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69건
2024. 4. 24. 14:57

와다 하루키. (김동연 옮김). 2022. 80세의 벽. 한스 미디어. 221쪽.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30여년 동안 노인전문병원에서 일했으며, 본인의 나이를 61세라고 밝힌다. 이 책은 본인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80세를 넘긴 노인들의 건강, 생활 태도, 삶의 방식 등에 대해,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을 가벼운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한다.

80세 노인이 되면 젊은이를 치료하는 서구 의학 방식은 잘 듣지 않는다.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는 없으며, 자신의 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같은 약이나 치료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장수하는 약은 없으며, 약은 몸이 좋지 않을 때만 먹으면 된다. 고혈압, 고혈당, 고콜레스테롤이라는 노인병 삼대 질환에 대해, 저자는 과도하게 혈압을 낮추거나, 혈당을 낮추거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고 하는 것은 80대 노인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젊은 사람들의 몸에 맞춘 기준치는 80대 노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혈압을 과도하게 낮추면 기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혈당을 과도하게 낮추면 인지 기능이 저하하고 치매의 위험이 높아지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과도하게 낮추면 기분과 정력이 악화한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다. 미국 노인은 심혈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 노인은 암과 노쇠로 대부분 사망한다. 서양 노인을 기준으로 하여 개발된 치료 방식이 일본 노인의 경우에는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 8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의 몸에는 암세포가 존재하며, 인지기능의 저하로 어느 정도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들은 자신의 몸이 젊은 때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젊은 때와는 다른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한다. '투병'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사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의사나 병원의 현행 접근 방식은 그릇되므로, 환자 본인이 잘 가려서 따라야 한다.

80세가 넘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말고 당장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감동이 옅어지는데, 이는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노인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이미 친숙하여 감동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려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데도 노인이 되었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운전을 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데, 노인이라고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것은 절대 반대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계속 써야 제대로 작동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몸을 계속 움직이고, 머리를 계속 쓰는 생활을 게을리하면 곧 쇠하여 죽는다. 몸에 맞는 정도로 많이 걷고, 흥미로운 일을 찾아서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귀찮다고 안움직이고, 텔레비만 보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빨리 기능이 쇠퇴한다. 어떻든 인간은 결국 늙고 쇠하여 죽는 것이므로, 80세가 넘으면 '잔존 기능'을 잘 활용하여 잘 사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젊을 때와 같이 굳은 결심이나 노력을 많이 기울여서 한결같이 무엇을 추구하는 방식의 삶은 80대 노인에게 적합하지 않다. 악착같이 보람을 찾으려고 하며 살 것이 아니라, 살다가 보람을 찾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변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수시로 생각과 진로를 바꾸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주위의 눈에 크게 개의치 말고, 생긴대로 마음가는 대로 산다고 해도, 80대에는 젊은이와 같이 크게 사고칠 위험이 적으므로, '불량 노인'이라고 치부하면서 자신에게 적당히 관대하게 사는 것이 좋다. 많은 경험을 뒤로 하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80대 노인은, 느슨하게 사는 삶이 주는 즐거음과 특권을 누려도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쉬는 시간에 문득 주변에 손에 잡혀 읽은 책인데, 삼십분도 못걸려 단숨에 흥미롭게 읽었다. 80대 노인 뿐만 아니라 절은이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의 부제가 "벽을 넘어서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20년이 기다린다"고 썼는데, 과연 그럴까?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 써야 할 말인 듯 싶다. 여하간 저자의 경륜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2024. 4. 17. 17:44

Leonard Mlodinow. 2018. Elastic, Unlocking your brain's ability to embrace change. Vintage books. 220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과학저술, 과학저널리즘, SF 드라마 극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 책은 인간의 비체계적인, 유연한 사고 작용에 촛점을 맞추어 인간의 사고, 즉 생각하는 활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체계적, 논리적, 분석적 사고 작용으로 하향 top-down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른 하나는 비체계적, 종합적, 즉흥적, 창조적인 사고 작용으로 상향 bottom-up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자는 당면한 주제에 촛점을 맞추고 엄격히 통제된 방식의 사고인 반면, 후자는 비통제적이고 산반한 방식의 사고이다. 정확히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자의 방식이 유용한 반면, 전에 없던 새로운 상황과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는 후자의 방식이 유용하다.

