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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9. 20:21

살구나무 목록 (47).  2022.5.22 ~ 2023.4.19.

1.Elinor Ostrom. 1990.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ions for Collective Action. Cambridge. 216 pages.

2. Edward O. Wilson. 2014.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Liveright. 187 pages.

3. Carol Kaesuk Yoon. 2009. Naming Nature: The Clash between Instinct and Science. W.W.Norton. 299 pages.

4. Amitav Acharya and Barry Buzan. 2019. The Making of Global International Relations: Origins and Evolution of IR at its Centenary. Cambridge. 320 pages.

5. Brian Hare and Vanessa Woods. 2020. Survival of the Friendliest: Understanding our orgins and rediscovering our common humanity. Oneworld Publications. 197 pages.

6. Tim Harford. 2016. Messy: The Power of disorder to transform our lives. Riverhead Books. 265 pages.

7. David Ropeik. 2010. How risky is it really? Why our fears don't always match the facts. McGraw Hill. 262 pages.

8. Jeffry Friedan, David Lake, and Kenneth Schultz. 2016. World Politc: Interests, Interactions, Institutions. W.W.Norton. 627 pages.

9. 스테판 허친슨 외 5 (강대훈 옮김). 2011. 아주 특별한 바다여행: 지구 최후의 미개척지. 시그마북스. 231.

10. Robert Greene. 2018. The Laws of Human Nature. Viking. 586 pages.

11. Binyamin Appelbaum. 2019. The Economists' Hour: False prophets, free markets, and the fracture of society. Little, Brown and Company. 332 pages.

12. William McNeill. 1982.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s, and Society since AD. 1000.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87 pages.

13. Laszlo Bock. 2015. Work Rules!: Insights from inside Google that will transform how you live and lead. Twelve. 365 pages.

14. Joshua Greene. 2013.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Penguin books. 353 pages.

15. Rudolf Vrba. 2020(2002). I escaped from Auschwitz: The shocking true story of the world war II hero who escaped the Nazis and helped save over 200,000 Jews. Racehorse publishing. 446 pages.

16. Gary Marcus. 2008. Kludge: the Haphazard Evolution of the Human Mind. Mariner Books. 176 pages.

17. William H. McNeill. 1977. Plagues and Peoples. Anchor Books. 257 pages.

18. 홍완식. 2021. 소재, 인류와 만나다: 인간이 찾아내고 만들어온 모든 소재 이야기. 삼성경제연구소. 360.

19. 박창식. 2017. 언론의 언어 왜곡, 숨은 의도와 기법. 커뮤니케이션북스. 109.

20. Daniel Kahneman, Oliver Sibony, and Cass Sunstein. 2021. Noise: A Flaw in Human Judgement. Little, Brown Spark. 395 pages.

21. 한혜경. 2022. 기꺼이 오십, 나를 배워야 할 시간: 오래된 나와 화해하는 자기 역사 쓰기의 즐거움. 297.

22. 이즈미 마사토 (김윤수 옮김). 2014. 부자의 그릇: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다산 북스. 223.

23. 자청. 2022. 역행자: , 시간, 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웅진 지식하우스. 289.

24. Howard Zinn. 1999.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present. Harper perennial. 688 pages.

25. Christian Rudder. 2014. Dataclysm: Love, Sex, Race, and Identity - What our online lives tell us about our offline selves. Broadway Books. 262 pages.

26. Louise Aronson. 2019. Elderhood: Redefining Aging, Transforming Medicine, Reimagining Life. Bloomsbury. 400 pages.

27. Louis A. Bloomfield. 2013. How Things Work: the physics of everyday life. 5th ed. John Wiley & Son. 543 pages.

28. 우치다 다쓰루 외 지음. 2018.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위즈덤 하우스. 294.

29. Antonio Damasio. 2018. The Strange Order of Things: Life, Feeling, and the Making of Cultures. Pantheon Books. 244 pages.

30. 최병삼,김창욱,조원영. 2014.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삼성경제연구소. 321.

31. Addy Pross. 2012. What is Life? : How Chemistry becomes bi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 pages.

32. Carl Zimmer. 2021. A Planet of Virus. 3r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32 pages.

33. John Hill, Terry McCreary, and Doris Kalb. 2013. Chemistry for Changing Times. 13th ed. Pearson. 706 pages.

34. Douglass North.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40 pages.

35. Nolan Gasser. 2019. Why you like it: the science and culture of musical taste. Flatiron books. 645 pages.

36. Desmond Morris. 1999(1967). The Naked Ape: A Zoologist's Study of the Human Animal. Delta Book. 241 pages.

37. Frank Snowden. 2019. Epidemics and Society: from the Black Death to the Present. Yale University Press. 505 pages.

38. Edward Wilson. 2004(1978). On Human Na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9 pages.

39. James Scott. 2017. Against the Grain: A deep hostory of the early states. Yale University Press. 256 pages.

40. Oliver Sacks. 1998(1970).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and other clinical tales. Touchstone. 233 pages.

41. Frans de Waal. 2019. Mama's Last Hug: animal emotions and what they tell us about ourselves. Norton. 278 pages.

42. Randolf Nesse. 2019. 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Insight from the frontier of evolutionary psychiatry. Dutton. 269 pages.

43. Robert Dahl. 1998. O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188 pages.

44. 박을미. 2011. 모두를 위한 서양음악사 1: 서양음악사 100 장면으로 편하게 읽기. 가람기획. 265.

45. Robert Dahl. 2005(1961). Who Governs? Democracy and Power in an American City. 2nd ed. Yale Univ. Press. 325 pages.

46. Daniell Schacter. 2001.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 Houghton Mifflin Co. 206 pages.

47. Albert-Laszlo Barabasi. 2014(2002). Linked: How everything is connected to everything else and what it means for business, science, and everyday life. Basic Books. 238 pages.

2023. 4. 19. 17:24

Elinor Ostrom. 1990.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ions for Collective Action. Cambridge. 216 pages.

저자는 정치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책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자원은 '공유지의 비극' (tradegy of commons)이라 지칭하는 집단행동의 딜레마에 봉착하여 자원이 고갈될 수 밖에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뒤집는 사례들이 세계 곳곳에 많이 존재하며, 그러한 사례가 가능한 조건을 경험 연구를 통해 밝힌다. 

기존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다음의 두가지 중 한가지에 해당되야 한다. 정부의 권력을 동원하여 자원의 사용을 통제함으로서 고갈을 막거나, 아니면, 자원의 소유권을 잘게 쪼개 사유화시킴으로서 시장 기구에 따라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도모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가지 이외에 공유자원을 관리하는 제3의 대안이 존재함을 경험 연구를 통해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는 스위스와 일본의 목초지와 숲의 관리, 스페인과 필리핀과 스리랑카의 관개용수 관리, 터키와 캐나다의 어장 관리, 캘리포니아의 지하수 관리 등 전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사례에서 관찰되는 공통점은, 자원 사용자들 스스로 조직하여, 가용 자원의 상태와 규모를 확인하고, 자원을 분배하고 사용하는 규칙을 정하고, 규칙이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위반자를 제제하고,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규칙을 조정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되려면 8가지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유자원의 사용자 범위가 명확히 제한되어야 한다. 사용자의 범위가 확실치 않다면, 언제라도 신규 진입자가 들어와 기존의 규칙을 무시하고 제한된 자원을 마구 사용하여, 기존의 사용자들이 준수하는 규칙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둘째, 공유자원의 사용 규칙에 구속된 사람들은 그 규칙을 만들고 조정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을 구속하는 규칙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권리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 규칙이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다고 느끼며, 그 규칙을 준수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공동의 규칙을 세우는데서 자신이 배제되고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규칙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러한 규칙은 곧 유명무실해 질 것이다. 셋째, 사용자들 본인 혹은 그들에게 책임을 지는 대리인이 제한된 공유자원의 사용 상황을 감시해야 한다. 자신이 동의한 공동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유자원을 과다하게 사용하려는 유혹은 항시 존재하기 때문에, 사용을 감시하는 유효한 장치가 없다면 규칙은 곧 깨질 것이다. 넷째,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 위반의 정도에 따라 벌칙을 부과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 사정에 따라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은 종종 발생하므로, 경중을 가려 불이익을 부과해야만 규칙은 유지될 수 있다. 다섯째, 공유자원의 사용자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경우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가릴 기구가 존재해야 한다. 공동으로 합의한 규칙을 구체적인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둘러싸고 사용자들 사이에 이견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공유자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제도를 외부의 정부기관이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공유자원을 관리한다고 행정력을 동원하여 주민 자치로 만든 제도를 부정한다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제도는 유지되기 어렵다.

저자는 공유자원을 주민들의 합의로 잘 관리하는 성공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례도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의 모하비군에서는, 이웃 군들의 성공 사례와 달리,  지하수를 공동 관리하는데 실패하여, 사용자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대로 지하수를 뽑아내어 지하수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는, 주민들이 소규모로 밑에서부터 조직하여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가야만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는 관행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데, 모하비군에서는 넓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사용자 조직을 단번에 만들려고 시도하여 실패하였다. 사용자들 소규모의 단위에서부터 조직하여 다층적으로 조직의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주민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지 않으며, 주민들 사이에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지 않으면 주민들 스스로 조직하여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제도는 만들어질 수 없다. 

두번째의 실패 사례는 스리랑카의 관개용수 관리 사례이다. 관개용수를 사용하여 농사짓는 사람들의 토지 소유 규모에 큰 차이가 있고, 대지주는 노동자를 고용한 부재지주인 경우가 많으므로, 공유자원의 사용자들 사이에 동질성이 낮다. 사용자들 사이에 이익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동의 규칙에 합의하기 어렵다. 대지주는 지역의 정치인과 결탁하여 관개수 사용 등에서 특혜를 누리기 때문에, 소농들과 대등하게 협의하여 공정하게 수자원을 분배 받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인을 등에 없은 관료나 지역의 토호들은 일반 주민들이 만든 공유자원의 자율 규약을 위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권력자와 대지주들은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지역 전체의 이익이 희생되는 행위를 저지른다. 

한편, 개발도상국에서 외부의 개입으로 성공한 사례도 나타났다. 역시 스리랑카의 관개용수 관리사례인데, 코넬대학 연구팀이 지역 정부 조직과 연대하여 주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운영하는 관개용수 관리 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지역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이들을 교육시키고, 이들이 현장에 나가 직접 주민들을 접촉하고 설득하여 5~7명 규모의 주민 자치 관개용수 관리 조직들을 결성하도록 하고, 이러한 소규모 조직활동을 통해 주민들스스로 사용 규칙을 제정하고, 사용을 감시하고, 그 결과 효율적으로 자원이 활용되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을 쌓도록 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조직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서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관개용수 관리 조직을 만들어 냈다.  즉 밑으로부터의 기층 조직(grassroots organizing)을 바탕으로 누적적으로 단계를 높여가는 공유자원 관리 체계를 만든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이렇게 외부의 개입을 통해 주민 스스로 관리하는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지역 엘리트들의 반발도 일시 있었으나, 조직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사용을 감시하고, 위반을 제재하는 장치가 작동하면서 지역 엘리트들도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자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이론을 경험 연구를 통해 입증하므로서 노벨상을 받았다. 사실 전통사회에서 지역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지역의 자원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례는 흔하다. 사회적인 통제 장치를 통해 개인의 일탈을 막고 공유자원의 남용을 막는 것은 과거 지역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한 지역사회의 사회적인 통제 장치는 위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힘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힘없는 다수의 경제행위에 대해 제한을 가함으로서 공유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유지되었다. 저자가 이책에서 주장하는 대안은 참여자가 대등한 권리를 가지고, 공동으로 규칙을 만들고, 공동으로 이행을 감시하고, 위반자를 제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조직에 불만족을 느끼면 탈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조직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장치이다. 왜냐하면 탈퇴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즉 공통의 규칙에 불만을 품고 그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발생한다면, 그러한 조직 자체은 와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평등한 민주적인 주민참여 조직이 개발도상국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민주적이면서 가난한 나라는 없다. 권력자와 엘리트가 그러한 조직의 형성을 방해하고, 설사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를 와해시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Acemoglue의 "Why Nations Fail"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개발도상국이 가난한 이유가 권력자와 엘리트들이 기득권을 틀어쥐고 개발을 막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로 기회가 확산되는 것인데, 이는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기득권자들이 시장을 외곡시키면서 독점적으로 틀어쥐고 있는 권리를 내어 놓아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개발도상국의 권력자와 부자들은 선진국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나라가 민주화되고 부유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선진국에서도 공유자원을 주민 자치로 민주적으로 공동 관리하는 체제가 들어서기 어려운데, 개발도상국에서는 더욱 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공유자원의 관리 조직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후반부에서 많이 논의하면서, 참여자의 다양성 특히 권력과 이익의 차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기만 하는데,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외면하는 지적이다.

2023. 4. 17. 18:03

Edward O. Wilson. 2014.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Liveright. 187 pages.

저자는 저명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생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인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 바를 서술한 에세이 모음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인류는 생물계의 진화의 산물이다. 생물체가 존재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지구는 타고 났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오랜 동안 전개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이 중첩되면서 현재의 인간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마주친 수많은 대안들이  출현하지 못했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어 다른 생물체로 발전하였다. 인간과 가장 근접한 유인원인 침팬지와 인간의 길이 갈라진 이후에도, 수십종의 인간의 조상이 절멸된 끝에, 현재의 인간 Homo Sapiens 가 탄생하였다. 인간이 되는 진화의 과정은 매우 매우 작은 확률의 소산이다. 그 많은 조합(permutation)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다르게 선택되었다면 현재의 인간이 출현하지 못했다. 진화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인간이 되는 길에 필연이란 없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존재한 사회적 동물이 총 20가지 있는데, 인류는 그중 하나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군집하여 생활하며, 군집 생활에 삶을 의존하며,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개미나 벌이 속하는 사회적 동물은 지구 전체 생물계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진화의 과정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인간은 다른 사회적 동물과 마찬가지로 분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회적 동물과 달리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된 분업 생활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순적이다. 개인간의 생존 경쟁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집단간의 생존경쟁에서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 즉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집단 구성원을 위해서는 이타적이지만, 타집단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배타적이며, 타집단에게 행하는 아무리 나쁜 행동도 자신의 집단에 도움이 된다면 미덕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범위가 맥락에 따라 가장 작은 규모의 가족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마을에는 해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한 작은 클럽에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사회에는 해가 될 수 있다. 종교 또한 이러한 부족주의 (tribalism)의 발로이다.

