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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8. 10:21

10. 맺음말: 미국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화제는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이면서 공화당의 노선에 반기를 들고, 미국의 지도자로서는 담기 힘든 막말을 마구 쏟아내었다.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남부와 중서부의 남성 백인 중하층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트럼프의 분노에 찬 고립주의 정책이나 인종주의적 발언에 환호했다. 최근 이와 연관된 흥미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노벨 경제학자 앵거스 디톤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래에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중년 남성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 중 술과 마약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 많다. 반면 여성이나 유색인의 건강은 개선되고 있다.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남성 중하층은 ‘70년대 후반 이래 미국 경제의 변화로 많은 것을 잃은 집단이다. 이들은 ’70년대까지 생산직 근로자로서 중류층의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이래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안정된 일자리를 잃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사회학자 앤드류 철린은 이들의 사망율이 근래에 높아진 이유를 준거집단 이론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이 괜찮은지에 대한 판단을 자신의 부모의 삶과 비교하여 내린다. 백인 남성 중하층의 부모 세대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았다. 반면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불안정하고 힘든 삶뿐이며, 그들의 자식 세대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한 나머지 건강을 해치며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하층 백인은 인종주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남부의 중하층 백인에게서 그러한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흑인의 지위가 개선되고 유색인 이민자가 대거 유입됨으로 인해 백인의 기득권을 크게 위협받았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 또한 중하층 남성의 기득권을 위협한다. 남부의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 역시 전통적인 가부장 질서가 허물어지고 합리적인 사고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한사코 반대하는 집단인데, 그들의 영향력은 근래로 오면서 위태로워지고 있다. 주류 집단의 기득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반면, 소수자의 권익은 향상되고 있다. 인종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는 대신 계층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백인으로 태어나면 유색인에 대해 특권을 누리지만, 이러한 기득권은 점차 약화될 것이다. 히스패닉계 백인이 늘어나고 아시아인과 혼혈의 백인이 많이 등장하면 백인의 배타적 특권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류층 백인과 동일한 사고와 생활양식을 보이는 중류층 흑인이 증가하면서 인종보다는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가 삶의 기회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여성의 지위 역시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과거 남성이 전유하던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늘고 있으며, 반대로 과거에 여성의 영역이던 양육과 가사에 남성의 참여가 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고위직에 진출하는 여성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는 만큼 사회 제도가 뒤 쫒아가고 있지는 않다. 어린 자녀를 가진 기혼 여성의 대다수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직장 일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장치는 미비하다. 의사결정의 위치에 오르는 여성이 늘면서 조금씩 양육과 가사의 책임을 남성과 사회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실질적인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혼을 미루거나 혼자 사는 여성이 증가할 것이며, 자녀를 적게 낳으려는 경향이 지속될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래 소득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이 무한히 확대될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는 제동이 걸릴 것이다. 소득 불평등의 확대를 가져오는 두 가지 요인, 즉 정부의 정책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및 세계화라는 요인 각각에 대해 살펴보자. 정부의 정책에 대해 미래를 예측하기는 비교적 쉽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도날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부상한 것에서 보듯이, 미국의 보통사람들은 높은 불평등에 대해 거부감을 강하게 표명하였다. 그동안 세계화의 결과 중하층 백인의 삶이 피폐해진 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든 보완하려는 노력이 기울여 질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와 같은 진보적인 정책이 가까운 미래에 다시 출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미국의 정치는 기업과 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이므로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큰 혼란이 없는 한, 이들의 기득권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책이 구사될 것이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견제할 노동자와 약자의 정치 세력이 미미함으로, 기업과 부자가 자신에게 손해가 나는 개혁을 자발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위기를 초래한 주범인 월가의 금융계는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아마도 경제위기의 골이 더 깊어져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뀔 수 있다.

