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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19. 14:26

Stuart Firestein. 2012. Ignorance: How it drives science. Oxford University Press. 176 pages.

저자는 신경생물학자로, 이 책은 저자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요약한 것이다. 과학자는 이미 알려진 지식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한다. 과학을 하는 일은 깜깜한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일, - 그런데 그 고양이가 그곳에 있는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깔끔하게 정돈된 지식의 뭉치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교과서나 저널리즘이 제공하는 환상이다. 우리가 아는 것의 영역이 늘어날수록 알지 못하는 것이 함께 늘어난다. 과학자는 이미 알려진 지식의 최전선에서 모르는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한 탐구의 과정에서 무엇을 마주칠지 불확실하며, 많은 경우 실험이 실패로 끝난다. 우연히 마주친 현상이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작업은 오랜 시간의 인내와 동시에 스릴을 가져다 준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흥분을 기대하면서 과학자는 아침 일찍부터 실험실에 나와 밤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버틴다.

세가지의 사례를 이야기 한다. 첫째는 동물이 인간처럼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탐구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침팬치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침팬지가 거울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같은 방법으로 실험한 결과, 돌고래, 코끼리는 자의식이 있는 반면, 원숭이나 개는 자의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두번째는 물리학자와 천문학자가 물질과 우주의 시초를 찾는 작업이다. 우주의 배경 방사능 cosmic background radiation을 우연히 측정하게 되면서, 이것이 우주의 시초의 빅뱅의 자취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다. 세번째는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수학적인 실험을 통하여, 우리의 두뇌는 제한된 기억 용량에다 새로운 것을 쓰고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기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과학에 발을 들이고 연구주제를 찾게 된 과정을 자서전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업계에서 십 년 이상 일하면서 조감독까지 올라갔으나, 우연한 계기로 여유 시간이 나서 인근 대학에서 동물행동학 강의를 듣게 된다.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호기심 차원에서 강의를 들어본 것이다. 그 강의 교수의 권유로 유기화학 과목을 듣게 되고 그것이 매우 흥미로워서, 연극일을 밤에 하면서 생물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였다. 생물학으로 대학원 박사과정에 원서를 낸 것이 합격으로 이어져 본격적으로 학자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냄세 탐지가 동물의 생존 활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시각에 대해서보다 상대적으로 덜 연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냄세 탐지 분야에 몰두한 결과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 한 것이 30살이 넘어서이고 박사학위를 40살에야 받았지만, 현재는 콜럼비아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이다.

과학자가 실제 어떻게 탐구를 하는지, 어떻게 발견에 도달하는지를 일반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과학 교육을 시키면서, 어떤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지, 왜 아직 알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알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기존의 과학 지식과 함께 가르친다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 과학과 과학자를 움직이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실험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을 때의 흥분을 서술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면서 삶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경험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문득 가슴을 스쳤다. 사회과학은 말만 "과학" 이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은 누릴 수 없다. 나도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전공을 화학으로 바꿀까 하고 잠시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자연 현상이나 수학을 언어나 사회관계보다 편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 때 실행에 옮겼어야 하는데. ...

 

2021. 5. 17. 18:49

Robert Trivers. 2011. The Folly of Fools: The Logic of deceit and self-deception in human life. Basic Books. 340 page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타인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상대를 속여서 자신의 자손을 퍼트리는데 유리함(fitness benefit)을 얻으려 한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모두 상대에게 실재의 자신보다 더 좋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 한다. 상대를 속이려는 노력은 상대의 속임수를 탐지하려는 노력과 대응되기 때문에, 속이는 행위와 속임수를 탐지하는 행위 모두 진화의 과정이 전개될수록 복잡해진다. 동물의 지능은 바로 이러한 속임수와 탐지하려는 게임의 산물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더 많이 더 잘 속인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타인을 더 잘 속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자신의 무의식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의식의 수준에서는 거짓을 아는데 머무르도록 함으로서, 상대에게 이 거짓 정보를 제시하여 속일 때 훨씬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거짓을 상대에게 제시하려고 하면, 우리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여 발각될 위험이 있다. 상대에게 나의 거짓을 발각시키지 않으려면, 자신 조차도 그 거짓 정보를 믿는 것이 이러한 비정상적 행위의 위험을 예방한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의 수준에서는 거짓 정보를 믿고 자신의 무의식은 진실을 알고 있으면, 심리적 모순으로 인한 정신적 댓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기만은 그렇게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상대를 속여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력은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관찰된다. 부모와 자식간에, 남자와 여자간에, 바이러스와 항체간에, 외래 정보를 해석하는 것에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거의 모든 활동에서 상대와 자신을 속인다.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상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성향이 있다. 그 결과 주식 투자나 중요한 결정에서 실재보다 상황을 과대평가함으로서 불이익을 보는 것도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많다. 비행기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 내세움으로서 사고의 위험을 높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의 자기 기만 성향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하거나, 전쟁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크게 낭패를 본 사례에도 반영된다. 미국의 인디언과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살육, 착취, 조작의 역사를 외곡한 것,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정당방위라고 외곡한 것, 미국이 거짓 구실을 들어 이라크를 침공한 것, 등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한다.

종교는 자기기만의 대표적 예이다. 거짓된 사실을 믿고, 이러한 믿음 공동체에 헌신하게 함으로서 종교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준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

저자는 사회과학을 자기기만적 학문이라고 비판한다. 연구 대상이 사회적 현상에 근접할 수록 객관적인 방법론을 저버리며 검증할 수 없는 것을 지식이라고 생산한다. 사회과학에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얻은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화학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화학은 생물학에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사회과학이 생물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컨대 경제학의 효용 utility 라는 개념을 버리고 진화적 이익, 즉 자손을 퍼트리는데에서 유리함을 인간 행동의 근본적 동기로 설정해야 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기만의 사례들이 나온다. 기존에 많은 연구를 종합한 성과는 있으나, 한 주제를 깊이 파면서 일관되게 논의를 전개하는 서술 방식에는 미치지 못한다. 서술이 축약적이라 읽으면서 이해가 불확실한 부분이 많으며,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삶 전체가 상대를 속이려는 노력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더 많이 더 잘 속인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021. 5. 12. 22:25

Martin Daly and Margo Wilson. 1988. Homicide. Aldine de Gruyter. 297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진화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퍼뜨리는 데서 유리함을 획득하기 위한 (raising fitness) 것이다. 살인을 범주별로 구분하여 역사적 기록, 인류학적 자료, 범죄 자료를 분석하여 살인을 설명한다.

살인의 빈도로 보면 가족이나 친족간 살인이 많지만, 접촉의 빈도를 고려할 때 가족이나 친족이 가장 위험한 대상은 결코 아니다.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지인이나 이방인을 살해하는 경우가 가족이나 친족을 살해하는 경우보다 사실상 더 많다. 부모 자식간 살인보다 부부간 살인이 더 많은 것이나, 부모가 친자보다 의붓자식을 살해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있다.

아버지는 자식의 친자관계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 유아를 살해한다. 반면 어머니는 자식을 기를 환경이 되지 못하거나, 혹은 새로운 아이를 가지면 기존의 자식을 제대로 기를 수 없으리라는 합리적인 계산이 유아 살해의 원인이다. 어머니는 나이가 든 아이를 살리는 대신 어린 아이를 죽이는 것이 제한적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후손을 퍼뜨리는데 사용한다고 계산한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린다는 관점에서 볼 때 자식의 이익과 부모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 모두가 잘 자라서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는 데 관심이 있는 반면, 자식은 자신의 유전자에게만 최고의 환경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다. 부모의 제한된 자원을 자신이 독점하고자 하는 동기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원인이다. 

자신과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닌 타인을 살해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자원을 경쟁하는 가운데 발생한다. 젊은 남성들 간에 타툼이 많으며 이중 일부가 살인으로 귀결된다. 일견 사소한 이유로 싸우고 살인에 이른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은 사회적 경쟁에서 자신의 지위를 위협당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상대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말이나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싸움을 벌이기에 살인의 가능성이 높다.

남성이 남성을 살해하는 경우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여성이 남성 혹은 여성을 살해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암컷을 놓고 경쟁하는 것과 같다. 일부다처의 정도가 심할 수록 수컷 간에 짝짓기의 기회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데, 인간은 어느 정도 일부다처의 동물이므로 수컷 간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남성은 자신이 만드는 후손의 숫자에 생물학적으로 제한이 없으나, 여성은 열명을 넘어서기 어렵다. 따라서 남성은 더 많은 여성을 차지하고 자신의 여자를 뺏기지 않기 위한 경쟁에 전적으로 몰두하나, 여성은 자신의 자식을 잘 성장시키기 위한 자원을 풍부히 제공하는 남성을 찾고 지키는데 관심이 많다. 이것이 남성이 여성보다 배우자의 정조를 훨씬 더 엄격히 규제하며 배우자를 자신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남성은 바람난 배우자나 그녀의 정부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바람난 배우자나 그의 정부를 살해하는 경우가 드물다.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살해하는 경우 모두 성적인 질투가 원인이며 거의 대부분 남성 쪽에서 먼저 도발을 한다.

성적 능력이 왕성한 젊은 여성이 배우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빈도가 나이가 든 혹은 폐경기를 넘어선 여성이 배우자에게 살해당하는 빈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남성 살해자의 젊은 나이를 고려한다고 하여도 전자가 후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자신의 배우자의 성적 능력에 대한 남성의 배타적 소유 의식 때문이다.

농경사회 이전에는 피살인자의 친족이 살인자 혹은 그 친족에게 피로서 복수하는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집단의 이익을 구성원이 공동으로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은 주위로부터 업수이여겨지고 살해당할 위험이 높다. 집단이 그들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의 실험이 입증하듯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는 것이 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살인에 대한 피살해자의 친족의 복수의 감정과 관행은 진화의 산물이다.

국가가 형성되면서 개인의 사적인 복수을 제한하고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살인자를 처벌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개인의 충성심을 친족이 아니라 국가에 모으려고 한다면, 국가가 친족을 대신하여 개인이 살해될 위험을 막아주고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피살해자의 친족의 일원으로서 피살해자의 원한을 값아야 할 의무를 국가의 사법제도가 대신해 주기때문에, 개인으로서도 짐을 더는 셈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선선히 수용하였다. 그러나 복수의 감정까지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기에, 개인의 복수의 감정이 재판 결과에 반영되어 있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사람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자유의지로 타인을 살해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정신 상태에서 저지러진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해준다. 그러나 자유의지, 즉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가 여부는 과학적으로 판명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살인의 결과 살인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여부에 따라 살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합리적이다. 살인자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살인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처벌하려 하기보다 동정하는 경향이 있다. 원시 시대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면 복수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피살해자의 가족 혹은 친족에게 보상을 하였다.

국가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살인율에 차이가 크다. 미국은 예외적으로 살인율이 높으며, 모든 사회에서 전쟁을 치른 직후 살인율이 높다. 왜 특정 사회, 특정 시기에 살인율이 높은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 사회의 살인율이 높은 이유를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설명을 한게 아니다. 왜 특정 사회에서는 다수가 그러한 문화적 특성을 보이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일부 폭력적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살인율이 높은 것을 폭력적 하위문화의 탓으로 돌리는 것 또한 설명이 아니다. 왜 그들이 폭력적인 행위를 많이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의 폭력적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 이유라면, 왜 폭력적 행위의 모방이 그 사회, 그 집단에서 많이 일어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대면서 이렇게 이론적으로 진지하게 설명하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회학적 혹은 문화인류학적 설명의 약점에 새로이 눈뜨게 되었으며, 진화심리학의 설명력에 감탄하였다. 문체가 난삽하여 잘 읽어지지 않는 부분이 가끔씩 나타나는게 흠이다. 다시 읽어볼 만한 훌륭한 책이다.

2021. 4. 21. 17:12

Daron Acemoglu and James Robinson. 2006.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Cambridge. 379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정치학자이다. 이 책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는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는지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전반은 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에 관해 개념적으로 설명을 하고, 중반 이후는 수리모델을 적용해서 이 이론을 검증한다. 

정치는 집단간에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는 장으로서, 부를 가진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 가난한 다수의 대중들 간의 투쟁이 정치과정의 핵심이다.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엘리트의 부를 지키는 데 기여하며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부의 몫은 적은 반면, 반대로 민주적 정치체제는 다수의 대중에게 부가 재분배되는 정책을 구사하므로 엘리트의 이익에 반하나 대중에게는 이익이 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서면 재분배 정책을 채택하기 때문에 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완화된다. 엘리트가 대중의 위협이 없는 데도 자발적으로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대중사이에 밀고 당기는 관계로부터 민주주의가 출현하는데, 저자는 이를 게임 이론을 적용하여 이론화한다. 다수의 대중으로부터의 참정권 요구, 부를 나누라는 요구가 커지면 엘리트들은 이러한 요구를 물리적으로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 요구에 굴복하여 참정권을 확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매우 큰 데, 엘리트들이 무리하게 힘으로 억압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게 되며, 이 경우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타협하는 결정을 한 경우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엘리트들은 일시적으로 당근책을 제시하지만, 민중은 일시적 당근을 넘어서 미래에도 자신들에게 계속 유리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의사결정 제도를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대중이 엘리트로부터 미래의 분배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혹은 이행하지 않는 유형을 네가지로 단순화한다. 첫째는 영국의 모델이다. 영국은 17세기에 명예혁명을 통해 귀족과 지주로 구성된 의회가 왕권을 견제하는데서부터 시작해, 19세기에 들어 수 차례의 정치 개혁으로 참정권을 점차 확대하여, 1870년대에는 남성 모두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엘리트가 참정권 확대를 양보하는 이유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셀 때 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여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중의 요구에 타협하는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영국은 상공인 계층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물리적 억압의 비용이 더 들게 된 반면, 참정권을 확대한다고 해도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엘리트가 떠앉아야 하는 비용이 적어지게 되었다. 엘리트가 토지에만 부를 의존하면, 대중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상공업이 확대되어 엘리트의 부가 무역, 상공업, 인적자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면, 대중의 억압이 초래하는 물리적 혼란의 비용이 매우 크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역과 상공업의 비중이 클 경우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부의 재분배 조치로 인한 희생은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훨씬 적다. 상공업의 부는 토지의 부보다 해외로 부를 이전하거나 조세를 회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로 양보하는 것을 쉽게 허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민중의 요구가 특히 19세기에 거세졌을까? 이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등으로 민중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으며, 산업화, 도시화로 민중의 조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이 주인 경제에서는 민중이 농촌에 흩어져 있어 조직화하기 어렵기에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약할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들어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간계층의 존재는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중간계층이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공고화되기 유리한 조건이 조성된다.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먼저 중간계층을 포섭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약화시킨다. 다음 단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다시 높아지면 참정권을 조금 더 허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경로를 밟는다.

영국은 민주주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을 밟았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주주의의 틀을 조작하여 계속 유지하면서 민중의 재분배 요구에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판을 뒤집어 업는 것보다 엘리트들이 부담해야 하는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두번째 유형은 중남미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일단 형식적 민주주의가 들어서기는 하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등은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재의 길을 걸어 오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형식적 민주주의를 만들기는 했으나, 쿠데타로 엎어지고, 다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1980년대말까지 반복해왔다. 대농장 소유에 의존하는 중남미의 엘리트들은 대중의 분배 압력에 못이겨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허용했다가, 이러한 민주 정부의 혼란으로 쿠데타가 발생하여 군부가 집권하면, 민주정부때 도입했던 재분배 정책이 취소되면서 엘리트의 이익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다시 민주주의의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 중남미는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 엘리트들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매우 크다.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혁명으로 비화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동의하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에는 한사코 소극적이다. 민주주의 정부가 혼란에 빠져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엘리트들은 쉽게 이들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 및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계기는 모두 경제적 위기 상태에 빠질 때 발생한다. 외부적 요인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격게 되면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세져서 엘리트가 양보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일단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어도 경제적 혼란에 처할 경우 이 정부는 군부 쿠데타에 쉽게 허물어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는 민중의 분배와 정의의 요구보다는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시 하기에, 이들은 엘리트와 쉽게 결탁하며 기득권 집단에 유리한 정책으로 선회한다.

세번째 모델은 국민들이 참정권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비민주주의 체제로 싱가포르가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정부가 능력에 따라 움직이도록 투명하게 개방되어 있다. 국민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현재의 부의 분배와 삶의 수준에 어느 정도 만족하므로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서 엘리트와 충돌하여 피해가 발생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의 보상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현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언제라도 민주주의 요구가 커질 수 있고,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 체제로 양보하는 것의 희생 역시 크지 않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싱가포르에는 국민의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네번째 모델은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차단된 경우로, 인종차별이 철폐되기 이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에 해당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과 유색인사이에 부와 이념의 격차가 매우 크므로, 백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색인의 요구를 억압하려 하였다. 유색인들의 참정권 요구는 백인의 노골적인 폭력에 부딛쳐 좌절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인디안 원주민들이 질병과 살육으로 오래전에 제거된 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흑인 원주민들이 제거되지 않고 백인 지배자의 착취 대상으로 복속되어 20세기까지도 이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가 다원화되고,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백인 권위주의 정권에 가해지는 내외의 압력은 점차 높아졌다. 경제 다원화에 따라 흑인들의 소득이 점차 상승하면서 백인과 흑인간에 불평등의 정도도 완화되었다. 1980년대 이래 백인들은 흑인들에 대한 억압의 고삐를 점차 늦추면서 흑인들과의 공생관계를 모색하였다. 넬슨 만델라라는 흑인 지도자가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백인과 권력을 분점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면서, 마침내 1990년대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중간층이 얇으며 소득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어려운 취약한 상태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한 엘리트의 희생이 감소한 것, 국제적 압력의 확대와 전염효과 등을 들 수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하던 아르헨티나, 칠레, 콜럼비아 등에서도 앞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의 다변화, 대중의 소득과 교육 수준 상승 등의 요인이 중남미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배링턴 무어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사회적 기원"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이행을 사회계급 사이의 구조적 관계로 설명함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제적 기원"이라는 유사한 책 제목을 달고 경제적 이해의 갈등 관계로 민주주의의 이행 여부를 설명한다. 두개의 논의는 모두 경제결정론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무어는 사회학자답게 보다 사회구조적인 배경에 설명의 촛점을 맞추는 반면, 이 책은 경제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정치학의 행위자 모델을 접목하는 설명을 한다. 경제 이외의 요인, 예컨대 인종이나 민족 등에 따른 정치적 갈등도 깊이 들여다 보면 경제적 이익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결정론적인 설명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보는 접근 역시 독특하다. 모든 정치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이 책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이론에 대해 개념적 설명을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수리 모델을 제시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들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통찰력이 크며 감탄할만하다. 수리모델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용한지는 까막눈인 필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명쾌하다.

