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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에 해당되는 글 12건
2024. 2. 2. 17:52

Ashoka Mody. 2023. India is Broken: A People Betrayed, Independence to Today. Princeton University Press. 411 pages.

저자는 인도계 미국인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인도가 독립이래 최근까지 걸어온 정치경제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 저자는 인도가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매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해왔다고 비판한다.

제이차대전 이후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네루가 수상으로서 1960년대 중반까지 인도의 정치 경제의 기초를 닦았다. 네루는 인도인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은 지식인이었으나, 그는 전후 인도의 경제를 일으키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네루의 잘못은 여러가지인데, 그의 잘못된 정책은 이후 인도를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루의 주요한 잘못을 요약하자면, 첫째, 그는 정부 주도로 중화학 공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인도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이었다. 인도는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엄청난 수의 교육을 받지 않은 실업 인구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산업인,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산업을 우선적으로 일으켰어야 한다. 중화학 공업은 고용을 크게 창출하지 않았으며, 가뜩이나 빈약한 보유 외화를 비싼 고급 기계를 사는 데 지불하여 외환위기를 초래하였다. 두번째 잘못은, 인구의 절대다수가 문맹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인구에게 기초 교육을 시키고 그들의 보건 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 네루는 말로만 서민을 걱정했을 뿐, 교육과 보건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그결과 인도의 인적 자본 축적이 빈약하여, 이후 경제를 성장시키는 기초 토양이 계속하여 부실한 상태에 머물렀다. 네루는 초등교육에 투자하는 대신 고등교육에 재정 지원을 더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 셋째는, 사회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중앙계획 경제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에 국가의 허락을 필요로 하고 세세히 간섭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통제 정책은 부패와 비효율을 극에 달하게 하였다. 넷째는 높은 관세장벽과 수입 제한정책을 통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국내 생산 업자의 생산성 향상을 막고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렸으며, 결과적으로 인도 경제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1960년대 중반 네루가 힌두교 극단주의자의 총에 쓰러지고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수상과  정치 실력자로서 15년 이상 인도의 정치 경제를 이끌었다. 그녀는 네루와 같은 국민의 절대적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영합적인 정책과 권위주의적 통제를 휘두르면서 권력 유지에 집착하였다. 그녀는 대자본가와 영합하여 권력을 유지하면서, 경제가 정체되고, 인도 사회와 정치 전반에 부패와 폭력이 난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녀가 집권하는 동안 정치인들의 부패가 매우 심했다. 정치인들은 엄청난 정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결과 검은 돈으로 충당하는 인도의 선거비용은 미국의 선거비용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녀는 엄청난 규모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제정책이나 서민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정책은 전혀 구사하지 않고, 대신 가난한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하였다. 삶이 매우 고단한 서민들은 고질적인 인도 사회의 병폐인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과 카스트 간의 대립 구조에서 쉽게 선동되었다. 정치인들은 종교적 대립을 선거에 악용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힌두교 민족주의자의 선동에 휩쓸려 이슬람교도를 대규모로 살해하고 이것이 다시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였다.

결국 1970년대 석유파동이 촉발시킨 경제위기 때문에 인디라 간디는 실각하였으며, 독립 이래 인도의 정치를 독점한Congress Party 는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 대신 힌두교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정당이 부상하여 현재 모디 Mody 정부에 이르기까지 집권하고 있다. 간디와 이후 네루가 이끈 Congress Party는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인도의 힌두교 세력의 압력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이후 들어선 힌두교 민족주의 지도자가 이끄는 정부는 힌두교를 편파적으로 옹호하였으며, 이슬람 교도를 박해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현재의 모디 수상은 그가 주정부의 수반으로 재직할 당시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를 대규모로 살해하는 것을 방조한 장본인이며, 현재도 극단주의 힌두교도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메시지와 행동을 종종 보인다.

인도는 1980년대 초반 대외적으로 경제를 개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독립부터 이어오던 폐쇄주의 경제 정책을 마침내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와는 달리 제조업을 육성하는 대신, 금융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 정책을 운용하였다. 그 결과 많은 가난한 실업자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대신, 소수의 권력과 영합한 산업가들과 부패한 관료들이 부를 축적하여,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1990년대 들어 소프트웨어 산업, 콜센타, 제약 산업 등에서 서구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대외적으로 신인도가 높아지고 인도가 신흥경제 국가 emerging economy 의 총아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뿐 가난한, 대중 전반에게는 충분한 일자리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저자는 인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교육과 보건에 대한 정부 지출을 늘리는 일이다. 인도의 교육은 양과 질 모두에서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여성의 교육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출산율이 줄고,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아지고, 자식들의 교육과 건강 등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앙정부의 통제 체제가 부패와 외곡을 낳았기 때문에, 지방 정부에 과감하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하여, 시민사회의 참여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효율의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도 정치와 경제의 부정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고 일관되게 비판한다. 이는 아마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선진국과 비교해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낳은 한계인듯 싶다.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를 외부에서 보면 그런 모습만 우선 보인다. 인도가 낙후된 상태로부터 어떻게 지금의 단계까지 발전하여 왔는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인도의 정치와 경제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하는데 주력한다. 이 책만 읽으면 인도의 정치경제가 어떻게 현재의 발전 단계에 이르게 되었는지, 왜 외국의 투자가들이 인도를 신흥경제 국가의 총아로 지목하면서 투자를 집중하는지 알길이 없다. 그는 이러한 외부의 평가가 과장되며 인도의 허상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외국의 투자가들이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디라 간디는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이후의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부패를 더 심화시켰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이 맞다면, 인도의 정치 경제는 1960년대 이후 과거보다 더 추락하였어야 하지만 경제 지표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는 수시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계속 인용하면서 서술하는데, 이는 전체 그림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독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정적인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음을 신문 기사를 연이어 읽듯이 계속 나열하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서술을 따라가기 힘겹다. 유사한 사건의 반복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인도가 가난하고, 부패했으며, 종교적 갈등이 난무하기 때문에 정치경제나 도덕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거듭 말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상황이 어떻게 왜 변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그의 말을 정말 믿는다면 인도는 미래가 없는 나라인데, 과연 그럴까? 그는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희망" hope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의 책 어디에서도 희망의 징표를 읽을 수 없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가 매우 꼬장꼬장한 "꼰대"일거라는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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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1. 16:41

 

Carles Boix. 2015. Political Order and Inequality: Their Found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가가 생겨난 기원 및, 국가와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와 함께, 인류학, 역사학, 기타 다양한 데이타를 이용해 수리적으로 검증한다.

