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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 11:46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2011.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8.0. 395쪽.

저자는 협상 전문가이며, 이 책은 다양한 맥락에서 상대와 협상하는 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세상은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대와 협상을 할 때, 합리적으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여 설득하는 전략이나,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전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존의 협상관련 저술들이 대부분 합리적인 이해관계나 힘의 균형에만 촛점을 맞추어 협상전략과 협상 과정을 설명한 것은,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협상에 임하는 상대의 감정을 잘 살피고,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상대가 현재 처한 상황은 어떤지, 등 인간으로서의 상대방에 집중하여 대응하는 전략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연구에 따르면 협상의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것이 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못미치며, 반면 상대의 인간적인 특성, 상대와의 관계, 상대와 상호작용을 통해 협상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차지한다. 협상의 핵심은 협상 당사자들 간의 인간관계이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 즉 사람이라는 점을 저자는 누누이 강조한다.

협상을 할 때에는 협상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그 목적에 집중하여 모든 행동을 조정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에 플러스를 가져올 요소들, -감정적 지불 emotional payment- 을 제공함으로서, 협상 상대의 감정을 호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함으로, 상대가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현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와 내가 중요시하고 얻으려고 하는 요소가 다를 수 있다. 상대가 중요시하는 부분을 내주고 대신 내가 중요시하는 부분을 얻는 교환을 생각할 수 있다. 협상에 임하면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흥분한다고 해도, 내가 침착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함께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협상에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협상에서 목표를 향해 나가가는 과정은 점진적이어야 한다. 한 걸음에 큰 제안을 하고 끝장을 보려 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저항에 봉착한다. 조금씩 조금씩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면서 나아가는 전략이 유효하다.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태도는 반발을 사며, 설사 상대가 굴복한다고 해도, 그러한 결과는 높은 비용을 치루어야 하고, 협상의 결과가 오래 유효할 수 없다. 상대의 감정과 자존심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협상은 사람들간의 관계이므로 말을 조심해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나 굴복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상대의 반발을 자극하므로 피해야 한다.

상대가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기준 standards 을 협상에서 역으로 상대에게 이용하는 전략은 효과가 크다. 상대가 어떤 원칙을 표방하는데, 지금의 당면 문제가 그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상대의 굴복을 받아낼 수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표방하는 원칙을 스스로 준수하지 못하므로, 이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결국 협상은 인간과 하는 것이므로, 그의 인간적인 면을 공략하라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들간의 협상으로 풀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좀 지나치다. 예컨대 198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군축협상을 했고, 결국 공산권의 붕괴로 끝난 상황이, 레이건과 고르바쵸프간의 개인과 개인간의 협상의 결과라는 주장은 견강부회이다. 이익이 대립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를 당사자간의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것은 양진영의 협상 당사자들 사이에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은 수많은 예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어 읽기에 지루하고 힘들었다. 이 책이 매스컴에서 왜 그렇게 유명세를 탔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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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8. 17:37

머레이 쉐이퍼. 2008(1993).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 그물코. 399쪽.

저자는 작곡가이자 음향학자이며, 이 책은 소리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서술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리 환경에서 오래 동안 살았다. 이는 바다, 바람, 물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에서부터, 새와 곤충의 소리와 같은 생물체의 소리, 산업화 이전 전원 생활의 소리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소리 환경은 대체로 조용했으며, 단속적인 소리가 지배했다. 

산업화 이후 인간의 소리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도시 생활의 소리, 기계의 소리는 이전의 소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소리의 종류와 밀도가 높아졌으며, 연속적인 소리가 지배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집단의 소리가 다른 소리를 압도하였다. 산업화 이전 마을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가장 큰 소리였다면, 산업화된 도시에서는 공장의 소리가 지배했다. 19세기 후반, 전기가 도입되면서 인간의 소리 환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방송과 확성기 등을 통해 음원과 소리가 서로 분리되게 되었다. 산업화된 도시의 삶은 산업화 이전 농촌이나 마을의 삶보다 훨씬 더 소음에 많이 노출되었다.

