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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에 해당되는 글 8건
2021. 12. 6. 18:45

Mancur Olson. 2000. Power and Prosperity: Outgrowing communist and capitalist dictatorships. Basic Books. 199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집단행동론을 적용하여 한 나라가 부강하거나 가난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소수 이익집단에 의해 전체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시장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여 자원 활용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부강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먼저 권력의 논리 (the logic of power)를 제시한다. 인간 사회는 여러 작은 규모의 폭력 집단들이 보호비 명목으로 사람들을 강탈하는 무정부 상태로 시작하였다. 이들은 그들이 강탈하는 사람들의 복리나 생산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강탈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탈하며, 사람들로부터 더 이상 강탈할게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강탈을 계속한다. 이러한 여러 폭력 집단 중에서 세력을 키워, 이들이 보호 내지 착취하는 대상이 커지고 한 곳에 정주하는 지배 세력이 되면, 이제 그들의 강탈 행태는 과거 작은 폭력 집단이었을 때와 달라진다. 그들은 피착취민의 생산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강탈을 조절하며, 나아가 사람들의 생산력을 높여서 그들이 강탈할 근거를 두텁게 하는 데로 관심이 이전한다. 폭력집단의 세력이 매우 커지면 그들이 착취하는 사람들과 함께 국가를 형성하며, 폭력집단이 피지배집단으로부터 강탈하는 보호비는 다름아닌 국가의 세금이 된다. 국가는 영토내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이며, 근본적으로 지배집단의 이익에 기여한다. 

지배집단은 피착취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의 일부를 피착취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다. 국가가 생산하는 공공재가 바로 그것이다. 대외적인 안보, 국내의 치안, 도로 등의 바로 그것이다. 피착취민은 지배집단이 제공하는 공공재 덕분에 안정적으로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있기 때문에 그들의 지배/착취를 지지하기까지 한다. 피착취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것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배집단은 피착취민의 대표와 타협하고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도록 회유한다. 피착취민들이 얼마만큼의 세금을 낼지 그들의 대표를 통해 지배집단과 밀고당기는 과정에서 의회가 탄생하였으며, 영국의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공공재를 적절히 조달하는데, 민주주의가 권위주의 정부보다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집단적인 노력을 투입하여 수행해야 하는 일에는 항시 무임승차자 Free rider 의 문제가 발생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집단 전체의 이익에 배치되게 행위하는 문제는 무임승차자 문제의 일부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행위이지만 집단 전체로볼 때는 비합리적으로 일이 돌아간다. 모든 사람들에게 법이 균일하게 집행되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 집단 전체의 이익에 배치되게 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구 소련의 계획경제는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될 수 없었다. 지배집단이 생산수단의 집단화를 통해 생산자들로부터 과도하게 뽑아낸 이익을,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할 목적으로 국민에 대한 권위주의적 감시와 군비경쟁의 비용으로 과도하게 지출하였다. 시장기구를 통한 자원의 배분이 아니라 위로부터 명령에 의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생산자들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 중 생존의 수준을 넘어서는 부분은 전부 수탈당하므로,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도 거의 모두 수탈당할 것이 확실하다면 아무도 최소한의 선을 넘어 추가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항시 존재하는 내부로부터 및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대응하여 변화해야 한다. 이때 생산성이 낮은 분야로부터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자원이 이동해야 경제 전체의 부가 증가한다. 소련의 계획경제는 상황 변화에 대한 적응이 매우 더디었다. 상황이 변화하여 어떤 기업이나 생산 방식이 비효율적이 되더라도, 위로부터의 명령에 따라 자원이 계속 그 비효율적인 부문으로 할당되는 반면, 새로이 생겨난 효율적인 부문에는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지 못했다. 투입보다도 더 낮은 산출을 하는 비효율적인 부문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을 하면서 전체의 생산력을 갉아먹었다. 비효율적인 부문에 종사하는 경영자와 노동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이익에 배치되게 행한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소련의 생산성은 서방세계에 뒤쳐졌으며, 서방 세계와 경제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면서 국민들이 정부에 이반하였다.

