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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6. 12:33

Robert Dahl. 2005(1961). Who Governs? Democracy and Power in an American City. 2nd ed. Yale Univ. Press. 325 pages.

저자는 다원주의 정치이론의 대가이며, 이 책은 정치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 책이다. 저자는 예일 대학교가 있는 미국의 뉴헤이븐이란 인구 십만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 1950년대에 벌어진 정치 활동을 통해서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을 살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자원은 여러 집단에 흩어져 있고,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위계의 상위를 특정인이 독점하지 않는다. 통치 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서로 다르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여러 세력간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다원주의 (pluralism) 이론은, 소수의 내적으로 통일된 집단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파워엘리트 (power elite) 이론과 대치된다.

민주주의의 국민 주권의 원칙은 다수가 자신을 스스로 통치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위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다수의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적으며 투표하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자원을 정치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다수의 견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은, 소수의 지배집단이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결정하고 움직이는 독재체제와 대비된다. 

뉴헤이븐 사회는 18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계 초기 정착자들의 후손인 소수의 귀족들에게 모든 지위와 영향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며, 사회적 상위 지위를 독점했다. 정치 권력 또한 그들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1830년대에 세금 납부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백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이 확대되고, 상공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자원이 상이한 집단들에 흩어졌다. 이 신흥계급은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여, 과거에 권력을 장악했던 소수의 귀족 세력을 주변으로 밀어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밀려오고, 19세기말 20세기 초반에는 이탈리아인과 유태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민족집단의 세력이 주요 정치 자원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들어 먼저 아일랜드계가 다음으로 이탈리아계와 유태인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정치 자원으로서 민족집단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반면 정치 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서로 상이한 권력의 다원화 현상이 나타났다.

저자는 그당시 뉴헤이븐 시 정치에서 핵심적인 세가지 영역에서 전개된 의사결정과 영향력의 행사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첫번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각각 시장 선거에서 당을 대표하는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둘째는 뉴헤이븐 시의 재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다. 셋째는 뉴헤이븐 시의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 과정, 구체적으로는 시의 공립 고등학교 두개를 폐쇄하고 한개의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이다.

시장 선거에서 후보자 공천을 하는 과정에는 중간 계층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중간 계층 출신의 하급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된다. 이들 하급 지도자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 전문직이 아닌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며, 소득도 높지 않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대변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민족집단의 세력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면 여전히 큰 영향력을 쥐고 있다. 선거의 영역에서는 다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소수에 불과한 과거의 귀족 집단은 이 영역에서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시간이 흘러 이민자 집단의 다수가 아일랜드계로부터 이탈리아계로 이동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탈리아계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 이탈리아계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이탈리아계의 응집된 세력은 분열되었으며, 그와 함께 민족 집단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정당의 소수 지도자들이 사실상 공천을 결정하는데, 왜 그 과정에서 다수의 하위지도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다음 네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민주적 절차는 소수 지도자들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둘째, 민주적 절차는 하위 지도자들의 충성을 불러 일으킨다. 셋째, 민주적 절차는 갈등을 질서있게 조정하도록 해준다. 넷째, 새로운 사회적 세력들이 부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실상 소수가 의사결정을 하지만, 다수의 참여를 유도하는 민주적 절차들이 단순히 겉치장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뉴헤이븐 시의 재개발의 의사결정에는 재력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재개발은 이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재개발이라는 경제 사업에서 이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래 중상층이 점차 교외로 이전하고 뉴헤이븐 시가  쇠락하면서 재개발의 필요성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였지만, 주민 간 이해 조정의 어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재개발이 미루어졌다. 1950년대 후반에 선출된 시장이 주요 이해 관계자들을 모두 위원회로 끌어들여 이해를 조정하고 반발을 무마하면서 재개발 사업이 실현될 수 있었다. 시장이 재개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심에 있지만, 다양한 경제 분야의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뉴헤이븐 시의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에는 교육감, 교사 노조, 예일대 교수 등 교육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뉴헤이븐 시의 상류층은 그들의 자제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공교육의 개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렵다. 폐쇄하는 공립학교 부지를 예일대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새로운 공립학교를 건립하는 사업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았으나, 학부모들이 새로운 공립학교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으며, 시장의 주도로 만들어진 위원회를 통해 교육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서 그들의 반말을 무마할 수 있었다.

위의 세 영역의 어디에서도 일반 대중은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정당의 중간지도자들, 재개발 위원회의 대표들, 교육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반영되었다. 이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유는 물론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다수의 의견이 여과되어 반영된다. 만일 이들이 다수의 의견에 배치되는 의사결정을 한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패하고 직책을 잃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생업이 바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정치활동에 참여할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의견이 무시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의 주권은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다수의 시민들의 정치 참여도는 매우 낮지만 이들은 숫자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적은 참여라도 많이 모이면,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하는 소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다수의 의견은 소수의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정치 활동을 더 열심히 할까. 그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관련될 때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교육, 소득, 직업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주로 정치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같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도 일부 사람 다른 사람보다 정치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하는데, 이는 성격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본적으로 힘든데(abrasive and exhausting), 일부 사람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소질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그럴 심리적,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저자는 다원주의 정치 이론이 실제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동안의 조사와 가용한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주요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파헤친다.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기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드문 연구이다. 70년 전에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여전히 흥미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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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6. 22:02

Daniell Schacter. 2001.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 Houghton Mifflin Co. 20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로 기억 연구의 전문가이며, 이 책은 그의 전문 분야를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 쓴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다음 일곱가지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잊어버리는 것(transience),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absent-mindedness), 기억이 막혀 회상하지 못하는 것(blocking), 잘못 기억해내는 것(misattribution), 암시에 의해 영향받는 것(suggestibility), 외곡되게 기억하는 것(bias),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persistence). 각각의 문제의 증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대상과 연관된 사항을 함께 기억속에 저장하면 이 문제를 조금은 약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시간이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한정된 기억 자원 (momory resourse)을 효율적으로 쓰는 장치의 일부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일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인간은 자동항법 모드로 일을 수행하면서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일과 관련된 구체적 사안을 나중에 기억해 내기 어렵다. 동시에 여러 일에 관여할 경우, 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므로 나중에 그 일을 기억해 내기 힘들다.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고유명사를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다른 지식들과 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이다. 어릴때의 학대나 강간과 같이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을 나중에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정적 자기방어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인이 되어 기억해냈다고 주장하는 어릴 때의 성적 폭력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을 기억에 저장하기보다, 그것의 요점만을 일반화하여 저장한다.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대상의 일반화된 패턴을 파악하고, 패턴으로 기억에 저장한다. 따라서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질문받았을 때, 잘못 기억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증인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암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범인을 심문하는 사람의 암시에 의해 증인이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이 변형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과거 기억은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기억이,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확실한 기억으로 변형된다.

과거의 일이나 대상을 잘못 회상해내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결과이다. 현재의 사정에 따라 과거의 사정에 대한 기억을 외곡시켜 과거와 현재의 일관성을 추구한다. 일의 결과를 보고 처음부터 그러리라고 생각했다고 믿거나, 그렇게 일이 전개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사후에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항시 해석한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심리적 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했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크게 흥분하게 되고, 그 일이나 상황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다.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음 속에 억누를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글이나 말로 대면하면 할 수록 그것에 대한 감정이 무디어지고, 그것의 괴로움이 점차 옅어지게 된다.

이상 일곱가지 기억의 약점은 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기억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심각한 문제를 보인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인간의 진화적 적응의 직접적 결과이거나 혹은 부산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쉽게 풀어쓴 것으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때때로 머리털을 세는 세밀한 작업을 쫒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22. 5. 22. 22:24

Albert-Laszlo Barabasi. 2014(2002). Linked: How everything is connected to everything else and what it means for business, science, and everyday life. Basic Books. 238 pages.

저자는 물리학에 배경을 둔 Network Science 학자이며, 이 책은 네트워크의 속성과, 실제 세계에서 네트워크가 적용된 사례를 설명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노드(node)와 링크(link)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어떤 모습일까? 학자들은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은 랜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World Wide Web에 존재하는 웹페이지들이 하이퍼링크를 통해 연결된 모습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생각은 틀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터넷의 네트워크는 허브(hubs) 들의 위계체계로 되어 있다. 몇개의 웹페이지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웹페이지들로부터 링크가 집중된 반면 다른 페이지와 링크가 거의 걸려있지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웹페이지의 링크의 빈도는 연속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많은 수의 웹페이지와 연결된 노드를 허브(hub)라 하며, 허브는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속성의 네트워크를 전문용어로 scale-free networks 라고 한다.

만일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이 랜덤하다면, 링크의 빈도 분포는 정규분포 곡선을 따를 것이다. 즉 대부분의 노드는 비슷한 수의 링크를 가지고 있고, 소수의 노드들만 아주 많거나 혹은 아주 적은 링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에서 링크의 빈도분포는 지수분포(power law)를 따른다. 소수의 노드는 엄청나게 많은 링크를 가진 반면 대부분의 노드는 매우 소수의 링크만을 가지고 있다.

왜 세상의 많은 네트워크는 허브의 위계체계라는 속성을 지닐까? 그는 네트워크가 두가지 원칙을 따르면, 이러한 속성의 네트워크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짐을 증명했다. 첫째 원칙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노드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덧붙여져 성장하며, 두번째 원칙은 이렇게 새로이 출현하는 노드가 기존의 노드들 중에 가장 링크가 많이 걸린 것에 새로운 링크를 건다는 원칙이다. 기존의 노드들 중에 링크가 가장 많이 걸린 것이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새로 출현한 노드가 이것에 링크를 걸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노드와 링크를 하나씩 더해 나가는 실험을 하면,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가 출현한다. 이를 복잡계(complexity), 즉 몇가지의 단순한 원칙이 자기 반복적으로 적용되면서 복잡성이 높아지는 체계라고 한다.

