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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2. 22:32

Diego Olstein. 2021. A Brief History of Now: The Past and Present of Global Power. Palgrave Mcmillan. 354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에서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미국의 패권과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분석적으로 서술한다. 각 시기별로 각 세력 집단을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영국은 18세기 말 이래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반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가 결합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밀어붙였다. 독일과 미국은 영국의 압력에 맞서 보호무역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19세기 후반 후발 산업화와 민주주의 확대에 성공하면서, 20세기에 들어 영국에 대항하는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러시아, 오스만 터키, 중국 등, 자국의 신민을 권위적으로 억압하는 전통적인 제국들은,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산업화를 통해 군사력을 높이고 싶었으나, 국민의 참여를 높일 경우 권력자들이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개혁이 좌절되고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실패하였다.

독일은 후발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에 걸맞게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불만을 가지고, 결국 1914~18년, 1939~45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두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력은 소진되고 식민지를 잃은 반면, 미국은 영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일차대전 중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영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 대신 압도적 군사력과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여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국가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차대전후 유럽의 복구를 지원하고, 무역과 투자, 다국적 기업 등을 통해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와 미국인의 꿈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의식을 사로잡는 등, 세계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제이차대전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으로부터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결 원칙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국가주의가 결합된 체제를 채택하였으며, 미국과 소련의 패권에 추종하를 거부하고 비동맹의 제삼세계를 지향하였다. 중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가나 등이 이러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였으나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실패하였으며,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민주주의 형식을 갖춘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들 제삼세계 국가들은 1990년대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경제적으로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포함된 서구 국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속에서 케인즈의 경제정책을 따라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였으며, 이차대전 이후 고도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후 미국은 정보통신기술과 운송기술의 발달과 함께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을 지속하였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금융, 서비스, 리서치 등에 주력하는 국제분업 세계화의 선두에 올라섰다. 그 결과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소련은 중앙집중 경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이 갈수록 악화되었으며, 1980년대에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1980년대 후반,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에서 소련의 장악에서 벗어나 민주화 시도가 진행되어 결국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동구권은 서유럽에 편입되었으며, 러시아는 1990년대의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결국 민족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약화된 강국으로 복귀하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모택동 치하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1978년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 사십년간 고도 성장을 통해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선진산업국에서 1980년대 이래 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성공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분업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 산업국에서는 불평등이 높아지고 성장에서 소외된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민족주의와 반세계화의 목소리가 높아져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 등장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960~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의 실패, 2003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의 실패 등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력에 대한 세계의 존경은 사라졌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줄었으며, 미국의 이념과 문화의 매력 또한 빛바래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각 나라들은 각자 도생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높아지고 세계 질서는 다극체제로 이행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 이래 세계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20세기 후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혁명 information revolution 에 접어들었으며, 근래에 한단계 더 높아진 인공지능 혁명 Artificial Intelligence Revolution 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분야를 기계가 맡게 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은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아마도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중남미의 변화에 깊이있는 이해를 보인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제삼세계의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드문 역사 서술이다. 후반부에서는 분석의 정치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대해 높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2023. 8. 21. 16:41

 

Carles Boix. 2015. Political Order and Inequality: Their Found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가가 생겨난 기원 및, 국가와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와 함께, 인류학, 역사학, 기타 다양한 데이타를 이용해 수리적으로 검증한다.

수렵채취 단계나 낮은 기술 수준의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평등했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들 간에 불평등이 발생할 요소를 서로 감시하면서 억제하였으므로, 국가라는 제삼의 권위 기구 없이도 당사자들 서로간 개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는 특정인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억제했으므로, 성장이 없이 정체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생산력의 범위 내에서 인구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의 한계 수준 근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 생산물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생산자와 탈취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탈취자는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탈취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생산자는 탈취자에게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기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얻는다. 탈취자는 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생산자를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탈취해간다. 역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탈취자들이 세운 군주제 monarchy 를 택하고 있다.

고대의 아테네나, 근대 이전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공화정 republic이 존재하였다. 도시국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방어를 직접 담당하거나, 용병을 구입하여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북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이웃 나라의 탈취자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용병을 고용한 경우 무력을 보유한 용병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용병 출신의 무력 집단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이익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화정이 출현할 수 없었다.