인간 두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 좌반구는 논리적 분석적 사고에 능한 반면, 우반구는 비체계적 즉흥적 사고에 능하다. 우반구는 감정과 동기화를 담당하는데, 어떤 행위를 왜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제공한다. 좌반구는 어떤 문제에 대해 합리적이고 전형적인 답을 제시하는 반면, 우반구는 비논리적이고 비실용적이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두뇌는 좌반구와 우반구가 제시하는 다른 성격의 답들 중에서 취사선택, 종합하여 최종적인 답을 의식에 떠오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반구가 만들어 내는 비논리적이고 상식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답들은 거른다. 유연한 사고, 창조적인 사고는, 바로 이러한 두뇌의 거르는 과정 filtering 을 억제하는 데 있다.

유연한 사고는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이완된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이완된 상태에서 작동하는 사고 작용은 인간의 두뇌의 기본 작동 양식 default mode of thinking 이다. 릴랙스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 뇌는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구체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할 때와 작동 방식이 다른 것이다. 산보를 할 때, 샤워를 할 때, 꿀잠을 잘 때, 음악을 듣거나 바깥 경치를 보면서 편안히 휴식을 하고 있을 때가 바로 이 디폴트 모드가 작동할 때이다. 이렇게 이완된 상태에서 문득 그동안 집중적으로 생각했으나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떠오른다. 우뇌에 대한 좌뇌의 filtering 기제가 약화되고, 우뇌의 유연한 사고가 자유롭게 작동하고, 관점의 전환이나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다양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유연한 사고를 촉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상하기,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처하도록 해보기, 다른 의견의 사람과 토론하기, 마음을 이완시키는 약물, 술 등을 섭취하기, 등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기를 수 있다. 유연한 사고를 촉진하려면, 엉뚱한 발상을 억압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엉뚱한 발상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만, 성공적인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 저널리즘에 가까운 책이다. 다양한 기존 연구를 꿰어 맞추고 유머를 곁들이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술술 읽어 내려간다. 평이한 내용이다.

2024. 4. 15. 13:33

리타 카터 (장성준, 강병철 옮김). 2020(2019). 인간의 뇌. 김영사. 249쪽.

저자는 의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뇌의 구조와 기능, 뇌질환에 관해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도감이다. 뇌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뇌 해부학, 감각, 운동과 조절, 감정, 사회적 뇌, 언어와 의사소통, 기억, 사고, 의식, 뇌의 발달과 노화, 뇌질환 등으로 찹터를 나누어 설명한다.

도감답게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fmri 사진이 해설과 함께 많이 붙어 있지만, 이러한 사진들이 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본문의 서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알지 못한다", "분명치 않다" 등 이다. 과학계가 뇌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의 다른 기관과 달리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하간, 그림이 없이 글로만 된 책을 읽을 때 보다 이해가 조금은 향상되는 듯하다.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기는 하지만, 해설의 수준은 상당히 전문적이다. 

 

2024. 4. 3. 15:12

Paul Krugman, Maurice Obstfeld, and Marc Melitz. 2012. International Economics, Theory and Policy. 9th ed. Pearson. 690 pages.

저자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로, 이 책은 국제경제학 분야의 대표적인 교과서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문, 즉 무역 부문과 환율과 거시경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문은 다시 이론적 논의 분야와 정책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이론적 설명이 때로 어렵지만, 현실로부터 다양한 사례를 가져와서 설명하기 때문에, 국제경제의 현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다. 

무역 부분은 상대적으로 이해가 쉬우나, 환율과 거시경제 부분은 실물 부문보다 훨씬 복잡하여 이해가 쉽지 않았다. 결국 무역 부분만 꼼꼼히 읽고 이해한 반면, 환율과 거시경제 부문은 앞부문과 달리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무역부문을 읽느라 진이 빠져, 환율과 거시경제 부문을 읽으면서는 집중을 하기 어려워서 일 수도 있다). 평소에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기사를 읽으면서 대강 알고 있던 사항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론적으로 보다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연구와 통찰력이 집약된 대단한 교과서라고 감탄하며 읽었다. 나중에 여력이 나면, 환율과 거시경제에 관해 다른 쉬운 책을 먼저 읽고, 이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다. 

2024. 3. 20. 18:02

구마겐고 (이정환 옮김). 2020.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나무생각. 291쪽.

저자는 일본의 건축가이며, 이 책은 자신이 어떻게 건축가로 성장했으며, 무슨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한다. 