모든 사회에는 사람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거래가 생겨나며 이를 통해 경제 전체로 큰 이익을 거둔다. 그러나 물건의 단순한 교환을 넘어선 복잡한 거래는 사회적으로 복잡한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유 돈을 가진 사람이 기업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것은 금융제도가 갖추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장기적 안목에서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구입하고, 불확실하지만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사람들 사이에 위험을 공동으로 묶어 보험을 만드는 등, 생산성 높은 복잡한 경제행위는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

세상 일의 성패에는 운이 많이 작용한다. 어떤 사업, 어떤 방법이 성공할지 미리 알 수 없다. 운이 따라서 성공한 사업이나 방법으로 거둔 수익을 그 사람이 모두 누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반면, 실패한 사업이나 방법은 불운 때문에 그리되었을 수 있으므로, 실패의 책임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라는 것 역시 불공평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실패한 사업이나 방법에 국가가 보조금을 투입하여 계속 지속되도록 한다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실패한 사업/방법으로부터 성공한 사업/방법으로 자원이 이동하도록 해야 전체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된다. 시장은 바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 시장의 효율성이 발휘된다면, 사람과 자원의 잠재력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발휘될 것이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계약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생산성이 높은 복잡한 경제행위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선진국에는 구비되어 있으나 개발도상국에는 결여되어 있다. 한편, 소수의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면서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에도 만연해 있다.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와 소수의 집단의 이기적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면,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혁신이 계속되면서 부강해질 것이다. 반대로 사유재산의 보호가 미흡하고, 일부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전체에 우선하는 행위가 제지 없이 마구 자행된다면, 그 경제에서 생산성 높은 경제활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민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생 동안의 연구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문장이 길고 복잡하여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현학적인 이론을 구사하지 않아 일반인도 논의를 따라갈 수있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으로 드물게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고 바로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그가 오래 활동을 했다면 통찰력있는 많은 작품을 남겼을텐데 안타깝다. 다시 읽어볼만한 좋은 작품이다.

2021. 8. 22. 22:15

Mancur Olson. 1982. 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 Economic growth, stagflation, and social rigid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7 pages.

저자는 정치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의 나라들이 오랫동안 안정되고 흥성하면 반드시 쇠퇴한다는 명제를 제시하면서 현재와 과거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이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안정된 사회에는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 형성되면서,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생산성 향상에 실패하면서 경쟁국들에게 뒤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회가 안정될수록 소수의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공모를 한다. 사회의 다수는 이들 소수들의 이익집단에 대항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집단 행동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수는 조직하기 힘들며, 공짜 편승(free rider)의 문제로 인하여 전체의 이익을 위한 집단행동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들의 집단은 경제의 효율성을 갉아먹으며, 정치를 분열적으로 만든다. 소수들의 이익 집단들 내에서 의견을 조정하려면 많은 노력을 요함으로, 결국 소수들의 이익집단들이 조정하는 정치는 의사결정을 더디게 만든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소수의 집단들이 공모하여 전체의 생산성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향은 필연적이므로,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오래 번성하던 국가는 거의 모두가 결국 정체하고 외세의 침략에 무너졌다.

소수들의 이익집단이 지배하는 정치는, 기술과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자원의 배분을 변경하는 방식의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자원의 배분을 변경하면, 소수들의 집단의 이익이 훼손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를 거부하는 힘은 생산성의 향상을 어렵게 만들며 성장을 둔화시킨다. 소수들의 집단은 사회를 배타적으로 만들며 다양성을 제한한다. 이익집단의 수가 늘고 힘이 커지면, 정부의 규제가 복잡해지고, 정부의 규모가 커지고, 결국 사회와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며 정체된다.

