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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14. 21:09

Dan Ariely. 2023. Misbelief: What makes rational people believe irrational things. Heligo Books. 290 pages.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 원인을 분석한다. 감정적, 인지적, 성격 특성,  사회적 요인들이 중첩하여 작용함으로서 사람들을 음모론에 빠지게 만든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일 때문에 큰 소외, 좌절,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 실업,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혼, 배신 등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빠지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불행을 안긴 원인과 비난의 대상을 찾는다. 난관을 극복할 심리적 강인함 resilience 을 지닌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에 빠져도 견디고 극복할 수 있으나, 이러한 심리적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심리적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쉬운 해결책을 찾는다. 심리적 강인함은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장과정에서 및 주변 공동체로부터 얼마나 안정적인 감정적 유대 emotional attachment 를 구축하였는지에 좌우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믿는 성향 confirmation bias 이 있다. 일단 어떤 주장을 믿기 시작하면, 그에 부합하는 증거를 열심히 찾고 그 주장과 어긋나는 증거들은 외면하면서, 그것이 진실임을 자신에게 설득한다 motivated reasoning.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알고 있는 것보다 세상 만사의 작동원리에 대해 더 잘 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본원적인 인지적인 편향성이 감정적으로 취약한 상태와 결합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행을 안긴 원인을 설명하는 외곡된 이론에 쉽게 빠져든다.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이나 자신의 인지 능력을 과신하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능력 intellectual humility 이 떨어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애 narcissism 가 강하다.

음모론은 개인이 홀로 주장하기보다는 그룹을 지어 서로 격려하는 집단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음모론을 추종하는 무리 속에서 소속감과 감정적 위안을 얻는다. 음모론 집단의 대의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도 의심하는 지나친 주장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주위 사람에게 퍼트리는데 열성을 보인다. 남보다 더 극단적인 주장을 제시할수록 음모론 집단 속에서 더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음모론 추종자들이 경쟁적으로 극단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전개된다.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은 자신들의 믿음이 사회일반의 상식이나 주위의 돌아가는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할 때, 자신들이 추종하는 음모론에 더 집착함으로서 인지적 불일치 cognitive dissonance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음모론 추종 집단은 종교적인 사교 집단과 흡사한 집단 다이나믹을 보인다.

음모론이 발흥하는 것은 사회적인 신뢰 trust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권위, 제도, 기관, 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음모론에 쉽게 집착한다. 근래에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회의 신뢰수준이 전반적으로 저하되었다. 신뢰는 일단 떨어지면 다시 올리기 힘들다. 특정 음모론이 명백하게 거짓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그 음모론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다른 이슈의 음모론으로 갈아타곤 한다. 음모론은 사회의 정당한 권위에 대한 의심이 핵심이며, 이는 사회의 게임으로부터 소외된 감정 sense of being excluded 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한 음모론은 계속 독버섯처럼 생겨날 것이다.

이 책은 코비드 팬데믹 기간 중, 저자가 음모론 추종자들의 비난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겪은 어려움을 배경으로 하여,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깔려 있으므로 논의가 구체적이고 현장감이 있으나, 논의의 깊이가 좀 떨어진다는 것은 약점이다. 왜 멀쩡한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음모론에 빠지게 되는지 하는 평범한 의문을 심리학 지식과 연구방법을 동원하여 깊이있게 검토해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근래에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기술이 음모론의 확산에 미친 영향을 의도적으로 논의에서 뺐는데, 이는 심리학적 동인에 논의를 집중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인터넷과 SSN이 알고리즘의 작용으로 음모론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현실을 누락하는 약점은 피할 수 없다. 

2025. 5. 8. 17:07

Dan Ariely. 2009.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 Harper Perennial. 322.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다양한 패턴을 설명한다. 15개의 찹터마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상이한 이유와 배경을 관련 실험과 함께 소개한다.

경제학은 인간은 비용과 수익을 계산해서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경우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곤 하는 데, 그러한 비합리성은 무작위적으로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러한 비합리성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내재된 오류에 기인하기 때문에, 그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점을 증명해도 자신의 의지로 고칠 수 없다. 그러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환경, 맥락을 바꿈으로서 사람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인도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언급하는 '은연중에 권하는 장치, nudge" 가 바로 그러한 개입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다양한 비합리적 행동 양식이 소개되는데, 다음에서 그중 몇개를 예시한다.

사람들은 비교를 통해서만 대상에 대해 사고를 하며, 비교가 제시되었을 때가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그것에 더 끌리는 성향이 있다. 비교의 대상이 제시되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의 편향성은 마케팅에서 흔히 이용된다. 예컨대 이코노미스트 잡지 구독을 권하기 위해, 잡지 구독과 온라인 접속권을 함께 묶은 상품을, 단순 잡지 구독 상품과 비교 제시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잡지 구독과 온라인 접속권을 함께 묶은 상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화폐로 가치가 매겨진 서비스와 무료로 제시하는 서비스는 다른 인식의 영역에 있다. 전자는 '시장' market 의 인식 모드를 가동시키므로 사람들은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반면 무료로 제시하는 서비스는 '사회적 규범' social norms 의 인식모드를 가동시키으므로,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고려하며 일대일의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두 영역은 동시에 섞여서 취급될 수 없다. 예컨대 회사가 종업원들에게 헌신을 요구하면서, 회사에 미치는 손익을 깐깐히 계산적으로 접근하면서 보상한다면, 종업원들은 '헌신' 이라는 사회적 규범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반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 이는 물건뿐만 아니라 더 넓게 적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 높이 평가하는 반면, 상대의 입장이나 상대의 생각을 자신의 것보다 낮게 본다.

사람들은 기회가 허용되면 사소한 정도로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부정직한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대단한 부정은 기회가 허용되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돈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소한 부정직을 저지른다. 예컨대 직장에서 문방용품을 집으로 가져온다거나, 대학교 기숙사의 공용 냉장고에서 남의 음식을 쓸쩍 집어먹는 행위 같은 것. 또한 돈이 직접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개입된 경우, 사람들은 양심에 꺼리끼는 행동도 손쉽게 한다. 예컨대 회계를 약간 조작한다거나, 스톡옵션의 발동 시기를 과거로 한다거나, 등등.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어리석은 행동을 랜덤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비합리적 행동 유형과 그 배경의 인식구조를 이해한다면, 이러한 비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환경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점에 행동경제학의 실용적 묘미가 있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에서 흔히 언급되는 많은 아이디어의 보고이다. 특히 각각의 행동 오류에 대해 실험을 기획하고 실행한 이야기가 독창적이고 유머 넘친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2025. 5. 1. 17:43

마이클 뉴턴 (김도희,김지원 옮김). 1999(1994). 영혼들의 여행. 나무생각. 471쪽.

저자는 상담심리사로 출발하여 최면치료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육체를 떠난 영혼이 거쳐가는 여정과, 영혼들의 세계 spiritual world 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하는지에 관해, 자신의 최면치료 사례를 예로 하여 이야기 한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 immortal. 영혼은 지구에서 특정 인간의 몸에 잠시 머물다가 영혼들이 머무는 세계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서 사망하는 순간 영혼은 육체를 이탈하여, 영혼들의 세계에서 온 안내자와 함께 그 세계로 돌아간다. 영혼이 머무는 세계는 물리적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영혼은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지적인 에너지 intellectual energy 와 같다. 그곳에서 영혼은 '집'에 돌아온 평안함을 느끼며, 그곳은 이 세상과 달리 사랑과 용서와 이해로 포근하고 행복이 충만하다.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과 같은 곳은 없으며, 이생에서 한 일을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그런 곳은 아니다.

이세상을 떠나 영혼의 세계로 돌아오면, 영혼은 안내자와 함께 이세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검토하면서 지혜와 통찰력을 기르는 시간을 갖는다. 영혼의 세계에서 자신의 영혼 친구들 soul mates 와 함께 15~25명이 소그룹을 형성하면서 지낸다. 영혼의 세계는 일종의 학교와 같아서, 지도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영혼 친구들과 함께 지혜와 깨달음을 높이는 수련을 한다.

지구는 인구과밀, 갈등, 혼란, 오염, 등으로 험난한 곳이다. 영혼의 세계에서 머무는 영혼들은 본인 스스로 지구에서 환생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구에서 경험하는 시련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구에서 인간의 삶은 지혜와 통찰력을 높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구는 영혼이 방문하는 여러 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혼에 따라 각자가 도달한 지혜의 수준은 매우 다르다. 제 1단계의 초보자에서부터  제6단계의 최고로 앞선 단계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도달한 단계에 따라 영혼의 세계에서 맡는 역할이 다르다. 상위의 단계로 올라갈수록 아래 단계의 영혼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더 많이 맡으며, 우주의 본원 에너지 source 에 근접하게 되면서 높은 수준의 창조 작업에 참여한다. 영혼들은 수천 수만년 동안 무수한 환생 과정을 거치며 지혜의 수준을 높여 나아간다.

저자는 수천명의 최면치료 사례를 통해 사후에 가는 영혼의 세계에 관해 일관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므로, 이것은 허구나 거짓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과학적 세계관은 인간의 지각을 이용하여 수집한 것만 객관적 사실의 근거로 보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는 순전히 인터뷰에 근거하기 때문에 과학 방법론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여하간, 더 높은 수준의 지혜와 통찰력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그의 주장이 흥미롭다. 과학 세계관에 따르면 인생에는 절대적인 목적 (absolute purpose, telos) 이 없으며, 동물 세계의 일원으로서 생존과 후손의 번식이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2025. 4. 29. 20:41

