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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2. 10:41

우치다 다쓰루 외 지음. 2018.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위즈덤 하우스. 294쪽.

이 책은 문화평론가, 생물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인구문제에 관해 한 장씩 쓴 글을 모아놓았다. 2100년 경에는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여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생물학자는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 과정을 전반적으로 훑은 뒤, 인구 감소는 인류의 적응 과정이라고 진단한다. 동물 세계에서 삶의 환경이 열악해질 때, 일시적으로 번식을 중단하거나 혹은 짧은 시간내에 번식을 크게 늘려 후손을 남기려 한다. 선진국에서 전개되는 인구 감소 현상은 동물계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니다. 선진국에서 출산이 줄어드는 것은 애를 키우고 사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 것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저출산은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데 공헌할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거대 자본주의 경제의 힘은 쇠퇴하고 작은 공동체 생활이 확대될 것이다.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기꺼이 애를 낳을 것이다. 

지구 전체로 보면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인구가 감소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여 2100년 경 90억 명에 도달할 때까지 인구가 증가한다. 지구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선진국의 인구 감소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 사이의 불균형은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다. 이후에는 전지구적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2200년에서 2300년 경에 세계인구는 50억 정도에서 인구가 안정된 정상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는 이유는 과거보다 결혼한 사람들이 애를 덜 낳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안하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결혼을 해야만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시장을 통해 삶의 필요한 것을 대부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한 사회가 도래 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면 선진국의 저출산 문제가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 

인구 감소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실상을 모르는 것이다. 영국의 경험을 보면, 경제가 쪼그라들고, 사회보장 혜택이나 주민 편의시설 등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편함과 음울을 경험한다. 축소지향 사회는 조금도 즐겁지 않다. 인구 감소에 맞추어서 재정을 긴축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확장과 성공을 지향할 때 삶의 의미와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지방이 소멸하는 이유는 지방에서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보다는, 지방에서는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문화적 놀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계가 확보된다 해도 젊은이들은 단조로운 지방을 기피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대도시에 문화적 놀거리가  집중되는 한 지방의 소멸은 피할 수 없다. 지방에서 아이들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키울 수있는 교육과 문화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인구 문제에 대해 인구학자나 경제학자들이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제시한 견해와는 달리 그야말로 다양한 생각을 망라한다. 글과 생각이 산만하고 건조하여 차분히 읽기 힘들며 대강 훑는 정도로 충분하다. 책을 읽으면서 선진국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전체로 볼 때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내린 결정의 결과라는 점을 확인한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인구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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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Silvertown. 2013. The Long and th Short of It: The Science of Life Span & Agin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56 pages.

저자는 생물학자이며, 생명체는 왜 늙으며(scenescence)  죽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수행된 다양한 과학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면서 설명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늙고 죽는 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최적(fittest)의 선택을 한 결과이다.

생물 종에 따라 자연 수명에 차이가 크다. 인류는 19세기 중반 이래 수명이 지속적으로 연장되어 왔는데, 이러한 수명 연장은 나이 든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보다, 주로는 영아사망율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식이 가능해지는 사춘기를 넘어서면 노화가 일관되게 진행된다. 영양, 위생, 건강관리를 잘하면 오래 살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화와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수명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 오래 산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오래 산다. 근래에 백세 넘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은 생물체로서의 인류가 과거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보다는, 선천적으로 오래 사는 유전자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환경의 위험이 줄어들면서 과거보다 덜 일찍 죽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면 일찍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짧고 굵게 산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실제로 동물 세계에서 신진대사의 속도가 빠를 수록 수명이 짧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신진 대사의 속도가 느리면 오래 산다는 말이다. 적게 먹으면 신진대사 속도가 느려져서 생명이 연장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동물은 신진대사 속도가 빠르고 어떤 동물은 신진대사 속도가 느릴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동물의 경우, 크기가 작은 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크기가 큰 동물보다 신진대사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 반면 크기가 큰 동물이 신진대사 속도가 빠르면 지나치게 높은 열을 생산하기 때문에 생존할 수 없다. 동물 세계에서 크기가 클 수록 오래사는 경향이 있지만, 예외도 적지 않다. 하늘을 나는 새나, 땅 속에서 사는 두더쥐나, 바다에서 사는 조개류는 크기에 비해 훨씬 오래 산다.

동물의 수명은 크기보다는 태어나서부터 생식 년령에 도달하는 기간에 좌우된다. 일찍 자손을 낳은 동물은 일찍 죽는 반면, 늦게 자손을 낳는 동물은 오래 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리는 것이 동물의 삶의 목적인데, 자손을 낳은 다음에는 오래까지 살아야 할 필요성이 적다. 자손을 낳는 것을 끝낸 뒤에도 계속 사는 동물의 경우, 이는 자손이 생식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도와줌으로서 후손 확산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동물이 자손을 낳는 시기는 동물이 처한 환경의 위험도에 좌우된다. 동물이 처한 환경의 위험도가 큰 경우, 그 동물은 죽기 전에 빨리 자손을 낳아야 할 필요가 크므로 일찍 자손을 많이 낳고 죽는 것이 진화의 최적(fittest) 선택이다. 반면 동물이 처한 환경의 위험도가 작은 경우, 서둘러서 많이 낳고 죽는 선택보다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소수의 후손을 낳아 잘 키우는 것이 진화의 최적 선택이다. 만일 환경의 위험도가 작은데도 많이 낳는다면 개체수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환경의 위험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후손 번식에 해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동물은 환경의 위험에 따라서 후손을 낳는 것과 후손을 키우는 것 사이에 에너지 배분에 차이를 둔다. 환경이 위험하면 많은 후손을 빨리 낳아서 그중에 소수라도 성장하여 다음 세대를 낳도록 하는 것이 최적의 전략인 반면, 환경이 위험하지 않으면 후손을 낳은 것 못지 않게 후손을 잘 키워 그 후손이 다음 세대를 차질없이 생산하도록 하는데 부모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 최적의 전략이다. 오래살면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후손도 많이 만드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략일 것 같지만, 후손을 생산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생명체의 가용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많이 계속하여 후손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생명체를 많이 만들려 한다면 오래 살 만한 에너지가 남지 않으며, 오래 살려한다면 생명체를 일찍 많이 만들 수 없다.

왜 나이가 들면 노쇠할까?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낡은 세포를 새로운 세포로 교체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그러한 과정을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한다면 뇌쇠해야 할 이유가 없을텐데, 생물체가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진화는 생식이 가능한 시기까지 생식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형질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일단 생식의 시기가 끝나면 세포가 망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더많은 자손을 퍼트리는 것을 생명 활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체가 오래 사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생식의 시기가 지난 후에도 생명 활동을 활발히 지속하도록 하기보다는 생식의 시기 동안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자손을 잘 많이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진화의 최적 선택이다. 오래 살면 환경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후손을 추가적으로 생산할 가능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든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체를 오래 살려서 계속 후손을 생산하도록 하는 선택보다는 환경의 위험에 덜 노출된 젊은 시절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후손을 많이 만들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요소들이 축적되는 것을 진화의 선택 과정을 통해 차단하지 않기 때문에 노쇠하는 것이다. 생식의 시기에 생식에 유리한 형질 중에는 생식의 시기가 끝난 후 몸에 해를 끼치는 유전자도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생식의 시기가 지난 후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형질이라도, 그것이 적어도 생식의 시기 동안 생식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선택하는 것이 후손을 퍼트리는데 더 유리하다. 당뇨, 혈관계 질환, 치매 등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성인병은 대체로 젊은 시절에 생존과 생식에 유리한 형질들이 생식이 끝난 시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생물체의 몸의 세포는 낡은 것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능을 유지하지만, 교체 가능한 회수에 제한이 있다. 염색체의 끝자락에 위치한 telomer라는 부분이 복제를 반복할수록 길이가 짧아짐으로서 복제가 가능한 회수를 제한한다. 세포가 복제할 수 있는 회수를 제한해 놓은 이러한 장치는 세포가 통제를 벗어나 무한 복제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만일 세포가 복제를 무한 반복할 수 있다면 통제를 벗어나 암세포로 발전해 해를 끼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세포를 무한 복제할 수있게 함으로서 얻는 이익보다 세포의 복제 회수를 제한하여 사멸하게 함으로서 얻는 위험 회피 이익이 더 크다. 수명이 어느 정도 되는 동물은 모두 텔로머라는 복제 회수를 제한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식물 중에는 수천년을 사는 종도 있다. 일년생 식물도 있지만 식물 중에는 수백년을 사는 종이 많다. 왜 동물 중에는 이렇게 오래 사는 종이 없는데 식물 중에는 있는 것일까? 식물은 동물과 달리 생물체가 별개의 방으로 구분(compartmentalized)되어 있어, 한 부분이 망가지더라도 이웃한 다른 방은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 동물은 위험 요인으로부터 스스로 움직여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나, 식물은 위험 요인으로부터 스스로 움직여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것 같다. 오래 사는 식물들은 줄기의 일부가 죽지만 계속 새로운 가지와 싹을 티우는 방식으로 오래 산다. 오래사는 식물의 몸은 별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달리 세포가 무한 복제하더라도 통제를 벗어나  무한 복제를 하면서 몸체에 해를 가할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식물들 중에는 세포가 무한히 복제를 반복할 수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감자나 고구마이다. 감자는 죽지 않고 복제를 계속하면서 무한히 생존한다. 물론 일년생 식물들은 동물과 유사하게 후손을 남기고 죽는 선택을 진화시켰다. 위험한 환경에서 사는 식물들은 일찍 후손을 많이 만들고 죽는다.

과학 기술로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부정적으로 본다. 왜냐하면 노화라는 것은 생물체의 모든 기관이 고른 속도로 망가지는 과정을 밟는데, 한 기관이 망가져서 이를 보수하거나 새것으로 바꾼다고 하여도 다른 기관이 바로 고장날 것이다. 생물체의 생명 활동에는 많은 기관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기관들을 다 보수하고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를 조작하여 노화를 늦추고 오래 사는 형질의 유전자로 바꾼다고 하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노화와 생명 유지 시스템은 오랜 기간동안 진화를 통해 발전시킨 선택인데 이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임으로 바꾼다면 분명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노화와 수명을 늦추고 오래사는 것이 부작용 없이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진화의 과정이 일찌감치 이러한 해법에 도달했을 것이다.

지구상에 모든 생물은 진화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진화의 최적 전략은 개체의 후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이지 개체 자체의 복리나 행복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개체가 아무리 육체적으로 괴롭고 불행하게 느끼더라도, 그것이 후손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혹은 심지어 그것이 후손을 늘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개체는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도록 진화된다. 후손에게 자신의 몸을 먹도록 하는 곤충이나,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아 알을 낳으면 완전히 탈진해 바로 죽어버리는 연어가 가장 극단적인 예이다. 사실 그러한 삶을 사는 개체 본인은 그러한 상황을 불행하다거나 고통스럽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다면 그것을 회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느낌이란 몸이 행동하도록 지시하는 기능을 함으로, 부정적 느낌은 그러한 느낌을 유발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때문에, 연어 자신은 그런 상황에 대해 긍정적 느낌, 즉 황홀함이나 기쁨을 느낄 것이다. 후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개체 본인의 복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생물체는 후손을 늘리는 것을 우선시 하는 개체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대치될 것이기 때문에, 후손을 퍼뜨리는 것보다 자신의 복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개체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노화와 사멸은 후손의 번창을 최우선으로 하는 진화의 귀결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근래에 선진국에서 자손을 덜 낳고 자신의 복리를 우선시 하는 세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류는 산업화에 들어선 이후 진화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중단시켰다. 사람들 사이에 출생율의 격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도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만 그것이 인구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후손을 퍼뜨리는 것보다 개체 본인의 복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개체는 후손을 늘리는 것을 우선시 하는 개체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대체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인류도 이러한 과정을 밟을까? 애를 덜 낳는 대신 본인이 더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복리를 희생하면서까지 애를 더 많이 나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미래에 대체될까?  현재도 개발도상국에서는 애를 많이 낳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애를 덜 낳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상의 인류는 현재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후손이 압도적 다수인 상황으로 진행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예측은 반드시 맞지는 않는 것이, 개발도상국의 소득이 높아지면 그들도 자녀 출산을 줄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출산 행태와 빠르게 유사해진다.

이 책은 생물체의 노화와 수명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기존의 연구를 잘 요약 제시하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다만 저자가 문학적 묘사를 과학적 설명과 섞어서 구사하기 때문에 과학적 부분의 설명력을 흐리는 점은 아쉽다. 저자의 문학적 소양을 과시하면서 과학적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 본인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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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Damasio. 2018. The Strange Order of Things: Life, Feeling, and the Making of Cultures. Pantheon Books. 244 pages.

저자는 신경과학자이며, 이 책은 기분 혹은 느낌(feeling)이 생명 현상의 핵심이라는 그의 연구 결과를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몸의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려 한다. 여기서 항상성이란 열역학 제2법칙의 힘에 맞서서 주위 환경보다 높은 잉여 에너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는 병에 걸리고 궁극적으로 죽는 것이다. 즉 주위 환경과 에너지 수준이 같아지는 것, 이는 죽음, 즉 생명의 반대 상태이다.

