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4'에 해당되는 글 21건
2024. 4. 24. 14:57

와다 하루키. (김동연 옮김). 2022. 80세의 벽. 한스 미디어. 221쪽.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30여년 동안 노인전문병원에서 일했으며, 본인의 나이를 61세라고 밝힌다. 이 책은 본인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80세를 넘긴 노인들의 건강, 생활 태도, 삶의 방식 등에 대해,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을 가벼운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한다.

80세 노인이 되면 젊은이를 치료하는 서구 의학 방식은 잘 듣지 않는다.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는 없으며, 자신의 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같은 약이나 치료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장수하는 약은 없으며, 약은 몸이 좋지 않을 때만 먹으면 된다. 고혈압, 고혈당, 고콜레스테롤이라는 노인병 삼대 질환에 대해, 저자는 과도하게 혈압을 낮추거나, 혈당을 낮추거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고 하는 것은 80대 노인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젊은 사람들의 몸에 맞춘 기준치는 80대 노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혈압을 과도하게 낮추면 기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혈당을 과도하게 낮추면 인지 기능이 저하하고 치매의 위험이 높아지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과도하게 낮추면 기분과 정력이 악화한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다. 미국 노인은 심혈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 노인은 암과 노쇠로 대부분 사망한다. 서양 노인을 기준으로 하여 개발된 치료 방식이 일본 노인의 경우에는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 8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의 몸에는 암세포가 존재하며, 인지기능의 저하로 어느 정도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들은 자신의 몸이 젊은 때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젊은 때와는 다른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한다. '투병'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사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의사나 병원의 현행 접근 방식은 그릇되므로, 환자 본인이 잘 가려서 따라야 한다.

80세가 넘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말고 당장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감동이 옅어지는데, 이는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노인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이미 친숙하여 감동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려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데도 노인이 되었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운전을 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데, 노인이라고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것은 절대 반대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계속 써야 제대로 작동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몸을 계속 움직이고, 머리를 계속 쓰는 생활을 게을리하면 곧 쇠하여 죽는다. 몸에 맞는 정도로 많이 걷고, 흥미로운 일을 찾아서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귀찮다고 안움직이고, 텔레비만 보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빨리 기능이 쇠퇴한다. 어떻든 인간은 결국 늙고 쇠하여 죽는 것이므로, 80세가 넘으면 '잔존 기능'을 잘 활용하여 잘 사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젊을 때와 같이 굳은 결심이나 노력을 많이 기울여서 한결같이 무엇을 추구하는 방식의 삶은 80대 노인에게 적합하지 않다. 악착같이 보람을 찾으려고 하며 살 것이 아니라, 살다가 보람을 찾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변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수시로 생각과 진로를 바꾸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주위의 눈에 크게 개의치 말고, 생긴대로 마음가는 대로 산다고 해도, 80대에는 젊은이와 같이 크게 사고칠 위험이 적으므로, '불량 노인'이라고 치부하면서 자신에게 적당히 관대하게 사는 것이 좋다. 많은 경험을 뒤로 하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80대 노인은, 느슨하게 사는 삶이 주는 즐거음과 특권을 누려도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쉬는 시간에 문득 주변에 손에 잡혀 읽은 책인데, 삼십분도 못걸려 단숨에 흥미롭게 읽었다. 80대 노인 뿐만 아니라 절은이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의 부제가 "벽을 넘어서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20년이 기다린다"고 썼는데, 과연 그럴까?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 써야 할 말인 듯 싶다. 여하간 저자의 경륜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2024. 3. 11. 14:21

Robert Tignor, et.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Vol 2. From 1000 CE to the Present. 3rd ed. W.W. Norton. 481 pages.

