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earsheimer. 2014(2001). Tradegy of Great Power Politics. W.W. Norton. 411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자신이 "공격적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 라고 명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핵심을 설명하고,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 전쟁에서부터 최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 사이의 주요 국제정치적 갈등을 예로 하여 자신의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국제정치의 세계에는 국가를 넘어서는 권위체가 없으며,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을 각자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국가들 사이에 권력 경쟁이 치열한 무정부 anarchy 상태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며, 한 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의도는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는 자신의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경제와 군사력을 키우고, 주변에 위협이 될만한 나라가 부상하는 것을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국가가 속한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유일한 강대국이 되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게 안보를 보장하는 길이다. 자신의 나라와 대양을 넘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자신에 비견할만한 그 지역의 유일한 강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자신의 안보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
강대국이 주위의 나라들에 대해 공격적인 이유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신의 나라의 기존 지위 status quo 에 안주해서는 자신의 안보를 확실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에서 최강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응해 다른 나라와 연대를 도모하여 안위를 보전해야 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확실한 안보를 위해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offensive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주변국에 대해 공격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선의와 평화를 강조하는 미국이지만, 상대의 도발이 없음에도 이라크를 침공하고 중남미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공작을 수시로 감행한 것에서 보듯이, 국가의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상대의 선의에 의지해서는 안되며, 국제정치체제 속에서 자신의 상대적 힘을 기르고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국가들 사이의 관계 및, 각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은, 각 국가들이 처한 국제정치 시스템의 권력 분포에 따라 결정된다 (structural realism). 각 나라의 국내 정치가 민주주의건 전제주의건, 자본주의 체제건 공산주의 체제건, 지도자의 성향이 어떠하냐 등에 관계없이, 즉 이념, 체제, 지도자의 성향 등 국내적 변수와 상관 없이 모든 나라들은 국제정치 시스템 내에서의 구조적 맥락에 맞추어 행동한다.
국제정치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비등한 힘의 두 강대국이 대치하는 양강 구도(balanced bipolar structure), 셋 이상의 비등한 힘의 강대국이 포진한 다자 구도 (balanced multipolar structure), 한 나라가 지역의 다른 나라들보다 힘이 우세한 상황에서 셋 이상의 강대국이 포진한 다자 구도(unbalanced multipolar structrue). 제2차 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냉전 상태가 첫번째 경우이며, 독일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면서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이 포진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유럽이 세번째 경우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래 독일이 부상하기 이전까지 19세기 중반의 상황이 두번째에 해당한다. 첫번째 즉 양강 구도가 가장 평화로우며, 다음으로 두번째, 즉 균형된 다자 구도가 평화롭게, 세번째, 불균형된 다자 구도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한 나라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불균형 다자 구도에서, 강한 나라는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에 따르자면, 20세기 초반 유럽은 불균형 다자구도 속에서 독일이 우세한 상황이었으므로, 히틀러가 출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독일이 주변 국가를 침공하여 유럽의 지역 패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지역, 즉 서반구에서 유일한 강자가 되었다. 반면 1800년 초반 프랑스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 초중반 독일이 주도한 제1, 2차 세계대전, 일본이 주도하여 아시아 전역을 휩쓴 제2차 대전, 등에서 유럽 혹은 아시아 지역을 제패한 유일한 강자가 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다. 미국은 건국이래 북미 전역을 힘으로 정복하여 통일하고, 1823년 몬로 독트린 이래 서구 열강이 서반구에 세력을 펼치는 것을 막았으며, 20세기 두차례의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과 경쟁할만한 지역의 패권 국가가 부상하는 것을 막았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의 세력이 서구 유럽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샬플랜이라는 대규모 경제원조와 NATO라는 군사적 투자를 통해 소련의 확장을 막았다.
1990년 소련이 스스로의 문제 때문에 붕괴하면서, 이차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의 대치 상태, 즉 냉전 Cold War 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강대국 unipolar system 의 지위에 등극하였다. 이제 미국은 경쟁하거나 우려할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내키는 대로 개입하였다. 1990년 초반의 이라크 전쟁, 2000년대의 아프간 전쟁, 2차 이라크 전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이 모든 개입에서 단기적 전쟁에는 승리하였지만, 해당 지역 사람들의 자주 자결을 원하는 민족주의와 충돌하였기 때문에 결국 물러나야 했다.
1980년대 이래 중국의 빠른 경제 부상으로 2000년대 들어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경쟁자가 될 조짐이 보이면서,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중국의 개방과 경제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는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고 중류층이 비대해지면 결국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한 외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방 경제는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평화를 촉진하리라는 자유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바탕을 둔 정책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미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자 아시아 대륙에 패권적 지위의 강대국이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및 안보적 이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높아졌으며, 결국 미국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는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미국은 호주, 일본, 인도, 등과 연대를 맺으며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며, 중국의 경제와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역 규제와 기술 수출 제한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저자의 "공격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이 예측한 그대로이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당연히 반발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남북간 충돌이나, 타이완을 둘러싼 충돌, 등이 미국과 중국간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큰 곳이다. 중국과 미국 모두 핵 무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면전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은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 있으며, 국지적 충돌의 충격이 체제 전체로 퍼지면서 확대될 가능성이 유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간 전쟁의 부담이 과거 냉전시절 소련과 서유럽 혹은 미국과의 전쟁의 부담보다는 훨씬 덜하다. 다시말하면 중국과 미국간의 제한된 전쟁의 가능성은 냉전시절보다 높다.
중국의 부상이 지속되면, 주변에 있는 국가들은 국외의 강대국인 미국 및 지역 국가들 서로간에 연대를 맺으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균형 외교 balance of power 를 펼치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지역의 유일한 강자가 되는 목표를 추구할 것이며, 지역의 패권을 쥔 강대국은 그 지역의 여타 나라들에 간섭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남미에 대해 그래온 것 처럼, 중국도 지역 패권 국가가 되면 유사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 책은 출간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현실주의 정치이론의 고전이라고 지목될만큼 국제정치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의 단순 명쾌한 이론과 경험적 사례 검증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국제 제도의 효용을 과소 평가한다거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힘의 논리 이외에 다른 가치도 유의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근래에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현실주의 정치 이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현실을 설명하는 사회과학 이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서이면서도 쉽게 다가오는 흥미로운 책이다.
