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이영래 옮김). 2024. 인생의 의미 (Seven meanings in life). 더퀘스트. 305쪽.
저자는 노르웨이의 문화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그가 암을 겪고 난 후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서술한 수필집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현대 도시 산업사회의 삶이, 경쟁, 효율, 속도, 풍요, 환경파괴, 발전, 기술, 개인주의, 등에 매진하고 있는데, 진정한 삶은 이것의 반대, 즉 관계, 조화, 느림, 결핍, 자연 속에서, 균형, 전통, 집단,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생의 의미는 남과, 세상과, 과거 및 미래와, 자아보다 큰 무엇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체계적인 서술보다는, 저자의 머리속에 스쳐지나는 감흥과 독서의 기억들을 비체계적으로 망라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노르웨이의 환경주의자다운 발상과 서술 방식이다. 글쎄 지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그가 현지조사를 하고 곳곳에서 인용하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부족 사람들의 삶을 저자가 직접 살아볼 의향이 정말 있는지 묻고 싶다. 서구 선진 산업국에 살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보는 인류학자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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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Sandel. 2022. Democracy's Discontent. Belknap. 341 pages.
저자는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민주주의 정치 원리와 자본주의 시장 원리 간에 긴장관계가 미국 역사에서 건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시민의 자율적 통제(self-government)와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community virtue)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미국에서 19세기 말까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확장을 견제하면서 시민 공화주의 (Civic republicanism)를 지켜 왔다. 그러나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중립적(neutral) 태도를 취하게 되었으며, 경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오로지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치중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힘이 정치를 압도하게 되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분노가 쌓였으며, 급기야 엘리트에 반기를 들고, 대중 영합주의 정치인의 솔깃한 선동에 휩쓸렸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시민의 참여와 도덕을 회복하기 위해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건국 초기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통제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조업보다는 농업을,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자영업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이상은 19세기 산업화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현실에 부딛쳐 지키기 어려워졌지만, 산업화 과정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정책을 제안했으며, 정부는 대기업의 집중이 커지면 일반 노동자와 시민의 통제 범위 밖으로 벗어난다는 이유를 들어 기업 집중과 독점을 막으려 했다. 요컨대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정치권은 노동의 의미와 시민의 자율적인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를 견제하려 하였다.
20세기 들어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에서 노동의 의미는 단지 임금을 받고 소비를 하는 측면만 부각되었다. 노동은 삶의 중심이며 인간성을 함양하는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노동자란 생산의 부속품에 불과하며, 노동이란 오로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경제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노동자는 자신의 일의 과정은 물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자율적인 통제권을 상실한 채, 수동적인 존재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 보다는 소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세계화가 진행된 결과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들은 이러한 번영에서 제외되었으며, 자신의 일터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화를 통해 날개를 단 엘리트와 일반 노동자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엘리트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면책받은 반면, 일반인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마침내 Occupy Wallstreet movement, Teaparty movement 등의 사회운동을 통해 엘리트와 이들이 구축한 금권정치 구조에 분노를 표출했으며, 기성 정치체제에 반기를 드는 발언으로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려면, 일반 노동자의 분노를 초래한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 일반 노동자에게 노동의 의미와 삶의 통제권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정치가 경제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본의 효율성과 수익성만을 쫒는 경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우선시하는 경제 쪽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정치가 개입해야 한다.
이책은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철학적 접근을 한다. 정치인의 발언과 생각을 주로 인용하면서, 규범적인 논의를 주로 한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저자의 주장이 실현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국내 정치 맥락에서 문제를 진단하는데, 세계화와 함께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미국 국내 정치의 필요에 따라 미국 경제를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저자는 미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화를 통해 엄청난 규모로 빈곤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평가가 더 타당하다. 미국 노동자의 어려움과 세계인의 빈곤 퇴치라는 세계화의 양면을 균형있게 봐야 하지 않을까? 중복된 서술이 많아 읽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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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 Ellenberg. 2014. How not to be wrong: the power of mathmatical thinking. Penguin books. 437 pages.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수학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양한 예를 통해 입증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선형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 즉 가 증가 혹은 감소하면 B가 비례적으로 증가 혹은 감소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형적이지 않은 관계가 적지 않다. 예컨대 세율과 세수의 관계는 곡선의 관계이다. 국지적으로 보면 선형관계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곡선의 관계인 경우도 있다. 집합적으로는 선형관계이지만, 그 집합의 부분 범주에 한정하면, 선형관계가 아닌 경우도 있다. 상관도는 선형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여러 변수들 간의 관계가 복잡할 경우, A와 B가 선형 관계이고, B와 C가 선형관계이나, A와 C가 관계가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지만, 의학 분야에서는 자주 발생한다.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확률의 사건이라도, 언젠가 어디에서 누구에겐가는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추론하는 것은 오류이다. 통계 추정(inference)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을 귀무가설(null hypothesis)로 설정하고, 현실에서 그 귀무가설과 반대되는 사건, 즉 대립 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을 접하게 될 때, 그 귀무가설을 기각하고 대립 가설을 채택한다. 이때 이러한 판단이 오류일 가능성을 유의도(p-value)라 하는데, 유의도를 낮게 잡으면 잡을수록, 다시말하면 귀무가설이 옮음에도 이것을 기각하고 대립 가설을 채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문제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확률의 사건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유의도를 낮게 잡더라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은 사건(예컨대 테러리스트)를 찾아내기 위해, 샘플 표집을 통해 통계적 추정을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확율적인 사건에 대해 기대값을 계산하여 판단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문제는, 이론적 확율에 근사한 값을 얻으려면 많은 수의 사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주사위를 던지면, 연달아 6이 여러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전 시도에서 6이 여러번 나왔다고 하여, 그 다음 시도에서 6이외 다른 숫자가 나올 확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에 따라, 시도를 많이 할 수록 이전에 한쪽으로 쏠렸던 결과가 점차 희석되어(diluted) 이론적 확률에 근접한다. 복권은 가격 대비 기대값이 적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복권의 설계를 잘 못하여 6년 동안이나 기대값이 복권 가격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MIT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복권을 대량 매집하여 큰 돈을 벌었다.
평균에 회귀하는 (regression to the mean) 현상은 종종 나타난다. 예컨대 부모가 우수해도 그 자식들이 우수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에 우연적 요인이 추가될 때 나타난다. 지적인 능력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이 결합하여 지적인 능력을 만들어 내는데, 환경적인 요인에는 우연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세대가 지날수록 부모 세대의 예외적 특성은 점차 희석되어 전체의 평균으로 회귀한다. 같은 논리로, 예외적으로 우수한 기업도 시간이 지나면 평균적인 기업으로 변화한다. 사업의 성과는 우수한 기술이나 기업가 정신이라는 본원적인 요인과 운이 함께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우수한 실적의 펀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시장 평균 성적에 근접한다. 예외적인 실적을 기록한 다음 해에는 예외적이 아닌 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는 수학을 활용한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일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수치를 이용한 설명이 복잡하여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수학적 논리를 설명하는 서술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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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8(2016).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뮤진트리. 348쪽.
저자는 물리학을 전공한 음악가이며, 이 책은 음악의 심리적 효과에 관해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요약 정리한다.
음악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쇼핑센타의 배경음악이나 영화의 배경음악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다. 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준다. 지루함을 견디고, 편안하게 쉽도록 돕고,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쌓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기분을 좋게하고, 그리움에서 기쁨까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친숙한 음악을 선호한다. 한 곡조 내에서도 반복을 선호한다. 시간에 따라 진행하는 청각 경험은 동시적으로 파악하는 시각 경험에 비해서 반복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음악은 한 곡조 내에서 악기의 구성이나 음에서 약간의 변화를 첨가하면서 여러 번 반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컨대, AA'BA의 패턴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청각 경험을 통해 이미 익숙한 패턴과 흡사한 음의 진행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은 새로운 흥미를 가져오지만, 결국에는 익숙한 패턴으로의 회귀를 기대한다. 이는 한 곡조내에서도 음의 도약이 크면 중간음 쪽으로 회귀하는 음이 이어지는 작곡 규칙에서도 입증된다.
이 책은 음악 심리학 교과서를 요약한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간간히 이야기를 다채롭게 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의 전공분야가 아니어서인지 서술의 깊이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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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웰 (장호연 옮김). 2012.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How Music Works). 뮤진트리. 318쪽.
저자는 물리학자이자 음악가로, 이 책은 음악이 작동하는 원리를 물리학 지식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음악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이며, 소음과는 달리 조직적으로 정렬된 소리이다. 어떤 소리의 파동이라도 규칙적으로 파동이 반복되면 우리는 쾌적한 느낌을 갖는다. 그 파동의 모습이 너무 단순하면 곧 싫증을 느끼지만, 다양한 변화를 주어서 파동의 모습이 복잡하면서도 규칙적으로 반복되면 흥미와 즐거움을 느낀다.
음악의 소리는 기본음과 오버톤이 중첩되면서 복잡한 파동 모양을 만들어 낸다. 악기에 따라 여러 오버톤 중에 선택적으로 특정 오버토의 소리가 강조되어 합성되면서 복잡한 파동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2,4,6, 오버톤이 강조되고 3,5,7 오버톤이 약한 악기가 있는가하면, 다른 오버톤의 조합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도 있다. 악기는 소리를 내는 처음, 중간, 뒤가 각각 소리의 오버톤 조합이 달라지는데, 이는 신세사이져가 동일한 오버톤 조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생성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자연 악기의 자연스런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조합이 악기의 음색 tember 를 만들어 내는 원리이다.
두개 이상의 음의 파동이 때때로 겹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협화음으로 느낀다. 반면 불협화음은 두개 이상의 음의 파동이 겹쳐서 좀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만들지 않을 때 받든 느낌이다. 한 옥타브의 간격은 두음사이의 주파수의 비가 1:2 이므로, 두개의 파동이 결합할 때 마치 한개의 파동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의 귀는 두 소리를 같은 소리로 인식한다. 한편, 5도 간격의 소리, 예컨대 도와 솔은, 둘간에 주파수의 비율이 1과 1/2 이다. 따라서 두음이 결합하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자주 만들기 때문에 우리 귀에 편안하게 들린다. 도미솔의 기본 삼화음이 가장 편안하게 들리는 이유 역시, 미가 도보다 1과 1/4, 솔이 1과 1/2의 주파수이므로, 세 주파수가 조합될 때 규칙적으로 자주 반복되는 파동을 다른 어떤 조합보다 더 자주 만들기 때문이다.
한 옥타브의 간격을 12개로 균일하게 등분한 것이 서구의 음계이다. 이때 등분하는 방식은, 비율적으로 동일한 간격으로 구분하는데, 한계단 즉 반음 내려갈 때마다, 5.6%씩 주파수가 낮아진다. 이 비율을 복리로 계산하면 12계단 아래는 2분의 1이 된다. 서구의 음계는 12개의 계단 중 7개의 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인접한 두 음간에 온음 간격을 갖는 5개의 음을 선택하고, 이 다섯개의 음 중에 거리가 먼 간격을 채우는 두개의 음을 추가로 선택하여 7개의 음을 만들었다. 온음 간격의 5개의 음, 즉 도레미솔라는, 어느 두개의 음 간에도 서로 파동이 간섭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자주 만들어내어 듣기 좋은 합성의 소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세계의 대부분의 문화는 이렇게 5개의 음으로 구성된 음악을 만들었다.
한 옥타브의 간격인 12계단 중에서 7개의 음을 고르는 방법은, 각 음을 기준으로 7가지가 있는데 (이를 선법 mode 이라 함), 현대의 음악은 이 중 두개의 선법, 즉 장음계와 단음계 선법 두 개만을 주로 쓰고, 나머지 다섯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장음계는 인접음 간의 간격이 으뜸음을 기준으로 "온음-온음-반음-온음-온음-온음-반음"으로 구성된 7개의 음으로 구성된다. 7개의 음 중 어느 음을 으뜸음으로 삼아 이러한 규칙의 간격으로 7개의 음을 쌓아가는가에 따라 조가 나누어 진다. 어느 음을 으뜸음으로 삼던지 음의 배치는 모두 동일하다. 즉 C에서 시작하는 7개의 음이나, E에서 시작하는 7개의 음이나 음을 쌓아가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며, 전자는 C-major, 후자는 E-major이라고 지칭한다.
인간은 으뜸음의 주파수의 절대값이 아니라, 음들 사이에 주파수 간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어떤 음을 으뜸음으로 한 조성으로 작곡하던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베토벤을 포함해 음악 전공자들은 조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실험해본 결과 음악 전공자들도 시작하는 으뜸음이 다른, 즉 조가 다른 음악의 분위기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한 곡 내에서 조옮김에 될 때에는 분위기의 변화가 발생하는데, 높은 음쪽으로 조옮김이 되면 밝은 느낌이 드는 반면, 낮음 음 쪽으로 조옮김 되면 가라앉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음악 전공자들이 조에 따라 곡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 특정 조로 작곡된 음악들의 분위기가 다른 조로 작곡된 음악의 분위기와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통계적 학습의 결과로 습관이 그렇게 형성된 것일뿐, 조성 자체의 차이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음계와 조성에 대해 다른 책들이 두리뭉수리 설명하던 것을, 그림을 이용해 단순화하여 쉽게 설명해준다. 각 악기들의 작동원리를 물리학 지식을 적용하여 잘 설명한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와 주제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감탄했다. 저자가 철저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가 음악 전공자인 것도 이 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데 한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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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evitin. 2006. This is your brain on music: the science of a human obsession. Plume. 267 pages.