사람들이 접하는 소리는 '주의를 끄는 소리' feature 와 '배경이 되는 소리' background 로 구분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또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사회에 배경이 되는 기준음 key note 이 다르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 낯선 풍경 못지 않게 낯선 배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는 배경음을 이방인은 듣는다. 소리의 높이 pitch, 소리의 세기 loudness, 소리의 시간적 전개라는 세개의 차원을 통해 다양한 소리들을 분석할 수 있다.

근래로 오면서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소리', 즉 '소음'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많은 사회는 법률로 소음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큰 소리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소리들이 규제의 대상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근래로 올수록 대도시에서 환경 소음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방향으로 소리환경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원치않는 소음을 백색 소음으로 가리는 관행은 삶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니다. 광고의 소음으로 넘쳐나는 현대 도시인의 환경을 탈피해야 하며,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배경음악 moozak 으로 공공 장소를 뒤덮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로 디자인된 공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인 '울림의 정원'을 만들고, 조용한 침묵의 공간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인류의 소리 환경을 주제로 한 드문 책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정보는 별로 찾지 못했다. 번역의 질이 낮아서 내용의 자세한 부분을 파악하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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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0. 17:11

임홍택. 2018. 90년생이 온다. 웨일북. 336쪽.

저자는 기업체에서 인사관리 업무에 종사했으며, 경영관련 작가로 활동한다. 이 책은 1990년대에 출생하고 2000년대에 들어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성향을 구세대와 대비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서술한다.

한국에서 19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였다. 한국이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높아진 시기에 성장했으며, 민주화된 이후에 성장했으며, 출생율이 급격히 떨어져 한명 내지 두명의 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인터넷과 모바일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구세대와 달리, 이들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평생고용의 관행이 사라지면서, 조직에 충성하고 과거의 관습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개인의 역량 개발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복잡한 것보다 간단하고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며, 재미 없는 것을 참지 않으며,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솔직함을 선호한다. 과거 세대와 구별되는 이들의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은, 직장에서는 물론 소비 행동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의 상이한 가치관은 온라인 문화와 결합하여, 과거 세대와 다른 사고와 행동 특성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은 저자의 기업체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독서과 주변 관찰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마켓팅 업계에서 시작된 세대 담론이 그렇듯이, 깊이있는 설명은 없지만 가볍게 세상 변화에 대한 감을 제공한다.

 

2025. 1. 15. 14:23

Richard Sennett. 2006. The Culture of New Capitalism. Yale University Press. 197 pages.

저자는 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1980년대 이래 미국사회문화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그린다. 세계화와 자동화의 흐름 속에서 다수의 미국인들은 불안한 상태이다.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얕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된 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1980년대이래 기업들이 효율성과 주주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일자리의 안정성과 인간적인 따뜻함은 사라졌다. 장기적인 관점과 계획은 단기적인 실적과 끊임없는 변화(perennial churning)로 대체되었다. 1960년대까지 미국 사회를 지배하던 강고한 관료체제의 인간성을 질식시키는 정체된 문화 대신에, 불안정하고 피상적인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기업은 수시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노동자의 일자리는 불안정해졌으며, 조직에 대한 노동자의 충성과 헌신 또한 사라졌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일의 자동화가 전개되고, 조직이 슬림화되고, 과거에 존재하던 많은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거나 없어졌다. 오랜 경험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으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동화와 함께, 개발도상국 노동자들과 능력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선진산업국에서 자신의 노동 가치가 쓸모없어 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품게 되었다. 수시로 조직과 사람이 바뀌기에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는 얕으며, 조직의 보호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은 각자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장인적 기술 craftmanship 은 사라져버리고, 피상적이고 낮은 수준의 기술만이 남게 되었다. 일부 전문직을 제외한다면, 일 자체가 좋아서 깊이 파고 드는 식으로 몰두하는 것은 이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일에서 삶의 의미와 따뜻한 인간관계를 찾지 못하며, 단지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가족과 학교 등의 네트워크 덕분에 수시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며 풍요롭고 인간적으로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는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족과 직장의 네트워크가 사라진 환경 속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사회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저자는 1960년대 신좌파 New Left 대학생들이 관료제의 부조리에 저항했듯이, 지금의 미국인들도 이러한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비평가로서 거시적인 사회비평을 할 뿐, 구체적인 문제의 진단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엄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아니라, 인상적인 스케치에 머물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변화의 시기를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삶의 방식을 그리워하면서 현재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삶의 방식이 다가올지에 관해서는 별반 아이디어가 없다. 앞으로 100년후에 사람들은, 마치 현재의 우리가 1800년대 후반 사회를 대하듯이, 21세기 초반의 사회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100년후의 미래의 삶의 방식을 안다고 하면서 글을 쓴다면,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일 것이다. 19세기 중반 사람들이 20세기 후반에 어떻게 살지 어찌 알았겠는가?

