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ffry Friedan, David Lake, and Kenneth Schultz. 2016. World Politc: Interests, Interactions, Institutions. W.W.Norton. 627 pages.
저자는 국제경제학자 및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대학의 국제정치경제 교과서이다. 국제정치와 경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논의의 핵심으로 하여, 이론적 깊이를 추구하기보다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부분에서는 국제정치경제의 질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고,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국제정치는 관계자의 이익(interests), 관계자들 사이에 상호작용(interaction), 관계자들의 행위를 규정하는 제도(institutions)라는 세개의 축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두번째 부분은 국제정치를 전쟁과 평화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국내 정치와 전쟁은 어떤 연관을 맺는가, 전쟁과 관련된 국제 제도는 어떠한가, 국가가 아닌 국제 폭력조직 및 내전, 등에 관해 이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세번째 부분은 국제 경제에 관해 논의한다. 무역, 국제 금융, 국제 통화, 경제발전, 등에 대해 근래의 상황에 촛점을 맞추고 경제이론을 최소한으로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네번째 부분은 국제 규범과 제도에 관해 논의한다. 국제법, 인권, 환경문제, 등에 관해 국제 규범과 제도의 발전을 논의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21세기에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치경제를 조망하면서, 대량학살무기의 확산, 세계화의 후퇴, 중국과 미국의 대치, 등에 촛점을 맞추어 미래를 예측하는데 고려해야 할 점을 논의한다.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상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다만 국제정치를 논의하면서 전쟁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것은 좀 치우쳤다. 국제질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서술, 및 국제경제를 서술하는 부분을 조금 더 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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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2010. 세계문화전쟁: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인물과 사상사. 384쪽.
저자는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미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획득하는 원인을 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대표적인 분야를 차례로 검토한다. MTV, 미국 드라마, 애플의 디지털 기기, 구글, 위키피디아, SNS, CNN, 국가브랜드, 문화 민족주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한류 등의 주제를 장을 바꾸어 차례로 검토한다.
문화는 하드파워에 뒷받침을 받는 소프트 파워이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과 연관된다. 근래에 한류가 아시아 및 개발도상국에서 뜨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국제적 확산에는 부정과 긍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하는 측면과 함께, 문화적 보편성, 엔터네인먼트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대중문화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되며, 국제적 확산 역시 자본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 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문화의 획일화 경향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시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에.
이 책은 인용문을 계속 조합하면서 자신의 말을 간간히 끼워넣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그의 다른 책에 비교하여 논의의 촛점이 뚜렷하며 깊이 있는 논의를 한다. 자신의 말로 일관되게 쓴 책보다 잡다한 인용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독자에게 힘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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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aylis, Steve Smith, Patricia Owens. 2020. The Golbalization of World Politic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8th ed. Oxford. 529 page.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화와 국제관계에 촛점을 맞춘 교과서이다.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학문분야의 주요 이론을 소개하며, 국제관계 분야에서 쟁점 주제들을 개괄적으로 검토한다. 이삽십명의 저자가 각자 장을 나누어 쓴 것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 글의 질에 차이가 있다.
1990년에 냉전이 끝난 이후 국제관계는 과거에 현실주의(Re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지배하던 분야에서 다양화되었다. 이제 국제관계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 초국가적 다자 기구나 국제적 비영리단체와 같은 새로운 행위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생존과 안보가 유일한 기준이었던 것에서 인간의 기본권이나 복리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각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지 않지만, 최근까지의 상황을 반영하여 국제사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정치경제적 시각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석하는 글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 글에서는 저자의 주제에 대한 통찰력이 보이지만 또 다른 글들은 피상적이고 산만한 서술을 하고 있다. 좋은 글들을 선별한다면 괜찮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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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kaj Ghemawat. 2018. The New Global Road Map: Enduring strategies for turbulent times. Harvard Business Review. 213 pages.
저자는 경영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되는 현실을 진단하고, 이러한 변화에 기업이 대응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2000년대에 들어 세계화의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영국의 브랙시트나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변화를 대변한다. 그러나 아직 세계화가 역전되는 단계까지 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계화로 인한 이익이 손실보다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화는 느리게나마 지속될 것이다.
