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n Karlan and Jacob Appel. 2011. More than good intentions: Improving the ways the world's poor borrow, save, farm, learn, and stay healthy. Plume Books. 276 pages.
저자는 예일대의 경제학자와 현장 활동가로, 이 책은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효과적 방법을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책의 절반은 소액대출운동 microfinance에 관해 논의하며, 나머지는 저축, 농사, 교육, 건강의 분야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효과적 개입 방법인지 검토한다.
전세계의 개발도상국에 보급된 소액대출 프로그램은 명성은 높지만, 이 프로그램이 가난을 퇴치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별로 검증되지 않았다. 저자가 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 '무작위 통제 실험' 방식을 적용하여 검증한 결과, 소액대출 프로그램은 가난을 퇴치하는데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소액대출을 받은 돈을 사업자금에 보태서 사업에 성공함으로서 빈곤에서 탈출한다는 이상형은 실제 소액대출을 받는 다수의 사람들의 능력이나 적성과 맞지 않는다. 선진국 사람들 중에도 사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개발도상국 사람들 중에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사업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생활비나 기타 잡다한 지출에 돈을 써버리고 만다.
집단적인 연대 책임을 부과함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신용 결핍을 보완한다는 소액대출 프로그램의 원리 또한 현실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사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소질이 없는 사람의 채무까지 연대해서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사업 능력있는 사람의 능력 발휘를 중도에 차단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집단적으로 연대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개인에게 자금을 빌려주었을 때 사업 소질이 있는 사람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대출보다 더 효과적 방법은 저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저축을 하고 싶어도 돈을 맡아줄 금융기관이 없고, 돈을 모으는 도중에 지출의 유혹이 수시로 발생하기에 저축을 지속하기 어렵다. 자발적으로 목표 금액을 설정하고 그 목표에 달성할 때까지 중도 인출을 허용하지 않는 저축 상품을 제시하였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호응하였다. 그들도 저축할 욕구가 있지만 적절한 수단이 없어서 저축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농사에 비료를 많이 이용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가을에 농작물을 거두어서 수중에 돈이 있을 때 비료 쿠폰을 구입하게 하여, 이 쿠폰을 다음 해 농사에 비료가 필요한 시기에 비료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농법이나 개량 종자를 보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농촌 사람들 중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 성공을 거두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례를 본받아 따라 오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공립 학교는 등록금이 무료임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용이 많이 들고, 교육의 질이 낮아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인도에 공립학교의 교사는 결석하는 날이 많으며 교실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인도의 부모들은 비싼 돈을 들여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교사의 출석과 보수를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교사의 출석율을 높일 수 있으나 부실한 수업을 잘 하도록 만들기는 어렵다. 멕시코에서는 자녀의 등교율에 비례해 부모에게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었다. 케냐에서는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에게 별도의 개인교습을 추가하였을 때 학업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기생충에 감염된 사례가 많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생충 약을 먹도록 하여 기생충을 없앴을 때 아이들의 학교 등교율이 높아지고 건강 수준이 나아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질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먹는 물에 소금물 용액을 타면 이질균을 죽일 수 있는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소금물 용액을 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먹는 물을 얻는 장소 바로 옆에 소금물 용액을 무료로 배포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소녀들이 성인 남성과 성관계를 맺음으로서 HIV 등의 성병에 걸리고 어린 나이에 임신하는 것을 줄이기 위하여 그들에게 건전한 성관계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성관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위험한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남성의 연령대에 따라 성병에 걸린 빈도에 큰 차이가 있음을 그들이 알게 함으로서 그들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안전한 대상을 찾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책은 선진국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개입하는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이 효과가 있고 어떤 것이 효과가 없는지 하는 의문에 답한다. RCT 방식을 적용하여 개별 프로그램의 효과성 여부를 과학적으로 검증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러한 외적 개입으로서 개인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과연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빈곤으로 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행동경제학의 연구 주제로는 의미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가난을 퇴치한 것은 이런 사소한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의 빈곤은 크게 줄었는데,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 특히 중국의 비약적 성장이 빈곤 축소에 큰 동력이었다. 개발도상국의 노동집약산업에서 저임금으로 생산한 물품을 선진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함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돈이 쥐여지게 된 것이 대규모 빈곤 퇴치의 열쇄였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게으르다거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난했던 것이다. 세계화에 따라 국제분업체계가 확대되면서 개발도상국에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 근래에 가난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소액대출운동이 그렇게 유명세를 탔지만 막상 이것이 가난을 퇴치하는 데 기여한 역할은 미약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선진국 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실험 동물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원조와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는 아프리카 이남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가 인도와 아프리카 이남의 가난한 나라에 주로 한정되고, 막상 빈곤 퇴치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보인 중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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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estous Juma. 2016. Innovation and its enemies: Why people resist new technologies. Oxford University Press. 316 pages.
저자는 기술 확산과 국제개발을 연구한 학자로서, 이 책은 왜 혁신적 기술이 사회의 반대에 부딛치게 되는지, 그러한 반대를 극복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반대를 이긴 다양한 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커피, 활자 인쇄술, 마가린, 농업 기계화, 교류 전기, 기계식 냉장고, 녹음 기술, 유전자 조작 작물, 유전자 변형 연어, 등의 사례가 각각 별도의 장으로 논의된다.
커피는 16세기에 이디오피아에서 중동을 거쳐 17세기에 유럽에 전파되었다. 아랍에서는 사람들이 커피 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위정자들이 위협을 느껴 커피 하우스를 탄압하였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 전통 음료인 포도주와 맥주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에 위협을 느껴 커피를 반대하였다. 이들이 커피를 반대하면서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건강, 문화적 정체성, 국가 안보의 위협 등이었지만, 이들이 말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였다.
활자 인쇄술은 중국에서 아랍 세계로 일찍이 전파되었지만 아랍의 위정자, 특히 성직자들은 활자 인쇄술로 코란을 인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활자 인쇄술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어 성경이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종교혁명과 과학발전으로 이어져 유럽이 앞서나가는 것에 위협을 느낀 다음에야 아랍의 위정자들은 활자 인쇄술을 적용하여 일반 서적을 인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마가린은 1870년경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었지만, 낙농산업의 격렬한 반대에 부딛쳐 보급이 늦었다. 낙농업자들은 마가린을 '가짜 버터'라고 지칭하고 건강에 안좋은 열등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리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여 마가린의 보급을 막았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중 물자 부족이 심각해졌을 마가린의 보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마가린은 버터보다 열등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낙농국가들은 다양한 규제를 동원하여 마가린의 생산과 수입을 막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농업은 대부분 사람, 말, 당나귀의 힘에 의존하였다. 트랙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고장이 잦고 효율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을 이용하는 것보다 생산성이 낮았다. 말이나 당나귀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트랙터의 도입에 큰 위협을 느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트랙터가 궁극적으로 동물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므로, 트랙터의 도입을 전적으로 반대하기보다, 말과 당나귀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농사의 문화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트랙터와 동물을 병행하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트랙터의 기술이 발전하고 효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결국 농사에 동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대신 여가의 목적으로 말을 이용하는 산업이 나타났다.
19세기 중반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 에디슨은 직류전기를 사용한 전등을 보급하여 큰 명성을 거두었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가 발명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보다 더 효율적임이 밝혀지면서, 에디슨은 자신이 투자한 직류전기 중심의 체제가 앞으로 교류전기로 대체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에디슨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회수될 때까지 교류 전기가 보급되는 것을 저지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교류전기를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와 연관시켜, 교류전기는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류냐 직류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전기 안전의 관건임이 비교실험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전기를 활용한 이기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를 대체하였다.
20세기 초에 기계식 전기 냉장고가 처음 출현하였을 때 이전의 얼음 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해 두었다 여름에 내다 파는 얼음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계식 냉장고의 냉매로 쓰는 암모니아 가스가 쉽게 폭발되는 성질때문에 위험하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한동안 기계식 냉장고의 보급을 막았다. 그러나 기계식 냉장고의 기술이 향상되어 폭발 사건이 줄어들고, 소형화되어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가축을 도축하는 곳과 정육을 소비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제가 없고 야채 또한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냉장 운송하여 소비자 가격을 크게 낮추게 되면서 기계식 냉장고는 급속히 보급되었다.
19세기 말 소리를 녹음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과거 음악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녹음이 가능하지 않던 시절에 사람들은 연주회에 가거나 행사장에 악사를 초청하여 음악을 즐기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레코드가 보급되면서 생음악에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다. 레코드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자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레코드는 음악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 과거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중심이고 가수의 노래는 부수적인 것이었는데, 레코드가 보급되면서 가수의 노래가 전면에 나서고 악기 연주는 배경으로 물러났다. 레코드의 보급 덕분에 스타 가수가 출현하게 되었다. 음악 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협회를 조직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했으나 대부분은 실직을 하였다. 이후 음악 종사자 조직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음악의 저작권이 설정되고, 방송국에서 음악을 틀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등으로 음악 저작권에 보상을 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1985년 벨기에에서 자연의 박테리아에 존재하는 해충을 죽이는 독소 유전자(Bt)를 식물의 유전자에 이식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 유전자 조작 기술을 옥수수, 목화, 감자, 쌀, 콩, 알파파 등에 적용하여 해충의 피해를 크게 줄이며 농업 생산성을 혁기적으로 높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개발될 당시 환경 위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져 있던 때라 환경운동 단체의 반대가 심했다. 과학적 실험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씨앗으로 자라난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으나, 반대론자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험이 앞으로 새로이 밝혀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반대하였다.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쪽에서 유전자 조작 식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식물을 개발한 쪽에서 이것이 위험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 작물을 괴물 식품(Frankenstein food)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면서 환경 운동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한 이유는 그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 식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때문인데, 이는 식품의 위해성을 판정할 때 생산과정이 아니라 생산된 결과물에 대해 평가를 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한 숨겨진 이유는 이 기술을 개발한 대기업, 특히 몬산토가 이 식물의 재배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보유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물의 재배가 허용되어 농업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으나, 유럽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금지했고 미국으로부터 유전자 조작 식물로 만들어진 식품의 수입도 막았다. 표면적으로는 인체에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숨은 이유는 유럽이 미국 대기업의 기술독점에 종속되는 것을 염려해서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유전자 조작 식물의 재배를 금지했는데, 이는 아프리카가 유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 WTO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부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사람이 직접 섭취하지 않는 목화나 목초에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으나, 곡물의 재배에서는 미국 이외에 이를 허용한 국가가 많지 않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매사츠세츠주의 한 회사에서 연어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사료를 적게 먹으면서 절반의 생육기간에 두 배 이상 크기로 키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이 식품의 위해성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였으며 현재까지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식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는 식물을 변형시키는 문제인 반면, 연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동물을 변형시키는 문제임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위험도는 훨씬 크다. 유전자 조작 기술의 경우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와는 별도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에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혁신적인 기술에 반발하는 것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많은 경우 경제적 이유가 기술 도입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인데, 이러한 심층적 이유를 무시하고 단순히 설득을 하여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은 시간만 허비할 뿐 성공하기 어렵다. 기술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지, 그들을 어떻게 다른 일자리로 옮아가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 노력이 함께 할 때에만 '창조적 파괴' creative distruction 기술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책은 주제는 흥미로우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문체가 매우 건조하고 형식적이어서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마치 보고서를 읽는 듯하며, 정책 교훈을 도출하는 부분에서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특별히 어려운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읽어내려가는게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혁신적 기술을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가장 쟁점적인 대상인 핵 기술이 논의에서 완전히 빠진 것이 아쉽다.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논의는 저자의 전문 분야라 그런지 내용이 알차고 저자의 깊은 이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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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Macfarlane. 2014. Invention of the Modern World. The Fortnightly Review. 322 pages.
저자는 캠브리지대학의 인류학 교수이다. 그는 영국이 산업화에 착수하기 훨씬 이전인 12세기 경부터 근대적 (modern) 특성을 띠었는데, 중세 후반이래 영국의 예외적으로 근대적 특성 덕분에 세계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국이 오래 전부터 유럽의 대륙국가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매우 다른 특성을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를 자주 비교한다.
