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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7. 17:44

Leonard Mlodinow. 2018. Elastic, Unlocking your brain's ability to embrace change. Vintage books. 220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과학저술, 과학저널리즘, SF 드라마 극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 책은 인간의 비체계적인, 유연한 사고 작용에 촛점을 맞추어 인간의 사고, 즉 생각하는 활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체계적, 논리적, 분석적 사고 작용으로 하향 top-down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른 하나는 비체계적, 종합적, 즉흥적, 창조적인 사고 작용으로 상향 bottom-up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자는 당면한 주제에 촛점을 맞추고 엄격히 통제된 방식의 사고인 반면, 후자는 비통제적이고 산반한 방식의 사고이다. 정확히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자의 방식이 유용한 반면, 전에 없던 새로운 상황과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는 후자의 방식이 유용하다.

인간 두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 좌반구는 논리적 분석적 사고에 능한 반면, 우반구는 비체계적 즉흥적 사고에 능하다. 우반구는 감정과 동기화를 담당하는데, 어떤 행위를 왜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제공한다. 좌반구는 어떤 문제에 대해 합리적이고 전형적인 답을 제시하는 반면, 우반구는 비논리적이고 비실용적이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두뇌는 좌반구와 우반구가 제시하는 다른 성격의 답들 중에서 취사선택, 종합하여 최종적인 답을 의식에 떠오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반구가 만들어 내는 비논리적이고 상식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답들은 거른다. 유연한 사고, 창조적인 사고는, 바로 이러한 두뇌의 거르는 과정 filtering 을 억제하는 데 있다.

유연한 사고는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이완된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이완된 상태에서 작동하는 사고 작용은 인간의 두뇌의 기본 작동 양식 default mode of thinking 이다. 릴랙스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 뇌는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구체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할 때와 작동 방식이 다른 것이다. 산보를 할 때, 샤워를 할 때, 꿀잠을 잘 때, 음악을 듣거나 바깥 경치를 보면서 편안히 휴식을 하고 있을 때가 바로 이 디폴트 모드가 작동할 때이다. 이렇게 이완된 상태에서 문득 그동안 집중적으로 생각했으나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떠오른다. 우뇌에 대한 좌뇌의 filtering 기제가 약화되고, 우뇌의 유연한 사고가 자유롭게 작동하고, 관점의 전환이나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다양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유연한 사고를 촉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상하기,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처하도록 해보기, 다른 의견의 사람과 토론하기, 마음을 이완시키는 약물, 술 등을 섭취하기, 등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기를 수 있다. 유연한 사고를 촉진하려면, 엉뚱한 발상을 억압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엉뚱한 발상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만, 성공적인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 저널리즘에 가까운 책이다. 다양한 기존 연구를 꿰어 맞추고 유머를 곁들이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술술 읽어 내려간다. 평이한 내용이다.

2024. 4. 15. 13:33

리타 카터 (장성준, 강병철 옮김). 2020(2019). 인간의 뇌. 김영사. 249쪽.

저자는 의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뇌의 구조와 기능, 뇌질환에 관해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도감이다. 뇌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뇌 해부학, 감각, 운동과 조절, 감정, 사회적 뇌, 언어와 의사소통, 기억, 사고, 의식, 뇌의 발달과 노화, 뇌질환 등으로 찹터를 나누어 설명한다.

도감답게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fmri 사진이 해설과 함께 많이 붙어 있지만, 이러한 사진들이 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본문의 서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알지 못한다", "분명치 않다" 등 이다. 과학계가 뇌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의 다른 기관과 달리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하간, 그림이 없이 글로만 된 책을 읽을 때 보다 이해가 조금은 향상되는 듯하다.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기는 하지만, 해설의 수준은 상당히 전문적이다. 

 

2024. 3. 20. 18:02

구마겐고 (이정환 옮김). 2020.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나무생각. 291쪽.

저자는 일본의 건축가이며, 이 책은 자신이 어떻게 건축가로 성장했으며, 무슨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한다. 