이 책은 미국 대학의 세계사 교과서이다. 이 책은 다른 세계사 서술과 달리 유럽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서구 유럽은 물론, 이슬람, 인도, 아시아, 중남미, 등을 고른 비중으로 다룬다. 서구의 역사 전개를 자세히 알기 어려운 반면, 동시대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지역과 문명권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과 교류가 있었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매 찹터에서 여성과 소수집단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루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미국에서 쟁점이 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ectness 원칙을 잘 따른 책이다.  세계사의 전개에서 이슬람의 역할을 크게 보며, 중국과 함께 일본을 비중있게 다룬 점이 눈에 띤다. 한국 전쟁을 제외하면, 한국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세계의 전개를 균형있게 볼 수 있도록 하며, 세계 전지역의 다양한 역사들을 망라식으로 지루하게 서술하지 않는 점을 살만하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이 책만 읽어서는 서구가 이끈 근대의 탄생과 전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기존에 서구 중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어야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적 맥락에서 근대의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등 근대를 만든 주요 계기를, 불과 한두페이지로 기술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2024. 1. 26. 18:17

Gregory Mankew. 2021. Principles of Economics. 9th ed. Centgage. 789 page.

이 책은 세계에서 아마 가장 많이 팔리는 교과서일 것이다. 오랜만에 경제학 원론 교과서를 읽으니 대학 시절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잘 쓴 책이란 것을 실감하다. 이론에 대한 설명이 쉽고 친절하며, 근래에 벌어지는 현상을 풍부한 사례로 제시하여, 추상화된 이론을 공부하면서도 현실감각을 익히게 된다. 거의 모든 이론의 설명을 구체적인 예로 설명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은 경제 현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제공하는데 충실하며,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이론과 사례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갖추어야 필수 지식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낀다. 첫째는, 전반부에 미시 경제학 분야는 친절하고 사례도 풍부해서 읽는 것이 즐거웠으나, 후반에 거시 경제학 분야는 이론을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으며 사례가 풍부하지 않아, 이것만을 읽어서는 한계가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거시 경제 분야가 미시 이론보다 어렵고, 이론적으로도 덜 정치하고 논란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거시경제 부분의 뒤로 갈수록 경제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소개하는 데 많이 할애하는데, 이는 아마 현재 이 분야에 관한 지식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신고전 경제학의 교과서 답게 경제의 기본 현상이나 기본 변수를 설명하는 데에는 능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경제 경험과는 약간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어딘지 모르게 들었다. 신고전 경제학 이론의 성격상 분배에 대한 논의는 거의 빠져 있는데, 이는 경제 활동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만 설명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맑스의 갈등론이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추상적인 이론이 사람들의 실제 경제 활동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느낀다. 이것은 주로 단순화한 이론 모델로 경제 현상을 접근하는 것의 한계이고, 인간의 심리적 비합리성을 반영하는 행동 경제학이 나타난 이유이다. 셋째는,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를 이해하는데에는, 이 교과서에서 가정하는 폐쇄 경제 closed economy 모델의 지식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이다. 거시경제 부분에서 개방 경제 분야를 설명하지만, 간략히 설명하여 부족한 느낌이다. 경제학 기본 이론을 소개하는 개론서이고, 미국 경제가 대외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개방 경제에 대해는 많은 설명과 사례를 추가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한계를 느꼈지만, 그럼에도 정말 잘 쓴 교과서라는 감탄을 거듭하였다.

'과일나무 > 체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리나무 목록 (50권). 2023.4.21 ~2024.1.30.  (0) 2024.01.30
과학원리  (0) 2024.01.30
인체는 정밀한 화학기계다.  (0) 2024.01.15
음식은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0) 2024.01.08
정치학 개론  (0) 2024.01.04
2024. 1. 15. 13:56

DK 인체원리 편집위원회 (김호정, 박경한 옮김). 2017. 인체원리 (How the Body Works). 사이언스북스. 247 pages.

이 책은 인체에 대한 생리의학적 지식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 도감책이다. 우리 몸의 기능에 따라 장을 구분한다. 세포와 유전자, 외곽 방어와 지지, 운동, 감각, 호흡과 혈액순환(생존의 핵심), 소화와 배설(들어오고 나가고), 면역과 미생물(알맞게 건강하게), 내분비(화학적 균형), 삶의 주기(생명의 연결고리), 정신 기능,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책은 이전에 읽은 해부학을 주로한 책의 역자가 추천한 것으로, 두 책을 읽음으로서 우리의 몸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두 책 모두 설명이 체계적이며 깊이가 있다. 두 책 모두 의사가 번역을 담당해서인지 평범한 일상 용어와 전문 용어를 적절히 섞어서 사용하여 이해하기 쉽다. 두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몸이 정밀한 "화학 기계" chemical machine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알았던 것에 대해 그 작동 원리를 분명하게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을 다 읽고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과일나무 > 체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학원리  (0) 2024.01.30
"경제학 원론" 교과서를 오랜만에 읽다  (0) 2024.01.26
음식은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0) 2024.01.08
정치학 개론  (0) 2024.01.04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  (0) 2023.12.20
2024. 1. 8. 14:14

DK 음식원리 편집위원회 (변용란 옮김). 2018. 음식원리 (How Food Works). 사이언스북스. 247쪽.

