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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 해당되는 글 13건
2024. 1. 4. 16:50

W.Phillips Shively. 2011. Power and Choice: An Introduction to Political Science. 12th ed. McGraw Hill. 443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대학교에서 사용할 정치학 개론 교과서로 집필되었다. 정치 사상과 이론, 국가와 정책, 민주주의와 독재, 정부기구와 정치과정, 의회중심제와 대통령 중심제, 관료와 사법기구, 국제정치 등 정치학의 전분야를 섭렵한다. 미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활용하여 다양한 정치 현상을 설명한다. 비교정치학적 접근을 하며, 서구 국가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개발도상국의 사례들도 폭넓게 다룬다.

정치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 사이에 합의를 도출하는 것인데, 이를 행위자들 사이에 갈등과 타협의 과정으로 볼지, 혹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볼지에 따라 관점의 차이가 있다. 저자는 전자를 power 의 관점으로, 후자를 choice 의 관점으로 명명한다. 사회과학의 이론틀에서 볼 때, 전자가 갈등론, 후자가 기능론에 해당한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대규모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넓은 영토에 걸쳐 규칙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이는 기능론적 관점이다. 반면 유럽에서 이웃 나라들 사이에 빈번히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가운데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찰스 틸리의 설명은 갈등론적 관점이다. 

정치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론적 깊이를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각 장의 주제와 연관되어 특정 국가의 정치에 관해 심층적인 사례 탐구를 제공하는데, 이는 각 장의 주제에 대해 이해를 깊이하면서 특정 나라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정치 전반을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3. 11. 10. 12:25

John Lewis Gaddis. 2018. On Grand Strategy. Penguin Books. 313 pages.

저자는 냉전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이며, 이책은 그의 방대한 역사 지식과 독서를 배경으로 하여 지도자와 정치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로운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한다. 예일대에서 같은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친 강좌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 로마시대에 옥타비안이 황제가 되는 과정, 영국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통치 방식 비교,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헌법 개정, 러시아의 일차대전 참전과 공산주의 혁명, 등 서구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사례들이 언급된다.

지도자는 여우와 고슴도치 fox and hedgehog 라는 두 유형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여우는 디테일에 강하며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움직이는 유형인 반면, 고슴도치는 한가지의 큰 아이디어를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유형이다. 현실에서는 예기치 못한 복잡한 여러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한가지의 아이디어를 우직하게 밀어붙이면 낭패하기 쉽다. 그렇다고 예상되는 모든 변수들을 고려한다면 강력한 추진력을 동원하여 일을 도모할 수 없다. 훌륭한 지도자는 이 두가지 성향을 동시에 품고서, 경우에 따라 유연하게 두 원칙을 적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도자가 현명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패턴을 암기하고 따를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왜 어떤 결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검토하는 훈련을 통해 양성할 수 있다. 마치 운동선수가 코치의 지도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받고, 실전에서 이러한 능력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

페르시아의 황제는 그리스 침공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그의 참모의 조언을 무시하였다. 그는 예상되는 어려움을 모두 고려한다면 어떤 일도 도모할 수 없다고 하면서 침공을 결행하였다. 예상대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여 결국 패하고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고슴도치 유형의 지도자가 실패한 대표적 사례이다.

로마시대에 시저 황제의 양자였던 옥타비안은 시저가 죽은 다음, 그가 왕위를 물려받도록 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당시 강자였던 앤토니 및 시세로와 권력을 나누는 선택을 하였다. 이후 서서히 힘을 키워서 하나씩 강자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오랜 재임 기간 동안 훌륭한 통치를 한 황제로 기억되었다.

영국과 스페인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통치 방식이 달랐다. 영국은 식민지의 지역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적용하도록 하는 통치 방식을 택한 반면, 스페인은 식민지 모국의 정책을 식민지 전체에 경직적으로 적용하는 통치 방식을 택하였다. 영국의 식민지는 종교의 다양성을 허용한 반면, 스페인은 카톨릭의 엄격한 원칙을 식민지 사람들 모두에게 강요하였다. 그 결과 식민지와 모국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때, 영국의 식민지는 공화정이라는 유연한 정치체제로 통일되고 안정된 독립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반면, 스페인의 식민지는 지역의 독립된 정치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서로 분열하였으며 각자 독립한 이후에도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은 전쟁 초기에 승리가 계속되면서 오만해져서, 자신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러시아로 무리한 정벌을 감행한 결과 크게 실패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지도자가 국가의 권력을 자기의 개인적 야망을 만족시키는데 사용하면 결국 몰락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지도자는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겸손해야 한다.

