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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에 해당되는 글 7건
2024. 4. 15. 13:33

리타 카터 (장성준, 강병철 옮김). 2020(2019). 인간의 뇌. 김영사. 249쪽.

저자는 의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뇌의 구조와 기능, 뇌질환에 관해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도감이다. 뇌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뇌 해부학, 감각, 운동과 조절, 감정, 사회적 뇌, 언어와 의사소통, 기억, 사고, 의식, 뇌의 발달과 노화, 뇌질환 등으로 찹터를 나누어 설명한다.

도감답게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fmri 사진이 해설과 함께 많이 붙어 있지만, 이러한 사진들이 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본문의 서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알지 못한다", "분명치 않다" 등 이다. 과학계가 뇌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의 다른 기관과 달리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하간, 그림이 없이 글로만 된 책을 읽을 때 보다 이해가 조금은 향상되는 듯하다.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기는 하지만, 해설의 수준은 상당히 전문적이다. 

 

2024. 1. 15. 13:56

DK 인체원리 편집위원회 (김호정, 박경한 옮김). 2017. 인체원리 (How the Body Works). 사이언스북스. 247 pages.

이 책은 인체에 대한 생리의학적 지식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 도감책이다. 우리 몸의 기능에 따라 장을 구분한다. 세포와 유전자, 외곽 방어와 지지, 운동, 감각, 호흡과 혈액순환(생존의 핵심), 소화와 배설(들어오고 나가고), 면역과 미생물(알맞게 건강하게), 내분비(화학적 균형), 삶의 주기(생명의 연결고리), 정신 기능,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책은 이전에 읽은 해부학을 주로한 책의 역자가 추천한 것으로, 두 책을 읽음으로서 우리의 몸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두 책 모두 설명이 체계적이며 깊이가 있다. 두 책 모두 의사가 번역을 담당해서인지 평범한 일상 용어와 전문 용어를 적절히 섞어서 사용하여 이해하기 쉽다. 두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몸이 정밀한 "화학 기계" chemical machine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알았던 것에 대해 그 작동 원리를 분명하게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을 다 읽고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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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6. 15:26

앨리스 로버츠. (박경한, 권기호, 김명남 옮김).  2017. 인체 완전판 2판, 몸의 모든 것을 담은 인체 대백과사전. (The Complete Human Body by Alice Roberts). 사이언스 북스. 497쪽.

저자는 의사이자 체질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인체와 관련된 모든 주요 사항을 그림과 함께 담은 백과사전이다. 책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인체 해부 도감과 설명이 차지하며, 나머지 절만은 인체의 작동원리, 인생 주기, 질병과 장애로 구성되어 있다. 해부학의 그림이 전문가가 참고할 정도로 상세하며 부가된 설명이 매우 친절하다. 인체의 원리를 서술하는 부분이나 인생 주기에 따른 인간의 변화에 대한 설명 역시 수준이 높다. 

전문적인 해부학과 생리학 지식을 다루면서 일반인도 이해할 수준으로 친절하게 서술한 대단한 책이다. 저자가 BBC에서 인간관련 여러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한 솜씨가 이 책에서도 느껴진다. 번역도 무척 잘 되어서, 전문적인 의학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번역해 놓았다. 지난 몇달 동안 책을 잡을 때마다 조금씩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꼈으며, 인체의 구조와 원리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보너스로 얻었다. 마지막 쪽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크게 느낀, 드물게 좋은 책이다.

2023. 10. 26. 20:22

Jacalyn Duffin. 2021. History of  Medicine: A Scandalously Short Introduction. 3rd ed. University of Toronto Press. 495 pages.

