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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1. 17:53

Robert Kagan. 2012. The World America made. Vintage. 1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제2차대전 이래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를 설명하고, 이 질서가 무너질 때 새로 들어설 질서는 어떠할지 서술한다. 저자는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가 역사상 다른 어느 질서보다 나은 것이라고 역설한다. 

1930년대까지 인류 역사상 존재한 세계 질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19세기를 지배한 강대국간 영향권 sphere of influence 을 나눠 갖는 힘의 질서는, 서로간 생존에 대한 위협이 상존하며,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 및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돈 chaos 이었다. 강대국 사이에 영향권이 충돌하고 겹치는 부분에서 항시 갈등과 전쟁이 발생하였다. 1, 2차 세계대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각국은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 약자는 강자가 침공하지 않고, 다른 강자의 침공에 대해 보호해주는 것에 대해 댓가를 바치고, 강자의 이익을 위한 요구에 굴복해야 했다. 약자는 강자의 전횡에 최소한이라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강자와 연대를 맺으며, 강자들 사이에는 힘의 균형 ballance of power 이 유지됨으로서만 전쟁이 예방되었다. 이러한 힘의 균형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며, 국가들 사이에 상대적인 힘의 규모는 항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힘의 질서에는 갈등과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며, 실제 전쟁을 감행하여 서로간 새로운 균형을 정립하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2차대전 후에 미국의 주도로 만들고 유지된 세계질서는 역사적으로 매우 예외적인 성격의 것이다. 미국은 다른 강대국보다 경제 및 군사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으며, 다른 강대국과 대양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미국이 옹호한 이념은 자유민주주의로, 이는 각 개인과 나라의 자유, 자율,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며, 타자의 간섭을 반대하고, 권위적 통제보다 민주적 참여를 옹호하고, 폭력보다 평화적 해결을 선호하는 이념이다. 미국은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 liberalism 을 기반으로 하여, 제도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만들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이 만든 제도와 규칙을 대체로 스스로 준수했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세계 다른 나라에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미국의 이념과 행동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과거의 강대국과는 달리,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세계 전개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안보를 미국에게 의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등 자유세계 국가들에게 안보 우산을 제공하였으며, 이 나라들은 미국을 신뢰하여 안보를 의탁함으로서 자신의 무장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였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신의 나라나 그 주변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의 개입을 기대하고 요청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을 세계 구석구석에 전개한 미국의 노력 덕분에, 2차대전후 많은 나라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확고히 했으며, 미국의 직간접 지원 덕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서유럽과 동아시아가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의 대표적인 수혜자이며, 이외에도 냉전시절 자유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이 만든 국제 환경과 직간접 지원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나고, 정치 안정을 도모하고, 안보를 걱정하지 않고 지냈다. 