2016년 선거에서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도날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트럼프의 당선은 그동안 미국의 변화에서 경시되었던 부분을 명백히 드러냈다. 근래에 미국 경제의 변화에서 뒤쳐진 중하층 백인의 좌절과 분노가 엄청나다는 점과, 백인의 인종주의는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변수라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성격이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조차 근래의 변화에 반대하는 욕구가 더 강하기에 그의 결함을 눈감아 주었다. 공화당은 지지층의 구성에 모순적인 요소가 있다. 공화당의 정책을 주도하는 집단은 기업과 부자이나 공화당의 지지층 중 다수는 백인 중하층이다. 공화당의 부자 감세 정책이나 교육과 복지 지출을 축소하는 정책은 백인 중하층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정책이다. 경제 사정이 나빠진 백인 중하층이 백인의 특권에 더 집착하여 극우적인 성향의 정치인인 트럼프에게 지지를 보냈다.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인 기업과 부자가 백인 중하층의 요구에 영합하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과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두 집단은 이익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백인의 점유율이 감소하고 이민자가 늘어나는 현실이 중하층 백인을 불안하게 하여 트럼프를 대거 지지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늘고 여성과 히스패닉 등 소수자의 지위가 향상되는 경향은 공화당에게 마이너스 요인이다.

지난 삼십여 년 간 불평등을 확대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이다. 이 요인 때문에 미국만이 아니라 선진 산업국 모두에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낮은 임금을 쫒아서 공장을 이전하고, 대신 선진 산업국에서 지식 노동자의 비중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근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인공 지능이나 인터넷에 기반 한 공유 서비스는 이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회사와 지식 노동자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줄 것이다. 반면 선진 산업국의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은 저임금 서비스직에 갖힐 수밖에 없다. 세계화로 인하여 전지구적인 노동시장에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들이 속속 진입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중하층 노동자의 삶은 크게 나아질 수 없다. 중국에 뒤이어 동남아와 인도의 노동자가 대규모로 전지구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인도 뒤에는 아프리카의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선진국의 서비스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기는 어렵지만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아무리 정치적으로 압력을 가한다고 해도 임금이 크게 올라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일 여유가 있으며 그들을 짧은 시일 내 미국인으로 동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앞으로도 계속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민자는 고급 인력과 저임금 노동력의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용한 수단이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이민자의 유입이 일시적으로 줄겠지만, 미국 경제가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보이지 않는다. 쉐일 가스 개발로 에너지 비용이 낮아지면서 제조업의 부흥이 점쳐지며,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 개발이 미국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회귀하는 공장들은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지는 않겠지만, 정보통신 기술과 접목된 생산방식을 적용하여 높은 생산성을 올리며 기업에 큰 부를 안겨 줄 것이다.