무력 기술 수준에 따라 생산자와 탈취자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력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특별히 무력 수준이 우월한 사람이나 집단이 없었으므로 탈취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청동기 무기와 이후 말의 출현으로 무력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무장을 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탈취자로 군림하면서, 다수의 비무장 생산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13세기에 총포가 도입된 이후, 기마 무사의 무력적 우위가 사라지면서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대신 비싼 총포를 구입할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대규모 은을 수입한 스페인,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프랑스가 강국으로 올라섰다.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 간 및 지역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대는 기존의 탈취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지배집단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예외적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탈취자 집단이 상공업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이익을 신흥 부르주아지와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주와 상공업 계층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면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상업을 확장시켰으며,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도시로 인구가 모이면, 도시인들 사이에 분업과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 지역이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인구가 늘고, 도시가 발달하고, 군사기술과 자본 규모가 높아져서, 이웃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도시의 상공인들은 농촌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으며, 세금을 부담하고 총을 들고 전쟁에 직접 나가는 국민으로서, 왕과 지배층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져서, 결국 공화제로 이전되었으며, 과거 산업혁명 이전보다 소득 분포가 평준화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국가의 출현 및 불평등 수준 역시 생산 기술 및 군사기술의 수준과 연관된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학술서이다. 19세기 이전의 불평등 수준을 키의 분포로 측정하였으며, 생산기술의 발달 지표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설명하는 부분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용하며, 다양한 가용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논의를 뛰어 넘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대단한 비교 연구이다.

2023. 8. 17. 17:22

David Buss. 2016(1994). The Evolution of Desire: Strategies of Human Mating. Basic Books. 350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개척자 중 한사람이며, 이 책은 짝짓기 전략에서 남자와 여자간 차이가 나는 이유를 진화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전반적인 논의는 Trivers 의 '부모투자이론'(parent's investment theory)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자원을 많이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인 반면, 여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성관계의 상대를 선택하는 데 매우 까다롭고 신중한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의 전략이다. 남자는 건강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에 관심이 큰 반면, 여자는 자신과 아이의 부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남자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관심이 크다.

여성은 장기적으로 관계에 헌신할 상대를 찾는데 관심이 큰 반면, 남성은 가급적 적은 자원을 소모하면서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는데 관심이 크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일회성의 섹스에 관심이 적으며, 일회성의 섹스를 한다고 하여도 당장의 사회경제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일회성 섹스를 통해 상대를 탐색하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접근한다. 반면 남성은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회성의 섹스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상대의 성적인 의도가 확실치 않은 경우, 남성은 상대 여성의 애매한 행동을 성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고 편향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후손을 생산한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은 이렇게 편향되게 해석할 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상대의 성적인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여성은 상대 남성이 자신에게 신뢰와 헌신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들때까지는 자신과 섹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건 date rape 이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화적 남녀간 짝짓기 전략의 차이에 기인한다.

남성이 지위 획득에 관심이 많은 것은, 여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이는 다윈의 '성적 선택이론' sexual sellection theory 이 지시하는 바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 역시,  남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여성의 외모, 즉 건강한 후손을 낳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큰 관심이 없으며, 여성은 남성의 외모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역시 같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녀간 성적인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 짝에게 사회경제적 자원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여성은 자신의 짝을 버리고 다른 남성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여성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신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다른 여성을 찾는다.  결혼한 여성이 다른 남성과 외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남성의 부양능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앞으로 자신의 남성과 헤어질 것에 대비하는 전략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여성 짝에 만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을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짝이 자신 이외의 사람과 바람을 피울 경우 심한 감정적 질투를 느끼는데, 이러한 감정적 흥분의 이유는 남녀가 다르다. 남성은 자신의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에 집착하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자원을 나누는 것에 집착한다.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을 사랑하지 않고 일시적 성관계를 맺은 것을 용서할 수 있으나, 남성는 자신의 여성의 성관계 그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여성의 생식능력은 20대 초반에 가장 왕성하며 이때가 남성에게 가장 매력적인 시기이다. 여성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지속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반면 남성의 사회경제적 능력은 30대 중반 이후에 최고에 도달한다. 남성의 생식능력은 50대나 60대에도 어느 정도 유지된다. 여성과 남성이 상대에게 최고로 매력적인 시기가 서로 어긋남으로, 여성은 자신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며, 상대의 현재 능력보다 미래에 사회경제적 잠재력에 더 가치를 둔다. 여성의 생식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30대 후반 이후, 여성은 짝짓기 시장에서 퇴장하거나, 아니면 육체적 매력이 아닌 사회경제적 능력과 지혜와 경험 등으로 남성 상대에게 어필한다.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경제적 능력이 높아짐으로, 중년이후의 남성이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전략을 구사한다.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 일회성 섹스,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는 것, 헤어짐, 등은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데 가장 유리하도록 남녀 모두 구사하는 전략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처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남성은 물론 여성또한, 일회성 섹스나,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와 헤어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인류는 일부일처제라는 남녀 상호간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서 지구상에서 번성하였다. 그러나 남녀간 인구비율이 달라지거나, 개별적으로 남녀 각각 처한 조건에 따라, 앞에 언급한 다양한 짝짓기 전략을 구사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은 일부일처제를 옹호하지만, 사람들은 항시 일부일처의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 제도를 따르는 것이, 개별 남자 혹은 여자에게 후손을 만드는 데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일부일처제 이외의 짝짓기 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남녀간 짝짓기는 문화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물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녀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이론의 힘을 통감한다. 여성의 선택 때문에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추구 노력이 매우 치열한 것이며, 그 결과 이 사회의 사회경제적 지위 위계는 남성에 의해 장악되었다. 반면 남성의 선택 때문에 여성은 외모에 집착하며 외모를 높이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문제는, 외모는 많은 부분 타고난 것이라 당사자가 어쩔 수 없으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는  본인의 노력으로 획득가능한 것이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정의감이나 형평을 고려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naturalism fallacy)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과 정의에 맞추어 자연을 바꾸는 것이 인간의 문화라고 하지만, 이는 마치 강물을 거슬러 노젓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남녀 관계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녀관계는 생존에 필수적인 분야이므로, 지금까지 사회를 살아가면서 항시 관심을 갖고, 엄청나게 많은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어느 분야보다도 많은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니 통찰력이 더해진다.