2021. 4. 18. 21:46

Cesar Hidalgo. 2016. Why Information grows: The Evolution of order, from atoms to economies. Basic Books. 181 pages.

저자는 MIT 대학의 Media Lab 교수이며 경제학자로, 정보이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행위와 경제 현상을 설명한다.

우주는 에너지, 물질, 정보라는 세가지 요소로 만들어져 있다. 물질은 에너지를 이용하여 질서 혹은 정보를 만들어 낸다. 평형 상태로 부터 벗어날 때 out of equilibrium 정보가 만들어진다. 정보 혹은 질서는 항시 정보가 소실되는, 혹은 무질서로 돌아가려는 경향, 즉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우주의 대부분은 높은 엔트로피의 평형 상태에 있는 반면, 지구는 우주에서 예외적으로 정보 즉 질서가 높은, 평형에서 벗어난 지역이다.

정보를 증가시키려면,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가 소실되는 자연의 힘을 거슬러야 한다. 정보의 증가란 질서의 증가, 복잡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고체 상태로 만들어 이것에 정보 혹은 질서를 체화 embeded 시킴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가 소실하는 자연의 힘을 막는다. 물질이 스스로 계산하는 compute 능력을 가질 때 정보를 만들어 낸다. 생명체란 계산하는 능력을 가진, 질서를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우리의 세포는 끊임없이 정보를 처리 process 한다.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계산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질서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상실하고, 우주의 무질서, 즉 정보가 없는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생명 활동이란, 이러한 자연의 힘에 거슬러서, 질서를 계속 유지하고 새로이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계산하는, 즉 정보를 처리하는 물질이다. 인간은 계산하여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낸 새로운 정보의 뭉치는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에 인간이 생성한 정보가 체화 embeded 되어 있다. 인간은 이렇게 만들어낸 물건, 즉 정보의 뭉치를 이용하여 더 복잡한 즉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담은 물질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머리속에서 상상한 것을 구체화시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 즉 새로운 정보의 뭉치를 창조한다. 인간의 경제활동이란 정보를 증가시키는 활동,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활동, 이렇게 만드는 정보를 물건에 체화시키는 행위이다.

정보는 물건에 체화되기도 하지만, 또한 인간의 지식과 기술 knowledge and knowhow 로 체화된다. 그런데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제한이 있다.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양의 지식과 기술은 사람들의 네트워크, 즉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집합적으로 담는다. 회사란 여러 명이 분업으로, 즉 종류를 분담하여 다양한 많은 정보를 담은 집합체이다. 회사는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양의 정보, 즉 복잡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개별 회사의 조직으로 담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양의 정보, 매우 복잡한 정보는 시장기구 등의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담는다.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동일하지 않다. 지식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양, 더 복잡한 정보 처리를 하고 새로 만들어 낼 수있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의 수준이 높으면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데 드는 거래 비용이 적은 반면, 사람들 사이에 신뢰의 수준이 낮으면 사회 네트워크 내의 거래 비용이 많이 든다. 거래 비용이 적은 사회 네트워크는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데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즉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 즉 매우 복잡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적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즉 단순한 정보를 처리하여 체화시킨 물건은 많은 나라에서 만들 수 있다. 반면 많은 양의 정보, 즉 복잡한 정보 처리를 통하여 체화시킨 물건은 소수의 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다.  많은 양의 정보, 복잡한 정보 처리는 한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며, 회사 단위의 정보, 혹은 그보다 더 큰 범위인 산업 생태계 단위의 정보 담지력을 요구한다. 매우 복잡한 정보 처리는 단순히 한 개인 혹은 한 회사를 이식한다고 하여도 수행할 수 없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계속 높아지는 방향인데, 우리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힘에 거슬러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회사를 만들고,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사회 체계를 만들어 냈다. 경제 발전이란 더 많은 정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책은 '인간의 경제활동은 정보 생성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인간 사회를 물리학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논지는 간단하지만 통찰력을 준다.

 

 

 

 

2021. 4. 16. 18:02

Ronald Inglehart. 2018. Cultural Evolution: People's motivations are changing, and reshaping the world. Cambridge. 216 pages. 

저자는 정치학자로 "세계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의 주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가치관 변화 이론을 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검증한 그간의 연구 결과들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 modernization theory 를 약간 변형하여,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의 가치관이 물질주의 materialistic values 에서 비물질주의 non-materialistic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그의 주장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 survival values 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 Expression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생존이 위협을 받는 단계에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추종하며, 집단주의 collectiv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외부인을 배격하며,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으며, 종교를 중시하며, 위계적 질서와 전통을 옹호한다. 그러나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어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의 삶의 우선순위는 바뀐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고,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주의 individual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자율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을 허용하며, 세속적 합리적 가치관을 가지며, 외부에 대해 개방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하게,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발전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서구 사회가 20세기 후반 지식중심의 경제 knowldege economy 로 이전하면서, 자유,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람이 획일적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

가치관의 변화는 세대의 이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장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관이 이후 일생동안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물질적 결핍을 겪은 사람은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하게 되는 반면, 성장기에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며 자라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한다. 서구 사회에서 2차대전 이전에 성장기를 겪은 세대는 생존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을 가진 반면, 전후의 풍요 시기에 성장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다. 이들이 바로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여성운동, 동성애 인정을 가져온 세대이다. 

개별 사회 내에서 볼 때는 종교적인 사람이 덜 종교적인 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지만, 사회전체를 단위로 보면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는 세속적인 사회보다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지 않다. 서구 산업사회는 모두 세속주의 secularism가 확대되어 왔는데, 이러한 추세 예외라고 하던 미국 조차도 근래에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게 되면 여성의 지위는 향상된다. 물질적 생존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권위주의적 남성 우위의 가치관이 지배하지만,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여성의 지위, 성적 자유, 성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한다.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집단에 대한 충성도는 약화된다. 이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전장에 나가겠다는 의지의 약화로 나타난다. 즉 물질적 위협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의 의식은 평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경제발전이 왜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경제발전이 사람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민주주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면, 자신을 표현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민주적 욕구, 즉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욕구가 높아지면, 사회적 동원으로 이어지며, 이는 민주적 제도의 발전을 낳는다.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의 정도와 민주적 제도화의 정도가 불일치 할 경우 정치가 불안정해진다. 만일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가 높지 않다면, 아무리 외부로부터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여도 이것이 정착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이다. 중국을 민주화하려면 결국 그들의 경제발전을 도와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중국은 아직도 일인당 소득이 낮아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권위주의 가치관과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여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행복도도 높아진다. 소득이 낮은 수준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가 높아지는 속도도 높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약화된다. 그럼에도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를 이끈다는 명제는 어느 소득 수준에서나 항시 옳다. 행복도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행복도는 소득과 무관한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그릇되다.

1990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동구권 사람의 주관적 삶의 질은 현저히 하락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후퇴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공산주의 이념이 몰락하면서 삶의 의지처를 잃은 때문이다. 그 결과 동구권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종교의 영향이 높아졌다. 종교가 공산주의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

근래에 서구 산업국의 노동계층 사람들은 소득이 정체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물질적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며,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높아졌다. 그 결과 이들은 권위주의와 인종주의를 옹호하며,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에 지지를 보낸다. 이민자가 20세기 후반 이래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이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가치에 따라 투표하는 성향이 높아졌다. 종교와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노동계층의 투표 성향은 계급적 이익과는 별개의 독립 차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서비스 노동자가 늘어나고, 인공지능의 확대로 사무직 노동자의 지위까지 위협받고, 승자독식 winner-takes-all 체제가 뚜렷해지면서,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대되며, 민주주의가 후퇴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1930년대에 대공황시대에 뉴딜정책과 유사하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배를 바로잡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의 옹호자로 이 책에서 그의 일생의 연구결과를 집약한다. 그의 주장은 비교적 분명하며, 데이타 분석 결과를 통해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의 초반은 자신의 이론을 잘 정리하여 읽을만 하다. 그러나 이책의 중반 이후는 그가 과거에 쓴 논문을 짜깁기하여 덧붙이기 때문에 중복이 많으며 읽기에 지루하다. 여하간 한 학자의 일생의 연구를 요약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21. 4. 14. 09:07

Mauro Guillen. 2020. 2030, How today's biggest trends will collide and reshape the future of everything. St.Martin's Press. 242 page.

저자는 펜실베니아 대학 경영학 교수이다. 이 책은 현재의 추세를 점검하면서 십년 후의 미래를 예측한다. 인구, 여성, 환경, 기술 분야에 집중하여 논의한다.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가 지속되면서 베이비 붐 세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이들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으며, 기술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아직은 기업들이 이들의 구매력에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얄팍한 유행이나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들은 소비재를 자주 바꾸지 않으며, 이들이 소비하는 분야는 젊은이와 다르다. 이들의 건강이 약화되는 것을 보충하는 장치나 의료기기가 이들의 지갑을 열게 할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커지는 반면, 유럽과 미국의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세계의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은 앞으로 중국과 남아시아에서 주로 나올 것이다. 선진국의 인구는 점차 감소할 것이다. 

세계 인구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면적이 매우 넓으므로 선진 농업 기술이 이들에게 보급된다면 인구 증가의 압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제조업이 커지고, 점차 소득이 높아질 것이다. 

여성의 지위는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상위직에 오르는 여성이 많아질 것이며, 특히 여성이 보유한 자산의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물 부족 문제가 심화될 것이다.

자동화와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킹의 정도가 높아질 것이다. 공유경제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다방면으로 활용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다고 하고, 여러 경제지가 추천하는 베스트 셀러인데, 내용이 피상적이고 진부하여 의아한 느낌이 든다.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읽었다.

2021. 3. 31. 17:30

Martin Seligman. 1990. Learned Optimism: How to change your mind and your life. Vintage. 292 pages.

저자는 긍정 심리학 positive psychology 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이책은 긍정 심리학의 대표적인 저작으로서, 생각하는 바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삶에서 성공과 실패, 궁극적으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낙관적 사고방식 optimism 을 가진 사람은 역경에 처해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반면, 비관적 사고방식 pessimism 을 가진 사람은 역경에 처할 때 크게 좌절하고 우울에 빠져 오래도록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동물 실험 결과 반복 학습을 통해 무기력한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learned helplessness) 확인했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하면, 역경에 처할 때 대응하려는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반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역경에 부딪쳤을 때 이를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결국 역경에서 벗어난다.

누구나 살다보면 크고 작은 역경을 경험하게 되는데, 자신에게 닥쳐온 역경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비관적일수록 무기력 상태를 낳는다. 역경을 자신에게 설명하는 방식에서 세가지 차원을 구분한다. 역경의 원인이 얼마나 영속적인지 permenance, 역경의 범위가 얼마나 포괄적인지 pervasiveness, 역경의 책임을 얼마나 자신에게 귀속시키는지 personal 가 그것이다. 역경의 원인이 특정 시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속적이라고 생각할 때, 역경의 원인과 결과가 특정 사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안에 광범위하게 해당된다고 생각할 때, 역경을 더 힘들게 느끼며 역경을 극복하는 데에 무력해진다. 역경을 초래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책임이 타인과 환경에 있다고 생각할 때보다 역경을 더 힘들게 받아들인다. 역경을 이렇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면, 감정적으로 좌절하고 주저앉게 되어, 역경을 극복하려는 행동으로 나서기 힘들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낙관주의자는 자신에게 닥쳐온 역경이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역경이 특정한 상황에 한정된 것이므로 다른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역경을 발생시킨 원인이 환경과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에 상대적으로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따라서 낙관주의자는 역경에 부딛쳐 오래동안 좌절하거나 침체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툭툭 털고 역경을 극복하려고 대응 방안을 찾으며, 쉽게 일상으로 복귀하므로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낙관적 사고방식이 비관적 사고방식보다 더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증거는 많다. 일과 직장, 어린이의 성장, 학교, 스포츠, 건강, 정치의 영역에서 긍정적 심리학을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실제로 이 명제가 타당함을 증명하였다. 닥쳐온 역경을 낙관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비관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보다 일에서 더 성공하며, 학업에서 더 높이 성취하며, 운동경기에서 더 많이 승리하며, 더 건강하며, 선거에서 더 많이 당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긍정적 심리학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비관주의적 사고방식이 진화적 측면에서 볼 때 유용한 측면도 있다고 인정한다. 인간의 삶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항시 효율적이지는 않다. 비관적 사고방식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다 더 정확히 파악하도록 한다. 따라서 위험을 실제보다 가볍게 평가할 경우 희생이 큰 상황에서는 낙관적 사고방식보다 비관적 사고방식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다.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과학자에게도 긍정적 측면을 과대평가하는 낙관적 사고방식보다는 심하지 않은 정도의 비관적 사고방식이 더 도움이 된다.

저자는 비관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훈련을 통해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ABCDE 모델이라고 명명하였다. Adversity - Beliefs - Consequences - Dispute - Energize 의 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 역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반박함으로서, 무기력해지려는 감정을 막을 수 있고, 이는 극복을 위한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사고 훈련을 거듭하게 되면, 사고의 습관이 바뀌게 되어, 결국 역경을 설명하는 방식이 낙관적으로 변한다. 닥쳐온 역경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반박하는 방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자신의 생각의 근거가 박약함을 객관적 증거 evidence 를 대면서 반박한다. 둘째는, 그 역경이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대안적인 설명 alternatives 을 제시하면서 반박한다. 세째는, 설사 자신이 생각한 원인이 맞다고 해도 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고 역경의 함의 implications 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반박한다.

역경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문화와 종교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동독 사람은 서독 사람보다 훨씬 더 비관적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역경을 비관적으로 해석함으로서 무기력한 감정을 낳는 것이 서구의 개인주의 가치관의 소산일 수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문화에서는 역경을 해석하는데에서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것이 부정적 감정을 낳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는 가능성만 매우 간단히 언급한다.

근래에 미국인은 과거보다 우울증의 정도가 두 배 이상 심하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근래로 올수록 개인주의가 심화된 반면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모든 성취와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때, 개인은 역경에 취약해지게 된다. 의미있는 삶 meaningful life 이란 자신보다 더 큰 것, 즉 가족, 공동체, 조직, 국가에 자신의 삶의 근거를 둘 때에 찾아온다. 단독의 개인이 삶을 모두 책임져야 하지는 현재 미국인의 삶은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며 결국 우울과 삶의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자는 긍정 심리학의 전도사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의 주장, 즉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감정이 바뀌고, 그에따라 행동 방식이 바뀐다는 명제는 논란 거리이다. 사람의 감정은 자신의 생각과 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근래 심리학에 핫 이슈이다. 반복 훈련을 통해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할까? 생각을 바꾸는 훈련을 거듭하면 비관적 성향이 낙관적 성향으로 바뀔까? 이 책은 그의 연구가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서술하므로, 외관상으로 볼 때 그의 주장은 객관적 연구의 성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의 연구가 그렇듯이, 일부 사례를 통한 검증이 보편적 타당성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닥친 역경이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면, 아무리 나의 역경을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드는 예 중에는 보험을 판매하기 위하여 매일 낯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수없이 거절 당해야 하는 보험회사 판매원이 있다. 반복적으로 거절을 당하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어 스무번 전화를 걸어 한 번의 대면 약속을 받아내고, 대면 약속을 한 예비 고객을 만나서도 최종적으로 보험을 팔기까지 또 숫한 거절을 경험해야 한다. 만일 구조적으로 보험 판매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스무 번 중 한번이 아니라 백번 중 한번의 대면 약속을 받아내는 확율이라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전화로 보험 영업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한 구조적 상황이라면 전화로 보험 영업하는 것은 노력 낭비라고 비관적이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긍정 심리학이 개인의 주체성 initiative 를 강조하는 반면 구조적인 문제에 소홀하게 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과대평가하도록 한다는 점은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적 사고습관이 역경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무기력을 낳고 극복을 어렵게 한다는 그의 발견은 값진 것이다.

2021. 3. 27. 11:50

Kevin Simler and Robin Hanson. 2018. The Elephant in the Brain: Hidden Motives in Everyday Life. Oxford University Press. 313 pages.

저자 중 한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고 다른 한명은 경제학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떠오른 의문에 답을 찾으려고 관련된 연구를 뒤지다가 결국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행위에는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외적으로 밝히는 목적과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전반부는 사람들이 행위의 실제 동기를 숨기는 이유에 대해 이론적 설명이 제시되며, 후반부는 일상의 다양한 행위들에 대해 숨겨진 실제 동기를 구체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이 전개된다. 