그가 이러한 네트워크의 원칙을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인터넷 세계뿐 아니라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네트워크들이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항공노선의 망, 과학세계에서 학자들 사이의 인용의 망, 공동 영화출연을 통해 헐리우드 배우들이 서로 연결된 망, 사람들 사이에 친소관계의 망, 전염병이나 유행이 확산되는 망, 등은 모두 이러한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이다. 물론 모든 네트워크가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는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을 보면,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의 링크가 지수분포를 보이지 않는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매우 강하다. 웬만큼 많은 수의 노드들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노드들 사이에 연결을 유지한다. 반면, 허브들만 골라서 체계적으로 공격을 한다면, 이러한 네트워크들도 파괴될 수 있다. 네트워크의 이러한 속성을 알면, 조직의 운영이나 여론과 유행의 전파 등 여러 경우에 효과적으로 네트워크를 통제할 수있다. 소수의 허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지도를 파악하고 접근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 문제해결 능력의 차이는 크다.

이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월드와이드웹을 분석하여 네트워크의 특성을 발견한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책 후반에 이러한 네트워크의 속성이 다른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되는 것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피상적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네트워크와 복잡계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 책이다.

 

2022. 5. 14. 21:35

호두나무, 목록 (2021.9.20. ~ 2022.5.14.), 총 40권.

1

David Linden. 2011. The Compass of Pleasure: How our brains make fatty foods, orgasm, exercise, marijuana, generosity, vodka, learning, and gambling feel so good. Penguin books. 195 pages.

2

Gad Saad. 2011. The Consuming Instinct: what juicy burgers, ferraris, pornography, and gift giving reveal about human nature. Prometheus Books. 293 page.

3

나카무로 마키코, 쓰가와 유스케, 윤지나 옮김. 2018.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리더스북. 193.

4

최현석. 2017.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서해문집. 739.

5

베아트리스 퐁타넬. (심영아 옮김). 2010.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이봄. 239 .

6

Paul Bloom. 2010. How Pleasure Works: the new science of why we like what we like. WW Norton. 221 pages.

7

Sheena Iyengar. 2010. The Art of Choosing. Twelve. 277 pages.

8

Matthew O. Jackson. 2019. The Human Network: How your social position determines your power, beliefs, and behaviors. Vintage Books. 240 pages.

9

Siddhartha Mukherjee. 2010.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470 pages.

10

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 Vintage. 284 pages.

11

Daniel Gilbert. 2006. Stumbling on Happiness. Vintage books. 263 pages.

12

김은국 (도정일 역). 2010. 순교자. 문학동네. 311.

13

Nicholas A. Christakis. 2019. Blueprint: the evolutionary origins of a good society. Little Brown Spark. 419 pages.

14

Alan Krueger. 2007. What Makes a Terrorist: Economics and the Roots of Terror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5 pages.

15

Marc Bekoff. 2007. The Emotional lives of animals. New World Library. 166 pages.

16

Thomas Watson Jr. 1990. Father, Son & Co.: My life at IBM and beyond. Bantam book. 446 pages.

17

한혜경. 2012.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샘터. 267.

18

한혜경. 2021. 은퇴의 말: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 교유당. 249.

19

한혜경. 2021. 은퇴의 맛: 은퇴 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교유당. 261 .

20

Sam Walton. 1992. Sam Walton: Made in America, My story. Doubleday. 260 pages.

21

강준만. 2010. 세계문화전쟁: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인물과 사상사. 384.

22

강준만. 2013. 대중문화의 겉과 속. 전면 개정판. 인물과 사상사. 454.

23

Joseph Nye, Jr. 2011. The Future of Power. Public Affairs. 234 pages.

24

John Baylis, Steve Smith, Patricia Owens. 2020. The Golbalization of World Politic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8th ed. Oxford. 529 page.

25

Hedley Bull. 2012(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 4th ed. Palgrave. 308 pages.

26

Mel Greaves. 2000. Cancer: the evolutionary legacy. Oxford University Press. 266 pages.

27

Paul Bloom. 2016. Against empathy: the case for rational compassion. HarperCollins. 241 pages.

28

Mancur Olson. 2000. Power and Prosperity: Outgrowing communist and capitalist dictatorships. Basic Books. 199pages.

29

Daniel Nettle. 2007. Personality: What makes you the way you are. Oxford University Press. 248 pages.

30

Pankaj Ghemawat. 2018. The New Global Road Map: Enduring strategies for turbulent times. Harvard Business Review. 213 pages.

31

Joshua Goldstein. 2011. Winning the War on War: the decline of armed conflict worldwide. Plume. 328 pages

32

Eric Klinenberg. 2012. Going Solo: the extraordinary rise and surprising appeal of living alone. Penguin books. 233 pages.

33

David Packward. 1995. The HP Way: How Bill Hewlett and I Built Our Company. HarperCollins. 193 pages.

34

Matt Ridley. 1996. The Origins of Virtue: Human instincts and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Penguin Books. 265 pages.

35

Alan Krueger. 2019. Rockonomics: A Backstage tour of what the music industry can teach us about economics and life. Currency. 269 pages.

36

Corey Abramson. 2015. The End Game: How inequality shapes our final years. Harvard University Press. 148 psges.

37

Kevin Kelly. 2010. What Technology Wants: Technology is a living force that can expand our individual potential - if we listen to what it wants. Penguin books. 359 pages.

38

Barbara Natterson-Horowitz and Kathryn Bowers. 2013. Zoobiquity: The Astonishing connection between human and animal health. Vintage books. 314 pages.

39

Charles Tilly and Sidney Tarrow. 2015. Contentious Politics. Oxford University Press. 233 pages.

40

Frans de Waal. 2007(1982). 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215 pages.

2022. 5. 14. 21:07

David Linden. 2011. The Compass of Pleasure: How our brains make fatty foods, orgasm, exercise, marijuana, generosity, vodka, learning, and gambling feel so good. Penguin books. 195 pages.

저자는 신경생리학자이며, 인간의 쾌락이 작동하는 신경생리학적 기제를 설명한다. 쾌락을 유발하는 메뉴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는 신경생리학적으로 유사한 장치를 통해 작동된다.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은 뇌 속 깊숙이에 쾌락을 관장하는 중추가 있다. 쥐의 뇌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박고, 이곳을 자극하는 전기 자극을 스스로 발생시킬 수 있도록 하면, 쥐는 식음을 전폐하고 쾌락을 유발하는 행위에 전념한다. 쾌락을 느끼는 것은 생물의 생존과 후손 번식을 위해 진화한 능력이다. 

헤로인, 코카인, 등 향정신성 약물은 모두 이 쾌락 중추의 작동 기제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을 계속 복용하면, 두뇌의 쾌락 중추의 회로를 변화시켜 의존성을 만들어낸다. 투약 회수가 늘어날 수록 쾌락을 얻으려면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하며, 갈수록 투약이 가져오는 쾌락보다 복용하지 않았을 때의 갈망이 더 커진다. 일반인과 비교할 때 약물 중독자가 약물에 의한 쾌락을 더 느끼기 때문에 약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복용하지 않을 때의 괴로움을 더욱 심하게 느끼기 때문에 약물을 찾는다. 복용하지 않으면 약물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서, 복용으로 빠져드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게 된다. 한동안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약물 사용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마주치거나, 삶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다시 약물 복용으로 빠져들게 된다. 약물 사용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일반에 퍼져 있는데, 사실 약물 중독은 생리적인 문제이므로 의지로 중단하기 어렵다. 금단 현상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기는 힘들다.

두뇌의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가져와서 의존성을 만들어 내는 약물은 법으로 금하는 마약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담배와 알콜은 모두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가져와서 의존성을 만들어 낸다. 담배의 니코틴이 주는 쾌락의 강도는 크지 않지만, 담배를 피는 사람은 담배를 자주 피기 때문에,  잦은 자극으로 인하여 쾌락 중추의 회로가 서서히 변화한다. 니코틴의 약물 의존성은 다른 마약과 다르지 않다. 담배는 폐암, 고혈압, 등을 유발하여 건강에 매우 해로움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었음에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반면, 건강에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인 대마초를 규제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여러 나라에서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하는 대마초나 엑스타시 등은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가져 오지 않으므로, 심각한 약물 의존성을 낳지 않는다. 

음식 역시 쾌락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병적으로 비만한 사람은 지방의 과도한 섭취를 제한하는 호르몬이 두뇌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몸 속의 지방은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비만한 사람의 뇌는 이 호르몬에 대해 둔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섹스, 도박 등도 뇌의 쾌락 중추의 작용으로 쾌락을 느낀다. 도박 중독자에게 불확실한 미래의 보상은 확실한 보상보다 더 큰 쾌락을 가져다 준다. 잦은 섹스나 도박 또한 약물과 마찬가지로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를 유발하여 의존성이 만들어질까? 다시말하면 섹스 중독, 도박 중독은 약물 중독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생리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의지로 조절 가능한 행동의 문제인가? 약물 중독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쾌락 중추의 회로 변화로 인한 문제로 추정된다. 다만 이러한 의존성에 쉽게 빠져드는 유전적 기질이 있다.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중독자의 중독의 원인의 30~50%는 유전적 기질 때문이다.

인간은 구체적인 물질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관념에 의해 쾌락을 느끼고, 다른 쾌락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믿는 이념이나 종교에 헌신할 때 쾌락을 느끼고, 이러한 이념을 위해 먹고 섹스하는 등 생리적 쾌락 유발 행위를 억제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현재의 뇌생리학의 연구는 뇌의 작용을 이해하는데 초보적인 수준에 있다. 그러나 저자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뇌의 작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미래에 두뇌의 쾌락 중추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쾌락을 스스로 조작할 수있다면, 실험실의 쥐가 보여주듯이, 인간이 힘들게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기에 인류의 문명이 멸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 지식을 풀어썼다. 전문 학술 용어가 매우 많이 등장하여 읽기 불편하다. 전문용어를 조금 가지치기한다면 좋았을텐데, 읽은 수고의 상당부분을 발음도 힘든 긴 전문용어를 눈으로 쫓아가는 데 낭비해야 했다.

2022. 5. 8. 17:42

Gad Saad. 2011. The Consuming Instinct: what juicy burgers, ferraris, pornography, and gift giving reveal about human nature. Prometheus Books. 293 page.