기업 경영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세계화의 정도를 과대 평가한다. 세계화의 이익이나 세계화의 폐해를 과장되게 언급하는 언론과 활동가에게 속은 것이다. 그는 이를 globalony 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라고 해도 대부분 몇개의 나라에서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을 거두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경제활동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각 국가의 경계내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이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지는 부분보다 훨씬 크다.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은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5분의 4는 국가의 경계 내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미국의 세계화 수준은 선진산업국 중 가장 뒤쳐져, 아프리카의 나라들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국가들 사이의 활동 보다는 각 국 내에서의 활동이 중심을 이룰 것이다. 그는 이를 "law of semiglobalization" 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먼 나라나 자신과 많이 다른 사람들보다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는 합리적인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친화 문제이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home bias 라고 지칭한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루어지는 활동은 지리적, 문화적, 제도적, 경제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활발한 반면, 거리가 멀수록 급격히 줄어든다. 다국적 기업의 활동은 바로 이 "거리의 법칙" law of distance 에 따라 전개된다. 세계화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지만, 거리의 법칙은 어김없이 작용한다. 서로의 거리가 멀수록 국가간 활동이 줄어드는 반면, 거리가 가까운 지역의 활동은 계속 살아남는다. 어떤 국가에 어떤 산업, 어떤 기업이 진출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하는 요인은 국가, 산업,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모국으로부터 멀수록 진출이 어렵다는 사실은 보편적 진리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시장의 절대적 규모에 눈이멀어 거리의 법칙을 무시하고 지리적, 문화적, 제도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 진출하려고 하는데, 이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전략이다. 가급적 지리적, 문화적 , 제도적 거리가 가까운 지역에서부터 진출해야 한다. 거리가 멀수록 비용이 많이 들어 이익을 거두기 어렵다.
영국은 브랙시트를 통해 유럽의 대륙 국가들과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대신, 미국 및 대영제국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하는데, 이는 거리의 법칙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영국은 브랙시트 이후에도 유럽의 대륙국가와의 활동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활동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 및 영국과 맺는 활동이 국가간의 활동 중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국적 기업들은 전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이며 통일된 전략의 강점과 개별 지역에 특화된 현지화 전략의 강점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 세계화가 축소된다고 해도, 현지 기업에 비해 다국적 기업의 강점인 전세계를 일관하는 통일된 전략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화가 현지기업과 현지인들에게 불러오는 고통에 대한 반발의 타겟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과 공정성은 반드시 함께 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효율성 못지 않게 공정성을 높이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저자는 전형적인 경영전략가로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많이 한듯하다. 이 책은 그러한 강연의 원고 같은 인상을 준다. 세계화에 대한 경영자들의 오해를 지적하고, 일견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통찰력이라고 언급한다. 분석의 깊이나 대응 방안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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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Haass. 2020. The World: A Brief instroduction. Penguin Press. 313 pages.
저자는 과거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기획에 참여하였으며 현재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기관을 이끄는 전문가이다. 이 책은 국제문제에 관한 기본 상식을 배양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개론서이다. 17세기 중반 웨스트팔렌 조약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세계 주요 지역의 개관, 국제적 쟁점 주제의 개요, 국제 질서의 프레임 이라는 네개 범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1989년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이 단독으로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으나 미국의 주도적 힘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 세계는 유럽, 소련, 중국, 인도 등으로 구성된 다자간 세계 질서 multilateralism 로 이행하고 있다. 세계 지역 중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점차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는 각국의 민주화 정도, 경제적 상호의존의 정도, 국제 관계를 조정하는 기관의 힘, 국제적 규범의 힘에 좌우된다. 이 네개의 요인 어느 것도 현재 상대로 보건대 평화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70년간이나 평화를 지속해 왔지만, 앞으로 비평화로 이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언제라도 비화되어 비평화상태에 빠질 수있다. 세계는 현재 무질서 chaos 의 상태이다.
저자는 국제문제 전문가 답게 세계의 미래를 그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각 주제를 다루는 매 장의 후반에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서술하는데, 문제의 해결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는 말을 빼 놓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를 보건대 현재의 세계는 언제라도 전쟁으로 치닫을 수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평화를 향하여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갈등의 소지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맡대고 타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내정 문제가 정돈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미국을 대체하여 세계를 이끌 지도적인 나라의 출현은 현재로서는 요원하기 때문에 세계의 미래를 낙관할 수없다. 이 책은 평이한 글로 쓰여진 개론서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들을 모두 균형있게 다루려 했으므로,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찾아볼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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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 Belknap. 301 pages.
