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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19. 11:35

송길영. 2023.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교보문고. 334쪽.

저자는 작가이며,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진단한다. 그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인간인 핵개인이 늘어나고 앞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집단과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의 중심인 세상이 출현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사회는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했다. 국가, 회사, 친족, 가족 등의 집단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개인의 삶의 기회를 좌우했다. 피라미드식 권위주의적 위계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집단내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었다. 장유유서, 연공서열, 선후배, 남존여비, 등으로 지칭되는 상하관계만 존재할 뿐,  수평적인 관계는 드물었다. 능력보다는 나이와 경력이 우선시되며, 효율과 창의성보다는 전통과 기득권이 지배하였다.

근래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과거의 틀은 도전받으며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효율과 창의성을 중시하며, 능력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세계화되고 서구사회의 기준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며, 집단의 권위와 전통을 따르기보다 창의와 효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과거의 질서를 고수하려는 구세대 사람들과 곳곳에서 부딛친다. 근래에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기술 변화가 빨라지면서, 오랜 경험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이제 개인은 집단의 도움없이도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직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적 경쟁에 노출된 회사들은 이러한 변화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 조직의 위계 체계를 축소하여 팀제로 전환하고, 경험보다는 능력을 우대하고, 회사내에서 인재를 양성하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영입하여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평가체계를 다면화하고 투명하게 하여, 기존의 집단적 권위가 들어설 자리를 없애버리고 있다. 조직 내에서 개인은 자신의 역량만큼 보상받으며, 조직은 그 개인을 필요로하는 동안 필요로 하는 만큼만 우대하는 유연한 고용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개인주의 포트폴리오 사회 individualistic portfolio society에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잘 살아갈려면,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항시 의식하고 행동하며,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계속 업데이트하여 자신의 시장 가치를 유지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은 전통적 집단주의 가치에 익숙하고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과 조직의 상사들이 버티고 있지만, 이들은 조만간 새로운 개인주의 가치로 무장한 젊은 사람과 조직의 신입 세대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개인의 사회는 그리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서구는 이미 그가 주장하는 핵개인 즉 개인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로 이전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컴퓨터 사이언스의 전문지식과 다음소프트의 부사장이라는 그의 경력도 그의 인기에 한목하는 것일테고. 경직된 개념과 문장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개인이 중심인 서구 사회에서도, 각 개인의 삶에서 국가와 조직의 중요성은 여전히 대단하다는 사실에서, 개인 중심의 사회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계가 있다. 국가와 조직이 개인의 삶을 제약함은 물론, 개인이 단독으로 할 수없는 많은 일을 사람들은 국가와 조직을 통해 해낸다. 많은 남녀의 친밀한 관계가 기존의 가족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만, 부모 모두의 협동적 투자를 받은 자녀는 그렇지 않은 자녀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많이 성취한다는 사실이 당분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기술적 능력이 한창때인 젊은 시절에는 유동적인 지위를 선호하지만, 인생의 사이클에서 그렇지 않은 때에는 안정을 선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개인중심의 포트폴리오 사회에 모든 사람이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개인 중심의 사회에 전개되는 치열한 경쟁의 폐해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적 공동 부양 장치를 보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장치를 유지하는 데에 누가 돈을 댈 것인가는, 개인 중심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욱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서구의 영향을 받아 앞으로 개인의 중요성이 확대될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 중심의 사회가 수반하는 문제도 적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서 개인중심주의가 어떤 속도로 얼마나 확대될지를 구체적으로 예견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