2023. 7. 17. 17:04

Robert Cialdini. 2007(1984).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Harper Collins. 280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심리학 이론과 실험 사례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당하는지, 부당하게 설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설명한다. 사람들이 설득당하는 심리 기제로 다음 여섯가지를 제시한다.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 등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사안에 대해 이성적으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피한다. 복잡한 정보를 포함한 것이 내는 단순한 신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덜 쓰면서 산다. 사람들이 설득 당하는 심리 기제는 바로 이러한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체로 이렇게 행동하면 사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의 심리적 자동 반응을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득의 심리 기제를 부당하게 상대에게 구사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다음에서 여섯개의 심리적 기제를 간단히 설명한다.

첫번째,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은, 인간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것을 주려고 하는 강한 의무를 지게 된다. 상대로 부터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먼저 상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상대에게 선물로 인식될 것은 물론, 상대에게 양보로 인식될 것을 미리 제시하면, 이에 상응하여 상대의 마음을 내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세일즈맨이 이 원리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물건을 팔려 한다면, 상대가 나에게 미리 준 것이 선물이 아니라 물건을 팔기 위한 미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대에게 의무감을 갖지 않도록 생각을 의식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번째,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는, 사람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이후 그것과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향이다. 처음부터 큰 약속을 얻어내려 하기보다, 처음에는 작은 것에 대한 약속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규모를 높여 나가면, 큰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세번째,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는, 사람들은 불확실할 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 자신과 유사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사람들은 신뢰한다. 처음 몇 사람들이 선택을 한 것을 뒤에 온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따라하면서 눈덩이 효과 snowballing effect를 만들어 낸다. 

네번째,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는,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큰 요인으로, 하나는 외모이며, 두번째는 자신과 유사한 특성이다. 외모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크다. 세일즈맨은 고객이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고객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세일즈맨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관심을 갖는 물건은 자신이 세일즈맨을 좋아하는지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구입하려고 하는 물건의 특성에 집중하여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다섯번째,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는, 사람들은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심지어 권위있는 사람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에까지 확장하여 그의 의견을 추종한다. 권위의 근거가 되는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와 관련하여서는, 권위있는 사람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으로 거짓 권위에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여섯번째,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는, 사람들은 물량이 부족하거나 가용 시간의 제한이 있는 물건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며 더 선호한다. 이는 손실을 보는 것을 이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꺼리며, 선택이 제한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 때문이다. 세일즈맨들은 물량의 제한이나 가용 시간의 제한을 거짓으로 설정하여, 고객이 열등한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구매하도록 압박한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바꾸게 되는지, 어떻게 설득에 넘어가는지를 심리학 이론과 실험 연구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세일즈 회사에 지원하여 참여관찰자로 3년이나 일했다고 한다.  책이 나온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잘 팔리는 데에는, 저자가 제시한 설득의 심리 기제가 현실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책의 최근 판에서 하나를 더 덧붙인다. 일곱번째 심리기제로 '상대와 동일한 집단에 속하면 따른다 unity'를 추가한다. 본인과 상대가 같은 집단에 속하며, 한 배를 탔다는 점을 인식시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부족주의 tribalism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을 선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설명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설득의 심리 기제에 자동 반응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의도적으로 전환하는,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면, 자동반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동반응의 심리기제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자동반응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일순간에 사고하는 방식을 전환하여 자동반응을 멈추고 이성적으로 따져보기는 힘들다.

저자는 상대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래에 대해서는 상대를 설득하는 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제외하겠다고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남의 설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일견 당연한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됨에도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름진 음식을 탐닉한다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술 담배를 하는 등은 자신의 건강에 해가 됨을 잘 알고 있지만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지 못한다. 상대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바람직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심리적 기제를 활용하거나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실 아무리 심리적 기제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게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심리적 조작을 통해 상대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는 것은 일시적 피상적으로만 가능할 듯하다. 예컨대 보험을 판매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고객의 욕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심리적 조작을 하여 구매하도록 설득한다고 하여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그런 관계에는 신뢰가 쌓일 수 없고, 그런 회사는 오래 버틸 수 없다.