수렵채취 단계나 낮은 기술 수준의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평등했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들 간에 불평등이 발생할 요소를 서로 감시하면서 억제하였으므로, 국가라는 제삼의 권위 기구 없이도 당사자들 서로간 개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는 특정인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억제했으므로, 성장이 없이 정체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생산력의 범위 내에서 인구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의 한계 수준 근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 생산물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생산자와 탈취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탈취자는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탈취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생산자는 탈취자에게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기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얻는다. 탈취자는 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생산자를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탈취해간다. 역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탈취자들이 세운 군주제 monarchy 를 택하고 있다.

고대의 아테네나, 근대 이전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공화정 republic이 존재하였다. 도시국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방어를 직접 담당하거나, 용병을 구입하여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북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이웃 나라의 탈취자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용병을 고용한 경우 무력을 보유한 용병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용병 출신의 무력 집단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이익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화정이 출현할 수 없었다.

무력 기술 수준에 따라 생산자와 탈취자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력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특별히 무력 수준이 우월한 사람이나 집단이 없었으므로 탈취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청동기 무기와 이후 말의 출현으로 무력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무장을 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탈취자로 군림하면서, 다수의 비무장 생산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13세기에 총포가 도입된 이후, 기마 무사의 무력적 우위가 사라지면서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대신 비싼 총포를 구입할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대규모 은을 수입한 스페인,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프랑스가 강국으로 올라섰다.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 간 및 지역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대는 기존의 탈취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지배집단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예외적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탈취자 집단이 상공업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이익을 신흥 부르주아지와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주와 상공업 계층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면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상업을 확장시켰으며,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도시로 인구가 모이면, 도시인들 사이에 분업과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 지역이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인구가 늘고, 도시가 발달하고, 군사기술과 자본 규모가 높아져서, 이웃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도시의 상공인들은 농촌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으며, 세금을 부담하고 총을 들고 전쟁에 직접 나가는 국민으로서, 왕과 지배층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져서, 결국 공화제로 이전되었으며, 과거 산업혁명 이전보다 소득 분포가 평준화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국가의 출현 및 불평등 수준 역시 생산 기술 및 군사기술의 수준과 연관된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학술서이다. 19세기 이전의 불평등 수준을 키의 분포로 측정하였으며, 생산기술의 발달 지표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설명하는 부분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용하며, 다양한 가용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논의를 뛰어 넘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대단한 비교 연구이다.

2023. 7. 6. 12:30

Giovanni Federico. 2005. Feeding the World: An Economic History of Agriculture, 1800~2000. Princeton Univ. Press. 232 pages.

저자는 경제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구를 포함한 전세계의 농업의 발전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많은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서술한다. 농업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정치적 사회적 요인과 얽혀 있어서 일반화가 힘들며,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많지 않다.

1800년대 이래 근래까지 농업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농업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 그동안 크게 증가한 인구를 먹여살리는 데서 넘어, 잉여 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생산요소들, 즉 토지,노동,자본을 이전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더 많은 양을 생산하였으며, 1900년대 이후에는 생산성의 증가가 생산량의 증가를 이끌었다. 1900년대 이후 화학 비료와 농약, 기계화, 종자 개량, 등으로 생산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지 않다. 대규모 농장은 감독의 어려움과 인센티브의 한계 때문에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다. 1800년대까지는 토지에 대해 전통적 소유권이 지배했다.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경작하는 가족농 family farm, 지주와 생산물을 나누는 소작농 share-cropper, 미리 정한 임대료를 지불하는 임차농 tennant, 마을 공동 소유의 농지 common, 빚에 구속되어 자신이나 남의 토지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농민 debt-peonage, 많은 일꾼을 고용하여 자본주의적으로 경영하는 농장 management farm, 강제적 혹은 자발적 집단 농장 collective farm,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20세기 들어 토지 소유권을 경작자에게 주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이러한 개혁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효과는 일관되지 않다. 한국과 타이완의 토지 개혁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개별 농가의 토지 규모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꾸준히 감소한 반면, 선진 산업국에서는 1950년대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이후에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전통사회에서도 시장경제가 농업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상업 작물을 재배했으며, 일꾼을 일시 혹은 장기적으로 고용하였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까지 정부는 농업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진국 정부의 농업 정책은 소비자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인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농민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제조업과 도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선진국에서 농민들은 도시 주민과 유사한 수준의 소득에 도달했으며, 투표권을 매개로 강력한 로비력을 행사하여 자원 배분의 비효율과 생산성을 외곡하고 있다.

이 책은 농업경제사 분야의 전문학술서이다. 데이타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막상 이론적인 서술은 많지 않다.  농업은 인류의 역사와 경제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통찰력을 주는 좋은 책을 찾기는 어렵다. 이책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으나,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여하간 끝까지 대충 읽었다.

2023. 5. 17. 22:49

Richard Easterlin. 1996. Growth Triumph: The twenty-first Century in Historical Perspective. Univ. of Michigan Press. 154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 경제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인구 증가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21세기에도 경제성장이 계속 이루어질지에 대해 논의한다.

