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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7. 16:16

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