저자는 마케팅 전공의 경영학자이며, 사람들의 소비행위를 진화론을 적용해서 설명한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소비 행위는 그러한 진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다. 왜 사람들이 어떤 소비 행위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행위가 진화적 욕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진화적 욕구는 크게 네가지이다. 첫째는 물리적 생존이며, 둘째는 이성의 짝을 만나서 번식하는 것이며, 셋째는 혈연적인 집단 즉, 가족과 친족을 만드는 것이며, 넷째는 우호적인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 즉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 물리적 생존의 영역에서는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확율을 높이는 것, 섹스의 영역에서는 다음 세대를 번식을 하는 데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differential parental investment), 가족과 친족의 영역에서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단위에서 다음 세대로 확산한다는 것(inclusive affinity), 우호적 집단 구성원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속한 집단을 외집단보다 우선시하고 (in-group over out-group), 일대일의 교환관계 (tit for tat)관계가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도박이나 위험한 행위에 빠지기 쉬운 반면, 여성은 육체적 미를 높이는 행위에 지나치게 빠지기 쉽다. 남성은 포르노에 탐닉하나, 여성은 성적인 비쥬얼 이미지에 덜 끌린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들에 대한 뒷담화에 흥미를 가지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남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진화적 욕구의 발로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욕구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다. 따라서 진화적 필요에 근거한 욕구를 겨냥한 마켓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통한다. 인간은 미래의 불확실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미래의 희망을 파는 마켓팅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희박한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희망을 믿고 싶어한다. 종교와 자기개발 산업이 대표적으로 미래의 희망을 파는 분야이다. 소비자가 감정에 좌우되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가 진화적 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속이 비어 있을 때 많은 양을 구매하는 것은 결핍에 대한 회피 욕구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은 진화론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근거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번식의 욕구를 벗어날 수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현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술한다. 기존에 많이 알려진 논의를 인용하여 설명하기에 신선함은 덜하다.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우리의 일상을 설명하는 데 설득력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2022. 5. 2. 20:29

나카무로 마키코, 쓰가와 유스케, 윤지나 옮김. 2018.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리더스북. 193쪽.

저자는 교육 정책학자와 보건 정책학자이며, 이 책은 인과추론의 논리를 적절한 사례와 그림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두 변수사이에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연히 두변수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제3의 교란 변수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 역 방향으로 인과의 화살이 가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에비던스의 수준이 높은 순으로 방법론을 나열하면, 복수의 랜덤화된 연구들에 대한 메타 분석, 랜덤화 통제 비교, 자연실험과 준실험, 회귀분석의 순이다.

빅 데이터 분석은 무수히 많은 유관변수를 찾아내서 종속변수 값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어, 이를 새로운 사례에 적용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변수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원인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 분석방법을 이 책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데, 과연 그런지 약간 의심이 간다. 예컨대 오백개의 변수를 통해 종속변수를 예측하는 빅데이터 분석 모델은, 인과모델과 달리 우연의 일치나 랜덤화 통제의 오류가 많은 변수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상쇄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빅데이터 분석 모델은 인과추론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면서, 그 나름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자연실험, 이중차분법, 조작변수법, 회귀불연속 설계, 매칭법, 등 실제 연구에 많이 쓰는 인과 추리 모델을 명료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해설했다. 또한 이러한 방법론이 적용된 실제의 연구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통계와 인과추론을 가르쳤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 책을 사용했더라면 훨씬 쉽게 가르쳤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인과추론과 관련된 논의를 실제적이고 간단명료하게 정말 잘 정리했다.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고, 감탄했다. 사회과학 리서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번역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책의 후반부에서 눈에 띄었다. 

2022. 4. 30. 18:30

최현석. 2017.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서해문집. 739쪽.

저자는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 신체의 구성부분을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신체 부분의 용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동의보감의 한학 지식을 덧붙여 소개한다.

인간의 몸의 구성 부분과 기능에 따라 신경, 감각, 피부, 호흡, 순환, 혈액, 면역, 소화, 내분비, 생식, 비뇨, 근골격으로 장을 나누어 설명한다. 총 246개의 항목에 대해 설명한다. 각 부분에 대해 용어의 어원을 먼저 해설하고, 다음으로 해부학적 지식, 생리학적 지식, 병리학적 지식의 순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때때로 사회문화적 지식도 추가로 덧붙인다. 의학 지식의 발전, 다른 동물과 비교한 진화론적 설명, 발생학적 설명, 일반인의 상식과 과학적 지식의 비교, 건강을 위한 의사로서의 조언, 등 다양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통해 환자를 접하면서 얻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한 감, 인체에 대한 감, 의학적 치료에 대한 감이 행간에 배어 있다. 의학이 알고 있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정말 대단한 책이다. 저자의 지식의 폭은 물론,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 눈이 떠지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한국인 저자가 쓴 책 중,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이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22. 4. 18. 14:26

베아트리스 퐁타넬. (심영아 옮김). 2010.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이봄. 239 쪽.

이책은 서양의 회화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본 사회사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그림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들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을 구석구석 해부하여, 그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침실, 난방, 부엌, 실내장식, 물, 조명, 창, 여러 방들, 식당, 욕실, 살롱과 거실, 수납, 살림이라는 제목 하에, 18세기 근대화 이전의 모습과 이후를 대비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18세기까지 일반 사람들의 삶은 생존의 한계에서 힘들게 살아갔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식구들 모두가 불기가 있는 거실에 모여 잠을 자고, 일년에 두세번 목욕을 했으며, 방에는 가구랄 것이 거의 없었으며, 두세개의 조그만 궤짝에 가진 것 모두를 넣어 두었으며, 한두벌의 옷으로 생활했다.  20세기의 물질적 풍요와 너무도 대비된다. 이 책을 읽으면 물질적 삶의 핵심인 의식주 중 '주'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역자의 번역이 좋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길지 않은 글을 읽는 것도 즐거웠다. 읽는 즐거움이 새록 새록 솓아나는 책이라,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나에게 상을 주는 기분으로 읽었다. 아끼면서 조금씩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무척 아쉬웠다.

2022. 4. 4. 17:26

Paul Bloom. 2010. How Pleasure Works: the new science of why we like what we like. WW Norton. 221 pages.

저자는 발달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근원을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천성적인 본질주의자(essentialist)이다. 본질주의란 사물에는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은 본질이 존재하며, 사람들은 이러한 본질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물을 접하고 인식한다. 이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피상적 외면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반대된다. 어떤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이 대상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다. 진품 그림, 유명인사가 직접 접촉한 물건, 현장 공연, 등이 모조 그림이나 복사품보다 더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이것이 대상의 본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주의적 인식은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상황에 따라 달리 변하는 것을 각각 다른 것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선호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리의 맛 감각이란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영향받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영양학적 이유 이외에,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일수록 더 맛있게 느낀다. 인조고기보다 천연 고기를 더 맛있게 느끼며, 코카콜라가 익명의 콜라보다 더 맛있으며, 천연 환경에서 채취했다고 믿는 생수가 수도물보다 더 맛있다.

섹스가 즐거운 이유는 종의 번식을 위한 필요에서 발달한 감각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방식으로 섹스를 접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짝을 찾는데 훨씬 까다로우며, 소수의 배우자의 헌신을 구한다. 남성은 여성의 성적인 외도에 분개하고 질투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이 자신에게 쏟을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쏟는 위험 때문에 질투한다. 따라서 여성은 배우자가 자신에게 쏟을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크게 이전하지만 않는다면 남성의 성적인 외도에 대해 감정적 분노를 덜 느끼는 반면, 남성은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적으로 결합한다는 오로지 그 사실 때문에 참지 못한다. 섹스 상대의 과거의 성적 전력은 성적 매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려는 진화적 욕구이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관계 맺기와 연관되어 있기때문이다. 이야기에 담긴 인간관계의 복잡한 양상에 대한 지식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 기술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 경험으로 습득하려면 희생과 위험이 클 것이지만, 이야기 혹은 허구를 통해 이를 큰 비용 없이 습득할 수있다. 즉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본원적 흥미는 생존 본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피 엔딩만 아니라 슬픈이야기나 폭력적 이야기에 흥미가 동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남의 고통과 비극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맞는다. 그러나 실제 벌어지는 현실로서 남의 고통이 지나칠 경우, 공감이 작용하여 관찰자에게도 고통을 준다. 그러나 허구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는 사람들이 이야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허구는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아무리 고통스런 사건이 벌어져도 공감의 강도가 낮다.

이책은 저자의 연구결과와 엄청난 독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솜씨좋게 버무려 놓은 책이다. 논의가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그런대로 읽을만하다.

2022. 3. 13. 21:43

Sheena Iyengar. 2010. The Art of Choosing. Twelve. 277 pages.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관해 이론적 검토와 함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인에게 '선택'은 항시 긍정적으로 인식되지만, 많은 선택지나 개인이 하는 선택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복리를 더 높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역설한다.

인생을 보는 세가지 세계관이 있다. 첫째, 인생이란 운명에 의해 미리 결정되는 것, 둘째, 인생이란 우연에 따라 전개되는 것, 셋째, 인생이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인생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세계로 인식한다. 미국인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에 경도해 있다.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 이념은 누구라도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믿음은 현실과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고 선택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스스로의 선택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만,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이 개인을 위해서 대신 선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을 때 힘이나고 만족도가 높지만,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자신이 중시하고 신뢰하는 집단 구성원이 자신을 대신하여 선택하는 경우에 오히려 힘을 얻는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하여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선택에 집착하는 반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과 조화를 이루는 공통의 선택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특정 개인이 튀는 선택을 부정적으로 본다. 

개인주의 문화에서 남과 다른 개개인의 선택에 집착하지만, 그렇다고 남과 크게 다른 선택을 바람직스럽게 보지는 않는다. 남과 대체로 동조하지만 사소하게 다른 그런 차이를 개인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개인은 주위의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는 선택은 피상적이다. 미국의 상업광고에서는 바로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둘러싼 선택을 강조하며, 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구별하도록 훈련받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사소한 차이를 보이는 물품을 소비자들이 계속 구입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통해 굴러간다. 사소한 차이를 둘러싼 소비자의 선택에 대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람들의 의식을 조작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상징적 차이를 통해 사람들의 개성을 표현하도록 돕는다고 볼 수도 있다.  패션이나 유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대략 일곱가지 이상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 한 옥타브의 일곱가지 음계, 등등, 신화나 인간사에서 일곱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선택지 간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택이 힘들어지며 선택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선택의 다양성이 매우 큰 경우, 선택의 다양성이 제한된 경우보다 오히려 열등한 결과를 낳는다.