미국의 남북전쟁 시절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 선언을 하고,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헌법 개정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의원들을 매수하고 위협하는 수단도 불사했다. 그는 노예제 폐지라는 장기적이고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는 고슴도치 형의 추진력과 여우 형의 교활함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제일차 세계대전 시절 영국은 러시아를 전쟁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독일의 침공을 억제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내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렇게 출현한 공산주의 러시아는 서방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였다. 영국의 러시아 참전 독려는 근시안적인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서구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집필되었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이 인용되며, 곳곳에서 시대를 넘나드는 역사적 사례와 인물을 인용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서술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저자의 서술이 산만하고, 때로는 견강부회적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23. 8. 29. 16:38

John Mearsheimer. 2018.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실패 원인을 자유주의적 패권 (liberal hegemony) 추구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liberalism, 민족주의 nationalism, 현실주의 realism 원칙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천부적 인권 inalianable rights, 개인의 자유 individual freedom, 및 재산의 사유 private ownership 을 축으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선호에 차이를 허용하며 tolerance, 의견 차이와 이익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체인 국가를 필요로 한다.  존 로크의 천부인권과 계약 이론이 이를 대표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좋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다.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러한 이념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족주의란 자신이 속한 민족 nation의 생존과 번영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우선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권리와 민족의 생존이 충돌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보편적인 인권보다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내 국가의 생존에 더 목숨을 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과 자주적 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권을 보유한 민족 국가 nation-state를 탄생시켰다.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다민족 국가나 국가가 없는 민족은 모두 갈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간의 관계, 즉 국제정치는 국내 정치와는 다른 역학이 작용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간에 갈등이 발생할 때 이를 강제적으로 조정할 권위적 존재가 없다. 쉽게 말해 무정부상태 anarchy 이다.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해도 유효하게 제제할 수 없다.  소위 정글이라 표현하는, 힘의 원리만이 작용하는 장이다. 국제기구나 국제법이란 국가들간에 자발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 힘있는 국가가 이를 위반해도 강제할 수 없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 self-help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합종연횡, 즉 힘이 약한 국가들이 연합하여 힘있는 국가와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 balance of power 으로 각 국가들은 안보 위험을 해결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세계에 경쟁자가 없는 일극체제 unipolar system의 정점에 올라섰다. 일극체제의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전보다 더 미국의 자유주의 원칙을 세계 각국에 전파, 강요하였다. 문제는 미국의 개입을 받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침입하여 그 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미국식, 즉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으려 하면,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반발을 초래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개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살상과 혼란이 발생하여,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미국의 이념과 체제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개조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자유주의를 전파하겠다고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전쟁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라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정도에서 멈추어야 한다. 미국이 자유주의를 전파하려는 외교정책을 포기할 때,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국제정치는 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예외적으로 평화로울 것이라는 주장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평화와 번영과 인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국가 benign country 이므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또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자국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언제고 상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이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주의를 숭배하지만, 미국인들이 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를 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제한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을 받은 외국인들은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신의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이상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포기할 때 세계는 물론 미국 국내사정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들어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를 미국의 외교 무역정책에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러나 미국이 실패하고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무어라고 해도 한국은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정책의 최대 성공작이다. 넉넉한 형님같이 한국에 베풀어준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은 냉전체제에 공산주의에 대적하는 미국의 쇼윈도에 걸린 모델이 된 덕분에 운좋게 잘 풀렸지만 말이다.

2023. 4. 7. 16:48

Amitav Acharya and Barry Buzan. 2019. The Making of Global International Relations: Origins and Evolution of IR at its Centenary. Cambridge. 320 pages.

저자는 국제관계학자들이며,  이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최근까지 국제관계의 변화를 정리하면서, 이러한 정세 변화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국제관계의 변화는 크게 5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제 1차대전 이전까지,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기간, 2차대전 이후, 1989년 공산권의 몰락 이후, 21세기에 접어들어 지난 20년간.

