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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에 해당되는 글 17건
2023. 10. 1. 10:50

Richard Wrangham and Dale Peterson. 1996. Demonic Males: Apes and the Origins of Human Violence. Houghton Mifflin Company. 258 pages.

저자는 생물자이자 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침팬지에 대한 연구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폭력성은 문화가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침팬지는 위계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수컷 침팬지들 사이에 지위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힘으로 다른 수컷을 제압하여 최고의 지위에 올라선 알파메일은, 다른 동료를 마주칠 때마다 매번 그들로부터 굴종적 인사를 강요한다. 다른 수컷이 알파 메일의 권력에 도전하여 그를 권좌에서 몰아낼 위험은 항시 존재한다. 하위의 침팬지가 알파 메일에 본격적으로 도전하여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권력의 전환기에는 침팬지 사회 전반에 폭력적 분위기가 흐른다. 침팬지의 권력 투쟁은 침팬지 사회 구성원 다수가 참여하는 집단적 게임이다. 알파 메일은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다른 동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알파 메일에 도전하는 하위의 침팬지들은 그에 대항해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싸운다. 침팬지 사회의 권력 투쟁은 폭력적이며, 종종 살상을 동반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계산적으로 행동하며 동족을 살해하는 행위는 인간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침팬지는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수컷들이 무리를 지어 이삼일에 한번씩 경계를 시찰한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영역을 넘어 이웃 침팬지 집단에 원정 공격을 나선다. 이웃 침팬지 집단의 영역에서 홀로 돌아다니는 취약한 상대를 발견하면 집단적으로 공격하여 죽인다. 이러한 집단 공격에 참여하는 침팬지들은 집단적으로 흥분에 들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잔인하게 상대를 때리고, 물어뜯고, 살과 뼈를 찢고 부러뜨린다. 이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이러한 원정 공격의 목적은 복합적이다. 이웃 침팬지 집단을 약화시켜 자신의 집단의 영역을 확장하고, 때로는 살상한 침팬지 고기를 먹는다. 자신의 집단의 영역이 확장되면,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먹이를 구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신의 후손을 길러낼 수 있다. 때로는 이웃 침팬지 집단의 수컷을 수차례의 원정 공격을 통해 차례로 제거한 다음, 그들의 아이를 모두 죽이고, 암컷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웃 집단의 영역을 포함하여 자신의 사회를 확장한다. 

침팬지가 자신의 집단 내에서 및, 이웃 집단과 벌이는 폭력 투쟁은 전적으로 수컷의 몫이다. 암컷은 수컷들의 권력 투쟁에 소극적으로만 관여하며, 이웃 집단과 벌이는 원정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다. 침팬지 수컷에게 지위 추구는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권력을 쥔 수컷은 많은 암컷들을 차지하여 많은 후손을 낳는 반면, 권력이 없는 수컷은 자신의 후손을 만들 가능성이 제한된다. 침팬지 수컷이 권력 투쟁에 몰두하는 이유는, 침팬지 암컷이 권력을 쥔 수컷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알파 메일이 기존의 알파 메일을 대체하면, 그는 기존의 알파 메일의 자식을 모두 죽이고, 기존의 알파메일의 암컷을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 침팬지 암컷에게, 권력을 가진 수컷은 다른 수컷으로부터 자신과 아이를 보호하는 존재이므로, 그들은 자신의 전남편의 자식들이 살해당하더라도 항시 권력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침팬지 암컷은, 수컷보다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하며,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역할 때문에 수컷과의 힘의 경쟁에서 열위에 있으므로, 수컷의 권위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수컷은 자신의 의도에 저항하는 암컷을 겁박하여 힘으로 굴복하게 한다.

침팬지와 매우 유사한 종으로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으며 힘이 약한 보노보가 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달리 수컷과 암컷의 체구가 대등하며, 수컷 또한 폭력적 행태를 거의 보이지 않고 온순하다. 보노보 사회에는 수컷들 사이에 권력 투쟁이 없으며, 알파 메일이 존재하지 않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이다. 보노보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는 물론, 이웃 집단과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일도 없다. 침팬지와 보노보가 상이한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먹이의 차이에 있다. 침팬지는 과일과 육식에 의존함에 비해, 보노보는 과일과 잎사귀를 주식으로 한다. 과일은 드물기 때문에 소수의 작은 집단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반면, 잎사귀는 풍부하기 때문에 큰 무리를 형성하며 산다. 큰 무리를 짓고 사는 보노보 사회에서 암컷들은 서로 친밀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수컷의 도발을 집단적으로 제어한다.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수컷은 암컷들이 연대하여 벌을 가하거나 집단에서 쫒아내버리기 때문에, 침팬지 사회에서 보는 수컷의 폭력성은 보노보 사회에서는 행사될 수 없다.

인간과 침팬지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었다. 침팬지의 행태는 인간과 매우 흡사하다. 인간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된 이후 빠르게 변한 반면, 침팬지의 행태는 오랜 세월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현재 침팬지들이 보이는 폭력성은 공통조상의 행태에 가깝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으며 힘이 약한 반면 두뇌가 발달하였다. 과거 수렵채취 시대에 인류의 집단 사회에서 알파 메일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어떤 남성이 권위적으로 행동하여 타인을 지배하려 들거나, 폭력을 행사하여 남의 것을 탈취하려 하면, 집단적으로 그를 제재하며, 최악의 경우 그를 집단에서 축출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행태는 보노보와 닮은 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보노보와 달리 남자가 여자보다 체구가 크고 힘이 세며,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 patriarchy 를 형성해 왔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보노보보다 침팬지에 가깝다.