개인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이 항시 당사자의 복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전문적 식견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선택을 위임하는 것이 더 낫다. 또한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선택하려하지 않는 경우, 상황을 잘 아는 타인이 그를 위해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 미국에서는 당사자 개인이 직접 선택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예컨대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중단시킬 위험이 있는 결정의 경우, 미국에서는 개인에게 결정하도록 요구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의사가 결정을 내리는 데, 프랑스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개인이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충분히 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저축을 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개인에게 저축 여부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평가는 타인이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한 것보다 항시 더 긍정적이다.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선택하는지에 대해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선택을 항시 긍정적으로 합리화할 수있다. 반면 타인은 그 사람 만큼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지 못하기에,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긍정적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고집센 사람이라고 평가한다거나, 자신은 자신이 일관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들 충동적이라고 평가한다거나, 자신은 관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냉혹하다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냉정히 검토하여 자신을 고쳐나가면, 자신의 선택과 주위 사람들의 평가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많은 경우 선택은 어렵다. 선택이 어려운 경우, 가능한 선택지와 각 선택지에 대해 예상되는 결과를 써놓고 냉정하게 비교하여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권한다. 선택의 기술은 훈련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선택 일기'를 매일 쓸 것을 권장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선택에 대해서, 가능한 선택지와 각 선택지에 대해 예상되는 결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매일 기록한 다음, 일이 어느 정도 전개되고 난 후 뒤돌아 자신의 과거의 선택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작업을 반복한다면, 선택의 기술을 높일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고급 교양서이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저자의 강연을 유투브로 찾아 들어 보니, 처음 소개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참가자 누구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대하는 가장 좋은 길은, 장애를 배려하여 특별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과 다름없이 대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장애인으로 콜럼비아대학교 교수가 되고,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실험과 연구를 하기위해 일반인의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점을 생각했다. 흥미있는 책이다.

2022. 3. 7. 17:49

Matthew O. Jackson. 2019. The Human Network: How your social position determines your power, beliefs, and behaviors. Vintage Books. 24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관계망 분석과 게임이론의 전문가이다. 이 책은 인간 관계망(human network)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사람들의 행위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한다.

인간 관계망의 그림은 유형을 보인다.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degree of centrality)가 많을 수록 나는 관계망의 중심에 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못지 않게,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친구의 친구는 나와의 관계의 강도는 떨어지지만, 나의 관계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로부터 멀어질수록 낮은 비중을 두어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합산한 수치(eigenvector centrality)가 높을 수록 나의 영향력은 높아진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가 자신보다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friendship paradox). 이는 친구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관계망에서 더 많이 대표(represented or exposed)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다. 관계망에서 최고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즉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질병, 유행이 퍼져나가는 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계를 맺는 사람들 다수가 선호하는 의견을 따르는 성향이 있는데,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시킨다. 관계망 내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거듭되면서 중심 인물의 특정 의견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서 결국 관계망에 속한 모든 사람을 감염시킨다.

관계망은 금융 위기가 퍼져나가는 양상에도 적용된다. 많은 금융기관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대형 은행은 그것에 문제가 발생할 때, 금융 시스템 전체로 문제를 확산시키기 때문에, 2008년의 금융위기 때에 정부가 나서서 대형 은행의 부실을 대신 떠안음으로서 금융기관 관계망 전체로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 맺는 성향이 있다(homophily). 사람들의 류류상종 성향은 인종, 계급, 종교 간에 거주지와 사회관계망의 분리를 만들어 냈다. 서로 분리된 사회 관계망 사이에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사회적으로 성공하는지에 관한 유용한 정보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므로 가난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일자리에 대한 정보망도 두 집단 사이에 단절되어 있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정보는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접근가능하다. 대학을 진학한 사람들을 가진 중류층 이상의 관계망과 대학 진학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찬 가난한 사람들의 관계망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이것이 세대간 계층이동을 어렵게 하고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요인이다. 빈곤 타파를 위해, 물질적 지원 못지 않게, 그들의 부족한 정보를 도와주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하게 되는지, 대학은 어떻게 갈 수있는지, 대학에 가기위해 마련된 사회적 지원 등에 대한 정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중류층은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이러한 정보를 쉽게 접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관계망 속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에 따르고 다수의 행태를 모방하는 성향은, 의사결정에서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 낸다. 첫 한두 사람은 독립적으로 판단하지만, 세번째 사람부터는 앞사람의 선호를 하나의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이므로서 의사결정이 한쪽으로 쏠리는(herding) 효과를 만들어 낸다. 여론, 유행, 대중문화의 전파에서 영향력 있는 소수의 사람(influencer)의 선호가 그를 관찰하고 모방하는 다수를 휩쓰는 현상이 흔히 발생한다. 

인터넷과 정보기술은 정보의 전달 효율을 높였지만, 그 못지 않게, 유사한 의견의 사람들의 군집을 형성케하는(clustering) 효과를 가져왔다. 인터넷과 social media는 사람들을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의견에만 접하도록 돕고, 거짓 정보를 쉽게 퍼뜨릴 수 있게 함으로서, 미국의 정치가 양극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관계망 분석은 개인이나 조직을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적용된다. 근래에 들어 국가들 사이에 무역 관계가 밀접해 지면서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서로간 상호 작용을 자주하고 서로 간 걸린 것이 많을수록, 관계의 깊이는 깊으며 쉽게 끊어버릴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경험을 쉬운 말로 풀어 놓은 책이다. 많은 이야기가 상식적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체계적으로 서술한 점에서 생각을 돕는다.

2022. 3. 3. 16:52

Siddhartha Mukherjee. 2010.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470 pages.

저자는 암전문의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가 암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역정을 서술한다. 암을 둘러싼 과학적 연구와 의학지식의 발전 과정을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자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암은 서기 2500년전 이집트의 기록에도 나올만큼 인류와 함께 한 병이다. 근래에 인간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면서 사망원인의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암은 나이가 들면서, 특히 55세 이후에 주로 발병하기 때문이다. 1800년대 전반까지 암에 대한 치료법은 사실상 전무하였다.

암에 대한 치료의 시작은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적 방법에서부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 마취가 도입되기 이전, 19세기 후반 세균의 존재가 확인되기 전부터 종양을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는 치료가 이루어졌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술로 제거하는 부위를 확대하여 암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하였으나 암의 재발을 막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방사능이 발견되고, 방사선에 노출될 때 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방사선으로 신체 내부의 종양을 들여다보는 방법이 보급되었다. 강력한 방사선에 종양을 노출시켜 태워 없애는 방사선 치료가 시행되었다.

20세기 중반에는 독성물질로 암세포를 죽이는 화학 요법이 확대되었다. 미국에서 1950년대 무렵부터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암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을 찾으려는 노력이 전사회적으로 벌어졌다. 국립 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가 설립되고, 암 연구를 위한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을 뒷받침하는 법이 제정되고, 암을 퇴치하려는 사회운동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암세포를 죽이는 다양한 독성물질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곧 한계에 부딛쳤다. 암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암 치료법을 찾는 것은 상대를 알지 못하면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독성물질은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분하지 못했으므로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도 무차별하게 함께 죽였다. 독성을 강화해서 암세포를 박멸하려는 노력은, 살아남은 암세포가 타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70년대에 화학요법이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으나, 이러한 방법으로 암을 치료하거나 암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는 미미하였다.

화학 요법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암을 예방하는 노력에 관심이 높아졌다. 인류의 질병 퇴치 역사는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것보다는 위생환경의 개선이나 백신 등으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암 치료에도 적용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암을 유발하는 요인에 대한 발견이 이어졌다. 굴뚝 청소부의 음낭에서 암이 많이 발생하고, 석면을 다루는 노동자에게서 암이 많이 발생하고,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간암이 많이 발생하고, 위장내의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속속 발혀졌다. 특히 흡연자에게서 폐암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되면서 담배회사와의 법정 싸움이 벌어졌다. 담배회사들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결국 담배가 암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이후 흡연을 경고하고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이 벌어졌다. 유방 및 자궁 경부의 정기검사를 통해 유방암과 자궁암을 예방하는 노력은, 55세 이후의 고령층에게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0년대 무렵부터 서서히 암의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어졌다. 암은 돌연변이한 유전자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암 유전자는 일반 세포의 두가지 기능, 즉 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기능과 세포의 증식을 제어하는 기능의 양쪽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암 유전자는 세포 증식을 무한히 계속하며, 세포 증식의 통제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세포가 무한히 증식하여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암 유전자와 그것의 작동 방식은 단일한 유형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오랜 기간동안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누적된 결과, 마침내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은 수년 동안의 변이가 아니라 수십년간의 변이가 축적된 결과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몸속 어딘가에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품고 있다.

일부 종류의 암에 대해 특정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일부 종류의 유방암 세포, 일부 종류의 혈액암 세포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독성물질이 개발되면서, 과거에 무차별적인 독성물질의 부작용을 제거한 화학요법이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일부 암세포의 유전자와 결합하여 그 유전자의 세포 증식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약물도 개발되었다.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결합하고, 암의 유전자 활성화를 막는 약물까지 더해지면서 암 치료의 성공율은 높아졌다. 특히 혈우병과 유방암 치료에서 성공이 두드러졌다.

암 세포로 돌연변이할 가능성이 높은 유전인자에 대한 발견도 이어졌다.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가족의 여성들에게서 유방 암 발병 확율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러한 여성들은 사전적으로 유방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암 유전자의 활성화를 막는 약물을 사전에 복용하는 조치가 권장되었다.

