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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해당되는 글 13건
2023. 8. 21. 16:41

 

Carles Boix. 2015. Political Order and Inequality: Their Found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가가 생겨난 기원 및, 국가와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와 함께, 인류학, 역사학, 기타 다양한 데이타를 이용해 수리적으로 검증한다.

수렵채취 단계나 낮은 기술 수준의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평등했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들 간에 불평등이 발생할 요소를 서로 감시하면서 억제하였으므로, 국가라는 제삼의 권위 기구 없이도 당사자들 서로간 개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는 특정인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억제했으므로, 성장이 없이 정체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생산력의 범위 내에서 인구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의 한계 수준 근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 생산물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생산자와 탈취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탈취자는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탈취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생산자는 탈취자에게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기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얻는다. 탈취자는 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생산자를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탈취해간다. 역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탈취자들이 세운 군주제 monarchy 를 택하고 있다.

고대의 아테네나, 근대 이전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공화정 republic이 존재하였다. 도시국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방어를 직접 담당하거나, 용병을 구입하여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북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이웃 나라의 탈취자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용병을 고용한 경우 무력을 보유한 용병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용병 출신의 무력 집단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이익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화정이 출현할 수 없었다.

무력 기술 수준에 따라 생산자와 탈취자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력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특별히 무력 수준이 우월한 사람이나 집단이 없었으므로 탈취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청동기 무기와 이후 말의 출현으로 무력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무장을 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탈취자로 군림하면서, 다수의 비무장 생산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13세기에 총포가 도입된 이후, 기마 무사의 무력적 우위가 사라지면서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대신 비싼 총포를 구입할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대규모 은을 수입한 스페인,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프랑스가 강국으로 올라섰다.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 간 및 지역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대는 기존의 탈취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지배집단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예외적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탈취자 집단이 상공업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이익을 신흥 부르주아지와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주와 상공업 계층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면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상업을 확장시켰으며,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도시로 인구가 모이면, 도시인들 사이에 분업과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 지역이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인구가 늘고, 도시가 발달하고, 군사기술과 자본 규모가 높아져서, 이웃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도시의 상공인들은 농촌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으며, 세금을 부담하고 총을 들고 전쟁에 직접 나가는 국민으로서, 왕과 지배층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져서, 결국 공화제로 이전되었으며, 과거 산업혁명 이전보다 소득 분포가 평준화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국가의 출현 및 불평등 수준 역시 생산 기술 및 군사기술의 수준과 연관된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학술서이다. 19세기 이전의 불평등 수준을 키의 분포로 측정하였으며, 생산기술의 발달 지표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설명하는 부분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용하며, 다양한 가용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논의를 뛰어 넘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대단한 비교 연구이다.

2021. 9. 30. 21:24

Corey Abramson. 2015. The End Game: How inequality shapes our final years. Harvard University Press. 148 psges.

저자는 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2년반동안 참여관찰연구방법을 적용해 캘리포니아에 사는 노인들을 관찰하고 심층면접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미국의 노인들이 어떻게 노년을 지내는지, 노인들의 젊은 시절의 사회경제적 지위, 즉 교육, 직업, 재산의 수준에 따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서술한다.

미국에서 노인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 신체적 능력의 쇠퇴로 인한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특히 미국의 노인들은 사회적으로 젊은이들과 구분되는 열등한 지위의 존재로 취급되며, 사회의 전면에서 물러나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노인들은 거동할 수 있는 한 독립적으로 살면서, 인생의 가장 마지막 단계까지 요양원에 가는 것을 미룬다. 독립적으로 사는 노인들이라도, 그들의 삶에 젊은이는 거의 관여되어 있지 않다. 요컨대 미국의 노인들은 젊은이와는 유리된 그들만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노인들이 대체로 젊은이들와 함께 어울려 사는 상황과 뚜렷이 구분된다.

미국의 노인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돌아다니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대중교통이 미비하고 신뢰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차를 직접 몰거나, 혹은 주위 사람에게 라이드를 부탁하거나, 정부에서 운행하는 복지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돌아다니며 용무를 본다. 고령이 될 수록 이러한 수단들 모두가 점점 동원하기 어려워지면서, 일상에 필요한 용무를 보는 것은 물론 다른 노인들과 교류하는 것이 어려워지며 사회적으로 단절되게 된다. 

재산이 있는 사람은 노인이 겪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택시를 부르거나, 등등. 재산이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인간 관계망이 넓기 때문에 유사시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선을 여럿가지고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인간 관계망이 좁고, 정부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관료적 절차에 휘둘려 어렵게 어렵게 필요한 것을 구하면서 살아간다. 

 노인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식은 개인적으로 동원하는 자원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지역 사회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크다. 중류층 노인이 사는 동네에는 공공 서비스가 잘되어 있다. 복지관의 셔틀 서비스, 교육 서비스, 노인 대상 다양한 복지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노인에게 제공되는 자원봉사자나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반면 가난한 사람이 사는 동네는 공공 서비스가 결핍되어 있으며, 노인을 도와주는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결여되어 있다. 즉 노인복지 환경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경향이 있다. 

