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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해당되는 글 31건
2024. 8. 5. 16:16

Satoshi Kanazawa. 2012. The Intelligence Paradox: Why the intelligent choice isn't always the smart one. John Wily & Son. 208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지능 intelligence 에 대한 저자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지능은 무엇이며, 왜 존재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 서술한다.

인간의 지능은 진화의 결과 생겨난 다양한 속성 human traits 중 하나이다. 지능은 유전하는 속성이며, 사람에 따라 지능 수준은 차이가 크다. 인간의 육체적 속성 예컨대, 피부색이나 체질, 혹은 심리적 속성 예컨대, 공격성, 외향성, 예민성,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능도 유전적인 영향이 큰 속성 중 하나이다. 문제는 다른 속성과 달리, 인간의 지능은 가치 평가가 함께 따른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지능이 높은 사람보다 인간적인 가치 worth 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지능은 여러 측면이 있다. 언어적 지능, 수리적 지능, 공간 지각 지능, 논리적 추론의 지능, 사회적 지능, 등등. 이러한 다양한 측면의 지능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 분야의 지능이 높으면 다른 분야의 지능도 함께 높다. 이러한 여러 지능의 배경 변수로서, 다방면을 포괄하는 지능 general intelligence 을 '지능 지수' Intelligence Quotient 로 측정한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지능지수는 신뢰도가 매우 높은 측정 지표이며, 일생 크게 변하지 않는다. 즉 지능지수로 대표되는 인류 공통의 분명한 실체가 있으며, 일반적인 비판과 달리 서구 문화가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성인이 되면 어릴 때보다 유전적인 영향이 더 뚜렷이 발현되기 때문에, 어릴 때보다 성인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지능지수의 차이가 더 커진다.

인간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 온 이래 지난 200만년 동안 대부분을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수렵채취 생활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질은 수렵채취 활동에 적합하게 진화해 왔다. 농업을 하기 시작한 10,000년전 이후에 생활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 아직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0년간 도시화 산업화로 출현한 현대의 사회에서는, 오래전 수렵채취 시절에 획득한 특질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을 들 수 있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많은 부분은 유전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심리학계에서는 대체로 50:50으로, 즉 유전적 요소가 50%, 환경적 요소가 50%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속성은 유전적 변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특성에서 유전적인 차이가 나타난다면, 이러한 특성에서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후손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의 우수한 지능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 즉 이성의 짝을 찾고, 자손을 기르고, 먹을 것을 구하고, 등의 능력과 비교할 때, 우수한 지능은 이러한 활동에 큰 이점을 주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우수한 지능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 즉, 새로운  삶의 문제에 당면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으로 진화하였다. 오랫동안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데 필요한 속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으로 확고하게 굳어진 반면, 새로운 환경에 접해 대처하는 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된 특질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이 출현한 특질이다. 인간 진화 과정에서 오래도록 친숙한 환경인 사바나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인간 공통의 생존 능력, 즉 이성의 짝을 찾고, 자손을 양육하고, 먹을 것을 구하는 등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과 지능이 낮은 사람 간의 차이는 없다. 반면 농업을 시작한 후 새로이 출현한 환경에서 전에는 익숙치 않은 새로운 문제와 관련해, 지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처 능력이 더 크다.

현대 사회에서 지능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으며, 매력적이며,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 현대사회의 환경은 인간 진화의 오랜 과정에서 볼 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사람은 현대 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분야에서 월등히 유리하다. 교육, 소득, 성별 등 여러 조건을 통계적으로 통제했을 때, 똑똑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양한 면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더 리버럴하며, 신을 믿지 않으며, 성적인 배타성 sexual exclusivity 을 고집하며,  올빼미 체질이며, 동성애 성향을 가지며, 고전 음악을 좋아하며, 술을 더마시며, 여성의 경우 결혼을 덜하고 결혼했다 해도 아이를 덜 낳는다.

저자는 지능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활동에 유리함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책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와 같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지능의 이점은 최대로 발휘된다. 저자의 가설이 맞다면, 현대 사회에서도 근래로 올 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성과를 내고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는 저자가 "지능의 역설" intelligence paradox 라고 지칭하는, 즉 지능이 높은 사람이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에서 더 우월하지는 않다는 명제와는 반대된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지만, 조금 설익은 주장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여하간 신선한 주장이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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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22. 13:58

Bobbi S. Low. 2015. Why Sex Matters: A Darwinian look at human behavior. Princeton University Press. 252 pages.