Patrick Deneen. 2018. Why Liberalism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19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근래에 서구 사회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정치이념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한다. 서구에서 자유주의 이념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념 자체에 내재한 문제 때문에 실패했다. 자유주의를 대체할 다른 정치 이념이 출현하여야만 서구 사회가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인권, 평등, 정의, 진보, 등의 보편 가치를 표방하면서, 17세기 이래 서구의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이끌어낸 이념이다. 봉건사회의 권위, 위계, 제도, 관습을 거부하고, 대신 개인의 주체적 의지와 독립과 선택의 자유을 최고의 가치로 숭앙한다. 자유주의는 왕과 귀족의 지배 체제를 무너뜨렸으며, 전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개인의 창의와 능력과 노력을 발휘하여 개인의 잠재력을 최고로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유주의는 기존의 틀 내에서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변화와 개혁을 선호하며, 효율과 합리성을 최우선시 한다. 개인 각자는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은 선이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공공의 선이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기존의 제도와 관습을 거부하고, 공공의 선을 우선시하지 않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제도와 관습의 보호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이 성취한 사유재산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능력이 없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실패에 따른 고통과 좌절을 아무런 사회적 보호 없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자유주의 이념은 경제분야에서 시장 원리를 최고로 치는데, 시장 경쟁은 승리자와 패배자를 갈라놓으며, 시간이 갈수록 이 둘 사이에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패배자의 고통과 좌절은 가중된다. 경쟁의 패배자에게 자유주의 이념이 제시하는 자유는 그림의 떡이며,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배제된다. 자유주의 경쟁 체제에서 승리한 엘리뜨는 안정된 가족을 유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높은 학력을 갖추게 하여, 다음 세대의 경쟁에서 승리자의 지위를 세습시킨다. 반면, 자유주의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불안정한 가족을 영위하며, 그들의 자녀에게 우수한 교육 지위를 제공하지 못하며, 그 결과 다음 세대의 경쟁에서 패배자의 지위를 물려받는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에서 배제되며, 희망을 잃고, 소외, 좌절, 분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근래에 미국과 유럽에서 대중영합주의적 권위주의 정치인이 당선된 것은 이러한 대중의 좌절과 분노의 결과이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자유, 공정, 평등을 내세우는데, 실제로는 국민의 다수에게 그러한 가치를 부정하는 현재의 위선적인 상황은 평화롭게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의 문제를 개선할 대안은 무엇인가? 자유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자유주의 체제 이전의 권위적 봉건사회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자유주의의 이점을 유지하고 문제를 보완하면서, 자유주의를 대체할 이념을 모색해야 한다. 자유주의 체제가, 지역적인 한계를 파괴하는 대신 전세계적인 접근을 옹호하고, 사람들 사이에 관계 대신 익명적인 보편적 원칙을 강조하고, 과거나 미래와의 연결 대신 현시점에서의 최고의 효율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인근 지역에서, 자주 접하는 사람들에게서, 과거로부터 이어받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기억과 유산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갈 때에만, 자유주의의 개인주의와 고립주의가 낳은 좌절과 인간 관계의 파편화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관습, 지역주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근래 서구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도전받는 환경 속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자유주의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모호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주의 communitarianism 비슷한 것을 간단히 언급할 뿐, 자신도 대안이 무엇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이념 중 자유주의가 가장 큰 물질적 풍요와 인권 보장을 실현했기 때문에,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자유주의에 내재하는 문제 때문에 실패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책임한 비판이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로 볼 때, 자유주의는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지만,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논의에 중복이 심하여 읽기 힘들었다.

2025. 4. 24. 17:46

Todd Rose. 2016. The End of Average: Unlocking our potential by embracing what makes us different. Harper Collins. 191 pages.

저자는 발달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하나의 틀에 맞추어진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며, 개인의 특성에 맞춘 개별화된 교육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에, 하나의 차원으로 측정하여 평균이라는 하나의 대표값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인간은 서로 독립적인 다차원적인 속성을 가지며, 차원들 상호간 변이의 상관도가 낮다(jaggedness in multidimentions). 예컨대 신체지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수치로 환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여러 차원들의 평균값을 모아서 하나의 대표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능지수, 성격지수, 등 인간을 묘사하는 여러가지 복합 수치들은 타당성이 의심된다.

인간의 다차원적 속성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인 맥락(context-dependent)에 따라 일관되지 않게 발현된다. 예컨대 심리학의 대표적인 이론인 다섯가지 성격 타입이나, 당장의 만족을 미루는 자기통제력 등은, 개개인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사람들은 신뢰할만하고 안정된 환경에서는 당장의 만족을 미루는 자기통제를 하지만, 신뢰할 수 없고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당장의 만족을 미루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정된 '본질적인 특성'(essentialism) 을 보유하고 있다는 전통적인 심리학 이론은 틀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빨리 문제를 푸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 푸는 속도나 문제 푸는 방법에서 개인 차이가 크다. 각 개인이 성장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diverse paths). 많은 사람들의 문제 푸는 속도와 방법의 평균치를 구하여 이것을 모범으로 생각하고, 이  단일 모범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릇되다. 하나의 방법과 속도만을 표준으로 상정하고(standardize), 누가 이것을 더 잘 하는지에 따라 줄을 세우는(ranking) 현재의 교육 모델은 문제가 있다.

인간은 다차원적이고,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며, 각자는 고유의 성장 속도와 경로가 있다는, 이 세가지의 이유 때문에 개인의 고유성 (individuality)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과 평가와 인사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육하고 평가할 것인가? 저자는 온라인 디지털 기술이 이 난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리라고 본다.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학습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각자가 잘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온라인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가능하다 (self-paced learning).

대학에서 능력 수준에 따라 그룹을 만들어 교육하고(competence-based learning), 각자가 미래의 자신의 직업에 요구되는 기술에 적합한 수업만을 골라서 듣고, 그러한 기술의 수행 능력을 입증하는 자격을 제공하는 (credentialing) 방식으로 고등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적성과 필요와 능력에 맞는 수업을 선택적으로 조합하여 개인화된 커리큘럼 (personalized curriculum) 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은 현재의 공장식 표준화된 공교육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는다. 각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비싼 개인 과외를 받고, 비싼 사립학교의 소규모 클래스 수업을 선호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는 '평균의 시대' age of the average 는 가고 '개인성의 시대' age of individuality 가 오고 있다고 한다. 가용 자원이 늘면 점차로 개인의 특성에 맞춘 customized 서비스가 증가하겠지만, 대량생산 대량 소비의 방식은 소비는 물론 교육과 인력관리 분야에서도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2025. 4. 21. 16:53

Philip Bump. 2023. The Aftermath: the last days of the baby boom and the future of power in America. Viking. 351 pages.

저자는 신문사 기자이며, 이 책은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정치에 끼친 영향과, 그들이 퇴장하고 나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논의한다. 

이차 세계대전 이후 1946~64년의 기간 동안 출산율이 예외적으로 높았는데, 베이비붐 세대는 이 기간에 출생한 인구집단을 지칭한다. 이들은 전후 경제부흥을 만끽한 세대로서, 이전에 두차례의 전쟁과 경제불황을 경험한, 소위 "조용한 세대" (Silent generation)와 대비된다. 베이비붐 세대 이후 1965~1990년대초까지 출생한 인구집단을 "Generation X" 라 칭하는데, 이들은 1970~80년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한 세대이며, 베이비붐과 대비하여 인구 규모가 작으므로 특별히 강조되지 않는 세대이다. 1990년대초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를 밀레니엄 세대 Millenium generation 라고 지칭하는데,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지칭되는 정보통신 혁명의 수혜를 받고,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탈이념 정치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린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인종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민을 극도로 억제했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는 대부분 유럽계 백인이거나 아니면 흑인이다. 반면 1970년대 이후 아시아와 중남미로부터 이민자가 대규모로 유입된 결과, 밀레니엄 세대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구성을 보인다. 2020년 현재 베이비붐 세대는 50대 후반 이후의 연령으로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사람이 다수이다. 그동안 베이비붐 세대는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그들의 인구규모보다 더 큰 비율의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근래에 들어 인구 규모가 줄면서 그들의 영향력도 함께 줄고 있다.

인종적으로 동질적이며 영향력을 과다하게 행사해온 베이비붐 세대는, 그들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구성을 보이며 그들보다 높은 교육수준에 새로운 가치 지향을 가진 밀레니엄 세대에게 위기감을 느낀다. 근래에 공화당이 백인의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편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베이비붐 세대의 위기감과 상실감에 기대는 전략이다. 공화당은 인종과 이민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킴으로서, 자신의 지지층, 즉 베이비붐 세대를 결집시키는 전략을 극단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나 앞으로 갈수록 미국인의 인종 구성이 다양화될 것이므로, 이러한 공화당의 전략은 장기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미국은 고령화 문제와 인종문제가 정확히 중첩되어 있으므로, 두 문제 모두 해결을 어렵게 한다. 고령자는 베이비붐의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젊은 사람 중에는 백인이 소수이다. 백인들은 자신이 누리던 정치 경제적 기득권을 움켜쥐고 놓으려고 하지 않으나, 이는 성장하는 유색인 젊은이와 충돌한다. 유색인 젊은이들이, 자신과 정체성을 달리하는 백인 고령자를 흔쾌히 부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고령화되고 경제활동에서 물러나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 연금 문제, 고령자를 돌볼 사람을 구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이민자를 더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수가 없다. 베이비 붐 세대 백인들이 조용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기에, 미국 정치의 양극화, 계급과 인종간 갈등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시끄러울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 칼럼니스트이기에, 선거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책의 중심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후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검토를 기대했으나 실망했다. 그의 분석과 논의는 피상적이며 횡설수설하여 읽기 어려웠다. 결국 3분의 2쯤 읽다 책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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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4. 11:26

야콥 폰 윅스퀼 (김재헌 옮김). 2023. 같은 공간, 다른 환경 이야기: 동물과 인간의 주관적 세계론. 올리브그린. 132쪽.

저자는 20세기초에 활동한 독일의 동물학자로, "Umwelt" (환경세계 혹은 생활세계) 라는 개념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환경세계가 서로 다름을 다양한 예로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각각의 종이 자신의 생존 필요에 맞추어 환경을 선택적으로 인식한다. 예컨대 특정 새가 인식하는 환경은 개나 고양이가 인식하는 환경과 다르다.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인간은,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이나 촉각에 많이 의존하는 동물보다 주위의 공간을 훨씬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인식한다. 사람이 보는 거리 풍경은 파리가 보는 거리 풍경이나 연체동물이 보는 거리 풍경과 다르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식별시간'에서도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인간은 18분의 1초의 간격을 가장 짧은 순간으로 인식하는 반면, 민첩한 공격으로 살아가는 맹금류는 훨씬 짧은 시간 간격을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은 물체의 모습과 움직임을 함께 결합하여 지각하는 반면, 일부 동물들은 움직임이 없으면 전혀 지각하지 못하며, 각 동물에게 적절한 속도의 움직임만을 지각한다. 지나치게 빠르거나 지나치게 느리면 대상을 지각하지 못한다.

동물은 대상을 지각하는 설계도를 안고 태어난다. 이 설계도에 맞는 자극에는 적절히 반응하는 반면, 이 설계도에서 벗어난 반응은 무시하거나 지각하지 못한다. 예컨대 병아리의 삐약거림에는 어미새가 반응하지만, 이러한 소리를 차단하고 삐약거리는 병아리의 모습만을 보여주면 어미새가 반응하지 않는다. 동물은 자신이 익숙한 길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보다는, 어떤 이유에서건 익숙하게 설정된 방법을 고수한다.

동물은 그동물에게 쓰임새에 부합하도록 대상의 모습을 지각한다. 즉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에게 쓰임새라는 목적을 투사하여 대상의 모습을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각각의 동물은 각자의 생존 필요에 맞추어 포착된 주관적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이 책은 umwelt 라는 주제를 흥미있는 예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각자 고유하게 환경을 인식하는데, 그러한 선택적으로 지각된 환경은 생존과 번식의 필요에 맞추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확장하면, 개개의 인간이 각자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같은 대상도 서로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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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3. 16:27

Tony Judt. 2005.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 Vintage Books. 831 pages.

저자는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이차대전 종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서술한다. 크게 네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각 시기의 핵심 이슈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1945~53 기간은 전쟁후에 혼란을 딛고 새로운 질서를 되찾는 시기이며, 1953~71 기간은 서유럽은 경제적 번영, 동유럽은 정체의 시기이며, 1971~1989 기간은 서유럽은 경제적 후퇴로 어려움을 겪고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정권의 균열이 확대되는 시기이며, 1989~2005 기간은 공산권의 몰락 이후 유럽 통합 심화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시기로 서술한다. 국내 및 국제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서술하며,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은 피상적으로 훓는다.