'배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위기 (0) | 2024.09.13 |
---|---|
혁명의 시대 (0) | 2024.09.02 |
바다의 신비 (0) | 2024.08.19 |
인터넷과 AI 가 지배하는 사회 (0) | 2024.08.11 |
똑똑하면 무슨 쓸모가 있나 (0) | 2024.08.05 |
Gerald Davis. 2009. Managed by Markets: How finance reshaped America. Oxford University Press. 255 pages.
저자는 조직을 전공한 경영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이래 금융 시장의 부상을 중심으로 미국 경제사회의 변화를 검토한다. 다음 몇가지 주제에 논의를 집중한다. 첫째는 거대규모의 제조업의 주식회사 (big corporation)를 중심으로 하던 미국의 경제 체제가 변하고 있다. 둘째,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 산업의 비중이 커지고, 중심이 은행으로부터 자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시장에서의 가치가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의 기준이 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초까지 거대 규모의 제조업 분야의 소수의 주식 회사들이 각 분야의 산업을 과점하는 경제 체제였다. 매출액과 고용에서 거대한 조직들은 거대한 자산과 높은 생산성, 안정적인 고용, 제조업 중심의 특징을 보였다. 주식회사의 소유 구조는 매우 넓게 퍼져 있었으며, 경영진은 주주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경영자들은 주주는 물론 종업원, 지역사회,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stakeholders)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회사를 이끌었다. 회사의 규모가 클 수록 경영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회사 경영의 최우선 목표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다. 종업원은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며, 내부에서 성장한 사람이 경영자로 발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은 매출보다 이익을 중시하게 되었다. 회사를 담보로 빚을 내서 공격적으로 인수하거나(leveraged buyout), 경쟁 관계의 다른 회사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인수 합병하는 행위 등에 대한 법적 제한이 사라지면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어 현금 흐름이 탄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여 회사 사냥꾼의 공격을 예방하는 것이 경영자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회사의 핵심 업무가 아닌 분야는 외부에 매각을 하고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경영자와 종업원 모두 언제든 회사에서 쫒겨날 것을 예상해야 하기에 회사에 대한 충성은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주의 이익이 회사 경영의 중심이 되었다. 경영자의 보수를 주식의 가치와 연동시키는 관행이 확산되었으며, 주식 가치의 단기적인 변동이 회사와 경영자의 유일한 성과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정보산업기술과 컨테이너 운송 기술의 발달로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미국의 기업들은 제조 부문을 해외로 내보내고 마켓팅과 디자인 등 무형의 지적자산만을 내부에서 보유하는 식으로 변화되었다. 제조부문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출발한 나이키나 애플과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OEM 방식으로 일부 혹은 전부의 제조 부문을 외부로부터 조달하는 사업 방식을 채택하였다. 작은 자산으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낼수록 단위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은 자산과 종업원을 최소로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과거 거대 규모의 주식회사들은 몸체를 줄이거나 해체되었으며, 대신 매출액 대비 작은 규모의 종업원을 가진 회사들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과거 미국을 대표하던 기업인 IBM, GM, Ford, GE,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 금융(finance) 산업은, 일반인으로 부터 저축을 유치하여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해주는 중개 역할을 하던 은행이 중심이었다. 자신의 위험으로 증권에 투자하거나 혹은 채권을 발행하는 투자은행은 1970년대 중반까지 미미한 규모였다. 미국의 은행은 각자의 주에서만 영업을 하도록 규제하였기 때문에, 큰 회사가 밀집한 뉴욕에 소재한 은행을 제외하고는 큰 규모가 아니었다. 각 지역의 은행은 그 지역의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970년대까지 금융 업무는 단조로웠으며, 미국 경제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했다.
1980년대 들어 은행에 대한 지역 제한과 사업 범위에 대한 규제가 철폐되고 완전히 자유화되면서 금융 산업은 크게 변하였다. 은행들 사이에 인수 합병의 바람이 불면서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거대규모의 은행이 등장하였다. 은행의 업무도 다양해져서, 단순히 수신과 대출을 중개하는 역할을 넘어, 기업의 인수 합병을 중개하고 자금을 대주며, 기업 공개와 채권 발행을 주관하고, 다양한 위험의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투자은행, 보험, 펀드 등 이전까지 분리되었던 다양한 금융 분야의 경계가 사라졌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위험에 대한 정보 수집과 평가가 용이해지면서, 과거 은행이 가지고 있던 정보 수집의 독점적 노하우가 사라졌다. 이제 기업들은 은행을 매개로 자금을 조달하기보다, 채권이나 증권을 발행하여 더 싼 비용으로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정보 기술 덕분에 증권을 발행하여 채무를 유동화시키는 것(securitization)이 용이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어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장기주택저당채권(mortgage)을 바탕으로 하여 주택 담보부 채권(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여 시장에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신 업무 없이, 시장에서 유동화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너도나도 이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상환능력이 부실한 사람에게까지 2차 3차로 모기지를 발행하도록 부축이고, 이를 바탕으로 위험도가 높은 증권을 시장에서 유통시키다가,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주택 소유자들이 채권의 상환이 어려워지자, 이를 배경으로 한 유동화 증권 또한 지급불능 사태에 이른 것이 바로 2008년 금융위기이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거대 주식 회사의 규모가 축소된 대신, 금융 부문에서 다양한 신상품이 무수히 개발되고 활발히 거래되면서, 미국의 총생산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에 이르게 되었다.
금융 시장이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인의 일상과 의식에 변화가 왔다. 미국인들은 이제 항시 시장의 가치와 시장 위험을 의식하면서 산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자신의 일자리가 달려있음을 의식하면서 직장을 다닌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자신의 회사 혹은 자신이 일하는 부문이 다른 회사에 매각되거나 혹은 다운 사이징 될 것을 염려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인의 연금 체계는, 회사가 책임지고 은퇴 기금을 굴려 종업원의 은퇴 이후 연금을 지급하는 체제 (defined benefit system)에서, 401K라 하여 개인이 책임지고 자신의 위험에 따라 은퇴 기금을 굴려서 은퇴 이후의 소득을 만들어야 하는 체제(defined contribution system)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미국인은 자본시장의 부침에 자신의 노후 생계가 달려 있음을 의식하며 생활한다. 과거에 주택이란 자신이 자식을 낳고 생활하는 가정의 물적 토대라는 개념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주택을 담보로 2차 3차 모기지를 얻어서 자금을 확보하는 관행이 일반화되고, 이후 주택 가격이 폭락하여 집을 차압당하는 사람이 주위에 흔해지면서, 사람들은 주택 가격에 민감해지고, 주택을 재무적인 가치 (financial value)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요컨대 미국인은 이제 모든 것을 그것의 시장 가치에 항시 신경쓰면서, 자신의 위험은 자신이 관리하고 책임지는 투자자(investors)가 된 것이다.