인간의 폭력성이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요인, 즉 유전자에 기인한다고 하여, 인간의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폭력성을 집단적 연대를 통해 제어할 수 있음을, 수렵채취 시대의 인류 사회에서, 또한 보노보 사회에서 확인한다. 집단적 접근으로 개인의 폭력성을 제어하는 것은 사회 제도를 통해 구성원의 폭력성을 규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원의 폭력성을 집단적으로 제어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결국 민주주의 제도로 발전하였다. 즉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수컷의 폭력성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나,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를 통해 이를 부분적으로 극복한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 연구자인 제인 구달을 도와 아프리카 밀림에서 침팬지를 오랜동안 관찰하며, 인간과 침팬지의 놀라운 유사성에 눈뜨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작품으로, 자신이 필드워크를 통해 관찰한 것, 평소의 생각, 다양한 독서 경험 등을 망라하여 뒤섞었다. 논리의 비약이 눈에 띠고,  때로는 논의가 직접 연결되지 않고, 반복이 많은 흠이 있지만,  저자의 모든 것을 쏟아 놓은 느낌이 들었다.

2023. 9. 16. 17:19

Paul Ormerod. 2005. Why Most Things Fail: Evolution, Extinction and Economics. Pantheon Books. 245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대부분의 회사가 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생물계에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종이 소멸한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나타나는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의 복잡성이 궁극적 원인이다.

회사들이 망하는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 중 10%가 첫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창업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초기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극복하면, 이후에는 창업 이래 흐른 시간과 망할 위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그러나 여하간 대부분의 회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망한다. 미국에서 100년전에 상위 100대 회사 중 현재까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회사는 절반에 불과하며, 여전히 상위 100대 기업에 든 경우는 겨우 19개이다.

회사가 망하는 주된 이유는 회사 자체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회사들 사이에 상호작용 속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회사들은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하는데,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수시로 조정한다. 문제는 나의 행위에 대해 상대가 취할 선택지가 다양하고, 여러 상대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속에서 특정 행위자가 추진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질 가능성은 무척 크며, 회를 거듭하며 상호작용하다 보면 결국 이러한 위험이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어진 상황에 아무리 합리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인해 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행위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은 매우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각 참가자에게 최선의 전략이 참가자 전체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행위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수시로 바꾸면서 자신에게 최선의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대의 행위를 예측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주어진 상황에서 주위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한 행위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 방식은 사람들 사이에 선호가 연결되는 preference attachment 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선호 대상의 객관적인 질과는 관계없이 열악한 선택을 가져오기도 한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행위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결과는 랜덤하게 선택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위자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생존 적응력 fitness에서 상호간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고 받는다. 외생적인 충격과 내생적인 요인 때문에, 생물 종이나 회사의 생존 가능성에 굴곡 fluctuation 이 발생한다. 어떤 종에서 우연히 약간의 변이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른 종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이 파급되고, 그것이 다시 원래의 종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반복되면, 그 와중에 일부 종이 멸종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약간의 종 혹은 회사가 멸종하는 일은 항시 일어나는 반면, 많은 종 혹은 회사들이 한꺼번에 멸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가끔씩 발생한다. 그 당시 생존하는 종 중 20% 이상이 멸종하는 대규모 멸종이 지구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발생하였다. 종이 멸종하는 규모와 빈도 간의 관계를 보면 지수의 법칙 power law 이 작용한다.

행위자들이 네트워크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일부가 멸종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멸종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존의 네트워크에 속한 행위자들에게 익숙한 것,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것, 새로운 방식을 들고나오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즉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기존에 상대의 대응을 넘어서는 새로운 충격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러 상대의 다양한 대응이 초래하는 불확실성과 충격을 넘어서는 길은, 내 쪽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충격파를 만들어 내어 복잡한 상황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요소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의 복잡계 complex system 현상을 회사라는 경제행위에 적용한 흥미로운 글이다. 책 자체는 산만하게 쓰여서 저자의 서술이 그리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데, 이는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아직 거친 수준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3. 9. 8. 12:15

Avi Tuschman. 2019(2013). Our Political Nature: The Evolutionary Origins of What Divides US. Prometheus Books. 413 pages.

저자는 인류학 배경의 정치컨설턴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의 배경에는 성격 특성이 있으며,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보수적 혹은 진보적인 이유는 그의 성격과 연관되는데,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성격의 분포는 인류의 오랜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모든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이유는, 이 두가지 상반된 성향이 함께 하여 인류의 진화적 적응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측정한 결과, 보수에서 진보까지의 연속선에서 정규분포의 모습을 그린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부자 중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 중에는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보수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득과 재산의 분포는 하위로 심하게 편향된 분포이며, 이는 정치적 성향의 분포와 매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경제적 이익과 정치 성향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성격 특성을 반영한다. 성격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차원 중, 개방성(openess)과 성실성(conscienciousness) 의 두가지가 정치성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참고로 성격을 구성하는 나머지 세 차원은 외향성(extraversion), 상냥함(Agreeableness), 신경질적임(Neuroticism)이다. 성격이 개방적일수록 진보적 정치성향을 보이며, 성실할수록 보수적 정치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정치 성향 역시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정치 성향의 분포가 전체적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기는 하지만, 외적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여전히 정규분포를 유지한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많은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흡사한 반면, 태어나서 떨어져 성장한 이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서, 성격 특성과 정치 성향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 부족주의(tribalism), 불평등을 허용하는 정도(tolerance of inequality),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human nature)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차원은 생물학적인 진화적 적응(evolutionary fitness)과 연관되어 있다.

먼저 부족주의를 보자면, 이는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 종교성(religiosity), 성에 대한 개방성(sexuality)으로 구성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고 타 집단을 배격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리는데 유리하다. 친족선택이론 (kin selection)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연관된 사람을 중시할수록 자신의 유전자가 후세에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의 집단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살아간다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어느 정도의 개방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타집단과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태도가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부족주의에 편향된 보수적 정치성향과 새로운 환경에 개방적인 진보적 정치성향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약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선호한다. 어는 사회에서나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도 지나치게 진보적이지도 않은 중도 성향의 사람이 대다수인 반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이 소수를 이루는 이유이다.