노인들은 젊은 시절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노인 문제에 대처하는데 차이가 난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은 관료나 의사를 상대하고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수배하는 데 능숙하다. 반면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이러한 지식과 기술이 부족하므로 상대로부터 없수임을 당하며 힘들어 한다.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며, 의료적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여 건강이 악화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은 과거에 의료계를 대하면서 어려웠던 기억이 있고 게다가 돈도 없기 때문에, 몸이 불편해도 의료적 도움을 구하는 데 소극적이다. 이들은 '몸은 자연이 알아서 치유한다는' 철학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위하여 생활을 절제하기보다,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여 몸에 나쁜 행위도 꺼리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의 노인은 젊은 시절에 불평등한 지위와 경험이 노인 시기까지 연장되어 삶의 기회의 차이를 경험한다고 결론맺는다. 이는 노인이 되면 젊은 시절의 불평등의 영향력은 줄어들어 모두 삶이 비슷해진다는 가설을 부정한다. 육체적 능력의 쇠퇴로 인하여 젊은 시절의 불평등에 관계없이 모두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년기의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서 젊은 시절의 불평등이 노인 시기까지 연장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노인들 사이에, 몸에 대한 철학, 생각하는 방식, 태도와 동기 등과 같은 문화의 차이를 언급한다. 그러나 노인들 사이에 문화의 차이가 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 결국 젊은 시절의 교육,직업, 소득과 같은 사회경제적 차이가 노인들 간에 문화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노인의 삶을 설명하면서 문화를 사회경제적 지위와는 별도의 독립 변수로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참여관찰 방법을 적용하여 미국 노인들의 일상과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미국인의 삶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가 거의 전적으로 젊은이들에 치중되어 있기에,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노인들의 삶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이 우울하게 만든다고 이 연구를 비판하는 미국인도 있다고는 하지만, 노년기는 우리 모두 거쳐야 할 시기이기에 외면할 수는 없다.  저자의 경력이 짧아서이겠지만, 반복이 많고 애매한 서술이 많다는 점은 흠이다. 

2020. 7. 31. 21:58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폭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전문 학술서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폭력을 내포한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폭력을 제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상태로 상정하고,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에게 통제를 맡김으로서 질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학의 이론이 국가를 단일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란 단일체아니라 엘리트 간에 연합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경제적 및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함으로서 특권 혹은 이권을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의 국가'(the natural state)에서 엘리트들은 각자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는 만큼 이 특권을 나누어 가진다. 특권을 나누어 가지는 연합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 체제에서 폭력의 동원 능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중세 봉건 시대에 귀족들이 각자 군사력을 보유하며, 왕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연합이 바로 국가였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가 핵심에 있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엘리트의 연합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자연 상태의 국가에서 엘리트는 각자 세력의 규모에 따라서 특권을 나누어 갖는다. 엘리트간 세력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추어 특권의 배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어긋날 경우 갈등이 폭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까지 투쟁이 지속된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었을 때에는 지주계층이 통치 엘리트의 근간이었는데, 상업 및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면서 이들 새로운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특권 지위를 요구했을 때, 기존 엘리트와 신흥 엘리트 간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질서, 즉 폭력이 없는 상태란, 엘리트간 폭력 행사 능력과 이권간에 균형이 맞아 엘리트 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 체제에 동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엘리트 간에는 상호간 견제와 감시를 통해 폭력의 행사를 통제한다. 

자연 상태의 국가, 즉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하는 질서'(limited acess order)에서는 모든 관계와 거래가 개인적(personal)이다. 각 사람의 능력과 특성과 변덕에 따라 관계와 거래가 좌우된다. 특정인이 죽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 그와 관계된 모든 거래는 무효화되거나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경제적 이권은 정치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정치적인 지위는 경제적 이권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정치적 지위와 독립된 경제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행위란 이권,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를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세개로 구분할 수있다.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는 엘리트에게 특권이 배분되는 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모든 엘리트의 특권은 개인적 관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특정 엘리트가 죽거나 변화가 생기면 엘리트들 사이에 특권의 재조정을 향한 갈등이 발생하므로, 매우 취약한 질서이다. 둘째는 기본적인 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조직이 형성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조직이란 여전히 특권을 차지하는 개인에 궁극적으로 좌우되므로 불안정하다. 세번째는 성숙한 단계로, 국가의 통치 조직이나 경제활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조직에의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open acess order)는 19세기 중반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이 질서는 '법에 의한 지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제도의 영속성', '누구에게나 개방된 익명적인 거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누구를 아는지, 출신 배경이 어떠한지, 성, 인종, 민족, 종교 등과 상관없이 능력과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직 자원에 접근할 수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지위와 자원이 배분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만드는 데, 즉 정치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어 관리되며, 폭력을 통제하는 사람은 선거와 의회 등 정치과정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폭력을 통제하는 기구와 그 기구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분리되어 있다. 그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임기가 끝나면 물러난다. 이 질서에서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인 폭력의 통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자원에 접근할 수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미친다. 보통 교육, 사회보장제도, 공정한 시장의 관리 등이 그것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하므로 경제성장율이 높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과 조직이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때문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발전할 수있다. 반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는 기존에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개인의 역량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되며, 위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엘리트들 사이에 세력의 재조정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훨씬 안정되며, 실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위를 차지한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상시적인 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경제에서는 경쟁 기업이 항시 감시하고 경쟁하므로, 특권이나 이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로 어떻게 이전할 수 있을까? 자연 상태의 국가의 엘리트가 '법에 의한 지배'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지배나 특정 개인에 좌우되어 조직이 운영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 '법에 의한 지배'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들 간에 관계가 안정적일 때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밀고당기기를 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서로간에 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있다.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조직을 통해 정치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상황에서만 엘리트들은 개인과 독립된 조직을 인정한다. 폭력 행사력 즉, 군사력이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지 않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을 때, 엘리트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을 내려놓는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만들 수있고, 엘리트들과 그들의 조직간에 경쟁에서 패한다고 하여도, 폭력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에만 엘리트들은 그러한 경쟁에 참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급격하게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도를 높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사회가 반드시 이러한 발전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자연상태의 국가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단계 내에서도 제도화의 정도가 다양하고 퇴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 놓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믿음을 정착시키는 일은 형식적인 선거나 의회의 존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상태의 국가에서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질서를 설명하는 예로 중세시대 영국의 토지소유제도를 분석하며, 자연상태의 국가 중에서도 성숙한 제도화의 단계에 도달한 영국이 그렇지 못한 프랑스에 비해 전쟁을 위한 동원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개방된 질서'가 '접근이 제한된 질서'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서구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이론과 분석을 제시한다. 기존의 정치학의 이론을 뛰어 넘어 눈을 확 뜨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2020. 6. 5. 11:17

