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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5. 13:36

Carl Benedikt Frey. 2019. The Technology Trap: Capital, labor, and power in the age of autom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366 pages.

경제사학자인 저자가 18세기의 산업혁명과 근래에 전개되는 정보기술 혁명을 비교하면서, 정보기술 혁명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한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두가지 다른 성격의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replacing technology)이며, 둘째는 기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enabling technology)이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기존 노동자의 저항에 직면하는데, 정치권은 노동자의 불만이 초래할 사회적 불안을 염려하여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는 조치를 취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술 발전이 더디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을 대체하는 신기술의 도입을 기존의 노동자와 정치권이 막았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산성을 높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제시되었지만, 이것이 실제 생산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기존의 지배층은 노동 생산성이 향상됨으로 거둘 수 있는 이익은 많지 않은 대신, 기존의 지배 체제가 노동자들의 폭동으로 흔들릴 때 치러야 할 위험과 희생이 크기 때문에, 기존 노동자들이 신기술을 폐지할 것을 요구할 때  번번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은 이전과 다른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부르조아 상공인은 토지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항해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들은 노동을 대체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로 이득을 얻는 집단이다. 반면 중세의 길드 조직에 뿌리를 둔 숙련 노동자들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보급되면 양질의 일자리를 잃는 집단이므로 격렬하게 신기술 도입에 반대했다. 19세기 초반 영국을 휩쓴 러다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은 방직업을 중심으로 일어 났는데, 이는 기존의 수공업적인 방직 생산을 기계 생산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방직 기술자들은 일자리를 잃은 대신, 방직 기계를 돌리는데는 아동이나 여성과 같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숙련 노동자를 억압하고 부르조아 상공인의 편에 섰다.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해외시장을 놓고 군사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국부를 축적하는 것이 이러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기와 내연기관이 개발되면서 전개된 소위 제 2차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백년 전에 전개된 산업혁명과 달리 기존의 노동자들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전기와 자동차는 기존의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전기는 기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면서 기존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동차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소비자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으므로 역시 노동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한편 19세기 후반 전개된 농업의 기계화는 기존의 농업 노동자의 일을 기계로 대체하였다. 그러나 농촌에서 쫒겨난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급속히 확대되는 보다 양질의 새로운 산업의 일자리에 흡수될 수 있었기에 농업의 기계화 역시 큰 저항 없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래 전개된 컴퓨터 및 통신기술의 보급과 세계화는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에서 교육수준이 낮거나 연령이 높은 노동자들은 기존에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낮은 임금의 서비스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실업의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이 산업 현장에 도입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다. 교육수준이 높은 고급 기술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기술이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향유하는데 비해, 교육 수준이 낮은 낮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기술로부터 갈수록 더 배제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교육수준이 낮은 기존 노동자의 저항이 예상되는데,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이나 유럽을 휩쓰는 포퓰리즘 정치인의 부상이 바로 이러한 징후이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생산에 적용되는가 여부는 기술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신기술이 도입될 때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과거 역사는 이러한 대응이 적절치 못할 때, 아무리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일 좋은 기술이라도, 단기적으로 노동자들의 큰 저항에 부딛쳐 좌절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책의 말미에서 근래에 인공지능의 보급으로 초래될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해 논의한다. 교육과 기술 훈련 투자를 높여 노동자의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기술 대체로 밀려나 실직하거나 열악한 일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나서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즉 신기술의 충격에 대해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여, 희생을 분담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책은 산업혁명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영국에서 노동 대체 기술이 어떻게 보급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반면 근래에 전개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는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과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저자의 주장과 같이 뚜렷이 구분될 수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만 단기적으로 사회적 저항에 부딛친다면 그러한 기술은 적용되기 어렵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보듯이, 이 상황이 19세기 초 영국이 처한 상황 즉, 격심한 국제경쟁의 상황과 유사하다면, 미국의 정치권이 생산성 향상을 초래하는 AI 기술의 보급을 노동의 편에 서서 막을리 없다. 미국의 지도층은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상공인의 편에 서서 국제경쟁에 우위를 차지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불평등이 확대되겠지만, 미국의 노동 계층은 개발도상국의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정치력을 크게 갖지 못할 것다.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 역시 입으로는 노동자의 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기업인의 편에서 미국 경제의 힘을 키우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미국은 중국과 같은 후발국의 추격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 혁명이 노동자의 반대에 부딛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미국의 낮은 기술의 노동자를 배제하고 그들의 반대를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낮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숫자가 많으므로 쉽게 배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저항과 갈등 미국의 정치와 경제의 효율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길게보면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선진국이 앞서가는 속도는 둔화되는 대신, 후발국 특히 중국의 추격이 지속되면서 선진국과 후발국간의 격차가 좁혀지게 될 것이다. 모든 개발도상국이 이러한 후발국의 열차에 같은 속도로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도 경제가 고도화될 수록 미국과 흡사한 갈등으로 경제와 정치의 효율성이 약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