저자의 이론은 영국이 산업혁명 이래 역동적이었던 경제가 19세기 후반으로 들면서 왜 정체하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한편, 일본과 독일은 두차례의 전쟁에 패한 이후에 빠른 성장을 보였는데, 이는 기존의 소수들의 이익집단들이 전쟁을 통해 모두 사라지면서, 새로이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대만도,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과거의 기득권 집단이 사라지고 판을 새롭게 하여 시작하였기에 빠른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반드시 전쟁이 아니라도, 국가 통합이 이루어지거나 자유무역이 확대되는 경우, 소수들의 기득권집단이 지배하는 지형은 크게 변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된다. 유럽 통합이 전자의 대표적 예이며, 2차대전 후 미국의 주도로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이 확대된 것이 후자의 예이다. 기존에 보호무역의 장벽 뒤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은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해외로부터의 경쟁에 노출되고, 이들은 변화할 수 밖에 없었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남미의 국가들이 수입대체 산업화를 표방하면서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한 결과 경제가 정체한 반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해외 무역에 집중하여 경제를 개방하였기에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중세의 길드 조직, 인도의 카스트, 제삼세계의 인종과 민족 갈등와 같은 극도의 불평등, 편견, 차별을 포함하는 사회구조는 생산성 향상을 막는다. 이러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구조의 지배층들이 새로운 변화와 효율적인 자원의 재분배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들의 집단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산성을 향상하려는 노력이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변화를 거부한다. 이것이 제삼세계가 가난한 주요 이유이다. 

소수의 이익집단은 보편적인 법의 적용을 막는다. 대신 법을 뒤틀어, 즉 예외 조항을 덧붙이고 규제를 복잡하게 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이 집행되게 만든다. 사회가 오래 안정될수록 법 조항이 복잡해 지고, 소수들의 이익집단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이 만들어지고, 이들에 봉사하는 전문직 집단들이 두텁게 형성된다. 세무사, 변호사, 금융 종사자, 등이 그들이다. 

저자의 집단행동 이론 (logic of collective actions)은 사회과학계에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치경제 이론 역시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평이한 서술이지만, 그의 설명은 대단한 설득력을 지닌다. 미국에서 왜 정치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지, 많은 사회에서 왜 혁신적인 기술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그의 이론을 따른다면, 역사는 일종의 사이클을 그릴 것이다. 오랫동안 흥성하면, 결국 정체하다, 다른 나라에 따라잡혀서 뒤지게 되고, 전쟁을 통해서 판이 뒤업어지면, 다시 새판에서 역동적으로 발전한다는 논리이다.  사회가 오랫동안 안정되면 점차로 불평등이 확대되게 되고, 결국 전쟁이나 엄청난 갈등을 통해 뒤집어지면서 불평등이 완화고, 다시 점차 불평등이 확대되는 사이클을 그린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논리를 집단행동 이론으로부터 유추해내었다. 즉 마이크로 이론으로부터 매크로 이론을 도출해낸 것이다. 대단한 독창성이다.

2021. 2. 4. 10:24

Roburt Kuttner. 2018. Can Democracy survive global capitalism. W.W.Norton. 309 pages.

저자는 American Prospect 라는 진보적 시사 잡지의 창간인으로, 이 책은 세계화, 특히 세계 자본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출현한 근래의 경향을 분석한다. 왜 그러한 흐름이 전개되는지, 그러한 현상을 막으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배경으로 진단한다.

미국은 1930년 대공황시기에 뉴딜정책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탈피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모든 계층의 소득이 향상되고, 사회보장과 복지제도가 확대되고, 소득불평등이 감소하였다. 서구 유럽 역시 전후의 폐허를 딛고 부흥하면서 복지국가체제를 공고히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자본가, 특히 금융자본의 세력은 억제되었으며, 브레튼 우즈 국제금융체제 덕분에 국제금융시장은 안정되고, 노동조합 가입율이 높게 유지되고, 완전고용의 목표가 실현되었다.

1973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고, 미국이 금본위체제를 포기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경제불황이 심각해지면서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섰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장 위주의 신보수주의 노선을 표방하였다. 규제를 풀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복지를 축소하고, 세금을 감면하면서 자본가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자본가, 특히 금융자본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여 위험이 높은 투자를 하면서 큰 돈을 벌었으나, 결국 고위험의 금융 행태는 실물경제와 어긋나게 되어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험한 행위로 큰 돈을 번 자본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여전히 고위험의 금융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신보수주의 정책으로 어려움에 빠졌다. 시장의 힘은 강화된 반면 노동자의 조직력은 약화되면서 자본가에 대비해 노동자의 협상력은 크게 떨어졌다. 생산성 증가분을 자본가가 가져간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되었다. 국제분업체제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공장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였고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과거에 좋은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지고 노동조건은 악화되었다.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불안정하며 낮은 임금의 서비스직 일자리만 남게되었다.