2025. 1. 8. 16:48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이영래 옮김). 2024. 인생의 의미 (Seven meanings in life). 더퀘스트. 305쪽.

저자는 노르웨이의 문화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그가 암을 겪고 난 후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서술한 수필집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현대 도시 산업사회의 삶이, 경쟁, 효율, 속도, 풍요, 환경파괴, 발전, 기술, 개인주의, 등에 매진하고 있는데, 진정한 삶은 이것의 반대, 즉 관계, 조화, 느림, 결핍, 자연 속에서, 균형, 전통, 집단,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생의 의미는 남과, 세상과, 과거 및 미래와, 자아보다 큰 무엇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체계적인 서술보다는, 저자의 머리속에 스쳐지나는 감흥과 독서의 기억들을 비체계적으로 망라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노르웨이의 환경주의자다운 발상과 서술 방식이다. 글쎄 지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그가 현지조사를 하고 곳곳에서 인용하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부족 사람들의 삶을 저자가 직접 살아볼 의향이 정말 있는지 묻고 싶다. 서구 선진 산업국에 살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보는 인류학자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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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7. 14:28

Michael Sandel. 2022. Democracy's Discontent. Belknap. 341 pages.

저자는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민주주의 정치 원리와 자본주의 시장 원리 간에 긴장관계가 미국 역사에서 건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시민의 자율적 통제(self-government)와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community virtue)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미국에서 19세기 말까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확장을 견제하면서 시민 공화주의 (Civic republicanism)를 지켜 왔다. 그러나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중립적(neutral) 태도를 취하게 되었으며, 경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오로지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치중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힘이 정치를 압도하게 되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분노가 쌓였으며, 급기야 엘리트에 반기를 들고, 대중 영합주의 정치인의 솔깃한 선동에 휩쓸렸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시민의 참여와 도덕을 회복하기 위해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건국 초기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통제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조업보다는 농업을,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자영업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이상은 19세기 산업화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현실에 부딛쳐 지키기 어려워졌지만, 산업화 과정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정책을 제안했으며, 정부는 대기업의 집중이 커지면 일반 노동자와 시민의 통제 범위 밖으로 벗어난다는 이유를 들어 기업 집중과 독점을 막으려 했다. 요컨대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정치권은 노동의 의미와 시민의 자율적인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를 견제하려 하였다.

20세기 들어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에서 노동의 의미는 단지 임금을 받고 소비를 하는 측면만 부각되었다. 노동은 삶의 중심이며 인간성을 함양하는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노동자란 생산의 부속품에 불과하며, 노동이란 오로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경제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노동자는 자신의 일의 과정은 물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자율적인 통제권을 상실한 채, 수동적인 존재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 보다는 소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세계화가 진행된 결과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들은 이러한 번영에서 제외되었으며, 자신의 일터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화를 통해 날개를 단 엘리트와 일반 노동자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엘리트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면책받은 반면, 일반인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마침내 Occupy Wallstreet movement, Teaparty movement 등의 사회운동을 통해 엘리트와 이들이 구축한 금권정치 구조에 분노를 표출했으며, 기성 정치체제에 반기를 드는 발언으로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려면, 일반 노동자의 분노를 초래한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 일반 노동자에게 노동의 의미와 삶의 통제권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정치가 경제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본의 효율성과 수익성만을 쫒는 경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우선시하는 경제 쪽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정치가 개입해야 한다.