느끼는 것(feeling)은 생명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메카니즘이다. 안좋은 느낌은 생명체의 항상성 유지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이다. 아프다던가, 컨디션이 안좋다던가, 힘이 없다던가, 막연하게 기분이 안좋다던가 하는 것은 무언가 나의 몸이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반면 기분이 좋고, 즐겁고, 힘이 솓구치는 느낌은 나의 몸이 잘 돌아가고 있으며 더 높은 에너지 수준에 올라 있음을 의미한다. 기분이란 생명체의 현재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다. 나의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중립적인 느낌이란 것은 없다.

우리의 몸의 내부로부터 항시 느낌이 나온다. 생명체는 이러한 몸의 내부 기관에서 포착하는 느낌에 무관심할 수 없다. 생명체는 나쁜 느낌의 원인을 찾아내어 해소하려 하며,  좋은 느낌의 원인이 지속되도록 노력한다. 우리 몸의 항상성은 느낌을 통해 관리된다. 기분은 우리를 움직이고 노력하게 만든다.  기분은 우리에게 행동의 동기(motivation)를 제공하며, 행동을 관리(monitor)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내는 느낌을 따라 행동한다. 느낌이 없다면 행동을 해야 할  욕구 혹은 힘이 나지 않는다. 오로지 이성의 힘으로만 행동을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생물체의 삶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의 이성은 느낌에 보조적인 존재이며, 느낌 만큼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의 두뇌는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과 몸의 외부 환경에 대한 느낌을 종합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우리 몸에게 적절한 행동을 지시한다. 두뇌와 몸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몸에서 나오는 느낌은 두뇌를 움직이고, 두뇌는 몸에게 행동을 계속 지시하면서, 느낌의 변화를 통해 적절하게 행동하도록 조절한다. 두뇌와 몸의 관계에는 의지로 통제할 수있는 수의기관과 의지로 통제 불가능한 불수의 기관 양쪽 모두 포함한다. 느끼지 못한다면 몸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방향을 가름할 수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여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죽을 것이다. 

몸이 내는 느낌을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는 메카니즘은 단순한 생물체나 고등 생물체나 비슷하게 작용한다. 박테리아와 같은 단순 생물체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신의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에 따라 행동한다. 빛의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위험한 포식자를 피하는 행위는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에 따른 행동이다. 우리의 척추와 두뇌의 뿌리(brain stem)에 있는 신경들은 단순 생물체의 느낌에 따른 반응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을 의식하지 않고 직접 몸에 행동하도록 지시한다. 우리의 몸의 내부 기관은 신경망을 통해 현재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두뇌에 전달하기도 하지만, 혈관이나 림프관으로 화학물질을 발산하여 두뇌가 이를 직접 감지하는 경로를 통해서도 느낌을 수신한다. 화학물질을 통해 몸의 내부 기관이 내는 느낌을 수신하는 것은 단순한 생물체가 가진 메커니즘인데, 고등동물에도 동일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우리의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을 포착하는 주체이다. 느낌이 없다면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두뇌는 느낌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몸이 내는 막연한 느낌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급의 사고 작용을 담당하는 두뇌 피질은 우리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과 몸의 외부에 대해 받는 느낌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우리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은 직접적인 반면, 외부의 환경에 대한 느낌은 간접적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몸의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데에서 인간의 문화 활동과 문화적 성과도 유래한다. 언어, 법률, 예술, 과학 등 모든 인간의 아이디어, 즉 지적 산물은 궁극적으로 인간 각자의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과 이를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고 높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 몸의 내부에서 나오는 느낌이 모든 행동, 즉 삶의 궁극적 원천이라는 그의 주장은 독창적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인지 능력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인간의 느낌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인간이 느끼는 느낌을 박테리아와 같은 단순 생물체의 느낌에서 뿌리를 찾는 그의 연구는 참신하다. 인간은 결국 불쾌한 느낌을 피하고, 좋은 느낌을 갖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는 주장이나, 나의 몸이 내는 느낌에 인간은 한 순간도 무관심할  수 없으며, 그 느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몸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느낌이 인류의 모든 문화 산물의 근원이라는 그의 주장은 좀 지나치게 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그의 글은 장황하게 쓰여져 읽기 어려웠다. 꾹참고 읽기는 하지만 대체 저자가 무슨 말을 할려고 하는지 요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을 찾아 듣고 나서야 그의 주장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연에서도 젠체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그래서 과학적인 사실을 서술함에도 글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솔직 단백하게 쓰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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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삼,김창욱,조원영. 2014.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삼성경제연구소. 321쪽.

저자는 경제 및 경영 전공의 연구자들이며, 이 책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플랫폼의 경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플랫폼이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한 후, 플랫폼의 발굴, 도입, 성장, 강화, 수확의 각 단계마다 극복해야 할 도전을 성공한 플랫폼의 사례들을 통해 서술한다.

플랫폼은 원래 '반복 활동을 하는 공간이나 구조물'을 의미하며, 비즈니스세계, 특히 제조업에서는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골격'을 의미한다.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공통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반 모듈', 혹은 '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토대'로 정의할 수 있다. 

기존의 사업에서 공통적 구조나 자산을 찾아 이를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UPS를 제시하고, 인터넷 확산이라는 기회를 포착하여 다양한 품목, 낮은 가격, 빠른 배송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사례로 아마존을 제시한다.

통신사가 장악하던 시장에서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여 성공한 예로 애플을 제시하며, 애플의 아이튠이라는 강한 플랫폼이 있는 온라인 음악 시장에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무기로 진출하여 성공한 사례로 Spotify 를 제시한다. 플랫폼 설계는 자체적으로 하되, 플랫폼 제공은 외부 참여자에게 개방하여 대규모 참여를 유도한 사례로 TEDx 를 제시한다.

승자가 불확실한 시장에서 수익화보다 고객 가치 제고를 통해 네크워크를 극대화한 사례로 페이스북을 제시하며, 네트워크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임계치에 도달할 때까지 가치있는 것을 플랫폼이 직접 공급한 사례로 유튜브를, 외부 자원과의 조건부 계약의 사례로 신용카드를 이용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스퀘어를 소개한다.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품질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참여자를 선별한 사례로 Teaching for America 를 제시하며, 유튜브는 회원들이 스스로 저질 및 불법 동영상을 걸러내는 자율 정화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용자에게 돈을 지불하도록 하기 위해 freemium 전략을 구사하는 사례로 에버노트를 제시하며, 이용자의 특성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정하는 사례로 클럽을 제시한다.

이 책은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경영학적인 개념을 알기쉽게 설명한 것이 강점이다. 매우 다양한 사례를 사용하므로서 플랫폼의 다양한 측면에 눈뜨도록 하는 전략도 효과적이다.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린데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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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29. 21:27

Addy Pross. 2012. What is Life? : How Chemistry becomes bi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 pages.

저자는 화학자이며, 이 책은 생명체의 특성과 근원을 설명한다. 생명체는 화학적 반응의 집합으로, 에너지를 소비하여 자기복제를 통해 영속성을 유지한다.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의 과정은, 물질이 자기복제 반응의 성공율을 높이기위한 복잡화(complexification)과정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체는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함에 비해, 무생명체 즉 물질에게 '목적'이란 의미가 없다. 어떻게 목적이 없는 물질이, 목적지향적인 존재로 바꾸어질 수 있었을까? 생명체의 목적은 자기복제이다. 자기와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드는 것이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이다. 

생명체란 불안정한 존재이다. 열역학제2법칙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에너지가 낮은 수준을 향하여, 질서가 흩뜨러지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생명체란 무질서의 세계에서 고유의 패턴, 즉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이며, 주위의 에너지 수준과 격차를 계속 유지하는 존재이다. 이는 마치 새가 계속 날개짓을 하면서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소비하는 대사작용(metabolism)을 통해 자기복제를 계속함으로서 이러한 불안정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개별 생명체는 열역학제2법칙에 따라 질서가 흩뜨러지고 주위와의 에너지 격차가 사라지는 과정, 즉 죽는 과정(decay and die)을 밟지만 자기복제를 통해 집단으로서의 생명체의 존재를 유지한다.

개체로서는 죽지만, 집단(population)으로서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동적인 안정성' (dynamic kinetic stability)이라고 지칭하면서, 샘물의 비유를 든다. 샘물을 구성하는 물은 계속 바뀌지만 샘물의 존재는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세포, 기관, 개체의 각 단위에서 개체로서는 죽지만 집단으로서는 존재를 유지한다. 예컨대 우리의 피부는 계속 죽고 동시에 새로 생성되는 과정을 지속하면서 피부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생명체의 동적인 안정성이 유지되는 이유는, 생명체의 자기복제가 지수적으로 증식(exponential growth)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가 복제되기 때문에, 개체들은 계속 사멸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의 존재는 유지된다.

과학자들은 유기물질로부터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RNA)를 합성해내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자기 복제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자기복제를 계속한다는 것은 열역학제2 법칙, 즉 질서는 무질서의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원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어떻게 자기복제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자기복제를 하는 서로 다른 두개의 존재가 합쳐져 서로의 복제를 촉진하는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기 복제를 하는 물질 간에도 더 잘 자기복제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간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자기 복제를 하는 과정에서 변이(mutation)가 나타나고, 변이된 것 중에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더 잘 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됬으며, 이후에는 진화적인 경쟁과 선택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자기복제를 잘하는 복잡한 존재 (complexification)로 발전하게 되었다. 복잡화는 자기복제의 수월성을 향하여, 즉 다른 자기복제 존재보다 더 복제를 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외부 환경의 다양한 틈새(nitche)를 자기복제의 효율을 높이는데 이용하면서 자기복제 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생명체가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슬러 동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모든 물질은 안정성(stability)를 향하여 진행한다. 무생물체는 열역학 제2법칙의 원리에 따라 에너지 수위가 낮고 무질서한 안정성으로 진행한다. 반면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는 동적인 안정성을 유지한다. 왜 생명체는 자기복제를 하려고 하는가? 자기복제를 하지 않으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무생명의 물질로 돌아가게 된다. 더 잘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압도하는 물리적인 상황을 두고, 우리는 생명체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박테리아의 세계에서도 더 잘 자기복제하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압도하는데, 이러한 객관적 현상을 두고 우리는 박테리아는 복제를 더 잘하기 위해 활동한다, 즉 목적 지향적으로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무생명체, 즉 물질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출현하였는가' 라는 근본적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과학적 탐구 과정을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한다. 생명체는 화학 반응의 집합이며, 생명체의 출현과 이후 발전 과정 역시 화학 반응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체란 자기복제 반응의 집합이며, 집합으로서 자기복제할 때 자기복제가 더 잘 되는 것, 즉 복잡화(complexification)의 과정은  화학 실험으로 증명되었음으로, 생물학과 화학을 잇는, 즉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잇는 연결 고리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불분명한 점은, 복잡화의 과정 중에,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더 잘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됬다고 하는데, 이점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한다는 것은, 즉 생명활동의 핵심인 대사작용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비생명체인 물질이 대사작용을 하는 존재로 바뀌게 되었는가하는 문제가 생명체 출현의 핵심이 아닌가?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는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었지만, 대사작용을 하는 존재는 아직까지 화학적으로 합성해내지 못했다.  여하간 대단한 책이다. 읽으면서 어려운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찬찬히 읽었다. 훗날 다시한번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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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19. 21:48

Carl Zimmer. 2021. A Planet of Virus. 3r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32 pages.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바이러스에 관한 다채로운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다. 바이러스는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을 뿐, 대사활동을 할 수 없다. 혼자서는 에너지를 소모해 일을 하지도, 외부 환경에 반응하지도, 번식하지도 못한다. 숙주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증식한다. 숙주의 세포 밖에 나와 있는 상태에서는 생명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기물에 가깝다. 최초로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인플루엔자, 라이노바이러스, 파필로마 바이러스, HIV,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SARS, MERS, COVID-19 등과 Small pox 가 논의된다. 

바이러스는 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19세기 후반까지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정밀한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에야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개 수는 수십개에 불과하며, 유전자 복제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제어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복제과정에서 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지구상 바이러스의 종류는 수백만개에 달하며, 지상은 물론 바다 속에도 매우 많이 존재한다.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박테리아에 기생한다.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의 세포에 침투하여 증식한 후, 세포를 파괴하고 나와 다른 박테리아에 침투하는 방식으로 확산한다. 바이러스는 지구상 박테리아의 폭발적 증식을 제어하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준생명체이다.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서로 섞거나, 혹은 숙주의 유전자와 자신의 것을 섞어 숙주의 유전자의 일부로 되기도 한다. 인간의 유전자 중 일부는 과거에 인간의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이다. 바이러스는 동물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때때로 동물세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몸속에서 살 수있게 되고, 인간에게 해를끼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종류가 많고 돌연변이를 많이 일으키기 때문에, 20세기초에 인플루앤자 바이러스나 근래에 HIV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앞으로도 인간의 몸속에 침투하여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언제냐가 문제일 뿐.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모기와 같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의 활동이 늘어나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 질병이 창궐할 가능성은 과거 어느때보다 크다.