제 1차 대전 이전 시기의 국제관계는 유럽의 중심국이 여타 세계의 식민지를 거느리는 제국주의 시기이다.  인종주의가 이 시기를 지배하는 이념이었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와 여타 국가들간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일본은 이러한 서구 백인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애매한 존재로 중심국에 편입되어 있었다. 서구 국가들 사이의 국제관계는 강대국들 사이에 '힘의 균형' (balance of power)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1차 대전 이전 상황의 연장이다. '국제연맹'이라는 국가들을 아우르는 조직이 국제사회에 새로이 등장하여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간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1차 대전은 영국, 프랑스 등 선진 산업국과 독일이라는 후발 산업국간 힘의 균형의 변화가 원인인데, 전쟁이 그러한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서구사회는 또다시 전쟁을 맞게 되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이 국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대국들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전면전은 패전국은 물론 승전국에게도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1,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은 몰락하였으며,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게 되었다.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오랫동안 견지하던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2차대전 이후 유럽 제국주의에 복속되어 있던 식민지들이 독립함으로서, 비록 국가들간 상당한 차이는 있지만 국제사회는 서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라 세계 여타지역의 국가들도 참여하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난 국가들 중 일부는, 미국과 소련의 양진영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제3세계 비동맹 그룹을 형성하였다. 냉전시기에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간에 대립과 경쟁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삼세계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은 이차대전 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를 만들고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는 자유주의 (liberalism) 국제정치 이론에 반영되었다.

2차대전은 핵무기를 국제사회에 등장시켰다. 핵무기는 전쟁의 승패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이후 미국과 소련간 핵무기 경쟁과 억제의 구도 속에서, 강대국간 전면전의 가능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왔다. 강대국간 전면전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원을 받는 대리 전쟁은 세계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졌음으로 이 시기를 평화롭다고 규정하는 것은 서구 편향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1989년 공산권은 내부적인 비효율 때문에 함몰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 체제의 세계질서가 등장하였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더이상 강대국간의 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낙관론이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중국과 인도가 성장하여 점차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들어 브라질과 러시아 등과 함께 강대국 군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는 다극체제로 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1세기에 들어 국제사회는 다극체제의 모습을 점차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세계의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이 수반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서구의 자본주의의 약점을 두드러지게 노출시켰으며, 반면 30여년 동안 꾸준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중국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제삼세계 국가들에게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와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약점을 세계 만방에 재확인시켰다. 미국은 이제 세계를 전면에서 이끄는 지위에서 내려왔으며, 자신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여러 강대국 중 하나의 위치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세계질서에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을 차지하는 반면, 오랫동안 국제관계를 지배했던 인종주의는 점차 쇠퇴할 것이다.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제삼세계 국가들의 비중이 커진 반면, 서구 강대국들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미래에 오늘날의 시기를 뒤돌아볼 때, 국제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제삼세계 국가들의 부상일 것이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계속 커질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관계 학문도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비서구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접근으로 바뀔 것이다.

이 책은 학술서로서, 국제관계 학문는 국제정세에 좌우된다는 지식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20세기 후반까지 비서구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됬으므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없었으며, 국제관계 학문에서도 거의 존재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 사회의 부상이 앞으로 국제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16세기에 서구가 아시아를 앞서 근대화한 이후, 비서구 사회는계속 뒤쳐져 있었으며, 앞으로도 비서구 사회가 서구사회를 앞설 가능성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구 문명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지난 백년동안 국제정세의 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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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22. 18:04

Jeffry Friedan, David Lake, and Kenneth Schultz. 2016. World Politc: Interests, Interactions, Institutions. W.W.Norton. 627 pages.