저자는 뇌과학자이자 음악가이며, 이 책은 인간의 뇌가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음악과 언어는 인간의 뇌에서 수용되는 방식이 흡사하다. 귀에서 보내오는 음악 신호는 뇌의 소리 중추에서 접수한 후, 뇌의 다양한 부위에서 음, 멜로디, 리듬, 박자, 등을 각각 별도로 처리하고 다시 종합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과거에, 음악은 오른편 뇌에서 전적으로 처리된다고 알려졌으나,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은 뇌의 좌우 반구에 분포된 다양한 영역에서 처리된다. 인간은 음악을 인식하는 데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태어난지 몇달 안되는 아기도 음악을 구별할 수 있으며, 성인은 처음 몇 음만 들으면 바로 음악을 판별해낸다. 조를 바꾸고 음색을 바꾸고 박자를 바꾸어도 멜로디를 인식하는 능력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의 음악 규칙을 내면화하고 있다. 서구인은 서구의 음계와 화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규칙에 어긋나는 음이나 음의 전개을 들으면 바로 이상함을 감지한다. 좋은 곡은, 이러한 규칙을 교묘하게 우회하고 변형하여 긴장을 유발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자의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곡예를 한다. 음악의 청자는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그러한 약간의 파격이 다시 예상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전적으로 예상에 따라 움직이는 음악은 단조롭고 흥미를 유발하며, 반면 규칙으로부터 매우 크게 벗어나 예상을 할 수 없게 하는 음악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청소년기, 16~18세 때 듣던 음악을 평생 좋아한다. 인간의 음악에 대한 취향은 이때 고정된 이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는 이 청소년기에 우리의 두뇌 속 신경망이 완전히 틀을 잡기 때문이다. 음악 전문가는 일반인보다 음악을 이해하는 정도가 깊기는 하지만, 일반인 또한 음악을 듣는 부분에서는 전문가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음악 전문가는 체스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규칙과 패턴을 잘 꿰고 있기 때문에 음악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작곡이나 연주를 능숙하게 하는 전문가가 되려면, 10,000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고, 이는 다른 분야에 전문가의 내공과 비슷한 분량이다. 이정도 훈련을 거쳐야만 인간의 뇌는 전문가 수준의 신경망을 형성하게 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간 사회에 음악과 춤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아, 음악은 진화의 산물이다. 음악과 춤은 외부의 행동에서는 물론, 우리의 뇌 안에서도 함께 작동한다. 음악은 이성의 짝을 유혹하는 기술로서 진화하였으며,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하는 도구로서도 진화하였다.
이책은 저자의 뇌과학 연구와 음악 활동을 잘 결합하여 서술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많은 예들이 대부분 미국의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이것에 익숙치 못한 독자에게는 덜 실감나게 여겨지는 한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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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E. 윌리엄스 (김성훈 옮김). 2017(2016). 늙어감의 기술: 과학이 알려주는 나이드는 것의 비밀. 현암사. 348쪽.
저자는 노인의학 전문의이며, 이 책은 과학적 연구결과와 자신의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잘 늙어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현재 서구에서 기대수명은 80이 넘는다. 그러나 늙어가는 것 및 노인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미치지 못한다. 미국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기대수명이 47세였으며, 로마시대에는 35세에 불과했다. 이제 일하는 기간 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노인으로 지내야 한다. 노년기는 인생의 잔여 기간이 아니며, 노년기의 삶을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서는 안된다. 과거 노인에 대한 지식과 편견이 현재의 사람들을 지배하는데, 이것은 과학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가 가장 서로 유사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벌어진다. 노년기는 젊을 때보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 건강, 정서적 상태,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하나의 범주로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노인들 사이에 편차가 크다.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노인들 사이에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잘 늙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의욕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몇가지를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몸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영양 섭취가 요구된다. 둘째, 머리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노년기에도 지적인 활동을 계속 해야 한다. 셋째,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노화에 따라 붙는 부정적 감정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역할과 존재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도록 해야 한다. 넷째는 자신의 인생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함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죽음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심성을 길러야 한다.
노인의 몸이나 정서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비책은 없다. 수명을 늘이려고 악착같이 노력하기보다는,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고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에너지 사용이다. 노년이 되어도 삶에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사는 것이 건강한 노년의 삶의 핵심이다. 돈을 버는 일을 그만둔다고 하여, 자신의 활동이나 사회 관계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년의 삶을 어떻게 영위하는가는 각자 하기 나름이며, 그 결과 노인들 사이에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과학자로서 저자의 지식과 의사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 있는 설명과 조언을 제시한다. 특별히 새로운 말은 없지만, 노년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검토에서, 생물학적, 생리학적, 임상적 검토에 이르기까지 균형있고 간명하게 설명한다. 다만 후반부에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제목으로 이야기하면서 중언부언하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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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드뤼서 (전대호 옮김). 2009(2015). 음악본능: 우리는 왜 음악에 빠져들까? 해나무. 466쪽.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뇌과학과 음악학 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음악을 감상하고 직접 하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섭렵한다. 저자의 서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음악을 이해하고 즐기는 능력은 인간 본능의 일부이다.
역사상 인류 모든 사회에 음악이 존재하는 데, 이는 진화의 산물이다. 배우자를 구하는 짝짓기 행위의 일부로 발달했다는 가설도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도모하는 목적에서 발달했다는 가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모든 인류 사회에서 음악 활동은 개인이 홀로 하는 행위이기 보다, 공동체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함께 참여하는 활동으로 존재했다. 함께 춤추고 음악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은 결속을 다졌다.
음계는 문화에 따라 다른 데, 태어난지 얼마 안된 유아는 특정 음계에 대한 선호가 없는 것으로 실험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태어난지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유아는 자신이 속한 문화의 음계에 익숙하고 이를 선호하는 성향을 보인다. 화음에 대한 선호는 생리적 근거가 있다. 협화음을 들을 때 우리의 두뇌는 불협화음을 들을 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을 음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약간의 훈련만 하면 음정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뇌가 본능적으로 음고를 구별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음들 간에 상대적 거리를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음의 절대적 주파수를 인지하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다. 박자와 리듬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능의 일부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다양한 박자와 리듬을 구별하고 따라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은 익숙한 음악을 쉽게 식별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불과 첫 몇 음만 듣고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수많은 음악 중의 하나와 쉽게 매치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음의 진행을 여러번 들으면서 고착화시킨다. 서구 음악의 기본적인 화음 진행 규칙에서 벗어나 진행되면, 전문적인 음악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금방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는 일종의 '통계적 학습'의 결과인데, 많이 지나갈수록 숲속에 길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서, 많이 접할수록 익숙하게 느끼고 앞으로의 진행을 예상하게 되며, 그러한 예상에서 벗어날 때, 이상하다고 느끼고 긴장을 느낀다. 예컨대 서구의 음악은 시작할 때의 조성에 맞는 기본음으로 끝을 맺는 것이 보통인데, 기본음이 아닌 음에서 음악이 끝나면 무언가 더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미진한 느낌이 든다.
음악은 감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15세에서 25세 사이에 들은 음악을 일생 동안 기억하며, 특정 음악을 자주 들었던 때 느꼈던 감정이, 이후에도 그 음악을 다시 들으면 바로 연상된다. 과거의 특정 감정을 재생시키는 데, 음악은 냄세 만큼이나 뚜렷하게 연상 작용을 유발한다.
음악을 직접 하면 다른 어떤 활동보다 뚜렷이 우리의 뇌가 변화한다. 죽은 음악가의 뇌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죽은 사람의 뇌와는 외관에서도 구분된다. 두뇌 활동에 문제가 있는 환자, 예컨대 치매나 파킨슨 병 등의 경우에, 노래를 부르는 등 음악을 직접하는 행위를 통해 뇌 전체의 활동을 촉진시켜 뇌의 퇴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데는 오랜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며, 어릴 때 시작할수록 학습의 효율이 높다. 전문 연주자는 10,000 시간, 즉 매일 3시간씩 10년간 연습을 해야 도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음악을 배운다고 해서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배우는 목표가 전문 연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 속에서 음악을 즐기는 데 둔다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음악을 배울 가치가 있다. 물론 특정 악기를 웬만큼이라도 능숙하게 다루는데는 오랫동안 지루한 연습 과정을 참고 견뎌야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음악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라는 보상도 함께 한다. 피아노보다는 기타가 배우기 쉬우며, 가창법을 배워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것에서도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고전 음악보다는 일반 대중 음악을 주로 예로 들며, 자신의 음악 체험을 덧붙이면서 많은 연구 성과를 쉬운 서술로 요약하여 제시한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뛰어나며, 번역도 자연스럽게 해서, 읽는 내내 흥미롭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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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Tuckett. 2011. Minding the Markets: An Emotional Finance View of Financial Instability. Palgrave Macmillan. 206 pages.
저자는 정신분석학자이며, 이 책은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 자료를 배경으로 금융 버블이 일어나는 기제를 설명한다.
금융자산은 기본적으로 미래의 가치가 불확실하다. 금융자산 이론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모든 정보와 지식은 현재의 가치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자산에 대한 과거의 지식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자산의 불확실한 미래 가치는 어떤 확율 함수에 의해서도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이론은 완전하게 작동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실제 시장의 움직임에는 틈이 있으므로, 이 틈을 이용하여 시장 평균 수익율을 상회하는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목적이다.
펀드 매니져는 자신의 투자 행위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예컨대, 기업의 펀더맨탈을 남보다 정확히 파악하여 펀더맨탈에 기초한 가치와 시장 가격 간의 차이를 이용하는 가치투자를 한다거나, 시장의 단기 출렁임에 흔들리지 않고 펀더맨탈에 기초한 장기 투자를 한다거나, 남들이 못보는 부분, 남들이 가지지 않은 정보를 이용하여 특정 기업의 진실한 가치를 파악하여 예외적인 투자를 한다는 등이다. 펀드 매니져와 금융회사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고객에게 제시하여 투자금을 끌어들이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펀드 매니져는 자신이 선택한 기업에 대해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야기에서 이러한 감정적인 애착을 읽을 수 있다. 자신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엄청난 물건' fantastic object 를 포착했다거나, 주식이 자신의 기대와 달리 움직이면 '배반' betrayed 을 당했다고 느낀다. 금융 자산이란 기본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적 애착 없이 냉정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감정"이 그들의 행위를 이끄는 안내자이고 동력이다.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상승과 하락을 항시 감시하고, 업계에서 수익에 따라 펀드매니저에 대한 등수를 매기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펀드 매니져는 엄청난 감정적 스트레스 속에서 매일을 살며, 이것이 그들의 일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받아들인다.
금융자산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투자 성공으로 뒷받침될 때도 있지만, 그못지 않게 투자 실패를 낳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투자 결과에 따라 큰 감정적인 기복을 경험한다. 주식이 자신의 예상과 달리 움직일 때, 펀드 매니져는 자신이 제시한 이야기에 유리한 쪽으로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감정적으로 나누어진 상태' (divided state)로 자신을 방어한다. 즉 시장의 위험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주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의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펀드 매니저 본인 및 투자자에게 그렇게 설명한다. 손실이 지속되면 그들은 결국 직장을 잃기 때문에,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장기투자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단기에라도 손실이 나면 투자자로부터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주가 하락에 대한 펀드 매니져의 감정적 개입과 자기 방어는 심할 수 밖에 없다.
펀드 매니저가 선택한 주식의 가치가 상승하면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맞다고 확신하며, 반대로 가치가 하락할 때에도 그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맞다고 믿고, 그 이야기로부터 하락한 이유를 도출하여 자신과 고객을 설득한다. 하락이 지속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주식을 손해를 보고 팔고 손 뗄 수 밖에 없다. 금융자산의 미래 가치는 예측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에도,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믿으며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한 믿음이 냉정한 현실과 부딛쳐 깨지면 배반당했다고 느끼고 좌절하는 등 엄청나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이것이 바로 펀드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이다. 어느 펀드 매니져이든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대한 믿음 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객이 펀드매니져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단순히 손실을 입지 않는 수준을 넘어, 시장 평균 수익율을 상회하는 것이다. 다른 펀드매니져나 금융 회사보다 우월한 수익율을 기록하지않으면 고객은 떠난다. 펀드 매니져는 기업의 펀더맨털에 기초해 독립적으로 투자한다고 하지만, 다른 펀드 매니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항시 염두에 두면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다른 펀드 매니져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회를 자신만 놓친다면, 그 또한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동떨어지게 행위할 때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펀드 매니져는 대체로 업계의 집단적인 감정 group feel 에 휩쓸려 움직인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일부 펀드 매니져들은 금융기관이 진 과도한 리스크를 염려했지만, 그들 역시 다른 펀드 매니져와 마찬가지로 투자하였다. 펀드 매니저는 업계의 평균을 상회하는 예외적인 존재여야 하며, 동시에 업계의 공통된 투자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되는 모순된 처지에 놓여 있다.
금융시장에 참여자는 각자가 감정적으로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집단적인 감정에 쏠려서 움직이므로, 이러한 환경에서 금융시장의 버블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특정 금융자산의 위험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큰 수익을 올리려는 개별적인 욕구와 집단적인 감정이 결합하며, 해당 자산의 위험을 통합적으로 보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감정적으로 나누어진 상태'를 보일 때, 해당 자산의 위험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다. 요컨대 위험도의 가파른 상승 다이나믹은 금융시장의 참여자가 엄청나게 큰 감정적 개입을 하는데 기인한다.
물론 큰 돈을 벌고 잃는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금융 버블을 막으려면 금융 시장의 참여자가 감정적으로 크게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 투자가 '따분한' boring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금융 투자를 통해 큰 돈을 벌 기회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펀드 매니져와 금융회사의 장기적인 투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오랜기간 지속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금융자산의 미래 가치가 정말 불확실하다면, 합리적인 방식의 투자 수익은 결국 시장 평균에 수렴할 수 밖에 없다. 펀드 매니징 업계는 그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이야기의 산물에 불과하다. 고객이 그들이 제시하는 환상을 사는 순간, 금융 버블은 만들어지고 언젠가 폭발하는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금융 시장의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기초로 금융 투자 업계를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인터뷰 자료를 읽다보면 펀드 매니저들이 마치 경마판의 말인 듯한 생각이 들며, 그들에 대해 동정심이 느껴진다. 근래에 인덱스 펀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시장의 평균을 추구하는 인덱스 펀드에는 감정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 버블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물론 알고리즘 투자에 따른 시장 쏠림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이 책이 다루는 주제 자체는 흥미롭지만 저자의 서술은 매우 읽기 어렵다. 내용의 반복이 심하며, 중언부언 필요 없이 덧붙여 말하는 식으로 글을 복잡하게 구성하여, 그만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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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er Helm. Net Zero: How We Stop causing climate change. William Collins. 24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지금까지 지구 온란화를 멈추려는 세계의 시도를 비판하면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정치 경제적으로 그러한 대책이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1990년 유엔이 주도한 교토협약이래, 2015년 파리협정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하여 회의를 무수히 하고 엄청나게 많이 논의하였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지구의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앞으로도 이대로라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지난 30년간 국제사회의 노력은, 실제 지구의 대기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top-down 방식의 규제였다. 국가 대표들이 만나서 서로 감축 목표를 협의하여 정하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각 나라가 국내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세계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 미국, 인도가 이러한 감축 협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미국은 자신의 주권이 국제협정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들로부터 구속력 있는 동의를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들 강국이 설사 약속을 위반한다고 하여도 제제를 가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국제회의를 거듭하면서 참가국으로부터 감축 약속을 쥐어 짜내는 것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 한편, 일방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어느 정도 성실히 이행하는 유럽 조차도,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는 행동하지 않는다.