모든 사회는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한다. 남성의 분방한 성생활에는 비교적 관대한 반면, 여성의 성행위는 엄격히 제한을 한다. 여성은 후손을 낳는 주체임으로 이들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핵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사회는 남성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다. 부족주의적이며 보수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은 여성의 성을 엄격히 제한하고 가부장적 권위를 지지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가족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줌으로 여성의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진화적 적응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자유를 허용하고 남성과 여성의 권위 격차를 줄이는 진보적 정치 성향 또한 진화적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여성의 경제활동 기여도가 높아지고, 여성이 폐쇄적이며 권위적 가족관계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지면서 남녀간의 권력 격차는 줄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성향은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가난이나 성공의 책임은 구조적 환경의 탓인지, 가족 내에서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부모가 자식을 자신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보수와 진보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사회와 가족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이렇게 서로 상반된 태도의 사람들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사회와 가족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다.

사람의 본성이 상호 협조적 (cooperative)인지 아니면 경쟁적(competitive)인지에 관해, 철학자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두가지 상반된 생각은 인간의 생존, 유전자의 확산에 필수적이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본성을 경쟁적으로 보고, 진보주의자는 협조적으로 본다. 인간의 본성을 맹목적으로 협조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반칙을 저지르는 (cheating)사람에 의해 망하며,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협동을 통한 시너지를 거두지 못함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사회에는 협조적이면서 경쟁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중도적인 정치 지향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저자는 사람들의 정치지향의 결정 요인을 성격 특성 및 진화적 적응에서 찾는 과정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논의를 인용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모든 다양한 잡다한 지식이 뒤범벅되어 있다. 저자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논의를 좀더 체계화하고, 핵심적인 증거 위주로 설명을 집약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8. 25. 21:14

Brian Greene. 2020. 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uving Universe. Vintage. 326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이 책은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소멸까지 서술하면서, 그 속에서 생명체와 인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진화, 엔트로피, 중력이 전과정을 지배한다.

우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것은 무질서의 증가, 혹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은 단계인 빅뱅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 공간으로 물질이 확산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전반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속에서, 부분적으로 엔트로피가 낮은, 즉 질서있게 조직된 것들이 출현한다. 별이나 생명체가 바로 그것이다. 별은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려 뭉쳐서 만들어진다.

생명체란, 자기복제를 하는 분자들이, 변이를 하고, 그들 간의 경쟁 속에서 더 복제를 잘하는 놈이 생겨나고, 그런 것들이 서로 합쳐져서 자기복제를 더 잘하게 되면서 생성됐다. 생명체는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metabolism)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생명체가 활동하면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생명체는 이러한 높아진 엔트로피를 환경으로 배출함으로서, 내적으로 낮은 수준의 엔트로피, 즉 질서를 유지한다.

사고와 의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물리적 법칙을 따르며, 물리적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입자의 집합체의 활동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입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다른 수준의 설명이 효과적이다. 물리적 최소 입자, 분자, 세포, 생명체, 인간과 같이, 집합적으로(aggregate) 상위 수준에 적합한 설명을 하기 위하여,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의 이론이 동원된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수준에서는 적합한 설명이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모든 설명을 물리적 입자의 수준으로 환원한다면, 집합적인 상위 수준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질문에 적합한 수준의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와 이야기(story)를 발전시켰다. 인간의 언어는 집단적 사회활동을 돕기 위해 발달했으며, 이야기 역시 자연과 인간사에 대응하는 활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발달하였다. 진화의 목적은 생존과 후손의 번영 (survive and thrive) 에 있지, 진리 (truth)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생존과 진리 추구는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시킨 행동과 지식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객관적으로 진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지식은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믿음이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세상이 그렇게 전개되는지에 대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화나 종교와 같이 과거에 믿었던 것들이 그릇되다고 밝혀졌다.

먼 미래에 우주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태양은 미래에 팽창하여 수성과 금성을 삼켜버리고, 그 후에는 수소와 헬륨이 다 소진되어, 탄소와 산소의 재 덩어리가 될 것이다. 지구는 이러한 태양에 끌려서 함몰할 것이며, 태양은 다시 은하수 속에 함몰할 것이다. 이러한 함몰 과정이 우주에서 계속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중성자까지 부서져 버리고, 결국 어떤 것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절대 0도에 근접한 차가운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물질간 중력의 힘이 작용하여 전개된다. 

이렇게 인류의 종말, 생명체의 종말, 우주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는 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소멸된다고 하면, 사실 현재 바쁘게 돌아가는 모든 인간 활동은 의미가 없다. 기여할 대상이 없고, 봐줄 사람이 없고, 물려받을 후손이 없는, 인간의 노력이란 헛될뿐이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인간의 활동이란, 물리적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물리 입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므로, 의미를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물리학의 관점에서 달리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존재란 빅뱅에서부터 시작한 우주의 전개과정 속에서 매우 매우 가능성이 희박하게 출현한 물리 입자들의 조직이다.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컸지만,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을 거스르고 출현하였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 속에서 출현한 존재와 활동, 즉 인간의 삶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소중한 가치는 인간의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확률적 가능성이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소중하게 충실하게 살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물리 학자이면서 훌륭한 이야기 꾼이다. 많은 비유와 재미있는 사례를 곁들이면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것들을 곳곳에서 소개하면서, 자신의 연구와, 자신이 읽은 것과, 자신의 생각과, 지나온 자신의 삶의 정리가 결합된 글을 썼다.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진화, 언어, 종교, 창조성, 등에 관한 서술은, 그의 독서를 통해 얻은 각 분야의 논의를 빌려와 서술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됬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물리학 이론을 총동원하여 우주의 종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욕심이 좀 지나친 것 같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은 뺐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7. 25. 11:31

Daniel Lieberman. 2013. The Story of the Human Body: Evolution, Health, and Disease. Vintage Books. 367 pages.

