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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 9. 15:36

Daniel Headrick. 2010. Power Over People: Technology, Environments, and Western Imperism, 1400 to the Pres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372 pages.

저자는 기술과 환경이 인간사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근대 이후 최근까지 서구의 기술 발전이 어떻게 서구 제국의 확장을 가능케 했는지 서술한다.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기술의 우위를 이용해 상대보다 우수한 무기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했다.

1400년대 중반까지 서구의 기술은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낫지 않았다. 1400년대 중반에 포르투갈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에서 앞서 나갔다. 대양을 항해하는 범선과 항해술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앞선 덕분에, 포르투갈은 작은 인구와 경제 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기나마 인도양을 지배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앞서서 진출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앞선 기술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의해 급속히 따라잡혔으며, 이후 프랑스와 영국은 앞선 기술에 더하여 큰 인구와 경제의 이점을 이용하여, 대양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세력을 제압하면서, 식민지 쟁탈전에서 우위에 서게 되었다. 

서유럽인은 말과 철제 무기라는 앞선 기술 덕분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에 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유럽인이 가져온 질병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95% 이상이 서유럽인이 가져 온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들은 유럽의 정복군과 전투를 벌이기 이전에, 이미 많은 수가 역병으로 죽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급속히 유럽인의 앞선 기술, 즉 말과 무기를 받아들여 서구인과의 전투에 이용하였기 때문에, 서구의 정복자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획기적으로 새로운 기술로 무장할 때까지, 아메리카의 서부 대륙에서 300년 이상 저항하며 버틸 수 있었다. 

서구인들은 19세기 초까지 대양을 지배하기는 하였지만, 범선만으로는 대륙의 연안과 내부로 진입하여 정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세기초 증기선이 도입되면서, 마침내 서구인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륙 내부로 침투하여 정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건이 1840년대에 영국과 중국 간에 벌어진 아편전쟁이다. 영국군은 증기선으로 중국의 내부를 연결하는 운하에 침투하여 중국 경제를 마비시키고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아프리카는 유럽인에게 치명적인 역병이 대륙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인이 대륙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유럽에서 19세기말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염병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19세기 중반 이래 무기 제조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다루기 쉽고 연발이 가능한 소총과 기관총이 개발되면서, 그 이전에 비효율적인 무기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엄청난 규모의 살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학과 무기 기술의 비약적 발전 덕분에, 19세기 중반까지 정복하기 어려웠던 아프리카와 남북 아메리카 대륙 내부의 원주민을 앞도적인 화력으로 살육하고 정복하였다. 

서구인은 세계일차대전을 계기로 항공기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항공기의 도움 덕분에 보병만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웠던 산악지역의 저항 세력을 진압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 알제리와 이라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의 저항을 진압한 것은, 무엇보다도 공중에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서구인의 항공기가 가져온 전술적 우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서구인의 공격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은  항공기의 우위를 지우는 전술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원주민들은 터널이나 엄폐물을 이용하여 항공기의 추적을 피하고, 지대공무기를 이용하여 항공기를 격추시켰다. 이에 서구인들은 무인으로 대상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쟁의 상황이 바뀌면서, 서구인들이 무기 기술의 우위로 국지전에서 승리할 수는 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어렵게 되었다. 미국이 1960년대에 베트남에서, 소련이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한 것에서 보듯이, 게릴라전과 같은 비정규전의 승패는 무기 기술의 우위만으로는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글과 산악지역이라는 지리적 장벽 이외에도, 적군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사회적 요인 때문에, 정복군이 엄청난 규모의 지상 병력을 투입하여 현지를 샅샅이 훑고 주민을 대규모로 고문하고 살육하지 않는 한, 압도적인 화력에 의지해서만은 승리하기 힘들다. 서구인이 현지인의 게릴라식 저항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음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라크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에서 확인된다. 근래에 서구의 정복군과 현지인 간의 전쟁은, 기술, 환경,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전개되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 성과가 반영된 역작이다. 무기 체계와 전쟁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서술은 전체 논의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읽어내리기가 수월하다. 논의에 깊이가 있으면서 저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단한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의문을 가졌던, 서구의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투명해졌다. 

