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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14. 17:13
    미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두배가 넘는 부자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불평등한 나라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의 비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대도시의 슬럼가는 대낮에도 들어가기가 겁나는 곳인데 혹시 가본 적이 있다면 정말 놀랄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이 사방에 있고 도로가 망가져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으며 잡초가 제멋대로 번성하고 쓰레기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다리나 터널의 벽에는 기괴한 모양의 낙서와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건물의 창문은 부서지거나 판지로 못을 쳐놓았으며, 사람이 살것 같지 않은 건물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굳게 닫쳐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허물어져 가는 건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걸어오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정말 무섭지 않을 수없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폐허의 모습 그대로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미국 남동부의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고 싸우다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다치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기사거리도 안되는데, '제삼세계 미국' (Third World America)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니 정말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요지인즉 정부에서 주는 주택보조수당(Housing Voucher)에 지원하기 위한 지원서를 나누어주기로 했는 데 이틀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여 당일에는 13000명이나 모였다는 것이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그늘하나 없는 땡볓아래 주차장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졸도한 사람이 속출하는가 하면 서로 먼저 받으려고 싸움이 벌어져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궁금한 것은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서 즉 종이쪼각 한장을 받으려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틀 전부터 줄을 서야 했는가이다.
그들이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도 생활형편 등을 심사하여 수혜 여부를 판단할텐데 말이다. 당국자의 말인즉 사실 주택보조수당 재원이 형편없이 적어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신청서를 제출하여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바보라서 이틀전부터 와서 무턱대고 줄을 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신청서를 터무니 없이 부족하게 나누어줄 것이 뻔하기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 수당은 컴퓨터로 신청자의 신상을 조회하여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과거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수혜자를 선정하였으면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도 아니고 신청서 용지를 받기위해 그렇게 이틀씩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며칠이나 걸어와서 경찰의 제지하에 아우성치면서 밀가루를 받는 모습과 중첩된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들의 처지는 노예였던 그들의 선조에게 대했던 백인 주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수모 쯤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 한번은 보건소에 방문해야 했는데, 사방에서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신청서만 쓰고는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이 반나절 이상을 지냈었다. 중류층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흔히 보는 번호표 발급기와 현재 서비스 받는 사람이 몇 번인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데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닐텐데.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경험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정치인 중에는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사람들에게 성공을 향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회의 낙오자들에게 어줍지 않은 동정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가혹한 사람들이다. 여하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달동네가 훨씬 살기 좋다. 물론 용산 참사같은 사건도 때때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사람을 만나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애틀랜타의 주차장 땡볕 아래에서 종이조각 한장을 얻기 위해 이틀동안이나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흑인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2010. 8. 11. 22:27
  외신에는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가 잊을만하면 또다시 등장하곤 한다. 그러한 기사의 논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물질적인 성공이나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증진시키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기사에서도 역시 단순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을 높이는 사례임을 처음에 지적하면서, 서구의 물질중심주의적 행복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과시적인 소비나 불필요한 소비가 생활을 더 복잡하게 하며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무턱대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 내적인 성찰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기본적인 것이 충족된 상태에서 추가로 물질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행복의 증진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많이 검증되었다. 