저자는 행동 생태학자(Behavioral Biologist)이며,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남녀차이와 짝짓기 행위에 대해 설명한다. 동물이 처한 생태적 환경에 따라 각 동물은 진화의 최적의 전략, 즉 후손에게 유전자를 퍼트리는 데 fitness 에 최적의 전략을 선택한다. '모든 생물체는 후손에게 유전자를 퍼트리는 이익 fitness 을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라는 진화론의 프레임을 가지고 인간 남녀의 행위를 관찰하면, 과거는 물론 현대 사회의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도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는 일부일처제 social monogamy 를 유지하지만, 유전적이 면에서 보면 일부다처 genetic polygyny 동물이다. 남성이 만드는 후손의 수의 변이 variation는 여성의 후손의 수의 변이보다 더 크다. 이는 혼외의 자식을 갖는 것, 이혼후 재혼 비율 등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빈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경쟁적이고 모험적으로 행동하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더 많은 자식을 얻을 가능성이 큰 반면, 여성은 모험적으로 행동해도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은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아이를 생산하는 가치' reproductive value 가 중심이었는데, 근래에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늘면서 '자원을 늘리는 가치' resource value 의 비중이 커졌다. 근래에 선진 산업국에서 남성은 여성 배우자을 구할 때 미모와 같은 육체적 가치 만이 아니라 경제적 가득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성향이 뚜렷해졌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자식을 많이 낳는 전략보다는 소수의 자식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소득이 높을수록 자식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소득이 높으려면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교육을 많이 받아야 하고, 이는 부모의 높은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의 수를 줄이는 대신 각각의 자식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전략을 선택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능력이 낮으면 자신의 자손을 만들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므로, 부모는 소수의 자녀에 더 많이 투자하려 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률은 협동을 통해 구성원의 진화적 이익 fitness 을 높이는 것을 목적한다. 모두가 협동한다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집단 전체에 돌아가는 이익이 훨씬 크다. 문제는 이탈자가 있으면 협동이 붕괴되기 때문에, 모든 사회는 이탈자를 막기 위해 엄격하게 감시하고 규제한다. 과거 소규모의 지역 사회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행위를 감시할 수 있으므로 협동을 해치는 이탈자를 막기 위해 추상적인 도덕율을 크게 필요치 않았다. 현대 도시의 대규모 익명 사회에서는 서로간 직접적인 감시가 불가능하므로 공식적인 법 제도를 필요로 한다.

남성들 사이에 연대 coalition 는 경쟁 사회에서 자원을 더 많이 획득하고 지위를 높이는 목적에 맞추어져 있다. 남성들에게 더 많은 자원과 높은 지위는 자신의 자식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한다. 남성들은 혈연 관계를 넘어 외래인까지 포함하는 큰 규모의 연대를 구축한다. 반면 진화적 이익 fitness 의 측면에서 여성들간 연대의 이익은 남성들간 연대의 이익만큼 크지 않다. 여성들간 연대는 주로 혈연관계에 치중하며, 외래인을 포함한다고 해도 규모가 작다.여성들 사이의 연대는 자식을 양육하는 것과 관련된 편익과 정보를 얻는 데 한정된다. 따라서 치열한 갈등이나 전쟁은 주로 남성들 사이에 벌어지며, 여성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진화적 이익 fitness 를 높이는 것인데, 이러한 이익과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라는 구호는, 자신의 이익 self-interest 를 최우선 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개인에게 어떤 이익과 해를 가져오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재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라는 조언은, 남과 비교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여를 경쟁적으로 하도록 하고, 기여를 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지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정책이 효과적이다. 미래 세대의 이익을 현재 살고있는 사람의 이익만큼 소중히 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래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보다 훨씬 깍아서 평가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행위가 미래 세대가 아닌 현재 세대에게 어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강조해야 한다.  추상적인 통계 수치를 제시하면서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면 무시하는 인간의 본성과 어긋난다. 그보다는 어떤 행위가 그가 사는 지역의 구체적인 환경과 어떻게 연관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지적해야 한다.

이 책은 엄청나게 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를 건드린다. 본문이 250쪽인데 주석과 참고문헌만 150쪽이 넘는다. 포괄적이라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지만, 워낙 많은 연구를 구체적으로 인용하며 요약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책을 읽다보면 인간의 성에 대한 특별한 의미나 감정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생물계의 일원으로 인간의 성에 대해 큰 그림을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얻는 바가 있다.

2023. 10. 18. 16:33

John Cartwright. 2016.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Darwinian Perspectives on the Human Condition. 3rd ed. Palgrave. 434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개론 교과서이다. 자연 선택과 성적 선택, 적응과 인간의 생애, 인지와 감정, 협동과 갈등, 짝짓기, 건강과 질병, 문화, 윤리에 이르기까지 진화심리학의 전분야를 커버한다. 이 책은 이론적 쟁점을 중심으로 서술하며, 수많은 관련 연구들을 요약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진화적 접근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근거하여 인간의 행동, 생각, 감정을 설명하는데 근래에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근래에 급속히 발전하는 분야이다.

