. 검은백조가 나타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통계학, 경제학 등 인간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근본적으로 세상사는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나, 사회의 현상 중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많다.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 간에 비례적 선형적 관계를 가정하나, 비선형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이 많다. 물질적 속성의 것, 예컨대 키, 체중, 수명, 등은 선형적 관계이나, 비물질적인 속성의 것, 예컨대 소득, 매출, 정보, 손해, 기술, 등 많은 사회현상은 정규분포나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지수적 법칙 power law 은 이러한 비선형적 관계의 한 예이다.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초기 값에 조그만 차이로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크게 벌어진다. 정규분포에 따른다면 평균에서 벗어나면 급속하게 가능성이 줄기 때문에 예외적인 현상의 비중이 매우 작지만, 지수적 법칙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 현상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체의 평균이 이 예외적 현상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검은 백조는 이러한 비선형적 사건의 일종이다. 비선형적인 극단적인 사건이 전체를 좌우하는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 (Extremistan), 정규분포를 따르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정규분포의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Mediocristan), 비선형적 분포의 상황을 예외적인 것을 취급하는 데,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경제예측이나 재무분야의 포트폴리오 관리 이론은 모두 사기이다. 그들의 예측을 현실과 비교해 보면 전혀 맞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이들의 전문적인 설명에 혹해서 그릇된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생활을 한다. 

검은 백조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튼튼하게 대비하여 (robust)  미리 미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해 대비하게끔 진화하였다.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중복을 두는 것 (redundancy) 이 그것이다. 자연의 유기체들은 비상상황에서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나머지 하나로 버텨나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생물은, 드물지만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에 노출되어 멸종되어 버렸다. 최대의 효율을 추구한다고 여유를 두지 않고 최적화하는 것 (optimization) 은 자신을 예기치 못한 드문 위험에 취약하게 노출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취약함을 줄이는 방식으로(anti-fragile)으로 살아야 한다. 

빚을 지는 것은 취약한(fragile) 생활방식이다. 예기치 못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최대한 자신의 소득 이내에서 살아야 한다. 빚을 동원하여 사업을 하면(leveraged),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이 닥쳤을때, 그동안 벌어놓았던 모든 이익 이상의 것을 까먹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계나 대기업의 보상 방식은, 이익에 대해서는 비례 이상으로 많이 보상을 하면서,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계는 무모한 정도로 많은 위험을 안고 사업을 하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상태에 빠져 있다. 2007년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러한 무모한 영업이 초래한 위험을 당사자들이 지지 않고 세금으로 손해를 메웠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현재의 보상 구조가 지속되는 한, 과도한 위험을 안은 취약한 사업 방식은 미래에 예기치 않은 드물게 발생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또다른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따른 손해를 짊어지는 보상 구조(skin in the game) 로 바꾸어야만 위기를 막을 수 있다.

저자는 금융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답게 학술적 접근의 비현실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검은 백조, 랜덤한, 비선형적인, 등 매우 매력적인 주제를 다루어서 스타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랜덤한 사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살면서 모두 경험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사가 랜덤하게 발생한다고 하는 것은 "왜 그런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자신이 모른다고 드러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도 검은 백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예측이나 설명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책은 그렇게 잘 쓴 책은 아니다. 주제와 무관한 잡다한 사설을 곳곳에서 쉼없이 냉소적으로 퍼부어 대기 때문에, 정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정신 똑똑히 차리고 가려서 읽어야 해서 필요 없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장황하게 반복하는 것도 흠이다. 주제와 무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진지하고 복잡한 사안을 수시로 섞어가며 서술하는 것 역시, 그의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주의를 분산시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서술이다. 그럼에도 통계학이나 경제학에서 기존에 하던 말과는 다른 신선한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디까지 그의 주장이 옳은지를 살펴야 하는 피곤함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2023. 6. 19. 11:32

Renee Engeln. 2017. Beauty Sick: How the cultural obsession with appearance hurts girls and women. Harper. 35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그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여성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관행의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에서 10~30대 연령에 속한 거의 대부분의 여성은 외모에 대해 강박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체중에 대한 강박은 심각한 수준으로, 다이어트로 인한 부작용이나 심지어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약하고, 우울증 등으로 고생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과도하게 신경쓰고 투자하는 것은 다른 생산적 분야에 써야 할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과를 덜 내는 원인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집착하는 것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의 몸이 항시 관찰되고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살면서, 이러한 시각을 내면화한다. 미국의 상업적인 대중문화와 광고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objectification)하는 극단적인 무대이다. 이러한 무대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과 연예인은 통계적으로 예외적 범주에 속하며, 포토샵등으로 조작한 비현실적 몸매을 이상화시킴으로서, 일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게 만들어, 화장품이나 다이어트 등의 미용 헬스 용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자극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모든 여성은 각자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왜냐하면 외모에 대한 문화적 기준을 개인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고나 티브이에 나오는 미모의 여성들은 예외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시청자의 인식을 외곡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역시 도움이 안된다. 미디어의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부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미디어의 이미지에 자극받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관심이 끌리고,  비교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몸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몸에 대한 논의를 의식적으로 줄여야 한다. 여성의 몸을 강조하는 광고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피하고, 자신이나 남들의 몸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대신 다른 주제에 관심을 높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의 심리적 에너지는 제한된 자원이므로, 다른 주제에 관심을 늘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몸을 남에게 보이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몸에 대한 시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대한 집착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여성들을 조사한 결과, 그녀들은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모 자신이 여성의 몸에 집착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이 덜했다. 외모의 사회적 가치는 다른 능력의 가치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외모는 일시적이고 관찰자의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외모는 이러한 중요한 일을 성취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데 관심을 쏟도록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인터뷰 결과를 많이 인용하면서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을 생생하게 서술한다. 사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여성이 남성과 비교하여 사회적 권력의 위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데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 여러 권력 자원 중 외모는 하나의 권력 자원에 불과하다. 여성이 사회적 위계에서 남성과 대등해 질 때,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신경쓰기는 하지만, 다른 자원에 신경쓰는 것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이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여성이 체중에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음식에 지방과 설탕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미국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마른 몸을 우월하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마른 몸이 아니라 뚱뚱한 몸을 이상화하는 가치관이 존재한다. 미국인의 3분의 2가 비만이고, 중상층에서만 마른 몸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도달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차용되고 있다. 요컨대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불평등 사회에서 보이는 지위에 대한 강박증의 일종이다. 이책에서 많은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읽는 장점이 있지만, 중복이 많은 것이 흠이다.