이책은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철학적 접근을 한다. 정치인의 발언과 생각을 주로 인용하면서, 규범적인 논의를 주로 한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저자의 주장이 실현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국내 정치 맥락에서 문제를 진단하는데, 세계화와 함께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미국 국내 정치의 필요에 따라 미국 경제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저자는 미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화를 통해 엄청난 규모로 빈곤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평가가 더 타당하다. 미국 노동자의 어려움과 세계인의 빈곤 퇴치라는 세계화의 양면을 균형있게 봐야 하지 않을까? 중복된 서술이 많아 읽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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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8(2016).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뮤진트리. 348쪽.

저자는 물리학을 전공한 음악가이며, 이 책은 음악의 심리적 효과에 관해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요약 정리한다.

음악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쇼핑센타의 배경음악이나 영화의 배경음악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다. 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준다. 지루함을 견디고, 편안하게 쉽도록 돕고,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쌓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기분을 좋게하고, 그리움에서 기쁨까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친숙한 음악을 선호한다. 한 곡조 내에서도 반복을 선호한다. 시간에 따라 진행하는 청각 경험은 동시적으로 파악하는 시각 경험에 비해서 반복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음악은 한 곡조 내에서 악기의 구성이나 음에서 약간의 변화를 첨가하면서 여러 번 반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컨대, AA'BA의 패턴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청각 경험을 통해 이미 익숙한 패턴과 흡사한 음의 진행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은 새로운 흥미를 가져오지만, 결국에는 익숙한 패턴으로의 회귀를 기대한다. 이는 한 곡조내에서도 음의 도약이 크면 중간음 쪽으로 회귀하는 음이 이어지는 작곡 규칙에서도 입증된다.

이 책은 음악 심리학 교과서를 요약한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간간히 이야기를 다채롭게 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의 전공분야가 아니어서인지 서술의 깊이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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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Ikenberry. 2020. A World Safe for Democracy: Liberal Internationalism and the Crisis of Global Order. Yale University Press. 311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Liberal Internationalism) 의 역사를 섭렵하고나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 현재의 국제 질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간단히 논의한다.

국제정치이론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는 현실주의 realism 와 대립되는 이론이다. 현실주의는 강대국간의 힘의 역학관계로서 국제질서를 규정한다면, 자유주의는 국가들 사이에 조정과 합의를 통해 형성된 규범으로 국제질서를 접근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와 친화적 관계이며, 인류의 안전, 자유,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규범적인 질서이다. 반면 현실주의는 국가들간 무정부 상태에서 상호 역학관계와 안전의 문제에만 촛점을 맞출뿐, 무엇이 옳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규범적인 함의는 없다.

서구사회에서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 즉 국가들이 서로 협의하고 조정하는 전통은,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열강들이 모여 전후의 질서를 논의한 비엔나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계몽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19세기에 들어 이성을 존중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영국을 필두로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등,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19세기 전기간을 통해 점차 확대되었다. 이러한 19세기의 움직임은 1919년 1차세계대전이 끝난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자유무역, 항해의 자유, 국제연맹의 창설 등의 제안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미국이 국제연맹을 수용하지 않고, 서구 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고, 파시즘의 발흥 등으로 위기에 빠졌으나, 제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미국은 종전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으나, 과거 유럽과 같은 제국주의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도로 원칙적으로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추구하였다. UN, IMF, World Bank, GATT 등의 기관과 제도가 그런 질서의 뼈대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에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반쪽의 세계 질서가 되었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한 국제주의 질서의 일원으로서 대체로 규범에 따라 행동하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았지만, 때로는 예외적인 존재로서 규범을 벗어난 방식으로 힘을 행사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서구 유럽에서 1600년대 초반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결과 만들어진 웨스트팔렌 조약을 바탕으로 한다. 즉 영토 존중, 주권존중, 내정간섭 금지 등의 원칙에 입각해, 국제사회에서 각 나라는 서로를 대등하게 대하는 전통이확립되었다. 이러한 질서는 서구 유럽 국가들에게만 해당될 뿐, 유럽 밖의 국가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규범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현대성 modernity 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술발전, 핵전쟁 위험, 환경파괴, 기후변화, 전염병 확산, 등등,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주의 국제주의는 반드시 요구된다.

