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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에 해당되는 글 2건
2021. 12. 12. 19:54

Mel Greaves. 2000. Cancer: the evolutionary legacy. Oxford University Press. 266 pages.

저자는 세포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암의 생성 기전에서 부터, 다양한 종류의 암의 특성, 암의 예방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암과 관련해 밝혀진 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한다.

암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해왔으며, 동물에게서도 종종 발견된다. 암은 세포가 증식할 때 유전자 복제의 오류, 즉 돌연변이의 산물이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유전자 복제의 오류를 탐지하고 잘못된 유전자를 가진 세포를 죽이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면역체계를 속이면서 증식을 계속한다. 우리의 몸의 정상적인 세포는 일정 회수의 복제를 거듭하면 사멸하도록 되어 있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자동 사멸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암세포는 면역 체계의 감시에서 벗어나 무한히 증식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신체 기관은 세포가 증식을 계속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기때문에, 암세포는 어느 정도 증식하면 특정 기관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여 증식을 계속한다.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오류는 자주 발생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오류는 세포 생성의 초기 단계에 사멸하거나, 설사 존속한다고 해도 암세포로 발전하지 않는다. 양성 종양의 대부분은 암세포로 발전하지 않는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 몸의 외부로 부터 가해지기도 한다. 또한 특정 암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에게서 특정 암의 발병율이 높다.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 몸의 내부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대표적 예는 여성의 생식 기능과 연관된 스트레스이다. 여성은 매달 월경을 하면서 성 호르몬의 홍수를 경험한다. 여성의 몸이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유방, 자궁, 난소에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여성에게서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이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 암도 비슷한 이유로 자주 발생한다. 우리 몸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대표적 예는 흡연으로 인한 타르에 폐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폐암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외 우리 몸에서 외부 환경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암이 자주 발생한다. 피부암, 식도암, 위암, 직장암 등이 예이다. 외부의 독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암 자체는 병균에 의해 전염되지는 않지만, 병균이 우리 몸을 공격하면서 가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성병이 생식기 암의 발생 가능성을, 헬리코박터 균이 위암의 발생을, 헤파티티스 균이 간암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가해져 암세포가 생성되었다고 해도, 이것이 증식하여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보통 수십년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암의 대부분은 생식 기능이 종식된 시점, 즉 여성의 경우 폐경 이후, 남성의 경우에도 50대에 주로 나타난다. 거꾸로 말하면, 중년 이후에 주로 발병하는 암의 시초는 수십년 전 젊은 시절에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만들어진 암세포에서 부터 시작된다. 만일 암 증상이 생식 기능이 종식되기 이전에 발현된다면, 그러한 유전자는 후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암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하여 반드시 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이 커지면 암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스트레스에 노출된 모든 사람에게서 암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일생 담배를 즐긴 사람 중에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암에 걸린 사람보다 더 많다. 스트레스에 노출된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악성 암세포로 발전할 것인가 여부는 확률적 문제이다.

암이 우리 몸의 세포 복제의 오류에서 기인한다면 암 발생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암을 완전히 예방하거나 완전히 치료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의 발생을 줄이려면 스트레스 요인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담배를 피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하고, 등으로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면 암 발생 가능성은 감소한다.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양성 종양을 조기에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도 암을 예방하는 길이다.

암에 걸리면, 수술로 암 부위를 제거하고, 방사선을 쬐어 암세포를 태워 버리고, 화학요법으로 독성을 가하여 암세포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모두 한계가 있다. 암 부위를 제거한다고 해도 암 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방사선 치료나 화학 요법은 암세포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정상세포도 죽여버리는 무자비한 방법인데, 방사선이나 독소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가 출현하며,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조기 발견과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 책에서 암세포의 발생 기전을 생물학적으로 엄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전반적으로 암에 대해 이해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2019. 7. 13. 19:01

Robert M. Sapolsky. 2004. Why Zebras don't get ulcers: the acclained guide to stress, stress-related diseases, and coping. 3rd ed. St. Martins Griffin. 419 pages.