저자는 도꾜 외곽에 농촌과 도시의 변경 지역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웃에 숲으로 둘러쌓인 전통적인 농가 주택에서 자주 놀았으며, 나무 블록을 쌓아서 만드는 놀이를 즐겼으며, 아버지와 함께 밭에 딸린 조그만 집을 조금씩 고쳐짓는 경험 속에서 자연과 인간에 친근한 거주 공간를 선호하는 성향이 만들어졌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오사카 만국 박람회에 가서 건축물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중후반 고도의 산업 성장과 과학기술의 진보 속에서 모더니즘 Modernism이 지배하였다. 모더니즘은 근면과 계획, 효율, 기계화, 대규모, 진보를 숭앙하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19세기말 20세기초에 물질문명에 반발하는 반모더니즘의 세계관이 등장하였다. 일본은 1970년대에 전후 고도 성장이 끝나고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퇴조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시점에 성인기에 진입하면서 반모더니즘의 세계관을 내재화하였다. 저자는 대학교 학생 시절부터 기존 건축계의 주류였던 모더니즘 사조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는 일본의 전통과 서구의 현대를 접목하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을 지향해왔다.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현실에 두발을 딛고, 일상에서 수시로 닥치는 일들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살아간다. 그는 거창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 작고 실질적인 것을 추구한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집은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 나무를 많이 사용하며, 자연에 인접해 지어진 집을 선호한다.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하며, 부드러운 질감의 소재를 선호한다.

본인은 그의 건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능숙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의 성장과정, 자신이 만든 작품, 건축학의 역사, 서구 문화사, 자신의 평소 생각, 등을 잘 버무려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두세쪽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아놓아서 가볍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2024. 3. 19. 18:31

Ezra Klein. 2020. Why We're Polarized. Avid Reader Press. 28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근래 미국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 원인을 다양한 기존 연구를 인용하여 검토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은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으며, 중간층 혹은 부동층이 매우 엷다. 미국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 정체성에 따라 이 두 진영 중 하나에 속한다. 미국인에게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다양한 범주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백인 대 유색인, 남성 대 여성, 복음주의 개신교도 대 이들 이외의 사람, 보수주의자 대 자유주의자, 교외/ 농촌지역 주민 대 대도시 주민, 고등학교 졸업자 대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자, 등이다. 각각의 집단 구분에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은 공화당을 지지하고,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한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 범주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집단으로 일관되게 정렬해 있다. 이 다양한 정체성 기준간에는 역사적 혹은 사회문화 및 경제적으로 서로간 약간의 연관성은 있지만 필연성은 없다. 예컨대 백인과 남성이 아니라 백인과 여성이 한 집단으로 묶인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다.

미국인의 정치적 지지는, 논리적 혹은 실용적으로 일관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상대의 집단과의 다툼에서 이기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한다. 예컨대 오바마가 제안한 의료 개혁은, 예전에 미트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이 제안한 정책과 유사한 것인데, 오바마의 집권에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정체성 정치의 또 다른 예로, 최근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도날드 트럼프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는 것을 더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다. 요컨대 근래의 미국 정치는 실용적인 정책 대결이 아니라, "우리 대 그들" (us versus them) 이라는 정체성에 토대를 둔 진영 싸움이다. 미국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편이 이기고 상대편이 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혹은 설사 나에게 실제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해도, 상대편이 이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진영 싸움이 정치판을 지배하면,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면서 실용적인 접근으로 타협을 도출하는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 이유를 불문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상대와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고, 상대가 이기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요컨대, 양자간 접근과 타협이 불가능한 정치만이 남았다.

미국의 정치 지형이 과거에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 정당 내에 다양한 이념과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이 섞여 있어서, 정책 사안에 따라 소속 정당의 경계선을 넘어 지지하고 서로간에 타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서로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남부의 민주당원은 흑인을 억압하는 인종주의를 극렬하게 옹호하는 반면, 북부의 민주당원은 진보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당시 민주당은 남부 흑인의 인권에 눈을 감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서만, 민주당의 정강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당시 공화당에 보수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부의 민주당원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공화당원이 적지 않았다. 요컨대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때는, 흑인의 희생을 토대로 하여 타협의 정치가 전개되었다. 따라서 흑인을 포함한 미국인 전체로 볼 때, 과거 양극화되지 않았던 정치가 지금의 양극화된 정치보다 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근래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의 시발점은, 1960년대 중반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에 흑인에게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주는 개혁을 실시한 후에, 1970년대에 들어 남부의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갈아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공화당은 백인을 중심으로 한 정당, 즉 백인의 집단 정체성을 최우선에 두는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공화당원에게 백인의 인종 정체성이 그렇게 크게 부상한 원인은, 1970년대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이민법 개정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에서 아시아인과 중남미인의 비중은 갈수록 커진 반면, 유럽계 백인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2040년경이 되면 백인이 미국 인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과거 노예제에 뿌리를 두고 오랫동안 유색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였으며, 백인들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색인보다 우월한 특권을 누렸다. 백인은 숫적으로 자신들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일상에서 체감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는 행태, 즉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사사건건 반대 진영과 대립하는 태도를 취한다. 공화당은 백인의 인종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역사 문화 사회적으로 백인 인종과 연관된 특성인, 남성,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 도덕적 보수주의,  교외/농촌지역 거주자, 교육수준이 높지 않음, 등이 일관되게 결합된 모습을 띤다.