유럽은 20세기어 두차례에 걸쳐 대륙 전체가 참여한 전면전을 치루며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물질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피폐하고 탈진하였다. 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소련을 축으로 하는 공산주의 경제/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으로 사이좋게 공존하기 어렵다. 2차대전 동안 히틀러의 파시즘 정권의 위협에 대항해 임시로 손을 잡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소련은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유럽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에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을 자신의 세력권 하에 두는 조치를 신속히 전개했다. 이러한 소련의 행동에 미국은 경악하였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서유럽은 물론 세계 다른 지역에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 반공 억제전략 containment policy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전후 유럽의 경제적 피폐와 소련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마샬플랜과 베를린 봉쇄에 공수로 맞서는 정책이 그것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부의 강대국에 의해 유럽 대륙은 둘로 갈라져 냉전체제에 수동적으로 편입되었다.

서유럽은 전쟁으로 탈진한 상황에서, 그들이 전세계에 소유한 식민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 전후 서유럽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은, 미국과 소련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줄서지 않는 '제삼세계' 세력을 형성하였다. 유럽은 지금까지 세계사에서 누리던 세계의 제국 중심의 지위를 상실하였으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서유럽은 미국의 방위 우산 하에서 경제발전에 매진하였으며, 다시는 본격적인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리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전쟁 동안 히틀러가 유럽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므로, 히틀러가 패하였을 때, 유럽의 각 나라는 자국에서 히틀러의 지배에 협력한 사람들과 침략자 독일을 응징한다는 명분 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벌하고 자신의 영토로부터 몰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결과 전후 유럽 대륙은, 전쟁 이전에 각 지역에 살던 소수 민족은 사라지고 각 국가마다 하나의 다수 민족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계획경제발전 전략을 취한 소련의 경제적 성취가 대단하게 보였다. 진보적인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서 공산주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1958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중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서유럽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 동유럽 사람들은 이후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암울함과 정체가 경제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서유럽이 1950~60년대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전쟁으로 많은 인명과 건물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생산 시설의 피해는 실질적으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 직후의 혼란이 진정되었을 때 생산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두번째 요인은, 전후 물질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한 상황에서, 온국민이 경제적 풍요라는 유일한 희망에 매달려 전력으로 매진할 수 있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종전후 5년 이내에 전쟁 이전의 생산력을 회복하였으며, 이후 매년 5~6%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60년대 후반에는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풍요에 도달했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기존의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치인과 엘리트들은 새로운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추스리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복지국가 체제이다. 국민 모두의 기본적 삶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 체제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관련 정책이 도입된 이후, 전후에 내실을 다져 1960년대말이 되면 완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전후에 독일이 빠르게 경제부흥하는 것을 지켜본 프랑스는, 독일이 과거와 같은 전쟁을 다시는 주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유럽이라는 공동체 속에 독일을 옭아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프랑스가 1950년대 초에 주도하여 독일과 프랑스가 참여하는 석탄철강 공동체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89년 동서독이 통합되었을 때, 유럽 통합을 더욱 강화하는 경제통합을 추진하였다. 역내 관세를 철폐하고, 통화를 통합하고, 국경 통제를 없애는 등 통합의 심도를 깊이하는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각 나라의 고유한 정체성이 유럽이라는 큰 단위로 흡수되지 않았으므로, 2000년대에 들어 정치통합을 추진하는 정책은 중단되었다. 또한 유럽 통합 내에서 가난한 나라와 부자나라간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내적 긴장이 수시로 표출되는 상태에 있다.

소련 공산주의는 자체의 축적된 모순 때문에 벽에 부닦뜨렸다. 1980년대에 고르바쵸프가 개혁을 추진했을 때, 예상치 못한 동유럽에서의 반발에 직면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급속히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소련 제국이 해체되었다. 소련의 지배에서 풀려난 동유럽은, 소련의 미래 위협을 우려해 서유럽의 품으로 신속히 들어가는 선택을 하였다. 러시아는 이러한 소련 제국의 해체에 굴욕감과 배반감을 품게 되었으며,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경제가 피폐해지고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권위주의 체제의 복원을 추구하는 푸틴이 국민의 호응을 얻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유럽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필독서이다. 다만 유럽을 구성하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서술을 성실히 따라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전체의 변화를 서술한다고는 하지만, 각국의 국내 정치 사정을 세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고유명사나 사건들이 정말 많이 등장해서 읽으면서 두뇌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800쪽이 넘는 분량에 글씨는 또 얼마나 작은지 조금만 읽으면 눈이 침침하고 저려왔다. 맨 후반 일부는 결국 건너 뛰며 읽었다. 고생 고생 하며 이 책을 읽고 나서, 여하간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유럽과 그 사람들을 깊이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2000년 무렵에서 서술이 끝난 것이 아쉽다.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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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0. 20:56

Paul Nurse. 2020. What is Life: Understand Biology in Five Steps. David Flickling Book. 212 pages.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연구를 배경으로 하여 "생명 life 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다섯가지 주제로 답변한다. 세포, 유전자, 진화, 화학, 정보, 등이 저자가 보는 생명의 핵심이다.

생명 life 이란 외벽에 의해 가두리지어져서 밖과 안을 구별하는 '세포' cell 라고 하는 최소 단위를 필수 조건으로 한다. 세포 밖의 외부 세계가 무질서를 향하는 것과 달리, 세포는 세포벽 안에서 그 자신만의 고유 질서를 유지한다. 여러 세포가 모여 더 큰 복잡한 유기체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세포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생명체이며, 복제 기제를 통해 또다른 새로운 세포를 생산해낸다.

생명 life 의 핵심은 '유전자' gene 이다. 세포의 핵에는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유전자는 세포의 모든 작동과 재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정보를 담은 DNA로 구성된다. DNA 는 이중나선구조로 된 단백질 구조체이며, 이 단백질 구조체는 ACTG라는 네가지의 염기서열을 통해 정보를 저장한다.  DNA에 저장된 정보는 유전자 복제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생명체는 '진화' evolution 과정을 통해 고유한 형질을 발전시켰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로부터 오랜 세월 에 걸쳐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오늘날의 다양성에 이르렀다. 진화의 기제가 작동하려면, 생명체는 재생산을 하고,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며, 유전자 전승 과정에서 전세대와는 다른 차이가 만들어져야 한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명체가 그렇지 않은 생명체보다 생존하고 후손을 낳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원리, 즉 '자연 선택' natural selection 을 통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 진화는 특별히 정해진 방향, 즉 목적지가 없는 non-purpose 과정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DNA 작동방식이 동일하다는 사실로부터, 지구상의 생명체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생명 life 은 본질적으로 일련의 '화학 작용' chemistry이다. DNA의 염기서열은 단백질 생성을 통제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단백질은 '효소' enzyme 로서 세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 반응을 가능하게 만든다. 생명체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필요한 활동을 하는데, 세포속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 저장체인 ATP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적재 적소에 전달하고, 에너지를 연소하는 모든 과정은 화학 반응이며, 이런 모든 화학 반응에 효소가 개입한다. 효소는 기본적으로 탄소 중합체 carbon polymer 분자이다. 우리 몸에 사용되는 20가지의 아미노산 amino acid 은 탄소 중합체이며, 이 아미노산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단백질 구조체를 만들며, 이러한 과정은 DNA에 저장된 정보를 이용하여 RNA에 전사된 정보를 통해 이루어된다. 오늘날 모든 생명체의 화학 작용의 큰 그림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명이란 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에너지' mystic energy, 혹은 '생명력' spark of life 라는 과거의 이론은 근거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생명 life 의 핵심은 '정보' information 이다. 생명의 핵심인 유전자는 정보의 저장고이며, 생명체가 신진대사 metabolism 를 하고 '항상성' homeosis 을 유지하는 기제는 정보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생명체는 다양한 feedback loop 를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이러한 기제의 핵심은 정보 통제이다. 유전자의 일부가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현되도록 하는 후형형질 발현 epigenesis 이나, 유전자의 작동과정 전체를 통제하는 장치 역시 정보 관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생명체는, 그를 구성하는 개별 세포나 기관 단위가 아니라, 유기체 전체를 단위로 하여, 생존과 후손 번식이라는 '목적' purpose 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는 화학 기계 chemical machine 인 유기체는 정보를 관리하면서 조정하고 작동한다.

이제 생물학은 생명체의 기본 구조와 작동원리를 밝혀내었다. 생명체도 다른 무기물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생명의 물리학적 physics 인 근거를 확인한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이러한 깊은 지식은 생명체를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종자를 개량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지만, 잘 관리한다면, 식량 생산, 온난화 등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 책은 생물학의 전문 지식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썼다. 전문 학자가 처음 쓴 교양서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다. 저자가 관련 주제에 대해 철저하게 알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저자 본인의 연구 경험을 적절히 섞고, 이해를 돕는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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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 11:46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2011.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8.0. 395쪽.

저자는 협상 전문가이며, 이 책은 다양한 맥락에서 상대와 협상하는 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세상은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대와 협상을 할 때, 합리적으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여 설득하는 전략이나,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전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존의 협상관련 저술들이 대부분 합리적인 이해관계나 힘의 균형에만 촛점을 맞추어 협상전략과 협상 과정을 설명한 것은,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협상에 임하는 상대의 감정을 잘 살피고,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상대가 현재 처한 상황은 어떤지, 등 인간으로서의 상대방에 집중하여 대응하는 전략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연구에 따르면 협상의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것이 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못미치며, 반면 상대의 인간적인 특성, 상대와의 관계, 상대와 상호작용을 통해 협상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차지한다. 협상의 핵심은 협상 당사자들 간의 인간관계이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 즉 사람이라는 점을 저자는 누누이 강조한다.

협상을 할 때에는 협상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그 목적에 집중하여 모든 행동을 조정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에 플러스를 가져올 요소들, -감정적 지불 emotional payment- 을 제공함으로서, 협상 상대의 감정을 호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함으로, 상대가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현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와 내가 중요시하고 얻으려고 하는 요소가 다를 수 있다. 상대가 중요시하는 부분을 내주고 대신 내가 중요시하는 부분을 얻는 교환을 생각할 수 있다. 협상에 임하면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흥분한다고 해도, 내가 침착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함께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협상에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협상에서 목표를 향해 나가가는 과정은 점진적이어야 한다. 한 걸음에 큰 제안을 하고 끝장을 보려 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저항에 봉착한다. 조금씩 조금씩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면서 나아가는 전략이 유효하다.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태도는 반발을 사며, 설사 상대가 굴복한다고 해도, 그러한 결과는 높은 비용을 치루어야 하고, 협상의 결과가 오래 유효할 수 없다. 상대의 감정과 자존심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협상은 사람들간의 관계이므로 말을 조심해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나 굴복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상대의 반발을 자극하므로 피해야 한다.

