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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15. 16:21

George Akerlof and Robert Shiller. 2009. Animal Spirits: How Human psychology drives the economy, and why it matters for global capit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6 pages.

저자들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이며,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이 경제현상에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감정이 주요 경제 현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서술한다. 

고전 경제학은 합리적인 인간형을 상정하고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움직인다는 가정하에 경제모델을 만드는데, 이러한 경제 모델은 현실 경제현상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들은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에 따라 움직이며, 이익을 계산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케인즈의 뒤를 따라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동물적인 정서" Animal spirits 라고 지칭한다. 경제에 작용하는 다섯가지 주요 감정을 제시한다.

첫째, 자신감 confidence. 자산 시장에 버블이 생기는 이유는 사람들의 과도한 자신감 때문이며, 경제에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자신감의 과다 혹은 결핍 때문이다. 자신감은 피드백 기제를 통해 급속히 증폭, 확산된다. 둘째, 공정성 fairness. 사람들은 이기적 이익만이 아니라 공정성의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예컨대 임금이 결정되는 데에는, 단순히 노동의 수요 공급뿐만 아니라 공정성의 감정이 개입한다. 셋째, 부패 혹은 부도덕 corruption.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두면 쉽게 부패와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다. 상대에게 해가 되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도모하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엔론의 회계부정, subprime morgage에 근거한 자산 유동화와 신용평가사의 태만,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화폐 환상 money illusion. 화폐의 실질 가치는 명목 가치와 다른데, 사람들은 실질가치보다는 액면가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예컨대 디플레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명목 임금액을 고수하려 한다. 다섯째, 이야기 stories. 사람들은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사정이 어떠한지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아이디어에 의해 움직인다. 예컨대 부동산 버블이 일어나는 이유는 부동산이 앞으로 계속 오르리라는 주관적 전망, 부동산을 사고 팔아 크게 돈을 번 사람에 대한 소문 등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섯가지 인간의 감정은 다음의 중요한 경제 현상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해준다. 왜 경제공황이 발생하는지, 왜 중앙은행이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2007년의 금융위기는 왜 일어났는지, 왜 실업이 발생하는지, 장기적으로 인플레와 실업은 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사람들이 미래를 대비하는 저축은 왜 충분치 않은지, 자산 가격과 기업의 투자는 왜 큰 폭으로 변하는지, 왜 부동산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지, 왜 소수자 집단 사람들은 특별히 가난한지.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주장하듯이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움직이도록 그냥 내버려두면 잘 굴러간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시장을 왜곡하고, 비참과 부정의와 분노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를 통해 경제에 작용하는 인간의 감정이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되도록 해야 한다. 

저자는 수리경제학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이후, 행동경제학 분야로 관심을 옮겨서 이 책을 썼다. 감정을 계량화하기 어렵고, 감정이 경제에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엄밀한 인과 모델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을 저자들 또한 인정한다. 문제는, 버블이 언제 터질지, 호황이 언제 불황으로 바뀔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엄밀한 모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여하간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흥미있는 읽을거리이다. 

2025. 7. 10. 11:44

정성철. 2015. 국가는 왜 싸우는가: 전쟁과 평화의 경계에서 마주한 질문. 사회평론아카데미.299쪽.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제정치 이론을 관련 사례와 함께 서술한 소개서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제 1부에서는 주권국가의 등장과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현실주의 realism 정치이론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세력 균형, 자강 대 동맹 전략을 비교한다. 제2부에서는 국제 분쟁을 설명하는 이론을 소개한다. 상대와 자신의 힘과 의도에 대한 오인, 이웃 나라와 오랜기간 이어온 쟁점, 국가들 간 상대적인 힘의 변화, 국내정치적 요인, 정체성 문제, 등이 전쟁을 발생시키는 요인다. 3부에서는 국제협력을 자유주의 liberalism 정치이론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패권국이 주도하는 질서, 경제적 상호의존, 민주주의 체제의 평화 선호, 등이 국제협력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4부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 팬데믹 및 기후변화, 등,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는 초국가적 도전이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국제정치 환경을 간략히 검토한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와 강의의 경험이 농축된 산물이다. 근래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건과 국제정치의 이슈, 한국의 상황을 풍부하게 예로 들면서 국제정치 이론의 이해를 높인다. 한국의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국제정치이론이 강대국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간,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반드시 한국의 상황과 관련하여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이러한 질문들이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간단히 답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의 한국을 살아가는 국제정치학자로서 저자의 의견을 덧붙였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제정치 이론의 전체적인 윤곽을 쉽게 파악하게 되었다. 

 

2025. 7. 9. 10:07

이언 스튜어트(장영재 옮김). 2020.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 확률,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해온 수학의 역사. 북라이프.445쪽.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확률과 통계를 적용하여 불확실성을 계측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례에 대해 소개한다. 

확률이론은 도박사들에 의해 창안되어, 통계이론으로 발전했으며, 불확실성을 계측하고 예측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동전던지기와 이항분포, 계측의 오차에 대응하는 최소제곱법, 상관관계, 베이지안 정리를 이용한 추론의 향상, 카오스 이론과 불확실성의 확장, 확율적인 기상예보, 의료 연구에서 확율적 의사결정 모형, 자산 가격의 예측에 적용되는 확율 모형, 양자 역학의 불확실성, 몬테카를로 기법, 등등,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전 영역에 걸쳐 확율 모형을 사용하여 불확실성을 측정하고 관리한다.  

이 책은 수학적으로 복잡한 개념을 일반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나,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넘어서서 저자의 논리적 서술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힘들다.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룬 때문도 있겠고, 번역의 한계도 한 원인이다. 개념이 쉬운 부분은 번역한 글이 무리없이 이해되나, 설명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두세번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제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데, 한국말 번역의 전달력은 실망스럽다. 

 

2025. 7. 6. 20:52

데이비드 핸드 (전대호 옮김). 2016.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 더퀘스트. 302쪽.

저자는 통계학자이며, 이 책은 일견 불가능해보이는 일들이 주위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이유를 확률 이론을 동원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은 일들에 접하면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저자는 이러한 많은 경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그리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불가능해보이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섯 가지 수학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필연성의 법칙이다. 일어날 확율은 낮지만 논리적으로 가능한 경우는 반드시 언젠가 어디에서 누구에겐가는 일어난다. 예컨대 특정인이 로또에 당첨될 확율은 낮지만, 특정 회차에 가능한 일련번호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당첨된다. 둘째는, 아주 큰 수의 법칙이다. 아주 큰 숫자의 표본을 뽑으면 아주 작은 확율의 사건도 일어난다. 예컨대 특정인이 벼락에 맞을 확율은 낮지만, 지구의 70억 인구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벼락에 맞는다. 또다른 예로는, 네잎 클로버를 찾을 확율은 낮지만,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찾아 헤메면 누군가 언젠가는 반드시 발견한다. 

셋째는 선택의 법칙이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선택을 하게 되면 일견 매우 드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크게 만들 수 있다. 예컨대, 회사의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행사한 직후에 주가가 폭등하여 큰 이익을 얻는 경우, 그들이 주가의 변이를 보고 사후적으로 스톡옵션 행사일을 지정하지 않았나 의심할 수 있다. 또다른 예로는 화살을 벽에 쏜다음에, 벽에다 화살 주위로 과녁을 그리면 백발백중의 사수가 된다. 넷째는 확율 지렛대의 법칙이다. 사건이 발생할 조건을 약간만 바꾸어도 사건의 발생 확율을 크게 바꿀 수 있다. 금융시장이 크게 폭락할 가능성은 낮지만, 금융 시장을 왜곡시키는 시장 행위가 존재한다면  조그만 불균형에도 금융 시장이 크게 출렁거릴 수 있다. 또다른 예로는, 특정인이 벼락에 맞을 확율은 낮지만, 벼락이 칠 때 야외에 있어야 하는 직업 환경이라면 벼락 맞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다섯째는 충분히 유사함의 법칙이다. 특정 사건과 유사한 범위를 넓게 잡으면, 두개의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확율이 크게 높아진다. 예컨대 두 가까운 친지가 몇년을 사이에 두고 열차 사고로 사망한 경우, 가까운 친지의 범위를 넓게 잡거나 두 사건 사이의 기간을 넓게 잡으면, 우연의 일치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실제에서는 이러한 다섯가지 일견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좌우하는 법칙이 중복하여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불가능해보이는 우연의 일치가 발생할 확율이 실제는 그리 낮지 않다. 

일견 불가능해보이는 우연의 일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여러 원칙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확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즉 많은 일에는 어느 정도의 우연이 작용한다는 명제는 참이다. 사람들은 우연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대하게 상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은 심리적인 편향 때문에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예컨대 긍정 편향 affirmation bias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견해나 사건을 더 잘 기억한다. 사람들은 확실함을 원하기 때문에, 확율적인 세상에서 확실한 패턴을 찾고자 노력한다. 불확실한 상황에 접할 때, 일견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접할 때 사람들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정 사건이 일어날 확율, 두 사건이 잇달아 일어날 확율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알려고 노력한다면,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통계학자로서의 내공과 연구 경력이 잘 묻어난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추상적인 이론의 설명력을 높였다. 후반으로 가면서 번역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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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6. 16:18

 

Charles Duhigg. 2012. The Power of Habit: Why we do what we do in life and business. Random House. 274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습관이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이야기한다. 

인간의 두뇌는 최소한으로 일하려 한다. 오랫동안 반복하여 익숙해진 습관은 두뇌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러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는 많은 일들은 습관에 의해 작동된다. 습관이 작동하는 기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특정 행위를 유발하는 사건이나 상태(cue), 습관적 행동(routine), 그러한 행동으로 얻게되는 보상(reward)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큐를 만나면, 행동을 하며, 보상을 얻는다. 

습관은 바꿀 수 있다. 습관을 고치려는 의지(will power)를 가지고 습관의 구성부분을 분석적(analytically)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신이 고치려고 하는 습관을 유발하는 큐와 보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단계이다. 그러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다른 행동 찾아보기, 습관적 행동을 유발하는 큐를 의식적으로 피하기, 기존의 습관으로 얻는 보상을 대체할 다른 보상을 찾기, 등이 분석적 접근법이다. 이렇게 분석적으로 접근하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얻으려고 습관적 행동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습관적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습관을 고치려면, 대안 없이 중단할 수는 없으며, 새로운 습관으로 대치하여야 한다. 

