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n Levitsky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Crown. 231 pages.
저자는 남미 정치와 유럽 정치를 전공한 정치학자들로, 이 책은 미국에서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과정을 남미와 유럽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원활히 작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헌법과 같은 형식적 제도의 힘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상대를 합당한 경쟁자로서 인정하며 반대 행위를 인내하고 상대와 타협하는 비공식적 규범의 힘이라고 한다(tolerance and forbearance).
미국의 정치는 1970년대 중반이래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양극화가 심해졌다. 지난 수십년동안 공화당 정치인은 상대를 합당한 경쟁자가 아니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무너뜨려야 하는 적으로 보았다. 지금까지 전통으로 내려오던 정치적 신사도를 저버리고 법이 허용하는 한 최고의 극단적 방법을 쓰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도날드 트럼프는 그러한 근래의 흐름에서 출현한 극단적인 정치인이다.
왜 근래에 미국의 정치가 그렇게 양극화되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1960년대 이래 미국의 정치지형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1960년대 민권운동 이전에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우호적인 경쟁자로여기며 정치를 했다. 이는 1870년대에 남북전쟁 이후 남부와 북부가 정치의 장에서 흑인을 완전히 배제하고서 만들어진 우호적 관계이다. 문제는 민권운동으로 흑인이 미국의 정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서 발생했다.
1980년대 이래 민주당은 유색인과 세속적 세계관쪽으로, 공화당은 백인과 기독교 쪽으로 동질성이 높아졌다.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백인 민족주의자 White Christian nationalists 들은 1960년대의 민권운동과 이민법 개혁이래 흑인과 유색인 이민자가 점차 늘면서, 과거 미국의 주류로서 압도적 다수의 지위가 무너지는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다수 집단의 지위가 도전을 받을 때 이들은 상대에게 매우 공격적이 되는데, 공화당이 1979년의 뉴트 깅그리치 출현 이후에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를 무너뜨리고 제압하려는 전술을 구사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오바바를 미국에 충성하지 않는 진짜 미국인이 아닌 un-American 사람으로 매도하였으며,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일을 모두 반대하여 좌절시키는데 총력을 다하였다. 이런 극단적인 전술이 횡횡하면서 정치가 파행을 보이자, 기존의 정치계를 깡그리 부정하고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영합주의적 외부자 populist outsider 인 도날드 트럼프가 기회를 잡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 미국이 오랫동안에 걸쳐 만들어 놓은 민주적 전통과 관행을 무시하고 극단주의와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정치를 펼친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권위주의로 이행하는 몇가지 징표가 있다. 첫째는 정치인이 민주적 게임의 규칙을 부정하며, 둘째는 정치적 상대의 정당성을 부정하며, 셋째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을 허용하거나 장려하며, 넷째는 언론과 정치적 경쟁자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한하려 한다. 트럼프는 이러한 네가지 징조를 모두 보였다. 트럼프는 근거도 없이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고 하며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하였다. 트럼프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잡아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지지자들의 폭력적 행동을 지지하거나 용인하였으며, 세계의 독재자들의 인권 탄압을 옹호하였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공격하였으며, 정치적 상대를 제거하려 하고 탄압하였다.
근래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정치적 다툼과 민주주의의 퇴행은 과거 중남미나 유럽에서 익히 보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페루의 후지모리, 베네쥬엘라의 차베스, 터키의 에르도안, 헝가리의 오르반, 러시아의 푸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 일부는 처음부터 권위적 통치자로 등장하지 않았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상대가 갖은 수단을 써서 이들의 통치를 반대하고 이들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들도 이러한 반대에 극단적 수단으로 맞받아쳐 권위적 통치로 흐르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첫째, 정치적 심판관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찰, 검찰, 정보부, 세무서와 같은 법집행 기관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고, 사법부를 무력하게 하고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며, 입법부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바꾸어버린다. 둘째, 주요 경쟁자를 배제시킨다. 자신에게 반대하며 굴복하지 않는 야당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는 자신의 충견을 동원하여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셋째, 자신이 절대권을 행사도록 규칙을 바꾸어 버린다. 헌법을 바꾸고, 사법부와 입법부를 구성하는 법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꾼다.
미국이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양극화를 초래한 주체가 공화당에 있으므로 공화당이 바뀌어야 한다. 백인 민족주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공화당의 지지 기반에서 탈피하여 유색인과 이민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층인 백인 노동계층은 1970년대 후반이래 경제변화로 삶이 어려워졌는데, 이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적극적 노동정책과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백인 노동계층의 삶의 위협이 줄어들면 그들의 극단주의적 태도도 완화될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민주주의 헌법을 가진 나라로 자부심이 크지만, 미국은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 미국의 정치는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될만큼 건강하게 진행된 것도 아니다. 미국은 건국이래 근래까지 흑인을 배제하였기에 백인 정치인들 사이에서 화합이 유지되었으나, 아직까지 흑인과 이민자를 대등한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세계의 다른 다민족 국가에서도 구성원이 잘 화합하는 민주주의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독재 시대에 정치인들의 행태가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상대가 극단주의적 책략을 구사한다고 하여 이에 맞받아쳐 극단주의적 전략으로 나아가면 결국 파국에 이를 뿐이라고 경고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러한 위험을 예감하고 타협의 노력을 펼쳐 성공한 사례로 칠레를 든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 책략이 먹힌 사례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과 독일의 나찌를 든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기초체력이 약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비교 정치학의 폭넓은 지식을 배경으로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을 잘 분석한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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