저자는 도꾜 외곽에 농촌과 도시의 변경 지역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웃에 숲으로 둘러쌓인 전통적인 농가 주택에서 자주 놀았으며, 나무 블록을 쌓아서 만드는 놀이를 즐겼으며, 아버지와 함께 밭에 딸린 조그만 집을 조금씩 고쳐짓는 경험 속에서 자연과 인간에 친근한 거주 공간를 선호하는 성향이 만들어졌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오사카 만국 박람회에 가서 건축물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중후반 고도의 산업 성장과 과학기술의 진보 속에서 모더니즘 Modernism이 지배하였다. 모더니즘은 근면과 계획, 효율, 기계화, 대규모, 진보를 숭앙하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19세기말 20세기초에 물질문명에 반발하는 반모더니즘의 세계관이 등장하였다. 일본은 1970년대에 전후 고도 성장이 끝나고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퇴조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시점에 성인기에 진입하면서 반모더니즘의 세계관을 내재화하였다. 저자는 대학교 학생 시절부터 기존 건축계의 주류였던 모더니즘 사조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는 일본의 전통과 서구의 현대를 접목하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을 지향해왔다.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현실에 두발을 딛고, 일상에서 수시로 닥치는 일들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살아간다. 그는 거창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 작고 실질적인 것을 추구한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집은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 나무를 많이 사용하며, 자연에 인접해 지어진 집을 선호한다.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하며, 부드러운 질감의 소재를 선호한다.

본인은 그의 건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능숙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의 성장과정, 자신이 만든 작품, 건축학의 역사, 서구 문화사, 자신의 평소 생각, 등을 잘 버무려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두세쪽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아놓아서 가볍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2024. 3. 19. 18:31

Ezra Klein. 2020. Why We're Polarized. Avid Reader Press. 28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근래 미국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 원인을 다양한 기존 연구를 인용하여 검토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은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으며, 중간층 혹은 부동층이 매우 엷다. 미국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 정체성에 따라 이 두 진영 중 하나에 속한다. 미국인에게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다양한 범주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백인 대 유색인, 남성 대 여성, 복음주의 개신교도 대 이들 이외의 사람, 보수주의자 대 자유주의자, 교외/ 농촌지역 주민 대 대도시 주민, 고등학교 졸업자 대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자, 등이다. 각각의 집단 구분에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은 공화당을 지지하고,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한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 범주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집단으로 일관되게 정렬해 있다. 이 다양한 정체성 기준간에는 역사적 혹은 사회문화 및 경제적으로 서로간 약간의 연관성은 있지만 필연성은 없다. 예컨대 백인과 남성이 아니라 백인과 여성이 한 집단으로 묶인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다.

미국인의 정치적 지지는, 논리적 혹은 실용적으로 일관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상대의 집단과의 다툼에서 이기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한다. 예컨대 오바마가 제안한 의료 개혁은, 예전에 미트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이 제안한 정책과 유사한 것인데, 오바마의 집권에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정체성 정치의 또 다른 예로, 최근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도날드 트럼프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는 것을 더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다. 요컨대 근래의 미국 정치는 실용적인 정책 대결이 아니라, "우리 대 그들" (us versus them) 이라는 정체성에 토대를 둔 진영 싸움이다. 미국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편이 이기고 상대편이 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혹은 설사 나에게 실제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해도, 상대편이 이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진영 싸움이 정치판을 지배하면,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면서 실용적인 접근으로 타협을 도출하는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 이유를 불문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상대와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고, 상대가 이기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요컨대, 양자간 접근과 타협이 불가능한 정치만이 남았다.