근대적 특성의 핵심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가 별도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이것이 모두 뭉뚱그려져 있었다. 과거에는 가족/친족과 정치, 가족과 경제, 정치와 종교, 종교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전통사회에서는 종교의 영향이 세속의 모든 일에 미쳤으며, 가족 관계가 모든 일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었던 반면, 영국은 일찍부터 영역간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영국에서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가족에 의존하는 경우가 없으며, 어려울 때에도 핵가족을 넘어서서 친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영국은 상업의 나라라 할 정도로 상행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중시했다. 유럽 대륙이나 다른 전통사회와 달리 영국인들은 돈 버는 것을 천시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 풍족하게 살면서 품위를 유지하는 중상류층을 '신사' gentleman 라고 존중하는 태도가 근대 이전부터 영국을 지배했다. 상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지주가 되거나 정치에 진출하기도 하는데, 상업 자본가와 지주를 사회적으로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영국은 상공업을 권장했기에 일찍부터 사람들의 물질적 생활 수준이 유럽 대륙보다 훨씬 높았다. 유럽 대륙국가들보다 임금이 훨씬 높았으므로 기계 장치를 많이 사용했다. 영국은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으며 어느 다른 나라보다 훨씬 일찍 부터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많이 사용했다. 풍부한 석탄 자원이 산업혁명을 촉진시키는 배경이기는 하지만, 자원 매장 그 자체가 산업혁명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독일이나 중국 또한 풍부한 석탄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영국만큼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용을 우선시하고 물질적인 풍요에 높은 가치를 두는 영국인의 가치관이 석탄을 많이 쓰도록 유도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실용보다 이념을 중시하고 물질적 풍요를 경시하는 가치관 때문에 유용한 자원이 있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물질적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영국은 태어나면서 법적으로 구분되는 지위를 부여받는 신분 제도가 뿌리 내리지 않았다. 귀족은 사회관습적인 특권을 누렸지만, 법적으로 구분되는 특권을 부여받지는 않았다. 귀족과 평민 모두 동등한 법에 구속되며, 귀족이라고 평민과 구별되는 별도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았다. 성공한 상공인은 종종 귀족의 작위를 부여받았으며, 상공인(yeoman & merchant)과 귀족간의 사회이동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았다. 이는 유럽 대륙을 포함한 다른 전통사회에서 귀족, 승려, 평민, 사농공상 등 엄격한 신분 구별이 보편적이었던 카스트 사회와 구별된다. 영국은 다른 사회범주, 예컨대 남자와 여자, 혹은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 권리의 차이가 없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개인주의란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개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두는 세계관이다. 모든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이 집단 속에 매몰되어 있는 집단주의가 지배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은 집단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며, 일의 책임도 집단이 공동으로 진다. 반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일은 각자가 결정하며, 일의 결과도 개인이 책임진다. 영국에서 일찍부터 개인주의가 발달하게 된 데에는, 독특한 가족제도에서 원인을 찾을 수있다. 영국에서는 귀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0살이 넘으면 부모 곁를 떠나 남의 집에 머물며 일을 배우거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살 길을 찾는 관행은 장자상속제 때문에 더욱 심했다. 차남 이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부모를 떠나 자신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영국인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남녀 관계도 부모의 간섭 없이 당사자간의 감정과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연애 결혼이 보편적이었으며, 자신이 만든 가족 구성원만으로 삶을 꾸리는 핵가족이 지배했다.
영국인은 자식의 노동에 가족이 의존하는 대신 외부인을 고용하는 관행이 지배했다. 이는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남의 집에 머물면서 일을 배우는 관행과 부합한다. 영국인은 자신의 앞가림을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기에 남녀 모두 결혼을 늦게 했다. 자식이 가족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영국인은 일찍부터 산아 제한을 하며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았다. 영국인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유럽 대륙 나라들보다 높을 수 있었다. 영국은 유럽 대륙보다 일찍 저출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왕, 귀족, 상공인간 견제와 균형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유럽 대륙이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왕은 국민에 대해 전제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귀족 또한 왕과 독립된 독자적 권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봉건 영주가 자신의 성의 주민에 대해 절대적 권한을 가졌던 봉건제도는 프랑스나 유럽 대륙 국가에 해당될 뿐 영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17세기에 명예혁명으로 왕권이 제한된 것이나, 18세기에 미국에서 입헌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이러한 오랜 전통에 서 나온 것이다.
영국인은 일찍부터 무수히 많은 자발적 결사체를 조직했다. 취미 모임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다양한 일에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association)을 결성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자연인과 유사한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가진 신탁 기구(trust)를 만드는 전통과 연결된다. 유한 책임을 지는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자원과 결정을 위임하는 신탁기구인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발전에 매우 효과적인 사회적 발명품이다.
영국은 기독교 국가이지만 기독교의 세력이 유럽 대륙만큼 세지 않았다. 교회가 별도의 법체계와 재판소를 가지고 세속 권력과 대립하는 체제는 유럽 대륙의 카톨릭 국가에서는 보편적이었으나, 영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인은 세속적 실용주의를 신봉했기에, 사람들이 신학적 교리에 죽고사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영국인은 절대적 진리보다는 얼마나 삶에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실용적 진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실용적 진리는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상이기에, 영국에서 과학과 기술이 유럽 대륙보다 먼저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왜 영국이 유럽 대륙과 다른 특징을 보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유럽 대륙에는 로마의 지배력이 크게 미쳤으며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그 영향이 지속된 반면, 영국에서는 실질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로마의 영향이 약했다. 대신 영국에는 게르만 민족의 전통적 특성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유럽 대륙과 차이가 나게 되었다. 유럽의 게르만 민족 국가인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영국과 유사한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카톨릭 국가들과 이웃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특성이 많이 희석되어서 점차 영국과 차이가 벌어졌다. 게르만 민족의 전통인 집단 협의 의사결정, 지위 평등, 절대적 신앙을 배격하는 것, 실용주의 등이 영국에서는 사그라들지 않고 지속되었다.
이책에서 설명하는 영국의 강점을 따라가다 보면,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으며, 왜 영국이 세계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이백년 이상 지배하는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은 영국의 강점만 말하는 편향성을 보인다. 이책의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영국 이외에 유럽 대륙의 나라 사람들은 우매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영국이 그렇게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인데, 왜 노예무역을 주도했으며, 왜 아편전쟁을 했으며, 왜 이웃나라 아일랜드를 무자비하게 억압하였으며, 왜 인도를 지배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왜 인종주의가 강하며, 왜 근래에 대중영합주의가 휩쓸면서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유럽연합탈퇴를 감행했는지, 등등 영국의 어두운 측면을 이해할 수없다. 책의 후반부에 영국의 국민성을 설명하는 데에서는 중언부언하는 것이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읽으면서 영국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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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P. Barash. 2018. Through a Glass Brightly: Using Science to see our species as we really are. Oxford University Pres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여 비판하며, 두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동물과 유사하며 또 다른지 진화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2부에서 논의하는 인간과 동물의 비교는 진화생물학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적 능력, 부모와 자식간 갈등, 상대를 속이는 행위, 일부다처 논쟁, 호전적 행위, 이타적 행위, 자유의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간 불일치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면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동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 않음을 밝힌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기술이다. 다른 생물체는 자신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기술을 발달시켰듯이, 인간의 지적 능력 역시 인간의 생존 환경에 맞추어진 생존 기술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생존 환경을 벗어난 논리적, 통계적 추리에서 인간은 매우 서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정도의 문제일뿐, 동물세계에서도 유사한 능력을 흔히 관찰한다.
진화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의 몸은 유전자를 전파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의 절반만을 공유함으로, 유전자 생존의 측면에서 볼 때 부모의 이익과 자식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 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려는, 즉 많은 자식을 얻으려는 부모의 이익과, 각 개인으로서 자식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형제간 갈등이 발생한다. 형제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은 도덕의 문제로 정의하지만, 사실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 서있다.
생물체들간 의사 소통이란, 참가자 각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를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신호를 발하는 사람은 거짓된 신호로 상대를 조작하려 하며, 신호를 받는 사람은 거짓 신호 뒤에 숨은 진실을 해독함으로서 상대에게 조작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사회생활을 많이 하는 동물일수록 기만하고 이를 탐지해내는 무기 경쟁은 고도로 발달했다. 인간은 신호의 진실성을 의심하기보다는 일단 믿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사 소통에서 거짓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런 일부이다.
인간의 조상에게 일부다처제가 자연적 현상이었다. 동물의 암컷과 수컷간 몸 크기의 차이, 행위 방식의 차이를 바탕으로 유추할 때, 인간 역시 일부다처제가 자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짝이 없이 홀로사는 수컷을 많이 만들고, 이들이 잠재적 사회불안과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도덕률로 하여 남녀관계를 규제한다. 그러나 여전히 능력이 많은 남성은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의 생활을 비공식적으로 영위한다. 저자는 자연적 현상이 반드시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닌 대표적인 예로 일부다처제를 든다. 인간은 문화로 자연적 현상을 제어하고 있다. 그렇기에 규범에서 일탈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원시 부족을 연구한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호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집단간 싸움을 벌이는 호전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반드시 적자생존에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가 싸움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보다 많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싸움을 하는 호전성을 띠게 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상대로부터 뺏앗을만한 가치 있는 것을 비축하고 지도자의 지휘하에 조직적으로 싸움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면서부터이다. 원시 수렵채취인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대체로 협동했으며 집단간 평화가 지배했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가 진화론의 이기적 인간 모델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사는데, 자신의 유전자를 일부라도 지닌 친족의 생존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유리한 때에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한다. 이타적 행위를 통하여 집단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높임으로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유전자의 확산에 도움이 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이타적 행위란, 개별 인간의 몸의 측면에서 볼 때는 희생일지 모르지만, 유전자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이기적 행위인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통제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몸 안에는 수백만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 미생물이 우리의 행위와 사고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누가 누구에게 얹혀사는지 불확실 하다. 또한 유전자가 우리의 몸, 우리의 사고작용, 우리의 행위를 조정한다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면서 행위하지 않는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란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인간이 의도하기보다 유전자의 이익을 위하여 저지르는 행위라는 사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박하는 사례가 될 수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매우 서서히 진화를 통해 형성된 반면,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빠른 시일에 급격히 변화해 왔다. 특히 지난 이백년간의 산업화의 결과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매우 멀리 떨어졌다. 이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또 자연환경에 대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인간은 그러한 파괴력을 생물학적으로 실감하지 못한다. 수백만명을 죽이는 핵무기 공격 행위가 한명의 상대를 물리적으로 죽이는 경험보다 실감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 경험이 녹아 있는 글이다.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문학 작품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는 결코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설명의 명확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인이 좋아서 다양한 시의 일부를 수시로 인용할지 몰라도, 과학적 주제를 접하는 독자는 주제의 정확한 이해에 더 관심이 있지, 저자의 시적 감흥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 제 1부에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문학 작품을 길게길게 인용하면서 과학적 사실을 군데군데 언급하는데,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러한 설명은 불필요하게 장황해 보인다.
글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 책을 읽는 내내 고문 받는 느낌이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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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 Harper. 2016. How Population change will transform our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177 pages.
저자는 노년학자이다. 이 책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평이하게 설명한 책이다. 선진국과 아프리카의 극빈국은 완전히 상이한 인구 구조를 가짐으로 둘을 나누어 번갈아 설명한다. 서구의 인구변천의 역사,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 극빈국의 고출산과 인구폭증의 문제, 개발도상국의 청소년층 증가와 관련된 논의가 전개된다.
선진국의 인구노령화와 관련해서, 앞으로 80대 이상 고연령층 인구의 증가가 새로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의료비는 65세 이상 고령층 모두에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매우 높은 연령, 특히 죽음에 가까운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현재 출생한 아이의 기대수명이 100세를 넘는 선진국들이 몇몇 등장하였다.
인구고령화와 관련해 현재 우려하는 사항은 맞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사회제도는 인구가 고령화되면 건강수준이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기때문에 젊은 인구가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전제에 입각해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고령이 되는 사람과 맞지 않는다. 앞으로 고령이 되는 사람은 상당한 수준의 인적자산을 보유하며,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는 건강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고령이 되어서도 생존하는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고령이 되어도 상당기간 비교적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일을 계속할 것이다. 고령인구가 고령인구를 부양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줄어드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부양하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여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제도가 점진적으로 나타날(evlove) 것이다.
의료 문제에서도,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병이 난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고령인구가 늘면서 돌보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 체제로 바뀔 것이다.
아시아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일시적으로 늘어서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현상, 즉 "인구학적 이점 demographic dividend" 이라고 하는 현상이 앞으로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재현될지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젊은인구가 많은 것만 아니라 이들이 생산활동에 투입되도록 사회제도와 경제상황이 받추어 주어야만, 인구학적 이점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인구증가율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면서, 일시적으로 생산활동인구가 많은 대신 유소년 인구가 적은 연령구조가 나타났지만,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생산활동인구가 많지만 그못지 않게 유소년 인구도 많기 때문에, 생산활동인구의 에너지가 유소년 인구를 부양하는데 소모되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20세기 후반에 인구증가율이 꾸준히 감소하던 추세가 21세기에 들어 중단되는 현상이 관찰되는 데, 이것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사회문화적 특성에 기인한 구조적 현상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아프리카의 극빈국은 여전히 매우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젊은 여성들이 일찍부터 출산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와 빨리 관계를 맺는 것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편이다. 그들은 아이를 많이 나아 자신의 생계와 노후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 젊은 여성을 교육시키는 것이 조기 결혼 조기 출산의 굴레에서 벗어나, 출산율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열악한 인적자본과, 열악한 사회간접자본과, 극심한 부패 때문에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없고, 투자가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교육 받을 동기가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세계 인구 증가의 대부분이 이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나올 것이기에, 이들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별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가지 않은 평이한 책이다. 인구학 교과서를 옮겨 놓은 것과 같이 숫자와 도표들을 나열하며, 반복이 많으며, 논문형식으로 글을 써서 읽는 맛이 없다. 고민이 없이, 성의 없이 만든 책이다. 내가 써도 이보다는 더 재미있게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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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9. 작성.