암에 대한 치료가 근래에 빠르게 발전하기는 하지만, 암을 완전히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암은 정상 세포의 분열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이이므로, 인간이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하는 한 돌연변이의 암세포가 출현할 가능성이 항존한다. 암 세포를 치료하려는 다양한 노력은 그에 맞추어 돌연변이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암 세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암 세포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암 세포의 변이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하면서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연장하는 것이 최선의 암 치료이다.   

이 책은 과학적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그리고 있다. 기존의 이론에 대한 의문과 도전이 왜, 어떻게 전개되며, 우연적인 사건이 의문을 푸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끈질긴 추적이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 혹은 좌절을 맛보는지, 등등이 차근히 서술된다. 1980년대까지 암의 작용기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 없이 깜깜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물량공세로 사방을 두드리면서 치료방법을 찾지만, 결국 미미한 성과만을 거둔채 좌절을 맛본 과정이 인상적이다. 암은 1980년대까지 효과가 있는 치료 방법이 없이 사실상 걸리면 죽는 병이 었다. 현재에도 췌장암이나 방광암 등은 치료방법이 없이 사실상 죽는 병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책의 맨 끝에서, 암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여전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암은 어떻게 전이되며, 왜 정상세포과 달리 세포 증식이 무한히 일어나는지, 그결과 수십년이 넘은 암세포가, 숙주는 오래 전에 사망했는데, 실험실 유리관에서 여전히 증식을 계속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과학적 논리와 의학적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함에도, 400쪽이 넘는 분량을 흥미진진하게 단번에 읽었다. 이렇게 긴 책을 질리지 않고 읽기는 쉽지 않은데,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대단히 훌륭하다. 풀리쳐 상을 받은 작품답다.

2022. 2. 23. 17:49

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 Vintage. 284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인간이 온순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획적 폭력성은 상존한다고 주장한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하도록 길들여진 반면, 인간은 외적인 개입 없이 스스로 온순해지는 과정을 밟아 왔다(self-domestication hypothesis).

동물의 폭력성은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상대의 도발에 대해 즉흥적으로 반응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이다(reactive violence). 대부분의 폭력적 행동은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는 상대의 명시적 도발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계획을 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이다(proactive violence). 전자가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후자는 냉정한 손익, 승패의 계산 하에 하는 행동이다. 계획적 공격을 하는 경우는 침팬지나 늑대 등 소수 고등 동물에게만 관찰된다.

개나 가축을 길들인 과정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한 후손을 계속 선별하여 온순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만을 증식시킨 결과이다. 신석기 시대에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인간은 꾸준히 온순해졌다, 즉 폭력적 성향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소규모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즉 집단의 규범을 크게 위반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인 사람을 제거함으로서 집단 구성원들간에 협동이 보다원활해진다.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협동이 원활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력이 높기 때문에 진화의 수레바퀴가 그러한 방향으로 굴러간 것이다.

소규모 집단 내에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일탈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덜 힘센 구성원들 사이에 일탈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모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가 발달한 인간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정밀한 소통과 집단 행동이 가능하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세계에서 폭력적인 일탈자를 계획적으로 제거하는 관행이 발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역사상 존재하는 수렵 채취사회를 관찰해 보면 지위의 불평등도가 낮으며 평등주의 이념을 강력히 옹호하는데, 이는 바로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집단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심리적 성향이다. 공정함을 추구하는 심리, 자신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집단의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벌 주고 싶어하는 심리, 등이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게서는 이러한 심리적 성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성향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며, 동시에 그러한 심리를 가진 개인에게도 이익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으려는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포용되고 인정받는 것은 자신의 생존 및 후손의 번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집단 규범에 위배하는 구성원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공격하는 경우이다. 동물은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감행한다. 상대에 비해 압도적 전력을 동원하거나, 혹은 불시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상대와 전력이 대등하거나 상대가 나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격을 감행한다면 나에게 피해가 클 것이기에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인류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동물들의 폭력적 공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인류 사회의 가파른 위계구조와 군사 조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요컨대, 인류의 진화 과정은, 즉흥적 폭력 행사를 지속적으로 줄여왔으나, 그와 함께 계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동반하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폭력 독점과 법치의 결과, 감정적 격발이 초래하는 즉흥적 폭력 행사는 현저히 줄었다. 반면 국가간 충돌에 대규모의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여전하다. 인간이 과거에 비해 덜 폭력적이라고 단순히 말하기 힘든 이유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최고로 생각하고 타집단을 낮추어 보는 부족주의(tribalism),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가 근래에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인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이 책은 저자의 self-domestication 가설을 옹호하는데 전적으로 몰두한다. 무수히 많은 인류학적 서지 사례와 동물행동학의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설명하여 읽기가 힘들었다.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했다면 좋은 책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2022. 2. 17. 13:31

Daniel Gilbert. 2006. Stumbling on Happiness. Vintage books. 26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이 저지르는 심리적 오류들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심리적 속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이란 주관적이다. 동일한 물건이나 상황에 대해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특정 물체나 상황 자체에 행복감이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발생한 일에 대해 요점만을 저장한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요점을 제외한 많은 부분을 채워넣어야 한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의지한 추론으로 세밀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바탕으로,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외곡하여 기억해 낸다. 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경우에도 동일하다. 미래에 만일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하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의해 외곡되어진다.  그런데 미래에 내가 실제 그러한 것을 했다면 느낄 나의 감정은 미리 상상하는 느낌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과 그 미래 사이에 다양한 일이 벌어지면서, 지금 내가 상상한 일들이 미래에는 지금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그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는 성향이 있다. 미리 상상할 때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긍정적인 이유를 찾아내서 합리화한다. 타인이 볼 때 불행해 보이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끼는 이유이다. 세상의 일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수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 대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측면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미래에 어떻게 느낄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이 느끼는 느낌을 참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타인과 다른 사람이므로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은 느끼는 감정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큰 행복을 느끼면서 살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가 꿈꾸는 상황을 앞으로 실현한다고 해도 그리 크게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고된 일이며 상대적으로 볼 때 큰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자식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식을 낳고 기른다. 연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이상의 부는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부를 이룬 후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참고 일한다. 왜냐하면 더 많은 부가 더 큰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사멸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요컨대, 인간은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리는 존재이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만큼의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감이란 주관적 감정이므로 물건이나 상황 그 자체에 행복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물건을 획득하고 상황에 도달한다고 해도 달리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외에 대안은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면 열심히 계속 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번성할 수 없다. 인간의 욕구과 사회의 필요가 어긋나기 때문에, 사회는 인간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다. 인간은 그러한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프로그램된 존재이다.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행복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인식, 감정, 기억, 상상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설명한 책이다. 많은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읽으면서 여러번 되새겨보아야 했다.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때때로 쉽지 않지만, 나름 통찰력이 있고 읽는 재미가 있다.

 

2022. 2. 13. 22:37

김은국 (도정일 역). 2010. 순교자. 문학동네. 311쪽.

저자는 재미 소설가이며, 이 책은 1964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목사를 중심 등장인물로 하여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으면서 살 것인가? 사람들은 무의미한 고통의 연속을 어떻게 참아내며 살아가는가? 종교는 사람들에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는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허위,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희망과 의미를 붙잡으려고 발버둥 친다.

핵심 등장인물인 신 목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고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여 지도자로서 신망을 얻지만, 막상 본인 자신은 삶의 궁극적 의미는 없다는 '비밀'을 품고 힘들게 살아간다. 이러한 비밀을 견딜 수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쪽으로, -설사 그것이 거짓이라고 해도-,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 그를 움직이는 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책임이다. 그러나 본인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음을 화자에게 고백한다.

자신을 넘어선 타인들의 삶과 희망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목사 이외에 의사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위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 역시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분노하고 회의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동력은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는 데에서 나온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 화자는 부산의 난민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목사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삶이란 의미 있는지 여부를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답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긴박한 진행, 수월한 문체,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지적이며 논리적인 추구, 등은 마치 외국 작품 같은 인상을 준다. 책을 손에 잡자마자 끝까지 단숨에 다 읽었다.

2022. 2. 10. 17:01

 

Nicholas A. Christakis. 2019. Blueprint: the evolutionary origins of a good society. Little Brown Spark. 419 pages.

저자는 의사이며 사회학자로서, 이 책은 인간의 사회와 문화는 진화의 결과이며,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유전 인자의 발현임을 다양한 문화, 동물,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인류의 모든 사회는 공통된 특질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 여덟가지로 요약된다. 각각의 개체성(individual identity)를 인정하고 인식하는 능력, 배우자와 자식에 대한 사랑, 우정, 사회적 네트워크, 협동, 자신이 속한 집단을 편애하는 성향,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 사회적 학습과 교육.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이러한 일련의 인간의 특질이 잘 발휘된 사회는 흥한 반면, 이러한 특질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거나 인위적으로 억제한 사회는 쇄하였다. 대양을 항해하다 난파하여 섬에 고립된 사람들의 집단, 이상 사회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계획적으로 조직한 사회, 실험이나 인터넷의 가상환경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세가지 경우의 사회를 검토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람들 사이에 협동은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데, 사람들의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이나 반대로 사람들의 유동이 매우 심한 환경은 사람들의 변화가 어느 정도 있는 환경보다 협동의 수준이 낮다. 물질적 환경이 열악한 환경에서는 생존을 위해 높은 수준의 협동이 형성되는 반면, 물질적으로 풍요한 환경에서는 협동의 수준이 낮다.

인류 역사에서 일처일부제가 지배한 이유는, 그 이외의 다른 방식의 친밀한 결합, 즉, 일처 다부제, 다처 일부제, 난혼 등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의 존속에 불안정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처다부제의 사회에서는 짝을 찾지 못하는 다수의 남성이 위험한 행동, 폭력, 범죄에 쉽게 빠져든다.

인간을 포함한 고등 동물은 대부분 친구를 가지고 있다. 친구는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척의 범위를 넘어서서 넓은 범위의 자원에 접할 수 있도록 해주며,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의 성격을 띤다.