유럽은 1990년을 기준점으로 하여, 유럽 지역으로부터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여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유럽에서는 이제, 이산화탄소 배출이 특히 많은 석탄을 거의 퇴출시켰으며,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집약 산업을 점차적으로 퇴출시키고, 이산화탄소 배출 허가권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의 노력은, 에너지 집약 산업의 생산물을 중국 등에서 수입함으로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지역을 유럽으로부터 지구 상의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유럽의 탈산업화로 deindustrialization 인하여, 이 지역에서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줄어든 것일 뿐이다. 유럽인들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와 상품을 계속 선호하고 소비하는 한, 지구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것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줄어들겠지만, 유럽인이 사용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자명한 사실에 애써 눈감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진짜로 줄이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초래한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지금까지는 이산화탄소의 저감 노력을 주로 생산 쪽에서 접근했는데, 저자는 소비 쪽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생산하는 이유는 결국 소비자가 그러한 생산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 한 기업에게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도록 강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가 그러한 제품을 원하는 한, 기업은 어떤 우회수단을 써서라도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는 방향의 접근을 밑에서부터의 개선 bottom-up 방식이라고 명명한다. 즉 환경오염이라는 경제적 외부효과 externality 를 가격에 반영시킴으로서, 시장 기구가 작동하여 환경오염의 비용 부담이 고르게 배분되도록 하는 것이다. 에너지와 상품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배출양에 비례해 세금, 즉 탄소세 carbon tax 를 매기면 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 생산되어 수입되는 물건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탄소세 border tax를 매긴다면, 생산 장소가 어디냐에 상관없이, 순수히 지구 환경이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비례하여 비용 부담이 배분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선진산업국은 물론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가급적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방향으로 생산과 소비를 조정할 것이다. 지구 상의 어느 곳에 살던지, 사람들은 탄소세를 덜 부담하는 방향, 즉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조정해 갈 것이다.
에너지와 물품을 소비하는 한, 이산화탄소가 전혀 발생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가 발생되는 양만큼, 지구상의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쪽으로 동시에 노력을 기울여,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순증가가 없도록 하는 것, 즉 net zero 를 목표로 두어야 한다. 나무를 심고, 녹지를 늘이고, 탄소를 포집하여 지하나 바닷속에 저장하는 등의 노력을,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기울여야 한다.
화석 에너지로부터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기간시설 infrastructure 투자가 필요하다. 풍력 터빈이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발전하는 것은 민간에 맡긴다고 해도, 전력망을 깔고, 전체의 전력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미래의 친환경 에너지는 주로 전기에 의존할텐데,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보급하려면 충전 시스템의 기준을 정하고 전국에 망이 깔리도록 관리하는 주체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민간 기업은 아직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려 하지 않고, 설사 투자한다고 해도 자신의 회사에게만 배타적으로 이익이 되도록 하려 하기 때문에 비효율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의 추세로 볼 때 에너지 전환은 빠른 기술 발전 덕분에 가까운 미래에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발전을 이끄는 연구개발은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 역사에서 보듯이, 산업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범용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는 민간 기업이 하려 하지 않는다. 민간이 개발한 기술은 저작권으로 보호되어야 함으로, 사회전반에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없다. 친환경 에너지는 화석 연료에 비해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에너지 집적도가 낮으며,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하는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구축하도록 계획하고 관리하는 역할 역시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정부의 보조금이 추가되어야만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저자의 논의의 핵심은 탄소세이다. 즉 최종 소비자가 탄소배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탄소 발생을 줄이는 방안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거둔 탄소세의 세수는 엄청난 규모일텐데, 이를 환경을 개선하는 목적에 한정해 쓰기보다는, 일반 재정에 포함시켜 최적의 효율성을 거두도록 하는게 좋다. 탄소세는 일종의 간접세이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이 소득이 높은 사람보다 더 많이 부담한다. 이러한 역진성을 상쇄하기 위하여,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세금을 깍아주거나 사회복지를 늘이는 방법으로 하여, 전체의 형평을 맞출 수 있다. 앞으로 인구 노령화 등으로 선진국 정부의 재정이 크게 증가해야 하는 데, 탄소세를 통해 이러한 재정적 압박을 완화할 수 있다면, 탄소세의 도입은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이 될 것이다.
선진산업국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의 소비생활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environmentally unsustainable 사실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를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소극적이거나 자기 기만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은 표면적으로 오염을 배출하지 않는 듯 하지만, 남들이 오염을 배출하여 만든 것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다. 명실상부하게 친환경적이 되도록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필요 없는 소비를 줄이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환경위해적인 소비를 삼가고, 등등. 저자는 환경배출의 순증가가 0이 되는 미래가, 반드시 소비를 축소하거나 성장이 멈춘 경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 개발 덕분에 지난 수십년 동안에도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듯이, 앞으로도 많은 환경 문제가 기술 개발에 의해 해결되고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unsustainable 방식의 생활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을 not sustain 것이며, 환경 재앙을 맞을것이다.
저자는 이 분야에 오랜 연구를 한 권위자 답게, 명쾌한 논리로 문제를 분석하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다른 많은 책과는 구별되는 독보적인 책이다. 문제는 저자의 주장과 같이 탄소세를 부과하고, 특히 수입품에 대해서도 탄소세를 거둔다면, 개발도상국의 수출은 정체될 것이고 경제성장은 더뎌질 것이다. 현재의 환경 오염은 선진국이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저지른 것인데, 앞으로의 환경 개선을 위해 개발도상국은 산업화 성장을 멈추어야 한단말인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두가지로 답한다.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선진산업국보다 개발도상국이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더욱 크게 입을 것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문제는 선진산업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시급한 과제이다. 개발도상국에게 빈곤문제가 환경문제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고 해도, 선진 산업국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보상을 하는 것은, 지구 대기에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는 문제와는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이러한 보상을 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에, 별도의 접근으로 선진산업국과 개발도상국간 형평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빈곤을 줄이는 것이 미래의 환경 재앙을 예방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큰 문제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탄소세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환경 위기로 인한 선진산업국 사람들의 고통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과 유사한 수준이 될 때,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환경 개선에 진정으로 동참할 것이다.
사람들의 소비 방식을 바꾸어 이산화탄소 발생의 순중가를 0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되어야 하는데, 과연 선진산업국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데 동의하겠느냐 하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저자는 일시적으로는 탄소세의 여파로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소비가 줄어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와 행동을 조정할 것이기 때문에 탄소세는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목표에 근접할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사람들이 절약을 하도록 강제하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과거 전시 상황이 유일하다. 서구의 다수의 사람들이, 미래에 닥쳐올 환경 재앙을 현재의 만족을 희생해야 할 정도의 절박함으로 받아들이려면, 지구의 기후변화가 앞으로도 한참은 진척되어야 할 것이다.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상태에 도달한다면, 사람들이 마지 못해 현재의 소비를 희생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책은 유럽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세계 환경 오염의 주범인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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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그레이. 2010. 세상의 모든 원소 118. 영림카디널. 235쪽.
저자는 대중과학 저술가이며, 이 책은 주기율표에 있는 총 118개의 원소 각각에 대해 샘플 사진을 곁들여 설명한다. 과학 원리에 대한 약간의 배경 설명과 함께, 일상에서 각 원소가 사용되는 예들을 제시한다. 원자번호 1번 수소 H에서부터 그당시까지 발견 혹은 합성된 118번의 '우눈옥튬'까지 각각의 원소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원소 샘플 수집가이며,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삽입하면서 캐쥬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볍게 서술 부분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눈요기하는 도감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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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Jourdain. 1997. Music, the Brain, and Ecstasy: How music capture our imagination. Avon Books. 333 pages.
저자는 대중 과학 저술가이며 피아노 연주자이다. 이책은 음악의 원리를 물리적인 소리에서부터 음악 작품의 감상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소리 sound, 음 tone, 음율 melody, 화음 harmony, 리듬 rhythm, 작곡, 연주, 감상, 이해, 황홀경, 등으로 각 장 마다 구분된 주제에 대해 설명한다.
음악에서 '음' tone 은 특정 주파수의 소리 집합이다. 어떤 악기의 음이 단일 주파수로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악기의 음은 '기본음' fundamental 과 이보다 높은 주파수의 여러개의 '상음' overtone 이 동시에 섞여 있다. 우리는 어떤 음과 이보다 높은 주파수의 배율로 만들어진 다른 음을 같은 음으로 인식한다. 이를 '옥타브 등가' octave equavalence 의 원칙이라 하는데, 옥타브가 높아질 때마다 주파수가 배율로 증가하며, 우리는 중간 옥타브의 소리와 위의 옥타브들의 소리를 같다고 느낀다. 기본음의 주파수의 1.5배에 해당하는 음도 상음에 섞여 있는데, 서구 음계에서 한 옥타브의 중간에 해당하는 '도'와 '솔'의 간격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기본음이 어떤 주파수여야 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두뇌는 주파수간의 간격 interval을 주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음계에서 악기를 조율할 때, 중간 옥타브 아래의 '라' A 음을 기준으로 하는 데, 이는 관행적으로 초당 110헬츠이다. 모짜르트 시대에 비해 근래로 올 수록 같은 음에 대해 약간 높은 수준의 주파수를 설정한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귀가 낮은 주파수보다 높은 주파수의 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의 서구 음계는 한 옥타브 간격을 균등하게 12개로 나눈 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7개 음은 우리의 귀에 서로 잘 조응하는 것으로 들리는 반면, 5개 음은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도레미파솔라시' 라는 7개의 온음과 5개의 반음으로 구성된 체계가 서구 음악의 기본 음계이다. 한 옥타브 내에 12개의 반음들을 서로 어떻게 간격을 조정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음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장조와 단조라는 두가지 방식의 간격 조정 음계만이 현재는 주로 사용된다.
세계의 모든 문화가 한 옥타브의 간격 intrerval을 반드시 12개 음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간격으로 음을 구분하며, 많은 전통 문화의 음계는 5개의 간격으로만 구분한다. 특정 음계는 특정 문화의 음악적 관습의 산물이기 때문에, 서구 사람들에게는 서구의 음계가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문화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전시킨 화음과 형식의 복잡성을 서구의 음계가 뒷받침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서구의 음계를 능가할만큼 풍부하게 복잡한 음악을 발전시킨 다른 음계는 찾을 수 없다.
음률 melody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음고 pitch 의 상하로 움직이며 음이 전개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음악을 주로 멜로디로 인식한다. 어떤 음의 진행 contour 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음의 진행을 사람들이 싫어하는지는 분명하다. 대체로 화음에 부합하는 음의 진행이어야 한다. 동일한 음이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거나, 화음에서 크게 벗어나는 음이 많거나, 비약이 심한 음악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화음 harmony 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여러 개의 다른 음고 pitch 음의 조합을 말한다. 서구에서 1500년대 이후에 단일 성부로부터 다성부 polyphony 의 음악이 발전하면서, 음을 조합하는 여러 방식이 개발되었다. 기본 3화음 triad 이 가장 많이 쓰이는데, 기본음에 3도와 5도 음정의 음을 쌓은 화음을 의미한다. 18~19세기에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서구 고전음악은 화음 진행을 고도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조성음악이라 하여 서구 음악의 주류를 차지한다. 서구 고전음악은 화음의 고도화를 추구한 반면, 리듬 특히 박자의 복잡성은 희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면, 많은 비서구 사회의 전통 음악은 화음은 복잡하지 않지만 리듬은 복잡한 음악을 탄생시켰다.
리듬 rythm은 음악의 시간적 경과이다. 리듬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규칙적인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박자 meter와, 의미있는 음의 뭉치인 악구 phrase 가 그것이다. 박자는 규칙적인 시간의 단위이지만, 반드시 기계적인 규칙성을 따르지는 않는다.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같은 박자에서도 좀더 느리게 혹은 빠르게 전개한다. 악구는 대체로 넷 혹은 여덟 마디로 구성된 의미있는 음의 뭉치이다. 음악 작품은 이러한 의미있는 음의 뭉치들이 위계 체계 hierarchy 를 형성한다. 음악 작품이란 단순히 여러 음의 나열이 아니라, 언어에서와 같이 위계체계를 형성하면서 복잡성과 추상성을 높인다. 음악에 대한 훈련이 깊어질 수록, 음의 뭉치들의 복잡성과 추상성의 위계체계가 높아지고, 이를 판독하는 능력도 길러진다. 예컨대 베토벤의 작품은 음의 뭉치의 위계체계가 높은 반면, 대중음악은 복잡성과 추상성의 위계체계가 얕다. 따라서 서구 고전음악의 고도의 위계체계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낄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반면, 대중음악은 훈련 없이도 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작곡 composition 이란 작곡가의 머리속에 저장된 많은 패턴을 재료로 하여, 약간을 새로이 첨가하고 새로이 버무려 내는 작업이다. 마치 체스의 마스터가 수만개의 패턴을 기억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 새로운 수를 두는 것과 흡사하다. 음악 활동에 열심히 매진하는 가운데에서만 영감이 떠오른다. 베토벤은 수천장의 습작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보면 수도 없이 지우고 고치는 작업을 통해서 완성작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한다. 전체의 구성과 중요 요소만을 대강 먼저 정하고, 이어서 나머지 부분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작곡가들은 머리속으로 음에 대한 이미지 auditory image 를 통해서 음의 전개를 만들어 내고, 이를 피아노로 확인하는 과정을 왕복하면서 작곡한다. 작곡가들은 소리에 민감하고, 감정적으로 격렬한 성정을 가지며, 조울증의 성향을 띤 경우가 많다.