2025. 12. 5. 15:06

Jared Diamond. 2006(1993). The Third Chimpanzee: The Evolution and Future of the Human Animal. Harper Perennial. 368 pages.

저자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과학저술가로 유명해졌으며, 이 책은 그의 첫 대중과학서로, 인간이 어떻게 동물로부터 진화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성을 갖게 되었고, 세계의 역사는 왜 그렇게 전개되게 되었는지를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침팬지와 98%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침팬지와 고릴라 사이의 유사도보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사도가 더 높다. 그러나 인간은 침팬지를 포함한 동물세계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발전시켰다. 농업, 언어, 문화, 국가, 과학기술, 등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은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다양한 특징은 동물 세계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성 생활을 비교하면, 인간의 독특한 특징이 발견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식의 목적이외에 성교를 하며, 여성의 배란기는 여성 자신에게도 숨겨져 있다. 남성의 생식기는 신체 크기에 비해 다른 동물보다 유난히 크다. 남성은 여성보다 신체 규모가 약간 크지만,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만큼 남녀간 차이가 크지는 않다. 이러한 특징들은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혼외성교를 하는 동물임을 의미한다. 또한 남녀가 힘을 모아 자녀를 키워야 하는 인간의 생존 방식을 시사한다. 

인간의 언어는 집단 활동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집단에서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구분하면서, 타집단의 구성원을 의심하고 공격하는 습성을 타고났다. 인간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만났을 때, 힘이 강한 집단이 힘이 약한 집단을 공격하고 죽이고 말살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오스트렐리아 원주민을 만났을 때,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만났을때, 등등. 상대 집단 구성원을 모두 죽여 없애는, 집단 학살annihilation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이런 집단 학살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졌다. 나찌의 유대인 학살, 후투족과 투치족을 상호 대량으로 죽인것,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을 대량 학살한 것, 레바논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상호 집단 학살, 등등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집단 사이에 인간적인 특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축을 따라 뻗어 있으므로, 한 지역에서 재배되는 동식물이 다른 지역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었던 반면,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의 축을 따라 뻗어 있으므로 지역간 동식물의 교류가 어려웠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은 아메리카 대륙보다 인간이 식량으로 선택하거나 길들일 수 있는 동식물이 훨씬 다양했다. 이러한 대륙간 생태학적 차이가 문명 발전의 차이를 낳았으며, 결국 물질 문명에서 앞선 유럽인이 아메리카인을 쉽게 제압하였다. 

인간은 그들이 정착한 환경의 동식물을 파괴하고 고갈하는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남태평양 섬들에 인간이 정착했을 때, 그곳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왔던 동식물은 빠르게 멸종되었으며, 그 결과 그 지역의 생태계가 인간의 생존을 더이상 지지하지 못하여, 그 지역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의 환경파괴 속도, 동식물 종의 멸종 속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감안할 때, 과거 인간이 해오던 대로 계속한다면,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 어려운 날이 조만간 찾아 올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대중과학저술가로 아마도 가장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저작, "총,균,쇠"는 세계적으로 그의 명성을 높였다. 이 책은 그가 생리학자의 경력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대중과학 저술가로서 크게 성공한 시작을 알린 책이다. 이 책에는 생물학, 지리학, 역사학, 인류학, 생태학, 등에서 가져온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그후 별도의 책으로 확대 논의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대중과학 저술가로 성공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이 매우 많으며,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엮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이해력, 통찰력이 우수하며, 이야기 전개 솜씨가 놀랄만큼 뛰어나다. 여기에 언급되는 아이디어들은 한번쯤은 다른 곳에서 들어본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시간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떠진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그런 책이다. 

2025. 11. 20. 17:59

에런 코폴란드 (이석호 옮김). 2016(1956).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사용 설명서. 포노. 361쪽.

저자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이 책은 음악의 기초에 관해 작곡가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그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 시리즈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음악의 창조과정, 음악의 4대 요소(리듬, 선율, 화성, 음색), 음악의 구조, 오페라, 영화음악, 현대음악 등에 대해 서술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자신의 음악 창작 작업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음악사에 기록된 주요 음악들을 분석하고, 음악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면, 음악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음악과 관련해 자신이 가진 기술(skill of the trade)을 솔직하게 공개한다. 이 책을 읽으면 작곡가의 작곡 과정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는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곡을 썼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 다양한 곡을 예로 하여 악보와 함께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책의 많은 내용은 음악의 기초 지식을 담고 있는데, 음악을 만드는 장인의 입장에서 그러한 지식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것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번역이 자연스러워 읽기에 부담 없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2025. 11. 18. 16:56

로버트 필립 (이석호 옮김). 2025. 음악의 역사(A Little History of Music). 소소의 책. 391쪽.