지구의 생물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종의 다양성이나 규모에서 다른 모든 생물체를 훨씬 능가한다. 인간은 인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근래까지 지구상에서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 거의 무지하였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의 매우 제한된 감각 범위 때문에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도 매우 좁다. 지구상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생물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한편, 지구 밖에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외계 미생물의 존재는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작으며,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지구상의 인류와 접촉할 가능성은 더더욱 작다.

인간은 과거 수렵채취 시절에 발달시킨 본성을 가지고 현대 도시 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므로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며, 인류의 과학 기술은 불과 200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미흡하다. 현재 인류는 자연계의 진화의 과정을 중단한채 살고 있는데,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한다면, 인류는 조만간 인간 유전자 자체를 조작 변형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부수적인 조작을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인간의 성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한 잡지에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이므로 중복이 많고 논의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맨 처음에 제시된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투명하므로 '왜' 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인간은 이야기를 꾸며내었다. 창조 신화, 하나님의 은총, 선과 악, 내세와 구원 등이 '우연'이라는 사실이 담고 있는 허무함을 잊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왜 존재하는지, 왜 이러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견디기 힘들 것이다. 현대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이 500년을 넘지 않으므로, 앞으로 1천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의 희망과 달리, 앞으로 인간은 다른 생물체로 유전자 변형되면서, 현재의 인간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2023. 4. 12. 17:41

Carol Kaesuk Yoon. 2009. Naming Nature: The Clash between Instinct and Science. W.W.Norton. 299 pages.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분류학(taxonomy)의 발달 과정을 서술한다. 분류학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아마추어 자연관찰자의 영역으로부터, 수학을 사용하고 유전자 분석과 진화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과학의 영역으로 이전하면서, 인간의 직관적 상식으로 부터 멀어졌음을 지적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주위 환경(umwelt)를 인식하는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동물 또한 생존을 위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환경 인식 방식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개가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와 다르며, 이는 물고기가 인식하는 세계나 새가 인식하는 세계와 다르다.

인간은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주위의 생물체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물체를 구별하고 이것들에 체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즉 분류하는 일은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인간에게 위험한 생물과 그렇지 않은 생물을 구별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렇게 생물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생물체를 인식하는 부분과 무생물체를 인식하는 부분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 원시사회의 부족들이나 서구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생물 세계에 대해 매우 유사한 분류체계를 만들어 냈다. 이는 인류는 어디에서 살든 주위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분류학은 18세기 린네에 의해 기초가 놓였다. 그는 Domain에서부터 시작하여 Species로 세분화되는 여섯 단계(D,K,P,C,F,G,S/ 문,과,목,과,속,종)의 분류 체계를 만들고, genus와 species 를 결합하여 두개의 이름으로 구성된 생물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창안해 냈다. 예컨대 인간을 homo sapiens라고 명명하는 식이다. 린네가 생물을 분류한 방식은 순전히 인간의 감각 능력에 바탕을 둔 관찰에 의존하였다. 생물체를 면밀히 관찰하여 서로 유사한 특징과  서로 다른 특징들을 파악한 후, 생물체들 사이에 직관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을 추출하여 그룹짓는 작업이다. 이러한 분류 작업은 주위환경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류 체계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는 이러한 분류 방식은, 왜 특정 생물이 다른 특정 생물과 같은 그룹으로 묶여야 하는지에 대해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연구자의 직관적이며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생물세계를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분류한 것이다.

1950년 경 기존의 분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분류 방식이 개발되었다. 이는 인간의 감각적 관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린네이래 사용된 분류 방식과 동일하지만, 생물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하여 그룹을 짓는 기준으로 오로지 통계적 상관성만을 적용할 뿐, 연구자의 주관성이 배제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통계적 분류 방식은, 기존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특징이 다른 특징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유사성이 높은 순으로만 그룹을 정렬한다. 따라서 연구자의 경험이나 통찰력은 분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그러나 이 방식 역시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므로 생물체의 본질적 속성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1950년대 후반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이는 생물체의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인 세포의 화학적 성분과 유전자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를 계기로 생물의 분류학은 인간의 감각적 관찰을 토대로 한 것에서부터, 세포와 유전자의 성분을 토대로 한 학문으로 거듭났다. 세포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을 비교하여 생물체들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진화의 발달 경로를 객관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외적인 특징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진화적 연관성을 밝혀내게 된 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그 결과 과거에 동일한 집단으로 묶여 있던 생물체들이 진화적 경로에서 볼 때 상이한 집단에 속하는 경우가 많이 밝혀졌으며, 거꾸로 과거에 상이한 집단에 속한다고 분류했던 생물체들이 유전자 분석결과 진화의 경로에서 동일한 집단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분석 결과 가장 혁명적인 발견은, 진화의 경로에서 박테리아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체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곰팡이가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생물체의 외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하면서도 논리적인 추론만을 전적으로 적용하여 진화의 발달 경로를 밝히는 새로운 접근도 나타났다. 이러한 접근에 따르면, 진화의 발달 선상에서 볼 때 물고기가 육지 동물과 다른 별도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중 일부는 특정 육지 동물과 유사성이 더 크기 때문에 같은 집단으로 묶이지만, 다른 물고기들은 또 다른 육지 동물 집단과 함께 묶이게 된다. 예컨대 허파로 숨을 쉬는 폐어라는 동물은 아가미로 숨쉬는 물고기가 아닌 허파 호흡을 하는 육지 동물과 같은 집단으로 묶이며, 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이렇다면 '물고기'라는 독립된 범주는 의미를 잃게 된다.

세포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던, 진화적인 경로를 논리적 추론하던, 문제는 이렇게 하여 만든 분류 체계는 기존에 인간의 감각적 관찰에 따라 직관적으로 분류하여 만든 결과와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감각적 인식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므로 이렇게 만든 분류 체계는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만, 화학적 성분이나 논리적 추론에 따라 진화의 경로를 추리하여 만든 분류체계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해온 자연관찰의 습관에 따라 형성된 세계의 인식 방법과 유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사람들은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고기'라고 인식하고 생활해 왔는데, 과학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물고기'라는 독립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생물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분류학은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 만남의 산물이었는데, 생물 세계를 분류하는 작업을 과학자들이 전적으로 독차지 하면서, 인간은 자연, 특히 주위 생물 세계로부터 멀어졌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감각 능력에 호소하여 이름을 붙이던 그러한 낭만적인 전통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자의 어린 시절, 집주위 숲에서 놀고 관찰하던 그러한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저자의 어릴 때 경험을 바탕으로 분류학의 발달 과정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인데, 곳곳에서 군더더기 논의를 반복하여,  왜 이렇게 번잡하게 빙빙둘러 이야기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한편으로는 과학을 옹호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사랑하는 오랜 습관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2023. 4. 7. 16:48

Amitav Acharya and Barry Buzan. 2019. The Making of Global International Relations: Origins and Evolution of IR at its Centenary. Cambridge. 320 pages.

저자는 국제관계학자들이며,  이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최근까지 국제관계의 변화를 정리하면서, 이러한 정세 변화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국제관계의 변화는 크게 5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제 1차대전 이전까지,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기간, 2차대전 이후, 1989년 공산권의 몰락 이후, 21세기에 접어들어 지난 20년간.

제 1차 대전 이전 시기의 국제관계는 유럽의 중심국이 여타 세계의 식민지를 거느리는 제국주의 시기이다.  인종주의가 이 시기를 지배하는 이념이었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와 여타 국가들간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일본은 이러한 서구 백인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애매한 존재로 중심국에 편입되어 있었다. 서구 국가들 사이의 국제관계는 강대국들 사이에 '힘의 균형' (balance of power)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1차 대전 이전 상황의 연장이다. '국제연맹'이라는 국가들을 아우르는 조직이 국제사회에 새로이 등장하여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간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1차 대전은 영국, 프랑스 등 선진 산업국과 독일이라는 후발 산업국간 힘의 균형의 변화가 원인인데, 전쟁이 그러한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서구사회는 또다시 전쟁을 맞게 되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이 국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대국들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전면전은 패전국은 물론 승전국에게도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1,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은 몰락하였으며,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게 되었다.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오랫동안 견지하던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2차대전 이후 유럽 제국주의에 복속되어 있던 식민지들이 독립함으로서, 비록 국가들간 상당한 차이는 있지만 국제사회는 서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라 세계 여타지역의 국가들도 참여하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난 국가들 중 일부는, 미국과 소련의 양진영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제3세계 비동맹 그룹을 형성하였다. 냉전시기에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간에 대립과 경쟁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삼세계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은 이차대전 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를 만들고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는 자유주의 (liberalism) 국제정치 이론에 반영되었다.

2차대전은 핵무기를 국제사회에 등장시켰다. 핵무기는 전쟁의 승패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이후 미국과 소련간 핵무기 경쟁과 억제의 구도 속에서, 강대국간 전면전의 가능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왔다. 강대국간 전면전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원을 받는 대리 전쟁은 세계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졌음으로 이 시기를 평화롭다고 규정하는 것은 서구 편향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1989년 공산권은 내부적인 비효율 때문에 함몰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 체제의 세계질서가 등장하였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더이상 강대국간의 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낙관론이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중국과 인도가 성장하여 점차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들어 브라질과 러시아 등과 함께 강대국 군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는 다극체제로 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1세기에 들어 국제사회는 다극체제의 모습을 점차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세계의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이 수반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서구의 자본주의의 약점을 두드러지게 노출시켰으며, 반면 30여년 동안 꾸준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중국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제삼세계 국가들에게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와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약점을 세계 만방에 재확인시켰다. 미국은 이제 세계를 전면에서 이끄는 지위에서 내려왔으며, 자신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여러 강대국 중 하나의 위치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세계질서에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을 차지하는 반면, 오랫동안 국제관계를 지배했던 인종주의는 점차 쇠퇴할 것이다.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제삼세계 국가들의 비중이 커진 반면, 서구 강대국들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미래에 오늘날의 시기를 뒤돌아볼 때, 국제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제삼세계 국가들의 부상일 것이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계속 커질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관계 학문도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비서구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접근으로 바뀔 것이다.

이 책은 학술서로서, 국제관계 학문는 국제정세에 좌우된다는 지식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20세기 후반까지 비서구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됬으므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없었으며, 국제관계 학문에서도 거의 존재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 사회의 부상이 앞으로 국제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16세기에 서구가 아시아를 앞서 근대화한 이후, 비서구 사회는계속 뒤쳐져 있었으며, 앞으로도 비서구 사회가 서구사회를 앞설 가능성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구 문명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지난 백년동안 국제정세의 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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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 22:11

Brian Hare and Vanessa Woods. 2020. Survival of the Friendliest: Understanding our orgins and rediscovering our common humanity. Oneworld Publications. 197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진화과정에서 다정한 성격을 가진 개체가 번성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강하고 지능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와 경쟁에서 승리하여 번성한다는 주장이 지배했다. 반면 저자는 이웃에게 다정한(friendly) 개체는 어려운 과업을 함께 협력하여 타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개체보다 생존 경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길들이는 실험을 여러 세대에 걸쳐 시행한 결과, 다양한 측면에서 동물의 형질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에 대해 적대적 민감성이 적은 개체를 선택한다는 기준만을 적용했음에도, 이와 관련이 없는 형질들이 일관된 방향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외적으로 보면 얼굴의 생김새에 변화가 관찰된다. 이마에서 턱까지 경사도가 줄며, 얼굴의 형상이 각진 모습에서 길고 갸름한 형태로 변하며, 송곳니가 줄어들며, 광대뼈가 들어가고, 코의 높이가 낮아지고, 앞으로 튀어 나온 이마가 들어가며, 눈이 움푹 들어간 정도가 줄어든다. 전반적으로 몸의 크기가 줄며, 두개골의 크기가 줄어든다. 또한 발달 단계에서 유아기에 보이는 특징들이 일생동안 고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개나 가축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과거 사멸한 인류의 조상이나 유인원과 현생 인류를 비교해도 유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외면적 변화와 함께, 내면의 형질의 변화도 전개된다. 상대의 의도를 읽는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고, 공격성과 폭력성이 줄어드는 대신, 다정하고 온순해진다.

인간은 타인의 의도를 읽는 의사소통능력이 태어난지 일년 무렵부터 다른 모든 동물을 앞선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 또한 인간의 의도를 읽는 능력이 침팬지보다도 뛰어나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심리학에서 "theory of mind"라고 칭하는데,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이 가장 뛰어난 능력이며,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함께 일을 하는데 필수적이다. 인간은 육체적 힘이 대단치 않음에도 이러한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과, 이를 기반으로 고도의 집단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능력 덕분에 지구상의 최강자로 등극하였다.