  사실 문제는 물질적인 만족이 아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은 물질적으로 더 편하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다. 명예, 지위 등과 같이 남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정말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옛 성현들은 명예나 지위에 초연하기를 권고하지만, 과연 그사람 자신이 정말 그렇게 살기를 원했는지 의심스럽다.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삶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냐. 물론 소를 모는 목동이나 밭을 가는 농부를 칭송하는 시도 있기는 하다마는.  서구의 가치관은 젊은 시절에 야망을 품고 성공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라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살면서 행복하라는 것은 도인이 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나 넘볼 수없는 달관의 경지이다. 체념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별로 달관의 경지를 크게 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꼭 행복 추구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을 벌리지 않으면 무엇에 연루되어 골치를 썩일 일도 없겠지만 이루는 것도 없기에 바람직하지는 않다.  집착하여 열심히 매진하는 것이 없다면 실패할 까닭도 없지만 얻는 것도 없다. 크게 불행해 지지만 않는다면 많은 일을 이루고 여러 사람과 엮이면서 살고 싶다. 방글라데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하여도 부럽지는 않다.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다고 하여도 이웃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이룬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때때로 너무 힘들 때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질적인 소비보다는 작지만  뜻깊은 체험이 행복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 물질적인 필요가 충족된 다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좋은 사람과 기억에 남을 일을 하거나 혹은 자신을 무엇에 몰입하면 물건을 소비하여 얻는 행복보다 더 크고 오래 기억될 수있다고 한다. 여행과 같이 돈이 드는 체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면 큰 돈 들지 않으면서 뜻있는 경험도 주위에 얼마든지 많다. 예컨대 요즈음 나에게는 집가까이에 개천을 산책하면서 하늘과 풀을 보고 물소리를 듣고 얼굴을 지나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경험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함으로서 행복을 얻는 것이 어렵다면 일상이 허락하는 대로 자신에게 뜻있는 자잘한 체험을 자주 찾아 나설 일이다.



2010. 8. 3. 14:25
   이탈리아는 명품 생산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오랫동안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승되는 소규모 가족 기업에서 선조가 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산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여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든 물건은 가족의 명예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탈리아 장인 생산 체제의 특징은 생산 기술의 향상이나 사업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매출을 늘리려고 혹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중세의 길드 체제와 유사하게 소수의 명품을 생산하면서 평생 서로 공동체 구성원으로 화목하고 안정된 생활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세계화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들의 안정된 방식이 지탱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하루도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생활에서 볼 때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체제의 약점은 낮은 생산성 때문에 많은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유층을 위해 생산하며, 이미 길드 집단 내에 있는 사람에게만 고용을 보장한다. 많은 보통 사람의 물질적인 필요나 고용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폐쇄된 방식이다.
사실 장인 생산 방식의 명품 생산은 대중의 수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니 이러한 논의가 맥락에 맞지 않는지는 모른다.

  사실 장인 생산 방식이 위기에 놓여 있다는 소식은 별로 급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경제 전체가 마치 소멸해 가는 장인 생산 방식으로 운용된다면 문제이다. 이탈리아 경제 전체가 기득권에 안주하여 혁신과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정체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기업은 규제의 혜택을 계속 누리려고 하고, 기존에 고용된 사람은 지위를 결사적으로 사수하려 하고, 기존에 복지 수혜자는 이것을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결과 새로운 기업과 새로운 근로자는 시장 진입이 차단되고 일자리를 구할 수없다.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율이 40%를 넘어선다는 소식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이런 기업과 이런 경제는 생산성이 후퇴하면서 함몰할 수밖에 없다.    

   명품과 장인 생산도 좋지만 평민의 아들인 나에게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가져오는 생산 방식이 더 좋다. 기득권을 옹호하는 공동체적 고용보다는 집단 밖에 위치한 사람에게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회가 제공되는 개방된 체제를 선호한다.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은 현재의 상태를 보호하고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겠지만, 아직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은 혁신과 성장을 통해 풍요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꿈꾼다.

