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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해당되는 글 14건
2023. 12. 20. 20:44

Leonard Mlodinow. 2022. Emotional: How Feelings Shape Our Thinking. Vintage Books. 207 pages.

저자는 이론 물리학자이면서 과학 분야의 저술가이다.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작용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다양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감정(feelings)은 인간의 생존에 유용한 도구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감정은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래에는 인간의 감정이란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유용한 정보처리 기제라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뀌었다. 하등 동물은 주어진 조건에 정형화된 방식으로 반응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반면, 고등 동물은 새로운 상황에도 적절히 반응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을 대면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포함하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사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고도 상황을 신속히 평가하고 대응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대응 간의 관계는 자동 반사적인 것은 아니다. 감정을 하나의 중요한 인풋 요소로 하여 사고를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한다. 감정(feeling)과 사고 작용(thinking)은 서로 밀접히 엮여 있다.

감정이 없다면 무엇을 해야할 이유가 어렵다. 감정은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즐거운 감정은 그러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계속 추구하게 만든다. 감정은 물리적으로 두뇌의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관여하여 이루어진다. 두뇌의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하는 중심적인 영역이다. 인간의 굳건한 의지 (determination) 역시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이를 관장하는 두뇌 영역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극으로 두뇌의 어떤 부분에 자극을 가하면 결심의 대상이 불확실함에도 결의의 감정이 높아진다.

사람은 각자 다양한 감정 영역에 대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감정을 더 자주 느끼며, 각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저자는 이를 감정의 프로필 (emotional profile) 이라 칭하는데, 수치심과 죄의식 (shame and guilt), 조바심 (anxiety), 분노와 공격성 (anger and aggression), 행복도(happiness), 사랑과 애착(love and attachment)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에 대해 척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각자의 감정 프로필을 직접 구성해 보게 한다. 제시된 척도를 이용해 본인의 감정을 측정해본 결과, 수치심과 죄의식은 평균에 가까웠으며, 조바심과 분노는 평균보다 크게 낮았으며, 공격성과 행복도는 평균보다 약간 낮았고, 사랑과 애착은 평균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은 통제할 수 있다. 명상과 운동, 인정하기, 상황의 재해석,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기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각각에 대해 서술하자면, 명상과 운동을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가라앉으며,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기르게 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어떤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 눈을 돌리게 되면 감정이 안정된다. 격렬한 감정이 일 때 이를 글로 쓰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성공한 학자일 뿐 아니라, 전공 밖에까지 호기심을 뻗쳐서 대중 작가로서 성공한 특이한 사례이다. 스타트랙의 극본을 쓰고, TV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심리학 분야에 여러권의 베스트 셀러를 집필했다.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글을 쓸 때 무척 많이 다듬는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책과 같이 부드럽게 넘어가고 흥미를 꾸준히 제공하는 글을 만들어 냈다. 메시지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큰 통찰력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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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7. 09:20

Henry Gleitman, James Gross, and Daniel Reisberg. 2011. Psychology. 8th ed. W.W.Norton. 71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들이며, 이 책은 대학의 심리학 개론 교과서이다. 인지, 감정, 언어, 발달, 사회, 성격, 병리 등 심리학의 전영역을 포괄한다. 하위 분야에 따라 깊이에 차이가 있다. 심리학의 중심인 인지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서술한 반면, 사회나 병리 분야는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인간 심리관련 교양서를 읽다가 대학의 심리학 개론을 통해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섭렵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은 미국에서 사회과학 분야 중 규모가 매우 크며 많은 인재들이 몰리는 분야이다. 이 책은 다양한 하위분야를 잘 설명한 좋은 개론서이다. 오래전 대학시절에 심리학 개론을 들은 일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여 학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읽은 다양한 교양서에서 언급한 잡다한 논의들을 이 책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2023. 10. 18. 16:33

John Cartwright. 2016.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Darwinian Perspectives on the Human Condition. 3rd ed. Palgrave. 434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개론 교과서이다. 자연 선택과 성적 선택, 적응과 인간의 생애, 인지와 감정, 협동과 갈등, 짝짓기, 건강과 질병, 문화, 윤리에 이르기까지 진화심리학의 전분야를 커버한다. 이 책은 이론적 쟁점을 중심으로 서술하며, 수많은 관련 연구들을 요약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진화적 접근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근거하여 인간의 행동, 생각, 감정을 설명하는데 근래에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근래에 급속히 발전하는 분야이다.