나는 한때 미국에서 살았고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로스앤젤레스(LA)는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그곳에 사는 가까운 친지를 방문하여 수일간 머물렀다. 오래전 이민 간 친지를 머나먼 이국 타향에서 만났을 때 반갑고 울컥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 함께 살며 나를 무척 귀여워해 줬다. LA 코리아타운을 돌아다니며 허름한 건물에 한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의 거리와 흡사함에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을 읽었다.
또 다른 미국의 중심,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LA 행정구역상의 인구는 사백만이 채 못 되지만, LA 생활권까지 포함하면 천삼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 도시이다. LA는 도시가 주변으로 무계획적으로 팽창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도심에 몇 개의 고층빌딩을 제외하고는 낮은 건물들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LA 주변을 감싸고 고속도로가 스파게티처럼 얽혀 있으며 통근시간에 교통 체증이 심하기로 미국에서도 손꼽힌다. 그 덕분에 한때 LA는 대기오염이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도시로 명성이 높았다.
근래에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 밸리가 뜨면서 약간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LA는 서부에서 산업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서부의 중심 도시이다. LA에는 제조업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이 왕성하다.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와 같은 동부의 도시들이 미국 역사의 중심에 있다면, 로스앤젤레스는 그러한 정통적 미국의 정반대를 상징한다. 영국의 식민지에 뿌리를 두고 유럽에서 온 백인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미국의 전통은 LA와 거리가 멀다.
현재 LA에서 백인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도 못 된다. 중남미계 이민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나머지를 아시아계와 흑인이 각각 10%씩 나누어 갖고 있다. 2040년이 되면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LA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소수인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되었다. 사실 LA에 중남미계 이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이 1848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빼앗은 땅이다. 1980년대에 멕시코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멕시코인들은 미국에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넘어와 일하다 일이 뜸해지면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그러다 1980년대에 국경 관리가 엄격해 지면서 한번 미국으로 넘어온 멕시코인들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LA와 같이 국경에 가까운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특이한 발전
동부 사람들이 보기에 로스앤젤레스는 허황한 꿈에 부푼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이다. 1849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미국 동부에서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까지 일확천금을 좇아 모여들었다. LA는 바로 이 금 채굴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고 조달하는 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성장했다. 사실 골드러시 때 금을 채굴하여 돈을 번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대주면서 돈을 번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청바지를 제조하는 리바이스가 대표적 사례이며,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가 골드러시 덕분에 발전했다. 19세기 후반 LA 인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한때 천 개가 넘는 석유 채굴 봉이 있었으며 미국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상당 부분을 LA 유전에서 조달했다. 지금도 LA의 북서쪽 다저 스타디움 근처에서 석유 채굴 펌프가 가동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LA는 20세기 들어 지금까지 세 번의 계기를 통해 크게 변화했다. 처음은 20세기 초반으로 LA가 연중 항시 햇빛이 비치고 따뜻한 기후에 매력을 느낀 동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이다. 1885년에 동부와 LA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 산타페 노선이 완성되면서 이것을 타고 동부 사람들이 LA로 대거 이주하였다. 이들은 그때까지 조그만 항구도시에 불과했던 LA에 부동산 개발 바람을 일으키며 큰돈을 벌었다. 뉴욕에 본부를 두었던 영화산업이 LA로 건너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건설하였으며, LA에서 멀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에 도박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것도 그 무렵이다.
두 번째 발전의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찾아왔다. 미국이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LA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근거지로 크게 성장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산업 시설은 모두 동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여 서해안까지 운반하여 전쟁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기에 LA에 군수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것이다. LA에는 군함과 전투기와 무기를 생산하는 첨단 공장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후 첨단 방위산업이 LA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게 되었다.
세 번째 변화는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면서다. 그 이전까지 서유럽 출신의 이민자만 받던 이민 제한을 폐지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 법이 발효되고 얼마 지나자 매년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1960년대에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을 폐지하고 인종과 무관하게 이민자를 받아들였을 때,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그렇게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970년경에는 제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유럽이 이미 발전하였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의 도시
1970년대이래 멕시코와 인접한 남서부와 서해안 도시에는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들어온 이민자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국 정신의 몰락”, “미국의 정체성의 위기” 등을 들먹이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겼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유럽과의 연결을 중시했으며 대서양 연안의 동부 도시들이 유럽과 연결의 중심에 있었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아시아와 태평양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태평양 연안의 도시들이 새로이 부상한 것이다.
LA는 근래에도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이민자가 계속 유입하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이 도시는 태생적으로 발전에 한계를 안고 있다. 물이 부족한 것이다. LA에서 내륙 쪽으로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산맥이 보이며 그 너머는 막막한 사막이다. 원래 LA를 관통하는 강이 있었지만, 점차 수량이 감소하여 지금은 복개된 하수 하천에 불과하다. LA시는 북동쪽 네바다주 인근으로부터 매우 먼 거리를 잇는 수로관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근래에는 물 사용을 통제하여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태평양 시대의 중심인 LA는 백인이 아닌 중남미와 아시아 이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정치의 가장 기층조직인 지역 교육위원회 위원에서부터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에 이르기까지 선출직에서는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물론 LA에서도 정부와 대기업의 고위직은 여전히 백인이 다수이지만. 뉴욕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교역하는 화물 운송 덕분에 성장했다면, LA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하는 덕분에 성장했다. LA 사람들과 LA 경제의 활력은 아시아에서 온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때 LA 또한 크게 타격을 받았다.
LA도 미국의 일부이므로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92년 LA 폭동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운전자를 백인 경찰 여럿이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이들 백인 경찰이 법정에서 무죄 방면되면서 폭동이 촉발되었다. 이 폭동에서 유독 한국계 이민자의 사업장만 골라서 파괴 약탈당한 것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는 억울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은 백인인데 왜 죄 없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당해야 하냐고. 세상은 그런 것이다. 한국계 이민자와 흑인은 미국 사회에서 둘 다 약자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반면 한국계 이민자와 중남미계는 사이가 좋다. LA 코리아타운에는 한인보다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훨씬 더 많이 살며, 한국계 사업장에는 항시 중남미계 사람들이 일하며, 한국계와 중남미계는 서로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 많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LA의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도 미국인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물론 그들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미국인이지만, 백인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 주류 사회의 움직임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인으로서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LA는 미국의 서부 개척의 신화가 지금도 진행 중인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건너온 이방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미국의 전통과는 단절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곳이다. LA에서는 대를 이으며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LA에서 이민자들이 접하는 환경은 그들의 과거와 너무도 다르다. LA에서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현재의 역경을 이기면 그들의 자녀들이 성공하여 미국의 주류로 살 것이라는 꿈을 꾼다. 미래의 꿈을 꾸며 열심히 매진하는 인생은 어떻든 의미 있지 않은가. 로스앤젤레스에 한인타운을 거닐며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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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1 ~2020.12.31. 총 39권.
1.
Nichlas Epley. 2014. Mindwise: Why we misunderstand what otheres think, believe, feel, and want. Vintage. 188 pages.
2.
Matt Ridley. 2015. The Evolution of Everything: how new ideas emerge. 320pages.
3.
Matt Ridley. 2020. How Innovation works: and why it flourishes in freedom. Harper Collins. 373 pages.
4.
Malcol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346 pages
5.
Warren Bennis and Patricia Ward Biederman. 1997. Organizing Genius: The Secrets of creative collaboration. Basic Books. 218 pages.
6.
Hohn H. Lienhard. 2006. How Invention begins: Echoes of old voices in the rise of new machines. Oxford University Press. 242 pages.
7.
Walter Isaacson. 2014.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Simon & Schuster. 488 pages.
8.
Reed Hastings and Erin Meyer. 2020. No rules rules: Netflix and the culture of reinvention. Pneguin Press. 272 pages.
9.
James C, Scott. 2020(1998).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357 pages.
10.
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11.
Claude S. Fischer. 2014. Lurching toward happiness in America. MIT Press. 129 pages.
12.
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13.
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14.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15.
김봉중. 2006. 카우보이들의 외교사. 푸른역사. 447쪽.
16.
Henry Kissinger. 2014. World Order. Penguin books. 374 pages.
17.
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18.
Jeffry A. Frieden. 2006. Global Capitalism: Its fall and rise in the twentieth century. W.W. Norton. 476 pages.
19.
Claudia Goldin and Lawrence F.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353 pages.
20.
David P.Barash. 2003. The Survival Game: How game theory explains the biology of cooperation and competition. Henry Holt & Co. 277 pages.
21.
Michael Marmot. 2015.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ublishing. 346 pqges.
22.
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23.
Nicholar Christakis and James Fowler. 2009. Connected: How your friend's friends' friends affect everything you feel, think, and do. Little Brown. 305 pages.
24.
Brad Stone. 2013. The Everything Store: Jeff Bezos and the Age of Amazon. Back Bay Books.
25.
Paul Collier. 2007. The Bottom Billion: Why the poorest countries are failing and what can be done about it. Oxford University Press. 195 page.
26.
박홍규, 박지원. 2019.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무리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사이드웨이. 461쪽.
27.
Gerd Gigerenzer. 2014. Risk Savvy: how to make good decisions. Penguin Books. 261 pages.
28.
Steven Johnson. 2014. How We got to now: six innovations that made the modern world. Riverhead Books. 255 pages.
29.
Richard V. Reeves. 2017. Dream Hoarders: How the American upper middle class is leaving everyone else in the dust, why that is a problem, and what to do about it. Brookings Institute Press. 156 pages.
30.
Steven Hill. 2015. Raw Deal: How the uber economy and runaway capitalism are screwing American workers. St. Martin's Press. 262 pages.
31.
Rachel Sherman. 2017. 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7 pages.
32.
David Sloan Wilson. 2007.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Bantam Dell. 349 pages.
33.
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34.
James Surowiecki. 2004. The Wisdom of Crowds. Anchor Books. 282 pages.
35.
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Idea for Sane World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4 pages.
36.
Len Fisher. 2008. Rock, Paper, Scissors: Game theory in everyday life. Basic Books. 199 pages.
37.
W. Brian Arthur. 2009. The Nature of Technology: What it is and How it evolves. Free Press. 216 pages.
38.
Nassim Nicholas Taleb. 2018. Skin in the Game: Hidden asymmetries in daily life. Random House. 236 pages.
39.
Leslie R. Crutchfield. 2018. How Change happens: why some social movements succeed while others don't. Wiley. 18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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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las Epley. 2014. Mindwise: Why we misunderstand what otheres think, believe, feel, and want. Vintage. 188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다. 이 책은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상대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지, 그러면서도 왜 잘 읽는다고 착각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렇다면 상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상대의 생각을 잘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험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부부 사이에도 상대의 생각을 읽는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 기술로 진화했지만, 정확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낮다.
서로 자주 접촉하지 않고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인간성을 덜 인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때 인디언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경우, 흑인 노예의 인간성을 덜 인정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면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가졌거나,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사물에 대해 인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나 이를 유발한 인격적 행위자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행위자를 지목한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의 원인으로 신을 등장시키는 이유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행위하는지는 알지만, 왜 그런 생각과 느낌과 행위를 하게 됬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의식 밖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나 행위의 원인을 자신은 잘 안다고 착각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면, 고쳐야 할 쪽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라고 생각한다. 이를 심리학에서 "순진한 사실주의 naive realism"라 한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타인도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타인의 생각을 잘 못 파악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상대의 행위의 동기를 판단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타인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나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주 접하지 않는, 잘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정관념 stereotype" 을 가지는 것은, 인식의 효율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정관념이란 잘 모르는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효율적인 도구이다. 고정관념은 집단간의 차이를 과장되게 만들지만, 집단간에는 차이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의 많은 부분은, 두 집단간 차이의 방향은 맞지만, 차이나는 정도는 과장되어 있다.