미국의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데는 미디어의 역할도 한 몫 한다. 케이블 티브와 인터넷이 출현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혹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치 집단의 의견도 일상적으로 접해야 했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미디어를 취사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한된 숫자의 신문 방송은 가급적 넓은 범위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심하게 편파적인 의견을 피했으며,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케이블 티브가 보급되고,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의 미디어 선택의 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디어 회사들은 모든 범위의 고객을 고루 상대하는 것보다, 편파적인 생각을 가진 충성스런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했다. 그결과 FOX 채널과 같이 지극히 편파적인 미디어가 공화당 지지자를 파고 들었으며, 그보다는 덜 편파적이지만, CNN, MSNBC 등의 채널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호를 따르는 미디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인터넷은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내용만을 편향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미디어의 편파성 효과가 케이블 티브이보다 훨씬 심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편파적인 미디어만을 접하면서 상대편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없어지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내재화하고 더욱 더 굳건하게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비교해 보면,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편파적이며, 극단적인 벼랑끝 전략까지 구사하면서 자신의 진영의 우위를 지키려 한다. 민주당은 이념 지형에서 진보에서 중도보수까지를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공화당은 이념 지형에서 보수쪽에 훨씬 치우쳐 있으며, 백인이라는 인종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한다. 이러한 차이는, 백인이 자신들의 인구 수가 줄어 들고 인종적 특권이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나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 표면적으로는 거의 대등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심하게 외곡되어 있어서 유권자의 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민의 60% 이상의 표를 획득하지만, 각 주 당 2명의 상원의원이 할당된 제도 때문에, 주들 사이에 인구 규모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하원 역시 선거구를 공화당의 득표에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조정하여 (gerrymandering), 실제로는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표를 획득하지만, 하원의원 수에서는 절반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2000년 앨고어와 부시의 선거나, 최근의 클린턴과 트럼프의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 다수의 표를 획득하였지만, 선거인단이라는 외곡된 제도 때문에 국민의 소수의 표를 획득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백인의 인구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외곡 현상은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공화당은 자신의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인 주장과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또한 가급적 투표하기 어렵게 만들어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저자는 현재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정치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념적으로 정당이 양극화되어 있으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견에 근접한 정당을 더 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정강의 정당이 난립하는 정치 지형보다는,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정당 구도가 더 낫다고 본다. 양극화 그 자체보다는, 현재 미국의 정치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즉 국민 주권이 제대로 정치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외곡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화당이 저렇게 극단적인 전략을 쓰는 것은, 소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상대와 합리적인 타협이 불가능한 형국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기존 제도가 제공하는 기득권을 포기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는 대신, 미국인들이 중앙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치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을 제안한다. 사실 지역의 정치가 주민의 이익에 더 가까이 있고, 극단적인 진영 싸움보다는 실용적 타협점을 찾기에 더 용이하다. 사람들이 지역 정치를 통해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습관이 든다면, 중앙 정치도 실용적이 되도록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바뀔 것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쓴 정치 분석서로는 드물게, 많은 학술 연구를 참고하여 주제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관련된 논의를 폭넓게 섭렵하는 기회를 얻는다. 다만, 저자가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라면 혹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다른 시각에서 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그렇게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다면, 분명 저자와 반대편에 서있는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미국 정치를 볼 것이다. 문제는 학계와 미디어는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체계적인 분석은 지식인의 소관인데, 미국에서 지식인은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이므로,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저자의 분석 역시 편파적인 접근의 산물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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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19. 13:56

필립 볼 philip Ball. (조민웅 번역). 2019. 자연의 패턴: 필립 볼의 형태학 아카이브. 사이언스 북스. 283쪽.