저자는 경제학자로, 이 책은 과거에 상품 교역이 확대되던 것으로부터 1990년 무렵을 기점으로 생산과정의 국제분업(Global Value Chain)이 확대되는 것으로 세계화의 조류가 바뀐 과정을 설명한다. 물건, 아이디어, 사람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세계화가 전개되었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을 계기로 물건의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서 국가간 상품의 교역이 확대된 것이 첫번째의 세계화라면, 1990년 무렵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아이디어의 국가간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서 먼 거리에서도 생산과정을 조정 통제할 수 있게 되어 생산과정의 일부를 떼내에 해외로 이전한 것이 두번째의 세계화이다.
첫번째의 세계화에서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을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면, 두번째의 세계화에서는 생산 과정을 구성하는 단계를 세밀하게 쪼개서 각 단계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여러 나라에 생산 과정의 조각을 흩어 놓는 국제적 생산 분업체제(Global Value Chain)를 탄생시켰다. 선진국의 고급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저임금이 결합된 생산방식은, 과거 상품 교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에서 선진국은 고급기술과 높은 임금을 결합하여 생산을 하고, 개발도상국은 낮은 기술과 낮은 임금을 결합하여 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획기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주었다. 이제 국제분업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면 어느 선진국 기업들도 국제 경쟁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이러한 국제분업체제를 통해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던 생산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하고 소득이 높아지는 기회를 잡았다.
1990년 무렵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으로부터 생산과정의 부분을 유치하기 위해 일제히 자발적으로 관세를 낮추었다. 선진국의 생산과정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려면 유형, 무형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와, 물건과 정보가 원활하게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있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생산과정을 유치한 개발도상국은 모두 선진국에 인접한 나라들이다. 아직 사람의 국제간 이동의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진국에 인접해야만 원격 조정과 통제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유럽인근의 동유럽이 연결되었으며, 미국인근의 멕시코가 연결되었으며, 일본 인근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연결되어 생산 클러스터를 형성하였다. 인도는 예외적으로 선진국으로부터 서비스 일자리를 떼어받았기 때문에 거리의 제약을 덜받고 있다. 국제분업체제에서 선진국과 이들에 인접한 개발도상국이 생산클러스터를 형성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한 남미와 아프리카는 국제분업체제에 참여하지 못하여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진국이 저임금 노동집약의 일을 개발도상국에 떼어주면서,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어려움에 빠졌다. 이들은 해외이전이 불가능한 서비스 일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기술수준이 낮고, 열악한 임금에 불안정한 노동조건의 일자리이다. 이들의 불만과 분노가 트럼프나 영국의 EU 탙퇴와 같은 대중영합주의적 정치의 부상을 가져왔다.
국제분업체계가 확대될수록 선진국에서는 생산 서비스의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제품 제조 단계 이전의 생산 서비스인 기획, 연구 개발, 디자인, 금융, 등의 일과, 제품 제조 단계 이후의 생산 서비스인 유통, 마켓팅, 애프터서비스 등의 일이 제품 전체의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이 맡는 제품 제조과정 자체의 부가가치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국제분업체계가 진출한 분야는 의류, 신발 등과 같은 경공업에서 기계, 전자, 자동차 등과 같은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나이키, 유니클로, H&M, ZARA와 같은 선진국의 의류 기업들이 전자라면, 애플, 다이손, 토요타 등이 후자이다. 국제분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선진국에는 제조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일부 고부가가치 부품 공장만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제조는 개발도상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국제분업 체계에서 선진국은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치중하면서, 선진국의 도시는 아이디어 생산지가 되었다. 아이디어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인접하여 자주 의사소통을 할수록 더 생산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교육, 기술 수준을 높이고, 아이디어의 실험과 확산이 원활하도록 개방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도상국은 저임금의 노동집약의 일을 선진국으로부터 떼어 맡으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점차 기술수준이 향상되어 국제분업의 부가가치 생산위계에서 상위로 이전하려고 노력한다. 한국과 중국은 상위로 이전하면서, 임금 수준이 높아졌으며, 과거에 자신들이 맡던 하위의 일을 자신들보다 임금수준이 더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국제분업체계에서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입장이므로, 국제분업에 더욱 깊숙이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분업에 참여하면서 국내 산업에 파급효과(spillover effects)가 높아져 가치사슬의 상위체계로 이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분업이 더욱 확대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선진국의 고급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저임금을 결합한 생산방식은 경쟁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더 확산되면 더 확산었되지 퇴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국제분업의 대상이 확대되고, 생산과정이 국가간에 더 세분하게 쪼개져 흩어지며, 국제분업에 참여하는 나라들이 소득이 낮은 나라들로 더욱 더 확대될 것이다.