습관은 개인의 행위 수준에서뿐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의 수준에서도 존재한다. 조직의 문화는 습관의 다른 이름이다. 사회의 규범 역시 습관과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조직이나 사회의 나쁜 문화와 규범을 바꾸려면, 새로운 좋은 것으로 대치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본인의 나쁜 습관을 깨닫고, 이것을 고치려고 하면서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련 주제의 연구서를 읽고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분석의 깊이가 얕으며, 이야기의 전개가 산만하다. 

2025. 7. 3. 15:49

Scheidel, Walter.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 Press. 52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왜 서구가 세계를 앞서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중국과 비교하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저자의 설명의 핵심은, 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 서구 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졌으며 (fragmentation), 국내적으로도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면서, 다양한 주체들간에 경쟁과 타협이 이루어지고, 기득이권과 관행을 지키기보다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제도적 인센티브 시스템이 들어서게 된 데 있다. 

서구 유럽의 전 역사를 통털어, 로마 제국은 유일하게 전지역을 통괄하는 단일 권력체였다. 로마가 망한 후 유럽에는 로마에 필적할만한 단일 권력체가 들어서지 못했다. 반면 중국에는 한 제국의 멸망이 다른 제국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지역을 총괄하는 단일 권력체가 꾸준히 지배하였다. 단일 권력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생기지 않고, 안정과 전통을 중시하는 이념이 지배한다. 중국에서는 땅에 붙박힌 농업과 지주층을 중시한 반면, 움직이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낼 위험이 있는 상업과 공업을 억눌렀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부의 출현은 엄격히 통제되고 제한되었다. 중앙의 정치체가 모든 권력, 부, 이념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권력과 결탁하여 관료와 지주가 되는 길밖에는 없었다. 

반면 서구 유럽에서는 로마가 망한 후 각 지역은 뿔뿔히 흩어졌으며 단일 정치체로 권력이 모아지지 않았다. 세속 권력체들의 분열에 더하여, 세속 권력에서 독립된 기독교 권력이 성장하였다. 각 정치체들은 서로 치열히 경쟁하였으며, 경쟁에 우위를 가져올 좋은 제도나 관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관행에 기반을 둔 기득이권 집단의 반발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럽의 분열된 사회는 변화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한 국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국가는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하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성과를 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도를 찾는 데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구 유럽에서 중국이나 인도/중동 등과 달리 로마가 망한 후 전지역을 포괄하는 단일 정치체가 들어서지 못한 데에는 지정학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중앙아시아의 대초원 지역에는 막강한 기동력과 무술을 보유한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수시로 주변에 있는 농업 정착 민족을 침탈했다. 농업 정착민족은 생산력은 높지만 무력에서는 이들에 뒤지기 때문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중국, 인도/중동에는 강력한 권력으로 막강한 자원을 동원하는 정치체가 지배하였다. 반면 서구 유럽은 대초원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목민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또한 유럽은 중국과 달리 지리적으로 산맥, 강, 해안선이 복잡하여 전지역을 통괄할 수 있는 정치체의 출현이 방해받았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주변에 있는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상공업이 발달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유럽 권력의 중심지인 프랑스나 합스부르크 독일/스페인에서는 기득 이권과 기존 이념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서기 어려웠다. 유럽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상공업은 장려되고 상공업자들은 정치인에 비견할 권력을 획득하였다. 상공업자들은 왕과 귀족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의회를 만들었으며, 지식인과 기술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을 길을 찾아 다른 나라로 이주하였다. 왕과 귀족, 상공인, 지식인, 종교인 등이 권력을 분점하면서 서로 조정하고 타협하는 제도가 자리잡았다. 단일 권력체와 이념이 전 지역을 지배하는 중국과는 전혀 달리, 유럽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지식 등 모든 면에서 파괴적 혁신 distructive innovation 의 역동성이 지배하였다. 

저자는 로마의 영광을 칭송하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로마의 멸망과 이후 이에 필적할 강국이 유럽에 출현하지 못한 것이 유럽의 성공, 나아가 인류 전체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권력의 분열과 경쟁은 많은 갈등과 파괴와 인명의 희생을 낳는다. 그러나 중국의 평화와 안정은 혁신을 저해하기 때문에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지 못했다. 변화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논의를 모두 포괄하는 대단한 분량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저자의 노력과 통찰력과 서술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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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Thaler. 2015. Misbehaving: The Making of Behavior Economics. W.W.Norton. 358 pages.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이며, 이 학문 분야의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그의 개인적인 지적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며, 이 학문 분야의 발달 과정을 주요 이슈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술한 기록이다. 그는 행동 경제학의 대부로서, 이 학분 분과가 어떻게 시작되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서술한다. 

경제학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상을 가정한다. 합리적 인간은 효율을 중시하며, 감정에 휩쓸리거나 어떤 이유로건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박사 과정생 시절부터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가 실제 사람들의 행동 방식과 맞지 않는 경우에 흥미를 가졌다.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 유의미한 패턴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서 출발한 행동경제학자인 칸네만과 트베르스키와의 만남은 그의 이러한 의심을 학술 활동으로 구체화하는데 크게 작용하였다. 

첫번째로 그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소유 효과 endowment effect" 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것에 대해서 자신이 그것을 소유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그것에 더 큰 가치를 매긴다. 이는 동일 물건은 시장에서 동일 가치를 가진다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에 어긋난다. 그는 다양한 실험과 실재 상황을 통해 그의 주장이 맞음을 증명한다. 이 주제 이외에도 여러 흥미 있는 이슈들이 소개된다. 사람들이 사용처에 따라 심리적으로 계정을 구분하여 돈을 운용하는 현상(mental accounting), 공정성을 고려하면서 효율성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 현상, 금융시장에서 자산의 가치가 반드시 대상의 내재적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 현상, 프로 스포츠 업계에서 선수를 스카웃할 때 팀에게 최고의 승률을 가져오도록 결정하지 않는 경향, 노후를 대비한 저축을 소홀히 하는 성향 등이다. 

저자가 쓴 책인 "Nudge" 은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여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은 먼 미래에 닥칠 위험에는 비중을 적게 두기에 미리 대비하는 행위를 소홀히 하며, 당장의 소비를 저축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에, 결국 노년이 되면 궁핍에 빠지게 된다. 직장에 들어갈 때 연금저축에 가입하는 것을 '기본 선택 default' 항목으로 하여 자동 가입되도록고, 미래에 임금이 오르면 오르는 부분의 일부를 자동으로 더 많이 저축하도록 연금저축을 설계함으로서, 심리적 저항감 없이 사람들의 노후 대비 저축을 늘릴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낸 뒤 영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너지 효과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정책으로 개발하는 팀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후 그의 아이디어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행동경제학은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가정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대체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합리성으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이 완벽한 설명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정도나 맥락은 다양하다.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면, 경제학의 현실 정합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행동경제학이 해야할 일은 많다. 

이 책은 저자가, 언제 어떻게 특정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는지,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적인 학술 연구 활동으로 발전시켰는지,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다른 아이디어를 낳았는지 등을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행동경제학에 대해 전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게 된다. 아이디어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학술 연구 활동이란 것이 무엇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을 노벨상을 수상한 한 분야의 대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으며,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읽은 드문 책이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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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16. 18:32

에밀리 와프닉. (김보미 옮김). 2017. 모든 것이 되는 법: 꿈이 너무 많은 당신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 웅진 지식하우스. 231쪽.

저자는 커리어 코치이자 강연가이며, 이 책은 한가지 전문 직업에 종사하기보다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논의한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성인이 되어서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지에 관해 생각할 때, 한가지 전문 분야에 자신을 몰입하여 사는 삶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천성적으로 한가지에 관심을 고정하지 못하고, 다양한 관심을 동시에 혹은 시차를 두고 전전하도록 생겨먹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가지 관심, 한가지 직업에 일생을 매몰하라는 사회적 요구는 큰 심리적 육체적 갈등을 유발한다. 

다양한 관심과 일을 하면서 살도록 생겨먹은 사람은, 그러한 자신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사는 것이 좋다. 여러가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한가지도 제대로 못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지만, 그러한 사회적 통념을 무시해야 한다. 다양한 관심과 일을 하는 것은 한가지 전문 분야에 매진하는 것과 비교해 강점이 있다. 한 분야의 아이디어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면서 새로운 창의적 방법을 만들 수 있으며,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새로운 분야를 더 빨리 배우며, 변화하는 상황에 더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하는 사람은 일생 한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보다 전문성이 덜하며,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최고의 전문가로 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기질에 따라 사는 대신에 깊이있는 전문성을 희생해야 한다. 

다양한 관심을 살리면서 여러가지 일을 하려고 한다면 유의해야 할 점이 세가지 있다. 첫째는, 어떻게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것인가이다. 자신이 관여한 여러가지 일 모두에서 돈을 벌기를 기대하기보다, 돈을 버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혼합된 것이 좋다.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할 돈을 벌 수 없다면, 다양한 관심을 살리면서 사는 것은 일단 보류해야 한다. 둘째, 여러가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서 그리하는 것일텐데,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 자신의 삶 전체로 볼 때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아무리 일시적으로 흥미를 유발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특정한 일에 자신을 헌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관심의 다양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압도하여 지치게 하지 않도록, 다양성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다양한 관심을 살리면서 일을 하는 몇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는 여러가지 관심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서로 다른 성격의 몇가지 일을 스위치하면서 동시에 관여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한가지 일을 주로 하되, 다른 관심은 부차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일부 할애하여 간여하는 방식이다. 넷째는, 매번 한가지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되, 순차적으로 새로운 일로 갈아타는 방식이다.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 네가지 중 어느 방식이 자신에게 맞는지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찾아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낭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꾸준히 참고 일을 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특정한 사람의 기질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의심스럽다. 다양한 관심을 추구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칼 맑스가, 아침에 일하고 오후에 낛시하고 저녁에 독서하는 삶을 가장 인간적인 삶으로 그리지 않았던가. 일의 복잡성이 높아질수록, 일에 숙달하는 데 많은 지식과 오랜 훈련이 필요하고, 일을 제대로 하려면 큰 헌신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 산업사회는 전문화와 분업의 결과 높은 생산성을 거두고 지금의 풍요 도달했다. 자신의 관심이 흘러가는 대로 재미와 의미를 찾으면서 사는 삶을 지향한다면, 엄청나게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아니라면, 풍요하게 살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다기능인의 예로 든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다.  

2025. 6. 5. 20:46

Simone de Beauvoir. 1949(2009). The Second Sex. Vintage Books. 766 pages. (translated by Constance Borde and Sheila Malovancy-Chevallier).