저자는 과학저술가이며, 이 책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패턴을 분류하여 설명한 도감이다. 대칭, 프랙탈, 나선, 흐름과 혼돈, 파동과 모래 언덕, 거품, 결정과 타일, 균열, 점과 줄의 9개 장으로 구성된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패턴은 자기조직화 원리에 따라 형성된다. 몇가지 간단한 규칙에 따라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다. 패턴형성 과정은 대체로 수학적 규칙을 따른다. 되먹임 feedback 과정이 추가될 경우, 복잡계에서 언급하는 프랙탈 패턴이 만들어진다. 프랙탈은 그 모양이 더 작은 척도에서 계속 반복되는 구조를 지칭한다.

자연의 패턴이 철저하게 단순 반복적이지는 않다. 크게 보면 규칙적이지만, 랜덤한 요인이 추가적으로 작용하기때문에, 세부적인 불규칙성이 덧붙여진다. 자연 현상에는 어디에나 랜덤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한 단순 반복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의 패턴을 만드는 원리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크게 보면 모두 비슷하게 살아가며, 대체로 노력에 따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항시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에, 일의 전개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다.

자연의 패턴은 인간이 만든 어느 예술 작품보다 더 아름답고 경외감을 준다. 저자는 자연의 형태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는데, 풍부한 사진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흥미로운 눈요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패턴 형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거칠고 피상적이다.

 

2024. 2. 14. 18:07

Sheldon Solomon, Jeff Greenberg, and Tom Pyszczynski. 2015. The Worm at the Core: On the Role of Death in Life. Penguin Books. 22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심리학 실험, 인류학적 탐구, 철학적 사색, 문학적 표현 등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논의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며, 이 문제는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가지 방식으로 극복하려 한다. 하나는 '문화' culture 이며, 다른 하나는 '자존감' self-esteem 이다. 문화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죽은 후에도 의미있는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한다. 종교는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방책이다. 문화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으로부터 와서 내가 죽은 이후로 이어지는 의미있는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조상, 혈통, 후손, 민족, 예술, 지식, 위인, 역사, 등의 문화적 메시지와 상징은 나의 죽음이 '끝', 즉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자존감이란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하며 의미가 있다는 자의식 self-consciousness 이다.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큰 집단과 큰 프로젝트의 일부에 속하며, 이런 집단과 프로젝트에 내가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자신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자신이 이 땅에 살면서 행한 것을 후손이 이어받아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외롭거나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은 자신보다 더 큰 것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문화적 확신이나 자신의 삶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은 결코 확고하지 않다. 종교적 신념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으며, 자신이 더 큰 것의 일부에 속하며 이것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 역시 확실하지 않다. 신이나 내세에 대한 아이디어는 인간이 만든 허구이며, 자신이 이룬 것은 별볼일이 없으며 자신이 죽으면 모두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떠오른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이땅에 사는 한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없애는 작업, 즉 영생을 추구하는 데 엄청나게 몰두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은 물리적으로 죽음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상징적인 영생을 추구할 수 있을 뿐. 그래서 사람들은 자식, 명예, 예술 등에 몰두하며, 이것이 잘 안되면 술, 마약, 섹스, 도박, 등으로 방종한 삶에 자신을 내던지며 인생의 근본적인 외로움과 허무를 잊으려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속한 집단과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쪽, 즉 보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나 내가 따르지 않는 믿음과 규범의 존재는, 내가 속한 집단과 내가 따르는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이는 내가 죽음을 극복하려 하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수록 타집단에 대해 더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옹호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정신병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적절하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죽음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가급적 감추고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런 냉엄한 사실을 자주 인식하고 감정적으로 친숙해지라고 조언한다. 둘째는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완전한 의미는 자연 세계에서 찾을 수 없다. 우주와 자연 법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 생물계에서 인간은 벌레나 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지구는 수많은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벌레와 개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시점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와 행위는 유의미하다. 아이들과 놀기, 예술 창작에 몰두하기, 신의 은총에 감복하기,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등을 할 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며, 본인이 인지하건 하지 않건 간에 모든 사람의 삶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책의 첫머리에서 선언한다. 그러나 이 명제를 경험적으로 충분히 검증했는지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예시와 설명은 서구 기독교 문명권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수반하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이 끝이라는 사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범신론적 세계관이나, 다른 생물과 인간을 대등하게 보는 불교의 세계관이나, 현세의 삶에 대해서만 관심을 둘 뿐 죽은 다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유교의 세계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아닌 죽음 자체를 크게 두려워할 것 같지 않다. 비서구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2024. 1. 30. 14:26

DK 과학원리 편집위원회. (김홍표 번역). 2018. 과학원리. 사이언스 북스. 247쪽. 