미국에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의 개발이 집중되는 경향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세계의 인재가 미국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영어의 공용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의 인재들이 다른 언어보다는 영어권에 자신의 미래를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부상은 영어 세력권의 확장에 브레이크를 거는 요인이다. 중국은 인구가 크고 자체의 시장과 인력으로 경제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 영어권의 확장을 견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30년의 미래를 조망한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10년 이내에 미국을 추월하며, 기술 개발에서도 선진 산업국에 비견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중국의 인재가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동력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와 다른 후속 개발도상국의 인재들이 계속하여 미국에 유학하고 미국인이 되어 미국의 과학 기술과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이 빠진 자리가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세계의 인재들은 미국으로 향할 것이며, 미국의 과학 지식과 기술은 세계를 앞설 것이며, 그와 함께 미국의 경제 또한 계속 성장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삼십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한동안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을 선도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기업과 부자들이 연이어 나타날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미국인의 삶은 1970년대 후반 이후 팍팍해졌는데앞으로 1950~60년대와 같이 긴장이 덜하고 여유 있는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분명한 사실은 미국 특유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인의 소득이 더 높아진다고 하여 여유 있는 삶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다. ’70년대 이후 남성 근로자의 임금은 감소하였지만 기혼 여성이 대거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여성의 임금이 높아지면서 미국인의 가구 소득은 계속 증가하였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의 삶을 보면 무척 분주하고 빡빡하다. 맞벌이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적 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근로자의 노동 시간이 긴 반면 여가 시간이 짧은 것은 기업과 부자의 영향력이 사회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거두기 위해 근로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권장하고, 광고와 상업화된 대중문화를 통해 더 많이 소비하도록 설득한다. 미국인의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하는, 거꾸로 말하면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많이 벌어야 하는 생활 방식은 현재 미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삶에 반대하는 세력은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의 리듬이 빨라지면서 생산성이 늘고 소득은 계속 증가하겠지만 미국인의 삶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삶이 될 것이다.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지 않는 중하층 사람들의 삶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진 산업국 중 예외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높은 미국의 특징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과 부자에 대응하는 노동자와 약자의 세력은 정보화와 세계화로 계속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민자가 계속 유입되는 한 미국인의 꿈 이념은 계속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복지 제도의 획기적 확충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은 앞으로도 큰 부를 축적한 사람이 연이어 나타나겠지만 또한 선진 산업국 중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것이다.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이 계속되는 한, 하층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억제될 것이고,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가난한 사람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자신이 낸 세금을 쓰는 것을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에서도 유럽과 같이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 득세하였다. 유럽의 극우 정당은 세계화를 저지하는, 즉 시장 통합에 반대하고 이민자를 차단하는 정강을 제시하여 세력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세계화로 인해 삶이 어려워진 중하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중하층 노동자의 규모가 크기에 최근 영국의 EU 탈퇴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보듯이 다수의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서구의 중하층 노동자들은 세계화로 인하여 코너에 몰려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성장의 과실이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기에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기성 정치계는 기업과 부자의 입장에서 세계화에 찬성한다. 트럼프는 이러한 기성 정치계에 막말을 퍼붓는 이단아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단기와 장기의 변화가 다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단기의 변화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몇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첫째, 그 동안 인종주의가 약화되던 경향에 일시적으로 제동이 걸릴 것이다. 소수자를 우대하거나 차별을 금지하는 정부의 정책은 폐기되거나 당분간 무력화될 것이다. 둘째, 그간의 세계화 경향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여 세계를 이끌어 온 무역 개방과 전 세계적 규모의 경제통합은 속도가 완화될 것이다. 무역 규제가 높아지고 이민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세계화에 반대하는 흐름이 자리 잡기 어렵다. 중하층 노동자 세력에 대응하는 미국의 기업과 부자의 힘은 유럽보다 훨씬 세다. 미국의 기업과 부자는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계에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했다. 트럼프의 당선에서 이들에 대한 저항이 큰 것을 확인했지만, 미국의 정치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중하층 노동자에게 실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하층 노동자들이 세계화를 저지하려고 하면 기업과 부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는 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세계화로부터 큰 이득을 얻기 때문에 세계화가 중단된다면 중하층 노동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이민을 엄격히 규제하자는 트럼프의 주장 또한 장기적으로 지지를 얻기 어렵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이민자의 유입을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 근래에 이민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는 불법 이민자에 관한 것일 뿐, 합법적인 이민자의 유입에 대해서는 반대가 크지 않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며, 고급 인재건 비숙련 노동자이건 이민자들이 미국의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데 미국인은 대체로 동의한다.

트럼프의 부상에서 보듯이 백인 중하층의 아우성은 큰 반향을 불러왔다. 부가 최상위 소수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중류층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백인 중하층 노동자를 넘어서 중류층 전반과 지식인들까지 가세하여 부의 재분배와 경제 체제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게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계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하겠지만, 미국의 특징, 즉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부모를 잘 못 만났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미국은 자조와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냉정한 사회라는 특징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2016. 12. 8. 10:19

1. 소개: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국 사회에는 크게 바뀌었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 초까지 지속된 풍요와 낙관의 분위기는 물러났다. 대신 ’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인의 삶은 긴장되고 바빠졌다. 미국인은 1950~60년대를 좋았던 옛날’(Good old days)이라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70년대 초반의 생활이 ‘70년대 후반 이후보다 더 잘 살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일시적인 불황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미국인의 소득은 꾸준히 상승하였으며, 근래로 올수록 더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비록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삶은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왜 미국인의 삶은 1970년대 후반 이후 팍팍해졌을까?’ 하는 질문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다.