이 책은 도감 책이며, 음식이 어떻게 인체에 작용하는지 그림과 글을 통해 설명한다. 영양소, 요리의 과학, 다양한 식재료, 음료, 식습관, 음식관련 변화, 등의 주제를 장을 바꾸어 설명한다. 생리학과 화학의 지식을 배경으로, 음식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제법 깊이 있게 설명하며, 그림과 곁들여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매일 조금씩 읽으면서 인체와 음식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에서 접하는 식품과 이것이 인체에 작용하는 기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책의 끝으로 다가가면서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흥미로웠다.

2024. 1. 4. 16:50

W.Phillips Shively. 2011. Power and Choice: An Introduction to Political Science. 12th ed. McGraw Hill. 443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대학교에서 사용할 정치학 개론 교과서로 집필되었다. 정치 사상과 이론, 국가와 정책, 민주주의와 독재, 정부기구와 정치과정, 의회중심제와 대통령 중심제, 관료와 사법기구, 국제정치 등 정치학의 전분야를 섭렵한다. 미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활용하여 다양한 정치 현상을 설명한다. 비교정치학적 접근을 하며, 서구 국가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개발도상국의 사례들도 폭넓게 다룬다.

정치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 사이에 합의를 도출하는 것인데, 이를 행위자들 사이에 갈등과 타협의 과정으로 볼지, 혹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볼지에 따라 관점의 차이가 있다. 저자는 전자를 power 의 관점으로, 후자를 choice 의 관점으로 명명한다. 사회과학의 이론틀에서 볼 때, 전자가 갈등론, 후자가 기능론에 해당한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대규모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넓은 영토에 걸쳐 규칙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이는 기능론적 관점이다. 반면 유럽에서 이웃 나라들 사이에 빈번히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가운데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찰스 틸리의 설명은 갈등론적 관점이다. 

정치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론적 깊이를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각 장의 주제와 연관되어 특정 국가의 정치에 관해 심층적인 사례 탐구를 제공하는데, 이는 각 장의 주제에 대해 이해를 깊이하면서 특정 나라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정치 전반을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3. 12. 7. 09:20

Henry Gleitman, James Gross, and Daniel Reisberg. 2011. Psychology. 8th ed. W.W.Norton. 71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들이며, 이 책은 대학의 심리학 개론 교과서이다. 인지, 감정, 언어, 발달, 사회, 성격, 병리 등 심리학의 전영역을 포괄한다. 하위 분야에 따라 깊이에 차이가 있다. 심리학의 중심인 인지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서술한 반면, 사회나 병리 분야는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인간 심리관련 교양서를 읽다가 대학의 심리학 개론을 통해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섭렵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은 미국에서 사회과학 분야 중 규모가 매우 크며 많은 인재들이 몰리는 분야이다. 이 책은 다양한 하위분야를 잘 설명한 좋은 개론서이다. 오래전 대학시절에 심리학 개론을 들은 일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여 학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읽은 다양한 교양서에서 언급한 잡다한 논의들을 이 책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2023. 11. 16. 21:32

Christopher Ryan and Cacilda Jetha. 2010. Sex at Dawn: How We mate, Why we stray, and What it means for modern relationships. Harper Collins. 312 pages.

저자는 과학 저술가와 정신과 의사이며, 이 책은 수렵채취시대에 인간은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집단의 남녀 구성원 모두 서로 섹스를 하는 promiscuous 관계를 맺었는데, 농업이 시작되면서 남녀 사이에 배타적인 성적 소유관계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실시된 일부일처제는, 훨씬 오랜 기간을 차지하는 수렵채취 시기 동안 행해진 남녀간 비배타적인 성적 관계와 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일부일처제의 혼인 관계 속에서 바람을 피우거나 이혼과 재혼을 빈번히 하는 것, 등은 모두 과거 남녀간 비배타적 성적 관행의 흔적이다.

