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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화'에 해당되는 글 7건
2023. 11. 19. 11:35

송길영. 2023.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교보문고. 334쪽.

저자는 작가이며,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진단한다. 그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인간인 핵개인이 늘어나고 앞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집단과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의 중심인 세상이 출현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사회는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했다. 국가, 회사, 친족, 가족 등의 집단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개인의 삶의 기회를 좌우했다. 피라미드식 권위주의적 위계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집단내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었다. 장유유서, 연공서열, 선후배, 남존여비, 등으로 지칭되는 상하관계만 존재할 뿐,  수평적인 관계는 드물었다. 능력보다는 나이와 경력이 우선시되며, 효율과 창의성보다는 전통과 기득권이 지배하였다.

근래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과거의 틀은 도전받으며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효율과 창의성을 중시하며, 능력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세계화되고 서구사회의 기준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며, 집단의 권위와 전통을 따르기보다 창의와 효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과거의 질서를 고수하려는 구세대 사람들과 곳곳에서 부딛친다. 근래에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기술 변화가 빨라지면서, 오랜 경험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이제 개인은 집단의 도움없이도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직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적 경쟁에 노출된 회사들은 이러한 변화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 조직의 위계 체계를 축소하여 팀제로 전환하고, 경험보다는 능력을 우대하고, 회사내에서 인재를 양성하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영입하여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평가체계를 다면화하고 투명하게 하여, 기존의 집단적 권위가 들어설 자리를 없애버리고 있다. 조직 내에서 개인은 자신의 역량만큼 보상받으며, 조직은 그 개인을 필요로하는 동안 필요로 하는 만큼만 우대하는 유연한 고용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개인주의 포트폴리오 사회 individualistic portfolio society에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잘 살아갈려면,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항시 의식하고 행동하며,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계속 업데이트하여 자신의 시장 가치를 유지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은 전통적 집단주의 가치에 익숙하고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과 조직의 상사들이 버티고 있지만, 이들은 조만간 새로운 개인주의 가치로 무장한 젊은 사람과 조직의 신입 세대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개인의 사회는 그리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서구는 이미 그가 주장하는 핵개인 즉 개인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로 이전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컴퓨터 사이언스의 전문지식과 다음소프트의 부사장이라는 그의 경력도 그의 인기에 한목하는 것일테고. 경직된 개념과 문장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개인이 중심인 서구 사회에서도, 각 개인의 삶에서 국가와 조직의 중요성은 여전히 대단하다는 사실에서, 개인 중심의 사회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계가 있다. 국가와 조직이 개인의 삶을 제약함은 물론, 개인이 단독으로 할 수없는 많은 일을 사람들은 국가와 조직을 통해 해낸다. 많은 남녀의 친밀한 관계가 기존의 가족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만, 부모 모두의 협동적 투자를 받은 자녀는 그렇지 않은 자녀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많이 성취한다는 사실이 당분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기술적 능력이 한창때인 젊은 시절에는 유동적인 지위를 선호하지만, 인생의 사이클에서 그렇지 않은 때에는 안정을 선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개인중심의 포트폴리오 사회에 모든 사람이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개인 중심의 사회에 전개되는 치열한 경쟁의 폐해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적 공동 부양 장치를 보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장치를 유지하는 데에 누가 돈을 댈 것인가는, 개인 중심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욱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서구의 영향을 받아 앞으로 개인의 중요성이 확대될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 중심의 사회가 수반하는 문제도 적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서 개인중심주의가 어떤 속도로 얼마나 확대될지를 구체적으로 예견하기는 어렵다.

2023. 7. 3. 10:53

Eric Hoffer. 2002(1951). The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 Harper Perennial. 168pages.