물론 1970년대 이후의 생활이 힘들어졌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미국인이 많다. 여성이나 흑인은 분명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삶은 근래로 올수록 더 나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중류층 백인 남성은 1950~60년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들에게 좋았던 옛날이란 교외의 넓은 집에 살면서 도심에 있는 직장에 출근했다가 이른 저녁에 귀가하면 따뜻한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상이 단조롭긴 하지만 직장 일이 그렇게 바쁘거나 힘들지 않았다. 지금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직장에서 잘릴 염려를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했기에 일찌감치 결혼하여 자녀를 여럿 나아 키웠다. 최소한 중류층 백인 남성에게 그때는 좋은 시절이다.

이러한 여유로운 삶의 방식은 197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가속화된 삶의 방식과는 분명 다르다. 197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전개된 삶의 방식을 살펴보자. 중류층 사이에서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삶이 바빠졌다. 가정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것이 무척 힘들기는 하지만, 다수의 기혼여성은 자녀가 어린 나이임에도 직장에 나가 일하는 생활을 선택했다. 직장 일은 절대 양이나 강도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세졌다.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해 졌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언제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몰라 불안하며, 중류층 사무직 근로자들도 언제 직장을 옮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시장가치를 항시 의식하며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게 되었다. 교육비와 의료비가 크게 상승한 반면 남성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하락하였다. 맞벌이가 늘면서 중류층의 가구 소득은 증가하였지만 빛 또한 늘었다. 사람들 사이에 소득 격차는 커지고 미래를 낙관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노년은 다가오지만 크게 저축해 놓은 것은 없고, 자기 책임으로 전환된 연금 투자 적립금도 많지 않아 미래가 불안하다. 결혼을 늦추고, 아이를 적게 낳고, 장시간 근로에 힘들어 하고, 실업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현재 우리 한국사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변화의 시점을 특정 년도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오래전에 시작된 변화가 특정 사건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 변화란 여러 요인이 중첩되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전개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여러 측면은 변화의 속도가 제각각이므로 전체를 포괄하여 변화의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1970년대 후반을 전환의 시점으로 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미국 사회는 1960년대에 큰 혼돈을 겪었다. 1963년에 의회를 통과한 흑인의 선거권을 보장하는 법률은 수백 년 간 내려온 인종 질서를 뒤집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남북전쟁 중인 1863년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흑인은 사실상 준 노예 상태로 묶여 있었다. 이 법률을 계기로 흑인은 수백 년 간의 속박 상태로부터 벗어나 법 앞에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현재에도 드러나지 않게 차별을 하는 경우는 많으며, 흑인의 열악한 경제적 지위는 법적인 평등만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흑인들은 법적 평등과 경제적 차등이라는 모순에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된 충격은 엄청났다. 남부의 백인들은 흑인의 지위 향상을 허용한 집권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이후 공화당의 충성스런 지지자가 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민주당은 남부 백인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에 1970년대 후반까지 40년 동안 집권당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남부는 1960년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해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 이래 공화당의 텃밭으로 바뀌었다. 공화당은 중간에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를 제외한다면,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30년 이상 백악관과 의회와 지방 정부를 장악하였다. 공화당의 집권 이후 부자 감세 조치가 연이어 시행됐으며, 이전 40년간 민주당 정부에서 도입한 소수자 인권보호나 교육의료 및 복지관련 제도는 크게 약화되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70년대 초까지 미국 경제는 매년 3~5%의 성장을 지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 모든 미국인의 삶이 나아졌다.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생활도 나아졌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 밀물이 되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표현은 이 시기를 적절히 묘사한다. 유럽의 선진 산업국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미국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 반면, 미국은 전후 유럽 부흥에 소요되는 물자를 만들어 내느라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미국제’ (Made in USA)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분위기는 1970년대를 거치며 바뀌었다. ‘70년대 초반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가 미국에 상륙하였으며, ’70년대 중반 미국은 전후 최초로 무역 적자를 기록하였다. 일본과 유럽 산업국의 생산성이 마침내 미국을 따라잡은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만든 물건은 투박하고 고장이 잘나는 열등한 물건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식이 바뀌었다. ‘70년대는 원유 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친 시기이다.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의 지배에 대한 산유국의 반란인 원유 파동은 1973년에 1차 위기에서 원유가격이 1 배럴에 3달러에서 12달러로 뛰더니, 19792차 위기에서는 다시 40달러로 뛰었다. 미국의 주유소에는 주유를 하려는 차량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카터 대통령은 털 스웨터를 입고 TV에 나와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차 대전 후 미국 경제의 호시절은 지나간 것이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걸친 극심한 인플레와 불황, 해마다 늘어나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을 완전히 바꿨으며 기업 경영 방식도 크게 바꾸었다. 1980년대 미국의 산업계에는 구조조정의 광풍이 휩쓸었다. 북부 지역의 공장을 폐쇄하고 남부 혹은 외국으로 생산기반을 이전하였으며, 기업은 핵심 역량을 제외한 부문을 외주로 돌렸다. 중간관리자를 대거 없애고 조직을 간소화 하였으며 해고와 고용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기업 간 생사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부 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회사가 통째로 경쟁 업체에 흡수되는 사례가 흔해졌다. 1980년대 이래 미국의 기업은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였다. 즉 이익이 나는 회사라도 이익과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면 직원을 해고하거나 사업을 매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엄청나게 높아졌으나, 일반 근로자의 직업 안정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1970년대 후반은 미국 경제에 정보 통신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세계화가 전개된 시기이다. 컴퓨터가 기업의 업무에 널리 쓰인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이전에는 정부와 금융회사에서 부분적으로 컴퓨터를 썼으나 일반 기업체의 업무에는 활용도가 낮았다. 표준화된 컨테이너를 통해 해상 운송 효율이 높아진 것도 ‘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80년대 초 항공업계가 자유화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과 물류 운송이 일반화되었다. ’80년대 중반 이래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무 업무의 효율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90년대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난 호황이 찾아왔다. ’70년대 후반 중국이 개방하여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였으며, 선진국의 생산기반의 해외 이전에 힘입어 ‘80년대 이래 미국 시장에는 한국과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제품이 범람하였다.