인간의 행위는 행위자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행위를 관찰함으로서 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할 수있다는 주장은 자만이다. 이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만하기 때문도 있지만, 많은 경우 행위자의 감정과 생각이 행위에 그대로 반영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로부터 행위자의 생각을 추출해내는 작업은 매우 어려우며 오류가 많다. 자신의 행위로부터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남의 행위로부터 그의 진실된 생각을 파악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타인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본적으로 겸손해져야 한다. 상대의 입장을 추측함으로서 (put oneself in other's shoes) 상대의 행위의 배경이 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조언은 틀렸다. 왜냐하면 상대의 입장을 추측한다고 하여 상대가 처한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상대의 입장, 상대가 처한 맥락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추측만으로는 절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저자는 상대의 입장을 추측하기보다, 상대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직접 물어보고, 그의 발언을 경청하여 그의 생각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다른 어떤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 사람들은 물어보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거짓없이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더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경우 요청하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서로 접촉하고 대화하면서 공통의 이익을 추출해 내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흥미로운 사례를 인용한다. 어느 인디언 부족은 "말하는 막대 talking stick" 라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회의에서 발언을 하려면 이 말하는 막대를 가져야 하는데, 이 막대를 건너 받아 다음 차례로 말하는 사람은 바로 전에 말한 사람의 발언의 요지를 요약하여 그가 수긍하는 사인을 보낸 후에야 자신의 발언을 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상대의 생각을 잘못 파악해서 발생하는 불상사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과학적 연구결과를 잘 정리하여 적재적소에서 제시함으로서 자신의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쓴다. 통찰력을 주는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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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 Ridley. 2015. The Evolution of Everything: how new ideas emerge. 320pages.
저자는 과학 분야의 대중 저술가이다. 저자는 진화의 원리가 생명체뿐만 아니라 모든 물리적 사회적 현상에 적용될 수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진화의 원리란 내생적 원인에 의해 유발된, 점진적이며, 축적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진화에 반대되는 개념은, 외부의 주체에 의해 계획되고 명령된 변화이다.
우주가 절대자의 의지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혹은 자연의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화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는가는 진화론대 창조론이라는 고전적 논쟁이다.
인간의 도덕률은 신이나 통치자의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반복된 상호작용의 결과물, 즉 밑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언어, 도시, 경제, 기술발전, 자아, 성격, 인구변화, 정부, 종교, 화폐, 인터넷, 등 다양한 사회현상이 모두 점진적으로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전개된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낫다. 많은 시장 참여자의 지혜가 반영된 자유 시장경제는 소수의 계획자의 생각이 반영된 계획경제보다 훨씬 효율적일수밖에 없다. 정부의 개입이 비효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인식은 생리학적 작용의 결과이다. 인간은 행위한 후에,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무의식적으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행위의 원인은 생리적, 물리적 작용이지,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성격과 지능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현상에 대해 이것을 만들어낸 행위자를 찾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잘못된 인식 습관이다. 특정 지도자가 없어도, 특정 발명가가 없어도, 조건이 맞을 때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많은 일이 우연히 전개되지만, 인간은 무언가 분명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 내지 행위자를 찾는다.
위로부터의 명령이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내생적 원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열등하다. 교육에서도 위로부터의 교조적 가르침은 학생들이 서로 도우면서 스스로 생각하여 깨치는 방식에 비해 학습의 효과가 적다. 정부가 관료적으로 규제하는 공립학교보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사립학교가 훨씬 교육 성과가 높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정부의 부실 규제때문에 투기가 심한 결과 발생한 파국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과도한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발생하였다. 클린턴 정부 이전 부터 재정적 능력이 안되는 가난한 흑인들에게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 대출의 의무적 할당을 강제한 결과, 신용이 부실한 사람이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게 된 것이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정부가 금융을 간섭하지 않고 시장원리에 맡겨두었더라면, 금융기관이 그렇게 신용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며, 부실 채권이 그렇게 많이 쌓여서 거품이 일시에 꺼지는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맬더스에서부터 시작된 인구폭증에 대한 우려는, 20세기 초반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사람을 정부가 강제로 불임수술하는 조치를 낳았고,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행위를 낳았으며, 20세기 후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산아제한을 강제하는 조건으로 원조를 해주는 정책으로 발전했다. 이는 근래에 환경주의 운동으로 이어진다. 1960년대에 로마클럽은 인구폭증을 예언하면서 환경적 한계의 우려를 불지폈으며, 환경을 보전하면서 지속가능개발을 해야 한다는 논의로 연결된다. 근래에는 글로벌 워밍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며,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제한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악으로 대체 에너지를 선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낳았다.
근래에 환경주의는 종교의 수준에 들어섰다. 모든 문제를 글로벌 워밍 탓으로 돌리고, 환경주의에 제한을 두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과 다르지 않다. 자연 재해는 글로벌 워밍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며, 글로벌 워밍은 이산화탄소의 확대 이외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듯이, 글로벌 워밍에 대한 절대적 신념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것들이 진화하면서 인간에게 좀더 좋은 상태로 되간다는 사실은 희소식이다. 소득이 높아지고, 폭력이 줄어들고, 인구 증가가 멈추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시장원리가 더 많이 적용되면서,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아이디어가 잡다한 주제들에 마구 퍼부어진 작품이다. 매우 많은 주제를 매우 많은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다루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 어느 특정 주제에 대해 강한 기억이 남지 않는다. 세상은 진화적, 점진적, 내생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메시지 하나만 남는다. 세상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이라면, 그가 비판하는, 위로부터의 계획과 명령에 의해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결국 크게 보면, 세상사는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주체적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주체적 노력이 조금씩 쌓이고 쌓여 내생적 원인과 버무려지면서 변화하고 발전되는 것이 아닌가? 계획이란 것은 이러한 주체적 노력의 일부이고. 저자는 엄청난 독서가이며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이다. 이 책은 아이디어의 백과사전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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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 Ridley. 2020. How Innovation works: and why it flourishes in freedom. Harper Collins. 373 pages.
저자는 과학을 주제로 여러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상 중요한 혁신의 사례를 검토하고 혁신에 관한 사회 현상을 기술한다. 혁신의 범주로 에너지, 보건, 운송, 식량, 저수준 기술의 혁신, 통신과 컴퓨터로 구분했으며, 선사시대의 혁신을 추가하였다. 인류 사회는 주요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 냈다. 책의 후반 3분의 1에서는 혁신을 둘러싼 사실의 일반화를 전개한다.
혁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의 발견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듬어지는 것이다. 실패가 없이 찾아오는 완성된 혁신은 가능하지 않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상이한 범주의 지식을 새로이 조합하면서 혁신의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다양함을 허용하는 문화가 아이디어의 탄생을 촉진한다. 혁신은 팀워크의 소산이다. 특정 발명가가 단독으로 해내는 혁신이란 신화이다. 중앙집중의 강력한 권력이 지배하는 정치에서보다 여럿으로 나누어진 권력 환경이 혁신을 탄생시키는 들어내는 데 유리하다. 왜냐하면 모든 혁신은 기득권자의 반발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혁신은 과거보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산출을 만들어내는 길이다. 경제성장의 열쇄는 혁신에 있다. 혁신이 없다면 경제성장은 중단될 것이다. 생산요소를 증가시키는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과학의 발전보다 선행한다. 과학은 혁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혁신은 도태되는 분야에서 실업을 유발하나 새로 탄생하는 분야에서 고용을 늘리기 때문에, 전체로 보면 사람들이 전에 못지 않게 일하면서 더 많이 생산하는 사이클을 형성한다. 혁신을 통해 사람들의 노동 시간은 점차 줄어든 반면, 노동의 질은 높아졌다.
혁신은 항시 반발을 유발한다. 혁신은 기득 이권을 허물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항시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발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여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근래에 서구 사회에서도 혁신을 막는 경우는 흔히 발생했다. 유럽에서 유전자변형식물 GMO를 막는 것이나, 핵발전을 막는 것이나, 유전자 편집을 통한 개량종의 탄생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핵발전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핵발전 기술이 시행착오를 통해 개량되는 길을 막아버렸다. GMO나 유전자 편집을 막는 것은 이념적인 이유와 더불어 환경단체를 포함해 이를 반대하는 집단의 이익 때문이다. 모든 가능한 위험을 고려해 새로운 혁신을 평가해야 한다는 원칙은 혁신을 막는 길이다. 기존의 것들도 위험과 이익의 균형 속에서 존재하는데, 새로운 혁신에 대해서만 혁신이 가져올 이익은 도외시하고 가상적 위험에 큰 비중을 두어 평가하는 정책은 기득이권을 보호하는 방편에 불과하다. 혁신을 일단 수용하면서 유발되는 위험에 대해 시행착오를 통해 수정해나가는 태도가 혁신의 탄생을 촉진하는 길이다. 혁신이 그것이 유발할 가상적 위험에 철저히 안전하다는 것을 혁신자에게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는 혁신을 질식시킨다. 혁신은 불완전한 과정의 연속 속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항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것은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체제로 바꿀 때 혁신이 촉진된다. 유럽이 전자에 해당하며, 미국이 후자에 해당한다. 유럽이 새로운 것을 사사건건 규제하기 때문에 근래에 일련의 기술 혁신 과정에서 유럽은 미국에 크게 뒤쳐졌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싶은 인재는 유럽을 버리고 미국에 간다. 혁신은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실험을 허용하고 시행착오를 장려하고 실패에 관대한 사회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현재의 엄격한 지적재산권은 혁신을 막는 역기능을 낳았다. 지적 재산권은 혁신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을 촉진한다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혁신자의 아이디어 소유권을 지나치게 보호함으로서 혁신의 확산과 후속 개량 작업을 가로막는다. 혁신을 추구하는 동기는 금전적 이익도 있지만, 혁신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가져오는 성취감 때문이다. 혁신은 오랜 기간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특정 개인에게 혁신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혁신의 소유권을 제한할 때, 혁신의 확산과 개량이 더 넓게 더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혁신이 둔화되고있다는 주장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으며, 유전자 편집기술은 농업혁명과 의료 혁신을 가져왔다. 이러한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의 세상은 이러한 혁신 덕분에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 것이다.
저자는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통찰력을 제시하는 글을 쓰기에 그가 내는 책은 번번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 역시 혁신에 대해 전반적 조망과 함께 통찰력을 제시한다. 자유와 다양성을 허용하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융성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유럽이 왜 미국에 뒤쳐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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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4 ~ 2020.2.29, 총 48권
1.
Rodrik, Dani. 2011. Globalization Paradox: Democracy and the Future of the World Economy. New York: W.W.Norton. 284 page.
2.
이현송. 혁신과 갈등, 미국의 변화. 한울아카데미. 416쪽.
3.
Jonah Lehrer. 2009. How We Decide. Houghton Mifflin Harcourt. 265 Pages
4.
Michael Booth. 2014.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New York: Picador. 374 pages
5.
Kwame Anthony Appiah. 2018. The Lies Than Bind: Rethinking Identity, creed, country, color, class, culture. Liveright publishing co. 219 pages.
6.
Philip E. Tetlock and Dan Gardner. 2015. Superforcasting: the art and science of prediction. Crown Publishers. 285 pages.
7.
Michael Marmot. 2004. The Status Syndrome: How social standing affects our health and longevity. Henry Holt & Co. 271 pages.
8.
Keith Payne. 2017. The Broken Ladder: How inequality affects the way we think, live and die. Penguin Books. 219 pages.
9.
Leonard Mlodinow. 2008. The Drunkard's Walk: How randomness rules our lives. 219 pages. Vintage Books.
10.
Robert M. Sapolsky. 2004. Why Zebras don't get ulcers: the acclained guide to stress, stress-related diseases, and coping. 3rd ed. St. Martins Griffin. 419 pages.
11.
Nate Silver. 2012. The Signal and The Noise. Penguin Books. 454 pages.
12.
Bee Wilson. 2019. The Way We Eat Now: How the food revolution has transformed our lives, our bodies, and our world. Basic books. 306 pages.
13.
Judea Pearl and Dana Mackenzie. 2018. The Book of Why: the new science of cause and effect. Basic Books. 370 pages.
14.
Wilber Zelinsky. 2001. The Enigma of Ethnicity: Another American Dilemma. University of Iow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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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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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Christopher Steiner. 2012. Automate This: How Algorithms took over our markets, our jobs, and the world. Penguin Group. 220 pages.
22.
Carl Benedikt Frey. 2019. The Technology Trap: Capital, labor, and power in the age of autom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366 pages.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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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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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col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346 pages
저자는 비소설부문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 책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주제에 관해 다양한 사례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론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면서 상대의 표정과 행동거지을 관찰하면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실증적인 근거가 박약하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 속 상태는 전형적인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특정 표정은 특정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고 하는 일반적 상식이 항시 맞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텍사스 교통 경찰이 어느 흑인 여성 운전자를 사소한 교통 위반으로 검문하면서 티걱태걱하다가 감정이 고조되고 결국 그 여성을 구속하고 그 여성이 유치장에서 자살한 사건을 두고 왜 일이 그렇게 전개됐을까 묻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의 맨 마지막에 제시된다.