인간이 각각의 개체성을 인정하고 상대를 인식하는 능력은, 상호적인 협동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다. 이간의 협동에 대한 본능은 협동에 위배되는 사람을 벌주려는 성향과 함께 한다. 사람들은 나의 이익이 희생되더라도 협동을 위배하는 사람을 벌주려고 나선다. 사람들은 공정을 선호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공정하지 못한 분배는 배격한다. 인간의 도덕율의 상당 부분은 인간의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문화의 대체적인 틀을 규정짓는다. 문화와 사회적 규범이 생물학적 유전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과거에 학자들은 부정했다.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를 경계했다. 그러나 근래로 오면서 인간의 사회활동과 유전자의 연관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인간은 근래로 올수록 덜 폭력적이고, 문화와 지식의 축적을 통해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고, 서로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유전자와 문화가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 결과이다. 진화하는 인간의 미래는 밝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진화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사례를 인용한다. 유사한 많은 정보를 망라하면서 길게 길게 서술하여 독자의 인내력을 힘들게 한다. 앞에서 본듯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하여 나오기에 다 읽어내느라 무척 힘들었다.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썼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됬을 것이다.

2022. 2. 2. 20:51

Alan Krueger. 2007. What Makes a Terrorist: Economics and the Roots of Terror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5 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왜 테러리스트가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경험 데이터를 이용하여 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삶의 다른 수단이 막혀서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테러리스트는 그 나라 사람들의 평균보다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이 훨씬 높은 사람들로 밝혀졌다. 테러리즘이란 이념적 정치적 불만을 폭력적 행위를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살기에 허덕이기 때문에 이념적 정치적 불만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반면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은 지정학적 문제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 테러리즘은 투표 행위와 유사하다. 교육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를 한다. 테러리즘 역시 투입하는 노력에 대비한 결과를 생각할 때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다. 테러리즘은 매우 계산적 합리적 행위이다. 상대에 대해 전면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전쟁을 벌일 능력이 없는 힘이 크게 불균형한 관계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행위가 테러이다.

테러리스트는 대체로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온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이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불만을 제도권 내에서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통로가 막혀 있으므로 제도권 밖의 폭력적 수단에 의지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국제적 테러의 경우, 테러의 대상은 거의 대부분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들이다. 테러를 통해서 국민의 여론을 들끓게 하는 효과를 노리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부가 국민의 여론에 민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테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국제적 테러리스트를 배출하는 나라 역시 상대적으로 가난하지 않다. 예컨대 국제적 테러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소득 수준은 높으나 국민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국가이다. 국민의 소득 수준과 테러리스트 배출은 상관관계가 없다. 

테러는 얼마나 성과가 있을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으며, 심리적 효과 역시 테러가 발생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소멸된다. 정치적 영향은 조금 복잡하다. 선거 직전에 테러가 발생하면, 우파와 극단주의의 지지도가 높아진다. 미국에서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국민의 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외국인과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였다.

테러는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투자한 비용에 대비해 성과가 큰 전술이다. 테러리즘을 예방하기 위해서, 교육 수준을 높이고 빈곤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보다는 시민의 권리를 높이고, 이념적 정치적 불만이 평화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저자는 테러리즘이 빈곤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적 데이터로 입증함으로서, 기존의 상식을 뒤집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완전히 옳지는 않다. 개인의 수준에서 보면 테러리스트는 그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는 빈곤의 소산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의 수준에서 보면 불평등도가 높고 국민들이 가난할수록 시민의 권리 보장이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렵고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기 때문에, 테러리즘은 근본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도 이러한 점을 책의 후반부에서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교양서라기보다는 학술서에 가깝다. 이 책은 경험 데이터에 근거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상식이 틀렸음을 밝힌 흥미로운 예이다. 

 

2022. 2. 1. 21:26

Marc Bekoff. 2007. The Emotional lives of animals. New World Library. 166 pages.

저자는 생태학/진화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도 사람과 유사하게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역설한다. 동물이 사람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이 동물을 취급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나 동물은 모두 주위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진화시켰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효과적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적이다. 동물의 감정은 생존에 필수적인 일차적인 감정과 덜 중요한 이차적인 감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에는 고통, 공포, 분노, 쾌락, 등이며, 후자에는 슬픔, 질투, 권태, 호기심, 등이다. 생물 세계의 진화의 연속선 상에서 인간은 동물과 감정 능력을 공유한다. 인간과 동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서는 동일하다.

동물도 공정함(fairness)과 공감(empathy)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놀이 과정에 내포된 감정을 연구한 결과, 놀이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공정한 규칙(fair play)을 지키는 것은 동물에게도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은 놀이 과정을 통해 협동하는 능력을 기른다. 진화의 원리를 적자생존의 경쟁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경쟁과 협동이 함께 할 때 생존의 가능성이 커진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타자의 감정을 추체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 놓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공감한다. 

사람들은 애완 동물을 상대할 때에는 동물이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안다. 그러나 자신의 애완 동물을 상대하는 상황이 아닌 경우, 동물을 감정 능력이 없는 물건으로 취급한다. 과학자들은 실험 동물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물건과 같은 존재처럼 취급하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대우한다. 그들이 자신의 애완견이었다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저자는 질문한다. 동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동물을 잔인하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대해야 한다. 과학 실험을 위해, 인간의 식생을 위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동물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동물이 인간과 동일하게 느낀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인간을 동물과 구별된 특별한 존재로 보는 교리에 반하므로, 사람들이 좀처럼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특별히 구별되지 않으므로, 그가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역설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동물이 감정이 있다고 해서 동물을 덜 잔인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인간이 감정이 있다고 하여 인간이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고 착취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동물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동물이 감정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무자비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과 외양이 다르면 다를수록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한다. 백인들은 자신과 외양이 다른 흑인들을 착취하며, 흑인보다 자신과 외양이 더 다른 존재인 동물을 훨씬 더 심하게 착취한다. 저자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동물 복지를 높이는 일은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는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줄어드는 것이 동물 복지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2022. 1. 31. 17:42

Thomas Watson Jr. 1990. Father, Son & Co.: My life at IBM and beyond. Bantam book. 446 pages.

저자는 IBM 회사의 2대 회장이며, 이 책은 IBM 회사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에서 인간적 삶에 촛점을 맞추어 쓴 자서전이다.

저자의 아버지, 즉 IBM의 창업자는 1900년대 초반 저울과 시계를 제작 판매하는 작은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시작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제품이던 기계식 계산기의 중요성을 일찌기 간파했다. 그는 회사를 인수하고 기계식 계산기 사업을 크게 일으켰, 저자가 아버지가 일군 회사에 들어갈 무렵에는 상당한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저자는 학창시절 별로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으며, 아버지의 연줄로 브라운 대학에 간신히 입학하였다. 대학시절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여자와 파티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자신의 미래에 불확실한 불안감으로 가득찼다. 대학 졸업후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장군의 눈에 들어 러시아를 횡단하는 미션에 참여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전역후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아버지의 밑에서 회사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가 기계식 계산기에 주력하던 시절, 일찌감치 전자식 계산기, 즉 컴퓨터의 잠재력에 눈떴다. 아버지를 포함한 회사의 기존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의 미래를 컴퓨터 분야로 전환하는데 성공함으로서 독립적 경영 능력을 입증하였다. 컴퓨터가 개발된 초기 단계에, 마침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여 컴퓨터에 대한 정부 수요가 급속히 늘어난 기회를 IBM은 공격적으로 포착하였다. 저자의 판단은 맞아떨어져, 정부의 대규모 수요 덕분에 IBM 은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먼저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이후 민수용 컴퓨터 분야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IBM은 1950~1960년대에 컴퓨터 확산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저자의 아버지, 즉 1대 창업자는 노년이 되어서도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았다. 저자와 아버지는 둘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회사 경영을 둘러싸고 부딛치고 화해하기를 반복하였다. 결국 아버지가 죽기 바로 직전에야 아버지로부터 최고 경영자의 지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저자의 남동생이 IBM 의 해외 사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록 조정하였다. IBM은 그러한 아버지의 조치와 동생의 유능한 경영 능력 덕분에 미국내의 사업 못지 않게 해외 사업이 별도로 큰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는 국내 사업을 담당하는 저자와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남동생 간에 간극을 만들었으며, 남동생이 저자보다 먼저 죽을 때까지로 둘 간에 감정적 거리를 지속하였다.

저자는 50대 중반에 심장마비 증상을 겪으면서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였다.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스트레스가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음을 깨닫고, 은퇴 이후에는 한동안 요트를 타고 비행기를 조정하면서 여행을 다녔다. 한편, 그는 기업가로는 드물게 진보적 이념의 소유자였으므로,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 정치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70년대 연방 정부의 핵무기 관련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맡았으며, 이후 그의 공적 역할은 카터 대통령 시절 소련 대사직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미국의 대표적 기업가의 성장 과정을 회사와 인간적인 면모의 양쪽에서 비교적 솔직히 서술한다. 미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성공한 사람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건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경쟁을 추구하는 냉혹한 기업가의 면모가 가끔씩 엿보이나, 자서전 답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려진다. 대부분의 큰 성공이 그러하듯, IBM의 성장 역시 시대의 변화가 제시하는 중요한 기회를 포착한 것이 핵심이었다. 저자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으며, 거대한 기업을 일구고 운영하는 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곳곳에서 미국의 상류층 생활 방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돈과, 지위, 명예, 권력, 요트, 별장, 비행기, 아름다운 아내, 많은 자식,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2022. 1. 20. 20:10

한혜경. 2012.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샘터. 267쪽.

저자는 노인복지를 전공한 학자이며, 이 책은 이론적 지식에 풍부한 현장 연구경험을 잘 조합하여 일반인이 읽기 쉽게 쓴 고급교양서이다. 저자 자신이 수년 후 은퇴를 맞이할 것이기에, 타인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행간에 녹아있다.

은퇴 후의 노인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보아야 하며, 은퇴 후의 삶 또한 그러한 시각에서 계획해야 한다. 노인이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이며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현직에서 떠났기에 젊은이와 비교해 활동의 강도나 종류에서 차이가 있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다. 은퇴자도 주위로부터 인정받으려 하며,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과 전인적인 교류를 원한다.