저자는 프랑스의 지식인이며, 이 책은 여성의 삶에 대해 총체적으로 논의한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적, 정신분석학적, 문학적, 사회학적 측면에서 다양하고 방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이 책의 논의는 1970년대 여성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여성학에서 전개되는 많은 논의에 마중물이 되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여성은 생물학적 특징 때문이 아니라 여성답게(feminine) 사회화됨으로서 여성(gender)으로 살아간다. 여성은 갓난 아기에서부터 남성과는 다르게 사회화되면서, 여성으로서의 역할, 사고방식, 성격, 미래의 기대를 형성한다. 남성은 진취적, 활동적, 적극적이 되도록 장려되나, 여성은 수동적, 귀여움, 인내가 미덕으로 강요된다. 

여성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세상을 개척해나갈 수 없다. 이러한 권한은 남성에게만 주어지며, 여성은 수동적인 객체(the other)로서 존재한다. 즉 여성은 남성에 의해 조정되고, 억압되고, 착취되고, 남성을 위한, 남성에 봉사하는 존재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기를 강요받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남성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여성을 중요 지위나 역할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으며, 이를 당연스런 사회 질서로 인식하도록 제도화시키고 문화로 고정시켰다. 

여성이 자신의 열등성을 인정하고 수동적인 역할과 지위를 받아들이도록 성장하면서 길들여지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은 정신적으로 외곡되고, 무기력하고, 좌절과 우울, 열등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여성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기에 결국 마지 못해 여성이기를 수용하지만, 합리성과 정신적 건강성이 결여된 부실한 인간이 된다. 남성은 이런 여성의 성격과 행동을 신비주의 mysticism 로 포장하여 외곡한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는 것은 여성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질서에 굴종하는 것이다. 남성과의 사랑, 행복한 가정,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의 삶의 의미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남성은 여성과의 사랑, 행복한 가정, 사랑스런 자녀를 넘어, 사회를 바꾸고 자신의 뜻을 펴는 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과 대비할 때, 남성 사회의 위선과 여성의 종속성이 드러난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열등성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독립적인 경제 수단을 가져야, 즉 일을 해야 한다. 일의 세계에서 남녀의 차별과 격차가 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독립적인 경제 수단을 가질 때에야만 남성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굴종의 덧인 '여성성'(femininity)을 벗어버리고 남성과 대등한 존재가 될 때에야, 독립된 주체적 인간으로서 여성의 삶이 가능하다. 

이 책은 여성의 생리적 특징, 역사, 신화, 각 인생 시기별 삶의 경험, 독립된 여성, 매춘부,동성애자, 사회적 활동, 사랑, 등 여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제를 섭렵한 방대한 책이다. 하나의 일관된 주장으로 모든 논의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내뇽의 반복이 심하다.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20세기 중반의 여성의 삶은, 70년이 지난 지금의 여성의 삶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 책이 기폭제가 되어 여성운동을 거치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서술하는 여성의 삶의 바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2025. 5. 26. 16:00

V.S. Ramachandran. A Brief Tour of Human Consciousness. Pi Press. 112 pages.

저자는 뇌과학자이며, 이 책은 자신의 몇가지 독립된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 뇌과학 지식의 확장성에 대해 논의한다. 유령팔다리 phantom limbs, 거울 신경 mirror neurons, 공지각신경 symethesia, 등의 주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된다. 

인간의 뇌는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한 부분이 손상된 환자를 통해서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의 얼굴을 인식하는 부분과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 간에 연결이 끊어진 환자의 경우, 얼굴을 인식하기는 하지만, 그에 수반되어야 할 감정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대상 인식과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컨대 어머니의 얼굴을 인식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인식이 오류라고 생각한다. 대상을 인식하기는 하지만, 그 대상들에 대한 선호의 감정이 수반되지 않는 환자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사고로 인하여 팔이나 다리를 절단당한 환자들은 유령 팔다리 증후군에 시달린다. 실제는 없음에도 그것이 있는 것 처럼 인식하고, 때로는 그와 관련된 고통을 겪는다. 이는 거울을 이용하여, 성한 다른 쪽의 팔다리를 움직여 유령 팔다리를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증상을 고칠수 있다. 우리의 고통의 많은 부분은 인식의 오류로 인한 것이므로, 우리 두뇌 속에서 인식을 바로 잡으면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행위를 하면 자신의 두뇌 속에서도 그러한 행위를 담당하는 부분이 활성화된다. 이를 거울 신경 mirror neurons 이라 하는 데, 사람들이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하고 공감하는 능력 emphasy 은 바로 이런 두뇌 작용 때문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를 모방함으로서 사회적 협동과 지식의 전승 및 축적이 가능하다. 이 능력은 인간 이외에 동물에게는 없으나 인간에게 매우 크게 발달한 것으로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을 낳은 동력이다.

일부 사람들은 숫자나 음정을 보고 들으면 특정 색을 동시에 연상한다. 이는 인간의 두뇌 속에서 숫자를 인식하는 부분이나 음정을 인식하는 부분이 색채를 인식하는 부분과 인접해 있는데, 이 두 부분 사이에 연결이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 신경들은 매우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데, 성장하면서 이 연결이 가지치기 되고 정리된다. 숫자 혹은 음정과 색채를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은 이러한 가지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으로, 이는 유전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식 영역이 연결된 현상은,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은유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른 인식 영역 간에 비교를 통해 유사성과 차이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서로 다른 인식 영역간에 연결 정도가 더 크다.

두뇌의 구조와 작용을 연구하는 뇌과학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물리학이나 화학이 19세기 초에 도달한 단계에 비유할 수 있다. 근래에 인간의 두뇌에 대한 이해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데, 앞으로 큰 성과를 예상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학자로서,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연구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2025. 5. 14. 21:09

Dan Ariely. 2023. Misbelief: What makes rational people believe irrational things. Heligo Books. 290 pages.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 원인을 분석한다. 감정적, 인지적, 성격 특성,  사회적 요인들이 중첩하여 작용함으로서 사람들을 음모론에 빠지게 만든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일 때문에 큰 소외, 좌절,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 실업,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혼, 배신 등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빠지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불행을 안긴 원인과 비난의 대상을 찾는다. 난관을 극복할 심리적 강인함 resilience 을 지닌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에 빠져도 견디고 극복할 수 있으나, 이러한 심리적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심리적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쉬운 해결책을 찾는다. 심리적 강인함은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장과정에서 및 주변 공동체로부터 얼마나 안정적인 감정적 유대 emotional attachment 를 구축하였는지에 좌우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믿는 성향 confirmation bias 이 있다. 일단 어떤 주장을 믿기 시작하면, 그에 부합하는 증거를 열심히 찾고 그 주장과 어긋나는 증거들은 외면하면서, 그것이 진실임을 자신에게 설득한다 motivated reasoning.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알고 있는 것보다 세상 만사의 작동원리에 대해 더 잘 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본원적인 인지적인 편향성이 감정적으로 취약한 상태와 결합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행을 안긴 원인을 설명하는 외곡된 이론에 쉽게 빠져든다.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이나 자신의 인지 능력을 과신하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능력 intellectual humility 이 떨어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애 narcissism 가 강하다.

음모론은 개인이 홀로 주장하기보다는 그룹을 지어 서로 격려하는 집단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음모론을 추종하는 무리 속에서 소속감과 감정적 위안을 얻는다. 음모론 집단의 대의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도 의심하는 지나친 주장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주위 사람에게 퍼트리는데 열성을 보인다. 남보다 더 극단적인 주장을 제시할수록 음모론 집단 속에서 더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음모론 추종자들이 경쟁적으로 극단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전개된다.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은 자신들의 믿음이 사회일반의 상식이나 주위의 돌아가는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할 때, 자신들이 추종하는 음모론에 더 집착함으로서 인지적 불일치 cognitive dissonance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음모론 추종 집단은 종교적인 사교 집단과 흡사한 집단 다이나믹을 보인다.

음모론이 발흥하는 것은 사회적인 신뢰 trust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권위, 제도, 기관, 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음모론에 쉽게 집착한다. 근래에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회의 신뢰수준이 전반적으로 저하되었다. 신뢰는 일단 떨어지면 다시 올리기 힘들다. 특정 음모론이 명백하게 거짓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그 음모론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다른 이슈의 음모론으로 갈아타곤 한다. 음모론은 사회의 정당한 권위에 대한 의심이 핵심이며, 이는 사회의 게임으로부터 소외된 감정 sense of being excluded 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한 음모론은 계속 독버섯처럼 생겨날 것이다.

이 책은 코비드 팬데믹 기간 중, 저자가 음모론 추종자들의 비난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겪은 어려움을 배경으로 하여,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깔려 있으므로 논의가 구체적이고 현장감이 있으나, 논의의 깊이가 좀 떨어진다는 것은 약점이다. 왜 멀쩡한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음모론에 빠지게 되는지 하는 평범한 의문을 심리학 지식과 연구방법을 동원하여 깊이있게 검토해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근래에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기술이 음모론의 확산에 미친 영향을 의도적으로 논의에서 뺐는데, 이는 심리학적 동인에 논의를 집중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인터넷과 SSN이 알고리즘의 작용으로 음모론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현실을 누락하는 약점은 피할 수 없다. 

2025. 5. 8. 17:07

Dan Ariely. 2009.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 Harper Perennial. 322.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다양한 패턴을 설명한다. 15개의 찹터마다,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상이한 이유와 배경을 관련 실험과 함께 소개한다.

경제학은 인간은 비용과 수익을 계산해서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경우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곤 하는 데, 그러한 비합리성은 무작위적으로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러한 비합리성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내재된 오류에 기인하기 때문에, 그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점을 증명해도 자신의 의지로 고칠 수 없다. 그러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환경, 맥락을 바꿈으로서 사람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인도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언급하는 '은연중에 권하는 장치, nudge" 가 바로 그러한 개입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다양한 비합리적 행동 양식이 소개되는데, 다음에서 그중 몇개를 예시한다.

사람들은 비교를 통해서만 대상에 대해 사고를 하며, 비교가 제시되었을 때가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그것에 더 끌리는 성향이 있다. 비교의 대상이 제시되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의 편향성은 마케팅에서 흔히 이용된다. 예컨대 이코노미스트 잡지 구독을 권하기 위해, 잡지 구독과 온라인 접속권을 함께 묶은 상품을, 단순 잡지 구독 상품과 비교 제시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잡지 구독과 온라인 접속권을 함께 묶은 상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화폐로 가치가 매겨진 서비스와 무료로 제시하는 서비스는 다른 인식의 영역에 있다. 전자는 '시장' market 의 인식 모드를 가동시키므로 사람들은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반면 무료로 제시하는 서비스는 '사회적 규범' social norms 의 인식모드를 가동시키으므로,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고려하며 일대일의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두 영역은 동시에 섞여서 취급될 수 없다. 예컨대 회사가 종업원들에게 헌신을 요구하면서, 회사에 미치는 손익을 깐깐히 계산적으로 접근하면서 보상한다면, 종업원들은 '헌신' 이라는 사회적 규범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반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 이는 물건뿐만 아니라 더 넓게 적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 높이 평가하는 반면, 상대의 입장이나 상대의 생각을 자신의 것보다 낮게 본다.