두번째 이야기는 쿠바의 이중간첩이 오랫동안 미국의 CIA를 속인 사건을 두고 전개된다. 그렇게 여러명의 이중간첩이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망을 속이고 활동할 수있었던 이유는, 인간은 상대를 진실하다고 믿는(default to truth) 본성적 성향 때문이다. 최후에 잡히기까지 의심의 단서는 여럿있었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의심의 단서를 묵살하고 상대를 신뢰했다. 서구에서 오랫동안 엄청난 금융사기를 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메이도프 역시 사람들이 그를 기본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의심스런 단서가 많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성향은 진화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집단 생활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있다. 만일 상대를 의심하는 성향이 인간의 기본 상태라면 신뢰의 부족 때문에 사람들 간 거래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없다.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상대의 거짓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입게 되는 피해는,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의심하는 성향을 가진다면 입을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즉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얻는 이익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의심할 때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성향이 선택된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대학가의 파티에 참여한 남녀간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두고 전개된다. 두 남녀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상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의 의사를 읽을 능력을 상실했다. 술에 심하게 취한 상태에서는 일의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대신 당면한 상황에 단기적으로 감정이 내키는 대로 반응할 뿐이다. 술에 심하게 취한 여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 남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상대와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한 장기적 기억에 접속하지 못함으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며 상대가 상황을 악용하는 데 빠져들기 쉽다. 술에 취한 남성 역시 상대 여성의 반응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이며, 자신의 행동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장기 기억에 접속하지 못함으로 나중에 후회할 행위를 쉽게 저지른다.
상대가 보이는 표정으로부터 내적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감정은 표정으로부터 그렇게 투명하게(transparent) 읽혀지는 것이 아니다. 프랜즈와 같은 드라마에서 연기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반영하는 과장된 표정 연기를 하는 데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특정 감정은 특정 표정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는 실험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서구 사람들의 감정 연기를 원시부족에게 보였을 때 어떤 감정인지 전혀 맞추지 못한 것에서, 인간의 감정과 표정이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대응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네번째 이야기는 영국의 한 여성이 가스 스토브에 머리를 쳐박고 자살한 사건을 두고 전개된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불안정 상태에 있는 것은 맞지만 가스 스토브라는 자살을 감행할 수있는 수단이 쉽게 가용했기 때문에 자살이 성사된 것이다. 영국에서 1960년대에 가정용 가스를 일산화탄소가 많이 섞인 것에서 일산화탄소가 거의 섞이지 않은 도시가스로 바꾸었을 때 자살 빈도가 현저히 감소한 것에서, 동기와 수단이 맞아떨어졌을 때(coupling)에 일이 성사될 수 있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동기와 수단이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우는 범죄 발생에도 적용된다. 도시에서 범죄는 아무곳에서나 일어나는게 아니라, 범죄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있다. 이곳만 경찰이 집중적으로 통제하면 범죄 발생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미국의 경찰이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교통경찰이 운전자를 적극적으로 검색하여 의심스러운 요소를 차단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사소한 교통 위반을 구실로 운전자와 그의 차를 샅샅이 검색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은 언급한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성향에 반대가 된다. 첫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텍사스의 교통경찰의 행위가 바로 이러한 전략의 소산이다. 문제는 그의 심문을 받은 흑인 여성이 바로 사람들의 전형적인 감정 표현 방식과 어긋나는 타입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근래에 안좋은 일이 연거푸 벌어져 정신상태가 불안정하였으므로, 경찰이 사소한 구실을 붙여 검색을 하는 데 까탈스럽게 반응하였고, 경찰은 그녀의 이러한 과민반응을 범죄자로 의심하였다. 그결과 교통경찰과 여성간에 사소한 만남으로 시작하여 불행한 만남으로 귀결된 것이다.
저자는 마치 영화의 플롯처럼 여러 사례를 이리저리 쪼개고 교차하면서 복잡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서술하는 방식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답게 그의 이야기는 술술 넘어가지만, 그의 논리전개는 그렇게 신빙성있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자신에게 유리한 사례만 선택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측면만 부각하여 설명한다는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끝까지 읽었지만 역시나 건진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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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ren Bennis and Patricia Ward Biederman. 1997. Organizing Genius: The Secrets of creative collaboration. Basic Books. 218 pages.
주저자는 경영학계의 구루라고 지칭되는 학자이며, 이 책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획기적인 업적을 이뤄낸 사례들을 통해 어떻게 그러한 것이 가능했는지 설명한다. 다음 여섯개의 사례가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디즈니사에서 백설공주를 극장판 만화영화로 제작한 것, 제록스사의 PARC 연구소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신기술을 개발한 것, 1992년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운동 지원조직, 록히드사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한 것, 블랙마운틴 실험 대학을 만든 것, 핵무기를 개발한 맨하탄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 모든 사례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었으며,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은 이후 각 분야에서 중요한 변화를 불러 왔다. 이 책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질문에 답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에는 인재가 핵심이다. 이러한 집단을 이끈 지도자 본인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어서 구성원이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각 프로젝트를 이끈 지도자는 당면 과업의 참여자로 각 분야에서 최고로 뛰어난 사람만을 선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으로서 각 프로젝트에 선발된 사람들은 선발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만큼이나 뛰어나다는 확신을 가지고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헌신한다. 각 프로젝트의 지도자는 본인 자신이 뛰어난 전문가이므로 각 분야에 최고의 사람을 찾아내서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도자의 프로젝트에 함께 일하자고 권유 받았을 때, 각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각 분야에 뛰어난 전문가이며 프로젝트의 달성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세세히 통제할 필요가 없다. 지도자는 그들의 능력과 관심에 맞게 적재적소에 일을 배치하고, 그들의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고 조정하고 조언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조직들의 공통점은 참여자들 서로간에 진솔하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발전시키도록 함으로서 참여자들의 능력이 모아져 시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한 것이다. 참여자들은 매주 모여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기탄 없이 서로 의견을 구하고 토론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아이디어가 불꽃튀게 타오르며, 당면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프로젝트의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진전해가는 것을 체감하면서 집단의 목표에 한층 더 매진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의 모든 것을 바쳐 집단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집단 흥분 상태에 쌓여 있다. 개인의 가족과 사생활을 희생하고 자신의 커리어 개발을 일시 정지하면서까지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헌신한다. 그들은 행정상의 잡일이나 외부로부터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어진 과업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환경 속에서 일한다. 프로젝트 팀은 주변 환경과 단절된 별도의 공간에서 일하며, 다른 조직과 복잡하게 연결되지 않은 별동대로 일한다. 지도자는 외부와 연결하는 유일한 연결점이며, 그는 외부의 간섭이 조직원에게 가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조직을 방어한다.
그들이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일 자체가 가져다주는 의미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사명감 속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그들은 대부분 매우 젊고 실패의 쓴맛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보면 불가능해보이는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일할 수있다. 그들이 하는 프로젝트는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작업이므로 숫한 난관과 좌절에 부닫치는데, 이를 함께 이겨내면서 조금씩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혼자서라면 아무리 해도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들은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혼자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일한다. 그들은 훗날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로 기억한다. 참여자들이 이렇게 집단 흥분 상태에서 자신을 소진시키기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나면 이러한 조직은 해체되거나, 보다 안정적인 다른 조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경험일거라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실패의 쓴맛을 보고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저돌적으로 헌신을 할 수없다고 지적한다. 문제에 부딛치고 좌절할 때 불가능하다는 생각,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아이디어, 결국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회의 등이 머리를 스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면서 일할 수없다. 여기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성공한 사례들이지만, 그렇게 우수한 사람들이 모여서 헌신적으로 몰두했음에도 실패한 사례들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소개한 블랙마운틴 실험대학은 어찌 보면 실패한 사례이다. 그럼에도 실패를 떠나서 인생에 한번쯤은 자신을 모두 바쳐 헌신해보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자신이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일에 완전히 빠져 사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99%의 평범한 사람들(mediocre)에 속하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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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n H. Lienhard. 2006. How Invention begins: Echoes of old voices in the rise of new machines. Oxford University Press. 242 pages.
저자는 기계공학과 역사를 전공한 교수다. 이 책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비행기, 증기기관, 금속활자라는 세가지 발명의 역사를 더듬으면서 발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저자는 발명의 과정을 gestation, cradle, maturation이라는 세단계로 파악한다. gestation 즉 태아가 발생되는 단계에 오랜 기간 동안 아이디어가 조금씩 쌓이며, 이렇게 무르익은 아이디어가 마침내 구체적인 시도로 실현되는 요람 cradle 의 단계에 이른다. 발명의 초기단계는 아직 결함이 많은데, 점차 다듬어져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성숙 maturation 의 단계에 도달하며 이후에는 큰 변화없이 유지된다.
발명은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전개되는 과정의 산물이므로 특정 발명가에게 발명의 공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그롯되다. 라이트 형제가 독자적으로 비행기를 발명한 것이 아니며,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며, 구텐베르크가 금속 인쇄술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무르익은 단계에 도달하면 (그는 이를 '시대정신' Zeitgeist 이라고 표현하는데), 특정 발명가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유사한 발명을 할 것이다. 한 가지 발명은 그와 연관된 다른 발명으로 이어지며 아이디어의 축적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특정 인물이나 특정 발명을 아이디어 발전의 연속선으로부터 콕 집어내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의적이다.
20세기 이전까지 과학적 이론과 설명은 발명품이 출현한 후에 이를 이해하기 위한 후속 과정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특정 발명가가 이리저리 두드려보면서 (tinkering) 홀로 독립적으로 발명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신 집단적으로 연구소에서 과학적 이론을 적용하면서 과학자와 공학자가 협업하여 발명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반도체, 집적회로, 컴퓨터가 대표적 사례이며, 제트기나 화학약품의 발명도 그러하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연구 개발을 하면서 발명과 개량의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8세기에 증기기관 발명의 연원은 그리스시대에 공기는 물질이라는 인식과, 이후 증기가 일을 할 수있다는 아이디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증기의 힘을 어떻게 그 시대의 당면한 필요에 부합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시도한 결과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다. 18세기에 영국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서구에서 첫번째 에너지 위기는 13세기 초반에 왔는데, 철을 녹이기 위해 그당시까지 나무를 썼는데 유럽의 나무 자원이 고갈되었다. 이 에너지 위기는 나무 대신 석탄을 사용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석탄을 500년가까이 사용하자, 석탄을 채굴하는 갱도의 깊이가 해수면에 도달하게 되어 더이상 석탄을 채굴할 수 없게 되었다. 해수면 아래로 파들어가 석탄을 채굴하려면 물을 퍼내야 하는데 그당시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 중반 증기기관의 발명 덕분에 광산에서 물을 퍼내는 문제가 해결됨으로서 당면한 에너지 위기가 해결되었다.
증기의 힘을 활용하는 다음 단계는 속도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구를 만족시켰다. 인간의 갈망(desire)은 필요(needs)와는 다른 행위 동기이다. 빨리 이동하지 않아도 인간은 생존할 수있지만, 빨리 움직이고 싶은, 속도감을 느끼고 싶은 갈망은 일단 이를 충족시키는 발명품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된다. 비행기 역시 인간의 날고 싶어하는 본원적 갈망의 소산이다.
금속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에게 증기기관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미쳤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성경을 인쇄함으로서 보통 사람들이 지식을 쉽게 습득하는 길을 열었다. 1500년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나,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 또한 효율적인 인쇄술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나게 많은 책이 생산되고 그 결과 보통 사람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기에 가능했다. 미국인들은 인쇄물을 읽는 열의가 대단하였고 문자 해독률이 높았다. 미국은 일찍부터 교육이 널리 보급되었고 벽지에서는 통신 교육을 통해 배움을 얻으려는 열의가 높았는데, 이는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인쇄물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발명가는 돈을 벌려는 욕심때문에 발명에 매진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려는 생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몰두하는 것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밤낮으로 매진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 맛보는 희열이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발명의 근원을 체계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저자 본인이 기계 공학자로서 오랜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을 서술하려 한다. 사례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며, 때때로 유명 문호의 시를 인용하면서 감정적 접근을 시도한다. 서구의 사례만 인용하기 때문에 발명의 역사를 균형있게 다룬 책은 전혀 아니다. 이야기와 함께 삽화가 많이 나온다. 재미로 읽을 거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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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Isaacson. 2014.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Simon & Schuster. 488 pages.
저자는 과거에 시사주간지 타임즈의 편집장을 지내고 전기작가로 몇권의 베스트 셀러를 냈다. 이 책은 컴퓨터와 연관된 처음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풀어쓴 글이다.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바이런 시인의 딸인 아다 러브레이스로 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시적인 감성과 과학에 대한 열정이 결합된 여성으로, 그당시 화제를 모았던 찰스 베비지의 계산기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19세기 말에 자카드기 방적기에서 아이디어를 딴 펀치카드 시스템을 적용한 계산기가 인구센서스를 집계하였다.