사람의 국가간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 세번째의 세계화가 전개될 것이다.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대량 이동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비용 때문에 가까운 시일에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여 원격으로 일을 하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노동자가 개발도상국에 있으면서 로봇이나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선진국에서 일할 수있을 것이다. 현재도 의사가 원격으로 수술을 집행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 노동에 확대될 것이다. 직접 사람이 이동하지 않고 가상현실을 이용해 회의를 하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먼거리에서도 아이디어를 조정하고 만들어내는 일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의 신조류인 생산과정의 국제분업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서술에 몇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첫째는, 선진국에서 낙오된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높은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저임금의 결합이라는 경쟁력이 엄청나게 높은 생산방식은 경제 논리만큼 빨리 확대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사회적 분배장치를 통해 승자와 패자의 이익이 공유되도록 하여 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같다.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 이익공유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두번째 미흡한 점은, 생산제조 과정의 국제분업의 다음 단계로, 생산자 서비스의 국제분업이 앞으로 다가올 변화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저자는 발달된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원격 노동과 가상현실로 생산자 국제분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지만, 사실 생산자 서비스의 국제분업은 로봇이나 가상현실에 의존하지 않는 다고 해도 개발도상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계속 확대될 영역이다. 현재 인도가 선진국의 생산자 서비스(producer service)의 일부를 떼어 받아 일하고 있다면, 언어 장벽이 완화되면서 인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들도 생산자 서비스의 국제분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술수준이 높아진다면, 그들이 생산자 서비스의 하위부분을 맡으려고 하는 열망이 커질 것인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임금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열망은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생산자 서비스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상위 영역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일부 개발도상국은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하위의 생산자 서비스 영역으로 침투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가상 현실이 아니라도 현재의 정보통신 기술로도 가능한 일이다.
선진국의 대인 서비스(personal service)는 어떻게 될까? 이는 기술수준이 낮고, 저임금에 불안정한 노동이다. 이 서비스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어렵다. 로봇과 같은 정보통신이 결합된 자동화 기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기계가 사람의 감정 노동을 대체하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민자가 늘어나서 이 부분을 맡을 수 밖에 없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대인 서비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서비스는 앞으로도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소득이 높아지고 인구가 고령화될수록 대인 서비스의 수요는 늘어난다. 과연 선진국 사람들이 높은 서비스 가격을 감수하면서 이민자를 제한하는 선택을 할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이민자를 제한한다면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대인 서비스 노동력으로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책은 세계화와 관련된 생각을 자극하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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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urt Kuttner. 2018. Can Democracy survive global capitalism. W.W.Norton. 309 pages.
저자는 American Prospect 라는 진보적 시사 잡지의 창간인으로, 이 책은 세계화, 특히 세계 자본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출현한 근래의 경향을 분석한다. 왜 그러한 흐름이 전개되는지, 그러한 현상을 막으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배경으로 진단한다.
미국은 1930년 대공황시기에 뉴딜정책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탈피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모든 계층의 소득이 향상되고, 사회보장과 복지제도가 확대되고, 소득불평등이 감소하였다. 서구 유럽 역시 전후의 폐허를 딛고 부흥하면서 복지국가체제를 공고히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자본가, 특히 금융자본의 세력은 억제되었으며, 브레튼 우즈 국제금융체제 덕분에 국제금융시장은 안정되고, 노동조합 가입율이 높게 유지되고, 완전고용의 목표가 실현되었다.