노년의 삶을 잘 살기 위해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물질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남에게 의존하려 하면 자존감을 지킬 수 없으며, 남에게 휘둘리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식과 배우자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 내지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일하고, 노는 것, 이 세가지가 적절히 배합된 삶의 방식을 일생동안 유지해야 한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배우고, 일하고, 노는 내용과 강도가 다르겠지만, 일생 어느 시기라도 어느 한 부분을 게을리하면 반드시 문제가 따른다. 여기서 일은, 반드시 돈되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세대에 비해 교육과 소득수준이 크게 높은 베이비부머는, 노인, 은퇴자에게 붙어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해야 한다. 은퇴 후의 삶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꾸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은퇴 후의 삶을 하나의 틀로만 재단하는 것은, 실재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간과하는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살던 사람이라도 본인이 노력하면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 책은 전공자가 자신의 일생의 연구 결과를 잘 녹여서 읽기 쉬운 글로 쓴 훌륭한 작품이다. 저자의 진심이 담겨 설득력이 있고, 흥미롭고 쉽게 읽히는 글 솜씨가 돋보인다.

2022. 1. 19. 22:08

한혜경. 2021. 은퇴의 말: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 교유당. 249쪽.

이책은 저자가 과거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일할 때 수행했던 은퇴자 관련 면담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썼다. 한국의 남성 은퇴자들이 은퇴하고 나서 과거 현역시절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사항을 기술한다.

일밖에 모르고 살았고, 자신의 건강과 감정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야말로 아무런 준비없이 은퇴를 맞이하여,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자신을 후회한다. 현역시절에 제법 성공한 사람은 물론 힘들게 일하며 살았던 사람까지 다양한 양태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총 25개의 꼭지 중 맨마지막 장에서만 돈 문제를 언급한다. 은퇴 후의 삶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 돈은 중요하지만, 돈만이 전부는 아니다. 은퇴후에 무엇을 하며 살지,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지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의 일반 남성 가장의 삶, 그들의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엿보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과 같이 은퇴 후를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한국의 남자들이 그렇게 산 것은 그들의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도 있지만, 그들이 처한 집단 규범, 주변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압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 아무리 예상되는 일이라고 해도- 일이 닥치기 전까지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은퇴 후를 의미있게 살기 위해 미리 자신의 삶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여하간, 저자의 정갈한 글 솜씨에 홀려, 책을 잡자마다 단숨에 읽어내렸다.

 

2022. 1. 19. 16:24

한혜경. 2021. 은퇴의 맛: 은퇴 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교유당. 261 쪽.

저자는 과거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근래에 은퇴하였으며, 이 책은 은퇴를 하고 나서 자신과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겪은 생각과 감정을 기술한 글의 모음집이다. 현직 교수 시절에 10년 동안 은퇴자들에 대해 심층 인터뷰 조사연구를 한 것이 바탕에 녹아 있다. 많은 은퇴자들의 경험을 들여다 보았기에, 자신의 은퇴 경험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은퇴자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스트레스 쌓여 바쁘게 살던 현역 생활에서 벗어나게 됬을 때, 과거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투명하게 잘 보인다. 은퇴자의 생활이란 자신이 즐겨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무리하지 않고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은퇴해서는 젊었을 때와 달리,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주제에 맞는 정도로 살아야 한다. 사회의 규범과 틀을 의식하면서 그에 맞추어 살려고 하는 것은 바른 은퇴 생활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매끄럽게 글을 써서 읽는 재미가 있다. 행간에서 저자의 개성과 인간미가 드러나, 한 사람을 새로 알게 되는 맛이 있다. 저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양한 관심을 기르려 노력하기에 흥미롭고 내용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참 오랜만에 글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재능이 대단치 않다고 버릇처럼 언급하지만, 글쓰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우연히 책을 손에 잡고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2022. 1. 18. 21:13

Sam Walton. 1992. Sam Walton: Made in America, My story. Doubleday. 260 pages.

이 책은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자서전이며, 그가 어떻게 오늘날의 월마트를 만들었는지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그는 하는 일에 열정적이고, 부지런하고, 절약하며,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쉼없이 추구하며, 경쟁을 통해 향상된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2차대전 중 군복무를 끝내고 잠시 JC Penny 등에서 일하다가, 아칸소주의 소도시에서 잡화점을 여는 것으로 본격적인 상인의 길에 들어선다. 경쟁 업체의 보다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모방하여 자신의 사업을 개선하는 노력을 일생동안 기울이면서, 궁극적으로 업계에서 최고로 효율적인 소매업체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는 어느 곳에 가던 항시 남의 점포를  방문하여 면밀히 살피고 배울점을 찾았다. 세계에서 자신보다 소매 점포를 더 많이 방문한 사람은 없다고 장담한다. 

최소한의 이문을 붙여 대량으로 판매하는 대형 할인점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적용하여, 미국의 중부지역 소도시 전역에 월마트를 입점시켰다. 그당시 전국적 판매망을 구축한 선도적인 대형 할인점 K-Mart 는 중부지역의 소도시에는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샘 월튼은 1960~70년대에 매우 빠른 속도로 월마트 체인을 확장하면서 대형 소매회사로서 본격적으로 체제를 다질 수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경쟁의 우수성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경쟁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최선의 것을 만들어낸다. 상황은 계속 변화하므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최선의 방식을 찾아 변화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지게 되고, 결국 망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효율과 생산성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이 생기기 이전 잡화점 시절 판매가는 도매가격에다 35~40%를 더하는 수준이었는데, 월마트는 이 마크업을 22%로 떨어뜨렸다.  소매점 업계는 일반적으로 매출의 6%이상을 운영경비로 지출했는데, 월마트는 이를 2~3%로 낮추었다. 이렇게 향상된 효율성은 순전히 경쟁 덕분에 만들어 질 수 있었다.

그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월마트가 입점하는 도시에서 기존의 소매 점포들이 문을 닫는 현상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고객의 이익에 최고로 기여하는 점포는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점포는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한다. 대형 할인점이 제공할 수 없는 전문 서비스나 특화된 상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아니라면 월마트와의 경쟁에 패하여 사라지는 것이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 월마트 덕분에 지역 주민들은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다양한 구색을 갖춘 상점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싸게 많이 살 수 있게 되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 월마트는 지역에 입점하면서 그 지역의 사람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하였는데, 미국 전체적으로 백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였다. 지역의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상점이 문닫는 대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고용을 창출한 것이다.

월마트는 경쟁 업체와 비교하여 철저하게 운영비를 절약함으로서 가장 싼 가격을 제공할 수 있었다. 월마트 종원원의 보수가 동종 업체와 비교하여 결코 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마트는 종업원에게 점포의 경영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였으며, 종업원 주식 참여제도나 이익 분배제도를 통해 회사에 대한 참여와 애사심을 높이려 했다. 샘월튼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점포의 종업원들의 의견에 항시 귀기울이고 현장의 건의와 문제에 성실하게 대응함으로서 노사가 소원해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샘 월튼이, 경쟁을 통한 향상을 얼마나 신봉하고, 현장과 소통하는데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감동하게 된다. 비록 그는 경쟁자를 철저히 짓밟아버리고, 성과를 올리도록 종업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냉혹한 경영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을 거치면서, 다른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소매점 왕국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생이라는 명목으로 대형 점포의 진출을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한국의 유통업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대형 점포가 없는 지역에서 지역 주민은 낮은 품질의 제품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여야 함으로 소비자의 삶의 질은 그만큼 낮을 수 밖에 없다.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종업원으로 바꾸는 과정을 언제까지고 회피한다면, 결코 풍요로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2022. 1. 10. 13:19

강준만. 2010. 세계문화전쟁: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인물과 사상사. 384쪽.

저자는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미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획득하는 원인을 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대표적인 분야를 차례로 검토한다. MTV, 미국 드라마, 애플의 디지털 기기, 구글, 위키피디아, SNS, CNN, 국가브랜드,  문화 민족주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한류 등의 주제를 장을 바꾸어 차례로 검토한다.

문화는 하드파워에 뒷받침을 받는 소프트 파워이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과 연관된다. 근래에 한류가 아시아 및 개발도상국에서 뜨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국제적 확산에는 부정과 긍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하는 측면과 함께, 문화적 보편성, 엔터네인먼트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대중문화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되며, 국제적 확산 역시 자본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 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문화의 획일화 경향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시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에. 

이 책은 인용문을 계속 조합하면서 자신의 말을 간간히 끼워넣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그의 다른 책에 비교하여 논의의 촛점이 뚜렷하며 깊이 있는 논의를 한다. 자신의 말로 일관되게 쓴 책보다 잡다한 인용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독자에게 힘들기는 하지만. 

 

2022. 1. 8. 14:18

강준만. 2013. 대중문화의 겉과 속. 전면 개정판. 인물과 사상사. 454쪽.

저자는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대중문화의 이론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대중문화 이론 논쟁, 스타 시스템, TV, 영화, 세계화, 대중가요, 광고, 기술과 미디어, 인터넷, 언론, 등이 다루어진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핵심적 의문을 제기하고, 이러한 의문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나열하면서 중간 중간에 자신의 견해를 짜집기해 끼워 넣는다.

대중문화에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다수의 욕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나, 서구의 고전적 가치에 반한다는 면에서 부정적이다. 대중문화는 자본의 이익추구에 기여하면서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대중의 편안함과 호기심 충족에 기여하는 대중문화는 대중의 삶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중의 삶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대중문화는 지루하거나 골치아픈 문제를 피하도록 도와준다. 긍정이건 부정이건, 대다수의 현대인은 거의 전적으로 대중문화에 휘감겨 산다.

직접적인 인용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기 때문에, 분석적인 깊이와 글의 호흡이 얕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생산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생각의 재료를 모아놓은 책이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재료를 소화해서 자신의 말로 일관되게 풀어놓았다면, 훨씬 읽기 쉽고 설득력이 있는 글이 됬었을텐데 하고 아쉬웠다.