2차 대전 후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소득 격차도 꾸준히 축소되었다. 빈곤율이 크게 감소하였으며, 사회보장과 의료혜택의 확대에 힘입어 노인 빈곤층이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후반 이래 현재까지 30년 이상 계속하여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근래로 올수록 성장의 과실이 최상위 소득자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들어, 최상위 10%보다는 최상위 1%에게, 또한 최상위 1%보다는 0.1%에게 부의 성장분이 집중되는 정도가 심해졌다. 반면 최저 임금은 1960년대 이래 계속 하락하였으며, 남성 근로자의 임금 또한 ‘70년대 후반 이래 하락하였다. 중간 소득층이 줄면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20세기 후반에 여성의 지위는 꾸준히 향상되었다. ‘50년대 후반 신뢰할만한 피임 수단이 널리 보급되면서 ’60년대에 성 개방 풍조를 가져왔다. 여성은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갖고 임신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1970년대는 여성운동의 시기이다. 남녀평등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려는 움직임이 ‘70년대 전 기간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였으며,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남녀 차별 관행을 고발하고 철폐하려는 여성계의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동안 여성의 교육 수준은 꾸준히 향상되었다. ‘50년대에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드물었으나, ’80년대 중반에는 대학에 다니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60년대에 중류층 여성은 결혼을 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하면 전업주부로 들어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80년대 이후에는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이 직장에 다니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크게 완화되었다. 여성의 독립적인 경제 능력이 높아지면서 불행한 결혼을 중간에 그만두는 이혼 사례 또한 꾸준히 증가하여, ’80년대 초에는 결혼 후 이혼 할 확률이 50%에 도달하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미국은 비교적 동질적인 사회였다. 1925년 이민법을 만들고 1965년 개정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미국에는 이민자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1970년 외국 출생자가 전 인구의 4%까지 떨어졌으며, 백인과 흑인이 인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후 매년 100~200만 명의 이민자들이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들어 온 결과, 최근 외국 출생자의 비율은 13%로 역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백인과 흑인만 살던 나라에 이전에는 드물었던 다양한 배경의 라티노와 아시아계가 더해지면서 미국은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변모하였다. ‘80~’90년대 미국에는 ‘WASP’라 일컬어지는 백인 남성 앵글로색슨 개신교도의 종주권에 도전하여 여성과 소수 인종·민족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다문화주의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0년대를 전후한 변화는 미국인의 종교 성향에서도 감지된다. 미국인은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다. 유럽은 19세기 중반 이래 세속화의 길을 걸어왔음에 비해, 미국에서는 ‘70년대 초까지 거의 모든 미국인이 기독교를 믿었다. 여론 조사에서 특정하게 믿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70년대 초까지는 전인구의 2%에 불과했다. 그러나 ’80년대 이래 교회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감지된다. 그 동안 미국의 교회는 낙태나 동성애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반인 중 종교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꾸준히 증가하여 최근에는 20%를 넘어섰으며, 동성애를 허용하는 의견에 절대 다수가 동의한다. 이제 미국인 중에 실제로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다섯 명에 한명 꼴에 불과하다.