과거에 인플루엔자나 사스와 같은 바이러스 질병이 한동안 창궐하다 사라졌는데, 어디에서 바이러스 병원균이 유래했는지 알기도 어렵지만, 왜 사라졌는지도 알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적합치 않은 환경이 조성되면서 사라졌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로는 치료할 수 없다. 다만 바이러스를 죽이는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바이러스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 유망해 보인다. 바이러스가 우리몸에 침투하여 증식하려 하면 우리몸이 항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다. 천연두 백신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바이러스의 종류가 많고 돌연변이를 자주하기 때문에, 특정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을 통해 우리몸에 항체를 형성하게 한다고 해도, 돌연변이한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듣지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대해 근본적인 방어는 불가능하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근래에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천연두 바이러스를 유기물에서부터 합성해낸 사례나, 유전자 조작 방식으로  COVID-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해 낸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에 병원균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백신과 달리 유전자 조작 방식으로 만든 백신은 바이러스 병원균의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내어 우리 몸에 주입시켜서 항체를 형성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인류가 바이러스라는 유전자 정보를 가진 준생명체를 합성해내는데 성공하므로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 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서 쓰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글이 읽기 편하게 쓰여졌고 독자의 흥미를 계속 붙잡아 두는 긴장이 유지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재밌었다. 책이 너무 얇고, 각 주제에 대해 논의가 깊어지려고 하는 지점에서 글을 멈추고 다른 주제로 옮아가는 것이 성에 차지 않지만, 저자가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는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구별하게 된 것만으로도 시간을 쏟은 보람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상 생명체의 세계에서 주역은 인간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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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Hill, Terry McCreary, and Doris Kalb. 2013. Chemistry for Changing Times. 13th ed. Pearson. 706 pages.

저자는 화학자들이며, 이 책은 인문계 학생들을 위해 쓴 화학 대학교재이다. 총 22개 장에 걸쳐,  원자구조에서부터 시작하여, 화학 결합, 화학 계산, 물질의 상태, 산과 염기, 산화물, 유기화학, 폴리머, 핵화학, 지구화학, 공기, 물, 에너지, 생화학, 음식, 약품, 건강, 농업 화학, 집안 주변의 화학물, 독성학 등에 대해 설명한다. 비과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므로, 수식과 계산은 최소화하고, 대신 서술을 많이하여 잘 읽혀진다.

오래전부터 화학에 흥미가 있었으나, 화학을 제대로 다루는 교양서를 찾을 수없었다. 화학 원리와 응용에 대해 제대로 서술한 책을 읽으려면 대학 교재를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한달에 걸쳐서 천천히 읽었다. 처음에 화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부터 유기화학까지는 체계적으로 써서 이해가 쉽고 흥미롭게 읽었으나, 뒤로가면서, 특히 생화학에서부터는 다양한 많은 사실을 망라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어 읽어내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화학이 설명하는 세상은 신기하고 흥미로웠으며, 화학 원리와 지식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면 이후의 삶이 흥미있게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큰 성과를 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읽는 내내 들었다. 가지 않은 길이기에 더욱 풀이 우거지고 파랗게 보였는지 모른다. 하는 일이 즐거우면 열정이 샘솟고, 열정적으로 일하면 좋은 성과를 내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성취는 다시 흥미와 열정을 낳는  식으로 선순환을 그리며 살고 싶은데, 지금까지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 정도 열심히 했고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일이 즐겁고 그래서 열정이 솟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겁게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

수학과 과학에 소질이 있던 학생이 고등학교때 인문계를 선택하여 그 길을 걸은 결과이다. 앞으로 남은 생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성과와 인정을 받고, 열정적으로 보람을 느끼며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자리에서 보람있는 삶을 살았노라고 자족하고 싶다.

2022. 8. 31. 17:13

Douglass North.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40 pages.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수행한 연구의 요점을 정리한 책이다.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사를 연구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선택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보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완전경쟁을 한다는 신고적 경제학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차단된 공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식적 제도와 비공식적 규범의 틀 내에서 경제활동을 한다. 제도란 incentive system에 다름이 아니다. 경제활동에서 핵심적인 제도는 소유권을 둘러싼 제도이다. 계약, 소유권,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가 공식적으로 마련되어 있고, 정치권력과 정부가 이를 성실히 준수하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낮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 반면,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부실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높으, 사람들은 생산적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높은 경제에서는 경제 참여자들 사이에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문화의 수준이 낮고, 전문화가 안되면 기술 개발이 힘들며, 생산 규모가 커지지 않는다. 개별 생산 규모가 작으면,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규모의 경제의 이익을 거둘 수 없다.

경제 발전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이다. 과거의 제도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변화는 느리게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혁명처럼보이는 경우도, 혁명적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실제 일이 이행되는 과정을 보면 과거의 제도가 여전히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제도와 규범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

북미와 남미가 다른 경제발전 경로를 밟게 된 것은, 이들의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과 스페인/포르투갈의 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왕권을 견제하게 되었고,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가 의회를 통해 제한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고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거래비용이 낮아졌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금융시장이 발달하게 되었고, 영국이 전비를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었기에 프랑스를 이기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소유권을 보장하는 제도는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었기에, 이는 산업혁명과 기업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반면, 스페인/포르투갈에서는 왕권과 그를 보좌하는 중앙정부의 관료가 지배하는 제도 환경이 지속되었다.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는 수시로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낳았으며, 그 결과 생산적 경제활동보다는 권력에 기생하는 이익추구(rent-seeking) 행위가 지배하였으며, 결국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중남미의 식민지가 모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과거 종주국의 제도를 물려받아, 권력자와 관료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허용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와, 생산적 활동이 장려되지 않는 제도 환경을 정착시켰다. 반면 북미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앙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 내고, 소유권과 계약의 이행을 공식적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정착하고,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면서, 이민자의 유입, 서부로의 진출, 생산적인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제도를 수입해도, 이것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한다. 제도는 여러 다양한 요소가 그물망처럼 엮여 있기 때문에, 특정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연관된 제도들이 함께 제대로 이행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규가 존재하지만 권력자와 관료가 개인의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하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부실하다면, 사람들 사이에 거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저자는 경제발전의 요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든다. 제도와 기술이 그것이다. 제도와 기술은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왔다. 소유권이 잘 보장될 때 개인의 창의와 기술 발전이 활성화되며, 기술이 발전하면 계약의 이행과 소유권 보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생의 연구를 종합하여 요약한 글이므로 매우 압축적이라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의 주장은 이제 사회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이 책은 그의 이론을 전반적 훑으며 통찰력을 얻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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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30. 17:43

Nolan Gasser. 2019. Why you like it: the science and culture of musical taste. Flatiron books. 645 pages.

저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곡하는 음악가이며, 인터넷 라디오 "판도라"에서 Musical Genome Project 를 수행한 경험을 배경으로 이 책을 썼다.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의 결정 요인을 음악 내적인 요인과 음악 외적인 요인의 양쪽에서 분석한다. 음악 내적 요인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 이론을 멜로디, 화음, 리듬, 형식, 소리 라는 다섯가지 측면에서 검토한다. 음악 외적 요인으로는 진화론적 배경, 소리의 물리적 성질, 생물학적 배경, 문화적 배경, 사회적 성격, 심리적 배경, 음악의 효과를 검토한다.

음악은 언어와 함께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 의사소통, 집단화합 등에서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었기에, 음악은 인류와 역사를 같이한다. 

멜로디와 화음이 우리 귀에 좋게 들리는 것은 소리 파장의 규칙적인 중첩 현상 때문이다. 소리 파장이 중첩되지 않는 음을 들으면 귀에 거슬린다. 따라서 음악이란 궁극적으로는 소리의 물리적 속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양에서는 7음계, 장조, 단조 음계가 발달한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의 다른 지역에는 이와는 다른 음계가 발달하였다.

음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12세 무렵이면 자신이 속한 문화에서 통용되는 음악에 두뇌가 굳어지며, 이후 다른 문화의 음악을 들으면 자신이 친숙한 음악과는 다르다는 차이를 느낀다. 따라서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취향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사람들이 나고 자란 문화이다. 자신의 문화에서 규정하는 음악 규칙과 다른 음악을 들으면, 생소한 느낌이 들고, 긴장하게 되고, 기억하기 어려우며,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음악은 자신의 집단 정체성의 일부이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음악적 취향은 계급 배경을 반영한다고 지적하였다. 문화적 취향의 차이는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음악은 사람들이 어울리고 동일시하는 집단, 즉 하위문화를 형성한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이 대표적 예이다.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에 차이가 있다. 내면 지향형 성격의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음악적으로 복잡하며 세련된 음악, 예컨대 재즈나 클래식을 좋아하는 반면, 외부 지향형 성격의 사람들은 격정적이지만 음악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음악, 예컨대 록, 컨트리 등을 좋아한다. 자신이 특정 음악에 많이 노출될수록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 친숙함이 좋아함을 낳는다. 개인적 성격 이외에 맥락에 따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차이가 있다. 아침에 운동할 때, 저녁 식사시간에, 잠자리에 들면서, 등 맥락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이 있다. 동일한 성격의 사람들도 맥락에 따라 다른 음악을 찾는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일곱개의 음악 '취향 모델'(genotype)을 설정하고, 각 취향 모델에 속하는 네 개의 곡을 예로 하여 개별 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팝(Pop), 록(Rock), 재즈(Jazz), 힙합(Hip Hop), 엘렉트로닉 춤곡(Electronica, EDM), 비서구음악(World Music), 클래식(Classical)이 그것이다. 각 취향 모델의 역사와 음악적 속성을 전반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은 비전공자도 읽을만 하나, 개별 음악을 분석하는 부분은 상당히 전문적이라서 비전공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은 사실상 두개의 책이 합쳐진 것이다. 음악 내적 요인을 설명하는 부분은 전문적이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반면, 음악 외적 요인을 설명하는 부분은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도 무리없이 읽어내릴 수 있다. 음악에 대해 사실상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커버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빽빽하게 집어넣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대강이라도 읽고 나서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음 분명하다.

2022. 8. 19. 19:56

Desmond Morris. 1999(1967). The Naked Ape: A Zoologist's Study of the Human Animal. Delta Book. 241 pages.

저자는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한 동물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일원으로서 인간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인간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중간 쯤의 행태를 보이며, 침팬지와 매우 흡사하다. 성, 성장, 탐구 활동, 싸움, 먹이활동, 안락을 추구하는 행위, 다른 동물과의 관계 등, 장을 달리하며 서술한다. 인간의 성에 관한 서술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자세하며, 다른 주제는 상대적으로 간략히 다룬다.

인간은 높은 지력을 지니고 이성적으로 처신하는 듯 하지만, 사실 다른 동물과 다름 없이 동물적 본능에 의해 지배되어 살아간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집단적으로 노력을 투입하여 일을 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태는 집단 생활이 원만하게 돌아가도록 맞추어져 있다. 예컨대 인간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기본인 이유는, 이러한 남녀의 짝짓기 행태가 다른 어느 방식보다 집단적으로 노력을 투입하여 살아가는 방식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쓰여진 책답게, 인구의 폭발적 증가 문제를 곳곳에서 언급한다. 인류는 최고의 포식자가 되어 다른 동물을 모두 제압하고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동물 세계에서 밀도가 높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 현상들이 인간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높기는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많은 생물이 멸종되었듯 인간도 앞으로 멸종될 가능성이 있다. 인구 폭증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이 책은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 행태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취급된다. 동물과 인간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이 나온 후에 많은 연구 성과가 쌓였지만, 저자의 솔직하며 냉정한 서술은 여전히 읽는 재미를 준다.

2022. 8. 12. 19:38

Frank Snowden. 2019. Epidemics and Society: from the Black Death to the Present. Yale University Press. 505 pages.

저자는 의료사를 전공한 역사가이며, 이 책은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전염병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서구유럽과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하며, 흑사병, 홍역, 황열병, 이질과 장티프스, 콜레라, 폐결핵, 말라리아, 소아마비, 에이즈, 사스와 에볼라에 이르기까지 장을 달리하며 다룬다.

서구의 의료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 로마의 갈렌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들은 인간의 질병을 신이나 악마의 행위로 보지 않고 자연현상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병이란 인간의 성질을 구성하는 네가지 요소가 불균형 상태에 빠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는 개입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는데, 사혈하는 방법을 주로 많이 썼다. 이러한 의료 철학은 19세기 중반까지  서구 의학계를 지배하였다. 19세기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균의 존재가 확인되고, 자연발생적으로 세균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감염에 의해 세균이 전파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야 비로서,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한 의학이론은 세력을 잃게 되었다.

흑사병은 유럽 사회를 오랫동안 여러번 휩쓸었다. 1200년대 초의 흑사병이 제일 심하기는 했지만, 17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휩쓸고 지나갈 때까지, 서구 사회는 흑사병을 때때로 경험하였다. 흑사병의 발생했을 때 그 지역을 집단적으로 격리하는 방법이 유일한 방어책이었다. 흑사병을 매개하는 쥐를 잡는 운동을 전사회적으로 벌인것이 약간의 퇴치 효과가 있기는 했으나, 흑사병이 서구에서 사라진 원인은 확실치 않다. 덜 심한 증상을 보이는 흑사병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에서 종종 발병한다.  

홍역은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하였으며, 매우 보편적인 전염병이다. 한때 유럽에서 전 성인 인구의 5분의 1이 홍역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죽거나 곰보가 되었기 때문에, 19세기 초반까지 곰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있었다. 19세기 초반 제너의 종두법이 보급되면서 점차 잡히기 시작했다.

