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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6. 15:26

앨리스 로버츠. (박경한, 권기호, 김명남 옮김).  2017. 인체 완전판 2판, 몸의 모든 것을 담은 인체 대백과사전. (The Complete Human Body by Alice Roberts). 사이언스 북스. 497쪽.

저자는 의사이자 체질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인체와 관련된 모든 주요 사항을 그림과 함께 담은 백과사전이다. 책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인체 해부 도감과 설명이 차지하며, 나머지 절만은 인체의 작동원리, 인생 주기, 질병과 장애로 구성되어 있다. 해부학의 그림이 전문가가 참고할 정도로 상세하며 부가된 설명이 매우 친절하다. 인체의 원리를 서술하는 부분이나 인생 주기에 따른 인간의 변화에 대한 설명 역시 수준이 높다. 

전문적인 해부학과 생리학 지식을 다루면서 일반인도 이해할 수준으로 친절하게 서술한 대단한 책이다. 저자가 BBC에서 인간관련 여러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한 솜씨가 이 책에서도 느껴진다. 번역도 무척 잘 되어서, 전문적인 의학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번역해 놓았다. 지난 몇달 동안 책을 잡을 때마다 조금씩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꼈으며, 인체의 구조와 원리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보너스로 얻었다. 마지막 쪽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크게 느낀, 드물게 좋은 책이다.

2023. 6. 16. 10:22

David Stasavage. 2020. The Decline and Rise of Democracy: A Global History from Antiquity to Today. Princeton Univ. Press. 310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고대에서 근래까지 민주주의의 원천과 변화의 원인을 전제주의와 비교하면서 서술한다. 민주주의는 오랜 옛날부터 인간사회 공통의 정치 제도였으며, 민주주의는 퇴보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전개되어 왔으며,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는 별도의 길을 걸어왔다.

원시시대와 고대에는 민주주의가 거의 모든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정치 제도였다. 지도자가 마을 혹은 부족의 세력가들로 구성된 집단과 협의하면서 통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집단의 규모가 작을 경우 집단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고대의 민주주의는 주로 상층부의 참여에 국한될 뿐, 일반인에게까지 주권이 부여될 정도로 폭이 넓지는 않았다. 반면 현대의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폭이 넓지만,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이라는 간헐적 간접적 방식으로 주권을 행사하기에 유권자와 대표 사이에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는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깊이가 얕다.

서유럽은 국가의 힘이 약했다. 왕은 소수의 가신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며, 자신 소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정부를 꾸렸다. 대지주 귀족이나 도시민들은 왕의 통제가 미치지 않았다. 왕은 귀족과 도시 상공인들과 협의하면서 국가의 일을 처리하였다. 중세는 물론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의 국가는 국내총생산의 1%정도의 세수만을 거둘 뿐이었다. 유럽의 왕은 15세기 절대왕정 시절에도 자신이 통제하는 관료의 수가 많지 않았으므로 통치력이 미약했다. 서유럽에서 약한 국가와 협의체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귀족, 승려, 도시 상공인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1250년 왕의 세수권한을 제한하는 서약인 Magna Carta와, 1688년 왕을 폐위시킨 명예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국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일반인을 징집해야 하고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게 되면서, 통치자는 국민에게 주권을 점차로 더 많이 양보해야 했다.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남성 모두에게 선거권이 확대되고, 1차대전 이후에 여성에게 선거권이 확대된 과정에는 이러한 힘이 작용하였다.