저자는 의사이자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양 의학의 역사를 의학의 분과별로 구분하여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의과대학에서 의학사 교과서로 사용할 목적으로 집필해서인지, 인간의 병과 의료적 개입 간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기보다, 구체적인 병에 대한 의술과 의료 조직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학, 의료의 전문화, 전염병, 혈액, 기술과 병원, 외과학, 여성 의학, 정신분석학, 아동학, 가정의학, 공중보건학, 환자 중심의 의료, 등으로 장을 나누어 각 분야에 대한 역사를 기술한다.  의학 전문 용어, 이름, 조직명이 많이 등장한다. 의사라는 직업의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서양 의학은 병이 난 뒤 이를 고치는 데 촛점을 맞춘다. 전염병 퇴치를 제외한다면, 의학의 이러한 접근은 인류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인류의 건강과 수명은 위생, 영양, 교육, 빈곤, 나쁜 습관과 그릇된 지식, 등을 바로잡는 노력에 의해 크게 개선되었다. 현재의 서양 의료 체계는 개인과 집단의 질병 위험을 줄이고 예방하는 쪽보다는, 병이난 환자 개개인의 치료에 집중해 있다. 이러한 접근이 사람들의 건강과 수명을 얼마나 늘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의사들의 소득을 높이는 데 편향되 발전한 결과이다. 저자 본인이 의사이지만 의학계의 관행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2023. 1. 2. 11:51

Louise Aronson. 2019. Elderhood: Redefining Aging, Transforming Medicine, Reimagining Life. Bloomsbury. 400 pages.

저자는 노인병 전문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이 늙는 것과 노인의 치료와 돌봄을 주제로 하여, 그녀의 임상 경험, 전문 지식, 역사적 사실, 개인적 경험, 평소 생각 등을 뒤섞어서 서술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여 인구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60세가 넘어도 20~30년을 살게 되었음에도, 노인은 우리의 생각과 사회담론에서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이다. 모든 면에서 노인은 젊은이나 중년보다 열등하게 취급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거의 모두 노인의 시기를 겪어야 함에도,  노인의 삶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과 경험으로 뒤덮여 있다. 의료계에서도 노인의 치료는 기피되는 분야이며, 노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헛되다는 선입견이 지배한다. 아픈 노인은 치료해도 쉬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든 악화하고, 결국 죽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신체는 젊은 성인의 신체와는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동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노인에 대해서도 별도의 연구와 진단이 필요함에도, 아동의 병에 대한 연구와 의사의 훈련은 보편적이지만, 노인의 병에 대한 연구나 의사의 훈련은 예외적으로만 이루어진다.

한편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보면, 젊은 시기보다 은퇴한 노인의 삶이 더 행복하다. 노인이 되면 젊은 시절 의식의 바닥에 흐르는 초조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사라지고, 주변에 골치썩이는 것들에서 해방된다. 물론 신체 능력이나 민첩도는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지만,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문제 상황에 빠질 위험성도 함께 줄어든다. 최소한, 젊은 노년층 (young-old), 즉 60세에서 75세까지의 시기에는 신체적 기능의 퇴화도 심하지 않고, 일상 생활 수행에 문제가 없고, 여행이나 취미 등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과거 인생의 어느 어느 시기보다 삶의 질이 높다. 물론 늙은 노년층(old-old), 즉 80세 이후에는 신체 능력의 퇴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일상생활의 수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 시기에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노인은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매도하는 것은 그릇되다.