세계의 경제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전과 다른 속도로 장기간 고도의 성장 궤도에 접어든다. 이렇게 매년 1~3%의 성장을 오랫동안 지속한 혁명적 변화의 동력은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새로운 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접근하는 경험적 실험적 객관적인 방법론 덕분에 끊임없는 탐구와 신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산업혁명 이래의 경제 발전은 자본과 노동 등의 생산요소를 과거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양적으로 성장한 면보다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질적으로 성장한 면이 더 크다. 

산업혁명 시기 국가들 사이에 경제성장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들 사이에 세력 균형의 변화가 따른다.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력을 높인 나라는 군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이전에 형성된 국가간 세력 분포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한 서유럽 국가들은 산업 발전에 착수하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19세기 후반 식민지로 복속시켰다. 유럽에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 및 프랑스와, 뒤에 발전하여 따라잡은 독일 사이에 세력 분포의 변화를 둘러싼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과학 지식과 기술은 국가간에 쉽게 전파된다. 과학 지식과 기술이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면 유럽을 넘어서 세계로 경제성장이 빠르게 퍼져 나갔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한데, 왜일까?  과학 기술이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질려면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교육과 민주적 의회제도가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과학 기술을 이해하여 생산에 적용하며 기술의 변화를 수용하려면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수이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아무리 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도입해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제활동의 결과 산출된 부를 정치 권력자들이 임으로 뺏어간다면, 즉 정부가 시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의회제도는 권력자의 임의적 권력 행사를 제한하고, 시민의 사유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과학 기술 및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제도와 의회제도가 다른 물적인 요소보다 경제성장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제1,2차 세계대전후 독일과 일본이 폐허를 딛고 빠르게 성장한 사실에서 입증된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과학 기술 및 제도적 기반이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일이십년만에 전쟁 이전의 경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부터 '사망율의 혁명' mortality revolution 이 일어났으며, 시간 차이를 두고 이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인구 변천 population transition 과정을 겪었다.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진 원인은 위생과 건강에 대한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병균이 질병의 원인이며 위생상태가 불결하면 병균이 창궐한다는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병균이 서식하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제거한 결과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과학 기술과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보다, 질병과 위생에 대한 과학 지식 및 불결한 환경을 제거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보다 사망율을 떨어뜨리는 데에서 훨씬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다.  

선진국은 인구 노령화 및 인구 감소로 인해 경제성장이 멈추는 미래를 걱정하는데, 이는 기우이다. 인구 노령화의 문제로 크게 두가지가 언급된다. 첫째는 인구가 노령화하면 노동 공급이 줄어들고 노동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는 우려이다. 2030년까지 노동공급이 약간 줄어들지만 우려할만큼 크지 않으며, 이후에는 이미 낮은 출생율의 세대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노동 공급이 더이상 줄지 않는다.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전인구 대비 노동공급이 크게 줄지 않는 이유는, 노령 인구가 느는 것과 함께 아동의 비율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령의 노동력은 젊은 사람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사무직이 주류인 선진국에서 고령의 노동력은 경험이 풍부하여 육체적 정력이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며, 과거와 달리 미래에 고령의 노동자는 젊은 사람에 비해 교육 수준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령이라고 하여 생산성이 젊은 노동자보다 크게 낮지 않다.

인구 노령화로 우려되는 두번째 문제는 인구 부양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 노령화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아동 인구의 감소를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부양비는 변함이 없다. 노인이 늘면 연금이나 의료비가 증가하는 데 이는 젊은이들의 노동 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에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아동을 부양하는 비용은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 못지 않게 많이 드는 데, 아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부양 부담의 총량은 노령화로 인해 높아지지 않는다. 노인이 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 부양 인구를 부양하는 데 더 투입되지는 않는 것이다.다만 아동을 부양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지출로 충당되지만, 노인을 부양하는 것은 세금 등의 공적인 지출로 충당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과거에 아동을 부양하는 데 들던 비용을 노인을 부양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전하도록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요컨대 노령화로 인한 부양 부담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

동일 시점에서 비교할 때, 한 사회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그러나 시간차를 두고 비교를 하면,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에 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여 과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기대수준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이 평균적인 규범과 비교하여 행복 여부를 판가름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도 함께 높아진다. 물질적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증거는 아직 서구사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미래에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물질적 수준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도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이 계속 추가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즉 미래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좀 더 높은 생활을 갈망할 것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성장은 과거보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전보다 더 큰 풍요를 원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은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로 확산될 것이다. 후발 산업국들은 선발 산업국들과의 격차를 좁혀갈 것이다. 후발 산업국은 선진국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빌려와 쓸 수 있으므로, 선진국이 성장하던 때와 비교하여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 반면 선진국은 완전히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성장하여 선진국에 근접하게 되면 후발 산업국들은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선진국들에 대해 국제적 영향력의 재분배를 요구할 것이다. 20세기 초반 영국대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선진국의 과학 기술이 세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의 문화와 가치의 차이는 줄며, 효율과 합리성을 우선하는 세속적 가치가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이책은 저자의 경제 성장에 관한 오랜 연구를 정리하는 취지로 쓰여졌다. 논쟁적이기보다 상식적인 부분을 재확인하면서 평이하게 서술한다. 경제 성장에 관한 기존 논의가 잘 녹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구 노령화를 둘러싼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참신하게 들렸다. 인구 노령화나 선진국의 인구 감소는 경제적 효과보다는 국가의 위신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 때문에 그렇게 아우성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2023. 5. 14. 22:57

Eric Jones. 2003(1981). The European Miracle: Environments, Economics and Geopolitics in the History of Europe and Asia. 3rd ed. Cambridge. 25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인, 서구가 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을 앞서 발전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는다. 자연 환경적인 요인과 제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서구가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앞서게 된 시점은 대략 1500년대, 즉 북서유럽 사람들이 대양으로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인도와 중국에 진출하게 된 무렵이다. 1500년대 이전에는 중국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이 기술적으로 서유럽보다 앞섰으며, 물질적 수준에서도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었다.