이 책은 물질, 에너지와 힘, 생명, 우주, 지구 순으로 장을 달리하면서 자연의 원리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도감이다.  화학, 물리학, 생물학, 천체 및 지구과학의 기초 지식을 전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연현상이 왜 그러한지를 설명하는 데 촛점을 맞춘다. 교육과정을 통해 습득한 과학 지식을 복습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해를 약간이나마 깊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림을 보고 해설을 읽으면서 과학은 흥미로운 영역임을 확인한다.

2023. 12. 20. 20:44

Leonard Mlodinow. 2022. Emotional: How Feelings Shape Our Thinking. Vintage Books. 207 pages.

저자는 이론 물리학자이면서 과학 분야의 저술가이다.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작용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다양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감정(feelings)은 인간의 생존에 유용한 도구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감정은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래에는 인간의 감정이란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유용한 정보처리 기제라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뀌었다. 하등 동물은 주어진 조건에 정형화된 방식으로 반응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반면, 고등 동물은 새로운 상황에도 적절히 반응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을 대면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포함하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사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고도 상황을 신속히 평가하고 대응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대응 간의 관계는 자동 반사적인 것은 아니다. 감정을 하나의 중요한 인풋 요소로 하여 사고를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한다. 감정(feeling)과 사고 작용(thinking)은 서로 밀접히 엮여 있다.

감정이 없다면 무엇을 해야할 이유가 어렵다. 감정은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즐거운 감정은 그러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계속 추구하게 만든다. 감정은 물리적으로 두뇌의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관여하여 이루어진다. 두뇌의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하는 중심적인 영역이다. 인간의 굳건한 의지 (determination) 역시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이를 관장하는 두뇌 영역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극으로 두뇌의 어떤 부분에 자극을 가하면 결심의 대상이 불확실함에도 결의의 감정이 높아진다.

사람은 각자 다양한 감정 영역에 대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감정을 더 자주 느끼며, 각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저자는 이를 감정의 프로필 (emotional profile) 이라 칭하는데, 수치심과 죄의식 (shame and guilt), 조바심 (anxiety), 분노와 공격성 (anger and aggression), 행복도(happiness), 사랑과 애착(love and attachment)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에 대해 척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각자의 감정 프로필을 직접 구성해 보게 한다. 제시된 척도를 이용해 본인의 감정을 측정해본 결과, 수치심과 죄의식은 평균에 가까웠으며, 조바심과 분노는 평균보다 크게 낮았으며, 공격성과 행복도는 평균보다 약간 낮았고, 사랑과 애착은 평균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은 통제할 수 있다. 명상과 운동, 인정하기, 상황의 재해석,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기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각각에 대해 서술하자면, 명상과 운동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가라앉으며,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기르게 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어떤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 눈을 돌리게 되면 감정이 안정된다. 격렬한 감정이 일 때 이를 글로 쓰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성공한 학자일 뿐 아니라, 전공 밖에까지 호기심을 뻗쳐서 대중 작가로서 성공한 특이한 사례이다. 스타트랙의 극본을 쓰고, TV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심리학 분야에 여러권의 베스트 셀러를 집필했다.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글을 쓸 때 무척 많이 다듬는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책과 같이 부드럽게 넘어가고 흥미를 꾸준히 제공하는 글을 만들어 냈다. 메시지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큰 통찰력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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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22. 13:58

Bobbi S. Low. 2015. Why Sex Matters: A Darwinian look at human behavior. Princeton University Press. 252 pages.