Michael Marmot. 2015.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ublishing. 346 pqges.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저자가 사람들 사이에 건강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며, 이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책의 첫 문장을 자신이 과거 수련의 시절에 의료 현장에서 부딛친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한다. '우리 의사들은 병원에 온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서, 그 병을 유발한 그 환경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 그들이 사는 환경이 그러한 병을 만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면, 의학적 치료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집이 없는 내원 환자의 병을 치료한 다음, 그를 다시 집이 없는 떠돌이 삶의 환경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러한 의문은 그의 주위 의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며, 결국 그가 공중보건학으로 전공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혹은 건강하지 못한 원인에 대응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되며, 이러한 원인을 유발한 원인, 즉 원인의 원인 'causes of the causes of illness'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의사들은 여러 조언을 한다. 영양이 균형된 식사를 하고, 야채를 많이 먹고, 담배를 끊고 술을 삼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고, 과로를 하지 말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사회관계를 폭넓게 원만하게 유지하고, 등등. 이러한 사항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의 몸은 탈이 난다. 즉 이러한 것들이 건강/불건강의 원인이다. 한 사회의 건강 수준은 의료 시설의 수준이 아니라,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의료적 치료는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는 것인데,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결정 요인이다.

즉 건강의 요인을 결정하는 요인은 사회적 조건이다. 빈곤, 불평등, 일, 삶에 대한 통제력이 건강을 만들어내는 주요 사회적 결정요인이다(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긍정적일 때에만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사회적 조건이 부정적이라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부정적으로 기여한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면, 각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는 영국의 공무원의 건강 수준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관료조직의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건강이 비례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상급자일수록 그의 하급자보다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 위계 내에서의 위치와 건강 수준 간의 이러한 관계는, 위계의 최상위에서부터 최하위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에 대한 통제력의 차이에 기인한다. 하급자는 상급자보다 일의 통제력이 덜하므로, 이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유발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건강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관계 역시 유사하게 분포되어 있다. 사회적 조건이 조금이라도 좋을 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건강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사안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은 인간의 생애 주기 전 과정에 펼쳐져 있다. 엄마의 뱃속에서, 유아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일의 현장에서, 노년기에, 이 각각의 인생 주기에서 어떤 사회적 조건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그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사회가 간여할 때,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복지 개입이 클 때, 한 사회에서 건강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북구의 복지국가에서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건강 격차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시장의 비중이 큰 사회에서 건강 격차보다 훨씬 작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즉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체제를 옹호한다. 사회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즉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건강의 불이익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회에서 크게 좁혀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몇가지 실질적 처방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사회적 약자의 권능을 높이는 (empowerment)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조직화하여 강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화, 직장에서 강력한 노동조합, 일반 시민들의 조직화를 지지한다. 둘째는 건강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객관적 증거를 널리 알려서 일반인과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변화를 추구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사회운동을 제창한다. 그 자신 국제기구 WHO를 통해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하는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사회적 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볼 때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건강 수준이 향상되었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서 긍정적 방향의 변화를 목격했기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돈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명백하다.

이 책은 그의 이전 책 "Status Syndrome" 보다 좀더 실천 지향적이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고, 행간에서 그의 열정이 전달된다. 그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이다. 그의 논의는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마지막 몇개 장에서 전세계의 성공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부정적 사례인데, 그의 지적은 막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가장 부자 나라지만, 가장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2020. 3. 19. 23:56

Richard V. Reeves. 2017. Dream Hoarders: How the American upper middle class is leaving everyone else in the dust, why that is a problem, and what to do about it. Brookings Institute Press. 156 pages.

저자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로 미국사회의 불평등의 핵심은 상위 20%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흔히 중상층(upper middle class)이라 칭하는데, 소득분포에서 상위 5분의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최상위 1%가 부를 가장 많이 독점하고 있지만, 이들 못지않게 그 바로 아래 19% 역시 지난 수십년간 미국 경제에서 소득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이들 중상층은 업적주의(meritocracy)를 지위획득의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이들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직과 관리직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며,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엄청나게 투자하며, 성실하게 일하며, 자신을 잘 통제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오래살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현재의 지위에 올라선 사람들이다. 부부 모두 대학 졸업자로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가구소득 110,000 달러이상이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으로, 사회 각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80년대 이래 상위 20%의 사람들과 이들 밑에 있는 80%의 사람들 사이에 소득 및 생활 양식에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두 집단 사이에 세대간 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상위 1%의 사람과 바로 밑에 19%의 사람들 사이에는 교류가 활발하다. 최상위 1%의 사람은 바로 밑 19%의 사람들 중 운좋은 사람들이 올라서며, 서로 간에 들고 나는 사례가 많다. 반면 상위 20%와 그 밑에 80% 사이에는 들고 나는 사례가 적다.