저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막노동자로 일생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명성을 얻은 특이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으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이 참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종결되는지 서술한다. 경험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생각을 제시한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궁핍과 좌절과 억압이 극에 달하는 저점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이 발생하기 이전 한동안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올라가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기존 질서를 뒤없는 사회혁명이 발생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억압이 굳건할 때에는 체제를 전복할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제주의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시점, 즉 국민을 조금 풀어주는 시점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다고 하여 혁명을 하지는 않는다. 극빈하면 일상의 생계를 확보하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소련의 스탈린 시절, 중국의 모택동 시절, 정책 실패로 수백만이 굶어 죽었지만, 정권의 장악력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반발이 유의미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부류는 현재의 질서에서 잘 맞지 않는 주변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거나 현재의 질서에서 주변적인 사람은 현재의 질서를 뒤업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열성을 보인다. 이들은 혁명을 방해할 어떠한 장애물도 부숴버리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광신도 fanetics 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무료해 하고 암담해 할 때, 사회를 뒤집어 업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과 목표에 쉽게 빠져든다. 이들은 혁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변화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막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광신도들이 없다면 기존 질서를 뒤업는 작업이 수반하는 혼란과 폭력과 저항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은 실패한다. 

광신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 이념에 엄청난 열정을 투입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추진력이 약하며 기득권의 저항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 시작하려 하기보다 기존의 질서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예컨대 지식인, 예술인이나, 자신의 가진 것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이념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또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혁명은 기존 체제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발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안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만 혁명의 동력이 작동한다. 혁명의 시작은 지식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의 말이며, 볼셰비키 혁명의 시작은 맑스와 레닌의 말이며,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말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 현실을 대치하는 대안에 대한 희망에 끌려서 혁명에 참여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꾼다는 희망, 자신을 일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망과 환상에 모두 설득당하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광신자들은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 증오하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고 처단한다. 

폭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혁명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 몫을 하여야 한다. 혁명의 이념과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지식인,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혁명의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광신도, 혁명 사업을 실행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실행인, 광신도와 실행인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혁명이 성공했을 때 뒤정리를 담당하며 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제도로 구체화시키는 관료, 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실행인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 광신도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지도자가 없는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했을 때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혁명은 혼란으로 끝나게 된다. 혁명의 초기에는 광신도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이들은 혁명 후반 제도화의 단계에는 오히려 정착을 반대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들은 안정을 원치 않고,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것을 계속 부르짖으며, 질서를 만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끌면 실패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존 질서에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고 그대로 지내려 한다. 혁명적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라는 충격에 짧게 노출되어야만 견딜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기간의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면, 시간을 두고 충격의 여파가 퍼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탄생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도 혁명의 충격이 가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가 전개되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답게, 글쓰기 방식이나 논지의 전개에서도 파격적이다. 다르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논의 위에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과 반추의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토해낸다.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과장이 엿보이지만, 독창적인 신선함이 엿보인다. 다만 이 책에서는 혁명의 중요한 요소를 누락시키고 있다. 저자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혁명 참가자에 촛점을 맞추는데, 혁명은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참가자의 심리에 있기보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 저자는 이부분을 처음에 약간 언급한다.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2023. 5. 28. 18:08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 402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장기적 미래 모습을 예측한다.

인간은 과학기술 덕분에 기아, 질병, 전쟁을 이제 거의 정복하였다. 인간의 다음 도전은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고, 더 높은 행복을 누리며, 세상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조금씩 조금씩 변형하여 더 오래살고, 더 똑똑하고, 감정을 더 잘 통제하는 존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미래에, 현재의 인간은 마치 현재 동물이 그러한 것 처럼, 미래의 인간에 의해 도태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초인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부터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생물학적 능력의 격차가 사람들사이에 벌어지면, 이는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마치 과거에 일반인과 노예의 격차와 같은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

인류는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이전했다. 이제 인간의 경험, 인간의 행복이 모든 결정에 궁극적인 기준이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일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의 복합체인데, 이 복합체는 합리적이며 일관된 특성의 것이 아니어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할 때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은 핵심이 되는 자아를 전제로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아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유전자, 즉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유전자가 핵심이며, 생명활동이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확산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다른 동물의 데이터 처리능력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데이터 처리 능력이 더 높기에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지배하고 멸종시켰다. 인간의 감정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감정이 모두 데이터 처리장치라면, 데이터 처리 능력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더 좋다 라는 논리적 추론으로 귀결된다.