인간은 동물 세계의 일부인데,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을 한다. 제로섬 게임의 이기적 경쟁은 집단의 존속에 해가 되기 때문에, 사회는 규범을 통해 개인의 행위를 통제한다. 한편 개인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러한 규범을 교묘히 위반하면서 사익을 추구한다. 이기적 의도에서 규범을 위반하는 것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은 속임수를 쓴다. 남을 속이는 데에서 가장 고도의 수법은 행위하는 당사자 자신에게까지 진실한 의도를 속이는 것이다 (self-deception). 행위하는 당사자에게 무의식 수준에서 추구하는 진실한 의도와 의식의 수준에서 인식하는 행위의 동기가 어긋난다. 무의식의 수준에서 추구하는 행위의 진실한 목적은 물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위자 본인은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노골적 이익 추구가 아닌 다른 동기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자신 및 타인에 대해 자신의 행위를 떳떳하게 정당화할 수 있다. 

개인의 행위는 물론, 사회적 제도에 대해서 숨겨진 동기를 찾는 작업을 전개한다. 신체 행위, 웃음, 대화, 소비, 예술, 자선 행위, 교육, 의료, 종교, 정치의 각각에 대해 장을 달리하여 설명한다.

신체 행위가 발산하는 메시지는 화자가 말하는 메시지보다 진실되다. 사람들은 사회 생활에서 섹스, 지위, 권력을 추구하는데, 신체 행위는 사람들의 실제 의도를 더 잘 드러낸다.

웃음은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있는 상황에 대해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신호를 상대에게 주는 행위이다.

대화는 서로간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 이외에, 대화 상대에 대해 지위를 얻으려 하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목적을 품고 있다.

소비는 실용적 목적 이외에 남에게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conspicuous consumption. 상품 자체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상품을 동반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 광고는 lifestyle advertisement or image advertisement 사람들의 지위 과시 욕구를 자극한다.

예술은 예술 자체의 본질적 가치 이외에, 예술가나 예술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비실용적 희생을 감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실용적 희생을 감수하는 행위는 그러한 희생을 치를 능력이 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사회적 지위 추구 행위이다.

익명의 자선 행위가 전체의 1%에 불과한데서 알 수 있듯이, 자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자선 행위가 외적으로 표명하는 목적에 실제 얼마나 기여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교육은 유용한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 이외에, 사람들을 선별하는 screening 목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지식의 습득보다는 자격증을 획득하는 데 관심이 더 크다. 교육은 창의성을 개발하는 제도가 아니다. 교육을 통해 잘 길들여진 순종적인 노동자를 만드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의료 행위는 치료보다는 돌봄을 받는다는 메시지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국인이 과잉진료를 하는 이유는 충분히 돌봄을 받았다는 확인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권위있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비싼 과잉 진료를 받는 경우와 기본적인 진료를 받는 경우간에 건강 수준에 차이가 없다. 미국에서는 돈을 아껴서 가용한 비싼 진료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사지 않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이러한 관행은 의료계의 높은 수익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

종교의 진실한 목적은 사회적 통합이다. 사람들은 신을 믿기 때문에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종교행위에 참여하면서 그 집단이 공유하는 믿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들은 종교행위에 참여하면서 우리 집단의 소속을 확인한다. 믿음의 구체적 내용은 중요치 않다. 단지 믿음은 우리 집단과 타 집단을 구분하는 징표로 사용될 뿐이다.

정치는 집단들 간의 경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을 선거나 기타 정치 참여를 통해 표명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이 어떤 정강, 어떤 이념을 추구하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 집단과 타집단을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 이익과 배치되거나, 사회 전체에 위해가 되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에 지지를 표한다. 이는 사람들의 부족주의 tribalism 본능, 즉 소집단에 속하고 싶어하며 타집단을 배제하려는 성향에 기인한다.

이 책은 분석에서 약간 아마추어 냄세가 난다. 흥미 있는 논의도 곳곳에서 보이나, 많은 논의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사람들의 행위의 동기는 복합적이어서, 사적 이익 추구 동기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동기도 섞여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이한 동기가 어떤 비중으로 섞여있느냐는 것일텐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동기의 비중은 상이할 것이다. 가볍게 읽어 내릴 수 있는 책이다.

 

 

2021. 3. 7. 21:24

Robert Bates. 2010. Prosperty and Violence: the political economy of development. Norton. 98 pages.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인데, 국가의 폭력이 서구의 역사에서는 제어될 수 있었던 반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제어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의 폭력이 제어될 때 경제 발전이 가능한 반면, 그렇지 못할 때 빈곤과 비참이 지속된다.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가족과 친족이 폭력을 행사하는 단위였다. 가족과 친족의 구성원이 폭력을 당했을 때 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복수하고 이는 다시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평화는 잠정적 과도기적 현상으로, 때때로 폭력이 분출되는 사이클을 보인다. 마치 화산이 분출과 휴지를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리듯이.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유재산권이 언제라도 침탈당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본을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하지 않으므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새로운 재배 기술이나 새로운 종자을 시도하려하지 않으며, 상업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조금 더 높은 생산성을 바라면서 새로운 종자나 재배 기술을 시도했다가 만일 실패하면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생산성은 낮지만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업작물을 재배했다가 시장 상황이 악화되어 가격이 폭락하면 생존의 위협에 처하므로 돈은 안되지만 자급자족할 수있는 생산성이 낮은 전통적 농업을 고집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 친족이란 예기치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적 성격을 지닌다. 작황이 나쁘거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친족과 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언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처는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친족과 부족 구성원을 위해 나의 노동을 바치고 폭력의 행사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족과 부족을 단위로 폭력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전통 사회는 외면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상은 평화롭지 않으며 구성원에게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친족과 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단위인 국가에 폭력의 행사를 위임하는 관행이 출현했다. 국가의 지배자가 중앙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에 구성원간 사적인 폭력을 제한함으로서 평화를 가져올 수있다. 지역 엘리뜨에게 사적인 폭력 수단을 포기하는 댓가로 지역의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나누어 준다거나, 국가의 고위직을 부여하여 국가나 지역의 통치에 동참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적인 폭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문제는 국가의 지배자가 폭력을 중앙에 집중하여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큰 군대가 필요한데,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높은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지배자는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에 더하여 지주와 상공인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이 비용을 충당하려 하는데, 지주에 대한 세금은 지역 엘리트와의 관계 때문에 고율로 착취하기 어렵다.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기도 어려운데, 왜냐하면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요구하면 그들은 자신의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 딜레마를 가장 먼저 해결한 나라이다. 왕이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지주와 상공인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이다. 영국의 의회는 국가의 재정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짐으로, 왕이 함부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돈을 쓰는 것을 제어한다. 왕의 행위를 의회가 통제하기 때문에 국민의 사유재산권은 왕의 침탈로 부터 보호된다.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가 보호된다는 보장이 있기에,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먼저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영국은 이웃나라와의 군사적 경쟁에 필요한 군비를 민간 자본으로부터 장기 저리로 조달할 수 있었다.

제 3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이 빠진 것을 기화로 독립을 얻었다. 이들 나라에서 폭력은 부족의 휘하에 장악되어 있으며, 국가가 폭력을 중앙에서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들 사이에 폭력을 주고 받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이들 나라의 지배자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군대를 유지하고 지역 엘리트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민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원조 자금과 이권으로 융통한다. 이들은 유럽과 달리 지배자가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국민의 대표나 지역 엘리트에게 위임하는 댓가로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않으므로, 국민과 지역 엘리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일방적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배자가 언제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를 뺏을지 알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노력을 투입하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컨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라고 주는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개발도상국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정치 민주화나 경제개발은 국가의 지배자가 국민에게 자신의 통치 권한을 위임하고, 지배자의 뜻에 따른 자의적 폭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에만 가능한데,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바로 이러한 제도가 발전할 수있는 기반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의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과 선진국의 정치경제의 역사를 대비함으로서, 국가의 정치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국가는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이며, 통치자의 자의적 폭력을 대의 기구를 통해 제어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열쇄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사유재산이 보호된다고 해도, 왜 어떤 나라에서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더 활발한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지만, 경제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확인시켜준다. 평이하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 쓴 것 같지만 많은 자료를 소화하여 만들어 낸 좋은 에세이이다.

2021. 3. 3. 17:21

Joel Mokyr. 2002. The Gifts of Athena: Historical orgins of the knowledge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97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이다. 이 책은 이론적 지식이 서구의 산업혁명과 이후의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연구한 학술서이다. 이론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의 관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하는데 기여한 지식의 역할, 공장제 생산의 발전, 보건 지식이 19세기 말 여성의 가사노동에 미친 영향, 기술 혁신에 대한 정치사회적 반발,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지식과 제도, 등을 각 장에서 독립적으로 다룬다.

서구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한 원인은 새로운 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지식이 따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 기술은 연관 분야의 기술 개발로 확산되지 않으며, 관련 업계나 일반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항시 이에 대한 반발이 있는데, 이론적 이해가 없는 새로운 기술은 이러한 반발을 극복하고 확장되기 어렵다. 중국이나 이슬람과 달리 유럽에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연이어 발전할 수있었던 것은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 지식이 기술 개발과 앞서거나 뒷서거니 하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은 개발 못지 않게 접근이 얼마나 용이한지가 관건이다. 서구 유럽은 새로운 지식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술과 지식은 책으로 정리되어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으며, 기술자와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모임과 협회가 무수히 많아서 서로 밀접히 소통하였다. 18~19세기에 기술과 지식을 요약한 백과사전이 많이 발간되고 유통되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식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보다 자신의 발견을 공개하여 명예를 얻는 관행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술의 특허제도는 새로운 기술을 널리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기술과 지식의 관계에 따라 산업혁명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번째는 1770년에서 1850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기술자의 시행착오가 기술 개발을 주도하던 시기이다. 1860년에서 1910년까지는 이론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이 밀접히 서로 연관되어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1910년대 이후에는 이론적 지식이 선도하여 실용적 기술 개발을 견인한 시기이다.  근래로 올수록 이론적 지식이 기술 개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핵 기술이나 화학물의 개발은 이론적 지식 없이 기술자의 시행착오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산업 혁명이 공장제 생산을 발달시킨 원인 중에는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폭과 깊이가 깊어진 것도 있다. 생산에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높아진 것, 노동자와 노동의 질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 규모의 경제, 등을 대표적인 공장제 생산의 원인으로 든다. 이에 더하여, 개인이나 가정과 같은 소규모 생산단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양이 증가했을 때 공장제 생산은 필연적이다. 대규모 공장에서는 기술과 지식의 분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19세기 중반에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저히 떨어지며 대부분이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는 이 시기에 보건 지식이 발전하면서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 활동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다. 병원균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을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였기에,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병의 기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질병의 위험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에 대한 집착이 완화되었고, 기혼 여성들이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게 되었다.

 혁신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어느 사회에나 일반적 현상이다. 혁신은 기존 기술과 체제에 바탕을 둔 기득이권을 뒤집어 엎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시간적 사회적으로 넓게 퍼져 있어 조직화가 어려운 반면, 혁신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소수에게 집중해 있으므로 이들은 혁신에 반발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한다. 혁신의 수용이 시장에 맡겨지는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해결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정부가 혁신의 편에서 반발을 진압하는데 앞장섰으며, 지주계급도 혁신의 이익을 나누어가질 수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혁신이 빠르게 수용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도 혁신의 선두에 오래 있을 수없다. 기존의 기술과 체제를 새로운 혁신이 대체하면 새로운 기득권 집단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이후의 혁신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기술발전의 동력이 약화된 이유는, 산업혁명에 일찌기 성공하면서 19세기 후반의 기술발전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가 사회적으로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사회 전체로 볼 때 혁신의 동력이 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었다. 서구 사회는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으므로, 한 나라에서 혁신이 거부되면 경쟁하는 이웃 나라에서 혁신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혁신의 동력이 독일과 미국으로 이전하였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는 기술혁신으로만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발전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제도적 문화적 환경을 키워야 한다. 다양성을 허용하며, 개방적이며, 혁신에 대한 사회적 보상 장치가 마련되며, 기술혁신으로 발생하는 패자를 포용하는 사회보장 제도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기술이란 다양한 것의 재조합 recombination 을 통해 탄생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개방성이 중요하다.

이 책은 단일 주제로 관통하지만 엄청나게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기에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장을 좀더 잘게 구분하여 논의를 정리한다면 독자에게 훨씬 친절했을텐데. 여하간 내용이 풍부한 대단한 책이다.

2021. 2. 26. 17:37

Charles Goodhart and Manoj Pradhan. 2020. 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 Ageing societies, waning inequality, and inflation revival. Palgrave Macmillan. 218 pages. 

저자는 영국의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선진국에서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미래의 경제가 지금까지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은 제2차 대전이래 1970년대까지 경제활동연령이 증가하면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베이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접어들고 저축과 투자가 감소하며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경제활동인구가 젊은 시기에는 생산을 소비보다 많이 하므로 경제 전체로 볼 때 저축이 많으며 이는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반면 노령화할수록 생산은 줄고 내구재 소비도 줄지만 의료 소비가 늘어난다. 고령층의 치매는 보살피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일찍 죽지 않는 병이므로 수명이 증가할 수록 사회적 부담은 크게 높아진다.

세계화로 중국의 인구가 노동력에 편입되면서 선진국은 그동안 노동비용을 높이지 않고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노동력 자원이 줄어들면,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는 노동력 부족현상을 수반하고, 이는 임금을 높일 것이며 전반적으로 인플레를 야기할 것이다. 경제 전체로 볼 때 생산은 감소하는데 수명 상승으로 노인의 소비는 증가하기 때문에 인플레는 피할 수 없다.

소비보다 저축이 많았던 지난 수십년 동안 낮은 이자율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높은 저축률은 중국에서 가능했으며, 선진국에서도 노동인구가 젊어서 소비보다 생산을 많이 하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구 노령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기에 과거와 같은 높은 저축률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는 저축률을 떨어뜨리므로, 결국 전 세계로 볼 때 과거와 같이 자본이 남아도는 현상은 사라지고 이자율이 상승할 것이다. 

은퇴자에게 매우 후하게 설계되어있는 현재의 연금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노동자들의 은퇴연령을 높여야 하며, 연금의 지급률을 낮추어야 한다. 정부가 재정적자로 연금의 부족을 메우는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앞으로 이자율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큰 규모의 재정적자를 매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인구 노령화가 심하게 진행되었지만 이자율은 낮았으며 디플레를 경험하였다. 이는 저자가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가 가져올 변화와 반대로 전개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은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고령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고 높은 저축율을 계속 유지했으며, 일본의 자본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으로 진출하여 생산한 물건을 수입하면서 물가를 낮추었다. 일본은 인구 노령화로 노동력 부족현상에 직면했음에도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이 유효했는데, 이는 그동안 비경제활동인구로 잠자고 있던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본과 같이 고령층의 높은 경제활동참가율에 도달하기 어려우며 전반적으로 저축율이 낮기때문에, 인구가 고령화하면 일본과 달리 이자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앞으로 새로 창출되는 저임금 노동력 자원이 고갈된다면, 과거에 중국이 그랬듯이 인도나 아프리카의 잠재 노동력을 활용하여 선진국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반론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이다. 인도는 민주주의 체제의 행정적 비효율이 매우 높기에 중국과 달리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우며, 아프리카는 많은 나라로 쪼개어져 있는데다 인적 자원의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효율적인 노동력으로 동원하기 어렵다.

선진국은 정치적 부담때문에 개발도상국 사람의 이민을 받아들여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어려우며,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보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한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과거와 같이 활발하기 어렵다. 노인 돌봄 서비스의 생산성 향상 속도는 매우 느리며, 로보트로 대체하기 힘든 감정노동이기 때문에, 노인 돌봄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하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저자는 선진국이 앞으로 이자율 상승, 임금 상승, 물가 상승, 투자와 생산 감소, 경제 침체 내지 후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길을 피하려면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이민자를 받아들여 노인의 간병을 맡게 하며, 연금 개시 연령을 높여서 고령층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여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줄어드는만큼 경제가 축소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의 예측에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앞으로 선진국에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에 의심이 든다. 치매 노인의 인구가 증가하여 노인의 간병 수요가 획기적으로 늘면, 이를 담당할 외국인 노동력이 대규모로 수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대인서비스를 제외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디지털화되면서 효율성이 높아지고 서비스 업무의 일부는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할 것이기에 앞으로 선진국에서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 노동력 부족 때문에 임금이 크게 오르지는 않겠지만, 세계화의 피해를 본 노동계층의 반발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상이 더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시간당 최저 임금을 15달러로 올리고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노동계층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조치이다. 

두번째는, 선진국의 인구가 고령화하여 저축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중국 등의 후발국의 저축율은 상당기간 동안 높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자본이 부족해져 이자율이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국은 저축이 떨어지지만 투자도 함께 감소할 것이며, 연금을 받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연금 급여 수준을 낮출 것이기 때문에 선진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볼 때 자본의 심각한 부족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인도나 아프리카는 각자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세계 노동시장에 새로운 노동을 공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저자의 진단에 문제가 있다. 중국이 1980년에 개방할 때에 사회주의 체제로 인한 문제가 많았음에도 세계 경제에 빠른 속도로 편입했듯이, 중국이 국내 경제로 중심축을 이동하면, 인도가 바톤을 이어받아 내부의 문제를 빠른 속도로 개선하면서 세계 경제에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은 했는데 인도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중국이건 인도건 그들은 나름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에 지금까지 개발도상국에 머물렀던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대부분 틀리지만, 생각할 수있는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비슷하게 표와 그래프가 많으며, 반복이 심하고 전문용어를 쓰면서 서술이 매우 건조하다. 별로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다.