인간은 침팬지 및 보노보와 같은 집단에 속한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암컷과 수컷 모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수시로 섹스를 한다. 특히 보노보는 구성원들 사이에 관계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섹스를 활용한다. 보노보는 암컷과 수컷간은 물론, 동성 간에도 수시로 섹스를 통해 관계의 긴장을 푼다. 침팬지의 경우, 집단내에서 권력이 큰 수컷이 여러 암컷들과 섹스를 많이 하지만, 암컷들은 수시로 권력자 이외 다양한 지위의 수컷과 몰래 섹스를 한다. 과거 수렵채취시절에 인간은 침팬지 및 보노보와 마찬가지로, 집단내의 남녀가 서로 섹스를 하면서 인간 관계를 관리하고 결속을 다졌다.

과거 인간 집단의 남녀 구성원들이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에게 관용적인 성생활을 했다는 증거로, 생리적 사실과 인류학적 사례를 제시한다. 생리적인 증거로는, 남녀간 체구의 차이, 남자의 성기의 크기와 정자의 수, 여자의 감추어진 배란기, 여자의 과대한 유방, 여자의 다발적 오르가즘, 등을 제시한다. 인류학적 사례로는 전세계에 여러 원시부족들 사이에서 집단내 관용적인 성관계가 이루어진다는 점, 서구 사회에서도 과거에 축제와 같은 특정 시기에  남녀간 관용적인 섹스의 향연을 벌였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수렵채취시대에 여성들은 집단 내에 여러 남성들과 섹스를 함으로서, 섹스를 통해 집단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공고히하였다. 수렵채취 시대에 소집단의 구성원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서로 잘 알고 있었으며, 사냥물을 포함하여 집단내의 모든 가용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공동으로 해결하였다. 여성들은 여러 남성과 섹스를 하여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는 특정되지 않았으며, 아이의 엄마가 여러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안전한 방책이었다. 아이들은 집단내에서 여러 아버지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여성에 대한 섹스의 독점권을 놓고 남성들이 싸우지는 않았지만, 대신 여성의 성기관 내에서 여러 남성의 정자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졌다. 여성이 여러 남성과 섹스한다고 하여도, 그중에서도 생명력이 강하고, 그 여성과 면역 계통에서 궁합이 맞는 정자가 최종적으로 그 여자의 난자와 수정하는 데 성공을 하게 된다. 암컷의 성기관 내에서 여러 수컷의 정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보편적인 현상인데, 인간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남자들은 자신과 섹스를 한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가 자신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아버지의 지위 또한 여러 남성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수렵채취시대에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모든 것을 공유하는 평등의 관행은 농업이 시작되면서 깨졌다. 개인 소유물이 출현하면서 대상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성향이 남녀 관계에도 적용되었다. 농토와 부를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힘이 센 남성이 하나 내지 여러 명의 여성과의 섹스를 독점하는 경향이 굳어졌다. 그러나 인간의 성적 본성은 과거 수렵채취시대에 형성된 것을 농업 시대에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다양한 성적 상대를 찾는 남자와 여자의 욕구는, 농업시대에 접어들어 일부일처제의 규범에 의해 억압되었기 때문에 긴장과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남녀간 일부일처제의 엄격한 규율을 사회적으로 느슨하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부분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되, 섹스 활동에서는 일부일처제 밖의 것도 어느정도 허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투'라는 관계 파괴적인 감정을 어떻게 제어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질투의 감정은 어느 정도는 일부일처제가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다. 여러 남녀 사이에 관용적 섹스를 허용하는 원시부족 사람들에게는 질투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지 않으며, 일부다처제의 사회에서도 여러 부인 사이에 질투가 심각하게 파괴적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수컷은 후손이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확신이 없으면 그를 돌보는데 노력을 투입하지 않는다. 자기의 자손이 아닐 위험이 있는 자식을 돌보는데 노력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다른 암컷과 섹스하여 하나라도 더 후손을 늘리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오랜 기간동안 부모 양쪽의 돌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일 아버지가 후손을 돌보는 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일부일처제나 여성의 섹스에 대한 남성의 극심한 질투는 바로, 남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확실하게 만드는 사회적 및 생리학적 장치이다. 수렵채취 시대에 집단내에 여러 아버지가 공동으로 자식에 대한 유전적 연계를 믿으면서  함께 양육을 돕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동물세계의 일반적 패턴과 어긋난다.