상대가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기준 standards 을 협상에서 역으로 상대에게 이용하는 전략은 효과가 크다. 상대가 어떤 원칙을 표방하는데, 지금의 당면 문제가 그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상대의 굴복을 받아낼 수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표방하는 원칙을 스스로 준수하지 못하므로, 이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결국 협상은 인간과 하는 것이므로, 그의 인간적인 면을 공략하라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들간의 협상으로 풀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좀 지나치다. 예컨대 198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군축협상을 했고, 결국 공산권의 붕괴로 끝난 상황이, 레이건과 고르바쵸프간의 개인과 개인간의 협상의 결과라는 주장은 견강부회이다. 이익이 대립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를 당사자간의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것은 양진영의 협상 당사자들 사이에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은 수많은 예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어 읽기에 지루하고 힘들었다. 이 책이 매스컴에서 왜 그렇게 유명세를 탔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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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24. 17:28

Joseph Henrich. 2020.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 How the West became psychologicaally peculiar and particularly prosperous. Picador. 489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서구문명이 세계의 다른 지역을 앞서게 된 원인을, 서구인의 독특한 심리 특성인 개인주의 individualism 와 이에 따르는 사회제도에서 찾는다. 서구에서 개인주의가 출현한 원인은 씨족 중심의 가족제도가 약화된데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영향이다.

사람들의 심리구조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여러 심리실험 결과 서구인의 심리구조는 세계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서구인의 심리구조는 개인주의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개인이 속한 집단 내 혹은 집단간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한다.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모두,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 즉 개인의 지위와 사고와 행동이 소속 집단에 매몰되어 있다.

개인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은 집단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보다,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약하며, 다른 집단의 사람과도 쉽게 거래하며, 보편적인 원칙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하며 universalism,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기존의 가치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에 개방적이며, 관심이 유사한 사람과 임의적인 조직 association 을 보다 쉽게 형성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자의 특성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다양한 출처로부터 수집한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혁신을 만들어내는데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결국 이러한 심리와 행동 성향은 서구의 도시화와 산업혁명을 낳았다.

서구에서 집단주의가 깨지고 개인주의가 자리잡은 데에는, 역사상 모든 인류사회를 지배하던 씨족 중심의 가족제도가 서구에서만 약화된데 원인이 있다. 인류 역사상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가족과 이의 확대판인 씨족과 부족 집단의 단단한 결합속에서 살아왔다. 자신이 속한 혈연 및 가족 집단과 그렇지 않는 타집단 사람을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 배타적이고 거래를 꺼리는 것은 모든 전통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서구는 중세초기부터 일관되게 지속된 기독교 교회의 가르침이 가족의 집단결속을 깨는데 기여하였다. 사촌과의 결혼을 금하고, 부계와 모계의 양쪽에 대해 동일하게 친족간 결혼을 금하고, 일부일처제를 강력히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씨족 집단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반면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사촌간 결혼이 광범위하게 행해졌으며, 모계에 대해 친족내 결혼을 금하지 않았으며,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씨족의 집단적 결속을 약화시킨 반면,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의 출현을 촉진시켰다. 개신교는 구교보다 이런 개인 중심의 가족 규범을 더 강력히 추진했으며, 신과 개인간에 매개자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개인주의적 심성을 더 강화시켰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에 일찍 노출될수록, 친족간의 결혼이 드물며, 친족간의 결혼이 드물수록, 개인주의적 심성이 강하며, 개인주의 심성이 강할수록 경제성장의 정도가 높다.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기독교에 일찍 접할수록, 친족간 결혼이 드물며, 개인주의 특성이 강하며, 교육과 소득수준이 높다. 반면 중동의 이슬람과 중국의 유교는 가족 집단의 결속을 강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종교가 기여하였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in-group 의 배타성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아이디어의 활발한 교류와 혁신, 모든 사람들을 대응하게 대우하고 동등한 원칙을 적용하는 입헌 민주주의, 등의 서구의 제도가 발전할 수 없었다. 대신 효율보다 연고를 중시하는 연고주의 nepotism, 타집단과의 거래를 꺼리고 차별하는 배타주의가 지배했다.

서구의 민주주의 제도나 경제 규범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의 전통사회에 수입될 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심리 구조가 이러한 제도를 작동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20세기에 동아시아에서 급속하게 서구의 제도와 경제 규범이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회에 이미 씨족 중심의 집단주의가 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의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의 기존의 논의와 연구를 포괄하여, 그야말로 거대 이론 grand theory 라고 할만한 것을 제시한다. 개인주의라는 심리 행위 성향이 서구의 성공의 핵심인데, 이것의 바탕에는 기독교의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는 주장이다. 인류의 진화를 통해 발전시킨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를 기독교가 깨버리는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 벌어짐으로서, 개인주의라는 매우 예외적인 심리 행동 성향이 출현하였고, 근대 서구라는 세계 역사상 매우 예외적인 사회 문화가 출현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의 성공의 열쇠가 된 셈인데, 앞으로도 그럴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매우 탄탄한 증거로 뒷받침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크다. 미국의 별볼일 없는 대학을 나와 하바드 대학 교수가 된 저자의 예외적인 경력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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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바다 편집위원회. 2008. 바다: 지구 최후의 미개척지, 바다의 모든 것을 담은 대백과사전. 사이언스북스.487쪽.

이 책은 영국의 Dorling Kindersley Ltd 출판사에서 만든 백과사전이다. 해양에 대한 물리 화학적 메카니즘, 해양 생물, 해양지도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 해양에 대한 물리화학적 메카니즘과 지구과학적 설명이 흥미로우며, 해양 지도를 찬찬히 훑어보면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하다. 두번째 파트인 해양 생물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나, 이 부분은 생물체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림과 텍스트를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으면서, 육지동물인 인간은 바다에 대한 지식이 미약하다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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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Garton Ash. 2023. Homelands: A Personal History of Europe. Yale University Press. 348 pages.

저자는 20세기 유럽을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유럽이 1945년 이차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에 EU의 출현,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거쳐온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엮어서 서술한다.

사람들이 성장기에 겪었던 중요한 경험들이 이후 평생동안 그들의 생각과 의사결정을 좌우하면서 역사는 전개된다. 1914년 1차대전을 겪은 세대, 1939년 이차대전을 겪은 세대,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경험한 세대가 그들의 경험을 전후의 유럽 역사 전개에 투영하였다.

유럽은 국가들 사이에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크지만, 로마제국에 뿌리를 둔 통일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정체성이 나폴레옹, 히틀러, EU, 등의 사람들의 희망과 정치체에 투영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기 때문에, 완전한 통일체를 구현하려는 역사적 시도는 번번히 내부의 저항으로 좌절되었다. Brexit 도 그러한 역사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다.

유럽은 1945년 이차대전 종전 이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는 70여년 동안 주요국들 사이에 본격적인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경험하였는데, 이는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시기이다. 물론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가 분열하면서 코소보 전쟁으로 큰 상흔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이는 유럽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일로 유럽인 다수에게 큰 기억을 남긴 전쟁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르다. 러시아라는 핵을 가진 강대국이 이웃 나라를 침략한 국가들 사이의 본격적인 전쟁이다. 국가들 사이에 관계가 힘에 우위에 따라 좌우되는, 제1차대전 이전까지 유럽을 지배한 국제질서가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어 공산권의 몰락은 여러가지 원인이 동시에 겹쳐서 일어난 결과이다. 1970년대까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진영보다 더 잘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980년대들어 공산주의 경제와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모순이 누적되어 균열이 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폴란드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된 것이 중요한 계기이며, 이는 결국 1980년대 후반 자유주의 노조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주변국들에 연쇄 반응을 촉발시켰다. 한편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1960년대 이래 정치적 경제적으로 포용정책을 펴왔는데, 1989년에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그 나라의 국경을 통한 동독인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막지 않도록 협력하는 댓가로 경제지원을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동독인의 대규모 탈출을 촉발하였으며, 이것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고르바초프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적 지배를 완화하고 서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의 물꼬를 튼 것이, 예상치 못하게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장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유럽은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의 미래에 대한 낙관을 뒤로 하고, 2000년대 중반이래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화의 결과, 중국 인도 등 제삼세계 국가들이 약진하고, 유럽인들 사이에 불평등이 커지고, 유럽 주위 국가의 사람들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고, 경제 성장이 정체하고, 인구 노령화로 복지국가의 기능이 약화되고, 유럽의 중하층의 불만이 높아졌다. EU 안에서도 부자 나라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유로 위기를 몰고왔다. 급기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중심국가에서까지 극우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유럽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후 유럽이 추구했던 이상인 리버럴리즘은 각국에서 도전 받고 있다.

저자는 유럽의 미래를 어둡게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미국의 방위 보호에서 독립해 홀로 서야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확장 위협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단결하여 대응해야 하나, 현재의 모습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제삼세계의 정치 경제 비중이 커지면서 세계에서 유럽의 상대적 영향력은 약화 일로이다. 유럽은 화려한 서구문명의 정통 계승자로서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을 옹호하는 리버럴리즘 liberalism 의 보루이기를 지향하나, 유럽 내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자유와 개방과 포용을 주창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 이웃에서 소외와 비참이 지속되는 상황과 함께 할 수는 없다.  인구 노령화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민자를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새로이 유입된 사람들과 기존 국민 사이의 격차를 계속 유지하고 차별하는 것은 리버럴리즘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기존 국민과 동등하게 되도록 하는 것은, 서구의 근대사를 지배해온 또 다른 이념인 민족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세계화가 더욱 진척되고, 서구 사회의 인구 노령화가 계속되고, 부자와 빈자사이에 생활과 정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이 처한 어려움과 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은 평화와 번영을 뒤로하고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1945년 이래 시기를 직접 살아온 당사자로서 자신의 개인사와 경험을 역사적 사실과 조합하여 서술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요 역사 사건에 참여한 본인 및 주변인들의 경험과 인터뷰를 역사 사실에 투영하여 서술함으로서 현장감을 높인다. 역사학자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경험이 풍부하게 담긴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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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rme Groopman. 2007. How Doctors Think. Houghton Mifflin Co. 262 pages.