2000년대 들어와, 미국인들 사이에 오랜동안 미국의 국제 경찰 역할에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국제적 개입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보다 약화되고, 미국내의 정치 환경이 복잡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높아진 목소리이다. 2차대전이 종전되었을 때, 미국은 전세계 GD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경제였으나, 1970년대 석유파동 및, 유럽과 일본의 경쟁력이 회복되어 미국의 압도적 경제력이 약화되면서, 미국은 전세계 GDP의 25%이하로 떨어졌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자동화로 미국 경제가 탈산업화 deindustrialization 되면서, 제조업에 종사하던 노동계층은 좋은 잃자리를 잃고 상대적으로 질 낮은 서비스 일자리로 이전하고, 소득이 정체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백인대비 유색인의 상대적인 지위가 과거보다 향상되면서, 중하층 백인의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의 국제적 개입을 줄이고 백인 중심의 국가정체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하층 백인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일부학자들은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만들어진 미국의 일극체제 uni-polar 세계질서가, 미국의 국제적 위상 약화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다극체제 multi-polar 세계질서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극체제의 세계질서란, 다름이 아니라 2차대전 이전 인류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한 규범 'norm' 으로 복귀하는 것을 말한다. 힘의 국제 정치, 정글의 세계가 다시 도래함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독일이 재무장할 것이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이 재무장할 것이다. 강대국간에 영향권을 나누어가지면서, 의견 충돌이 발생할 때 갈등과 전쟁으로 이견을 해소할 것이다.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강대국의 요구에 굴복하고, 강대국에게 다양한 형태의 조공을 바쳐야 할 것이다. 지금은 온순한 독일과 일본이지만, 군사력이 커지고, 외부로부터 위협에 직면하면,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행태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러한 세계에서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힘들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는 세간의 주장에 하나하나 반박한다.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 25%는 1970년 이래 지금까지 변함없다. 미국의 정치가 분열되어 마비되었던 경험은 미국 역사에서 여러번 있었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수준이며,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 하나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약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생산성 향상 속도는, 근래에 정보통신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 향상에서 보듯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며, 매우 다이나믹한 경제 체질을 유지하고 있다. 1970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패하고, 워터게이트 사태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중동 석유 산출국의 자원민족주의로 경제가 크게 침체했을 때도 있었으나, 미국은 1980년대에 정보통신기술, 컨테이너 운송기술, 구조조정 등의 기술과 경영의 혁신을 통해, 1990년대에는 다시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회복하였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총생산에서는 미국을 능가할지라도, 국민의 일인당 소득에서는 미국에 크게 뒤떨어진다. 중국은 권위주의 체제의 불안정 때문에 미국과 대등한 국력에 도달할 날은 요원하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수립한 자유민주주의 세계질서가 대다수의 세계인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는데, 이는 미국의 압도적 국력에 기반한 것이다. 만일 미국의 상대적 국력이 약화되고, 세계가 다극체제로 이행한다면, 세계인은 물론 미국인에게도 험한 앞날이 도래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역사적 통찰력을 동원하여 미국이 지배한 세계질서를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미국의 쇠퇴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지만, 최근에 발간된 그의 다른 책에서는, 미국에서 반자유주의 anti-liberalism 가  높아지는 근래의 흐름에 대해 매우 염려한다. 트럼프는 절대 권력과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쫒는 원칙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 이것이 근래 미국 사회의 반자유주의 운동에 편승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만일 미국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의 이념이 약화된다면, 세계에서 자유주의 이념의 힘은 약화될 것이며,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권의 존립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흐르는 반면, 권위주의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힘을 쏟는다면, 세계는 갈등과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가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의 개입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으며 지금도 힘든 상황인 중남미나 중동 사람들은 물론, 미국의 외면 혹은 냉전시 외곡된 개입으로 어려움을 겪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과연 그것이 그렇게 사소한 문제인지 의문이다.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반미 감정이 높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책은 발간된지 시간이 지나서 시의성은 좀 떨어지지만, 현재 전개되는 상황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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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3. 3. 08:25

Robert Wright. 1994. The Moral Animal: Evolutionary Psychology and Everyday Life. Vintage Books. 379 pages.

저자는 과학 분야의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인간의 성, 가족, 사회 규범, 사회 조직, 위계체계, 등 인간사의 핵심적인 부분을 진화심리학과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진화한 결과이다. 인간의 육체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감정 또한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진화의 추진력은,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여 후세에 자손을 번성하는데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이어가는데 있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사회조직, 사고방식, 감정은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는데 기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인간은 이러한 삶의 목적을 의식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결과로 볼 때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는데 기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성행위와 짝짓기 전략에서 상이하다. "부모 투자이론" parenting investment theory 이 이를 잘 설명한다. 남성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여성보다 훨씬 덜 투자한다. 따라서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성 sex 에 접근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 상대를 선택하는데 매우 신중하다. 여성은 상대 남성이 자신과 자녀를 부양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매우 중시한다. 

인간 사회는 오랫 동안 힘있는 남성이 많은 여성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제 사회였으나, 현대로 오면서 일부일처제가 강력한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진화적 측면에서 볼 때, 일부다처제는 힘있는 남성에게는 유리하나 힘이 없는 남성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한편 일부다처제는 모든 여성에게 유리하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자신과 성 관계를 맺을 상대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자신과 아이를 제대로 부양할 능력이 없는 남성의 유일한 배우자가 되기보다, 능력이 있는 남성의 둘째나 셋째 부인이 되는 편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로 보존시키는 데 유리하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남성들간 권력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능력이 많은 남성이 여성을 독점하는데 대하여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의 반발이 심해졌으며, 그 결과 전체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았다. 

가족과 친척 간에 밀접한 유대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번식시키는데 기여한다. 한편, 자신과 유전적 연관이 없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밀접한 유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면 훗날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는 '호의의 상호교환' reciprocal returns 의 원칙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계에 지배하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호의(악의)의 일대 일 교환' tit-for-tat 원칙이 다른 어떤 전략보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거래는 이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자원의 합보다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 내기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거래함으로서, 자신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제로섬이라면 이는 적대적 관계로 설정되는 반면, 이 관계가 플러스섬 plus-sum 이라면 협력의 관계로 설정된다. 사회의 질서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 사이에 플러스섬이 있기 때문에 유지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상호 의존하는 플러스섬의 관계의 범위가 계속 넓혀져 왔다. 아직은 거리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사람이나, 자신과 다른 민족 혹은 다른 나라의 사람에 대해 유대를 느끼지 않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유대의 폭, 즉 플러스섬의 범위가 나의 가족, 친족,부족과 같은 좁은 범위를 넘어서 내가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로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와 투쟁하고 상대를 지배하려 한다. 사회적 지위의 위계체계 social hierarchy 는 진화적인 이익의 위계체계를 반영한다. 사회적 위계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은 하위에 있는 사람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더 잘 이어갈 수 있다. 위계체계에서 하위에 있는 사람은 사회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진화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에 굴복한다. 물론 강요에 의해, 혹은 기만에 설득당하여 자신의 진화적 이익에 기여하지 않음에도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사회의 불평등 체계에 순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 범죄와 일탈적인 행위로 자신의 진화적 이익을 도모하려 한다. 