저자는 국제경제학자 및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대학의 국제정치경제 교과서이다. 국제정치와 경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논의의 핵심으로 하여, 이론적 깊이를 추구하기보다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부분에서는 국제정치경제의 질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고,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국제정치는 관계자의 이익(interests), 관계자들 사이에 상호작용(interaction), 관계자들의 행위를 규정하는 제도(institutions)라는 세개의 축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두번째 부분은 국제정치를 전쟁과 평화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국내 정치와 전쟁은 어떤 연관을 맺는가, 전쟁과 관련된 국제 제도는 어떠한가, 국가가 아닌 국제 폭력조직 및 내전, 등에 관해 이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세번째 부분은 국제 경제에 관해 논의한다. 무역, 국제 금융, 국제 통화, 경제발전, 등에 대해 근래의 상황에 촛점을 맞추고 경제이론을 최소한으로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네번째 부분은 국제 규범과 제도에 관해 논의한다. 국제법, 인권, 환경문제, 등에 관해 국제 규범과 제도의 발전을 논의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21세기에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치경제를 조망하면서, 대량학살무기의 확산, 세계화의 후퇴, 중국과 미국의 대치, 등에 촛점을 맞추어 미래를 예측하는데 고려해야 할 점을 논의한다.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상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다만 국제정치를 논의하면서 전쟁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것은 좀 치우쳤다. 국제질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서술, 및 국제경제를 서술하는 부분을 조금 더 잘썼다.

2022. 1. 6. 17:02

Joseph Nye, Jr. 2011. The Future of Power. Public Affair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hard power v. soft power 논의를 종합 정리하고,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진단한다. 

power는 분야에 따라 구분되어야 한다. 안보 분야에서 군사력이 power의 핵심이지만,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의 분야에서는 별도의 power 가 존재한다. power 는 상대가 누구냐에 좌우된다. 절대적인 수준이기보다는 상대와 비교해 나은 정도가 power이다. power 는 얼마나 자원을 많이 보유하는가 하는 측면과 함께, 이러한 자원을 실제 행위로 어떻게 전환하는가 하는 측면을 포함한다. power 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직접적으로 강압하는 측면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젠다를 설정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상대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유인되도록 하는 간접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상대가 나에게 유인되는 문화적인 힘, 소프트 파워는 하드 파워를 전제로 한다.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가 잘 결합된 형태를 스마트 파워 smart power 라고 정의하면서, 소프트 파워가 함께 갈 때 하드 파워도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21세기에 들어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power 의 원천은 확산되고 있다. 정보에 접하고, 정보를 생산하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과거와 같이 정보를 독점하는데에서 나오는 힘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면서 일시적으로 세계에서 미국은 독보적 지위에 올라섰지만, 이후 BRIC, 특히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이 세계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줄어들었다. 미국은 과거와 같이 세계위에(over) 지배하기보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with) 지도적 역할을 하는 위치에 머물게 되었다. 미국은 군사력 분야에서는 절대적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에서는 그에 못미치며, 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에서는 파워가 약하다. 

세계에서 현재 미국이 차지하는 지배적 지위(hegemony)가 앞으로 중국으로 이전할 것인가, 혹은 세계에서 미국의 힘이 쇠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부정적으로 답한다. 미국의 지위는 앞으로도 한동안, 적어도 21세기 전반부에는 쇠퇴하거나 중국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로, 미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고, 미국의 경제는 생산성 향상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미국의 대학은 매우 우수하며, 미국의 대중문화는 세계를 지배하며, 미국이 추종하는 가치, 예컨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은 여전히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대체할 대안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배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세계인에게 공공재(public goods)를 공급하는 역할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 평화, 자유 무역, 항행의 자유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에 영국이 공급하던 공공재이며, 세계인은 이를 이용하면서 영국의 지배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과거와 차이점이라면,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즉 세계의 빈곤퇴치에 기여하는 것을 미국의 역할에 추가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세계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국제무대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입다물고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명한 국제정치 학자로서 정부의 고위 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이 배어 있어, 저널리즘의 논의와 달리, 깊이와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다만 이 책이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 쓰였어도 미국의 미래를 낙관했을까는 의문이다. 대체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트럼프 이후 미국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낙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2. 1. 1. 10:44

John Baylis, Steve Smith, Patricia Owens. 2020. The Golbalization of World Politic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8th ed. Oxford. 529 page.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화와 국제관계에 촛점을 맞춘 교과서이다.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학문분야의 주요 이론을 소개하며, 국제관계 분야에서 쟁점 주제들을 개괄적으로 검토한다. 이삽십명의 저자가 각자 장을 나누어 쓴 것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 글의 질에 차이가 있다.