상위 20% 사람의 지위 획득은 업적주의에 근거한다. 즉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시장에서 경쟁을 통하여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문제는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자질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상위 20%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여 자원과 지위를 배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지만, 시장경쟁에서 높이 사는 자질을 획득하는 기회는 공정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고 중상층에 의해 독점되어 있으므로 이 것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에서 높이 사는 자질은 좋은 대학교와 대학원의 졸업장이다. 중상층은 자신의 자녀를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녀에게 양질의 양육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의 건강을 위해 부모가 신경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잠자리에 들때 동화책을 읽어주기, 숙제를 봐주기, 자녀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도록 박물관, 현장 학습,여행에 데려다니기, 좋은 유치원과 초중등학교에 보내기,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기, 과외 활동에 엄청난 정성과 비용을 지불하기,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개인 교습, 진학 코치 서비스, 캠퍼스 방문, 등에 투자하기 등등. 이렇게 부모가 자녀의 질 높은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덕분에 자녀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중상층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갈 무렵에 부모의 인맥으로 좋은 인턴 자리를 구하여 취업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반면 이들 밑에 있는 80%의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에 크게 투자할 능력도 시간도 재력도 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자녀는 좋지 않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문대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시장에 나온다. 중상층의 자녀 교육 방식은 부모로서 옳바른 일을 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자녀가 부모의 노력으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80% 부모들이 상위 20%의 부모들만큼 못하는 것을 외부의 도움으로 보충하여, 그들의 자녀가 상위의 자녀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경제 Knowledge Economy 에서는 좋은 교육을 받고 고급 기술을 획득하는 것, 구체적으로 우수한 대학의 졸업장은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소득을 얻는데 매우 중요하다. 좋은 교육을 받은 남녀는 서로를 찾아 결혼하는 동류결혼의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좋은 교육을 받은 중상류와 그렇지 않은 80%의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벌어지며 세대간 지위의 세습이 공고해진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길로 자녀를 이끄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부모는 자녀를 좋은 대학으로 이끌지 못한다. 따라서 좋은 대학이 지원자의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즉 meritocracy의 원칙으로 공정 경쟁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결국 중상층 부모의 자녀들을 선택적으로 선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떻게 상위 20%가 지위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들이 지위를 획득하는 기회를 배타적으로 자신들에게만 제한하는 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보다 효율적인 피임 방식을 확산시킴으로서 원치않는 임신을 막아야 한다. 원치 않는 임신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임신에서 나은 아이에 비해 삶의 기회가 열악하다. 중상류층은 임신과 출산을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반면, 밑에 층은 원치않는 임신에서 나은 아이가 많다. 미국 전체 임신의 60%는 원치 않는 임신인데, 다수가 하위층에 몰려 있다. 계획에 없이 원치 않는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교육을 중단하고 직업활동에 지장을 받으며 빈곤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정부가 나서서 청소년들에게 효율적인 피임을 교육하고 효과적 피임 수단을 보급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둘째, 부모교육을 위해 가정 방문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간호사가 방문하여 임신출산 및 어린 아이 양육에 조언을 하는 것은 중하층 부모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셋째, 열악한 환경의 아동이 다니는 학교에 우수한 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현재는 반대로 중상층 자녀의 학교에 우수한 교사가 배치된 반면, 열악한 아동의 학교에는 열악한 교사가 배치되어 있다. 교사는 아동의 학업 성취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현재의 상황은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정부의 재정으로 열악한 지역에 우수한 교사의 배치를 지원해야 한다. 넷째, 대학교의 재정을 공정하게 조달해야 한다. 현재 부모가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미리 저축하는 것에 대해 세금면제 혜택을 주는데, 이는 상위 20%에게 혜택이 집중되어 있다. 부유한 집 자녀의 학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는 중단해야 한다.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은 80% 계층의 자녀에게 과도하게 몰려 있다. 자녀의 졸업후 소득 수준에 따라 학자금 상환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중하층 자녀에게 지워지는 지나친 대학교 등록금 빚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 