인간에 대한 진화적 접근의 모든 논의를 맛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3판까지 나온 것 치고는 덜 다듬어진 부분이 많다. 후반으로 갈수록 문장이 덜 다듬어지고, 허술하게 정리된 부분이 많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대학 개론 교과서이므로 한 주제를 깊이 논의하지는 않지만, 대신 이슈가 되는 논의를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은 많은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논의의 좌표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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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17. 17:22

David Buss. 2016(1994). The Evolution of Desire: Strategies of Human Mating. Basic Books. 350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개척자 중 한사람이며, 이 책은 짝짓기 전략에서 남자와 여자간 차이가 나는 이유를 진화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전반적인 논의는 Trivers 의 '부모투자이론'(parent's investment theory)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자원을 많이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인 반면, 여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성관계의 상대를 선택하는 데 매우 까다롭고 신중한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의 전략이다. 남자는 건강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에 관심이 큰 반면, 여자는 자신과 아이의 부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남자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관심이 크다.

여성은 장기적으로 관계에 헌신할 상대를 찾는데 관심이 큰 반면, 남성은 가급적 적은 자원을 소모하면서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는데 관심이 크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일회성의 섹스에 관심이 적으며, 일회성의 섹스를 한다고 하여도 당장의 사회경제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일회성 섹스를 통해 상대를 탐색하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접근한다. 반면 남성은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회성의 섹스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상대의 성적인 의도가 확실치 않은 경우, 남성은 상대 여성의 애매한 행동을 성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고 편향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후손을 생산한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은 이렇게 편향되게 해석할 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상대의 성적인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여성은 상대 남성이 자신에게 신뢰와 헌신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들때까지는 자신과 섹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건 date rape 이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화적 남녀간 짝짓기 전략의 차이에 기인한다.

남성이 지위 획득에 관심이 많은 것은, 여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이는 다윈의 '성적 선택이론' sexual sellection theory 이 지시하는 바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 역시,  남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여성의 외모, 즉 건강한 후손을 낳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큰 관심이 없으며, 여성은 남성의 외모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역시 같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녀간 성적인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 짝에게 사회경제적 자원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여성은 자신의 짝을 버리고 다른 남성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여성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신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다른 여성을 찾는다.  결혼한 여성이 다른 남성과 외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남성의 부양능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앞으로 자신의 남성과 헤어질 것에 대비하는 전략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여성 짝에 만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을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짝이 자신 이외의 사람과 바람을 피울 경우 심한 감정적 질투를 느끼는데, 이러한 감정적 흥분의 이유는 남녀가 다르다. 남성은 자신의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에 집착하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자원을 나누는 것에 집착한다.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을 사랑하지 않고 일시적 성관계를 맺은 것을 용서할 수 있으나, 남성는 자신의 여성의 성관계 그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여성의 생식능력은 20대 초반에 가장 왕성하며 이때가 남성에게 가장 매력적인 시기이다. 여성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지속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반면 남성의 사회경제적 능력은 30대 중반 이후에 최고에 도달한다. 남성의 생식능력은 50대나 60대에도 어느 정도 유지된다. 여성과 남성이 상대에게 최고로 매력적인 시기가 서로 어긋남으로, 여성은 자신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며, 상대의 현재 능력보다 미래에 사회경제적 잠재력에 더 가치를 둔다. 여성의 생식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30대 후반 이후, 여성은 짝짓기 시장에서 퇴장하거나, 아니면 육체적 매력이 아닌 사회경제적 능력과 지혜와 경험 등으로 남성 상대에게 어필한다.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경제적 능력이 높아짐으로, 중년이후의 남성이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전략을 구사한다.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 일회성 섹스,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는 것, 헤어짐, 등은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데 가장 유리하도록 남녀 모두 구사하는 전략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처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남성은 물론 여성또한, 일회성 섹스나,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와 헤어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인류는 일부일처제라는 남녀 상호간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서 지구상에서 번성하였다. 그러나 남녀간 인구비율이 달라지거나, 개별적으로 남녀 각각 처한 조건에 따라, 앞에 언급한 다양한 짝짓기 전략을 구사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은 일부일처제를 옹호하지만, 사람들은 항시 일부일처의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 제도를 따르는 것이, 개별 남자 혹은 여자에게 후손을 만드는 데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일부일처제 이외의 짝짓기 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남녀간 짝짓기는 문화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물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녀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이론의 힘을 통감한다. 여성의 선택 때문에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추구 노력이 매우 치열한 것이며, 그 결과 이 사회의 사회경제적 지위 위계는 남성에 의해 장악되었다. 반면 남성의 선택 때문에 여성은 외모에 집착하며 외모를 높이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문제는, 외모는 많은 부분 타고난 것이라 당사자가 어쩔 수 없으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는  본인의 노력으로 획득가능한 것이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정의감이나 형평을 고려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naturalism fallacy)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과 정의에 맞추어 자연을 바꾸는 것이 인간의 문화라고 하지만, 이는 마치 강물을 거슬러 노젓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남녀 관계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녀관계는 생존에 필수적인 분야이므로, 지금까지 사회를 살아가면서 항시 관심을 갖고, 엄청나게 많은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어느 분야보다도 많은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니 통찰력이 더해진다.