2023. 6. 16. 10:22

David Stasavage. 2020. The Decline and Rise of Democracy: A Global History from Antiquity to Today. Princeton Univ. Press. 310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고대에서 근래까지 민주주의의 원천과 변화의 원인을 전제주의와 비교하면서 서술한다. 민주주의는 오랜 옛날부터 인간사회 공통의 정치 제도였으며, 민주주의는 퇴보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전개되어 왔으며,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는 별도의 길을 걸어왔다.

원시시대와 고대에는 민주주의가 거의 모든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정치 제도였다. 지도자가 마을 혹은 부족의 세력가들로 구성된 집단과 협의하면서 통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집단의 규모가 작을 경우 집단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고대의 민주주의는 주로 상층부의 참여에 국한될 뿐, 일반인에게까지 주권이 부여될 정도로 폭이 넓지는 않았다. 반면 현대의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폭이 넓지만,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이라는 간헐적 간접적 방식으로 주권을 행사하기에 유권자와 대표 사이에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는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깊이가 얕다.

서유럽은 국가의 힘이 약했다. 왕은 소수의 가신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며, 자신 소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정부를 꾸렸다. 대지주 귀족이나 도시민들은 왕의 통제가 미치지 않았다. 왕은 귀족과 도시 상공인들과 협의하면서 국가의 일을 처리하였다. 중세는 물론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의 국가는 국내총생산의 1%정도의 세수만을 거둘 뿐이었다. 유럽의 왕은 15세기 절대왕정 시절에도 자신이 통제하는 관료의 수가 많지 않았으므로 통치력이 미약했다. 서유럽에서 약한 국가와 협의체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귀족, 승려, 도시 상공인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1250년 왕의 세수권한을 제한하는 서약인 Magna Carta와, 1688년 왕을 폐위시킨 명예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국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일반인을 징집해야 하고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게 되면서, 통치자는 국민에게 주권을 점차로 더 많이 양보해야 했다.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남성 모두에게 선거권이 확대되고, 1차대전 이후에 여성에게 선거권이 확대된 과정에는 이러한 힘이 작용하였다.

중국은 일찍부터 국가의 힘이 강했다. 기원전 주나라 시절부터 왕은 두터운 관료 집단을 거느리고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했다. 서기 200년전 한나라 시기에 시작된 과거제를 통해 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하고 통제하는 유능한 관료들을 동원하여 국민의 일상을 통제하였다. 한나라 시기에 국가는 국내총생산의 10%가량을 세금으로 징수하였으며, 도로나 치수사업 등 많은 사업을 전개하였다. 중국은 왕 휘하의 강력한 관료들 덕분에 중앙집권적인 전제주의 체제를 뿌리내렸으며, 이러한 전통은 현대의 공산주의 정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유럽과 중국이 다른 길을 가게된 원인은 자연 환경의 차이에 있다. 서유럽은 넓은 평야가 없으며, 목축이나 호밀 재배에서 밀도가 낮은 농업을 하고, 자연 강우에 의존하여 생산에 굴곡이 많으며, 인구가 조밀하지 않았다. 토지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낮고, 사람들이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면,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통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민주주의가 서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빨리 발달한 원인이다. 반면, 중국은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발달하였는데, 이 지역에는 넓고 비옥한 퇴적토가 있으며 강물을 끌여들여 밀도가 높은 농사를 지었다. 많은 사람이 집중해서 거주하고, 농업 환경 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중국의 농업은 생산량의 측정과 예측이 정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관료는 국민의 생산활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반면 서유럽의 농업은 외부인이 생산량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인이 아닌 국가의 관료가 주민의 생산활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금을 거두기 어려웠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대표자를 뽑아 의회에 보내는 방식의 간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은 대표자에게 의결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1600년경에 일찌기 확립한 반면, 서유럽 대륙의 나라들은 대표자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세금, 전쟁 선포 등과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민이 자신의 대표에게 일정한 한도까지의 결정 권한(mandate)만을 부여하는 제도는, 국가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의회에서 논의가 진행되면서 대표자의 결정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이 발생하면, 자신을 선출한 주민들에게 돌아가 다시 의견을 묻고, 의회에 돌아와서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은 의회의 효율을 크게 저해한다. 대표자에게 의결의 제한을 부과하는 전통은 주민이 대표자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정도가 높다. 반면 대표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는 일단 대표자를 선출하기만 하면 주민은 대표자에 대한 통제권을 더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면에서 국민이 주권을 보유한 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서유럽에서 상공업이 가장 먼저 발전했던 네덜란드를 영국이 제치고 17세기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영국의 의회가 변화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반면, 대표자의 의결을 제한하는 제도를 유지한 네덜란드 의회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도가 높으면, 변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어려우며, 기득권자들이 버티고 신규 시장 진입을 제한한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즉 지주가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꾸고 울타리를 쳐서 경작민을 쫒아내는 것이, 영국 의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대표자에게 전권을 부여한 제도 덕분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민주주의였던 서유럽보다 전제주의였던 중국이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잘 살았다. 전제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지휘로 자원을 동원하여 일관된 경제성장을 추진한 사례가 여럿 있다. 소련이나 현대의 중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가 성숙하게 되면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 개인의 창의가 필요한데, 전제주의 체제는 개인의 창의를 억압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지 않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정치적인 반대의견은 강력히 억압하지만, 생산성을 높일 수있는 비정치적인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혁신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민주주의가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맞지 않는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는 현재 기준으로볼 때 매우 가난한 수준의 사회에서 발달하였으며, 중국은 현재 상당한 소득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중류층이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정치 참여 욕구가 커지기 때문에 중국이 민주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지금까지 맞지 않고 있다. 물론 국민들이 기본적인 생존에 허덕인다면, 선동 정치가의 주장에 쉽게 혹하고 매표와 같은 선거 부정이 만연하기에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렵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볼 때 기본적인 생존의 위협을 넘어선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국민의 소득 수준과 민주주의는 경험적으로 관련이 크지 않다.