1990년에 냉전이 끝난 이후 국제관계는 과거에 현실주의(Re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지배하던 분야에서 다양화되었다. 이제 국제관계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 초국가적 다자 기구나 국제적 비영리단체와 같은 새로운 행위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생존과 안보가 유일한 기준이었던 것에서 인간의 기본권이나 복리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각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지 않지만, 최근까지의 상황을 반영하여 국제사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정치경제적 시각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석하는 글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 글에서는 저자의 주제에 대한 통찰력이 보이지만 또 다른 글들은 피상적이고 산만한 서술을 하고 있다. 좋은 글들을 선별한다면 괜찮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2021. 12. 22. 16:57

Hedley Bull. 2012(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 4th ed. Palgrave. 308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제 정치와 "국제 질서"(international order)의 성격을 규명한다. 국제정치란 국가들 사이의 관계이다. 국제관계에는 국가간에 폭력을 통제하는 단일한 중앙 기구가 없기 때문에, 한 영토와 국민에 대하여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인 국가 내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질서가 유지된다. 국가들 사이에는 상호관계로 엮여진 국가들의 체제(states system)가 존재한다. 국가들의 체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것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별개이며, 현실에서는 두개의 가치가 상충된다. 국가들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정의롭지 않으며, 국제정치는 정의를 기준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에는 국가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범이 있다. 그러나 이 규범은 법과는 달리 정치적인 것으로, 이를 위반해도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이 규범은 국가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건들을 통해 뒷받침되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국제정치에서 폭력 사용을 가급적 꺼리는 규범이 존재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해 폭력 사용이 용인되기도 한다. 국가들은 가급적 국제적 규범을 지키려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규범을 위반하거나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국가들 간에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이다. 상황이 변화하여 힘의 균형이 깨지면 새로운 연합이나 분열, 전쟁 등을 통해 힘의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국가들 사이에 전쟁은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강대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크다. 국제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 혹은 국가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한다. 냉전시절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폭력 행사를 자제하였으며, 세계의 구석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만들어 진 것이며, 그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국제질서에서 중소국가의 견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국제질서가 서구의 선진국에 유리하도록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 분배를 용인하므로, 제삼세계 국가들은 정의가 바로세워지도록 바꾸는데 관심이 크다. 

핵무기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국가간 폭력이 발생했을 때 폭력 행위의 대상은 물론 폭력 행위를 시작한 당사자까지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다. 핵무기는 폭력의 발생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deterrance)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핵무기가 확산되면 폭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동원하는 비합리적 폭력 사용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핵전쟁이 두려운만큼 핵무기 사용을 상호간 자제하겠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여 전통적 무기를 사용하여 제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국가들의 체제에서 국가들 사이에 종종 폭력이 행사되고, 국제정치가 정의롭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전세계를 관장하는 권력의 중앙집중, 지역단위의 결합체 형성, 국가이외에 다른 행위자, 예컨대 다국적 기업, 국제단체, 등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체제, 등은 현실적이지 않거나 각자 나름의 한계를 안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들의 체제는 20세기 이전에 비해 20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서로 간에 규범을 지키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심의 현재의 국제체제는 질서를 확보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국제 정치 세계에서 질서, 법, 폭력, 갈등, 등의 개념을 국내 정치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와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라고 단언한다.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질서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충돌한다는 지적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번득인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져서 냉전 종식 이후의 상황과 맞지 않는 지적이 곳곳에 있다. 이 책의 또다른 단점은 문장이 복잡하여, 마치 법률 문구를 읽는 느낌이다. 논리적으로는 정치하지만, 독자에게 친절하게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2021. 11. 6. 21:20

Joshua Goldstein. 2011. Winning the War on War: the decline of armed conflict worldwide. Plume. 328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세계는 근래로 올수록 폭력이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국가간 전쟁은 현저히 감소하였다. 1948년에 처음 시작된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은 유엔의 여러 역할 중에서 중요성을 점차 더해왔다.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분쟁 지역에 파견된다. 그간 아프리카의 분쟁지역에 주로 파견되었는데,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 체제를 확립하는 데 유의미한 기여를 했다.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효과가 없다는 비판은 객관적인 증거에 반한다. 

유엔의 평화유지군은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야 파견을 결정하고, 군인을 모집하고, 파견에 필요한 준비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문제는 분쟁 발생 초기에 개입할 때 가장 효과가 큰데 이러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다는 점이다. 마치 불이 난 다음에 소방관을 모집하고 소방차를 준비하는 격이다. 강대국의 군대와 비교해 형편없이 빈약한 예산과 병력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은 유엔의 사업 중 효과성이 매우 높다. 