인간에 대한 진화적 접근의 모든 논의를 맛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3판까지 나온 것 치고는 덜 다듬어진 부분이 많다. 후반으로 갈수록 문장이 덜 다듬어지고, 허술하게 정리된 부분이 많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대학 개론 교과서이므로 한 주제를 깊이 논의하지는 않지만, 대신 이슈가 되는 논의를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은 많은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논의의 좌표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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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17. 17:04

Robert Cialdini. 2007(1984).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Harper Collins. 280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심리학 이론과 실험 사례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당하는지, 부당하게 설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설명한다. 사람들이 설득당하는 심리 기제로 다음 여섯가지를 제시한다.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 등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사안에 대해 이성적으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피한다. 복잡한 정보를 포함한 것이 내는 단순한 신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덜 쓰면서 산다. 사람들이 설득 당하는 심리 기제는 바로 이러한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체로 이렇게 행동하면 사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의 심리적 자동 반응을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득의 심리 기제를 부당하게 상대에게 구사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다음에서 여섯개의 심리적 기제를 간단히 설명한다.

첫번째,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은, 인간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것을 주려고 하는 강한 의무를 지게 된다. 상대로 부터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먼저 상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상대에게 선물로 인식될 것은 물론, 상대에게 양보로 인식될 것을 미리 제시하면, 이에 상응하여 상대의 마음을 내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세일즈맨이 이 원리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물건을 팔려 한다면, 상대가 나에게 미리 준 것이 선물이 아니라 물건을 팔기 위한 미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대에게 의무감을 갖지 않도록 생각을 의식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번째,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는, 사람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이후 그것과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향이다. 처음부터 큰 약속을 얻어내려 하기보다, 처음에는 작은 것에 대한 약속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규모를 높여 나가면, 큰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세번째,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는, 사람들은 불확실할 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 자신과 유사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사람들은 신뢰한다. 처음 몇 사람들이 선택을 한 것을 뒤에 온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따라하면서 눈덩이 효과 snowballing effect를 만들어 낸다. 

네번째,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는,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큰 요인으로, 하나는 외모이며, 두번째는 자신과 유사한 특성이다. 외모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크다. 세일즈맨은 고객이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고객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세일즈맨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관심을 갖는 물건은 자신이 세일즈맨을 좋아하는지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구입하려고 하는 물건의 특성에 집중하여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다섯번째,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는, 사람들은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심지어 권위있는 사람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에까지 확장하여 그의 의견을 추종한다. 권위의 근거가 되는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와 관련하여서는, 권위있는 사람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으로 거짓 권위에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여섯번째,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는, 사람들은 물량이 부족하거나 가용 시간의 제한이 있는 물건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며 더 선호한다. 이는 손실을 보는 것을 이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꺼리며, 선택이 제한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 때문이다. 세일즈맨들은 물량의 제한이나 가용 시간의 제한을 거짓으로 설정하여, 고객이 열등한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구매하도록 압박한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바꾸게 되는지, 어떻게 설득에 넘어가는지를 심리학 이론과 실험 연구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세일즈 회사에 지원하여 참여관찰자로 3년이나 일했다고 한다.  책이 나온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잘 팔리는 데에는, 저자가 제시한 설득의 심리 기제가 현실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책의 최근 판에서 하나를 더 덧붙인다. 일곱번째 심리기제로 '상대와 동일한 집단에 속하면 따른다 unity'를 추가한다. 본인과 상대가 같은 집단에 속하며, 한 배를 탔다는 점을 인식시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부족주의 tribalism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을 선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설명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설득의 심리 기제에 자동 반응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의도적으로 전환하는,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면, 자동반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동반응의 심리기제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자동반응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일순간에 사고하는 방식을 전환하여 자동반응을 멈추고 이성적으로 따져보기는 힘들다.