서유럽에서와 같이 일단 의회민주주의가 먼저 자리잡으면, 이후 관료가 충원되어 국가의 기능이 커진다고 해도, 의회가 관료 집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약화되지 않는다. 반면 중국과 같이 강력한 관료집단이 전제주의 정치와 결합해 있는 경우, 이후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어도 자리잡기 힘들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여 서방의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경우, 그 제도의 성공 여부는 식민지 시기 이전 그 사회에 민주주의적 협의체 전통이 얼마나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협의체 전통이 미약하다면 식민지 시기의 전제적인 통치 방식이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는 반면, 협의체 전통이 있었다면 서구의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0년 공산주의 몰락 이후 개발도상국에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대단한 일이다.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이 자신의 진영에 속한 전제적인 정부를 떠받쳤었는데, 이러한 보호막이 걷히면서, 많은 나라에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근래에 민족주의와 대중영합주의가 발흥하면서 선진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중앙정치와 대표자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난제이다. 시민 교육을 강화하고, 대표자와 유권자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의회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견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대표자를 통해 수렴하는 제도이다. 전제주의 체제 또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경로를 가지고 있다. 어느 체제이건 통치자는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관료들이 지역의 민의를 수렴하는 경로로 기능한다. 능력에 따라 선발되는 관료는, 세습적 귀족과 달리 일반인 중에서 선발되므로 그들 자신이 민의를 대표하며, 이들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민들과 접하며, 국민의 의견과 필요를 반영하여 제도를 조정한다.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가 근래에 양극화되면서 정부와 의회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조정하여 일을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중국은 유능한 관료와 정치인을 점진적으로 위로 올려보내는 자신들의 체제가,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발하는 대의제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서구의 대의 민주주의제도와 중국의 전제주의 제도는, 각자 안정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달리, 연구 논문과 같이 경험적 분석 자료의 제시와 건조한 서술 때문에 빠르게 읽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서구와 중국을 비교하고, 이슬람과 아프리카 등을 비교하고, 고대와 중세 및 현대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종횡무진 생각을 펼쳐서, 통찰력이 돋보인다. 논의와 관련하여 의문이 생길만한 점들을 비록 저자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논의하는 솔직함이 엿보인다. 여러가지를 생각케 하는 좋은 책이다. 

2023. 6. 9. 22:00

Yuval Noah Harari. 2018.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Speigel & Grau. 323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가 당면한 현실을 진단하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은 크게 다섯 개 부분, 21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정보기술과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 설명한다. 많은 인간들의 쓸모없어지며 (irrelevant),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데이타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에서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제2,3부에서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대면관계는 쇠퇴하고 온라인에 매몰된 사회,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흥, 근본주의 신자들의 폐쇄적인 태도, 이민자의 문제, 테러리즘, 전쟁의 위험성, 배타적 국수주의, 세속주의 등이 논의된다. 4부에서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검토한다. 인간의 무지, 미래 세계에 정의를 판별하기 어려워짐, 거짓 뉴스, 공상과학 영화에 비친 미래, 등이 논의된다. 5부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인간이 만든 추상적인 이야기의 함정, 명상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된 경험, 등이 논의된다.

저자는 그의 첫번째 책 Sapiens 로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으며, 미래 사회를 논의한 Homo Deus 책에서 기술발달로 인간이데이터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그렸다. 이 책은 그가 그동안 여러 군데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인데, 앞서 두 책에서 서술한 것들이 곳곳에서 반복되며, 별로 새로운 내용은 없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상황에 대해 앞의 책들보다 많이 서술한다. 앞의 두 책에서 보지 못한 서술이라고 하면 제 20장 meaning 이 유일한 데,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에 대하여 그의 서술의 요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삶이란 이야기가 아니며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바로 전 책이 2년전에 나와서, 새로운 생각을 전개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 기대를 품고 읽었으나 실망으로 끝났다.

2023. 6. 7. 15:30

Malco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and Co.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해, 심리학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상대를 속이는 것과 상대의 생각을 읽는 것, 두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상대의 거짓말을 판별하기는 힘들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CIA의 전문가들 조차 상대의 거짓말에 흔히 속아 넘어간다. 인간은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살도록 (default to truth) 진화되었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 신뢰는 인간 사회의 협동을 가능케 하였다. 상대의 거짓으로 입는 피해는 상대를 신뢰하는 댓가로 치르는 비용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전제하는 것보다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사는 것이 덜 손해를 본다.

사람들은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살기때문에, 웬만큼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은 확증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CIA의 이중스파이가 발각되지 않은 이유, 버니메도프의 폰지 스킴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 필라델피아 팀 코치의 아동성애 도착증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 체조팀 전속 의사의 여성 선수에 대한 성폭행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이를 확증으로 바꾸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경우에 상대의 거짓이 발각된 것은 거부할 수 없이 객관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었기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직접 만나보고, 그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transparency theory), 이는 틀린 생각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정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 형사범에 대해 보석 판정을 내릴 때, 판사가 피고인을 직접 면담을 하고 내린 판결이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컴퓨터가 판정한 결과보다 더 열등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니메도프는 그의 철저히 거짓된 투자 행위와는 달리, 매우 예의바르고 신뢰감을 주는 인물이었기에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그에게 큰 돈을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술에 취했을 때와 같이 비정상적 심리 상태에 있는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파티를 벌이면서 엄청나게 술을 마셔 의식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 처한 남녀 사이에 즉흥적인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술에 취한 남성이 술에 취한 여성의 동의를 얻었는지 여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여성이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의식 상태에 있는 경우, 이러한 여성은 상대 남성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며, 술에 취한 남성 또한 술에 취한 여성이 보내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이 경우 법원은 남성이 여성을 성폭력한 것으로 판정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모르는 남자와 만나 잠시 술을 마시고 나서 섹스를 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 초반 범죄가 급증하자 경찰은 적극적으로 범죄 행위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였다.  의심스러운 사람들에 대해 사소한 구실을 트집잡아 검문검색을 하여, 총기나 마약 등을 소지한 사람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아들이는 전략이다. 이는 특히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우범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실행되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검문검색이 경찰에 대한 무고한 시민의 반감을 높일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은 상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의심을 전제로 한 대응으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살아가는 것과 정반대이다. 이러한 검문검색 과정에서 상대와의 감정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사소한 검문검색이 상대를 죽이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상대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방향으로 출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비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텍사스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젊은 흑인 여성이 경찰로부터 사소한 구실로 검문검색을 받으면서 감정적 충돌이 격화하여 결국 유치장에서 자살로 마감한 사례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과 연관된 맥락 속에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coupling). 예컨대 자살을 감행할 때,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이 가까이 있으면 자살을 쉽게 저지른다. 자살이라는 엄청난 일은 많은 생각과 고뇌를 거쳐서 감행하는 일이므로, 어떤 편리한 자살 수단이 가까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에서 1960년대에 취사용 연료로 그때까지 사용하던 일산화탄소를 함유한 석탄가스로부터 일산화탄소를 미량 함유한 도시가스로 바꾸었을 때, 여성의 자살율이 크게 떨어진 것이 그 증거이다. 자살과 연관된 맥락을 바꾼 결과 자살이 줄어든 것이다. 앞에 언급한 경찰의 적극적인 검문검색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는, 이러한 치안 전략이 범죄가 빈발하는 지역과 연결될 때만 효과가 있다.

저자는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일상의 사건과 연결시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로 각광을 받았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 그가 천부적인 이야기 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부지런한 탐색과 번득이는 감각을 결합하여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만들어 낸다. 일부의 연구결과를 확대 해석하기 때문에 엄밀한 설득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이야기 꾼답게 그의 글은 정말 술술 넘어간다.