황열병, 이질, 장티프스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밀접히 연관된다.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파견한 군대가 황열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패퇴하였다. 나폴레옹은 아메리카 대륙에 교두보를 잃게 되어, 그당시 북미에 프랑스 거대한 식민지 영토였던 루이지아나를 그당시 신생국이던 미국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철수 하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 이질과 장티프스로 많은 병사를 잃고 추위에 시달리다 결국 러시아 전선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전염병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전염병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었으며, 영국에서는 위생 상태를 높이는 사회적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 거주지 주변의 오염물에서 질병이 시작된다는 새로운 이론이 힘을 받으면서,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하고, 거리의 오물과 물웅덩이를 제거하는 등으로 전사회적으로 위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벌인 결과 전염병 발생이 크게 줄었다. 위생을 높이는 사회운동은 유럽 대륙과 미국으로 퍼져나가 1차대전때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서구에서 전염병이 줄어들고 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의료적 처치보다는 위생 상태가 개선된 덕이 훨씬 크다. 소득이 높아지고,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진 등 사회적 요인이 19세기 중반 이래 사람들의 건강 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켰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에서 발원한 전염병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였다. 흑사병, 홍역 등 이전에 주요 전염병이 대체로 계급을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발병한 반면, 콜레라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지역에서 콜레라가 주로 발병한 반면, 부유한 이웃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발병하지 않은 것을 예로 하여, 콜레라의 퇴치는 빈곤자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이제 콜레라가 퇴치되었지만, 빈곤이 만연한 지역, 즉 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여전히 콜레라가 때때로 창궐한다. 

폐결핵은 19세기 중반 병원균이 확인되기 이전까지는 유전적인 체질에 기인한 질병으로 여겨졌다. 폐결핵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고 유명 지식인들도 종종 걸렸으므로, 낭만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 폐결핵도 다른 전염병과 다를 것 없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붙여지면서, 폐결핵을 퇴치하는 사회적 운동이 벌어졌다. 맑은 공기를 쐬면서 요양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가 지배하면서 요양원이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항생제가 발견될 때까지, 자연 치유를 제외하고 폐결핵에 걸려 낫는 신뢰할만한 방법은 없었다.

말라리아는 더운 기후에서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인데,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살충제롤 대량으로 살포하여 모기를 박멸하는 운동을 통해 말라리아를 퇴치하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전개된 곳으로,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대량 살포만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하려는 노력은 실패하였다. 살충제 살포와 함께 예방적으로 키니네를 취약 인구가 집중적으로 복용하고,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주거환경과 영양상태가 개선되는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침네 사르디니아 섬에서 말라리아가 완전히 퇴치되었다. 사르디니아의 퇴치 사례는 전세계의 열대지방에서 지금도 말라리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한가닥 희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글이 건조해지고 내용의 정제가 덜 된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전염병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으나, 분석의 깊이가 얕고, 잡다하게 많은 사실을 망라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여 읽는 재미가 덜하다. 예일대학교의 개방대학 강의안에 기초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서구의 전통 의학을 지배한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의 의료 이론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험과 관찰에 의지하여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장려하기보다, 고전과 정통 이론을 고수하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배격하는 방식은, 마치 동의보감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인용하는 한의학의 태도와 흡사하다. 

2022. 7. 27. 17:21

Edward Wilson. 2004(1978). On Human Na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9 pages.

저자는 개미 연구로 유명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에서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기반 위에 있으며,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생존과 자손번식에 도움이 되는 속성이 선택되어 오늘날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 인간의 사회 활동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사회적 실험은 실패했다. 대표적인 예로, 자녀를 부모와 떼어내 공동으로 양육하는 공동체 운동이나, 남녀간의 가족 형성 원칙을 부정하는 집단적 공동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가지 인간의 속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첫째는 공격성(agression) 이며, 둘째는 섹스이며, 셋째는 이타주의(altruism) 이며, 넷째는 종교이다. 공격성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은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집단(내집단)과 속하지 않은 집단(외집단)을 구분하고, 외집단에 대해 적대적이다. 이러한 속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확산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내집단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족이며, 이 범위는 맥락에 따라 넓혀진다. 인종, 민족, 성별, 종교, 지역, 계급 등 사람들이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사람들 사이에 교류가 늘면서 다른 기준의 중요성은 줄어드는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의 중요성은 남아있다.

둘째 섹스. 섹스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후손을 번식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인간에게는 남녀간 결합을 형성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시키는 목적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인간이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부와 모의 헌신적인 투자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여자는 발정기가 따로 없고, 항시 섹스가 가능하며, 일부일처의 가족이 기본으로 자리잡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남성은 자신의 여자의 섹스를 독점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자녀를 키우는 데 헌신하는 거래를 한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반면, 여성은 인간관계에 민감하고 수동적인 이유 또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이타주의.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잇는 생물적 본성과 연결된 이기적 행위이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자신과 유전자를 일부 공유하는 친족이나 집단의 복리가 높아진다면, 결국 자신의 유전자가 후대로 이어지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넷째, 종교. 전통적 종교의 교리의 일부는 생물학적 본성에 위배되거나, 현대 도시 산업사회의 삶에 맞지 않는 부분을 담고 있다. 종교가 만드는 집단 헌신은 집단의 복리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중세시대에 마녀 사냥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안전핀 역할을 했다. 동성애를 금하는 종교의 가르침은 동성애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세계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을 부정한다. 동성애의 진화론적 존재 이유가 명확치 않지만, 동성애가 동성애자가 포함된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유전자가 이어지고 있다. 전통 종교가 남성 우위의 이념을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수렵채취 시절에 맞는 생존방식이지만, 현대 산업사회의 생활과는 맞지 않는다. 

인간의 생물적 속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체계적으로 알게 된다면, 인간 사회와 문화의 가용 범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물적 속성에 대한 체계적 지식은 인간에게 더 나은 사회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다. 근래에 인간 도덕의 생물학적 배경을 탐구하는 활동이 대표적 예이다.

이 책은 저자의 과학적 연구 활동을 바탕으로 인간 사회와 인문학에 확장해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 글이다. 1970년대 중반에 쓰여져서 제시하는 사례나 핵심 논의가 약간 낡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 동물행동학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듯이 생물학적 지식에 기반해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설계하려면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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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25. 19:09

James Scott. 2017. Against the Grain: A deep hostory of the early states. Yale University Press. 256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예로하여 국가가 생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국가는 인류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게 되면서 생겨났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란 국민들을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깡패짓(protection racket)과 비슷하다.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해야만 이러한 깡패짓이 가능하다. 수시로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화전민 등이나, 곡물을 재배하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자원으로부터 수렵채취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산간지역 혹은 소택지와 같이 외부의 세력이 쉽게 지배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국가가 출현하지 않았다. 역사는 국가의 틀에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였으므로, 국가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지한 '야만인'(barbarian)으로 비하하고, 자신들을 문명화된 사람,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삶의 질 면에서 보면, 국가의 틀 내에서 사는 사람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야만인의 삶이 훨씬 양호하다.

인류는 신석시 시대 이래 오랫동안 수렵채취의 생활을 이어왔다. 농경생활이 시작된 것은 서기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이다. 이곳은 매년 규칙적으로 강물이 범람하여 비옥한 농경지를 만들었기에, 큰 노력없이 곡물을 파종하고 수확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 중국의 양쯔강 하구, 인도의 인더스강 하구, 북미의 미시시피강 하구, 등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처음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특정 시점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채취와 농경을 함께 하면서 생활했다. 수렵채취는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통해 영양을 균형있게 섭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식량 자원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자원으로 보완할 수 있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버티는 힘이 강하며, 노동 강도가 높지 않으며, 인구밀도가 낮으므로 역병으로 죽을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생존방식이다. 반면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치며 사는 농부의 삶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덕으로 인한 생존위협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며, 집중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며, 전적으로 곡물에 의존한 섭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에 해로우며, 사람들 및 사람과 가축의 밀집 거주로 인해 역병이 자주 돌아 쉬 죽는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인간이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인구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요컨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동하며 수렵채취를 하는 사람들의 삶보다 열악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수렵채취를 포기하고 한곳에 정착해 곡물을 재배하는 쪽으로 바꾸었을까? 인류는 한 시점에 수렵채취로부터 전업 농업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렵채취을 하고 또 일부는 농업을 부업으로 하면서 살아갔다. 다만 소수의 특별한 환경의 지역에서만 전업농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메소포타미아, 나일강 하구, 황하강 하구 등이 바로 그런 특별한 지역이다. 그러면 왜 그 소수의 지역에서 전업농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가능성을 지적한다. 기후와 환경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주변 지역에서 수렵채취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졌거나 아니면, 국가의 폭력이 바로 이들을 그곳에서 그렇게 살도록 가두어 놓았다. 사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국가의 멸망이 빈번했기 때문에, 곡물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수렵채취로 되돌아가고 또 이들이 곡물 농업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두 종류의 사람들 간에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져 있지는 않았다.

기후가 온화하고 매년 비옥한 농토가 만들어 지는 지역에서 곡물 재배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곡물 재배는 사람들 사이에 부의 편차를 크게 벌리며, 지위의 차이가 큰 사회를 만든다. 농사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이들은 국가의 지배집단이 되어 생산자를 착취하면서 살아간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먹고사는 범위를 넘어 추가적으로 노동을 투입하여 과잉생산을 하는 이유는, 국가의 지배집단이 그들이 생산한 것의 상당부분을 강압적으로 뺏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대에 농업 생산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므로, 비생산 인구를 많이 부양할 수 없으며,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가 생존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예기치 못한 변화 때문에 농사 작황이 나쁘면 그 희생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와 지배집단은 노예 혹은 거주의 자유가 없는 농노를 통해, 생산자들을 한곳에 붙박혀 도망치지 못하고 힘든 일을 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고대는 물론 중세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농업 국가의 부의 원천은 땅 못지 않게 노동력에 있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서로 전쟁을 벌여 땅과 노동력을 탈취하였다. 고대 국가에서 노예제는 보편적인데,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노예상들을 통해 노예를 사고 팔았다. 농노와 노예의 삶의 수준은 열악했으므로, 출생율이 낮고 사망율이 높아 인구 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사람들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인간과 가축이 근접해 사는 농업사회에는 역병이 자주 발생하여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곡물을 재배할 환경이 양호하며, 국가의 지배자들의 착취를 피해 도망치기 어려운 평야지역에서만 국가가 출현하였다. 반면 산간이나 소택지나, 전적으로 곡물 재배에 의존하지 않고 수렵채취로 살 수 있는 지역이나, 곡물을 재배한다고 해도 수년에 한번씩 이동하는 화전민에게는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았다. 곡물을 재배하는 평야지역에서도 농작물 작황이 극도로 나쁜 경우, 국가의 권력이 미지지 않는 주변지역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많았다. 국가의 권력은 한곳에 붙박이로 곡물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행사된 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상업, 공업, 어업, 임산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왜냐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이동하고 생산과정과 생산물에 대해 외부인이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워, 이들을 착취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집단은 이들을 항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시아의 농업사회에서 농업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했던 배경에는, 바로 국가의 지배집단이 이들의 활동을 장악하기 힘든 점이 암묵적으로 작용했다.

소수의 곡물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초기의 국가는 취약하여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곳에서 매년 동일한 소수의 곡물을 재배하는 농업 방식은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여 생산성이 높지 않으며 생산량의 진폭이 심하였다. 기본적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생산성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황이 특히 좋지 않은 경우, 세금과 부역으로 착취를 당하고 농민들의 삶이 더 열악해져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해가 갈수록 삶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민들이 도망치고, 반란이 일어나고, 이웃나라와 전쟁에 패해 파괴되면서 국가는 멸망한다.

국가가 멸망한다고 하여, 그곳에 살던 사람들까지 모두 일시에 죽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배집단의 착취를 피해 주변 지역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고 수렵채취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승리한 국가이 지배집단 밑에서 노예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국가에서 농노로 일하나, 승리한 국가에서 노예로 일하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문화가 유사한 이웃나라의 노예가 되면 조만간 그 나라의 하층 계급의 일원이 된다. 이후 새로이 노예가 유입되면서, 계층의 사다리에서 한단계 상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역사는 국가의 기록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을 문명화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은 무지한 야만인으로 비하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변의 다양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농업에 기반한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생산되는 산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둘간에는 상호의존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는 구리, 아연, 등의 광산물, 모피와 가죽, 목재, 기타 산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생산하여 국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곡물과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변방에 위치하며 이들을 이어주는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동력이 좋고 무예에 능하기 때문에 국가 내에 사는 사람들을 수시로 위협하는 존재였다. 중국의 변방에 위치한 흉노족, 위구르족, 만주족, 몽고족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의 힘이 강할 때에는 이들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지만, 국가의 힘이 약할 때에 국가의 영역 밖에 위치한 사람들은 수시로 국가를 침범하고 멸망시키기도 하였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같은 강력한 권력 기구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내에 지위의 격차가 크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삶이 자유롭고 분방하다. 그러나 변방인들의 삶이 반드시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그들 사이에 전쟁을 벌여 노예를 포획하여 국가에 팔며, 그들 자신이 국가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서기 1500년경까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구에도 상당한 규모였다. 이후 국가의 권력이 커지면서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쪼그라져, 결국 서구에서는 사라졌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적 연구의 결과이며, 동시에 저자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는 글이다. 저자는 국가를 지배집단이 폭력을 독점하며 생산자를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도구로 본다. 전형적인 막시스트의 관점이다. 무정부주를 신봉하는 저자의 설명이, 한편으로는 맞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 세계는 국가를 통해 거대한 집단적 노력을 투입하여 기술발전, 풍요, 평화를 거두었다, 최소한 서구 선진산업사회에서는. 국가가 없다면 이러한 위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극심한 빈곤이 횡횡하며, 빈부의 차이가 크며, 폭력이 난무하며,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일찍 죽는다. 물론 서구의 국가에서도 집단 노력의 산물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고 있지는 않다. 계층 차이는 매우 크며, 국가는 지배집단의 이익을 중하층의 이익보다 더 보호한다. 여하간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2022. 7. 19. 17:46

Oliver Sacks. 1998(1970).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and other clinical tales. Touchstone. 233 pages.