컴퓨터가 발전하여 이제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인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되었다. 지적 문제를 푸는 분야에서 인간은 조만간 컴퓨터를 당해낼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많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하게 되었다. 조만간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결정을 맡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히 분석하여 그를 더 잘 알고 그의 사정에 더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데이터를 더 잘 처리하고 문제를 풀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소수의 고급 데이터 처리능력을 갖추고, 인공지능을 디자인하는 고도로 복잡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의 지적 능력에 기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또한 부적절해 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면, 일반 사람이 투표하여 선거로 결정짓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일반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전쟁을 치룰 수 있게 된다면, 전쟁에 일반인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일반인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즉 대다수의 일반인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의 복리를 살펴야 할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상을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 Dataism이라고 명명한다.

이미 인공 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데이터를 처리하여 이러한 능력을 발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치하는 분야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신뢰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은 확실하다. 자본주의의 시장기구보다, 민주주의의 선거보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기반한 결정이 더 효율적인 사회는 현재의 사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라는 점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 즉 제레미 벤담의 최대의 행복이 지금까지 효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만족만으로는 살 수 없다. 결정의 주체가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는 느낌, 즉 보람,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결정을 대리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데이터 처리능력이 사회에 쓸모가 없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의미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삶은, 현재 동물 농장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하는 닭이나 돼지의 삶과 다름이 없다.

사실 현재 우리의 삶도 삶의 의미를 크게 느끼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데, 삶의 결정이 모두 인공지능에 의해 뺏기게 된다면, 그런 '혹시나' 하는 자기기만적인 감정 조차도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암울한 삶이다. 인간의 삶이 알고보면 동물 농장에 닭이나 돼지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한다면.   유발 하라리는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식견에 감탄하며 읽었다.

2021. 4. 16. 18:02

Ronald Inglehart. 2018. Cultural Evolution: People's motivations are changing, and reshaping the world. Cambridge. 216 pages. 

저자는 정치학자로 "세계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의 주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가치관 변화 이론을 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검증한 그간의 연구 결과들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 modernization theory 를 약간 변형하여,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의 가치관이 물질주의 materialistic values 에서 비물질주의 non-materialistic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그의 주장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 survival values 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 Expression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생존이 위협을 받는 단계에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추종하며, 집단주의 collectiv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외부인을 배격하며,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으며, 종교를 중시하며, 위계적 질서와 전통을 옹호한다. 그러나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어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의 삶의 우선순위는 바뀐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고,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주의 individual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자율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을 허용하며, 세속적 합리적 가치관을 가지며, 외부에 대해 개방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하게,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발전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서구 사회가 20세기 후반 지식중심의 경제 knowldege economy 로 이전하면서, 자유,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람이 획일적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

가치관의 변화는 세대의 이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장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관이 이후 일생동안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물질적 결핍을 겪은 사람은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하게 되는 반면, 성장기에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며 자라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한다. 서구 사회에서 2차대전 이전에 성장기를 겪은 세대는 생존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을 가진 반면, 전후의 풍요 시기에 성장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다. 이들이 바로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여성운동, 동성애 인정을 가져온 세대이다. 