세계화로 국가와 지역들 사이에 자본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세금은 낮아지고, 노동자의 힘은 약해지고, 반면 국제 자본의 힘은 강해졌다. 재정이 악화되면서 유럽에서도 과거에 후했던 복지제도는 후퇴했다. 전세계적으로 진보주의 세력은 약해진 반면, 보수주의 세력은 강해졌다.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여 기존의 제도권 정치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대가 높아졌고,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호응을 얻게 되었다.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은 노동자의 불만에 감정적으로 부응하였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노동자보다는 자본가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를 부정하고, 폭력을 옹호하고,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정치인이었다. 노동자의 불만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권위주의적 정치가 득세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저자는 각 국가가 주권을 행사하여 세계 자본의 힘을 제한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경제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고, 연금,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의 내실을 높여 노동자의 삶이 안정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제 자본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 세금을 감면하도록 압박하고, 노동자 보호에 제한을 가하도록 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선진국이 함께 협력하여 국제자본의 힘을 제한할 때 이것이 실현될 수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자본가에 포획되어 있으므로, 기존 노선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국민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진보주의 정치인이 출현하고, 그가 국민의 적극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본가의 세력을 제한하고 노동자 보호 제도를 확충하는 과감한 개혁을 하여야 한다.

저자의 20세기 미국과 유럽의 정치경제의 전개에 대한 서술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선진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주장이 그렇듯, 그것은 대체로 선진국의 입장만을 반영한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1970년대 이래의 세계화로 선진국 자본의 힘이 강화되고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의 힘이 약화된 것은 맞지만, 이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의 빈곤이 크게 개선되고 많은 사람의 소득이 상승하였다. 세계화로 선진국 자본이 거둔 이익보다 개발도상국에 일반 사람들의 소득의 증가분이 훨씬 더 크다.  즉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1970년대 이래 세계 정치경제의 전개는 매우 긍정적이다.

정치는 각 나라 내에서 벌어지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자본가의 경제 행위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혼란이 경제를 망쳐버릴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 경제에 혼란이 발생하면 개발도상국의 경제에도 어려움이 전파될 것이다. 결국 세계화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저자의 진보적 정책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인 진단과 방향 제시는 맞는 말이다.

2020. 5. 29. 21:40

 

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경제생활을 인간의 본능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공격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과거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르는 사람(strangers)을 마주쳤을 때, 상대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기보다는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는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에 진화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어떻게 좁은 범위의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타집단의 사람에 대해, 두려워하고 피하거나 공격하기보다 서로 다가가 평화롭게 접촉을 유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상대에게 받은 호의를 되값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다. 인간은 거래의 본능이 있는데, 유사한 가치의 것을 교환하므로서 서로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온다. 인간은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대에게도 받은 것에 상응하는 것을 되주려는 성향을 보인다. 즉 인간의 호혜적 교환은 계산의 결과이기보다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이방인을 공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서로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은 이러한 성향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선택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등한 거래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정착시킨 덕분이다. 시장기구와 사유재산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거래 당사자가 계약을 존중하지 못하면 국가의 권력을 동원해 계약을 강제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위해서 필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깨어지기 쉽기 때문에 항시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안정적인 거래를 위협하는 요인을 방치하면, 금방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지배하려하는 인간의 본능이 고개를 든다. 