인간의 사고체계와 감정이 궁극적으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면, 개인의 자유의지가 존재할 여지는 없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도덕이나 범죄에 대한 개인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다윈과 현대의 진화론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근본적으로 자유의지는 허구이다, 그러나 사회적 이익에 기여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공리주의적 utilitarianism 입장에서 규범을 만들고 인간의 행위를 평가하고 잘못에 대해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궁극적인 의미나 절대적인 기준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사회'라는 플러스섬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광범위한 독서와 관련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인다. 다양한 예를 제시하면서 다앙한 비판을 맞받아치고 그야말로 종횡무진으로 토론한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저자의 자기비판적인 취향을 읽을 수 있다.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관련 주제에 다양한 예를 제시하고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는데에서 읽는 맛을 느낀다. 출판된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요즈음에 나온 진화심리학 저술보다 더 풍성하고 흥미롭다.

2026. 1. 9. 15:36

Daniel Headrick. 2010. Power Over People: Technology, Environments, and Western Imperism, 1400 to the Pres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372 pages.

저자는 기술과 환경이 인간사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근대 이후 최근까지 서구의 기술 발전이 어떻게 서구 제국의 확장을 가능케 했는지 서술한다.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기술의 우위를 이용해 상대보다 우수한 무기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했다.

1400년대 중반까지 서구의 기술은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낫지 않았다. 1400년대 중반에 포르투갈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에서 앞서 나갔다. 대양을 항해하는 범선과 항해술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앞선 덕분에, 포르투갈은 작은 인구와 경제 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기나마 인도양을 지배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앞서서 진출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앞선 기술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의해 급속히 따라잡혔으며, 이후 프랑스와 영국은 앞선 기술에 더하여 큰 인구와 경제의 이점을 이용하여, 대양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세력을 제압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에서 우위에 서게 되었다. 

서유럽인은 말과 철제 무기라는 앞선 기술 덕분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에 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유럽인이 가져온 질병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95% 이상이 서유럽인이 가져 온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들은 유럽의 정복군과 전투를 벌이기 이전에, 이미 많은 수가 역병으로 죽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급속히 유럽인의 앞선 기술, 즉 말과 무기를 받아들여 서구인과의 전투에 이용하였기 때문에, 서구의 정복자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획기적으로 새로운 기술로 무장할 때까지, 아메리카의 서부 대륙에서 300년 이상 저항하며 버틸 수 있었다. 

서구인들은 19세기 초까지 대양을 지배하기는 하였지만, 범선만으로는 대륙의 연안과 내부로 진입하여 정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세기초 증기선이 도입되면서, 마침내 서구인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륙 내부로 침투하여 정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건이 1840년대에 영국과 중국 간에 벌어진 아편전쟁이다. 영국군은 증기선으로 중국의 내부를 연결하는 운하에 침투하여 중국 경제를 마비시키고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아프리카는 유럽인에게 치명적인 역병이 대륙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인이 대륙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유럽에서 19세기말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염병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19세기 중반 이래 무기 제조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다루기 쉽고 연발이 가능한 소총과 기관총이 개발되면서, 그 이전에 비효율적인 무기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엄청난 규모의 살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학과 무기 기술의 비약적 발전 덕분에, 19세기 중반까지 정복하기 어려웠던 아프리카와 남북 아메리카 대륙 내부의 원주민을 앞도적인 화력으로 살육하고 정복하였다. 

