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ard Zinn. 1999.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present. Harper perennial. 688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모든 역사책은 강자,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나, 이 책은 약자, 억눌린자, 없는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백인 정복자가 아닌 인디언의 입장에서, 백인이 아닌 흑인의 입장에서, 부자가 아닌 빈자의 입장에서,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미국인이 아닌 제삼세계 사람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를 서술한다.
약자를 억압하고, 회유하고, 굴복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강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약속을 태연하게 어기고, 상대를 착취하고, 폭력으로 위협하고, 반항하는 사람은 고문하고, 신체를 훼손시키고, 죽였다. 약자는 강자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 짓밟히고, 때때로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반항하였다. 그러한 반항은 단기적으로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더 큰 억압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항이 거듭되면서, 크게 보면, 조금씩 처지가 개선되는데 기여하였다. 약자의 이익과 권리는, 강자에 대한 그들의 저항을 통해서만, 강자로부터 조금씩 양보를 받아냄으로서 진전되었다. 약자의 인간적인 삶의 권리는 결코 위로부터 시혜적으로 주어지 않았다. 피를 흘리는 투쟁을 통해 뺏어낸 것이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제도권은 모조리 가진자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오로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기여해 왔다. 미국의 양당 정치권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일반 사람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칙은 허울에 불과하다. 국민의 대표 중에 가지지 않은 자는 없으며, 이들은 가진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가진자를 위해 일한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일반인의 이익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치권에 대한 소외는 매우 심하다.
미국의 군사 외교 정책은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 정치인들이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을 언급할 때, 이는 미국 일반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의미한다. 미국은 제삼세계의 독재자를 지지하는 대신, 그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독립적인 지도자를 배제하는 데 열을 올린다. 제삼세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미국 자본의 이익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들 국민의 이익을 미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에, 미국은 갖은 수단을 써서 이들을 제거하려 한다. 중남미와 중동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 크게 걸린 곳이기에,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노골적이다. 칠레와 니카라과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CIA의 공작으로 만든 쿠데타로 뒤집어 엎었으며, 파나마에서는 운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조종하는 반군을 동원해 콜럼비아로부터 독립 정부를 세웠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석유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란, 이라크 등의 독재자를 지원하거나, 미국군을 동원하여 반대세력을 굴복시켰다.
이 책은 읽기 쉽게 쓰였으며, 곳곳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하기 때문에 서술에 힘이 있다. 역사란 지배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술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뼈져리게 느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약자의 좌절과 분노에 공감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 돌아가는 원리,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비록 달팽이의 걸음으로나마 약자의 지위가 나아져왔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오랫 동안 책장에서 먼지를 먹으면서 언제나 저 책을 읽게 될까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손에 잡으니 단숨에 읽었다. 대단한 책이다. 그가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제대로 커버했다면 정말 도움이 될텐데,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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