서유럽은 아시아의 다른 문명권과 비교하여 인구 출산률이 낮았으며,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발하였기 때문에 자연출생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로 자녀를 낳는 전략을 택한 반면, 서유럽은 자연재해가 적었으므로 최대 자연출생력에 못미치는 출산 관행이 지배했다. 서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서 출산력을 조절하는 사회관습이 정착했다.

서유럽은 아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므로 인력보다 자본을 더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농업이 주였던 시절에, 아시아는 논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서유럽에서는 목초지에 가축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투입하여 밭을 경작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 서유럽에서 수력, 풍차, 석탄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즉 생산 과정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서구가 발전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높았으며,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주의가 지배하였다.  

1500년대 무렵 유라시아 대륙에는 크게 네개의 문명권, 즉 유럽 문명, 중동의 오토만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나라 제국이 존재했다.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은 정복 문명이었다. 중동과 인도 및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 제국은 모두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 유목민들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이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과 달리 유목민 약탈자 권력이 닿지 못한 행운을 누렸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복 세력은 토착인을 최대한 착취 약탈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뿐,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를 관리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복 국가의 국민들은 중앙 집권의 권력에 포획되어 있었으며, 귀족들 또한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착취하는 역할만 하였다.

반면 서유럽은 작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였다. 유럽의 자연 환경은 산, 강, 바다로 지역을 잘게 나누고 있으며, 북서 유럽에는 숲이 널리 퍼져 있어 지역간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였으므로, 단일 권력이 전 지역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각각 분할된 지역에 토대를 둔 국가들은 서로간 끊임 없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 집단들의 틈바구니에서 상공업자들은 상대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서유럽의 권력자들은 자의적으로 상공업을 제한하거나 상공업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전횡을 부릴 수 없었다. 서유럽의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축적하여 재투자하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아시아의 약탈적 정권 하에서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모으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사치한 생활에 소비하거나, 지주 혹은 관료의 지위로 갈아타려고 노력했다.

서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기독교 문화의 일원으로서 서로 간 어느 정도는 유사했다. 서유럽의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사람들의 이동을 통한 아이디어의 전파가 매우 빨랐다. 한 지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면 서유럽 전체로 곧 퍼졌다. 지역간 언어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 대륙 전체로 지식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지역 언어들 사이에 유사성이 높았으므로 다른 언어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나라의 권력 집단이 자의적 횡포를 부리면, 곧 그 나라의 상공업자와 자본가들은 다른 지역으로 기술과 자본을 들고 이동하여, 그 지역의 세수가 감소하고 군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각 지역의 권력 집단은 자신의 지역에서 경제가 활발하도록 항시 관심을 기울였다. 상공업자들은 정치 권력 집단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누렸으므로, 이후 이들이 주도하여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달하였으며,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을 돕기위해 도로를 닦고 상공업의 규칙을 관리하는 등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국가 service state 로  발전하였다. 

저자는 서유럽이 1500년경 무렵에 세계를 앞서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1400년경 혹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점차로 배경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력이 상공업자의 자본을 자의적으로 탈취하지 못하는 관행은 1200년경 이탈리아에서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와 비교하여 볼 때 서유럽에서는 1500년 이전부터  상공인의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이다. 중세시대에도 교회와 왕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전통은 영국에서 1300년대 후반 세금을 내는 상공인과 지주가 왕에게 압력을 가해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문서인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내었으며, 서유럽 전지역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의회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중동이나 인도 문명은 역병의 피해를 자주 많이 받았으나 국가가 역병의 확산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국가가 주도하여 방역을 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전 서유럽보다 발달했던 생산 기술과 항해 기술을 국가가 금지하여 이후 기술이 퇴화하였다. 이는 중앙 관료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보수 세력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이겼기 때문이다. 반면 서유럽에서 보수세력의 변화에 저항하는 힘은 중국만큼 크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신기술의 도입을 금지하였다고 해도 이웃나라가 버티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령은 실제로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다.

서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1000년대 이래 인구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의 생산수단에 비교하여 인구압력이 계속 높아졌다. 1300년대 중반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압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지만 100년도 못되어 다시 인구가 증가하였다. 서유럽과 중국은 높아진 인구압을 배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전 및, 1500년대 이래 아메리카 대륙 등 식민지 개척으로 높아진 인구 압력이 분출될 탈출구가 마련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장의 확대 등으로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한편 중국은 명나라 이래 남쪽 지역으로 경작을 확대하여 높아지는 인구압을 배출하였다. 중국에서는 논농사 지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 없이 인구를 많이 투입하여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한 반면, 서유럽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농업과 이후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즉 중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외연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생산성의 향상은 높지 않았던 반면, 서유럽에서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술 발전과 자본 투입이 높아지면서 생산성의 향상이 함께 갔다.

중국에서 새로이 개척할 땅이 다했을 때, 결국 권력 집단은 국민을 더 가혹하게 탈취하고 국민들은 참다참다 결국 폭발하여 정권이 교체되지만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중국의 청나라 시절 연거퍼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와 엄청난 인명 피해의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새로이 개척할 땅이 없었던 중동의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의 무굴제국이 간 길이기도 하다.  반면 서유럽은 인구 증가와 생산성의 향상 및 식민지로의 인구 배출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민중의 대규모 반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의 학술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낱낱이 검토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교양서로 읽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 역시 축약적이고 복합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논의가 균형되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읽기는 어려웠지만 영양가가 높았다.