서구인은 세계일차대전을 계기로 항공기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항공기의 도움 덕분에 보병만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웠던 산악지역의 저항 세력을 진압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 알제리와 이라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의 저항을 진압한 것은, 무엇보다도 공중에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서구인의 항공기가 가져온 전술적 우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서구인의 공격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은  항공기의 우위를 지우는 전술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원주민들은 터널이나 엄폐물을 이용하여 항공기의 추적을 피하고, 지대공무기를 이용하여 항공기를 격추시켰다. 이에 서구인들은 무인으로 대상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쟁의 상황이 바뀌면서, 서구인들이 무기 기술의 우위로 국지전에서 승리할 수는 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어렵게 되었다. 미국이 1960년대에 베트남에서, 소련이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것에서 보듯이, 게릴라전과 같은 비정규전의 승패는 무기 기술의 우위만으로는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글과 산악지역이라는 지리적 장벽 이외에도, 적군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사회적 요인 때문에, 정복군이 엄청난 규모의 지상 병력을 투입하여 현지를 샅샅이 훑고 주민을 대규모로 고문하고 살육하지 않는 한, 압도적인 화력에 의지해서만은 승리하기 힘들다. 서구인이 현지인의 게릴라식 저항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음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라크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에서 확인된다. 근래에 서구의 정복군과 현지인 간의 전쟁은, 기술, 환경,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전개되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 성과가 반영된 역작이다. 무기 체계와 전쟁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서술은 전체 논의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읽어내리기가 수월하다. 논의에 깊이가 있으면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단한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의문을 가졌던, 서구의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투명해졌다. 

2025. 12. 5. 15:06

Jared Diamond. 2006(1993). The Third Chimpanzee: The Evolution and Future of the Human Animal. Harper Perennial. 368 pages.

저자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과학저술가로 유명해졌으며, 이 책은 그의 첫 대중과학서로, 인간이 어떻게 동물로부터 진화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성을 갖게 되었고, 세계의 역사는 왜 그렇게 전개되게 되었는지를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침팬지와 98%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침팬지와 고릴라 사이의 유사도보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사도가 더 높다. 그러나 인간은 침팬지를 포함한 동물세계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발전시켰다. 농업, 언어, 문화, 국가, 과학기술, 등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은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다양한 특징은 동물 세계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성 생활을 비교하면, 인간의 독특한 특징이 발견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식의 목적이외에 성교를 하며, 여성의 배란기는 여성 자신에게도 숨겨져 있다. 남성의 생식기는 신체 크기에 비해 다른 동물보다 유난히 크다. 남성은 여성보다 신체 규모가 약간 크지만,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만큼 남녀간 차이가 크지는 않다. 이러한 특징들은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혼외성교를 하는 동물임을 의미한다. 또한 남녀가 힘을 모아 자녀를 키워야 하는 인간의 생존 방식을 시사한다. 

인간의 언어는 집단 활동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집단에서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구분하면서, 타집단의 구성원을 의심하고 공격하는 습성을 타고났다. 인간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만났을 때, 힘이 강한 집단이 힘이 약한 집단을 공격하고 죽이고 말살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오스트렐리아 원주민을 만났을 때,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만났을때, 등등. 상대 집단 구성원을 모두 죽여 없애는, 집단 학살annihilation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이런 집단 학살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졌다. 나찌의 유대인 학살, 후투족과 투치족을 상호 대량으로 죽인것,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을 대량 학살한 것, 레바논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상호 집단 학살, 등등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집단 사이에 인간적인 특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축을 따라 뻗어 있으므로, 한 지역에서 재배되는 동식물이 다른 지역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었던 반면,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의 축을 따라 뻗어 있으므로 지역간 동식물의 교류가 어려웠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은 아메리카 대륙보다 인간이 식량으로 선택하거나 길들일 수 있는 동식물이 훨씬 다양했다. 이러한 대륙간 생태학적 차이가 문명 발전의 차이를 낳았으며, 결국 물질 문명에서 앞선 유럽인이 아메리카인을 쉽게 제압하였다. 

인간은 그들이 정착한 환경의 동식물을 파괴하고 고갈하는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남태평양 섬들에 인간이 정착했을 때, 그곳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왔던 동식물은 빠르게 멸종되었으며, 그 결과 그 지역의 생태계가 인간의 생존을 더이상 지지하지 못하여, 그 지역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의 환경파괴 속도, 동식물 종의 멸종 속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감안할 때, 과거 인간이 해오던 대로 계속한다면,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 어려운 날이 조만간 찾아 올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대중과학저술가로 아마도 가장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저작, "총,균,쇠"는 세계적으로 그의 명성을 높였다. 이 책은 그가 생리학자의 경력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대중과학 저술가로서 크게 성공한 시작을 알린 책이다. 이 책에는 생물학, 지리학, 역사학, 인류학, 생태학, 등에서 가져온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그후 별도의 책으로 확대 논의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대중과학 저술가로 성공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이 매우 많으며,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엮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이해력, 통찰력이 우수하며, 이야기 전개 솜씨가 놀랄만큼 뛰어나다. 여기에 언급되는 아이디어들은 한번쯤은 다른 곳에서 들어본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시간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떠진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2025. 11. 20. 17:59

에런 코폴란드 (이석호 옮김). 2016(1956).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사용 설명서. 포노. 361쪽.