저자는 에이즈와 암치료 전문의이며, 이 책은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문제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검토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는,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에 대해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추론을 해가는 과정이다. 의학적 지식의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는 증상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와 의사의 그릇된 사고 과정 때문에 잘못 진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환자를 처음 마주하면서부터 정보를 수집하며,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병리의 유형 pattern 을 확정한다. 80~85%의 경우에 이렇게 확정한 것이 올바른 진단이지만, 15~20%는 잘못된 진단이다. 인간의 생리현상은 전형적인 유형에 들어맞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은 자신이 처음에 설정한 유형을 고수하는 성향이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도 처음의 진단을 계속 유지하면서 유사한 치료과정을 반복한다. 의사들이 잘못 진단하는 원인의 일부는, 인간에게 보편적인 인지적 한계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지적하는,  framing, anchoring, availability, 등의 인지적 편향이 의사들을 잘못된 판단으로 이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저런 의료 개입을 하면서 원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의사의 사고 과정에 의존한다. 의사가 생각하는 방식이 그릇되다면, 아무리 고도의 기술과 장비를 동원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사의 경험과 자기비판적인 성찰이 중요하다. 그러나 의료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라는 외부 압력 속에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병원, 제약회사, 의료 기기회사의 상업적인 압력으로부터 많은 의사들이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저자는 과학과 기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지만,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개입 invasive treatment 으로 피해를 보고나서, 현재의 의료 기술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개입하는 접근에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저자 본인이 허리통증으로 인해 척추 수술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허리 통증은 수술이 필요치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내과 전문의인데, 같은 증상에 대해서도 외과에서는 수술을 선호하는 관행을 비판한다. 의료의 각 하위 분야마다 동일한 증상에 대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개입 방법이 있는데, 의료인들 내에서도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의학적인 개입을 통해 완치된다는 환상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몸은 복잡한 기전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도의 의학적 개입을 한다고 해도 아프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문제가 악화되지 않는다면, 의학적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두고보는 watch and see 전략을 택하는 것이 더 좋은 의학적 접근이다. 문제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상하면서 선제적으로 의학적 개입을 하는 것, 노화에 따른 기능 약화에 대해 의학적 개입으로 기능 강화를 노리는 행위 등을 경계한다. 의학적 개입으로 개선되는 효과가 미미하다면 의학적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예컨대 유방암 검진이나, 전립선암 검진 등 많은 검진들은 이로인해 개선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의학계에서 논란이 크다.

이 책은 저자의 풍부한 치료 경험과 의료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 느껴진다. 각 장을 흥미있는 임상 사례로 시작하면서, 전문적인 영역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저자의 글쓰는 솜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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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브래킷 (임지연 옮김). 2020. 감정의 발견. 북라이프. 351쪽.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감정의 중요성 및 감정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에 관해 저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혼자서 참고 이겨내야 하는 사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감정은 사람들의 삶의 전영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건강, 대인관계, 일의 효율과 성과, 행복도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과 남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누르려고 하는 시도는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낳았다.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잘 다루어야 잘 살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잘 대응하는 것은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감정 훈련, 특히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감정 지능 emotional intelligence 을 배양하는 훈련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인지 능력 만을 강조하던 전통적 입장에서 벗어나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래 심리학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감정능력 혹은 감정 지능을 배양하는 길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된다. 자신 혹은 상대가 어떤 감정인지 인식하기(recognizing), 그러한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이해하기(understanding), 그러한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주에 속하며 어떤 속성인지 파악하고 이름붙이기 (labling), 그러한 감정을 적절하게 표출하기(expressing), 그러한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관리하기(regulating). 이러한 네 단계를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여 연습해봄으로서 감정 능력을 높일 수 있다.

감정은 즐거움-불쾌함의 축(pleasure)과 에너지의 고저의 축(energy)이라는 두 축을 교차하여 만든 사분면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즐겁고 에너지가 넘치는 감정은 '신나는' 혹은 '열광하는' 감정 등이 속하는 범주이며, 즐겁지만 에너지 수위가 낮은 감정은 '안락한', '안정적인' 감정 등이 속하는 범주이며, 불쾌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감정은 '화나는', '스트레스 쌓이는' 감정이 속하는 범주이며, 불쾌하며 에너지 수위가 낮은 감정은 '우울한', '절망적인' 감정이 속한 범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줄거운 쪽 보다는 불쾌한 쪽의 감정을 많이 갖고 산다. 화가나고 스트레스 쌓이고 우울하고 절망하는 감정을 갖고 사는 사람이나 그렇게 사는 시간이, 신나고 안락한 감정을 갖고 사는 사람이나 시간보다 더 많다. 이는 아마도 진화의 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외부의 위험에 대응하도록 마음을 대비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여 생존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적인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멘토가 되도록 일상에서 노력한다면 자신의 삶은 물론 세상이 좀더 나아질 것이다. 감정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well listening, '상대의 감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non-judgemental,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려고' emphatic 노력해야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감정이 발생한 그 국면에서, 일단 생각이나 행동을 '중지' freeze 모드로 놓고 열기가 식은 다음에 대응하기, 깊은 호흡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조금 되찾고 대응하기, 감정이 발생한 원인과 그것의 결과에 대한 큰 그림 perspective 을 떠올리면서 대응하기, 일단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열기를 가라앉힌 뒤에 나중에 다시 돌아보기, 더 큰 자아, 즉 내가 꿈꾸는 최선의 자아라면 이러한 감정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상상하면서 행동하기, 등이 있다.

인지 능력과 감정 능력은 상관관계가 없다. 인지 능력이 높은 사람 중에 감정 능력이 떨어져서, 더 잘 할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감정 능력을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키우는 노력을 모두가 함께 기울인다면, 사람들은 좀더 행복하게 살 것이며, 사회는 좀더 나아질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와 감정 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설명이 비교적 구체적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주변의 문제가 감정 능력이 떨어지는 데 기인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감정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객관적 사실의 영역에 있다면, 아무리 그러한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이해한다고 해도, 감정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고 뭉개는, 예컨대 약자에게 갑질하는 이유는, 상대의 감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휘두룰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여 상대를 통제하고, 자신의 이익을 상대의 것보다 우선적으로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나이스하지 않은 사람은, 단순히 예의를 몰라서 혹은 감정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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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l Sherman. 2017. 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58 pages.

저자는 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 뉴욕에 사는 부자들 50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계급과 불평등에 대한 그들의 자의식을 분석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부와 풍족한 삶에 대해 심리적으로 불안한 감정(anxiety)을 지니고 살아간다. 자신의 부와 자신의 풍요로운 삶 affluent life 이 도덕적으로 정당(deserving, legitimate)하다고 스스로에게 설득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돈 때문에 항시 염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자신들만이 엄청난 부를 누리며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편안한 느낌일 수 없다. 자신들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중산층의 나라라는 이념이 지배하며, 근래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국의 부자들은 더욱 더 자신들의 예외적인 삶을 정당화할 필요가 커졌다.

부자들은 세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을 정당화한다. 첫째,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working hard 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므로 그만한 부를 누릴 자격 deserving 이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에는 업적주의 meritocracy 가 지배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여 번 돈과 그 결과 누리는 풍요로운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둘째, 지나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소비한다 disciplined consumption 고 생각한다. 자신들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합리적으로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사회의 편견과 달리 지나치게 사치하며 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삶에 꼭 필요한 것을 합리적으로 소비하며 사는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셋째,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giving back 고 생각한다. 기부, 자원봉사, 자신의 직업 생활을 열심히 함, 등의 수단을 통해, 자신의 부와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 '합리적인 소비', '사회에 돌려줌'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며, 사회 일반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하간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이 세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자신의 풍족한 삶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자기합리화한다.

부자들이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이 실제 행위에서 풍요를 희생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그들의 자녀가 풍요한 삶에 대해 '당연시하는 특권의식 'entitled' 을 가질 것을 경계하지만, 엄청난 비용이 드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일년에 두차례 이상 장기 휴가 여행을 가고, 비싼 비즈니스 석이나 전세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며, 교외에 별장을 가지고 사는 생활은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그러한 삶이 가져다주는 안락과 행복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요컨대 그들은 돈이 가져오는 안락함을 누리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들은 비용에 대한 염려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하려고만 하면 더 많은 돈을 쓰며 생활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섬처럼 자신들만 돈을 풍족하게 쓰며 풍요롭게 살려면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피한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자신의 형제들에게 조차 그들이 풍요롭게 사는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이 아니면,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

이책은 부자들의 삶과 사고 방식에 대해 그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채집한 드문 책이다. 심층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기 때문에, 부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생생함은은 크지만, 내용의 중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뷰 표본의 대부분이 가정주부이며,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표본이 남성 가장이며, 보수주의자들이었다면,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에 대해 이 책에 나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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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8. 17:37

머레이 쉐이퍼. 2008(1993).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 그물코. 399쪽.

저자는 작곡가이자 음향학자이며, 이 책은 소리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서술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리 환경에서 오래 동안 살았다. 이는 바다, 바람, 물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에서부터, 새와 곤충의 소리와 같은 생물체의 소리, 산업화 이전 전원 생활의 소리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소리 환경은 대체로 조용했으며, 단속적인 소리가 지배했다. 

산업화 이후 인간의 소리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도시 생활의 소리, 기계의 소리는 이전의 소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소리의 종류와 밀도가 높아졌으며, 연속적인 소리가 지배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집단의 소리가 다른 소리를 압도하였다. 산업화 이전 마을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가장 큰 소리였다면, 산업화된 도시에서는 공장의 소리가 지배했다. 19세기 후반, 전기가 도입되면서 인간의 소리 환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방송과 확성기 등을 통해 음원과 소리가 서로 분리되게 되었다. 산업화된 도시의 삶은 산업화 이전 농촌이나 마을의 삶보다 훨씬 더 소음에 많이 노출되었다.

사람들이 접하는 소리는 '주의를 끄는 소리' feature 와 '배경이 되는 소리' background 로 구분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또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사회에 배경이 되는 기준음 key note 이 다르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 낯선 풍경 못지 않게 낯선 배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는 배경음을 이방인은 듣는다. 소리의 높이 pitch, 소리의 세기 loudness, 소리의 시간적 전개라는 세개의 차원을 통해 다양한 소리들을 분석할 수 있다.

근래로 오면서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소리', 즉 '소음'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많은 사회는 법률로 소음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큰 소리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소리들이 규제의 대상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근래로 올수록 대도시에서 환경 소음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방향으로 소리환경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원치않는 소음을 백색 소음으로 가리는 관행은 삶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니다. 광고의 소음으로 넘쳐나는 현대 도시인의 환경을 탈피해야 하며,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배경음악 moozak 으로 공공 장소를 뒤덮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로 디자인된 공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인 '울림의 정원'을 만들고, 조용한 침묵의 공간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인류의 소리 환경을 주제로 한 드문 책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정보는 별로 찾지 못했다. 번역의 질이 낮아서 내용의 자세한 부분을 파악하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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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9. 09:45

Tim Kasser. 2002. The High Price of Materialism. MIT Press. 11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물질주의 가치관이 초래하는 다양한 문제를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물질주의란 물질의 소유와 소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다. 물질주의 가치관을 신봉하는 사람은 더 많은 좋은 물건을 가지려는 욕구에 허덕이며, 원하는 물질을 소유해도 추가적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이 지속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게 살아간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확보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물질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사람은 필요한 수준을 넘어 더 많이 물질을 소유하려고 한다. 물질주의에 경도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물질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사람은 자기효능감이나 자긍심이 부족하여, 내적인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소, 즉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존한다. 물질주의 가치관에 경도되는 원인으로는, 어렸을 때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거나, 물질적으로 심각한 결핍을 경험했거나, 매스미디어 특히 TV에 많이 접하여 물질주의 메시지에 매몰되는 경우, 등이 지목된다.