 

2023. 7. 13. 10:23

Robin Dunbar. 1996.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Harvard Univ. Press. 207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과정을 본인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가 집단내 사람들 사이에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침팬지를 포함한 유인원은 많은 시간을 서로 털을 골라주는데 (grooming) 소비한다. 이러한 행위는 위생적 목적도 있지만 서로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주이다. 유인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 관계는 복잡한데, 서로 유대를 맺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집단으로 사는 것이 단독으로 사는 것보다 생존에 득이 되지만, 대신 집단내 구성원들 간 관계를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영장류의 두뇌 크기와 집단의 규모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비례관계를 인간에 적용할 때, 인간의 뇌의 규모에 대응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수치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던바의 수'라고 지칭한다. 실제 인간 사회를 둘러보면, 구성원들 사이에 직접적 대면 관계와 정보를 공유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을 넘지 않는다. 150명을 넘으면, 간접적 익명의 관계가 급속히 불어나며, 위계구조와 규칙에 따른 형식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자연부락, 종교 집단, 군의 병사 집단 등의 예에서 150명이 최대 상한임을 확인한다.

인간의 두뇌가 그렇게 큰 이유는 '남들의 생각을 읽는 데' theory of mind 엄청난 정보처리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대 5중까지 중첩된 reflexive 정도까지 남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1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2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3단계), 등으로 사고의 복잡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관리하고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침팬지는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 수록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조율해야 할 필요는 커지기 때문에, 남들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은 집단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침팬지 집단의 규모는 50명이 넘지 않으며, 이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약 20%를 그루밍에 할애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유인원들로부터 추정할 때, 인간은 깨어있는 시간의 45%를 관계를 관리하는데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시간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비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할 시간이 부족해지게 된다(time budget limitation). 인간은 이문제를 언어를 통해서 해결했다.

연구결과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할 때, 전체의 3분의 2의 시간과 내용을 사회적 관리에 할애한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남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gossip)은 직접 대면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그룹은 4명을 넘지 않는데, 이는 한명이 말하고 다른 세명이 듣는 구조이다. 한번의 말을 통해 세명과 관계를 맺으므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 개개인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과 비교할 때,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3분의 1로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직접 행동으로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깊이가 얕기는 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호간 담화를 통해 유대를 맺으며 일탈자 freerider를 억제함으로서 집단을 유지한다. 이렇게 언어를 이용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시간을 절약한 결과, 인간은 다른 유인원과 비슷하게 깨어있는 시간의 20~25% 만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쓰면서 더 큰 집단 속에서 살 수 있다. 수렵 채취인의 생활을 보면, 저녁에 불 주변에 모여 앉아서 하는 일의 절반은 바로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는 일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추적해 보면 불이 사용된 후, 인간의 두뇌 크기가 이전보다 크게 커졌는데, 이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언어를 통한 효율적인 관계 구축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언어가 사회적 목적을 위해 발달했다는 증거는, 방언의 발달에서도 확인된다. 사람들의 집단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멀어지면 바로 방언이 나타난다. 방언은 사람들의 집단 소속을 확인시켜주는 효과적인 징표이다. 언어 습관은 어린 시절에 고정되고 이후에는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가 우리 집단 소속인지를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영국의 노동계층의 남성은 노동자 집단의 방언을 사용하나, 여성은 중류층의 말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자신보다 상위계층의 남자와 혼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 반면, 남성은 자신이 속한 노동자 집단 속에서 신뢰를 구축하여 생계를 확보해야 함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구사할 필요성이 여성보다 더 크다.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를 관계의 관리를 위하여 더 많이 사용할 것 같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여성이나 남성이나 대화 내용의 3분의 2는 누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뒷담화가 차지한다. 다만 이는 동성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 그런 것이고,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대화를 할 때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한다. 남성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목적에서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동성 집단 내에서 말할 때에도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에 대해 떠벌이는 시간이 더 많은 반면, 여성은 남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 역시 남성은 자신을 광고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더 주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언어를 더 많이 쓴다. 남성과 여성간에는 '성적인 선택' sexual selection 의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들 간에는 말의 내용이나 기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동성들의 모임보다는 이성이 섞인 모임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배경으로 유인원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2023. 7. 9. 21:57

박지향. 1997. 영국사: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까치글방. 496쪽.