저자는 진화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현대 사회가 인간의 신체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한다.

유인원의 진화과정에서 현대 인류의 가지가 갈라진 두가지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두발로 일어서서 다니는 직립보행이며, 두번째는 신체의 다른 내장기관에 비해 두뇌가 지나치게 커진 것이다. 기후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진화를 촉발시켰다.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프리카의 숲이 줄어들자, 일부 유인원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숲을 벗어나 초원 지대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직립보행이 발달하였다. 수렵 채취를 하여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확보하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소화하기 쉽게 익혀먹게 되면서, 인류의 내장 기관은 줄어든 대신, 집단적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두뇌 활동이 발달하게 되었다.

농업과 뒤이은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농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농업 사회에서는, 음식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해졌으며, 밀집 거주로 인해 질병이 빈발하고, 장시간의 고된 노동 등으로, 삶의 질은 이전 수렵채취 시대보다 열악해졌다. 19세기 산업화로 인구 증가는 지속되었지만, 도시의 삶은 매우 비위생적이고 열악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비로서 선진 산업국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이 수렵채취 시대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의 키의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인간의 몸은 오랜 기간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그러한 삶의 방식에 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인간의 몸은 현대 선진 산업사회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현대인은 과거에는 보기 어렵던 다양한 새로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병을 "부정합 질병" mismatch disease 라고 통칭한다. 당뇨병, 순환기 질환, 암, 허리 통증, 골다공증, 평발, 근시, 치통, 등등. 인간의 내장 기관은 나이가 들면 고장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수렵채취인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현대인의 새로운 질환은 단순히 노화 때문은 아니다.

수렵채취 시대의 사람과 비교할 때 현대인이 새로이 고생하는 질병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는, 너무 많이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한 경우 too much, 둘째는,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disuse, 셋째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삶의 방식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novelty 이다. 각각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로 너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는 과도한 영양 섭취이다. 수렵채취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의 몸은 당분과 지방에 대한 갈망이 크다. 현대 선진 사회의 사람들은 당분과 지방을 제한없이 쉽게 획득할 수 있으므로, 그결과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비만 상태이다. 이는 인간의 대사작용에 무리를 초래하여,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을 유발한다. 둘째로,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예는 사람들의 빈약한 운동양이다. 땀을 흘릴 기회가 적고, 하루종일 앉아서 생활하고, 거의 걷거나 뛰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은, 먹고 살기위해 항시 걷고 뛰어야 했던 수렵채취 시대 사람들의 몸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 몸이 섭취하는 에너지가 기초대사와 운동을 통해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항시 많기 때문에 다양한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며, 근육과 골밀도가 적어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에 적정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적게 사용하는 또다른 예는 현대인들이 애를 적게 낳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일생동안 월경횟수가 크게 증가하여 유방암의 위험이 높아졌다. 세번째 새로운 삶의 방식의 예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지나치게 편안한 생활이다. 실내의 조명에서 문자를 읽는 생활은 근시를 초래했으며, 부드럽게 가공된 음식을 탐닉하는 식생활은 턱과 치아구조를 변화시켜 사랑니 통증을 초래했고, 당분이 많은 음식은 충치를 유발했으며, 의자 생활은 허리 통증을 가져왔으며, 푹신한 신발은 평발의 위험을 높였다.

섬유질이 많고 당분과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으며, 운동을 많이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현대 산업사회의 생활환경은 이러한 방식의 생활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가져온 대사증후군 등에 대해, 현대 의학은 대체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질병은 수렵채취시절에 만들어진 인간의 유전자와 현대의 생활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생활환경을 바꾸는 길밖에는 없다. 과학 연구를 통해 치료 기술을 높이거나 교육을 통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의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해결책은 어떻게 생활환경과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저자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너지' nudge 방식을 광범위하게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건전한 삶의 방식을 유도하듯이, 성인에 대해서도 그러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서 생활환경을 바꾸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고 부정합 질병의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선진 사회의 인구 고령화가 되면서 부정합 질병의 빈도가 높아지고 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여 질병의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의 주 연구분야인 인류의 진화와 관련된 이야기와 농업사회 이후 인간의 부정합 질병에 대한 이야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두가지 이야기의 내용이나 서술 방식이 매우 달라서 두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후반을 별도의 책으로 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022. 11. 16. 22:27

Jonathan Silvertown. 2013. The Long and th Short of It: The Science of Life Span & Agin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56 pages.

저자는 생물학자이며, 생명체는 왜 늙으며(scenescence)  죽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수행된 다양한 과학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면서 설명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늙고 죽는 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최적(fittest)의 선택을 한 결과이다.

생물 종에 따라 자연 수명에 차이가 크다. 인류는 19세기 중반 이래 수명이 지속적으로 연장되어 왔는데, 이러한 수명 연장은 나이 든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보다, 주로는 영아사망율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식이 가능해지는 사춘기를 넘어서면 노화가 일관되게 진행된다. 영양, 위생, 건강관리를 잘하면 오래 살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화와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수명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 오래 산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오래 산다. 근래에 백세 넘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은 생물체로서의 인류가 과거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보다는, 선천적으로 오래 사는 유전자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환경의 위험이 줄어들면서 과거보다 덜 일찍 죽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면 일찍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짧고 굵게 산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실제로 동물 세계에서 신진대사의 속도가 빠를 수록 수명이 짧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신진 대사의 속도가 느리면 오래 산다는 말이다. 적게 먹으면 신진대사 속도가 느려져서 생명이 연장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동물은 신진대사 속도가 빠르고 어떤 동물은 신진대사 속도가 느릴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동물의 경우, 크기가 작은 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크기가 큰 동물보다 신진대사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 반면 크기가 큰 동물이 신진대사 속도가 빠르면 지나치게 높은 열을 생산하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다. 동물 세계에서 크기가 클 수록 오래사는 경향이 있지만, 예외도 적지 않다. 하늘을 나는 새나, 땅 속에서 사는 두더쥐나, 바다에서 사는 조개류는 크기에 비해 훨씬 오래 산다.

