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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5. 11:17

Michael Marmot. 2015.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ublishing. 346 pqges.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저자가 사람들 사이에 건강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며, 이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책의 첫 문장을 자신이 과거 수련의 시절에 의료 현장에서 부딛친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한다. '우리 의사들은 병원에 온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서, 그 병을 유발한 그 환경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 그들이 사는 환경이 그러한 병을 만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면, 의학적 치료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집이 없는 내원 환자의 병을 치료한 다음, 그를 다시 집이 없는 떠돌이 삶의 환경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러한 의문은 그의 주위 의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며, 결국 그가 공중보건학으로 전공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혹은 건강하지 못한 원인에 대응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되며, 이러한 원인을 유발한 원인, 즉 원인의 원인 'causes of the causes of illness'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의사들은 여러 조언을 한다. 영양이 균형된 식사를 하고, 야채를 많이 먹고, 담배를 끊고 술을 삼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고, 과로를 하지 말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사회관계를 폭넓게 원만하게 유지하고, 등등. 이러한 사항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의 몸은 탈이 난다. 즉 이러한 것들이 건강/불건강의 원인이다. 한 사회의 건강 수준은 의료 시설의 수준이 아니라,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의료적 치료는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는 것인데,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결정 요인이다.

즉 건강의 요인을 결정하는 요인은 사회적 조건이다. 빈곤, 불평등, 일, 삶에 대한 통제력이 건강을 만들어내는 주요 사회적 결정요인이다(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긍정적일 때에만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사회적 조건이 부정적이라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부정적으로 기여한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면, 각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는 영국의 공무원의 건강 수준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관료조직의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건강이 비례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상급자일수록 그의 하급자보다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 위계 내에서의 위치와 건강 수준 간의 이러한 관계는, 위계의 최상위에서부터 최하위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에 대한 통제력의 차이에 기인한다. 하급자는 상급자보다 일의 통제력이 덜하므로, 이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유발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건강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관계 역시 유사하게 분포되어 있다. 사회적 조건이 조금이라도 좋을 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건강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사안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은 인간의 생애 주기 전 과정에 펼쳐져 있다. 엄마의 뱃속에서, 유아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일의 현장에서, 노년기에, 이 각각의 인생 주기에서 어떤 사회적 조건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그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사회가 간여할 때,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복지 개입이 클 때, 한 사회에서 건강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북구의 복지국가에서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건강 격차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시장의 비중이 큰 사회에서 건강 격차보다 훨씬 작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즉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체제를 옹호한다. 사회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즉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건강의 불이익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회에서 크게 좁혀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몇가지 실질적 처방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사회적 약자의 권능을 높이는 (empowerment)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조직화하여 강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화, 직장에서 강력한 노동조합, 일반 시민들의 조직화를 지지한다. 둘째는 건강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객관적 증거를 널리 알려서 일반인과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변화를 추구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사회운동을 제창한다. 그 자신 국제기구 WHO를 통해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하는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사회적 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볼 때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건강 수준이 향상되었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서 긍정적 방향의 변화를 목격했기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돈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명백하다.

이 책은 그의 이전 책 "Status Syndrome" 보다 좀더 실천 지향적이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고, 행간에서 그의 열정이 전달된다. 그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이다. 그의 논의는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마지막 몇개 장에서 전세계의 성공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부정적 사례인데, 그의 지적은 막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가장 부자 나라지만, 가장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