저자는 영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영국의 역사서이다. 주요 주제에 따른 서술을 먼저 하고, 이어서 시대에 따른 서술을 한다. 주요 주제로는 영국인의 정체성, 통치제도, 영제국, 지성사, 지주와 중간계급과 자본주의, 노동계급, 영국의 현안과제(북아일랜드, 유럽통합, 경제적 쇠퇴)를 다루고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에 유럽 대륙의 정치 군사적 갈등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1060년대 노르만의 침공 이래 20세기까지 일천년 동안 외세로부터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덕분에 정치가 안정되었으며, 유럽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영국은 중세시대부터 왕권에 대한 지주 귀족들의 견제가 컸으며, 이는 1200년대의 마그나카르타에서 명문화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전통이 1600년대에 이미 정착되었으며, 1688년의 명예혁명에서 의회의 승인없는 세금의 부과를 금하고, 국가의 자의적 권력 행사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넘어 왕과 국가가 개인과 사회 위에 군림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이는 대륙 국가의 왕들이 자의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프랑스 및 스페인 등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를 거두는 결정적 원인이다.

영국의 지주계급은 상공업 자본으로 전화함으로서 경제 변화의 흐름을 잘 탔다. 17세기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소규모 농민을 몰아내고 농업의 대형화, 효율화를 이끌었으며, 이들은 이후 상업자본가, 금융자본가로 성장하였다. 이는 영국의 장자상속제에 힘입었다. 장자는 토지를 통째로 상속받아 지주로 남지만, 차남 이하는 상업과 금융 부분에 진출하거나 성직자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지주계급과 상공업 자본가 계급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영국은 세습적 신분 못지 않게, 근대 초기부터 부의 축적에 의한 지위 상승이 가능했다. 상업, 금융, 전문직, 등을 통해 부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토지 귀족 못지 않은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상공인은 대지주 귀족과 함께 의회에 참여하였다. 성공한 부르주아들이 토지를 획득하여 지주계급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욕구는 강하지 않았기에 산업 자본은 재투자되었다. 경제발전을 향한 자본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국은 대륙과 달리 어느 정도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있는 개방된 사회였다. 이것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시작된 이유 중 하나이다. 영국은 개인의 자유와 성취 동기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 강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영국을 상인의 나라라고 경멸했으나, 상공업의 부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영국의 발전을 이끈 동력이다. 

175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서 독보적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후 미국 식민지를 잃기는 했으나, 인도, 캐나다, 호주, 등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19세기 말에는 전세계의 5분의 1을 식민지로 거느리는 제국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하여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의 어느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으며, 세계 상공업의 생산과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의 경쟁력은 후발 산업국인 미국과 독일에 의해 추월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발 산업국의 이점은 사라지고, 기득이권이 버티면서 새로운 파괴적 혁신을 추진할 능력을 상실하여, 후발 산업국보다 산업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 영국은 경쟁국가에 뒤지고, 두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제국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여,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 제국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18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사회주의 물결 속에서 급진 노선보다는 자본가와의 타협을 선택한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였으며, 19세기 말 이래 노동자의 요구를 정치 과정에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노동조합의 후원을 등에 없은 노동당이 집권하였으며, 노동자의 요구의 상당 부분이 복지국가의 확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위기에 더하여 노동자들의 파업이 격렬했을 때,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집권하여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신보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영국은  금융부문을 제하고는, 낮은 생산성 때문에 산업 경쟁력이 낮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와 강의 경력을 잘 배합하여 쓴 책이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계급과 노동 분야를 깊이있게 잘 썼다. 영국인은 세계의 가장 선진적인 모범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한 때 가졌지만, 지금은 선진 산업국들 중 상대적으로 뒤쳐진 나라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대단한 폭력적 갈등이나 혁명 없이 헌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국은 사회 청산의 경험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불확실하지만, 한국과 비교할 때 한 수 위의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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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3. 10:53

Eric Hoffer. 2002(1951). The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 Harper Perennial. 168pages.

저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막노동자로 일생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명성을 얻은 특이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으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이 참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종결되는지 서술한다. 경험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생각을 제시한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궁핍과 좌절과 억압이 극에 달하는 저점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이 발생하기 이전 한동안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올라가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기존 질서를 뒤없는 사회혁명이 발생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억압이 굳건할 때에는 체제를 전복할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제주의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시점, 즉 국민을 조금 풀어주는 시점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다고 하여 혁명을 하지는 않는다. 극빈하면 일상의 생계를 확보하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소련의 스탈린 시절, 중국의 모택동 시절, 정책 실패로 수백만이 굶어 죽었지만, 정권의 장악력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반발이 유의미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부류는 현재의 질서에서 잘 맞지 않는 주변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거나 현재의 질서에서 주변적인 사람은 현재의 질서를 뒤업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열성을 보인다. 이들은 혁명을 방해할 어떠한 장애물도 부숴버리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광신도 fanetics 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무료해 하고 암담해 할 때, 사회를 뒤집어 업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과 목표에 쉽게 빠져든다. 이들은 혁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변화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막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광신도들이 없다면 기존 질서를 뒤업는 작업이 수반하는 혼란과 폭력과 저항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은 실패한다. 