미국의 정치 지형이 과거에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 정당 내에 다양한 이념과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이 섞여 있어서, 정책 사안에 따라 소속 정당의 경계선을 넘어 지지하고 서로간에 타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서로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남부의 민주당원은 흑인을 억압하는 인종주의를 극렬하게 옹호하는 반면, 북부의 민주당원은 진보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당시 민주당은 남부 흑인의 인권에 눈을 감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서만, 민주당의 정강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당시 공화당에 보수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부의 민주당원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공화당원이 적지 않았다. 요컨대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때는, 흑인의 희생을 토대로 하여 타협의 정치가 전개되었다. 따라서 흑인을 포함한 미국인 전체로 볼 때, 과거 양극화되지 않았던 정치가 지금의 양극화된 정치보다 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근래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의 시발점은, 1960년대 중반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에 흑인에게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주는 개혁을 실시한 후에, 1970년대에 들어 남부의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갈아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공화당은 백인을 중심으로 한 정당, 즉 백인의 집단 정체성을 최우선에 두는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공화당원에게 백인의 인종 정체성이 그렇게 크게 부상한 원인은, 1970년대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이민법 개정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에서 아시아인과 중남미인의 비중은 갈수록 커진 반면, 유럽계 백인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2040년경이 되면 백인이 미국 인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과거 노예제에 뿌리를 두고 오랫동안 유색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였으며, 백인들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색인보다 우월한 특권을 누렸다. 백인은 숫적으로 자신들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일상에서 체감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는 행태, 즉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사사건건 반대 진영과 대립하는 태도를 취한다. 공화당은 백인의 인종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역사 문화 사회적으로 백인 인종과 연관된 특성인, 남성,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 도덕적 보수주의,  교외/농촌지역 거주자, 교육수준이 높지 않음, 등이 일관되게 결합된 모습을 띤다.

미국의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데는 미디어의 역할도 한 몫 한다. 케이블 티브와 인터넷이 출현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혹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치 집단의 의견도 일상적으로 접해야 했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미디어를 취사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한된 숫자의 신문 방송은 가급적 넓은 범위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심하게 편파적인 의견을 피했으며,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케이블 티브가 보급되고,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의 미디어 선택의 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디어 회사들은 모든 범위의 고객을 고루 상대하는 것보다, 편파적인 생각을 가진 충성스런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했다. 그결과 FOX 채널과 같이 지극히 편파적인 미디어가 공화당 지지자를 파고 들었으며, 그보다는 덜 편파적이지만, CNN, MSNBC 등의 채널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호를 따르는 미디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인터넷은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내용만을 편향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미디어의 편파성 효과가 케이블 티브이보다 훨씬 심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편파적인 미디어만을 접하면서 상대편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없어지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내재화하고 더욱 더 굳건하게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비교해 보면,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편파적이며, 극단적인 벼랑끝 전략까지 구사하면서 자신의 진영의 우위를 지키려 한다. 민주당은 이념 지형에서 진보에서 중도보수까지를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공화당은 이념 지형에서 보수쪽에 훨씬 치우쳐 있으며, 백인이라는 인종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한다. 이러한 차이는, 백인이 자신들의 인구 수가 줄어 들고 인종적 특권이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나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 표면적으로는 거의 대등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심하게 외곡되어 있어서 유권자의 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민의 60% 이상의 표를 획득하지만, 각 주 당 2명의 상원의원이 할당된 제도 때문에, 주들 사이에 인구 규모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하원 역시 선거구를 공화당의 득표에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조정하여 (gerrymandering), 실제로는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표를 획득하지만, 하원의원 수에서는 절반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2000년 앨고어와 부시의 선거나, 최근의 클린턴과 트럼프의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 다수의 표를 획득하였지만, 선거인단이라는 외곡된 제도 때문에 국민의 소수의 표를 획득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백인의 인구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외곡 현상은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공화당은 자신의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인 주장과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또한 가급적 투표하기 어렵게 만들어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저자는 현재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정치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념적으로 정당이 양극화되어 있으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견에 근접한 정당을 더 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정강의 정당이 난립하는 정치 지형보다는,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정당 구도가 더 낫다고 본다. 양극화 그 자체보다는, 현재 미국의 정치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즉 국민 주권이 제대로 정치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외곡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화당이 저렇게 극단적인 전략을 쓰는 것은, 소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상대와 합리적인 타협이 불가능한 형국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기존 제도가 제공하는 기득권을 포기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는 대신, 미국인들이 중앙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치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을 제안한다. 사실 지역의 정치가 주민의 이익에 더 가까이 있고, 극단적인 진영 싸움보다는 실용적 타협점을 찾기에 더 용이하다. 사람들이 지역 정치를 통해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습관이 든다면, 중앙 정치도 실용적이 되도록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바뀔 것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쓴 정치 분석서로는 드물게, 많은 학술 연구를 참고하여 주제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관련된 논의를 폭넓게 섭렵하는 기회를 얻는다. 다만, 저자가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라면 혹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다른 시각에서 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그렇게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다면, 분명 저자와 반대편에 서있는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미국 정치를 볼 것이다. 문제는 학계와 미디어는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체계적인 분석은 지식인의 소관인데, 미국에서 지식인은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이므로,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저자의 분석 역시 편파적인 접근의 산물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배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경제학, 이론과 정책  (0) 2024.04.03
자연과 인간에 친근한 건축  (0) 2024.03.20
서구를 중심에 두지 않은 세계사  (0) 2024.03.11
자연의 패턴  (0) 2024.02.19
죽음에 대한 두려움  (0) 2024.02.14
2024. 3. 11. 14:21

Robert Tignor, et.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Vol 2. From 1000 CE to the Present. 3rd ed. W.W. Norton. 481 pages.