2023. 7. 13. 10:23

Robin Dunbar. 1996.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Harvard Univ. Press. 207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과정을 본인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가 집단내 사람들 사이에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침팬지를 포함한 유인원은 많은 시간을 서로 털을 골라주는데 (grooming) 소비한다. 이러한 행위는 위생적 목적도 있지만 서로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주이다. 유인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 관계는 복잡한데, 서로 유대를 맺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집단으로 사는 것이 단독으로 사는 것보다 생존에 득이 되지만, 대신 집단내 구성원들 간 관계를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영장류의 두뇌 크기와 집단의 규모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비례관계를 인간에 적용할 때, 인간의 뇌의 규모에 대응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수치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던바의 수'라고 지칭한다. 실제 인간 사회를 둘러보면, 구성원들 사이에 직접적 대면 관계와 정보를 공유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을 넘지 않는다. 150명을 넘으면, 간접적 익명의 관계가 급속히 불어나며, 위계구조와 규칙에 따른 형식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자연부락, 종교 집단, 군의 병사 집단 등의 예에서 150명이 최대 상한임을 확인한다.

인간의 두뇌가 그렇게 큰 이유는 '남들의 생각을 읽는 데' theory of mind 엄청난 정보처리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대 5중까지 중첩된 reflexive 정도까지 남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1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2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3단계), 등으로 사고의 복잡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관리하고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침팬지는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 수록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조율해야 할 필요는 커지기 때문에, 남들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은 집단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침팬지 집단의 규모는 50명이 넘지 않으며, 이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약 20%를 그루밍에 할애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유인원들로부터 추정할 때, 인간은 깨어있는 시간의 45%를 관계를 관리하는데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시간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비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할 시간이 부족해지게 된다(time budget limitation). 인간은 이문제를 언어를 통해서 해결했다.

연구결과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할 때, 전체의 3분의 2의 시간과 내용을 사회적 관리에 할애한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남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gossip)은 직접 대면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그룹은 4명을 넘지 않는데, 이는 한명이 말하고 다른 세명이 듣는 구조이다. 한번의 말을 통해 세명과 관계를 맺으므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 개개인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과 비교할 때,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3분의 1로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직접 행동으로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깊이가 얕기는 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호간 담화를 통해 유대를 맺으며 일탈자 freerider를 억제함으로서 집단을 유지한다. 이렇게 언어를 이용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시간을 절약한 결과, 인간은 다른 유인원과 비슷하게 깨어있는 시간의 20~25% 만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쓰면서 더 큰 집단 속에서 살 수 있다. 수렵 채취인의 생활을 보면, 저녁에 불 주변에 모여 앉아서 하는 일의 절반은 바로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는 일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추적해 보면 불이 사용된 후, 인간의 두뇌 크기가 이전보다 크게 커졌는데, 이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언어를 통한 효율적인 관계 구축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언어가 사회적 목적을 위해 발달했다는 증거는, 방언의 발달에서도 확인된다. 사람들의 집단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멀어지면 바로 방언이 나타난다. 방언은 사람들의 집단 소속을 확인시켜주는 효과적인 징표이다. 언어 습관은 어린 시절에 고정되고 이후에는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가 우리 집단 소속인지를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영국의 노동계층의 남성은 노동자 집단의 방언을 사용하나, 여성은 중류층의 말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자신보다 상위계층의 남자와 혼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 반면, 남성은 자신이 속한 노동자 집단 속에서 신뢰를 구축하여 생계를 확보해야 함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구사할 필요성이 여성보다 더 크다.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를 관계의 관리를 위하여 더 많이 사용할 것 같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여성이나 남성이나 대화 내용의 3분의 2는 누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뒷담화가 차지한다. 다만 이는 동성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 그런 것이고,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대화를 할 때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한다. 남성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목적에서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동성 집단 내에서 말할 때에도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에 대해 떠벌이는 시간이 더 많은 반면, 여성은 남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 역시 남성은 자신을 광고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더 주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언어를 더 많이 쓴다. 남성과 여성간에는 '성적인 선택' sexual selection 의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들 간에는 말의 내용이나 기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동성들의 모임보다는 이성이 섞인 모임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배경으로 유인원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2023. 5. 31. 20:51