 

 

 

2021. 2. 24. 17:58

Benjamin Friedman. 2005. The Moral Consequences of economic growth. Vintage books. 436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경제성장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18세기 이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역사 전개를 사례로 하여 설명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가 개방적이고, 이민자와 다양성을 포용하고, 사회이동이 높으며, 공정성과 민주주의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반면, 경제가 침체 혹은 후퇴하면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로부터 멀어진다. 절대적인 경제 수준보다는 경제가 성장하는가 여부가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다. 즉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라도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되는 반면, 아무리 소득이 높은 나라라도 경제가 침체하거나 후퇴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먼저 자신의 과거의 상황과 비교하며, 그 다음으로 주변의 다른 사람의 상황과 비교한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면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여 자신의 현재가 나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상황도 조만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비록 자신의 상황의 개선 속도가 주변 사람의 개선속도보다 느리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 상황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게 되면, 사회적으로 개방성과 포용성이 높아지며,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높아지며, 공정성과 민주주의도 향상되게 된다(movements toward openess, tolerance, mobility, fairness, democracy). 반면 경제가 침체하면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에 대해 등을 돌린다.

미국이 1960년대에 민권운동으로 흑인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고, 이후 여성운동으로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된데에는 이차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꾸준한 경제성장이 배경 요인이다. 1970년대 중반이래 경제가 어려워지고, 1980년대 구조조정의 기간에 노동자의 소득이 정체되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흑인의 지위 향상은 중단되었으며, 이민을 통제하는 조치가 등장하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게 되었다. 1870년대에 큰 불황을 겪으면서 일시적으로 농민을 중심으로 대중영합주의가 세력을 얻고 인종차별이 심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세기 말에 미국 사회의 전반적 개혁을 추진한 진보주의 progressivism 사회운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볼 때 19세기의 경제성장과 중류층의 부상 덕분이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래 19세기 전기간 동안 경제가 꾸준히 팽창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1880년대 이래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투표권을 꾸준히 확대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0년대의 대공황 기간 동안 배타적인 민족주의 세력이 활개를 쳤으며, 독일은 1차대전 이후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배경으로 나찌의 파시즘이 득세하였다.

근래에 선진국에서 경제가 침체하면서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고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사람들이 리버럴한 가치에 등을 돌리게 된다. 약자에게 권리와 혜택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해지며,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 책은 지난 200년 동안의 서구의 경제 사회의 변화를 주마간산으로 훑으면서 사회과학에서 논의하는 주요 주제들을 거의다 건드린다. 저자는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꾸준한 경제성장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과 사회적 리버럴리즘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당연한듯 보이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예외를 많이 발견한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대에 뉴딜 정책을 통해 리버럴한 정책이 많이 도입된 것이 대표적인 예외이다. 이는 사회 현상이 하나의 법칙으로 포괄할 수 없이 복잡하다는 의미이거나, 혹은 저자의 명제가 맞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문장이 장황하여 읽기 쉽지 않았다.

2021. 2. 18. 17:40

Joel Mokyr. 1990. The Lever of Riches: Technological creativity and economic progress. Oxford. 304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이다. 이 책은 인류의 기술 발전의 역사를 조감하고, 왜 어떤 사회에서 어떤 시기에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사회의 다른 시기에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설명한다. 책의 전반부는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기를 지나, 19세기를 산업 발전기를 거쳐 1914년까지 각 시기별로 에너지, 재료, 운송수단 등의 분야에 집중하여 기술 발전의 역사를 기술한다. 책의 후반부는 기술 발전의 사회적 메카니즘을 설명하는데 할당한다. 

어떤 요인이 기술발전을 이끄는가? 자연자원, 임금수준, 경로의존, 종교, 가치관, 소유권 보호 제도,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개방성, 혁신에 대한 반발, 국가와 정치, 인구 증가, 등의 요인을 차례 차례 검토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기술 발전에 기여 요인이기는 하지만, 어느 한 요인도 외생적 사건인 신기술 출현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중국은 600~1200년대 당송 시대만 해도 기술 발전이 매우 활발하였으며 서구를 수백년 앞섰다. 그러나 1300년대에 명나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존재하던 기술도 퇴보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지 않는 기술 정체 상태를 오래동안 지속했다. 반면 서구는 1300년대 르네상스, 1400년대 발견의 시대, 1500년대 종교개혁, 등을 거치면서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 시대의 지식을 되살리고, 중국과 이슬람으로부터 기술을 배워오고, 마침내 1700년대 중반 산업혁명을 통해 비약적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왜 어떤 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하는지 설명하려면 두가지 요인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기여하는 긍정적 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는 부정적 요인이다. 모든 사회는 전통과 이에 기반한 기득이권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방법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손해를 보기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한다. 새로운 기술로 이익을 보는 사람 winner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반면, 손해를 보는 사람 loser 은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저지하는 조직적인 세력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기술 혁신의 관건이다. 

왜 중국은 정체된 반면, 서구는 계속 발전했을까? 두가지 요인을 핵심으로 든다. 첫째는 물질주의적 실용주의 materialistic pragmatism 세계관이다. 자연을 통제함으로서 물질적 풍요를 높일 수있으며,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목적에서 지식을 접근하는 관점이다. 이는 도덕적 가치, 미적 가치, 지적 가치, 종교적 가치를 삶과 지식에서 우선시하는 세계관과 대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럽은 다른 사회와 달리 물질적 실용주의가 정착하게 되었을까? 유럽에서도 중세까지 기독교 신앙은 금욕과 세속 부정의 교리를 설파했다. 그러나 근세로 오면서 기독교의 교리는 변하였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하느님의 영광을 실현하는 행위로 보는 기독교 교리가 세속적 경제활동과 결합하면서, 물질주의적 실용주의가 정착하였다. 반면 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불교와 유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였으므로, 인간의 복리를 높이기 위한 자연의 물리적 탐구와 기술적 조작이 권장되지 않았다.  

둘째는 유럽의 다원주의적 사회이다. 유럽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으며 서로 간 경쟁관계에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한 나라에서 억압을 받더라도 이웃 나라로 도피하여 뜻을 펼수 있기에 기존의 방식과 다른 것에 대한 억압이 철저할 수없었다.  유럽은 중국과 달리 새로운 것이 숨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열려 있었다. 물론 여러나라로 분열되어 있으면 갈등과 전쟁의 비용이 엄청날 수있지만, 유럽은 전체로 볼 때 다원주의의 이익이 피해보다 더 컸다.

세번째 요인은, 왜 유럽에서도 영국이 먼저 산업 혁명에 착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요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한 발명가 기술자들은 중류층 출신인데, 이들이 대륙의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프랑스는 귀족과 빈농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한 반면,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중류층 상공인들이 증가했는데, 이들이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영국의 정치 지배층은 지주들이었는데, 이들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집단이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여 기존의 방식을 뒤업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영국의 지주들은 상공인으로 탈바꿈하면서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을 보았으므로, 새로운 기술 도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을 억압하였다. 반면 중국에서는 지주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상공업 계층이 기술발전을 통해 부를 쌓아 힘을 축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주와 관료 계층은 기존 질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기술 발전의 싹을 엄격히 틀어 막았다. 사실 영국과 서구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반발과 억압하려는 노력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서구는 중국과 달리 기술 발전을 틀어막는데 실패했다.

네번째 요인은, 영국의 기술발전은 민간이 주도하여 이루어졌으며 시장 경쟁이 기술발전을 이끈 동력이었다. 반면 중국은 고대부터 국가가 큰 사업을 주도하고 기술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회였다. 중국에서 민간의 사업은 국가의 보호아래 독점적 사업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지배층 특히 통치자의 의지에 따라 기술 개발이 억압되었다.

기술 혁신의 선두에 선 나라가 그런 다이나믹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다 (Caldwell's Law). 기술 발전의 선두에 섰던 영국은 18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독일과 미국에 기술 개발의 기수 지위를 넘겨주고 국력이 쪼그라 들었다. 기술 발전이 계속되지 않으면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기에 부가 확대될 수 없다. 기술 혁신이 오랫동안 계속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점차 몰아내고 자신들이 기득권층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이들은 다음 세대의 새로운 기술 발전을 저지하는 세력이 되기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서 뒤쳐져 있던 나라가 선두에 선 나라들을 모방하고 따라잡으면서 선두 자리를 대체한다. 서구 전체로 보면 산업기술의 발전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대륙과 미국으로 이전되면서 지금까지 서구가 세계 다른 지역에 앞서 기술 발전의 선두를 계속 유지한 것이 지난 300년간의 역사이다. 서구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기술 발전의 동력을 계속 유지시킨 것이다. 현재 미국이 기술 발전에서 가장 앞서 있는데, 후발국인 중국이 일부 기술 분야에서 서구를 따라잡고 앞서는 현상이 관찰된다.  앞으로 서구가 서구이외의 지역에 의해 따라잡히고 뒤로 물러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기술 발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신기술에 대한 반발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사회가 다양성을 잃거나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 기술 발전은 정체하게 된다. 서구 사회는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계속 유지했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기술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서구의 기술발전을 연구한 최고의 전문가답게, 저자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술이 명료하고, 주제와 관련해 밝혀진 것과 의심되는 사항을 비교하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몰입하게 되는 정말 대단한 책이다. 

2021. 2. 14. 12:23

Johan Norberg. 2020. Open: The Story of Human Progress. Atlantic Books. 382 pages.

저자는 작가이며 케이토 연구소 연구원이다. 이 책은 그가 수년전에 크게 성공한 Progress 라는 제목의 책과 유사한데,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통찰력을 제시한다. 사람들과 사회가 개방적일 때 발전했던 반면, 폐쇄적일 때 후퇴했다는 점을 역사적 사실과 사회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책의 전반부는 상업활동, 인구이동, 아이디어의 교류에서 개방이 미친 효과를 검토하며, 서구, 특히 영국과 중국을 비교한다. 책의 후반부는 인간의 폐쇄적 속성을, 종족주의 성향, 제로섬 사고방식, 불확실을 기피하는 성향, 위험 편향적인 인지 성향이라는 네가지 측면에서 검토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상업활동은 발전의 동력이었다. 각자가 잘하는 것에 특화함으로서 전문화가 가져오는 효율은 모두를 풍요롭게 한다. 인간의 이동은 인적 자본의 활용을 높이고, 다양성을 높임으로서 창의를 자극한다. 과학은 사람들의 생각의 자유를 보장할 때만 발전했다. 전통을 고집하고, 정통을 추구하며, 다른 생각을 억압할 때,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은 쇠퇴한다. 유럽에서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억압을 피해 이웃 나라로 피신하여 새로운 생각을 전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기에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 유럽의 통치자들은 역사상 모든 권력체가 그러하듯이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려 했다. 그러나 유럽은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하나의 체제로 통일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지 못했고, 역설적이게도 결국 다른 지역보다 앞서나가게 된 것이다.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에 충성하고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하는 반면, 집단 밖의 사람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성향, 즉 인간의 부족주의tribalism 은 진화의 산물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항시 새로운 것, 바깥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가 늘면 그들에 대한 경계와 적대감이 사라지며,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인식하게 된다. 접촉이 늘면 부족주의의 장벽이 낮아지는 것이다.

과거 수렵채집 생활 환경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이웃과 제로섬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근래로 올수록 사람들의 삶은 이웃과 플러스 섬의 관계로 이전하였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과거의 제로섬 단계에 고정되어 있다. 각자 전문분야에 특화하면서 서로에게 의존하는 현대의 삶은 플러스 섬이지만, 사람들은 흔히 이웃을 제로섬의 경쟁 관계로 인식하여 상대를 의심하고 장벽을 높이므로서 모두가 피해를 본다. 남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으려는 욕구는 사회적 지위 위계 status hierarchy 에서 제로섬의 관계이다. 그러나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에 따라 다르다면 하나의 지위 위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제로섬이 아닐 수있다. 즉 사회가 다양화되면 지위의 기준이 다양화되기때문에 제로섬의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불확실을 싫어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불안해 한다. 그래서 계획을 좋아하고, 질서와 통제된 상황을 선호한다. 그러나 불확실함 속에서 시행착오를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가운데 발전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때 다양한 길을 탐색해보면서 최선의 것을 찾아나가는 삶의 방식을 거부한다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갈지를 미리 알지 못하면서 길을 가는 것이 인간의 발전 과정이었다. 기술 발전은 처음에 기술을 창안한 사람이 생각한 방향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질서와 통제를 원하기에,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과거를 '좋았던 시절' good old days 로 기억하고 그리워하지만, 실은 그런 좋았던 시절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진보는 불확실을 감내하면서 살아간 결과이다.

사람들은 위기, 손실, 어려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주변에 항시 위기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들은 위기, 어려움에 부닥뜨릴 때, 폐쇄적 성향을 드러내며 움츠려든다. 반면 일이 잘될 때는 개방적 성향을 보여서 새로운 것, 다양함을 용인하고, 실험적 시도도 해본다. 삶이 힘들 때에는 새로운 것, 시행착오를 허용할 여유가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선호하며, 문제의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물으려는 욕구에 휩싸여 희생양을 찾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질서와 통제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희생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쉬운 해결책을 약속하는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등장하여 가짜의 약속을 할 때 사람들은 쉽게 속아넘어간다. 그러나 세상은 복잡하기에 단순한 쉬운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돕고, 그들이 일자리가 생기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새로운 직업으로 이동할 수있도록 직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데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다양한 의견,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데에서 권위주의 정치체제보다 더 효율적이므로, 결국 변화에 대응하는 데에서도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권위주의 체제보다 더 앞선다. 권위주의 체제가 질서와 통제를 회복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거짓이다. 개방적 접근이 폐쇄적 접근보다 삶을 살아나가는 데,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저자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사상가라고나 할까. 많은 독서를 바탕으로 통찰력을 추출해내는 작업을 한다. 이 책은 그의 엄청난 독서와 생각이 밑거름이 되어 만들어졌다. 그의 설명은 쉬운 말로 풀어내고, 뻔히 알고 있는 것을 말하며, 일견 당연한 듯 하지만, 통찰력을 제시한다. 나의 롤 모델이다.

2021. 2. 9. 16:24

Michael J. Sandel. 2020.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Farrar, Straus and Giroux. 227 pages.

저자는 사회철학자로,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성과주의 혹은 업적주의(meritorcracy)가 지배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성과주의 혹은 업적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원칙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칙이 지배할 때, 상위의 지위를 차지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상위 지위를 얻었다는 자긍심을 갖고 사는 반면, 하위 지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모자라서 어렵게 산다고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성과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패배한 사람을 낮추어보는(condescend) 반면, 패배한 사람은 수치심과 함께 승리자에 대해 불만과 분노에 가득차게 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고, 영국에서 유럽탈퇴 결정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이들, 성과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의 시장 경쟁력은 높아졌으며 소득이 크게 증가한 반면,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은 좋은 일자리를 잃고 열악한 서비스 일자리만 남은 처지에 빠졌다. 지난 사십년 동안 미국의 경제는 잘 나갔는데, 상위소득자의 소득은 현저히 증가한 반면, 중하위 소득자의 소득은 정체되었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은 높아졌다.

근래로 올수록 대학 졸업장이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문제는 미국 성인의 3분의 1만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3분의 2의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를 접하면서 어떤 감정을 가질지 미국의 엘리트들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이들에게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낮은 지위의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더 쓰라리게 하고 분통을 살뿐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서구 유럽과 비교하여 사회이동이 덜 활발한 사회이므로,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의 이념은 더 많은 미국인을 좌절에 빠뜨린다.

미국의 대학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필수적 경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 교육은 지위 상승이동의 경로가 되지 못한다. 우수한 대학의 학생 중 상위층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우수한 대학은 사실상 상위층의 지위 대물림의 수단이 되었다. 상위층 자녀는 대학 준비과정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SAT 성적은 부모의 소득 수준과 비례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지난 사십년간 갈수록 치열해졌다.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경쟁에 몰려 젊은이들의 정신과 인생이 좀먹는 정도에 이르렀다.

요컨대 성과주의가 심해지면서 미국의 정치는 파행에 빠져 비민주적 대중영합주의가 득세하였으며, 많은 중하층 사람들이 좌절과 분노에서 자기파괴적 행위를 하며, 중상층 젊은이들도 경쟁에 치여서 전인적인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어떻게 성과주의의 폐해를 막을 것인가?

저자는 우선 우수한 대학의 대학입시 방식의 개혁을 제안한다. 성과에 따라서 줄을 세워서 입학을 결정하는 방식을 버리고, 대신 일정 학업 능력을 넘어선 학생들 풀에 대해 추첨을 통해 입학을 허용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우수한 대학 졸업장을 얻는 것이 완전히 개인의 성과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성공이 완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다양한 요인이 개입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사회적 성공의 핵심 경로인 대학 입시에서부터 운의 작용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성과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이것은 완전히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이룬 것이라는 자긍심에서 실패한 사람을 낮추어보는 태도가 조금은 사라질 것이며, 경쟁에 실패한 사람도 이것이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쓰라림이 덜 할 것이다.  