개별 사회 내에서 볼 때는 종교적인 사람이 덜 종교적인 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지만, 사회전체를 단위로 보면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는 세속적인 사회보다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지 않다. 서구 산업사회는 모두 세속주의 secularism가 확대되어 왔는데, 이러한 추세 예외라고 하던 미국 조차도 근래에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게 되면 여성의 지위는 향상된다. 물질적 생존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권위주의적 남성 우위의 가치관이 지배하지만,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여성의 지위, 성적 자유, 성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한다.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집단에 대한 충성도는 약화된다. 이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전장에 나가겠다는 의지의 약화로 나타난다. 즉 물질적 위협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의 의식은 평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경제발전이 왜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경제발전이 사람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민주주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면, 자신을 표현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민주적 욕구, 즉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욕구가 높아지면, 사회적 동원으로 이어지며, 이는 민주적 제도의 발전을 낳는다.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의 정도와 민주적 제도화의 정도가 불일치 할 경우 정치가 불안정해진다. 만일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가 높지 않다면, 아무리 외부로부터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여도 이것이 정착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이다. 중국을 민주화하려면 결국 그들의 경제발전을 도와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중국은 아직도 일인당 소득이 낮아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권위주의 가치관과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여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행복도도 높아진다. 소득이 낮은 수준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가 높아지는 속도도 높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약화된다. 그럼에도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를 이끈다는 명제는 어느 소득 수준에서나 항시 옳다. 행복도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행복도는 소득과 무관한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그릇되다.

1990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동구권 사람의 주관적 삶의 질은 현저히 하락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후퇴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공산주의 이념이 몰락하면서 삶의 의지처를 잃은 때문이다. 그 결과 동구권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종교의 영향이 높아졌다. 종교가 공산주의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

근래에 서구 산업국의 노동계층 사람들은 소득이 정체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물질적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며,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높아졌다. 그 결과 이들은 권위주의와 인종주의를 옹호하며,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에 지지를 보낸다. 이민자가 20세기 후반 이래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이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가치에 따라 투표하는 성향이 높아졌다. 종교와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노동계층의 투표 성향은 계급적 이익과는 별개의 독립 차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서비스 노동자가 늘어나고, 인공지능의 확대로 사무직 노동자의 지위까지 위협받고, 승자독식 winner-takes-all 체제가 뚜렷해지면서,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대되며, 민주주의가 후퇴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1930년대에 대공황시대에 뉴딜정책과 유사하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배를 바로잡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의 옹호자로 이 책에서 그의 일생의 연구결과를 집약한다. 그의 주장은 비교적 분명하며, 데이타 분석 결과를 통해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의 초반은 자신의 이론을 잘 정리하여 읽을만 하다. 그러나 이책의 중반 이후는 그가 과거에 쓴 논문을 짜깁기하여 덧붙이기 때문에 중복이 많으며 읽기에 지루하다. 여하간 한 학자의 일생의 연구를 요약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20. 3. 7. 12:22

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새로운 정치경제 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역설한다. 1980년대에 농구 경기에서 30초내에 슛을 해야 하는 규칙을 도입하여 프로농구 산업이 살아나게 된 사례를 예를 들어,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제도는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는데, 아이디어는 학자의 머리에서 나오거나, 혹은 일반인의 생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저자는 책전체를 통해 세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민주주의는 왜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어 내는가? 둘째, 왜 실패한 정책은 사회적으로 낭비적이고 더 좋은 대안이 존재함에도 폐지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가? 셋째, 왜 어떤 낭비적인 정책은 폐지되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답하려면 정치경제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기에 이 책의 전반부는 서구의 정치 사상과 경제 이론의 역사를 훑는데 할애한다.

민주주의가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고 이를 오랫 동안 유지하는 이유를 경제학의 공공선택 이론(public choice theory)에서 찾는다. 정부의 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참여자들간에 거래로 형성된다. 공공의 자원은 이익 집단 간에 거래에 의해 배분된다. 정치인과 정부 정책은 결집된 이익(focused interest)을 가진 소수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반면, 분산된 다수의 소비자의 이익은 무시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부가 다수의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만들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이다. 

어떤 낭비적 정책이 폐지되려면 대안적인 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식인들의 활동을 통해 점차 확산되고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면, 대안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며 낭비적 정책을 대체한다. 그 단적인 예로 로크의 천부인권론과 몽테스퀴에의 견제와 균형 이론이 미국의 민주주의 헌법을 낳았으며,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이 대공황 시기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낳았으며, 맑스의 유물론적 계급투쟁이론이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낳았으며, 하이에크의 개인의 자유와 시장을 최고로 두는 이론이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정책의 밑바탕을 제공하였다.