저자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이 책은 음악의 기초에 관해 작곡가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그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 시리즈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음악의 창조과정, 음악의 4대 요소(리듬, 선율, 화성, 음색), 음악의 구조, 오페라, 영화음악, 현대음악 등에 대해 서술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자신의 음악 창작 작업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음악사에 기록된 주요 음악들을 분석하고, 음악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면, 음악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음악과 관련해 자신이 가진 기술(skill of the trade)을 솔직하게 공개한다. 이 책을 읽으면 작곡가의 작곡 과정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는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곡을 썼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 다양한 곡을 예로 하여 악보와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책의 많은 내용은 음악의 기초 지식을 담고 있는데, 음악을 만드는 장인의 입장에서 그러한 지식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것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번역이 자연스러워 읽기에 부담 없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2025. 11. 18. 16:56

로버트 필립 (이석호 옮김). 2025. 음악의 역사(A Little History of Music). 소소의 책. 391쪽.

저자는 음악가이자 음악학자이며, 이 책은 전세계의 전기간에 걸친 음악의 역사를 요약하여 서술한다. 서구의, 백인 남성 음악가 중심의, 엘리트들이 즐기던 음악에 치중하던, 전통적 음악사의 범위를 벗어나, 서구 이외의, 비백인의, 여성 음악가의, 민속 음악과 대중음악 등, 서구 음악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주제를 포함하려 노력한다. 

서구의 음악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시대와 이후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로마시대의 음악에 뿌리를 둔다. 서구의 음악은 서기 1,200년대까지는 거의 전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하였다. 이후 1,400~1,600년의 르네상스 시대에는 왕과 귀족의 세력이 성장하고 이탈리아의 도시를 중심으로 부호 상인 가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 권력자의 보호하에 이들의 여흥과 세과시을 위한 역할에 머물렀다. 이와는 별도로 일반 민중의 일상에서 사용되는 민속 음악이 존재했다. 

서구의 음악은 1,100 년경부터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이 발전하면서, 세계의 다른 음악과 달리, 전통에 머물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길을 걷게 된다. 서구를 제외한 세계의 음악은 귀로 듣고 경험으로 배우는 과정을 거쳐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 반면, 서구에서는 악보를 통해 과거의 음악을 정확히 재생하고, 동시대의 음악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덧붙이거나 변형시키는 길이 크게 열리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시대까지는 단성음악 monophony 이 주를 이루었으나, 중세 교회 음악에서 화성을 곁들인 음악 homophony 을 거쳐, 여러 음이 동시에 전개되는 다성음악 polyphony 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이후 서구의 음악은 화성 harmony 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조성음악을 기본틀로 하게 된다. 1600~1750년대의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JS Bach 는 조성체계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서구 음악의 아버지로 숭앙된다. 

1750~1820년대의 고전시기 classical period 에 활동한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서구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연다. 이전까지 서구의 음악가는 교회에서 일하거나 권력자의 보호하에 그들에게 고용되어 그들의 여흥과 행사에 보조하는 음악 활동을 하였다. 반면,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나, 자유 음악가 freelance musician 로서, 권력자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창작 활동을 독립적으로 하는, 전문 예술가의 롤모델을 만들었다.  

1820~1900년대의 낭만주의 시기에는, 서구의 음악이 과거의 규칙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의 감정과 양식을 표현하고 시도하는 시기이다. 19세기 후반 서구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각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가락을 반영한 음악을 생산하는 운동이 전유럽에 전개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음악의 전형이라할 화성과 조성의 원리를 파괴하는 실험이 전개된다. 일차대전을 계기로 서구 문명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면서, 서구의 음악 전통을 거부하는 다양한  음악들이 나온다. 이들은 서구 음악의 전통적인 화성 체계를 버리고 불협화음을 많이 사용하면서 일반 음악청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20세기에는 녹음기술과 라디오의 보급으로, 음악 활동과 소비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된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수단이 확보되면서,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이 음악 활동의 주역을 차지하게 된다. 19세기까지 엘리트 중심의 음악은 '고전음악' classical music 이라는 범주로 국한되며, 중상류층의 고급취향의 사람들만이 즐기게 된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고전음악은 영화 음악에 활발하게 사용된다. 