동물의 수명은 크기보다는 태어나서부터 생식 년령에 도달하는 기간에 좌우된다. 일찍 자손을 낳은 동물은 일찍 죽는 반면, 늦게 자손을 낳는 동물은 오래 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리는 것이 동물의 삶의 목적인데, 자손을 낳은 다음에는 오래까지 살아야 할 필요성이 적다. 자손을 낳는 것을 끝낸 뒤에도 계속 사는 동물의 경우, 이는 자손이 생식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도와줌으로서 후손 확산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동물이 자손을 낳는 시기는 동물이 처한 환경의 위험도에 좌우된다. 동물이 처한 환경의 위험도가 큰 경우, 그 동물은 죽기 전에 빨리 자손을 낳아야 할 필요가 크므로 일찍 자손을 많이 낳고 죽는 것이 진화의 최적(fittest) 선택이다. 반면 동물이 처한 환경의 위험도가 작은 경우, 서둘러서 많이 낳고 죽는 선택보다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소수의 후손을 낳아 잘 키우는 것이 진화의 최적 선택이다. 만일 환경의 위험도가 작은데도 많이 낳는다면 개체수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환경의 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후손 번식에 해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동물은 환경의 위험에 따라서 후손을 낳는 것과 후손을 키우는 것 사이에 에너지 배분에 차이를 둔다. 환경이 위험하면 많은 후손을 빨리 낳아서 그중에 소수라도 성장하여 다음 세대를 낳도록 하는 것이 최적의 전략인 반면, 환경이 위험하지 않으면 후손을 낳은 것 못지 않게 후손을 잘 키워 그 후손이 다음 세대를 차질없이 생산하도록 하는데 부모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 최적의 전략이다. 오래살면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후손도 많이 만드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략일 것 같지만, 후손을 생산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생명체의 가용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많이 계속하여 후손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생명체를 많이 만들려 한다면 오래 살 만한 에너지가 남지 않으며, 오래 살려한다면 생명체를 일찍 많이 만들 수 없다.

왜 나이가 들면 노쇠할까?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낡은 세포를 새로운 세포로 교체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그러한 과정을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한다면 뇌쇠해야 할 이유가 없을텐데, 생물체가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진화는 생식이 가능한 시기까지 생식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형질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일단 생식의 시기가 끝나면 세포가 망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더많은 자손을 퍼트리는 것을 생명 활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체가 오래 사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생식의 시기가 지난 후에도 생명 활동을 활발히 지속하도록 하기보다는 생식의 시기 동안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자손을 잘 많이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진화의 최적 선택이다. 오래 살면 환경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후손을 추가적으로 생산할 가능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든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체를 오래 살려서 계속 후손을 생산하도록 하는 선택보다는 환경의 위험에 덜 노출된 젊은 시절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후손을 많이 만들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요소들이 축적되는 것을 진화의 선택 과정을 통해 차단하지 않기 때문에 노쇠하는 것이다. 생식의 시기에 생식에 유리한 형질 중에는 생식의 시기가 끝난 후 몸에 해를 끼치는 유전자도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생식의 시기가 지난 후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형질이라도, 그것이 적어도 생식의 시기 동안 생식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선택하는 것이 후손을 퍼트리는데 더 유리하다. 당뇨, 혈관계 질환, 치매 등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성인병은 대체로 젊은 시절에 생존과 생식에 유리한 형질들이 생식이 끝난 시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생물체의 몸의 세포는 낡은 것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능을 유지하지만, 교체 가능한 회수에 제한이 있다. 염색체의 끝자락에 위치한 telomer라는 부분이 복제를 반복할수록 길이가 짧아짐으로서 복제가 가능한 회수를 제한한다. 세포가 복제할 수 있는 회수를 제한해 놓은 이러한 장치는 세포가 통제를 벗어나 무한 복제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만일 세포가 복제를 무한 반복할 수 있다면 통제를 벗어나 암세포로 발전해 해를 끼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세포를 무한 복제할 수있게 함으로서 얻는 이익보다 세포의 복제 회수를 제한하여 사멸하게 함으로서 얻는 위험 회피 이익이 더 크다. 수명이 어느 정도 되는 동물은 모두 텔로머라는 복제 회수를 제한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식물 중에는 수천년을 사는 종도 있다. 일년생 식물도 있지만 식물 중에는 수백년을 사는 종이 많다. 왜 동물 중에는 이렇게 오래 사는 종이 없는데 식물 중에는 있는 것일까? 식물은 동물과 달리 생물체가 별개의 방으로 구분(compartmentalized)되어 있어, 한 부분이 망가지더라도 이웃한 다른 방은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 동물은 위험 요인으로부터 스스로 움직여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나, 식물은 위험 요인으로부터 스스로 움직여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것 같다. 오래 사는 식물들은 줄기의 일부가 죽지만 계속 새로운 가지와 싹을 티우는 방식으로 오래 산다. 오래사는 식물의 몸은 별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달리 세포가 무한 복제하더라도 통제를 벗어나  무한 복제를 하면서 몸체에 해를 가할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식물들 중에는 세포가 무한히 복제를 반복할 수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감자나 고구마이다. 감자는 죽지 않고 복제를 계속하면서 무한히 생존한다. 물론 일년생 식물들은 동물과 유사하게 후손을 남기고 죽는 선택을 진화시켰다. 위험한 환경에서 사는 식물들은 일찍 후손을 많이 만들고 죽는다.