연주 performance 란 음에 대한 이미지 auditory image 가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고, 이를 몸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많은 연주자들은 실제 손으로 연주하기 전에 머리속에서 음의 이미지를 통해 연주하는 절차를 밟는다. 어릴 때부터, 예컨대 6세부터, 음악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이러한 음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중요하다. 일단 음의 이미지와 몸의 움직임의 연결이 확고히 정착되면, 연주의 대가들은 실제로 몸으로 많이 연습하지 않고도 머리속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이올린의 대가인 파가니니나 피아노의 대가인 리스트는 젊을 때는 많이 연습했지만, 대가가 되고나서는 연주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연습해야 음의 이미지와 몸의 움직임이 잘 연결된 상태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최소 10년 이상 매일 연습하여 10,000~ 20,000시간을 축적해야만 그러한 단계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해 understanding 이란 음들 사이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체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음악 애호가는 음악의 복잡한 패턴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음들을 예상하고, 이러한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작곡가들은, 이러한 예상에 쉽게 부합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하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요소를 삽입하면서, 음악의 청자와 일종의 밀고 당기기를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음악 활동 경험과 과학적 이론적 지식이 잘 녹아 있다. 음악에 관련된 거의 모든 궁금증에 답하고 있다.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음악의 분야는 별로 밝혀진 것이 많지 않음을 확인한다. 아마 예술의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오랫동안 음악을 접해 왔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발견한 느낌이다. 저자의 과학 지식이 뇌과학 분야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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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The Economic Engine of Political Chang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기제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함께, 정치적 변화 사례들을 통해 그들의 이론을 옹호한다.
이야기는 1980년대 프로농구의 규칙을 바꾼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 농구에 공격시간 제한의 규정이 없던 시절, 많은 농구 경기에서 점수를 앞서는 팀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볼을 돌리며 시간만 끌면서 관중의 흥미를 잃게 만드는 관행이 일반화되었는 데, 이 때문에 프로 농구 산업계가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격시간 제한 규정이 새로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프로 농구 게임을 역동적이게 바꾸면서 관중을 흡인하여 큰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라 규칙을 바꿈으로서, 운동 선수의 인센티브가 바뀌었고, 그 결과 농구 선수의 행동 방식과 농구 게임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인센티브에 의해 좌우되는데, 인센티브는 제도의 산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정치과정을 통해 제도로 구체화된다. 학자는 아이디어를 생산하며, 이들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식인을 통해 사회 전반에 확산된다. 전문직 종사자, 변호사, 언론인, 연구소 연구원, 교사 등 아이디어를 전파하는 지식인의 유형은 다양하다. 이렇게 널리 퍼진 아이디어가 적절한 사회 환경을 만나면 정치인에게 채택되고, 정치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제도로 실현된다. 새로운 정책은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그러면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고, 결국 사회가 바뀌게 된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축적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취사선택하여 조합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부터 힌트를 얻기도 하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른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센티브와 제도의 틀 속에서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 집단 status quo 의 반발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사회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사장된다.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는 외적인 변화 때문에 사회환경이 바뀌게 되어, 다시 빛을 보게 되고, 정치인에게 채택되어, 정책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부캐넌의 공공선택이론 public choice theory 은, 왜 비효율적인 정책이 효율적인 정책을 물리치고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설명한다. 소수의 결집된 행위자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책은, 비록 전체로 볼 때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져온다고 해도, 그들이 결집하여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반면 다수의 비결집된 행위자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책은 그것이 전체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온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조직적인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어렵다. 외적인 환경이 변화하여 새로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로운 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기득권 집단이 옹호하던 기존의 정책에 대한 도전이 힘을 얻게 되고, 기득권 집단의 힘에 균열이 발생한다.
책에서 제시한 정치적 변화의 구체적 예는 다양한데, 다음 네가지 사례를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라디오 전파대역을 그당시까지 정부가 재량적으로 분배하던 시스템으로부터 경매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 1980년대에 민간항공서비스산업에 존재하던 엄격한 정부 규제를 풀고, 신규 진입, 가격, 노선 개설 등에 자유 경쟁 원칙을 도입한 것, 1990년대에 클린턴 행정부의 복지 개혁, 1990~2000년대에 주택금융관련 규제감독의 완화와 그 귀결로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케인즈의 거시 경제이론에 따라 1930년대 경제 대공황시기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채택하였으며, 그이후 모든 서방의 국가들이 미국을 본받아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채택하면서, 그때까지 자본주의 경제의 큰 문제였던 시장의 큰 폭의 부침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된 것도 아이디어가 제도로 구체화된 다른 예이다.
치 책의 저자들은 자유시장 원칙을 옹호한다. 시장에서 무수한 참여자의 독립적 판단이 작용할 때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진다는 아담스미스와 하이에크의 주장을 옹호한다. 또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힘이라는 관념론적 철학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디어가 적절한 사회적 환경을 만나야만 열매 맺을 수 있다고 하면서, 현실적인 조건과 운의 중요성 또한 강조한다. 기업 경영의 기업가 entrepreneur 못지 않게, 정치분야에서도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시에 도입하여 제도로 만들어내는 정치적 기업가 political entrepreneur 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은 기존의 기득권 제도를 파괴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을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어떻게 기득권 집단의 철옹성이 무너지고, 점진적이지만 제도의 변화가 찾아오는지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흥미롭다. 복잡한 현실 정치를 경제원리를 통해 설명해내는 그들의 순박함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 적합한 현실적인 조건이 어떻게 형성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사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보다 이것이 더 어려운 부분이고, 이 때문에 기득권이 깨지기 어렵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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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 예이츠. 2019.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 웅진 지식하우스. 356쪽.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수학적으로 생각할 때 잘 못된 경우를 여러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풀어낸다.몇개의 독립적인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기하급수적 증가와 감소, 통계적 판단의 오류, 우연의 확율에 대한 이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곡하는 수치 표현, 전염병에 대응하는 수학적 모델, 등이다.
인구 전체로 볼 때 특정 질병의 발생 확율이 매우 낮다면, 선별 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됐다고 해도, 실제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양성 판정자 중에 false positive 경우가 true positive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로 그 질병에 걸렸다면, 두번 연속 false positive 를 받을 확율은 크게 낮아지므로, 처음 진료한 곳과 다른 의료기관에서 독립적 검사를 통해 이차 의견을 받는 것이 좋다.
어떤 집단에서 두 사람의 생일이 일치할 확율은 생각보다 높다. 예컨대 23명이 모인 집단에서 생일이 일치할 확율은 50%를 넘어선다. 이는 사람수가 증가하면 구성원 사이에 랜덤한 두사람의 조합의 경우의 수가 매우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사건간의 관계에 대해 흔히 인과적 연관을 상상하는데, 실제는 우연히 두 사건의 특징이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우연히 발생할 가능성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다.
사람들은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드물게 일어나는 특질의 변화에 대해서는 비율로 표기하여 변화의 크기를 과장하는 반면, 자신이 숨기고 싶은 드물게 일어나는 특질의 변화에 대해서는 절대수치의 차이로 표기하여 변화의 크기를 축소하려 한다. 의도적으로 한쪽편은 비율로 표기하고, 다른 쪽 편은 절대 수치로 표기한다면, 이는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를 속이는 행위이다. 숫자를 제시하면 주장에 권위가 더해지는 듯 하지만, 이렇게 숫자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되게 표현하는 행위는 미디어나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다.
최적화를 행할 때, 모든 가능한 사안을 검토한 후 최선을 선택하는 것은 비용대비 수익이 적다. 첫 세 사건에서는 기준을 정한 후, 이후에 마주치는 사건 중, 이 기준보다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더이상의 탐색을 중단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최적화 전략이다. 식당을 고르거나, 상품을 고르거나, 등, 다수의 사건 중에서 결정을 하려할 때, 이 수학적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수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오용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문제가 복잡해지면 수학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도와주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수학적 논증에 합당한 다양한 사례를 찿아내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이 돋보인다. 다만, 법적인 다툼에서 수치를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 여러번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여하간 흥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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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근. 2023. 한반도 국제정치의 비극: 동북아 패권경쟁과 한국의 선택. 박영사.444쪽.
저자는 국제정치 학자이며, 이 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한국이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논의한다.
한국의 외교 전략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한국은 크게 네가지의 정체성을 가진다. 첫째, 한국은 미국,중국, 일본, 소련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중간에 끼인 국가이다. 둘째 한국은 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통상 국가이다. 셋째, 한국은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분단 국가이다. 넷째, 한국은 인구과 경제규모에서 세계에서 강대국은 아니나 그렇다고 약소국도 아닌 중간의 위치의 국가이다. 한국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이 네가지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안보는 원칙적으로 부단한 자강 노력과 함께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므로,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요구를 따르되 중국의 심기를 크게 거슬릴 행동은 삼가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원칙 내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여 중국의 대척점에 서거나 혹은, 중국에 따르면서 미국과 척을 지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중국이 밀어붙이는 국제질서보다는 우리의 안보를 위해 더 의지할만 하기 때문에, 미국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한국은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호주, 터키, 인도, 유럽연합,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의 나라들과 연대를 맺으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공동의 힘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 나라들은 각자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대오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중의 갈등 속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중간자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엄청난 압박과 제제를 받을 것인데,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으므로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한국의 압도적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도움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으므로, 비록 이것의 신뢰성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겠지만,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미국 또한 핵을 사용하여 응징하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는 어렵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기는 사용하지 못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여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이지, 남한을 침공할 의도로 핵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다. 즉, 북한의 핵 위협은 그렇게 생각만큼 현실적인 위협은 아니다. 한국이 핵재처리 능력을 확보하여,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아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방안, 즉 일본의 현재 지위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목표 또한, 미국의 반대로 추진이 쉽지 않다.
저자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 때문에, 선진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 모두와 잘 지내야 할 운명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주변 강대국들이 쉽게 잡아먹을 수 없는 능력을 키우고, 국내적으로 통일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 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꾸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한국의 외교는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명백히하고,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르면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정부와 국책연구소에서 오랜 외교 정책연구 활동을 한 결과를 집약한 것이다. 분석과 주장은 현실적합성이 높으며 설득력이 크다. 다만 저자의 여러 보고서와 논문들을 짜깁기하여 단행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중복이 매우 많다.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집약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새로 책을 썼다면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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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evitin. 2014. The Organized Mind; thinking straight in the age of information overload. Dutton. 383 pages.
저자는 뇌과학자이며, 이 책은 조직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뇌과학의 연구에 기초해서 설명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정보 과부하 상태에서 살고 있다. TV, 이메일, SNS, 유튜브, 인터넷 검색, 등의 경로를 통해 매일 엄청난 규모의 정보에 사람들의 의식이 노출된다. 쇼핑을 가서도 단일 품목에 대해 선택지가 매우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들을 비교하여 선택하는 과정에서 뇌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우리의 주의력과 기억력 및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조금씩 갉아먹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는 지쳐 있다. 현대인은 정말 중요한 주제에 뇌의 능력을 집중적으로 쓰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근래에 사람들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모드, multi-tasking mode, 속에서 살아간다. 뇌과학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우리 뇌는 한가지 일에 조금 에너지를 쓰고, 다른 일로 이전하여 또 조금 에너지를 쓰고, 다시 다른 일로 이전하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의 뇌는 이렇게 일과 일 사이에 의식을 이전할 때마다 뇌의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멀티태스킹 모드에서는 어느 한가지 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며 쉽게 뇌가 지친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그 일이 끝나면 다른 일로 이전하는 방식 mono-tasking mode 으로 일해야만 뇌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뇌는 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담고 있으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정보를 외부 수단에 기탁하는 것이 enteralize, 우리 뇌의 부하를 줄이고 중요한 일을 위해 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이다. 우리의 뇌는 일단 입력된 정보는 의식의 수면 위 혹은 아래에서 머물면서 뇌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의식에 그 정보가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정보를 불러내서 뇌가 처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재 사용하지 않는 많은 정보를 외부에 기탁하고 필요할 때만 불러오도록 해야 한다. 정보를 외부에 기탁하는 방법으로는, 종이에 메모하기, 비서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꼭 필요한 시점에 뇌가 필요한 정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등이 있다. 5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처리하여 머리를 비우는 것도 유용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당장 해야 할 일에 뇌의 에너지를 온전히 집중하도록 하여, 최고의 뇌 효율성을 거두면서 일한다.
뇌는 두가지 모드로 작동한다; '실행 모드' executive mode 와, '이완 모드' day-dreaming mode. 이완 모드가 기본 상태 default 이며, 실행모드가 끝나면 이완 모드로 복귀한다. 실행모드는 특정 주제에 의식을 집중하여 focused 정보를 처리하는 모드인 반면, 이완 모드는 특정한 주제에 의식이 투사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상태이다. 이완 모드일 때, 전에는 연관되어 있지 않던 정보의 조각이 연결되며, 창의적인 생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떠오른다. 뇌에 과도하게 많은 다양한 정보가 입력되면, 이완모드에 들어가기 어렵다. 뇌는 휴식을 취할 때 이완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행 모드의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 휴가를 가고, 쉬는 시간을 갖고, 등으로, 실행 모드로부터 의식을 벗어나게 해야만, 뇌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수리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가치를 구분하고, 중요성과 가능성을 비교 분석해야만 가장 효과적인 정보 처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베이지안 이론 Basian theory 에 입각해서 사고할 것을 제안한다. 기초 확율 base 을 먼저 정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이것에 차례로 더하면서, 조금씩 진실에 근접하게 확율을 다듬는 것이 최선의 정보 처리 방법이다.
인터넷의 시대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가치를 평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보 출처의 권위, 다양한 정보의 상호간 비교,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정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가짜 혹은 외곡된 정보를 진실된 정보와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기술은 학교 교육에서부터 단련되어야 한다.