이 책은 전세계의 전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엄청난 과업을 제시했으나, 결국 서구의 음악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비서구의 음악은 그야말로 수박 겉할기로 건드린다. 예컨대 지나가면서 K-pop 과 사이의 '강남 스타일'을 언급하는 식이다. 서구의 엘리트 음악 이외에, 대중음악이나 민속음악에 대한 서술은 피상적이다.이는 아마도 서구 엘리트 음악 이외에 다른 음악들에 대한 연구가 깊이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개별 작곡가를 망라하는데에 매몰되지 않고, 음악의 전반적 흐름과 변화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저자가 음악학자이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그의 서술이 보다 깊이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번역이 엄청나게 잘 되었다는 점이다. 번역이라고 느끼지 않을만큼 글과 표현이 자연스러워서, 글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자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고, 말을 다듬는데 엄청나게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2025. 11. 11. 15:29

Alexander Todorov. 2017. Face Value: the irresistable influence of first impress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인상 facial impression 에 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사람의 얼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어졌다. 막 태어난 아기들도 인간의 얼굴을 다른 이미지보다 선호한다. 인간의 두뇌에는 상대의 얼굴 인식을 전담하는 부위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얼굴을 파악하며,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부터 그 사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상대를 구별하고 상대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 인상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연구결과, 사람들이 상대의 얼굴로부터 습득한 정보는 그 사람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얼굴 인상은 구조적으로 두개의 차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선한가 혹은 악한가' goodness vs badness, 이며, 다른 하나는 에너지 수준이 높은가 혹은 낮은가 high power vs. low power 이다. 이 두개의 차원을 결합하면, 다른 모든 얼굴 특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위협적인 특징은 악하면서 에너지 수준이 높은 것이다. 사람들이 상대의 얼굴로부터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은 크게 세가지인데, 신뢰할만한지 trustworthiness, 지배적인지 dominance, 전반적으로 매력적인지 attractiveness 이다.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으로 보일수록, 연령이 많은 것으로 보일수록, 매력적으로 보일수록, 신뢰할만한 인상을 준다. 또한 미소띤 얼굴이 중립적인 얼굴보다 신뢰할만한 인상을 준다. 

상대에 대한 인상은 관찰자의 요인에 의해 영향받는다. 사람들은 친숙한 사람을 낯선 사람보다 더 좋게 평가하며, 자신 및 자신의 가족과 비슷한 사람을 타인보다 더 좋게 평가하며, 자신이 속한 그룹의 사람과 비슷한 상대방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게 평가한다. 자신이 좋게 평가하는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 반면, 자신이 나쁘게 평가하는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나쁘게 평가한다. 즉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갖는 인상은 기본적으로 편파적인 biased 성향을 띤다.  

사람들이 상대의 얼굴 인상으로부터 상대의 그 순간의 일시적인 상태나 의도 state and intention 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 character 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순간 순간마다 얼굴 표정이 바뀌기 때문에, 순간의 표정으로부터 얻는 인상이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과 부합한다는 주장은 그릇되다. 상대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그 사람의 그 순간의 감정을 읽는 데에도 한계가 많다. 사람들이 얼굴로 부터 그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은 그 사람에 대한 배경 지식으로부터 성격을 추정하는 것일 뿐, 얼굴 그 자체로부터 성격을 읽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낮선 사람에 관해, 그 사람의 얼굴로부터 추출한 첫인상은 그 사람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 상대의 얼굴 인상으로부터보다는 상대에 관한 배경지식으로부터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얼굴 인상은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사람들이 상대의 첫인상에 대해 갖는 믿음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소산이다.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갖는 첫인상은 상대의 얼굴로부터 오는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인상은 믿을게 못된다. 

이 책은 19세기까지 서구에서 크게 유행하던 인상학 physiognomy 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람의 인상을 어떻게 분석할지, 사람의 인상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인상은 얼마나 정확한지 등의 주제에 대해, 체계적인 심리학 실험을 통해 탐구하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실험의 배경이 된 이론적 논리와 함께, 실험에 사용된 다양한 얼굴 샘플을 직접 제시하여, 독자에게 인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인상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등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서술이 명확하고, 과학적 탐구 과정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여, 흥미와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도 '관상' 이라는 전통적 지식이 있지만 비체계적인 것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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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7. 15:41

Paul Kennedy. 1998. The Rise and Fall of Great Powers: Economic Change and Military Conflict from 1500 to 2000.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외교 군사 분야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500년대에서 1990년 냉전체제가 종식되기 직전까지, 서구 세계에서 강대국이 흥하고 쇠퇴한 역사를 서술한다. 1500~1600년대에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제국, 이어 짧은 기간 동안 네덜란드의 부상, 1700년대에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 1800년대에 영국, 1900년대에 두차례의 전쟁을 거친후 미국과 소련의 부상, 등으로 강대국의 흥망사가 정리된다. 