과학 기술로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부정적으로 본다. 왜냐하면 노화라는 것은 생물체의 모든 기관이 고른 속도로 망가지는 과정을 밟는데, 한 기관이 망가져서 이를 보수하거나 새것으로 바꾼다고 하여도 다른 기관이 바로 고장날 것이다. 생물체의 생명 활동에는 많은 기관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기관들을 다 보수하고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를 조작하여 노화를 늦추고 오래 사는 형질의 유전자로 바꾼다고 하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노화와 생명 유지 시스템은 오랜 기간동안 진화를 통해 발전시킨 선택인데 이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임으로 바꾼다면 분명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노화와 수명을 늦추고 오래사는 것이 부작용 없이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진화의 과정이 일찌감치 이러한 해법에 도달했을 것이다.

지구상에 모든 생물은 진화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진화의 최적 전략은 개체의 후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이지 개체 자체의 복리나 행복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개체가 아무리 육체적으로 괴롭고 불행하게 느끼더라도, 그것이 후손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혹은 심지어 그것이 후손을 늘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개체는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도록 진화된다. 후손에게 자신의 몸을 먹도록 하는 곤충이나,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아 알을 낳으면 완전히 탈진해 바로 죽어버리는 연어가 가장 극단적인 예이다. 사실 그러한 삶을 사는 개체 본인은 그러한 상황을 불행하다거나 고통스럽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다면 그것을 회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느낌이란 몸이 행동하도록 지시하는 기능을 함으로, 부정적 느낌은 그러한 느낌을 유발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때문에, 연어 자신은 그런 상황에 대해 긍정적 느낌, 즉 황홀함이나 기쁨을 느낄 것이다. 후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개체 본인의 복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생물체는 후손을 늘리는 것을 우선시 하는 개체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대치될 것이기 때문에, 후손을 퍼뜨리는 것보다 자신의 복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개체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노화와 사멸은 후손의 번창을 최우선으로 하는 진화의 귀결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근래에 선진국에서 자손을 덜 낳고 자신의 복리를 우선시 하는 세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류는 산업화에 들어선 이후 진화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중단시켰다. 사람들 사이에 출생율의 격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도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만 그것이 인구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후손을 퍼뜨리는 것보다 개체 본인의 복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개체는 후손을 늘리는 것을 우선시 하는 개체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대체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인류도 이러한 과정을 밟을까? 애를 덜 낳는 대신 본인이 더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복리를 희생하면서까지 애를 더 많이 나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미래에 대체될까?  현재도 개발도상국에서는 애를 많이 낳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애를 덜 낳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상의 인류는 현재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후손이 압도적 다수인 상황으로 진행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예측은 반드시 맞지는 않는 것이, 개발도상국의 소득이 높아지면 그들도 자녀 출산을 줄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출산 행태와 빠르게 유사해진다.

이 책은 생물체의 노화와 수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기존의 연구를 잘 요약 제시하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다만 저자가 문학적 묘사를 과학적 설명과 섞어서 구사하기 때문에 과학적 부분의 설명력을 흐리는 점은 아쉽다. 저자의 문학적 소양을 과시하면서 과학적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 본인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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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6. 22:02

Daniell Schacter. 2001.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 Houghton Mifflin Co. 20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로 기억 연구의 전문가이며, 이 책은 그의 전문 분야를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 쓴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다음 일곱가지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잊어버리는 것(transience),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absent-mindedness), 기억이 막혀 회상하지 못하는 것(blocking), 잘못 기억해내는 것(misattribution), 암시에 의해 영향받는 것(suggestibility), 외곡되게 기억하는 것(bias),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persistence). 각각의 문제의 증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대상과 연관된 사항을 함께 기억속에 저장하면 이 문제를 조금은 약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시간이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한정된 기억 자원 (momory resourse)을 효율적으로 쓰는 장치의 일부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일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인간은 자동항법 모드로 일을 수행하면서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일과 관련된 구체적 사안을 나중에 기억해 내기 어렵다. 동시에 여러 일에 관여할 경우, 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므로 나중에 그 일을 기억해 내기 힘들다.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고유명사를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다른 지식들과 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이다. 어릴때의 학대나 강간과 같이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을 나중에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정적 자기방어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인이 되어 기억해냈다고 주장하는 어릴 때의 성적 폭력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을 기억에 저장하기보다, 그것의 요점만을 일반화하여 저장한다.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대상의 일반화된 패턴을 파악하고, 패턴으로 기억에 저장한다. 따라서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질문받았을 때, 잘못 기억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증인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암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범인을 심문하는 사람의 암시에 의해 증인이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이 변형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과거 기억은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기억이,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확실한 기억으로 변형된다.

과거의 일이나 대상을 잘못 회상해내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결과이다. 현재의 사정에 따라 과거의 사정에 대한 기억을 외곡시켜 과거와 현재의 일관성을 추구한다. 일의 결과를 보고 처음부터 그러리라고 생각했다고 믿거나, 그렇게 일이 전개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사후에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항시 해석한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심리적 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했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크게 흥분하게 되고, 그 일이나 상황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다.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음 속에 억누를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글이나 말로 대면하면 할 수록 그것에 대한 감정이 무디어지고, 그것의 괴로움이 점차 옅어지게 된다.

이상 일곱가지 기억의 약점은 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기억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심각한 문제를 보인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인간의 진화적 적응의 직접적 결과이거나 혹은 부산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쉽게 풀어쓴 것으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때때로 머리털을 세는 세밀한 작업을 쫒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22. 2. 23. 17:49

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 Vintage. 284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인간이 온순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획적 폭력성은 상존한다고 주장한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하도록 길들여진 반면, 인간은 외적인 개입 없이 스스로 온순해지는 과정을 밟아 왔다(self-domestication hypothesis).