21세기에 들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영국의 브랙시트, 미국의 트럼피즘, 민족주의의 확대와 같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부정하는 경향이 선진 산업국들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흔들어 놓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 계속 커지고, 권위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는 미국과 자유세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현재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과거 위기에 빠졌다가도 다시 올라선 것 처럼,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낙관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지금까지 출현한 어떤 다른 대안보다도 인류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주의 질서에 대해, 중국이 근래에 어깃장을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질서 덕분에 번영하였으며, 지금도 그 질서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의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는데, 중복이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사실적인 서술과 규범적인 서술이 섞여 있고,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한 문구가 많아서, 수사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사회과학적 분석 결과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2024. 7. 19. 16:50

Phillip Tetlock. 2005. Expert Political Judgement: How good is it? How can we know?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8 pages.

저자는 인지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정치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행태에 대해 10여년 이상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제시한다. 결론인 즉, 정치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어떤 것에 대해 예측하는가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사고 하는가가 예측의 정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저자는 정치전문가의 사고 방식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고슴도치"(hedgehog)라고 지칭하는 부류인데, 이들은 하나의 큰 원칙이나 이론에 경도하여 세상사를 모두 이것에 끼워맞추려는 성향이 강하다. 또다른 부류는 "여우"(fox) 라고 지칭하는 부류인데, 이들은 특별한 원칙이나 이론은 없으며 벌어지는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하여 수시로 입장을 조정한다. 고슴도치류는 거대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연역적 방식으로 사고하는 반면,  여우류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귀납적 방식으로 사고한다. 고슴도치류는 자신의 이론과 주장에 대해 확신이 강하며 세상을 보다 단순하게 그리는 반면, 여우류는 세상을 훨씬 복잡하고 확률적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세상 인식 능력에 대해 유보적이다.

수백명의 정치 전문가들에게 1980~90년대에 중요한 국제정치경제의 관심사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로 예측을 하도록 하고, 예측의 정확성은 물론, 예측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발생한 후에 전문가들의 인식 방법의 차이 등을 분석하였다. 소련의 붕괴, 캐나다의 분열, 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의 종말, 유럽 통합의 미래, 한반도를 포함한 핵전쟁 가능성, 경제 위기, 등등 100개 이상의 질문에 대해 예측 자료를 수집하였다. 분석 결과 여우류의 전문가가 고슴도치류보다 미래 예측이 정확했다. 그러나 어느 전문가들보다 타임시리즈 통계 모델로 미래 확장 예측(extrapolation)을 했을 때 예측의 정확도가 훨씬 높았다. 그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제법 안다고 하는 전문가보다 단순한 수치들의 귀납인 통계 분석이 훨씬 정확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예측한 사건이 실제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안이 발생하기 위해 전제가 되는 조건이 만족되지 않았다거나, 거의 그렇게 될 뻔했다거나, 예측한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라거나, 위험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실재보다 더 크게 예측한 자신의 태도가 옳았다거나, 등등으로 자신의 틀린 예측을 정당화한다. 예컨대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퀘백주가 영어권 지역으로부터 분리되리라는 예측에 대해, 1991년 국민투표 결과 51%가 분리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두고 캐나다의 분열을 예측한 전문가의 생각이 틀렸다고 반박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투표 이전에 어떤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국민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다. 또한 51%의 투표 결과는 샘플링 에러의 범위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만일 투표를 통계적으로 독립적으로 여러번 한다면, 그중 분리를 찬성하는 결과의 투표가 발생했을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한번밖에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는 순전히 우연일뿐이다.