군사력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다. 경제력은 언제라도 군사력으로 전화될 수 있으므로, 강대국의 핵심은 경제력에 있다. 절대적 국력보다는 상대적인 국력이 국가들 간 세력 관계를 결정한다. 국가들은 서로 경제 성장 속도가 다름으로, 시간이 흐르면 상대적 국력의 균형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후발국은 선발 강대국보다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조만간 선발국을 도전하게 되고, 결국 선발국을 대치하여 강대국으로 올라선다. 강대국이 흥한 후에 쇠퇴하는 과정은 지난 역사를 돌아 볼 때 필연적이다. 선발 강대국은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강대국의 이익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커버해야 할 영역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데, 강대국의 지위를 지키려 한다면 이중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과도하게 큰 군사비를 지출하게 되며, 과도한 군사비는 경제성장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후발국은 강대국과 달리 비생산적인 성격의 군사력에 경제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강대국에 비해 더 높은 경제성장율을 기록하게 된다. 강대국과 후발국간 상대적 성장율 격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둘 사이에 경제규모의 역전으로 귀결되며, 이것은 군사력의 역전, 강대국의 지위 대체로 이어진다. 

맨 마지막 장에서 198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강대국들의 미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일부는 예측이 맞았지만 일부는 틀렸다. 미국과 소련의 양대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앞으로 다자의 강대국들의 세계로 변모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5년 이래 일관되게 줄어드는 반면, 독일, 일본, 및 제삼세계의 비중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워낙 자체의 자원이 엄청나기 때문에, 조만간 후발국에게 따라잡힐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일본이 크게 부상하리라는 그의 예측은, 1990년대 이래 일본의 장기 정체로 인해 경제가 쪼글아드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소련이 과도한 군사비 지출과 경제적 비효율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예상했지만, 책이 나온지 불과 2년 후에 내부의 모순 때문에 함몰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이 매우 빨리 경제 성장을 하여 미국과 대적할 강대국으로 부상하리라는 것 또한 예측하지 못했다.  

이 책은 1500년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는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역사가의 서술답게 유려하게 글을 써서, 읽는 내내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1700~1800년대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을 서술하는데 탁월하다. 

 

2025. 10. 6. 16:31

Robert Axelrod. 1984.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Basic Books. 191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게 되는 조건과 이유를 설명한다. 반복하여 거래해야 하는 개체들 사이에는  'tit for tat'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전략이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협력하게 된다.

세상사의 많은 부분은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 이라기 보다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prisoner's dillemma game 상황에 부합한다. 즉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지는 게임이기보다, '플러스 섬' plus-sum 게임, 즉 둘이 협력하면 각자 단독으로 이익을 추구할 때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 상황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상대의 이익을 저버리는 경우가 둘이 협력하는 경우보다 배반하는 개인에게 더 큰 보상을 가져오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열등한 보상을 가져온다. 즉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여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자기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타인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여 행동할 때보다 사회 전체로 볼 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다른 상대도 그에 맞받아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전체로 볼 때 열등한 보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이 협력하면 전체로 볼 때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지만,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각 개인이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여 자신의 이익을 일부 양보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죄수의 딜레마 조건 하에서 컴퓨터 게임 경쟁 시합을 공모하여, 출전한 프로그램들간 맞대결을 하는 방법으로 최고의 게임 프로그램을 선발하였다. 그 결과, 'tit for tat'   전략이 가장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 이는 처음에 협력으로 시작하여, 상대가 배반하면 바로 배반으로 맞대응하고, 상대가 협력으로 돌아서면 바로 협력으로 맞대응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최고의 전략이 되려면, 상대와의 만남이 계속된다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가 과거에 협력과 배반 중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억하고 이에 맞추어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tit for tat 전략의 강점은, 상대를 이기려고 하기보다 상대로 부터 협력을 이끌어 내는데 있다. 상대도 나의 행동에 대응하여 선택하기 때문에,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혹은, 상대를 속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상대의 보복을 불러온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tit for tat 전략의 요점은, 지속적인 거래 상황에서 '상호주의' reciprocity 에 있다. 동일한 상대와 지속적으로 거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협력이 각 참여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기 때문에 결국 협력하게 된다. 

tit for tat 전략이 협력으로 이끄는 상황은, 현실 세계에서 종종 관찰된다. 제1차 대전 중 참호전, 즉 동일한 적과 지속적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가 나타났다. 생물계에서 공생의 관계는 바로 이 전략이 적용된 사례이다. 소수의 대기업이 반복되는 경쟁 입찰에서 공모하는 경우, 귀금속을 거래하는 상인들 사이에 형성된 신뢰 관계, 등 이러한 상황이 적용된 예는 많다. 