동물의 폭력성은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상대의 도발에 대해 즉흥적으로 반응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이다(reactive violence). 대부분의 폭력적 행동은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는 상대의 명시적 도발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계획을 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이다(proactive violence). 전자가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후자는 냉정한 손익, 승패의 계산 하에 하는 행동이다. 계획적 공격을 하는 경우는 침팬지나 늑대 등 소수 고등 동물에게만 관찰된다.

개나 가축을 길들인 과정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한 후손을 계속 선별하여 온순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만을 증식시킨 결과이다. 신석기 시대에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인간은 꾸준히 온순해졌다, 즉 폭력적 성향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소규모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즉 집단의 규범을 크게 위반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인 사람을 제거함으로서 집단 구성원들간에 협동이 보다원활해진다.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협동이 원활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력이 높기 때문에 진화의 수레바퀴가 그러한 방향으로 굴러간 것이다.

소규모 집단 내에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일탈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덜 힘센 구성원들 사이에 일탈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모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가 발달한 인간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정밀한 소통과 집단 행동이 가능하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세계에서 폭력적인 일탈자를 계획적으로 제거하는 관행이 발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역사상 존재하는 수렵 채취사회를 관찰해 보면 지위의 불평등도가 낮으며 평등주의 이념을 강력히 옹호하는데, 이는 바로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집단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심리적 성향이다. 공정함을 추구하는 심리, 자신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집단의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벌 주고 싶어하는 심리, 등이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게서는 이러한 심리적 성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성향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며, 동시에 그러한 심리를 가진 개인에게도 이익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으려는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포용되고 인정받는 것은 자신의 생존 및 후손의 번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집단 규범에 위배하는 구성원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공격하는 경우이다. 동물은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감행한다. 상대에 비해 압도적 전력을 동원하거나, 혹은 불시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상대와 전력이 대등하거나 상대가 나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격을 감행한다면 나에게 피해가 클 것이기에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인류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동물들의 폭력적 공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인류 사회의 가파른 위계구조와 군사 조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요컨대, 인류의 진화 과정은, 즉흥적 폭력 행사를 지속적으로 줄여왔으나, 그와 함께 계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동반하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폭력 독점과 법치의 결과, 감정적 격발이 초래하는 즉흥적 폭력 행사는 현저히 줄었다. 반면 국가간 충돌에 대규모의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여전하다. 인간이 과거에 비해 덜 폭력적이라고 단순히 말하기 힘든 이유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최고로 생각하고 타집단을 낮추어 보는 부족주의(tribalism),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가 근래에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인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이 책은 저자의 self-domestication 가설을 옹호하는데 전적으로 몰두한다. 무수히 많은 인류학적 서지 사례와 동물행동학의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설명하여 읽기가 힘들었다.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했다면 좋은 책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2021. 1. 5. 16:07

David P. Barash. 2018. Through a Glass Brightly: Using Science to see our species as we really are. Oxford University Pres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여 비판하며, 두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동물과 유사하며 또 다른지 진화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2부에서 논의하는 인간과 동물의 비교는 진화생물학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적 능력, 부모와 자식간 갈등, 상대를 속이는 행위, 일부다처 논쟁, 호전적 행위, 이타적 행위, 자유의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간 불일치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면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동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 않음을 밝힌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기술이다. 다른 생물체는 자신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기술을 발달시켰듯이, 인간의 지적 능력 역시 인간의 생존 환경에 맞추어진 생존 기술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생존 환경을 벗어난 논리적, 통계적 추리에서 인간은 매우 서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정도의 문제일뿐, 동물세계에서도 유사한 능력을 흔히 관찰한다.

진화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의 몸은 유전자를 전파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의 절반만을 공유함으로, 유전자 생존의 측면에서 볼 때 부모의 이익과 자식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 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려는, 즉 많은 자식을 얻으려는 부모의 이익과, 각 개인으로서 자식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형제간 갈등이 발생한다. 형제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은 도덕의 문제로 정의하지만, 사실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 서있다.

생물체들간 의사 소통이란, 참가자 각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를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신호를 발하는 사람은 거짓된 신호로 상대를 조작하려 하며, 신호를 받는 사람은 거짓 신호 뒤에 숨은 진실을 해독함으로서 상대에게 조작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사회생활을 많이 하는 동물일수록 기만하고 이를 탐지해내는 무기 경쟁은 고도로 발달했다. 인간은 신호의 진실성을 의심하기보다는 일단 믿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사 소통에서 거짓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런 일부이다.