사람들은 기회가 허용되면 사소한 정도로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부정직한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대단한 부정은 기회가 허용되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돈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소한 부정직을 저지른다. 예컨대 직장에서 문방용품을 집으로 가져온다거나, 대학교 기숙사의 공용 냉장고에서 남의 음식을 쓸쩍 집어먹는 행위 같은 것. 또한 돈이 직접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개입된 경우, 사람들은 양심에 꺼리끼는 행동도 손쉽게 한다. 예컨대 회계를 약간 조작한다거나, 스톡옵션의 발동 시기를 과거로 한다거나, 등등.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어리석은 행동을 랜덤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비합리적 행동 유형과 그 배경의 인식구조를 이해한다면, 이러한 비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환경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점에 행동경제학의 실용적 묘미가 있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에서 흔히 언급되는 많은 아이디어의 보고이다. 특히 각각의 행동 오류에 대해 실험을 기획하고 실행한 이야기가 독창적이고 유머 넘친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2025. 5. 1. 17:43

마이클 뉴턴 (김도희,김지원 옮김). 1999(1994). 영혼들의 여행. 나무생각. 471쪽.

저자는 상담심리사로 출발하여 최면치료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육체를 떠난 영혼이 거쳐가는 여정과, 영혼들의 세계 spiritual world 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하는지에 관해, 자신의 최면치료 사례를 예로 하여 이야기 한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 immortal. 영혼은 지구에서 특정 인간의 몸에 잠시 머물다가 영혼들이 머무는 세계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서 사망하는 순간 영혼은 육체를 이탈하여, 영혼들의 세계에서 온 안내자와 함께 그 세계로 돌아간다. 영혼이 머무는 세계는 물리적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영혼은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지적인 에너지 intellectual energy 와 같다. 그곳에서 영혼은 '집'에 돌아온 평안함을 느끼며, 그곳은 이 세상과 달리 사랑과 용서와 이해로 포근하고 행복이 충만하다.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과 같은 곳은 없으며, 이생에서 한 일을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그런 곳은 아니다.

이세상을 떠나 영혼의 세계로 돌아오면, 영혼은 안내자와 함께 이세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검토하면서 지혜와 통찰력을 기르는 시간을 갖는다. 영혼의 세계에서 자신의 영혼 친구들 soul mates 와 함께 15~25명이 소그룹을 형성하면서 지낸다. 영혼의 세계는 일종의 학교와 같아서, 지도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영혼 친구들과 함께 지혜와 깨달음을 높이는 수련을 한다.

지구는 인구과밀, 갈등, 혼란, 오염, 등으로 험난한 곳이다. 영혼의 세계에서 머무는 영혼들은 본인 스스로 지구에서 환생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구에서 경험하는 시련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구에서 인간의 삶은 지혜와 통찰력을 높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구는 영혼이 방문하는 여러 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혼에 따라 각자가 도달한 지혜의 수준은 매우 다르다. 제 1단계의 초보자에서부터  제6단계의 최고로 앞선 단계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도달한 단계에 따라 영혼의 세계에서 맡는 역할이 다르다. 상위의 단계로 올라갈수록 아래 단계의 영혼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더 많이 맡으며, 우주의 본원 에너지 source 에 근접하게 되면서 높은 수준의 창조 작업에 참여한다. 영혼들은 수천 수만년 동안 무수한 환생 과정을 거치며 지혜의 수준을 높여 나아간다.

저자는 수천명의 최면치료 사례를 통해 사후에 가는 영혼의 세계에 관해 일관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므로, 이것은 허구나 거짓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과학적 세계관은 인간의 지각을 이용하여 수집한 것만 객관적 사실의 근거로 보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는 순전히 인터뷰에 근거하기 때문에 과학 방법론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여하간, 더 높은 수준의 지혜와 통찰력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그의 주장이 흥미롭다. 과학 세계관에 따르면 인생에는 절대적인 목적 (absolute purpose, telos) 이 없으며, 동물 세계의 일원으로서 생존과 후손의 번식이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2025. 4. 29. 20:41

Patrick Deneen. 2018. Why Liberalism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19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근래에 서구 사회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정치이념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한다. 서구에서 자유주의 이념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념 자체에 내재한 문제 때문에 실패했다. 자유주의를 대체할 다른 정치 이념이 출현하여야만 서구 사회가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인권, 평등, 정의, 진보, 등의 보편 가치를 표방하면서, 17세기 이래 서구의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이끌어낸 이념이다. 봉건사회의 권위, 위계, 제도, 관습을 거부하고, 대신 개인의 주체적 의지와 독립과 선택의 자유을 최고의 가치로 숭앙한다. 자유주의는 왕과 귀족의 지배 체제를 무너뜨렸으며, 전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개인의 창의와 능력과 노력을 발휘하여 개인의 잠재력을 최고로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유주의는 기존의 틀 내에서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변화와 개혁을 선호하며, 효율과 합리성을 최우선시 한다. 개인 각자는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은 선이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공공의 선이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기존의 제도와 관습을 거부하고, 공공의 선을 우선시하지 않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제도와 관습의 보호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이 성취한 사유재산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능력이 없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실패에 따른 고통과 좌절을 아무런 사회적 보호 없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자유주의 이념은 경제분야에서 시장 원리를 최고로 치는데, 시장 경쟁은 승리자와 패배자를 갈라놓으며, 시간이 갈수록 이 둘 사이에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패배자의 고통과 좌절은 가중된다. 경쟁의 패배자에게 자유주의 이념이 제시하는 자유는 그림의 떡이며,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배제된다. 자유주의 경쟁 체제에서 승리한 엘리뜨는 안정된 가족을 유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높은 학력을 갖추게 하여, 다음 세대의 경쟁에서 승리자의 지위를 세습시킨다. 반면, 자유주의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불안정한 가족을 영위하며, 그들의 자녀에게 우수한 교육 지위를 제공하지 못하며, 그 결과 다음 세대의 경쟁에서 패배자의 지위를 물려받는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에서 배제되며, 희망을 잃고, 소외, 좌절, 분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근래에 미국과 유럽에서 대중영합주의적 권위주의 정치인이 당선된 것은 이러한 대중의 좌절과 분노의 결과이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자유, 공정, 평등을 내세우는데, 실제로는 국민의 다수에게 그러한 가치를 부정하는 현재의 위선적인 상황은 평화롭게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의 문제를 개선할 대안은 무엇인가? 자유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자유주의 체제 이전의 권위적 봉건사회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자유주의의 이점을 유지하고 문제를 보완하면서, 자유주의를 대체할 이념을 모색해야 한다. 자유주의 체제가, 지역적인 한계를 파괴하는 대신 전세계적인 접근을 옹호하고, 사람들 사이에 관계 대신 익명적인 보편적 원칙을 강조하고, 과거나 미래와의 연결 대신 현시점에서의 최고의 효율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인근 지역에서, 자주 접하는 사람들에게서, 과거로부터 이어받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기억과 유산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갈 때에만, 자유주의의 개인주의와 고립주의가 낳은 좌절과 인간 관계의 파편화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관습, 지역주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근래 서구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도전받는 환경 속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자유주의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모호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주의 communitarianism 비슷한 것을 간단히 언급할 뿐, 자신도 대안이 무엇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이념 중 자유주의가 가장 큰 물질적 풍요와 인권 보장을 실현했기 때문에,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자유주의에 내재하는 문제 때문에 실패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책임한 비판이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로 볼 때, 자유주의는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지만,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논의에 중복이 심하여 읽기 힘들었다.

2025. 4. 24. 17:46

Todd Rose. 2016. The End of Average: Unlocking our potential by embracing what makes us different. Harper Collins. 191 pages.

저자는 발달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하나의 틀에 맞추어진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며, 개인의 특성에 맞춘 개별화된 교육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에, 하나의 차원으로 측정하여 평균이라는 하나의 대표값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인간은 서로 독립적인 다차원적인 속성을 가지며, 차원들 상호간 변이의 상관도가 낮다(jaggedness in multidimentions). 예컨대 신체지수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수치로 환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여러 차원들의 평균값을 모아서 하나의 대표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능지수, 성격지수, 등 인간을 묘사하는 여러가지 복합 수치들은 타당성이 의심된다.

인간의 다차원적 속성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인 맥락(context-dependent)에 따라 일관되지 않게 발현된다. 예컨대 심리학의 대표적인 이론인 다섯가지 성격 타입이나, 당장의 만족을 미루는 자기통제력 등은, 개개인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사람들은 신뢰할만하고 안정된 환경에서는 당장의 만족을 미루는 자기통제를 하지만, 신뢰할 수 없고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당장의 만족을 미루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정된 '본질적인 특성'(essentialism) 을 보유하고 있다는 전통적인 심리학 이론은 틀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빨리 문제를 푸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 푸는 속도나 문제 푸는 방법에서 개인 차이가 크다. 각 개인이 성장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diverse paths). 많은 사람들의 문제 푸는 속도와 방법의 평균치를 구하여 이것을 모범으로 생각하고, 이  단일 모범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릇되다. 하나의 방법과 속도만을 표준으로 상정하고(standardize), 누가 이것을 더 잘 하는지에 따라 줄을 세우는(ranking) 현재의 교육 모델은 문제가 있다.

인간은 다차원적이고,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며, 각자는 고유의 성장 속도와 경로가 있다는, 이 세가지의 이유 때문에 개인의 고유성 (individuality)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교육과 평가와 인사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육하고 평가할 것인가? 저자는 온라인 디지털 기술이 이 난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리라고 본다.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학습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각자가 잘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온라인 디지털 기술 덕분에 가능하다 (self-paced learning).

대학에서 능력 수준에 따라 그룹을 만들어 교육하고(competence-based learning), 각자가 미래의 자신의 직업에 요구되는 기술에 적합한 수업만을 골라서 듣고, 그러한 기술의 수행 능력을 입증하는 자격을 제공하는 (credentialing) 방식으로 고등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적성과 필요와 능력에 맞는 수업을 선택적으로 조합하여 개인화된 커리큘럼 (personalized curriculum) 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은 현재의 공장식 표준화된 공교육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는다. 각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비싼 개인 과외를 받고, 비싼 사립학교의 소규모 클래스 수업을 선호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저자는 '평균의 시대' age of the average 는 가고 '개인성의 시대' age of individuality 가 오고 있다고 한다. 가용 자원이 늘면 점차로 개인의 특성에 맞춘 customized 서비스가 증가하겠지만, 대량생산 대량 소비의 방식은 소비는 물론 교육과 인력관리 분야에서도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2025. 4. 21. 16:53

Philip Bump. 2023. The Aftermath: the last days of the baby boom and the future of power in America. Viking. 351 pages.