미국이 1970년대를 전후하여 크게 바뀌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서술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는 경제 환경의 변화를 먼저 꼽을 수 있다. 경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업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일자리 사정이 바뀌었고, 소득 분배 구조가 바뀌었다. 정보통신 기술과 운송 기술의 변화 역시 20세기 후반의 변화를 이끈 주요 요인이다. 컴퓨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 산업 전반의 생산 효율이 높아졌으며, 이와 더불어 운송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계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흑인과 여성의 지위 상승과 교육 수준의 향상은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는데, 경제 변화나 기술 발전과는 독립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2차 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변화로서 ‘70년대를 변화의 시점으로 특정할 수 없다. ’60년대 민권운동을 통해 흑인의 지위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지만, 사실 흑인의 지위 향상은 2차 대전 중 전투부대에서 흑인과 백인을 통합한 조치나, 그 훨씬 이전인 1930년대에 남부의 흑인이 북부로 대거 이전하여 도시 산업근로자가 되는 과정에서 이미 뚜렷이 시작되었다. 여성의 지위 향상 역시 2차 대전 중 전장에 나간 남성 노동자를 대신하여 많은 여성들이 산업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뚜렷이 나타났다. 물론 1920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다음의 장에서는 사회의 각 영역에서 20세기 후반에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왜 그러한 변화가 나타났는지 검토한다. 20세기 후반의 변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므로, 그러한 변화가 현재 어느 단계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추정해 본다.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이 주제를 가장 먼저 다루는 이유는 근래에 크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주제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높은 불평등은 미국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선진국이면서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미국 사회의 구조적 토대를 검토한다. 유럽과 대비하여 19세기 후반 이래 미국의 정치경제적 환경이 어떻게 기업가와 부자 중심의 체제를 만들게 되었는지 더듬어본다. 아울러 1970년대 후반 이래 왜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지 설명한다.

3장에서는 일과 소비의 문제를 다룬다. 근로 생활은 사람들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7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 환경이 바뀌고 기업과 일의 세계가 변하였다.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고 지식 노동의 비중이 증가하였다. 과거보다 직장 생활은 훨씬 긴장되고,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가정생활 역시 바빠졌다. ’80년대의 구조조정과 세계화의 여파가 미국인의 근로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한다. 소비는 일과 동전의 양면이다.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여가는 줄어드는 대신 소비는 늘어난다. 미국인이 소비를 많이 하는 데에는 소비를 장려하는 사회적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가족 문제를 다룬다. 미국인은 가족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여기지만 가족 구성원간의 유대는 과거보다 약해졌다.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되었으며, 근래에는 동거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핵가족이 여전히 이상적인 가족 형태이지만 혼자 살거나, 어머니만 자녀와 함께 살거나, 자녀 없이 사는 가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하며 자녀를 돌보는 가족이 자녀 성장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근래로 올수록 이러한 가족은 중류층 이상에서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중하층의 경우 경제생활이 불안정해지면서 가족생활이 불안정해지고, 이것이 다시 다음 세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70년대 이래 뚜렷해졌다. 소득의 양극화 못지않게 가족 관계의 양극화가 전개되고 있다.