개인이 시장경쟁에서 거둔 성과가 아니라 개인이 사회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개인의 가치가 결정되도록 사회제도를 조정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분배에서의 정의'(distributive justice)에 대비되는 용어인 '기여에서의 정의'(contributive justice)라고 지칭한다. 개인이 시장경쟁에서 거둔 성과는 개인의 소득으로 귀결되는 데, 이는 그가 사회에 기여한 정도와 반드시 일치 하지는 않는다. 이 두가지가 어긋나는 경우, 이 두가지를 근접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금융시장에서 투기를 통해 엄청난 소득을 거둔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서, 사회에 기여한 정도보다 보상을 덜 받은 사람, 예컨대 청소부나 학교 선생님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재산 소득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대신, 노동 소득에는 세금을 면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있도록 최저한의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 준다면, 성과주의에 따른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문제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에 따라 경쟁해서 패한다고 해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면 패자의 쓰라림은 덜 할 것이다. 또한 승자와 패자의 보상의 간격이 크지 않다면, 즉 소득 불평등이 크지 않다면, 승자와 패자의 갈림이 덜 쓰라릴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공공재(common good)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리와 패배에 관계없이 누리는 부분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말하지만, 사실 성과주의는 서구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룬 동력이다. 능력과 노력을 가진 사람에게 중요한 자리를 배당하고 보상을 많이 주는 시스템은,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가장 과학적 기술적 접근방식이다.과거에 신분사회, 즉 능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태어난 지위에 따라 삶이 결정된 사회의 부정의와 비효율을 생각한다면 성과주의가 얼마나 우수한 체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걱정하기 전에,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한다는 성과주의 이념이 완벽히 구현되지 않은 것을 먼저 문제삼아야 한다.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식에게 기회의 차등이 주어지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멀다. 저자가 지적하는 미국이 당면한 성과주의의 부작용이란 것은, 사실 성과주의 자체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성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데 따른 문제이다.  

기회가 완벽히 평등하게 주어졌음에도 실패하는 사람의 좌절과 분노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인간적으로 살만한 수준의 삶을 보장하고, 그들의 자녀에게 부모의 실패와 완전히 독립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면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자신은 능력과 노력이 모자라 실패했더라도, 자신의 자녀가 부모의 실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새로운 인생의 게임을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결코 게임을 파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 정말 공정하고 믿는다면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식에게 새로운 공정한 게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자신에게서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노동계층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과 함께 자신의 자녀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반발하는 것이지, 성과주의 그자체에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열심히 했음에도 자신에게 돌아온 몫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빈약하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게임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에는 오류가 있다. 세계화가 되면서 그들보다 더 가난한 제삼세계의 사람들이 그들만큼 열심히 살지만 그들보다 덜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다만 그들보다 더 열심히 산 것은 아닌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거나 대도시에 교육 많이 받은 사람들이 엄청난 몫을 가져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들의 분노의 근원이다. 불평등이 그들의 분노와 좌절의 원인이며, 지난 사십년 동안 그들의 소득이 정체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남은 잘 나가는데 나는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만큼 사람을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이 책은 저자의 강의 명성만큼 좋은 책은 아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논의가 답답하게 전개된다.

2021. 2. 7. 11:29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 Belknap. 301 pages.

저자는 경제학자로, 이 책은 과거에 상품 교역이 확대되던 것으로부터 1990년 무렵을 기점으로 생산과정의 국제분업(Global Value Chain)이 확대되는 것으로 세계화의 조류가 바뀐 과정을 설명한다. 물건, 아이디어, 사람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세계화가 전개되었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을 계기로 물건의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서 국가간 상품의 교역이 확대된 것이 첫번째의 세계화라면, 1990년 무렵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아이디어의 국가간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서 먼 거리에서도 생산과정을 조정 통제할 수 있게 되어 생산과정의 일부를 떼내에 해외로 이전한 것이 두번째의 세계화이다. 

첫번째의 세계화에서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을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면, 두번째의 세계화에서는 생산 과정을 구성하는 단계를 세밀하게 쪼개서 각 단계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여러 나라에 생산 과정의 조각을 흩어 놓는 국제적 생산 분업체제(Global Value Chain)를 탄생시켰다. 선진국의 고급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저임금이 결합된 생산방식은, 과거 상품 교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에서 선진국은 고급기술과 높은 임금을 결합하여 생산을 하고, 개발도상국은 낮은 기술과 낮은 임금을 결합하여 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획기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주었다. 이제 국제분업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면 어느 선진국 기업들도 국제 경쟁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이러한 국제분업체제를 통해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던 생산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하고 소득이 높아지는 기회를 잡았다. 

1990년 무렵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으로부터 생산과정의 부분을 유치하기 위해 일제히 자발적으로 관세를 낮추었다. 선진국의 생산과정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려면 유형, 무형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와, 물건과 정보가 원활하게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있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생산과정을 유치한 개발도상국은 모두 선진국에 인접한 나라들이다. 아직 사람의 국제간 이동의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진국에 인접해야만 원격 조정과 통제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유럽인근의 동유럽이 연결되었으며, 미국인근의 멕시코가 연결되었으며, 일본 인근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연결되어 생산 클러스터를 형성하였다. 인도는 예외적으로 선진국으로부터 서비스 일자리를 떼어받았기 때문에 거리의 제약을 덜받고 있다.  국제분업체제에서 선진국과 이들에 인접한 개발도상국이 생산클러스터를 형성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한 남미와 아프리카는 국제분업체제에 참여하지 못하여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진국이 저임금 노동집약의 일을 개발도상국에 떼어주면서,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어려움에 빠졌다. 이들은 해외이전이 불가능한 서비스 일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기술수준이 낮고, 열악한 임금에 불안정한 노동조건의 일자리이다. 이들의 불만과 분노가 트럼프나 영국의 EU 탙퇴와 같은 대중영합주의적 정치의 부상을 가져왔다.

국제분업체계가 확대될수록 선진국에서는 생산 서비스의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제품 제조 단계 이전의 생산 서비스인 기획, 연구 개발, 디자인, 금융, 등의 일과, 제품 제조 단계 이후의 생산 서비스인 유통, 마켓팅, 애프터서비스 등의 일이 제품 전체의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이 맡는 제품 제조과정 자체의 부가가치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국제분업체계가 진출한 분야는 의류, 신발 등과 같은 경공업에서 기계, 전자, 자동차 등과 같은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나이키, 유니클로, H&M, ZARA와 같은 선진국의 의류 기업들이 전자라면, 애플, 다이손, 토요타 등이 후자이다. 국제분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선진국에는 제조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일부 고부가가치 부품 공장만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제조는 개발도상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국제분업 체계에서 선진국은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치중하면서, 선진국의 도시는 아이디어 생산지가 되었다. 아이디어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인접하여 자주 의사소통을 할수록 더 생산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교육, 기술 수준을 높이고, 아이디어의 실험과 확산이 원활하도록 개방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도상국은 저임금의 노동집약의 일을 선진국으로부터 떼어 맡으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점차 기술수준이 향상되어 국제분업의 부가가치 생산위계에서 상위로 이전하려고 노력한다. 한국과 중국은 상위로 이전하면서, 임금 수준이 높아졌으며, 과거에 자신들이 맡던 하위의 일을 자신들보다 임금수준이 더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국제분업체계에서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입장이므로, 국제분업에 더욱 깊숙이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분업에 참여하면서 국내 산업에 파급효과(spillover effects)가 높아져 가치사슬의 상위체계로 이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분업이 더욱 확대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선진국의 고급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저임금을 결합한 생산방식은 경쟁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더 확산되면 더 확산었되지 퇴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국제분업의 대상이 확대되고, 생산과정이 국가간에 더 세분하게 쪼개져 흩어지며, 국제분업에 참여하는 나라들이 소득이 낮은 나라들로 더욱 더 확대될 것이다.

사람의 국가간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 세번째의 세계화가 전개될 것이다.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대량 이동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비용 때문에 가까운 시일에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여 원격으로 일을 하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노동자가 개발도상국에 있으면서 로봇이나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선진국에서 일할 수있을 것이다. 현재도 의사가 원격으로 수술을 집행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앞으로 다양한 서비스 노동에 확대될 것이다.  직접 사람이 이동하지 않고 가상현실을 이용해 회의를 하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먼거리에서도 아이디어를 조정하고 만들어내는 일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의 신조류인 생산과정의 국제분업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서술에 몇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첫째는, 선진국에서 낙오된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높은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저임금의 결합이라는 경쟁력이 엄청나게 높은 생산방식은 경제 논리만큼 빨리 확대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사회적 분배장치를 통해 승자와 패자의 이익이 공유되도록 하여 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같다.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 이익공유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두번째 미흡한 점은, 생산제조 과정의 국제분업의 다음 단계로, 생산자 서비스의 국제분업이 앞으로 다가올 변화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저자는 발달된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원격 노동과 가상현실로 생산자 국제분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지만, 사실 생산자 서비스의 국제분업은 로봇이나 가상현실에 의존하지 않는 다고 해도 개발도상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계속 확대될 영역이다. 현재 인도가 선진국의 생산자 서비스(producer service)의 일부를 떼어 받아 일하고 있다면, 언어 장벽이 완화되면서 인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들도 생산자 서비스의 국제분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술수준이 높아진다면, 그들이 생산자 서비스의 하위부분을 맡으려고 하는 열망이 커질 것인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임금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열망은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생산자 서비스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상위 영역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일부 개발도상국은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하위의 생산자 서비스 영역으로 침투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가상 현실이 아니라도 현재의 정보통신 기술로도 가능한 일이다.  

선진국의 대인 서비스(personal service)는 어떻게 될까? 이는 기술수준이 낮고, 저임금에 불안정한 노동이다. 이 서비스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어렵다. 로봇과 같은 정보통신이 결합된 자동화 기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기계가 사람의 감정 노동을 대체하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민자가 늘어나서 이 부분을 맡을 수 밖에 없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대인 서비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서비스는 앞으로도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소득이 높아지고 인구가 고령화될수록 대인 서비스의 수요는 늘어난다. 과연 선진국 사람들이 높은 서비스 가격을 감수하면서 이민자를 제한하는 선택을 할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이민자를 제한한다면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대인 서비스 노동력으로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책은 세계화와 관련된 생각을 자극하는 훌륭한 책이다. 

 

2021. 2. 4. 10:24

Roburt Kuttner. 2018. Can Democracy survive global capitalism. W.W.Norton. 309 pages.

저자는 American Prospect 라는 진보적 시사 잡지의 창간인으로, 이 책은 세계화, 특히 세계 자본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출현한 근래의 경향을 분석한다. 왜 그러한 흐름이 전개되는지, 그러한 현상을 막으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배경으로 진단한다.

미국은 1930년 대공황시기에 뉴딜정책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탈피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모든 계층의 소득이 향상되고, 사회보장과 복지제도가 확대되고, 소득불평등이 감소하였다. 서구 유럽 역시 전후의 폐허를 딛고 부흥하면서 복지국가체제를 공고히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자본가, 특히 금융자본의 세력은 억제되었으며, 브레튼 우즈 국제금융체제 덕분에 국제금융시장은 안정되고, 노동조합 가입율이 높게 유지되고, 완전고용의 목표가 실현되었다.

1973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고, 미국이 금본위체제를 포기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경제불황이 심각해지면서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섰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장 위주의 신보수주의 노선을 표방하였다. 규제를 풀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복지를 축소하고, 세금을 감면하면서 자본가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자본가, 특히 금융자본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여 위험이 높은 투자를 하면서 큰 돈을 벌었으나, 결국 고위험의 금융 행태는 실물경제와 어긋나게 되어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험한 행위로 큰 돈을 번 자본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여전히 고위험의 금융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신보수주의 정책으로 어려움에 빠졌다. 시장의 힘은 강화된 반면 노동자의 조직력은 약화되면서 자본가에 대비해 노동자의 협상력은 크게 떨어졌다. 생산성 증가분을 자본가가 가져간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되었다. 국제분업체제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공장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였고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과거에 좋은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지고 노동조건은 악화되었다.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불안정하며 낮은 임금의 서비스직 일자리만 남게되었다.

세계화로 국가와 지역들 사이에 자본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세금은 낮아지고, 노동자의 힘은 약해지고, 반면 국제 자본의 힘은 강해졌다. 재정이 악화되면서 유럽에서도 과거에 후했던 복지제도는 후퇴했다. 전세계적으로 진보주의 세력은 약해진 반면, 보수주의 세력은 강해졌다.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여 기존의 제도권 정치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대가 높아졌고,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호응을 얻게 되었다.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은 노동자의 불만에 감정적으로 부응하였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노동자보다는 자본가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를 부정하고, 폭력을 옹호하고,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정치인이었다. 노동자의 불만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권위주의적 정치가 득세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저자는 각 국가가 주권을 행사하여 세계 자본의 힘을 제한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경제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고, 연금,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의 내실을 높여 노동자의 삶이 안정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제 자본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 세금을 감면하도록 압박하고, 노동자 보호에 제한을 가하도록 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선진국이 함께 협력하여 국제자본의 힘을 제한할 때 이것이 실현될 수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자본가에 포획되어 있으므로, 기존 노선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국민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진보주의 정치인이 출현하고, 그가 국민의 적극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자본가의 세력을 제한하고 노동자 보호 제도를 확충하는 과감한 개혁을 하여야 한다.

저자의 20세기 미국과 유럽의 정치경제의 전개에 대한 서술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선진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주장이 그렇듯, 그것은 대체로 선진국의 입장만을 반영한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1970년대 이래의 세계화로 선진국 자본의 힘이 강화되고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의 힘이 약화된 것은 맞지만, 이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의 빈곤이 크게 개선되고 많은 사람의 소득이 상승하였다. 세계화로 선진국 자본이 거둔 이익보다 개발도상국에 일반 사람들의 소득의 증가분이 훨씬 더 크다.  즉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1970년대 이래 세계 정치경제의 전개는 매우 긍정적이다.

정치는 각 나라 내에서 벌어지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자본가의 경제 행위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혼란이 경제를 망쳐버릴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 경제에 혼란이 발생하면 개발도상국의 경제에도 어려움이 전파될 것이다. 결국 세계화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저자의 진보적 정책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인 진단과 방향 제시는 맞는 말이다.

2021. 1. 31. 11:46

Samuel Huntington. 2006(1968).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 Yale University Press. 461 pages.

저자는 저명한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정치학계의 고전이다. 개발도상국이 전통사회로부터 벗어나 근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어떻게 정치가 발전하는지 서술한다. 전통 사회는 왕과 귀족, 지주, 성직자로 구성된 소수의 지배층이 지배했다. 전통적인 정치체제는 권력자의 인적인 지배에 의존했다. 권력자가 교체되면 정치도 따라서 바뀌었다. 반면 근대적 정치체제는 정치가 제도적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정치 참여의 범위가 확대되어 상층계급으로부터 중류층과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된 것이 민주주의 체제이다. 개발도상국은 어떻게 정치의 제도화와 정치 참여의 확대과정을 거치는가?

저자는 정치가 근대화될수록 폭력과 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단선적인 예측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정치 제도화와 정치참여의 확대라는 면에서 볼 때, 낮은 수준의 정치 발전 단계에서 높은 수준의 정치 발전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초반에는 폭력과 부패가 확대되다가 정치가 성숙하고 나서야 폭력과 부패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마치 소득 불평등과 경제발전의 관계와 유사하다. 전통사회에서는 정치 제도화가 안되어 있고 정치 참여도 매우 제한적이므로 정치가 불규칙하게 안정과 불안정을 반복한다. 정치 발전의 초기단계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증폭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 참여가 정치 제도화보다 앞서 나가기 때문이다. 정치 제도화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며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진전되는 반면,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식민지 통치로 벗어나자 마자 정치와 경제에 대한 기대가 크고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정치 참여를 분출한다. 정치 발전 초기단계의 엘리트와 중류층은 정치 선진국의 정치를 유학이나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으면서, 자신의 나라의 정치와 경제 수준의 수용 범위를 넘어 요구하고 정치 참여를 한다.

전통적 정치체제로부터 변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한다. 정치의 제도화는 아직 충분치 않은데, 사회세력들의 정치참여 욕구가 확대될 때 집단들 사이에 갈등과 폭력이 발생한다. 정치가 제도화되면 다양한 집단의 요구를 정당이나 이익단체를 통해 여과하여 조정 과정을 거쳐 합의를 도출할텐데, 이러한 여과 조정 장치가 없기 때문에 집단들의 요구는 기존 권력과 부딛치고 또 집단들 서로간에 부딛치면서 폭력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폭력은 정치 참여가 확대되는 정치 근대화 과정의 일부이다.

폭력과 마찬가지로 부패 역시 정치가 근대화되는 과정의 일부이다. 전통사회에서는 경제권과 정치권이 분화되어 있지 않았고 정치 권력은 권력자의 인적인 지배의 성격이었으므로, 부패, -즉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정치 권력을 이용하는 것,- 라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의 제도화에 따라 공적인 정치 행위와 관료의 행정이 담당자 개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하여 공적인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제도화가 이루어지기 전 단계에서 부패란, 사회적 세력, 특히 경제적 힘을 지닌 사람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는 방편으로서 긍정적 역할을 한다. 사회적 세력의 요구를 수용할 정치적 제도가 성숙되지 않았으므로, 정치인과 관료는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이들의 요구를 제한적으로 수용하는데, 이들이 사회세력의 요구를 수용하는 댓가로 받는 뇌물이란 바로 이들의 판단과 책임에 대한 보상이다. 만일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에게 뇌물을 건네주면서 사회세력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경로가 차단된다면, 사회세력의 요구는 결국 쌓이고싸여 폭력과 혁명으로 폭발할 것이다.  사회세력의 요구를 걸러주는 정치 제도가 잘 작동하면 뇌물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진다. 경제적 힘을 지닌 사람은 뇌물을 주는 대신 공식적 정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 하기 때문이다.

군부는 전통사회에서 가장 잘 조직화 되어 있고 가장 잘 근대화되어 있으므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정치개혁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집단들 사이에 세력 충돌이 발생하여 혼란이 벌어질 때, 군부는 질서의 회복을 주창하면서 권력을 잡고, 중류층과 연합하여 개혁을 추진한다. 그러나 정치가 제도화된 단계에 들어서면, 군부는 보수적 가치와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반개혁적 성향을 띤다.