저자는 상대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래에 대해서는 상대를 설득하는 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제외하겠다고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남의 설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일견 당연한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됨에도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름진 음식을 탐닉한다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술 담배를 하는 등은 자신의 건강에 해가 됨을 잘 알고 있지만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지 못한다. 상대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바람직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심리적 기제를 활용하거나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실 아무리 심리적 기제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게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심리적 조작을 통해 상대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는 것은 일시적 피상적으로만 가능할 듯하다. 예컨대 보험을 판매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고객의 욕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심리적 조작을 하여 구매하도록 설득한다고 하여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그런 관계에는 신뢰가 쌓일 수 없고, 그런 회사는 오래 버틸 수 없다.

 

2023. 2. 12. 16:53

Joshua Greene. 2013.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Penguin books. 35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도덕성(morality)의 특성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편 타당성을 갖는 도덕율을 탐색한다. 저자는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율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최고의 대안인 "공리주의 Utilitanianism" 혹은 "결과주의 Consequencialism" 를 모든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진화의 과정에서 '협동' cooperation 이라는 우월한 특성을 수행하기 위해 발달하였다. 인간은 집단적으로 협동하여 일하였기 때문에 진화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이기적 존재이다.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협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집단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배반 행위를 규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도덕율이 바로 그러한 장치이다.

인간의 도덕성,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판단과 행위는 두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는, '감정' emotion 이다. 예컨대, 남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짓말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동정심이 들고, 배반당하면 분노가 치밀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혐오감이 들고,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를 하면 의기양양하고, 등등.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사람들 서로간에 행위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이웃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두번째 단계는,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꼼꼼히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의 도덕성은 첫 단계, 즉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것이 적절치 않은 경우가 있다.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을 상대할 때, 도덕적 감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속한 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감정적으로 꺼리지만, 전쟁에서 타집단 사람을 죽이면 칭송받는다. 나의 집단 사람을 속이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타집단 사람을 착취하는데 대해서는 부정적 감정이 일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월하게 보는 반면 타집단을 낮게 본다.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습득한 성향인데, 집단간 접촉이 드물던 수렵채취 단계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집단간 접촉이 빈번한 사회에서는 갈등과 비참의 원인이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려면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인간 내면의 소리, 등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리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이때.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의 가치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는다. 어떤 행위가 옳은가 여부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라는 기준만을 적용해 판단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공리주의에 따라 행동하지만 항시 그렇지는 않다. 때때로 행위의 결과에 관계없이 직관적인 감정을 우선시한다. 예컨대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를 허용할 때 발생할 결과를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생명을 인간이 끊는데 대한 부정적 감정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나 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데, 이렇게 절대적인 의미의 '권리' right 를 주장하는 순간, 경험적으로 '결과'를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공리주의는 설자리가 없다.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세속적 인간이 의지할 유일한 판단 기준은 '경험적 사실'밖에 없다.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조차,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만 선택하여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편파적 선택에서 가장 자유로운 방식은 과학적 접근이다. 따라서 과학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여 객관적으로 수집한 결과에 따라,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가 다 옳다는 상대주의 또한 배격한다. 장기적으로 본 인간의 긍정적 경험, 즉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 도덕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철학적 문제를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적 접근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절학적 질문에 대한 참과 거짓의 판단은 일단 유보해 놓고. 공리주의적 접근은 세속적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잘 썼다. 다만 반복과 군더더기를 빼서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썼다면 훨씬 읽기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1. 30. 17:19