광신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 이념에 엄청난 열정을 투입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추진력이 약하며 기득권의 저항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 시작하려 하기보다 기존의 질서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예컨대 지식인, 예술인이나, 자신의 가진 것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이념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또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혁명은 기존 체제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발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안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만 혁명의 동력이 작동한다. 혁명의 시작은 지식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의 말이며, 볼셰비키 혁명의 시작은 맑스와 레닌의 말이며,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말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 현실을 대치하는 대안에 대한 희망에 끌려서 혁명에 참여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꾼다는 희망, 자신을 일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망과 환상에 모두 설득당하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광신자들은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 증오하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고 처단한다. 

폭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혁명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 몫을 하여야 한다. 혁명의 이념과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지식인,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혁명의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광신도, 혁명 사업을 실행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실행인, 광신도와 실행인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혁명이 성공했을 때 뒤정리를 담당하며 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제도로 구체화시키는 관료, 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실행인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 광신도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지도자가 없는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했을 때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혁명은 혼란으로 끝나게 된다. 혁명의 초기에는 광신도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이들은 혁명 후반 제도화의 단계에는 오히려 정착을 반대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들은 안정을 원치 않고,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것을 계속 부르짖으며, 질서를 만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끌면 실패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존 질서에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고 그대로 지내려 한다. 혁명적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라는 충격에 짧게 노출되어야만 견딜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기간의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면, 시간을 두고 충격의 여파가 퍼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탄생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도 혁명의 충격이 가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가 전개되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답게, 글쓰기 방식이나 논지의 전개에서도 파격적이다. 다르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논의 위에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과 반추의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토해낸다.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과장이 엿보이지만, 독창적인 신선함이 엿보인다. 다만 이 책에서는 혁명의 중요한 요소를 누락시키고 있다. 저자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혁명 참가자에 촛점을 맞추는데, 혁명은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참가자의 심리에 있기보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 저자는 이부분을 처음에 약간 언급한다.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2023. 6. 30. 11:05

Carol Tavris and Elliot Anderson. 2020(2007).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 Mariner books. 377 pages.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의 인지불일치 이론에 근거해 설명한다. 가족, 기억, 상담, 사법 기관, 편견, 갈등과 전쟁,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하여 논의한다.   

1950년대에 페스팅거라는 심리학자가 제시한 인지 불일치 cognitive inconsistency 이론은 현재까지 다양한 사회관계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적용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이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행동을 내적으로 동시에 수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반된 것 중 하나를 바꾸어 인지적 일치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진화의 산물로 보인다. 상반된 생각과 행동을 유지하는 것은 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여 추진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하여 상황이 어그러진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과소평가하거나, 상대나 주위 환경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서 자신을 정당화 justification 한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의 잘못이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것과 밀접히 연관된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상이한 의견이나 행동이, 상대의 비판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고 추가적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차이가 벌어져, 마침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는 상태로 발전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메카니즘이다. 즉 처음에는 사소한 잘못이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지내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다보면, 그것이 처음보다 훨씬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되어, 도저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 잃어야 할 것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기억을 연상할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바뀐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이 바뀌면 과거에 벌어진 것과 정반대로 기억하기도 한다. 과학적 검증 결과, 실제 발생한 것과 기억하는 내용 간에는 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기억하며, 불리한 부분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또한 사람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인지한다.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관여한 동일한 현상에 대해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곡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적발하는 과정에 상담심리분석이 많이 활용됬다. 상담심리사들은 피해 아동에게 피해 상황을 진술받기 위해, 아동의 억압된 기억을 떠올린다는 구실로 유도 신문을 하였다. 아동들이 이러한 유도 신문에 계속 노출되게 되면 없는 사실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무고한 사람이 많이 피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담심리 기법이 잘못된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상담심리사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유사한 상담 기법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상담분석기법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그들이 해왔던 행위가 모두 부정되고, 자신의 직업을 잃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떠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법기관에서 피고를 취조할 때, 그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취조한다. 이는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를 상정한다는 사법원칙 benefit of doubt 과는 정반대의 관행이다. 그들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 행위를 자백받는 것이기 때문에 강압적 방법을 써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강압적 방법으로 자백을 받는 경우, 그 자백은 대부분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과학적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법기관에서는 강압적 방법을 애용한다. 형사는 일단 자신이 범인을 지목하면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기때문에, 자신의 확신과 어긋난 증거는 소홀히 하며, 심지어 정반대의 결정적 증거가 나와도 이를 부정한다. 그러한 증거에는 오류가 있다거나, 혹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한다. 