2023. 6. 6. 12:37

Yuval Noah Harari. 2015.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Harper. 416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탄생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몇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거시적으로 서술한다.

인류는 인지 능력의 비약적 발달 덕분에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길을 걸었다. 추상적 상상을 하는 능력 덕분에, 인류는 종교, 이념, 민족, 국가, 법인, 기본권, 등 추상적 아이디어를 구심점으로,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일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문자의 발명 덕분에 세대의 한계를 넘어 아이디어가 전해지고 축적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확장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비참과 멸종을 의미했다.

농업 혁명으로 생산력이 늘고 인구가 증가했지만, 이전에 수렵채취 단계에 비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은 과거보다 더 고달파졌지만, 일단 농업 단계로 접어들면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었다. 잉여생산물을 기반으로 도시와 위계적 사회가 출현하고, 사람들은 성, 인종, 등으로 구분된 집단간에 편견을 생산하고 차별과 착취를 하였다. 이러한 구분과 착취는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해낸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이다.

크게 볼 때 인류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이다. 근래로 올 수록 인류는 과거에 고립된 수 많은 작은 단위의 사회로부터 점차 큰 단위의 사회로 통합되어, 마침내 지구 전체가 하나의 사회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통합은 경제, 정치, 종교의 영역 모두에서 전개되었다. 화폐와 교역을 통해 경제가 통합되었으며, 다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의 정복과 흡수를 통해 정치적으로 통합되었으며, 국한된 지역을 넘어 인류 전체를 관장하는 신과 초월적 힘이라는 아이디어로 종교가 통합되었다. 근대에 들어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통 종교를 대신하면서 통합을 이끌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전과 판이하게 구분되는 단계인 '근대' modern 를 이끈 핵심은 '과학 혁명' scientific revolution 이다.  이전에는 과거를 이상으로 생각했으며, 모든 중요한 지식은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1500년경 서구에서 '인간은 무지하다,' '세상을 관찰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자' 라는 새로운 지식 탐구 방법론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세상을 탐구하여 획득한 새로운 지식은 힘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를 관찰하여 얻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생산력을 높이고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서구에서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함께 '진보' progress 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었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반면,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힘으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국이나 이슬람의 지식 수준이 서구보다 더 높았지만, 그들은 모든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새로운 지식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나 문제에 봉착하면 과거 사람들이 남긴 지식을 열심히 파고 새로이 해석하려고 했다. 중국이나 이슬람인들은 인류의 이상향이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가 오랫동안 정체 상태를 유지했으므로 당연하다.

과학 기술은 제국의 확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국가의 후원 속에서 발전하였다. 주요한 과학 발견은 거의 대부분 국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가는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비용을 지불하였다. 자본을 투자하여 거둔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더욱 더 확장시킨다는 자본주의적 사이클은 신용제도와 더불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사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신용제도는 미래의 경제성장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본주의 제도는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금전적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 다른 어느 제도보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하였다.

증기의 힘과 같이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인류는 근래로 오면서 전기, 핵 에너지, 태양광 등과 같이 새로운 에너지 원을 계속 발굴하면서 생산성의 향상을 거듭했다. 이러한 물질적 발전을 이끈 힘은 과학 기술에 있는데, 인간의 과학 기술은 마침내 자연 세계의 원리인  진화적 발달을 뛰어넘어, 인간이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물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미래에 슈퍼 휴먼의 출현을 예상케 한다. 미래에 출현할 수퍼 휴먼은 현생 인류에 대하여, 마치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보듯 할 것이다.

인류는 근래로 오면서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과연 인간은 과거보다 더 행복할까? 물질적 향상과 더불어 인간의 욕구와 기대수준 또한 함께 높아졌으므로,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잘 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불만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인의 중심 가치관인 인간중심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느낌 feeling, 자기 자신의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을 최고의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욕구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다. 인류의 물질적 발전이 행복을 높이지 못한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말인가? 불교에 따르면 인간의 불만과 근심은 집착에서 비롯되므로, 집착을 끊으면 만족과 불만이 없는 상태,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관조하는 상태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는 아직 미해결의 과제이다. 한편 인류의 발전은 지구상 다른 생물들에게는 비참과 파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한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필자도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책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매혹시켰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희미한 이책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첫째, 여러 학문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두드러졌다. 저자의 독서가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그많은 이야기를 기억속에서 꺼집어 내어 적재적소에 꿰어 맞추는 능력은 놀랍다. 둘째, 저자는 관점을 수시로 바꾸고, 때때로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을 비교하면서 신선한 발상을 발산한다. 기존의 역사 서술은 거의 모두가 서구 중심인데, 저자는 수시로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관점에서 비교하기도 한다. 셋째, 역사 서술에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적 시각을 접목하여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종횡무진 발휘한다. 그 결과 이 책이 역사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물론 두번째 읽으니 곳곳에서 그의 추리이나 서술에 약점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아직 젊으므로 앞으로 어떻게 생각이 발전할지 궁금하다.

2023. 5. 31. 20:51

Heather Heying and Bred Weinstein. 2021. A Hunter-Gatherer's Guide to the 21th Century: Evolution and the Challenges of Modern Life. Swift. 243 page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 부부이며, 이 책은 현생 인류가 오랜 동안 수렵채취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형성된 특질이 20/21세기 현대 문명 사회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서술하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의 진화적 적응은 유전자와 문화의 양면에서 전개된다. 동물의 유전자는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지만, 문화를 통해 다양한 상황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인간은 동물 세계에서 가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이는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유전자와 문화는 상호 작용을 하면서 발전하기 때문에, 소위 "자연과 환경" nature versus nurture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논쟁은 부적절한 질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환경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반면 인간의 몸은 오랜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되었으며 이렇게 빠른 속도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현대인이 사는 환경은 인간의 몸과 맞지 않으므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기본 원칙으로, 가능한 한 현대 문명의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대신 자연에 근접한 방식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할 것을 권한다. 의료, 음식, 잠, 섹스와 젠더, 자녀 양육, 관계 맺기, 학교, 등의 주제에 대해 장을 달리하면서 서술한다. 현대 의료 기술의 개입보다는 자연 치유를 권하며, 가공 식품을 멀리하며, 잠을 잘 자는 것을 중요시하며, 남녀간 일생동안 상호 헌신을 수반하는 일부일처제를 권장하며, 여성과 남성은 서로 능력과 성향이 다른 것을 인정하며, 비대면 접촉보다 대면 접촉하는 관계를 권장하며, 학생이 스스로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어려움에 부닥뜨려 해결책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하는 교육을 권장한다.