저자는 음악가이자 음악학자이며, 이 책은 전세계의 전기간에 걸친 음악의 역사를 요약하여 서술한다. 서구의, 백인 남성 음악가 중심의, 엘리트들이 즐기던 음악에 치중하던, 전통적 음악사의 범위를 벗어나, 서구 이외의, 비백인의, 여성 음악가의, 민속 음악과 대중음악 등, 서구 음악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주제를 포함하려 노력한다. 

서구의 음악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시대와 이후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로마시대의 음악에 뿌리를 둔다. 서구의 음악은 서기 1,200년대까지는 거의 전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하였다. 이후 1,400~1,600년의 르네상스 시대에는 왕과 귀족의 세력이 성장하고 이탈리아의 도시를 중심으로 부호 상인 가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 권력자의 보호하에 이들의 여흥과 세과시을 위한 역할에 머물렀다. 이와는 별도로 일반 민중의 일상에서 사용되는 민속 음악이 존재했다. 

서구의 음악은 1,100 년경부터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이 발전하면서, 세계의 다른 음악과 달리, 전통에 머물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길을 걷게 된다. 서구를 제외한 세계의 음악은 귀로 듣고 경험으로 배우는 과정을 거쳐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 반면, 서구에서는 악보를 통해 과거의 음악을 정확히 재생하고, 동시대의 음악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덧붙이거나 변형시키는 길이 크게 열리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시대까지는 단성음악 monophony 이 주를 이루었으나, 중세 교회 음악에서 화성을 곁들인 음악 homophony 을 거쳐, 여러 음이 동시에 전개되는 다성음악 polyphony 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이후 서구의 음악은 화성 harmony 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조성음악을 기본틀로 하게 된다. 1600~1750년대의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JS Bach 는 조성체계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서구 음악의 아버지로 숭앙된다. 

1750~1820년대의 고전시기 classical period 에 활동한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서구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연다. 이전까지 서구의 음악가는 교회에서 일하거나 권력자의 보호하에 그들에게 고용되어 그들의 여흥과 행사에 보조하는 음악 활동을 하였다. 반면, 모짜르트와 베토벤은,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나, 자유 음악가 freelance musician 로서, 권력자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창작 활동을 독립적으로 하는, 전문 예술가의 롤모델을 만들었다.  

1820~1900년대의 낭만주의 시기에는, 서구의 음악이 과거의 규칙이나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의 감정과 양식을 표현하고 시도하는 시기이다. 19세기 후반 서구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각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가락을 반영한 음악을 생산하는 운동이 전유럽에 전개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음악의 전형이라할 화성과 조성의 원리를 파괴하는 실험이 전개된다. 일차대전을 계기로 서구 문명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면서, 서구의 음악 전통을 거부하는 다양한  음악들이 나온다. 이들은 서구 음악의 전통적인 화성 체계를 버리고 불협화음을 많이 사용하면서 일반 음악청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20세기에는 녹음기술과 라디오의 보급으로, 음악 활동과 소비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된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수단이 확보되면서,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이 음악 활동의 주역을 차지하게 된다. 19세기까지 엘리트 중심의 음악은 '고전음악' classical music 이라는 범주로 국한되며, 중상류층의 고급취향의 사람들만이 즐기게 된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고전음악은 영화 음악에 활발하게 사용된다. 