저자는 정신의학자이며 작가로 유명세를 거둔 사람이며, 이 책은 두뇌가 손상된 환자를 보는 그의 정신의학 임상 경험 중에서 특이한 사례들을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한다. 크게 네 범주로 구분하여 사례들을 서술한다. 첫째는 정상적인 정신 능력이 결여된 사례이며, 둘째는 정신 능력이 지나친 사례이며, 셋째는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는 사례이며, 넷째는 지극히 단순화된 세계에서 사는 사례이다.

첫째, 정상적인 정신 능력이 결여된 경우를 보면,  한 측면에서 보면 결핍으로 인한 장애에 불과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이한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추상적인 패턴 인식은 가능하지만 대상에 대한 구체적 종합적 인식이 결여된 경우, 모자를 잡는 대신 아내의 머리통을 잡는다. 과거 상당기간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여, 수십년전 마지막 기억이 남아있던 그때로 현재를 인식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여, 자신의 다리나 팔을 자신의 것이 아닌 객체로 인식한다. 평형 감각을 상실하여 주위의 세계가 계속 출렁이는 느낌을 갖는다.

둘째, 정상적인 정신능력이 과잉인 사례는 낭만적으로 묘사된다. 투렛(Tourette)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여진, 과잉 에너지 과잉 감정으로 넘쳐나는 환자, 70이 넘었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절실한 감정을 주체못하는 환자, 자신이 누구인지가 순간순간 바뀌면서 쉴새없이 이야기를 하는 환자, 주위에 있는 다수 사람들을 모방하는 행위를 쉴 새 없이 하는 환자. 이들은 자신의 장애 때문에 고통받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감정에 대해 긍정적인 눈길을 보낸다.

셋째,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는 사례들은 양가적인 관점에서 서술한다. 과거 어릴 때의 일을 놀랄만큼 또렷이 기억해내는 환자, 주위의 세계에 대한 감각이 매우 예민해져 정상인은 상상할 수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구체적으로 주위 세상을 파악하는 환자, 과거 자신이 살인했던 기억이 구체적 행동의 세밀한 부분까지 생생히 생각나서 괴로워하는 환자, 종교적 이미지를 꿈에서 생생하게 보고 그림으로 재현해낸 수녀 등의 사례가 소개된다. 이들은 이러한 과잉 감정이 약물에 의해 진정되고 사라졌을 때 한편으로 아쉬워한다.

넷째, 단순화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로 자폐증(autism) 환자이다.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정신적 섬에서 살기 때문에, 주위 세상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반면 자신의 세계 안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자연과 완전히 합일을 이루는 경험을 하는 환자, 음악적 감수성이 놀라운 환자, 수에 대한 특이한 능력을 가진 환자, 그림으로 대상을 소화하는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환자, 등이 소개된다. 자폐증 환자 모두가 초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잡음으로부터 단절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몰입하여 살아가는 자폐아의 특성이 이를 가능케 한다.

저자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소재로 흥미있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서술은 과학적이기보다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성향을 보인다. 어디까지가 경험과학적 보고이고 어디까지가 문학적 서술인지 헷깔린다. 그의 서술에서 사실과 허구를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신비한 미적 느낌이 나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쓴다는 인상이 들었다.

 

2022. 7. 15. 12:56

Frans de Waal. 2019. Mama's Last Hug: animal emotions and what they tell us about ourselves. Norton. 278 pages.

저자는 침팬치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감정을 인간의 감정과 비교하면서 근본적으로 둘은 서로 같다는 점을 밝힌다.

감정(emotion)이란 상황에 맞게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는,진화과정을 통해서 발달된 장치이다. 동물은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부딛치면 두려움을 느낀다. 이 감정은 동물이 특정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두려움을 느끼는 동물은 특정 상황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행동을 취한다. 감정은 인지 능력보다 특정 상황을 더 효율적으로 평가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감정(emotion)과, 이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느낌(feeling)을 분석적으로 구분한다. 감정이란 언어적 표현 이전의 것이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정 상황에 대해 유사하게 반응한다면, 인간과 동물은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이 옳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인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는 반면, 동물은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내적인 상태가 없다거나 인간과 다르다는 주장은 틀리다.

말로 표현할 수있는 감정의 종류는 많지 않다. 그러나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복합적인 것으로서, 몇 가지로 단순히 구분할 수 없다. 예컨대 두려움(fear)과 걱정(anxious)이 복합된 미묘하게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생리적 변화로 볼 때 유사한 반응을, 상황에 따라 두려움 혹은 걱정으로 구분하여 지칭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거친 범주로 재단되지 않는다. 고통, 두려움, 걱정과 같은 기본적 감정만이 아니라, 공감, 혐오, 수치심, 죄의식, 등 복잡한 감정들 또한 동물은 인간과 다름없이 가지고 있다. 분노, 공정함, 복수의 감정, 좌절감, 우울, 등도 동물에게서 관찰된다.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문제와 얽혀있다. 사람들은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싶어한다.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현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생물적 조건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지만, 어떻게 동물을 취급하는지를 투명하게 모두가 알도록 하는 것이 동물 윤리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우리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동물의 감정을 받아들이면 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잔인하게 취급할 때 이를 보이지 않도록 하는데,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상황을 투명하게 알도록 한다면, 인간은 타인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 없다.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인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침팬지는 권력, 지위, 섹스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인간을 그러한 관점에서 들여다본다고 하여 인간이 더 사악하게 보이지는 않음을, 침팬지에 대한 그의 관찰에서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을 따라가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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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2. 12:20

Randolf Nesse. 2019. 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Insight from the frontier of evolutionary psychiatry. Dutton. 269 pages.

저자는 정신의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 슬픔, 걱정, 죄책감, 약물 중독, 정신분열 등의 부정적 감정과 정신병의 원인을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리의 몸/마음이 병에 취약한 것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다음 여섯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리 몸이 현대의 생활방식에 맞지 않기 때문(mismatch), 병원균이 우리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infection), 자연의 선택과정으로 만들어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constraints), 우리 몸의 모든 요소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trade-offs),  자연의 선택과정은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을 최대로 번식시키는 쪽으로 맞추어져 있기때문(reproduction), 고통과 걱정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데 유용하기 때문(defensive responses).

우울과 같은 부정적 감정 자체가 생존에 유리한 기능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생존에 유리한 특성의 부작용으로 부정적 감정이 발현하는 경우도 있다. 우울한 감정은 자신의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나, 어떻게 해도 도달하기 힘든 현실에 맞닥뜨릴 때 나타나는데, 이는 더이상의 무모한 투자를 중단하게 만드는 적응 기제이다. 동물의 감정이란, 진화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기제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위험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빨리 죽는다.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좌절하고 우울에 빠져 움츠러들고 행동을 멈추는데,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기회가 보이면 에너지가 솟아 오르며 다시 행동에 착수한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계속 에너지를 투입하는 사람은 진화의 과정에서 퇴화했다. 어느 정도 하다가 아무래도 효과가 나지 않으면 부정적 감정이 점점 커지는데, 이는 진화적으로 적응한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은 왜 애시당초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추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원하는 "희망" 이라는 감정은 인간을 발달시키는 원동력이다. 높은 목표를 희망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자족하여 사는 성질을 가진 인간은, 비록 희망이 많은 경우 꺽이더라도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성질을 가진 인간과의 생존경쟁에서 패하여 도퇴했을 것이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우울이란 감정은, 생존경쟁에 유리한 능력, 즉 높은 목표를 희망하고 이를 향해 노력하는 능력의 부작용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을 욕망에 두고, 욕망을 버리면 번뇌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합당한 주장이 아니다. 욕망이 없는 동물은 오래전에 생존경쟁에서 도퇴되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도달하기 힘든 것을 원하고 좌절과 우울을 맛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는 인간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항시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원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적든 많든 좌절과 우울을 맛보며 살 수 밖에 없다.

슬픔이나 후회란, 미래에 유사한 상황에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이다. 슬픔을 느끼고 후회를 할 수록 내가 어떤 부분에서 잘못했는지, 왜 그런 결과가 빚어졌는지를 반추하게 되고, 이러한 반추를 통해 얻어진 교훈은 미래에 생존능력을 높인다.

진화의 과정은 숙주의 건강과 행복을 높이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후손을 최대한 많이 번식시키는데 목표를 둔다. 후손 번식과 숙주의 건강/행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불확실한 위험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결과인데, 이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숙주의 행복을 감소시킨다. 반대로 지나치게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불확실한 위험에 무모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만일 불확실한 위험이 만에 하나 진짜 위험일 경우 돌이킬 수 없이 큰 낭패를 당하게 되어, 진화의 과정에서 결국 도퇴된다.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과 같은 신경 질환은 인간의 복잡한 두뇌 활동의 부작용일 수 있다. 인간의 두뇌는 복잡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능력은 잘못될 위험성 또한 높다. 인간의 두뇌 능력이 덜 고도화되어 있다면 신경 질환에 걸릴 위험도 덜하겠지만, 이는 숙주의 생존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같은 이유로 하여, 인간의 면역능력은 매우 우수하여 외부로부터의 병원균을 공격하고 자신의 몸을 방어하는데 효율적이지만, 또한 때때로 자신의 몸에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인간의 몸/정신은 생존 능력과 이러한 능력에 부수되는 위험성 사이에 미묘한 균형을 잡고 있는데, 이 균형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병이 된다.

저자는 진화론적 관점을 인간의 병리현상에 적용한 의학자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일상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나, 상당히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논의를 세세하게 전개하기 때문에, 일일이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어내리는데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했다. 읽다보니 얼마 읽지 않아 내가 두번째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끝까지 다시 읽었다. 두번을 읽어 이해도가 처음보다 더 높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여하간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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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6. 18:33

Robert Dahl. 1998. O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18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현실적인 필요 조건을 설명한다. 전반부에서는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왜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체제보다 나은지 설명하며, 후반부에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존립하는데 기여하는 조건에 대해 논의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political equality)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조건은 왕정, 독재, 전제정치 등 다른 정치체제와 뚜렷이 구별되는 핵심 원리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정치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민주주의 정치체제도 이러한 이상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기 위해서는 다음 다섯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효과적 참여, 평등한 투표,  정치 사정에 대한 이해, 의제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 성인 모두를 포괄함, 등이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정치적 평등이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다른 어느 정치체제보다 나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권력의 독단적 횡포를 피함,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함, 자유/ 자기 결정권/ 도덕적 자율을 보장함, 인간 개발, 개인의 이익을 보호함, 평화와 물질적 번영을 가능케 함. 이러한 이유들은 이론적 결론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대규모 집단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다음의 제도적 장치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 자유롭고, 공정하며, 자주 치러지는 선거, 의사표현의 자유, 집권자가 아닌 다른 대안적 정보 출처가 존재함, 결사의 자유, 시민 모두를 포괄하는 시민권, 등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이 제도적 장치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제도적 장치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할 경우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러한 민주주의 제도를 가능케 하는 현실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선출직 공무원이 군과 경찰을 통제할 것,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것,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외세의 압력이 없을 것, 시장경제 자본주의, 분절적인 하위문화가 강력하게 존재하지 않을 것, 등이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조건들 모두가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어려우며, 설사 출현했다고 해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서구에서도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나라는 20세기에 들어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요컨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인류 역사를 통털어 매우 드문 특이한 현상이다.

어느 나라나 외부 혹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위기 상황에 때때로 봉착하는데, 앞의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경험을 한다. 선출직 공무원이 군과 경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 위기 상황에서 군사 쿠데타로 이전하기 쉬우며,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지 않으면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독단적 효율성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며,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외세의 압력이 크면 외세의 간섭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존립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원 배분이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 모두에게 분산되어 있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자원을 통제하여 배분하는데, 공산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전횡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방임적 자본주의는 독점과 지나친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문제점을 낳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평등 이념에 해가 된다. 따라서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모두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제어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수정 자본주의를 택하였다. 대부분의 나라는 인종, 민족, 종교, 계급 등에 따라 분절적인 하위문화로 쪼개져 있는데, 하위문화 간 차이가 크고 대립이 심각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미국과 같이 이질적인 집단을 주류 문화로 완전히 동화시키는 정책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이질적 집단들 사이에 협의를 통해 정치자원을 배분하는 제도를 만들어 민주주의 정치를 수행하는 스위스나 벨기에와 같은 드문 예도 있다.

21세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의 민주화일 것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필연적으로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플라톤이 주장한 "현자의 정치(guardianship politics)"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절대권력의 부패 위험, 견제의 결핍, 정당성의 결여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취약하다. 근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절대권력은 민주주의보다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국민을 고난에 빠뜨린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체제는 다중의 지혜가 결집되는 의사결정 장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권력자 한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정치체제보다 위험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적으며,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므로, 독재 체제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효율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책은 저자가 일생 동안 연구한 주제인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관한 연구결과를 정리한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가 지금 이책을 썼다면,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나, 중국의 괄목할 경제성장과 독재가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논의하며 저자의 통찰력을 제시했을텐데, 아쉽다.

2022. 7. 4. 21:11

Frans De Waal. 2005. Our Inner Ape: A leading primatologist explains why we are who we are. Riverhead Books. 250 pages.