중국은 일찍부터 국가의 힘이 강했다. 기원전 주나라 시절부터 왕은 두터운 관료 집단을 거느리고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했다. 서기 200년전 한나라 시기에 시작된 과거제를 통해 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하고 통제하는 유능한 관료들을 동원하여 국민의 일상을 통제하였다. 한나라 시기에 국가는 국내총생산의 10%가량을 세금으로 징수하였으며, 도로나 치수사업 등 많은 사업을 전개하였다. 중국은 왕 휘하의 강력한 관료들 덕분에 중앙집권적인 전제주의 체제를 뿌리내렸으며, 이러한 전통은 현대의 공산주의 정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유럽과 중국이 다른 길을 가게된 원인은 자연 환경의 차이에 있다. 서유럽은 넓은 평야가 없으며, 목축이나 호밀 재배에서 밀도가 낮은 농업을 하고, 자연 강우에 의존하여 생산에 굴곡이 많으며, 인구가 조밀하지 않았다. 토지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낮고, 사람들이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면,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통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민주주의가 서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빨리 발달한 원인이다. 반면, 중국은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발달하였는데, 이 지역에는 넓고 비옥한 퇴적토가 있으며 강물을 끌여들여 밀도가 높은 농사를 지었다. 많은 사람이 집중해서 거주하고, 농업 환경 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중국의 농업은 생산량의 측정과 예측이 정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관료는 국민의 생산활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반면 서유럽의 농업은 외부인이 생산량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인이 아닌 국가의 관료가 주민의 생산활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금을 거두기 어려웠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대표자를 뽑아 의회에 보내는 방식의 간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은 대표자에게 의결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1600년경에 일찌기 확립한 반면, 서유럽 대륙의 나라들은 대표자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세금, 전쟁 선포 등과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민이 자신의 대표에게 일정한 한도까지의 결정 권한(mandate)만을 부여하는 제도는, 국가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의회에서 논의가 진행되면서 대표자의 결정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이 발생하면, 자신을 선출한 주민들에게 돌아가 다시 의견을 묻고, 의회에 돌아와서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은 의회의 효율을 크게 저해한다. 대표자에게 의결의 제한을 부과하는 전통은 주민이 대표자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정도가 높다. 반면 대표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는 일단 대표자를 선출하기만 하면 주민은 대표자에 대한 통제권을 더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면에서 국민이 주권을 보유한 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서유럽에서 상공업이 가장 먼저 발전했던 네덜란드를 영국이 제치고 17세기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영국의 의회가 변화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반면, 대표자의 의결을 제한하는 제도를 유지한 네덜란드 의회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도가 높으면, 변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어려우며, 기득권자들이 버티고 신규 시장 진입을 제한한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즉 지주가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꾸고 울타리를 쳐서 경작민을 쫒아내는 것이, 영국 의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대표자에게 전권을 부여한 제도 덕분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민주주의였던 서유럽보다 전제주의였던 중국이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잘 살았다. 전제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지휘로 자원을 동원하여 일관된 경제성장을 추진한 사례가 여럿 있다. 소련이나 현대의 중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가 성숙하게 되면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 개인의 창의가 필요한데, 전제주의 체제는 개인의 창의를 억압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지 않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정치적인 반대의견은 강력히 억압하지만, 생산성을 높일 수있는 비정치적인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혁신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민주주의가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맞지 않는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는 현재 기준으로볼 때 매우 가난한 수준의 사회에서 발달하였으며, 중국은 현재 상당한 소득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중류층이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정치 참여 욕구가 커지기 때문에 중국이 민주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지금까지 맞지 않고 있다. 물론 국민들이 기본적인 생존에 허덕인다면, 선동 정치가의 주장에 쉽게 혹하고 매표와 같은 선거 부정이 만연하기에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렵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볼 때 기본적인 생존의 위협을 넘어선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국민의 소득 수준과 민주주의는 경험적으로 관련이 크지 않다.

서유럽에서와 같이 일단 의회민주주의가 먼저 자리잡으면, 이후 관료가 충원되어 국가의 기능이 커진다고 해도, 의회가 관료 집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약화되지 않는다. 반면 중국과 같이 강력한 관료집단이 전제주의 정치와 결합해 있는 경우, 이후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어도 자리잡기 힘들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여 서방의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경우, 그 제도의 성공 여부는 식민지 시기 이전 그 사회에 민주주의적 협의체 전통이 얼마나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협의체 전통이 미약하다면 식민지 시기의 전제적인 통치 방식이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는 반면, 협의체 전통이 있었다면 서구의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0년 공산주의 몰락 이후 개발도상국에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대단한 일이다.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이 자신의 진영에 속한 전제적인 정부를 떠받쳤었는데, 이러한 보호막이 걷히면서, 많은 나라에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근래에 민족주의와 대중영합주의가 발흥하면서 선진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중앙정치와 대표자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난제이다. 시민 교육을 강화하고, 대표자와 유권자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의회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견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대표자를 통해 수렴하는 제도이다. 전제주의 체제 또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경로를 가지고 있다. 어느 체제이건 통치자는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관료들이 지역의 민의를 수렴하는 경로로 기능한다. 능력에 따라 선발되는 관료는, 세습적 귀족과 달리 일반인 중에서 선발되므로 그들 자신이 민의를 대표하며, 이들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민들과 접하며, 국민의 의견과 필요를 반영하여 제도를 조정한다.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가 근래에 양극화되면서 정부와 의회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조정하여 일을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중국은 유능한 관료와 정치인을 점진적으로 위로 올려보내는 자신들의 체제가,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발하는 대의제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서구의 대의 민주주의제도와 중국의 전제주의 제도는, 각자 안정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달리, 연구 논문과 같이 경험적 분석 자료의 제시와 건조한 서술 때문에 빠르게 읽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서구와 중국을 비교하고, 이슬람과 아프리카 등을 비교하고, 고대와 중세 및 현대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종횡무진 생각을 펼쳐서, 통찰력이 돋보인다. 논의와 관련하여 의문이 생길만한 점들을 비록 저자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논의하는 솔직함이 엿보인다. 여러가지를 생각케 하는 좋은 책이다. 