Heather Heying and Bred Weinstein. 2021. A Hunter-Gatherer's Guide to the 21th Century: Evolution and the Challenges of Modern Life. Swift. 243 page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 부부이며, 이 책은 현생 인류가 오랜 동안 수렵채취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형성된 특질이 20/21세기 현대 문명 사회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서술하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의 진화적 적응은 유전자와 문화의 양면에서 전개된다. 동물의 유전자는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지만, 문화를 통해 다양한 상황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인간은 동물 세계에서 가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이는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유전자와 문화는 상호 작용을 하면서 발전하기 때문에, 소위 "자연과 환경" nature versus nurture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논쟁은 부적절한 질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환경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반면 인간의 몸은 오랜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되었으며 이렇게 빠른 속도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현대인이 사는 환경은 인간의 몸과 맞지 않으므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기본 원칙으로, 가능한 한 현대 문명의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대신 자연에 근접한 방식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할 것을 권한다. 의료, 음식, 잠, 섹스와 젠더, 자녀 양육, 관계 맺기, 학교, 등의 주제에 대해 장을 달리하면서 서술한다. 현대 의료 기술의 개입보다는 자연 치유를 권하며, 가공 식품을 멀리하며, 잠을 잘 자는 것을 중요시하며, 남녀간 일생동안 상호 헌신을 수반하는 일부일처제를 권장하며, 여성과 남성은 서로 능력과 성향이 다른 것을 인정하며, 비대면 접촉보다 대면 접촉하는 관계를 권장하며, 학생이 스스로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어려움에 부닥뜨려 해결책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하는 교육을 권장한다.

현대문명은 지속적 성장과 더 많은 소비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비즈니스 세계는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욕망을 자극하지만, 이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본주의 논리와 시장의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뉴욕타임즈가 추천한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읽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제목이 그럴듯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지만 결국 실망으로 끝나다. 그들의 주장에 특별한 것이 없으며, 상식적인 지적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논의는 대부분 그들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기 때문에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어려웠으리라. 현대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권하는 대로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우며,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의 과정은 거꾸로 되돌리기 어렵다.

2023. 4. 17. 18:03

Edward O. Wilson. 2014.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Liveright. 187 pages.

저자는 저명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생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인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 바를 서술한 에세이 모음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인류는 생물계의 진화의 산물이다. 생물체가 존재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지구는 타고 났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오랜 동안 전개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이 중첩되면서 현재의 인간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마주친 수많은 대안들이  출현하지 못했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어 다른 생물체로 발전하였다. 인간과 가장 근접한 유인원인 침팬지와 인간의 길이 갈라진 이후에도, 수십종의 인간의 조상이 절멸된 끝에, 현재의 인간 Homo Sapiens 가 탄생하였다. 인간이 되는 진화의 과정은 매우 매우 작은 확률의 소산이다. 그 많은 조합(permutation)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다르게 선택되었다면 현재의 인간이 출현하지 못했다. 진화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인간이 되는 길에 필연이란 없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존재한 사회적 동물이 총 20가지 있는데, 인류는 그중 하나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군집하여 생활하며, 군집 생활에 삶을 의존하며,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개미나 벌이 속하는 사회적 동물은 지구 전체 생물계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진화의 과정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인간은 다른 사회적 동물과 마찬가지로 분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회적 동물과 달리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된 분업 생활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순적이다. 개인간의 생존 경쟁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집단간의 생존경쟁에서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 즉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집단 구성원을 위해서는 이타적이지만, 타집단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배타적이며, 타집단에게 행하는 아무리 나쁜 행동도 자신의 집단에 도움이 된다면 미덕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범위가 맥락에 따라 가장 작은 규모의 가족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마을에는 해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한 작은 클럽에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사회에는 해가 될 수 있다. 종교 또한 이러한 부족주의 (tribalism)의 발로이다.

지구의 생물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종의 다양성이나 규모에서 다른 모든 생물체를 훨씬 능가한다. 인간은 인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근래까지 지구상에서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 거의 무지하였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의 매우 제한된 감각 범위 때문에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도 매우 좁다. 지구상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생물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한편, 지구 밖에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외계 미생물의 존재는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작으며,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지구상의 인류와 접촉할 가능성은 더더욱 작다.