근래에 미국에서 아이디어가 제도를 바꾼 구체적 사례를 네가지 제시한다. 첫번째 사례는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주파수 경매제도이다. 이전까지 통신 주파수는 정부 위원회의 재량적 판단에 의해 소수의 업체에게 할당되었다. 경제학자 로날드 코스는 1950년대 이래 줄기차게 주파수는 토지와 마찬가지로 시장원리에 의해 배분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이론적으로 설명했으나, 1990년대까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신 제도가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이동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결국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업자에게 주파수를 경매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두번째 사례는 1980년대 초반에 전개된 항공산업 자유화이다. 그때까지 항공 요금이나 취항 노선은 정부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었으며 신규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러한 지나친 규제는 항공 안전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지속되었다. 경제학계는 1960년대 이래 항공 산업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나, 기존 항공업계의 이익에 가로막혀 변화가 어려웠다. 1970년대에 오일쇼크로 경제 전반에 인플레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시험을 할 기회가 열렸다. 소수의 노선에 대해 제한적으로 가격할인 경쟁이 붙었으며, 경제위기의 와중에 와싱턴 정치계에서 완전히 국외자였던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고 항공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장에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가 임명되었다.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온 젊은 정치인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의회에서 개혁 논의를 주도하면서 마침내 1982년에 항공산업은 완전 자유화되었다.

세번째 사례는 1996년 빌클린턴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진 복지 개혁이다. 빈곤자를 구제하는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 사회보장 시스템을 낳았고, 1960년대 존슨 정부 시절에 빈곤과의 전쟁이라는 구호하에 다양한 복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1990년대 들어 미혼모의 문제가 커지고, 기존의 복지제도가 복지에 의존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높아지면서, 결국 복지 수혜자의 복지 혜택 수급년한을 제한하고 구직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제도가 개혁되었다. 이는 정부의 복지제도가 '사회가 도와줄 가치가 있는 빈곤자' (deserving poor)를 선별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관철된 경우이다. 

네번째 사례는 2008년의 금융위기이다. 자신 소유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으로 오래전부터 미국 문화에 이상화되었다. 정부가 사람들의 자가 소유를 권장하는 정책에 착수한 것은 1930년대부터 이며, 이차대전 이후에 더욱 강화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정부의 자가소유 권장 정책은 보다 구체화되어, 정부가 모기지(장기 주택저당 대부)를 지원하는 기관을 설립하였고, 금융기관이 사회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모기지를 제공한 실적을 금융기관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까지 됬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응하여 금융기관은 신용이 부실한 가구에 모기지를 남발하였으며, 신용평가회사는 부실한 모기지에 근거한 채권을 우량등급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소득이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너도 나도 집을 사는 붐이 일면서 주택가격의 거품이 형성되었다. 2008년 갑자기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기관은 엄청난 부실채권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하여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을 구제하기에 이르렀다. 자가소유라는 아이디어가 낭비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에따라 사람들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여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만들어 낸 대표적 사례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제도를 낳고, 이것이 좋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면서 사회가 선순환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조건이 맞을 때에만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제도로 구체화된다. 이때 적절한 조건이란, 집단간의 이익 구조에 균열이 생길 때이다. 아이디어와 사회 조건 중 어느 쪽이 변화를 위해 더 중요할까? 어느 쪽이 항시 옳다고 일괄적으로 주장할 수없다. 사안에 따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경우가 있고, 혹은 사회조건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사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기득권자가 버티고 있는 사회조건에 가로막혀 제도변화로 이끌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예컨대 우버가 대표하는 공유경제의 도입과 기존 택시업자간 갈등은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조건 때문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기존의 정치사상과 경제이론을 모두 검토하겠다는데, 황당한 발상이다. 수많은 사상가와 이론가의 주장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면서 요약해 놓아서, 별로 통찰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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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8. 13:31

  선진국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이 크게 증가하였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성역할 분업, 즉 여성은 집에서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고 남성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물론 경제형편이 어려운 계층은 이러한 사회적 이상형을 실천하기 어려웠다. 가난한 집의 부인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중류층에서 기혼 여성이 돈벌이를 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Economist_Women&Work.hwp



  세상은 변해 이제 서구사회에서는 70% 이상의 기혼 여성이 경제활동을 한다. 물론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전업직이 아니며, 남녀간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30%이나 난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만일 어떤 여성이 밖에 나가 일 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되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것이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될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지 않을 날도 멀지 않다.