   장인 생산 방식은 전통의 향기를 풍기지만 전통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경쟁에 노출되는 생활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없이 끼리끼리 해먹으면서 외부인에게는 아예 기회를 차단하는 것보다는 낫다. 누구나 안정을 희구하지만 향상이 없는 정체는 환영하지 않는다. 한해가 다르게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신기루를 쫒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10. 7. 30. 13:44
   미국은 좋은 면도 많지만 특이하게 안좋은 점도 제법 있어 정을 붙이기 어려운 나라이다. 미국 성인인구 100명중 1명은 감옥에 있다. 230만명의 인구가 감옥에 있는데, 이는 미국의 15개 주의 인구보다 많은 숫자라고 하니, '자유인의 나라'(Land of the Free)라는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문구가 무색하다.  미국 사람들은 처벌에 관한 한 아주 냉혹한 사람들이다. 다른 나라라면 감옥까지 보내지 않을 잘못도 미국에서는 잡아 가두며, 그것도 매우 오랫동안 가두어 둔다. 심지어는 최저 형량을 법으로 높이 설정하여 판사의 재량권을 금지하기까지 한다. 미국에서 살면서 사법기관을 두려워한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카우보이의 나라이다. 선과 악은 분명히 구분되며 악한은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원칙에 투철하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상황에 몰려서 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으리라는 동정적인 시각은 환영받지 못한다. 범죄자도 자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며, 자신도 부모를 잘 못 만나거나 불운이 겹치면 죄를 저질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국적이지 않은'(unamerican) 불온한 사상으로 공격받기 십상이다.  많은 지역에서 판사를 주민 투표로 선출하는 데, 이들은 범죄자에 대해 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하여 안전을 가져오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남발하기에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며 범죄자에 대해 관대한 재판관은 설 자리가 없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두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수감자 한명당 18,000-50,000달라의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돈을 범죄의 원인이 되는 빈곤과 무지를 개선하는 데 사용한다면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련만. 미국 사람들은 무지와 가난을 개선하는 데 쓰는 돈은 매우 아까워하면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담을 좀더 높이 쌓고 위반자에게 좀더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데 사용하는 돈은 펑펑 쓴다.

  2001년 9.11 사태로 미국인이 테러의 위험에 노심초사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어서 이라크를 침공하여 그 전쟁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전쟁에 퍼붓고 있는 천문학적인 돈의 삼분의 일이라도 그나라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썼다면 미국인은 훨씬 안전한 세계의 지도자로 칭송받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전쟁을 치루면서 지출한 돈의 많은 부분은 미국의 군인과 미국의 전쟁관련 회사와 그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으니까,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헛된 낭비는 아닐 수도 있다. 엄청난 수의 범죄자를 잡아들이고 재판하고 가두는 데 쓰인 돈 역시 그러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안전 관련 사업을 흥하게 하는 데 투입되었으니까 반드시 공중으로 사라진 돈은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범죄자를 잡아 가두어도 거리에는 항시 새로운 범죄자들이 출현하고,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전쟁을 해도 미국인의 안전은 테러의 위협에 변함없이 노출되며, 그렇게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쓰고도 사회가 살기 좋은 쪽으로 개선되지 않는 데 있다. 미국의 의료 비용이 다른 나라의 1.5~2배에 달하지만 미국인의 건강 수준은 훨씬 열악한 것처럼, 미국 사회의 안전 보장 비용도 다른 나라의 몇배를 쓰지만 훨씬 안전하지 않은 사회인 것을 볼 때, 미국 사회의 어떤 측면은 모방해서는 안될 나쁜 모델로 연구하고 가르침을 얻을 가치가 있겠다.  

 

2010. 7. 30. 10:54
  일본의 어느 구석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주로 사는 농촌 마을에서 흥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새로 부임한 촌장이 마을을 부자로 만들 수있는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주문했단다. 사실 그 마을은 주위에 논밖에는 없는 그야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는 마을인지라 무언가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는 생각밖에는 안들었으리라.

  그런데 논을 이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어서 지금은 일본 전체에 유명하고 급기야 뉴욕 타임즈에까지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리고, 그 기사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기사로 선정되었다. 논의 벼에 색을 입혀서 논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처음에는 두개의 색의 벼로 시작하여, 유전공학의 기술을 응용하여 이제는 여러 개의 다양한 색을  구사하여 보다 현란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한다. 지도력이 있는 영웅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중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비록 처음 창안한 사람에게 큰 돈을 가져다 주지 못하며, 후에 오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져야만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인류의 생산성을 꾸준히 높여와 오늘 우리가 인간답게 살게 된 비결은 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낸 덕택이다.