야생의 세계에서 동물은 다른 개체에 대해 적대적 민감성이 매우 높다. 타 개체를 경계하고 쉽게 가까이 하지 않는 성향은 동물 세계에서 보편적이다. 동물들이 자신의 가까운 가족 밖의 타 개체를 만나면, 서로 공격하여 위험을 제거하거나, 위계를 확실히 정하여 굴복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들여진 동물은 이러한 본능적 성향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타인과 함께 생활하려면 남에 대한 적대적 민감성이 적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적대적 민감성을 줄이는 방향, 즉 공격적, 폭력적 성질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를  '스스로 길들이기 가설' (self-domestication hypothesis)라고 칭한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적대적 민감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별하여 길들인 결과물인 반면, 인간은 인간 종족 내에서 적대적 민감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선택되어 왔다. 그 결과 현생 인류는 과거 유인원에 비해 적대적 민감성이 적고, 덜 폭력적이고 덜 공격적인 존재가 되었다. 타인에 대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개체가 더 번성할 것 같지만, 인류 조상의 수렵채취 시절에,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개체는 집단 구성원의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되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보다 훨씬 힘이 세고 공격적 폭력적이었지만, 적대적 민감성이 적고 더 고도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현생인류와 경쟁에서 패하여 소멸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런 다정한 성질은 자신과 근접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적용될 뿐, 자신과 먼 집단의 구성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자신에 근접한 집단 구성원에게는 다정하지만, 자신의 생존과는 연관이 희박하거나 자신의 집단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타집단에게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사람들은 조그만 식별이라도 적용하여 자신의 집단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구분하며, 타 집단 성원에 대해서는 자신의 집단 성원에게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를 갖는다. 즉 인간의 부족주의 성향(tribalism)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백인은 유색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도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집단 구성원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dehumanizing). 대상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할 때, 자신의 집단 성원에 대해서 가지는 다정함은 타집단 성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타집단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괴물로 칭하면서,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열등하게 여기고 적대적으로 취급한다. 미국에서 그러한 타집단은 흑인, 타민족, 이민자, 다른 정당 지지자, 여성, 가난한 사람,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타집단 성원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면,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고 불이익을 가하며, 그 결과 벌어진 차이는, 다시 그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타집단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성향을 불식시키려면, 타집단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여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려면,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름길이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타민족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남성과 여성 사이의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간 적대적 행위를 줄이는 것, 등등, 모두 두 집단 간 교류를 늘이도록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독특한 주장을 제시한다. 타인에게 다정한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일견 모순적이다. 타인에게 다정한 태도는 또다른 인간의 본성인 부족주의의 한계에 갖혀 넓게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다정한 개체가 위계를 추구하는 개체보다 적자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인류의 역사로 볼 때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조직활동이라는 것은 위계체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 상호간 대등한 다정한 조직이 현실세계에서 어려운 일에 집단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위계적 조직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도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모두 타인이 아닌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본능이 타인에 대한 다정함과 어떻게 맞추어지는지 궁금하다. 여하간 흥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2023. 3. 29. 21:29

Tim Harford. 2016. Messy: The Power of disorder to transform our lives. Riverhead Books. 265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무질서 속에 창조성이 있으며, 세상과 삶은 그리 깨끗하게 정돈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도하게 정돈되게 만들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랜덤하게 접근할 때가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보다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수월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예술 분야나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서, 오랜 훈련에 바탕을 두고 랜덤하게 접근하는 것은 유효하다. 랜덤하게 접근하면 훨씬 더 머리가 긴장되며, 관행적인 접근 시 활용되지 않던 부분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다양한 특성의 사람들로 모인 팀이 동질적인 팀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예컨대 투자 클럽의 구성원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었을 때 승율이 더 높다. 이는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 이질적인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으며, 둘째, 팀의 구성원들이 이질적 상대를 의식하며 생각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문제 상황에 부닥뜨려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오랜 준비를 거쳐 만든 것보다 더 훌륭한 경우가 있다. 예컨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 광장에 엄청나게 많은 대중이 모인 앞에서 준비한 원고를 버리고 즉석에서 "I have a dream" 연설을 만들어 냈으며, 재즈의 묘미는 즉석 연주에서 분출되는 에너지와 창의성에 있다.

전장이나 경쟁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을 신속히 읽고 혼돈을 감내하면서 밀어 붙여, 상대를 우리 편보다 더 혼돈에 빠뜨리는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다. 내 편을 정돈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사이에 상대편이 진영을 정비해 버리면 승리할 확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차대전때 롬멜 장군이나, 온라인 쇼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2015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쟁에서 제프 부시와 맞붙은 도날드 트럼프가 그 예이다. 

자동화가 진전되면서 일상적 상황에서 사람의 개입은 점점 줄어드는데, 이는 전문가의 기술 퇴화를 낳았다. 자동제어 장치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자동 프로그램이 대처하기 어려운 예외적 상황에 맞닥뜨릴 때, 전문가도 통제하지 못하여 큰 피해를 낳는다. 이러한 '자동화의 딜레마'에 대처하기 위해, 일상적 상황에서도 인간이 수시로 개입하여 인간 기술의 퇴화가 전개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주위 환경을 지나치게 깨끗하고 정돈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생산성을 저해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깨끗하고 정돈된 상황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를 바람직하게 보나, 실재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환경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도록 어질러져 있는 환경이다. 예컨대 MIT 대학에서 가장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 곳은, 비싼 돈을 들여 멋있고 그럴듯하게 지은 빌딩이 아니라, 연구자가 자기 마음대로 주변을 통제할 수 있는 허름한 빌딩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질서잡혀져 있지 않다(disorderly).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한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아놀드 슈발츠제네거, 등은 며칠 앞의 일정을 계획하는 방식으로 일하기보다, 그때그때 일을 바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남녀간의 만남이 발전하는 과정 역시 예측할 수 없다. 근래에 유행하는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에서 남녀간 상대의 성격을 복잡한 변수를 동원해 매칭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삶의 질서를 잡으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낭비이다.

저자는 많은 잡다한 독서를 바탕으로 수많은 인용을 하면서 논의를 이어간다. 저자는 반드시 무질서와 즉흥이 최선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를 옹호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인다. 저자 자신은 똑똑하고, 열심히 살고, 성실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책을 읽다보면 인생을 매우 성실하게 살아나가는 꽤 똑똑한 사람이, 자신이 갖지 못한 천재성을 탐하는 발언을 하는 듯하다. 사실 그런 천재는 정말 드물기 때문에, 무질서를 옹호하는 저자의 주장은, 냉정하게 보면 '환상(fantasy)'을 꿈꾸는 것이다.

2023. 3. 26. 20:39

David Ropeik. 2010. How risky is it really? Why our fears don't always match the facts. McGraw Hill. 26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위험이 실재와 얼마나 왜 다른지 설명한다. 사람들은 대상 위험에 대한 객관적 사실보다 그에 대한 두려운 감정에 우선적으로 휩쓸려 위험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대상 위험에 신속히 대응하기위하여 발달하였다. 대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리의 생사를 좌우하는 위험요소에 대한 반응으로는 부적합하다. 과거 인간이 수렵채취 시절을 거치면서 진화시킨 이러한 반응 장치는, 현대 사회에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대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대상의 위험도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하여 실재의 위험도와 우리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위험도가 어긋나면 우리의 안전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인간의 인식 과정은 심리적 오류에 쉽게 빠진다. 사전적인 암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framing),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확대 해석하는 것(categorization), 가급적 손실을 피하려는 성향(loss aversion), 임의적인 시작 기준 쪽으로 편향되는 성향(anchoring), 강한 인상을 남긴 것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성향(awareness/ready recall effect), 숫자에 약한 성향, 미래를 낙관하는 성향(optimism bias) 등. 이러한 심리학적 오류는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근래에 많이 언급되고 있다.

사람들이 대상을 실재보다 더 혹은 덜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요인을 망라하면 다음과 같다. 대상에 대해 신뢰가 부족할 때, 손실과 이익을 비교할 때, 대상을 통제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대상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대상 위험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때, 대상이 고통을 수반할 때, 대상 위험이 불확실할 때, 대상 위험이 일시에 한꺼번에 닥칠 때, 대상 위험이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때, 대상 위험이 익숙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일 때, 대상 위험이 아동에게 닥칠 때, 대상 위험이 집합적 성격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 닥치는 것일 때, 대상 위험이 공정하지 않을 때, 등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대상 위험을 실재와 달리 잘 못 인식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적 성향에 휩싸여, 대상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려 하기보다 집단의 의견에 무의식적으로 따른다(tribalism). 예컨대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원자력 발전의 위험에 대해 실재보다 과대평가하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과소 평가한다. 미국 사회에서 위험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예를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암보다 심장병이 훨씬 더 위험함에도 암에 대한 관심이 심장병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높다.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의 이익이 훨씬 큼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의 반대 때문에 불소화를 하지 못한다. 핵 에너지에 대한 사람들의 위험 인식은 실재와 크게 어긋나게 과장되어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진영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 사람들이 대상 위험을 잘못 인식하는  데에는 언론의 잘못도 있다. 언론은 시청자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위험을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상 위험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바로잡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이 대상 위험을 인식하는 방식이 감정에 좌우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항시 유념하면서, 다양한 의견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대상 위험에서 한걸음 물러나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생각하며, 대상 위험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가급적 많이 수집하고, 중립적인 입장의 출처로부터 의견과 사실을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대상 위험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는 습관을 기르면, 약간이나마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그릇되게 판단하는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정부가 대상위험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때에도, 사람들이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대상 위험에 대해 객관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제공함과 더불어,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두려운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책은 저자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과거 경험과 심리학 연구들을 많이 인용하면서, 비교적 평이하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자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2023. 3. 22. 18:04

Jeffry Friedan, David Lake, and Kenneth Schultz. 2016. World Politc: Interests, Interactions, Institutions. W.W.Norton. 627 pages.

저자는 국제경제학자 및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대학의 국제정치경제 교과서이다. 국제정치와 경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논의의 핵심으로 하여, 이론적 깊이를 추구하기보다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부분에서는 국제정치경제의 질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고,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국제정치는 관계자의 이익(interests), 관계자들 사이에 상호작용(interaction), 관계자들의 행위를 규정하는 제도(institutions)라는 세개의 축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두번째 부분은 국제정치를 전쟁과 평화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국내 정치와 전쟁은 어떤 연관을 맺는가, 전쟁과 관련된 국제 제도는 어떠한가, 국가가 아닌 국제 폭력조직 및 내전, 등에 관해 이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세번째 부분은 국제 경제에 관해 논의한다. 무역, 국제 금융, 국제 통화, 경제발전, 등에 대해 근래의 상황에 촛점을 맞추고 경제이론을 최소한으로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네번째 부분은 국제 규범과 제도에 관해 논의한다. 국제법, 인권, 환경문제, 등에 관해 국제 규범과 제도의 발전을 논의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21세기에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치경제를 조망하면서, 대량학살무기의 확산, 세계화의 후퇴, 중국과 미국의 대치, 등에 촛점을 맞추어 미래를 예측하는데 고려해야 할 점을 논의한다.

현재의 국제정치경제 상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다만 국제정치를 논의하면서 전쟁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것은 좀 치우쳤다. 국제질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서술, 및 국제경제를 서술하는 부분을 조금 더 잘썼다.

2023. 3. 6. 13:50

스테판 허친슨 외 5인 (강대훈 옮김). 2011. 아주 특별한 바다여행: 지구 최후의 미개척지. 시그마북스. 231쪽.

저자는 지구과학자이며, 이 책은 바다의 물리적 특성과 생물 자원을 서술한 뒤, 전세계 바다를 네 개로 구분하여 각 대양을 상세히 다룬 도감이다.

바다가 진화하는 과정, 파도와 조수작용, 기후 작용, 해저 지형, 바다 생물, 바다의 광물 자원 등, 바다에 관련된 모든 것을 과학적 원리를 통해 설명한다. 이어 극지바다,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의 구석구석의 해저 지형과 해류 지도, 특징적인 생태계를 그림과 함께 보여준다.

이 책은 틈날 때 마다 조금씩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도감이다. 그림과 글을 천천히 훑어보며 육지 동물인 인간이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을 느낀다. 바다에 관한 외국의 전문용어에 적당히 대응할 말이 없는 한글로 번역하느라 의미전달이 불확실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림을 천천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웬만큼 이해가 된다. 지난 두달 동안 피곤할 때마다 세네쪽씩 야금야금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23. 3. 2. 17:47

Robert Greene. 2018. The Laws of Human Nature. Viking. 586 pages.

저자는 잘 나가는 자기개발서 작가이며, 이 책은 인간 본성의 약점은 무엇이며,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극복하고 이용하는 전략을 제시한다.

각 장은 인간 본성의 문제를 하나씩 격파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각장의 서술은 일률적으로 패턴에 따라 전개된다. 먼저 간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왜 일이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진단을 내린다. 다음으로, 관련된 인간 본성의 문제가 무엇인지일반화의 맥락에서 서술하고,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지목하고, 최종적으로는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스스로 극복하며, 상대가 보이는 그런 문제를 어떻게 이용할지 서술한다.

저자가 파악한 인간본성의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8개장에서 각각을 다루는데 많은 부분이 겹친다. 인간은 감정에 따라 비이성적으로 움직인다. 자기 중심적이다. 대외적으로 마스크쓰고 있다. 때때로 충동에 휩싸인다. 욕망한다. 단견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다. 자기 방어를 한다. 내부의 어두운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타인을 질투한다. 자신에 대해 과대망상증이 있다. 목적 없이 살아간다. 집단 압력에 순응한다. 공격 성향을 가지고 있다. 등등.

이러한 인간 본성의 약점/문제들은 유전적인 성향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는 어렸을 때 부모와의 경험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이러한 문제의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 조용히 물러나 자신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관찰을 하면 이런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자신을 모니터하면서 고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고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심하게 가진 타인을 대할 때에는, 그에게 휘말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거리를 두는게 좋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추종한다. 인간 본성의 문제들은 스스로 의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있으며, 어릴때 부모와의 경험이 이러한 문제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어느정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는 관점을 바꾼다면 문제를 역이용하여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전형적인 자기개발서의 공식을 따른다.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면 고칠 수 있으며, 나아가 상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많은 인간의 문제들은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그것에 헌신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목적 없이 닥치는 대로 대응하며 살아간다. 인생의 목적은 스스로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동일한 논리와 피상적이고 유사한 서술을 반복하여, 정말 읽기 어려웠다.

2023. 2. 27. 10:52

Binyamin Appelbaum. 2019. The Economists' Hour: False prophets, free markets, and the fracture of society. Little, Brown and Company. 332 pages.