Gary Marcus. 2008. Kludge: the Haphazard Evolution of the Human Mind. Mariner Books. 17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사고 작용에 내재한 결함을 설명하고, 그것의 원인을 진화에서 찾는다. 인간의 신체 기관은 진화를 통해, 초기에 단순한 것에서부터 조금씩 복잡한 기능을 덧붙이며 발전하였다. 그 결과 우리의 신체 기관은 '클루지'(kludg)의 집합체이다. 여기서 '클루지'란 당장의 필요에 따라 성급히 엉성하게 만들어진 땜질 처방을 뜻한다. 처음부터 복잡한 기능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만들었다면 그와 같은 땜질 처방을 하지 않았겠지만,  진화란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최적의 선택(total maximum)이 아닌, 그때그때 발달 과정에서 가용한 것(regional maximum)을 선택하였으므로 결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심리와 사고작용은 인체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겪어 진화했으므로 결함을 내포한다.

인간은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 장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의 대상과 과거에 그것을 체험한 맥락이 함께 얽혀 저장되어 있으며 불러일으켜 진다. 따라서 기억의 대상에 수반된 맥락이 기억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과거 원시 인간의 생존 조건에 기인한다. 과거에 체험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잘 기억해 내는 것은 원시인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맥락이 기억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며, 기억 자체를 외곡시킨다. 

사람들은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좀처럼 논리적으로 따지며 사고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복잡한 사안은 논리적으로 손익을 따지고, 미래에 예상되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만 잘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피곤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찬찬히 사고하는 능력은 가동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과 부합되는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자신이 믿는 것에 부합되는 사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부합되지 않는 사실은 소홀히 하고 외곡하여 인식한다. 믿음이나 감정이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인간은 즉시 혹은 단시간 내에 쾌락을 주는 것에 과도하게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에는 중요성을 덜 둔다. 나중에 후회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의 쾌락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은 오늘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성향을 타고 났다.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일을 미룬다.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과도한 염려와 초조함, 제어하기 힘든 분노 등과 같이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인간 심리에 내재한 다양한 결함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클루지'로 해석해야 한다. 오랜 인간의 원시 생존 시기 동안 진화된 뇌가, 생존 상황이 전혀 다른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된다. 이러한 인간 심리의 결함을 최소화하는 몇가지 방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다양한 여러 대안을 생각해 볼 것,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질문해 볼 것,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하여 인과관계인 것은 아님을 명심할 것, 자신의 생각이 충동과 감정에 의해 덜 좌우되도록 상황을 조정할 것(즉 피곤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 것, 중요한 사안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것), 이익과 비용을 대비하여 생각하는 습관을 키울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만일 제삼자라면 어떻게 할지,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등을 염두에 둘 것,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수시로 자신을 일깨울 것, 등.

이 책은 인간의 비합리적, 감정에 휘둘려 생각하는 성향에 대해 쓴 다른 심리학 책들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컨대,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간 본능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심리적 결함에 덜 빠지려면, 심리적 결함의 힘이 자신에게 항시 작용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자기 통제 훈련을 통해 생각의 근력을 기르고, 경험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생각의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적은 상황으로 자신을 조정해야 한다.

2023. 1. 20. 16:02

Daniel Kahneman, Oliver Sibony, and Cass Sunstein. 2021. Noise: A Flaw in Human Judgement. Little, Brwon Spark. 395 pages.

저자는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자들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할 때 저지르는 오류에는 어떤 것이 있고, 왜 생기며,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통계학적 논리가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다.