인간은 과거 수렵채취 시절에 발달시킨 본성을 가지고 현대 도시 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므로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며, 인류의 과학 기술은 불과 200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미흡하다. 현재 인류는 자연계의 진화의 과정을 중단한채 살고 있는데,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한다면, 인류는 조만간 인간 유전자 자체를 조작 변형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부수적인 조작을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인간의 성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한 잡지에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이므로 중복이 많고 논의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맨 처음에 제시된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투명하므로 '왜' 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인간은 이야기를 꾸며내었다. 창조 신화, 하나님의 은총, 선과 악, 내세와 구원 등이 '우연'이라는 사실이 담고 있는 허무함을 잊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왜 존재하는지, 왜 이러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견디기 힘들 것이다. 현대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이 500년을 넘지 않으므로, 앞으로 1천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의 희망과 달리, 앞으로 인간은 다른 생물체로 유전자 변형되면서, 현재의 인간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2023. 4. 2. 22:11

Brian Hare and Vanessa Woods. 2020. Survival of the Friendliest: Understanding our orgins and rediscovering our common humanity. Oneworld Publications. 197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진화과정에서 다정한 성격을 가진 개체가 번성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강하고 지능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와 경쟁에서 승리하여 번성한다는 주장이 지배했다. 반면 저자는 이웃에게 다정한(friendly) 개체는 어려운 과업을 함께 협력하여 타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개체보다 생존 경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길들이는 실험을 여러 세대에 걸쳐 시행한 결과, 다양한 측면에서 동물의 형질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에 대해 적대적 민감성이 적은 개체를 선택한다는 기준만을 적용했음에도, 이와 관련이 없는 형질들이 일관된 방향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외적으로 보면 얼굴의 생김새에 변화가 관찰된다. 이마에서 턱까지 경사도가 줄며, 얼굴의 형상이 각진 모습에서 길고 갸름한 형태로 변하며, 송곳니가 줄어들며, 광대뼈가 들어가고, 코의 높이가 낮아지고, 앞으로 튀어 나온 이마가 들어가며, 눈이 움푹 들어간 정도가 줄어든다. 전반적으로 몸의 크기가 줄며, 두개골의 크기가 줄어든다. 또한 발달 단계에서 유아기에 보이는 특징들이 일생동안 고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개나 가축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과거 사멸한 인류의 조상이나 유인원과 현생 인류를 비교해도 유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외면적 변화와 함께, 내면의 형질의 변화도 전개된다. 상대의 의도를 읽는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고, 공격성과 폭력성이 줄어드는 대신, 다정하고 온순해진다.

인간은 타인의 의도를 읽는 의사소통능력이 태어난지 일년 무렵부터 다른 모든 동물을 앞선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 또한 인간의 의도를 읽는 능력이 침팬지보다도 뛰어나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심리학에서 "theory of mind"라고 칭하는데,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이 가장 뛰어난 능력이며,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함께 일을 하는데 필수적이다. 인간은 육체적 힘이 대단치 않음에도 이러한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과, 이를 기반으로 고도의 집단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능력 덕분에 지구상의 최강자로 등극하였다.

