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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22. 15:58

Robin Dunbar. 2021. Friends: Understanding the Power of Our Most Important Relationships. Little, Brown. 359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 유지시키는 요인은 무엇인지, 최대 몇명까지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친구관계 맺기에서 남녀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의 의문에 대해 저자의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는 도구적 목적에 한정되지 않는다.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적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며 병에 쉽게 걸리고 일찍 죽는다. 

침팬지는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5분의 1을 다른 침팬지의 털을 골라주는 일 grooming 에 사용한다. 다른 침팬지의 털을 골라주는 일은, 단순히 위생적인 목적을 넘어,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인간 역시 타인과 관계 맺는 일과 연관된 활동에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협동을 통해 생존의 경쟁력 fitness 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평소 친밀한 관계를 맺은 타인은 기꺼이 자신을 도와주는 반면, 친밀하지 않은 타인은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과 친밀한 관계의 사람, 즉 친구와 함께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화적 필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친밀한 사람과 관계 맺기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인지적으로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다른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사물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며 높은 자원 소모를 수반한다. 타인과 적절히 상호작용을 하려면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theory of mind). 상대가 나에게 왜 저렇게 하는지, 상대의 행위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나의 행위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이 상황에서 상대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등을 모두 추론하는 일은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인간은 최대 다섯명까지 타인의 마음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유명한 소설에서 동시에 다섯명의 생각이 함께 다루어지는 것을 종종 본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은 5살 때부터 시작해 20대 초반까지 서서히 발달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동시에 읽을 수 있으며, 타인의 생각를 복잡하게 추론하는 능력과, 자신의 충동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20대 중반을 넘으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더 이상 크게 진전되지 않으며, 타인과 상호작용을 할 때 크게 머리를 쓰지 않고도 어느 정도 타인의 마음을 읽으면서 사회활동을 영위한다. 성장기에 또래들과 학교 혹은 놀이를 통해 집단 활동을 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과 자신의 충동적 반응을 제어하는 기술을 익힌다. 이러한 기술을 웬만큼 익히지 못하면 사회생활이 어렵다. 사이코 패스나 자폐증 환자는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추측하지 못하거나 타인의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원만한 사회관계를 영위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수는 제한되어 있다. 상대와 공감 simpathy을 주고 받는 최대 숫자는 15 명이며, 최대 150명까지의 사람들과 비익명적인 관계, 즉 상대가 누구인지를 인지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사람들의 전화통화 기록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회관계에 쏟는 시간의 40%를 5명과 하며, 15명의 사람들과 전체 시간의 60%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범위가 좁은 이유는 인간의 인지적 자원 및 시간의 한계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는 크게 두 종류, 즉 가족과 친구 관계로 나뉘는데, 두 관계는 성격이 다르다. 대체로 가족 관계가 친구 관계보다 더 친밀하다. 가족 관계의 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투입하여 관리하지 않아도 되며, 갈등이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소원해져도 다시 복원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친구 관계는 지속적으로 시간과 관심을 투입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소원해지며, 일단 멀어지면 다시 가까워지기 어렵다.

유사한 특성의 사람들은 우연히 만났을 때 서로 친구 관계를 맺기 쉽다. 다음 일곱가지의 차원 각각이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유사한 언어/방언을 구사하는가, 같은 지역에서 성장했는가, 같은 교육과 직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특히 의사와 변호사는 각각 그들끼리 노는 성향이 강하다), 유사한 취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세계관(도덕적 가치관, 종교,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 일곱가지 차원 중 유사한 부분이 많을 수록 친구를 맺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은 남성보다 친밀한 친구를 가진 경우가 더 많으며 관계가 더 깊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친밀한 관계의 70~80%는 동성 친구이다. 친밀한 관계의 성격에 남녀간 차이가 있다. 여성은 주로 대화와 잦은 접촉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제인 반면, 남성은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즉 남성은 같이 운동을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일을 하고, 등 활동을 함께하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여성은 함께 참여하는 활동에 더하여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다. 반면 친한 남성들간에는 함께 활동을 하는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여성은 친한 친구와 헤어지면 다른 사람이 그를 대체하지 못하는 반면, 남성은 친한 친구와 헤어져도 집단활동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이 그를 대치할 수 있다.

친밀한 관계는 직접 만나서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관계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에, 온라인 접촉이 대면 접촉을 대치하지 못한다. 전화나 SNS 등의 온라인 접촉은 오프라인 관계를 관리하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상대의 눈을 보며, 상대와 함께 웅직이는 것에서 사람들은 감정적 만족을 느낀다. 서로 큰 소리로 웃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고, 단체로 행진을 하고, 등등 리듬을 맞추어 함께 행위를 하는 가운데 공감, 상호 신뢰, 집단 결속감을 느낀다. 전통적으로 모든 사회가 이러한 함께 하는 활동을 주기적으로 갖는 것은 집단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저자는 전문 연구자이며, 책 내용의 대부분을 구체적인 연구 결과의 인용으로 채우고 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에 대한 설명을 세세히 따라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적 두뇌 가설 (social brain hypothesis), 즉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집단생활에 소요되는 고도의 인지 활동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