2022. 8. 31. 17:13

Douglass North.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40 pages.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수행한 연구의 요점을 정리한 책이다.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사를 연구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선택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보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완전경쟁을 한다는 신고적 경제학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차단된 공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식적 제도와 비공식적 규범의 틀 내에서 경제활동을 한다. 제도란 incentive system에 다름이 아니다. 경제활동에서 핵심적인 제도는 소유권을 둘러싼 제도이다. 계약, 소유권,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가 공식적으로 마련되어 있고, 정치권력과 정부가 이를 성실히 준수하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낮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 반면,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부실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높으, 사람들은 생산적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높은 경제에서는 경제 참여자들 사이에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문화의 수준이 낮고, 전문화가 안되면 기술 개발이 힘들며, 생산 규모가 커지지 않는다. 개별 생산 규모가 작으면,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규모의 경제의 이익을 거둘 수 없다.

경제 발전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이다. 과거의 제도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변화는 느리게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혁명처럼보이는 경우도, 혁명적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실제 일이 이행되는 과정을 보면 과거의 제도가 여전히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제도와 규범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

북미와 남미가 다른 경제발전 경로를 밟게 된 것은, 이들의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과 스페인/포르투갈의 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왕권을 견제하게 되었고,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가 의회를 통해 제한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고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거래비용이 낮아졌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금융시장이 발달하게 되었고, 영국이 전비를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었기에 프랑스를 이기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소유권을 보장하는 제도는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었기에, 이는 산업혁명과 기업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반면, 스페인/포르투갈에서는 왕권과 그를 보좌하는 중앙정부의 관료가 지배하는 제도 환경이 지속되었다.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는 수시로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낳았으며, 그 결과 생산적 경제활동보다는 권력에 기생하는 이익추구(rent-seeking) 행위가 지배하였으며, 결국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중남미의 식민지가 모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과거 종주국의 제도를 물려받아, 권력자와 관료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허용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와, 생산적 활동이 장려되지 않는 제도 환경을 정착시켰다. 반면 북미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앙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 내고, 소유권과 계약의 이행을 공식적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정착하고,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면서, 이민자의 유입, 서부로의 진출, 생산적인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제도를 수입해도, 이것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한다. 제도는 여러 다양한 요소가 그물망처럼 엮여 있기 때문에, 특정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연관된 제도들이 함께 제대로 이행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규가 존재하지만 권력자와 관료가 개인의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하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부실하다면, 사람들 사이에 거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저자는 경제발전의 요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든다. 제도와 기술이 그것이다. 제도와 기술은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왔다. 소유권이 잘 보장될 때 개인의 창의와 기술 발전이 활성화되며, 기술이 발전하면 계약의 이행과 소유권 보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생의 연구를 종합하여 요약한 글이므로 매우 압축적이라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의 주장은 이제 사회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이 책은 그의 이론을 전반적 훑으며 통찰력을 얻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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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6. 18:45

Mancur Olson. 2000. Power and Prosperity: Outgrowing communist and capitalist dictatorships. Basic Books. 199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집단행동론을 적용하여 한 나라가 부강하거나 가난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소수 이익집단에 의해 전체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시장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여 자원 활용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부강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먼저 권력의 논리 (the logic of power)를 제시한다. 인간 사회는 여러 작은 규모의 폭력 집단들이 보호비 명목으로 사람들을 강탈하는 무정부 상태로 시작하였다. 이들은 그들이 강탈하는 사람들의 복리나 생산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강탈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탈하며, 사람들로부터 더 이상 강탈할게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강탈을 계속한다. 이러한 여러 폭력 집단 중에서 세력을 키워, 이들이 보호 내지 착취하는 대상이 커지고 한 곳에 정주하는 지배 세력이 되면, 이제 그들의 강탈 행태는 과거 작은 폭력 집단이었을 때와 달라진다. 그들은 피착취민의 생산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강탈을 조절하며, 나아가 사람들의 생산력을 높여서 그들이 강탈할 근거를 두텁게 하는 데로 관심이 이전한다. 폭력집단의 세력이 매우 커지면 그들이 착취하는 사람들과 함께 국가를 형성하며, 폭력집단이 피지배집단으로부터 강탈하는 보호비는 다름아닌 국가의 세금이 된다. 국가는 영토내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이며, 근본적으로 지배집단의 이익에 기여한다. 

지배집단은 피착취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의 일부를 피착취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다. 국가가 생산하는 공공재가 바로 그것이다. 대외적인 안보, 국내의 치안, 도로 등의 바로 그것이다. 피착취민은 지배집단이 제공하는 공공재 덕분에 안정적으로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있기 때문에 그들의 지배/착취를 지지하기까지 한다. 피착취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것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배집단은 피착취민의 대표와 타협하고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도록 회유한다. 피착취민들이 얼마만큼의 세금을 낼지 그들의 대표를 통해 지배집단과 밀고당기는 과정에서 의회가 탄생하였으며, 영국의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공공재를 적절히 조달하는데, 민주주의가 권위주의 정부보다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집단적인 노력을 투입하여 수행해야 하는 일에는 항시 무임승차자 Free rider 의 문제가 발생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집단 전체의 이익에 배치되게 행위하는 문제는 무임승차자 문제의 일부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행위이지만 집단 전체로볼 때는 비합리적으로 일이 돌아간다. 모든 사람들에게 법이 균일하게 집행되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 집단 전체의 이익에 배치되게 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구 소련의 계획경제는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될 수 없었다. 지배집단이 생산수단의 집단화를 통해 생산자들로부터 과도하게 뽑아낸 이익을,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할 목적으로 국민에 대한 권위주의적 감시와 군비경쟁의 비용으로 과도하게 지출하였다. 시장기구를 통한 자원의 배분이 아니라 위로부터 명령에 의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생산자들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 중 생존의 수준을 넘어서는 부분은 전부 수탈당하므로,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도 거의 모두 수탈당할 것이 확실하다면 아무도 최소한의 선을 넘어 추가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항시 존재하는 내부로부터 및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대응하여 변화해야 한다. 이때 생산성이 낮은 분야로부터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자원이 이동해야 경제 전체의 부가 증가한다. 소련의 계획경제는 상황 변화에 대한 적응이 매우 더디었다. 상황이 변화하여 어떤 기업이나 생산 방식이 비효율적이 되더라도, 위로부터의 명령에 따라 자원이 계속 그 비효율적인 부문으로 할당되는 반면, 새로이 생겨난 효율적인 부문에는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지 못했다. 투입보다도 더 낮은 산출을 하는 비효율적인 부문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을 하면서 전체의 생산력을 갉아먹었다. 비효율적인 부문에 종사하는 경영자와 노동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이익에 배치되게 행한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소련의 생산성은 서방세계에 뒤쳐졌으며, 서방 세계와 경제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면서 국민들이 정부에 이반하였다.