현대문명은 지속적 성장과 더 많은 소비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비즈니스 세계는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욕망을 자극하지만, 이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본주의 논리와 시장의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뉴욕타임즈가 추천한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읽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제목이 그럴듯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지만 결국 실망으로 끝나다. 그들의 주장에 특별한 것이 없으며, 상식적인 지적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논의는 대부분 그들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기 때문에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어려웠으리라. 현대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권하는 대로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우며,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의 과정은 거꾸로 되돌리기 어렵다.

2023. 5. 28. 18:08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 402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장기적 미래 모습을 예측한다.

인간은 과학기술 덕분에 기아, 질병, 전쟁을 이제 거의 정복하였다. 인간의 다음 도전은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고, 더 높은 행복을 누리며, 세상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조금씩 조금씩 변형하여 더 오래살고, 더 똑똑하고, 감정을 더 잘 통제하는 존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미래에, 현재의 인간은 마치 현재 동물이 그러한 것 처럼, 미래의 인간에 의해 도태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초인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부터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생물학적 능력의 격차가 사람들사이에 벌어지면, 이는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마치 과거에 일반인과 노예의 격차와 같은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

인류는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이전했다. 이제 인간의 경험, 인간의 행복이 모든 결정에 궁극적인 기준이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일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의 복합체인데, 이 복합체는 합리적이며 일관된 특성의 것이 아니어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할 때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은 핵심이 되는 자아를 전제로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아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유전자, 즉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유전자가 핵심이며, 생명활동이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확산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다른 동물의 데이터 처리능력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데이터 처리 능력이 더 높기에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지배하고 멸종시켰다. 인간의 감정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감정이 모두 데이터 처리장치라면, 데이터 처리 능력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더 좋다 라는 논리적 추론으로 귀결된다.

컴퓨터가 발전하여 이제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인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되었다. 지적 문제를 푸는 분야에서 인간은 조만간 컴퓨터를 당해낼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많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하게 되었다. 조만간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결정을 맡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히 분석하여 그를 더 잘 알고 그의 사정에 더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데이터를 더 잘 처리하고 문제를 풀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소수의 고급 데이터 처리능력을 갖추고, 인공지능을 디자인하는 고도로 복잡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의 지적 능력에 기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또한 부적절해 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면, 일반 사람이 투표하여 선거로 결정짓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일반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전쟁을 치룰 수 있게 된다면, 전쟁에 일반인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일반인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즉 대다수의 일반인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의 복리를 살펴야 할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상을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 Dataism이라고 명명한다.

이미 인공 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데이터를 처리하여 이러한 능력을 발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치하는 분야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신뢰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은 확실하다. 자본주의의 시장기구보다, 민주주의의 선거보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기반한 결정이 더 효율적인 사회는 현재의 사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라는 점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 즉 제레미 벤담의 최대의 행복이 지금까지 효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만족만으로는 살 수 없다. 결정의 주체가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는 느낌, 즉 보람,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결정을 대리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데이터 처리능력이 사회에 쓸모가 없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의미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삶은, 현재 동물 농장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하는 닭이나 돼지의 삶과 다름이 없다.

사실 현재 우리의 삶도 삶의 의미를 크게 느끼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데, 삶의 결정이 모두 인공지능에 의해 뺏기게 된다면, 그런 '혹시나' 하는 자기기만적인 감정 조차도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암울한 삶이다. 인간의 삶이 알고보면 동물 농장에 닭이나 돼지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한다면.   유발 하라리는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식견에 감탄하며 읽었다.

2023. 5. 17. 22:49

Richard Easterlin. 1996. Growth Triumph: The twenty-first Century in Historical Perspective. Univ. of Michigan Press. 154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 경제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인구 증가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21세기에도 경제성장이 계속 이루어질지에 대해 논의한다.

세계의 경제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전과 다른 속도로 장기간 고도의 성장 궤도에 접어든다. 이렇게 매년 1~3%의 성장을 오랫동안 지속한 혁명적 변화의 동력은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새로운 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접근하는 경험적 실험적 객관적인 방법론 덕분에 끊임없는 탐구와 신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산업혁명 이래의 경제 발전은 자본과 노동 등의 생산요소를 과거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양적으로 성장한 면보다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질적으로 성장한 면이 더 크다. 

산업혁명 시기 국가들 사이에 경제성장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들 사이에 세력 균형의 변화가 따른다.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력을 높인 나라는 군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이전에 형성된 국가간 세력 분포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한 서유럽 국가들은 산업 발전에 착수하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19세기 후반 식민지로 복속시켰다. 유럽에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 및 프랑스와, 뒤에 발전하여 따라잡은 독일 사이에 세력 분포의 변화를 둘러싼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과학 지식과 기술은 국가간에 쉽게 전파된다. 과학 지식과 기술이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면 유럽을 넘어서 세계로 경제성장이 빠르게 퍼져 나갔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한데, 왜일까?  과학 기술이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질려면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교육과 민주적 의회제도가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과학 기술을 이해하여 생산에 적용하며 기술의 변화를 수용하려면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수이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아무리 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도입해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제활동의 결과 산출된 부를 정치 권력자들이 임으로 뺏어간다면, 즉 정부가 시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의회제도는 권력자의 임의적 권력 행사를 제한하고, 시민의 사유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과학 기술 및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제도와 의회제도가 다른 물적인 요소보다 경제성장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제1,2차 세계대전후 독일과 일본이 폐허를 딛고 빠르게 성장한 사실에서 입증된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과학 기술 및 제도적 기반이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일이십년만에 전쟁 이전의 경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부터 '사망율의 혁명' mortality revolution 이 일어났으며, 시간 차이를 두고 이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인구 변천 population transition 과정을 겪었다.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진 원인은 위생과 건강에 대한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병균이 질병의 원인이며 위생상태가 불결하면 병균이 창궐한다는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병균이 서식하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제거한 결과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과학 기술과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보다, 질병과 위생에 대한 과학 지식 및 불결한 환경을 제거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보다 사망율을 떨어뜨리는 데에서 훨씬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다.  

선진국은 인구 노령화 및 인구 감소로 인해 경제성장이 멈추는 미래를 걱정하는데, 이는 기우이다. 인구 노령화의 문제로 크게 두가지가 언급된다. 첫째는 인구가 노령화하면 노동 공급이 줄어들고 노동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는 우려이다. 2030년까지 노동공급이 약간 줄어들지만 우려할만큼 크지 않으며, 이후에는 이미 낮은 출생율의 세대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노동 공급이 더이상 줄지 않는다.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전인구 대비 노동공급이 크게 줄지 않는 이유는, 노령 인구가 느는 것과 함께 아동의 비율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령의 노동력은 젊은 사람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사무직이 주류인 선진국에서 고령의 노동력은 경험이 풍부하여 육체적 정력이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며, 과거와 달리 미래에 고령의 노동자는 젊은 사람에 비해 교육 수준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령이라고 하여 생산성이 젊은 노동자보다 크게 낮지 않다.