  부동산을 사고 팔면 큰 돈을 벌 수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그것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도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반면, 남의 호주머니에서 내 호주머니로 돈을 이전시키는 데 성공하거나, 혹은 자신의 뜻대로 다른 사람들을 좌지우지 한 실력자도 별로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호의호식을 해도 내 눈에는 별로 존경할 구석이 없다. 남들이 피땀흘려 만든 것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한 양 생색을 내면서 밥만 축내는 무리들이다.

  심지어는 도덕보다도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 도덕적인 사람은 현재를 잘 사는 것을 강조하지만,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사람은 현재보다 더 잘 살게 되는 것을 꿈꾼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일에서 규율과 순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식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규율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반면, 일에서 아이디어가 핵심인 사람은 아이디어를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과연 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질문하면서 오늘도 머리를 짜내고 있다.


2010. 7. 30. 09:25
  우리 사회에서도 영어 광풍이 일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상황이 더 심한 것 같다. 모국어보다는 영어를 쓰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심지어는 모국어를 서투르게 하는 것이 영어실력에 대한 과시로 사용되기까지 한다니. 우리나라에서도 거리를 가다가 가끔씩 아이들이 영어로 서로 의사소통하는 광경을 지나치는 데,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영어로 밥을 먹고 살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서 실용적인 용도에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어 구사력이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서서 지위의 상징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대체로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직업은 보수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으므로 영어 구사력과 사회적 지위가 함께 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국어를 잘 못하면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더 높이 쳐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영어를 잘 못하는 주변 한국인에 대해서는 콧대를 세울 수있는 수단일지 모르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는 이방인이 자신들을 모방하는 아류 정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국제화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영어권 국가의 이등 시민 쯤으로 인정되기를 기대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약소국의 시민으로 태어나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거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쩔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모국의 언어도 배우면서 강대국의 언어를 동시에 익혀야 하는 힘든 운명을 타고 났다. 미국인은 외국말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있는데 말이다. 미국의 지도자가 외국어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나 한국의 지도자가 외국에 나가 힘들게 영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접할 때 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낀다.

  그러나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말을 잊어버린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며, 장기적으로는 그 나라의 이등 시민으로 편입되는 길이다.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나라에서 주변사람들보다 상위의 지위를 획득하는 길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릴때부터 미국으로 자식을 유학보내고 혹은 외국인 학교에 보내면서 한국말 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하도록 하는 전략이 그릇된 방식은 아닌듯하다. 단지 성공 목표가 너무 낮으며 주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하류의 전략이라는 것만 빼놓으면 말이다. 그렇게는 큰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자신만 잘먹고 잘사는 성공한 사람을 양성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으로 넘쳐난다면 살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내 자식은 상대적으로 잘먹고 잘산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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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25. 16:48

   페이스 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는 미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았다. 페이스 북이 생긴지 6년 남짓밖에 안 됐는 데 가입자가 5억 명을 돌파했다고 하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트위터가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확산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인지 아니면 중요한 변화를 의미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상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소상히 이야기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서로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온라인 행위는 오프라인의 만남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사람들은 막연한 외로움 내지는 삶의 권태에서 무언가 흥미 있는 것을 찾아 온라인 공간을 기웃거린다.

 

   온라인 행위는 오프라인의 만남과는 달리 제한이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정보가 노출되며, 특정 상대와의 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내가 상대에게 준 나에 관한 정보가 온라인 공간 어딘가에 남는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사실 우리들 모두-에게 온라인 공간은 천국과 같은 곳이다.

 

   만일 온라인 공간에서 한 나의 행위가 지워지지 않고 일생동안 나를 따라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온라인 공간은 무한한 저장 능력을 가지므로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는데 이 실수가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으로 검색하면 언제나 튀어나온다면 정말 문제이다. 과거 나의 어리석은 사진이나 어리석은 말실수가 나와 관계된 사람의 손에 쉽게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내가 온라인 공간에 올린 정보는 물론, 어디에 방문해서 무엇을 보았는지가 어디엔가 저장된다는 사실은 생각하기 싫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을 감추고 싶어하는 모순적인 욕구를 지닌다는 점이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만, 또한 남들이 나에 대해 상세히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온라인 공간에서 내가 행한 다양한 활동을 짜맞추면 내가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이 되지는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온라인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수록 온라인 공간에 저장되는 나의 삶의 단편은 증가할 것이다. 앞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을 감추기란 점점 더 힘들 것이다. 오프라인 활동을 할 때, 온라인에 저장된 나의 기록은 항시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나, 취업을 하려 할 때나, 배우자를 구할 때나 말이다.