이 책은 전세계의 전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엄청난 과업을 제시했으나, 결국 서구의 음악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비서구의 음악은 그야말로 수박 겉할기로 건드린다. 예컨대 지나가면서 K-pop 과 사이의 '강남 스타일'을 언급하는 식이다. 서구의 엘리트 음악 이외에, 대중음악이나 민속음악에 대한 서술은 피상적이다.이는 아마도 서구 엘리트 음악 이외에 다른 음악들에 대한 연구가 깊이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개별 작곡가를 망라하는데에 매몰되지 않고, 음악의 전반적 흐름과 변화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저자가 음악학자이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그의 서술이 보다 깊이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번역이 엄청나게 잘 되었다는 점이다. 번역이라고 느끼지 않을만큼 글과 표현이 자연스러워서, 글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자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고, 말을 다듬는데 엄청나게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2025. 11. 11. 15:29

Alexander Todorov. 2017. Face Value: the irresistable influence of first impress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인상 facial impression 에 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사람의 얼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어졌다. 막 태어난 아기들도 인간의 얼굴을 다른 이미지보다 선호한다. 인간의 두뇌에는 상대의 얼굴 인식을 전담하는 부위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얼굴을 파악하며,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부터 그 사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상대를 구별하고 상대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 인상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연구결과, 사람들이 상대의 얼굴로부터 습득한 정보는 그 사람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얼굴 인상은 구조적으로 두개의 차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선한가 혹은 악한가' goodness vs badness, 이며, 다른 하나는 에너지 수준이 높은가 혹은 낮은가 high power vs. low power 이다. 이 두개의 차원을 결합하면, 다른 모든 얼굴 특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위협적인 특징은 악하면서 에너지 수준이 높은 것이다. 사람들이 상대의 얼굴로부터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은 크게 세가지인데, 신뢰할만한지 trustworthiness, 지배적인지 dominance, 전반적으로 매력적인지 attractiveness 이다.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으로 보일수록, 연령이 많은 것으로 보일수록, 매력적으로 보일수록, 신뢰할만한 인상을 준다. 또한 미소띤 얼굴이 중립적인 얼굴보다 신뢰할만한 인상을 준다. 

상대에 대한 인상은 관찰자의 요인에 의해 영향받는다. 사람들은 친숙한 사람을 낯선 사람보다 더 좋게 평가하며, 자신 및 자신의 가족과 비슷한 사람을 타인보다 더 좋게 평가하며, 자신이 속한 그룹의 사람과 비슷한 상대방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게 평가한다. 자신이 좋게 평가하는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 반면, 자신이 나쁘게 평가하는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나쁘게 평가한다. 즉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갖는 인상은 기본적으로 편파적인 biased 성향을 띤다.  

사람들이 상대의 얼굴 인상으로부터 상대의 그 순간의 일시적인 상태나 의도 state and intention 를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 character 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순간 순간마다 얼굴 표정이 바뀌기 때문에, 순간의 표정으로부터 얻는 인상이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과 부합한다는 주장은 그릇되다. 상대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그 사람의 그 순간의 감정을 읽는 데에도 한계가 많다. 사람들이 얼굴로 부터 그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은 그 사람에 대한 배경 지식으로부터 성격을 추정하는 것일 뿐, 얼굴 그 자체로부터 성격을 읽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낮선 사람에 관해, 그 사람의 얼굴로부터 추출한 첫인상은 그 사람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 상대의 얼굴 인상으로부터보다는 상대에 관한 배경지식으로부터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얼굴 인상은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사람들이 상대의 첫인상에 대해 갖는 믿음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소산이다.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갖는 첫인상은 상대의 얼굴로부터 오는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인상은 믿을게 못된다. 

이 책은 19세기까지 서구에서 크게 유행하던 인상학 physiognomy 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람의 인상을 어떻게 분석할지, 사람의 인상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인상은 얼마나 정확한지 등의 주제에 대해, 체계적인 심리학 실험을 통해 탐구하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실험의 배경이 된 이론적 논리와 함께, 실험에 사용된 다양한 얼굴 샘플을 직접 제시하여, 독자에게 인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인상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등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서술이 명확하고, 과학적 탐구 과정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여, 흥미와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도 '관상' 이라는 전통적 지식이 있지만 비체계적인 것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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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7. 15:41

Paul Kennedy. 1998. The Rise and Fall of Great Powers: Economic Change and Military Conflict from 1500 to 2000.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외교 군사 분야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500년대에서 1990년 냉전체제가 종식되기 직전까지, 서구 세계에서 강대국이 흥하고 쇠퇴한 역사를 서술한다. 1500~1600년대에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제국, 이어 짧은 기간 동안 네덜란드의 부상, 1700년대에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 1800년대에 영국, 1900년대에 두차례의 전쟁을 거친후 미국과 소련의 부상, 등으로 강대국의 흥망사가 정리된다. 