생물학자이며 신경생리학자인 저자가 스트레스의 작동기제와 관련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 과학서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로 쓴 교양서라고 하지만 스트레스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모든 기존 논의를 상세히 비교 검토하기 때문에 학술서에 가깝다. 책 뒤에 주석만 100쪽에 달하며, 이 책에서 언급하는 실험과 연구와 주장의 강점과 약점, 한계에 대한 논의가 끝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저자는 계속 이어지는 전문 용어를 쫒아가기 바빴으며 때때로 나무 더미에 파뭍혀 숲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논의는 동물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전형적인 생리학적 방법을 쫒아 이야기를 진행한다. 동물은 생존이 달린 위기의 상황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것은 그 위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성격의 것이므로 그 위기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그 위기 때문에 죽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반면 인간이 처한 스트레스 환경은 동물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생존이 달린 극심한 위기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며, 물리적 결핍보다는 심리적 및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는 상황에 처하며, 충격의 성격이 단 시간에 높은 강도로 발생하다 곧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낮은 강도의 긴장이 지속된다.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에서 동물은 이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해 몸이 최고의 효율을 내도록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근육의 힘을 최고로 내기 위해 근육 조직에 혈액이 집중적으로 공급되고, 혈압이 높아고 맥박이 빨라지며,  에너지의 원천인 당분을 혈액에 풍부하게 공급한다. 반면 일상적인 신진대사 작용은 억제된다. 소화기관의 기능은 정지하고, 성기능은 중단되고, 면역체계는 작동을 멈추며, 몸에 손상된 조직을 고치고 조직을 성장시키는 기능은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두뇌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이 심장, 간, 신장 등 몸의 구석 구석에 이렇게 신진대사가 일어나도록 신호를 내린다. 이러한 비상 상황이 단기간 발생하다가 위기가 끝나면 글루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의 분비는 억제되며, 신진대사 작용은 평소 상태로 복귀한다. 반면 인간의 경우 낮은 강도로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이렇게 단기간의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작동하는 신진대사가 오랜 시간 지속되고 글루코코르티코이드 호르몬 레벨이 높은 수준에 머물면서 몸 전체에 무리를 가한다. 동물은 단시간에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의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이나 위궤양과 같은 지병에 걸리지 않지만, 인간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훼손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현대인이 당면한 모든 신체적 및 심리적 문제의 근원이다. 스트레스는 고혈압, 당뇨를 유발함은 물론 성기능을 감퇴시키고, 성장을 억제하며,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기억력을 저하시키며, 우울증을 유발하며, 궁극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스트레스의 영향에 관한 언급은 사실 별로 새롭지 않다. 저자는 유인원과 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의 생리적 및 심리적 기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논의의 상당부분을 자신의 동물 연구에서 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스트레스가 어떻게 동물과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기제를 생리학적으로 상세히 밝히고, 기존의 주장이 인과적으로 타당한지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을 지치지 않고 수행한다. 이 분야에 막연한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보다, 이분야에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으면서 좀더 세밀히 논의를 살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듯 하다. 

책의 전반부에서 스트레스의 생리적 기제에 대한 전문적 논의를 전개한 다음, 책의 후반부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신체적 변화와 스트레스의 인과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스트레스와 통증, 스트레스와 기억력, 스트레스와 노화, 스트레스와 우울증, 스트레스와 성격, 스트레스와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주요 주제이다. 이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빈곤과 불평등은 스트레스를 크게 유발하는 요인이며,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 심지어 엄마 배 속에서 경험한 것이 수십년 뒤 성인기와 노년기에 경험하는 스트레스 정도와 대응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대응하려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아서는 절대 안되며 좋은 성장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 결과 확인된 가장 확실한 진리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우울한 진리라고 누차 인정하지만, 여하간 진리는 냉혹한 것이다. 

맨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그렇다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줄이고, 어떻게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것이 좋겠는가 조언을 한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높을수록, 예상할 수있을수록, 스트레스를 풀 출구가 있을수록,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수록, 적절한 운동을 할수록, 스트레스를 낮출 수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 말은, 상황에 따라 이러한 조건을 만들기 힘들거나 혹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므로,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모든 것이 지나치면 해가되므로 적당히 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엄청난 연구를 한 결과 내리는 조언 치고는 너무나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한 것에 진리가 있다.   

몇 달 전 티브이를 보다가 홍혜걸 의학전문 기자가 이 책을 엄청나게 치켜세우는 것을 듣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거의 한달에 걸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다 읽었다. 중간에 이 책을 계속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다른 책을 읽으며 동시에 조금씩 읽어 나갔다. 수없이 나오는 전문 용어와 실험과 연구 결과와 세밀한 논쟁을 쫒아가는 것이 머리 아파, 후반에 이백 쪽 가량은 소리내서 읽다가 목이 쉬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인과적 관계를 엄밀히 검증하는 것, 의학적 찬반 논쟁, 객관적 학술 검증 논리에 익숙해 진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책 한 권을 마침내 끝냈다는 성취감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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