저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사회의 변화를 대체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제조업이 축소된 것이나, 금융 부문이 부상한 것이나, 세계화로 인해 다국적 기업이 부상한 점, 등 미국의 주요 변화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밸류 체인의 상위로 이전하면서 생산성이 낮은 부문을 해외에 내준 것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밸류체인에서 하위 부문을 해외로 이전하였기에, 한국과 이어서 중국이 부상하고, 세계적으로 빈곤층이 극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기술 혁신과 지적재산권 전문 기업이 미국에 집중하면서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유럽보다 훨씬 앞서게 되었으며, 경제의 역동성이 높아졌다. 금융부문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중심 거대 기업과는 대조적으로, 매출액 대비 종업원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과거 거대 주식회사를 대체했다고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등 기술 기업들은 신경제의 총아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내며 미국 경제를 떠 받들고 있다. 제조업 없이 사업하는 나이키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금융 부문의 확대와 관련된 그의 서술은 근래의 미국 경제의 변화를 읽는데 도움을 준다.
'배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똑똑하면 무슨 쓸모가 있나 (0) | 2024.08.05 |
---|---|
인간 관계망의 영향력 (0) | 2024.08.01 |
정치 전문가의 미래 예측 능력 (0) | 2024.07.19 |
업적주의 미국 사회의 폐해 (0) | 2024.07.09 |
우리 몸의 각 부분의 체계적인 관찰 (0) | 2024.07.09 |
Diego Olstein. 2021. A Brief History of Now: The Past and Present of Global Power. Palgrave Mcmillan. 354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에서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미국의 패권과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분석적으로 서술한다. 각 시기별로 각 세력 집단을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영국은 18세기 말 이래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반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가 결합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밀어붙였다. 독일과 미국은 영국의 압력에 맞서 보호무역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19세기 후반 후발 산업화와 민주주의 확대에 성공하면서, 20세기에 들어 영국에 대항하는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러시아, 오스만 터키, 중국 등, 자국의 신민을 권위적으로 억압하는 전통적인 제국들은,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산업화를 통해 군사력을 높이고 싶었으나, 국민의 참여를 높일 경우 권력자들이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개혁이 좌절되고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실패하였다.
독일은 후발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에 걸맞게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불만을 가지고, 결국 1914~18년, 1939~45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두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력은 소진되고 식민지를 잃은 반면, 미국은 영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일차대전 중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영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 대신 압도적 군사력과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여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국가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차대전후 유럽의 복구를 지원하고, 무역과 투자, 다국적 기업 등을 통해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와 미국인의 꿈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의식을 사로잡는 등, 세계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제이차대전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으로부터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결 원칙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국가주의가 결합된 체제를 채택하였으며, 미국과 소련의 패권에 추종하를 거부하고 비동맹의 제삼세계를 지향하였다. 중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가나 등이 이러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였으나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실패하였으며,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민주주의 형식을 갖춘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들 제삼세계 국가들은 1990년대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경제적으로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포함된 서구 국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속에서 케인즈의 경제정책을 따라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였으며, 이차대전 이후 고도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후 미국은 정보통신기술과 운송기술의 발달과 함께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을 지속하였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금융, 서비스, 리서치 등에 주력하는 국제분업 세계화의 선두에 올라섰다. 그 결과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소련은 중앙집중 경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이 갈수록 악화되었으며, 1980년대에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1980년대 후반,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에서 소련의 장악에서 벗어나 민주화 시도가 진행되어 결국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동구권은 서유럽에 편입되었으며, 러시아는 1990년대의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결국 민족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약화된 강국으로 복귀하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모택동 치하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1978년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 사십년간 고도 성장을 통해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선진산업국에서 1980년대 이래 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성공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분업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 산업국에서는 불평등이 높아지고 성장에서 소외된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민족주의와 반세계화의 목소리가 높아져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 등장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960~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의 실패, 2003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의 실패 등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력에 대한 세계의 존경은 사라졌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줄었으며, 미국의 이념과 문화의 매력 또한 빛바래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각 나라들은 각자 도생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높아지고 세계 질서는 다극체제로 이행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 이래 세계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20세기 후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혁명 information revolution 에 접어들었으며, 근래에 한단계 더 높아진 인공지능 혁명 Artificial Intelligence Revolution 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분야를 기계가 맡게 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은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아마도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중남미의 변화에 깊이있는 이해를 보인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제삼세계의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드문 역사 서술이다. 후반부에서는 분석의 정치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대해 높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과일나무 > 체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는 분명히 진보하고 있다 (0) | 2023.09.14 |
---|---|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나 (0) | 2023.09.08 |
미국의 외교정책은 왜 실패를 계속할까 (0) | 2023.08.29 |
우주의 시작과 끝, 그 속에서 삶의 의미 (0) | 2023.08.25 |
생산자와 탈취자, 국가의 출현 (0) | 2023.08.21 |
John Mearsheimer. 2018.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실패 원인을 자유주의적 패권 (liberal hegemony) 추구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liberalism, 민족주의 nationalism, 현실주의 realism 원칙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천부적 인권 inalianable rights, 개인의 자유 individual freedom, 및 재산의 사유 private ownership 을 축으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선호에 차이를 허용하며 tolerance, 의견 차이와 이익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체인 국가를 필요로 한다. 존 로크의 천부인권과 계약 이론이 이를 대표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좋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다.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러한 이념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족주의란 자신이 속한 민족 nation의 생존과 번영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우선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권리와 민족의 생존이 충돌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보편적인 인권보다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내 국가의 생존에 더 목숨을 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과 자주적 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권을 보유한 민족 국가 nation-state를 탄생시켰다.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다민족 국가나 국가가 없는 민족은 모두 갈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간의 관계, 즉 국제정치는 국내 정치와는 다른 역학이 작용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간에 갈등이 발생할 때 이를 강제적으로 조정할 권위적 존재가 없다. 