이 책은 미국 대학의 세계사 교과서이다. 이 책은 다른 세계사 서술과 달리 유럽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서구 유럽은 물론, 이슬람, 인도, 아시아, 중남미, 등을 고른 비중으로 다룬다. 서구의 역사 전개를 자세히 알기 어려운 반면, 동시대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지역과 문명권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과 교류가 있었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매 찹터에서 여성과 소수집단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루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미국에서 쟁점이 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ectness 원칙을 잘 따른 책이다.  세계사의 전개에서 이슬람의 역할을 크게 보며, 중국과 함께 일본을 비중있게 다룬 점이 눈에 띤다. 한국 전쟁을 제외하면, 한국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세계의 전개를 균형있게 볼 수 있도록 하며, 세계 전지역의 다양한 역사들을 망라식으로 지루하게 서술하지 않는 점을 살만하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이 책만 읽어서는 서구가 이끈 근대의 탄생과 전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기존에 서구 중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어야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적 맥락에서 근대의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등 근대를 만든 주요 계기를, 불과 한두페이지로 기술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2024. 2. 19. 13:56

필립 볼 philip Ball. (조민웅 번역). 2019. 자연의 패턴: 필립 볼의 형태학 아카이브. 사이언스 북스. 283쪽.

저자는 과학저술가이며, 이 책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패턴을 분류하여 설명한 도감이다. 대칭, 프랙탈, 나선, 흐름과 혼돈, 파동과 모래 언덕, 거품, 결정과 타일, 균열, 점과 줄의 9개 장으로 구성된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패턴은 자기조직화 원리에 따라 형성된다. 몇가지 간단한 규칙에 따라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다. 패턴형성 과정은 대체로 수학적 규칙을 따른다. 되먹임 feedback 과정이 추가될 경우, 복잡계에서 언급하는 프랙탈 패턴이 만들어진다. 프랙탈은 그 모양이 더 작은 척도에서 계속 반복되는 구조를 지칭한다.

자연의 패턴이 철저하게 단순 반복적이지는 않다. 크게 보면 규칙적이지만, 랜덤한 요인이 추가적으로 작용하기때문에, 세부적인 불규칙성이 덧붙여진다. 자연 현상에는 어디에나 랜덤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한 단순 반복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의 패턴을 만드는 원리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크게 보면 모두 비슷하게 살아가며, 대체로 노력에 따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항시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에, 일의 전개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다.

자연의 패턴은 인간이 만든 어느 예술 작품보다 더 아름답고 경외감을 준다. 저자는 자연의 형태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는데, 풍부한 사진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흥미로운 눈요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패턴 형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거칠고 피상적이다.

 