이 책은 저자의 뇌과학 연구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지나치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느라 촛점이 흐려졌다. 집안을 조직하고, 사회관계를 조직하고, 시간을 조직하고, 비즈니스를 조직하고, 의료 정보를 조직하는 등,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뒤로 갈수록 연구 결과에 근거한 논의는 줄어들고, 자기 개발서의 냄세가 난다. 그가 언급하는 많은 정보 조직과 뇌의 효율적 사용 방법을 적용하여 살아 왔음을 느낀다. 그가 언급하는 많은 지적들은 상식과 생활의 지혜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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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 예이츠 (노태복 옮김). 2023. 어떻게 문제를 풀것인가 (How to expect the unexpected). 웅진지식하우스. 494쪽.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의 오류를 크게 두가지, 무작위 회피와 선형관계 편향이라는 두 주제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인간은 순수한 무작위 randomne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주위에서 항시 패턴, 즉 규칙성을 찾으려고 한다. 규칙을 파악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어 생존에 도움이 된다. 우연히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인과적 관계를 설정하려 한다. 원인이 불확실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우리의 지력을 벗어난 존재, 즉 초월적인 신이 행한 일이라고 해석함으로서, 그러한 상황이 무작위, 즉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위안한다.
무작위로 발생했지만, 억지로라도 패턴을 부과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생존에 도움이 된다. 패턴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여, 랜덤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준비없이 지내다가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불확실하지만 패턴이 있다고 여기고 대비를 하는 경우에, 혹시 발생할 위험의 피해를 덜 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 방식은, 사건이 실제 랜덤하게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드물게 발생하는 랜덤한 위험에 대비하여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는 한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뿐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과도하게 조심하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은 확율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의 두 상황만 존재할 뿐, 몇 퍼센트의 가능성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에는 물리 법칙에 따라 정확한 순서로 발생하기보다는, 발생의 가능성을 확율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 수리적 접근은 확율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확율적인 사고를 할 경우, 베이지안 이론 Baysian theory은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베이지안 이론이란, 기왕에 발생한 사건의 가능성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을 증거로 하여 분석하면서, 인식의 정확도를 높여가는 접근법이다. 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알기는 어렵지만, 그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벌어진 상황을 분석하여, 이를 초래한 원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측정한다. 한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그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여, 다음에 그런 원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것은 베이지안 이론에 따른 행동 방식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선형관계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다. A가 증가하면 비례적으로 B가 증가 혹은 감소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선형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 방식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주입되어 우리의 인식의 기본틀을 형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세상을 선형관계로 인식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형관계도 있지만 선형관계가 아닌 경우 또한 매우 많다. 두 변수간의 관계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경우, 우리는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대표적인 비선형 관계로는, 길이가 증가하면 면적과 부피는 제곱과 세제곱으로 증가하며, 가역적인 피드백이 가해질 때 지수적 관계 power law 가 성립한다. 주식시장의 버블과 붕괴, 전염병의 확산 등에서 지수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자기완성적 예언이나 부메랑 효과 등도 선형관계에서 어긋나는 경우이다.
카오스 chaos 이론이라 지칭되는 복잡계 complex system 또한 선형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초기의 조건이 약간이라도 다르다면, 시간이 지나 일이 한참 전개되었을 때, 엄청나게 큰 차이로 귀결되는 경우가 복잡계에 해당한다.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자연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계 상황이 훨씬 많다. 단지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할 뿐이다. 복잡계의 상황에서 장기적인 예측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러한 모든 논의의 결론은, 자연계는 인간의 인지 편향인, 규칙성이나 선형관계가 아닌, 무작위성과 비선형관계가 지배하는 곳인데, 인간은 자신에게 편하게 잘 못 알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예측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인간은 많은 경우 예측이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수학은 인간의 인식 편향이 빚어내는 잘못을 약간이나마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대중 과학교양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몇가지 기본 과학원리를 일상의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여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의 말솜씨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논의는 깊지 않다. 어디에서 들어봤음직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소개된다. 번역이 성의를 길울여 잘 됬는 데, 책의 제목은 내용과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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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obsbawm. 1975. The Age of Capital (1848~1875). Vintage Books. 308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중반 서구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전세계로 시장이 확대되었으며,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를 서술한다.
1850년 경이 되면, 1830년과 1848년 유럽 전체를 휩쓴 노동자 혁명의 물결은 실패로 끝난 것이 분명해졌다.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촉발된 공화정 혁명의 파장은 유럽 각 지역에서 표면적으로는 저지되고 왕정복고로 잠잠해졌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지식인과 부르쥬아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nationalism 가 높아지고,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반면 왕과 귀족으로 대표되는 구질서의 권위는 갈수록 쇠퇴했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대로 부르쥬아의 부와 영향력은 크게 높아졌다.
19세기 중엽 철도 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크게 확장되었다. 1780~800년대 초반의 산업 혁명 초기에는 면화산업이 융성했으나, 이후 제철과 철도가 자본주의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철도 산업의 성장과 함께 경제 전반에 거대 자본의 지배력도 커졌다. 산업혁명과 함께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 이동이 급증했으며, 유럽 곳곳에 대규모 도시가 출현하였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편으로는 도시로 이주하고,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대륙, 특히 미국으로의 이민이 크게 증가하였다. 철도, 증기선, 전신 기술 덕분에 자본주의 시장이 유럽을 넘어 세계로 확대되었으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였다. 빠른 경제 성장과 사회변화는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참여 요구를 일시적으로 잠재웠다. 이 시기에 참정권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기는 하였지만, 이전 시기와 달리 과격한 혁명의 움직임은 찾기 어렵다.
급격한 경제 성장 덕분에 부가 엄청나게 증가하였지만, 불평등 또한 커졌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도시 노동자의 삶은 매우 비참했다. 장시간 노동, 아동 노동, 위험한 작업 환경, 저임금, 밀집된 거주, 비위생적 생활 환경이 일반적이었다. 기술발달과 시장 확대로 인한 생산성 증가의 몫은 거의 대부분 자본가들이 차지하였다. 정부의 규제나 복지 제도가 발달하기 이전 단계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아무리 생산성이 증가하여도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 수준만을 허락하였다. 이시기에 칼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의 몰락을 예언하였다.
한편,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 사회에까지 적용되어, 경쟁과 적자 생존이 인간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원리로 주창되었다. 이시기 진화론은 유색인과 대비된 백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인종주의를 정당화하였다. 비서구 세계의 원주민 사회는 서구의 선진 사회에 의해, 유색인은 백인에 의해 정복되고 지배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의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하여, 지식인과 부르쥬아를 선두로 유럽 사회는 세속화되었다. 신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무신론자는 많지 않았지만, 교회의 영향력은 삶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 책은 저자의 19세기의 삼부작 중 중간 시기를 서술한다. 정치와 전쟁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경제와 사회의 근대화 modernization 과정에 대한 익숙한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용 자체는 익숙하지만, 그의 문장은 정말 읽기 어렵다. 이중 부정, 비교 부정, 복잡한 문장 구조 때문에, 두번을 읽어도 의미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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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Ikenberry. 2020. A World Safe for Democracy: Liberal Internationalism and the Crisis of Global Order. Yale University Press. 311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Liberal Internationalism) 의 역사를 섭렵하고나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 현재의 국제 질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간단히 논의한다.
국제정치이론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는 현실주의 realism 와 대립되는 이론이다. 현실주의는 강대국간의 힘의 역학관계로서 국제질서를 규정한다면, 자유주의는 국가들 사이에 조정과 합의를 통해 형성된 규범으로 국제질서를 접근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와 친화적 관계이며, 인류의 안전, 자유,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규범적인 질서이다. 반면 현실주의는 국가들간 무정부 상태에서 상호 역학관계와 안전의 문제에만 촛점을 맞출뿐, 무엇이 옳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규범적인 함의는 없다.
서구사회에서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 즉 국가들이 서로 협의하고 조정하는 전통은,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열강들이 모여 전후의 질서를 논의한 비엔나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계몽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19세기에 들어 이성을 존중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영국을 필두로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등,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19세기 전기간을 통해 점차 확대되었다. 이러한 19세기의 움직임은 1919년 1차세계대전이 끝난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자유무역, 항해의 자유, 국제연맹의 창설 등의 제안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미국이 국제연맹을 수용하지 않고, 서구 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고, 파시즘의 발흥 등으로 위기에 빠졌으나, 제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미국은 종전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으나, 과거 유럽과 같은 제국주의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도로 원칙적으로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추구하였다. UN, IMF, World Bank, GATT 등의 기관과 제도가 그런 질서의 뼈대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에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반쪽의 세계 질서가 되었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한 국제주의 질서의 일원으로서 대체로 규범에 따라 행동하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았지만, 때로는 예외적인 존재로서 규범을 벗어난 방식으로 힘을 행사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서구 유럽에서 1600년대 초반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결과 만들어진 웨스트팔렌 조약을 바탕으로 한다. 즉 영토 존중, 주권존중, 내정간섭 금지 등의 원칙에 입각해, 국제사회에서 각 나라는 서로를 대등하게 대하는 전통이확립되었다. 이러한 질서는 서구 유럽 국가들에게만 해당될 뿐, 유럽 밖의 국가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규범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현대성 modernity 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술발전, 핵전쟁 위험, 환경파괴, 기후변화, 전염병 확산, 등등,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주의 국제주의는 반드시 요구된다.
21세기에 들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영국의 브랙시트, 미국의 트럼피즘, 민족주의의 확대와 같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부정하는 경향이 선진 산업국들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흔들어 놓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 계속 커지고, 권위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는 미국과 자유세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현재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과거 위기에 빠졌다가도 다시 올라선 것 처럼,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낙관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지금까지 출현한 어떤 다른 대안보다도 인류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주의 질서에 대해, 중국이 근래에 어깃장을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질서 덕분에 번영하였으며, 지금도 그 질서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의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는데, 중복이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사실적인 서술과 규범적인 서술이 섞여 있고,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한 문구가 많아서, 수사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사회과학적 분석 결과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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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obsbawm. 1962.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Vintage. 308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1848년 유럽 혁명까지 약 50년간을 대상으로, 유럽 세계를 지배하던 구체제가 무너지고 근대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을 서술한다.
구체제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왕,귀족,사제가 지배층을 형성하며 인구의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며 봉건제의 구속에 묶여 있다. 종교의 영향이 일상 전반을 지배한다. 봉건제 장원을 중심으로한 자급자족 경제이며,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은 미약하다. 이러한 구체제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심각한 균열을 보인다. 16세기 대항해시대 이래 상업이 발달하고, 18세기말 산업혁명이 불붙으면서 상공인의 부와 영향력이 커지고, 농민들이 농촌을 이탈하여 도시가 발달하고,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의 산물로, 부르쥬아라 칭하는 상공인 계층이 구체제를 뒤집어 엎은 사건이다. 직접적 원인으로는, 1756년의 7년 전쟁 결과 재정파탄에 처하고, 조세징수인의 가혹한 수탈과 흉작이 겹치면서, 농민 폭동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배경으로 하여, 부르쥬아가 중심이 된 의회에서 왕,귀족,사제의 권한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입헌군주국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프랑스를 공격하여 구체제를 복구하려 하고, 왕당파와 개혁파 사이에 내전이 격화되면서, 혁명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1792년 혁명 주도세력은 반대자를 엄격히 처벌하는 공포정치에 들어가고, 왕을 단두대에서 처벌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나폴레옹 장군은 프랑스를 위협하는 주변 국가를 차례로 격퇴하고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면서 영웅으로 숭앙되고, 결국 1799년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에 등극한다. 나폴레옹 군대는 유럽 대륙을 거의 석권했으나,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하여 크게 패하고, 주변국가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들은 1814년 외국에 도피했던 왕을 다시 세웠으며, 1815년 귀양지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쫒겨남으로서 프랑스 혁명은 막을 내린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왕권신수설에 바탕을 둔 절대 왕정 monarchy 은 유럽 역사에서 사실상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 곳곳에서 공화정이 시도되었으며, 왕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전통적 믿음 대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프랑스 혁명 정부가 외세의 위협에 대항하여 일반 민중으로부터 병사를 모집하여, 이들이 나라를 지키는 전쟁을 치르면서 굳어졌다. 나폴레옹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프랑스군은 애국심에 가득찬 민중의 군대였던 반면, 다른 나라의 군대는 귀족과 용병으로 이루어졌서 열심히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왕과 귀족들은 일반 민중을 무장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폴레옹은 업적에 따른 보상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반면, 귀족과 용병으로 이루어진 전통 군대는 열심히 싸울 동기가 약했다.
1814년 비엔나 회의 Congress of Vienna 를 계기로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에 국경이 새로 그어지고, 외면적으로는 구체제가 각 지역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구체제를 더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1830년과 1848년에 유럽 전 지역에서 구체제에 저항하고 공화정을 추구하는 폭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폭동들은 결국 진압되었으나, 이후 구체제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왕과 지배층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헌 군주정으로 변화하고, 봉건 질서의 불합리한 구속을 폐지하고, 중산층의 권리를 확대하는 개혁이 속속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 nationalism을 고취시켰다. 구체제에서 왕과 귀족은 일반 민중과 유리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군이 진출하여 왕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각 지역에서는 언어와 종교를 중심으로 '민족' nation 이라는 정체성이 뚜렸해지고,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가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 혁명군을 본따 유럽 전지역에서 지역의 일반 민중을 징집하여 민족 군대를 만드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민족 국가의 개념은 공고해졌다.