모든 사회에는 사람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거래가 생겨나며 이를 통해 경제 전체로 큰 이익을 거둔다. 그러나 물건의 단순한 교환을 넘어선 복잡한 거래는 사회적으로 복잡한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유 돈을 가진 사람이 기업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것은 금융제도가 갖추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장기적 안목에서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구입하고, 불확실하지만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사람들 사이에 위험을 공동으로 묶어 보험을 만드는 등, 생산성 높은 복잡한 경제행위는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

세상 일의 성패에는 운이 많이 작용한다. 어떤 사업, 어떤 방법이 성공할지 미리 알 수 없다. 운이 따라서 성공한 사업이나 방법으로 거둔 수익을 그 사람이 모두 누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반면, 실패한 사업이나 방법은 불운 때문에 그리되었을 수 있으므로, 실패의 책임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라는 것 역시 불공평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실패한 사업이나 방법에 국가가 보조금을 투입하여 계속 지속되도록 한다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실패한 사업/방법으로부터 성공한 사업/방법으로 자원이 이동하도록 해야 전체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된다. 시장은 바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시장의 효율성이 발휘된다면, 사람과 자원의 잠재력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발휘될 것이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계약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생산성이 높은 복잡한 경제행위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선진국에는 구비되어 있으나 개발도상국에는 결여되어 있다. 한편, 소수의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면서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에도 만연해 있다.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와 소수의 집단의 이기적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면,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혁신이 계속되면서 부강해질 것이다. 반대로 사유재산의 보호가 미흡하고, 일부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전체에 우선하는 행위가 제지 없이 마구 자행된다면, 그 경제에서 생산성 높은 경제활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민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생 동안의 연구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문장이 길고 복잡하여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현학적인 이론을 구사하지 않아 일반인도 논의를 따라갈 수있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으로 드물게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고 바로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그가 오래 활동을 했다면 통찰력있는 많은 작품을 남겼을텐데 안타깝다. 다시 읽어볼만한 좋은 작품이다.

2021. 8. 11. 22:55

William Easterly. 2001. The Elusive Quest for Growth: Economists' adventures and misadventures in the tropics. MIT Press. 291 pages.

저자는 월드 뱅크의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발도상국의 문제점을 검토한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하도록 하는 요인에 대한 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틀렸다. 첫째,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은 자본이 부족하여 발전을 못하기 때문에, 자본을 지원해주면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개발도상국에 인력과 기술은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만 대주면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데, 개발도상국은 자본을 투자한다고 해도 이를 운용할만한 인력과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생산성을 올리지 못한다. 둘째,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이 인적자본이 부족하여 발전을 못하므로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국내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을 제대로 소화할만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거나 무용지물이 되버린다. 셋째,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이 소득을 높이기 위해 인구 압력을 낮추는 것이 필수라고 주장하는데, 출산율과 소득간의 인과관계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 실상은, 출산율이 낮아지면 소득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오르면 출산율이 낮아진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하는데 부족한 자본을 국제사회의 신용 공여와 원조로 보충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개발도상국에 제공된 신용이나 원조가 경제발전을 위해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국제사회의 신용과 원조는 경제개발에 쓰이기보다 지배층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개발도상국의 빚은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되어 구제금융이나 빛 탕감으로 귀결된 경우가 허다하다. 개발도상국의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여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국제사회의 신용과 원조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이 착복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신용과 원조는 의도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난 기간의 경제 운용 성적에 따라 신용과 원조를 공여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제대로 경제를 운용하는 정부에 신용과 원조를 몰아주는 반면, 제대로 경제를 운용하지 못하는 정부에는 신용과 원조를 줄여야 한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핵심 요인은 자본보다 기술이다. 자본에 대한 수익은 체감하기 때문에 자본을 증가시켜 생산성을 높이는데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 기술이 높아지면 수익이 더 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기술은 이를 개발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더 큰 이익을 가져오며, 이미 기술이 축적된 위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며, 기술 인력은 서로 함께 함으로서 서로의 생산성을 높이는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이미 기술이 높은 선진국은 기술 인력을 더 많이 모을 수있으며 더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 선순환을 가져오는 반면, 기술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은 이미 있는 기술자들 조차 해외로 이주하고 기술부족이 더 심화되어 경제발전을 할 수없는 악순환을 낳는다.

개발도상국은 정부의 규제가 성장을 막는 장애물이다. 정치인과 관료 등 기득이권자들이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기보다 사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은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정치인과 관료의 부패가 심한 곳에는 해외로부터 직접투자가 들어오지 않아 선진 기술을 배우지 못하며, 자원을 노리고 들어온 투자의 경우, 권력자들이 수익을 착복하여 해외로 유출시킴으로, 자원 개발로 거둔 수익은 국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 부패의 먹이감이 될 뿐이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은 소득 양극화와 다민족 갈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한 경우 정부는 경제 전체를 위한 정책을 펴기보다 소수 부자 지배층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책으로 일관한다. 여러 민족이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가는 지배층이 속한 민족에게만 이익이 되고 타 민족은 배제하는 정책을 펴기 때문에, 전체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기 어렵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에 매진하지 못하는 진정한 원인은 국민들이 계급과 민족으로 서로 갈려 갈등을 벌이기때문에 정치가 불안하며, 그 결과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된 제도를 갖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열심히 일한 결과물을 언제 뺏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노력과 투자를 하려하지 않는다.