2024. 2. 14. 18:07

Sheldon Solomon, Jeff Greenberg, and Tom Pyszczynski. 2015. The Worm at the Core: On the Role of Death in Life. Penguin Books. 22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심리학 실험, 인류학적 탐구, 철학적 사색, 문학적 표현 등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논의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며, 이 문제는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가지 방식으로 극복하려 한다. 하나는 '문화' culture 이며, 다른 하나는 '자존감' self-esteem 이다. 문화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죽은 후에도 의미있는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한다. 종교는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방책이다. 문화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으로부터 와서 내가 죽은 이후로 이어지는 의미있는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조상, 혈통, 후손, 민족, 예술, 지식, 위인, 역사, 등의 문화적 메시지와 상징은 나의 죽음이 '끝', 즉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자존감이란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하며 의미가 있다는 자의식 self-consciousness 이다.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큰 집단과 큰 프로젝트의 일부에 속하며, 이런 집단과 프로젝트에 내가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자신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자신이 이 땅에 살면서 행한 것을 후손이 이어받아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외롭거나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은 자신보다 더 큰 것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문화적 확신이나 자신의 삶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은 결코 확고하지 않다. 종교적 신념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으며, 자신이 더 큰 것의 일부에 속하며 이것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 역시 확실하지 않다. 신이나 내세에 대한 아이디어는 인간이 만든 허구이며, 자신이 이룬 것은 별볼일이 없으며 자신이 죽으면 모두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떠오른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이땅에 사는 한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없애는 작업, 즉 영생을 추구하는 데 엄청나게 몰두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은 물리적으로 죽음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상징적인 영생을 추구할 수 있을 뿐. 그래서 사람들은 자식, 명예, 예술 등에 몰두하며, 이것이 잘 안되면 술, 마약, 섹스, 도박, 등으로 방종한 삶에 자신을 내던지며 인생의 근본적인 외로움과 허무를 잊으려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속한 집단과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쪽, 즉 보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나 내가 따르지 않는 믿음과 규범의 존재는, 내가 속한 집단과 내가 따르는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이는 내가 죽음을 극복하려 하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수록 타집단에 대해 더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옹호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정신병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적절하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죽음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가급적 감추고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런 냉엄한 사실을 자주 인식하고 감정적으로 친숙해지라고 조언한다. 둘째는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완전한 의미는 자연 세계에서 찾을 수 없다. 우주와 자연 법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 생물계에서 인간은 벌레나 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지구는 수많은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벌레와 개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시점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와 행위는 유의미하다. 아이들과 놀기, 예술 창작에 몰두하기, 신의 은총에 감복하기,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등을 할 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며, 본인이 인지하건 하지 않건 간에 모든 사람의 삶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책의 첫머리에서 선언한다. 그러나 이 명제를 경험적으로 충분히 검증했는지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예시와 설명은 서구 기독교 문명권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수반하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이 끝이라는 사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범신론적 세계관이나, 다른 생물과 인간을 대등하게 보는 불교의 세계관이나, 현세의 삶에 대해서만 관심을 둘 뿐 죽은 다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유교의 세계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아닌 죽음 자체를 크게 두려워할 것 같지 않다. 비서구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2024. 2. 2. 17:52

Ashoka Mody. 2023. India is Broken: A People Betrayed, Independence to Today. Princeton University Press. 411 pages.

저자는 인도계 미국인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인도가 독립이래 최근까지 걸어온 정치경제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 저자는 인도가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매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해왔다고 비판한다.

제이차대전 이후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네루가 수상으로서 1960년대 중반까지 인도의 정치 경제의 기초를 닦았다. 네루는 인도인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은 지식인이었으나, 그는 전후 인도의 경제를 일으키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네루의 잘못은 여러가지인데, 그의 잘못된 정책은 이후 인도를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루의 주요한 잘못을 요약하자면, 첫째, 그는 정부 주도로 중화학 공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인도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이었다. 인도는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엄청난 수의 교육을 받지 않은 실업 인구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산업인,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산업을 우선적으로 일으켰어야 한다. 중화학 공업은 고용을 크게 창출하지 않았으며, 가뜩이나 빈약한 보유 외화를 비싼 고급 기계를 사는 데 지불하여 외환위기를 초래하였다. 두번째 잘못은, 인구의 절대다수가 문맹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인구에게 기초 교육을 시키고 그들의 보건 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 네루는 말로만 서민을 걱정했을 뿐, 교육과 보건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그결과 인도의 인적 자본 축적이 빈약하여, 이후 경제를 성장시키는 기초 토양이 계속하여 부실한 상태에 머물렀다. 네루는 초등교육에 투자하는 대신 고등교육에 재정 지원을 더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 셋째는, 사회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중앙계획 경제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에 국가의 허락을 필요로 하고 세세히 간섭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통제 정책은 부패와 비효율을 극에 달하게 하였다. 넷째는 높은 관세장벽과 수입 제한정책을 통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국내 생산 업자의 생산성 향상을 막고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렸으며, 결과적으로 인도 경제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1960년대 중반 네루가 힌두교 극단주의자의 총에 쓰러지고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수상과  정치 실력자로서 15년 이상 인도의 정치 경제를 이끌었다. 그녀는 네루와 같은 국민의 절대적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영합적인 정책과 권위주의적 통제를 휘두르면서 권력 유지에 집착하였다. 그녀는 대자본가와 영합하여 권력을 유지하면서, 경제가 정체되고, 인도 사회와 정치 전반에 부패와 폭력이 난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녀가 집권하는 동안 정치인들의 부패가 매우 심했다. 정치인들은 엄청난 정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결과 검은 돈으로 충당하는 인도의 선거비용은 미국의 선거비용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녀는 엄청난 규모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제정책이나 서민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정책은 전혀 구사하지 않고, 대신 가난한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하였다. 삶이 매우 고단한 서민들은 고질적인 인도 사회의 병폐인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과 카스트 간의 대립 구조에서 쉽게 선동되었다. 정치인들은 종교적 대립을 선거에 악용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힌두교 민족주의자의 선동에 휩쓸려 이슬람교도를 대규모로 살해하고 이것이 다시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였다.