저자는 남녀관계에 관한 진화심리학의 정통 이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남자는 여성의 성을 독점하는 대신 빵을 벌어다 주는 것이 일부일처제의 근간이다. 이것이 원래부터 인류의 삶의 방식이라는 기존의 주장과는 반대로, 인류는 원래 남녀가 집단적으로 성관계를 맺고, 함께 아이를 키우고,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면서 화목하게 살았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객관적 증거로 검증해야 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물리적 증거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생리학적 물증이나 인류학적 자료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선택적으로 인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럴듯한 면이 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엄청나게 호응이 좋았는데, 전문가들은 그가 제시하는 증거나 그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였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맞았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속으로 바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wishful thinking). 수렵채취 시대의 생활에 대한 그의 서술은 경쟁과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여하간 읽는 내내 흥미롭고 신선했다.

2023. 10. 10. 21:44

Tasheng Huang. 2023.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How Exam, Autocracy, Stability, and Technology brought China success, and why they might lead to its decline. Yale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정치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15세기까지 서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던 중국 문명이 이후 왜 서구에 뒤지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이론적 및 경험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은 서기 600년경 수나라에서 과거가 도입된 이후, 사회의 모든 인적 자원과 이념적 자원이, 오로지 유교 지식만을 테스트하는 과거를 통해 국가 관료가 되는 길 하나로 집중되면서 다양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기술 발전, 경제 발전, 정치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서구가 16세기 이래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세계가 여러 나라로 잘게 쪼개져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였기 때문이라고,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주장한다. 여러 나라들이 경쟁하는 유럽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군주도 자신의 독단적인 변덕과 억압때문에 기술발전이 뒤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이웃나라를 앞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유럽 전체적으로 과학 기술이 상승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권위체로 일찌감치 통일되었기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쟁적으로 장려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15세기 명나라 때에는 군주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해상 무역을 금지하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건조를 금지함으로서 기술의 맥이 끊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중국 정부는 상공업을 천대한 반면 지주와 관료를 우대했기 때문에, 상공업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의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나라가 멸망한 뒤 350년간의 혼란을 수습하고, 서기 600년경 수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이래, 중국은 현재까지 대체로 계속하여 하나의 나라로서 통일을 유지해 왔다. 수나라는 과거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과거제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하는 '성과주의 체제' meritocracy 를 구현하였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과 군벌이 왕과 권력을 분점하고 통치에 참여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객관적인 시험인 과거를 통해 선발된 관료가 왕의 권한 위임을 받아 통치를 담당하였다. 과거를 통해 선발된 많은 유능한 관료들은 국가의 권력이 국민의 생활 전반에 침투하는 매우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서구 유럽의 국가 역량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한적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전체적으로 왕의 감독하에 치러지는 과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집행되었다. 이중 블라인드 처리를 하여 시험 응시자의 가족 배경이 선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과거제도는 전국의 모든 인적 자원과 이념적 자원을 이것 하나에 전적으로 집중시켰으므로, 다른 사상이나 다른 경력이 존재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전국의 모든 인재들은 오로지 과거의 시험 과목, 즉 유교의 경전을 익히는데 어린시절부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였다. 중국이 오랜 동안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통일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과거제에 있다. 과거제는 가족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객관적인 시험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웬만한 지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과거를 준비하고, 과거에 붙으면 그것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오랫동안 과거를 준비할려면 생산 활동에 종사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은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지주 계층이 주를 이루었다. 상공인들도 어느 정도 재력을 모으면, 자식에게 자신의 가업을 잇게하기보다, 과거 준비에 몰두하게 했기 때문에, 상공업 자본의 축적이나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요컨대 과거제도는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체제를 오랫동안 안정되게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전을 막고 경제적 및 정치적 발전의 동력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경제사학자들은 중국이 서구보다 기술이 뒤떨어지게 된 시기를 대체로 1500년경 명나라 때로 지적한다. 특히 명나라때 정화의 대원정 이후 왕의 명령으로 해외 무역을 금하고 먼바다를 나가는 배를 짓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중국이 기술발전의 대열에서 벗어난 상징적 사건으로 종종 언급한다. 그러나 저자가 중국의 10,000건이 넘는 발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경험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기술 개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기 600년 수나라 때 무렵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역사에서 기술발전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 춘추전국시대라 일컬어지는 혼란기와, 한나라가 망하고 수나라가 통일하기 이전 위진 남북조 시대라 일컷는 혼란기였다. 이 두시기에 여러 나라가 경쟁하는 분열의 양상이 펼쳐졌는데, 이는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분열해 경쟁하던 상황과 흡사하다. 이 시기에 유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이 경쟁하였으며, 정부의 이념에서도 여러 사상이 혼합되고 교차하였다. 이 시기를 "백가쟁명의 시대"라 지칭하는데, 이렇게 생각과 행동의 다양성이 허용되는 환경에서 새로운 발명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반면 국가의 이념이 유교로 제한되고, 과거제도로 모든 인재들이 쏠리던 송나라 이후에는 발명의 건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개혁의 시기를 맞았다.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허용되고, 국유기업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고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개혁파가 제거되고 보수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이전 시기의 개혁적 조치들은 취소되거나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개혁의 모멘텀은 계속 유지되었으며, 경제성장을 정권의 정당성으로 삼는 기조는 이어졌다. 각 지방 정부는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하면서, 경제성장의 성과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성과주의 원칙 meritocratic principle 이 지배하였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체제이지만, 과거 모든 권력을 한 사람이 독점하여 무모한 정책을 밀어붙여 중국을 위기에 빠뜨린 모택동 시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등소평 시대 이래 권력을 여러 지위로 분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당서기, 수상, 군 총사령관, 원로회의, 등으로 최고의 권력이 분산되어,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되었다. 또한 당서기의 임기를 최대 10년까지로 하여, 두차례에 걸쳐 평화적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앙의 권력을 여러 지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는 관행은 1989년 보수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부분적으로 깨어졌다.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한 이래 모든 최고위 자리를 그가 겸직하여 독점하거나 폐지하면서 일인이 권력을 전적으로 독점하는 체제로 다시 돌아갔다. 시진핑은 2018년 헌법을 개정하여 당서기의 임기 제한을 없앰으로서, 등소평 시대 이래 권력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혁적 조치는 완전히 무위로 돌아갔다. 