모든 노인들은 자신이 익숙하고 오래도록 살아온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며, 이것이 노인의 건강과 복리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다.  방문 진료나 가정 방문 서비스 등을 통해 아무리 나이가 들은 노인이라도 자신의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노인의 복리를 높이는 길이다. 요양원과 같은 집단 시설은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인생의 최후의 단계에서만 선택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요양원에서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 특히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병원 산업은, 병을 치료하는 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구사해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현대 의학의 원칙은, 노인이라는 한 인간의 전인적 복리 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 한 인간 전체의 필요, 및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에 대해 복합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현대 의학은 병을 발생시키는 특정 신체 기관에 촛점을 맞추어 분절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겪는 병은 대체로 여러 인체 기관의 결함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다. 각각의 기관의 결함을 따로 따로 구분하여 분석적으로 다루는 접근은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노인의 건강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의학은 병을 치료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지, 환자의 건강, 나아가 환자의 복리 수준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의학은 병이 발생한 후, 이것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처치(treatment)에 집중한다. 반면 건강을 유지하려면, 아프기 전에 사전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 위생, 섭생, 운동, 사회관계, 삶의 목표 추구, 등이 그것이다. 이 요인 중 어느 것이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요컨대 의학 산업, 및 의료기관은 환자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처치 이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돌봐줄 사람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거주 환경이 부적절하다면, 아무리 병을 유발한 인체 기관에 대해 의학적 처치를 한다고 해도 병이 치유될 수 없다.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여 환자의 전반적 상황에 맞는 치료 방식을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개별적인 병과 인체 기관에만 국한하여 상황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치료하는 현재의 의료적 접근은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노인들은 병이 난 후 의학적 개입을 통해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의학과 건강간 목표의 불일치 문제는 심각하다. 저자는 노인에 대한 전인적인 보살핌(care)의 일부로서 노인병에 대한 접근(geriatrics)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인병과 관련한 의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의학으로 치유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으며 고통이 심한 경우,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한다. 즉 환자 스스로 자신의 복리를 판단해 죽음을 택하는 경우, 이를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책에서 지금까지 그녀의 모든 경험과 지식과 생각을 녹여서 쓰고 있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책이다. 다만 같은 메시지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읽기가 어렵다.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텐데. 여하간 이책을 읽으면서 늙어감, 노인의 삶과 생각 등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다. 책을 읽는 내내 근래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함께 했기에,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2022. 4. 30. 18:30

최현석. 2017.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서해문집. 739쪽.

저자는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 신체의 구성부분을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신체 부분의 용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동의보감의 한학 지식을 덧붙여 소개한다.

인간의 몸의 구성 부분과 기능에 따라 신경, 감각, 피부, 호흡, 순환, 혈액, 면역, 소화, 내분비, 생식, 비뇨, 근골격으로 장을 나누어 설명한다. 총 246개의 항목에 대해 설명한다. 각 부분에 대해 용어의 어원을 먼저 해설하고, 다음으로 해부학적 지식, 생리학적 지식, 병리학적 지식의 순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때때로 사회문화적 지식도 추가로 덧붙인다. 의학 지식의 발전, 다른 동물과 비교한 진화론적 설명, 발생학적 설명, 일반인의 상식과 과학적 지식의 비교, 건강을 위한 의사로서의 조언, 등 다양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통해 환자를 접하면서 얻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한 감, 인체에 대한 감, 의학적 치료에 대한 감이 행간에 배어 있다. 의학이 알고 있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정말 대단한 책이다. 저자의 지식의 폭은 물론,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 눈이 떠지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한국인 저자가 쓴 책 중,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이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19. 11. 30. 22:36

Randolf M. Nesse and George C. Williams. 1996. Why We Get Sick? Vintage Press. 249 pages.

의학에 진화생물학을 결합한 진화의학 (Evolutionary Medicine) 분야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으로 의학자와 생물학자가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책의 첫 두 장은 진화와 진화의학 이론을 소개하며, 이후에는 구체적 질병이나 인간의 몸과 기능을 예로 들며 이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진화 의학이 자칫 현재의 질병과 대응 상태를 정당화 하는, 즉 진화의 결과 선택된 것으로 합리화될 것을 우려하여, 저자는 진화의학의 가설의 검증 가능성에 관해 먼저 논의하면서 진화 의학의 과학성을 역설한다. 

인간이 겪는 질병과 이에 대한 대응은 진화적 선택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감염성 질환, 부상, 독성 물질, 유전적 질환, 노화, 알러지, 암, 성인병, 정신병 등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설명을 제시한다. 건강한 상태에 대해서도 왜 그러한지를 설명한다. 성과 출산 양육, 장기의 구조와 기능 등이 그것이다.