도날드 트럼프를 지지한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행한 그의 비도덕적 행위와 무능에 대해 눈을 감는다.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거짓되게 그를 모함을 하고 있다거나, 설사 그가 잘못이 있다고 해도, 이는 그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불과하다고 과소평가한다. 혹은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자위한다. 특히 이익이 걸려 있는 단체나 기독교 신자의 경우, 트럼프가 인간적으로 비난받을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추진한 법안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그의 부정적 인간성을 외면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은, 그가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아첨하거나 그의 충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일을 하여 나라의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고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벌어진 피해가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하고, 피해자의 상처에 감정적으로 크게 공감할 경우, 드물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즉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선순환 사이클로 진입하게 된다. 실수와 잘못을 거듭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결국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과학의 강점이다. 사람도 자신의 잘못을 반추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하거나, 감추고 잊어버리려 한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잘못을 반복할 위험은 제거되지 않으며, 자신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시키 않으려고 할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 착하고 유능한 사람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부정적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와 정체성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잘못이 심각한 경우, 피해가 큰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보상을 해야 하는 부담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능한 사람으로 찍혀, 자신의 지위를 뺏길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늑대 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저자들은 단단한 사회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하는 폭이 넓다. 살면서 주위에서 흔히 보고, 누구나 스스로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이것이 3개정판까지 나온 이유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제시한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며 설득력이 크지 않다. '결국 이것이 인간의 한계란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온다.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경쟁에서 패하거나 죽어서 무대에서 사라져야만 잘못된 관행이 고쳐질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개선이 더디고 힘든 이유일 것이다. 잘 쓴 책이다. 

2023. 6. 24. 23:05

Nassim Nicholas Taleb. 2010(2007).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2nd ed. Penguin books. 397 pages.

저자는 증권딜러를 거쳐 통계학자로 변신한 사람이며, 이 책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관해 논의한다.

검은 백조란 매우 드물게 일어나지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세상사는 예상할 수 있는 위험보다는 예상하지 못하며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의해 좌우된다. 근래로 올수록 이러한 경향이 과거보다 더 심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이 발생한 뒤에 사후적으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narrative fallacy), 사전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남겨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아무런 사전적 이유 없이 랜덤하게 발생하거나, 원인이 있다 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전에 일어났지만 우리가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검은 백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problem of silent evidence). 검은 백조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실재의 현상은 이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모두 이론에 따른 가정을 바탕에 깔고 현실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랜덤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론적 접근을 버리고 데이타에 충실하여, 현실로부터 잠정적으로 패턴을 추정하는 귀납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 검은 백조 현상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칠면조는 주인으로부터 1000일동안 먹이를 받아먹으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먹이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1000개의 사건에 대한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1001번째 날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1001번째 날이 크리스마스라 주인은 칠면조를 잡아먹는다. 칠면조의 입장에서 볼 때 1001번째의 죽음은 검은 백조이다. 검은백조가 나타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통계학, 경제학 등 인간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근본적으로 세상사는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나, 사회의 현상 중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많다.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 간에 비례적 선형적 관계를 가정하나, 비선형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이 많다. 물질적 속성의 것, 예컨대 키, 체중, 수명, 등은 선형적 관계이나, 비물질적인 속성의 것, 예컨대 소득, 매출, 정보, 손해, 기술, 등 많은 사회현상은 정규분포나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지수적 법칙 power law 은 이러한 비선형적 관계의 한 예이다.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초기 값에 조그만 차이로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크게 벌어진다. 정규분포에 따른다면 평균에서 벗어나면 급속하게 가능성이 줄기 때문에 예외적인 현상의 비중이 매우 작지만, 지수적 법칙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 현상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체의 평균이 이 예외적 현상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검은 백조는 이러한 비선형적 사건의 일종이다. 비선형적인 극단적인 사건이 전체를 좌우하는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 (Extremistan), 정규분포를 따르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정규분포의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Mediocristan), 비선형적 분포의 상황을 예외적인 것을 취급하는 데,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경제예측이나 재무분야의 포트폴리오 관리 이론은 모두 사기이다. 그들의 예측을 현실과 비교해 보면 전혀 맞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이들의 전문적인 설명에 혹해서 그릇된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생활을 한다. 

검은 백조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튼튼하게 대비하여 (robust)  미리 미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해 대비하게끔 진화하였다.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중복을 두는 것 (redundancy) 이 그것이다. 자연의 유기체들은 비상상황에서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나머지 하나로 버텨나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생물은, 드물지만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에 노출되어 멸종되어 버렸다. 최대의 효율을 추구한다고 여유를 두지 않고 최적화하는 것 (optimization) 은 자신을 예기치 못한 드문 위험에 취약하게 노출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취약함을 줄이는 방식으로(anti-fragile)으로 살아야 한다. 