인간의 조상에게 일부다처제가 자연적 현상이었다. 동물의 암컷과 수컷간 몸 크기의 차이, 행위 방식의 차이를 바탕으로 유추할 때, 인간 역시 일부다처제가 자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짝이 없이 홀로사는 수컷을 많이 만들고, 이들이 잠재적 사회불안과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도덕률로 하여 남녀관계를 규제한다. 그러나 여전히 능력이 많은 남성은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의 생활을 비공식적으로 영위한다. 저자는 자연적 현상이 반드시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닌 대표적인 예로 일부다처제를 든다. 인간은 문화로 자연적 현상을 제어하고 있다. 그렇기에 규범에서 일탈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원시 부족을 연구한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호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집단간 싸움을 벌이는 호전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반드시 적자생존에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가 싸움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보다 많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싸움을 하는 호전성을 띠게 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상대로부터 뺏앗을만한 가치 있는 것을 비축하고 지도자의 지휘하에 조직적으로 싸움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면서부터이다. 원시 수렵채취인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대체로 협동했으며 집단간 평화가 지배했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가 진화론의 이기적 인간 모델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사는데, 자신의 유전자를 일부라도 지닌 친족의 생존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유리한 때에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한다. 이타적 행위를 통하여 집단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높임으로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유전자의 확산에 도움이 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이타적 행위란, 개별 인간의 몸의 측면에서 볼 때는 희생일지 모르지만, 유전자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이기적 행위인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통제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몸 안에는 수백만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 미생물이 우리의 행위와 사고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누가 누구에게 얹혀사는지 불확실 하다. 또한 유전자가 우리의 몸, 우리의 사고작용, 우리의 행위를 조정한다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면서 행위하지 않는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란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인간이 의도하기보다 유전자의 이익을 위하여 저지르는 행위라는 사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박하는 사례가 될 수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매우 서서히 진화를 통해 형성된 반면,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빠른 시일에 급격히 변화해 왔다. 특히 지난 이백년간의 산업화의 결과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매우 멀리 떨어졌다. 이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또 자연환경에 대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인간은 그러한 파괴력을 생물학적으로 실감하지 못한다. 수백만명을 죽이는 핵무기 공격 행위가 한명의 상대를 물리적으로 죽이는 경험보다 실감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 경험이 녹아 있는 글이다.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문학 작품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는 결코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설명의 명확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인이 좋아서 다양한 시의 일부를 수시로 인용할지 몰라도, 과학적 주제를 접하는 독자는 주제의 정확한 이해에 더 관심이 있지, 저자의 시적 감흥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 제 1부에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문학 작품을 길게길게 인용하면서 과학적 사실을 군데군데 언급하는데,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러한 설명은 불필요하게 장황해 보인다.

글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 책을 읽는 내내 고문 받는 느낌이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편집이다.

2020. 12. 29. 20:53

Matt Ridley. 2015. The Evolution of Everything: how new ideas emerge. 320pages.

저자는 과학 분야의 대중 저술가이다. 저자는 진화의 원리가 생명체뿐만 아니라 모든 물리적 사회적 현상에 적용될 수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진화의 원리란 내생적 원인에 의해 유발된, 점진적이며, 축적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진화에 반대되는 개념은, 외부의 주체에 의해 계획되고 명령된 변화이다.

우주가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혹은 자연의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화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는가는 진화론대 창조론이라는 고전적 논쟁이다.

인간의 도덕률은 신이나 통치자의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반복된 상호작용의 결과물, 즉 밑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언어, 도시, 경제, 기술발전, 자아, 성격, 인구변화, 정부, 종교, 화폐, 인터넷, 등 다양한 사회현상이 모두 점진적으로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전개된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낫다. 많은 시장 참여자의 지혜가 반영된 자유 시장경제는 소수의 계획자의 생각이 반영된 계획경제보다 훨씬 효율적일수밖에 없다. 정부의 개입이 비효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인식은 생리학적 작용의 결과이다. 인간은 행위한 후에,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무의식적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행위의 원인은 생리적, 물리적 작용이지,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성격과 지능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현상에 대해 이것을 만들어낸 행위자를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잘못된 인식 습관이다. 특정 지도자가 없어도, 특정 발명가가 없어도, 조건이 맞을 때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많은 일이 우연히 전개되지만, 인간은 무언가 분명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 내지 행위자를 찾는다.

위로부터의 명령이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열등하다. 교육에서도 위로부터의 교조적 가르침은 학생들이 서로 도우면서 스스로 생각하여 깨치는 방식에 비해 학습의 효과가 적다. 정부가 관료적으로 규제하는 공립학교보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사립학교가 훨씬 교육 성과가 높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정부의 부실 규제때문에 투기가 심한 결과 발생한 파국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과도한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발생하였다. 클린턴 정부 이전 부터 재정적 능력이 안되는 가난한 흑인들에게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 대출의 의무적 할당을 강제한 결과, 신용이 부실한 사람이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게 된 것이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정부가 금융을 간섭하지 않고 시장원리에 맡겨두었더라면, 금융기관이 그렇게 신용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며, 부실 채권이 그렇게 많이 쌓여서 거품이 일시에 꺼지는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맬더스에서부터 시작된 인구폭증에 대한 우려는, 20세기 초반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사람을 정부가 강제로 불임수술하는 조치를 낳았고,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행위를 낳았으며, 20세기 후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산아제한을 강제하는 조건으로 원조를 해주는 정책으로 발전했다. 이는 근래에 환경주의 운동으로 이어진다. 1960년대에 로마클럽은 인구폭증을 예언하면서 환경적 한계의 우려를 불지폈으며, 환경을 보전하면서 지속가능개발을 해야 한다는 논의로 연결된다. 근래에는 글로벌 워밍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며,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제한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악으로 대체 에너지를 선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낳았다.     

근래에 환경주의는 종교의 수준에 들어섰다. 모든 문제를 글로벌 워밍 탓으로 돌리고, 환경주의에 제한을 두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과 다르지 않다. 자연 재해는 글로벌 워밍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며, 글로벌 워밍은 이산화탄소의 확대 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듯이, 글로벌 워밍에 대한 절대적 신념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것들이 진화하면서 인간에게 좀더 좋은 상태로 되간다는 사실은 희소식이다. 소득이 높아지고, 폭력이 줄어들고, 인구 증가가 멈추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시장원리가 더 많이 적용되면서,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아이디어가 잡다한 주제들에 마구 퍼부어진 작품이다. 매우 많은 주제를 매우 많은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다루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 어느 특정 주제에 대해 강한 기억이 남지 않는다. 세상은 진화적, 점진적, 내생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메시지 하나만 남는다. 세상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이라면, 그가 비판하는, 위로부터의 계획과 명령에 의해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결국 크게 보면, 세상사는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주체적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주체적 노력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 내생적 원인과 버무려지면서 변화하고 발전되는 것이 아닌가? 계획이란 것은 이러한 주체적 노력의 일부이고. 저자는 엄청난 독서가이며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이다. 이 책은 아이디어의 백과사전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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