군사력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다. 경제력은 언제라도 군사력으로 전화될 수 있으므로, 강대국의 핵심은 경제력에 있다. 절대적 국력보다는 상대적인 국력이 국가들 간 세력 관계를 결정한다. 국가들은 서로 경제 성장 속도가 다름으로, 시간이 흐르면 상대적 국력의 균형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후발국은 선발 강대국보다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조만간 선발국을 도전하게 되고, 결국 선발국을 대치하여 강대국으로 올라선다. 강대국이 흥한 후에 쇠퇴하는 과정은 지난 역사를 돌아 볼 때 필연적이다. 선발 강대국은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강대국의 이익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커버해야 할 영역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데, 강대국의 지위를 지키려 한다면 이중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과도하게 큰 군사비를 지출하게 되며, 과도한 군사비는 경제성장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후발국은 강대국과 달리 비생산적인 성격의 군사력에 경제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강대국에 비해 더 높은 경제성장율을 기록하게 된다. 강대국과 후발국간 상대적 성장율 격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둘 사이에 경제규모의 역전으로 귀결되며, 이것은 군사력의 역전, 강대국의 지위 대체로 이어진다. 

맨 마지막 장에서 198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강대국들의 미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일부는 예측이 맞았지만 일부는 틀렸다. 미국과 소련의 양대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앞으로 다자의 강대국들의 세계로 변모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5년 이래 일관되게 줄어드는 반면, 독일, 일본, 및 제삼세계의 비중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워낙 자체의 자원이 엄청나기 때문에, 조만간 후발국에게 따라잡힐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일본이 크게 부상하리라는 그의 예측은, 1990년대 이래 일본의 장기 정체로 인해 경제가 쪼글아드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소련이 과도한 군사비 지출과 경제적 비효율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예상했지만, 책이 나온지 불과 2년 후에 내부의 모순 때문에 함몰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이 매우 빨리 경제 성장을 하여 미국과 대적할 강대국으로 부상하리라는 것 또한 예측하지 못했다.  

이 책은 1500년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는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역사가의 서술답게 유려하게 글을 써서, 읽는 내내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1700~1800년대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을 서술하는데 탁월하다. 

 

2025. 10. 6. 16:31

Robert Axelrod. 1984.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Basic Books. 191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게 되는 조건과 이유를 설명한다. 반복하여 거래해야 하는 개체들 사이에는  'tit for tat'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전략이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협력하게 된다.

세상사의 많은 부분은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 이라기 보다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prisoner's dillemma game 상황에 부합한다. 즉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지는 게임이기보다, '플러스 섬' plus-sum 게임, 즉 둘이 협력하면 각자 단독으로 이익을 추구할 때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 상황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상대의 이익을 저버리는 경우가 둘이 협력하는 경우보다 배반하는 개인에게 더 큰 보상을 가져오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열등한 보상을 가져온다. 즉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여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자기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타인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여 행동할 때보다 사회 전체로 볼 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다른 상대도 그에 맞받아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전체로 볼 때 열등한 보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이 협력하면 전체로 볼 때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지만,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각 개인이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여 자신의 이익을 일부 양보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죄수의 딜레마 조건 하에서 컴퓨터 게임 경쟁 시합을 공모하여, 출전한 프로그램들간 맞대결을 하는 방법으로 최고의 게임 프로그램을 선발하였다. 그 결과, 'tit for tat'   전략이 가장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 이는 처음에 협력으로 시작하여, 상대가 배반하면 바로 배반으로 맞대응하고, 상대가 협력으로 돌아서면 바로 협력으로 맞대응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최고의 전략이 되려면, 상대와의 만남이 계속된다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가 과거에 협력과 배반 중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억하고 이에 맞추어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tit for tat 전략의 강점은, 상대를 이기려고 하기보다 상대로 부터 협력을 이끌어 내는데 있다. 상대도 나의 행동에 대응하여 선택하기 때문에,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혹은, 상대를 속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상대의 보복을 불러온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tit for tat 전략의 요점은, 지속적인 거래 상황에서 '상호주의' reciprocity 에 있다. 동일한 상대와 지속적으로 거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협력이 각 참여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기 때문에 결국 협력하게 된다. 