판사가 범죄자에게 부과하는 형량, 보험 감정사가 보험 대상에 대해 산정하는 보험료,  기업의 채용 인터뷰에서 지원자에 대해 매기는 평정 점수, 환자의 병에 대한 의사의 진단, 기업의 미래 매출 예측, 종업원의 업무 성과 평가, 등 거의 모든 평가와 판단 행위에서 평가자에 따른 평정 결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는 일반적인 평가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요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의 불일치가 심하다. 저자는 참 값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소음'(noise)이라고 칭한다. 사람들이 참 값에 근접한 평가를 할수록, 즉 노이즈를 줄일수록 효율과 공정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내지는 평가자들 사이에 불일치를 줄이는 것은 실질적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노이즈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여러 평가자들의 평균값이 참 값에서 멀어진 것은 '편견'(biase)에 해당하는데, 사람들은 평가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주로 이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노이즈는 편견과는 별개로, 평가자들의 값이 서로 간에 벌어진 정도이다. 노이즈는 평가자 각각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평균적인 성향인 level noise와, 이와는 별도로 특정 성격의 사례에 다르게 반응하는 pattern noise로 나눌 수 있다. 이 두가지 이외에도, 일관된 패턴이 없이 그때 그때의 평가 환경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occasion noise 가 있다. 

노이즈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평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 대신, 그보다 쉬운 다른 문제로 대치하여 평정하려는 심리적 성향, 평정하는 기준이 되는 잣대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 평정자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가치관에 기인한 특이한 평가, 등등.

노이즈를 줄이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평가자의 지능이 높고, 관련 전문성이 높을수록 노이즈는 작다. 여러 평가자들이 독립되게 평가하도록 하여 이들의 평가 결과를 평균하면, 개별 평가자의 평가 결과보다 노이즈가 작다. 이는 "군중의 지혜"(wisdom of the crowd)라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평가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배제함으로서 사전적인 편견을 줄이면 노이즈가 줄어든다. 평가 대상을 구성하는 영역을 분석적으로 구분하여, 각 영역에 대해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이들을 종합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면, 평가 대상에 대하여 뭉뚱그려서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노이즈를 줄일 수 있다. 평가 척도의 각 값에 대해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사례를 제시하여, 평가자들이 평가 척도의 각 값에 해당하는 사례와 평가 대상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평가하도록 한다면, 평가자에 따른 척도의 주관성 문제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평가 대상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평가 대상들에 대해 절대적 수준 점수를 부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수준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반면, 사례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평가는 비교적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 대상이 7개를 넘어서면, 인간의 마음이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복잡성의 범위를 넘어선다. 따라서 많은 수의 대상에 대해 일목에 전체를 비교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먼저 몇개의 큰 그룹으로 나누어 순위를 매기고, 각 그룹 내에서 다시 구성원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평가 대상을 그와 유사한 범주의 한 예로 간주하여 범주 전체의 평균을 기본(base)으로 하고, 평가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평가 값을 다른 한극점으로 하여, 두 극점 사이에서 평가 대상이 그가 속한 범주 평균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비례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훨씬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사건은 평균으로 수렴한다는(regress to the mean) 원칙을 응용한 것이다. 

기계적으로 규칙을 정하여 그에 따라 평가하거나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자동 평가하는 것이, 평가자 개인에게 재량을 크게 부여한 평가보다 노이즈가 훨씬 작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재량이 줄어드는 것에 심하게 저항하기 때문에, 기계적인 평가를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사람들은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기계나 규칙에 따른 자동 평가보다는 인간이 평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그에 따른 효율성 손실도 커지기 때문에, 규칙의 엄격성과 인간적 재량 사이에 어느 정도어데 타협점을 찾아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전 책인 Think, fast and slow 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연구 결과에 기반한 정보로 꽉꽉채운 제법 전문적인 책이다. 통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기에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저자의 번득이는 지적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규칙과 알고리즘을 통해 노이즈를 줄이는 것이 가능함에도, 전문가들이 판단의 재량권이 줄어듦과 함께 권위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갖은 이유를 대면서 규칙과 알고리즘의 도입을 반대한다는 비판이 통렬하다.