야생의 세계에서 동물은 다른 개체에 대해 적대적 민감성이 매우 높다. 타 개체를 경계하고 쉽게 가까이 하지 않는 성향은 동물 세계에서 보편적이다. 동물들이 자신의 가까운 가족 밖의 타 개체를 만나면, 서로 공격하여 위험을 제거하거나, 위계를 확실히 정하여 굴복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들여진 동물은 이러한 본능적 성향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타인과 함께 생활하려면 남에 대한 적대적 민감성이 적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적대적 민감성을 줄이는 방향, 즉 공격적, 폭력적 성질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를  '스스로 길들이기 가설' (self-domestication hypothesis)라고 칭한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적대적 민감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별하여 길들인 결과물인 반면, 인간은 인간 종족 내에서 적대적 민감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선택되어 왔다. 그 결과 현생 인류는 과거 유인원에 비해 적대적 민감성이 적고, 덜 폭력적이고 덜 공격적인 존재가 되었다. 타인에 대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개체가 더 번성할 것 같지만, 인류 조상의 수렵채취 시절에,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개체는 집단 구성원의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되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보다 훨씬 힘이 세고 공격적 폭력적이었지만, 적대적 민감성이 적고 더 고도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현생인류와 경쟁에서 패하여 소멸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런 다정한 성질은 자신과 근접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적용될 뿐, 자신과 먼 집단의 구성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자신에 근접한 집단 구성원에게는 다정하지만, 자신의 생존과는 연관이 희박하거나 자신의 집단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타집단에게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사람들은 조그만 식별이라도 적용하여 자신의 집단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구분하며, 타 집단 성원에 대해서는 자신의 집단 성원에게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를 갖는다. 즉 인간의 부족주의 성향(tribalism)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백인은 유색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도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집단 구성원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dehumanizing). 대상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할 때, 자신의 집단 성원에 대해서 가지는 다정함은 타집단 성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타집단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괴물로 칭하면서,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열등하게 여기고 적대적으로 취급한다. 미국에서 그러한 타집단은 흑인, 타민족, 이민자, 다른 정당 지지자, 여성, 가난한 사람,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타집단 성원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면,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고 불이익을 가하며, 그 결과 벌어진 차이는, 다시 그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타집단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성향을 불식시키려면, 타집단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여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려면,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름길이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타민족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남성과 여성 사이의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간 적대적 행위를 줄이는 것, 등등, 모두 두 집단 간 교류를 늘이도록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독특한 주장을 제시한다. 타인에게 다정한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일견 모순적이다. 타인에게 다정한 태도는 또다른 인간의 본성인 부족주의의 한계에 갖혀 넓게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다정한 개체가 위계를 추구하는 개체보다 적자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인류의 역사로 볼 때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조직활동이라는 것은 위계체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 상호간 대등한 다정한 조직이 현실세계에서 어려운 일에 집단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위계적 조직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도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모두 타인이 아닌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본능이 타인에 대한 다정함과 어떻게 맞추어지는지 궁금하다. 여하간 흥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2023. 2. 12. 16:53

Joshua Greene. 2013.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Penguin books. 35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도덕성(morality)의 특성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편 타당성을 갖는 도덕율을 탐색한다. 저자는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율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최고의 대안인 "공리주의 Utilitanianism" 혹은 "결과주의 Consequencialism" 를 모든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진화의 과정에서 '협동' cooperation 이라는 우월한 특성을 수행하기 위해 발달하였다. 인간은 집단적으로 협동하여 일하였기 때문에 진화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이기적 존재이다.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협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집단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배반 행위를 규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도덕율이 바로 그러한 장치이다.

인간의 도덕성,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판단과 행위는 두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는, '감정' emotion 이다. 예컨대, 남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짓말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동정심이 들고, 배반당하면 분노가 치밀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혐오감이 들고,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를 하면 의기양양하고, 등등.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사람들 서로간에 행위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이웃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두번째 단계는,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꼼꼼히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의 도덕성은 첫 단계, 즉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것이 적절치 않은 경우가 있다.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을 상대할 때, 도덕적 감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속한 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감정적으로 꺼리지만, 전쟁에서 타집단 사람을 죽이면 칭송받는다. 나의 집단 사람을 속이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타집단 사람을 착취하는데 대해서는 부정적 감정이 일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월하게 보는 반면 타집단을 낮게 본다.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습득한 성향인데, 집단간 접촉이 드물던 수렵채취 단계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집단간 접촉이 빈번한 사회에서는 갈등과 비참의 원인이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려면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인간 내면의 소리, 등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리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이때.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의 가치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는다. 어떤 행위가 옳은가 여부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라는 기준만을 적용해 판단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공리주의에 따라 행동하지만 항시 그렇지는 않다. 때때로 행위의 결과에 관계없이 직관적인 감정을 우선시한다. 예컨대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를 허용할 때 발생할 결과를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생명을 인간이 끊는데 대한 부정적 감정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나 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데, 이렇게 절대적인 의미의 '권리' right 를 주장하는 순간, 경험적으로 '결과'를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공리주의는 설자리가 없다.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세속적 인간이 의지할 유일한 판단 기준은 '경험적 사실'밖에 없다.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조차,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만 선택하여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편파적 선택에서 가장 자유로운 방식은 과학적 접근이다. 따라서 과학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여 객관적으로 수집한 결과에 따라,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가 다 옳다는 상대주의 또한 배격한다. 장기적으로 본 인간의 긍정적 경험, 즉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 도덕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철학적 문제를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적 접근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절학적 질문에 대한 참과 거짓의 판단은 일단 유보해 놓고. 공리주의적 접근은 세속적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잘 썼다. 다만 반복과 군더더기를 빼서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썼다면 훨씬 읽기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2. 10. 29. 21:27

Addy Pross. 2012. What is Life? : How Chemistry becomes bi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 pages.