시진핑은 중국에서 다양성을 제거하는 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였다. 홍콩의 독립 체제를 무너뜨리고, 시지핑 일인의 개인 숭배 이념을 주입하고, 시진핑의 독재 권력에 위협이 되는 잠재적 경쟁자를 부패 처단을 명분으로 숙청하고, 언론과 미디어의 통제를 강화하고, 민간 기업을 국가의 통제권 하에 두고, 성공한 기업가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등으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진핑의 정책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새로운 기술 발전을 억압하고,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결국 체제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시진핑은, 과거 명나라 시대에 철저하게 유교 이념으로 무장하여 다양성을 죽이고, 국가의 명령으로 기술 발전을 가로막던, 그런 길로 중국을 몰아가고 있다. 시진핑이 이끄는, 다양성이 사라진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과거 정체되고 폐쇄된 중국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서구에 의해 몰락했듯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무장된 서구와의 대결에서 중국이 또다시 패배할 위험을 안고 있다. 

저자는 과거 중국의 역사로 부터 얻은 교훈으로 현재의 체제를 들여다보는 흥미있는 사고 실험을 한다. 과거제도에 대한 논의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논의는 연결되기는 하지만 구분된 논의이다. 그의 분석은 과거제도에 대한 논의에서 더 설득력이 있다. 시진핑 체제가 그의 예상과 같이 위기에 빠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서술하는 것은 흥미를 북돋우기는 하지만, 논의의 중복이 매우 많다. 경쟁과 다양성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나아가 경제성장을 낳는다는 그의 지적은 설득력이 크다. 서구가 앞서게 된 원인을 서구가 아닌 중국, 특히 과거제도에서 찾는 그의 분석은 흥미롭고 한국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2023. 9. 14. 10:01

Steven Pinker. 2018. Enlight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 Viking. 453 pages.