tit for tat 전략이 협력으로 이끄는 상황은, 현실 세계에서 종종 관찰된다. 제1차 대전 중 참호전, 즉 동일한 적과 지속적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가 나타났다. 생물계에서 공생의 관계는 바로 이 전략이 적용된 사례이다. 소수의 대기업이 반복되는 경쟁 입찰에서 공모하는 경우, 귀금속을 거래하는 상인들 사이에 형성된 신뢰 관계, 등 이러한 상황이 적용된 예는 많다. 

tit for tat 전략은 다른 어떤 복잡한 전략보다 장기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전략을 사용하는 참여자들 사이에 일단 협력이 정착되면, 어떤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침입자가 나타나더라도 협력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을 추구한다면, tit for tat 전략은 어떤 다른 전략보다 도덕적으로 강력한 교훈을 제공한다. 상대에게 선제적으로 호의적으로 대응할 것, 상대가 악으로 행동하면 악으로 응대할 것. 상대가 악으로 행동하는 데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의 악에 대해 선으로 응대하면 악행을 용인하는 관행을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악으로 대응하면 악으로 맞받아쳐,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의 댓가를 치르고, 마음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상대가 선으로 행동하는 쪽으로 돌아서면 상대가 과거에 어떻게 했건 상대에게 선으로 응대한다. 

tit for tat 전략의 약점은, 상대가 배반을 할 때 배반으로 응대하기 때문에, 상대가 만일 이에 대해 tit for tat 전략으로 대응하면 배반으로 상호 맞받아치는 함정에서 둘 다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상대가 계속 악을 행하면 상대는 물론 자신도 함께 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상대의 배반에 대해, 상대보다 약간 약한 강도로 배반으로 대응함으로서, 거래가 반복될수록 상호간 배반의 강도가 줄어드는 전략을 제시한다. 상대가 random 하게 응대할 때, 역시 tit for tat 전략은 협력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 책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협력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간단하면서도 투명한 논리로 왜 tit for tat 전략이 어느 복잡한 전략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간단한 전략이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대단한 발견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도 감탄했지만, 두번째 읽을 때 역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를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2025. 8. 5. 16:45

Robert Shiller. 2015. Irrational Exuberance, 3r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1 pages.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발생하는 기제를 설명한다. 1929년 대폭락, 1960년대 후반의 상승에 이은 폭락,1990년대 후반 폭등에 이은 2000년의 폭락, 2007년의 주택 시장의 폭락, 등이 주요 사례로 언급된다. 

주식시장은 구조적 요인, 인간 심리에 귀인한 요인,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거품과 폭락의 사이클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2000년의 폭락의 구조적 원인은, 1990년대 정보통신기술의 보급에 따른 기업 성과의 향상, 공산권의 붕괴에 따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 새천년을 앞둔 기대감, 등이 주식 가격의 상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요인 자체가 시장의 큰폭의 상승과 폭락의 사이클을 만든 것은 아니다.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낙관하는 피드백 현상이 나타났다. 주위에 주식 가격이 올라서 큰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객관적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다. 가격이 오르는 원인으로 사람들 간에 회자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그러한 이유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정당한 근거라는 확신을 시간이 갈수록 굳히게 된다. 즉 가격이 계속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전에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드백 과정이 계속되면, 주식 가격은 기업의 펀더맨탈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피드백 효과가 작용하는 데에는 미디어가 한 몫한다. 미디어는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환기시키고, 그것을 설명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불어넣는 데 열심이다. 새로운 뉴스에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미디어의 수익을 높이는 길이므로, 미디어는 더욱 자극적이고,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의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소개하고, 사람들의 '희망적인 생각' wishful thinking을 부추기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증권회사나 소위 전문가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계속 제공하여 돈을 벌게 된다.