빚을 지는 것은 취약한(fragile) 생활방식이다. 예기치 못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최대한 자신의 소득 이내에서 살아야 한다. 빚을 동원하여 사업을 하면(leveraged),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이 닥쳤을때, 그동안 벌어놓았던 모든 이익 이상의 것을 까먹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계나 대기업의 보상 방식은, 이익에 대해서는 비례 이상으로 많이 보상을 하면서,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계는 무모한 정도로 많은 위험을 안고 사업을 하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상태에 빠져 있다. 2007년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러한 무모한 영업이 초래한 위험을 당사자들이 지지 않고 세금으로 손해를 메웠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현재의 보상 구조가 지속되는 한, 과도한 위험을 안은 취약한 사업 방식은 미래에 예기치 않은 드물게 발생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또다른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따른 손해를 짊어지는 보상 구조(skin in the game) 로 바꾸어야만 위기를 막을 수 있다.

저자는 금융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답게 학술적 접근의 비현실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검은 백조, 랜덤한, 비선형적인, 등 매우 매력적인 주제를 다루어서 스타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랜덤한 사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살면서 모두 경험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사가 랜덤하게 발생한다고 하는 것은 "왜 그런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자신이 모른다고 드러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도 검은 백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예측이나 설명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책은 그렇게 잘 쓴 책은 아니다. 주제와 무관한 잡다한 사설을 곳곳에서 쉼없이 냉소적으로 퍼부어 대기 때문에, 정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정신 똑똑히 차리고 가려서 읽어야 해서 필요 없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장황하게 반복하는 것도 흠이다. 주제와 무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진지하고 복잡한 사안을 수시로 섞어가며 서술하는 것 역시, 그의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주의를 분산시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서술이다. 그럼에도 통계학이나 경제학에서 기존에 하던 말과는 다른 신선한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디까지 그의 주장이 옳은지를 살펴야 하는 피곤함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2023. 5. 28. 18:08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 402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장기적 미래 모습을 예측한다.

인간은 과학기술 덕분에 기아, 질병, 전쟁을 이제 거의 정복하였다. 인간의 다음 도전은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고, 더 높은 행복을 누리며, 세상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조금씩 조금씩 변형하여 더 오래살고, 더 똑똑하고, 감정을 더 잘 통제하는 존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미래에, 현재의 인간은 마치 현재 동물이 그러한 것 처럼, 미래의 인간에 의해 도태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초인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부터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생물학적 능력의 격차가 사람들사이에 벌어지면, 이는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마치 과거에 일반인과 노예의 격차와 같은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

인류는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이전했다. 이제 인간의 경험, 인간의 행복이 모든 결정에 궁극적인 기준이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일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의 복합체인데, 이 복합체는 합리적이며 일관된 특성의 것이 아니어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할 때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은 핵심이 되는 자아를 전제로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아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유전자, 즉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유전자가 핵심이며, 생명활동이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확산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다른 동물의 데이터 처리능력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데이터 처리 능력이 더 높기에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지배하고 멸종시켰다. 인간의 감정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감정이 모두 데이터 처리장치라면, 데이터 처리 능력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더 좋다 라는 논리적 추론으로 귀결된다.

컴퓨터가 발전하여 이제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인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되었다. 지적 문제를 푸는 분야에서 인간은 조만간 컴퓨터를 당해낼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많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하게 되었다. 조만간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결정을 맡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히 분석하여 그를 더 잘 알고 그의 사정에 더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데이터를 더 잘 처리하고 문제를 풀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소수의 고급 데이터 처리능력을 갖추고, 인공지능을 디자인하는 고도로 복잡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의 지적 능력에 기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또한 부적절해 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면, 일반 사람이 투표하여 선거로 결정짓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일반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전쟁을 치룰 수 있게 된다면, 전쟁에 일반인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일반인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즉 대다수의 일반인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의 복리를 살펴야 할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상을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 Dataism이라고 명명한다.

이미 인공 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데이터를 처리하여 이러한 능력을 발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치하는 분야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신뢰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은 확실하다. 자본주의의 시장기구보다, 민주주의의 선거보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기반한 결정이 더 효율적인 사회는 현재의 사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라는 점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 즉 제레미 벤담의 최대의 행복이 지금까지 효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만족만으로는 살 수 없다. 결정의 주체가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는 느낌, 즉 보람,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결정을 대리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데이터 처리능력이 사회에 쓸모가 없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의미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삶은, 현재 동물 농장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하는 닭이나 돼지의 삶과 다름이 없다.

사실 현재 우리의 삶도 삶의 의미를 크게 느끼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데, 삶의 결정이 모두 인공지능에 의해 뺏기게 된다면, 그런 '혹시나' 하는 자기기만적인 감정 조차도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암울한 삶이다. 인간의 삶이 알고보면 동물 농장에 닭이나 돼지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한다면.   유발 하라리는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식견에 감탄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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