봉건사회는 권력이 소수의 지배층에 나누어져 있었다. 정치 근대화의 출발은 권력의 중앙집중과정으로 시작된다. 왕은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중류층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면서 권력을 강화한다. 왕은 귀족, 지주, 성직자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서 근대적 개혁을 주창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강화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중류층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유발하여 군주제와 민주적 요구간에 충돌을 낳는다. 한편, 전통사회에서 왕과 관료를 중심으로 권력의 중앙집중 체제가 잘 구축되어 있는 경우, 근대적 개혁은 오히려 지체된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의 상실을 우려하여 밑으로부터의 참여 요구를 적극적으로 억누르려 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중앙집중체제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왕의 중앙집중 노력에 대한 견제의 목적으로 기존의 지배층들은 오히려 왕에게 개혁적인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귀족과 성직자들은 왕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넓은 집단의 정치 참여와 정치 제도화를 요구한다. 결국 왕과 기존의 지배층들 사이에 알력이 정치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군주제는 정치 근대화에 따라 수세에 몰리고 결국 퇴장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정치학 전공자라면 한번은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개발도상국의 정치 발전 과정에 관한 일반론을 포괄적으로 제공한다. 중남미와 중동의 사례를 주로 많이 들고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소련을 정치적으로 제도화가 잘된 정치 선진국으로 서술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 책이 쓰인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소련이 잘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보았겠지만, 이후에 밝혀진 사실은 소련은 외견과 달리 속에서 썩고 있었다. 미국은 비교적 정치 제도화가 잘 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흑인을 완전히 배제한 미국의 정치는 전혀 건강하지 않았다. 그는 이 책에서 흑인의 배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들이 오래전의 일이라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절반쯤 읽고 중단하다.

 

2021. 1. 27. 17:28

Steven Levitsky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Crown. 231 pages.

저자는 남미 정치와 유럽 정치를 전공한 정치학자들로, 이 책은 미국에서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과정을 남미와 유럽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원활히 작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헌법과 같은 형식적 제도의 힘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상대를 합당한 경쟁자로서 인정하며 반대 행위를 인내하고 상대와 타협하는 비공식적 규범의 힘이라고 한다(tolerance and forbearance).

미국의 정치는 1970년대 중반이래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양극화가 심해졌다. 지난 수십년동안 공화당 정치인은 상대를 합당한 경쟁자가 아니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무너뜨려야 하는 적으로 보았다. 지금까지 전통으로 내려오던 정치적 신사도를 저버리고 법이 허용하는 한 최고의 극단적 방법을 쓰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도날드 트럼프는 그러한 근래의 흐름에서 출현한 극단적인 정치인이다.

왜 근래에 미국의 정치가 그렇게 양극화되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1960년대 이래 미국의 정치지형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1960년대 민권운동 이전에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우호적인 경쟁자로여기며 정치를 했다. 이는 1870년대에 남북전쟁 이후 남부와 북부가 정치의 장에서 흑인을 완전히 배제하고서 만들어진 우호적 관계이다. 문제는 민권운동으로 흑인이 미국의 정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서 발생했다.

1980년대 이래 민주당은 유색인과 세속적 세계관쪽으로, 공화당은 백인과 기독교 쪽으로 동질성이 높아졌다.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백인 민족주의자 White Christian nationalists 들은 1960년대의 민권운동과 이민법 개혁이래 흑인과 유색인 이민자가 점차 늘면서, 과거 미국의 주류로서 압도적 다수의 지위가 무너지는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다수 집단의 지위가 도전을 받을 때 이들은 상대에게 매우 공격적이 되는데, 공화당이 1979년의 뉴트 깅그리치 출현 이후에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상대를 무너뜨리고 제압하려는 전술을 구사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오바바를 미국에 충성하지 않는 진짜 미국인이 아닌 un-American 사람으로 매도하였으며,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일을 모두 반대하여 좌절시키는데 총력을 다하였다. 이런 극단적인 전술이 횡횡하면서 정치가 파행을 보이자, 기존의 정치계를 깡그리 부정하고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영합주의적 외부자 populist outsider 인 도날드 트럼프가 기회를 잡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 미국이 오랫동안에 걸쳐 만들어 놓은 민주적 전통과 관행을 무시하고 극단주의와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정치를 펼친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권위주의로 이행하는 몇가지 징표가 있다. 첫째는 정치인이 민주적 게임의 규칙을 부정하며, 둘째는 정치적 상대의 정당성을 부정하며, 셋째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을 허용하거나 장려하며, 넷째는 언론과 정치적 경쟁자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한하려 한다. 트럼프는 이러한 네가지 징조를 모두 보였다. 트럼프는 근거도 없이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고 하며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하였다. 트럼프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잡아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지지자들의 폭력적 행동을 지지하거나 용인하였으며, 세계의 독재자들의 인권 탄압을 옹호하였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공격하였으며, 정치적 상대를 제거하려 하고 탄압하였다. 

근래에 미국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정치적 다툼과 민주주의의 퇴행은 과거 중남미나 유럽에서 익히 보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페루의 후지모리, 베네쥬엘라의 차베스, 터키의 에르도안, 헝가리의 오르반, 러시아의 푸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 일부는 처음부터 권위적 통치자로 등장하지 않았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상대가 갖은 수단을 써서 이들의 통치를 반대하고 이들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들도 이러한 반대에 극단적 수단으로 맞받아쳐 권위적 통치로 흐르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첫째, 정치적 심판관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찰, 검찰, 정보부, 세무서와 같은 법집행 기관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고, 사법부를 무력하게 하고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며, 입법부를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바꾸어버린다. 둘째, 주요 경쟁자를 배제시킨다. 자신에게 반대하며 굴복하지 않는 야당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는 자신의 충견을 동원하여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셋째, 자신이 절대권을 행사도록 규칙을 바꾸어 버린다. 헌법을 바꾸고, 사법부와 입법부를 구성하는 법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꾼다. 

미국이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양극화를 초래한 주체가 공화당에 있으므로 공화당이 바뀌어야 한다. 백인 민족주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공화당의 지지 기반에서 탈피하여 유색인과 이민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층인 백인 노동계층은 1970년대 후반이래 경제변화로 삶이 어려워졌는데, 이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적극적 노동정책과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백인 노동계층의 삶의 위협이 줄어들면 그들의 극단주의적 태도도 완화될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민주주의 헌법을 가진 나라로 자부심이 크지만, 미국은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 미국의 정치는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될만큼 건강하게 진행된 것도 아니다. 미국은 건국이래 근래까지 흑인을 배제하였기에 백인 정치인들 사이에서 화합이 유지되었으나, 아직까지 흑인과 이민자를 대등한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세계의 다른 다민족 국가에서도 구성원이 잘 화합하는 민주주의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독재 시대에 정치인들의 행태가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상대가 극단주의적 책략을 구사한다고 하여 이에 맞받아쳐 극단주의적 전략으로 나아가면 결국 파국에 이를 뿐이라고 경고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러한 위험을 예감하고 타협의 노력을 펼쳐 성공한 사례로 칠레를 든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 책략이 먹힌 사례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과 독일의 나찌를 든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기초체력이 약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비교 정치학의 폭넓은 지식을 배경으로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을 잘 분석한 훌륭한 책이다.

2021. 1. 24. 12:15

Fredrik Erixon and Bjorn Weigel. 2016. The Innovation Illusion: how so little is created by so many working so hard. Yale University Press. 238 pages.

저자는 경영컨설턴트들로, 이 책은 서구 경제에서 혁신적인 시도가 사라지는 원인을 탐색한다. 저자는 네가지 원인을 들고 있는데, 자본의 성격이 늙고 있고(gray capitalism), 주식회사의 지나친 관리중심주의(corporate managerialism), 세계화(second-generation globalization), 복잡한 규제(complex regulation)가 그것이다.

서구 경제에서 기관투자가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이들이 소유한 자본의 비중이 늘어나며, 이들은 뮤츄얼 펀드, 연금기금, 보험 등의 기관투자가들을 통해 투자한다. 서구의 경제가 연금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사회(rentier's society)로 변하고 있다. 고령인구 소유의 자본은 젊은 인구 소유의 자본과 투자 성향이 다르다. 고령 인구 소유의 자본은 결과가 불확실한 혁신적 실험을 선호하지 않으며, 안정된, 확실한, 단기적 이익을 선호한다. 그들은 주식에 투자하기보다 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본주의 선호를 반영해야 하기에, 회사는 불확실한 혁신을 시도하지 않는다. 재무적 관심이 지배하는 회사는 혁신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다.

서구의 주식회사의 소유는 매우 많은 주주에게 분산되어 있다. 기관투자가가 소유하는 부분이 절반 이상에 달한다. 작은 지분을 가진 주주나 기관투자가들은 경영자를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경영자들은 자신의 이익, 즉 자신의 지위를 안정되고 공고히 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들은 불확실한 실험으로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주에게 인정받기 위해 단기적 이익에 치중하며, 회사가 거두는 이익을 다음 사이클에 혁신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주주들에게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돌려주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이 불확실한 혁신보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를 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복잡한 규제는 관료들에게 이익이 되며, 기존 시장의 지배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신규 진입을 억제하는 진입장벽을 높게 쌓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은 미리 조심하는 것을 원칙 precautionary principle 으로 하는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새로운 사안에 대해 예방적인 규제 preventive regulation 남발하는데, 이는 새로운 실험을 억제하는 독이다. 경제사학자 Mokyer가 주장하는 permissionless innovation가 활발할 때 사회는 발전할 수 있었다. 영국은 과거에 그런 문화를 발전시킨 반면, 서구 이외의 다른 문화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할 때마다 규제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보수적인 문화가 지배했기에 기술발전이 어려웠으며, 개발된 기술도 사회에 널리 확산되지 못하였다. 유럽은 과거의 혁신적 전통을 버리고 보수적 문화로 돌아섰으며, 미국도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견해나 독특한 시도를 허용하는 문화를 장려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이견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동조하는 것이 편한 길이고 동화를 강요하는 경향이 지배하는데, 이는 혁신을 저해한다. 이견을 허용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

연금 생활자의 사회가 경제의 활력을 좀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관투자가와 개인 투자자의 자본을 차별하여 결정권을 주는 제도를 제안한다. 기업가가 작은 비율을 소유하더라도 회사의 의사결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전체 주식의 18%를 소유하고 있지만, 의사결정권은 57%를 보유하는 식이다. 복잡한 규제가 경제 활력을 질식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제를 줄이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마다 기존의 규제를 폐지하고, 규제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분야나 기간을 설정하는 방법 등을 생각할 수있다. 

이 책은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느낌이다. 책 전체 중에 건설적인 제안에 관한 논의는 맨 마지막의 7쪽에 불과하다. 결국 절반쯤 읽다 중단하고, 결론으로 뛰어넘었다. 그들의 비판이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반드시 옳는 것은 아니기에 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논의는 흥미롭지 않다.

2021. 1. 21. 23:17

Dean Karlan and Jacob Appel. 2011. More than good intentions: Improving the ways the world's poor borrow, save, farm, learn, and stay healthy. Plume Books. 276 pages.

저자는 예일대의 경제학자와 현장 활동가로, 이 책은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효과적 방법을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책의 절반은 소액대출운동 microfinance에 관해 논의하며, 나머지는 저축, 농사, 교육, 건강의 분야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효과적 개입 방법인지 검토한다.

전세계의 개발도상국에 보급된 소액대출 프로그램은 명성은 높지만, 이 프로그램이 가난을 퇴치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별로 검증되지 않았다. 저자가 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 '무작위 통제 실험' 방식을 적용하여 검증한 결과, 소액대출 프로그램은 가난을 퇴치하는데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소액대출을 받은 돈을 사업자금에 보태서 사업에 성공함으로서 빈곤에서 탈출한다는 이상형은 실제 소액대출을 받는 다수의 사람들의 능력이나 적성과 맞지 않는다. 선진국 사람들 중에도 사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개발도상국 사람들 중에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사업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생활비나 기타 잡다한 지출에 돈을 써버리고 만다. 

집단적인 연대 책임을 부과함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신용 결핍을 보완한다는 소액대출 프로그램의 원리 또한 현실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사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소질이 없는 사람의 채무까지 연대해서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사업 능력있는 사람의 능력 발휘를 중도에 차단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집단적으로 연대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개인에게 자금을 빌려주었을 때 사업 소질이 있는 사람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대출보다 더 효과적 방법은 저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저축을 하고 싶어도 돈을 맡아줄 금융기관이 없고, 돈을 모으는 도중에 지출의 유혹이 수시로 발생하기에 저축을 지속하기 어렵다. 자발적으로 목표 금액을 설정하고 그 목표에 달성할 때까지 중도 인출을 허용하지 않는 저축 상품을 제시하였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호응하였다. 그들도 저축할 욕구가 있지만 적절한 수단이 없어서 저축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농사에 비료를 많이 이용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가을에 농작물을 거두어서 수중에 돈이 있을 때 비료 쿠폰을 구입하게 하여, 이 쿠폰을 다음 해 농사에 비료가 필요한 시기에 비료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농법이나 개량 종자를 보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농촌 사람들 중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 성공을 거두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례를 본받아 따라 오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공립 학교는 등록금이 무료임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용이 많이 들고, 교육의 질이 낮아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인도에 공립학교의 교사는 결석하는 날이 많으며 교실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인도의 부모들은 비싼 돈을 들여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교사의 출석과 보수를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교사의 출석율을 높일 수 있으나 부실한 수업을 잘 하도록 만들기는 어렵다. 멕시코에서는 자녀의 등교율에 비례해 부모에게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었다. 케냐에서는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에게 별도의 개인교습을 추가하였을 때 학업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기생충에 감염된 사례가 많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생충 약을 먹도록 하여 기생충을 없앴을 때 아이들의 학교 등교율이 높아지고 건강 수준이 나아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질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먹는 물에 소금물 용액을 타면 이질균을 죽일 수 있는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소금물 용액을 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먹는 물을 얻는 장소 바로 옆에 소금물 용액을 무료로 배포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소녀들이 성인 남성과 성관계를 맺음으로서 HIV 등의 성병에 걸리고 어린 나이에 임신하는 것을 줄이기 위하여 그들에게 건전한 성관계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성관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위험한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남성의 연령대에 따라 성병에 걸린 빈도에 큰 차이가 있음을 그들이 알게 함으로서 그들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안전한 대상을 찾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책은 선진국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개입하는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이 효과가 있고 어떤 것이 효과가 없는지 하는 의문에 답한다. RCT 방식을 적용하여 개별 프로그램의 효과성 여부를 과학적으로 검증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러한 외적 개입으로서 개인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과연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빈곤으로 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행동경제학의 연구 주제로는 의미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가난을 퇴치한 것은 이런 사소한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의 빈곤은 크게 줄었는데,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 특히 중국의 비약적 성장이 빈곤 축소에 큰 동력이었다. 개발도상국의 노동집약산업에서 저임금으로 생산한 물품을 선진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함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돈이 쥐여지게 된 것이 대규모 빈곤 퇴치의 열쇄였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게으르다거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난했던 것이다. 세계화에 따라 국제분업체계가 확대되면서 개발도상국에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 근래에 가난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소액대출운동이 그렇게 유명세를 탔지만 막상 이것이 가난을 퇴치하는 데 기여한 역할은 미약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선진국 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실험 동물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원조와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는 아프리카 이남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가 인도와 아프리카 이남의 가난한 나라에 주로 한정되고, 막상 빈곤 퇴치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보인 중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2021. 1. 14. 21:04

Calestous Juma. 2016. Innovation and its enemies: Why people resist new technologies. Oxford University Press. 316 pages.

저자는 기술 확산과 국제개발을 연구한 학자로서, 이 책은 왜 혁신적 기술이 사회의 반대에 부딛치게 되는지, 그러한 반대를 극복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반대를 이긴 다양한 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커피, 활자 인쇄술, 마가린, 농업 기계화, 교류 전기, 기계식 냉장고, 녹음 기술, 유전자 조작 작물, 유전자 변형 연어, 등의 사례가 각각 별도의 장으로 논의된다. 

커피는 16세기에 이디오피아에서 중동을 거쳐 17세기에 유럽에 전파되었다. 아랍에서는 사람들이 커피 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위정자들이 위협을 느껴 커피 하우스를 탄압하였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 전통 음료인 포도주와 맥주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에 위협을 느껴 커피를 반대하였다. 이들이 커피를 반대하면서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건강, 문화적 정체성, 국가 안보의 위협 등이었지만, 이들이 말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였다.

활자 인쇄술은 중국에서 아랍 세계로 일찍이 전파되었지만 아랍의 위정자, 특히 성직자들은 활자 인쇄술로 코란을 인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활자 인쇄술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어 성경이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종교혁명과 과학발전으로 이어져 유럽이 앞서나가는 것에 위협을 느낀 다음에야 아랍의 위정자들은 활자 인쇄술을 적용하여 일반 서적을 인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마가린은 1870년경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었지만, 낙농산업의 격렬한 반대에 부딛쳐 보급이 늦었다. 낙농업자들은 마가린을 '가짜 버터'라고 지칭하고 건강에 안좋은 열등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리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여 마가린의 보급을 막았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중 물자 부족이 심각해졌을 마가린의 보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마가린은 버터보다 열등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낙농국가들은 다양한 규제를 동원하여 마가린의 생산과 수입을 막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농업은 대부분 사람, 말, 당나귀의 힘에 의존하였다. 트랙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고장이 잦고 효율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을 이용하는 것보다 생산성이 낮았다. 말이나 당나귀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트랙터의 도입에 큰 위협을 느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트랙터가 궁극적으로 동물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므로, 트랙터의 도입을 전적으로 반대하기보다, 말과 당나귀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농사의 문화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트랙터와 동물을 병행하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트랙터의 기술이 발전하고 효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결국 농사에 동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대신 여가의 목적으로 말을 이용하는 산업이 나타났다.