저자는 기자이며, 이 책은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경제학자가 미국의 정책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케인즈의 이론, 즉 정부가 적극적 재정 확장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론은 1960년대 이후 시장주의, 즉 경제는 시장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론에 의해 대체된다.  20세기초까지 정부의 정책 형성에서 경제학자의 역할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래 경제학자의 영향은 꾸준히 확대되었다.

1970년대에 미국은 극심한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결합된 어려움 속에서 시장주의 노선을 택하게 된다. 그때까지 경제 전반에 지배했던 규제를 폐지하고 시장경쟁에 의해 생산성을 높이고 실업율을 줄이는 전략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가속화된다. 대규모의 세금 철폐를 통해 투자를 촉진한다는 공급경제학 이론이 등장했으며, 노조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복지 지출을 감축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80년대에 경기를 진작시키는데 기여했으나,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0년대 이래 환경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대기업의 시장 독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규제 강도와 범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때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규제에 대한 비용손익분석을 실시하여, 경제적 이해에 따라 규제의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관행을 정착시켰다. 이러한 접근의 문제는 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정의는 반드시 함께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조치가 아무리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더라도, 인간의 기본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형평의 원칙에 위배될 경우, 과연 이를 추진하는 것이 타당한가는 의문이다. 비용손익분석의 두번째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상황에 대해 비용손익을 분석하는 것은 객관적인듯 하지만 주관적인 요소를 내포한다는 점이다. 구성 요인에 대해 어떤 가정을 하고 어떻게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분석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극심한 인플레에 대처하기 위해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는 통화주의자(moneterist)의 이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실업율이 어느 정도 올라가더라도 인플레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통화주의자의 믿음은 카터 대통령이 임명한 폴 볼커 연방지준은행장을 통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이후 중앙은행은 정부와는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매입하거나 시중은행에 대한 지준율을 조정함으로서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는 케인즈 이론에 따른 정부의 확장/긴축 재정정책과 함께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는 중요한 정책도구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초에 미국은 2차 대전 이래 유지했던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다. 이후 레이건 대통령 시절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90년대 초반 저축은행의 대규모 부실 파동을 겪고, 2008년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는 모두 금융기관의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투자와 대출 행태가 빚어낸 파국이다. 정부는 그들의 무모함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정부가 손실을 떠안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때 경제학자들은 어떤 조치가 해당 행위의 결과에 더하여 그와 연관된 사태에 미치는 영향(collateral effects)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시장 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금융위기를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과 세계에는 시장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화가 전개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졌지만, 불평등이 확대되고, 대기업의 독과점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하고, 제조업 대신 확대된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를 이민자로 채우면서, 이민자를 배격하는 파퓰리즘이 득세하였다. 이제 정치와 정부 정책에서 경제학자의 역할은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 책은 기자의 시각에서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근래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의 전개를 서술한다. 이는 학자들이 분석적, 체계적으로 사안을 접근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특정 사안에 대해 경제학자의 의견이, 그 당시 다른 관련 요인들과 비교할 때,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하는 식으로 체계적 논의를 기대했는데, 약간 실망했다. 시장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담겨있지 않아 진부하다. 어느 경제학자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 젊을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 특이한 냉소적 발언, 등 수많은 사소한 서술은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엄청나게 많은 고유명사가 등장하여 읽는데 애먹었다.

2023. 2. 21. 15:46

William McNeill. 1982.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s, and Society since AD. 1000.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8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1,000년대 이래 무력과 전쟁 기술이 세계 역사의 전개에서 차지한 역할을 상세히 서술한다.

농업을 통해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선 잉여가 생산되면서,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 인구와 정치 집단이 출현하였다.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댓가로 보호금을 갈취하는 시스템(protection racket)이 등장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 드리닥칠지 모르는 폭력 집단에 의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는, 세금이라는 형태의 안정된 갈취를 당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라는 조직된 폭력 집단의 지배를 수용하였다. 폭력집단의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위험을 수반하며 불확실한 규모의 수입을 얻는 비조직적 약탈보다는, 조직적 폭력을 기반으로 안정된 지배 체제를 통해 생산자를 착취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적은 위험으로 더 많은 수입을 가능케 하기에 국가체제를 수용하였다. 즉 폭력을 기반으로 한 안정된 지배체제인 국가는 어느 다른 폭력 집단보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더 많은 소득과 안정을 제공한다.

전 역사를 통틀어 사회 체제를 크게 두 범주, 즉 중앙의 계획과 위계적 명령을 통해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이 운용되는 명령체제(command system)와, 다수의 개인이 참여하여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시장기구에 의해 경제 사회활동이 운용되는 시장체제(market system)로 구분할 수 있다. 공산주의,  중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프랑스의 절대왕정, 독일과 일본의 나찌/군부의 통제 등이 명령체제에 속하며, 자본주의,  개인주의적 시장 경쟁, 영국의 자유주의, 등이 시장체제에 속한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과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명령체제가 지배하는 반면, 시장체제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작은 규모로 전개되고,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독특한 체제이다.

중국은 1500년경까지 생산성이나 군사력에서 서구를 크게 앞섰다. 중국에는 일찌감치 중앙집권 체제가 자리잡았다. 외부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내부에서도 지역간 경쟁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무인 세력은 관료나 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 중국의 유교이념은 인문을 숭상하고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반면, 무력이나 상공업은 천시하였다. 중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무력 집단과 상공인이 연결되지 않았다. 상인은 독자적 권력을 갖지 못해 관료에 의해 재산을 뺏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번성시킴으로서 부를 늘이기보다는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무인들 역시 상인과 결탁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 권력을 장악하기보다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요컨대 중국의 유교문화권에서는 무기와 전쟁 기술이 발전할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며, 그 결과 무력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서구에서는 1200년경 북이탈리아의 소규모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무기와 전쟁기술을 발전시키는 움직임이 펼쳐졌다. 도시국가는 주위의 폭력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용병을 고용하였고, 상인이 내는 세금으로 이 비용을 충당하였다.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화약은 서구에서 총포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서구유럽에서 왕이 봉건 제후를 제압하면서 무력 동원의 규모를 키웠으며, 왕들 간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1,400년경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무력 각축장은 지중해로부터 대서양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이 무력 수준에서 강국으로 올라섰으며 ,유럽 무대에서는 물론 전세계의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서구 열강들이 유럽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나날이 향상된 반면, 중국, 아메리카, 중동, 인도 등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무력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으므로, 전쟁에서 유럽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1,400년대 후반 대양을 통한 서구의 확장이 본격화되었을 때, 비서구 지역 사람들은 이들의 침략에 맞서 참혹하게 패배하였으며, 결국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서구 열강들 사이의 경쟁은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압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해전에서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차례로 제압하였다. 영국은 시장체제를 발전시켜 금융가를 통해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던 반면, 스페인과 프랑스는 명령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 때문에 전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높은 비용을 수반했다.

서구에서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부터 무력과 상공업이 서로 연결되어 상승적으로 발전하는 전통이 뿌리내렸다. 무력 집단은 상공인의 부를 이용하여 무력을 확장하였고, 상공인은 무력 집단의 힘을 등에 업고 상공업 활동을 확대하였다. 국가의 무력이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해외에서는 폭력을 동원한 약탈과 상업적 거래의 경계가 모호하였다. 국가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해적 내지 무역상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장려하였다. 서구의 식민지 쟁탈 경쟁은 국가의 무력과 상업적 이익이 결탁하여 전개한 프로젝트였다.

전쟁을 치르려면 거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력집단은 상공인과 어떤 형태로건 연결을 맺지 않고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서구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무기 기술이 경쟁적으로 발전하였으므로, 상공인의 우수한 무기 제조능력은 국가의 무력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무력집단과 상공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 모두, 기계적 우수성을 다투는 첨단 무기 개발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었다. 무기 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신무기를 개발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더 많은 연구자가 관여해야 하고, 더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20세기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서  최고조에 달하였다.  소위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완벽하게 형성된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군은 군대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평민을 대거 징집하여 전쟁에 투입하였으며, 전투 능력과 업적을 기준으로 군의 위계를 조직하였다. 징집된 평민들은 혁명으로 탄생한 모국의 사활을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함께 전쟁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두어 국민적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나폴레옹이 이끈 전쟁에 헌신적으로 임하였다. 그때까지 유럽의 지배자들은 평민들의 반역을 우려해 자국민보다 외국인 용병을 선호하였으며,  사회의 상층 계급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군의 지위권을 차지하는 관행을 유지하였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러한 전통적 군대를 전쟁에서 완전히 제압하므로서 새로운 군의 개념을 서유럽에 확산시켰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군의 무기체계와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증기기관 덕분에 운송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전쟁의 폭과 규모는, 과거 말과 마차에 의존할 때보다 훨씬 더 넓고 커졌다. 과거에는 전쟁을 치를 때 식량과 군수물자의 조달이 가장 큰 제약요인이었는데, 19세기 증기기관 철도와 20세기초 자동차는 이러한 제약을 완화시켰다. 군의 대규모 조달 물량은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에 적용될 초기에는 상업적 성공이 불확실한데, 군은 상업적 이해타산을 넘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생산품의 수요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계속된 전쟁은 인구 폭증의 압력으로 초래되는 사회불안을 피하는 효과적 방편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유럽의 인구 폭증은 기존의 농업 생산성을 넘어서는 규모였는데, 19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수백만의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으며, 잉여 인력의 상당수를 전장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20세기에 벌어진 제1,2차 세계 대전 역시 19세기의 인구 폭증 문제에 대해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거꾸로, 인구 폭증으로 인하여 사회불안 요소가 커지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인과관계를 추리할 수도 있다. 유럽, 특히 스페인, 영국은 자국의 잉여 인구를 식민지에 수출함으로서 인구 폭증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해외 혹은 시베리아로의 이민을 통해 인구 폭증 문제를 해결하였다. 반면 프랑스는 일찌감치 19세기 초에 출생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인구폭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전쟁은 기존의 관행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기득권 집단이 기존의 관행을 고집하다가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상대국이 실행하는 새로운 패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전쟁이 빈발하면서 서유럽 국가들 서로간에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보다 효율적인 새로운 관행을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효율적인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고집하다가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산업혁명 초기에 기존의 장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였는데, 19세기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소위 '미국식 생산방식(American Production system)'이라 일컬어지던 기계를 이용한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을 무기 생산에 도입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전쟁이후 민간물품의 생산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또한 전국의 농촌 벽지로부터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과거 전통사회의 관습을 버리고 도시적 합리적 행위 규범을 따르게 되었다. 

군과 민간 활동은 서로 영향을 교환하였다. 예컨대, 19세기 이래 서구 유럽에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대규모의 인원과 물자의 생산과 배치를 담당하는 사람을 민간 대기업의 경영자 중에서 구했다. 대규모 전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인원과 물자를 조달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합리적인 경영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전후 민간의 대기업 경영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동양과 비교해 유럽에서 무력이 크게 발전한 것은 여러 지역으로 차단된 지형적 원인과 함께, 농경이 아니라 유목을 생업으로 한 것에서도 부분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목은 생명 살상을 일상적으로 하며,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 많은 가축을 일시에 죽이는 관행이 지배하였다. 중국의 논농사와 달리 유목은 좁은 지역에서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으므로, 인구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전쟁이 서구에서 더 자주 벌어졌다. 중국의 논농사는 중앙집권의 권력이 농사에 필수적인 치수를 관리하였으며, 농사꾼은 자신의 땅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의 권력에 순종하였다. 동양의 집단주의적 가치나, 무력과 상공업을 경시하고 권위주의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는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수시로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중앙의 권력에 쉽게 반항하며, 서로간 생존을 위한 무력 투쟁도 불사함으로, 서구에서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강조되고 집단간 무력 경쟁의 릴레이가 전개된 것이다.

저자는 전쟁과 무력 활동을 도외시한 역사 서술은 피상적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집단적인 무력 행사는 인간 사회의 핵심을 차지한다. 무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경쟁하는지는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전쟁의 승패 위험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세계의 역사와 사회의 전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2023. 2. 15. 17:11

Laszlo Bock. 2015. Work Rules!: Insights from inside Google that will transform how you live and lead. Twelve. 365 pages.

저자는 구글의 인사관리 부문의 책임자이며, 이 책은 구글에서 인사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설명한다.

구글은 사원들에게 일의 내재적 가치를 강조한다. 돈이나 지위와 같은 외재적 보상(external reward)보다 사원 개개인이 느끼는 일의 보람, 즉 내재적 보상(internal reward)을 중시한다. 자신의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조직에 헌신한다.

구글은 사원들 간 지위의 차이를 최소화하며, 직급간 외면적 구별을 없앴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같은 식당을 이용하는 등등. 회사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들을 구성원이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한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동일하게 정보를 공유함으로서 사원들 모두가 회사에 헌신도를 높이며 공정한 일처리를 유도한다. 누구라도 의견이 있으면 주저없이 제시하고, 그러한 의견이 무시되지 않고 진지하게 검토하며, 의견을 제시한 사람에게 결과가 반드시 피드백되도록 한다. 모든 사안은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처리한다. 채용, 평가, 보상, 배치 등 인사관리의 모든 사안은 관련된 데이타를 구축하고 분석하여 효율성을 높인다.

구글은 사원을 선발하는 데 무척 많은 공을 들인다. 잘못된 사람이 들어오면 그가 발생시키는 문제로 인한 비효율이 엄청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선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똑똑해야 하며, 관련 업무 능력이 뛰어나며, 잠재력이 큰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여러단계의 객관적 테스트와 구조화된 면접을 실시한다. 짧은 시간에 급하게 사람을 선발하면 잘못된 사람을 선발할 위험이 높아지는 반면 좋은 사람을 선발할 가능성은 낮아지므로, 시간을 두고 여러사람이 간여하여 다각도로 면밀히 검토하면서 선발 과정을 진행한다. 선발 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사람의 의견을 모으므로서, 특정인의 편견이나 부당한 영향을 배제한다. 구글에 지원서를 낸 사람 중 1%이하만 선발될 정도로 매우 좁은문이다. 일단 이렇게 선발된 직원은 전적인 신뢰를 두고 일을 맡기며, 성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성과를 높이도록 코칭과 교육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도와준다. 그래도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도록 권하고 이직을 도와준다.