1973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고, 미국이 금본위체제를 포기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경제불황이 심각해지면서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섰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장 위주의 신보수주의 노선을 표방하였다. 규제를 풀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복지를 축소하고, 세금을 감면하면서 자본가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자본가, 특히 금융자본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여 위험이 높은 투자를 하면서 큰 돈을 벌었으나, 결국 고위험의 금융 행태는 실물경제와 어긋나게 되어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험한 행위로 큰 돈을 번 자본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여전히 고위험의 금융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신보수주의 정책으로 어려움에 빠졌다. 시장의 힘은 강화된 반면 노동자의 조직력은 약화되면서 자본가에 대비해 노동자의 협상력은 크게 떨어졌다. 생산성 증가분을 자본가가 가져간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되었다. 국제분업체제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공장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였고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과거에 좋은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지고 노동조건은 악화되었다.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불안정하며 낮은 임금의 서비스직 일자리만 남게되었다.
세계화로 국가와 지역들 사이에 자본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세금은 낮아지고, 노동자의 힘은 약해지고, 반면 국제 자본의 힘은 강해졌다. 재정이 악화되면서 유럽에서도 과거에 후했던 복지제도는 후퇴했다. 전세계적으로 진보주의 세력은 약해진 반면, 보수주의 세력은 강해졌다.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여 기존의 제도권 정치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대가 높아졌고,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호응을 얻게 되었다.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은 노동자의 불만에 감정적으로 부응하였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노동자보다는 자본가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를 부정하고, 폭력을 옹호하고,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정치인이었다. 노동자의 불만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권위주의적 정치가 득세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저자는 각 국가가 주권을 행사하여 세계 자본의 힘을 제한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경제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고, 연금,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의 내실을 높여 노동자의 삶이 안정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제 자본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 세금을 감면하도록 압박하고, 노동자 보호에 제한을 가하도록 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선진국이 함께 협력하여 국제자본의 힘을 제한할 때 이것이 실현될 수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자본가에 포획되어 있으므로, 기존 노선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국민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진보주의 정치인이 출현하고, 그가 국민의 적극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본가의 세력을 제한하고 노동자 보호 제도를 확충하는 과감한 개혁을 하여야 한다.
저자의 20세기 미국과 유럽의 정치경제의 전개에 대한 서술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선진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주장이 그렇듯, 그것은 대체로 선진국의 입장만을 반영한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1970년대 이래의 세계화로 선진국 자본의 힘이 강화되고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의 힘이 약화된 것은 맞지만, 이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의 빈곤이 크게 개선되고 많은 사람의 소득이 상승하였다. 세계화로 선진국 자본이 거둔 이익보다 개발도상국에 일반 사람들의 소득의 증가분이 훨씬 더 크다. 즉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1970년대 이래 세계 정치경제의 전개는 매우 긍정적이다.
정치는 각 나라 내에서 벌어지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자본가의 경제 행위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혼란이 경제를 망쳐버릴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 경제에 혼란이 발생하면 개발도상국의 경제에도 어려움이 전파될 것이다. 결국 세계화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저자의 진보적 정책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인 진단과 방향 제시는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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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y A. Frieden. 2006. Global Capitalism: Its fall and rise in the twentieth century. W.W. Norton. 476 pages.
저자는 하버드의 정치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지난 백년간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팽창과 수축을 거듭한 과정을 기술한 경제사 책이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왜 지난 백년간 세계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겪었는지 경제적, 정치적 원인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내재된 문제를 진단한다.
이야기는 19세기말 20세기 초반 서구에서 무역과 금융의 자유 이동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국가간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은 각 나라들이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에 전문화함으로서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높이며 부의 빠른 증가를 가능케 했다. 금본위제 덕분에 환율이 안정되고 국제간 자본이동이 활발해졌으며, 운송수단의 발달로 국제간 교역이 크게 증가하였다. 가장 먼저 산업화되었고 금융이 발달한 영국의 주도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시장의 통합이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장통합은 각 나라에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유발했다. 또한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미국과 독일은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 쳐서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을 추구하는 영국과 보호무역 주의를 추구하는 독일간에 세력 싸움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나라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미국이 특히 그러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유럽의 금융 위기를 불러왔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세계로 퍼졌다. 대공황 이후 서구는 전쟁 전의 시장 통합을 버리고 각자 도생을 추구하며 각국이 고립된 경제 체제로 후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IMF와 IBRD(World Bank)를 설립하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서구 세계에 점차 확대되었다. 미국은 시장 개방을 주도하면서 GATT를 통해 국제적으로 무역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국제 무역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2차 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 노력은 미국은 물론 서구 세계 전반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 자본의 효율성을 쫒아 국제 자본 이동이 활발해 졌으며, 국제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세계 시장에 참여한 모든 나라들에게 전문화의 이익이 높아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서구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미국 시장에서 미국 산업을 위협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확대된 복지지출과 베트남 전쟁의 전비 때문에 적자 재정에 빠져들었다. 이에 더하여 1973년 중동 산유국의 자원민족주의가 폭발하고 원유 가격이 폭등했을 때, 전세계 자본주의 전체에 불황의 골이 깊어 졌다.