과거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의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deskilling" 현상이, 앞으로 전문직 분야에도 확대되리라 예상한다. 과거에 장인(craftman)이 준기술직 (semi-skilled)에 의해 대체되었듯이, 전문직 또한 준기술직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 영상 판독이나 시험결과 판단이 의사로부터 컴퓨터와 준기술직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세무사의 일이 세무 소프트웨어에 의해 대치되고 있듯이, 앞으로 판사와 변호사의 일이 법규와 판례를 해석하고 종합하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어느 정도 대치되는 날이 올 것이다.   

2022. 6. 6. 22:02

Daniell Schacter. 2001.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 Houghton Mifflin Co. 20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로 기억 연구의 전문가이며, 이 책은 그의 전문 분야를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 쓴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다음 일곱가지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잊어버리는 것(transience),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absent-mindedness), 기억이 막혀 회상하지 못하는 것(blocking), 잘못 기억해내는 것(misattribution), 암시에 의해 영향받는 것(suggestibility), 외곡되게 기억하는 것(bias),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persistence). 각각의 문제의 증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대상과 연관된 사항을 함께 기억속에 저장하면 이 문제를 조금은 약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시간이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한정된 기억 자원 (momory resourse)을 효율적으로 쓰는 장치의 일부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일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인간은 자동항법 모드로 일을 수행하면서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일과 관련된 구체적 사안을 나중에 기억해 내기 어렵다. 동시에 여러 일에 관여할 경우, 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므로 나중에 그 일을 기억해 내기 힘들다.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고유명사를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다른 지식들과 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이다. 어릴때의 학대나 강간과 같이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을 나중에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정적 자기방어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인이 되어 기억해냈다고 주장하는 어릴 때의 성적 폭력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을 기억에 저장하기보다, 그것의 요점만을 일반화하여 저장한다.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대상의 일반화된 패턴을 파악하고, 패턴으로 기억에 저장한다. 따라서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질문받았을 때, 잘못 기억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증인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암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범인을 심문하는 사람의 암시에 의해 증인이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이 변형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과거 기억은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기억이,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확실한 기억으로 변형된다.

과거의 일이나 대상을 잘못 회상해내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결과이다. 현재의 사정에 따라 과거의 사정에 대한 기억을 외곡시켜 과거와 현재의 일관성을 추구한다. 일의 결과를 보고 처음부터 그러리라고 생각했다고 믿거나, 그렇게 일이 전개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사후에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항시 해석한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심리적 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했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크게 흥분하게 되고, 그 일이나 상황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다.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음 속에 억누를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글이나 말로 대면하면 할 수록 그것에 대한 감정이 무디어지고, 그것의 괴로움이 점차 옅어지게 된다.

이상 일곱가지 기억의 약점은 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기억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심각한 문제를 보인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인간의 진화적 적응의 직접적 결과이거나 혹은 부산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쉽게 풀어쓴 것으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때때로 머리털을 세는 세밀한 작업을 쫒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22. 2. 17. 13:31

Daniel Gilbert. 2006. Stumbling on Happiness. Vintage books. 26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이 저지르는 심리적 오류들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심리적 속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이란 주관적이다. 동일한 물건이나 상황에 대해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특정 물체나 상황 자체에 행복감이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발생한 일에 대해 요점만을 저장한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요점을 제외한 많은 부분을 채워넣어야 한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의지한 추론으로 세밀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바탕으로,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외곡하여 기억해 낸다. 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경우에도 동일하다. 미래에 만일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하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의해 외곡되어진다.  그런데 미래에 내가 실제 그러한 것을 했다면 느낄 나의 감정은 미리 상상하는 느낌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과 그 미래 사이에 다양한 일이 벌어지면서, 지금 내가 상상한 일들이 미래에는 지금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그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는 성향이 있다. 미리 상상할 때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긍정적인 이유를 찾아내서 합리화한다. 타인이 볼 때 불행해 보이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끼는 이유이다. 세상의 일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수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 대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측면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미래에 어떻게 느낄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이 느끼는 느낌을 참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타인과 다른 사람이므로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은 느끼는 감정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큰 행복을 느끼면서 살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가 꿈꾸는 상황을 앞으로 실현한다고 해도 그리 크게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고된 일이며 상대적으로 볼 때 큰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자식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식을 낳고 기른다. 연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이상의 부는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부를 이룬 후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참고 일한다. 왜냐하면 더 많은 부가 더 큰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사멸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요컨대, 인간은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리는 존재이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만큼의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감이란 주관적 감정이므로 물건이나 상황 그 자체에 행복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물건을 획득하고 상황에 도달한다고 해도 달리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외에 대안은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면 열심히 계속 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번성할 수 없다. 인간의 욕구과 사회의 필요가 어긋나기 때문에, 사회는 인간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다. 인간은 그러한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프로그램된 존재이다.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행복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인식, 감정, 기억, 상상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설명한 책이다. 많은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읽으면서 여러번 되새겨보아야 했다.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때때로 쉽지 않지만, 나름 통찰력이 있고 읽는 재미가 있다.