영국은 유럽을 뒤흔든 20년간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나폴레옹군이 영국 해군에 일찌감치 패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비교하여 프랑스는 중산층의 세력이 약했으며, 농민을 도시 노동자로 바꾸는 과정이 프랑스 혁명 때문에 더디게 전개되었으며, 7년 전쟁을 계기로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패하여 많은 식민지를 잃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19세기에 들어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산업혁명이 빠르게 전개되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19세기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호령하고, 산업혁명에서 유럽 대륙 국가보다 크게 앞서면서,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호령하는 제국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 군사 영역에서 주로 전개되었지만, 사회구조, 예술, 종교, 과학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 분야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한 고전주의에 더하여, 프랑스 혁명 시기에 낭만주의가 출현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권위나 합리성에 대항하여, 인간의 감정과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는, 전통의 구속을 벗어버리는 혁명 정신을 반영한다. 프랑스 혁명은 기독교의 영향이 약화되던 18세기 계몽주의의 시대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기독교 교회는 구체제를 뒷받침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군은 교회의 세력을 허물어 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요약 하자면,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주권의 새로운 체제가 성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힘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서,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와 기술 발달, 입헌군주제와 남성 모두에게 투표권의 확대로 귀결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중심으로 근대가 출현하는 과정을 분석한 고전이다. 역사책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건 서술이 거의 없고, 사회과학적 원인과 결과를 분석적으로 논의하기 때문에, 역사 사건에 대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계급 갈등을 중심으로 사회변화를 파악하는 사회학적 접근을 한다. 공산주의자 답게, 구체제, 자본주의, 부르쥬아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노동자 농민에 대한 긍정적인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중부정과 삽입구가 많고, 생각의 전개에 따라 문장을 계속 확장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읽기가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역사의 흐름에 대해 통찰력을 주는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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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Mearsheimer. 2014(2001). Tradegy of Great Power Politics. W.W. Norton. 411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자신이 "공격적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 라고 명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핵심을 설명하고,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 전쟁에서부터 최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 사이의 주요 국제정치적 갈등을 예로 하여 자신의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국제정치의 세계에는 국가를 넘어서는 권위체가 없으며,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을 각자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국가들 사이에 권력 경쟁이 치열한 무정부 anarchy 상태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며, 한 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의도는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는 자신의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경제와 군사력을 키우고, 주변에 위협이 될만한 나라가 부상하는 것을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국가가 속한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유일한 강대국이 되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게 안보를 보장하는 길이다. 자신의 나라와 대양을 넘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자신에 비견할만한 그 지역의 유일한 강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자신의 안보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
강대국이 주위의 나라들에 대해 공격적인 이유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신의 나라의 기존 지위 status quo 에 안주해서는 자신의 안보를 확실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에서 최강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응해 다른 나라와 연대를 도모하여 안위를 보전해야 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확실한 안보를 위해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offensive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주변국에 대해 공격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선의와 평화를 강조하는 미국이지만, 상대의 도발이 없음에도 이라크를 침공하고 중남미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공작을 수시로 감행한 것에서 보듯이, 국가의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상대의 선의에 의지해서는 안되며, 국제정치체제 속에서 자신의 상대적 힘을 기르고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국가들 사이의 관계 및, 각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은, 각 국가들이 처한 국제정치 시스템의 권력 분포에 따라 결정된다 (structural realism). 각 나라의 국내 정치가 민주주의건 전제주의건, 자본주의 체제건 공산주의 체제건, 지도자의 성향이 어떠하냐 등에 관계없이, 즉 이념, 체제, 지도자의 성향 등 국내적 변수와 상관 없이 모든 나라들은 국제정치 시스템 내에서의 구조적 맥락에 맞추어 행동한다.
국제정치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비등한 힘의 두 강대국이 대치하는 양강 구도(balanced bipolar structure), 셋 이상의 비등한 힘의 강대국이 포진한 다자 구도 (balanced multipolar structure), 한 나라가 지역의 다른 나라들보다 힘이 우세한 상황에서 셋 이상의 강대국이 포진한 다자 구도(unbalanced multipolar structrue). 제2차 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냉전 상태가 첫번째 경우이며, 독일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면서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이 포진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유럽이 세번째 경우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래 독일이 부상하기 이전까지 19세기 중반의 상황이 두번째에 해당한다. 첫번째 즉 양강 구도가 가장 평화로우며, 다음으로 두번째, 즉 균형된 다자 구도가 평화롭게, 세번째, 불균형된 다자 구도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한 나라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불균형 다자 구도에서, 강한 나라는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에 따르자면, 20세기 초반 유럽은 불균형 다자구도 속에서 독일이 우세한 상황이었으므로, 히틀러가 출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독일이 주변 국가를 침공하여 유럽의 지역 패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지역, 즉 서반구에서 유일한 강자가 되었다. 반면 1800년 초반 프랑스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 초중반 독일이 주도한 제1, 2차 세계대전, 일본이 주도하여 아시아 전역을 휩쓴 제2차 대전, 등에서 유럽 혹은 아시아 지역을 제패한 유일한 강자가 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다. 미국은 건국이래 북미 전역을 힘으로 정복하여 통일하고, 1823년 몬로 독트린 이래 서구 열강이 서반구에 세력을 펼치는 것을 막았으며, 20세기 두차례의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과 경쟁할만한 지역의 패권 국가가 부상하는 것을 막았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의 세력이 서구 유럽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샬플랜이라는 대규모 경제원조와 NATO라는 군사적 투자를 통해 소련의 확장을 막았다.
1990년 소련이 스스로의 문제 때문에 붕괴하면서, 이차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의 대치 상태, 즉 냉전 Cold War 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강대국 unipolar system 의 지위에 등극하였다. 이제 미국은 경쟁하거나 우려할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내키는 대로 개입하였다. 1990년 초반의 이라크 전쟁, 2000년대의 아프간 전쟁, 2차 이라크 전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이 모든 개입에서 단기적 전쟁에는 승리하였지만, 해당 지역 사람들의 자주 자결을 원하는 민족주의와 충돌하였기 때문에 결국 물러나야 했다.
1980년대 이래 중국의 빠른 경제 부상으로 2000년대 들어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경쟁자가 될 조짐이 보이면서,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중국의 개방과 경제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는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고 중류층이 비대해지면 결국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한 외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방 경제는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평화를 촉진하리라는 자유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바탕을 둔 정책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미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자 아시아 대륙에 패권적 지위의 강대국이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및 안보적 이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높아졌으며, 결국 미국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는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미국은 호주, 일본, 인도, 등과 연대를 맺으며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며, 중국의 경제와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역 규제와 기술 수출 제한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저자의 "공격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이 예측한 그대로이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당연히 반발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남북간 충돌이나, 타이완을 둘러싼 충돌, 등이 미국과 중국간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큰 곳이다. 중국과 미국 모두 핵 무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면전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은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 있으며, 국지적 충돌의 충격이 체제 전체로 퍼지면서 확대될 가능성이 유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간 전쟁의 부담이 과거 냉전시절 소련과 서유럽 혹은 미국과의 전쟁의 부담보다는 훨씬 덜하다. 다시말하면 중국과 미국간의 제한된 전쟁의 가능성은 냉전시절보다 높다.
중국의 부상이 지속되면, 주변에 있는 국가들은 국외의 강대국인 미국 및 지역 국가들 서로간에 연대를 맺으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균형 외교 balance of power 를 펼치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지역의 유일한 강자가 되는 목표를 추구할 것이며, 지역의 패권을 쥔 강대국은 그 지역의 여타 나라들에 간섭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남미에 대해 그래온 것 처럼, 중국도 지역 패권 국가가 되면 유사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 책은 출간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현실주의 정치이론의 고전이라고 지목될만큼 국제정치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의 단순 명쾌한 이론과 경험적 사례 검증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국제 제도의 효용을 과소 평가한다거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힘의 논리 이외에 다른 가치도 유의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근래에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현실주의 정치 이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현실을 설명하는 사회과학 이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서이면서도 쉽게 다가오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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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2009. 화학이 안내하는 바다탐구. 자유아카데미. 463쪽.
저자는 화학 해양학자이며, 이 책은 화학 지식을 동원하여 바다를 탐구한 결과를 설명한다. 바다물의 화학적 구성, 바닷물의 순환, 깊이에 따른 바다의 특성 차이, 바다의 지형, 바다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 조석과 파도, 등이 주요 내용이다.
화학 해양학에서는 온도와 염을 중심으로 바다를 분석한다. 깊이 및 지역에 따라 온도와 염에 차이가 있다. 바다는 깊이에 따라 표층과 중층 및 심해로 나눈다. 햇빛이 투과되는 표층의 깊이는 100미터도 안된다. 이 표층에서 대부분의 생명 활동이 전개된다. 1,000미터 이하의 심해에는, 0~2도의 매우 차가운 물이 적도에서부터 극지방까지 동일한 분포를 보인다. 바닷물에 녹아있는 염은, 소금의 구성 성분인 염소와 나트륨이 대부분(86%)을 차지하며, 이외에 황산,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이 있는데, 지역에 관계없이 전세계적으로 염의 구성 비율이 동일하다.
바다는 매우 깊다. 전세계 바다의 평균 깊이는 3,600미터에 이른다. 육지의 연장인 대륙붕은 200미터 깊이 이하의 얕은 바다이며, 대륙붕을 넘어서면 가파른 경사를 지나 심해의 평탄한 해저가 넓게 펼쳐진다. 평탄한 해저 곳곳에는 깊은 협곡인 해구와, 화산으로 솟아오른 해령이 존재한다. 지구물리학 이론인 판구조론으로 바다의 지형을 설명할 수 있다. 대서양에는 남에서 북으로 길게 해저 산맥이 존재하는데, 이는 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판이 서로 갈라지면서 벌어진 틈으로 마그마가 분출하여 만들어졌다. 지구의 판과 판이 만나는 지점에 매우 깊은 해구가 형성된다. 밀도가 높은 해양판이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육지판 아래로 들어가면서 해구를 만들고 지진과 화산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심해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바닷물은 수평으로 뿐만 아니라 수직으로 순환한다. 표층의 바닷물이 심해로 내려가서 전세계 바다의 밑 바닥을 한바퀴 돌고 표층으로 올라오는 순환을 반복한다. 표층의 바닷물이 심해로 내려가는 입구가 대서양의 북쪽 끝에 있으며, 이곳에서 심해로 내려간 바닷물은 대서양 남쪽을 지나 인도양 바닥을 거쳐 태평양 북쪽에서 표층으로 솟아 오른다. 이러한 순환의 중간인 대서양 남쪽과 인도양에서 일부가 표층으로 용출한다. 이러한 전지구적인 수직 순환을 한번 하는데 1,00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해류라고 지칭하는 수평 순환은 표층에서만 일어나며, 심해는 매우 서서히 이동한다.
태평양 동쪽의 표층 온도의 이상 변화로 인해 태평양 서쪽 지방에서 기상 이변이 발생한다. 엘리뇨는 페루 연안의 이상 고온을, 라니냐는 그 반대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변화는 수십년을 주기로 발생하는데, 원인은 모른다. 근래에 전지구적으로 표층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구 온난화의 우려가 커졌다. 해양 온도의 변화는 지구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했는데, 근래에 관찰되는 해양 온도의 상승은 1,800년대 이래 산업화와 함께 특이하게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바다는 인류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에도 바다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 달 탐험보다 더 늦게 이루어졌다. 이 책은 전문 연구자의 서술로 바다에 관해 깊이있는 지식을 전달한다. 바다에 관해 알려진 지식뿐만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졌는지, 연구 방법과 계기를 설명한 것 또한 흥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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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d Gigerenzer. 2022. How to stay smart in a smart world: Why human intelligence still beats algorithms. Pneguin Books. 247 pages.
저자는 심리학에 배경을 둔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를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인터넷과 AI의 영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 가져온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한다.
인공지능 AI의 응용 범위가 높아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과는 다르게 작동하며, 강점과 약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인공지능은 불확실성이 없고 고정된 규칙이 적용되는 안정된 환경에서 놀랄만큼 높은 성과를 낸다. 체스 게임이나 동일한 업무를 반복하는 데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겼다. 반면 인간의 지능은 불확실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진화한 산물이다. 인간이 활동하는 사회와 미래는 불확실성이 높으므로 인공지능이 잘 대응하기 어렵다. 주가와 금융위기를 예측하거나, 인간 행동을 미리 예측하거나, 질병의 발생과 전개 양상을 예측하는 등에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낫지 않다. AI 의 능력에 대한 많은 논의는, AI를 개발하는 사람과 회사의 상업적인 동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행동과 가치관을 인공지능에 맞추어 바꾸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컨대, 근래에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현재 그대로의 교통 환경에서 완전한 자율주행차는 가능하지 않다. 대신, 인간이 인공지능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는 (adapt to AI)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예컨대 자율주행차 전용 도로가 생기고, 그러한 도로에서는 인간의 주행이 금지되고, 모든 불확실한 변수가 제거된 교통환경이 그것이다. 이는 과거 자동차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자동차 도로에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되고 마차가 다니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AI와 빅데이터 분석은 기본적으로 변수들 사이에 통계적인 상관관계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데, 이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인간은 이론적인 인과 관계를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 인과적으로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그러한 사건과 통계적으로 연관된 변수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피상적이며 과거에 이미 발생한 상황에 이해가 국한된다. 과거에 발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건이 전개된다면, 과거의 사건에 바탕을 둔 상관관계 지식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변이를 잘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 모델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변이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델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 않은 사례에 대해 이 모델이 얼마나 잘 맞는지 검증해야 한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에서 제시하는 회귀분석 모델의 설명력은, 해당 연구에 사용되지 않은 다른 사례나 미래의 사건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은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은 감시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과 인공지능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몽땅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게 내어준다. 이 회사들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광고주에게 팔아 큰 이익을 얻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타인에게 털리는 것을 염려하면서, 사생활을 털어가는 서비스 회사에게 사용료를 지불하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선택을 원치 않는다 (privacy paradox). 인터넷과 인공지능 회사는 사용자들이 더 오래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여러가지 장치를 개발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러한 서비스에 중독되어 사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계속된 비디오 공급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는 것, 자신의 페이스북을 수시로 열어보아야 하는 것, '좋아요'에 집착하여 무수히 자신의 영상을 올리고, 항시 이를 의식하면서 행동하는 것, 등등.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은 고도의 심리적 조작의 결과이다. 사람들은 자극적 뉴스와 영상에 관심이 더욱 쏠리기 때문에,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런 쪽의 콘텐츠를 더 많이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견해는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중국에서는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각 개인에 대해 사회 신용지수 social credit 를 산출하여 일상 전반에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여러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금융 신용지수를 산출하여 금융 활동에 활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사회 신용지수의 산출을 위해 점수로 입력된다. 사회 신용지수는 사람들이 사회 규범을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순기능과 함께, 체제에 비판적인 의견과 행동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서구 사회는 중국과 달리 정부가 아닌 인터넷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샅샅이 수집하며, 이를 광고주에게 판매함은 물론, 정부의 정보기관에게 제공하여 사회에 위험한 인물을 감시하고 색출하도록 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가져온 인터넷 서비스 중독과 감시 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다. 현재처럼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내주는 방식이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요금을 지불하는 구독 방식으로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현재는 사람들이 서비스 요금을 지불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도록 하고, 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에 대해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적극 반대하겠지만, 정부가 주도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제안하는 서비스 요금 유료화를 강제하는 정책이 실현되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지 않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미래가 반드시 사람들을 더 행복하거나 편안하게 만들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도록 인간의 행동과 사회 환경을 바꾸어 가리라는 예감이 든다. 중국의 사회 신용지수의 예에서 보듯, 사회질서와 통제에 대한 가치관도 바뀔 것 같다.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두는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조화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사회로. 싱가포르식 사회 모델이다.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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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oshi Kanazawa. 2012. The Intelligence Paradox: Why the intelligent choice isn't always the smart one. John Wily & Son. 208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지능 intelligence 에 대한 저자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지능은 무엇이며, 왜 존재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 서술한다.
