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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 현상'에 해당되는 글 1건
2023. 4. 21. 10:03

William McNeill. 1995. Keeping Together in Time: Dance and Drill in Human History. Harvard. 1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동시에 움직일 때 느끼는 흥분이 종교, 군사, 정치, 사회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2차대전에 징집되어 군사훈련을 할 때, 여러 시간 동안 보조를 맞추어 행진연습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적 흥분의 기억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리듬을 맞추어 육체적인 활동을 하면, 집단 소속감과 함께 삶에 대한 흥분이 고조되면서 집단결속이 높아진다. 저자는 이를 '육체적인 결속' mascular bonding 이라 지칭하는데,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 구성원들과 언어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소통을 할 때 집단 결속력이 높아지고 집단적인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적 소통 방식은 후대의 인류에게 계승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감정은 지적인 활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체로 감정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를 지적으로 정당화 내지 제도화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과거 인류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하는 활동은 그들의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종교적인 목적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여러 시간 동안 함께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춤을 추었다. 집단적으로 하는 노동에서 노동요에 맞추어 단체로 일하므로서 오랜시간 노동의 고됨과 지루함을 극복하였다. 축제 기간에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름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이러한 집단 활동은 서기 2000년전 수메르 시대의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는 계기는, 지도자의 이끌림에 따라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면서 종교적 황홀경(trance)를 맛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는 초기 단계에 이러한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신도를 유인하는데, 이는 여러 사람이 모여 동시에 몸을 움직이면 느끼게 되는 집단적 '흥분'  effervescence 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흥분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도의 규모가 커지고 종교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제한하려하고, 감정보다 지적인 접근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인 접근에 반발하여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이단이 생겨나고, 이들이 새로운 교파를 형성하면서 신도가 증가하면서 종교의 합리화 과정이 되풀이 된다. 과거 감리교, 침례교, 몰몬교가 발흥하게 된 계기, 근래에 복음주의 개신교 교회, 특히 오순절 교회Pentecostal 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크게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예배 시간에 신도들이 동시에 몸을 움직임이고 큰 소리로 외치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흥분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떠나 지적인 접근만으로 오래 존속할 수는 없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집단적인 군사 훈련, 특히 병사들이 보조를 통일해 움직이는 훈련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훈련을 강도 높게 받은 병사들은, 사기가 높고,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무엇보다 전우애가 투철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몸을 던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을 받은 군대가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군대를 만나 번번히 이겼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 훈련은 서구 전역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훈련 방식을 일찍이 도입하여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으나, 오스만 터키는 자신의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여 낙후된 군대로  남아 있다가, 유럽의 침공에 몰락하였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이 패한 이후, 독일에서는 건장한 젊은이를 길러내기 위해 체조와 운동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는 사회적 운동이 정부의 적극적 주도로 전개되었다. 같은 시기 이웃나라 스웨덴에서도 전국민 체조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국가가 주도하여 전국민 혹은 집단 구성원 모두를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건강 증진을 도모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군사적인 의도를 내포하였으며,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으로 장려되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독일의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청년 친위대를 양성하면서 체조와 행진을 중시했으며, 나치 시절에 매년 벌어진 뉴렌베르크 집회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치 특유의 손을 높이들어 인사하는 행위 역시, 동시에 몸을 움직임으로서 결속감을 고취시키는 수단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히틀러의 악몽을 잊기 위해 유럽에서는 국가주도로 체조와 행진하는 것이 기피되었지만, 히틀러의 기억이 미약한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집단 결속을 다지기 위해 집단적으로 체조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리듬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거나 행진을 하거나 구호를 외칠 기회는 많지 않다. 운동 경기장에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집단적 행위가 미국에서는 가장 이에 근접한 활동이다.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움직임으로서 집단 소속의 흥분감을 느끼는 것은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그러한 욕구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근래에 젊은이들이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가수의 이끌림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떼창을 부르고 소리를 외치고 흥분하는 이유는 이러한 활동이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집단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속이 뻥 뚫리는 후련한 느낌을 받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

저자는 인류학 배경을 가진 역사학자답게, 공식적인 제도보다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 즉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 사료는 많지 않지만, 마치 인류학자의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움직일 때 삶의 흥분을 느끼고 집단 결속감이 높아지며, 이것이 언어나 제도 못지 않게 사회와 삶의 버팀목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독창적인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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