저자는 신문사 기자이며, 이 책은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정치에 끼친 영향과, 그들이 퇴장하고 나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논의한다. 

이차 세계대전 이후 1946~64년의 기간 동안 출산율이 예외적으로 높았는데, 베이비붐 세대는 이 기간에 출생한 인구집단을 지칭한다. 이들은 전후 경제부흥을 만끽한 세대로서, 이전에 두차례의 전쟁과 경제불황을 경험한, 소위 "조용한 세대" (Silent generation)와 대비된다. 베이비붐 세대 이후 1965~1990년대초까지 출생한 인구집단을 "Generation X" 라 칭하는데, 이들은 1970~80년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한 세대이며, 베이비붐과 대비하여 인구 규모가 작으므로 특별히 강조되지 않는 세대이다. 1990년대초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를 밀레니엄 세대 Millenium generation 라고 지칭하는데,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지칭되는 정보통신 혁명의 수혜를 받고,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탈이념 정치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경제적 풍요를 누린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인종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민을 극도로 억제했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는 대부분 유럽계 백인이거나 아니면 흑인이다. 반면 1970년대 이후 아시아와 중남미로부터 이민자가 대규모로 유입된 결과, 밀레니엄 세대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구성을 보인다. 2020년 현재 베이비붐 세대는 50대 후반 이후의 연령으로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사람이 다수이다. 그동안 베이비붐 세대는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그들의 인구규모보다 더 큰 비율의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근래에 들어 인구 규모가 줄면서 그들의 영향력도 함께 줄고 있다.

인종적으로 동질적이며 영향력을 과다하게 행사해온 베이비붐 세대는, 그들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구성을 보이며 그들보다 높은 교육수준에 새로운 가치 지향을 가진 밀레니엄 세대에게 위기감을 느낀다. 근래에 공화당이 백인의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편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베이비붐 세대의 위기감과 상실감에 기대는 전략이다. 공화당은 인종과 이민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킴으로서, 자신의 지지층, 즉 베이비붐 세대를 결집시키는 전략을 극단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나 앞으로 갈수록 미국인의 인종 구성이 다양화될 것이므로, 이러한 공화당의 전략은 장기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미국은 고령화 문제와 인종문제가 정확히 중첩되어 있으므로, 두 문제 모두 해결을 어렵게 한다. 고령자는 베이비붐의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젊은 사람 중에는 백인이 소수이다. 백인들은 자신이 누리던 정치 경제적 기득권을 움켜쥐고 놓으려고 하지 않으나, 이는 성장하는 유색인 젊은이와 충돌한다. 유색인 젊은이들이, 자신과 정체성을 달리하는 백인 고령자를 흔쾌히 부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고령화되고 경제활동에서 물러나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 연금 문제, 고령자를 돌볼 사람을 구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이민자를 더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수가 없다. 베이비 붐 세대 백인들이 조용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기에, 미국 정치의 양극화, 계급과 인종간 갈등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시끄러울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 칼럼니스트이기에, 선거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책의 중심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후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검토를 기대했으나 실망했다. 그의 분석과 논의는 피상적이며 횡설수설하여 읽기 어려웠다. 결국 3분의 2쯤 읽다 책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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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4. 11:26

야콥 폰 윅스퀼 (김재헌 옮김). 2023. 같은 공간, 다른 환경 이야기: 동물과 인간의 주관적 세계론. 올리브그린. 132쪽.

저자는 20세기초에 활동한 독일의 동물학자로, "Umwelt" (환경세계 혹은 생활세계) 라는 개념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환경세계가 서로 다름을 다양한 예로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각각의 종이 자신의 생존 필요에 맞추어 환경을 선택적으로 인식한다. 예컨대 특정 새가 인식하는 환경은 개나 고양이가 인식하는 환경과 다르다.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인간은,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이나 촉각에 많이 의존하는 동물보다 주위의 공간을 훨씬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인식한다. 사람이 보는 거리 풍경은 파리가 보는 거리 풍경이나 연체동물이 보는 거리 풍경과 다르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식별시간'에서도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인간은 18분의 1초의 간격을 가장 짧은 순간으로 인식하는 반면, 민첩한 공격으로 살아가는 맹금류는 훨씬 짧은 시간 간격을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은 물체의 모습과 움직임을 함께 결합하여 지각하는 반면, 일부 동물들은 움직임이 없으면 전혀 지각하지 못하며, 각 동물에게 적절한 속도의 움직임만을 지각한다. 지나치게 빠르거나 지나치게 느리면 대상을 지각하지 못한다.

동물은 대상을 지각하는 설계도를 안고 태어난다. 이 설계도에 맞는 자극에는 적절히 반응하는 반면, 이 설계도에서 벗어난 반응은 무시하거나 지각하지 못한다. 예컨대 병아리의 삐약거림에는 어미새가 반응하지만, 이러한 소리를 차단하고 삐약거리는 병아리의 모습만을 보여주면 어미새가 반응하지 않는다. 동물은 자신이 익숙한 길을 따라가는 성향이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보다는, 어떤 이유에서건 익숙하게 설정된 방법을 고수한다.

동물은 그동물에게 쓰임새에 부합하도록 대상의 모습을 지각한다. 즉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에게 쓰임새라는 목적을 투사하여 대상의 모습을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각각의 동물은 각자의 생존 필요에 맞추어 포착된 주관적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이 책은 umwelt 라는 주제를 흥미있는 예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각자 고유하게 환경을 인식하는데, 그러한 선택적으로 지각된 환경은 생존과 번식의 필요에 맞추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확장하면, 개개의 인간이 각자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같은 대상도 서로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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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 Judt. 2005.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 Vintage Books. 831 pages.

저자는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이차대전 종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서술한다. 크게 네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각 시기의 핵심 이슈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1945~53 기간은 전쟁후에 혼란을 딛고 새로운 질서를 되찾는 시기이며, 1953~71 기간은 서유럽은 경제적 번영, 동유럽은 정체의 시기이며, 1971~1989 기간은 서유럽은 경제적 후퇴로 어려움을 겪고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정권의 균열이 확대되는 시기이며, 1989~2005 기간은 공산권의 몰락 이후 유럽 통합 심화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시기로 서술한다. 국내 및 국제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서술하며,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은 피상적으로 훓는다.

유럽은 20세기어 두차례에 걸쳐 대륙 전체가 참여한 전면전을 치루며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물질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피폐하고 탈진하였다. 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소련을 축으로 하는 공산주의 경제/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으로 사이좋게 공존하기 어렵다. 2차대전 동안 히틀러의 파시즘 정권의 위협에 대항해 임시로 손을 잡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소련은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유럽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에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을 자신의 세력권 하에 두는 조치를 신속히 전개했다. 이러한 소련의 행동에 미국은 경악하였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서유럽은 물론 세계 다른 지역에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 반공 억제전략 containment policy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전후 유럽의 경제적 피폐와 소련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마샬플랜과 베를린 봉쇄에 공수로 맞서는 정책이 그것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부의 강대국에 의해 유럽 대륙은 둘로 갈라져 냉전체제에 수동적으로 편입되었다.

서유럽은 전쟁으로 탈진한 상황에서, 그들이 전세계에 소유한 식민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 전후 서유럽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은, 미국과 소련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줄서지 않는 '제삼세계' 세력을 형성하였다. 유럽은 지금까지 세계사에서 누리던 세계의 제국 중심의 지위를 상실하였으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서유럽은 미국의 방위 우산 하에서 경제발전에 매진하였으며, 다시는 본격적인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리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전쟁 동안 히틀러가 유럽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므로, 히틀러가 패하였을 때, 유럽의 각 나라는 자국에서 히틀러의 지배에 협력한 사람들과 침략자 독일을 응징한다는 명분 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벌하고 자신의 영토로부터 몰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결과 전후 유럽 대륙은, 전쟁 이전에 각 지역에 살던 소수 민족은 사라지고 각 국가마다 하나의 다수 민족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계획경제발전 전략을 취한 소련의 경제적 성취가 대단하게 보였다. 진보적인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서 공산주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1958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중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서유럽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 동유럽 사람들은 이후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암울함과 정체가 경제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서유럽이 1950~60년대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전쟁으로 많은 인명과 건물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생산 시설의 피해는 실질적으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 직후의 혼란이 진정되었을 때 생산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두번째 요인은, 전후 물질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한 상황에서, 온국민이 경제적 풍요라는 유일한 희망에 매달려 전력으로 매진할 수 있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종전후 5년 이내에 전쟁 이전의 생산력을 회복하였으며, 이후 매년 5~6%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60년대 후반에는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풍요에 도달했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기존의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치인과 엘리트들은 새로운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추스리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복지국가 체제이다. 국민 모두의 기본적 삶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 체제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관련 정책이 도입된 이후, 전후에 내실을 다져 1960년대말이 되면 완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전후에 독일이 빠르게 경제부흥하는 것을 지켜본 프랑스는, 독일이 과거와 같은 전쟁을 다시는 주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유럽이라는 공동체 속에 독일을 옭아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프랑스가 1950년대 초에 주도하여 독일과 프랑스가 참여하는 석탄철강 공동체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89년 동서독이 통합되었을 때, 유럽 통합을 더욱 강화하는 경제통합을 추진하였다. 역내 관세를 철폐하고, 통화를 통합하고, 국경 통제를 없애는 등 통합의 심도를 깊이하는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각 나라의 고유한 정체성이 유럽이라는 큰 단위로 흡수되지 않았으므로, 2000년대에 들어 정치통합을 추진하는 정책은 중단되었다. 또한 유럽 통합 내에서 가난한 나라와 부자나라간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내적 긴장이 수시로 표출되는 상태에 있다.