저자는 월드뱅크에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연구와 지원활동을 배경으로 이 책을 썼다. 곳곳에서 저자의 경험에 기반한 안타까운 감정을 담은 사례들을 접한다. 개발도상국에 대해 그가 느끼는 답답함을 독자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문제점은 잘 지적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개발도상국을 덧에서 벗어나게 할지에 관해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도 책의 말미에서 이를 고백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까지, 저자가 질문에 대해 무언가 답을 주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결국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여 허무했다. 사실 명쾌한 답이 있다면 벌써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빈곤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들과 같이 빈곤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개발도상국의 미래에 절망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근래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도, 동아시아만큼은 아닐지라도 경제성장이 제법 꾸준히 이루어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2021. 3. 7. 21:24

Robert Bates. 2010. Prosperty and Violence: the political economy of development. Norton. 98 pages.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인데, 국가의 폭력이 서구의 역사에서는 제어될 수 있었던 반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제어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의 폭력이 제어될 때 경제 발전이 가능한 반면, 그렇지 못할 때 빈곤과 비참이 지속된다.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가족과 친족이 폭력을 행사하는 단위였다. 가족과 친족의 구성원이 폭력을 당했을 때 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복수하고 이는 다시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평화는 잠정적 과도기적 현상으로, 때때로 폭력이 분출되는 사이클을 보인다. 마치 화산이 분출과 휴지를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리듯이.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유재산권이 언제라도 침탈당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본을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하지 않으므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새로운 재배 기술이나 새로운 종자을 시도하려하지 않으며, 상업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조금 더 높은 생산성을 바라면서 새로운 종자나 재배 기술을 시도했다가 만일 실패하면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생산성은 낮지만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업작물을 재배했다가 시장 상황이 악화되어 가격이 폭락하면 생존의 위협에 처하므로 돈은 안되지만 자급자족할 수있는 생산성이 낮은 전통적 농업을 고집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 친족이란 예기치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적 성격을 지닌다. 작황이 나쁘거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친족과 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언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처는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친족과 부족 구성원을 위해 나의 노동을 바치고 폭력의 행사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족과 부족을 단위로 폭력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전통 사회는 외면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상은 평화롭지 않으며 구성원에게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친족과 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단위인 국가에 폭력의 행사를 위임하는 관행이 출현했다. 국가의 지배자가 중앙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에 구성원간 사적인 폭력을 제한함으로서 평화를 가져올 수있다. 지역 엘리뜨에게 사적인 폭력 수단을 포기하는 댓가로 지역의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나누어 준다거나, 국가의 고위직을 부여하여 국가나 지역의 통치에 동참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적인 폭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문제는 국가의 지배자가 폭력을 중앙에 집중하여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큰 군대가 필요한데,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높은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지배자는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에 더하여 지주와 상공인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이 비용을 충당하려 하는데, 지주에 대한 세금은 지역 엘리트와의 관계 때문에 고율로 착취하기 어렵다.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기도 어려운데, 왜냐하면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요구하면 그들은 자신의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 딜레마를 가장 먼저 해결한 나라이다. 왕이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지주와 상공인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이다. 영국의 의회는 국가의 재정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짐으로, 왕이 함부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돈을 쓰는 것을 제어한다. 왕의 행위를 의회가 통제하기 때문에 국민의 사유재산권은 왕의 침탈로 부터 보호된다.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가 보호된다는 보장이 있기에,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먼저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영국은 이웃나라와의 군사적 경쟁에 필요한 군비를 민간 자본으로부터 장기 저리로 조달할 수 있었다.

제 3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이 빠진 것을 기화로 독립을 얻었다. 이들 나라에서 폭력은 부족의 휘하에 장악되어 있으며, 국가가 폭력을 중앙에서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들 사이에 폭력을 주고 받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이들 나라의 지배자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군대를 유지하고 지역 엘리트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민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원조 자금과 이권으로 융통한다. 이들은 유럽과 달리 지배자가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국민의 대표나 지역 엘리트에게 위임하는 댓가로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않으므로, 국민과 지역 엘리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일방적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배자가 언제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를 뺏을지 알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노력을 투입하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컨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라고 주는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개발도상국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정치 민주화나 경제개발은 국가의 지배자가 국민에게 자신의 통치 권한을 위임하고, 지배자의 뜻에 따른 자의적 폭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에만 가능한데,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바로 이러한 제도가 발전할 수있는 기반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의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과 선진국의 정치경제의 역사를 대비함으로서, 국가의 정치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국가는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이며, 통치자의 자의적 폭력을 대의 기구를 통해 제어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열쇄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사유재산이 보호된다고 해도, 왜 어떤 나라에서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더 활발한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지만, 경제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확인시켜준다. 평이하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 쓴 것 같지만 많은 자료를 소화하여 만들어 낸 좋은 에세이이다.

2021. 2. 18. 17:40

Joel Mokyr. 1990. The Lever of Riches: Technological creativity and economic progress. Oxford. 304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이다. 이 책은 인류의 기술 발전의 역사를 조감하고, 왜 어떤 사회에서 어떤 시기에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사회의 다른 시기에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설명한다. 책의 전반부는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기를 지나, 19세기를 산업 발전기를 거쳐 1914년까지 각 시기별로 에너지, 재료, 운송수단 등의 분야에 집중하여 기술 발전의 역사를 기술한다. 책의 후반부는 기술 발전의 사회적 메카니즘을 설명하는데 할당한다. 