인구 노령화로 우려되는 두번째 문제는 인구 부양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 노령화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아동 인구의 감소를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부양비는 변함이 없다. 노인이 늘면 연금이나 의료비가 증가하는 데 이는 젊은이들의 노동 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에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아동을 부양하는 비용은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 못지 않게 많이 드는 데, 아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부양 부담의 총량은 노령화로 인해 높아지지 않는다. 노인이 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 부양 인구를 부양하는 데 더 투입되지는 않는 것이다.다만 아동을 부양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지출로 충당되지만, 노인을 부양하는 것은 세금 등의 공적인 지출로 충당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과거에 아동을 부양하는 데 들던 비용을 노인을 부양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전하도록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요컨대 노령화로 인한 부양 부담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

동일 시점에서 비교할 때, 한 사회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그러나 시간차를 두고 비교를 하면,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에 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여 과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기대수준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이 평균적인 규범과 비교하여 행복 여부를 판가름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도 함께 높아진다. 물질적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증거는 아직 서구사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미래에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물질적 수준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도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이 계속 추가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즉 미래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좀 더 높은 생활을 갈망할 것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성장은 과거보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전보다 더 큰 풍요를 원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은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로 확산될 것이다. 후발 산업국들은 선발 산업국들과의 격차를 좁혀갈 것이다. 후발 산업국은 선진국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빌려와 쓸 수 있으므로, 선진국이 성장하던 때와 비교하여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 반면 선진국은 완전히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성장하여 선진국에 근접하게 되면 후발 산업국들은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선진국들에 대해 국제적 영향력의 재분배를 요구할 것이다. 20세기 초반 영국대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선진국의 과학 기술이 세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의 문화와 가치의 차이는 줄며, 효율과 합리성을 우선하는 세속적 가치가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이책은 저자의 경제 성장에 관한 오랜 연구를 정리하는 취지로 쓰여졌다. 논쟁적이기보다 상식적인 부분을 재확인하면서 평이하게 서술한다. 경제 성장에 관한 기존 논의가 잘 녹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구 노령화를 둘러싼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참신하게 들렸다. 인구 노령화나 선진국의 인구 감소는 경제적 효과보다는 국가의 위신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 때문에 그렇게 아우성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2023. 5. 14. 22:57

Eric Jones. 2003(1981). The European Miracle: Environments, Economics and Geopolitics in the History of Europe and Asia. 3rd ed. Cambridge. 25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인, 서구가 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을 앞서 발전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는다. 자연 환경적인 요인과 제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서구가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앞서게 된 시점은 대략 1500년대, 즉 북서유럽 사람들이 대양으로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인도와 중국에 진출하게 된 무렵이다. 1500년대 이전에는 중국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이 기술적으로 서유럽보다 앞섰으며, 물질적 수준에서도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었다.

서유럽은 아시아의 다른 문명권과 비교하여 인구 출산률이 낮았으며,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발하였기 때문에 자연출생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로 자녀를 낳는 전략을 택한 반면, 서유럽은 자연재해가 적었으므로 최대 자연출생력에 못미치는 출산 관행이 지배했다. 서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서 출산력을 조절하는 사회관습이 정착했다.

서유럽은 아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므로 인력보다 자본을 더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농업이 주였던 시절에, 아시아는 논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서유럽에서는 목초지에 가축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투입하여 밭을 경작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 서유럽에서 수력, 풍차, 석탄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즉 생산 과정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서구가 발전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높았으며,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주의가 지배하였다.  

1500년대 무렵 유라시아 대륙에는 크게 네개의 문명권, 즉 유럽 문명, 중동의 오토만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나라 제국이 존재했다.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은 정복 문명이었다. 중동과 인도 및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 제국은 모두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 유목민들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이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과 달리 유목민 약탈자 권력이 닿지 못한 행운을 누렸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복 세력은 토착인을 최대한 착취 약탈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뿐,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를 관리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복 국가의 국민들은 중앙 집권의 권력에 포획되어 있었으며, 귀족들 또한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착취하는 역할만 하였다.

반면 서유럽은 작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였다. 유럽의 자연 환경은 산, 강, 바다로 지역을 잘게 나누고 있으며, 북서 유럽에는 숲이 널리 퍼져 있어 지역간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였으므로, 단일 권력이 전 지역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각각 분할된 지역에 토대를 둔 국가들은 서로간 끊임 없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 집단들의 틈바구니에서 상공업자들은 상대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서유럽의 권력자들은 자의적으로 상공업을 제한하거나 상공업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전횡을 부릴 수 없었다. 서유럽의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축적하여 재투자하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아시아의 약탈적 정권 하에서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모으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사치한 생활에 소비하거나, 지주 혹은 관료의 지위로 갈아타려고 노력했다.

서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기독교 문화의 일원으로서 서로 간 어느 정도는 유사했다. 서유럽의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사람들의 이동을 통한 아이디어의 전파가 매우 빨랐다. 한 지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면 서유럽 전체로 곧 퍼졌다. 지역간 언어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 대륙 전체로 지식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지역 언어들 사이에 유사성이 높았으므로 다른 언어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나라의 권력 집단이 자의적 횡포를 부리면, 곧 그 나라의 상공업자와 자본가들은 다른 지역으로 기술과 자본을 들고 이동하여, 그 지역의 세수가 감소하고 군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각 지역의 권력 집단은 자신의 지역에서 경제가 활발하도록 항시 관심을 기울였다. 상공업자들은 정치 권력 집단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누렸으므로, 이후 이들이 주도하여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달하였으며,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을 돕기위해 도로를 닦고 상공업의 규칙을 관리하는 등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국가 service state 로  발전하였다. 

저자는 서유럽이 1500년경 무렵에 세계를 앞서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1400년경 혹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점차로 배경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력이 상공업자의 자본을 자의적으로 탈취하지 못하는 관행은 1200년경 이탈리아에서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와 비교하여 볼 때 서유럽에서는 1500년 이전부터  상공인의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이다. 중세시대에도 교회와 왕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전통은 영국에서 1300년대 후반 세금을 내는 상공인과 지주가 왕에게 압력을 가해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문서인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내었으며, 서유럽 전지역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의회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중동이나 인도 문명은 역병의 피해를 자주 많이 받았으나 국가가 역병의 확산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국가가 주도하여 방역을 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전 서유럽보다 발달했던 생산 기술과 항해 기술을 국가가 금지하여 이후 기술이 퇴화하였다. 이는 중앙 관료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보수 세력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이겼기 때문이다. 반면 서유럽에서 보수세력의 변화에 저항하는 힘은 중국만큼 크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신기술의 도입을 금지하였다고 해도 이웃나라가 버티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령은 실제로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다.