tit for tat 전략은 다른 어떤 복잡한 전략보다 장기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전략을 사용하는 참여자들 사이에 일단 협력이 정착되면, 어떤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침입자가 나타나더라도 협력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을 추구한다면, tit for tat 전략은 어떤 다른 전략보다 도덕적으로 강력한 교훈을 제공한다. 상대에게 선제적으로 호의적으로 대응할 것, 상대가 악으로 행동하면 악으로 응대할 것. 상대가 악으로 행동하는 데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의 악에 대해 선으로 응대하면 악행을 용인하는 관행을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악으로 대응하면 악으로 맞받아쳐,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의 댓가를 치르고, 마음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상대가 선으로 행동하는 쪽으로 돌아서면 상대가 과거에 어떻게 했건 상대에게 선으로 응대한다. 

tit for tat 전략의 약점은, 상대가 배반을 할 때 배반으로 응대하기 때문에, 상대가 만일 이에 대해 tit for tat 전략으로 대응하면 배반으로 상호 맞받아치는 함정에서 둘 다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상대가 계속 악을 행하면 상대는 물론 자신도 함께 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상대의 배반에 대해, 상대보다 약간 약한 강도로 배반으로 대응함으로서, 거래가 반복될수록 상호간 배반의 강도가 줄어드는 전략을 제시한다. 상대가 random 하게 응대할 때, 역시 tit for tat 전략은 협력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 책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협력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간단하면서도 투명한 논리로 왜 tit for tat 전략이 어느 복잡한 전략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간단한 전략이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대단한 발견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도 감탄했지만, 두번째 읽을 때 역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를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2025. 8. 5. 16:45

Robert Shiller. 2015. Irrational Exuberance, 3r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1 pages.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발생하는 기제를 설명한다. 1929년 대폭락, 1960년대 후반의 상승에 이은 폭락,1990년대 후반 폭등에 이은 2000년의 폭락, 2007년의 주택 시장의 폭락, 등이 주요 사례로 언급된다. 

주식시장은 구조적 요인, 인간 심리에 귀인한 요인,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거품과 폭락의 사이클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2000년의 폭락의 구조적 원인은, 1990년대 정보통신기술의 보급에 따른 기업 성과의 향상, 공산권의 붕괴에 따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 새천년을 앞둔 기대감, 등이 주식 가격의 상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요인 자체가 시장의 큰폭의 상승과 폭락의 사이클을 만든 것은 아니다.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낙관하는 피드백 현상이 나타났다. 주위에 주식 가격이 올라서 큰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객관적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다. 가격이 오르는 원인으로 사람들 간에 회자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그러한 이유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정당한 근거라는 확신을 시간이 갈수록 굳히게 된다. 즉 가격이 계속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전에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드백 과정이 계속되면, 주식 가격은 기업의 펀더맨탈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피드백 효과가 작용하는 데에는 미디어가 한 몫한다. 미디어는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환기시키고, 그것을 설명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불어넣는 데 열심이다. 새로운 뉴스에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미디어의 수익을 높이는 길이므로, 미디어는 더욱 자극적이고,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의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소개하고, 사람들의 '희망적인 생각' wishful thinking을 부추기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증권회사나 소위 전문가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계속 제공하여 돈을 벌게 된다.

지금까지 주식 시장의 거품은 항시, "새로운 시대" new era 가 열리고 있다, "이번은 다르다" this time is different  등의 이야기 stories 를 동반했다. 1920년대의 대폭락은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라고 지칭하는, 비약적인 기술발전과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이야기와 함께 했다. 1960년대의 호황과 폭락은, 베이비붐 세대의 도래, 이차대전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 등의 이야기가 함께 했다. 1990년대의 호황과 폭락은 정보통신혁명이 가져올 엄청난 생산성 향상의 이야기가 함께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에 도취되어, 실제 이러한 기술발전과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성과로 반영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단기간에 주식 가격을 크게 올린다. 엄청난 장미빛 전망이 단기에 기업의 수익으로 실현될 수는 없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지면 점차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심과 불안이 자라난다. 이때 조그만 사건을 계기로 가격이 하락하면, 붕괴의 피드백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먼저 빠져 나오려고 패닉 처분 panic selling에 뛰어들고,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떨어진다. 요컨대, 주식 시장의 폭등과 붕괴의 사이클은 사람들의 감정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주식 시장의 거품은 인간의 감정적인 성향 때문이므로, 이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구조적으로 개선한다면,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주식 가격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short sale' 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것, 주택 가격의 지나친 변동 위험에 대해 헤징 hedging 하도록 주택에 대한 futures option 시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요컨대, 각자가 자유롭게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되, 위험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시장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근래에 크게 환기되고 있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Anvidia나 Open AI와 같은 인공지능 관련 회사들의 엄청나게 높은 주식 가격의 연관. 요즘과 같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고조된다면, 결국 조만간 또다른 주식시장의 거품과 폭락을 맞게 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수준이 거품인지 추정하기 어렵고, 거품이라고 해도 제법 오래갈 수 있기 때문에,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데 있다.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사례들을 설명하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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