한편 상대가 나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고 상응하는 것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발전시켰다. 거래의 공정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바로 이러한 본능이 서로가 잘하는 것을 각자 수행하면서, 각자가 생산한 것을 서로 교환함으로서 모두가 이익을 더하게 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분업을 통해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분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이를 터널 비젼, 즉 자신의 좁은 이익만을 돌보는 방식인데,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터널 비젼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전체의 이익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전체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선을 위해 일할 때 부의 총량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바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는 전체의 선을 위해 중앙집중적으로 계획하는 공산주의 체제보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결정하는 분권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이다. 명령과 복종에 의해, 혹은 이념에 추종하기 때문에 맺어진 정치적 관계보다는, 상호의 이익을 가져오는 상업적인 거래관계, 모두가 시장 가격의 신호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관계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분업의 효율은 다른 한편으로, 분업에 참여하는 구성 부분간에 조율이 어그러질 때 문제를 발생시킨다. 경제 불황은 바로 이 분업이 어그러진 결과이다. 2008년에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체는,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넘어 빚을 내어 집을 산 개인들이다. 위험한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위험이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개인 각자의 결정으로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도모하는 것, 즉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나타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은 국가의 조정을 통해 이러한 집합적인 일에 참여함으로서 개인 각자가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즉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관개사업을 하는 것이나,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와 성벽을 쌓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거래관계이다. 거래관계의 당사자 국가 간에 규모의 차이가 클 때, 그들간의 관계는 실용적인 대등한 거래관계로부터,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 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면서 다른 나라와 호혜적인 거래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는 데, 이는 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이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을 계속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근래에 미국이 자국이익 우선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보통의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자연적인 관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공격하던 본능을 극복하고 서로 거래를 하고 분업을 하면서 의존하는 경제관계로 발전시킨 것을 '위대한 실험'(Great Experiment)이라고 한다. 인간은 여전히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좁은 집단 범위에만 이익을 나누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주의(tribalism)적 성향이 강하기에 이러한 위대한 실험은 깨어질 위험성이 높다. 우리 가족, 우리 친족, 우리 지역, 우리 동창,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인종에 우선권을 주고 외부인에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성과는 이러한 본능을 자제하고 낮선 사람과 함께 일하고 낮선 사람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 결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취약하며, 실제로 무너지는 경우를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본다. 인간은 앞으로 진화해야 할 길이 멀다.

이 책은 경제 철학이다. 경험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술하고 설명한다. 프랑스 학자의 책 답게 주절이 주절이 말이 많다. 잡다하게 관계된 논의를 모두 망라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다. 자신의 주장을 명료히 하면서 직설적으로 쓰는 영미권의 학술 풍토와는 많이 다르다. 이를 모두 읽어내느라고 고생했다. 저자의 설명이 장황하여 따라가다보면 지치기에, 과연 이러한 서술방식이 효과적인지 의심스럽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은 생각이 자유분방하고 통찰력을 준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그것에 비해 각광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 3. 7. 12:22

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새로운 정치경제 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역설한다. 1980년대에 농구 경기에서 30초내에 슛을 해야 하는 규칙을 도입하여 프로농구 산업이 살아나게 된 사례를 예를 들어,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제도는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는데, 아이디어는 학자의 머리에서 나오거나, 혹은 일반인의 생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저자는 책전체를 통해 세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민주주의는 왜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어 내는가? 둘째, 왜 실패한 정책은 사회적으로 낭비적이고 더 좋은 대안이 존재함에도 폐지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가? 셋째, 왜 어떤 낭비적인 정책은 폐지되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답하려면 정치경제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기에 이 책의 전반부는 서구의 정치 사상과 경제 이론의 역사를 훑는데 할애한다.

민주주의가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고 이를 오랫 동안 유지하는 이유를 경제학의 공공선택 이론(public choice theory)에서 찾는다. 정부의 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참여자들간에 거래로 형성된다. 공공의 자원은 이익 집단 간에 거래에 의해 배분된다. 정치인과 정부 정책은 결집된 이익(focused interest)을 가진 소수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반면, 분산된 다수의 소비자의 이익은 무시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부가 다수의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만들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이다. 

어떤 낭비적 정책이 폐지되려면 대안적인 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식인들의 활동을 통해 점차 확산되고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면, 대안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며 낭비적 정책을 대체한다. 그 단적인 예로 로크의 천부인권론과 몽테스퀴에의 견제와 균형 이론이 미국의 민주주의 헌법을 낳았으며,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이 대공황 시기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낳았으며, 맑스의 유물론적 계급투쟁이론이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낳았으며, 하이에크의 개인의 자유와 시장을 최고로 두는 이론이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정책의 밑바탕을 제공하였다.