  여성이 밖에서 일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여성이 독립적인 경제기반을 가지면 남성과 여성간의 권력차이는 좁혀진다.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가 늘고,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발언권이 세지고, 이혼하고 재혼하는 사례가 늘고, 자녀를 적게 낳는 풍조가 정착한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 본인의 의지도 작용하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측면도 있다. 인구가 노령화하면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경제의 활력이 줄어드는 것을 보충하려면 여성의 참여를 늘릴 수밖에 없다. 여성의 교육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데 여성 인재를 집에 모셔둔다면 자원의 낭비가 엄청나다. 여성 인재를 놀리는 나라는 여성 인재를 활용하는 나라와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우수한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에 뒤질 것이다. 

  여성의 경제력이 늘고 사회적 역할이 남성에 근접하면, “여성다움”이라는 문화적 상징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자신을 치장하고 남성에게 잘보이는 데 과도한 노력을 쏟아야만 하는 “여성다움”은 사라질 것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이고 능력있는 여성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는 문화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환상, 남성에 대한 여성의 환상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컴퓨터가 없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듯이,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어떨지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게 더 낳은 방식의 삶이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방식은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호도해도 비인간적이다. 물론 각자가 자신의 삶에 책임지면서 사는 것이 더 편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2010. 8. 15. 14:38
  몇년 전만 해도 전자책이라고 하면 기술에 미친 사람이나 시험적으로 사용해보는 것으로 알았다. 미국 신문에서 근래까지 아마존의 킨들이라는 전자책 실험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지 회의적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이유를 먼저 앞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런데 소개하는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올해 다섯달 동안 시장에서 거래된 책 중 8.5%가 전자책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삼사년 내에 전자책 시장은 40%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말 빠른 변화의 속도이다. 불과 15년전에만 해도 인터넷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은 불과 10년전에 처음 나타났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은 이제 6년째이며, 트위터는 2~3년 밖에는 안된다. 블랙베리라는 스마트 폰이 몇년 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반 사람이 전화기로 인터넷을 이용한 것은 이삼년전에 나온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있을까? 대답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과거 기술에 익숙한 사람은 과거의 기술을 계속 이용하는 관성을 지속한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마지못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해도 새로운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생활하고 일하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결국에는 새로운 기술을 익숙하게 사용하면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가 이들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은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나는 컴퓨터 1세대이다. 대학교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으며, 윈도우 이전 운영체제인 도스 프로그램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씨름했었다. 90년대 후반 홈페이지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html언어로 직접 타이프 치면서 나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요즈음 이미지 중심의 컴퓨터 사용이나, 이동성 중심의 인터넷 활용이나, 일 이외의 용도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는 친숙치 못하다. 먹고살기 위해 이러한 기술을 부지런히 쫒아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문자 중심의 컴퓨터 사용,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인터넷 활용, 일을 하는 도구로서 컴퓨터와 인터넷 세대에서 벗어날 수없다. 그렇다면 현재 하고 있는 블로그는? 아무래도 일 쪽이다. 놀면서까지 컴퓨터 앞에 있고 싶지는 않기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도 10년 이내에 전자책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변화 수용 속도는 정말 감탄할만 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잘 이용하는 체 해야 할 것이다. 나도 조만간 전자책을 많이 읽게 되겠지만 얼마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일을 위해서라면 전자책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놀면서 흥미로 읽을 때는 종이책을 고집하면서 살다가 죽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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