5장에서는 여성 문제를 다룬다. 여성의 지위는 20세기 전 기간을 통해 꾸준히 향상되었다. 남성과 여성 간에 역할이 분리되는 정도 역시 점차 약해졌다. 직장과 집 모두에서 여성의 역할과 권한이 높아진 반면, 최근에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을 중심으로 양육과 가사 참여 비중이 늘면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독립적인 경제력을 지닌 여성이 출현한 것은 20세기 후반 두드러진 현상이다. 1960년대에 전개된 성 개방 풍조는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20세기 전 기간 동안 남녀 격차가 줄어든 추세는 ‘9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정체 상태에 있는데, 그 이유를 확인해 본다. 미국의 여성은 여전히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매우 힘든 줄타기 생활을 하고 있다.

6장에서는 인종 문제를 다룬다. 백인과 흑인으로 양분된 미국의 인종질서는 근래에 변화하고 있다. 중류층에 올라선 흑인이 늘고,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온 유색인 이민자가 증가하고, 혼혈을 주장하는 인구가 늘면서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한 한 방울의 피규칙은 허물어지고 있다. 중남미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인종 질서가 어떻게 바뀔지 네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 검토한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을 계기로 흑인의 법적 지위는 개선되었지만 인종 편견과 차별의 관행은 많이 남아있다. 흑인과 백인은 여전히 다른 세계에서 산다. 흑인은 흑인끼리 살며 백인은 흑인과 가까이 하는 것을 꺼린다. 흑인 중 3분의 1은 중류층 지위에 올라서 백인 중류층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활하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도심의 슬럼에서 비참하게 살며 좌절과 스트레스 속에서 마약과 범죄에 빠지며 자기 파괴적으로 생활한다. 다수의 흑인들이 이렇게 사는 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 검토한다.

7장에서는 교육 문제를 다룬다. 미국의 학교는 양극화되어 있다. 백인 중류층이 사는 교외의 학교는 교육 환경이 좋으며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높다. 반면 흑인 빈곤층과 근래의 이민자 자녀가 다니는 도심의 학교는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고등학교 중퇴자가 많으며 학교를 졸업하고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 개혁을 외치지만 미국의 교육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떤 개혁 정책이 제시되었으며, 왜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지 검토한다. 미국과 유럽은 교육 시스템이 다르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생이 동일한 교과과정을 배우는 반면, 유럽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 배우는 내용이 갈린다. 한편 미국의 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세계 각지의 인재들은 근래로 올수록 더욱 더 유럽보다 미국을 선택한다. 왜 고등학교까지 미국의 교육은 문제가 많은데,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그렇게 높은지 원인을 검토한다.

8장에서는 종교 문제를 다룬다. ‘미국인은 왜 종교적 믿음이 깊은가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유럽과 대비하면서 미국인의 종교적 토대를 검토한다. 미국의 교회는 이민자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발달했다. 미국에는 1만 명 이상의 신도를 가진 대형 교회가 많으며, 복음주의 교회 신자는 전인구의 4분의 1에 달한다. ‘주류 교회와 비교를 통해 기독교 근본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번성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미국의 교회는 공화당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남부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교회의 세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근래에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세속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도 유럽과 같이 세속화의 길을 갈 것인지 살펴본다.

9장에서는 인구 문제를 다룬다. 미국은 2040년경에 백인의 비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지만, 히스패닉계 백인을 포함하면 백인의 비중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현재보다 좀 더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이행할 것이다. 미국은 다른 선진 산업국과 달리 인구 노령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은 이민자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근래에 이민자의 유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이민자는 미국 사회에 활력을 가져오며 미국의 성장을 이끄는 주역이다. 근래에 불법 이민자 규제 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분명치 않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이 계속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미국 인구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미국의 인구는 북부에서 남부로 많이 이동하였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촉발된 인구의 대이동은 미국의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0장에서는 앞에서 검토한 사회변화를 종합하여 미국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망한다. 경제적으로는 성장이 지속될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여성과 유색인의 지위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이 조금은 낮아지겠지만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이는 중하위 계층의 협상력이 매우 낮은 사회구조적 특성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도날드 트럼프의 부상을 계기로 하여, 미국에서도 유럽과 같이 중하층 노동자에 영합하는 극우 정치가 부상할 수 있을지 점검해 본다