저자는 유인원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유인원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을 인간의 특성과 비교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둘은 서로 매우 다른 특성을 보인다. 침팬지는 엄격한 위계사회를 이루며, 힘이 세고 폭력적이며, 수컷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반면 보노보는 위계가 엄격하지 않으며, 폭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고 평화적이며,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침팬지는 하위자가 상위자와 마주칠 때 반드시 존경을 표시해야 하는데, 상위자는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위자들을 순회하면서 매일 위계를 확인시킨다.  침팬지들은 엄격한 위계 사회에서 살아가느라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반면, 보노보는 스트레스 수준이 낮은 삶을 살기에 침팬지보다 오래 산다. 침팬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를 쟁취하는 사회이기에 침팬지 수컷들 사이에 지위 다툼이 빈번하며 지위변동이 심하다. 반면, 보노보는 엄마의 지위에 따라 자식의 지위가 좌우되기에 보노보 수컷들 사이에 지위 다툼이 적고 지위 변동이 심하지 않다.

침팬지들은 연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최강자에 대항해 다음 강자들은 서로 연대하여 최강자의 권력을 견제한다. 가장 강한 놈이 홀로 힘을 행사하면서 오랫동안 지배자로 군림하기는 어렵다. 연대를 통해 뒷받침된 권력이 아니면, 다른 수컷들이 서로 연대하여 지배자를 힘으로 누르기 때문이다. 최고 지위에 오른 침팬지는 많은 암컷과 교미하면서 자신의 후손을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는 수년이상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른 침팬지들이 호시탐탐 도전하지 때문이다. 권력의 교체기에는 침팬지 사회에 긴장이 흐르며, 새로운 권력자가 완전히 평정하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긴장이 사라진다. 침팬지 암컷은 침팬지 수컷과 달리 서로 힘을 합하여 수컷의 폭력에 대항한다. 수컷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가장 힘센자가 최고의 지위에 오르나, 암컷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연장자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암컷들 사이에서는 수컷의 경우와 달리 권력의 행사가 두드러지지 않다.

보노보는 관계를 원활히 하는 수단으로 섹스를 활용한다. 수컷과 수컷간, 암컷과 수컷간, 암컷과 암컷간 성적 자극을 교환하면서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한다. 화해의 수단으로, 긴장을 풀 목적으로, 화합의 목적에서 서로 성적 자극활동을 자주 한다. 성별 구분 없이, 연령의 차이에 관계 없이 사회활동의 일부로 성적 교환을 한다. 다만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간, 형제간에는 상호간 성적 자극활동을 하지 않는다. 침팬지 사회에서 수컷과 암컷 사이의 섹스는 교환관계이다. 암컷은 수컷에게 섹스를 허락하는 대신 수컷으로부터 물질적 보상을 받는다.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 암컷과 수컷이 여러 상대와 섹스 하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수컷이 새로이 암컷을 차지하면 이전에 태어난 아이를 모두 죽이는 영아살해 관행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 세계에서 의붓아버지가 의붓 아들을 학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일부일처 제도를 통해 이러한 영아살해 관행를 예방할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자신의 영역을 집단적으로 지키고, 이웃한 타집단을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는 행위를 일삼는다. 타집단의 구성원을 비하하고 적대시하는 '부족주의'는 침팬지와 인간 모두에게 공통이다. 침팬지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자주 발생하지만, 집단 전체의 안정을 위해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제어하고 타협하는 관행이 잘 발달되어 있다. 상위의 암컷이 수컷들 사이에 갈등을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침팬지들에게 상호주의(reciprocity)의 개념은 잘 각인되어 있다. 침팬지들도 서로 공감(empathy)한다. 상호주의와 공감 능력은 도덕적 감정의 바탕이다. 침팬지와 인간이 상대에게 친절을 배푸는 것은 상대로부터 나중에 보상을 받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및 막연한 미래의 상황에 상대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려는 의도로부터 비롯되었다. 상대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상대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등 '상대의 마음을 읽는' (theory of mind) 능력을 침팬지는 인간 못지 않게 가지고 있다. 상대의 생각을 짐작하고, 상대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자신도 함께 하는 능력은 집단 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침팬지와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놀랄만큼 공유한다. 침팬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정성(fairness)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공정하지 않은 분배에는 분노하고 참여를 거부한다.

인간은 폭력적인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보노보를 보면 평화를 사랑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폭력적이거나 화합을 추구한다.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은 포용하고 서로 화합하는 반면, 타집단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하하며 잔인한 폭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은 양극 모두를 자신의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

저자는 수십년 동안 네덜란드의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관찰하며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구체적인 사례를 적절히 언급하면서 유려하게 글을 쓰며, 인간에 대한 통찰력 또한 뛰어나다. 인간에게는 가식으로 가려져 있는 것을 침팬지는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침팬지 연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깊이한다고 주장한다. 두번 읽을 만한 흥미로운 책이다.

2022. 6. 29. 18:15

김용환. 2017. 모두를 위한 서양음악사 2. 가람기획. 433쪽.

저자는 음악사를 전공한 음악학 교수이며, 이 책은 1730년대 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서양음악의 발전 과정을 시대와 주제 구분을 결합하여 서술한다.

첫번째로,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고전주의 시대(1730~1830)를 서술하고, 둘째로 슈베르트, 쇼팽, 슈만, 베를리오즈, 리스트, 브람스, 브루크너를 조명한 낭만주의 시대(1830~1889)를 서술하고, 세번째로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 푸치니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노, 비제, 생상스의 프랑스 오페라, 독일의 바그너로 대표되는 음악극을 서술한다(1789~1890). 넷째로 18세기 중후반 유럽의 각 나라에서 발흥한 민족주의 음악(1840~1943)을 서술한다. 이 시기에 스칸디나비아의 그리그, 시벨리우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체코의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헝가리의 바르토크, 스페인의 그라나도스, 영국의 본 윌리엄스, 미국의 아이브스 등의 음악을 설명한다. 마지막 다섯째로 20세기 음악의 다양한 경향을 서술한다. 인상주의의 드뷔시와 라벨, 말러와 슈트라우스, 12음계를 사용한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윤이상 등 20세기 전반과 중반에 활동한 음악가들이 소개된다. 

1600년대까지의 음악이 교회와 궁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1700년대 이후에는 교회와 궁정을 벗어나 일반 중산층을 대상으로 음악 활동이 전개된다. 음악가가 교회와 궁정에 의해 고용된 시절에는 음악에 제한이 많았으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음악이 독립 활동으로 전개되면서 다양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음악이 교회에 종속되어 있을 때에는 이탈리아가 음악의 중심이었으며, 궁정으로 음악이 확장되었을 때에는 프랑스가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 음악의 중심이었다. 1700년대 이후 음악이 중산층 대상으로 확장되면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음악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도 음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1700년대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 기악이 성악을  능가하는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교향악이 발전하고,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이 발전하고,  피아노 전문 음악이 발전하고, 시적인 해석을 강조하는 예술가곡(leid)이 나타나고, 순회연주자(비르투오소)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말과 음악이 번갈아 나오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달리 악극 전체에 음악이 이어지는 음악극이 출현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각 지역의 고유한 민족 정서를 반영한 민족주의 음악이 각 지역에서 나타났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전통적 음악의 조성의 제한을 뛰어넘어  온음과 반음을 대등하게 취급하는  12음계를 사용한 음악이나, 비음악적 소리를 포함하는 실험, 우연적 요소를 사용한 음악 등,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책은 음악 사전의 요약본 같다. 각 음악가와 개별 작품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끝없이 계속되기에, 읽으면서 음악의 분석적 깊이나 내용의 체계를 잡기 어렵다. 개별 음악가와 개별 작품을 설명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론과 흐름을 체계적 서술하는 부분이 덧붙여지면 좋겠다.

2022. 6. 28. 22:27

박을미. 2011. 모두를 위한 서양음악사 1: 서양음악사 100 장면으로 편하게 읽기. 가람기획. 265쪽.

저자는 중세음악을 전공한 음악학 교수이며, 이 책은 고대에서부터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바로크 시대까지 서양음악의 발전과정을 주요 주제별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서양 음악은 이 시기 동안 교회 음악으로부터 세속 음악으로 중심을 이동하고, 성악에서부터 기악이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게 되며, 단성 음악으로부터 다성 음악으로 음악의 구조가 복잡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교회 음악의 시기에는 음악이 종교적 목적에 기여하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러야 했기에 제한이 많았으나, 세속 음악으로 이동하면서 음악이 감정을 표현하고 여흥을 즐기는 수단이 되면서 다양한 양식의 음악이 발달하였다.

그리스 시대에 음악은 수학과 함께 과학의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음악은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며 주술적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단편적 기록을 넘어서서 사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중세시대(450~1450)에 음악은 교회에서 수도사들에 의해, 그레고리안 성가와 같이 성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025년 무렵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초라는 수도사가 그때까지 전해오던 기보법을 개량하면서, "툿(도)레미파솔라"라는 계명을 성가곡의 가사로부터 차용하여 만들었으며, 이후 17세기에 들어 '시'가 추가되었다. 이무렵 오선지에 음을 기록하는 방법도 정착하였다. 이때에는 음의 높이만을 표기할 뿐 음의 길이(음가)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9세기까지는 전적으로 단성 음악이었으나, 1,000년경에 두개 이상의 성부를 가진 다성 음악이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병행 성부에 한정되었으나, 점차 선율과 리듬이 독립된 성부가 출현하였다. 중세시대 후반에 들어 조금씩 교회로부터 벗어난 세속적 음악이 유랑악사(민스트럴)나 방랑시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교회는 이러한 세속 음악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중세시기에는 음악이 종교적 교화를 위해 존재했는데, 복잡한 음악 구조나 다양한 악기는 이러한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권장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1450~1600)에 그리스로마의 유산을 새로 발견하면서 인문학과 과학이 급격히 발전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음악은 중세의 것을 계승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밟았다. 1450년경 금속인쇄술의 발명 이후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음악 악보의 인쇄를 통해 음악의 빠른 확산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까지는 기악보다는 성악이 중심이었지만, 다성 음악의 구조가 복잡해졌다. 또한 다양한 악기들이 성악과 함께 연주되었다. 중세와 다른 점은 교회이외에 왕, 귀족, 부유한 상공인들이 음악가를 후원하면서 세속음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음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바로크 시대(1600~1750)에는 음악의 감정적 효과를 인정하여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이나 건축은 중세 시대의 경건이나 르네상스시대의 절제에서 벗어나 전반적으로 화려함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음악에도 반영되었다. 이시기 음악은 교회의 범위를 본격적으로 벗어나 발전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크게 발달했다. 교회의 성악에서도 화려한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오라토리오와 칸타타가 등장하였다. 이시기까지 음악인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다성 음악의 고음부는 거세되어 변성기를 겪지 않는 남성 가수(카스트라토)가 맡았다. 카스트라토는 교회 밖에서는 물론 교회에서까지 널리 활동하였는데, 나폴레옹 황제가 이러한 관행을 금하여 프랑스에서는 일찌기 사라졌으나, 이탈리아에서는 20세기초까지 활동하였다. 1500년대 중반부터 바이올린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1700년대 이탈리아에서 바이올린 제작과 연주법이 크게 발전하여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이 제작된 것도 1700년대 중반 무렵이다. 이 시대에 들어 기악 음악은 성악으로부터 독립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기악 음악인 소나타가 발전하였다. 바로크 음악은 음악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이 책은 음악사 교과서의 요약본 같은 성격이다. 연대순에 따라 음악의 발전이 서술되며, 음악가과 음악에 관한 많은 사실을 언급하여 읽기가 쉽지 않다. 음악학자의 저술 답게 서양음악의 발전을 음악의 원리와 형식의 발전에 촛점을 맞추어 다루고 있다. 서양 음악은 앞사람의 업적위에 뒤에 사람이 추가하면서 점차적으로 발전해 온 영역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임의적으로 시대구분을 하기는 하지만, 과학이나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음악은 특별한 혁신이나 비약 없이 연속된 전개라는 인상을 받았다.

2022. 6. 26. 12:33

Robert Dahl. 2005(1961). Who Governs? Democracy and Power in an American City. 2nd ed. Yale Univ. Press. 325 pages.

저자는 다원주의 정치이론의 대가이며, 이 책은 정치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 책이다. 저자는 예일 대학교가 있는 미국의 뉴헤이븐이란 인구 십만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 1950년대에 벌어진 정치 활동을 통해서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을 살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자원은 여러 집단에 흩어져 있고,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위계의 상위를 특정인이 독점하지 않는다. 통치 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서로 다르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여러 세력간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다원주의 (pluralism) 이론은, 소수의 내적으로 통일된 집단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파워엘리트 (power elite) 이론과 대치된다.

민주주의의 국민 주권의 원칙은 다수가 자신을 스스로 통치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위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다수의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적으며 투표하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자원을 정치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다수의 견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은, 소수의 지배집단이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결정하고 움직이는 독재체제와 대비된다. 

뉴헤이븐 사회는 18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계 초기 정착자들의 후손인 소수의 귀족들에게 모든 지위와 영향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며, 사회적 상위 지위를 독점했다. 정치 권력 또한 그들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1830년대에 세금 납부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백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이 확대되고, 상공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자원이 상이한 집단들에 흩어졌다. 이 신흥계급은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여, 과거에 권력을 장악했던 소수의 귀족 세력을 주변으로 밀어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밀려오고, 19세기말 20세기 초반에는 이탈리아인과 유태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민족집단의 세력이 주요 정치 자원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들어 먼저 아일랜드계가 다음으로 이탈리아계와 유태인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정치 자원으로서 민족집단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반면 정치 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서로 상이한 권력의 다원화 현상이 나타났다.