미국 사회는 물질주의를 부추기는 환경이다. 엄청난 부를 욕망하는 탐욕 greed 를 미덕으로 여긴다. 상업주의 문화가 사회전반에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의 구입과 소비를 장려하는 메시지로 넘쳐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사람들의 소비가 필수이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과 공동체와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과잉 소비를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업광고를 규제하고, 특히 어린이들이 광고에 노출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배경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물질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바꿀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빈곤과 결핍을 제거하고,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도록 하고, 삶의 안정 security 을 위협하는 불확실한 위험을 사회공동의 대응으로 줄이는 것이 답이다. 전반적으로 삶이 풍요롭고 안정될 때에만, 물질주의 가치관은 힘을 잃을 것이다. 물질주의 가치관은 결핍과 불안정에 대한 대응기제 coping mechanism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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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0. 17:11

임홍택. 2018. 90년생이 온다. 웨일북. 336쪽.

저자는 기업체에서 인사관리 업무에 종사했으며, 경영관련 작가로 활동한다. 이 책은 1990년대에 출생하고 2000년대에 들어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성향을 구세대와 대비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서술한다.

한국에서 19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였다. 한국이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높아진 시기에 성장했으며, 민주화된 이후에 성장했으며, 출생율이 급격히 떨어져 한명 내지 두명의 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인터넷과 모바일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구세대와 달리, 이들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평생고용의 관행이 사라지면서, 조직에 충성하고 과거의 관습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개인의 역량 개발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복잡한 것보다 간단하고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며, 재미 없는 것을 참지 않으며,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솔직함을 선호한다. 과거 세대와 구별되는 이들의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은, 직장에서는 물론 소비 행동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의 상이한 가치관은 온라인 문화와 결합하여, 과거 세대와 다른 사고와 행동 특성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은 저자의 기업체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독서과 주변 관찰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마켓팅 업계에서 시작된 세대 담론이 그렇듯이, 깊이있는 설명은 없지만 가볍게 세상 변화에 대한 감을 제공한다.

 

2025. 1. 20. 16:39

시어도어 그래이 (꿈꾸는 과학 옮김). 2015. 세상을 만드는 분자. 다른 출판사. 231쪽.

저자는 과학 저술가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물건의 화학적 특성을 분자식과 사진을 곁들여 흥미롭게 설명한 도감이다. 산과 염기, 유기화합물과 무기물의 차이, 물과 기름, 극성과 무극성, 비누, 섬유, 광석, 진통제와 마약, 당류, 인공감미료, 방향제, 염료, 독성 물질, 식품첨가제, DNA, 등을 다룬다. 저자의 풍부한 화학 지식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면서, 세상을 화학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 재미있는 그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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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19. 17:35

배나무 책 목록(50), 2024.2.2. ~ 2025.1.19.

1. Edmund Russell. 2011. Evolutionary History: Uniting History and Biology to understand life on earth. Cambridge Univ. Press. 165 pages.

2. Richard Sennett. 2006. The Culture of New Capitalism. Yale University Press. 197 pages.

3. Ray Fishman and Tim Sullivan. 2016. The Inner Lives of Markets: How people shape them -and they shape us. Public Affairs. 182 pages.

4.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이영래 옮김). 2024. 인생의 의미 (Seven meanings in life). 더퀘스트. 305.

5. Michael Sandel. 2022. Democracy's Discontent. Belknap. 341 pages.

6. Jordan Ellenberg. 2014. How not to be wrong: the power of mathmatical thinking. Penguin books. 437 pages.

7. 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8(2016).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뮤진트리. 348.

8. 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2.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How Music Works). 뮤진트리. 318.

9. Daniel Levitin. 2006. This is your brain on music: the science of a human obsession. Plume. 267 pages.

10. 마크 E. 윌리엄스 (김성훈 옮김). 2017(2016). 늙어감의 기술: 과학이 알려주는 나이드는 것의 비밀. 현암사. 348.

11. 크리스토프 드뤼서 (전대호 옮김). 2009(2015). 음악본능: 우리는 왜 음악에 빠져들까? 해나무. 466.

12. David Tuckett. 2011. Minding the Markets: An Emotional Finance View of Financial Instability. Palgrave Macmillan. 206 pages.

13. Dieter Helm. Net Zero: How We Stop causing climate change. William Collins. 240 pages.

14. 시어도어 그레이. 2010. 세상의 모든 원소 118. 영림카디널. 235.

15. Robert Jourdain. 1997. Music, the Brain, and Ecstasy: How music capture our imagination. Avon Books. 333 pages.

16. 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The Economic Engine of Political Chang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17. 키트 예이츠. 2019.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 웅진 지식하우스. 356.

18. 전봉근. 2023. 한반도 국제정치의 비극: 동북아 패권경쟁과 한국의 선택. 박영사.444.

19. Daniel Levitin. 2014. The Organized Mind; thinking straight in the age of information overload. Dutton. 383 pages. 

20. 키트 예이츠 (노태복 옮김). 2023. 어떻게 문제를 풀것인가 (How to expect the unexpected). 웅진지식하우스. 494.

21. Eric Hobsbawm. 1975. The Age of Capital (1848~1875). Vintage Books. 308 pages.

22. John Ikenberry. 2020. A World Safe for Democracy: Liberal Internationalism and the Crisis of Global Order. Yale University Press. 311 pages.

23. Eric Hobsbawm. 1962.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Vintage. 308 pages.

24. John Mearsheimer. 2014(2001). Tradegy of Great Power Politics. W.W. Norton. 411 pages.

25. 김경렬. 2009. 화학이 안내하는 바다탐구. 자유아카데미. 463.

26. Gerd Gigerenzer. 2022. How to stay smart in a smart world: Why human intelligence still beats algorithms. Penguin Books. 247 pages.

27. Satoshi Kanazawa. 2012. The Intelligence Paradox: Why the intelligent choice isn't always the smart one. John Wily & Son. 208 pages.

28. Nicholas Christakis and James Fowler. 2009. Connected: How your friends' friends' friends affect everything you feel, think, and do. 2009. Little, Brown Spark. 306 pages.

29. Gerald Davis. 2009. Managed by Markets: How finance reshaped America. Oxford University Press. 255 pages.

30. Phillip Tetlock. 2005. Expert Political Judgement: How good is it? How can we know?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8 pages.

31. 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32. 데스번드 모리스 (이규범 옮김). 2017(1985). 바디 워칭. 범양사. 312.

33. 엔도 슈사쿠. (공문혜 옮김). 1982(1966). 침묵. 홍성사. 295.

34. Eric Hobsbawm. 1994.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ld, 1914~1991. Vintage Books. 585 pages.

35. 이나가키 에미코 (박정임 역). 2022.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알에이치코리아. 227.

36. Monty Lyman. 2021. The Painful Truth: the new science of why we hurt and how we can heal. Bantam Press. 218 pages.

37. J. Bradford DeLong. 2022. Slouching Toward Utopia. Basic Books. 536 pages.

38. DK 식물 편집위원회 (박원순 옮김). 2020. 식물 대백과사전. 사이언스 북스. 343.

39. Hein De Haas. 2023. How Migration Really Works: the facts about the most divisive issue in politics. Basic Books. 372 pages.

40. Robert Tignor, et 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book 1. 3rd ed. W.W. Norton. 361 pages.

41. 와다 하루키. (김동연 옮김). 2022. 80세의 벽. 한스 미디어. 221.

42. Leonard Mlodinow. 2018. Elastic, Unlocking your brain's ability to embrace change. Vintage books. 220 pages.

43. 리타 카터 (장성준, 강병철 옮김). 2020(2019). 인간의 뇌. 김영사. 249.

44. Paul Krugman, Maurice Obstfeld, and Marc Melitz. 2012. International Economics, Theory and Policy. 9th ed. Pearson. 690 pages.

45. 구마겐고 (이정환 옮김). 2020.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나무생각. 291.

46. Ezra Klein. 2020. Why We're Polarized. Avid Reader Press. 282 pages.

47. Robert Tignor, et.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Vol 2. From 1000 CE to the Present. 3rd ed. W.W. Norton. 481 pages.

48. 필립 볼 philip Ball. (조민웅 번역). 2019. 자연의 패턴: 필립 볼의 형태학 아카이브. 사이언스 북스. 283.

49. Sheldon Solomon, Jeff Greenberg, and Tom Pyszczynski. 2015. The Worm at the Core: On the Role of Death in Life. Penguin Books. 225 pages.

50. Ashoka Mody. 2023. India is Broken: A People Betrayed, Independence to Today. Princeton University Press. 4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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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19. 14:41

Edmund Russell. 2011. Evolutionary History: Uniting History and Biology to understand life on earth. Cambridge Univ. Press. 165 pages.

저자는 환경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이 자연 세계에 영향을 미쳐 자연세계가 진화해왔으며, 거꾸로 자연 세계가 인간의 진화를 이끌었다는 주장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이 유발시킨 진화는 anthropogenic evolution 은 인간이 아닌 자연세계는 물론 인간 자신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intentionally, 혹은 인간이 의도하지 않는 와중에 자연세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물과 식물의 진화를 가져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동물을 길들이고, 인간을 위해서 유용한 형질의 식물을 발전시킨 것이다. 또한 인간은 많은 동식물을 멸종시켰다. 인간이 길들인 동식물은 거꾸로 인간사에 영향을 미쳤다. 식물을 길들임으로서 가능해진 농업은 이후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어업과 수렵은 주로 몸집이 큰 규모의 생물체를 잡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몸체의 생물들만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종 내에서도 몸체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는 진화를 가져왔다. 아프리카에서 상아채취를 위해 코끼리를 대량으로 살육한 결과, 현존 코끼리 중에는 상아가 없는 형질이 지배종으로 자리잡았다.

인간과 병충해간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함께 진화하는 과정 coevolution 이 전개되었다. 인간이 만든 항생제와 농약에 대응하여 병원균과 해충은 이것에 저항성을 갖는 새로운 형질을 진화시켰으며, 인간은 이것들의 출현에 대응하여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면역 형질을 발전시켰다. 병원균 및 해충과 인간 사이의 상호적인 진화의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 전개될 것이다.

서구에서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에는, 그 이전 오랫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들이 선택적 교배 selective breeding 를 통해 만들어낸 장섬유 면화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전까지 구대륙에는 인도와 이집트에서 재배된 단섬유의 면화종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생산되는 단섬유는 기계화에 적합치 않았다. 요컨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입된 장섬유는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필요조건이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이외의 자연세계 사이에 공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진화역사학 evolutionary history 이라는 환경 역사학의 한 하위 영역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인간이 아닌 자연세계에 미친 인간의 진화적인 영향은 사례가 많으나, 거꾸로 자연세계에 의해 인간이 진화한 부분에서는 근래에 전개된 사례가 적다. 특정 형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후손을 남겨야 인간의 진화가 전개될 텐데, 근대에 들어 집단간 출생율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인간의 진화는 어떻게 전개될지 의문이다.

2025. 1. 15. 14:23

Richard Sennett. 2006. The Culture of New Capitalism. Yale University Press. 197 pages.