2022. 1. 6. 17:02

Joseph Nye, Jr. 2011. The Future of Power. Public Affair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hard power v. soft power 논의를 종합 정리하고,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진단한다. 

power는 분야에 따라 구분되어야 한다. 안보 분야에서 군사력이 power의 핵심이지만,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의 분야에서는 별도의 power 가 존재한다. power 는 상대가 누구냐에 좌우된다. 절대적인 수준이기보다는 상대와 비교해 나은 정도가 power이다. power 는 얼마나 자원을 많이 보유하는가 하는 측면과 함께, 이러한 자원을 실제 행위로 어떻게 전환하는가 하는 측면을 포함한다. power 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직접적으로 강압하는 측면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젠다를 설정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상대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유인되도록 하는 간접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상대가 나에게 유인되는 문화적인 힘, 소프트 파워는 하드 파워를 전제로 한다.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가 잘 결합된 형태를 스마트 파워 smart power 라고 정의하면서, 소프트 파워가 함께 갈 때 하드 파워도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21세기에 들어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power 의 원천은 확산되고 있다. 정보에 접하고, 정보를 생산하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과거와 같이 정보를 독점하는데에서 나오는 힘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면서 일시적으로 세계에서 미국은 독보적 지위에 올라섰지만, 이후 BRIC, 특히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이 세계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줄어들었다. 미국은 과거와 같이 세계위에(over) 지배하기보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with) 지도적 역할을 하는 위치에 머물게 되었다. 미국은 군사력 분야에서는 절대적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에서는 그에 못미치며, 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에서는 파워가 약하다. 

세계에서 현재 미국이 차지하는 지배적 지위(hegemony)가 앞으로 중국으로 이전할 것인가, 혹은 세계에서 미국의 힘이 쇠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부정적으로 답한다. 미국의 지위는 앞으로도 한동안, 적어도 21세기 전반부에는 쇠퇴하거나 중국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로, 미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고, 미국의 경제는 생산성 향상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미국의 대학은 매우 우수하며, 미국의 대중문화는 세계를 지배하며, 미국이 추종하는 가치, 예컨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은 여전히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대체할 대안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배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세계인에게 공공재(public goods)를 공급하는 역할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 평화, 자유 무역, 항행의 자유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에 영국이 공급하던 공공재이며, 세계인은 이를 이용하면서 영국의 지배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과거와 차이점이라면,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즉 세계의 빈곤퇴치에 기여하는 것을 미국의 역할에 추가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세계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국제무대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입다물고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명한 국제정치 학자로서 정부의 고위 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이 배어 있어, 저널리즘의 논의와 달리, 깊이와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다만 이 책이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 쓰였어도 미국의 미래를 낙관했을까는 의문이다. 대체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트럼프 이후 미국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낙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2. 1. 1. 10:44

John Baylis, Steve Smith, Patricia Owens. 2020. The Golbalization of World Politic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8th ed. Oxford. 529 page.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화와 국제관계에 촛점을 맞춘 교과서이다.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학문분야의 주요 이론을 소개하며, 국제관계 분야에서 쟁점 주제들을 개괄적으로 검토한다. 이삽십명의 저자가 각자 장을 나누어 쓴 것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 글의 질에 차이가 있다.

1990년에 냉전이 끝난 이후 국제관계는 과거에 현실주의(Re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지배하던 분야에서 다양화되었다. 이제 국제관계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 초국가적 다자 기구나 국제적 비영리단체와 같은 새로운 행위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생존과 안보가 유일한 기준이었던 것에서 인간의 기본권이나 복리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각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지 않지만, 최근까지의 상황을 반영하여 국제사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정치경제적 시각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석하는 글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 글에서는 저자의 주제에 대한 통찰력이 보이지만 또 다른 글들은 피상적이고 산만한 서술을 하고 있다. 좋은 글들을 선별한다면 괜찮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2021. 12. 22. 16:57

Hedley Bull. 2012(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 4th ed. Palgrave. 308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제 정치와 "국제 질서"(international order)의 성격을 규명한다. 국제정치란 국가들 사이의 관계이다. 국제관계에는 국가간에 폭력을 통제하는 단일한 중앙 기구가 없기 때문에, 한 영토와 국민에 대하여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인 국가 내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질서가 유지된다. 국가들 사이에는 상호관계로 엮여진 국가들의 체제(states system)가 존재한다. 국가들의 체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것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별개이며, 현실에서는 두개의 가치가 상충된다. 국가들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정의롭지 않으며, 국제정치는 정의를 기준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에는 국가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범이 있다. 그러나 이 규범은 법과는 달리 정치적인 것으로, 이를 위반해도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이 규범은 국가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건들을 통해 뒷받침되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국제정치에서 폭력 사용을 가급적 꺼리는 규범이 존재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해 폭력 사용이 용인되기도 한다. 국가들은 가급적 국제적 규범을 지키려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규범을 위반하거나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국가들 간에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이다. 상황이 변화하여 힘의 균형이 깨지면 새로운 연합이나 분열, 전쟁 등을 통해 힘의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국가들 사이에 전쟁은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강대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크다. 국제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 혹은 국가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한다. 냉전시절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폭력 행사를 자제하였으며, 세계의 구석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만들어 진 것이며, 그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국제질서에서 중소국가의 견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국제질서가 서구의 선진국에 유리하도록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 분배를 용인하므로, 제삼세계 국가들은 정의가 바로세워지도록 바꾸는데 관심이 크다. 

핵무기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국가간 폭력이 발생했을 때 폭력 행위의 대상은 물론 폭력 행위를 시작한 당사자까지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다. 핵무기는 폭력의 발생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deterrance)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핵무기가 확산되면 폭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동원하는 비합리적 폭력 사용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핵전쟁이 두려운만큼 핵무기 사용을 상호간 자제하겠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여 전통적 무기를 사용하여 제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국가들의 체제에서 국가들 사이에 종종 폭력이 행사되고, 국제정치가 정의롭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전세계를 관장하는 권력의 중앙집중, 지역단위의 결합체 형성, 국가이외에 다른 행위자, 예컨대 다국적 기업, 국제단체, 등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체제, 등은 현실적이지 않거나 각자 나름의 한계를 안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들의 체제는 20세기 이전에 비해 20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서로 간에 규범을 지키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심의 현재의 국제체제는 질서를 확보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국제 정치 세계에서 질서, 법, 폭력, 갈등, 등의 개념을 국내 정치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와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라고 단언한다.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질서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충돌한다는 지적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번득인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져서 냉전 종식 이후의 상황과 맞지 않는 지적이 곳곳에 있다. 이 책의 또다른 단점은 문장이 복잡하여, 마치 법률 문구를 읽는 느낌이다. 논리적으로는 정치하지만, 독자에게 친절하게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2021. 12. 12. 19:54

Mel Greaves. 2000. Cancer: the evolutionary legacy. Oxford University Press. 266 pages.

저자는 세포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암의 생성 기전에서 부터, 다양한 종류의 암의 특성, 암의 예방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암과 관련해 밝혀진 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한다.

암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해왔으며, 동물에게서도 종종 발견된다. 암은 세포가 증식할 때 유전자 복제의 오류, 즉 돌연변이의 산물이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유전자 복제의 오류를 탐지하고 잘못된 유전자를 가진 세포를 죽이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면역체계를 속이면서 증식을 계속한다. 우리의 몸의 정상적인 세포는 일정 회수의 복제를 거듭하면 사멸하도록 되어 있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자동 사멸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암세포는 면역 체계의 감시에서 벗어나 무한히 증식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신체 기관은 세포가 증식을 계속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기때문에, 암세포는 어느 정도 증식하면 특정 기관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여 증식을 계속한다.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오류는 자주 발생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오류는 세포 생성의 초기 단계에 사멸하거나, 설사 존속한다고 해도 암세포로 발전하지 않는다. 양성 종양의 대부분은 암세포로 발전하지 않는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 몸의 외부로 부터 가해지기도 한다. 또한 특정 암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에게서 특정 암의 발병율이 높다.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 몸의 내부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대표적 예는 여성의 생식 기능과 연관된 스트레스이다. 여성은 매달 월경을 하면서 성 호르몬의 홍수를 경험한다. 여성의 몸이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유방, 자궁, 난소에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여성에게서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이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 암도 비슷한 이유로 자주 발생한다. 우리 몸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대표적 예는 흡연으로 인한 타르에 폐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폐암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외 우리 몸에서 외부 환경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암이 자주 발생한다. 피부암, 식도암, 위암, 직장암 등이 예이다. 외부의 독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암 자체는 병균에 의해 전염되지는 않지만, 병균이 우리 몸을 공격하면서 가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성병이 생식기 암의 발생 가능성을, 헬리코박터 균이 위암의 발생을, 헤파티티스 균이 간암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가해져 암세포가 생성되었다고 해도, 이것이 증식하여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보통 수십년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암의 대부분은 생식 기능이 종식된 시점, 즉 여성의 경우 폐경 이후, 남성의 경우에도 50대에 주로 나타난다. 거꾸로 말하면, 중년 이후에 주로 발병하는 암의 시초는 수십년 전 젊은 시절에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만들어진 암세포에서 부터 시작된다. 만일 암 증상이 생식 기능이 종식되기 이전에 발현된다면, 그러한 유전자는 후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암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하여 반드시 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이 커지면 암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스트레스에 노출된 모든 사람에게서 암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일생 담배를 즐긴 사람 중에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암에 걸린 사람보다 더 많다. 스트레스에 노출된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악성 암세포로 발전할 것인가 여부는 확률적 문제이다.

암이 우리 몸의 세포 복제의 오류에서 기인한다면 암 발생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암을 완전히 예방하거나 완전히 치료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의 발생을 줄이려면 스트레스 요인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담배를 피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하고, 등으로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면 암 발생 가능성은 감소한다.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양성 종양을 조기에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도 암을 예방하는 길이다.

암에 걸리면, 수술로 암 부위를 제거하고, 방사선을 쬐어 암세포를 태워 버리고, 화학요법으로 독성을 가하여 암세포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모두 한계가 있다. 암 부위를 제거한다고 해도 암 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방사선 치료나 화학 요법은 암세포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정상세포도 죽여버리는 무자비한 방법인데, 방사선이나 독소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가 출현하며,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조기 발견과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 책에서 암세포의 발생 기전을 생물학적으로 엄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전반적으로 암에 대해 이해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