다섯째, 배타적인 토지 용도 제한 규정(exclusionary zoning)을 완화해야 한다. 중상층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자신과 유사한 소득의 사람들만 살도록 하기 위해 일정규모 이상의 단독주택만 허용하는 토지 용도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거주지에 따라 배정하는 방식이므로, 배타적 토지 용도제한 규정은 계층이 다른 집 자녀는 중상층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 그 결과 중상층 자녀의 학교에 배타적으로 혜택이 집중되며, 이러한 학교 졸업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길을 독점하고 있다. 중상층 거주지의 배타적 토지용도제한 규정을 풀어 복합주택을 지을 수있도록 하여, 다양한 계층이 한 동네에 섞여 살도록 하여, 좋은 학교의 혜택이 다양한 계층 자녀에게 고루 미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우수한 대학교에서 이 학교를 졸업한 부모나 큰 돈을 기부한 사람의 자녀에게 입학에 특전을 주는 불공정한 입학제도(legacy admission)를 금지해야 한다. 이들 대학에 대한 세제혜택을 끊고 불공정 입학제도를 법으로 금하는 등의 수단으로 명백히 불공정한 세대간 지위세습을 막아야 한다. 일곱째, 인턴십 제도를 개방해야 한다. 중상층 부모의 인맥으로 그들의 자녀가 좋은 인턴십 기회를 독점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하다. 정부의 재정으로 무급 인턴을 지원하는 제도와 인턴 선발을 공정히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덟째, 중상층에게 몰려 있는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폐지함으로서 증대된 세수로, 중상층에게 집중된 기회를 다른 계층에게 개방하는 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정을 조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방안은 모두 정치적 결정과 정부의 개입을 요하는데, 중상층이 여론을 주도하고 정부와 민간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핵심 세력이므로, 자신들에게 손해가 나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상층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각함으로서, 중상층의 삶의 신조인 공정성에 호소하여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도록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중상층이 자신의 자녀들의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불평등이 확대되고 계층 이동이 줄어들면서 아랫 집단의 불만이 높아져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경제가 효율성과 활력을 잃고, 외국과의 경쟁에서 패하고, 결국 중상층의 기득권 구조가 부서지는 시나리오가 역사적으로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 책은 미국의 현실을 명쾌하게 분석하고 솔직하게 핵심을 지적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그렇듯,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뛰어나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흐릿한 결함을 공유한다.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도 파국을 예상하고 싶지는 않을테지만.

 

2020. 3. 18. 17:52

Steven Hill. 2015. Raw Deal: How the uber economy and runaway capitalism are screwing American workers. St. Martin's Press. 26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로 미국에서 근래에 Uber, Airbnb, TaskRabbit, 등과 같은 공유경제 사례가 늘면서 임시직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을 상세히 기술한다. 우버나 태스크래빗의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이들의 조세 분류 범주를 인용해 이들이 지배하는 경제를 1099 Economy라고 칭한다. 우버의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우버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임시직 노동자이다.

중계 플랫폼에 의지해 일하는 노동자는 일반 직장의 정규직 근로자가 누리는 일자리의 안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에 더하여 의료보험, 사회보장보험, 실업보험과 같은 비임금 혜택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는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거둔다. 이는 노동자를 착취하여 누리는 정당하지 못한 이익이다. 플랫폼 회사는 노동자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종 업계의 회사와 불공정 경쟁을 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전통적 회사의 서비스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파괴적 창조 creative destruction'은 타당하지 않다. 

TaskRabbit은 일을 제공하는 사람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계하는 플랫폼인데, 일을 제공하는 사람 사이에 일의 단가를 낮추는 경쟁을 촉발시킨다. 일을 하는 시간만 포함될 뿐, 일의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일과 일 사이에 비는 시간은 보상이 되지 않기에 매우 불안정하고 낮은 보상을 준다. 결국 노동자의 기술이나 서비스의 질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가정부, 청소부 등의 일만이 이러한 플랫폼에서 살아 남는다. 이러한 일을 중계하는 플랫폼은 전통적인 일자리 중계업소와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며 중개의 효율성도 크게 높지 않다.

공유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장밋빛 전망은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 현재까지 공유경제는 대단한 효율의 혁신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플랫폼 노동자는 과거의 전통적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공유경제의 미덕으로 칭송되는 자유, 독립성, 신뢰, 환경친화적, 등의 수식어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프리랜서 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실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일반 회사에서 일을 외주로 돌림으로서 비용을 줄이고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원이 하던 일을 외주 회사에 고용된 사원이 파견 형식으로 맡아서 한다. 이들에게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찾아볼 수 없으며, 노동의 높은 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에 노동자를 회사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보던 시각으로부터, 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으로 변하였다.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자본과 경영에 대항해 노동자의 협상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노동자의 집단행동의 가장 큰 무기는 스트라이크인데, 개발도상국으로 공장과 일자리가 속속 이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는 곧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경영자에 대항해 노동자의 몫을 지킬 수단이 없기에, 부는 점점 더 경영자와 자본가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체 생산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고 있으며,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반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의 몫이 줄고 소득불평등이 높아진다면, 결국 1920년대의 대공황과 마찬가지로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경제가 파탄날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도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착취적 노동관행이 기술 발달에 힘입어 더욱 심화되어 모든 노동이 유연화된다면, 이를 Economic singularity라고 칭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자는 물론 자본가에게도 큰 해를 미칠 것이다.

저자는 노동의 유연화 자체를 반대하기 보다, 유연한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도록 하는 사회 제도을 제안한다.플랫폼 노동자나 임시직, 비정규직 일자리는 한개의 회사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 고용에 따라오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의료보험, 사회보장비용, 실업보험, 유급병가, 유급휴가 등을 모두 합치면 임금의 3분의 1에 달한다. 미국에서 이러한 비임금 혜택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로부터 분리하여 별도의 기금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노동자 개인별 '개인보장계정 Individual Security Account' 를 만들어서 플랫폼 회사나 임시직을 고용하는 회사가 임금에 더하여 이 계정에 추가적으로 기여를 하도록 의무화한다. 그러면 플랫폼이나 임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시간에 비례하여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비임금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개인보장계정을 모아서 관리하는 단체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하에 둔다. 이렇게 한다면 현재와 같이 비임금 혜택을 지불하지 않고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점은 사라질 것이기에, 임시직 노동은 줄어들 것이다. 추가적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유연 노동이 필요한 회사만이 임시직을 고용하는 관행이 정착할 것이다.