서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1000년대 이래 인구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의 생산수단에 비교하여 인구압력이 계속 높아졌다. 1300년대 중반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압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지만 100년도 못되어 다시 인구가 증가하였다. 서유럽과 중국은 높아진 인구압을 배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전 및, 1500년대 이래 아메리카 대륙 등 식민지 개척으로 높아진 인구 압력이 분출될 탈출구가 마련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장의 확대 등으로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한편 중국은 명나라 이래 남쪽 지역으로 경작을 확대하여 높아지는 인구압을 배출하였다. 중국에서는 논농사 지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 없이 인구를 많이 투입하여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한 반면, 서유럽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농업과 이후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즉 중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외연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생산성의 향상은 높지 않았던 반면, 서유럽에서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술 발전과 자본 투입이 높아지면서 생산성의 향상이 함께 갔다.

중국에서 새로이 개척할 땅이 다했을 때, 결국 권력 집단은 국민을 더 가혹하게 탈취하고 국민들은 참다참다 결국 폭발하여 정권이 교체되지만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중국의 청나라 시절 연거퍼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와 엄청난 인명 피해의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새로이 개척할 땅이 없었던 중동의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의 무굴제국이 간 길이기도 하다.  반면 서유럽은 인구 증가와 생산성의 향상 및 식민지로의 인구 배출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민중의 대규모 반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의 학술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낱낱이 검토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교양서로 읽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 역시 축약적이고 복합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논의가 균형되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읽기는 어려웠지만 영양가가 높았다.

2023. 5. 10. 18:02

Edward Conze. 1959(1951). 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 Harper Torchbooks. 212 pages.

저자는 서구의 유명한 불교학자이며, 이 책은 주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의존해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불교는 서구의 철학과 달리,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려는 지적인 관심보다, 도 darma 를 깨닫는 실천에 촛점을 맞춘 실용적인 접근을 택한다.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자아를 버려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세상과 삶은 고통으로 차있음으로 세상과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물러나 마음의 평정을 확보해야 한다. 업보를 쌓아 윤회를 거듭하면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극락 Nirvana 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소유를 최소화하고 가난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남을 괴롭히고 마음 상하게 하는 행위 역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 반하는 행동이다. 자아를 버리고, 세상과 내가 구별되지 않는 하나임을 깨달아, 주위 사람과 생물에 대해 동정심 compassion 을 가져야 한다.

불교는 서구에서와 같은 전지전능한 인격신을 설정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부처를 숭배한다. 깨닮음은 세상과 나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부처의 길, 즉 도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불교에서 인격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빈 empty 것이다. 구별을 하는 것, 주체와 객체, 나와 너, 긍정과 부정, 등으로, 인식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불교의 진리는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다.

불교는 지적인 전통과 신비적 체험의 전통으로 나뉘어 있다. 전문가들은 지적인 깨닮음을 강조하나, 일반 신도는 신비적 체험에 관심이 많다. 소원을 성취하고 병을 고치고 등 일반인의 염원을 신비한 힘으로 풀어주는 것 역시 불교 믿음의 일부이다. 탄트라 불교는 신비적 체험을 강조하는 종파이다. 

소승 불교는 구도자 개인의 깨달음에 촛점을 두며, 대승 불교는 대중 전체의 구원에 촛점을 둔다. 불교의 원래 교리는 소승불교에 가까운데,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승 불교가 갈려나왔다.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불교는 지적인 탐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순을 꿰뚤어보는 통찰력은 논리적인 탐구를 통해 획득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의 고전이라고 추천받아 읽었으나, 많은 부분의 서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쪽의 책을 중간에 던지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읽었으나, 이해가 높아지지 않아 실망했다. 집중해서 읽었으나 읽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 이라는 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고통도 즐거움도 염려도 관심도 없는 무념무상의 세상에 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지 않는가? 윤회는 허구이다, 이 세상의 고통과 부정의와 우연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2023. 5. 6. 22:34

William McNeill. 1991(1963).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0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고대에서부터 1950년경까지 세계 문명의 전개를 설명한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중동지역이 인류의 문명을 대표한 500 BC 경까지, 이후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 유라시아대륙의 곳곳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농업 혹은 상업을 기반으로 한 문명들(헬레니즘, 인도, 중국, 이슬람 제국)을 위협한 시기인 서기 1500년까지, 전세계에 대한 서구의 압도적 지배로 요약되는 1500년 이후 현재까지, 이렇게 인류 역사를 세개의 시기로 구분을 한다. 그는 세계의 문명권이 고대부터 서로 영향을끼치며 전개되어 왔다는 점, 1500년 총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발전은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전개에 의해 크게 좌우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이곳에서 농경이 처음 시작되고 도시가 출현하였으며, 부족의 규모를 넘어선 큰 규모의 정치체가 등장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후 변방으로 확대되어, 기원전 1700년경에는 이집트, 소아시아, 크레테, 이란으로 확대되었으며, 이후 인도, 그리스, 중국 문명이 기원전 500년경까지 세워졌다. 중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는 독립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인도와 그리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

그리스 문명은 서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서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소아시아의 헬레니즘으로 확장되었다. 인도문명은 동남아시아로 확장되었으며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은 철기문화를 일찌기 발전시키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멸망시켰으며, 이란 아프간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인도 문명을 위협하였다.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유목민족들은 중동과 중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문명간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동유럽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중국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기존 사회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 문명은 동으로는 이란과 인도 지역으로, 서로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로 확장하였다.

1500년까지 서유럽은 문명의 변방지대에서 낙후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항해 및 총포 기술과 함께 체계적으로 군사를 조련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하는 전쟁 능력을 획득하였다. 서유럽이 중국, 인도와 비교하여 이렇게 크게 발전한데는, 여러 작은 정치체들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쟁 능력을 함양한 것, 지주층과 비교하여 상공인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점이 큰 이유이다. 서유럽의 이러한 전통은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부터 발전되었다. 반면, 중국은 지주세력이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하여 상공인의 발전을 억눌렀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정된 중앙 집권체제가 계속 유지되면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의 힘이 매우 강했으며, 다수의 정치체들간 경쟁을 통한 변화의 역동성이 부족하였다.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초원지역에 사는 유목민족은 주변의 농경민족보다 군사적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수시로 주변의 문명들을 위협하였다.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 진출하였으며, 이들의 압박으로 역시 유목민족이던 고트족이나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밀려나 정착하였다. 유럽인은 고대부터 군사적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으므로, 호전적인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다. 유목민족들은 남으로는 북인도로 진출하여 인도 유러피안어족의  인도문명을 세웠다. 이들은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원나라, 청나라, 금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의 문화에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중동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헬레니즘을 수용하고, 이슬람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오랜동안 주변의 다른 문명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을 거듭하였으며, 노예를 기반으로 군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들의 거듭된 반란으로 국력이 쇠하였으며, 신정 정치가 계속되면서 변화를 거부하여, 외부의 위협에 대응한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였다.