저자는 인지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는 진보해왔음을 객관적인 증거로 밝히며, 또한 어떻게 진보해왔고 진보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서술한다.

서구에서 1700년대에 시작된 계몽주의 (Enlightment), 즉 인간의 이성 reason 을 이용하여 세상을 파악하고 개입한다면 인류는 진보 progress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이전에 세상은 신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은 무력하며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대체하였다.

인간 삶의 주요 영역에서 진보가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한다. 객관적 삶의 질 영역인 건강과 수명에서부터 주관적 삶의 질 영역인 행복도에 이르기 까지, 전 영역에서 인류의 삶은 1800년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지난 150년간 크게 개선되었다. 일부 지역, 일부 집단, 일부 시기에 진보가 역전되거나 정체되기도 하였지만, 크게 볼 때 지구상 거의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진보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당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온 점진적 과정 incremental progress 이었다. 물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에 파생된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류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삶이 진보해 왔으며 지금도 진보가 계속되고 있음을 부정하고, 오히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거나, 인류 사회가 더 혼란해지고 과거보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인식하는 원인은 여러가지이다. 인간의 인지 기능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하고 그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편향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인접한 소수의 사례를 전체의 유형으로 일반화하는 버릇이 있다. 매스컴은 새로이 발생하는 자극적인 문제만을 보도하고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이 실제보다 더 나쁘며 과거보다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과 비평가들은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언급을 해야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항시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객관적 수치를 통해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를 이상화하고 전통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는 물론, 현실을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진보주의자 또한,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사회가 악화되어 왔으며 현재도 그러하다는 부정적 인식은, 인간의 이성을 이용하여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대신 비이성적 접근을 옹호하거나, 극단적인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새로운 지식이 축적되면서, 현재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하고, 이를 실행하여  그 결과를 통해 잘못을 고치고 더 나은 대응책을 찾아나가는 과정, 즉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과학하는 doing science 방식이 인간의 진보를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학자들 조차도 이러한 합리적 접근을 배격하려 한다. 예컨대 인문학자들은 깊고 신비하고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다는 구실하에, 과학과 객관적 사실 중심의 접근을 천박한 이해를 추구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인 것이며, 지식은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통해,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을 깍아내린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가고 있으므로, 절대자의 인도가 필요하다는 종교적 신념이, 인간의 이성에 의지하는 태도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자연은 가치를 제시하지 않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존재와 사건은 자연 법칙과 우연이 작용하는 장일 뿐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사람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인류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궤변이 아니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살고, 더 풍요롭고, 더 안전하고, 더 지혜롭게 살게 된다는 것은 인류에게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의미있는 성취이다.

그렇다고 인류의 점진적 진보가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없는 삶, 모든 사람이 항시 행복한 삶 혹은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가 확대된다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원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과 충돌할 것이며, 정신적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은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과 충돌할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확대된다는 것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선택지가 는 것이므로 불확정한 삶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행복과 보람있는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이 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 즉 인본주의 Humanism 는, 과거 신중심주의나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진보한 것이다.

저자는 기존에 학계나 소위 전문가들의 언급에 의문을 던진다. 예컨대 인문학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비판하며, 언론이나 문화비평가, 기타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비판한다. 그들은 자신의 밥벌이를 위하여 현실을 외곡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매사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부정적인 진단을 할 수록 무언가 있는 듯이 보는 세태를 비판한다. 소득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불공정과 빈곤이 나쁜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한 결과 보상의 불평등이 나타난다면, 빈곤이 제거된다는 조건 하에서 볼 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성취한 인류의 진보를 인정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길을 계속갈지 솔직하게 연구하고 실천하면, 인류가 지금까지 당면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예언한다. 대단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힘들었다. 인류의 진보를 통계 수치로 밝히는 부분과, 이성에 의지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부분은 글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별도의 책으로 엮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리고 저자는 장황하게 말을 많이 한다. 저자만큼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그의 장황한 생각의 흐름을 쫒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prev"" #1 #2 #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