성과 평가는 다면 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상급자는 물론 동료와 하급자의 의견까지 평가에 반영한다. 성과평가 과정과 보수를 정하는 과정을 구분한다. 성과 평가를 통해 각자의 부족한 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기회를 가지도록 한다. 성과 평가는 10월에 하며, 보수를 정하는 일은 연말에 한다. 성과 평가를 돈으로부터 거리를 띠움으로서 성과평가에 감정이 덜 개입하게 만든다. 성과평가에서 최상위 5%를 차지한 사람들의 업무 수행방식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함으로서,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효과를 가져온다.

인간사의 많은 일은 정규분포가 아니라 지수분포를 따른다. 상위 10%의 사람이 전체 성과의 90%를 해내는 반면, 나머지 대부분은 이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그럭저럭 지낸다. 지식 산업의 경우 이러한 성향은 뚜렷하다. 회사의 보상체계가 능력과 성과의 극단적 불균형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과와 보상이 최대한 부합하는 성과주의(meritocracy)가 지배할 때만,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정말 유능한 사람을 특별히 후하게 보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높은 보상으로 유인하는 다른 회사에 이직할 것이다. 사원들 사이에 보상의 격차가 크면, 적게 받는 사람은 불만이겠지만, 그들에게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야 하는지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이 책은 구글의 인사관리 실태를 분석하기보다는, 구글의 인사관리 정책을 설명하는 인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 구글은 정말 모든 사람이 일하고 싶어하는 환상적인 직장인 것 같다. 회사의 영업이익율이 30%에 달하면, 인재가 사방에서 모여들고, 혁신과 개선이 이어지고, 모두 후한 보상을 누리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별로 없고, 잘나가는 순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갈수록 더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독보적인 조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글과 같은 엘리트 회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2023. 2. 12. 16:53

Joshua Greene. 2013.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Penguin books. 35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도덕성(morality)의 특성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편 타당성을 갖는 도덕율을 탐색한다. 저자는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율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최고의 대안인 "공리주의 Utilitanianism" 혹은 "결과주의 Consequencialism" 를 모든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진화의 과정에서 '협동' cooperation 이라는 우월한 특성을 수행하기 위해 발달하였다. 인간은 집단적으로 협동하여 일하였기 때문에 진화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이기적 존재이다.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협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집단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배반 행위를 규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도덕율이 바로 그러한 장치이다.

인간의 도덕성,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판단과 행위는 두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는, '감정' emotion 이다. 예컨대, 남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짓말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동정심이 들고, 배반당하면 분노가 치밀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혐오감이 들고,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를 하면 의기양양하고, 등등.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사람들 서로간에 행위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이웃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두번째 단계는,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꼼꼼히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의 도덕성은 첫 단계, 즉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것이 적절치 않은 경우가 있다.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을 상대할 때, 도덕적 감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속한 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감정적으로 꺼리지만, 전쟁에서 타집단 사람을 죽이면 칭송받는다. 나의 집단 사람을 속이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타집단 사람을 착취하는데 대해서는 부정적 감정이 일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월하게 보는 반면 타집단을 낮게 본다.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습득한 성향인데, 집단간 접촉이 드물던 수렵채취 단계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집단간 접촉이 빈번한 사회에서는 갈등과 비참의 원인이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려면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인간 내면의 소리, 등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공리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이때.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의 가치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는다. 어떤 행위가 옳은가 여부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라는 기준만을 적용해 판단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공리주의에 따라 행동하지만 항시 그렇지는 않다. 때때로 행위의 결과에 관계없이 직관적인 감정을 우선시한다. 예컨대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를 허용할 때 발생할 결과를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생명을 인간이 끊는데 대한 부정적 감정 때문에 반대한다. 그러나 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데, 이렇게 절대적인 의미의 '권리' right 를 주장하는 순간, 경험적으로 '결과'를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공리주의는 설자리가 없다.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세속적 인간이 의지할 유일한 판단 기준은 '경험적 사실'밖에 없다.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조차,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만 선택하여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편파적 선택에서 가장 자유로운 방식은 과학적 접근이다. 따라서 과학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여 객관적으로 수집한 결과에 따라,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가 다 옳다는 상대주의 또한 배격한다. 장기적으로 본 인간의 긍정적 경험, 즉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 도덕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철학적 문제를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적 접근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절학적 질문에 대한 참과 거짓의 판단은 일단 유보해 놓고. 공리주의적 접근은 세속적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잘 썼다. 다만 반복과 군더더기를 빼서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썼다면 훨씬 읽기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2. 2. 15:35

혹시 저와 독서 모임을 함께 할 분을 모집합니다. 한두달에 한번씩 만나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두시간쯤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요. 어떤 책을 함께 읽을지는 참여자들이 상의하여 정하고요. 저와 관심이 유사하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앞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일단, 소설류, 자기개발, 투자 관련 책은 우선순위에서 제외한답니다. 그보다는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선호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국내 작가와 국외 작가의 책을 가리지 않습니다. 국외 작가의 경우 저는 번역보다 원서를 구입하여 읽는 편입니다. 물론 독서 모임의 다른 분들은 번역본을 읽어도 무방합니다. 저는 번역글을 읽는 것이 원서를 읽는 것보다 어렵답니다.

다섯명 이내의 소모임으로 동일한 책을 읽고 만나서 토론한다면, 책을 읽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읽을 것이고 토론을 하는 가운데 아이디어가 활발히 교환되리라 기대합니다. 독서 모임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기한은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제게 이메일 (hslee@hufs.ac.kr)로 연락주세요. 서울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면 좋겠고, 남녀 연령 제한은 없습니다. 각자 사정에 따라 가끔씩 참여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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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 15:17

Rudolf Vrba. 2020(2002). I escaped from Auschwitz: The shocking true story of the world war II hero who escaped the Nazis and helped save over 200,000 Jews. Racehorse publishing. 446 pages.

저자는 17세에 슬로바키아에서 유태인 집단 이주 명령에 따라, 나찌의 유태인 집단학살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어 1942년에서 1944년까지 약 2년간 지내다가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는 탈출 후 유태인 조직의 도움으로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전세계에 알려지도록 했으며, 이후 전범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 유태인 학살 잔학행위에 연관된 사람들의 처벌에 앞장섰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일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가 어떻게 탈출에 성공했는지, 탈출 후에 어떻게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외부로 알렸는지 설명한다. 그가 수용소에 있던 2년동안 1,750,000명이 죽었다고 진술했는데,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아우슈비츠에서 200~30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전유럽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유태인을 잡아들여  신속히 살해할 수 있었을까. 유태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해 받고 있었다. 따라서 나찌 혹은, 나찌에 협력하는 지역 정부에서 그들을 새로운 곳으로 이주시킨다고 했을 때, 유태인들은 박해받는 곳을 떠나 미지의 삶의 장소로 이주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아우슈비츠로부터 탈출하여 그곳의 실상을 폭로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나찌의 집단 학살 정책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었다. 나찌는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통 보안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유태인들은 자식의 앞날을 위해 지금 사는 곳보다 앞으로 가는 곳이 더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이주 열차에 순순히 올라탔다.

이 수기의 대부분은 저자가 어떻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아우슈비츠에서 대량 학살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많은 보조 인력이 필요한데, 수용자들 중 건장한 사람을 선발하여 이러한 일을 맡긴다. 이들은 강압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작업에 동원된 수용자들은 굶주림의 위협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 건강을 계속 유지하는 한, 생존이 확보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우슈비츠에서 1년 이상 생존하는 사람은 드문데, 저자가 2년이나 죽지 않고 버텼다는 것은 예외적이다.

저자는 젊음의 활기 뿐 아니라, 상황을 잘 판단하고 신중히 행동하는 영민함을 갖추었다. 그는 독일어, 러시아어 등 다섯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힘있는 사람의 호감을 얻는데 유용하게 작용했다. 윗 사람이 그를 잠시 접해보고 호감을 느껴 그와 함께 일하도록 하는 일이 여러번 벌어진다. 사회적인 지위의 대물림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강제 수용소에서 도, 사람들의 인적자본의 차이가 지위의 차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는 전쟁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의학을 공부하고 이후 의학자로서 하바드 의대에서 교수까지 하였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드문 인재(elite)였음은 물론, 수용소 밖에서도 드문 인재(elite)였던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서 수용자들 사이에 지위의 불평등은 인적 자본과 운이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겪는데, 그때마다 운이 함께 하였다. 수용소에서 그가 쌓은 신뢰관계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를 신뢰하지 않을지 잘 판단하는 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결정인데, 그는 남의 마음을 읽는 눈이 있었다. 십장의 명령에 따라 규칙을 위반하다 발각되었을 때, 그는 엄청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그 십장의 관리하에 특별 대접을 받으면서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처음에는 순전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였지만, 집단 학살의 참상을 대면하면서 마음 속에서 분노가 쌓이고, 이를 그대로 지속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이 그를 계속 살게 한 힘이 되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이송된 사람들이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대량 학살 사업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라는 점을 깨닫고, 자신이 탈출하여 외부세계에 이곳의 실상을 알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아우슈비츠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부터 탈출을 염두에 두고, 그의 표현대로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접근하였다. 아우슈비츠 보안의 허점을 면밀히 탐색하고, 다른 탈출자들의 실패를 꼼꼼히 분석하였으며, 섣부른 충동이나 탈출 제안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다. 외부로 탈출하여 실상을 폭로할 것을 목표로 살았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되는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기억속에 저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탈출하여 슬로바키아의 유태인 조직 사람들에게 헝가리 유태인들의 대량 이주 학살이 계획되고 있음을 경고했음에도, 헝가리 유태인 조직이 자신의 나라의 유태인들에게 대량 이주의 실상을 알리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것에 분노했다. 전쟁후에 알게 되었는데, 헝가리 유태인 조직의 우두머리가 나치 우두머리와 거래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거래의 내용은, 상당한 규모의 헌금을 내는데 대한 보상으로, 헝가리 유태인 상류사회 사람들 1,800명이 스위스로 도망가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일반 유태인들이 대량 이주의 실상에 무지한채 순순히 이주 정책을 따르도록 한 것이었다. 그 결과 헝가리 유태인 약 4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한다. 1960년 초 영국에서 지낼 때 지역 신문에 아우슈비츠의 집단 학살 실상을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악의적인 사람으로 비난하는데 충격을 받고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나찌의 집단 학살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이 서구에서 적지 않다.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그것도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잔혹하게 수백만이나 죽일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죽이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기꺼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유태인의 집단 학살 사업은 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에게 이익을 제공하였다. 유대인 집단 강제이주 정책을 집행한 지역 사람들은 유태인이 떠나면서 남긴 집, 사업체 등 소중한 재산을 거져 빼앗았으며, 아우슈비츠에서는 유태인이 가지고 온 것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독일로 보냈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자들은 인근에 있는 독일의 군수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였다. 유태인을 처분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쌓았던 재산들은 독일과 지역 경제에 윤활유로 작용한 것이다.

이 책은 인재(elite),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재는 필요하며, 인재는 생존의 확율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간 사회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

2023. 1. 30. 17:19

Gary Marcus. 2008. Kludge: the Haphazard Evolution of the Human Mind. Mariner Books. 17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사고 작용에 내재한 결함을 설명하고, 그것의 원인을 진화에서 찾는다. 인간의 신체 기관은 진화를 통해, 초기에 단순한 것에서부터 조금씩 복잡한 기능을 덧붙이며 발전하였다. 그 결과 우리의 신체 기관은 '클루지'(kludg)의 집합체이다. 여기서 '클루지'란 당장의 필요에 따라 성급히 엉성하게 만들어진 땜질 처방을 뜻한다. 처음부터 복잡한 기능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만들었다면 그와 같은 땜질 처방을 하지 않았겠지만,  진화란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최적의 선택(total maximum)이 아닌, 그때그때 발달 과정에서 가용한 것(regional maximum)을 선택하였으므로 결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심리와 사고작용은 인체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겪어 진화했으므로 결함을 내포한다.

인간은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 장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의 대상과 과거에 그것을 체험한 맥락이 함께 얽혀 저장되어 있으며 불러일으켜 진다. 따라서 기억의 대상에 수반된 맥락이 기억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과거 원시 인간의 생존 조건에 기인한다. 과거에 체험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잘 기억해 내는 것은 원시인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맥락이 기억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며, 기억 자체를 외곡시킨다. 

사람들은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좀처럼 논리적으로 따지며 사고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복잡한 사안은 논리적으로 손익을 따지고, 미래에 예상되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만 잘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피곤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찬찬히 사고하는 능력은 가동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과 부합되는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자신이 믿는 것에 부합되는 사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부합되지 않는 사실은 소홀히 하고 외곡하여 인식한다. 믿음이나 감정이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인간은 즉시 혹은 단시간 내에 쾌락을 주는 것에 과도하게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에는 중요성을 덜 둔다. 나중에 후회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의 쾌락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은 오늘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성향을 타고 났다.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일을 미룬다.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과도한 염려와 초조함, 제어하기 힘든 분노 등과 같이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인간 심리에 내재한 다양한 결함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클루지'로 해석해야 한다. 오랜 인간의 원시 생존 시기 동안 진화된 뇌가, 생존 상황이 전혀 다른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된다. 이러한 인간 심리의 결함을 최소화하는 몇가지 방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다양한 여러 대안을 생각해 볼 것,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질문해 볼 것,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하여 인과관계인 것은 아님을 명심할 것, 자신의 생각이 충동과 감정에 의해 덜 좌우되도록 상황을 조정할 것(즉 피곤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 것, 중요한 사안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것), 이익과 비용을 대비하여 생각하는 습관을 키울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만일 제삼자라면 어떻게 할지,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등을 염두에 둘 것,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수시로 자신을 일깨울 것, 등.