저자는 화학자이며, 이 책은 생명체의 특성과 근원을 설명한다. 생명체는 화학적 반응의 집합으로, 에너지를 소비하여 자기복제를 통해 영속성을 유지한다.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의 과정은, 물질이 자기복제 반응의 성공율을 높이기위한 복잡화(complexification)과정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체는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함에 비해, 무생명체 즉 물질에게 '목적'이란 의미가 없다. 어떻게 목적이 없는 물질이, 목적지향적인 존재로 바꾸어질 수 있었을까? 생명체의 목적은 자기복제이다. 자기와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드는 것이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이다. 

생명체란 불안정한 존재이다. 열역학제2법칙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에너지가 낮은 수준을 향하여, 질서가 흩뜨러지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생명체란 무질서의 세계에서 고유의 패턴, 즉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이며, 주위의 에너지 수준과 격차를 계속 유지하는 존재이다. 이는 마치 새가 계속 날개짓을 하면서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소비하는 대사작용(metabolism)을 통해 자기복제를 계속함으로서 이러한 불안정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개별 생명체는 열역학제2법칙에 따라 질서가 흩뜨러지고 주위와의 에너지 격차가 사라지는 과정, 즉 죽는 과정(decay and die)을 밟지만 자기복제를 통해 집단으로서의 생명체의 존재를 유지한다.

개체로서는 죽지만, 집단(population)으로서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동적인 안정성' (dynamic kinetic stability)이라고 지칭하면서, 샘물의 비유를 든다. 샘물을 구성하는 물은 계속 바뀌지만 샘물의 존재는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세포, 기관, 개체의 각 단위에서 개체로서는 죽지만 집단으로서는 존재를 유지한다. 예컨대 우리의 피부는 계속 죽고 동시에 새로 생성되는 과정을 지속하면서 피부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생명체의 동적인 안정성이 유지되는 이유는, 생명체의 자기복제가 지수적으로 증식(exponential growth)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가 복제되기 때문에, 개체들은 계속 사멸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의 존재는 유지된다.

과학자들은 유기물질로부터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RNA)를 합성해내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자기 복제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자기복제를 계속한다는 것은 열역학제2 법칙, 즉 질서는 무질서의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원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어떻게 자기복제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자기복제를 하는 서로 다른 두개의 존재가 합쳐져 서로의 복제를 촉진하는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기 복제를 하는 물질 간에도 더 잘 자기복제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간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자기 복제를 하는 과정에서 변이(mutation)가 나타나고, 변이된 것 중에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더 잘 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됬으며, 이후에는 진화적인 경쟁과 선택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자기복제를 잘하는 복잡한 존재 (complexification)로 발전하게 되었다. 복잡화는 자기복제의 수월성을 향하여, 즉 다른 자기복제 존재보다 더 복제를 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외부 환경의 다양한 틈새(nitche)를 자기복제의 효율을 높이는데 이용하면서 자기복제 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생명체가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슬러 동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모든 물질은 안정성(stability)를 향하여 진행한다. 무생물체는 열역학 제2법칙의 원리에 따라 에너지 수위가 낮고 무질서한 안정성으로 진행한다. 반면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는 동적인 안정성을 유지한다. 왜 생명체는 자기복제를 하려고 하는가? 자기복제를 하지 않으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무생명의 물질로 돌아가게 된다. 더 잘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압도하는 물리적인 상황을 두고, 우리는 생명체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박테리아의 세계에서도 더 잘 자기복제하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압도하는데, 이러한 객관적 현상을 두고 우리는 박테리아는 복제를 더 잘하기 위해 활동한다, 즉 목적 지향적으로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무생명체, 즉 물질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출현하였는가' 라는 근본적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과학적 탐구 과정을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한다. 생명체는 화학 반응의 집합이며, 생명체의 출현과 이후 발전 과정 역시 화학 반응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체란 자기복제 반응의 집합이며, 집합으로서 자기복제할 때 자기복제가 더 잘 되는 것, 즉 복잡화(complexification)의 과정은  화학 실험으로 증명되었음으로, 생물학과 화학을 잇는, 즉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잇는 연결 고리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불분명한 점은, 복잡화의 과정 중에,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더 잘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됬다고 하는데, 이점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한다는 것은, 즉 생명활동의 핵심인 대사작용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비생명체인 물질이 대사작용을 하는 존재로 바뀌게 되었는가하는 문제가 생명체 출현의 핵심이 아닌가?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는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었지만, 대사작용을 하는 존재는 아직까지 화학적으로 합성해내지 못했다.  여하간 대단한 책이다. 읽으면서 어려운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찬찬히 읽었다. 훗날 다시한번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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