소련 공산주의는 자체의 축적된 모순 때문에 벽에 부닦뜨렸다. 1980년대에 고르바쵸프가 개혁을 추진했을 때, 예상치 못한 동유럽에서의 반발에 직면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급속히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소련 제국이 해체되었다. 소련의 지배에서 풀려난 동유럽은, 소련의 미래 위협을 우려해 서유럽의 품으로 신속히 들어가는 선택을 하였다. 러시아는 이러한 소련 제국의 해체에 굴욕감과 배반감을 품게 되었으며,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경제가 피폐해지고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권위주의 체제의 복원을 추구하는 푸틴이 국민의 호응을 얻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유럽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필독서이다. 다만 유럽을 구성하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서술을 성실히 따라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전체의 변화를 서술한다고는 하지만, 각국의 국내 정치 사정을 세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고유명사나 사건들이 정말 많이 등장해서 읽으면서 두뇌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800쪽이 넘는 분량에 글씨는 또 얼마나 작은지 조금만 읽으면 눈이 침침하고 저려왔다. 맨 후반 일부는 결국 건너 뛰며 읽었다. 고생 고생 하며 이 책을 읽고 나서, 여하간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유럽과 그 사람들을 깊이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2000년 무렵에서 서술이 끝난 것이 아쉽다.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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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Nurse. 2020. What is Life: Understand Biology in Five Steps. David Flickling Book. 212 pages.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연구를 배경으로 하여 "생명 life 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다섯가지 주제로 답변한다. 세포, 유전자, 진화, 화학, 정보, 등이 저자가 보는 생명의 핵심이다.

생명 life 이란 외벽에 의해 가두리지어져서 밖과 안을 구별하는 '세포' cell 라고 하는 최소 단위를 필수 조건으로 한다. 세포 밖의 외부 세계가 무질서를 향하는 것과 달리, 세포는 세포벽 안에서 그 자신만의 고유 질서를 유지한다. 여러 세포가 모여 더 큰 복잡한 유기체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세포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생명체이며, 복제 기제를 통해 또다른 새로운 세포를 생산해낸다.

생명 life 의 핵심은 '유전자' gene 이다. 세포의 핵에는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유전자는 세포의 모든 작동과 재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정보를 담은 DNA로 구성된다. DNA 는 이중나선구조로 된 단백질 구조체이며, 이 단백질 구조체는 ACTG라는 네가지의 염기서열을 통해 정보를 저장한다.  DNA에 저장된 정보는 유전자 복제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생명체는 '진화' evolution 과정을 통해 고유한 형질을 발전시켰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로부터 오랜 세월 에 걸쳐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오늘날의 다양성에 이르렀다. 진화의 기제가 작동하려면, 생명체는 재생산을 하고,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며, 유전자 전승 과정에서 전세대와는 다른 차이가 만들어져야 한다. 환경에 잘 적응한 생명체가 그렇지 않은 생명체보다 생존하고 후손을 낳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원리, 즉 '자연 선택' natural selection 을 통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 진화는 특별히 정해진 방향, 즉 목적지가 없는 non-purpose 과정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DNA 작동방식이 동일하다는 사실로부터, 지구상의 생명체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생명 life 은 본질적으로 일련의 '화학 작용' chemistry이다. DNA의 염기서열은 단백질 생성을 통제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단백질은 '효소' enzyme 로서 세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 반응을 가능하게 만든다. 생명체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필요한 활동을 하는데, 세포속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 저장체인 ATP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적재 적소에 전달하고, 에너지를 연소하는 모든 과정은 화학 반응이며, 이런 모든 화학 반응에 효소가 개입한다. 효소는 기본적으로 탄소 중합체 carbon polymer 분자이다. 우리 몸에 사용되는 20가지의 아미노산 amino acid 은 탄소 중합체이며, 이 아미노산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단백질 구조체를 만들며, 이러한 과정은 DNA에 저장된 정보를 이용하여 RNA에 전사된 정보를 통해 이루어된다. 오늘날 모든 생명체의 화학 작용의 큰 그림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명이란 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에너지' mystic energy, 혹은 '생명력' spark of life 라는 과거의 이론은 근거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생명 life 의 핵심은 '정보' information 이다. 생명의 핵심인 유전자는 정보의 저장고이며, 생명체가 신진대사 metabolism 를 하고 '항상성' homeosis 을 유지하는 기제는 정보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생명체는 다양한 feedback loop 를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이러한 기제의 핵심은 정보 통제이다. 유전자의 일부가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현되도록 하는 후형형질 발현 epigenesis 이나, 유전자의 작동과정 전체를 통제하는 장치 역시 정보 관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생명체는, 그를 구성하는 개별 세포나 기관 단위가 아니라, 유기체 전체를 단위로 하여, 생존과 후손 번식이라는 '목적' purpose 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는 화학 기계 chemical machine 인 유기체는 정보를 관리하면서 조정하고 작동한다.

이제 생물학은 생명체의 기본 구조와 작동원리를 밝혀내었다. 생명체도 다른 무기물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생명의 물리학적 physics 인 근거를 확인한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이러한 깊은 지식은 생명체를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종자를 개량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지만, 잘 관리한다면, 식량 생산, 온난화 등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 책은 생물학의 전문 지식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썼다. 전문 학자가 처음 쓴 교양서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다. 저자가 관련 주제에 대해 철저하게 알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저자 본인의 연구 경험을 적절히 섞고, 이해를 돕는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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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 11:46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2011.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8.0. 395쪽.

저자는 협상 전문가이며, 이 책은 다양한 맥락에서 상대와 협상하는 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세상은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대와 협상을 할 때, 합리적으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여 설득하는 전략이나,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전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존의 협상관련 저술들이 대부분 합리적인 이해관계나 힘의 균형에만 촛점을 맞추어 협상전략과 협상 과정을 설명한 것은,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협상에 임하는 상대의 감정을 잘 살피고,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상대가 현재 처한 상황은 어떤지, 등 인간으로서의 상대방에 집중하여 대응하는 전략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연구에 따르면 협상의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것이 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못미치며, 반면 상대의 인간적인 특성, 상대와의 관계, 상대와 상호작용을 통해 협상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차지한다. 협상의 핵심은 협상 당사자들 간의 인간관계이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 즉 사람이라는 점을 저자는 누누이 강조한다.

협상을 할 때에는 협상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그 목적에 집중하여 모든 행동을 조정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에 플러스를 가져올 요소들, -감정적 지불 emotional payment- 을 제공함으로서, 협상 상대의 감정을 호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함으로, 상대가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현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와 내가 중요시하고 얻으려고 하는 요소가 다를 수 있다. 상대가 중요시하는 부분을 내주고 대신 내가 중요시하는 부분을 얻는 교환을 생각할 수 있다. 협상에 임하면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흥분한다고 해도, 내가 침착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함께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협상에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협상에서 목표를 향해 나가가는 과정은 점진적이어야 한다. 한 걸음에 큰 제안을 하고 끝장을 보려 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저항에 봉착한다. 조금씩 조금씩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면서 나아가는 전략이 유효하다.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태도는 반발을 사며, 설사 상대가 굴복한다고 해도, 그러한 결과는 높은 비용을 치루어야 하고, 협상의 결과가 오래 유효할 수 없다. 상대의 감정과 자존심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협상은 사람들간의 관계이므로 말을 조심해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나 굴복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상대의 반발을 자극하므로 피해야 한다.

상대가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기준 standards 을 협상에서 역으로 상대에게 이용하는 전략은 효과가 크다. 상대가 어떤 원칙을 표방하는데, 지금의 당면 문제가 그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상대의 굴복을 받아낼 수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표방하는 원칙을 스스로 준수하지 못하므로, 이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결국 협상은 인간과 하는 것이므로, 그의 인간적인 면을 공략하라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들간의 협상으로 풀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좀 지나치다. 예컨대 198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군축협상을 했고, 결국 공산권의 붕괴로 끝난 상황이, 레이건과 고르바쵸프간의 개인과 개인간의 협상의 결과라는 주장은 견강부회이다. 이익이 대립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이를 당사자간의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것은 양진영의 협상 당사자들 사이에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은 수많은 예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어 읽기에 지루하고 힘들었다. 이 책이 매스컴에서 왜 그렇게 유명세를 탔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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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24. 17:28

Joseph Henrich. 2020.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 How the West became psychologicaally peculiar and particularly prosperous. Picador. 489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서구문명이 세계의 다른 지역을 앞서게 된 원인을, 서구인의 독특한 심리 특성인 개인주의 individualism 와 이에 따르는 사회제도에서 찾는다. 서구에서 개인주의가 출현한 원인은 씨족 중심의 가족제도가 약화된데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영향이다.

사람들의 심리구조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여러 심리실험 결과 서구인의 심리구조는 세계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서구인의 심리구조는 개인주의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개인이 속한 집단 내 혹은 집단간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한다.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모두,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 즉 개인의 지위와 사고와 행동이 소속 집단에 매몰되어 있다.

개인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은 집단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보다,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약하며, 다른 집단의 사람과도 쉽게 거래하며, 보편적인 원칙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하며 universalism,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것을 꺼리지 않으며, 기존의 가치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에 개방적이며, 관심이 유사한 사람과 임의적인 조직 association 을 보다 쉽게 형성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자의 특성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다양한 출처로부터 수집한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혁신을 만들어내는데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결국 이러한 심리와 행동 성향은 서구의 도시화와 산업혁명을 낳았다.

서구에서 집단주의가 깨지고 개인주의가 자리잡은 데에는, 역사상 모든 인류사회를 지배하던 씨족 중심의 가족제도가 서구에서만 약화된데 원인이 있다. 인류 역사상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가족과 이의 확대판인 씨족과 부족 집단의 단단한 결합속에서 살아왔다. 자신이 속한 혈연 및 가족 집단과 그렇지 않는 타집단 사람을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 배타적이고 거래를 꺼리는 것은 모든 전통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서구는 중세초기부터 일관되게 지속된 기독교 교회의 가르침이 가족의 집단결속을 깨는데 기여하였다. 사촌과의 결혼을 금하고, 부계와 모계의 양쪽에 대해 동일하게 친족간 결혼을 금하고, 일부일처제를 강력히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씨족 집단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반면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사촌간 결혼이 광범위하게 행해졌으며, 모계에 대해 친족내 결혼을 금하지 않았으며,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씨족의 집단적 결속을 약화시킨 반면,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의 출현을 촉진시켰다. 개신교는 구교보다 이런 개인 중심의 가족 규범을 더 강력히 추진했으며, 신과 개인간에 매개자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개인주의적 심성을 더 강화시켰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에 일찍 노출될수록, 친족간의 결혼이 드물며, 친족간의 결혼이 드물수록, 개인주의적 심성이 강하며, 개인주의 심성이 강할수록 경제성장의 정도가 높다.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기독교에 일찍 접할수록, 친족간 결혼이 드물며, 개인주의 특성이 강하며, 교육과 소득수준이 높다. 반면 중동의 이슬람과 중국의 유교는 가족 집단의 결속을 강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종교가 기여하였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in-group 의 배타성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아이디어의 활발한 교류와 혁신, 모든 사람들을 대응하게 대우하고 동등한 원칙을 적용하는 입헌 민주주의, 등의 서구의 제도가 발전할 수 없었다. 대신 효율보다 연고를 중시하는 연고주의 nepotism, 타집단과의 거래를 꺼리고 차별하는 배타주의가 지배했다.