쉽게 말해 무정부상태 anarchy 이다.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해도 유효하게 제제할 수 없다. 소위 정글이라 표현하는, 힘의 원리만이 작용하는 장이다. 국제기구나 국제법이란 국가들간에 자발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 힘있는 국가가 이를 위반해도 강제할 수 없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 self-help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합종연횡, 즉 힘이 약한 국가들이 연합하여 힘있는 국가와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 balance of power 으로 각 국가들은 안보 위험을 해결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세계에 경쟁자가 없는 일극체제 unipolar system의 정점에 올라섰다. 일극체제의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전보다 더 미국의 자유주의 원칙을 세계 각국에 전파, 강요하였다. 문제는 미국의 개입을 받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침입하여 그 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미국식, 즉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으려 하면,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반발을 초래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개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살상과 혼란이 발생하여,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미국의 이념과 체제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개조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자유주의를 전파하겠다고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전쟁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라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정도에서 멈추어야 한다. 미국이 자유주의를 전파하려는 외교정책을 포기할 때,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국제정치는 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예외적으로 평화로울 것이라는 주장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평화와 번영과 인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국가 benign country 이므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또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자국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언제고 상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이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주의를 숭배하지만, 미국인들이 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를 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제한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을 받은 외국인들은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신의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이상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포기할 때 세계는 물론 미국 국내사정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들어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를 미국의 외교 무역정책에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러나 미국이 실패하고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무어라고 해도 한국은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정책의 최대 성공작이다. 넉넉한 형님같이 한국에 베풀어준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은 냉전체제에 공산주의에 대적하는 미국의 쇼윈도에 걸린 모델이 된 덕분에 운좋게 잘 풀렸지만 말이다.
'과일나무 > 체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나 (0) | 2023.09.08 |
---|---|
세계 패권의 변화 (0) | 2023.09.02 |
우주의 시작과 끝, 그 속에서 삶의 의미 (0) | 2023.08.25 |
생산자와 탈취자, 국가의 출현 (0) | 2023.08.21 |
남자와 여자는 왜 짝짓기 전략이 다른가 (0) | 2023.08.17 |
Amitav Acharya and Barry Buzan. 2019. The Making of Global International Relations: Origins and Evolution of IR at its Centenary. Cambridge. 320 pages.
저자는 국제관계학자들이며, 이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최근까지 국제관계의 변화를 정리하면서, 이러한 정세 변화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국제관계의 변화는 크게 5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제 1차대전 이전까지,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기간, 2차대전 이후, 1989년 공산권의 몰락 이후, 21세기에 접어들어 지난 20년간.
제 1차 대전 이전 시기의 국제관계는 유럽의 중심국이 여타 세계의 식민지를 거느리는 제국주의 시기이다. 인종주의가 이 시기를 지배하는 이념이었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와 여타 국가들간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일본은 이러한 서구 백인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애매한 존재로 중심국에 편입되어 있었다. 서구 국가들 사이의 국제관계는 강대국들 사이에 '힘의 균형' (balance of power)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1차 대전 이전 상황의 연장이다. '국제연맹'이라는 국가들을 아우르는 조직이 국제사회에 새로이 등장하여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간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1차 대전은 영국, 프랑스 등 선진 산업국과 독일이라는 후발 산업국간 힘의 균형의 변화가 원인인데, 전쟁이 그러한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서구사회는 또다시 전쟁을 맞게 되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이 국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대국들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전면전은 패전국은 물론 승전국에게도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1,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은 몰락하였으며,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게 되었다.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오랫동안 견지하던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2차대전 이후 유럽 제국주의에 복속되어 있던 식민지들이 독립함으로서, 비록 국가들간 상당한 차이는 있지만 국제사회는 서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라 세계 여타지역의 국가들도 참여하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난 국가들 중 일부는, 미국과 소련의 양진영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제3세계 비동맹 그룹을 형성하였다. 냉전시기에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간에 대립과 경쟁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삼세계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은 이차대전 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를 만들고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는 자유주의 (liberalism) 국제정치 이론에 반영되었다.
2차대전은 핵무기를 국제사회에 등장시켰다. 핵무기는 전쟁의 승패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이후 미국과 소련간 핵무기 경쟁과 억제의 구도 속에서, 강대국간 전면전의 가능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왔다. 강대국간 전면전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원을 받는 대리 전쟁은 세계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졌음으로 이 시기를 평화롭다고 규정하는 것은 서구 편향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1989년 공산권은 내부적인 비효율 때문에 함몰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 체제의 세계질서가 등장하였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더이상 강대국간의 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낙관론이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중국과 인도가 성장하여 점차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들어 브라질과 러시아 등과 함께 강대국 군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는 다극체제로 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1세기에 들어 국제사회는 다극체제의 모습을 점차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세계의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이 수반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서구의 자본주의의 약점을 두드러지게 노출시켰으며, 반면 30여년 동안 꾸준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중국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제삼세계 국가들에게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와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약점을 세계 만방에 재확인시켰다. 미국은 이제 세계를 전면에서 이끄는 지위에서 내려왔으며, 자신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여러 강대국 중 하나의 위치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세계질서에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을 차지하는 반면, 오랫동안 국제관계를 지배했던 인종주의는 점차 쇠퇴할 것이다.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제삼세계 국가들의 비중이 커진 반면, 서구 강대국들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미래에 오늘날의 시기를 뒤돌아볼 때, 국제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제삼세계 국가들의 부상일 것이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계속 커질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관계 학문도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비서구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접근으로 바뀔 것이다.
이 책은 학술서로서, 국제관계 학문는 국제정세에 좌우된다는 지식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20세기 후반까지 비서구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됬으므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없었으며, 국제관계 학문에서도 거의 존재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 사회의 부상이 앞으로 국제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16세기에 서구가 아시아를 앞서 근대화한 이후, 비서구 사회는계속 뒤쳐져 있었으며, 앞으로도 비서구 사회가 서구사회를 앞설 가능성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구 문명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지난 백년동안 국제정세의 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다.