 

2020. 12. 31. 12:39

Nichlas Epley. 2014. Mindwise: Why we misunderstand what otheres think, believe, feel, and want. Vintage. 188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다. 이 책은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상대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지, 그러면서도 왜 잘 읽는다고 착각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렇다면 상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상대의 생각을 잘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험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부부 사이에도 상대의 생각을 읽는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 기술로 진화했지만, 정확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낮다.

서로 자주 접촉하지 않고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인간성을 덜 인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때 인디언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경우, 흑인 노예의 인간성을 덜 인정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면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가졌거나,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사물에 대해 인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나 이를 유발한 인격적 행위자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행위자를 지목한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의 원인으로 신을 등장시키는 이유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행위하는지는 알지만, 왜 그런 생각과 느낌과 행위를 하게 됬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의식 밖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나 행위의 원인을 자신은 잘 안다고 착각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면, 고쳐야 할 쪽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라고 생각한다. 이를 심리학에서 "순진한 사실주의 naive realism"라 한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타인도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타인의 생각을 잘 못 파악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상대의 행위의 동기를 판단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타인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나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주 접하지 않는, 잘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정관념 stereotype" 을 가지는 것은, 인식의 효율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정관념이란 잘 모르는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효율적인 도구이다. 고정관념은 집단간의 차이를 과장되게 만들지만, 집단간에는 차이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의 많은 부분은, 두 집단간 차이의 방향은 맞지만, 차이나는 정도는 과장되어 있다.

인간의 행위는 행위자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행위를 관찰함으로서 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할 수있다는 주장은 자만이다. 이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만하기 때문도 있지만, 많은 경우 행위자의 감정과 생각이 행위에 그대로 반영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로부터 행위자의 생각을 추출해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우며 오류가 많다. 자신의 행위로부터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남의 행위로부터 그의 진실된 생각을 파악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타인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본적으로 겸손해져야 한다. 상대의 입장을 추측함으로서 (put oneself in other's shoes) 상대의 행위의 배경이 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조언은 틀렸다. 왜냐하면 상대의 입장을 추측한다고 하여 상대가 처한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상대의 입장, 상대가 처한 맥락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추측만으로는 절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저자는 상대의 입장을 추측하기보다, 상대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직접 물어보고, 그의 발언을 경청하여 그의 생각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다른 어떤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 사람들은 물어보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거짓없이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더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경우 요청하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서로 접촉하고 대화하면서 공통의 이익을 추출해 내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흥미로운 사례를 인용한다. 어느 인디언 부족은 "말하는 막대 talking stick" 라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회의에서 발언을 하려면 이 말하는 막대를 가져야 하는데, 이 막대를 건너 받아 다음 차례로 말하는 사람은 바로 전에 말한 사람의 발언의 요지를 요약하여 그가 수긍하는 사인을 보낸 후에야 자신의 발언을 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상대의 생각을 잘못 파악해서 발생하는 불상사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과학적 연구결과를 잘 정리하여 적재적소에서 제시함으로서 자신의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쓴다. 통찰력을 주는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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