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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5. 13:28


아침 8시 좀 넘어 버스에 올라 3시 경에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하다. 중간에 프라하에서 버스를 갈아타느라 한시간을 기다렸다. 프라하는 몇년 전에 방문했는데 사방에 건물이 올라가고 활기차다. 체코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포장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동유럽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에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아침 산책을 하다보니 숙소에서 좀 떨어진 옛 성까지 가게 되어 이를 둘러보느라 지체된데다가 어제 통성명을 한 싱가포르에서 온 청년과 대화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호스텔 부엌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그도 아침을 먹으려 들어와 함께하였다. 그는 영국 대학에서 전기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체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박사를 받고 일자리를 찾는 문제로 그와 길게 이야기 했다. 싱가 포르로 돌아가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문제 없으나 가급적 유럽에서 취직해 한 동안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문제는 유럽 시민이 아니면 좋은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전에 스웨덴 연구소에서 만난 중국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여성이었는데 결국 벨기에의. 조그만 대학에. 일자리를 구하긴 했지만 아쉬워했다. 이 청년은 영국에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현재 폴란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단다. 박사를 받으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폴란드에서는 영어만으로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어 정착을 주저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일자리를 잡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모양이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또다른 폴란드 청년은 현재 ING 은행에서 일 하고 있는데 그도 기회가 닿으면 서유럽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현재 다니는 직장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회사 아니냐니까 서유럽에서 일하면 훨씬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단다.
싱가포르 청년과 이야기하다 그가 내게 어떻게 현재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을 때 미래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당시에는. 취업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에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을 많이 접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세일즈맨을 지원했다. 부서 배치를 받을 때도 지원기능을 담당하거나 혹은 대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보다  중소기업 제품을 팔면서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에 배속되었다. 덕분에 회사 생활이. 온통 잔국을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 씨름하는 일로 채워졌다. 그가 물었다. 왜 4년이상이나  그 일을하다 직업을 바꾸었냐고. 그는 중간에 중단 없이 학업을 계속하여 올해 30세에 박사를 받게 되었는데 그도 한 때 취직할까 망설였던 모양이다.
직장에서 한가지 일을 3년 정도 하니 웬만큼 길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감이 왔다. 사람들이 무엇에 울고 웃으며 왜 갈등하고 일이 결국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된 것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무모한 청년이었지만. 그래서 본격적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할 수 있게 됬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어찌 전개될지 생각했는데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세일즈맨으로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주위에 중소기업 사장들을 보며 나중에 독립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가기로 마음을 먹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출장을 다니면서 영어단어를 외어 시험을 봤는데 나쁘지 않은 성적이 나왔고 몇몇 미국 대학에 지원했는데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이 있어 돈 문제도 해결되었다. 결혼 문제도 해결하고 가고 싶어 주위에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광고를 했지만 그일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자금을 집에서 조금이라도 댈 수 있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갈 마음을 먹었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완전히 막혀 있다고 생각했기에 취직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훗날 내가 제출한 유학관련 서류를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어가 엉망인데다가 내용이 부실하여 아것을 보고 어떻게 나를 선발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까지 살면서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이 있었다. 후회하는 일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중 가장 최근의 것은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고도 회사를 계속다녀  유학준비를 부실하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다.  내가 전공한 사회학은 대학에 취업 하기 어렵다. 박사를 받고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학교 평판에 따른 차별이 더욱 커서 결국 내 전공으로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인정에 끌려 막판까지 일하다가 미국 대학 학기가 시작하는 9월을 한달 앞두고야 직장에서 나왔다. 나중에 나의 관심은 사회학보다 경제학이 더 맞고 경제학을 전공했으면 순탄한 길을 가게 됬으리란 것을 깨달았지만 길은 오래 전에 갈라져 버렸다.
사실 인생의 갈림길은 좀더 이전에 나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때 인문계와 자연계 중 선택할 때 인문계를 선택했는데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문계와 자연계의 차이를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형과 누이가 인문계 쪽으로 갔으므로 별 생각 없이 선택했을거다. 국어나 역사보다는 수학이나 물리에 더 흥미를 느꼈고 성적도 더 좋았는데. 나중에 대학을 얼마쯤 다니고 나서 화학에  흥미가 발동했으나 전공을 바꿀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일이고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정답이 없어 지금도 어렵게 느낀다. 자연과학이 훨씬 친숙하고 흥미가 있다. 그 길로. 같으면. 마찬가지로 힘들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그와 주거니 받거니 하느라 시간가는 것을 깜박했다. 나는 무엇에 몰두하면 시간가는 것을 잊어먹어 곤경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순박해 보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서 과거 의 나를 떠올리며 호감이 갔다. 문득 시간이 꽤 지났음을 깨닫고 시계를 보니 버스 출발시간이. 20분밖에. 안남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죽어라하고 뛰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내가 탈 버스가 막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무척 추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찬 공기가 뼈속까지 시려온다. 사람들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 다닌다. 물어보니 오월에 이런 날씨가 특이한 것이 아니란다. 내일은 눈이 예보되어 있단다. 숙소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밖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음이 들리고 집이 쿵쿵 울려 나가 보았다. 끝이 안보이는 젊은이들의 무리가 군데군데 대형 스피커를 단 차량을 두고 행진을 한다. 무슨 일이냐니까 오늘이 tolerance day 즉 관용의 날이라 기념 행진을 한단다. 과거에 이날을 기념할만한 일이 있었냐니까 아무도 모른다. 분명히 뭔가 계기가 있었을텐데 그에 대한 기억은 중요치 않고 젊은이들이 모여 흥겹게 지내는 이벤트만 남았다. 중고등 학생 나이에서 부터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커플까지 다양하다.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마시며 떠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지나간다. 모두들 흥에 겨워 허리를 흔들흔들하며 걷는다. 그들을 따라가 보니 가까이에 있는 큰 공원에서 행진을 멈추고 모여 논다. 날씨가 추워서 밖에. 그렇게 오래 있는게 힘들텐데도 많이 참가했다. 펑크 복장을 한 히피 차림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듯한 대학생과 직장인으로 보인다. 스피커로 계속 무언가 계속 떠들기에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이웃과 주위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내용이한다. 그들의 풍요와 개방성과 자유로운 정신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어 추운 날씨에도 군중 틈에 끼어 꽤.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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