컴퓨터의 발명은 2차세계대전의 소산이다. 전쟁중에 적군의 암호를 풀 목적으로 미국과 영국은 독자적으로 컴퓨터를 발명했다. 필요와 능력과 자원이라는 삼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발명이 이루어진다. 관련 아이디어가 이미 돌아다니고 있을 때, 발명가는 이를 구체화시킨다. 어떤 발명에나 공을 이룬 인물은 있지만, 대부분의 발명은 집단적 노력의 소산이다. 특히 두 사람이 결합하여 효율적인 팀을 만들었을 때 좋은 발명품이 나온다. 반도체, 집적회로, 소프트 웨어, 퍼스널 컴퓨터가 그러한 두명의 뛰어난 팀들의 소산이다.
1940년대에 컴퓨터가 발명되었으며, 1950년대에 반도체가 발명되고, 1960년대에 집적회로가 발명되고, 1970년대에 퍼스널 컴퓨터가 발명되고, 1980년대에 일상 업무에 컴퓨터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웹과 검색엔진이 발명되었으며, 21세기에 들어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디지털 혁명의 공통점은 엔지니어가 변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세일즈맨이나 금융맨이 주도했다면 이러한 비약적인 발명은 가능하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엔지니어가 미래를 예상하고 열정적으로 만들어냈다. 정부의 지원, 시장의 이윤 동기, 자원봉사자의 헌신이라는 세가지의 상이한 방식이 모두 적용되면서 발명을 이끌어 냈다. 어느 한 방식만 지배했다면 이러한 변화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컴퓨터와 관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커버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서술이 산만하고 지루했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였으며, 등장인물의 성격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서술한 점에서 전기 작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디지털 혁명 자체에 촛점을 맞추었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매우 다른 책이 되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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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d Hastings and Erin Meyer. 2020. No rules rules: Netflix and the culture of reinvention. Pneguin Press. 272 pages.
이 책은 넷플릭스 회장과 경영학 교수의 공동 작업으로서 넷플릭스의 인사관리 체계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 책은 넷플릭스의 사내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 같다. 회장이 지명한 경영학 교수가 회장 본인은 물론 넷플릭스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신속히 적응해야 하며 지적인 산물을 생산하는 일을 주로 하는 넷플릭스와 같은 회사는 개인의 아이디어 생산을 극대화하는 인사관리 체계를 필요로 한다.
넷플릭스의 초창기에 주위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직원의 일부를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하고서 나타난 변화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간 수준의 업무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잘라내고 최상의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만 남겨졌을 때, 회사의 분위기가 과거보다 더 좋아졌고 생산성이 눈에 띠게 향상되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최고의 능력자들로 조직을 운용하는 것이 중간 수준의 사람을 많이 고용하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창의적인 일에서는 최고의 능력자가 중간 수준의 능력자보다 열 배이상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업계 최고의 임금을 제공함으로서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창의적인 일을 요구하는 직책에 관한 한, 이 일에 최고의 능력자가 아니라면 언제라도 그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다른 더 적합한 사람을 들이는 것이 낫다. 쫒겨나는 사람에게는 4~9개월치 급여라는 후한 퇴직금을 줌으로서 이러한 냉혹한 정책이 비인간적이지 않도록 한다.
유능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각자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려면, 일의 담당자에게 절대적인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휴가 규정이나 출장 비용 규정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사안의 담당자가 각자의 책임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허용하였다. 다만 상사를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이 해당 사안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모든 정보와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서, 일의 담당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로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담당자가 일의 맥락(context)을 잘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은 담당자가 독립적으로 하도록 보장한다. 만일 그가 한 결정이 잘못된 결정으로 판명난다면, 그 결정이 왜 잘못됬는지를 공개적으로 사후에 분석함으로서 추후 회사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도록 한다. 창의적인 일이라는 것은 무수한 시도와 실패를 통해 사정을 보다 더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이 필수이므로, 주어진 맥락에서 최선의 결정을 한 이상 담당자에게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한 실패를 통해 사정을 더 잘 알게 되었다면, 즉 미래에 연관된 일을 추진하는 데 가치있는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소득이 있는 것이다. 담당자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경쟁자보다 훨씬 신속히 대응할 수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완전히 투명한 일처리와 서로에게 철저히 솔직한 자세를 요구한다. 회사의 돌아가는 사정을 직원 모두에게 공개하여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며 각자가 독립된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도록 한다. 회사는 매 분기마다 전체 매니저급 직원이 참여하는 평가회의에서 회사 사정을 모두 공개하며 어떤 문제라도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논의한다. 회사의 비밀을 직원 모두에게 공개하면 결국 외부로 새나가는 경우를 각오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상황을 맞지 않았다. 비밀이 외부로 새나갈 상황을 예상하여 사내에 비밀을 만듦으로서 손해보는 것을 고려할 때, 완전히 투명한 경영 전략이 실보다 득이 많다. 회사의 사정을 철저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일의 담당자가 독립적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넷플릭스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건 직원들 간에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장려한다. 솔직한 피드백은 상대와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실행할 수있는 내용을 담은 지적이어야 한다. 감정적 비판이어서는 안된다. 일이 발생할 때마다 주위사람들이 일의 담당자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주면, 담당자가 앞으로 향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관행은 상사와 부하를 가리지 않으며, 일상에서는 물론 일년에 한두번씩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교환하는 공식 모임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공식적으로 피드백을 교환하는 회의를 360도 회의라 하는 데, 6~8명이 참석하여 식사를 하면서 짧게는 세시간에서 길게는 다섯시간에 걸쳐 참석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명씩에 대해 생산적인 피드백을 준다. 넷플릭스에 입사한 사람들은 모두 넷플릭스의 솔직한 피드백 문화에 처음에는 충격을 받지만, 점차 이것이 자신과 회사의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됨을 깨닫고 동화하게 된다. 능력자가 모인 조직에서 각자가 성의를 다해 수시로 상대와 그의 일에 대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솔직히 밝히는 관행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일의 개선에 가속도를 더해준다.
넷플릭스가 전세계로 사업을 넓히면서 넷플릭스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서로에게 솔직 투명한 태도는 진출한 지역의 문화와 충돌하곤 한다.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상대의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적을 하는 것을 꺼린다. 간접적인 의사표출을 선호하는 문화에서는 일상에서 상대의 일 처리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공식적인 피드백 모임을 갖고 각자 준비하도록 했을 때, 이러한 모임에서 참여자가 서로에게 매우 생산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지역 문화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줄 필요는 있지만, 넷플릭스의 솔직 투명함의 문화는 어디에서나 효력을 발휘한다.
넷플릭스에는 keeper test 라는 관행이 있다. 상사의 관점에서 어떤 부하가 회사를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를 붙잡을 것인지를 항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만일 그가 조직에 꼭 필요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며, 자신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으로 대치하는 것이 낫다면, 그는 넷플릭스를 떠나야 한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 프로 스포츠 팀과 같다. 넷플릭스에서는 모자라는 사람을 보듬을 것이 아니라, 항시 최선의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건 능력이 떨어지면 나가야 한다. 왜 이렇게 냉혹한 원칙을 옹호하는걸까? 저자는 넷플릭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항시 생산해야 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반면, 한번의 실수로 안전이 치명적으로 위협받거나, 동일한 제품을 착오없이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개인의 창의가 그리 중요치 않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그를 준수하도록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넷플릭스에서와 같이 전례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출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항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엄격한 규칙이나 통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설사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아이디어나 결정이라도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지 않으며, 대신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되는 소중한 정보를 얻게 해주는 넷플릭스와 같은 회사에서는 규칙이나 윗 사람의 명령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자가 꼭 필요하다. 이런 조직의 창의적 직책에 관한 한 중간 수준의 능력자가 있을 자리는 없다.
넛플릭스는 무정형의 지적 재산을 만드는 회사이며, 특히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을 만드는 회사이다. 저자가 왜 그렇게 아이디어를 만드는 최고의 능력자와 그러한 능력이 최고도로 발휘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자신의 능력이 최고도로 발휘되는 기간 동안 만이지, 능력이 떨어져도 오랫도록 함께 할 수있는 직장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책에서 서술한 원칙을 충실히 구현해 냄으로서 전례가 없던 비디오 스트리밍이라는 산업을 열었으며 거듭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냄으로서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십년만에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고, 그 산업을 전세계로 확장하여 1억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으며, 수준이 높은 창작 비디오를 제작하는 강자로 올라섰다. 이러한 업적은 전통적 경영으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없는 성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대로 적용될 수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넷플릭스의 경영 원칙은 회사의 니즈에서 볼 때에는 최상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인간적 니즈로 볼 때는 최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원하고, 인간의 능력은 부침이 있으며, 상대에게 항시 솔직하라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상대에게 잘보이기 위해 적극적 및 소극적 기만 전략을 밥먹듯 구사하는 인간의 습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간, 비교적 소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된 넷플릭스에서는 이 책에서 서술한 넷플릭스의 경영 원칙을 구현할 수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수만명이 일하는 조직에서 이러한 원칙은 사람에 따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외곡시켜 반영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인간성에 좋지 않은 면이 항시 있기때문이다. 그가 말하듯이 넷플릭스가 프로 스포츠 팀과 같은 것이라면, 승리를 계속하는 한 문제가 없지만, 연속하여 승리를 놓치게 될 때 넷플릭스의 약한 고리가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이책에서 서술한 원칙을 구현하여 대단한 일을 이룬 넷플릭스와 그의 회장은 정말 놀랍다. 넷플릭스의 회장이 엔지니어임에도 어느 경영학 구루보다 더 훌륭하고 생산적인 조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감탄할 일이다. 이 책은 그의 원칙과 실제 운용 상황을 잘 서술한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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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C, Scott. 2020(1998).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357 pages.
저자는 예일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추진한 대대적 개혁 사업이 왜 모두 실패로 끝났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과 계획 조림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은 말끔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며, 가뭄, 홍수, 화재, 병충해 등의 외부적 충격에 강하다. 반면 계획 조림을 한 숲은 외양은 깨끗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하여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의 성장이 정체되고 병충해의 공격으로 완전히 전멸하기도 하므로, 이러한 계획 조림 숲을 계속 유지하려면 인위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자연상태의 숲을 밀어내고 그자리에 단일한 종의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하는 이유는, 외부인이 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쉽게 파악하고(legibility), 통제하기 위함이다. 자연상태의 숲은 목재를 생산한다는 상업적 목적에서 보면 부적합하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의 계산이 가능한 단일 종의 숲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개혁 사례로, 17세기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 농장 집단화 사업,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행정수도 건설, 탄자니아의 독립 이후 추진된 농촌 집단 정주촌 건설 사업을 분석된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은 전통적인 복잡한 토지 사용 관행을 무시하고 소유여부라는 단일 척도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였다. 인간의 합리적인 계획으로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근대화(mordernism)이념으로 무장하고, 전통적 공동체와 농업 방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자리에 완전히 계획된 집단 농장과 도시를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작업은 주민의 실제 토지 사용관행을 반영하지 못했기에, 서류상의 소유관계와 실제의 사용관계가 유리된 결과를 낳았다. 소련의 집단 농장과 탄자니아의 농촌 집단 정주촌 사업은 농업 생산성이 추락하여 농민이 먹을 것 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브라질리아는 주민간 인간관계가 메마르고, 활력이 없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실패한 이유를 검토하기 앞서 왜 이러한 무모한 시도를 했을까 생각해 보자. 전통적 농촌 마을과 전통적 생산방식은 오랫동안의 인간관계와 삶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외부자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외부자가 전통적 생산방식을 이해하고 통제하기는 힘들다. 전쟁이나 정치적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집단은 기존의 전통 관계를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비록 이러한 무자비한 정책이 생산성의 저하를 낳는다 해도, 세금을 더 거두고 잠재적 반발 세력을 무력화하기 때문에 엘리트 집단에게는 득이 된다. 반면 외부의 엘리트로부터 통제 당하는 주민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준다.