서구의 민주주의 제도나 경제 규범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의 전통사회에 수입될 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심리 구조가 이러한 제도를 작동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20세기에 동아시아에서 급속하게 서구의 제도와 경제 규범이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회에 이미 씨족 중심의 집단주의가 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의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의 기존의 논의와 연구를 포괄하여, 그야말로 거대 이론 grand theory 라고 할만한 것을 제시한다. 개인주의라는 심리 행위 성향이 서구의 성공의 핵심인데, 이것의 바탕에는 기독교의 독특한 가르침이 있다는 주장이다. 인류의 진화를 통해 발전시킨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를 기독교가 깨버리는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 벌어짐으로서, 개인주의라는 매우 예외적인 심리 행동 성향이 출현하였고, 근대 서구라는 세계 역사상 매우 예외적인 사회 문화가 출현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의 성공의 열쇠가 된 셈인데, 앞으로도 그럴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매우 탄탄한 증거로 뒷받침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크다. 미국의 별볼일 없는 대학을 나와 하바드 대학 교수가 된 저자의 예외적인 경력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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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바다 편집위원회. 2008. 바다: 지구 최후의 미개척지, 바다의 모든 것을 담은 대백과사전. 사이언스북스.487쪽.

이 책은 영국의 Dorling Kindersley Ltd 출판사에서 만든 백과사전이다. 해양에 대한 물리 화학적 메카니즘, 해양 생물, 해양지도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 해양에 대한 물리화학적 메카니즘과 지구과학적 설명이 흥미로우며, 해양 지도를 찬찬히 훑어보면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하다. 두번째 파트인 해양 생물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나, 이 부분은 생물체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림과 텍스트를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으면서, 육지동물인 인간은 바다에 대한 지식이 미약하다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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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Garton Ash. 2023. Homelands: A Personal History of Europe. Yale University Press. 348 pages.

저자는 20세기 유럽을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유럽이 1945년 이차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에 EU의 출현,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거쳐온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엮어서 서술한다.

사람들이 성장기에 겪었던 중요한 경험들이 이후 평생동안 그들의 생각과 의사결정을 좌우하면서 역사는 전개된다. 1914년 1차대전을 겪은 세대, 1939년 이차대전을 겪은 세대,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경험한 세대가 그들의 경험을 전후의 유럽 역사 전개에 투영하였다.

유럽은 국가들 사이에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크지만, 로마제국에 뿌리를 둔 통일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정체성이 나폴레옹, 히틀러, EU, 등의 사람들의 희망과 정치체에 투영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기 때문에, 완전한 통일체를 구현하려는 역사적 시도는 번번히 내부의 저항으로 좌절되었다. Brexit 도 그러한 역사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다.

유럽은 1945년 이차대전 종전 이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는 70여년 동안 주요국들 사이에 본격적인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경험하였는데, 이는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시기이다. 물론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가 분열하면서 코소보 전쟁으로 큰 상흔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이는 유럽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일로 유럽인 다수에게 큰 기억을 남긴 전쟁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르다. 러시아라는 핵을 가진 강대국이 이웃 나라를 침략한 국가들 사이의 본격적인 전쟁이다. 국가들 사이에 관계가 힘에 우위에 따라 좌우되는, 제1차대전 이전까지 유럽을 지배한 국제질서가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어 공산권의 몰락은 여러가지 원인이 동시에 겹쳐서 일어난 결과이다. 1970년대까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진영보다 더 잘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980년대들어 공산주의 경제와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모순이 누적되어 균열이 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폴란드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된 것이 중요한 계기이며, 이는 결국 1980년대 후반 자유주의 노조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주변국들에 연쇄 반응을 촉발시켰다. 한편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1960년대 이래 정치적 경제적으로 포용정책을 펴왔는데, 1989년에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그 나라의 국경을 통한 동독인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막지 않도록 협력하는 댓가로 경제지원을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동독인의 대규모 탈출을 촉발하였으며, 이것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고르바초프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적 지배를 완화하고 서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의 물꼬를 튼 것이, 예상치 못하게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장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유럽은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의 미래에 대한 낙관을 뒤로 하고, 2000년대 중반이래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화의 결과, 중국 인도 등 제삼세계 국가들이 약진하고, 유럽인들 사이에 불평등이 커지고, 유럽 주위 국가의 사람들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고, 경제 성장이 정체하고, 인구 노령화로 복지국가의 기능이 약화되고, 유럽의 중하층의 불만이 높아졌다. EU 안에서도 부자 나라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유로 위기를 몰고왔다. 급기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중심국가에서까지 극우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유럽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후 유럽이 추구했던 이상인 리버럴리즘은 각국에서 도전 받고 있다.

저자는 유럽의 미래를 어둡게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미국의 방위 보호에서 독립해 홀로 서야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확장 위협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단결하여 대응해야 하나, 현재의 모습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제삼세계의 정치 경제 비중이 커지면서 세계에서 유럽의 상대적 영향력은 약화 일로이다. 유럽은 화려한 서구문명의 정통 계승자로서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을 옹호하는 리버럴리즘 liberalism 의 보루이기를 지향하나, 유럽 내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자유와 개방과 포용을 주창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 이웃에서 소외와 비참이 지속되는 상황과 함께 할 수는 없다.  인구 노령화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민자를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새로이 유입된 사람들과 기존 국민 사이의 격차를 계속 유지하고 차별하는 것은 리버럴리즘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기존 국민과 동등하게 되도록 하는 것은, 서구의 근대사를 지배해온 또 다른 이념인 민족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세계화가 더욱 진척되고, 서구 사회의 인구 노령화가 계속되고, 부자와 빈자사이에 생활과 정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이 처한 어려움과 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은 평화와 번영을 뒤로하고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1945년 이래 시기를 직접 살아온 당사자로서 자신의 개인사와 경험을 역사적 사실과 조합하여 서술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요 역사 사건에 참여한 본인 및 주변인들의 경험과 인터뷰를 역사 사실에 투영하여 서술함으로서 현장감을 높인다. 역사학자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경험이 풍부하게 담긴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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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28. 11:39

Jeorme Groopman. 2007. How Doctors Think. Houghton Mifflin Co. 262 pages.

저자는 에이즈와 암치료 전문의이며, 이 책은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문제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검토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는,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에 대해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추론을 해가는 과정이다. 의학적 지식의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는 증상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와 의사의 그릇된 사고 과정 때문에 잘못 진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환자를 처음 마주하면서부터 정보를 수집하며,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병리의 유형 pattern 을 확정한다. 80~85%의 경우에 이렇게 확정한 것이 올바른 진단이지만, 15~20%는 잘못된 진단이다. 인간의 생리현상은 전형적인 유형에 들어맞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은 자신이 처음에 설정한 유형을 고수하는 성향이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도 처음의 진단을 계속 유지하면서 유사한 치료과정을 반복한다. 의사들이 잘못 진단하는 원인의 일부는, 인간에게 보편적인 인지적 한계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지적하는,  framing, anchoring, availability, 등의 인지적 편향이 의사들을 잘못된 판단으로 이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저런 의료 개입을 하면서 원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의사의 사고 과정에 의존한다. 의사가 생각하는 방식이 그릇되다면, 아무리 고도의 기술과 장비를 동원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사의 경험과 자기비판적인 성찰이 중요하다. 그러나 의료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라는 외부 압력 속에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병원, 제약회사, 의료 기기회사의 상업적인 압력으로부터 많은 의사들이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저자는 과학과 기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지만,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개입 invasive treatment 으로 피해를 보고나서, 현재의 의료 기술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개입하는 접근에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저자 본인이 허리통증으로 인해 척추 수술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허리 통증은 수술이 필요치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내과 전문의인데, 같은 증상에 대해서도 외과에서는 수술을 선호하는 관행을 비판한다. 의료의 각 하위 분야마다 동일한 증상에 대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개입 방법이 있는데, 의료인들 내에서도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의학적인 개입을 통해 완치된다는 환상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몸은 복잡한 기전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도의 의학적 개입을 한다고 해도 아프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문제가 악화되지 않는다면, 의학적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두고보는 watch and see 전략을 택하는 것이 더 좋은 의학적 접근이다. 문제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상하면서 선제적으로 의학적 개입을 하는 것, 노화에 따른 기능 약화에 대해 의학적 개입으로 기능 강화를 노리는 행위 등을 경계한다. 의학적 개입으로 개선되는 효과가 미미하다면 의학적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예컨대 유방암 검진이나, 전립선암 검진 등 많은 검진들은 이로인해 개선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의학계에서 논란이 크다.

이 책은 저자의 풍부한 치료 경험과 의료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 느껴진다. 각 장을 흥미있는 임상 사례로 시작하면서, 전문적인 영역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저자의 글쓰는 솜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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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20. 16:26

마크 브래킷 (임지연 옮김). 2020. 감정의 발견. 북라이프. 351쪽.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감정의 중요성 및 감정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에 관해 저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은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혼자서 참고 이겨내야 하는 사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감정은 사람들의 삶의 전영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건강, 대인관계, 일의 효율과 성과, 행복도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과 남의 감정을 무시하고 억누르려고 하는 시도는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낳았다.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잘 다루어야 잘 살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잘 대응하는 것은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감정 훈련, 특히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감정 지능 emotional intelligence 을 배양하는 훈련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인지 능력 만을 강조하던 전통적 입장에서 벗어나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래 심리학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감정능력 혹은 감정 지능을 배양하는 길은 크게 네 단계로 구성된다. 자신 혹은 상대가 어떤 감정인지 인식하기(recognizing), 그러한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이해하기(understanding), 그러한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주에 속하며 어떤 속성인지 파악하고 이름붙이기 (labling), 그러한 감정을 적절하게 표출하기(expressing), 그러한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관리하기(regulating). 이러한 네 단계를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여 연습해봄으로서 감정 능력을 높일 수 있다.