저자는 그당시 뉴헤이븐 시 정치에서 핵심적인 세가지 영역에서 전개된 의사결정과 영향력의 행사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첫번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각각 시장 선거에서 당을 대표하는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둘째는 뉴헤이븐 시의 재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다. 셋째는 뉴헤이븐 시의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 과정, 구체적으로는 시의 공립 고등학교 두개를 폐쇄하고 한개의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이다.

시장 선거에서 후보자 공천을 하는 과정에는 중간 계층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중간 계층 출신의 하급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된다. 이들 하급 지도자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 전문직이 아닌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며, 소득도 높지 않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대변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민족집단의 세력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면 여전히 큰 영향력을 쥐고 있다. 선거의 영역에서는 다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소수에 불과한 과거의 귀족 집단은 이 영역에서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시간이 흘러 이민자 집단의 다수가 아일랜드계로부터 이탈리아계로 이동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탈리아계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 이탈리아계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이탈리아계의 응집된 세력은 분열되었으며, 그와 함께 민족 집단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정당의 소수 지도자들이 사실상 공천을 결정하는데, 왜 그 과정에서 다수의 하위지도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다음 네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민주적 절차는 소수 지도자들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둘째, 민주적 절차는 하위 지도자들의 충성을 불러 일으킨다. 셋째, 민주적 절차는 갈등을 질서있게 조정하도록 해준다. 넷째, 새로운 사회적 세력들이 부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실상 소수가 의사결정을 하지만, 다수의 참여를 유도하는 민주적 절차들이 단순히 겉치장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뉴헤이븐 시의 재개발의 의사결정에는 재력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재개발은 이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재개발이라는 경제 사업에서 이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래 중상층이 점차 교외로 이전하고 뉴헤이븐 시가  쇠락하면서 재개발의 필요성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였지만, 주민 간 이해 조정의 어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재개발이 미루어졌다. 1950년대 후반에 선출된 시장이 주요 이해 관계자들을 모두 위원회로 끌어들여 이해를 조정하고 반발을 무마하면서 재개발 사업이 실현될 수 있었다. 시장이 재개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심에 있지만, 다양한 경제 분야의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뉴헤이븐 시의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에는 교육감, 교사 노조, 예일대 교수 등 교육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뉴헤이븐 시의 상류층은 그들의 자제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공교육의 개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렵다. 폐쇄하는 공립학교 부지를 예일대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새로운 공립학교를 건립하는 사업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았으나, 학부모들이 새로운 공립학교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으며, 시장의 주도로 만들어진 위원회를 통해 교육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서 그들의 반말을 무마할 수 있었다.

위의 세 영역의 어디에서도 일반 대중은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정당의 중간지도자들, 재개발 위원회의 대표들, 교육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반영되었다. 이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유는 물론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다수의 의견이 여과되어 반영된다. 만일 이들이 다수의 의견에 배치되는 의사결정을 한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패하고 직책을 잃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생업이 바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정치활동에 참여할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의견이 무시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의 주권은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다수의 시민들의 정치 참여도는 매우 낮지만 이들은 숫자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적은 참여라도 많이 모이면,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하는 소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다수의 의견은 소수의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정치 활동을 더 열심히 할까. 그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관련될 때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교육, 소득, 직업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주로 정치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같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도 일부 사람 다른 사람보다 정치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하는데, 이는 성격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본적으로 힘든데(abrasive and exhausting), 일부 사람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소질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그럴 심리적,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저자는 다원주의 정치 이론이 실제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동안의 조사와 가용한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주요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파헤친다.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기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드문 연구이다. 70년 전에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여전히 흥미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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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6. 22:02

Daniell Schacter. 2001.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 Houghton Mifflin Co. 20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로 기억 연구의 전문가이며, 이 책은 그의 전문 분야를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 쓴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다음 일곱가지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잊어버리는 것(transience),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absent-mindedness), 기억이 막혀 회상하지 못하는 것(blocking), 잘못 기억해내는 것(misattribution), 암시에 의해 영향받는 것(suggestibility), 외곡되게 기억하는 것(bias),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persistence). 각각의 문제의 증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대상과 연관된 사항을 함께 기억속에 저장하면 이 문제를 조금은 약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시간이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한정된 기억 자원 (momory resourse)을 효율적으로 쓰는 장치의 일부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일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인간은 자동항법 모드로 일을 수행하면서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일과 관련된 구체적 사안을 나중에 기억해 내기 어렵다. 동시에 여러 일에 관여할 경우, 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므로 나중에 그 일을 기억해 내기 힘들다.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고유명사를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다른 지식들과 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이다. 어릴때의 학대나 강간과 같이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을 나중에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정적 자기방어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인이 되어 기억해냈다고 주장하는 어릴 때의 성적 폭력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을 기억에 저장하기보다, 그것의 요점만을 일반화하여 저장한다.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대상의 일반화된 패턴을 파악하고, 패턴으로 기억에 저장한다. 따라서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질문받았을 때, 잘못 기억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증인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암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범인을 심문하는 사람의 암시에 의해 증인이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이 변형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과거 기억은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기억이,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확실한 기억으로 변형된다.

과거의 일이나 대상을 잘못 회상해내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결과이다. 현재의 사정에 따라 과거의 사정에 대한 기억을 외곡시켜 과거와 현재의 일관성을 추구한다. 일의 결과를 보고 처음부터 그러리라고 생각했다고 믿거나, 그렇게 일이 전개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사후에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항시 해석한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심리적 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했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크게 흥분하게 되고, 그 일이나 상황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다.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음 속에 억누를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글이나 말로 대면하면 할 수록 그것에 대한 감정이 무디어지고, 그것의 괴로움이 점차 옅어지게 된다.

이상 일곱가지 기억의 약점은 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기억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심각한 문제를 보인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인간의 진화적 적응의 직접적 결과이거나 혹은 부산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쉽게 풀어쓴 것으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때때로 머리털을 세는 세밀한 작업을 쫒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22. 5. 22. 22:24

Albert-Laszlo Barabasi. 2014(2002). Linked: How everything is connected to everything else and what it means for business, science, and everyday life. Basic Books. 238 pages.

저자는 물리학에 배경을 둔 Network Science 학자이며, 이 책은 네트워크의 속성과, 실제 세계에서 네트워크가 적용된 사례를 설명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노드(node)와 링크(link)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어떤 모습일까? 학자들은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은 랜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World Wide Web에 존재하는 웹페이지들이 하이퍼링크를 통해 연결된 모습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생각은 틀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터넷의 네트워크는 허브(hubs) 들의 위계체계로 되어 있다. 몇개의 웹페이지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웹페이지들로부터 링크가 집중된 반면 다른 페이지와 링크가 거의 걸려있지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웹페이지의 링크의 빈도는 연속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많은 수의 웹페이지와 연결된 노드를 허브(hub)라 하며, 허브는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속성의 네트워크를 전문용어로 scale-free networks 라고 한다.

만일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이 랜덤하다면, 링크의 빈도 분포는 정규분포 곡선을 따를 것이다. 즉 대부분의 노드는 비슷한 수의 링크를 가지고 있고, 소수의 노드들만 아주 많거나 혹은 아주 적은 링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에서 링크의 빈도분포는 지수분포(power law)를 따른다. 소수의 노드는 엄청나게 많은 링크를 가진 반면 대부분의 노드는 매우 소수의 링크만을 가지고 있다.

왜 세상의 많은 네트워크는 허브의 위계체계라는 속성을 지닐까? 그는 네트워크가 두가지 원칙을 따르면, 이러한 속성의 네트워크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짐을 증명했다. 첫째 원칙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노드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덧붙여져 성장하며, 두번째 원칙은 이렇게 새로이 출현하는 노드가 기존의 노드들 중에 가장 링크가 많이 걸린 것에 새로운 링크를 건다는 원칙이다. 기존의 노드들 중에 링크가 가장 많이 걸린 것이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새로 출현한 노드가 이것에 링크를 걸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노드와 링크를 하나씩 더해 나가는 실험을 하면,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가 출현한다. 이를 복잡계(complexity), 즉 몇가지의 단순한 원칙이 자기 반복적으로 적용되면서 복잡성이 높아지는 체계라고 한다.

그가 이러한 네트워크의 원칙을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인터넷 세계뿐 아니라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네트워크들이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항공노선의 망, 과학세계에서 학자들 사이의 인용의 망, 공동 영화출연을 통해 헐리우드 배우들이 서로 연결된 망, 사람들 사이에 친소관계의 망, 전염병이나 유행이 확산되는 망, 등은 모두 이러한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이다. 물론 모든 네트워크가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는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을 보면,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의 링크가 지수분포를 보이지 않는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매우 강하다. 웬만큼 많은 수의 노드들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노드들 사이에 연결을 유지한다. 반면, 허브들만 골라서 체계적으로 공격을 한다면, 이러한 네트워크들도 파괴될 수 있다. 네트워크의 이러한 속성을 알면, 조직의 운영이나 여론과 유행의 전파 등 여러 경우에 효과적으로 네트워크를 통제할 수있다. 소수의 허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지도를 파악하고 접근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 문제해결 능력의 차이는 크다.

이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월드와이드웹을 분석하여 네트워크의 특성을 발견한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책 후반에 이러한 네트워크의 속성이 다른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되는 것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피상적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네트워크와 복잡계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 책이다.

 

2022. 5. 14. 21:35

호두나무, 목록 (2021.9.20. ~ 2022.5.14.), 총 40권.

1

David Linden. 2011. The Compass of Pleasure: How our brains make fatty foods, orgasm, exercise, marijuana, generosity, vodka, learning, and gambling feel so good. Penguin books. 195 pages.

2

Gad Saad. 2011. The Consuming Instinct: what juicy burgers, ferraris, pornography, and gift giving reveal about human nature. Prometheus Books. 293 page.

3

나카무로 마키코, 쓰가와 유스케, 윤지나 옮김. 2018.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리더스북. 193.

4

최현석. 2017.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서해문집. 739.

5

베아트리스 퐁타넬. (심영아 옮김). 2010.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이봄. 239 .

6

Paul Bloom. 2010. How Pleasure Works: the new science of why we like what we like. WW Norton. 221 pages.

7

Sheena Iyengar. 2010. The Art of Choosing. Twelve. 277 pages.

8

Matthew O. Jackson. 2019. The Human Network: How your social position determines your power, beliefs, and behaviors. Vintage Books. 240 pages.

9

Siddhartha Mukherjee. 2010.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470 pages.

10

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 Vintage. 284 pages.

11

Daniel Gilbert. 2006. Stumbling on Happiness. Vintage books. 263 pages.

12

김은국 (도정일 역). 2010. 순교자. 문학동네. 311.

13

Nicholas A. Christakis. 2019. Blueprint: the evolutionary origins of a good society. Little Brown Spark. 419 pages.

14

Alan Krueger. 2007. What Makes a Terrorist: Economics and the Roots of Terror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5 pages.

15

Marc Bekoff. 2007. The Emotional lives of animals. New World Library. 166 pages.

16

Thomas Watson Jr. 1990. Father, Son & Co.: My life at IBM and beyond. Bantam book. 446 pages.

17

한혜경. 2012.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샘터. 267.

18

한혜경. 2021. 은퇴의 말: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 교유당. 249.

19

한혜경. 2021. 은퇴의 맛: 은퇴 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교유당. 261 .

20

Sam Walton. 1992. Sam Walton: Made in America, My story. Doubleday. 260 pages.

21

강준만. 2010. 세계문화전쟁: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인물과 사상사. 384.

22

강준만. 2013. 대중문화의 겉과 속. 전면 개정판. 인물과 사상사. 454.

23

Joseph Nye, Jr. 2011. The Future of Power. Public Affairs. 234 pages.

24

John Baylis, Steve Smith, Patricia Owens. 2020. The Golbalization of World Politic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8th ed. Oxford. 529 page.

25

Hedley Bull. 2012(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 4th ed. Palgrave. 308 pages.

26

Mel Greaves. 2000. Cancer: the evolutionary legacy. Oxford University Press. 266 pages.

27

Paul Bloom. 2016. Against empathy: the case for rational compassion. HarperCollins. 241 pages.

28

Mancur Olson. 2000. Power and Prosperity: Outgrowing communist and capitalist dictatorships. Basic Books. 199pages.

29

Daniel Nettle. 2007. Personality: What makes you the way you are. Oxford University Press. 248 pages.

30

Pankaj Ghemawat. 2018. The New Global Road Map: Enduring strategies for turbulent times. Harvard Business Review. 213 pages.

31

Joshua Goldstein. 2011. Winning the War on War: the decline of armed conflict worldwide. Plume. 328 pages

32

Eric Klinenberg. 2012. Going Solo: the extraordinary rise and surprising appeal of living alone. Penguin books. 233 pages.

33

David Packward. 1995. The HP Way: How Bill Hewlett and I Built Our Company. HarperCollins. 193 pages.

34

Matt Ridley. 1996. The Origins of Virtue: Human instincts and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Penguin Books. 265 pages.

35

Alan Krueger. 2019. Rockonomics: A Backstage tour of what the music industry can teach us about economics and life. Currency. 269 pages.

36

Corey Abramson. 2015. The End Game: How inequality shapes our final years. Harvard University Press. 148 psges.

37

Kevin Kelly. 2010. What Technology Wants: Technology is a living force that can expand our individual potential - if we listen to what it wants. Penguin books. 359 pages.