인간의 지능은 진화의 결과 생겨난 다양한 속성 human traits 중 하나이다. 지능은 유전하는 속성이며, 사람에 따라 지능 수준은 차이가 크다. 인간의 육체적 속성 예컨대, 피부색이나 체질, 혹은 심리적 속성 예컨대, 공격성, 외향성, 예민성,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능도 유전적인 영향이 큰 속성 중 하나이다. 문제는 다른 속성과 달리, 인간의 지능은 가치 평가가 함께 따른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지능이 높은 사람보다 인간적인 가치 worth 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지능은 여러 측면이 있다. 언어적 지능, 수리적 지능, 공간 지각 지능, 논리적 추론의 지능, 사회적 지능, 등등. 이러한 다양한 측면의 지능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 분야의 지능이 높으면 다른 분야의 지능도 함께 높다. 이러한 여러 지능의 배경 변수로서, 다방면을 포괄하는 지능 general intelligence 을 '지능 지수' Intelligence Quotient 로 측정한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지능지수는 신뢰도가 매우 높은 측정 지표이며, 일생 크게 변하지 않는다. 즉 지능지수로 대표되는 인류 공통의 분명한 실체가 있으며, 일반적인 비판과 달리 서구 문화가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성인이 되면 어릴 때보다 유전적인 영향이 더 뚜렷이 발현되기 때문에, 어릴 때보다 성인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지능지수의 차이가 더 커진다.
인간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 온 이래 지난 200만년 동안 대부분을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수렵채취 생활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질은 수렵채취 활동에 적합하게 진화해 왔다. 농업을 하기 시작한 10,000년전 이후에 생활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 아직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0년간 도시화 산업화로 출현한 현대의 사회에서는, 오래전 수렵채취 시절에 획득한 특질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을 들 수 있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많은 부분은 유전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심리학계에서는 대체로 50:50으로, 즉 유전적 요소가 50%, 환경적 요소가 50%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속성은 유전적 변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특성에서 유전적인 차이가 나타난다면, 이러한 특성에서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후손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의 우수한 지능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 즉 이성의 짝을 찾고, 자손을 기르고, 먹을 것을 구하고, 등의 능력과 비교할 때, 우수한 지능은 이러한 활동에 큰 이점을 주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우수한 지능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 즉, 새로운 삶의 문제에 당면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으로 진화하였다. 오랫동안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데 필요한 속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으로 확고하게 굳어진 반면, 새로운 환경에 접해 대처하는 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된 특질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이 출현한 특질이다. 인간 진화 과정에서 오래도록 친숙한 환경인 사바나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인간 공통의 생존 능력, 즉 이성의 짝을 찾고, 자손을 양육하고, 먹을 것을 구하는 등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과 지능이 낮은 사람 간의 차이는 없다. 반면 농업을 시작한 후 새로이 출현한 환경에서 전에는 익숙치 않은 새로운 문제와 관련해, 지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처 능력이 더 크다.
현대 사회에서 지능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으며, 매력적이며,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 현대사회의 환경은 인간 진화의 오랜 과정에서 볼 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사람은 현대 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분야에서 월등히 유리하다. 교육, 소득, 성별 등 여러 조건을 통계적으로 통제했을 때, 똑똑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양한 면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더 리버럴하며, 신을 믿지 않으며, 성적인 배타성 sexual exclusivity 을 고집하며, 올빼미 체질이며, 동성애 성향을 가지며, 고전 음악을 좋아하며, 술을 더마시며, 여성의 경우 결혼을 덜하고 결혼했다 해도 아이를 덜 낳는다.
저자는 지능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활동에 유리함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책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와 같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지능의 이점은 최대로 발휘된다. 저자의 가설이 맞다면, 현대 사회에서도 근래로 올 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성과를 내고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는 저자가 "지능의 역설" intelligence paradox 라고 지칭하는, 즉 지능이 높은 사람이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에서 더 우월하지는 않다는 명제와는 반대된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지만, 조금 설익은 주장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여하간 신선한 주장이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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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olas Christakis and James Fowler. 2009. Connected: How your friends' friends' friends affect everything you feel, think, and do. 2009. Little, Brown Spark. 306 pages.
저자들은 각각 사회학자와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 관계망의 속성과 참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인간 관계망은 참가자들에게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까까운 친구와 같이 직접적인 관계를 넘어서, 3도 three degrees, 즉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작용한다. 그러나 3도를 넘어서는 영향력이 거의 전파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협력하는 것은 진화를 통해 형성된 특질인데, 수렵채취 시절의 선조는 대체로 150명 이내의 친밀한 관계망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3도를 넘어서는 관계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3도를 넘어선 사람에게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것은 진화의 결과로 보인다.
사람들은 유사한 속성의 사람끼리 무리를 짓는 경향이 있다. 관계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감정, 비만, 흡연, 취향, 정치적 견해, 아이디어, 습관, 병원균, 등등. 흡연자는 흡연자들끼리, 비만한 사람은 비만한 사람들끼리,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끼리,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으며 상호작용을 한다. 이는 단순히 유사한 속성의 사람들끼리 뭉치는 성향때문만은 아니며, 관계망 속의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관계망의 중심, 즉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촘촘한 곳에 위치한 사람은 관계망의 주변부, 즉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성글은 곳에 위치한 사람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 왜냐하면 같은 수의 친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친구의 친구가 많은 경우 나의 영향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계망은 참여자들 사이에 관계의 촘촘함에서 균일하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 관계의 촘촘함에서 위계가 존재한다. 관계망에서 촘촘한 곳에 위치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흐르며 더 많은 기회에 접할 수 있는 반면, 촘촘하지 못한 곳에 위치한 사람에게는 가용한 정보나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즉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망의 속성에 따라 특정 참여자의 자원의 다과가 결정된다. 자신이 관계망의 어디에 위치할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 나의 친구, 나아가 나의 친구의 친구가 얼마나 사교적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친구는 오프라인의 친구와 같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 인간이 친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관계망의 범위는 150명을 넘어서지 않는다. 온라인 소통은 오프라인 관계를 보완하고 강화하기 위해 주로 쓰인다. 물론 정보의 수집을 위해서는 폭넓은 온라인 관계망이 유용하지만, 인간적인 접촉과 사교의 목적을 위해서 온라인은 제한적으로만 도움을 준다. 물론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와 같이 인간적 접촉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 형성 방법이 앞으로 갈수록 확대되면서 온라인 관계에 새로운 장이 펼쳐질 것이다.
저자가 관계망에 관한 연구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생생하게 사례를 설명한다. 인간 관계망에 다양한 연구 결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들이 이제는 상식이 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관계망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모두 알고 있지만, 데이타 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소홀히 되었는데, 사람들의 디지털 생활이 확대되면 앞으로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물론 사생활 침해의 문제나 상업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사회과학이 전적으로 개인의 속성에 촛점을 맞추는 개인주의적 방법론 methodological individualism 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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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ld Davis. 2009. Managed by Markets: How finance reshaped America. Oxford University Press. 255 pages.
저자는 조직을 전공한 경영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이래 금융 시장의 부상을 중심으로 미국 경제사회의 변화를 검토한다. 다음 몇가지 주제에 논의를 집중한다. 첫째는 거대규모의 제조업의 주식회사 (big corporation)를 중심으로 하던 미국의 경제 체제가 변하고 있다. 둘째,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 산업의 비중이 커지고, 중심이 은행으로부터 자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시장에서의 가치가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의 기준이 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초까지 거대 규모의 제조업 분야의 소수의 주식 회사들이 각 분야의 산업을 과점하는 경제 체제였다. 매출액과 고용에서 거대한 조직들은 거대한 자산과 높은 생산성, 안정적인 고용, 제조업 중심의 특징을 보였다. 주식회사의 소유 구조는 매우 넓게 퍼져 있었으며, 경영진은 주주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경영자들은 주주는 물론 종업원, 지역사회,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stakeholders)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회사를 이끌었다. 회사의 규모가 클 수록 경영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회사 경영의 최우선 목표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다. 종업원은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며, 내부에서 성장한 사람이 경영자로 발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은 매출보다 이익을 중시하게 되었다. 회사를 담보로 빚을 내서 공격적으로 인수하거나(leveraged buyout), 경쟁 관계의 다른 회사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인수 합병하는 행위 등에 대한 법적 제한이 사라지면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어 현금 흐름이 탄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여 회사 사냥꾼의 공격을 예방하는 것이 경영자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회사의 핵심 업무가 아닌 분야는 외부에 매각을 하고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경영자와 종업원 모두 언제든 회사에서 쫒겨날 것을 예상해야 하기에 회사에 대한 충성은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주의 이익이 회사 경영의 중심이 되었다. 경영자의 보수를 주식의 가치와 연동시키는 관행이 확산되었으며, 주식 가치의 단기적인 변동이 회사와 경영자의 유일한 성과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정보산업기술과 컨테이너 운송 기술의 발달로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미국의 기업들은 제조 부문을 해외로 내보내고 마켓팅과 디자인 등 무형의 지적자산만을 내부에서 보유하는 식으로 변화되었다. 제조부문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출발한 나이키나 애플과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OEM 방식으로 일부 혹은 전부의 제조 부문을 외부로부터 조달하는 사업 방식을 채택하였다. 작은 자산으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낼수록 단위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은 자산과 종업원을 최소로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과거 거대 규모의 주식회사들은 몸체를 줄이거나 해체되었으며, 대신 매출액 대비 작은 규모의 종업원을 가진 회사들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과거 미국을 대표하던 기업인 IBM, GM, Ford, GE,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 금융(finance) 산업은, 일반인으로 부터 저축을 유치하여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해주는 중개 역할을 하던 은행이 중심이었다. 자신의 위험으로 증권에 투자하거나 혹은 채권을 발행하는 투자은행은 1970년대 중반까지 미미한 규모였다. 미국의 은행은 각자의 주에서만 영업을 하도록 규제하였기 때문에, 큰 회사가 밀집한 뉴욕에 소재한 은행을 제외하고는 큰 규모가 아니었다. 각 지역의 은행은 그 지역의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970년대까지 금융 업무는 단조로웠으며, 미국 경제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했다.
1980년대 들어 은행에 대한 지역 제한과 사업 범위에 대한 규제가 철폐되고 완전히 자유화되면서 금융 산업은 크게 변하였다. 은행들 사이에 인수 합병의 바람이 불면서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거대규모의 은행이 등장하였다. 은행의 업무도 다양해져서, 단순히 수신과 대출을 중개하는 역할을 넘어, 기업의 인수 합병을 중개하고 자금을 대주며, 기업 공개와 채권 발행을 주관하고, 다양한 위험의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투자은행, 보험, 펀드 등 이전까지 분리되었던 다양한 금융 분야의 경계가 사라졌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위험에 대한 정보 수집과 평가가 용이해지면서, 과거 은행이 가지고 있던 정보 수집의 독점적 노하우가 사라졌다. 이제 기업들은 은행을 매개로 자금을 조달하기보다, 채권이나 증권을 발행하여 더 싼 비용으로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정보 기술 덕분에 증권을 발행하여 채무를 유동화시키는 것(securitization)이 용이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어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장기주택저당채권(mortgage)을 바탕으로 하여 주택 담보부 채권(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여 시장에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신 업무 없이, 시장에서 유동화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너도나도 이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상환능력이 부실한 사람에게까지 2차 3차로 모기지를 발행하도록 부축이고, 이를 바탕으로 위험도가 높은 증권을 시장에서 유통시키다가,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주택 소유자들이 채권의 상환이 어려워지자, 이를 배경으로 한 유동화 증권 또한 지급불능 사태에 이른 것이 바로 2008년 금융위기이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거대 주식 회사의 규모가 축소된 대신, 금융 부문에서 다양한 신상품이 무수히 개발되고 활발히 거래되면서, 미국의 총생산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에 이르게 되었다.
금융 시장이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인의 일상과 의식에 변화가 왔다. 미국인들은 이제 항시 시장의 가치와 시장 위험을 의식하면서 산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자신의 일자리가 달려있음을 의식하면서 직장을 다닌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자신의 회사 혹은 자신이 일하는 부문이 다른 회사에 매각되거나 혹은 다운 사이징 될 것을 염려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인의 연금 체계는, 회사가 책임지고 은퇴 기금을 굴려 종업원의 은퇴 이후 연금을 지급하는 체제 (defined benefit system)에서, 401K라 하여 개인이 책임지고 자신의 위험에 따라 은퇴 기금을 굴려서 은퇴 이후의 소득을 만들어야 하는 체제(defined contribution system)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미국인은 자본시장의 부침에 자신의 노후 생계가 달려 있음을 의식하며 생활한다. 과거에 주택이란 자신이 자식을 낳고 생활하는 가정의 물적 토대라는 개념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주택을 담보로 2차 3차 모기지를 얻어서 자금을 확보하는 관행이 일반화되고, 이후 주택 가격이 폭락하여 집을 차압당하는 사람이 주위에 흔해지면서, 사람들은 주택 가격에 민감해지고, 주택을 재무적인 가치 (financial value)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요컨대 미국인은 이제 모든 것을 그것의 시장 가치에 항시 신경쓰면서, 자신의 위험은 자신이 관리하고 책임지는 투자자(investors)가 된 것이다.