어떤 요인이 기술발전을 이끄는가? 자연자원, 임금수준, 경로의존, 종교, 가치관, 소유권 보호 제도,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개방성, 혁신에 대한 반발, 국가와 정치, 인구 증가, 등의 요인을 차례 차례 검토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기술 발전에 기여 요인이기는 하지만, 어느 한 요인도 외생적 사건인 신기술 출현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중국은 600~1200년대 당송 시대만 해도 기술 발전이 매우 활발하였으며 서구를 수백년 앞섰다. 그러나 1300년대에 명나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존재하던 기술도 퇴보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지 않는 기술 정체 상태를 오래동안 지속했다. 반면 서구는 1300년대 르네상스, 1400년대 발견의 시대, 1500년대 종교개혁, 등을 거치면서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 시대의 지식을 되살리고, 중국과 이슬람으로부터 기술을 배워오고, 마침내 1700년대 중반 산업혁명을 통해 비약적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왜 어떤 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하는지 설명하려면 두가지 요인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기여하는 긍정적 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는 부정적 요인이다. 모든 사회는 전통과 이에 기반한 기득이권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방법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손해를 보기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한다. 새로운 기술로 이익을 보는 사람 winner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반면, 손해를 보는 사람 loser 은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저지하는 조직적인 세력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기술 혁신의 관건이다. 

왜 중국은 정체된 반면, 서구는 계속 발전했을까? 두가지 요인을 핵심으로 든다. 첫째는 물질주의적 실용주의 materialistic pragmatism 세계관이다. 자연을 통제함으로서 물질적 풍요를 높일 수있으며,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목적에서 지식을 접근하는 관점이다. 이는 도덕적 가치, 미적 가치, 지적 가치, 종교적 가치를 삶과 지식에서 우선시하는 세계관과 대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럽은 다른 사회와 달리 물질적 실용주의가 정착하게 되었을까? 유럽에서도 중세까지 기독교 신앙은 금욕과 세속 부정의 교리를 설파했다. 그러나 근세로 오면서 기독교의 교리는 변하였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하느님의 영광을 실현하는 행위로 보는 기독교 교리가 세속적 경제활동과 결합하면서, 물질주의적 실용주의가 정착하였다. 반면 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불교와 유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였으므로, 인간의 복리를 높이기 위한 자연의 물리적 탐구와 기술적 조작이 권장되지 않았다.  

둘째는 유럽의 다원주의적 사회이다. 유럽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으며 서로 간 경쟁관계에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한 나라에서 억압을 받더라도 이웃 나라로 도피하여 뜻을 펼수 있기에 기존의 방식과 다른 것에 대한 억압이 철저할 수없었다.  유럽은 중국과 달리 새로운 것이 숨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열려 있었다. 물론 여러나라로 분열되어 있으면 갈등과 전쟁의 비용이 엄청날 수있지만, 유럽은 전체로 볼 때 다원주의의 이익이 피해보다 더 컸다.

세번째 요인은, 왜 유럽에서도 영국이 먼저 산업 혁명에 착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요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한 발명가 기술자들은 중류층 출신인데, 이들이 대륙의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프랑스는 귀족과 빈농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한 반면,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중류층 상공인들이 증가했는데, 이들이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영국의 정치 지배층은 지주들이었는데, 이들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집단이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여 기존의 방식을 뒤업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영국의 지주들은 상공인으로 탈바꿈하면서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을 보았으므로, 새로운 기술 도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을 억압하였다. 반면 중국에서는 지주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상공업 계층이 기술발전을 통해 부를 쌓아 힘을 축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주와 관료 계층은 기존 질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기술 발전의 싹을 엄격히 틀어 막았다. 사실 영국과 서구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반발과 억압하려는 노력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서구는 중국과 달리 기술 발전을 틀어막는데 실패했다.

네번째 요인은, 영국의 기술발전은 민간이 주도하여 이루어졌으며 시장 경쟁이 기술발전을 이끈 동력이었다. 반면 중국은 고대부터 국가가 큰 사업을 주도하고 기술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회였다. 중국에서 민간의 사업은 국가의 보호아래 독점적 사업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지배층 특히 통치자의 의지에 따라 기술 개발이 억압되었다.

기술 혁신의 선두에 선 나라가 그런 다이나믹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다 (Caldwell's Law). 기술 발전의 선두에 섰던 영국은 18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독일과 미국에 기술 개발의 기수 지위를 넘겨주고 국력이 쪼그라 들었다. 기술 발전이 계속되지 않으면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기에 부가 확대될 수 없다. 기술 혁신이 오랫동안 계속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점차 몰아내고 자신들이 기득권층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이들은 다음 세대의 새로운 기술 발전을 저지하는 세력이 되기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서 뒤쳐져 있던 나라가 선두에 선 나라들을 모방하고 따라잡으면서 선두 자리를 대체한다. 서구 전체로 보면 산업기술의 발전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대륙과 미국으로 이전되면서 지금까지 서구가 세계 다른 지역에 앞서 기술 발전의 선두를 계속 유지한 것이 지난 300년간의 역사이다. 서구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기술 발전의 동력을 계속 유지시킨 것이다. 현재 미국이 기술 발전에서 가장 앞서 있는데, 후발국인 중국이 일부 기술 분야에서 서구를 따라잡고 앞서는 현상이 관찰된다.  앞으로 서구가 서구이외의 지역에 의해 따라잡히고 뒤로 물러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기술 발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신기술에 대한 반발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사회가 다양성을 잃거나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 기술 발전은 정체하게 된다. 서구 사회는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계속 유지했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기술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서구의 기술발전을 연구한 최고의 전문가답게, 저자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술이 명료하고, 주제와 관련해 밝혀진 것과 의심되는 사항을 비교하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몰입하게 되는 정말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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