근래에 미국에서 아이디어가 제도를 바꾼 구체적 사례를 네가지 제시한다. 첫번째 사례는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주파수 경매제도이다. 이전까지 통신 주파수는 정부 위원회의 재량적 판단에 의해 소수의 업체에게 할당되었다. 경제학자 로날드 코스는 1950년대 이래 줄기차게 주파수는 토지와 마찬가지로 시장원리에 의해 배분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이론적으로 설명했으나, 1990년대까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신 제도가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이동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결국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업자에게 주파수를 경매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두번째 사례는 1980년대 초반에 전개된 항공산업 자유화이다. 그때까지 항공 요금이나 취항 노선은 정부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었으며 신규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러한 지나친 규제는 항공 안전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지속되었다. 경제학계는 1960년대 이래 항공 산업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나, 기존 항공업계의 이익에 가로막혀 변화가 어려웠다. 1970년대에 오일쇼크로 경제 전반에 인플레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시험을 할 기회가 열렸다. 소수의 노선에 대해 제한적으로 가격할인 경쟁이 붙었으며, 경제위기의 와중에 와싱턴 정치계에서 완전히 국외자였던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고 항공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장에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가 임명되었다.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온 젊은 정치인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의회에서 개혁 논의를 주도하면서 마침내 1982년에 항공산업은 완전 자유화되었다.

세번째 사례는 1996년 빌클린턴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진 복지 개혁이다. 빈곤자를 구제하는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 사회보장 시스템을 낳았고, 1960년대 존슨 정부 시절에 빈곤과의 전쟁이라는 구호하에 다양한 복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1990년대 들어 미혼모의 문제가 커지고, 기존의 복지제도가 복지에 의존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높아지면서, 결국 복지 수혜자의 복지 혜택 수급년한을 제한하고 구직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제도가 개혁되었다. 이는 정부의 복지제도가 '사회가 도와줄 가치가 있는 빈곤자' (deserving poor)를 선별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관철된 경우이다. 

네번째 사례는 2008년의 금융위기이다. 자신 소유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으로 오래전부터 미국 문화에 이상화되었다. 정부가 사람들의 자가 소유를 권장하는 정책에 착수한 것은 1930년대부터 이며, 이차대전 이후에 더욱 강화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정부의 자가소유 권장 정책은 보다 구체화되어, 정부가 모기지(장기 주택저당 대부)를 지원하는 기관을 설립하였고, 금융기관이 사회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모기지를 제공한 실적을 금융기관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까지 됬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응하여 금융기관은 신용이 부실한 가구에 모기지를 남발하였으며, 신용평가회사는 부실한 모기지에 근거한 채권을 우량등급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소득이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너도 나도 집을 사는 붐이 일면서 주택가격의 거품이 형성되었다. 2008년 갑자기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기관은 엄청난 부실채권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하여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을 구제하기에 이르렀다. 자가소유라는 아이디어가 낭비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에따라 사람들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여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만들어 낸 대표적 사례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제도를 낳고, 이것이 좋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면서 사회가 선순환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조건이 맞을 때에만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제도로 구체화된다. 이때 적절한 조건이란, 집단간의 이익 구조에 균열이 생길 때이다. 아이디어와 사회 조건 중 어느 쪽이 변화를 위해 더 중요할까? 어느 쪽이 항시 옳다고 일괄적으로 주장할 수없다. 사안에 따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경우가 있고, 혹은 사회조건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사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기득권자가 버티고 있는 사회조건에 가로막혀 제도변화로 이끌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예컨대 우버가 대표하는 공유경제의 도입과 기존 택시업자간 갈등은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조건 때문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기존의 정치사상과 경제이론을 모두 검토하겠다는데, 황당한 발상이다. 수많은 사상가와 이론가의 주장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면서 요약해 놓아서, 별로 통찰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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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 21:08

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Idea for Sane World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4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그가 근래에 쓴 몇개의 글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수년전에 Globalization Paradox의 논지와 연결되는데,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며 그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교육수준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세계화로 큰 이익을 얻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은 피해를 본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높인다. 이러한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반발로 근래에 서구사회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각 국가 고유의 제도와 독립성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가 연결되어야 한다. 각 나라의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와 경제 구조가 온존될 때에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있다. 현재와 같이 세계화의 패배자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가 전개된다면, 정치적인 혼란과 세계화의 후퇴를 피할 수 없다.