평화유지군은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전투병의 역할만이 아니라, 치안을 유지하고, 평화체제의 정착을 관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원칙적으로 평화유지군이 파견되는 나라의 동의를 얻고 나서야 그곳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지만, 인권을 크게 유린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나라의 동의 없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도 한다. 이 경우 국가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국제질서의 원칙과 충돌하게 된다.

분쟁이 일어날 조짐은 미리 탐지할 수 있다. 따라서 분쟁 발생이 예상되는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미리 파견한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거두겠지만, 최소한의 평화유지군을 상비군으로 유지하자는 주장은 강대국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보건 분야에서 사전 예방이 사후 치료보다 더 효과적이고 비용이 적게 들 듯이, 미래에는 평화 분야에서도 분쟁이 발생한 다음 개입하기보다 사전 예방 조치가 평화유지 활동의 주가 되어야 한다.  

"정의 없는 영구적 평화는 없다" 는 주장이 진보적 평화운동가들 사이에서 옹호되지만, 정의와 평화는 별개의 문제이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유혈분쟁이 터지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정의가 구현되어야만 평화가 가능하다면, 그러한 평화는 가시적인 미래에 확보하기 어렵다. 평화가 없는 상태, 즉 분쟁은 엄청난 인간적 희생을 동반하므로, 정의가 구현되는가 여부와는 별도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국가간의 전면전은 갈수록 줄어들어 1990년대 이래 매우 드물어졌다. 내전, 즉 정부군과 반군사이의 전투가 전세계의 분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전은 대부분이 인종 민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수의 주류 집단에 반발하는 것인데, 분쟁의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대의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실제는 소수의 주동자 들이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대의를 팔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조직 범죄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 소득 수준이나 경제성장율이 낮을 수록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진다. 국민의 소득이 낮으면 세수가 적어 국민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장악력이 떨어져 내전의 위험이 높다. 또한 전쟁 자금을 조달 할 수 있는 천연자원이 많을수록 내전의 가능성이 높다. 석유, 다이아몬드, 구리가 대표적 예이다.

국가간 대규모 전쟁이 크게 줄어들었고, 평화유지군이 개입하여 내전을 종식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사람들이 해결책으로서 폭력적 수단을 허용하는 정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만일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분쟁이 없는 세계의 도래도 가능할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므로, 가난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돕는 것이 분쟁 없는 세계를 만드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다.

이 책은 유엔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글이므로 그리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평소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2021. 5. 24. 08:01

Richard Haass. 2020. The World: A Brief instroduction. Penguin Press. 313 pages.

저자는 과거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기획에 참여하였으며 현재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기관을 이끄는 전문가이다. 이 책은 국제문제에 관한 기본 상식을 배양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개론서이다. 17세기 중반 웨스트팔렌 조약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세계 주요 지역의 개관, 국제적 쟁점 주제의 개요, 국제 질서의 프레임 이라는 네개 범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1989년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이 단독으로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으나 미국의 주도적 힘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 세계는 유럽, 소련, 중국, 인도 등으로 구성된 다자간 세계 질서 multilateralism 로 이행하고 있다. 세계 지역 중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점차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는 각국의 민주화 정도, 경제적 상호의존의 정도, 국제 관계를 조정하는 기관의 힘, 국제적 규범의 힘에 좌우된다. 이 네개의 요인 어느 것도 현재 상대로 보건대 평화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70년간이나 평화를 지속해 왔지만, 앞으로 비평화로 이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언제라도 비화되어 비평화상태에 빠질 수있다. 세계는 현재 무질서 chaos 의 상태이다. 

저자는 국제문제 전문가 답게 세계의 미래를 그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각 주제를 다루는 매 장의 후반에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서술하는데, 문제의 해결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는 말을 빼 놓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를 보건대 현재의 세계는 언제라도 전쟁으로 치닫을 수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평화를 향하여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갈등의 소지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맡대고 타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내정 문제가 정돈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미국을 대체하여 세계를 이끌 지도적인 나라의 출현은 현재로서는 요원하기 때문에 세계의 미래를 낙관할 수없다. 이 책은 평이한 글로 쓰여진 개론서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들을 모두 균형있게 다루려 했으므로,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찾아볼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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