저자는 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1980년대 이래 미국사회문화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그린다. 세계화와 자동화의 흐름 속에서 다수의 미국인들은 불안한 상태이다.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얕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된 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1980년대이래 기업들이 효율성과 주주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일자리의 안정성과 인간적인 따뜻함은 사라졌다. 장기적인 관점과 계획은 단기적인 실적과 끊임없는 변화(perennial churning)로 대체되었다. 1960년대까지 미국 사회를 지배하던 강고한 관료체제의 인간성을 질식시키는 정체된 문화 대신에, 불안정하고 피상적인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기업은 수시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노동자의 일자리는 불안정해졌으며, 조직에 대한 노동자의 충성과 헌신 또한 사라졌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일의 자동화가 전개되고, 조직이 슬림화되고, 과거에 존재하던 많은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거나 없어졌다. 오랜 경험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으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동화와 함께, 개발도상국 노동자들과 능력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선진산업국에서 자신의 노동 가치가 쓸모없어 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품게 되었다. 수시로 조직과 사람이 바뀌기에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는 얕으며, 조직의 보호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은 각자 앞가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장인적 기술 craftmanship 은 사라져버리고, 피상적이고 낮은 수준의 기술만이 남게 되었다. 일부 전문직을 제외한다면, 일 자체가 좋아서 깊이 파고 드는 식으로 몰두하는 것은 이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일에서 삶의 의미와 따뜻한 인간관계를 찾지 못하며, 단지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가족과 학교 등의 네트워크 덕분에 수시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며 풍요롭고 인간적으로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는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족과 직장의 네트워크가 사라진 환경 속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사회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저자는 1960년대 신좌파 New Left 대학생들이 관료제의 부조리에 저항했듯이, 지금의 미국인들도 이러한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비평가로서 거시적인 사회비평을 할 뿐, 구체적인 문제의 진단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엄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아니라, 인상적인 스케치에 머물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변화의 시기를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삶의 방식을 그리워하면서 현재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삶의 방식이 다가올지에 관해서는 별반 아이디어가 없다. 앞으로 100년후에 사람들은, 마치 현재의 우리가 1800년대 후반 사회를 대하듯이, 21세기 초반의 사회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100년후의 미래의 삶의 방식을 안다고 하면서 글을 쓴다면,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일 것이다. 19세기 중반 사람들이 20세기 후반에 어떻게 살지 어찌 알았겠는가?

2025. 1. 13. 16:34

Ray Fishman and Tim Sullivan. 2016. The Inner Lives of Markets: How people shape them -and they shape us. Public Affairs. 182 pages. 

저자들은 경제학자와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시장과 관련된 경제학계의 주요 아이디어들을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과 적용된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아담스미스가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한정된 자원의 생산과 배분을 조정한다고 지적한 이래, 20세기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시장의 작동원리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에 케네스 애로우 Arrow 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수리적으로 증명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애컬로프 Akerlof 는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정보의 비대칭 문제로 시장이 붕괴되는 현상을, 중고차 거래 시장의 예를 들어 제시하였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질이 떨어지는 상품(lemons)이 질이 좋은 상품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때문에 결국 시장이 붕한다. 시장을 디자인하는 사람은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대응하여, 구매자에게 추가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를 덧붙임으로서 시장이 작동할 수 있게 한다.

노동시장에는 '신호 이론' signal theory 이 작동한다. 고용주는 구직자의 진실한 노동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대리 지표를 사용하여 구직자의 노동 가치를 평가한다. 학력과 같은 자격증 credentials 은 바로 이런 대리적인 가치 지표로 활용된다. 광고주가 자사의 상품 광고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 광고주는 광고의 비싼 비용이라는 대리적 신호를 통해 상품의 고급성을 잠재 소비자를 설득한다.

'경매 시장' auction market 과 관련하여 경제학자 Vickery 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경매에서 최고가를 써서 경매를 따낸 사람에게 차점자가 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디자인이다. 이렇게 하면, 경매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경매 대상의 가치를 주저없이 써내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경매 참가자들 사이에 공모 collusion 가 있을 때, 이런 경매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플랫폼 시장 platform market 은 서비스의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에 자연 상태에서는 매칭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일 때 조성되는 시장이다. 시장에 참여하는 공급자와 구매자가 많을수록 시장의 가치가 높아지지만,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공급자가 적으면 구매자가 참여하려하지 않고, 구매자가 적으면 공급자가 참여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일정 규모 이상 시장에 참여하도록 시장 디자인을 하기는 쉽지 않다.

초중고생들의 학교를 배정하는 문제는, 구매자와 공급자 각각의 선호를 만족시키면서 어느 누구도 더 나은 선택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매자와 공급자를 매칭하는 문제이다. 이는 의사 수련생과 수련 병원을 매칭하는 문제, 법률서기 지원자를 판사와 매칭하는 문제, 졸업 무도회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참가자를 매칭하는 문제, 등과  유사하다. 이러한 문제는 "defferred acceptance algorithm"을 적용하여, 각자 선호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순연하여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여 집단적으로 최선의 매칭에 도달할 수 있다. 

시장은 희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만들어 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가격기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도 있다. 인간의 장기를 원하는 사람과 장기를 제공하는 사람을 매칭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장기의 수요공급을 시장 원리에 맡긴다면 희소 자원의 배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되겠지만, 사람들의 윤리 관념이 인간의 장기에 가격을 매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이익, 착취, 불평등 현상을 낳지 않으면서, 시장기구에 의해 효율적으로 희소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질 수있다. 무료로 식량을 기증하는 기관과 푸드 뱅크를 연결시키는 일을 시장 기구를 통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시장기구와 점수 credit 시스템을 적용하여, 각 푸드 뱅크가 각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필요한 기증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시장 기구가 반드시 불평등과 부정의을 낳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성향을 바꾸어 놓는다.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은 공동체 관계의 참가자에 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보듯이, 시장 참가자 각각이 최대로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면, 전체의 복리가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시장은 참여자들 사이에 불평등을 낳는다. 시장은 적절하게 규율될 때에만 제대로 돌아간다. 부작용은 있지만, 그럼에도 시장은 희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수행하는 데 다른 어느 시스템보다 낫다.

이 책은 경제학계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경제학 이론은 대부분 많이 알려진 것인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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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이영래 옮김). 2024. 인생의 의미 (Seven meanings in life). 더퀘스트. 305쪽.

저자는 노르웨이의 문화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그가 암을 겪고 난 후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서술한 수필집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현대 도시 산업사회의 삶이, 경쟁, 효율, 속도, 풍요, 환경파괴, 발전, 기술, 개인주의, 등에 매진하고 있는데, 진정한 삶은 이것의 반대, 즉 관계, 조화, 느림, 결핍, 자연 속에서, 균형, 전통, 집단,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생의 의미는 남과, 세상과, 과거 및 미래와, 자아보다 큰 무엇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체계적인 서술보다는, 저자의 머리속에 스쳐지나는 감흥과 독서의 기억들을 비체계적으로 망라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노르웨이의 환경주의자다운 발상과 서술 방식이다. 글쎄 지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그가 현지조사를 하고 곳곳에서 인용하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부족 사람들의 삶을 저자가 직접 살아볼 의향이 정말 있는지 묻고 싶다. 서구 선진 산업국에 살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보는 인류학자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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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Sandel. 2022. Democracy's Discontent. Belknap. 341 pages.

저자는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민주주의 정치 원리와 자본주의 시장 원리 간에 긴장관계가 미국 역사에서 건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시민의 자율적 통제(self-government)와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community virtue)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미국에서 19세기 말까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확장을 견제하면서 시민 공화주의 (Civic republicanism)를 지켜 왔다. 그러나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중립적(neutral) 태도를 취하게 되었으며, 경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오로지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치중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힘이 정치를 압도하게 되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분노가 쌓였으며, 급기야 엘리트에 반기를 들고, 대중 영합주의 정치인의 솔깃한 선동에 휩쓸렸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시민의 참여와 도덕을 회복하기 위해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건국 초기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통제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조업보다는 농업을,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자영업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이상은 19세기 산업화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현실에 부딛쳐 지키기 어려워졌지만, 산업화 과정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정책을 제안했으며, 정부는 대기업의 집중이 커지면 일반 노동자와 시민의 통제 범위 밖으로 벗어난다는 이유를 들어 기업 집중과 독점을 막으려 했다. 요컨대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정치권은 노동의 의미와 시민의 자율적인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를 견제하려 하였다.

20세기 들어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에서 노동의 의미는 단지 임금을 받고 소비를 하는 측면만 부각되었다. 노동은 삶의 중심이며 인간성을 함양하는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노동자란 생산의 부속품에 불과하며, 노동이란 오로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경제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노동자는 자신의 일의 과정은 물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자율적인 통제권을 상실한 채, 수동적인 존재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 보다는 소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세계화가 진행된 결과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들은 이러한 번영에서 제외되었으며, 자신의 일터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화를 통해 날개를 단 엘리트와 일반 노동자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엘리트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면책받은 반면, 일반인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마침내 Occupy Wallstreet movement, Teaparty movement 등의 사회운동을 통해 엘리트와 이들이 구축한 금권정치 구조에 분노를 표출했으며, 기성 정치체제에 반기를 드는 발언으로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려면, 일반 노동자의 분노를 초래한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 일반 노동자에게 노동의 의미와 삶의 통제권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정치가 경제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본의 효율성과 수익성만을 쫒는 경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우선시하는 경제 쪽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정치가 개입해야 한다.

이책은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철학적 접근을 한다. 정치인의 발언과 생각을 주로 인용하면서, 규범적인 논의를 주로 한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저자의 주장이 실현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국내 정치 맥락에서 문제를 진단하는데, 세계화와 함께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미국 국내 정치의 필요에 따라 미국 경제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저자는 미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화를 통해 엄청난 규모로 빈곤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평가가 더 타당하다. 미국 노동자의 어려움과 세계인의 빈곤 퇴치라는 세계화의 양면을 균형있게 봐야 하지 않을까? 중복된 서술이 많아 읽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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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 Ellenberg. 2014. How not to be wrong: the power of mathmatical thinking. Penguin books. 437 pages.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수학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양한 예를 통해 입증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선형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 즉  가 증가 혹은 감소하면 B가 비례적으로 증가 혹은 감소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형적이지 않은 관계가 적지 않다. 예컨대 세율과 세수의 관계는 곡선의 관계이다. 국지적으로 보면 선형관계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곡선의 관계인 경우도 있다.  집합적으로는 선형관계이지만, 그 집합의 부분 범주에 한정하면, 선형관계가 아닌 경우도 있다. 상관도는 선형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여러 변수들 간의 관계가 복잡할 경우, A와 B가 선형 관계이고, B와 C가 선형관계이나, A와 C가 관계가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지만, 의학 분야에서는 자주 발생한다.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확률의 사건이라도, 언젠가 어디에서 누구에겐가는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추론하는 것은 오류이다. 통계 추정(inference)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을 귀무가설(null hypothesis)로 설정하고, 현실에서 그 귀무가설과 반대되는 사건, 즉 대립 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을 접하게 될 때, 그 귀무가설을 기각하고 대립 가설을 채택한다. 이때 이러한 판단이 오류일 가능성을 유의도(p-value)라 하는데, 유의도를 낮게 잡으면 잡을수록, 다시말하면 귀무가설이 옮음에도 이것을 기각하고 대립 가설을 채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문제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확률의 사건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유의도를 낮게 잡더라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은 사건(예컨대 테러리스트)를 찾아내기 위해, 샘플 표집을 통해 통계적 추정을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확율적인 사건에 대해 기대값을 계산하여 판단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문제는, 이론적 확율에 근사한 값을 얻으려면 많은 수의 사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주사위를 던지면, 연달아 6이 여러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전 시도에서 6이 여러번 나왔다고 하여, 그 다음 시도에서 6이외 다른 숫자가 나올 확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에 따라, 시도를 많이 할 수록 이전에 한쪽으로 쏠렸던 결과가 점차 희석되어(diluted) 이론적 확률에 근접한다. 복권은 가격 대비 기대값이 적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복권의 설계를 잘 못하여 6년 동안이나 기대값이 복권 가격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MIT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복권을 대량 매집하여 큰 돈을 벌었다.