 

   혹자는 이것이 한단계 더 수준이 높은 신용사회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있다. 각자의 삶을 더 잘 관리해야 하며, 상대의 진면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서로에게 투명한 사회가 서로를 잘 모르는 불투명한 사회보다 더 낫다고 순진하게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일은 그리 단순하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과거 기록을 관리해주고 원치 않는 정보가 검색되는 것을 막는 서비스가 최근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미래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의 과거는 완전히 까발려지지만 돈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감출 수 있다. 정보사회에서도 돈의 힘은 여전히 위세를 발휘할 것이다.

2010. 7. 23. 16:48

요 며칠 동안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Top Secrete America라는심층 취재 시리즈 기사를 읽었다. 특별 취재팀을 구성하여 미국 정부의 보안정보시스템을 2년간 조사해서 터트린 폭로 기사이다.  1970년대 워싱턴포스트가 닉슨대통령의 선거부정을 폭로한 워터게이트와유사한 폭발력을 노리는 프로젝트이다. 보안정보분야라는 매우 민감함 영역을 민간인이 심층 취재하여 공개까지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기사에서 폭로하는 미국 연방정부의 보안정보 분야의 규모는 그야말로 엄청나다.1,271개 정부 기관과 1,931개 민간 기업이 전국에10,000개의 사업장에 산재되어있으며, 종사하는 인력만85 4천명에 매년 50,000개의 정보 보고서를생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보안정보 사업은 2001 9.11 사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현재도 계속 증가 일로이다.

 

9.11 사태는 미국인들이 최강대국의 시민으로서 누리던 안전한느낌을 한 순간에 빼앗아갔다. 이후 미국인은 외국 여행을 할 때는 항시 테러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불안감을 지고 다녀야 했다. 무엇보다 미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은, 미국과 미국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지구상에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시 상기하게 되었다는점이다. 미국인들은 미국적인 방식이 세계의 최고라고 믿고 있고 세계의 사람들도 이를 동경하고 따를 것이라고생각했기에, 감히 이것에 반대하고 도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설사 미국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하여도 이것은 단순히 시기심의 표현에 불과하므로 무시하면 된다는 것이 그때까지 미국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엄청난 자부심이 9.11 사태로 배반당했을 때 엄청난 분노가표출되었으며, 전세계에 모든 가상의 적을 감시하는 보안정보 사업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행위로 나타났다. 효과를 따지지 않고 돈과 인력을 무한으로 투입한 결과, 보안정보분야는 통제가 불가능한 괴물로 자라났다. 첩첩이 비밀로 둘러싸고 상호 조율되지 않은 투자와 인력으로마구 증식된 정부의 정보 사업은 서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 수집된 정보가너무 많기에 오히려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 가을에 발생한 비행기 테러 미수 사건은우연히 테러리스트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고 격투 끝에 제압하여 실패로 끝났다. 정부가투자한 엄청난 돈과 인력과 첨단 정보 기술은 실제 테러를 막는 데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군사와 보안정보 사업 분야에서 강대국 내지 선진국의 속성을 본다. 세계정치경제 질서에서 상위를 유지하기 위해 하위에 처한 국가와 경제와 사람을 감시하고, 자신의 이익에 위해가될만한 요소를 차단하는 데 엄청난 투자를 한다. 그러한 사업에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고급 인력이 종사한다. 박사급의 수학자, 언어학자, 컴퓨터전문가,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 등 고급인력이 고임금을 받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판단을 한다. 이들은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서 투자 분석을 하는 사람이나, 여론조사회사의 여론 분석가들이나, 광고회사의 소비자 반응 분석가들과 동일한 종류의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제조업이 사라지고 분석가’(analyst)의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보안정보 산업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사람들은 군사나 보안 정보 산업을 환영한다. 전투기를 제조하는 일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훨씬 더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며, 정보 분석 업무는 높은 교육을 받은 고급인재를 필요로 하며,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정보원이고급 인재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안 정보 사업은 자기 모순적인 성격을 지닌 듯하다. 나를 반대하고위해할 수 있는 것은 뚜렷이 특정 지을 수 없다. 적이 누구인지도 뚜렷이 알 수 없는 데다가, 설사 나에게 위해가 되는 세력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파악하기 어렵다. 나를 해칠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고 있다는 정보를 수집했다고 해도 이것이 과연 안전한 상황을 의미하는지 혹은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력이나 위험 요소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지 구분할 수 없다. 이런면에서 정보 사업은 지나치게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하여 수집된정보가 너무 많으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잃는다는 점이다.