이 책은 인간의 비합리적, 감정에 휘둘려 생각하는 성향에 대해 쓴 다른 심리학 책들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컨대,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간 본능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심리적 결함에 덜 빠지려면, 심리적 결함의 힘이 자신에게 항시 작용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자기 통제 훈련을 통해 생각의 근력을 기르고, 경험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생각의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적은 상황으로 자신을 조정해야 한다.

2023. 1. 28. 13:06

William H. McNeill. 1977. Plagues and Peoples. Anchor Books. 2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전염병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역사 전개에 따라 서술한다. 저자는 서구,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전지구적인 사람과 물자의 교환에 강조점을 두고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전염병의 역사는 이러한 역사 접근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전염병에 대한 자료는 미진하므로, 많은 경우 상황 정보를 종합하여 추론한다.

전염병은 인간과 접촉이 잦아지면 '문명화'(civilized)의 과정을 겪는다. 특정 전염병에 처음으로 노출된 인구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는다. 한 마을 전체가 몰살하거나, 백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에 치명적인 병원체는 대상 인구를 소진한 다음에는 계속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에게 덜 심한 피해를 입히는 변종으로 대치된다. 한편 이러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된 인구는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면역력이 없는 다음 세대로 대체되기 전까지 같은 전염병으로 다시 크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렇게 병원균과 인간 상호간에 적응(adaptation)이 진행되면,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태어난 면역력이 없는 아동들에게만 치명적인 병으로 안정화(stabilized)된다. 특정 전염병은 대체로 3~4세대의 주기, 즉 약 100년을 주기로 하여 다시 찾아와 큰 피해를 입힌다. 3~4 세대가 지나면 특정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염병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다시 큰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이 16세기까지 모든 인류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경험이었다.

인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전염병 즉 생물체에 기생하면서 숙주와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인 '미세한 기생충'(microparacitism),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인간에 기생하면서 그들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인간들인 '큰 기생충'(macroparacitism)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역사가 전개되었다. 큰 기생충의 적응 방식은 미세한 기생충의 적응 방식과 유사하다. 큰 기생충인 지배자들은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폭력을 바탕으로 전쟁, 약탈, 세금, 지대, 등의 방식으로 빼앗는다. 이웃 나라를 정복한 지배자들은 초기에는 생산자들이 생존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게 수탈하여 생산자들의 생산 기반을 몰락 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이 계속 생산을 할 수 있을만큼 남겨두고 수탈을 하며, 지배자와 생산자간 안정된 공생관계가 자리잡는다. 큰 기생충이 생산자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면, 생산자들의 영양 상태가 악화되고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여져 전염병의 피해가 커진다. 전염병이 몰아닥쳐 생산자들의 생산 능력이 떨어졌는데도, 큰 기생충이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탈을 계속할 경우,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을 적정 수준으로 착취하여 둘 간의 관계가 안정화된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즉 기원전 500년경에 이르러,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지역이 주요 전염병에 접촉한 경험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중동에 기원한 고대 문명과, 중국, 인도 문명 사이에 드물지만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때때로 이루어지면서, 통일되고 문명화된 전염병의 풀이 형성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로 인구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인구 증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안정 상태가 1,200년대까지 이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전염병이 사건의 전개에 미친 영향을 과소 평가하는데, 이는 전염병의 출몰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며,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 예컨대, 서구에서 아테네의 몰락, 페르시아의 패배, 로마제국의 붕괴, 중세 봉건제의 발달, 등에서 전염병의 발흥이 사건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요인이다. 또한 황하강 유역에서 시작된 중국문명이 1300년대까지 양쯔강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인도 북부의 세력이 인도 중부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 역시, 아열대 지역의 높은 전염병 위험이 서늘한 지역에서 시작된 문명의 남하를 막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지역은 전염병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낮으며, 생산력이 높지 못하여 큰 규모의 비생산인구를 부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몰살을 당하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이념과 권위 체계에 대한 신뢰를 거둔다. 대신 이러한 혼란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구하는 데, 기독교, 불교, 유교는 사람들의 고통을 토양으로 성장하였다. 세속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람,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기독교는 이를 하나님의 심판, 인간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설명하였으며, 죽은 다음 천국에 간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의 허무를 달래 주었다. 불교는 이러한 고통과 혼란에 대하여, 세속적 욕망에서 물러날 것과, 죽은 다음 다시 환생한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위무하였다. 유교는 가족의 유대를 강조하여 조상에서 자신 그리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연결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잊게 하였으며, 중앙집권 체제에서 가족의 확대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관료적 의례와 절차를 믿음의 일부로 만들었다.

1300년대에 흑사병이 유럽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흑사병은 쥐를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이다. 이 병원균은 히말라야 북단에 원천을 두고 있었는데, 1200년대 중반 몽고 제국이 이 지역에 정벌을 갔다 돌아오면서 병원균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징기스칸의 서방 정벌을 따라서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을 넘어 터키와 헝가리까지 진출했으며, 마침내 1300년대 초에 서유럽을 휩쓸었다. 몽고의 서방 정벌이 헝가리에서 멈추게 된 이유 역시 몽고 정벌군이 흑사병으로 크게 피해를 입어 후퇴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흑사병은 선박을 통해 이탈리아 북부에 유입되어 유럽 전체에 퍼졌다. 서유럽에서는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뒤, 이후 다시 흑사병이 몰려왔을 때 격리와 검역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점차 줄여 나갔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도입하지 않아 1700년대까지도 흑사병의 출몰로 큰 피해를 입었다.

흑사병은 기존의 권위와 이념 체계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중세 시대에 굳건했던 정통 기독교의 조직과 교리 대신에, 신비주의와 내면의 성찰을 강조하는 믿음이 활개쳤으며, 기존의 기독교 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1500년대의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흑사병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이 무력한 것을 체감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헌신이 약화되었다. 이는 1500년대에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난 르네상스와 과학기술의 발달을 낳았다. 흑사병에 대한 대응 조치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중앙집권이 확대된 반면 교회와 지역 영주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흑사병은 1300년 무렵에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도입되고, 이후 총과 대포가 발명되면서 봉건 영주와 기사의 세력이 약화된 것과 더불어 중세를 붕괴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흑사병은 서유럽 전체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는 중세의 생산과 사회관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한편 이 시기 중국에서는 몽고제국의 후손인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으며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는데, 이러한 변화 역시 몽고 지역에서 흑사병의 피해가 심각하여 지배력을 계속 행사하기 어려웠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1400년대 후반에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었다.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였으며, 바다를 통해 아시아에 진출하였다. 유럽 세력이 대양을 넘어 확장하게 된 원인은, 1300년대 이래 거듭된 흑사병의 위협을 이겨내고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대에 중국의 명나라는 해외로의 진출을 억제하고 중국 대륙 내로 한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지배하였으므로, 지배권의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펼쳤다. 반면 유럽은 중세의 봉건체제를 벗어나 중앙집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작은 나라로 쪼개졌으며, 이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유라시아의 전염병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었으므로,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마치 유럽인이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흑사병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처럼. 외부에서 온 전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반면, 이러한 병원균에 면역력을 가진 침략자들은 거의 피해가 없는 것을 보고, 전염병으로부터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생활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사회의 믿음과 권위 체계를 부정하고 침략자의 지배와 이념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1600년대 이후 유럽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웬만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전염병이 돈다고 해도 때 방역과 격리 등의 방법으로 전과 같이 큰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수입한 감자, 옥수수, 알파파 등의 생산성이 매우 높으므로 인구 전반의 영양 수준이 높아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이 이동하면서 유럽의 인구 압력이 낮아진 것, 등이 인구 증가의 원인이다. 1700년대에 들어 경험주의의 과학적 접근이 의료 분야에 확대되면서 병원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실증적인 방법이 개발 보급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홍역을 예방하는 예방 접종이 그것이다. 또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를 개선하는 조치들이 속속 전개되었다. 1800년대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병원균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전염병은 마침내 인류가 실체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대상이 되었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럽의 도시들은 주변 농촌지역보다 사망율이 높지 않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전까지 도시인의 수명은 농촌 사람들보다 낮았으므로, 계속하여 주변 지역으로부터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어야만 도시가 유지되었다. 1800년대에 서유럽의 위생과 의료 지식이 전세계의 유럽인이 진출한 지역에 보급되면서, 한 지역의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되어 몰살당하는 현상은 사라졌다.

이 책은 거의 반세기전에 집필되었음에도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유럽에 국한된 시야를 세계로 확대시키고, 지배자와 정치 분야에 집중된 전통적 역사 서술을 넘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아우르고 사회전반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안목을 제공한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2023. 1. 23. 17:10

홍완식. 2021. 소재, 인류와 만나다: 인간이 찾아내고 만들어온 모든 소재 이야기. 삼성경제연구소. 360쪽.

저자는 소재공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인류가 발견 혹은 발명한 소재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간략하게 소개한다. 돌, 금속, 청동기, 도자기, 콘크리트와 유리, 비료와 폭약, 철강, 섬유와 수지, 플라스틱의 순으로 설명한다.

각 소재에 관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발견 혹은 발명되었으며,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이용되는지, 등을 설명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화학적 조성을 포함해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하나, 뒤로 갈수록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이 분야의 연구자이므로, 각 소재에 대해 과학적인 배경 지식이 제시된다. 그러나 수시로 단편적이고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군더더기 인용이 많이 붙어 있어, 잡다한 상식을 넓히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하는게 아쉽다. 단편적인 사항을 망라하는 책은 다 읽고나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저자의 전문지식을 담아 각 소재에 대해 체계적으로 일반인이 알기 쉽게 정리해 설명했다면 과학분야에 좋은 책이 되었을텐데. 물론 그러러면 이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2023. 1. 22. 13:52

박창식. 2017. 언론의 언어 왜곡, 숨은 의도와 기법. 커뮤니케이션북스. 109쪽.

저자는 한겨레신문사 기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몸담은 한겨례말글연구소의 세미나에서 전개된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언론사들이 정치권력과 관련하여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지 설명한다.

언어는 말 자체의 의미와 함께 사회에서의 권력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은 언어 조작과 통제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며, 이는 사람들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릇되게 사고하도록 한다. 보수 언론은 권력의 편에서 언어의 조작과 통제에 가담하며, 진보 언론은 권력의 언어 조작 압력을 거부하려 한다. 근래 한국에서는 정치 권력 못지 않게, 대자본의 힘이 세기 때문에, 언론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며 언어 구사에 몸을 사린다.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인식을 통제하는 다양한 방식이 소개된다. 완곡어 사용, 프레임 설정, 의도적인 방향의 은유, 선정적 측면만 선택적으로 부각하기, 등이 권력자의 편에서 흔히 사용된다면, 진보 측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사과 등이 사용된다. 그외, 이념적 색채가 담긴 용어, 피동형 문체, 등도 권력자의 편에서 자주 사용한다.

이 책은 저자의 정치부 기자 경력이 곳곳에 잘 뭍어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례를 사용하며, 읽기 쉽게 쓰였다.

2023. 1. 20. 16:02

Daniel Kahneman, Oliver Sibony, and Cass Sunstein. 2021. Noise: A Flaw in Human Judgement. Little, Brwon Spark. 395 pages.

저자는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자들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할 때 저지르는 오류에는 어떤 것이 있고, 왜 생기며,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통계학적 논리가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다.

판사가 범죄자에게 부과하는 형량, 보험 감정사가 보험 대상에 대해 산정하는 보험료,  기업의 채용 인터뷰에서 지원자에 대해 매기는 평정 점수, 환자의 병에 대한 의사의 진단, 기업의 미래 매출 예측, 종업원의 업무 성과 평가, 등 거의 모든 평가와 판단 행위에서 평가자에 따른 평정 결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는 일반적인 평가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요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의 불일치가 심하다. 저자는 참 값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소음'(noise)이라고 칭한다. 사람들이 참 값에 근접한 평가를 할수록, 즉 노이즈를 줄일수록 효율과 공정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내지는 평가자들 사이에 불일치를 줄이는 것은 실질적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노이즈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여러 평가자들의 평균값이 참 값에서 멀어진 것은 '편견'(biase)에 해당하는데, 사람들은 평가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주로 이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노이즈는 편견과는 별개로, 평가자들의 값이 서로 간에 벌어진 정도이다. 노이즈는 평가자 각각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평균적인 성향인 level noise와, 이와는 별도로 특정 성격의 사례에 다르게 반응하는 pattern noise로 나눌 수 있다. 이 두가지 이외에도, 일관된 패턴이 없이 그때 그때의 평가 환경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occasion noise 가 있다. 

노이즈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평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 대신, 그보다 쉬운 다른 문제로 대치하여 평정하려는 심리적 성향, 평정하는 기준이 되는 잣대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 평정자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가치관에 기인한 특이한 평가, 등등.

노이즈를 줄이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평가자의 지능이 높고, 관련 전문성이 높을수록 노이즈는 작다. 여러 평가자들이 독립되게 평가하도록 하여 이들의 평가 결과를 평균하면, 개별 평가자의 평가 결과보다 노이즈가 작다. 이는 "군중의 지혜"(wisdom of the crowd)라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평가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배제함으로서 사전적인 편견을 줄이면 노이즈가 줄어든다. 평가 대상을 구성하는 영역을 분석적으로 구분하여, 각 영역에 대해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이들을 종합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면, 평가 대상에 대하여 뭉뚱그려서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노이즈를 줄일 수 있다. 평가 척도의 각 값에 대해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사례를 제시하여, 평가자들이 평가 척도의 각 값에 해당하는 사례와 평가 대상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평가하도록 한다면, 평가자에 따른 척도의 주관성 문제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평가 대상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평가 대상들에 대해 절대적 수준 점수를 부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수준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반면, 사례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평가는 비교적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 대상이 7개를 넘어서면, 인간의 마음이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복잡성의 범위를 넘어선다. 따라서 많은 수의 대상에 대해 일목에 전체를 비교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먼저 몇개의 큰 그룹으로 나누어 순위를 매기고, 각 그룹 내에서 다시 구성원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평가 대상을 그와 유사한 범주의 한 예로 간주하여 범주 전체의 평균을 기본(base)으로 하고, 평가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평가 값을 다른 한극점으로 하여, 두 극점 사이에서 평가 대상이 그가 속한 범주 평균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비례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훨씬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사건은 평균으로 수렴한다는(regress to the mean) 원칙을 응용한 것이다. 