저자는 유럽과 같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사회보장 체계가 미국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급 병가, 유급 출산 휴가, 유급 휴가, 양육시설, 등의 복지제도뿐 아니라 직업 훈련, 취업 알선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높이는 것이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고,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이 책은 상세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해서 현장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플랫폼 노동이나 임시직 파견 노동과 같이 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해지는 반면 자본과 경영의 힘은 강해지는 근래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선진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열악해지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선진국 노동자에게는 불행한 일일지 모르나, 그 덕분에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회사에 대한 노동자의 충성이 필요하지 않고 플랫폼 노동과 임시직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기술 발달 덕에 노동자의 노동의 질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과거와 달리 낮은 기술수준으로 후한 보상을 주는 일자리는 사라지고, 이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득세하고 정치가 불안정해졌다. 불평등이 높아지면 결국 파국을 맞을테고, 이후에 어느 정도 재정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제삼세계의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를 거꾸로 하지 않는한, 선진국 중하층 노동자의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이나 임시적 비정규직 노동이 증가하는 것은 결국 이들 선진국 중하층 노동자의 보상의 수준을 낮추어 개발도상국 노동자와 격차를 줄이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만 본다면 노동자의 착취와 불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개발도상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반드시 불공정이 확대된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2020. 3. 12. 16:14

Rachel Sherman. 2017. 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7 pages.

저자는 사회학자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읽는 연구를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부유한 생활에 대해 불편한 감정(anxiety)을 안고 산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뉴욕시에살며 년소득이 최소 5억이 넘고 재산이 수십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상위 1%이내에 드는 사람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어디에 관심의 지향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는데,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생활 방식이 특별하지 않으며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이 더 부자인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점을 의식하면서 이를 마음에 걸려한다. 반면 자신보다 하위에 있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생활이 중류층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의식한다. 이들은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의식하며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에 감사한다. 후자는 주로 중류층 배경으로부터 상승한 경우에 많다. 두 집단 모두 자신의 엄청난 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부를 드러내거나 이를 암시하는 어떤 상황도 회피하려 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과 계급적으로 이질적인 사람이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아닌한,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가 정당하다는 것을 자신과 상대에게 설득하는데 노력을 많이 들인다. 미국은 평등주의 가치관이 뿌리 깊고, 근래에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부와 삶의 방식에 대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부와 생활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부모로 부터 부를 물려받은 경우, 이러한 이유가 통하지 않지만 여전히 자신은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소비생활이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족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데 돈을 쓴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많이쓰기는 하지만, 여전히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사는 데 쓴다고 상대와 자신을 설득한다. 물론 그들이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만.

부자들은 자신이 운이 좋았으며 혜택받은 삶을 산다는 것을 항시 의식한다. 주위에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거슬리지 않도록 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부가 티나게 보이지 않도록 하며, 시기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피하며, 일하는 사람을 대등하게 대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가능성은 적지만, 자신의 부가 없어질 수 있고, 높은 보수를 받는 직장을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부자들은 자신의 자녀가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면서, 자신들의 생활이 특별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어한다. 자신의 자녀가 보통 사람들의 삶에 관해 알도록 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보내고 부자 자제들의 동질적인 그룹에서 성장시킨다. 부가 가져오는 이점이 자녀의 성장과 사회 진출에 플러스가 되도록 하는데 노력한다.

부자들은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도적으로 밥을 사려 하며, 대다수가 자원봉사나 자선단체 활동을 한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이나 사회악을 고치는 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돕는 활동은 그들의 삶에서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 그들의 남을 돕는 활동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자신이 졸업한 학교나 지인이 참여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식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정책에 반대한다.  

부자 가정의 여성들은 자신의 부유한 생활이 배우자의 돈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산다. 그녀의 남편은 부인의 소비생활을 통제하며, 그녀의 집안을 챙기는 일은 남편에게 대단하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부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용도의 소비는 남편에게 감추거나 낮추어 말한다. 부인이 자신의 물려받은 유산으로 부자 생활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직업 소득이 남편보다 높은 경우에만 부인은 자신의 소비 생활에 대해 남편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 책은 부자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있는 좋은 기회이다. 인터뷰 자료를 많이 인용하기에 반복적인 부분이 많아 읽다보면 지루하다. 부자집 가정의 부인을 주로 인터뷰 했기에, 실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 가장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반쪽짜리 연구이다. 부자집 가정의 부인은 이들의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이므로, 부가 수반하는 권력을 부수적으로만 누리고 있다. 부자들이 말로 드러내는 생각과 실제의 행위에 차이가 클 것이라는 점을 짐작케 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엄청난 부에 불편해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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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 21:08

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Idea for Sane World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4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그가 근래에 쓴 몇개의 글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수년전에 Globalization Paradox의 논지와 연결되는데,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며 그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교육수준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세계화로 큰 이익을 얻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은 피해를 본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높인다. 이러한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반발로 근래에 서구사회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각 국가 고유의 제도와 독립성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가 연결되어야 한다. 각 나라의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와 경제 구조가 온존될 때에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있다. 현재와 같이 세계화의 패배자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가 전개된다면, 정치적인 혼란과 세계화의 후퇴를 피할 수 없다.