미국은 1980년대의 구조조정으로 비효율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1990년대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 덕분에 생산성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 역시 미국보다는 정도는 덜하지만 구조조정을 겪었으며 이후 생산성의 향상을 기록하였다. 미국은 노동자의 세력이 약하여 사회보장 수준이 낮은 덕분에 경제 구조조정 이후 열악한 질의 일자리나마 높은 고용율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노동자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와중에도 높은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해야 했으며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하였다. 그 결과 유럽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실업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댓가를 치뤘다.
1980년대의 구조조정에 이어 1990년대의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과 운송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전에 볼수 없었던 정도로 세계경제가 통합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 자본투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전세계적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라 불리는 국제 분업 생산 체계는 생산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규모와 심도는 20세기 초의 국제화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혜택은 선진 산업국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넓게 미쳤다.
1970년대까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의 국가들과 인도는 국제 경제 체계에 연결되지 않고 각국이 자립적으로 발전하는 길을 추구했었다. 국제 경제에 종속되는 것은 이익보다 손해가 크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수입과 수출을 최소화하는 대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국제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발전 전략을 택하였다. 한국에서도 한때 '민족주의 경제론'이라 하여 이러한 발전 전략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국제경제에 연결되지 않는 고립적 산업화 노력은 자본부족, 기술부족으로 벽에 부딛쳤으며, 경제 불황에 정치적 불안이 중첩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소련을 필두로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중앙집중 계획 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된 결과 결국 1990년에 붕괴되고, 이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경제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세계는 선진 산업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즉 국제적 자본과 국제 무역에 크게 의존하여 경제를 운용하는 모델로 수렴하였다.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 자본과 선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며 비효율을 제거하고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 특화하게 함으로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갖는다. 반면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는 부문,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한 부문을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연결된 댓가는 냉혹하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은 국내의 경제 참여자의 복지를 위하는 것과 상충될 수있다. 국내 경제가 침체되면 정부는 이자율을 낮추고 돈을 풀고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해외 자본이 이탈할 위험이 커진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인위적으로 지원한다면, 국제 자본은 이 나라를 버리고 해외에 더 효율적인 곳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들은 선진국의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자본가에 대항하는 협상력이 떨어지고, 임금이 하락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반면 국제적 분업 생산 전략을 고도로 구사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높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생산성 향상과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수익을 독차지 하면서 높은 임금을 구가했다. 자본의 국제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자본을 가진 사람이나 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익은 크게 높아졌다. 그 결과 선진국의 소득 불평등은 크게 높아졌다.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장 제도를 통한 완충 기능이 약한 미국은 불평등 정도가 유럽보다 훨씬 심하다.
국제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역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국제 경제와 연결된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중 중산층이 늘어난는 반면, 농촌이나 전근대적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산업화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낙후되었다. 도시와 농촌간, 근대적 산업 노동자와 전근대적 부문의 노동자간의 격차는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이다.