예측이 틀릴 수 있는 다양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예측의 정확성에서 여우류는 고슴도치류보다 일관되게 앞선다. 또한 자신의 예측 사건과 관련된 인접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여우류는 자신의 예측치를 수시로 조정하는 반면, 고슴도치류는 일단 자신이 한 예측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여우류는 자신의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항시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예측을 수시로 수정하는 데 꺼리낌이 없는 반면, 고슴도치류는 자신이 옹호하는 이론과 그에 따른 예측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변해도 좀처럼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고슴도치류가 여우류보다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자신이 옹호하는 이념이나 진영에 부합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의 주장에 쉽게 귀를 기울인다. 반면 불확실한 세상을 전제로 하고 여러 유보적인 조건을 달면서 불확실한 예측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확실한 세계관과 확고한 주장을 복잡한 세계관과 애매한 주장보다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치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동기는, 그들의 주장의 사실성 못지 않게 그들의 주장의 오락성을 사기 때문이다. 정치 정문가의 세계에서 객관성은 그리 존중받는 덕목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자신의 주장이 명확하게 틀리거나 맞는지 판명할 수 있도록 미래 예측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견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방법론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면서 제시하기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사회과학 연구방법론과 통계학의 배경 지식이 상당해야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일반적인 교양서의 범주에 들지 않는 책이다. 기술적인 면을 조금 걷어내면, 그의 주장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물론 그러면 다른 책이 되겠지만.

2024. 7. 9. 18:22

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저자는 법학자이며, 이 책은 현재 미국에서 업적주의(meritocracy)가 지배하는 환경이 낳는 심각한 문제를 서술한다. 업적주의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중류층을 없애고 사회양극화를 촉진시킨다. 업적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는 엘리트층과 중류층간 간격을 벌리고, 엘리트의 계층 지위를 후세대로 세습시킴으로서 미국을 계층지위가 세대를 넘어 고정되는 카스트 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업적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물론 업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소득 상위 1% 층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 상위 1% 층은 최고의 전문가 직업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의 고위 경영자, 투자금융회사의 금융 전문가, 유명 법률회사의 변호사, 전문 분야의 의사, 컨설팅 회사의 임직원, 기술 스타트업의 임직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높은 인적 자본을 활용하여서 회사에 엄청난 부를 창출하고, 그 일부를 자신의 소득으로 챙긴다. 이들의 연봉은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한다. 과거 귀족사회나 산업사회의 지배층인 귀족과 자본가들은 토지나 공장을 소유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고 자신은 놀면서 엄청난 소득을 향유하는 유한계급이었다. 반면, 20세기 후반에 새로이 등장한 엘리트 전문인들은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 최고급의 기술을 획득하고, 이 기술을 활용하여 매우 복잡한 일을 수행하고 엄청난 부를 창출해 낸다. 이들은 누구보다 높은 능력과 노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올리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1980년대 이래 정보기술과 운송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에는 가능하지 않은 정도로 매우 복잡한 일을 체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출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당 50~100 시간을 투입하는 엄청난 노동으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올라섰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엘리트로 선발되도록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청난 관심과 투자를 쏟아붓는다. 엘리트 부모의 엄청난 투자는 실제 그들의 자녀가 우수한 학교에 들어가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 졸업후 자신과 같은 엘리트 전문인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반면 중류층은 자녀에게 큰 투자를 하지 못하므로, 중류층의 자녀는 엘리트 전문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미국의 명문 사립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이 부모가 부자이며, 등록금이 엄청난 사립 혹은 부자 동네의 공립 초중등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이, 미국 사회의 엘리트 지위가 교육을 매개로 하여 세대간 전승되고 있음을 지시한다. 엘리트 자녀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고 학교를 다니며, 그들이 명문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도, 다시 좋은 직장에서 엄청난 경쟁과 일의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경쟁에서 배제된 중류층 이하의 사람들은 경쟁에 패배한 것으로 인한 실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간다. 1980년대 이래 정보기술과 기계화 덕분에 중간 관리층이 줄어들고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중류층의 삶은 과거보다 불안정해졌다. 