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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0. 22:36

Randolf M. Nesse and George C. Williams. 1996. Why We Get Sick? Vintage Press. 249 pages.

의학에 진화생물학을 결합한 진화의학 (Evolutionary Medicine) 분야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으로 의학자와 생물학자가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책의 첫 두 장은 진화와 진화의학 이론을 소개하며, 이후에는 구체적 질병이나 인간의 몸과 기능을 예로 들며 이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진화 의학이 자칫 현재의 질병과 대응 상태를 정당화 하는, 즉 진화의 결과 선택된 것으로 합리화될 것을 우려하여, 저자는 진화의학의 가설의 검증 가능성에 관해 먼저 논의하면서 진화 의학의 과학성을 역설한다. 

인간이 겪는 질병과 이에 대한 대응은 진화적 선택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감염성 질환, 부상, 독성 물질, 유전적 질환, 노화, 알러지, 암, 성인병, 정신병 등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설명을 제시한다. 건강한 상태에 대해서도 왜 그러한지를 설명한다. 성과 출산 양육, 장기의 구조와 기능 등이 그것이다.

인간과 병원균의 진화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병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진화론은 유용하다. 예컨대 병원균과 숙주의 관계는 유전자를 확산시키는 병원균의 전략에 따라 다양하다. 모기와 같은 매개체에 의해 감염되는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은 숙주의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증세를 유발하나, 사람들간에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병원균은 숙주가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다. 숙주가 죽어도 병원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지장이 없는 전파 경로를 갖는 병원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숙주에 훨씬 심한 해를 가한다. 병원균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숙주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병이 날 때 열이 높아지는 이유는 높은 온도가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감염성 병원균과 우리 몸의 방어 체계는 서로 간에 창과 방패와 같은 경쟁을 한다. 방어 체계가 높아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병원균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우리 몸은 다시 이것을 뛰어넘는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방어 체계는 다중으로 복잡하게 되었다.

어떤 유전 형질은 우리가 젊을 때에는 생존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나 나이가 들면 생존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요산 과다가 그것으로 젊은 나이에는 과다한 요산 분비가 방어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나, 나이가 들면 통풍과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구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수명이 30~40이었으므로 요산의 부작용이 발현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러한 유전적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기타 유전 병들 또한 과거 수명이 짧을 때에는 해를 끼치지 않고 이익을 주던 형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식이 종료되기 이전 젊은 나이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반면, 종료된 이후에 해를 끼치건 말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원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은 후에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용 기제가 복잡할 수록 시간이 지나면 오류가 발생하고 오류가 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모한 일이 잘 안되었을 때나 사회 위계에서 억압된 위치에 있을 때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울증은 그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데, 이는 주위 환경에 대해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일이 잘 안되는 상황이고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넘쳐서 날뛰는 것은 헛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길일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지위가 높아질 경우 우울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자연 세계의 생물체는 다양한 종류의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자신을 방어한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포식자로부터 도망 칠 수없으므로 먹히지 않는 수단으로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경우가 많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하는 이유는 독성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 배아 발달의 초기에 독성 물질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우리 몸의 기관이 오래 사용하면 망가지는 경향이 모든 기관에 고르게 전개되며 이를 노화 현상이라 한다. 즉 노화 현상은 특정한 질병이 아니며, 어느 특정 기관을 고친다고 하여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식활동이 지난 몸체는 버리고 다음 세대의 몸에서 유전자를 이어가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이익이다. 우리 개체의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래 살면서 생식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과 짧게 살면서 생식 하는 두가지의 전략이 있다. 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지 않는 반면, 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는 전략을 취한다. 어느전략을 취하건 유전자의 생존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암이란 우리 몸 세포의 자가 복제 기능이 통제를 벗어나 무자비하게 전개되는 현상이다. 우리 몸의 다양한 기관의 수많은 세포를 각 기능에 맞게 계속 자가 복제하여 갱신해야 일이 매우 복잡하기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유전자의 복제 기능에 오류가 나타난 것이 쌓이기 때문에 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암이 발생할 수 있다. 여성의 생식 기관, 즉 자궁, 유방, 난소에서 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구석기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여성은 아이를 자주 낳지 않고 수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월경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결과 발생한 문제이다. 즉 과거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몸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특정 물질에 대해 알러지가 왜 일어나는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면역활동이 왜 전개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특정 물질이 우리 몸에서 독성으로 잘못 인식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 물질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몸에 해로운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그 물질에 대해 거부 반응을 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성인병은 과거 구석기 시대에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우리 몸이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욕구에 따라 마구 먹고 운동을 하지 않은 결과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다양한 질병과 임상 사례를 들어 진화론에 바탕을 둔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진화 의학이 최근에 나타난 의학 분야로서 연구가 미흡하지만 이론적 설명력은 높다고 주장한다. 이론보다는 치료에 치중하는 의학의 경향 때문에 진화 의학은 발전이 더디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이해를 깊이 하도록 유도하면서 진화 의학의 발전을 촉구한다. 흥미로우면서 내용이 풍부하다. 두번 읽을만한 대단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