'과일나무 > 살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는 왜 있는가 (0) | 2023.04.17 |
---|---|
인간은 분류하는 동물이다 (0) | 2023.04.12 |
다정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0) | 2023.04.02 |
세상과 인생은 정돈되어 있지 않다. (0) | 2023.03.29 |
진짜 얼마나 위험한가 (0) | 2023.03.26 |
Binyamin Appelbaum. 2019. The Economists' Hour: False prophets, free markets, and the fracture of society. Little, Brown and Company. 332 pages.
저자는 기자이며, 이 책은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경제학자가 미국의 정책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케인즈의 이론, 즉 정부가 적극적 재정 확장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론은 1960년대 이후 시장주의, 즉 경제는 시장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론에 의해 대체된다. 20세기초까지 정부의 정책 형성에서 경제학자의 역할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래 경제학자의 영향은 꾸준히 확대되었다.
1970년대에 미국은 극심한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결합된 어려움 속에서 시장주의 노선을 택하게 된다. 그때까지 경제 전반에 지배했던 규제를 폐지하고 시장경쟁에 의해 생산성을 높이고 실업율을 줄이는 전략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가속화된다. 대규모의 세금 철폐를 통해 투자를 촉진한다는 공급경제학 이론이 등장했으며, 노조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복지 지출을 감축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80년대에 경기를 진작시키는데 기여했으나,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0년대 이래 환경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대기업의 시장 독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규제 강도와 범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때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규제에 대한 비용손익분석을 실시하여, 경제적 이해에 따라 규제의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관행을 정착시켰다. 이러한 접근의 문제는 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정의는 반드시 함께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조치가 아무리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더라도, 인간의 기본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형평의 원칙에 위배될 경우, 과연 이를 추진하는 것이 타당한가는 의문이다. 비용손익분석의 두번째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상황에 대해 비용손익을 분석하는 것은 객관적인듯 하지만 주관적인 요소를 내포한다는 점이다. 구성 요인에 대해 어떤 가정을 하고 어떻게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분석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극심한 인플레에 대처하기 위해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는 통화주의자(moneterist)의 이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실업율이 어느 정도 올라가더라도 인플레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통화주의자의 믿음은 카터 대통령이 임명한 폴 볼커 연방지준은행장을 통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이후 중앙은행은 정부와는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매입하거나 시중은행에 대한 지준율을 조정함으로서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는 케인즈 이론에 따른 정부의 확장/긴축 재정정책과 함께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는 중요한 정책도구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초에 미국은 2차 대전 이래 유지했던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다. 이후 레이건 대통령 시절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90년대 초반 저축은행의 대규모 부실 파동을 겪고, 2008년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는 모두 금융기관의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투자와 대출 행태가 빚어낸 파국이다. 정부는 그들의 무모함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정부가 손실을 떠안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때 경제학자들은 어떤 조치가 해당 행위의 결과에 더하여 그와 연관된 사태에 미치는 영향(collateral effects)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시장 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금융위기를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과 세계에는 시장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화가 전개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졌지만, 불평등이 확대되고, 대기업의 독과점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하고, 제조업 대신 확대된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를 이민자로 채우면서, 이민자를 배격하는 파퓰리즘이 득세하였다. 이제 정치와 정부 정책에서 경제학자의 역할은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 책은 기자의 시각에서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근래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의 전개를 서술한다. 이는 학자들이 분석적, 체계적으로 사안을 접근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특정 사안에 대해 경제학자의 의견이, 그 당시 다른 관련 요인들과 비교할 때,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하는 식으로 체계적 논의를 기대했는데, 약간 실망했다. 시장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담겨있지 않아 진부하다. 어느 경제학자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 젊을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 특이한 냉소적 발언, 등 수많은 사소한 서술은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엄청나게 많은 고유명사가 등장하여 읽는데 애먹었다.
'과일나무 > 살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를 탐사하다 (0) | 2023.03.06 |
---|---|
인간 본성의 문제를 이해하고 이용하기 (0) | 2023.03.02 |
인류 역사는 무력 행사의 역사이다. (0) | 2023.02.21 |
구글의 인사관리 정책 (0) | 2023.02.15 |
가장 현실적인 도덕율을 찾아서 (0) | 2023.02.12 |
2020. 12.9. 작성.
나는 한때 미국에서 살았고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로스앤젤레스(LA)는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그곳에 사는 가까운 친지를 방문하여 수일간 머물렀다. 오래전 이민 간 친지를 머나먼 이국 타향에서 만났을 때 반갑고 울컥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 함께 살며 나를 무척 귀여워해 줬다. LA 코리아타운을 돌아다니며 허름한 건물에 한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의 거리와 흡사함에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을 읽었다.
또 다른 미국의 중심,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LA 행정구역상의 인구는 사백만이 채 못 되지만, LA 생활권까지 포함하면 천삼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 도시이다. LA는 도시가 주변으로 무계획적으로 팽창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도심에 몇 개의 고층빌딩을 제외하고는 낮은 건물들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LA 주변을 감싸고 고속도로가 스파게티처럼 얽혀 있으며 통근시간에 교통 체증이 심하기로 미국에서도 손꼽힌다. 그 덕분에 한때 LA는 대기오염이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도시로 명성이 높았다.
근래에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 밸리가 뜨면서 약간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LA는 서부에서 산업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서부의 중심 도시이다. LA에는 제조업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이 왕성하다.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와 같은 동부의 도시들이 미국 역사의 중심에 있다면, 로스앤젤레스는 그러한 정통적 미국의 정반대를 상징한다. 영국의 식민지에 뿌리를 두고 유럽에서 온 백인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미국의 전통은 LA와 거리가 멀다.