세계화 낙관론자들은 앞으로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하지만, 국가의 역할은 강건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국가가 대응하며,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관리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맞추어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므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한, 국가의 주권을 국외의 기구에 완전히 위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유일한 예외는 유럽 연합인데, 그곳에서도 국가가 주요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각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화,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이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셋 중에 두개만 조합할 수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희생되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모두 동시에 만족될 수없는 이유는, 각 국가는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를 통해 그 나라 고유의 선호와 제도가 구축되어 있기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북유럽 국가의 높은 세금, 높은 평등, 높은 복지를 선호하지 않으며, 반대로 북유럽 사람은 미국의 높은 불평등, 높은 위험부담을 선호하지 않는다.

세계화와 민주주의가 조합된다면, 즉 구성원의 요구에 답하면서 세계적으로 단일체제를 이루려고 한다면, 각 국가 고유의 선호와 각 국가의 주권은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각 국가는 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정치 경제를 운영하므로 세계적인 단일 체제는 허용될 수 없다. 세계화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즉 각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계적 단일체제를 구축한다면, 각 국가의 구성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경제 단일체제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에 걸맞게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덜컹 거리며 위기에 취약하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아시아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여나갔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제조업이 성장하기 전에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빠르나, 서비스업은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지 못하므로 가난에서 탈피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자동화로 제조업의 노동수요가 감소한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제조업 국가가 버티고 있기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 이유,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안정, 특히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예가 많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영국의 산업화 과정, 독일의 지주계층이 산업화에 뛰어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절한 전략과 환경이 마련된다면 정치와 충돌하지 않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득이권 구조가 경제발전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경제발전을 이끈다. 예컨대 중국에서 제한된 지역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 시장경제가 운용되도록 한 것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류층이 자신의 계급 이익에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배집단이 정체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계급 정치(class politics)가 지배한다면 각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할 것이지만,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지배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정체성, 즉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창하는 정치인도 지지한다. 부자들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환기시킴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잊도록 하는 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한다. 

선진국에서 세계화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세계화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의 정책은 미국에서 지지 받지 못했다. 1980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산업전환보상법의 예산을 삭감하여 무력화시켰다.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직장을 잃고 소득이 낮아진 사람들에게 기술훈련을 시키고 보상을 주는 방법은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으나, 그곳에서도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부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각 나라가 자신의 규제와 제도 환경을 보호하도록 하면서, 공정무역을 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조정하는 길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와 유사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면서 생산하도록 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유아노동이나 착취적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 규칙을 모두 준수한다면, 선진국 사람들도 자신의 일이 개발도상국으로 옮아가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즉 포용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계화의 패자에게 갈곳이 없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은 위험하다. 좌파는 이들을 포용할 수있는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결국 이들의 분노를 이용한 대중영합주의적 민족주의적 우파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이는 세계화를 좌초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성장의 다양한 쟁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국가가 자신의 제도적 주권을 유지하면서 세계화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세계화에서 패배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조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등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도록 하여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선진국 사람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빈곤한 나라에 선진국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장 빵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보호는 뒷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설사 공정무역을 한다고 해도, 선진국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의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이전한다면 그들이 여전히 분노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에서 기술 발전으로 자신의 비효율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공정경쟁으로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틀리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건 경쟁력이 떨어져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사회적 지원을 후하게 해주어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만이 그들을 달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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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7. 12:58

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하바드 법대 교수인 저자가 미국 사회에서 지난 수십년간 진행된 성과중심주의적 사회 체제로 변화하는 경향을 비판한 사회비평서. 1980년대 이래 미국 사회는 뛰어난 성과를 내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엄청난 보상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다. 최상층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하였지만, 중류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였다. 소득 불평등은 급속히 높아졌으며, 상위 5~10%와 나머지 90% 사이에 사회적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는 이차대전 이래 1970년대까지 상층은 물론 중류층과 하층의 소득도 꾸준히 향상되고 다수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던 시절과 대조된다.

근래에 엄청난 소득을 누리는 엘리트는 1950년대까지의 상층과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으며,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고 엄격히 자기 통제를 한다. 그들은 일의 세계에서 높은 생산성을 창출해낸다. 미국의 고급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며 미국의 기술혁신과 세계화와 경제성장을 선두에서 이끈다. 금융, 법, 의료, 연구개발, 대기업의 경영에 종사하며,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고 본인이 가져가는 성과도 엄청나다. 대학을 졸업하고 초봉 연2~3억이 보통이며, 월스트리트에서는 성과급 보너스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챙긴다.

이렇게 높은 성과를 올리는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려면 무서울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입시 경쟁을 방불할 정도로 이들은 유아시절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고 천문학적 비용을 교육에 퍼붓는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들은 자신의 소질이나 흥미는 무시한 채 일주에 50~80시간을 일한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대단하여 인간적이지 못한 삶을 산다. 이들은 일을 덜 하고 싶지만, 이들의 직장은 여유롭게 일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엄청난 경쟁속에서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노예나 다름없이 일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낙오되는 두가지 선택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엘리트와는 대조적으로 중류층은 소득이 정체되며 불안정한 직장에서 과거보다 일을 덜 한다. 엘리트 계층이 높은 기술을 구사하여 엄청나게 일하는 그늘에서 중류층은 단순 반복적인 일에 종사한다. 주요한 결정은 모두 엘리트 계층이 독차지 하기 때문에 중류층은 일에서 소외되며 해고와 채용이 용이한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엘리트 계층이 높은 성과를 거두며 결정을 독차지 하는 반면, 중류층은 지시된 일을 하는 지위로 전락한 것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힘입었다.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아 엘리트들은 중간관리층을 거치지 않고 조직의 구석구석을 통제하며, 세계화 덕분에 이들의 고급 기술은 전세계 사업장에서 몇배나 많은 생산성으로 증폭된다.