2023. 6. 6. 12:37

Yuval Noah Harari. 2015.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Harper. 416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탄생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몇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거시적으로 서술한다.

인류는 인지 능력의 비약적 발달 덕분에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길을 걸었다. 추상적 상상을 하는 능력 덕분에, 인류는 종교, 이념, 민족, 국가, 법인, 기본권, 등 추상적 아이디어를 구심점으로,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일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문자의 발명 덕분에 세대의 한계를 넘어 아이디어가 전해지고 축적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확장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비참과 멸종을 의미했다.

농업 혁명으로 생산력이 늘고 인구가 증가했지만, 이전에 수렵채취 단계에 비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은 과거보다 더 고달파졌지만, 일단 농업 단계로 접어들면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었다. 잉여생산물을 기반으로 도시와 위계적 사회가 출현하고, 사람들은 성, 인종, 등으로 구분된 집단간에 편견을 생산하고 차별과 착취를 하였다. 이러한 구분과 착취는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해낸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이다.

크게 볼 때 인류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이다. 근래로 올 수록 인류는 과거에 고립된 수 많은 작은 단위의 사회로부터 점차 큰 단위의 사회로 통합되어, 마침내 지구 전체가 하나의 사회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통합은 경제, 정치, 종교의 영역 모두에서 전개되었다. 화폐와 교역을 통해 경제가 통합되었으며, 다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의 정복과 흡수를 통해 정치적으로 통합되었으며, 국한된 지역을 넘어 인류 전체를 관장하는 신과 초월적 힘이라는 아이디어로 종교가 통합되었다. 근대에 들어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통 종교를 대신하면서 통합을 이끌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전과 판이하게 구분되는 단계인 '근대' modern 를 이끈 핵심은 '과학 혁명' scientific revolution 이다.  이전에는 과거를 이상으로 생각했으며, 모든 중요한 지식은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1500년경 서구에서 '인간은 무지하다,' '세상을 관찰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자' 라는 새로운 지식 탐구 방법론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세상을 탐구하여 획득한 새로운 지식은 힘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를 관찰하여 얻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생산력을 높이고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서구에서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함께 '진보' progress 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었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반면,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힘으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국이나 이슬람의 지식 수준이 서구보다 더 높았지만, 그들은 모든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새로운 지식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나 문제에 봉착하면 과거 사람들이 남긴 지식을 열심히 파고 새로이 해석하려고 했다. 중국이나 이슬람인들은 인류의 이상향이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가 오랫동안 정체 상태를 유지했으므로 당연하다.

과학 기술은 제국의 확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국가의 후원 속에서 발전하였다. 주요한 과학 발견은 거의 대부분 국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가는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비용을 지불하였다. 자본을 투자하여 거둔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더욱 더 확장시킨다는 자본주의적 사이클은 신용제도와 더불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사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신용제도는 미래의 경제성장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본주의 제도는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금전적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 다른 어느 제도보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하였다.

증기의 힘과 같이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인류는 근래로 오면서 전기, 핵 에너지, 태양광 등과 같이 새로운 에너지 원을 계속 발굴하면서 생산성의 향상을 거듭했다. 이러한 물질적 발전을 이끈 힘은 과학 기술에 있는데, 인간의 과학 기술은 마침내 자연 세계의 원리인  진화적 발달을 뛰어넘어, 인간이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물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미래에 슈퍼 휴먼의 출현을 예상케 한다. 미래에 출현할 수퍼 휴먼은 현생 인류에 대하여, 마치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보듯 할 것이다.

인류는 근래로 오면서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과연 인간은 과거보다 더 행복할까? 물질적 향상과 더불어 인간의 욕구와 기대수준 또한 함께 높아졌으므로,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잘 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불만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인의 중심 가치관인 인간중심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느낌 feeling, 자기 자신의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을 최고의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욕구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다. 인류의 물질적 발전이 행복을 높이지 못한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말인가? 불교에 따르면 인간의 불만과 근심은 집착에서 비롯되므로, 집착을 끊으면 만족과 불만이 없는 상태,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관조하는 상태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는 아직 미해결의 과제이다. 한편 인류의 발전은 지구상 다른 생물들에게는 비참과 파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한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필자도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책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매혹시켰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희미한 이책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첫째, 여러 학문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두드러졌다. 저자의 독서가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그많은 이야기를 기억속에서 꺼집어 내어 적재적소에 꿰어 맞추는 능력은 놀랍다. 둘째, 저자는 관점을 수시로 바꾸고, 때때로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을 비교하면서 신선한 발상을 발산한다. 기존의 역사 서술은 거의 모두가 서구 중심인데, 저자는 수시로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관점에서 비교하기도 한다. 셋째, 역사 서술에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적 시각을 접목하여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종횡무진 발휘한다. 그 결과 이 책이 역사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물론 두번째 읽으니 곳곳에서 그의 추리이나 서술에 약점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아직 젊으므로 앞으로 어떻게 생각이 발전할지 궁금하다.