1500년경 이후 서구 문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확장의 길에 접어든다. 1400년경 부터 서유럽은 점차 기독교의 지배에서 풀려나,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세속적인 합리주의가 세를 더하였다. 이는 1700년대에 계몽주의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국민의 힘을 키우고 민족국가를 형성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7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급속한 인구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1800년대 중반쯤 세계 모든 지역은 서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유라시아대륙에 비해 3,000년 정도 문명의 발전이 낙후되어, 1500년경 서구와 만났을 때 아직 철기문화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유라시아대륙의 질병에 취약하여 쉽게 무너졌다. 서구의 위협에 대응해 자신의 선조로부터 계승한 문화의 무력함에 절망한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서구의 문화를 급속히 수용하였으며, 자신의 전통 문화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저자의 역사관은 두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첫째, 세계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어느 지역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발전이 전개되면, 이것은 얼마 안되어 주변지역에 모방되고, 이러한 과정이 빠른 속도로 전지구를 돌며 영향을 미친다. 둘째, 서구가 앞서기 전인 1500년 무렵까지 유목민족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 세계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총포의 발명으로 유목민족의 파괴력이 무력해진 후에도 여전히, 군사적 능력은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서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우월한 군사력 덕분이다.  현재 세계는 서구의 문명권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대체할 어떤 다른 문명이 등장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이 계속 발전하면, 아마도 미래에 인류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현재의 인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저자는 역사의 전개를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 말로 많이 설명한다. 다양한 사회와 제도, 지역, 시간을 종행무진으로 비교하면서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공부한 역사는 서유럽에 국한된 역사이며, 통찰력과는 거리가 먼 단순 학습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데에 역사 공부의 목적을 둔다면, 이 책은 정말 최상의 교재이다. 감탄을 거듭하면서 800쪽의 책을 읽었다. 여러번 읽을만한 책이다. 다만 20세기의 역사나, 동아시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2023. 4. 21. 10:03

William McNeill. 1995. Keeping Together in Time: Dance and Drill in Human History. Harvard. 1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동시에 움직일 때 느끼는 흥분이 종교, 군사, 정치, 사회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2차대전에 징집되어 군사훈련을 할 때, 여러 시간 동안 보조를 맞추어 행진연습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적 흥분의 기억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리듬을 맞추어 육체적인 활동을 하면, 집단 소속감과 함께 삶에 대한 흥분이 고조되면서 집단결속이 높아진다. 저자는 이를 '육체적인 결속' mascular bonding 이라 지칭하는데,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 구성원들과 언어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소통을 할 때 집단 결속력이 높아지고 집단적인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적 소통 방식은 후대의 인류에게 계승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감정은 지적인 활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체로 감정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를 지적으로 정당화 내지 제도화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과거 인류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하는 활동은 그들의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종교적인 목적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여러 시간 동안 함께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춤을 추었다. 집단적으로 하는 노동에서 노동요에 맞추어 단체로 일하므로서 오랜시간 노동의 고됨과 지루함을 극복하였다. 축제 기간에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름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이러한 집단 활동은 서기 2000년전 수메르 시대의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는 계기는, 지도자의 이끌림에 따라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면서 종교적 황홀경(trance)를 맛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는 초기 단계에 이러한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신도를 유인하는데, 이는 여러 사람이 모여 동시에 몸을 움직이면 느끼게 되는 집단적 '흥분'  effervescence 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흥분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도의 규모가 커지고 종교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제한하려하고, 감정보다 지적인 접근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인 접근에 반발하여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이단이 생겨나고, 이들이 새로운 교파를 형성하면서 신도가 증가하면서 종교의 합리화 과정이 되풀이 된다. 과거 감리교, 침례교, 몰몬교가 발흥하게 된 계기, 근래에 복음주의 개신교 교회, 특히 오순절 교회Pentecostal 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크게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예배 시간에 신도들이 동시에 몸을 움직임이고 큰 소리로 외치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흥분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떠나 지적인 접근만으로 오래 존속할 수는 없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집단적인 군사 훈련, 특히 병사들이 보조를 통일해 움직이는 훈련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훈련을 강도 높게 받은 병사들은, 사기가 높고,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무엇보다 전우애가 투철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몸을 던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을 받은 군대가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군대를 만나 번번히 이겼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 훈련은 서구 전역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훈련 방식을 일찍이 도입하여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으나, 오스만 터키는 자신의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여 낙후된 군대로  남아 있다가, 유럽의 침공에 몰락하였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이 패한 이후, 독일에서는 건장한 젊은이를 길러내기 위해 체조와 운동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는 사회적 운동이 정부의 적극적 주도로 전개되었다. 같은 시기 이웃나라 스웨덴에서도 전국민 체조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국가가 주도하여 전국민 혹은 집단 구성원 모두를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건강 증진을 도모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군사적인 의도를 내포하였으며,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으로 장려되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독일의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청년 친위대를 양성하면서 체조와 행진을 중시했으며, 나치 시절에 매년 벌어진 뉴렌베르크 집회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치 특유의 손을 높이들어 인사하는 행위 역시, 동시에 몸을 움직임으로서 결속감을 고취시키는 수단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히틀러의 악몽을 잊기 위해 유럽에서는 국가주도로 체조와 행진하는 것이 기피되었지만, 히틀러의 기억이 미약한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집단 결속을 다지기 위해 집단적으로 체조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리듬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거나 행진을 하거나 구호를 외칠 기회는 많지 않다. 운동 경기장에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집단적 행위가 미국에서는 가장 이에 근접한 활동이다.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움직임으로서 집단 소속의 흥분감을 느끼는 것은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그러한 욕구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근래에 젊은이들이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가수의 이끌림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떼창을 부르고 소리를 외치고 흥분하는 이유는 이러한 활동이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집단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속이 뻥 뚫리는 후련한 느낌을 받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

저자는 인류학 배경을 가진 역사학자답게, 공식적인 제도보다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 즉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 사료는 많지 않지만, 마치 인류학자의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움직일 때 삶의 흥분을 느끼고 집단 결속감이 높아지며, 이것이 언어나 제도 못지 않게 사회와 삶의 버팀목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독창적인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