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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8. 12:51

Gerd Gigerenzer. 2014. Risk Savvy: how to make good decisions. Penguin Books. 261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독일의 막스플랭크의 연구소장이다. 인간은 리스크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판단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연구해 왔다. 이 책은 그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완벽히 확실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일을 그르친다. 그보다는 상식과 직관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대략의 어림짐작(rule of thumb)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결정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문제가 복잡하여 선택지가 많을 수록, 그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을수록 대략의 어림짐작 방법이 최적화 방법보다 좋다. 반면 비교적 확실한 상황이며, 선택지의 수가 작고, 그에 대해 축적된 데이터가 많을 수록 복잡한 모델을 세워서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방법이 효과를 발휘한다.

리스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선택지들과 각각의 선택지가 발생할 확률이 알려진 리스크(known risk)가 하나로 이는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나 카지노의 슬롯머신이 대표적 예이다. 가능한 선택지를 모르며, 각각의 선택지가 발생할 확률을 알지 못하는 리스크(unknown risk)가 다른 하나이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사건은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 주가가 추락할 확률, 지진이 날 확률, 사고가 날 확률, 사업이 망할 확률, 전염병이 창궐할 확률 등이다. 탈레브의 책에서 'trukey risk' 라는 용어를 빌려온다. 주인이 그가 키우는 칠면조에게 먹이를 주는 날이 늘수록 칠면조가 인식하기에 다음 날에도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다음날에 그가 잡아 먹히는 사건이 일어날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의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 한번 일어날 사건의 확률을 알려진 확률로 오인하여 판단을 그르친다. 물론 개별 사건의 확률은 알지 못하나 개별 사건이 속한 집단의 확율은 파악하는 경우는 많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용인하면서,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고, 그것으로 부터 배워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줄이도록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다음번에 문제를 덜 발생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반면 문제가 발생할 때 문제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문제 발생자의 책임을 추궁하는데 치중한다면, 다음번에 문제의 발생 위험을 줄일 수없다. 여러 상황 조건이 맞아 떨어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문제 발생자의 행위는 여러 요인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많은 경우 배경조건이 문제를 발생시킨 진정한 원인이며, 문제 발생자의 행위는 문제의 사건과 거짓 관계 spurious relationship를 맺고 있으므로, 문제 발생자를 문책하는 것이 다음번에 문제 발생의 위험을 낮추지 못한다. 

전자의 사례로 비행기의 사고를 줄이는 노력을, 후자의 사례로 의료 사고를 든다. 비행기 사고의 경우 철저하게 원인을 검토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문제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개선한 결과 사고의 위험이 놀랄만큼 줄어들었다. 반면 의료 사고는 감추는데 급급하여 사고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개선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의료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방어적 과잉 치료 관행을 부추기며, 가장 최선의 치료 방법이 아니라 의사에게 책임을 추궁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차선의, 혹은 환자에게 해롭기까지 한 치료 방법이 선택된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위험 요인을 두려워하고 피하도록 조건지워졌다. 이는 현대과학문명에서 실제 매우 작은 위험 상황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는 비효율적 의사결정을 낳았다. 그 결과 비행기 사고나 테러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여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미디어는 이러한 사람들의 과도한 경계 성향을 부채질함으로서 돈을 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불확실한 리스크를 통제할 수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주식 투자가 그것으로, 특정 주식의 오르내림은 예측이 불가능한 리스크이다. 가장 합리적 투자는 n 분의 1 씩 나누어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불확실하고, 선택지가 많고, 과거 데이터가 충분치 않은 대표적 사례이므로 가급적 단순한 접근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직관(gut feeling)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의사결정법이다. 전문가의 직관은 수치화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을 무의식 속에서 복합적으로 반영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장래의 배우자를 고를 때나 구매를 할 때, 모든 선택지를 다 탐구해본다음 최고의 것을 선택하는 방식, 즉 최적화 방법(maximize)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는 머리속에서 대략의 수준을 정해두고 그에 근접한 사례가 나타나면 더이상의 검색을 중단하고 선택을 내리는 것, 즉 웬만큼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good enough)이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다.

저자는 의료계 위험에 전문가로 이 주제에 많은 논의를 할애한다. 의료 테스트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그 질병에 걸렸을 확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예컨대 유방암 검사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유방암에 걸렸을 확율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베이즈의 조건부 확율을 이해하는 의료인은 많지 않다.

의사는 자기 방어(self-defence), 의료 통계수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innumeracy), 환자의 이익보다는 의사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conflicts of interest), 이 세가지 원인 때문에 과잉진료를 하며, 환자에게 테스트 결과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정기 검진보다는 실제 증상이 있을 때 진료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방암 검사와 전립선암 검사를 예를 들자면, 테스트를 하면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양성 반응의 사례에서 활성 암인 경우는 매우 적다. 많은 사람은 비활성 암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테스트를 하여 양성으로 나타나면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에 들어가는 데, 이는 필요치 않은 과잉 치료에 속하며 해롭기까지 하다. 증상이 없는데 테스트 결과 양성이어서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은 사람이나, 혹은 테스트를 받지 않고 비활성 암을 가지고 살다 죽은 사람이나 죽는 연령은 거의 비슷하다. 테스트를 하여 양성이 나온 환자를 수술하여 5년동안의 생존율이 높다는 사실을 들어 정기적 테스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의 일부만을 호도하는 것이다. 의료계는 테스트 및 후속의 적극적 치료를 통해 돈을 벌기 때문에 정기적 검진을 강조하는데, 이는 conflicts of interest에 속한다.

정기적 테스트를 하여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방법이 아니다. 증상이 없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혹은 조기에 발견하지 않거나간에 암으로 죽는 연령은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암은 해로운 행위 요인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흡연, 음주, 비만, 운동안함, 패스트 푸드와 설탕물 탄산음료, 육류지방과 소금의 과도한 섭취, 등의 요인을 개선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진정한 방법이지 정기적 검사는 암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위험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부터 위험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건강 위험, 금융 위험, 디지털 위험에 대해 어렸을 때 정확한 지식을 교육받고 바른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을 통해 통계적 사고 방식을 습득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 대략의 어림짐작을 하는 방법을 훈련하고, 작은 위험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패닉하지 않도록 심리적 훈련을 하는 것이 지혜롭게 위험에 대응하는 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일반인을 위해 풀어서 쓴 것이므로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많고 깊이가 있다. 확율을 계산하는 부분에서는 서술을 따라가기 어려운 곳도 있다. 지적인 면에서나 실용적인 면에서나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