지금까지 주식 시장의 거품은 항시, "새로운 시대" new era 가 열리고 있다, "이번은 다르다" this time is different  등의 이야기 stories 를 동반했다. 1920년대의 대폭락은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라고 지칭하는, 비약적인 기술발전과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이야기와 함께 했다. 1960년대의 호황과 폭락은, 베이비붐 세대의 도래, 이차대전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 등의 이야기가 함께 했다. 1990년대의 호황과 폭락은 정보통신혁명이 가져올 엄청난 생산성 향상의 이야기가 함께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에 도취되어, 실제 이러한 기술발전과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성과로 반영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단기간에 주식 가격을 크게 올린다. 엄청난 장미빛 전망이 단기에 기업의 수익으로 실현될 수는 없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지면 점차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심과 불안이 자라난다. 이때 조그만 사건을 계기로 가격이 하락하면, 붕괴의 피드백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먼저 빠져 나오려고 패닉 처분 panic selling에 뛰어들고,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떨어진다. 요컨대, 주식 시장의 폭등과 붕괴의 사이클은 사람들의 감정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주식 시장의 거품은 인간의 감정적인 성향 때문이므로, 이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구조적으로 개선한다면,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주식 가격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short sale' 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것, 주택 가격의 지나친 변동 위험에 대해 헤징 hedging 하도록 주택에 대한 futures option 시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요컨대, 각자가 자유롭게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되, 위험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시장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근래에 크게 환기되고 있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Anvidia나 Open AI와 같은 인공지능 관련 회사들의 엄청나게 높은 주식 가격의 연관. 요즘과 같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고조된다면, 결국 조만간 또다른 주식시장의 거품과 폭락을 맞게 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수준이 거품인지 추정하기 어렵고, 거품이라고 해도 제법 오래갈 수 있기 때문에,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데 있다.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사례들을 설명하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2025. 7. 3. 15:49

Scheidel, Walter.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 Press. 52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왜 서구가 세계를 앞서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중국과 비교하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저자의 설명의 핵심은, 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 서구 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졌으며 (fragmentation), 국내적으로도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면서, 다양한 주체들간에 경쟁과 타협이 이루어지고, 기득이권과 관행을 지키기보다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제도적 인센티브 시스템이 들어서게 된 데 있다. 

서구 유럽의 전 역사를 통털어, 로마 제국은 유일하게 전지역을 통괄하는 단일 권력체였다. 로마가 망한 후 유럽에는 로마에 필적할만한 단일 권력체가 들어서지 못했다. 반면 중국에는 한 제국의 멸망이 다른 제국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지역을 총괄하는 단일 권력체가 꾸준히 지배하였다. 단일 권력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생기지 않고, 안정과 전통을 중시하는 이념이 지배한다. 중국에서는 땅에 붙박힌 농업과 지주층을 중시한 반면, 움직이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낼 위험이 있는 상업과 공업을 억눌렀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부의 출현은 엄격히 통제되고 제한되었다. 중앙의 정치체가 모든 권력, 부, 이념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권력과 결탁하여 관료와 지주가 되는 길밖에는 없었다. 

반면 서구 유럽에서는 로마가 망한 후 각 지역은 뿔뿔히 흩어졌으며 단일 정치체로 권력이 모아지지 않았다. 세속 권력체들의 분열에 더하여, 세속 권력에서 독립된 기독교 권력이 성장하였다. 각 정치체들은 서로 치열히 경쟁하였으며, 경쟁에 우위를 가져올 좋은 제도나 관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관행에 기반을 둔 기득이권 집단의 반발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럽의 분열된 사회는 변화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한 국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국가는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하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성과를 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도를 찾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구 유럽에서 중국이나 인도/중동 등과 달리 로마가 망한 후 전지역을 포괄하는 단일 정치체가 들어서지 못한 데에는 지정학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중앙아시아의 대초원 지역에는 막강한 기동력과 무술을 보유한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수시로 주변에 있는 농업 정착 민족을 침탈했다. 농업 정착민족은 생산력은 높지만 무력에서는 이들에 뒤지기 때문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중국, 인도/중동에는 강력한 권력으로 막강한 자원을 동원하는 정치체가 지배하였다. 반면 서구 유럽은 대초원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목민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또한 유럽은 중국과 달리 지리적으로 산맥, 강, 해안선이 복잡하여 전지역을 통괄할 수 있는 정치체의 출현이 방해받았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주변에 있는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상공업이 발달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유럽 권력의 중심지인 프랑스나 합스부르크 독일/스페인에서는 기득 이권과 기존 이념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서기 어려웠다. 유럽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상공업은 장려되고 상공업자들은 정치인에 비견할 권력을 획득하였다. 상공업자들은 왕과 귀족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의회를 만들었으며, 지식인과 기술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을 길을 찾아 다른 나라로 이주하였다. 왕과 귀족, 상공인, 지식인, 종교인 등이 권력을 분점하면서 서로 조정하고 타협하는 제도가 자리잡았다. 단일 권력체와 이념이 전 지역을 지배하는 중국과는 전혀 달리, 유럽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지식 등 모든 면에서 파괴적 혁신 distructive innovation 의 역동성이 지배하였다. 