21세기에 들어 다시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후퇴하는 징후를 보인다. 선진국에서 세계화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서구의 각국은 비관세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자본 이동을 제한하고, 이민자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질 수록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낮아 세계화에 낙오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중국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미국인 중 중국의 부상을 반대하고 세계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 산업국에서 세계화가 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경제 효율성 증대의 혜택이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가는 한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세계화의 혜택을 다수가 배제된 채 소수가 독점하고, 소득 수준이 정체되거나 악화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세계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는 크게 힘을 받을 것이다.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쏠림 현상의 부작용으로 불황에 빠질 위험은 과거보다 더 커졌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저자는 20세기 경제사를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잘 정리하였다. 저자는 특히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아,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변화에서 금융의 측면에 많은 논의를 할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금본위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 벌어진 일이 많지만, 이책은 20세기 말까지만 커버하고 있어 아쉽다.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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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Idea for Sane World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4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그가 근래에 쓴 몇개의 글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수년전에 Globalization Paradox의 논지와 연결되는데,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며 그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교육수준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세계화로 큰 이익을 얻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은 피해를 본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높인다. 이러한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반발로 근래에 서구사회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각 국가 고유의 제도와 독립성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가 연결되어야 한다. 각 나라의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와 경제 구조가 온존될 때에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있다. 현재와 같이 세계화의 패배자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가 전개된다면, 정치적인 혼란과 세계화의 후퇴를 피할 수 없다.
세계화 낙관론자들은 앞으로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하지만, 국가의 역할은 강건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국가가 대응하며,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관리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맞추어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므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한, 국가의 주권을 국외의 기구에 완전히 위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유일한 예외는 유럽 연합인데, 그곳에서도 국가가 주요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각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화,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이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셋 중에 두개만 조합할 수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희생되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모두 동시에 만족될 수없는 이유는, 각 국가는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를 통해 그 나라 고유의 선호와 제도가 구축되어 있기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북유럽 국가의 높은 세금, 높은 평등, 높은 복지를 선호하지 않으며, 반대로 북유럽 사람은 미국의 높은 불평등, 높은 위험부담을 선호하지 않는다.
세계화와 민주주의가 조합된다면, 즉 구성원의 요구에 답하면서 세계적으로 단일체제를 이루려고 한다면, 각 국가 고유의 선호와 각 국가의 주권은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각 국가는 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정치 경제를 운영하므로 세계적인 단일 체제는 허용될 수 없다. 세계화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즉 각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계적 단일체제를 구축한다면, 각 국가의 구성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경제 단일체제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에 걸맞게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덜컹 거리며 위기에 취약하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아시아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여나갔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제조업이 성장하기 전에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빠르나, 서비스업은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지 못하므로 가난에서 탈피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자동화로 제조업의 노동수요가 감소한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제조업 국가가 버티고 있기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 이유,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안정, 특히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예가 많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영국의 산업화 과정, 독일의 지주계층이 산업화에 뛰어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절한 전략과 환경이 마련된다면 정치와 충돌하지 않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득이권 구조가 경제발전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경제발전을 이끈다. 예컨대 중국에서 제한된 지역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 시장경제가 운용되도록 한 것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류층이 자신의 계급 이익에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배집단이 정체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계급 정치(class politics)가 지배한다면 각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할 것이지만,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지배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정체성, 즉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창하는 정치인도 지지한다. 부자들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환기시킴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잊도록 하는 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한다.
선진국에서 세계화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세계화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의 정책은 미국에서 지지 받지 못했다. 1980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산업전환보상법의 예산을 삭감하여 무력화시켰다.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직장을 잃고 소득이 낮아진 사람들에게 기술훈련을 시키고 보상을 주는 방법은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으나, 그곳에서도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부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각 나라가 자신의 규제와 제도 환경을 보호하도록 하면서, 공정무역을 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조정하는 길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와 유사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면서 생산하도록 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유아노동이나 착취적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 규칙을 모두 준수한다면, 선진국 사람들도 자신의 일이 개발도상국으로 옮아가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즉 포용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계화의 패자에게 갈곳이 없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은 위험하다. 좌파는 이들을 포용할 수있는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결국 이들의 분노를 이용한 대중영합주의적 민족주의적 우파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이는 세계화를 좌초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성장의 다양한 쟁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국가가 자신의 제도적 주권을 유지하면서 세계화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세계화에서 패배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조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등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도록 하여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선진국 사람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빈곤한 나라에 선진국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장 빵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보호는 뒷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설사 공정무역을 한다고 해도, 선진국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의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이전한다면 그들이 여전히 분노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에서 기술 발전으로 자신의 비효율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공정경쟁으로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틀리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건 경쟁력이 떨어져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사회적 지원을 후하게 해주어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만이 그들을 달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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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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