현재 LA에서 백인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도 못 된다. 중남미계 이민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나머지를 아시아계와 흑인이 각각 10%씩 나누어 갖고 있다. 2040년이 되면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LA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소수인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되었다. 사실 LA에 중남미계 이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이 1848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빼앗은 땅이다. 1980년대에 멕시코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멕시코인들은 미국에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넘어와 일하다 일이 뜸해지면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그러다 1980년대에 국경 관리가 엄격해 지면서 한번 미국으로 넘어온 멕시코인들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LA와 같이 국경에 가까운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특이한 발전
동부 사람들이 보기에 로스앤젤레스는 허황한 꿈에 부푼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이다. 1849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미국 동부에서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까지 일확천금을 좇아 모여들었다. LA는 바로 이 금 채굴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고 조달하는 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성장했다. 사실 골드러시 때 금을 채굴하여 돈을 번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대주면서 돈을 번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청바지를 제조하는 리바이스가 대표적 사례이며,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가 골드러시 덕분에 발전했다. 19세기 후반 LA 인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한때 천 개가 넘는 석유 채굴 봉이 있었으며 미국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상당 부분을 LA 유전에서 조달했다. 지금도 LA의 북서쪽 다저 스타디움 근처에서 석유 채굴 펌프가 가동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LA는 20세기 들어 지금까지 세 번의 계기를 통해 크게 변화했다. 처음은 20세기 초반으로 LA가 연중 항시 햇빛이 비치고 따뜻한 기후에 매력을 느낀 동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이다. 1885년에 동부와 LA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 산타페 노선이 완성되면서 이것을 타고 동부 사람들이 LA로 대거 이주하였다. 이들은 그때까지 조그만 항구도시에 불과했던 LA에 부동산 개발 바람을 일으키며 큰돈을 벌었다. 뉴욕에 본부를 두었던 영화산업이 LA로 건너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건설하였으며, LA에서 멀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에 도박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것도 그 무렵이다.
두 번째 발전의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찾아왔다. 미국이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LA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근거지로 크게 성장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산업 시설은 모두 동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여 서해안까지 운반하여 전쟁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기에 LA에 군수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것이다. LA에는 군함과 전투기와 무기를 생산하는 첨단 공장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후 첨단 방위산업이 LA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게 되었다.
세 번째 변화는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면서다. 그 이전까지 서유럽 출신의 이민자만 받던 이민 제한을 폐지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 법이 발효되고 얼마 지나자 매년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1960년대에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을 폐지하고 인종과 무관하게 이민자를 받아들였을 때,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그렇게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970년경에는 제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유럽이 이미 발전하였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의 도시
1970년대이래 멕시코와 인접한 남서부와 서해안 도시에는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들어온 이민자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국 정신의 몰락”, “미국의 정체성의 위기” 등을 들먹이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겼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유럽과의 연결을 중시했으며 대서양 연안의 동부 도시들이 유럽과 연결의 중심에 있었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아시아와 태평양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태평양 연안의 도시들이 새로이 부상한 것이다.
LA는 근래에도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이민자가 계속 유입하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이 도시는 태생적으로 발전에 한계를 안고 있다. 물이 부족한 것이다. LA에서 내륙 쪽으로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산맥이 보이며 그 너머는 막막한 사막이다. 원래 LA를 관통하는 강이 있었지만, 점차 수량이 감소하여 지금은 복개된 하수 하천에 불과하다. LA시는 북동쪽 네바다주 인근으로부터 매우 먼 거리를 잇는 수로관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근래에는 물 사용을 통제하여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태평양 시대의 중심인 LA는 백인이 아닌 중남미와 아시아 이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정치의 가장 기층조직인 지역 교육위원회 위원에서부터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에 이르기까지 선출직에서는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물론 LA에서도 정부와 대기업의 고위직은 여전히 백인이 다수이지만. 뉴욕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교역하는 화물 운송 덕분에 성장했다면, LA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하는 덕분에 성장했다. LA 사람들과 LA 경제의 활력은 아시아에서 온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때 LA 또한 크게 타격을 받았다.
LA도 미국의 일부이므로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92년 LA 폭동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운전자를 백인 경찰 여럿이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이들 백인 경찰이 법정에서 무죄 방면되면서 폭동이 촉발되었다. 이 폭동에서 유독 한국계 이민자의 사업장만 골라서 파괴 약탈당한 것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는 억울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은 백인인데 왜 죄 없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당해야 하냐고. 세상은 그런 것이다. 한국계 이민자와 흑인은 미국 사회에서 둘 다 약자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반면 한국계 이민자와 중남미계는 사이가 좋다. LA 코리아타운에는 한인보다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훨씬 더 많이 살며, 한국계 사업장에는 항시 중남미계 사람들이 일하며, 한국계와 중남미계는 서로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 많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LA의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도 미국인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물론 그들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미국인이지만, 백인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 주류 사회의 움직임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인으로서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LA는 미국의 서부 개척의 신화가 지금도 진행 중인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건너온 이방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미국의 전통과는 단절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곳이다. LA에서는 대를 이으며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LA에서 이민자들이 접하는 환경은 그들의 과거와 너무도 다르다. LA에서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현재의 역경을 이기면 그들의 자녀들이 성공하여 미국의 주류로 살 것이라는 꿈을 꾼다. 미래의 꿈을 꾸며 열심히 매진하는 인생은 어떻든 의미 있지 않은가. 로스앤젤레스에 한인타운을 거닐며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세계의 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전사 없이 가는 자동차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0) | 2012.11.09 |
---|---|
교과서에 관한 단상. (0) | 2012.10.20 |
아시아에 부는 새로운 정치 바람 (0) | 2012.10.11 |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 (0) | 2012.10.07 |
모든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한다면, (0) | 2012.09.16 |
김봉중. 2006. 카우보이들의 외교사. 푸른역사. 447쪽.