감정은 즐거움-불쾌함의 축(pleasure)과 에너지의 고저의 축(energy)이라는 두 축을 교차하여 만든 사분면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즐겁고 에너지가 넘치는 감정은 '신나는' 혹은 '열광하는' 감정 등이 속하는 범주이며, 즐겁지만 에너지 수위가 낮은 감정은 '안락한', '안정적인' 감정 등이 속하는 범주이며, 불쾌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감정은 '화나는', '스트레스 쌓이는' 감정이 속하는 범주이며, 불쾌하며 에너지 수위가 낮은 감정은 '우울한', '절망적인' 감정이 속한 범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줄거운 쪽 보다는 불쾌한 쪽의 감정을 많이 갖고 산다. 화가나고 스트레스 쌓이고 우울하고 절망하는 감정을 갖고 사는 사람이나 그렇게 사는 시간이, 신나고 안락한 감정을 갖고 사는 사람이나 시간보다 더 많다. 이는 아마도 진화의 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외부의 위험에 대응하도록 마음을 대비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여 생존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적인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멘토가 되도록 일상에서 노력한다면 자신의 삶은 물론 세상이 좀더 나아질 것이다. 감정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well listening, '상대의 감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non-judgemental,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려고' emphatic 노력해야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감정이 발생한 그 국면에서, 일단 생각이나 행동을 '중지' freeze 모드로 놓고 열기가 식은 다음에 대응하기, 깊은 호흡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조금 되찾고 대응하기, 감정이 발생한 원인과 그것의 결과에 대한 큰 그림 perspective 을 떠올리면서 대응하기, 일단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열기를 가라앉힌 뒤에 나중에 다시 돌아보기, 더 큰 자아, 즉 내가 꿈꾸는 최선의 자아라면 이러한 감정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상상하면서 행동하기, 등이 있다.

인지 능력과 감정 능력은 상관관계가 없다. 인지 능력이 높은 사람 중에 감정 능력이 떨어져서, 더 잘 할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감정 능력을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키우는 노력을 모두가 함께 기울인다면, 사람들은 좀더 행복하게 살 것이며, 사회는 좀더 나아질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와 감정 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설명이 비교적 구체적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주변의 문제가 감정 능력이 떨어지는 데 기인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감정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객관적 사실의 영역에 있다면, 아무리 그러한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이해한다고 해도, 감정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고 뭉개는, 예컨대 약자에게 갑질하는 이유는, 상대의 감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휘두룰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여 상대를 통제하고, 자신의 이익을 상대의 것보다 우선적으로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나이스하지 않은 사람은, 단순히 예의를 몰라서 혹은 감정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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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17. 16:32

Rachel Sherman. 2017. 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58 pages.

저자는 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 뉴욕에 사는 부자들 50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계급과 불평등에 대한 그들의 자의식을 분석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부와 풍족한 삶에 대해 심리적으로 불안한 감정(anxiety)을 지니고 살아간다. 자신의 부와 자신의 풍요로운 삶 affluent life 이 도덕적으로 정당(deserving, legitimate)하다고 스스로에게 설득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돈 때문에 항시 염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자신들만이 엄청난 부를 누리며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편안한 느낌일 수 없다. 자신들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중산층의 나라라는 이념이 지배하며, 근래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국의 부자들은 더욱 더 자신들의 예외적인 삶을 정당화할 필요가 커졌다.

부자들은 세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을 정당화한다. 첫째,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working hard 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므로 그만한 부를 누릴 자격 deserving 이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에는 업적주의 meritocracy 가 지배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여 번 돈과 그 결과 누리는 풍요로운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둘째, 지나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소비한다 disciplined consumption 고 생각한다. 자신들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합리적으로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사회의 편견과 달리 지나치게 사치하며 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삶에 꼭 필요한 것을 합리적으로 소비하며 사는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셋째,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giving back 고 생각한다. 기부, 자원봉사, 자신의 직업 생활을 열심히 함, 등의 수단을 통해, 자신의 부와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 '합리적인 소비', '사회에 돌려줌'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며, 사회 일반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하간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이 세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자신의 풍족한 삶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자기합리화한다.

부자들이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이 실제 행위에서 풍요를 희생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그들의 자녀가 풍요한 삶에 대해 '당연시하는 특권의식 'entitled' 을 가질 것을 경계하지만, 엄청난 비용이 드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일년에 두차례 이상 장기 휴가 여행을 가고, 비싼 비즈니스 석이나 전세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며, 교외에 별장을 가지고 사는 생활은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그러한 삶이 가져다주는 안락과 행복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요컨대 그들은 돈이 가져오는 안락함을 누리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들은 비용에 대한 염려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하려고만 하면 더 많은 돈을 쓰며 생활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섬처럼 자신들만 돈을 풍족하게 쓰며 풍요롭게 살려면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피한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자신의 형제들에게 조차 그들이 풍요롭게 사는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이 아니면,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

이책은 부자들의 삶과 사고 방식에 대해 그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채집한 드문 책이다. 심층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기 때문에, 부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생생함은은 크지만, 내용의 중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뷰 표본의 대부분이 가정주부이며,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표본이 남성 가장이며, 보수주의자들이었다면, 자신의 부와 풍요로운 삶에 대해 이 책에 나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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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8. 17:37

머레이 쉐이퍼. 2008(1993).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 그물코. 399쪽.

저자는 작곡가이자 음향학자이며, 이 책은 소리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서술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리 환경에서 오래 동안 살았다. 이는 바다, 바람, 물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에서부터, 새와 곤충의 소리와 같은 생물체의 소리, 산업화 이전 전원 생활의 소리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소리 환경은 대체로 조용했으며, 단속적인 소리가 지배했다. 

산업화 이후 인간의 소리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도시 생활의 소리, 기계의 소리는 이전의 소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소리의 종류와 밀도가 높아졌으며, 연속적인 소리가 지배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집단의 소리가 다른 소리를 압도하였다. 산업화 이전 마을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가장 큰 소리였다면, 산업화된 도시에서는 공장의 소리가 지배했다. 19세기 후반, 전기가 도입되면서 인간의 소리 환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방송과 확성기 등을 통해 음원과 소리가 서로 분리되게 되었다. 산업화된 도시의 삶은 산업화 이전 농촌이나 마을의 삶보다 훨씬 더 소음에 많이 노출되었다.

사람들이 접하는 소리는 '주의를 끄는 소리' feature 와 '배경이 되는 소리' background 로 구분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또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사회에 배경이 되는 기준음 key note 이 다르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 낯선 풍경 못지 않게 낯선 배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는 배경음을 이방인은 듣는다. 소리의 높이 pitch, 소리의 세기 loudness, 소리의 시간적 전개라는 세개의 차원을 통해 다양한 소리들을 분석할 수 있다.

근래로 오면서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소리', 즉 '소음'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많은 사회는 법률로 소음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큰 소리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소리들이 규제의 대상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근래로 올수록 대도시에서 환경 소음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방향으로 소리환경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원치않는 소음을 백색 소음으로 가리는 관행은 삶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니다. 광고의 소음으로 넘쳐나는 현대 도시인의 환경을 탈피해야 하며,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배경음악 moozak 으로 공공 장소를 뒤덮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로 디자인된 공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인 '울림의 정원'을 만들고, 조용한 침묵의 공간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인류의 소리 환경을 주제로 한 드문 책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정보는 별로 찾지 못했다. 번역의 질이 낮아서 내용의 자세한 부분을 파악하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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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9. 09:45

Tim Kasser. 2002. The High Price of Materialism. MIT Press. 11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물질주의 가치관이 초래하는 다양한 문제를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물질주의란 물질의 소유와 소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다. 물질주의 가치관을 신봉하는 사람은 더 많은 좋은 물건을 가지려는 욕구에 허덕이며, 원하는 물질을 소유해도 추가적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이 지속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게 살아간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확보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물질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사람은 필요한 수준을 넘어 더 많이 물질을 소유하려고 한다. 물질주의에 경도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물질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사람은 자기효능감이나 자긍심이 부족하여, 내적인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소, 즉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존한다. 물질주의 가치관에 경도되는 원인으로는, 어렸을 때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거나, 물질적으로 심각한 결핍을 경험했거나, 매스미디어 특히 TV에 많이 접하여 물질주의 메시지에 매몰되는 경우, 등이 지목된다.

미국 사회는 물질주의를 부추기는 환경이다. 엄청난 부를 욕망하는 탐욕 greed 를 미덕으로 여긴다. 상업주의 문화가 사회전반에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의 구입과 소비를 장려하는 메시지로 넘쳐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사람들의 소비가 필수이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과 공동체와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과잉 소비를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업광고를 규제하고, 특히 어린이들이 광고에 노출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배경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물질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바꿀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빈곤과 결핍을 제거하고,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도록 하고, 삶의 안정 security 을 위협하는 불확실한 위험을 사회공동의 대응으로 줄이는 것이 답이다. 전반적으로 삶이 풍요롭고 안정될 때에만, 물질주의 가치관은 힘을 잃을 것이다. 물질주의 가치관은 결핍과 불안정에 대한 대응기제 coping mechanism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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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0. 17:11

임홍택. 2018. 90년생이 온다. 웨일북. 336쪽.

저자는 기업체에서 인사관리 업무에 종사했으며, 경영관련 작가로 활동한다. 이 책은 1990년대에 출생하고 2000년대에 들어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성향을 구세대와 대비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서술한다.

한국에서 19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였다. 한국이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높아진 시기에 성장했으며, 민주화된 이후에 성장했으며, 출생율이 급격히 떨어져 한명 내지 두명의 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인터넷과 모바일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구세대와 달리, 이들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평생고용의 관행이 사라지면서, 조직에 충성하고 과거의 관습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개인의 역량 개발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복잡한 것보다 간단하고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며, 재미 없는 것을 참지 않으며,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솔직함을 선호한다. 과거 세대와 구별되는 이들의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은, 직장에서는 물론 소비 행동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의 상이한 가치관은 온라인 문화와 결합하여, 과거 세대와 다른 사고와 행동 특성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은 저자의 기업체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독서과 주변 관찰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마켓팅 업계에서 시작된 세대 담론이 그렇듯이, 깊이있는 설명은 없지만 가볍게 세상 변화에 대한 감을 제공한다.

 

2025. 1. 20. 16:39

시어도어 그래이 (꿈꾸는 과학 옮김). 2015. 세상을 만드는 분자. 다른 출판사. 231쪽.

저자는 과학 저술가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물건의 화학적 특성을 분자식과 사진을 곁들여 흥미롭게 설명한 도감이다. 산과 염기, 유기화합물과 무기물의 차이, 물과 기름, 극성과 무극성, 비누, 섬유, 광석, 진통제와 마약, 당류, 인공감미료, 방향제, 염료, 독성 물질, 식품첨가제, DNA, 등을 다룬다. 저자의 풍부한 화학 지식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면서, 세상을 화학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 재미있는 그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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