저자는 로마의 영광을 칭송하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로마의 멸망과 이후 이에 필적할 강국이 유럽에 출현하지 못한 것이 유럽의 성공, 나아가 인류 전체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권력의 분열과 경쟁은 많은 갈등과 파괴와 인명의 희생을 낳는다. 그러나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혁신을 저해하기 때문에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지 못했다. 변화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논의를 모두 포괄하는 대단한 분량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노력과 통찰력과 서술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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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Thaler. 2015. Misbehaving: The Making of Behavior Economics. W.W.Norton. 358 pages.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이며, 이 학문 분야의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그의 개인적인 지적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며, 이 학문 분야의 발달 과정을 주요 이슈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술한 기록이다. 그는 행동 경제학의 대부로서, 이 학분 분과가 어떻게 시작되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서술한다. 

경제학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상을 가정한다. 합리적 인간은 효율을 중시하며, 감정에 휩쓸리거나 어떤 이유로건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박사 과정생 시절부터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가 실제 사람들의 행동 방식과 맞지 않는 경우에 흥미를 가졌다.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 유의미한 패턴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서 출발한 행동경제학자인 칸네만과 트베르스키와의 만남은 그의 이러한 의심을 학술 활동으로 구체화하는데 크게 작용하였다. 

첫번째로 그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소유 효과 endowment effect" 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것에 대해서 자신이 그것을 소유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그것에 더 큰 가치를 매긴다. 이는 동일 물건은 시장에서 동일 가치를 가진다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에 어긋난다. 그는 다양한 실험과 실재 상황을 통해 그의 주장이 맞음을 증명한다. 이 주제 이외에도 여러 흥미 있는 이슈들이 소개된다. 사람들이 사용처에 따라 심리적으로 계정을 구분하여 돈을 운용하는 현상(mental accounting), 공정성을 고려하면서 효율성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 현상, 금융시장에서 자산의 가치가 반드시 대상의 내재적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 현상, 프로 스포츠 업계에서 선수를 스카웃할 때 팀에게 최고의 승률을 가져오도록 결정하지 않는 경향, 노후를 대비한 저축을 소홀히 하는 성향 등이다. 

저자가 쓴 책인 "Nudge" 은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여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은 먼 미래에 닥칠 위험에는 비중을 적게 두기에 미리 대비하는 행위를 소홀히 하며, 당장의 소비를 저축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에, 결국 노년이 되면 궁핍에 빠지게 된다. 직장에 들어갈 때 연금저축에 가입하는 것을 '기본 선택 default' 항목으로 하여 자동 가입되도록고, 미래에 임금이 오르면 오르는 부분의 일부를 자동으로 더 많이 저축하도록 연금저축을 설계함으로서, 심리적 저항감 없이 사람들의 노후 대비 저축을 늘릴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낸 뒤 영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너지 효과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정책으로 개발하는 팀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후 그의 아이디어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행동경제학은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가정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대체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합리성으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이 완벽한 설명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정도나 맥락은 다양하다.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면, 경제학의 현실 정합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행동경제학이 해야할 일은 많다. 

이 책은 저자가, 언제 어떻게 특정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는지,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적인 학술 연구 활동으로 발전시켰는지,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다른 아이디어를 낳았는지 등을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행동경제학에 대해 전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게 된다. 아이디어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학술 연구 활동이란 것이 무엇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을 노벨상을 수상한 한 분야의 대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으며,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읽은 드문 책이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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