세계화 낙관론자들은 앞으로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하지만, 국가의 역할은 강건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국가가 대응하며,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관리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맞추어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므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한, 국가의 주권을 국외의 기구에 완전히 위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유일한 예외는 유럽 연합인데, 그곳에서도 국가가 주요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각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화,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이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셋 중에 두개만 조합할 수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희생되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모두 동시에 만족될 수없는 이유는, 각 국가는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를 통해 그 나라 고유의 선호와 제도가 구축되어 있기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북유럽 국가의 높은 세금, 높은 평등, 높은 복지를 선호하지 않으며, 반대로 북유럽 사람은 미국의 높은 불평등, 높은 위험부담을 선호하지 않는다.

세계화와 민주주의가 조합된다면, 즉 구성원의 요구에 답하면서 세계적으로 단일체제를 이루려고 한다면, 각 국가 고유의 선호와 각 국가의 주권은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각 국가는 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정치 경제를 운영하므로 세계적인 단일 체제는 허용될 수 없다. 세계화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즉 각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계적 단일체제를 구축한다면, 각 국가의 구성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경제 단일체제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에 걸맞게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덜컹 거리며 위기에 취약하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아시아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여나갔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제조업이 성장하기 전에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빠르나, 서비스업은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지 못하므로 가난에서 탈피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자동화로 제조업의 노동수요가 감소한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제조업 국가가 버티고 있기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 이유,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안정, 특히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예가 많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영국의 산업화 과정, 독일의 지주계층이 산업화에 뛰어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절한 전략과 환경이 마련된다면 정치와 충돌하지 않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득이권 구조가 경제발전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경제발전을 이끈다. 예컨대 중국에서 제한된 지역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 시장경제가 운용되도록 한 것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류층이 자신의 계급 이익에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배집단이 정체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계급 정치(class politics)가 지배한다면 각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할 것이지만,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지배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정체성, 즉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창하는 정치인도 지지한다. 부자들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환기시킴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잊도록 하는 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한다. 

선진국에서 세계화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세계화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의 정책은 미국에서 지지 받지 못했다. 1980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산업전환보상법의 예산을 삭감하여 무력화시켰다.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직장을 잃고 소득이 낮아진 사람들에게 기술훈련을 시키고 보상을 주는 방법은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으나, 그곳에서도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부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각 나라가 자신의 규제와 제도 환경을 보호하도록 하면서, 공정무역을 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조정하는 길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와 유사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면서 생산하도록 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유아노동이나 착취적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 규칙을 모두 준수한다면, 선진국 사람들도 자신의 일이 개발도상국으로 옮아가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즉 포용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계화의 패자에게 갈곳이 없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은 위험하다. 좌파는 이들을 포용할 수있는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결국 이들의 분노를 이용한 대중영합주의적 민족주의적 우파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이는 세계화를 좌초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성장의 다양한 쟁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국가가 자신의 제도적 주권을 유지하면서 세계화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세계화에서 패배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조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등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도록 하여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선진국 사람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빈곤한 나라에 선진국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장 빵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보호는 뒷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설사 공정무역을 한다고 해도, 선진국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의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이전한다면 그들이 여전히 분노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에서 기술 발전으로 자신의 비효율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공정경쟁으로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틀리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건 경쟁력이 떨어져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사회적 지원을 후하게 해주어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만이 그들을 달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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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7. 16:16

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

 

2019. 11. 22. 20:54

Daron Acemoglu and James A. Robinson. 2019. The Narrow Corridor: States, Societies, and the Fate of Liberty. Penguin Press. 496 pages.