저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사회의 변화를 대체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제조업이 축소된 것이나, 금융 부문이 부상한 것이나, 세계화로 인해 다국적 기업이 부상한 점, 등 미국의 주요 변화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밸류 체인의 상위로 이전하면서 생산성이 낮은 부문을 해외에 내준 것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밸류체인에서 하위 부문을 해외로 이전하였기에, 한국과 이어서 중국이 부상하고, 세계적으로 빈곤층이 극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기술 혁신과 지적재산권 전문 기업이 미국에 집중하면서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유럽보다 훨씬 앞서게 되었으며, 경제의 역동성이 높아졌다. 금융부문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중심 거대 기업과는 대조적으로, 매출액 대비 종업원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과거 거대 주식회사를 대체했다고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등 기술 기업들은 신경제의 총아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내며 미국 경제를 떠 받들고 있다. 제조업 없이 사업하는 나이키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금융 부문의 확대와 관련된 그의 서술은 근래의 미국 경제의 변화를 읽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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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lip Tetlock. 2005. Expert Political Judgement: How good is it? How can we know?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8 pages.
저자는 인지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정치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행태에 대해 10여년 이상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제시한다. 결론인 즉, 정치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어떤 것에 대해 예측하는가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사고 하는가가 예측의 정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저자는 정치전문가의 사고 방식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고슴도치"(hedgehog)라고 지칭하는 부류인데, 이들은 하나의 큰 원칙이나 이론에 경도하여 세상사를 모두 이것에 끼워맞추려는 성향이 강하다. 또다른 부류는 "여우"(fox) 라고 지칭하는 부류인데, 이들은 특별한 원칙이나 이론은 없으며 벌어지는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하여 수시로 입장을 조정한다. 고슴도치류는 거대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연역적 방식으로 사고하는 반면, 여우류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귀납적 방식으로 사고한다. 고슴도치류는 자신의 이론과 주장에 대해 확신이 강하며 세상을 보다 단순하게 그리는 반면, 여우류는 세상을 훨씬 복잡하고 확률적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세상 인식 능력에 대해 유보적이다.
수백명의 정치 전문가들에게 1980~90년대에 중요한 국제정치경제의 관심사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로 예측을 하도록 하고, 예측의 정확성은 물론, 예측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발생한 후에 전문가들의 인식 방법의 차이 등을 분석하였다. 소련의 붕괴, 캐나다의 분열, 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의 종말, 유럽 통합의 미래, 한반도를 포함한 핵전쟁 가능성, 경제 위기, 등등 100개 이상의 질문에 대해 예측 자료를 수집하였다. 분석 결과 여우류의 전문가가 고슴도치류보다 미래 예측이 정확했다. 그러나 어느 전문가들보다 타임시리즈 통계 모델로 미래 확장 예측(extrapolation)을 했을 때 예측의 정확도가 훨씬 높았다. 그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제법 안다고 하는 전문가보다 단순한 수치들의 귀납인 통계 분석이 훨씬 정확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예측한 사건이 실제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안이 발생하기 위해 전제가 되는 조건이 만족되지 않았다거나, 거의 그렇게 될 뻔했다거나, 예측한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라거나, 위험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실재보다 더 크게 예측한 자신의 태도가 옳았다거나, 등등으로 자신의 틀린 예측을 정당화한다. 예컨대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퀘백주가 영어권 지역으로부터 분리되리라는 예측에 대해, 1991년 국민투표 결과 51%가 분리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두고 캐나다의 분열을 예측한 전문가의 생각이 틀렸다고 반박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투표 이전에 어떤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국민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다. 또한 51%의 투표 결과는 샘플링 에러의 범위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만일 투표를 통계적으로 독립적으로 여러번 한다면, 그중 분리를 찬성하는 결과의 투표가 발생했을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한번밖에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는 순전히 우연일뿐이다.
예측이 틀릴 수 있는 다양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예측의 정확성에서 여우류는 고슴도치류보다 일관되게 앞선다. 또한 자신의 예측 사건과 관련된 인접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여우류는 자신의 예측치를 수시로 조정하는 반면, 고슴도치류는 일단 자신이 한 예측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여우류는 자신의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항시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예측을 수시로 수정하는 데 꺼리낌이 없는 반면, 고슴도치류는 자신이 옹호하는 이론과 그에 따른 예측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변해도 좀처럼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고슴도치류가 여우류보다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자신이 옹호하는 이념이나 진영에 부합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의 주장에 쉽게 귀를 기울인다. 반면 불확실한 세상을 전제로 하고 여러 유보적인 조건을 달면서 불확실한 예측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확실한 세계관과 확고한 주장을 복잡한 세계관과 애매한 주장보다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치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동기는, 그들의 주장의 사실성 못지 않게 그들의 주장의 오락성을 사기 때문이다. 정치 정문가의 세계에서 객관성은 그리 존중받는 덕목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자신의 주장이 명확하게 틀리거나 맞는지 판명할 수 있도록 미래 예측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견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방법론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면서 제시하기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사회과학 연구방법론과 통계학의 배경 지식이 상당해야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일반적인 교양서의 범주에 들지 않는 책이다. 기술적인 면을 조금 걷어내면, 그의 주장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물론 그러면 다른 책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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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저자는 법학자이며, 이 책은 현재 미국에서 업적주의(meritocracy)가 지배하는 환경이 낳는 심각한 문제를 서술한다. 업적주의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중류층을 없애고 사회양극화를 촉진시킨다. 업적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는 엘리트층과 중류층간 간격을 벌리고, 엘리트의 계층 지위를 후세대로 세습시킴으로서 미국을 계층지위가 세대를 넘어 고정되는 카스트 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업적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물론 업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소득 상위 1% 층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 상위 1% 층은 최고의 전문가 직업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의 고위 경영자, 투자금융회사의 금융 전문가, 유명 법률회사의 변호사, 전문 분야의 의사, 컨설팅 회사의 임직원, 기술 스타트업의 임직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높은 인적 자본을 활용하여서 회사에 엄청난 부를 창출하고, 그 일부를 자신의 소득으로 챙긴다. 이들의 연봉은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한다. 과거 귀족사회나 산업사회의 지배층인 귀족과 자본가들은 토지나 공장을 소유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고 자신은 놀면서 엄청난 소득을 향유하는 유한계급이었다. 반면, 20세기 후반에 새로이 등장한 엘리트 전문인들은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 최고급의 기술을 획득하고, 이 기술을 활용하여 매우 복잡한 일을 수행하고 엄청난 부를 창출해 낸다. 이들은 누구보다 높은 능력과 노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올리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1980년대 이래 정보기술과 운송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에는 가능하지 않은 정도로 매우 복잡한 일을 체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출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당 50~100 시간을 투입하는 엄청난 노동으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올라섰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엘리트로 선발되도록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청난 관심과 투자를 쏟아붓는다. 엘리트 부모의 엄청난 투자는 실제 그들의 자녀가 우수한 학교에 들어가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 졸업후 자신과 같은 엘리트 전문인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반면 중류층은 자녀에게 큰 투자를 하지 못하므로, 중류층의 자녀는 엘리트 전문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미국의 명문 사립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이 부모가 부자이며, 등록금이 엄청난 사립 혹은 부자 동네의 공립 초중등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이, 미국 사회의 엘리트 지위가 교육을 매개로 하여 세대간 전승되고 있음을 지시한다. 엘리트 자녀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고 학교를 다니며, 그들이 명문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도, 다시 좋은 직장에서 엄청난 경쟁과 일의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경쟁에서 배제된 중류층 이하의 사람들은 경쟁에 패배한 것으로 인한 실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간다. 1980년대 이래 정보기술과 기계화 덕분에 중간 관리층이 줄어들고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중류층의 삶은 과거보다 불안정해졌다. 그들은 불안전 고용과 실직 등으로 노동하지 않는 유휴시간이 늘었으나, 이것이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국 사회층의 양극화는 심화되어,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 사이에 소득은 물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서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사는 곳, 일하는 방식, 자녀를 키우는 방식, 자녀가 다니는 학교, 가족의 안정성, 소비 물품, 여가를 보내는 방식, 정치적 성향, 종교 활동,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현재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는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의 중하층은 엘리트들을 부도덕하고 이기적이며 건방진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엘리트들은 중하층을 무능하고 노력하지 않고 절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경멸하면서, 서로 간 반목이 심하다. 미국의 금권주의 정치 풍토에서 엘리트들은 정부를 장악한 반면, 중하층은 이러한 정부에 등을 돌렸다. 결국 도날드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자의 선동이 대중에게 먹혀들고, 정치의 합의 도출 기능이 마비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나라에 살면서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서로 반목하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과거에서 높은 불평등은 결국 전쟁 혹은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되었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를 벗어나 대안이 있는가? 저자는 이 부분에서는 그리 설득적인 논의를 전개하지 못한다. 저자는 업적(merit) 자체가 사회 환경에 따라 가치가 주어지는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높은 보상이 업적과 함께 해야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엘리트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대학은 그들이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펀드의 수익을 활용하여 재학생들에게 크게 투자하고 이것이 높은 교육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명문 사립대에 입학 문호를 넓히도록 정부가 압력을 넣어야 한다. 엘리트 직장의 일 중독 문화가 임직원의 높은 수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을 덜하도록 제도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소득의 양극화, 특히 고급 전문직의 높은 수입과 그들의 지나친 일 중독 및 엄청난 자녀 교육 투자에 논의를 집중한다. 책의 대부분을 이러한 현상을 서술하는 데 할애한다. 그의 서술에는 몇가지 약점이 보인다. 첫째, 그는 업적주의 사회의 승리자(meritocrats)로 엘리트, 부자, 최고노동자 등을 언급하는 데, 이 집단의 범위가 모호하다. 엘리트 집단과 중류층 이하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강조하면서, 때로는 엘리트 집단의 범위를 대학 졸업자, 전문 대학원 졸업자,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자, 상위 0.1%, 상위 1%, 상위 5%, 상위 10% 등, 가용한 통계에 따라 수시로 조정한다. 그가 주장하는 엘리트의 독보적인 소득이나 배타적 삶의 방식이, 계층지위에 따라 낮아지면서 연속선을 그린다면, 그의 주장의 근본, 즉 양극화된 사회라는 주장은 무너진다. 둘째, 그의 서술은 전적으로 미국 사회에 한정해 있는데, 그가 지칭하는 엘리트들은 세계화된 사회 속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이다. 미국의 엘리트 전문인은 대부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다국적 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하고 그로부터 높은 소득을 거둔다. 예컨대 빌게이츠가 엄청난 부를 획득한 것은 세계화된 시장 속에서 그의 능력과 노력이 독보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업적주의 보상체계는 미국 사회에 한정해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셋째,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가 큰 소득 격차와 사회 양극화를 낳고 있다면,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인류의 과거는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위를 배분하는 방식인 카스트나 귀족 사회, 정실에 따라 지위를 배분하는 방식, 부모의 재산과 사업을 자식이 물려받는 방식이 지배했다.이러한 방식보다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했듯이 업적주의 또한 세대간 엘리트 지위의 전승을 근본적으로 틀어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노하우를 전력을 다해 자녀에게 전승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자녀에게 전승한다.
실용주의 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업적주의의 폐해를 막기위해, 업적과 보상을 극단적으로 연결시키는 순수한 업적주의 방식을 부분적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업적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되, 이것 이외에도 사회와 삶에 가치있는 다양한 기준을 동시에 인정한다면, 개인의 업적에만 전적으로 보상을 몰아주는 현재의 업적주의 보상체계는 타당하지 않다. 국가가 관여하여 다양한 가치에 따른 보상의 균형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따라 각 가치에 따른 행동에 대해 보상이 적절히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사회 민주주의적 방식이라고 지칭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영리 행위의 업적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겨, 이 세금으로 다른 가치 행위에 대해 보상을 해준다는 발상이다. 샌델의 사회민주주의적 보상 체계에 설득력이 있지만, 사실 현재의 상황은 업적주의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업적주의를 더 충실히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제대로 보상되지 않으며, 이것이 더 큰 사회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엘리트 전문인들의 소득, 일, 교육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서술이 지나치게 반복적이라 읽는 것이 매우 지루했다. 양극화와 엘리트 중심 업적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책의 맨 끝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끝 맺어서 허탈했다. 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기지 않은 비판이라면 비판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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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번드 모리스 (이규범 옮김). 2017(1985). 바디 워칭. 범양사. 312쪽.
저자는 동물학자이며, 이 책은 머리카락에서 발끝까지 인체를 20개 부분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구조와 기능, 진화의 흔적, 성장과 운동, 자세, 표정, 몸짓 등등을 생물학, 의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등 과학적 지식을 총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신체 각 부분에 대한 사회적 관습, 상징적 의미, 미신과 신화 등 사회 문화적 측면 또한, 서구사회에서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신체 각부분과 연관된 설명을 다양한 사진과 그림과 함께 곁들여 제시하기 때문에 이해가 쉬우며 읽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몸은 누구에게나 매우 친숙하지만,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을 접하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이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인간의 다리 자세에 따라 이것이 발산하는 성적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 번역도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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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공문혜 옮김). 1982(1966). 침묵. 홍성사. 295쪽.
저자는 소설가이며, 이책은 종교적인 고뇌를 주제로 한 종교소설이다.
1600년대에 일본이 카톨릭을 박해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에 몰래 잠입한 포르투갈의 선교사가 관헌의 박해을 받은 끝에 결국 배교하고 만다는 줄거리이다. 이야기의 굴곡이 없이 단선적으로 진행되며, 배교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가 주요 테마이다. 주인공은 기독교를 믿는 주민들이 처참한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배교하면 그들을 고문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설득에 굴복한다.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란, 타인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신부로서 일생동안 지켜온 신앙적 고집을 꺽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느님은 왜 선과 함께 악을 내셨으며,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사를 접하고도 왜 계속 침묵하냐고 묻는다.
이 소설은 이야기 전개가 단선적이지만, 주인공의 심리적인 다이나믹을 잘 묘사하여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질문을 핵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종교소설이다. 저자의 독실한 신앙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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