기계적으로 규칙을 정하여 그에 따라 평가하거나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자동 평가하는 것이, 평가자 개인에게 재량을 크게 부여한 평가보다 노이즈가 훨씬 작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재량이 줄어드는 것에 심하게 저항하기 때문에, 기계적인 평가를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사람들은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기계나 규칙에 따른 자동 평가보다는 인간이 평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그에 따른 효율성 손실도 커지기 때문에, 규칙의 엄격성과 인간적 재량 사이에 어느 정도어데 타협점을 찾아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전 책인 Think, fast and slow 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연구 결과에 기반한 정보로 꽉꽉채운 제법 전문적인 책이다. 통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기에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저자의 번득이는 지적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규칙과 알고리즘을 통해 노이즈를 줄이는 것이 가능함에도, 전문가들이 판단의 재량권이 줄어듦과 함께 권위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갖은 이유를 대면서 규칙과 알고리즘의 도입을 반대한다는 비판이 통렬하다.

과거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의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deskilling" 현상이, 앞으로 전문직 분야에도 확대되리라 예상한다. 과거에 장인(craftman)이 준기술직 (semi-skilled)에 의해 대체되었듯이, 전문직 또한 준기술직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 영상 판독이나 시험결과 판단이 의사로부터 컴퓨터와 준기술직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세무사의 일이 세무 소프트웨어에 의해 대치되고 있듯이, 앞으로 판사와 변호사의 일이 법규와 판례를 해석하고 종합하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어느 정도 대치되는 날이 올 것이다.   

2023. 1. 16. 12:34

한혜경. 2022. 기꺼이 오십, 나를 배워야 할 시간: 오래된 나와 화해하는 자기 역사 쓰기의 즐거움. 297쪽.

저자는 사회복지를 교수를 하다 은퇴하여 노년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진행한 '자기 역사 쓰기'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떤 효과를 낳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사람들에게 50세는 성취와 실패, 기쁨과 실망의 경험이 축적되어,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웬만큼 알게 되는 나이이다. 수명이 늘어 이제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기에, 은퇴를 앞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숨어 있던 외곡과 자신을 힘들게 만든 요인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가 일생동안 자신을 따라다녔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아픈 기억을 자신에게 드러내는 자각의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이것에 지배되지 않는 마음의 힘을 얻는다.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자신을 부정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삶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찾으려고 하게 된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던 관성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더 이상 늦기 전에 해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회사 일에 매몰된 인간에서 벗어나, 직업이나 직장과는 별도로 진정한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사회복지와 심리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과 나이듦에 대해 잘 해석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생의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삶에 대한 회의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문을 품게 되는데,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처럼 자신의 지나온 삶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면 좋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엮어낸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 글을 읽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2023. 1. 15. 12:57

이즈미 마사토 (김윤수 옮김). 2014. 부자의 그릇: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다산 북스. 223쪽.

저자는 경제금융 교육 전문가이며, 이 책은 저자의 과거 경험을 소재로 쓴 우화를 통해 어떻게 돈을 관리해야 하나에 관해 교훈을 제시한다. 돈은 사람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돈의 힘에 휘둘려서 기존에 생각하던 방식이나 기존에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쳐버리기까지 한다.

돈은 삶에서 꼭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하게 하고 감정에 휘말리게 한다. 이 책의 우화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의 과거 사업 실패 경험을 이야기 한다. 그는 주먹밥 판매 사업을 시작하였을 초기에 매출이 급상승하여 흥분한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자신의 재무와 관리 능력의 범위를 넘어 여러개의 매장을 빚을 내어 서둘러 확장한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제품에 대한 평판은 썰물처럼 빠져버리고, 결국 빚에 몰려서 사업의 핵심 기여자들과 결별하고, 가족에게 소홀하여 이혼 당하고, 길거리에 나앉는다.  열심히 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을 그르쳐 실패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수준으로 서서히 사업을 키워 나갔다면 성공했을텐데, 일시적으로 돈이 벌리는데 흥분하여 신중함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돈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다. 돈을 관리하는 능력, 부자의 그릇을 키울 때,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돈을 맡기고, 부자가 될 수 있다. 돈은 결국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돈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돈과 공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 책은 돈을 버는 특별한 비결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위험 중 하나를 예로 제시할 뿐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운이 결합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짧은 시일내 큰 돈을 벌겠다는 성급함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돈관리 능력 범위 내에서 서서히 부를 쌓아 나가고,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이 길러지는 만큼 돈도 함께 벌리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의 능력과 운이 닿는 만큼 돈이 들어온다는 메시지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2023. 1. 13. 15:48

자청. 2022. 역행자: 돈, 시간, 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웅진 지식하우스. 289쪽.

저자는 온라인 상담사업, 유투버, 온라인 마케팅 사업으로 성공하였으며,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본능과 자아가 지시하는 길을 따라 습관적으로 살아가는데, 그러면 성공할 수 없다. 본능을 거스르고, 지금까지 살면서 구축된 자아를 버려야만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사는 사람을 순행자로, 본능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을 역행자라고 지칭한다. 인생은 게임과 같은 것인데, 게임을 잘 하려면 게임의 규칙과 이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하려고 하는 분야에 관해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다음 일곱가지의 길을 순차적으로 수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첫째, 자의식 해체. 사람들은 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이 자아는 변화나 새로운 정보에 대해 부정으로 일관하고, 외면하며, 자신의 상태를 합리화하는 데 능하다. 성공하는 첫번째 길은, 이러한 강고한 자아를 해체하는 일이다. 자신은 어리석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새로운 정보에 마음을 열고 배우려고 다가가게 된다.

둘째, 정체성 만들기.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이를 위해 관련된 서적을 열심히 읽고, 자신의 환경을 그러한 새로운 상에 맞게끔 바꾸어 가면서, 자신에게 변화의 압력을 가한다. 남들의 성공 수기를 열심히 읽으면 일종의 세뇌 작용이 일면서, 그러한 새로운 모델로 자신을 몰아가게 된다.

셋째, 유전자 오작동 극복. 인간의 뇌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면서 새로운 것, 변화를 거부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이러한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주위 사람의 눈을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해야 한다. 

넷째, 뇌 자동화. 운동을 통해 근육을 향상시키듯, 뇌의 기능도 훈련을 통해 최적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세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하나는 2년 동안 매일 책을 두시간씩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한다. 저자가 이를 실천해 보니 생각의 발전, 뇌의 효율성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강조한다. 두번째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적당한 일에 착수한다. 복리로 이자가 불어나듯이 조금씩이라도 매일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세번째는, 뇌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지금까지 안가본 길을 걸어보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여 뇌가 활발히 작용하도록 한다.

다섯째, 본능을 거스르며 사는 역행자의 지식을 체득한다. 자기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이를 극복하고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후하게 줄 때에만, 그 사람이 나에게도 베풀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확율에 따라 베팅한다. 성공확율이 높은 쪽으로 꾸준히 의사결정을 해나가면 결국 성공하게 된다. 설사 단기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다음번에는 더 업그레이드 된 접근을 하게 된다. 하나의 깊은 능력보다는, 각각의 분야에 대해 깊지는 않지만 다양한 여러 능력을 조합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와 독보적 능력이 만들어진다. 하나의 깊은 능력은 천부적 재능과 오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범인은 접근할 수 없지만, 여러 능력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길러 조합하는 방식은 보통사람에게도 가능한 성공의 길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기른다. 이 능력은 독서를 통해 동서고금의 지혜를 많이 접하므로서 길러질 수 있다. 먼저 안되는 이유를 댈 것이 아니라 일단 실행을 해본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아가 발전해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됬건 일단 실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섯째,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루트는 다음과 같다. 돈을 버는 근본 원리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는데 있다. 돈을 벌려면, 사람들이 어떤 것에 불편해 하고,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내야 한다. 일상에서 불편한 것, 힘들게 만드는 것에 항시 관심을 열어놓면 사업 아이템이 보인다. 저자는 이별로 괴로워 하는 사람을 온라인으로 상담하고, 마케팅으로 고민하는 사업가들에게 마케팅을 도와주고, 인생의 오작동을 바로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돈을 벌었다. 돈을 크게 벌려면 자신의 노동만으로 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축적한 자산, 예컨대, 부동산, 주식, 책, 유튜브 강좌, 등이 자신이 자는 시간에도 계속 일을 하여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업이건 성공하려면, 무턱대고 뛰어 들어서는 안되며, 관련 책을 열심히 읽고,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고, 관련 오프라인 강연을 쫒아다니는 등으로, 그 길을 터득해야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저자는 주말 오후 한가한 시간에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에 자신을 투자할 것을 권유한다.

일곱째, 역행자의 쳇바퀴. 인생은 새로운 도전을 항시 요구한다. 한 단계의 성공에 도달하면 한단계 더 높은 성공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본능을 거슬러서 사는 역행자의 인생은 결국 도전과 성장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성장, 성공의 단계가 높아지게 된다. 역행자의 길을 가지 않고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헤메며 불행하게 살게 된다. 성장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성장이 멈추게 되면, 열등감이 쌓이며 주위에 성장하는 사람을 시기하고 헐뜯는 불행한 인생으로 빠지게 된다. 돈은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인생을 자유롭게 해주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돈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 솜씨가 대단한 사람이다. 논리의 흐름이 부드럽고, 곳곳에서 적절한 사례를 구사하면서 읽기 쉽게 썼다. 저자의 꿈이 크게 성공한 작가라고 하는데, 이 정도로 재미있게 설득력 있는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성공에 대한 그의 조언도 어느 정도는 타당한 것 같다. 그의 글에서 배울 점이 많으며,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2023. 1. 12. 17:41

Howard Zinn. 1999.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present. Harper perennial. 688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모든 역사책은 강자,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나, 이 책은 약자, 억눌린자, 없는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백인 정복자가 아닌 인디언의 입장에서, 백인이 아닌 흑인의 입장에서, 부자가 아닌 빈자의 입장에서,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미국인이 아닌 제삼세계 사람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를 서술한다.

약자를 억압하고, 회유하고, 굴복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강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약속을 태연하게 어기고, 상대를 착취하고, 폭력으로 위협하고, 반항하는 사람은 고문하고, 신체를 훼손시키고, 죽였다. 약자는 강자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 짓밟히고, 때때로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반항하였다. 그러한 반항은 단기적으로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더 큰 억압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항이 거듭되면서, 크게 보면, 조금씩 처지가 개선되는데 기여하였다. 약자의 이익과 권리는, 강자에 대한 그들의 저항을 통해서만, 강자로부터 조금씩 양보를 받아냄으로서 진전되었다. 약자의 인간적인 삶의 권리는 결코 위로부터 시혜적으로 주어지 않았다. 피를 흘리는 투쟁을 통해 뺏어낸 것이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제도권은 모조리 가진자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오로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기여해 왔다. 미국의 양당 정치권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일반 사람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칙은 허울에 불과하다. 국민의 대표 중에 가지지 않은 자는 없으며, 이들은 가진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가진자를 위해 일한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일반인의 이익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치권에 대한 소외는 매우 심하다.

미국의 군사 외교 정책은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 정치인들이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을 언급할 때, 이는 미국 일반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의미한다. 미국은 제삼세계의 독재자를 지지하는 대신, 그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독립적인 지도자를 배제하는 데 열을 올린다. 제삼세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미국 자본의 이익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들 국민의 이익을 미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에, 미국은 갖은 수단을 써서 이들을 제거하려 한다. 중남미와 중동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 크게 걸린 곳이기에,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노골적이다. 칠레와 니카라과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CIA의 공작으로 만든 쿠데타로 뒤집어 엎었으며, 파나마에서는 운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조종하는 반군을 동원해 콜럼비아로부터 독립 정부를 세웠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석유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란, 이라크 등의 독재자를 지원하거나, 미국군을 동원하여 반대세력을 굴복시켰다.

이 책은 읽기 쉽게 쓰였으며, 곳곳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하기 때문에 서술에 힘이 있다. 역사란 지배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술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뼈져리게 느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약자의 좌절과 분노에 공감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 돌아가는 원리,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비록 달팽이의 걸음으로나마 약자의 지위가 나아져왔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오랫 동안 책장에서 먼지를 먹으면서 언제나 저 책을 읽게 될까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손에 잡으니 단숨에 읽었다. 대단한 책이다. 그가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제대로 커버했다면 정말 도움이 될텐데,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아쉽다.

2023. 1. 4. 12:38

Christian Rudder. 2014. Dataclysm: Love, Sex, Race, and Identity - What our online lives tell us about our offline selves. Broadway Books. 262 pages.

저자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유명한 데이팅 앱 OkCupid의 창립자이다.  이 책은 OkCupid에 축적된 사용자의 데이타를 활용하여, 20~49세 연령대 미국인의 태도와 행위 패턴을 분석한다.