그들은 불안전 고용과 실직 등으로 노동하지 않는 유휴시간이 늘었으나, 이것이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국 사회층의 양극화는 심화되어,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 사이에 소득은 물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서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사는 곳, 일하는 방식, 자녀를 키우는 방식, 자녀가 다니는 학교, 가족의 안정성, 소비 물품, 여가를 보내는 방식, 정치적 성향, 종교 활동,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현재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는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의 중하층은 엘리트들을 부도덕하고 이기적이며 건방진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엘리트들은 중하층을 무능하고 노력하지 않고 절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경멸하면서, 서로 간 반목이 심하다. 미국의 금권주의 정치 풍토에서 엘리트들은 정부를 장악한 반면, 중하층은 이러한 정부에 등을 돌렸다. 결국 도날드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자의 선동이 대중에게 먹혀들고, 정치의 합의 도출 기능이 마비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나라에 살면서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서로 반목하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과거에서 높은 불평등은 결국 전쟁 혹은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되었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를 벗어나 대안이 있는가? 저자는 이 부분에서는 그리 설득적인 논의를 전개하지 못한다. 저자는 업적(merit) 자체가 사회 환경에 따라 가치가 주어지는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높은 보상이 업적과 함께 해야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엘리트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대학은 그들이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펀드의 수익을 활용하여 재학생들에게 크게 투자하고 이것이 높은 교육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명문 사립대에 입학 문호를 넓히도록 정부가 압력을 넣어야 한다. 엘리트 직장의 일 중독 문화가 임직원의 높은 수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을 덜하도록 제도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소득의 양극화, 특히 고급 전문직의 높은 수입과 그들의 지나친 일 중독 및 엄청난 자녀 교육 투자에 논의를 집중한다. 책의 대부분을 이러한 현상을 서술하는 데 할애한다. 그의 서술에는 몇가지 약점이 보인다. 첫째, 그는 업적주의 사회의 승리자(meritocrats)로 엘리트, 부자, 최고노동자 등을 언급하는 데, 이 집단의 범위가 모호하다. 엘리트 집단과 중류층 이하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강조하면서, 때로는 엘리트 집단의 범위를 대학 졸업자, 전문 대학원 졸업자,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자, 상위 0.1%, 상위 1%, 상위 5%, 상위 10% 등, 가용한 통계에 따라 수시로 조정한다. 그가 주장하는 엘리트의 독보적인 소득이나 배타적 삶의 방식이, 계층지위에 따라 낮아지면서 연속선을 그린다면, 그의 주장의 근본, 즉 양극화된 사회라는 주장은 무너진다. 둘째, 그의 서술은 전적으로 미국 사회에 한정해 있는데, 그가 지칭하는 엘리트들은 세계화된 사회 속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이다. 미국의 엘리트 전문인은 대부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다국적 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하고 그로부터 높은 소득을 거둔다. 예컨대 빌게이츠가 엄청난 부를 획득한 것은 세계화된 시장 속에서 그의 능력과 노력이 독보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업적주의 보상체계는 미국 사회에 한정해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셋째,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가 큰 소득 격차와 사회 양극화를 낳고 있다면,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인류의 과거는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위를 배분하는 방식인 카스트나 귀족 사회, 정실에 따라 지위를 배분하는 방식, 부모의 재산과 사업을 자식이 물려받는 방식이 지배했다.이러한 방식보다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했듯이 업적주의 또한 세대간 엘리트 지위의 전승을 근본적으로 틀어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노하우를 전력을 다해 자녀에게 전승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자녀에게 전승한다.

실용주의 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업적주의의 폐해를 막기위해, 업적과 보상을 극단적으로 연결시키는 순수한 업적주의 방식을 부분적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업적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되, 이것 이외에도 사회와 삶에 가치있는 다양한 기준을 동시에 인정한다면, 개인의 업적에만 전적으로 보상을 몰아주는 현재의 업적주의 보상체계는 타당하지 않다. 국가가 관여하여 다양한 가치에 따른 보상의 균형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따라 각 가치에 따른 행동에 대해 보상이 적절히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사회 민주주의적 방식이라고 지칭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영리 행위의 업적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겨, 이 세금으로 다른 가치 행위에 대해 보상을 해준다는 발상이다. 샌델의 사회민주주의적 보상 체계에 설득력이 있지만, 사실 현재의 상황은 업적주의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업적주의를 더 충실히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제대로 보상되지 않으며, 이것이 더 큰 사회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엘리트 전문인들의 소득, 일, 교육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서술이 지나치게 반복적이라 읽는 것이 매우 지루했다. 양극화와 엘리트 중심 업적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책의 맨 끝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끝 맺어서 허탈했다. 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기지 않은 비판이라면 비판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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