중앙의 일관된 계획에 따른 실험, 소위 '사회적 공학'(social engineering)이 실패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 관계와 삶의 방식을 몇개의 원칙으로 단순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축적해온 지혜를 반영한다. 이러한 현장의 지혜를 무시할 때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중앙 관료의 지시에 따라 일을 추진하면 주민은 강압에 못이겨 수동적으로 따를지 몰라도 일은 제대로 될리가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창의(innitiative)와 오랜 시행착오로 축적된 실용적 지혜(practical know-how)를 무시한다면 생산성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소련의 집단 농장이나, 브라질리아나, 탄자니아의 집단 정착촌이 그나마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정부의 공식적 지시와 원칙을 어기고 비공식적으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전통적 농법을 폐하고 과학적 영농 방식으로 자연을 개조하려는 시도들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다. 전통적 농법은 여러 작물을 섞어서 재배하고 윤작을 하는 데, 이는 상업적인 생산의 관점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과학 영농이라 하여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써서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생산성이 있는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추락한다. 전통적 농법은 지역의 구체적 사정에 맞추어 적응된 방식이며 오랫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효율적으로 판명된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단순히 실험실에서만 성공한 표준화된 과학적 영농방식을 다양한 현지 사정에 일괄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농법은 자연의 실험장에서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선택된 종자와 재배 기술인 반면, 과학적 영농은 먼저 특정 종자와 재배 방식을 실험실에서 개발하고 자연을 실험실의 상황으로 개조하여 적용하는 방식이다. 자본을 많이 투입하고 자연 환경을 실험실의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미국 중서부나 유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방식이 성공할 수없다.
복잡한 현상을 소수의 몇개 변수로 단순화하여 파악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기본이다. 소수의 몇개의 변수로 단순화해야만 자연 현상에 대한 통제와 조작이 가능하다. 관심의 촛점이 되는 소수의 변수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과학적 실험이다. 인류는 이러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왔다. 사회 현상은 자연 현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수의 영향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관해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다. 특정 지역, 특정 집단, 특정 인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소수의 원칙을 적용하여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저자는 소수의 사례들에 관해 흥미롭게 서술하며, 이론적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저자의 설명이 실패한 사례들에는 잘 적용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상 큰 변화를 가져온 사례에도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추진한 시도는 원래 의도한 대로의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기득이권의 구조를 파괴하고 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원래의 실험이 실패한 바탕 위에 원래보다 덜 과격하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또 다른 실험이 전개되거나, 최소한, 실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전개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의 기득이권 구조는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변화란 어찌보면 무모한 실험의 연속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져 온 것이다. 학술적으로 단단한 연구에 바탕을 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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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로, 이 책은 어떤 요인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고 이후 200년간 16배 이상의 실질 소득 상승을 이끌었는지 설명하는 저자의 삼부작 중 두번째 책이다. 저자는 부르주와(bourgeois), 즉 상공업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 태도, 윤리, 아이디어, 담화의 변화가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온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동원하는 물질주의적 인과론을 배격한다. 물질적 조건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제에 적용한 파괴적 혁신이 비약적 발전의 사이클을 돌게 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공업(business)을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했다. 과거 동서양의 모든 사회는 지주, 귀족, 관료, 무인, 문필가, 예술인을 숭상한 반면, 물건을 만들고 팔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용적 목적에 활용하여 돈을 벌며, 기존의 방법을 개혁하여 효율을 높이는 상공인들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경원시하였다. 이러한 구질서에서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여 비즈니스에서 부를 축적하면 어떻게든 이를 벗어나 지주, 관료, 귀족 계층으로 올라서려고 할 뿐, 더 좋은 방법을 고안하여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유럽의 봉건체제에서 지주 계층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것이나, 중국의 유교 질서, 인도의 카스트제도, 이슬람 세계에서 상공업을 천시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상공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dignity)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자유(Liberty)를 갖게 됨으로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파괴적 혁신(distruptive innovation), 파괴적 창조(distruptive creation)을 계속해 나갔으며, 그 결과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일반인이 상공업을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6세기 계몽주의(Enlighment),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종교혁명(Reformation), 인쇄술의 발전, 17세기에 부르주아로 구성된 의회가 왕을 견제하게 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도시의 발전, 무역의 발전, 등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 동안 중첩되어 작용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점차로 비즈니스를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하였으며, 이것이 영국으로 바로 이전되었다.
저자는 기존에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주장한 것들을 각개격파 방식으로 반박하면서 왜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한다. 40여개 장에 걸쳐 기존의 주장을 반박하는 학술 논쟁을 계속 전개한다.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이 축적되어 산업혁명이 출현하고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투자를 더 많이 한다고 하여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노예제, 식민지, 제삼세계의 착취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의 착취로 부터 얻은 이익 덕분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와 제삼세계의 착취는 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로부터 얻은 이익은 대단치 않으며 결코 비약적 생산성 증가를 이끌 수없다. 지리적 이점이나 풍부한 자연자원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을 이끌지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경제적 탐욕의 동기나 절제와 합리적인 생활태도, 막스베버가 주장하는 개신교 윤리 또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원인이 아니다. 무역의 증대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끌지 않았으며, 노벨경제학자 올리버 노스가 주장하듯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 및 법에 따른 지배(rule of law)와 같이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부정과 부패를 막는 합리적 제도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이러한 요인들이 과거 로마제국, 중국, 인도, 이슬람세계에서 한때 존재했으나 산업혁명과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지 않았던 사실에서 입증된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경제발전은 오로지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방식을 개혁한 사람들(tinkerer)은 이윤동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신 자체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았으며, 이는 상공인의 자긍심(dignity)과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있는 환경(liberty)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반인들이 비즈니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가 이들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괴적 혁신은 만들어질 수없으며,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인류 사회에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상공인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를 장사꾼과 공돌이가 하는 것이라고 천시하면서 인문학, 예술을 숭상한다. 그들은 돈버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기보다는 학자나 관료가 되거나 비영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한다. 동서양의 지식인들은 시장의 효율성에 맡기기보다는 중앙에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큰 선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체제가 비효율로 인해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시장보다 규제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선호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비즈니스를 통제하려 한다. 근래에 사회주의가 붕괴한 자리에 환경주의(environmentalism)가 들어서 규제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부를 창출하고, 가난을 척결하고,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시장과 파괴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답이다. 섯불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규제 정책이나 비영리 활동은 오히려 정체와 후퇴를 낳을 뿐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무능한 결과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 200년 동안 엄청난 부의 창출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인문학이나 관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파괴적 창조를 지속한 상공업, 비즈니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경제역사학자로서 학술적으로 뛰어나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특이한 지식인이다. 그는 시장 규제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의 입장에서 기존의 학계와 지성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은 그의 박식한 배경을 종횡무진 발휘하여 기존의 연구들을 샅샅이 꿰뚫으면서 비판하기에 논의를 제대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학술적으로 엄격하면서 탈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나온 돈키호테식의 솔직함은 기존의 권위적인 사고의 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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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S. Fischer. 2014. Lurching toward happiness in America. MIT Press. 129 pages.
저자는 저명한 미국의 사회학자로, 이 책은 그가 Boston Review 라는 지성지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소재를 열개의 글에서 다루고 있다. 각각의 글이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미국인의 행복도에 변화가 있는가, 온라인을 통한 이성 소개는 바람직한가, 인터넷이 사람들을 과거보다 더 외롭게 만들었나, 미국인은 왜 유럽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을 하는가, 극심한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왜 지역 자치에 집착하는가, UNDP의 인간개발지수를 통해 미국인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성공이란 환경과 운의 결과인가 아니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인가, 소득 불평등이 나쁜 이유는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 미국 사회와 사회변화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글의 바탕에 흐르는 전반적 기조는 미국 사회는 유럽과 다르며, 문제의 인식이나 접근 방식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사회 제도이나 삶의 질로 비교할 때, 저자는 미국 사회가 북유럽 사회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의 부유함은 풍요로운 자연과 이민자의 유입이 궁극적인 원인이며, 공공 영역이 작은 미국의 자본주의 모델은 명암이 뚜렷하다. 학자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잡지에 쓴 글답게 비논쟁적이며 평이하다. 뚜렷한 주장을 제시하지 않으며 논의의 심도가 깊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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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저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기존 역사학계의 유럽중심주의를 배격한다. 1800년대초 유럽이 산업혁명에 진입할 때까지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했다. 기술 수준, 생산성, 산업과 교역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인도는 유럽을 능가했다. 그당시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낙후한 지역이었다. 유럽이 1500년대에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그당시 선진 지역인 중국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헝가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교역이 활발했는데, 14세기에 중동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유럽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역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던 나라로 유럽으로 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국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바다를 통한 외부와 교역이나 정복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관계는 내륙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제한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확보하였다. 이는 중국이 명나라 시대에 화폐제도를 지폐에서 은으로 바꾼 것과 맞물려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은 유럽을 거쳐 대량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비단, 도자기, 차 등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은의 유입이 줄어든 반면, 유럽인의 중국 문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생산품 중 중국에 수출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여 거둔 돈으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반발에 부딛쳤으며, 결국 1840-50년대에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중국을 굴복시켰다.
유럽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럽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노선을 밟았다. 유럽에 정복된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천연자원과 원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 지역의 식민지화는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부흥하게 만들고, 식민지의 기존 산업을 몰락시켜 가난하게 만드는 양극화의 길을 열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영국 중부지방에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인접해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수증기의 힘을 이용해 석탄을 채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건설, 섬유 산업의 기계화로 이어졌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환경 조건의 한계에 가로막혀 경제 발전과 인구 성장이 제한되었는데, 산업 혁명은 이러한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하였는데,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대신 면화 원재료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여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과거에 융성하던 인도의 면화 산업을 몰락시켰다.
1800년대초까지 유럽을 앞서있던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 뒤쳐지면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와 이를 뛰어 넘어 성장하는 사회간의 간격은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에 착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와의 격차를 좁혀왔다. 인도와 기타 개발도상국들 역시 20세기 후반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고 산업화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한 것이 유럽 문화의 내재적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근접해 매장되 있는 것, 유럽 대륙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군사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유럽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에 식민지를 정복하게 된 것, 등이 산업혁명과 이후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인데, 이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라거나, 유럽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더 우수하거나, 상공업이 더 활발한 문화였던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우수한 과학 기술 덕택에 스팀 엔진을 개발하고 섬유 산업의 기계화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이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편에서 세계 역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 서구의 발전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많은 부분 우연적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재적인 우수함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원인을 거술러 올라가면 자연 조건의 차이나 우연한 상황의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근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는한 모든 인간사는 우연한 외부 환경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서구가 중국과 아시아보다 앞선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여하하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이기 때문에, 일단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게 되면 그 이후의 길이 달라진다.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을 앞섰지만, 두차례에 걸쳐 유럽인들이 그들끼리 벌인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이 유럽을 앞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지게 됬듯이, 미국의 제도적 비효율과 내부 갈등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는 대신, 중국이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미국을 따라잡고 서구를 다시 앞서게 되는 역사의 경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인당 소득은 1만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만불에 달하므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중국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이 책은 대학교의 교재로 집필된 듯하다. 세계 역사 전반을 빠른 속도로 훑으면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띠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치밀한 증거를 인용한 논의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 촛점을 두기보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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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로 역사학계의 핵심 화두인, "서구는 왜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는가"에 대해 인과론적인 답을 제시한다. 서구가 중국을 앞서게 된 사실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발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사후적 설명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과학적 비교 연구 방법을 차용한다. 서구가 중국과 다른 길을 가는데 어떤 요인이 핵심이었는지 찾기 위해, 만일 특정 요인의 값이 실재와 달랐다면, 다시 말하면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본다. 한편으로 추론의 방법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례를 비교함으로서 그 요인의 인과적 중요성을 평가한다. 기본적으로는 유럽과 중국을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비교의 목적으로 중동과 남아시아의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서구에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다른 제국이 다시는 들어서지 못한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연이어 지배하였는데, 바로 이 점이 서구와 중국의 역사를 다르게 만든 핵심 요인이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지배하는 제국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추구한다. 제국에서는 기존 체제와 기득이권에 도전하는 파괴적 발전(creative destruction)이 전개되기 어렵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지고, 각 국가 내에서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다원적 체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다원적 체제에서는 국가와 세력들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 실력과 효율을 중시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개량하는 발전의 동력이 계속 작동하였다.
로마 제국이 서기 450년 경에 멸망한 후 동로마에는 비잔틴 제국이 들어선 반면, 서로마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주권국가로 나누어졌다. 이 나라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합종연횡하면서, 한 나라가 전체를 장악하는 제국이 다시 만들어지지 못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중세 봉건 시대에는 각 나라 내에서 왕과 영주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며, 교회와 세속 정치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중세 후반에 들어 도시가 세력을 키웠고, 왕과 귀족에 대항해 상공인들이 세력을 키웠다. 서유럽은 왕, 귀족, 성직자, 상공인 사이에 권력이 분점되고,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나누어지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교가 나누어지는 등, 다원적 경쟁체제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간, 세력과 세력간 전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경쟁은 발전을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반대 세력은 다른 국가로 피신하여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다른 경쟁 국가로 넘어가는 선택지가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국가의 지배자도 반대 세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전지역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제국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원주의 체제가 만든 발전의 동력을 갖지 못했다. 지배 세력을 위협할 새로운 세력이나 아이디어는 초기에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다. 유교 사상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체계를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이에 순응하도록 설득한다. 상공업은 기존의 위계 체계를 넘어서 부와 세력을 만들어낼 위험성을 지니므로 일찍부터 억압하였다. 반면 농업은 사람들이 토지에 붙박여 있고, 혁신적인 발전이 일어날 수 없어서 기존의 지배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농업을 우대하였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서구와 같이 다양한 세력간에 경쟁체제가 조성되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제국이 계속 지배하면서 발전을 질식시켰다.