저자는 미국사를 전공한 학자로, 1776년 미국의 건국에서 2001년 9.11 사태까지 미국 외교의 역사를 서술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와싱턴은 퇴임하면서, 미국이 유럽의 정치사에 간여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이후 미국의 고립, 중립주의 정책은 미국 외교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는 유럽의 정치사에 대해서만 적용되었을 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까지 미국이 간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23년 먼로 대통령은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선언,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다.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앞마당이니 유럽 열강들이 탐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19세기는 미국이 서부로 개척하는데 몰두하였으므로 유럽 열강과 달리 해외에 식민지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1846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미국의 남서부를 빼앗고,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통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빼앗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팽창과 힘의 외교를 주장한 대표적인 대통령이다. 그는 중남미 국가들이 질서와 안정을 보이지 않으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학자 출신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은 이상주의 외교를 추구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개적이며 규범에 따른 국제관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 연맹을 제창했다. 그러나 그 역시 미국의 이익이 간여된 곳, 예컨대 멕시코나 동아시아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망한 후, 미국은 더이상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트루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해 그리스와 터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내용의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했다. 반공을 기치로 하여,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미국이 출동하여 막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미국의 반공 히스테리에 기인한 개입 정책은 제삼세계의 독재정권들을 지지하여 원성을 샀으며,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비참한 패배로 파국을 맞았다. 1990년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는 미국의 역할은 사라졌으나,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미국은 다시 국제문제로 끌려들어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저자는 미국의 외교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주제를 다루는 여유를 보인다. 논의에 심도가 있고, 관련된 주요 학술 논쟁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미국 외교의 원칙과 관련한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논쟁에 대해, 저자는 양비론을 편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국민 여론의 향방에 따라 움직여 왔음으로, 어느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이상주의나 현실주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상주의 외교도 현실주의 외교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미국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기치로 하는 이상주의 외교는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었지,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 대상이나 맞지 않는 시기에는 그런 외교를 펴지 않았다.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는 전략 역시 힘의 정치이다. 오래 전에 이책을 읽었고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잘 쓴 책이다.
'과일나무 > 감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유럽은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나 (0) | 2020.08.23 |
---|---|
사회는 폭력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0) | 2020.07.31 |
국가들 간에 '질서'는 어떻게 유지되나 (0) | 2020.07.25 |
강대국은 왜 어떻게 흥하고 쇠하는가 (0) | 2020.07.14 |
자본주의는 세계로 어떻게 확장되었나 (0) | 2020.07.07 |
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로, 1500년경부터 서구에서 강대국이 차례로 흥했다 쇠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 제국,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대영제국이 20세기 초까지 그 길을 밟았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소련이 그길을 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례에서 '경제력이 궁극적으로 군사력을 좌우하며 강대국의 힘의 배경이다'라는 명제를 주장한다. 두번째의 명제는, 한 나라의 국력이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그의 적의 군사력과 비교를 통해서만 강약을 가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 역시 그와 대비되는 다른 나라의 강점과 약점과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강대국이 될 수록 전세계 곳곳에 담당해야 할 안보의 부담이 늘어난다. 강대국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경제력이 정상적으로 감당할 수있는 정도를 넘어서 더 큰 군사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자원의 많은 부분을 군사력 유지에 써야 하는데, 이는 생산적 투자에 써야할 부분이나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써야 할 부분의 희생을 수반한다. 생산적 투자에 자원을 덜 투입하면 경제 성장이 늦추어지며,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쓰는데 자원을 덜 투입하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진다.
강대국의 밑에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과 비교하여 군사력보다 생산적 투자에 더 많은 자원을 할애 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들 중 강대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나타난다. 그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고, 기존의 강대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극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교체는 결코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이 서구를 앞섰으나, 이후 서구가 앞서나가며 다른 문명을 복속시킨다. 가깝게는 유럽의 정치문화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유럽은 다양한 정치 집단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경쟁은 제도와 기술의 혁신, 경제 발전과 군사력의 성장을 낳았다. 반면 중국, 인도, 이슬람 지역에서는 강력한 단일 정치집단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문화를 뿌리내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득이권 집단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기존 질서에 위험 요소가 될 어떠한 것이라도 초기에 싹을 자르는 조치를 취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명나라 시기에 해외무역을 금지하면서 큰 배를 모두 없애고 새로 건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들 수있다.
유럽이 동양과 달리 다양한 정치 집단이 공존할 수있었던 것은, 산악과 바다와 강, 다양한 기후의 자연 환경이 단일 정치체제의 출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륙과 바다로 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와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는 산악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중상주의 정책에서 보듯이 경제력에서 서로 경쟁하며,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과 기술에서 서로 경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는 서구의 강대국들이 흥하고 쇠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영제국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여, 1760년대에 7년전쟁을 통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의 지배적인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합리적인 제도를 갖추지 못했으며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통적인 체제가 지배하였다. 이들 나라의 군사력은 컸지만 경제력이나 제도의 효율성에서 영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전세계의 산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축적하였고, 전세계에 식민지를 축적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이 다른 나라로 확대되면서 영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영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상대적인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경제성장의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 독일은 새로운 기술 혁신이 계속이루어지고, 통일을 통해 국토가 확장되면서 경제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국제질서에서의 기존의 지위가 독일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되었기에 독일은 1차대전을 일으켰으며, 결국 2차 대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독일의 도전은 중단된다.
한편 미국은 새로운 기술과 경형 혁신이 계속 이루어 지고,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용 자원의 절대 규모가 늘어났으며 19세기말에는 경제력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제 1, 2차 대전을 통해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였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폐허가 된 반면,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전쟁을 통해 더 증가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올라섰다. 소련은 두차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 후에도 상당한 국력을 남길 수있었으며 거대한 국토 덕분에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차대전이 종결된 시점에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은 최고에 도달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군사적인 우위가 최고점에 있었다. 이후 유럽의 선진산업국과 일본은 전전의 경제력을 회복했으며,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1970년대 초반에는 서구유럽 전체로 볼 때 미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복지확대와 베트남전쟁 때문에 재정적자가 누적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 마침내 유럽과 일본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했으며 무역적자가 누적되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강대국으로서 전세계에 군사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은 줄어들지 않으므로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되면서 서구와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으며, 경제력 대비 군사적 부담의 면에서 미국보다 더 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볼 때, 세계 질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다섯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강대국의 지위는 조금씩 쇠퇴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속도나 영토로 볼 때 앞으로 대단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지만, 미국이나 소련과 경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유럽의 통합이 진전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문제는 여러 나라들간 이견을 조율하는 비효율 때문에 아무리해도 미국 만큼의 강대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대단한 경제력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황이 변하면 이러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대단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소련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대단한 군사력을 비축하고 있고 엄청난 영토 덕분에 앞으로도 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의 질서는 국력이 충돌하는 무정부상태의 혼돈이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국제정치의 역학을 잘 이해할 수있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특히 1차 대전을 전후한 국제정치 역학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들 간에 상대적 관계를 통해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능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유럽의 정치경제가 지난 오백년간 전개되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도 인정하듯 유럽과 미국이외의 지역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오백년 동안 세계의 정치경제는 서구가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지만. 1991년에 일어난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소련 체제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오랜 정체를 겪은 현 시점에서 국제 정세는 1980년대 초반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책은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과일나무 > 감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외교의 역사 (0) | 2020.07.28 |
---|---|
국가들 간에 '질서'는 어떻게 유지되나 (0) | 2020.07.25 |
자본주의는 세계로 어떻게 확장되었나 (0) | 2020.07.07 |
미국인의 교육수준 향상이 중단된 이유 (0) | 2020.07.02 |
사람들은 왜 협력하고 경쟁할까 (0) | 2020.06.17 |
Claudia Goldin and Lawrence F.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미국에서 지난 백년간 교육 수준의 향상과 기술 발전의 관계를 수리적으로 분석한 학술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왜 백년전에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교육의 향상을 선도하는 나라였는데, 근래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산업국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19세기말 20세기 초반, 2차대전후 1970년대 초반까지, 1970년대 중반이후 21세기 초까지, 지난 백년간을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 미국인의 교육 수준과 교육 제도의 변화를 검토한다.