여성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을 짝으로 선호하지만, 남성은 자신의 연령에 관계없이 20대 초반의 여성을 일관되게 선호한다. 따라서 여성은 나이가 들 수록 자신의 상대가 될 남자의 풀이 줄어드는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상대가 될 여자의 풀이 본인의 연령대 남성 규모와 비교하여 줄지 않는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나이가 들면  짝을 찾기 힘든 이유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선호하는 것, 자신이 선호한다고 대외적으로 말하는 것, 실제 행동하는 것의 세가지가 각각 다르다. 예컨대, 남성은 모두 20대 초반 여성을 최고로 선호하지만, 대외적으로 자신이 선호한다고 말하는 여성 상대의 연령 범위는 자신의 연령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이는 나이 든 남성들이 20대 초반의 여성은 나이 먹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젊은 여성에 대해 마음을 접기 때문이다. 모든 남성들은 속으로는 "영계"를 좋아하지만, 막상 자신의 데이트 상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자들이 하는 실제 행동을 보면, 자신의 연령에 따라 메시지를 보내는 여성 상대의 연령 범위를 제한한다. 아주 젊은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연령을 넘어선 여성들에게도 접근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메시지를 보내는 여성의 연령 범위의 상한은 35세 부근이다. 즉 여성은 30대 후반이 되면 남성들로부터 이성 상대로서의 매력이 크게 줄어든다.

여자건 남자건 외모가 좋을수록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물론 남성보다 여성에게 외모에 따른 인기의 집중 현상은 심하다. 그러나 외모가 좋지 않다고 하여 인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이한 면이 있다면, 못생긴 평을 받는 사람이라도 평균적인 외모의 사람보다 인기가 더 많다. "특이함," "고유성"은 사람들에게 평균적인 평범함보다 더 높게 평가된다. 물론 어떤 특정한 특이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러한 특이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엔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여성의 외모에 극도로 집착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성의 외모에 집착하는 정도가 약하다. 여성의 다양한 능력이나  특성은 외모의 압도적 비중에 억눌려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반면, 남성들은 그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성은 외모가 좋으면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더 많이 벌며,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누린다. 이러한 외모 집착 성향은 대부분의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예컨대, 직장에서 사원을 채용하는 주체는 대체로 남성이며, 이들은 신입 여성의 업무 능력보다 그녀의 미모에 따라 편향된 판단을 할 위험이 높다. 그 결과 여성은 자신의 업무 능력과 일자리가 요구하는 능력간 미스매치의 위험이 큰 반면, 남성은 그럴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업무 수행 능력이나 업무 성취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물론 여성에 대한 차별도 있겠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자신의 능력과 업무가 맞지 않는 불일치 정도가 크기 때문이다.

OkCupid에서 일시적으로, 사진을 비롯한 프로필에 대한 사용자들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한 Blind Dating Event를 실험적으로 실시했었다. 상대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정보 없이 그냥 상대를 접근하여, 메시지를 주고 받고, 대면 만남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후에 만남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외모나 기타 사전 정보를 가지고 접촉하여 만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블라인드 데이트 만남의 만족도는 당사자의 외모와 상관관계가 전혀 없었다.  이 결과는 사람들간 만남의 만족도 내지 만남의 질이란 외모에 크게 좌우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예쁜 사람과 만난다고 하여 예쁘지 않은 사람과 만나는 것보다 관계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예쁜 사람, 키큰 사람을 선호하지만, 어쨌건, 일단 만나서 시간을 보내면 상대의 외모는 상대에 대한 인간적 끌림에 별반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예쁜 사람은 똑똑하고, 다정하고, 이해심이 깊고, 예쁜 사람과 함께 지내면 더 행복하리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것은 착시 효과일 뿐이다.

데이팅 앱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분석해 보면, 여성은 자신의 외모와 관련된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남성은 의리나 스포츠와 같이 남성성을 상징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백인은 머리색이나 체형과 같이 신체적 특징을 많이 언급하는 반면, 흑인은 흑인 문화와 연관된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중남미 사람들은 라틴 음악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며, 아시아계는 출신 국가와 연관된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데이팅 앱에서 사람들이 상대를 평가하는 것을 보면, 미국인은 뿌리 깊은 인종주의자임을 확인한다. 백인을 선호하고 흑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흑인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이다. 아시아계가 흑인에 대해 가진 부정적 태도가 백인이나 히스패닉의 흑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보다 훨씬 심하다. 일반적으로 아시아계 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감정이 큰 반면, 아시아계 여성에 대해서는 긍정적 감정이 일반적이다. 각 인종은 자신과 동일한 인종의 이성 짝에게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준다. 아시아계 남성이나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가장 후한 평가를 하는 집단은 아시아계 여성과 남성이며, 흑인 남성과 여성에 대해 가장 후한 점수를 주는 집단 역시 흑인 여성과 남성이다. 각 인종은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자신의 이성 상대로 가능성이 가장 큰 인종 집단인, 자신이 속하는 인종의 이성 상대에게 가장 관대한 것이다. 흑인들 조차 다른 이성 상대와 비교하여 흑인 이성 상대를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주의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짐작케 한다. 백인 주류사회의 인종주의를 흑인들 또한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Google Trend나 구글의 자기 완성 self- complete 기능을 이용하면 일반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구글에서 찾아보려고 입력한 단어를 모은 빅 데이타를 제한적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기 때문인데, 사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기업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 때문에, 회사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한 활동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할텐데, 이러한 데이터들이 개별 회사의 테두리 내에 갖혀서 연구의 자료로 활용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다. 사회과학에서 많이 활용되는 방법인 여론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태도나 생각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론조사의 유효 응답율은 매우 낮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대외적으로 밝히기를 꺼려하며, 대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기대되는 방향으로 답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인터넷 활동으로  축적된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에 대해 데이터 사이언스 분석 기술을 적용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데이팅 앱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집착이 집중적으로 논의된다. OKCupid의 블라인드 데이트 실험을 통해 만남의 만족도가 당사자의 외모와는 무관하다는 결과를 얻었음에도,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예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쁜 사람과 함께 한다고 하여 더 행복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진화론적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외모가 좋으면 더 좋은 배우자를 더 많이 만나 많은 자손을 번식시킬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당사자의 삶의 행복과 후손 번식이라는 목적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은 진화적 압력에 따르기 때문에 예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그러한 끌림은 반드시 삶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호기심이 발동하고, 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기대됬다. 그러나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한 것에 비해서 그렇게 풍부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아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쉬웠다.

2023. 1. 2. 11:51

Louise Aronson. 2019. Elderhood: Redefining Aging, Transforming Medicine, Reimagining Life. Bloomsbury. 400 pages.

저자는 노인병 전문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이 늙는 것과 노인의 치료와 돌봄을 주제로 하여, 그녀의 임상 경험, 전문 지식, 역사적 사실, 개인적 경험, 평소 생각 등을 뒤섞어서 서술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여 인구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60세가 넘어도 20~30년을 살게 되었음에도, 노인은 우리의 생각과 사회담론에서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이다. 모든 면에서 노인은 젊은이나 중년보다 열등하게 취급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거의 모두 노인의 시기를 겪어야 함에도,  노인의 삶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과 경험으로 뒤덮여 있다. 의료계에서도 노인의 치료는 기피되는 분야이며, 노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헛되다는 선입견이 지배한다. 아픈 노인은 치료해도 쉬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든 악화하고, 결국 죽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신체는 젊은 성인의 신체와는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동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노인에 대해서도 별도의 연구와 진단이 필요함에도, 아동의 병에 대한 연구와 의사의 훈련은 보편적이지만, 노인의 병에 대한 연구나 의사의 훈련은 예외적으로만 이루어진다.

한편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보면, 젊은 시기보다 은퇴한 노인의 삶이 더 행복하다. 노인이 되면 젊은 시절 의식의 바닥에 흐르는 초조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사라지고, 주변에 골치썩이는 것들에서 해방된다. 물론 신체 능력이나 민첩도는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지만,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서 문제 상황에 빠질 위험성도 함께 줄어든다. 최소한, 젊은 노년층 (young-old), 즉 60세에서 75세까지의 시기에는 신체적 기능의 퇴화도 심하지 않고, 일상 생활 수행에 문제가 없고, 여행이나 취미 등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과거 인생의 어느 어느 시기보다 삶의 질이 높다. 물론 늙은 노년층(old-old), 즉 80세 이후에는 신체 능력의 퇴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일상생활의 수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 시기에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노인은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매도하는 것은 그릇되다.

모든 노인들은 자신이 익숙하고 오래도록 살아온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며, 이것이 노인의 건강과 복리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다.  방문 진료나 가정 방문 서비스 등을 통해 아무리 나이가 들은 노인이라도 자신의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노인의 복리를 높이는 길이다. 요양원과 같은 집단 시설은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인생의 최후의 단계에서만 선택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요양원에서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 특히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병원 산업은, 병을 치료하는 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구사해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현대 의학의 원칙은, 노인이라는 한 인간의 전인적 복리 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 한 인간 전체의 필요, 및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에 대해 복합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현대 의학은 병을 발생시키는 특정 신체 기관에 촛점을 맞추어 분절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겪는 병은 대체로 여러 인체 기관의 결함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다. 각각의 기관의 결함을 따로 따로 구분하여 분석적으로 다루는 접근은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노인의 건강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의학은 병을 치료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지, 환자의 건강, 나아가 환자의 복리 수준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의학은 병이 발생한 후, 이것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처치(treatment)에 집중한다. 반면 건강을 유지하려면, 아프기 전에 사전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 위생, 섭생, 운동, 사회관계, 삶의 목표 추구, 등이 그것이다. 이 요인 중 어느 것이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요컨대 의학 산업, 및 의료기관은 환자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처치 이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돌봐줄 사람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거주 환경이 부적절하다면, 아무리 병을 유발한 인체 기관에 대해 의학적 처치를 한다고 해도 병이 치유될 수 없다.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여 환자의 전반적 상황에 맞는 치료 방식을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개별적인 병과 인체 기관에만 국한하여 상황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치료하는 현재의 의료적 접근은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 노인들은 병이 난 후 의학적 개입을 통해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의학과 건강간 목표의 불일치 문제는 심각하다. 저자는 노인에 대한 전인적인 보살핌(care)의 일부로서 노인병에 대한 접근(geriatrics)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인병과 관련한 의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의학으로 치유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으며 고통이 심한 경우,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한다. 즉 환자 스스로 자신의 복리를 판단해 죽음을 택하는 경우, 이를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책에서 지금까지 그녀의 모든 경험과 지식과 생각을 녹여서 쓰고 있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책이다. 다만 같은 메시지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읽기가 어렵다.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텐데. 여하간 이책을 읽으면서 늙어감, 노인의 삶과 생각 등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다. 책을 읽는 내내 근래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함께 했기에,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2022. 12. 27. 11:54

Louis A. Bloomfield. 2013. How Things Work: the physics of everyday life. 5th ed. John Wiley & Son. 543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이 책은 비과학전공자를 위한 물리학 교과서이다. 일반 물리학 교과서와 달리, 일상에서 접하는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물리학의 원리를 말로 설명하는데 중점을 둔 반면, 수학은 최소화했다. 일반 물리학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운동, 물체, 유체, 열, 파동, 전기, 자기장, 빛과 전자, 핵물리의 순으로 설명한다.

매 찹터는 먼저 일상의 친숙한 사례를 언급한뒤, 이러한 사례에 맞는 물리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리학의 원리를 말로 설명하는 방식이, 운동, 유체, 열까지는 이해가 어렵지 않았으나, 파동, 전기, 자기장, 빛과 전자, 등으로 뒤로 갈 수록 점점 복잡해져서, 말로 설명한 것을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상의 사례를 언급한다고는 하지만, 책의 중심은 물리학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두어져 있다. 많은 일상의 사례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물리학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의 신비를 엿보는 느낌이었으며,  자전거, 단열, 전자레인지, 형광등, 등 일상의 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리학의 원리를 수학으로 설명하기보다 말로 설명하기가 훨씬 힘들다는 면에서, 이 책은 독특하다. 물리학의 원리를 말로 설명함에도 이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2022. 12. 2. 10:41

우치다 다쓰루 외 지음. 2018.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위즈덤 하우스. 294쪽.

이 책은 문화평론가, 생물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인구문제에 관해 한 장씩 쓴 글을 모아놓았다. 2100년 경에는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여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생물학자는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 과정을 전반적으로 훑은 뒤, 인구 감소는 인류의 적응 과정이라고 진단한다. 동물 세계에서 삶의 환경이 열악해질 때, 일시적으로 번식을 중단하거나 혹은 짧은 시간내에 번식을 크게 늘려 후손을 남기려 한다. 선진국에서 전개되는 인구 감소 현상은 동물계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니다. 선진국에서 출산이 줄어드는 것은 애를 키우고 사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 것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저출산은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데 공헌할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거대 자본주의 경제의 힘은 쇠퇴하고 작은 공동체 생활이 확대될 것이다.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기꺼이 애를 낳을 것이다. 

지구 전체로 보면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인구가 감소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여 2100년 경 90억 명에 도달할 때까지 인구가 증가한다. 지구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선진국의 인구 감소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 사이의 불균형은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다. 이후에는 전지구적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2200년에서 2300년 경에 세계인구는 50억 정도에서 인구가 안정된 정상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는 이유는 과거보다 결혼한 사람들이 애를 덜 낳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안하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결혼을 해야만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시장을 통해 삶의 필요한 것을 대부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한 사회가 도래 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면 선진국의 저출산 문제가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 

인구 감소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실상을 모르는 것이다. 영국의 경험을 보면, 경제가 쪼그라들고, 사회보장 혜택이나 주민 편의시설 등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편함과 음울을 경험한다. 축소지향 사회는 조금도 즐겁지 않다. 인구 감소에 맞추어서 재정을 긴축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확장과 성공을 지향할 때 삶의 의미와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지방이 소멸하는 이유는 지방에서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보다는, 지방에서는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문화적 놀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계가 확보된다 해도 젊은이들은 단조로운 지방을 기피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대도시에 문화적 놀거리가  집중되는 한 지방의 소멸은 피할 수 없다. 지방에서 아이들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키울 수있는 교육과 문화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인구 문제에 대해 인구학자나 경제학자들이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제시한 견해와는 달리 그야말로 다양한 생각을 망라한다. 글과 생각이 산만하고 건조하여 차분히 읽기 힘들며 대강 훑는 정도로 충분하다. 책을 읽으면서 선진국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전체로 볼 때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내린 결정의 결과라는 점을 확인한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인구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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