2016. 12. 8. 10:11

 최근에 책을 하나 냈다. "혁신과 갈등, 미국의 변화"가 제목이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의 변화를 검토하는 고급 교양서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변화의 동력이 미국인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현재도 변화의 와중에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이다. 10년전에 "미국문화의 기초" 책을 구상할 때 이 책을 훗날 추가로 쓰리라 생각했는데 10년만에야 그 계획을 이룬 것이다. "미국문화의 기초"가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미국의 변화"는  현재의 미국 사회에 촛점을 맞추었다. 원고를 쓰는데만 2년쯤 걸렸다. 출판사 편집자와와 함께 작업한 세 번의 윤문과 교정 작업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일곱번을 고쳐썼다. 다음은 책의 목차이다. 출판사에서 정한 책의 가격이 제법 비싼 것이 흠이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제1장 소개: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국 사회는 크게 바뀌었다 / 9


제2장 선진국이면서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할까 / 21

1. 미국 사회는 어떻게 불평등한가? 25╷2. 미국은 왜 그렇게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을까 30╷3. 높은 불평등을 지탱하는 사회문화적 배경 45╷4. 지난 30년간 불평등이 확대된 이유 60╷5. 미국인의 낮은 불평등 인식 수준 66╷6. 높은 불평등의 사회

적 효과 70╷7. 불평등의 증가 추세는 언제 꺾일까 75


제3장 미국인의 일의 세계는 완전히 변했다 / 81

1. 1980년대의 구조조정과 일의 세계의 변화 82╷2. 사람을 상대하는 일 92╷3. 지식 노동자의 부상 100╷4. 좋은 일과 나쁜 일 111╷5. 많이 일하고 많이 소비하는 사회 123╷6. 소비를 장려하는 사회적 장치 128


제4장 안정된 가족은 중류층의 특권으로 변하고 있다 / 141

1. 핵가족은 미국인의 삶의 이상형이다 142╷2. 여성의 지위 향상이 가족의 변화를 이끌다 145╷3. 중류층 ‘동반자 가족’의 출현 150╷4.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152╷5.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된 사회 161╷6. 다양한 유형의 가족생활 166╷7.

가족생활의 미래 모습 173


제5장 가부장 질서의 붕괴는 어디까지 갈까 / 177

1. 성 역할의 변화 178╷2. 성 격차는 어떻게 왜 벌어지나 189╷3. 성 역할 분업 구조의 붕괴 197╷4. 성 개방은 여성 해방이다 202


제6장 미국의 인종 질서는 어떻게 바뀔까 / 209

1. 미국의 인종 질서는 변하고 있다 211╷2. 히스패닉의 영향 215╷3. 인종차별의 다양한 모습 226╷4. 흑인의 삶의 모습의 변화 232╷5. 백인의 특권은 감소하고 있는가 239╷6. 아시아계 이민자는 유럽계가 간 길을 더 빨리 가고 있다 244


제7장 미국의 교육은 무엇이 문제인가 / 251

1. 교육에 큰 투자를 하는 나라 252╷2. 미국 학생의 학교생활 256╷3. 미국 교육의 구조적 불평등 267╷4. 교육 체계를 둘러싼 논쟁 275╷5. 미국의 교육 개혁은 왜 성공하지 못할까 280╷6. 학교 교육의 능력주의의 이면 286╷7. 미국의 대학교는 왜

강한가 290


제8장 미국인은 왜 믿음이 깊은가 / 307

1. 미국인의 종교적 믿음의 특징 309╷2. 미국인이 특별히 종교적인 이유 316╷3. 왜 기독교 근본주의가 번성할까 327╷4. 미국은 유럽이 걸어간 길을 뒤따르는가 343╷5. 영적인 믿음과 개인주의적 신앙 348


제9장 인구는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 353

1.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354╷2. 미국은 인구 고령화를 어떻게 맞고 있나 360╷3. 미국인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365╷4. 미국은 앞으로도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일까? 369


제10장 맺음말: 미국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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