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3. 1. 2. 11:51

Louise Aronson. 2019. Elderhood: Redefining Aging, Transforming Medicine, Reimagining Life. Bloomsbury. 400 pages.

저자는 노인병 전문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이 늙는 것과 노인의 치료와 돌봄을 주제로 하여, 그녀의 임상 경험, 전문 지식, 역사적 사실, 개인적 경험, 평소 생각 등을 뒤섞어서 서술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여 인구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60세가 넘어도 20~30년을 살게 되었음에도, 노인은 우리의 생각과 사회담론에서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이다. 모든 면에서 노인은 젊은이나 중년보다 열등하게 취급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거의 모두 노인의 시기를 겪어야 함에도,  노인의 삶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과 경험으로 뒤덮여 있다. 의료계에서도 노인의 치료는 기피되는 분야이며, 노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헛되다는 선입견이 지배한다. 아픈 노인은 치료해도 쉬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든 악화하고, 결국 죽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신체는 젊은 성인의 신체와는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동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노인에 대해서도 별도의 연구와 진단이 필요함에도, 아동의 병에 대한 연구와 의사의 훈련은 보편적이지만, 노인의 병에 대한 연구나 의사의 훈련은 예외적으로만 이루어진다.

한편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보면, 젊은 시기보다 은퇴한 노인의 삶이 더 행복하다. 노인이 되면 젊은 시절 의식의 바닥에 흐르는 초조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사라지고, 주변에 골치썩이는 것들에서 해방된다. 물론 신체 능력이나 민첩도는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지만,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문제 상황에 빠질 위험성도 함께 줄어든다. 최소한, 젊은 노년층 (young-old), 즉 60세에서 75세까지의 시기에는 신체적 기능의 퇴화도 심하지 않고, 일상 생활 수행에 문제가 없고, 여행이나 취미 등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과거 인생의 어느 어느 시기보다 삶의 질이 높다. 물론 늙은 노년층(old-old), 즉 80세 이후에는 신체 능력의 퇴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일상생활의 수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 시기에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노인은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매도하는 것은 그릇되다.

모든 노인들은 자신이 익숙하고 오래도록 살아온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며, 이것이 노인의 건강과 복리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다.  방문 진료나 가정 방문 서비스 등을 통해 아무리 나이가 들은 노인이라도 자신의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노인의 복리를 높이는 길이다. 요양원과 같은 집단 시설은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인생의 최후의 단계에서만 선택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요양원에서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 특히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병원 산업은, 병을 치료하는 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구사해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현대 의학의 원칙은, 노인이라는 한 인간의 전인적 복리 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 한 인간 전체의 필요, 및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에 대해 복합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현대 의학은 병을 발생시키는 특정 신체 기관에 촛점을 맞추어 분절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겪는 병은 대체로 여러 인체 기관의 결함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다. 각각의 기관의 결함을 따로 따로 구분하여 분석적으로 다루는 접근은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노인의 건강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의학은 병을 치료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지, 환자의 건강, 나아가 환자의 복리 수준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의학은 병이 발생한 후, 이것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처치(treatment)에 집중한다. 반면 건강을 유지하려면, 아프기 전에 사전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 위생, 섭생, 운동, 사회관계, 삶의 목표 추구, 등이 그것이다. 이 요인 중 어느 것이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요컨대 의학 산업, 및 의료기관은 환자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처치 이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돌봐줄 사람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거주 환경이 부적절하다면, 아무리 병을 유발한 인체 기관에 대해 의학적 처치를 한다고 해도 병이 치유될 수 없다.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여 환자의 전반적 상황에 맞는 치료 방식을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개별적인 병과 인체 기관에만 국한하여 상황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치료하는 현재의 의료적 접근은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노인들은 병이 난 후 의학적 개입을 통해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의학과 건강간 목표의 불일치 문제는 심각하다. 저자는 노인에 대한 전인적인 보살핌(care)의 일부로서 노인병에 대한 접근(geriatrics)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인병과 관련한 의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의학으로 치유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으며 고통이 심한 경우,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한다. 즉 환자 스스로 자신의 복리를 판단해 죽음을 택하는 경우, 이를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책에서 지금까지 그녀의 모든 경험과 지식과 생각을 녹여서 쓰고 있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책이다. 다만 같은 메시지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읽기가 어렵다.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텐데. 여하간 이책을 읽으면서 늙어감, 노인의 삶과 생각 등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다. 책을 읽는 내내 근래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함께 했기에,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