19세기 중반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 에디슨은 직류전기를 사용한 전등을 보급하여 큰 명성을 거두었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가 발명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보다 더 효율적임이 밝혀지면서, 에디슨은 자신이 투자한 직류전기 중심의 체제가 앞으로 교류전기로 대체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에디슨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회수될 때까지 교류 전기가 보급되는 것을 저지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교류전기를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와 연관시켜, 교류전기는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류냐 직류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전기 안전의 관건임이 비교실험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전기를 활용한 이기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를 대체하였다.

20세기 초에 기계식 전기 냉장고가 처음 출현하였을 때 이전의 얼음 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해 두었다 여름에 내다 파는 얼음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계식 냉장고의 냉매로 쓰는 암모니아 가스가 쉽게 폭발되는 성질때문에 위험하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한동안 기계식 냉장고의 보급을 막았다. 그러나 기계식 냉장고의 기술이 향상되어 폭발 사건이 줄어들고, 소형화되어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가축을 도축하는 곳과 정육을 소비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제가 없고 야채 또한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냉장 운송하여 소비자 가격을 크게 낮추게 되면서 기계식 냉장고는 급속히 보급되었다.

19세기 말 소리를 녹음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과거 음악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녹음이 가능하지 않던 시절에 사람들은 연주회에 가거나 행사장에 악사를 초청하여 음악을 즐기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레코드가 보급되면서 생음악에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다. 레코드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자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레코드는 음악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 과거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중심이고 가수의 노래는 부수적인 것이었는데, 레코드가 보급되면서 가수의 노래가 전면에 나서고 악기 연주는 배경으로 물러났다. 레코드의 보급 덕분에 스타 가수가 출현하게 되었다. 음악 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협회를 조직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했으나 대부분은 실직을 하였다. 이후 음악 종사자 조직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음악의 저작권이 설정되고, 방송국에서 음악을 틀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등으로 음악 저작권에 보상을 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1985년 벨기에에서 자연의 박테리아에 존재하는 해충을 죽이는 독소 유전자(Bt)를 식물의 유전자에 이식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 유전자 조작 기술을 옥수수, 목화, 감자, 쌀, 콩, 알파파 등에 적용하여 해충의 피해를 크게 줄이며 농업 생산성을 혁기적으로 높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개발될 당시 환경 위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져 있던 때라 환경운동 단체의 반대가 심했다.  과학적 실험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씨앗으로 자라난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으나, 반대론자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험이 앞으로 새로이 밝혀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반대하였다.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쪽에서 유전자 조작 식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식물을 개발한 쪽에서 이것이 위험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 작물을 괴물 식품(Frankenstein food)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면서 환경 운동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한 이유는 그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 식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때문인데, 이는 식품의 위해성을 판정할 때 생산과정이 아니라 생산된 결과물에 대해 평가를 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한 숨겨진 이유는 이 기술을 개발한 대기업, 특히 몬산토가 이 식물의 재배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보유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물의 재배가 허용되어 농업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으나, 유럽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금지했고 미국으로부터 유전자 조작 식물로 만들어진 식품의 수입도 막았다. 표면적으로는 인체에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숨은 이유는 유럽이 미국 대기업의 기술독점에 종속되는 것을 염려해서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유전자 조작 식물의 재배를 금지했는데, 이는 아프리카가 유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 WTO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부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사람이 직접 섭취하지 않는 목화나 목초에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으나, 곡물의 재배에서는 미국 이외에 이를 허용한 국가가 많지 않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매사츠세츠주의 한 회사에서 연어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사료를 적게 먹으면서 절반의 생육기간에 두 배 이상 크기로 키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이 식품의 위해성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였으며 현재까지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식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는 식물을 변형시키는 문제인 반면, 연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동물을 변형시키는 문제임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위험도는 훨씬 크다. 유전자 조작 기술의 경우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와는 별도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에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혁신적인 기술에 반발하는 것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많은 경우 경제적 이유가 기술 도입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인데, 이러한 심층적 이유를 무시하고 단순히 설득을 하여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은 시간만 허비할 뿐 성공하기 어렵다. 기술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지, 그들을 어떻게 다른 일자리로 옮아가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 노력이 함께 할 때에만 '창조적 파괴' creative distruction 기술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책은 주제는 흥미로우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문체가 매우 건조하고 형식적이어서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마치 보고서를 읽는 듯하며, 정책 교훈을 도출하는 부분에서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특별히 어려운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읽어내려가는게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혁신적 기술을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가장 쟁점적인 대상인 핵 기술이 논의에서 완전히 빠진 것이 아쉽다.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논의는 저자의 전문 분야라 그런지 내용이 알차고 저자의 깊은 이해가 느껴진다.

2021. 1. 8. 21:17

Alan Macfarlane. 2014. Invention of the Modern World. The Fortnightly Review. 322 pages.

저자는 캠브리지대학의 인류학 교수이다. 그는 영국이 산업화에 착수하기 훨씬 이전인 12세기 경부터 근대적 (modern) 특성을 띠었는데, 중세 후반이래 영국의 예외적으로 근대적 특성 덕분에 세계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국이 오래 전부터 유럽의 대륙국가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매우 다른 특성을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를 자주 비교한다.

근대적 특성의 핵심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가 별도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이것이 모두 뭉뚱그려져 있었다. 과거에는 가족/친족과 정치, 가족과 경제, 정치와 종교, 종교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전통사회에서는 종교의 영향이 세속의 모든 일에 미쳤으며, 가족 관계가 모든 일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었던 반면, 영국은 일찍부터 영역간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영국에서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가족에 의존하는 경우가 없으며, 어려울 때에도 핵가족을 넘어서서 친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영국은 상업의 나라라 할 정도로 상행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중시했다. 유럽 대륙이나 다른 전통사회와 달리 영국인들은 돈 버는 것을 천시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 풍족하게 살면서 품위를 유지하는 중상류층을 '신사' gentleman 라고 존중하는 태도가 근대 이전부터 영국을 지배했다. 상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지주가 되거나 정치에 진출하기도 하는데, 상업 자본가와 지주를 사회적으로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영국은 상공업을 권장했기에 일찍부터 사람들의 물질적 생활 수준이 유럽 대륙보다 훨씬 높았다. 유럽 대륙국가들보다 임금이 훨씬 높았으므로 기계 장치를 많이 사용했다. 영국은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으며 어느 다른 나라보다 훨씬 일찍 부터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많이 사용했다. 풍부한 석탄 자원이 산업혁명을 촉진시키는 배경이기는 하지만, 자원 매장 그 자체가 산업혁명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독일이나 중국 또한 풍부한 석탄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영국만큼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용을 우선시하고 물질적인 풍요에 높은 가치를 두는 영국인의 가치관이 석탄을 많이 쓰도록 유도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실용보다 이념을 중시하고 물질적 풍요를 경시하는 가치관 때문에 유용한 자원이 있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물질적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영국은 태어나면서 법적으로 구분되는 지위를 부여받는 신분 제도가 뿌리 내리지 않았다. 귀족은 사회관습적인 특권을 누렸지만, 법적으로 구분되는 특권을 부여받지는 않았다. 귀족과 평민 모두 동등한 법에 구속되며, 귀족이라고 평민과 구별되는 별도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았다. 성공한 상공인은 종종 귀족의 작위를 부여받았으며, 상공인(yeoman & merchant)과 귀족간의 사회이동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았다. 이는 유럽 대륙을 포함한 다른 전통사회에서 귀족, 승려, 평민, 사농공상 등 엄격한 신분 구별이 보편적이었던 카스트 사회와 구별된다. 영국은 다른 사회범주, 예컨대 남자와 여자, 혹은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 권리의 차이가 없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개인주의란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개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두는 세계관이다. 모든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이 집단 속에 매몰되어 있는 집단주의가 지배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은 집단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며, 일의 책임도 집단이 공동으로 진다. 반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일은 각자가 결정하며, 일의 결과도 개인이 책임진다. 영국에서 일찍부터 개인주의가 발달하게 된 데에는, 독특한 가족제도에서 원인을 찾을 수있다. 영국에서는 귀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0살이 넘으면 부모 곁를 떠나 남의 집에 머물며 일을 배우거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살 길을 찾는 관행은 장자상속제 때문에 더욱 심했다. 차남 이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부모를 떠나 자신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영국인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남녀 관계도 부모의 간섭 없이 당사자간의 감정과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연애 결혼이 보편적이었으며, 자신이 만든 가족 구성원만으로 삶을 꾸리는 핵가족이 지배했다.

영국인은 자식의 노동에 가족이 의존하는 대신 외부인을 고용하는 관행이 지배했다. 이는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남의 집에 머물면서 일을 배우는 관행과 부합한다. 영국인은 자신의 앞가림을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기에 남녀 모두 결혼을 늦게 했다. 자식이 가족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영국인은 일찍부터 산아 제한을 하며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았다. 영국인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유럽 대륙 나라들보다 높을 수 있었다. 영국은 유럽 대륙보다 일찍 저출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왕, 귀족, 상공인간 견제와 균형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유럽 대륙이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왕은 국민에 대해 전제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귀족 또한 왕과 독립된 독자적 권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봉건 영주가 자신의 성의 주민에 대해 절대적 권한을 가졌던 봉건제도는 프랑스나 유럽 대륙 국가에 해당될 뿐 영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17세기에 명예혁명으로 왕권이 제한된 것이나, 18세기에 미국에서 입헌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이러한 오랜 전통에 서 나온 것이다.

영국인은 일찍부터 무수히 많은 자발적 결사체를 조직했다. 취미 모임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다양한 일에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association)을 결성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자연인과 유사한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가진 신탁 기구(trust)를 만드는 전통과 연결된다. 유한 책임을 지는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자원과 결정을 위임하는 신탁기구인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발전에 매우 효과적인 사회적 발명품이다.

영국은 기독교 국가이지만 기독교의 세력이 유럽 대륙만큼 세지 않았다. 교회가 별도의 법체계와 재판소를 가지고 세속 권력과 대립하는 체제는 유럽 대륙의 카톨릭 국가에서는 보편적이었으나, 영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인은 세속적 실용주의를 신봉했기에, 사람들이 신학적 교리에 죽고사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영국인은 절대적 진리보다는 얼마나 삶에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실용적 진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실용적 진리는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상이기에, 영국에서 과학과 기술이 유럽 대륙보다 먼저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왜 영국이 유럽 대륙과 다른 특징을 보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유럽 대륙에는 로마의 지배력이 크게 미쳤으며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그 영향이 지속된 반면, 영국에서는 실질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로마의 영향이 약했다. 대신 영국에는 게르만 민족의 전통적 특성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유럽 대륙과 차이가 나게 되었다. 유럽의 게르만 민족 국가인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영국과 유사한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카톨릭 국가들과 이웃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특성이 많이 희석되어서 점차 영국과 차이가 벌어졌다. 게르만 민족의 전통인 집단 협의 의사결정, 지위 평등, 절대적 신앙을 배격하는 것, 실용주의 등이 영국에서는 사그라들지 않고 지속되었다.

이책에서 설명하는 영국의 강점을 따라가다 보면,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으며, 왜 영국이 세계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이백년 이상 지배하는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은 영국의 강점만 말하는 편향성을 보인다. 이책의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영국 이외에 유럽 대륙의 나라 사람들은 우매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영국이 그렇게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인데, 왜 노예무역을 주도했으며, 왜 아편전쟁을 했으며, 왜 이웃나라 아일랜드를 무자비하게 억압하였으며, 왜 인도를 지배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왜 인종주의가 강하며, 왜 근래에 대중영합주의가 휩쓸면서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유럽연합탈퇴를 감행했는지, 등등 영국의 어두운 측면을 이해할 수없다. 책의 후반부에 영국의 국민성을 설명하는 데에서는 중언부언하는 것이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읽으면서 영국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다. 

2021. 1. 5. 16:07

David P. Barash. 2018. Through a Glass Brightly: Using Science to see our species as we really are. Oxford University Pres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여 비판하며, 두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동물과 유사하며 또 다른지 진화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2부에서 논의하는 인간과 동물의 비교는 진화생물학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적 능력, 부모와 자식간 갈등, 상대를 속이는 행위, 일부다처 논쟁, 호전적 행위, 이타적 행위, 자유의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간 불일치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면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동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 않음을 밝힌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기술이다. 다른 생물체는 자신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기술을 발달시켰듯이, 인간의 지적 능력 역시 인간의 생존 환경에 맞추어진 생존 기술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생존 환경을 벗어난 논리적, 통계적 추리에서 인간은 매우 서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정도의 문제일뿐, 동물세계에서도 유사한 능력을 흔히 관찰한다.

진화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의 몸은 유전자를 전파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의 절반만을 공유함으로, 유전자 생존의 측면에서 볼 때 부모의 이익과 자식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 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려는, 즉 많은 자식을 얻으려는 부모의 이익과, 각 개인으로서 자식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형제간 갈등이 발생한다. 형제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은 도덕의 문제로 정의하지만, 사실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 서있다.

생물체들간 의사 소통이란, 참가자 각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를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신호를 발하는 사람은 거짓된 신호로 상대를 조작하려 하며, 신호를 받는 사람은 거짓 신호 뒤에 숨은 진실을 해독함으로서 상대에게 조작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사회생활을 많이 하는 동물일수록 기만하고 이를 탐지해내는 무기 경쟁은 고도로 발달했다. 인간은 신호의 진실성을 의심하기보다는 일단 믿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사 소통에서 거짓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런 일부이다.

인간의 조상에게 일부다처제가 자연적 현상이었다. 동물의 암컷과 수컷간 몸 크기의 차이, 행위 방식의 차이를 바탕으로 유추할 때, 인간 역시 일부다처제가 자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짝이 없이 홀로사는 수컷을 많이 만들고, 이들이 잠재적 사회불안과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도덕률로 하여 남녀관계를 규제한다. 그러나 여전히 능력이 많은 남성은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의 생활을 비공식적으로 영위한다. 저자는 자연적 현상이 반드시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닌 대표적인 예로 일부다처제를 든다. 인간은 문화로 자연적 현상을 제어하고 있다. 그렇기에 규범에서 일탈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원시 부족을 연구한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호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집단간 싸움을 벌이는 호전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반드시 적자생존에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가 싸움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보다 많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싸움을 하는 호전성을 띠게 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상대로부터 뺏앗을만한 가치 있는 것을 비축하고 지도자의 지휘하에 조직적으로 싸움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면서부터이다. 원시 수렵채취인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대체로 협동했으며 집단간 평화가 지배했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가 진화론의 이기적 인간 모델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사는데, 자신의 유전자를 일부라도 지닌 친족의 생존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유리한 때에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한다. 이타적 행위를 통하여 집단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높임으로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유전자의 확산에 도움이 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이타적 행위란, 개별 인간의 몸의 측면에서 볼 때는 희생일지 모르지만, 유전자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이기적 행위인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통제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몸 안에는 수백만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 미생물이 우리의 행위와 사고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누가 누구에게 얹혀사는지 불확실 하다. 또한 유전자가 우리의 몸, 우리의 사고작용, 우리의 행위를 조정한다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면서 행위하지 않는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란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인간이 의도하기보다 유전자의 이익을 위하여 저지르는 행위라는 사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박하는 사례가 될 수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매우 서서히 진화를 통해 형성된 반면,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빠른 시일에 급격히 변화해 왔다. 특히 지난 이백년간의 산업화의 결과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매우 멀리 떨어졌다. 이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또 자연환경에 대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인간은 그러한 파괴력을 생물학적으로 실감하지 못한다. 수백만명을 죽이는 핵무기 공격 행위가 한명의 상대를 물리적으로 죽이는 경험보다 실감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 경험이 녹아 있는 글이다.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문학 작품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는 결코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설명의 명확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인이 좋아서 다양한 시의 일부를 수시로 인용할지 몰라도, 과학적 주제를 접하는 독자는 주제의 정확한 이해에 더 관심이 있지, 저자의 시적 감흥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 제 1부에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문학 작품을 길게길게 인용하면서 과학적 사실을 군데군데 언급하는데,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러한 설명은 불필요하게 장황해 보인다.

글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 책을 읽는 내내 고문 받는 느낌이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편집이다.

2021. 1. 1. 16:08

Sara Harper. 2016. How Population change will transform our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177 pages.

저자는 노년학자이다. 이 책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평이하게 설명한 책이다. 선진국과 아프리카의 극빈국은 완전히 상이한 인구 구조를 가짐으로 둘을 나누어 번갈아 설명한다. 서구의 인구변천의 역사,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 극빈국의 고출산과 인구폭증의 문제, 개발도상국의 청소년층 증가와 관련된 논의가 전개된다.

선진국의 인구노령화와 관련해서, 앞으로 80대 이상 고연령층 인구의 증가가 새로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의료비는 65세 이상 고령층 모두에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매우 높은 연령, 특히 죽음에 가까운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현재 출생한 아이의 기대수명이 100세를 넘는 선진국들이 몇몇 등장하였다.

인구고령화와 관련해 현재 우려하는 사항은 맞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사회제도는 인구가 고령화되면 건강수준이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기때문에 젊은 인구가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전제에 입각해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고령이 되는 사람과 맞지 않는다. 앞으로 고령이 되는 사람은 상당한 수준의 인적자산을 보유하며,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는 건강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고령이 되어서도 생존하는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고령이 되어도 상당기간 비교적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일을 계속할 것이다. 고령인구가 고령인구를 부양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줄어드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부양하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여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제도가 점진적으로 나타날(evlove) 것이다.

의료 문제에서도,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병이 난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고령인구가 늘면서 돌보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 체제로 바뀔 것이다.