결국 1970년대 석유파동이 촉발시킨 경제위기 때문에 인디라 간디는 실각하였으며, 독립 이래 인도의 정치를 독점한Congress Party 는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 대신 힌두교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정당이 부상하여 현재 모디 Mody 정부에 이르기까지 집권하고 있다. 간디와 이후 네루가 이끈 Congress Party는 정교 분리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인도의 힌두교 세력의 압력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이후 들어선 힌두교 민족주의 지도자가 이끄는 정부는 힌두교를 편파적으로 옹호하였으며, 이슬람 교도를 박해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현재의 모디 수상은 그가 주정부의 수반으로 재직할 당시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를 대규모로 살해하는 것을 방조한 장본인이며, 현재도 극단주의 힌두교도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메시지와 행동을 종종 보인다.

인도는 1980년대 초반 대외적으로 경제를 개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독립부터 이어오던 폐쇄주의 경제 정책을 마침내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와는 달리 제조업을 육성하는 대신, 금융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 정책을 운용하였다. 그 결과 많은 가난한 실업자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대신, 소수의 권력과 영합한 산업가들과 부패한 관료들이 부를 축적하여,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1990년대 들어 소프트웨어 산업, 콜센타, 제약 산업 등에서 서구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대외적으로 신인도가 높아지고 인도가 신흥경제 국가 emerging economy 의 총아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뿐 가난한, 대중 전반에게는 충분한 일자리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저자는 인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교육과 보건에 대한 정부 지출을 늘리는 일이다. 인도의 교육은 양과 질 모두에서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여성의 교육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출산율이 줄고,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아지고, 자식들의 교육과 건강 등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앙정부의 통제 체제가 부패와 외곡을 낳았기 때문에, 지방 정부에 과감하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하여, 시민사회의 참여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효율의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도 정치와 경제의 부정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고 일관되게 비판한다. 이는 아마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선진국과 비교해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낳은 한계인듯 싶다.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를 외부에서 보면 그런 모습만 우선 보인다. 인도가 낙후된 상태로부터 어떻게 지금의 단계까지 발전하여 왔는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인도의 정치와 경제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하는데 주력한다. 이 책만 읽으면 인도의 정치경제가 어떻게 현재의 발전 단계에 이르게 되었는지, 왜 외국의 투자가들이 인도를 신흥경제 국가의 총아로 지목하면서 투자를 집중하는지 알길이 없다. 그는 이러한 외부의 평가가 과장되며 인도의 허상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외국의 투자가들이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디라 간디는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이후의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부패를 더 심화시켰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이 맞다면, 인도의 정치 경제는 1960년대 이후 과거보다 더 추락하였어야 하지만 경제 지표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는 수시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계속 인용하면서 서술하는데, 이는 전체 그림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독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정적인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음을 신문 기사를 연이어 읽듯이 계속 나열하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서술을 따라가기 힘겹다. 유사한 사건의 반복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인도가 가난하고, 부패했으며, 종교적 갈등이 난무하기 때문에 정치경제나 도덕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거듭 말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상황이 어떻게 왜 변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그의 말을 정말 믿는다면 인도는 미래가 없는 나라인데, 과연 그럴까? 그는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희망" hope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의 책 어디에서도 희망의 징표를 읽을 수 없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가 매우 꼬장꼬장한 "꼰대"일거라는 이미지이다.

'배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과 인간에 친근한 건축  (0) 2024.03.20
미국의 정치는 왜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을까  (0) 2024.03.19
서구를 중심에 두지 않은 세계사  (0) 2024.03.11
자연의 패턴  (0) 2024.02.19
죽음에 대한 두려움  (0) 20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