 

미국과 같이 세계 구석구석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나라는 자연히 여러 곳에서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는 상황을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게 빼앗긴 것에 복수를 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은 상존한다. 지구촌의 일원인 미국과 미국인에게 가해질 수 있는 테러의 가능성을 모두 틀어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에서 미국인이 테러의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강대국의시민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가?

 

미국인의 삶에서 안전의 문제는 항시 중요한 관심사이며, 국가 수준에서는물론 개인의 수준에서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투입한다. 어느 곳이 안전한지, 어디에는 가면 안 되는지, 어떤 사람이 위험한지를 항시 의식해야한다. 많은 미국인들은 입구에 상시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는 건물에서 일하고 담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통제된주거단지에서 살고 있다.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상류층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데 익숙하며 일반이 쉽게접근하지 못하는 곳에서 살면서 특권의식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는 중류층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야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나라 전체가 안전 노이로제 속에서 불안감을 줄이려고 광분하고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마다 엄청난 보안 절차와 지겨운 표정을 짓고 일하는 수많은 보안 요원들을 보면서슬퍼진다. 이러한 돈과 사람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쓰여지면 훨씬 살기 좋은 사회가 될 텐데.. 미국 대도시의 슬럼가에서 목격하는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과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비참한 삶을 옆으로 하고, 이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워싱턴포스트 기사에서 미국정부의 보안정보 사업이 엄청나며 담당자도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첩첩이 비밀에 싸여 있고 중첩된 비효율을 보인다고 매섭게 비판을 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보안 노이로제로 볼 때 어느 정도는 그럴 수밖에 없음을 간과한 지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보안 노이로제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제거하지 않는 한, 안전에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상대를 감시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2010. 7. 22. 10:58

  내 일과 중 하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외국의 신문과 잡지를 훑어보는 것이다. 그중에 흥미있는 심층 기사 한두개를 뽑아서 매일 시간을 들여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것이 주 목적이나, 영어의 감을 잃지 않으려는 이유에서도 게을리할 수없다.  

  New York Times는 매일 훑으며, Washington Post, Guardian, 등도 때때로 들어가서 온라인으로 읽는 신문이다. The Economist는 잡지를 구독하여 읽으며, The Atlantic Monthly, The New Republic, The American Prospect, National Geography, Time 도 때때로 읽는 잡지이다. 이러한 외신을 읽는 중에 흥미있는 기사, 특히 심층 취재 기사를 골라서 소개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나에게 흥미있는 기사는 정치, 경제, 경영, 사회, 문화, 과학, 인터넷 등 아주 다양하고 천방지축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극하고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감각을 높여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환영하는 잡식성 취향을 가졌기때문이다. 
    
  지난 학기부터 학생들에게 흥미있는 기사를 간단한 나의 생각과 함께 메일로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규칙적으로 할 량이면 블로그를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볼 수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부지런히 할 수있을지는 모르나, 조그만큼이라도 나의 노력을 투자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일을 할 수있다면 좋겠다. 한주에 최소한 한개 이상 글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