평균에 회귀하는 (regression to the mean) 현상은 종종 나타난다. 예컨대 부모가 우수해도 그 자식들이 우수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에 우연적 요인이 추가될 때 나타난다. 지적인 능력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이 결합하여 지적인 능력을 만들어 내는데, 환경적인 요인에는 우연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세대가 지날수록 부모 세대의 예외적 특성은 점차 희석되어 전체의 평균으로 회귀한다. 같은 논리로, 예외적으로 우수한 기업도 시간이 지나면 평균적인 기업으로 변화한다. 사업의 성과는 우수한 기술이나 기업가 정신이라는 본원적인 요인과 운이 함께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우수한 실적의 펀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시장 평균 성적에 근접한다. 예외적인 실적을 기록한 다음 해에는 예외적이 아닌 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는 수학을 활용한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일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수치를 이용한 설명이 복잡하여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수학적 논리를 설명하는 서술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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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8(2016).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뮤진트리. 348쪽.

저자는 물리학을 전공한 음악가이며, 이 책은 음악의 심리적 효과에 관해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요약 정리한다.

음악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쇼핑센타의 배경음악이나 영화의 배경음악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다. 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준다. 지루함을 견디고, 편안하게 쉽도록 돕고,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쌓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기분을 좋게하고, 그리움에서 기쁨까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친숙한 음악을 선호한다. 한 곡조 내에서도 반복을 선호한다. 시간에 따라 진행하는 청각 경험은 동시적으로 파악하는 시각 경험에 비해서 반복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음악은 한 곡조 내에서 악기의 구성이나 음에서 약간의 변화를 첨가하면서 여러 번 반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컨대, AA'BA의 패턴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청각 경험을 통해 이미 익숙한 패턴과 흡사한 음의 진행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은 새로운 흥미를 가져오지만, 결국에는 익숙한 패턴으로의 회귀를 기대한다. 이는 한 곡조내에서도 음의 도약이 크면 중간음 쪽으로 회귀하는 음이 이어지는 작곡 규칙에서도 입증된다.

이 책은 음악 심리학 교과서를 요약한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간간히 이야기를 다채롭게 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의 전공분야가 아니어서인지 서술의 깊이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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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2.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How Music Works). 뮤진트리. 318쪽.

저자는 물리학자이자 음악가로, 이 책은 음악이 작동하는 원리를 물리학 지식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음악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이며, 소음과는 달리 조직적으로 정렬된 소리이다. 어떤 소리의 파동이라도 규칙적으로 파동이 반복되면 우리는 쾌적한 느낌을 갖는다. 그 파동의 모습이 너무 단순하면 곧 싫증을 느끼지만, 다양한 변화를 주어서 파동의 모습이 복잡하면서도 규칙적으로 반복되면 흥미와 즐거움을 느낀다.

음악의 소리는 기본음과 오버톤이 중첩되면서 복잡한 파동 모양을 만들어 낸다. 악기에 따라 여러 오버톤 중에 선택적으로 특정 오버토의 소리가 강조되어 합성되면서 복잡한 파동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2,4,6, 오버톤이 강조되고 3,5,7 오버톤이 약한 악기가 있는가하면, 다른 오버톤의 조합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도 있다. 악기는 소리를 내는 처음, 중간, 뒤가 각각 소리의 오버톤 조합이 달라지는데, 이는 신세사이져가 동일한 오버톤 조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생성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자연 악기의 자연스런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조합이 악기의 음색 tember 를 만들어 내는 원리이다.

두개 이상의 음의 파동이 때때로 겹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협화음으로 느낀다. 반면 불협화음은 두개 이상의 음의 파동이 겹쳐서 좀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만들지 않을 때 받든 느낌이다. 한 옥타브의 간격은 두음사이의 주파수의 비가 1:2 이므로, 두개의 파동이 결합할 때 마치 한개의 파동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의 귀는 두 소리를 같은 소리로 인식한다. 한편, 5도 간격의 소리, 예컨대 도와 솔은, 둘간에 주파수의 비율이 1과 1/2 이다. 따라서 두음이 결합하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자주 만들기 때문에 우리 귀에 편안하게 들린다. 도미솔의 기본 삼화음이 가장 편안하게 들리는 이유 역시, 미가 도보다 1과 1/4, 솔이 1과 1/2의 주파수이므로, 세 주파수가 조합될 때 규칙적으로 자주 반복되는 파동을 다른 어떤 조합보다 더 자주 만들기 때문이다.

한 옥타브의 간격을 12개로 균일하게 등분한 것이 서구의 음계이다. 이때 등분하는 방식은, 비율적으로 동일한 간격으로 구분하는데, 한계단 즉 반음 내려갈 때마다, 5.6%씩 주파수가 낮아진다. 이 비율을 복리로 계산하면 12계단 아래는 2분의 1이 된다. 서구의 음계는 12개의 계단 중 7개의 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인접한 두 음간에 온음 간격을 갖는 5개의 음을 선택하고, 이 다섯개의 음 중에 거리가 먼 간격을 채우는 두개의 음을 추가로 선택하여 7개의 음을 만들었다. 온음 간격의 5개의 음, 즉 도레미솔라는, 어느 두개의 음 간에도 서로 파동이 간섭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자주 만들어내어 듣기 좋은 합성의 소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세계의 대부분의 문화는 이렇게 5개의 음으로 구성된 음악을 만들었다.

한 옥타브의 간격인 12계단 중에서 7개의 음을 고르는 방법은, 각 음을 기준으로 7가지가 있는데 (이를 선법 mode 이라 함), 현대의 음악은 이 중 두개의 선법, 즉 장음계와 단음계 선법 두 개만을 주로 쓰고, 나머지 다섯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장음계는 인접음 간의 간격이 으뜸음을 기준으로 "온음-온음-반음-온음-온음-온음-반음"으로 구성된 7개의 음으로 구성된다. 7개의 음 중 어느 음을 으뜸음으로 삼아 이러한 규칙의 간격으로 7개의 음을 쌓아가는가에 따라 조가 나누어 진다. 어느 음을 으뜸음으로 삼던지 음의 배치는 모두 동일하다. 즉 C에서 시작하는 7개의 음이나, E에서 시작하는 7개의 음이나 음을 쌓아가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며, 전자는 C-major, 후자는 E-major이라고 지칭한다.

인간은 으뜸음의 주파수의 절대값이 아니라, 음들 사이에 주파수 간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어떤 음을 으뜸음으로 한 조성으로 작곡하던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베토벤을 포함해 음악 전공자들은 조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실험해본 결과 음악 전공자들도 시작하는 으뜸음이 다른, 즉 조가 다른 음악의 분위기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한 곡 내에서 조옮김에 될 때에는 분위기의 변화가 발생하는데, 높은 음쪽으로 조옮김이 되면 밝은 느낌이 드는 반면, 낮음 음 쪽으로 조옮김 되면 가라앉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음악 전공자들이 조에 따라 곡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 특정 조로 작곡된 음악들의 분위기가 다른 조로 작곡된 음악의 분위기와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통계적 학습의 결과로 습관이 그렇게 형성된 것일뿐, 조성 자체의 차이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음계와 조성에 대해 다른 책들이 두리뭉수리 설명하던 것을, 그림을 이용해 단순화하여 쉽게 설명해준다. 각 악기들의 작동원리를 물리학 지식을 적용하여 잘 설명한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와 주제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감탄했다. 저자가 철저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가 음악 전공자인 것도 이 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데 한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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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evitin. 2006. This is your brain on music: the science of a human obsession. Plume. 267 pages.

저자는 뇌과학자이자 음악가이며, 이 책은 인간의 뇌가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음악과 언어는 인간의 뇌에서 수용되는 방식이 흡사하다. 귀에서 보내오는 음악 신호는 뇌의 소리 중추에서 접수한 후, 뇌의 다양한 부위에서 음, 멜로디, 리듬, 박자, 등을 각각 별도로 처리하고 다시 종합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과거에, 음악은 오른편 뇌에서 전적으로 처리된다고 알려졌으나,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은 뇌의 좌우 반구에 분포된 다양한 영역에서 처리된다. 인간은 음악을 인식하는 데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태어난지 몇달 안되는 아기도 음악을 구별할 수 있으며, 성인은 처음 몇 음만 들으면 바로 음악을 판별해낸다. 조를 바꾸고 음색을 바꾸고 박자를 바꾸어도 멜로디를 인식하는 능력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의 음악 규칙을 내면화하고 있다. 서구인은 서구의 음계와 화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규칙에 어긋나는 음이나 음의 전개을 들으면 바로 이상함을 감지한다. 좋은 곡은, 이러한 규칙을 교묘하게 우회하고 변형하여 긴장을 유발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자의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곡예를 한다. 음악의 청자는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그러한 약간의 파격이 다시 예상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전적으로 예상에 따라 움직이는 음악은 단조롭고 흥미를 유발하며, 반면 규칙으로부터 매우 크게 벗어나 예상을 할 수 없게 하는 음악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청소년기, 16~18세 때 듣던 음악을 평생 좋아한다. 인간의 음악에 대한 취향은 이때 고정된 이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는 이 청소년기에 우리의 두뇌 속 신경망이 완전히 틀을 잡기 때문이다. 음악 전문가는 일반인보다 음악을 이해하는 정도가 깊기는 하지만, 일반인 또한 음악을 듣는 부분에서는 전문가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음악 전문가는 체스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규칙과 패턴을 잘 꿰고 있기 때문에 음악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작곡이나 연주를 능숙하게 하는 전문가가 되려면, 10,000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고, 이는 다른 분야에 전문가의 내공과 비슷한 분량이다. 이정도 훈련을 거쳐야만 인간의 뇌는 전문가 수준의 신경망을 형성하게 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간 사회에 음악과 춤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아, 음악은 진화의 산물이다. 음악과 춤은 외부의 행동에서는 물론, 우리의 뇌 안에서도 함께 작동한다. 음악은 이성의 짝을 유혹하는 기술로서 진화하였으며,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하는 도구로서도 진화하였다.

이책은 저자의 뇌과학 연구와 음악 활동을 잘 결합하여 서술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많은 예들이 대부분 미국의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이것에 익숙치 못한 독자에게는 덜 실감나게 여겨지는 한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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