미국은 20세기초반까지 선진산업국들 중에서 교육수준이 독보적으로 높은 나라였다. 19세기초부터 공립 초등교육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말에는 공립 중등교육 운동이 벌어지면서 전국적으로 무상 중등학교가 확대되었다. 2차대전 무렵에는 중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당연시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물론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흑인에게는 2차대전 무렵까지도 중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유럽의 나라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중등학교는 소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으며, 공립 중등학교는 드물었다.
미국에서 공교육이 일찍이 확대된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는 지역자치의 전통이다. 공립학교는 지역의 주민들이 갹출한 재원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웃 지역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지역들간 경쟁을 유발시켰다. 내가 사는 지역에 양호한 교육 환경이 만들어 지면 그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에 좋은 공립 학교를 세우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는 유럽에서 공교육이 중앙집권적으로 구축된 것과 명확히 대조된다.
둘째는 평등을 추구하며 패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미국의 공교육의 원칙이다. 미국은 모든 주민들에게 지역의 공립학교에 무상으로 접근할 수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뒤쳐지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공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열어 두았다. 이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12~4세 무렵에 국가 자격시험을 치루어,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달라지도록 중등교육 과정에 차등을 둔 제도와 뚜렷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엘리뜨에게만 고급 중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하며, 나머지 사람에게는 중하위의 직업에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교육을 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중등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양질의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은 미국을 본받아 무상 공립 중등교육을 확대하였으며, 질 높은 중등교육을 선별적으로만 제공하던 제도를 많이 완화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 중등교육의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크게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중등교육을 이수하려고 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받게 되면서 중등교육의 이점은 줄어들었다. 대신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큰 보상을 가져왔으므로,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고등교육 즉, 대학 교육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대학간 자유경쟁의 결과 대학 교육의 질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은 미국보다 뒤쳐져 공립 중등교육이 보급되었으며, 이어서 고등교육이 확대되는 과정을 근래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 국민의 교육수준이 확대되던 장기 추세가 중단되었다. 고등교육의 이수는 80% 무렵에서 좀처럼 더이상 높아지지 않으며, 4년제 대학의 졸업율은 한때 70%까지 높아졌다가 60%초반대로 후퇴하였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노동시장에서 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큰 불이익을 받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4년제 대학을 중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미국의 기술 수준은 19세기 후반 이래 꾸준히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에서 인적자본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상승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비해 중등교육 이수자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중등교육을 졸업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컴퓨터와 생산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은 크게 높아졌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높은 임금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기술수준의 상승하면서 고급 인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에 비해 대학교 졸업자의 증가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고급 인력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급 인력의 임금이 크게 높아졌다. 대학원을 졸업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의 공급이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하므로 이들은 매우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누린다.
저자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때문에 임금의 격차가 크게 나게 되었음을 분석적으로 입증한다. 4년대 대학의 졸업자가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더라면 이들의 임금 프리미엄이 지금과 같이 높지 않을 것이므로, 소득 불평등도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결과, 낮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하거나 혹은 이민자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낮은 기술수준을 가진 근로자의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한 반면, 높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세계화로 효능이 더 커졌기 때문에 더 높은 보상을 누리게 되었다.
왜 미국인은 유럽인에 비해 중등교육의 탈락율이 높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가? 4년제 대학 중퇴자가 많은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대학에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둘째는 대학의 등록금이 매우 비싸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유는 중등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중등교육이 부실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주민의 소득과 인종에 따른 거주지 분리 현상이 교육의 지역자치 원칙과 만날 때, 가난하고 흑인이 사는 지역의 학교의 질은 매우 열악하게 된다. 둘째는 선생의 보수가 낮아 인재가 지원하지 않으며, 교사 노동조합이 능력이 부실한 교사의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셋째, 가난한 흑인과 미혼모 가정 배경의 아이는 어릴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교육과정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불이익을 누적해간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은 학교의 문제도 있지만, 빈곤 문제, 인종문제가 중첩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빈곤과 인종문제가 유럽의 선진산업국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유럽과 달리 어느 수준에서 향상을 멈추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결국 사회를 개선해야만 미국인의 교육 수준 향상도 이루어질 수있다. 과학 기술 수준은 계속 발전하고,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수준은 높아지는 데, 미국 사회가 이러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소득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확대될 것이다.
저자들은 책의 말미에 '미국이 과거에는 세계에서 교육수준의 향상을 선두에서 이끄는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주저앉게 되었냐고' 탄식하며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교육수준의 정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이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앞으로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없다.
이책은 과학기술의 향상이 교육 수준의 정체와 만나면서 임금 격차가 커졌다는 것을 수리적 입증한 학술서이다. 막상 저자가 책 서두에 제기한 왜 미국인의 교육수준의 향상이 중단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별도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기존에 많이 언급된 것을 마지막 장에서 간단히 정리하는 데 그친다.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과일나무 > 감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대국은 왜 어떻게 흥하고 쇠하는가 (0) | 2020.07.14 |
---|---|
자본주의는 세계로 어떻게 확장되었나 (0) | 2020.07.07 |
사람들은 왜 협력하고 경쟁할까 (0) | 2020.06.17 |
사람들간 건강의 격차를 줄이는 길 (0) | 2020.06.05 |
인간은 어떻게 서로 의지하게 되었나 (0) | 2020.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