인간과 병원균의 진화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병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진화론은 유용하다. 예컨대 병원균과 숙주의 관계는 유전자를 확산시키는 병원균의 전략에 따라 다양하다. 모기와 같은 매개체에 의해 감염되는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은 숙주의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증세를 유발하나, 사람들간에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병원균은 숙주가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다. 숙주가 죽어도 병원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지장이 없는 전파 경로를 갖는 병원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숙주에 훨씬 심한 해를 가한다. 병원균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숙주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병이 날 때 열이 높아지는 이유는 높은 온도가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감염성 병원균과 우리 몸의 방어 체계는 서로 간에 창과 방패와 같은 경쟁을 한다. 방어 체계가 높아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병원균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우리 몸은 다시 이것을 뛰어넘는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방어 체계는 다중으로 복잡하게 되었다.

어떤 유전 형질은 우리가 젊을 때에는 생존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나 나이가 들면 생존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요산 과다가 그것으로 젊은 나이에는 과다한 요산 분비가 방어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나, 나이가 들면 통풍과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구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수명이 30~40이었으므로 요산의 부작용이 발현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러한 유전적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기타 유전 병들 또한 과거 수명이 짧을 때에는 해를 끼치지 않고 이익을 주던 형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식이 종료되기 이전 젊은 나이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반면, 종료된 이후에 해를 끼치건 말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원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은 후에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용 기제가 복잡할 수록 시간이 지나면 오류가 발생하고 오류가 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모한 일이 잘 안되었을 때나 사회 위계에서 억압된 위치에 있을 때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울증은 그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데, 이는 주위 환경에 대해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일이 잘 안되는 상황이고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넘쳐서 날뛰는 것은 헛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길일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지위가 높아질 경우 우울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자연 세계의 생물체는 다양한 종류의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자신을 방어한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포식자로부터 도망 칠 수없으므로 먹히지 않는 수단으로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경우가 많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하는 이유는 독성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 배아 발달의 초기에 독성 물질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우리 몸의 기관이 오래 사용하면 망가지는 경향이 모든 기관에 고르게 전개되며 이를 노화 현상이라 한다. 즉 노화 현상은 특정한 질병이 아니며, 어느 특정 기관을 고친다고 하여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식활동이 지난 몸체는 버리고 다음 세대의 몸에서 유전자를 이어가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이익이다. 우리 개체의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래 살면서 생식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과 짧게 살면서 생식 하는 두가지의 전략이 있다. 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지 않는 반면, 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는 전략을 취한다. 어느전략을 취하건 유전자의 생존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암이란 우리 몸 세포의 자가 복제 기능이 통제를 벗어나 무자비하게 전개되는 현상이다. 우리 몸의 다양한 기관의 수많은 세포를 각 기능에 맞게 계속 자가 복제하여 갱신해야 일이 매우 복잡하기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유전자의 복제 기능에 오류가 나타난 것이 쌓이기 때문에 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암이 발생할 수 있다. 여성의 생식 기관, 즉 자궁, 유방, 난소에서 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구석기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여성은 아이를 자주 낳지 않고 수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월경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결과 발생한 문제이다. 즉 과거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몸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특정 물질에 대해 알러지가 왜 일어나는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면역활동이 왜 전개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특정 물질이 우리 몸에서 독성으로 잘못 인식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 물질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몸에 해로운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그 물질에 대해 거부 반응을 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성인병은 과거 구석기 시대에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우리 몸이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욕구에 따라 마구 먹고 운동을 하지 않은 결과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다양한 질병과 임상 사례를 들어 진화론에 바탕을 둔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진화 의학이 최근에 나타난 의학 분야로서 연구가 미흡하지만 이론적 설명력은 높다고 주장한다. 이론보다는 치료에 치중하는 의학의 경향 때문에 진화 의학은 발전이 더디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이해를 깊이 하도록 유도하면서 진화 의학의 발전을 촉구한다. 흥미로우면서 내용이 풍부하다. 두번 읽을만한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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