아시아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일시적으로 늘어서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현상, 즉 "인구학적 이점 demographic dividend" 이라고 하는 현상이 앞으로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재현될지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젊은인구가 많은 것만 아니라 이들이 생산활동에 투입되도록 사회제도와 경제상황이 받추어 주어야만, 인구학적 이점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인구증가율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면서, 일시적으로 생산활동인구가 많은 대신 유소년 인구가 적은 연령구조가 나타났지만,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생산활동인구가 많지만 그못지 않게 유소년 인구도 많기 때문에, 생산활동인구의 에너지가 유소년 인구를 부양하는데 소모되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20세기 후반에 인구증가율이 꾸준히 감소하던 추세가 21세기에 들어 중단되는 현상이 관찰되는 데,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사회문화적 특성에 기인한 구조적 현상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아프리카의 극빈국은 여전히 매우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젊은 여성들이 일찍부터 출산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와 빨리 관계를 맺는 것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편이다. 그들은 아이를 많이 나아 자신의 생계와 노후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젊은 여성을 교육시키는 것이 조기 결혼 조기 출산의 굴레에서 벗어나, 출산율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열악한 인적자본과, 열악한 사회간접자본과, 극심한 부패 때문에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없고, 투자가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교육 받을 동기가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세계 인구 증가의 대부분이 이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나올 것이기에, 이들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별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가지 않은 평이한 책이다. 인구학 교과서를 옮겨 놓은 것과 같이 숫자와 도표들을 나열하며, 반복이 많으며, 논문형식으로 글을 써서 읽는 맛이 없다. 고민이 없이, 성의 없이 만든 책이다. 내가 써도 이보다는 더 재미있게 쓰겠다.

2020. 12. 31. 13:39

2020. 12.9. 작성.

LA night view, from pinterest.co.uk, YocalFM Presenter

 

나는 한때 미국에서 살았고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로스앤젤레스(LA)는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그곳에 사는 가까운 친지를 방문하여 수일간 머물렀다. 오래전 이민 간 친지를 머나먼 이국 타향에서 만났을 때 반갑고 울컥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 함께 살며 나를 무척 귀여워해 줬다. LA 코리아타운을 돌아다니며 허름한 건물에 한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의 거리와 흡사함에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을 읽었다.

또 다른 미국의 중심,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LA 행정구역상의 인구는 사백만이 채 못 되지만, LA 생활권까지 포함하면 천삼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 도시이다. LA는 도시가 주변으로 무계획적으로 팽창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도심에 몇 개의 고층빌딩을 제외하고는 낮은 건물들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LA 주변을 감싸고 고속도로가 스파게티처럼 얽혀 있으며 통근시간에 교통 체증이 심하기로 미국에서도 손꼽힌다. 그 덕분에 한때 LA는 대기오염이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도시로 명성이 높았다.

근래에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 밸리가 뜨면서 약간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LA는 서부에서 산업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서부의 중심 도시이다. LA에는 제조업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이 왕성하다.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와 같은 동부의 도시들이 미국 역사의 중심에 있다면, 로스앤젤레스는 그러한 정통적 미국의 정반대를 상징한다. 영국의 식민지에 뿌리를 두고 유럽에서 온 백인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미국의 전통은 LA와 거리가 멀다.

현재 LA에서 백인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도 못 된다. 중남미계 이민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나머지를 아시아계와 흑인이 각각 10%씩 나누어 갖고 있다. 2040년이 되면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LA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소수인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되었다. 사실 LA에 중남미계 이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이 1848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빼앗은 땅이다. 1980년대에 멕시코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멕시코인들은 미국에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넘어와 일하다 일이 뜸해지면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그러다 1980년대에 국경 관리가 엄격해 지면서 한번 미국으로 넘어온 멕시코인들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LA와 같이 국경에 가까운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특이한 발전

동부 사람들이 보기에 로스앤젤레스는 허황한 꿈에 부푼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이다. 1849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미국 동부에서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까지 일확천금을 좇아 모여들었다. LA는 바로 이 금 채굴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고 조달하는 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성장했다. 사실 골드러시 때 금을 채굴하여 돈을 번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대주면서 돈을 번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청바지를 제조하는 리바이스가 대표적 사례이며,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가 골드러시 덕분에 발전했다. 19세기 후반 LA 인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한때 천 개가 넘는 석유 채굴 봉이 있었으며 미국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상당 부분을 LA 유전에서 조달했다. 지금도 LA의 북서쪽 다저 스타디움 근처에서 석유 채굴 펌프가 가동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LA20세기 들어 지금까지 세 번의 계기를 통해 크게 변화했다. 처음은 20세기 초반으로 LA가 연중 항시 햇빛이 비치고 따뜻한 기후에 매력을 느낀 동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이다. 1885년에 동부와 LA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 산타페 노선이 완성되면서 이것을 타고 동부 사람들이 LA로 대거 이주하였다. 이들은 그때까지 조그만 항구도시에 불과했던 LA에 부동산 개발 바람을 일으키며 큰돈을 벌었다. 뉴욕에 본부를 두었던 영화산업이 LA로 건너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건설하였으며, LA에서 멀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에 도박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것도 그 무렵이다.

두 번째 발전의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찾아왔다. 미국이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LA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근거지로 크게 성장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산업 시설은 모두 동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여 서해안까지 운반하여 전쟁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기에 LA에 군수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것이다. LA에는 군함과 전투기와 무기를 생산하는 첨단 공장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후 첨단 방위산업이 LA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게 되었다.

세 번째 변화는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면서다. 그 이전까지 서유럽 출신의 이민자만 받던 이민 제한을 폐지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 법이 발효되고 얼마 지나자 매년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1960년대에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을 폐지하고 인종과 무관하게 이민자를 받아들였을 때,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그렇게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970년경에는 제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유럽이 이미 발전하였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의 도시

1970년대이래 멕시코와 인접한 남서부와 서해안 도시에는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들어온 이민자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국 정신의 몰락”, “미국의 정체성의 위기등을 들먹이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겼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유럽과의 연결을 중시했으며 대서양 연안의 동부 도시들이 유럽과 연결의 중심에 있었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아시아와 태평양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태평양 연안의 도시들이 새로이 부상한 것이다.

LA는 근래에도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이민자가 계속 유입하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이 도시는 태생적으로 발전에 한계를 안고 있다. 물이 부족한 것이다. LA에서 내륙 쪽으로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산맥이 보이며 그 너머는 막막한 사막이다. 원래 LA를 관통하는 강이 있었지만, 점차 수량이 감소하여 지금은 복개된 하수 하천에 불과하다. LA시는 북동쪽 네바다주 인근으로부터 매우 먼 거리를 잇는 수로관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근래에는 물 사용을 통제하여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태평양 시대의 중심인 LA는 백인이 아닌 중남미와 아시아 이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정치의 가장 기층조직인 지역 교육위원회 위원에서부터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에 이르기까지 선출직에서는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물론 LA에서도 정부와 대기업의 고위직은 여전히 백인이 다수이지만. 뉴욕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교역하는 화물 운송 덕분에 성장했다면, LA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하는 덕분에 성장했다. LA 사람들과 LA 경제의 활력은 아시아에서 온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때 LA 또한 크게 타격을 받았다.

LA도 미국의 일부이므로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92LA 폭동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운전자를 백인 경찰 여럿이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이들 백인 경찰이 법정에서 무죄 방면되면서 폭동이 촉발되었다. 이 폭동에서 유독 한국계 이민자의 사업장만 골라서 파괴 약탈당한 것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는 억울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은 백인인데 왜 죄 없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당해야 하냐고. 세상은 그런 것이다. 한국계 이민자와 흑인은 미국 사회에서 둘 다 약자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반면 한국계 이민자와 중남미계는 사이가 좋다. LA 코리아타운에는 한인보다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훨씬 더 많이 살며, 한국계 사업장에는 항시 중남미계 사람들이 일하며, 한국계와 중남미계는 서로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 많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LA의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도 미국인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물론 그들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미국인이지만, 백인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 주류 사회의 움직임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인으로서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LA는 미국의 서부 개척의 신화가 지금도 진행 중인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건너온 이방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미국의 전통과는 단절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곳이다. LA에서는 대를 이으며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LA에서 이민자들이 접하는 환경은 그들의 과거와 너무도 다르다. LA에서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현재의 역경을 이기면 그들의 자녀들이 성공하여 미국의 주류로 살 것이라는 꿈을 꾼다. 미래의 꿈을 꾸며 열심히 매진하는 인생은 어떻든 의미 있지 않은가. 로스앤젤레스에 한인타운을 거닐며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2020. 12. 31. 13:30

2020.2.21 ~2020.12.31.   총 39권.

1.

Nichlas Epley. 2014. Mindwise: Why we misunderstand what otheres think, believe, feel, and want. Vintage. 188 pages.

2.
Matt Ridley. 2015. The Evolution of Everything: how new ideas emerge. 320pages.

3.
Matt Ridley. 2020. How Innovation works: and why it flourishes in freedom. Harper Collins. 373 pages.

4.
Malcol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346 pages

5.
Warren Bennis and Patricia Ward Biederman. 1997. Organizing Genius: The Secrets of creative collaboration. Basic Books. 218 pages.

6.
Hohn H. Lienhard. 2006. How Invention begins: Echoes of old voices in the rise of new machines. Oxford University Press. 242 pages.

7.
Walter Isaacson. 2014.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Simon & Schuster. 488 pages.

8.
Reed Hastings and Erin Meyer. 2020. No rules rules: Netflix and the culture of reinvention. Pneguin Press. 272 pages.

9.

James C, Scott. 2020(1998).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357 pages.

10.

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11.

Claude S. Fischer. 2014. Lurching toward happiness in America. MIT Press. 129 pages.

12.

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13.

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14.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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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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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18.

Jeffry A. Frieden. 2006. Global Capitalism: Its fall and rise in the twentieth century. W.W. Norton. 476 pages.

19.

Claudia Goldin and Lawrence F.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353 pages.

20.

David P.Barash. 2003. The Survival Game: How game theory explains the biology of cooperation and competition. Henry Holt & Co. 277 pages.

21.

Michael Marmot. 2015.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ublishing. 346 pqges.

22.

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23.

Nicholar Christakis and James Fowler. 2009. Connected: How your friend's friends' friends affect everything you feel, think, and do. Little Brown. 305 pages.

24.

Brad Stone. 2013. The Everything Store: Jeff Bezos and the Age of Amazon. Back Bay Books.

25.

Paul Collier. 2007. The Bottom Billion: Why the poorest countries are failing and what can be done about it. Oxford University Press. 195 page.

26.

박홍규, 박지원. 2019.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무리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사이드웨이. 461쪽.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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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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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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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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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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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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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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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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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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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31. 12:39

Nichlas Epley. 2014. Mindwise: Why we misunderstand what otheres think, believe, feel, and want. Vintage. 188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다. 이 책은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상대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지, 그러면서도 왜 잘 읽는다고 착각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렇다면 상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상대의 생각을 잘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험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부부 사이에도 상대의 생각을 읽는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 기술로 진화했지만, 정확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낮다.

서로 자주 접촉하지 않고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인간성을 덜 인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때 인디언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경우, 흑인 노예의 인간성을 덜 인정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면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가졌거나,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사물에 대해 인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나 이를 유발한 인격적 행위자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행위자를 지목한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의 원인으로 신을 등장시키는 이유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행위하는지는 알지만, 왜 그런 생각과 느낌과 행위를 하게 됬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의식 밖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나 행위의 원인을 자신은 잘 안다고 착각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면, 고쳐야 할 쪽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라고 생각한다. 이를 심리학에서 "순진한 사실주의 naive realism"라 한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타인도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타인의 생각을 잘 못 파악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상대의 행위의 동기를 판단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타인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나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주 접하지 않는, 잘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정관념 stereotype" 을 가지는 것은, 인식의 효율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정관념이란 잘 모르는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효율적인 도구이다. 고정관념은 집단간의 차이를 과장되게 만들지만, 집단간에는 차이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의 많은 부분은, 두 집단간 차이의 방향은 맞지만, 차이나는 정도는 과장되어 있다.

인간의 행위는 행위자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행위를 관찰함으로서 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할 수있다는 주장은 자만이다. 이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만하기 때문도 있지만, 많은 경우 행위자의 감정과 생각이 행위에 그대로 반영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로부터 행위자의 생각을 추출해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우며 오류가 많다. 자신의 행위로부터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남의 행위로부터 그의 진실된 생각을 파악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타인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본적으로 겸손해져야 한다. 상대의 입장을 추측함으로서 (put oneself in other's shoes) 상대의 행위의 배경이 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조언은 틀렸다. 왜냐하면 상대의 입장을 추측한다고 하여 상대가 처한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상대의 입장, 상대가 처한 맥락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추측만으로는 절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저자는 상대의 입장을 추측하기보다, 상대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직접 물어보고, 그의 발언을 경청하여 그의 생각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다른 어떤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 사람들은 물어보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거짓없이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더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경우 요청하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서로 접촉하고 대화하면서 공통의 이익을 추출해 내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흥미로운 사례를 인용한다. 어느 인디언 부족은 "말하는 막대 talking stick" 라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회의에서 발언을 하려면 이 말하는 막대를 가져야 하는데, 이 막대를 건너 받아 다음 차례로 말하는 사람은 바로 전에 말한 사람의 발언의 요지를 요약하여 그가 수긍하는 사인을 보낸 후에야 자신의 발언을 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상대의 생각을 잘못 파악해서 발생하는 불상사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과학적 연구결과를 잘 정리하여 적재적소에서 제시함으로서 자신의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쓴다. 통찰력을 주는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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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9. 20:53

Matt Ridley. 2015. The Evolution of Everything: how new ideas emerge. 320pages.

저자는 과학 분야의 대중 저술가이다. 저자는 진화의 원리가 생명체뿐만 아니라 모든 물리적 사회적 현상에 적용될 수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진화의 원리란 내생적 원인에 의해 유발된, 점진적이며, 축적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진화에 반대되는 개념은, 외부의 주체에 의해 계획되고 명령된 변화이다.

우주가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혹은 자연의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화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는가는 진화론대 창조론이라는 고전적 논쟁이다.

인간의 도덕률은 신이나 통치자의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반복된 상호작용의 결과물, 즉 밑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언어, 도시, 경제, 기술발전, 자아, 성격, 인구변화, 정부, 종교, 화폐, 인터넷, 등 다양한 사회현상이 모두 점진적으로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전개된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낫다. 많은 시장 참여자의 지혜가 반영된 자유 시장경제는 소수의 계획자의 생각이 반영된 계획경제보다 훨씬 효율적일수밖에 없다. 정부의 개입이 비효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인식은 생리학적 작용의 결과이다. 인간은 행위한 후에,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무의식적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행위의 원인은 생리적, 물리적 작용이지,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성격과 지능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현상에 대해 이것을 만들어낸 행위자를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잘못된 인식 습관이다. 특정 지도자가 없어도, 특정 발명가가 없어도, 조건이 맞을 때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많은 일이 우연히 전개되지만, 인간은 무언가 분명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 내지 행위자를 찾는다.

위로부터의 명령이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열등하다. 교육에서도 위로부터의 교조적 가르침은 학생들이 서로 도우면서 스스로 생각하여 깨치는 방식에 비해 학습의 효과가 적다. 정부가 관료적으로 규제하는 공립학교보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사립학교가 훨씬 교육 성과가 높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정부의 부실 규제때문에 투기가 심한 결과 발생한 파국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과도한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발생하였다. 클린턴 정부 이전 부터 재정적 능력이 안되는 가난한 흑인들에게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 대출의 의무적 할당을 강제한 결과, 신용이 부실한 사람이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게 된 것이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정부가 금융을 간섭하지 않고 시장원리에 맡겨두었더라면, 금융기관이 그렇게 신용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며, 부실 채권이 그렇게 많이 쌓여서 거품이 일시에 꺼지는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맬더스에서부터 시작된 인구폭증에 대한 우려는, 20세기 초반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사람을 정부가 강제로 불임수술하는 조치를 낳았고,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행위를 낳았으며, 20세기 후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산아제한을 강제하는 조건으로 원조를 해주는 정책으로 발전했다. 이는 근래에 환경주의 운동으로 이어진다. 1960년대에 로마클럽은 인구폭증을 예언하면서 환경적 한계의 우려를 불지폈으며, 환경을 보전하면서 지속가능개발을 해야 한다는 논의로 연결된다. 근래에는 글로벌 워밍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며,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제한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악으로 대체 에너지를 선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낳았다.     

근래에 환경주의는 종교의 수준에 들어섰다. 모든 문제를 글로벌 워밍 탓으로 돌리고, 환경주의에 제한을 두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과 다르지 않다. 자연 재해는 글로벌 워밍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며, 글로벌 워밍은 이산화탄소의 확대 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듯이, 글로벌 워밍에 대한 절대적 신념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것들이 진화하면서 인간에게 좀더 좋은 상태로 되간다는 사실은 희소식이다. 소득이 높아지고, 폭력이 줄어들고, 인구 증가가 멈추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시장원리가 더 많이 적용되면서,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아이디어가 잡다한 주제들에 마구 퍼부어진 작품이다. 매우 많은 주제를 매우 많은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다루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 어느 특정 주제에 대해 강한 기억이 남지 않는다. 세상은 진화적, 점진적, 내생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메시지 하나만 남는다. 세상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이라면, 그가 비판하는, 위로부터의 계획과 명령에 의해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결국 크게 보면, 세상사는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주체적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주체적 노력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 내생적 원인과 버무려지면서 변화하고 발전되는 것이 아닌가? 계획이란 것은 이러한 주체적 노력의 일부이고. 저자는 엄청난 독서가이며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이다. 이 책은 아이디어의 백과사전이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