38

Barbara Natterson-Horowitz and Kathryn Bowers. 2013. Zoobiquity: The Astonishing connection between human and animal health. Vintage books. 314 pages.

39

Charles Tilly and Sidney Tarrow. 2015. Contentious Politics. Oxford University Press. 233 pages.

40

Frans de Waal. 2007(1982). 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215 pages.

2022. 5. 14. 21:07

David Linden. 2011. The Compass of Pleasure: How our brains make fatty foods, orgasm, exercise, marijuana, generosity, vodka, learning, and gambling feel so good. Penguin books. 195 pages.

저자는 신경생리학자이며, 인간의 쾌락이 작동하는 신경생리학적 기제를 설명한다. 쾌락을 유발하는 메뉴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는 신경생리학적으로 유사한 장치를 통해 작동된다.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은 뇌 속 깊숙이에 쾌락을 관장하는 중추가 있다. 쥐의 뇌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박고, 이곳을 자극하는 전기 자극을 스스로 발생시킬 수 있도록 하면, 쥐는 식음을 전폐하고 쾌락을 유발하는 행위에 전념한다. 쾌락을 느끼는 것은 생물의 생존과 후손 번식을 위해 진화한 능력이다. 

헤로인, 코카인, 등 향정신성 약물은 모두 이 쾌락 중추의 작동 기제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을 계속 복용하면, 두뇌의 쾌락 중추의 회로를 변화시켜 의존성을 만들어낸다. 투약 회수가 늘어날 수록 쾌락을 얻으려면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하며, 갈수록 투약이 가져오는 쾌락보다 복용하지 않았을 때의 갈망이 더 커진다. 일반인과 비교할 때 약물 중독자가 약물에 의한 쾌락을 더 느끼기 때문에 약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복용하지 않을 때의 괴로움을 더욱 심하게 느끼기 때문에 약물을 찾는다. 복용하지 않으면 약물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서, 복용으로 빠져드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게 된다. 한동안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약물 사용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마주치거나, 삶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다시 약물 복용으로 빠져들게 된다. 약물 사용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일반에 퍼져 있는데, 사실 약물 중독은 생리적인 문제이므로 의지로 중단하기 어렵다. 금단 현상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기는 힘들다.

두뇌의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가져와서 의존성을 만들어 내는 약물은 법으로 금하는 마약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담배와 알콜은 모두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가져와서 의존성을 만들어 낸다. 담배의 니코틴이 주는 쾌락의 강도는 크지 않지만, 담배를 피는 사람은 담배를 자주 피기 때문에,  잦은 자극으로 인하여 쾌락 중추의 회로가 서서히 변화한다. 니코틴의 약물 의존성은 다른 마약과 다르지 않다. 담배는 폐암, 고혈압, 등을 유발하여 건강에 매우 해로움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었음에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반면, 건강에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인 대마초를 규제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여러 나라에서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하는 대마초나 엑스타시 등은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가져 오지 않으므로, 심각한 약물 의존성을 낳지 않는다. 

음식 역시 쾌락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병적으로 비만한 사람은 지방의 과도한 섭취를 제한하는 호르몬이 두뇌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몸 속의 지방은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비만한 사람의 뇌는 이 호르몬에 대해 둔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섹스, 도박 등도 뇌의 쾌락 중추의 작용으로 쾌락을 느낀다. 도박 중독자에게 불확실한 미래의 보상은 확실한 보상보다 더 큰 쾌락을 가져다 준다. 잦은 섹스나 도박 또한 약물과 마찬가지로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유발하여 의존성이 만들어질까? 다시말하면 섹스 중독, 도박 중독은 약물 중독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생리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의지로 조절 가능한 행동의 문제인가? 약물 중독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로 인한 문제로 추정된다. 다만 이러한 의존성에 쉽게 빠져드는 유전적 기질이 있다.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중독자의 중독의 원인의 30~50%는 유전적 기질 때문이다.

인간은 구체적인 물질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관념에 의해 쾌락을 느끼고, 다른 쾌락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믿는 이념이나 종교에 헌신할 때 쾌락을 느끼고, 이러한 이념을 위해 먹고 섹스하는 등 생리적 쾌락 유발 행위를 억제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현재의 뇌생리학의 연구는 뇌의 작용을 이해하는데 초보적인 수준에 있다. 그러나 저자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뇌의 작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미래에 두뇌의 쾌락 중추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쾌락을 스스로 조작할 수있다면, 실험실의 쥐가 보여주듯이, 인간이 힘들게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기에 인류의 문명이 멸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 지식을 풀어썼다. 전문 학술 용어가 매우 많이 등장하여 읽기 불편하다. 전문용어를 조금 가지치기한다면 좋았을텐데, 읽은 수고의 상당부분을 발음도 힘든 긴 전문용어를 눈으로 쫓아가는 데 낭비해야 했다.

2022. 5. 8. 17:42

Gad Saad. 2011. The Consuming Instinct: what juicy burgers, ferraris, pornography, and gift giving reveal about human nature. Prometheus Books. 293 page.

저자는 마케팅 전공의 경영학자이며, 사람들의 소비행위를 진화론을 적용해서 설명한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소비 행위는 그러한 진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다. 왜 사람들이 어떤 소비 행위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행위가 진화적 욕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진화적 욕구는 크게 네가지이다. 첫째는 물리적 생존이며, 둘째는 이성의 짝을 만나서 번식하는 것이며, 셋째는 혈연적인 집단 즉, 가족과 친족을 만드는 것이며, 넷째는 우호적인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 즉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 물리적 생존의 영역에서는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확율을 높이는 것, 섹스의 영역에서는 다음 세대를 번식을 하는 데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differential parental investment), 가족과 친족의 영역에서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단위에서 다음 세대로 확산한다는 것(inclusive affinity), 우호적 집단 구성원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속한 집단을 외집단보다 우선시하고 (in-group over out-group), 일대일의 교환관계 (tit for tat)관계가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도박이나 위험한 행위에 빠지기 쉬운 반면, 여성은 육체적 미를 높이는 행위에 지나치게 빠지기 쉽다. 남성은 포르노에 탐닉하나, 여성은 성적인 비쥬얼 이미지에 덜 끌린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들에 대한 뒷담화에 흥미를 가지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남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진화적 욕구의 발로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욕구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다. 따라서 진화적 필요에 근거한 욕구를 겨냥한 마켓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통한다. 인간은 미래의 불확실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미래의 희망을 파는 마켓팅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희박한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희망을 믿고 싶어한다. 종교와 자기개발 산업이 대표적으로 미래의 희망을 파는 분야이다. 소비자가 감정에 좌우되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가 진화적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속이 비어 있을 때 많은 양을 구매하는 것은 결핍에 대한 회피 욕구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은 진화론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근거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번식의 욕구를 벗어날 수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현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술한다. 기존에 많이 알려진 논의를 인용하여 설명하기에 신선함은 덜하다.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우리의 일상을 설명하는 데 설득력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2022. 5. 2. 20:29

나카무로 마키코, 쓰가와 유스케, 윤지나 옮김. 2018.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리더스북. 193쪽.

저자는 교육 정책학자와 보건 정책학자이며, 이 책은 인과추론의 논리를 적절한 사례와 그림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두 변수사이에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연히 두변수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제3의 교란 변수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 역 방향으로 인과의 화살이 가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에비던스의 수준이 높은 순으로 방법론을 나열하면, 복수의 랜덤화된 연구들에 대한 메타 분석, 랜덤화 통제 비교, 자연실험과 준실험, 회귀분석의 순이다.

빅 데이터 분석은 무수히 많은 유관변수를 찾아내서 종속변수 값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어, 이를 새로운 사례에 적용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변수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원인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 분석방법을 이 책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데, 과연 그런지 약간 의심이 간다. 예컨대 오백개의 변수를 통해 종속변수를 예측하는 빅데이터 분석 모델은, 인과모델과 달리 우연의 일치나 랜덤화 통제의 오류가 많은 변수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상쇄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빅데이터 분석 모델은 인과추론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면서, 그 나름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자연실험, 이중차분법, 조작변수법, 회귀불연속 설계, 매칭법, 등 실제 연구에 많이 쓰는 인과 추리 모델을 명료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해설했다. 또한 이러한 방법론이 적용된 실제의 연구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통계와 인과추론을 가르쳤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 책을 사용했더라면 훨씬 쉽게 가르쳤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인과추론과 관련된 논의를 실제적이고 간단명료하게 정말 잘 정리했다.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고, 감탄했다. 사회과학 리서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번역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책의 후반부에서 눈에 띄었다. 

2022. 4. 30. 18:30

최현석. 2017.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서해문집. 739쪽.

저자는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 신체의 구성부분을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신체 부분의 용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동의보감의 한학 지식을 덧붙여 소개한다.

인간의 몸의 구성 부분과 기능에 따라 신경, 감각, 피부, 호흡, 순환, 혈액, 면역, 소화, 내분비, 생식, 비뇨, 근골격으로 장을 나누어 설명한다. 총 246개의 항목에 대해 설명한다. 각 부분에 대해 용어의 어원을 먼저 해설하고, 다음으로 해부학적 지식, 생리학적 지식, 병리학적 지식의 순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때때로 사회문화적 지식도 추가로 덧붙인다. 의학 지식의 발전, 다른 동물과 비교한 진화론적 설명, 발생학적 설명, 일반인의 상식과 과학적 지식의 비교, 건강을 위한 의사로서의 조언, 등 다양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통해 환자를 접하면서 얻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한 감, 인체에 대한 감, 의학적 치료에 대한 감이 행간에 배어 있다. 의학이 알고 있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정말 대단한 책이다. 저자의 지식의 폭은 물론,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 눈이 떠지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한국인 저자가 쓴 책 중,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이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22. 4. 18. 14:26

베아트리스 퐁타넬. (심영아 옮김). 2010.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이봄. 239 쪽.

이책은 서양의 회화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본 사회사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그림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들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을 구석구석 해부하여, 그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침실, 난방, 부엌, 실내장식, 물, 조명, 창, 여러 방들, 식당, 욕실, 살롱과 거실, 수납, 살림이라는 제목 하에, 18세기 근대화 이전의 모습과 이후를 대비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18세기까지 일반 사람들의 삶은 생존의 한계에서 힘들게 살아갔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식구들 모두가 불기가 있는 거실에 모여 잠을 자고, 일년에 두세번 목욕을 했으며, 방에는 가구랄 것이 거의 없었으며, 두세개의 조그만 궤짝에 가진 것 모두를 넣어 두었으며, 한두벌의 옷으로 생활했다.  20세기의 물질적 풍요와 너무도 대비된다. 이 책을 읽으면 물질적 삶의 핵심인 의식주 중 '주'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역자의 번역이 좋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길지 않은 글을 읽는 것도 즐거웠다. 읽는 즐거움이 새록 새록 솓아나는 책이라,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나에게 상을 주는 기분으로 읽었다. 아끼면서 조금씩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무척 아쉬웠다.

2022. 4. 4. 17:26

Paul Bloom. 2010. How Pleasure Works: the new science of why we like what we like. WW Norton. 221 pages.

저자는 발달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근원을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천성적인 본질주의자(essentialist)이다. 본질주의란 사물에는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은 본질이 존재하며, 사람들은 이러한 본질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물을 접하고 인식한다. 이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피상적 외면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반대된다. 어떤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이 대상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다. 진품 그림, 유명인사가 직접 접촉한 물건, 현장 공연, 등이 모조 그림이나 복사품보다 더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이것이 대상의 본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주의적 인식은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상황에 따라 달리 변하는 것을 각각 다른 것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선호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리의 맛 감각이란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영향받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영양학적 이유 이외에,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일수록 더 맛있게 느낀다. 인조고기보다 천연 고기를 더 맛있게 느끼며, 코카콜라가 익명의 콜라보다 더 맛있으며, 천연 환경에서 채취했다고 믿는 생수가 수도물보다 더 맛있다.

섹스가 즐거운 이유는 종의 번식을 위한 필요에서 발달한 감각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방식으로 섹스를 접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짝을 찾는데 훨씬 까다로우며, 소수의 배우자의 헌신을 구한다. 남성은 여성의 성적인 외도에 분개하고 질투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이 자신에게 쏟을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쏟는 위험 때문에 질투한다. 따라서 여성은 배우자가 자신에게 쏟을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크게 이전하지만 않는다면 남성의 성적인 외도에 대해 감정적 분노를 덜 느끼는 반면, 남성은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적으로 결합한다는 오로지 그 사실 때문에 참지 못한다. 섹스 상대의 과거의 성적 전력은 성적 매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려는 진화적 욕구이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관계 맺기와 연관되어 있기때문이다. 이야기에 담긴 인간관계의 복잡한 양상에 대한 지식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 기술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 경험으로 습득하려면 희생과 위험이 클 것이지만, 이야기 혹은 허구를 통해 이를 큰 비용 없이 습득할 수있다. 즉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본원적 흥미는 생존 본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피 엔딩만 아니라 슬픈이야기나 폭력적 이야기에 흥미가 동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남의 고통과 비극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맞는다. 그러나 실제 벌어지는 현실로서 남의 고통이 지나칠 경우, 공감이 작용하여 관찰자에게도 고통을 준다. 그러나 허구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는 사람들이 이야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허구는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아무리 고통스런 사건이 벌어져도 공감의 강도가 낮다.

이책은 저자의 연구결과와 엄청난 독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솜씨좋게 버무려 놓은 책이다. 논의가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그런대로 읽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