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12. 9. 16. 23:02

   2005년 11월 어느 날 미국의 미시간 주에 칼라마주라는 인구 74,000명의 조그만 도시에서 교육감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이제부터 이 도시에서 졸업한 고등학생은 누구든지 그 주에 있는 공립 대학교에 진학하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다. ‘약속’(Promise)라 명명된 이 프로그램에 소요되는 재원은 독지가가 기부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절대 비밀로 한다.

 

NYtimes_FreeCollegeScholarship.hwp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무슨 장난도 아니고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하냐는 부정적인 반응에서부터, 돈이 없어 대학갈 꿈도 꾸지 못했는데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교육감이 직접 발표를 했으니 완전 거짓은 아니겠지만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발표를 한 이래 지금까지 7년 동안, 총 2,500명이 대학을 갔으며 3천 5백만 달라 (한화로 약 390억원)의 돈이 장학금으로 지불되었다. 이는 각 학생당 매 학기에 4천 2백 달라(한화로 460만원)가 평균적으로 지원된 것이다. 실제로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알아보자. 이곳은 과거에 대표적인 산업도시였다. 한때는 GM 자동차 공장이 있었고, 대규모 제지 공장이 있었고, 업존이라는 제약회사의 큰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래 미국의 산업시설이 싼 임금을 찾아서 해외나 남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현재 이 도시에는 이렇다 할 산업 시설이 없다. 공장이 이전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빈곤과 범죄가 심해졌다. 학교의 질은 형편없어졌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손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미국 중서부의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퇴락의 운명을 겪었다.

  그 동안 이지역의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서 온갖 처방이 다 동원되었다. 경제 전문가의 처방 중에 안 써본 것이 없었다고 한다. 떠나는 회사를 붙잡기 위해 세금을 깍아 주는 것은 물론, 큰 경기장이나 공원 시설 등 이 도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토목공사에 이르기까지 소위 ‘경쟁력 강화 위원회’에서 머리를 짜낸 모든 처방을 써보았다. 도시 활성화를 위해 전문가들이 고안한 64가지나 되는 방안을 실행했으나 도시가 쇠퇴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면서 공립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대학갈 희망을 안겨주면 빈곤에 찌든 이 도시가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배경이라고 한다. 과거 이 도시의 산업이 활발하던 시절 지역사회를 위한 많은 자선활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전통이 남아 과거에 이곳에서 사업을 일으켜 엄청나게 큰 돈을 번 사람이 지역의 번영을 위해 돈을 내 놓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출발한 ‘스트라이커’ 라는 의료기기 회사의 창업 가족이 돈을 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7년간 390억원을 댔으니 매년 약 55억 정도 지출한 셈이다. 사실 미국 거부의 재산이라면 이 정도의 지출은 감당할 만하다. 이 실험은 현재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는 단기간에도 눈에 띠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 공립학교 학생의 학업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고등학교 중퇴자 비율이 현저히 감소하고,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이 크게 증가하였다. 교육영역 밖의 효과는 아직은 제한적이다. 인구 감소가 멈추었으며,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지역사회로 조금씩 되돌아오면서 산업이 활성화될 조짐을 보인다. 교육 외의 영역에서는 아직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이러한 실험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큰 성과를 거둘 것이 분명하다.

  교육 투자를 통해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지식 경제로 접어들면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은 일할 곳이 사라지는 추세이다.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기술이 없는 사람은 최저임금의 불안정한 일 이외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문제는 최저임금의 일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섣부른 경제 활성화 정책에 돈을 쏟아 붓는 것보다는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묘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교 등록금을 공짜로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초등교육이나 중등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고등교육에 큰돈을 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세상일에는 다 순서가 있다.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면 그들도 대학에 가고 미래에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을 불러 넣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이를 실제 실현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사람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꿈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

  부모를 잘 만나서 누구는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가고 누구는 대학을 꿈도 꾸지 못하는 사회에서 태어난다면, 불리한 쪽에 선 사람은 성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를 원망하고 돌을 던질 것이다. 살기 좋은 사회란 자신이 어떤 패를 뽑을지 미리 알지 못하면서도 선택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 아무리 소득이 높아지면 무엇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