Why Nations Fail 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저자의 후속작. 이전의 책이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에 촛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 책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는 원인을 분석한다. 고대부터 최근까지 시대를 망라하며 서구에서 아시아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는 책 초반에 자신들이 개발한 국가 발전이론을 소개한다. 밑으로 부터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고, 위로부터 국가의 조직과 행정력이 굳건하여, 이 두개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 견제할 때에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치체제가 발전한다. 이 두세력이 균형을 이룰 때 '견제된 국가' (shackled leviathan)이라 칭한다.  국가의 힘이 강력한 반면 사회의 힘이 약하다면 '독재적 국가'(despotic leviathan)로 흐르며, 반대로 사회의 관습과 조직은 강한 반면 국가의 힘이 약하다면 '무정부 상태'(absent leviathan)가 된다.  견제된 국가 체제에서만 국민의 자유는 보장된다. 반면 관습과 부족의 힘이 강한 무정부 상태에는 전통에 포획된 구속 상태에서 살기에 자유가 없으며, 독재적 국가에서는 독재자 집단의 권력 횡포에 눌려 국민의 자유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견제된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 두개의 세력이 어떻게 상호 타협을 잘 해가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동태적인 과정이다. 

국가와 사회간의 세력 관계는 자유만이아니라 경제발전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자유가 보장될 때에만 시장이 활성화되며 개인의 창의, 기업가 정신, 새로운 발명이 촉진되므로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바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견제된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독재적 국가나 무정부 상태에서는 변화로 인하여 기존 질서와 기득권이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견제된 국가 체제에서는 사회의 요구와 국가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므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서로 힘이 확대되는 경로를 밟는다. 사회로부터의 요구가 증가하고, 이에 대응하여 국가의 권력과 행정력이 확대되고, 이에 대하여 사회의 견제 장치가 치밀해지는 선순환을 거친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북구의 복지국가를 예로 든다. 그 나라들은 국가의 역할이 큰 대신 민간의 참여가 높아 서로 균형을 이룬다. 반대의 예로는 아프리카나 남미의 일부 나라들 처럼 국가의 행정력이 미약하고 사회가 분열되어 있어서 국가에 대한 요구나 국가에 대한 효율적인 견제가 가능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에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랄 만한 것이 없고, 사회의 조직도 미약하여 국가에 대해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유명무실한 국가'(Paper Leviathan) 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에 따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왜 정치경제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서유럽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게르만족이 민의를 반영하여 결정을 내리던 전통이 서유럽 사회문화 밑바닥에 흐르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이러한 바탕에 기반하여 상인과 산업자본가의 상승하는 세력이 왕권을 견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견제된 국가 체제를 낳았다.

반면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의 권력과 질서를 강조하는 법가 사상이나, 혹은 위정자의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이 전 역사 시기를 관통하였다. 중국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참여는 간헐적인 폭동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 다만 관습의 구속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독재적 국가 권력과 결합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 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할 뿐이다. 이러한 중국 체제에서는 기존의 관습이나 기존 지배층의 권위에 균열을 가져올 어떻한 변화도 거부한다. 근래 중국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이 일어난 것은 독재적 국가도 어느 정도까지는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창의와 변화에 대한 개방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중국은 그것이 없으므로 앞으로 갈수록 경제 발전이 지체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도 역시 카스트의 관습이 정치경제를 지배하는 상태이므로 국가의 역할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결과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며 경제발전에 장애로 작용한다.

저자는 미국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한다. 건국의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도입될 수있었던 이유는 남부의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타협에서 나온 것이다. 대공황 이후에 정부의 역할이 확대될 수있던 것은 진보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밑으로부터의 참여가 높아진 덕분이다. 근래에 세계화와 자동화로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불만이 높아지면서 사회와 국가의 균형에 틈이 생겼으며 그 틈으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머리를 들었다. 이들은 기존의 국가 제도를 비하하며 밑으로부터의 참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포섭하는 정치인이다. 과거에 히틀러가 1치대전 이후 독일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권력을 잡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국가와 사회간의 관계가 윈윈의 관계로 설정될 경우 민주주의가 전개되고 자유가 보장되지만, 둘간에 제로섬의 관계로 싸우게 될 때에 견제된 국가의 경로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과거에 그리스의 사례나 오늘날의 대중영합주의의 사례에서 보듯이 견제된 국가의 경로에 있던 나라들도 이 경로에서 이탈하여 독재적 국가의 상황으로 퇴행할 수있다.

이 책은 거의 전세계 주요 지역과 나라들의 역사를 망라하여 종횡무진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자신들의 이론이 분명하므로, 그렇게 다양한 사례와 시기를 예로 들고 있음에도 설명이 명쾌하다. 대단한 책이다. 몰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두번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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