엘리트 계층은 각자가 보유한 기술과 각자가 올린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고 보상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들의 엘리트 지위는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 귀족 계층이 자식에게 재산을 직접 물려주는 방식으로 지위를 세습했다면, 요즘의 엘리트 계층은 엄청난 비용을 투입한 최고급 교육을 통해 높은 인적 자산을 축적하도록 해 고급 직업과 높은 지위를 획득하도록 하여 엘리트 지위를 세습한다.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엘리트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데 들이는 비용을 부모가 죽을 때 물려주는 유산 가치로 환산하면 8 ~16 백만달라, 한화로 90억 ~ 180억에 달한다. 요즘의 엘리트 부모가 고급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엘리트 지위를 세습하는데 들이는 비용은 과거 귀족 계층이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 가치보다 결코 적지 않다.

저자는 책의 후반에서 성과주의는 과거에 귀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화라고 비판한다. 과거에 귀족이 선천적인 우수성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면, 성과주의 사회의 엘리트는 뛰어난 능력과 높은 생산성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귀족의 선천적인 우수성이 거짓이듯이, 엘리트의 뛰어난 능력과 높은 생산성 또한 거짓이다. 요즈음 엘리트의 뛰어난 능력은 그들의 부모의 엄청난 교육 투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며, 그들의 높은 생산성은 높은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높은 생산성을 산출하도록 일의 세계를 조직하였기 때문이다. 중류층의 평범한 기술이 쓸모 없어지도록 일을 조직하지 않았다면, 엘리트의 기술 독점과 높은 생산성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과주의 체제가 문제가 많다면 이를 어떻게 불식시킬것인가? 소수의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사립학교를 규제해야 한다. 엘리트 학교들이 일정 비율 이상 중하층 출신의 자녀를 입학시키도록 규제하고, 소수 엘리트만 다니는 학교가 누리는 비영리 세금 감면 혜택을 중단해야 하며, 엘리트 학교의 등록금을 면세 조치하는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높은 기술을 가진 엘리트에게 결정과 보상이 집중되도록 되어 있는 일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의료계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의 영역을 넓히며, 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권한을 넓혀야 한다. 금융계에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이나 고위험 상품의 개발을 규제하여 보통 기술의 종사자가 담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법무 종사원에게 개방하여 법률 행위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 자체를 허물어뜨려야 한다. 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아무런 제안이 없다.

이 책은 성과주의의 폐해에 대하여서는 길게 서술하지만, 그렇다면 성과주의의 대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짧게만 언급한다. 그가 제시한 대안들은 성과주의를 무력화시킬만큼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하간 높은 기술과 능력이 성장과 풍요를 낳은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스티브 잡스의 기술이 오늘의 스마트폰 문화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80대 20의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80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20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보상을 지급한다면 인센티브 체계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지속되지 못하고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공산주의의 말로를 똑같이 경험할 것이다.

저자는 소수의 엘리트가 그들이 누리는 높은 보상에 합당한 성과를 낸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일반 사원의 200배 이상의 성과를 내는지 의심스럽다. 금융기관의 딜러가 일반 사무직의 500배 이상의 성과, 혹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잘나가는 변호사가 일반 사원의 500배의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그렇게 높은 보상이 과연 그의 높은 능력이 만들어낸 생산성의 반영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즉 그가 그렇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며, 그의 높은 생산성은 그가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능력이 떨어지거나 혹은 부모가 그만큼 교육에 투자하지 않았던 직원이 상당히 기여하여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면, 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금융기관의 딜러, 전문의, 대형 법률회사의 변호사가 그렇게 높은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의사가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은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거나, 의사로 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거나, 의사가 특별히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다. 의사 직업에 진입하는 진입 장벽이 높이 쳐져 있으며, 의사의 서비스 가격을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바드 법대를 졸업한 사람이 초봉으로 수억을 받는 것은 하바드 법대를 나오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바드 법대라는 좁은 문이 졸업자에게 부여하는 독점적 시장가격 때문이다. 하바드 법대는 이러한 독점적 시장 가격을 관리하기 위해 학생수를 늘리기 보다 등록금을 높이고 기부금을 많이 받는 방식으로 독점의 프리미엄을 관리한다. 

이 책에서 엘리트들이 성과주의의 쳇바퀴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그의 주장 역시 의심스럽다. 그들은 그 생활을 선택했고 혜택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만일 그게 그렇게 지옥같은 생활이라면 왜 그들의 자녀에게 그러한 지위를 물려주려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저자는 성과주의의 폐해에 대하여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여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법대 교수인 자신의 삶이 빡빡하다는 데에 대해 궁시렁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성과주의 이념을 대체할 것이 현재로는 보이지 않는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과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보상한다는 원칙은 민주주의와 가장 잘 맞는다. 그 대안은 추첨에 따라 지위와 보상을 나누어준다는 것일터인데, 아직 사람들은 이러한 대안을 선택할만큰 성과주의의 부작용에 진저리를 내고 있지 않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양질의 교육 기회를 더 넒은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경쟁의 기회를 확대하여 성과주의의 혜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성과주의 자체는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공서열이나 성과급을 반대하는 주장은 바로 성과주의를 피하고 싶어하는 기득권자들의 억지이다. 성과주의가 가장 공정한 원칙이라는 것이 시대의 소리며, 시간이 갈수록 성과주의가 더 확산될 것이다.

2019. 12. 17. 16:16

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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