저자는 행동 생태학자(Behavioral Biologist)이며,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남녀차이와 짝짓기 행위에 대해 설명한다. 동물이 처한 생태적 환경에 따라 각 동물은 진화의 최적의 전략, 즉 후손에게 유전자를 퍼트리는 데 fitness 에 최적의 전략을 선택한다. '모든 생물체는 후손에게 유전자를 퍼트리는 이익 fitness 을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라는 진화론의 프레임을 가지고 인간 남녀의 행위를 관찰하면, 과거는 물론 현대 사회의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도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는 일부일처제 social monogamy 를 유지하지만, 유전적이 면에서 보면 일부다처 genetic polygyny 동물이다. 남성이 만드는 후손의 수의 변이 variation는 여성의 후손의 수의 변이보다 더 크다. 이는 혼외의 자식을 갖는 것, 이혼후 재혼 비율 등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빈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경쟁적이고 모험적으로 행동하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더 많은 자식을 얻을 가능성이 큰 반면, 여성은 모험적으로 행동해도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은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아이를 생산하는 가치' reproductive value 가 중심이었는데, 근래에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늘면서 '자원을 늘리는 가치' resource value 의 비중이 커졌다. 근래에 선진 산업국에서 남성은 여성 배우자을 구할 때 미모와 같은 육체적 가치 만이 아니라 경제적 가득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성향이 뚜렷해졌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자식을 많이 낳는 전략보다는 소수의 자식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소득이 높을수록 자식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소득이 높으려면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교육을 많이 받아야 하고, 이는 부모의 높은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의 수를 줄이는 대신 각각의 자식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전략을 선택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능력이 낮으면 자신의 자손을 만들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므로, 부모는 소수의 자녀에 더 많이 투자하려 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률은 협동을 통해 구성원의 진화적 이익 fitness 을 높이는 것을 목적한다. 모두가 협동한다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집단 전체에 돌아가는 이익이 훨씬 크다. 문제는 이탈자가 있으면 협동이 붕괴되기 때문에, 모든 사회는 이탈자를 막기 위해 엄격하게 감시하고 규제한다. 과거 소규모의 지역 사회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행위를 감시할 수 있으므로 협동을 해치는 이탈자를 막기 위해 추상적인 도덕율을 크게 필요치 않았다. 현대 도시의 대규모 익명 사회에서는 서로간 직접적인 감시가 불가능하므로 공식적인 법 제도를 필요로 한다.

남성들 사이에 연대 coalition 는 경쟁 사회에서 자원을 더 많이 획득하고 지위를 높이는 목적에 맞추어져 있다. 남성들에게 더 많은 자원과 높은 지위는 자신의 자식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한다. 남성들은 혈연 관계를 넘어 외래인까지 포함하는 큰 규모의 연대를 구축한다. 반면 진화적 이익 fitness 의 측면에서 여성들간 연대의 이익은 남성들간 연대의 이익만큼 크지 않다. 여성들간 연대는 주로 혈연관계에 치중하며, 외래인을 포함한다고 해도 규모가 작다.여성들 사이의 연대는 자식을 양육하는 것과 관련된 편익과 정보를 얻는 데 한정된다. 따라서 치열한 갈등이나 전쟁은 주로 남성들 사이에 벌어지며, 여성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진화적 이익 fitness 를 높이는 것인데, 이러한 이익과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라는 구호는, 자신의 이익 self-interest 를 최우선 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개인에게 어떤 이익과 해를 가져오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재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라는 조언은, 남과 비교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여를 경쟁적으로 하도록 하고, 기여를 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지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정책이 효과적이다. 미래 세대의 이익을 현재 살고있는 사람의 이익만큼 소중히 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래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보다 훨씬 깍아서 평가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행위가 미래 세대가 아닌 현재 세대에게 어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강조해야 한다.  추상적인 통계 수치를 제시하면서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면 무시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어떤 행위가 그가 사는 지역의 구체적인 환경과 어떻게 연관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지적해야 한다.

이 책은 엄청나게 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를 건드린다. 본문이 250쪽인데 주석과 참고문헌만 150쪽이 넘는다. 포괄적이라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지만, 워낙 많은 연구를 구체적으로 인용하며 요약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책을 읽다보면 인간의 성에 대한 특별한 의미나 감정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생물계의 일원으로 인간의 성에 대해 큰 그림을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얻는 바가 있다.

2023. 10. 18. 16:33

John Cartwright. 2016.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Darwinian Perspectives on the Human Condition. 3rd ed. Palgrave. 434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개론 교과서이다. 자연 선택과 성적 선택, 적응과 인간의 생애, 인지와 감정, 협동과 갈등, 짝짓기, 건강과 질병, 문화, 윤리에 이르기까지 진화심리학의 전분야를 커버한다. 이 책은 이론적 쟁점을 중심으로 서술하며, 수많은 관련 연구들을 요약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진화적 접근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근거하여 인간의 행동, 생각, 감정을 설명하는데 근래에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근래에 급속히 발전하는 분야이다.

인간에 대한 진화적 접근의 모든 논의를 맛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3판까지 나온 것 치고는 덜 다듬어진 부분이 많다. 후반으로 갈수록 문장이 덜 다듬어지고, 허술하게 정리된 부분이 많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대학 개론 교과서이므로 한 주제를 깊이 논의하지는 않지만, 대신 이슈가 되는 논의를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은 많은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논의의 좌표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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