2023. 4. 21. 10:03

William McNeill. 1995. Keeping Together in Time: Dance and Drill in Human History. Harvard. 1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동시에 움직일 때 느끼는 흥분이 종교, 군사, 정치, 사회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2차대전에 징집되어 군사훈련을 할 때, 여러 시간 동안 보조를 맞추어 행진연습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적 흥분의 기억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리듬을 맞추어 육체적인 활동을 하면, 집단 소속감과 함께 삶에 대한 흥분이 고조되면서 집단결속이 높아진다. 저자는 이를 '육체적인 결속' mascular bonding 이라 지칭하는데,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 구성원들과 언어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소통을 할 때 집단 결속력이 높아지고 집단적인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적 소통 방식은 후대의 인류에게 계승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감정은 지적인 활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체로 감정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를 지적으로 정당화 내지 제도화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과거 인류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하는 활동은 그들의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종교적인 목적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여러 시간 동안 함께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춤을 추었다. 집단적으로 하는 노동에서 노동요에 맞추어 단체로 일하므로서 오랜시간 노동의 고됨과 지루함을 극복하였다. 축제 기간에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름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이러한 집단 활동은 서기 2000년전 수메르 시대의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는 계기는, 지도자의 이끌림에 따라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면서 종교적 황홀경(trance)를 맛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는 초기 단계에 이러한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신도를 유인하는데, 이는 여러 사람이 모여 동시에 몸을 움직이면 느끼게 되는 집단적 '흥분'  effervescence 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흥분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도의 규모가 커지고 종교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제한하려하고, 감정보다 지적인 접근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인 접근에 반발하여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이단이 생겨나고, 이들이 새로운 교파를 형성하면서 신도가 증가하면서 종교의 합리화 과정이 되풀이 된다. 과거 감리교, 침례교, 몰몬교가 발흥하게 된 계기, 근래에 복음주의 개신교 교회, 특히 오순절 교회Pentecostal 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크게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예배 시간에 신도들이 동시에 몸을 움직임이고 큰 소리로 외치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흥분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떠나 지적인 접근만으로 오래 존속할 수는 없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집단적인 군사 훈련, 특히 병사들이 보조를 통일해 움직이는 훈련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훈련을 강도 높게 받은 병사들은, 사기가 높고,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무엇보다 전우애가 투철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몸을 던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을 받은 군대가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군대를 만나 번번히 이겼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 훈련은 서구 전역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훈련 방식을 일찍이 도입하여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으나, 오스만 터키는 자신의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여 낙후된 군대로  남아 있다가, 유럽의 침공에 몰락하였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이 패한 이후, 독일에서는 건장한 젊은이를 길러내기 위해 체조와 운동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는 사회적 운동이 정부의 적극적 주도로 전개되었다. 같은 시기 이웃나라 스웨덴에서도 전국민 체조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국가가 주도하여 전국민 혹은 집단 구성원 모두를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건강 증진을 도모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군사적인 의도를 내포하였으며,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으로 장려되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독일의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청년 친위대를 양성하면서 체조와 행진을 중시했으며, 나치 시절에 매년 벌어진 뉴렌베르크 집회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치 특유의 손을 높이들어 인사하는 행위 역시, 동시에 몸을 움직임으로서 결속감을 고취시키는 수단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히틀러의 악몽을 잊기 위해 유럽에서는 국가주도로 체조와 행진하는 것이 기피되었지만, 히틀러의 기억이 미약한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집단 결속을 다지기 위해 집단적으로 체조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리듬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거나 행진을 하거나 구호를 외칠 기회는 많지 않다. 운동 경기장에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집단적 행위가 미국에서는 가장 이에 근접한 활동이다.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움직임으로서 집단 소속의 흥분감을 느끼는 것은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그러한 욕구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근래에 젊은이들이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가수의 이끌림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떼창을 부르고 소리를 외치고 흥분하는 이유는 이러한 활동이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집단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속이 뻥 뚫리는 후련한 느낌을 받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

저자는 인류학 배경을 가진 역사학자답게, 공식적인 제도보다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 즉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 사료는 많지 않지만, 마치 인류학자의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움직일 때 삶의 흥분을 느끼고 집단 결속감이 높아지며, 이것이 언어나 제도 못지 않게 사회와 삶의 버팀목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독창적인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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