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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3. 15:49

Scheidel, Walter.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 Press. 52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왜 서구가 세계를 앞서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중국과 비교하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저자의 설명의 핵심은, 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 서구 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졌으며 (fragmentation), 국내적으로도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면서, 다양한 주체들간에 경쟁과 타협이 이루어지고, 기득이권과 관행을 지키기보다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제도적 인센티브 시스템이 들어서게 된 데 있다. 

서구 유럽의 전 역사를 통털어, 로마 제국은 유일하게 전지역을 통괄하는 단일 권력체였다. 로마가 망한 후 유럽에는 로마에 필적할만한 단일 권력체가 들어서지 못했다. 반면 중국에는 한 제국의 멸망이 다른 제국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지역을 총괄하는 단일 권력체가 꾸준히 지배하였다. 단일 권력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생기지 않고, 안정과 전통을 중시하는 이념이 지배한다. 중국에서는 땅에 붙박힌 농업과 지주층을 중시한 반면, 움직이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낼 위험이 있는 상업과 공업을 억눌렀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부의 출현은 엄격히 통제되고 제한되었다. 중앙의 정치체가 모든 권력, 부, 이념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권력과 결탁하여 관료와 지주가 되는 길밖에는 없었다. 

반면 서구 유럽에서는 로마가 망한 후 각 지역은 뿔뿔히 흩어졌으며 단일 정치체로 권력이 모아지지 않았다. 세속 권력체들의 분열에 더하여, 세속 권력에서 독립된 기독교 권력이 성장하였다. 각 정치체들은 서로 치열히 경쟁하였으며, 경쟁에 우위를 가져올 좋은 제도나 관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관행에 기반을 둔 기득이권 집단의 반발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럽의 분열된 사회는 변화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한 국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국가는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하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성과를 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도를 찾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구 유럽에서 중국이나 인도/중동 등과 달리 로마가 망한 후 전지역을 포괄하는 단일 정치체가 들어서지 못한 데에는 지정학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중앙아시아의 대초원 지역에는 막강한 기동력과 무술을 보유한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수시로 주변에 있는 농업 정착 민족을 침탈했다. 농업 정착민족은 생산력은 높지만 무력에서는 이들에 뒤지기 때문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중국, 인도/중동에는 강력한 권력으로 막강한 자원을 동원하는 정치체가 지배하였다. 반면 서구 유럽은 대초원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목민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또한 유럽은 중국과 달리 지리적으로 산맥, 강, 해안선이 복잡하여 전지역을 통괄할 수 있는 정치체의 출현이 방해받았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주변에 있는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상공업이 발달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유럽 권력의 중심지인 프랑스나 합스부르크 독일/스페인에서는 기득 이권과 기존 이념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서기 어려웠다. 유럽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상공업은 장려되고 상공업자들은 정치인에 비견할 권력을 획득하였다. 상공업자들은 왕과 귀족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의회를 만들었으며, 지식인과 기술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을 길을 찾아 다른 나라로 이주하였다. 왕과 귀족, 상공인, 지식인, 종교인 등이 권력을 분점하면서 서로 조정하고 타협하는 제도가 자리잡았다. 단일 권력체와 이념이 전 지역을 지배하는 중국과는 전혀 달리, 유럽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지식 등 모든 면에서 파괴적 혁신 distructive innovation 의 역동성이 지배하였다. 

저자는 로마의 영광을 칭송하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로마의 멸망과 이후 이에 필적할 강국이 유럽에 출현하지 못한 것이 유럽의 성공, 나아가 인류 전체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권력의 분열과 경쟁은 많은 갈등과 파괴와 인명의 희생을 낳는다. 그러나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혁신을 저해하기 때문에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지 못했다. 변화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논의를 모두 포괄하는 대단한 분량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노력과 통찰력과 서술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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