왜 유럽은 로마의 멸망 이후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진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연 조건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가지 차이를 지적한다. 첫째, 서유럽에서는 산, 강, 바다가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독립적 정치체제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황허와 양자강 사이에 대평원이 단일 정치체제를 가능케하였다. 둘째,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카르파티아나 알프스와 같은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 인접해 있다. 대평원의 기마민족은 유목을 생계로 하면서 때때로 주변의 농경민족을 침탈하여 필요한 것을 조달하였다. 이들은 기동성과 전투력이 뛰어나기에, 이들에 인접한 지역은 이들의 침탈에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을 만들어 냈다. 반면 유럽에서는 몽고나 터키족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의 침입이 헝가리에서 멈추었다.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의 침탈로 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여 있었기에, 잘게 쪼개지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로마가 멸망한 시점을 첫번째 역사 분기점 (First Great Divergence),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 대탐험, 합리적 세계관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중첩되면서 이후 비약적으로 앞서나가게 된 사건을 두번째 역사 분기점(Second Great Divergence)라고 칭한다. 첫번째 역사 분기점 사건이 발생한 것이 두번째 역사 분기점을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에 공통의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 줌으로서, 이후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공통의 기초 위에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한 후 또다른 제국이 들어섰다면 중국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됬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 문구에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 간에 갈등과 경쟁은 끊임없는 전쟁을 낳았고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럽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과 기득 이권은 외부로부터의 경쟁과 위협 없이는 변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3년전에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한 Great Leveler 라는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을 썼다. 불과 3년만에 또다시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책을 통해 역사는 경쟁과 전쟁을 통해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는 농경민이 주축이 되었다고 배웠는데, 저자는 북방 유목민을 중국 역사를 추동시킨 핵심으로 제시한다. 책의 후반 4부에서 지금까지 나온 이론들을 정리하여 서구가 앞서나가게 된 과정을 문화, 제도, 해외 식민지, 지식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다.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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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폭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전문 학술서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폭력을 내포한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폭력을 제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상태로 상정하고,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에게 통제를 맡김으로서 질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학의 이론이 국가를 단일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란 단일체아니라 엘리트 간에 연합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경제적 및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함으로서 특권 혹은 이권을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의 국가'(the natural state)에서 엘리트들은 각자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는 만큼 이 특권을 나누어 가진다. 특권을 나누어 가지는 연합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 체제에서 폭력의 동원 능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중세 봉건 시대에 귀족들이 각자 군사력을 보유하며, 왕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연합이 바로 국가였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가 핵심에 있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엘리트의 연합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자연 상태의 국가에서 엘리트는 각자 세력의 규모에 따라서 특권을 나누어 갖는다. 엘리트간 세력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추어 특권의 배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어긋날 경우 갈등이 폭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까지 투쟁이 지속된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었을 때에는 지주계층이 통치 엘리트의 근간이었는데, 상업 및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면서 이들 새로운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특권 지위를 요구했을 때, 기존 엘리트와 신흥 엘리트 간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질서, 즉 폭력이 없는 상태란, 엘리트간 폭력 행사 능력과 이권간에 균형이 맞아 엘리트 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 체제에 동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엘리트 간에는 상호간 견제와 감시를 통해 폭력의 행사를 통제한다.
자연 상태의 국가, 즉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하는 질서'(limited acess order)에서는 모든 관계와 거래가 개인적(personal)이다. 각 사람의 능력과 특성과 변덕에 따라 관계와 거래가 좌우된다. 특정인이 죽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 그와 관계된 모든 거래는 무효화되거나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경제적 이권은 정치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정치적인 지위는 경제적 이권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정치적 지위와 독립된 경제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행위란 이권,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를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세개로 구분할 수있다.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는 엘리트에게 특권이 배분되는 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모든 엘리트의 특권은 개인적 관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특정 엘리트가 죽거나 변화가 생기면 엘리트들 사이에 특권의 재조정을 향한 갈등이 발생하므로, 매우 취약한 질서이다. 둘째는 기본적인 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조직이 형성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조직이란 여전히 특권을 차지하는 개인에 궁극적으로 좌우되므로 불안정하다. 세번째는 성숙한 단계로, 국가의 통치 조직이나 경제활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조직에의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open acess order)는 19세기 중반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이 질서는 '법에 의한 지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제도의 영속성', '누구에게나 개방된 익명적인 거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누구를 아는지, 출신 배경이 어떠한지, 성, 인종, 민족, 종교 등과 상관없이 능력과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직 자원에 접근할 수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지위와 자원이 배분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만드는 데, 즉 정치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어 관리되며, 폭력을 통제하는 사람은 선거와 의회 등 정치과정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폭력을 통제하는 기구와 그 기구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분리되어 있다. 그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임기가 끝나면 물러난다. 이 질서에서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인 폭력의 통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자원에 접근할 수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미친다. 보통 교육, 사회보장제도, 공정한 시장의 관리 등이 그것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하므로 경제성장율이 높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과 조직이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때문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발전할 수있다. 반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는 기존에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개인의 역량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되며, 위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엘리트들 사이에 세력의 재조정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훨씬 안정되며, 실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위를 차지한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상시적인 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경제에서는 경쟁 기업이 항시 감시하고 경쟁하므로, 특권이나 이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로 어떻게 이전할 수 있을까? 자연 상태의 국가의 엘리트가 '법에 의한 지배'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지배나 특정 개인에 좌우되어 조직이 운영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 '법에 의한 지배'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들 간에 관계가 안정적일 때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밀고당기기를 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서로간에 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있다.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조직을 통해 정치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상황에서만 엘리트들은 개인과 독립된 조직을 인정한다. 폭력 행사력 즉, 군사력이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지 않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을 때, 엘리트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을 내려놓는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만들 수있고, 엘리트들과 그들의 조직간에 경쟁에서 패한다고 하여도, 폭력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에만 엘리트들은 그러한 경쟁에 참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급격하게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도를 높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사회가 반드시 이러한 발전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자연상태의 국가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단계 내에서도 제도화의 정도가 다양하고 퇴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 놓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믿음을 정착시키는 일은 형식적인 선거나 의회의 존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상태의 국가에서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질서를 설명하는 예로 중세시대 영국의 토지소유제도를 분석하며, 자연상태의 국가 중에서도 성숙한 제도화의 단계에 도달한 영국이 그렇지 못한 프랑스에 비해 전쟁을 위한 동원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개방된 질서'가 '접근이 제한된 질서'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서구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이론과 분석을 제시한다. 기존의 정치학의 이론을 뛰어 넘어 눈을 확 뜨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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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중. 2006. 카우보이들의 외교사. 푸른역사. 447쪽.
저자는 미국사를 전공한 학자로, 1776년 미국의 건국에서 2001년 9.11 사태까지 미국 외교의 역사를 서술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와싱턴은 퇴임하면서, 미국이 유럽의 정치사에 간여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이후 미국의 고립, 중립주의 정책은 미국 외교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는 유럽의 정치사에 대해서만 적용되었을 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까지 미국이 간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23년 먼로 대통령은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선언,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다.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앞마당이니 유럽 열강들이 탐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19세기는 미국이 서부로 개척하는데 몰두하였으므로 유럽 열강과 달리 해외에 식민지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1846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미국의 남서부를 빼앗고,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통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빼앗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팽창과 힘의 외교를 주장한 대표적인 대통령이다. 그는 중남미 국가들이 질서와 안정을 보이지 않으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학자 출신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은 이상주의 외교를 추구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개적이며 규범에 따른 국제관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 연맹을 제창했다. 그러나 그 역시 미국의 이익이 간여된 곳, 예컨대 멕시코나 동아시아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망한 후, 미국은 더이상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트루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해 그리스와 터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내용의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했다. 반공을 기치로 하여,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미국이 출동하여 막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미국의 반공 히스테리에 기인한 개입 정책은 제삼세계의 독재정권들을 지지하여 원성을 샀으며,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비참한 패배로 파국을 맞았다. 1990년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는 미국의 역할은 사라졌으나,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미국은 다시 국제문제로 끌려들어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저자는 미국의 외교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주제를 다루는 여유를 보인다. 논의에 심도가 있고, 관련된 주요 학술 논쟁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미국 외교의 원칙과 관련한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논쟁에 대해, 저자는 양비론을 편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국민 여론의 향방에 따라 움직여 왔음으로, 어느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이상주의나 현실주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상주의 외교도 현실주의 외교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미국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기치로 하는 이상주의 외교는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었지,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 대상이나 맞지 않는 시기에는 그런 외교를 펴지 않았다.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는 전략 역시 힘의 정치이다. 오래 전에 이책을 읽었고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잘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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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Kissinger. 2014. World Order. Penguin books. 374 pages.
정치학 교수로 였으며 미국의 국무부 장관을 지낸 저자가 서구의 외교사를 서술한다. 유럽의 국가들은 17세기 초반 삼십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다음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으로 국제관계의 규범을 만들었다. 이후 서구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는 웨스트팔리아 체제를 요약면 다음과 같다. 웨스트팔리아 체제는 종교와 세속 정치를 구분한다. 각 나라는 서로의 국가 주권을 존중하고, 서로를 대등하게 대우하며, 기존의 국경을 인정하고,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유럽의 국가들은 서로간 합종 연횡을 통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면서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는 이 체제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이 체제가 훼손되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사이에 유지되던 세력 균형이 통일 독일의 부상으로 깨지면서 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웨스트팔리아 체제는 서구에서 오랫동안 국가들간에 관계를 조율하는 유효한 장치였다. 어떤 제도가 국가들의 상위에 군림하여 전체의 질서를 관리하는 방식, 즉 세계의 경찰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가들 간 세력 균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것 이외에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없다. 이 체제를 따르면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가의 힘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전체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제의 적과 손을 맞잡고 새로 부상하는 나라를 견제해야 한다. 이 체제에서는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어떠한 이념이나 이상이 없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도 없다. 오로지 서로간에 냉정한 힘의 평가와,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가들 사이에 '현실주의 정치'(Realpolitik), '힘의 정치'(Power politics)만이 있을 뿐이다.
한편,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가 자리잡았다. 이슬람 지역은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이슬람교는 세계를 이분법, 즉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과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지역으로 구분한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지역은 앞으로 정복을 통해 이슬람교를 믿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은 하나의 원리로 통치되므로 지역간 구분이 중요치 않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동서로는 스페인에서 북아프리카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남북으로는 이집트에서 이란과 터키를 거쳐 발칸반도까지 거대한 단일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대제국에는 유럽에서와 달리 국가간 상호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다이나믹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와 경제가 정체되고 낙후하였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 후 여러 지역으로 쪼개져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중국은 세계를 천황의 지배하에 있는 단일 세계로 인식한다. 유교는 이 세계를 지탱하는 이념이다. 이 세계의 중심에 중국이 있고, 변방에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군신관계를 맺은 나라들이 있다. 중국이 볼 때 변방의 나라들은 모두가 중국 문명보다 못한 오랑캐들이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문화와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주변국이나 이방과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변국 중 중국을 침략한 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중국에 동화되었다. 예컨대 몽고는 중국을 침략하여 원나라를 세웠으며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웠다. 서구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웨스트팔리아 체제라는 수평적 질서가 지배했음에 비해, 아시아 나라들 사이에서는 중국을 가장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자리잡았다. 17세기에 서구의 나라들이 중국에 문호 개방을 요구했을 때, 중국은 이들을 오랑캐로 취급하고, 중국의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쇄국정책을 고수하였다. 결국 강제로 문호가 개방되고, 서구의 문물을 일찌감치 수입하여 발전한 일본에 국토가 유린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은 20세기초 제 1차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까지 유럽에 대해 고립주의 혹은 중립주의 외교 정책을 취하였다. 유럽의 열강들과 대양으로 구분되어 있고, 19세기말까지 서부를 개척하는 일에 몰두했으므로, 유럽의 국가들과 달리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걸린 경우 힘을 행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9세기 초 유럽 나라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에 간여하지 말라는 먼로 독트린을 선언했으며, 19세기 말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미국이 개입하여 바로잡을 수있다고 선언하였다. 이웃 나라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남서부를 빼앗았으며, 하와이를 점령했고,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쿠바 등을 미국의 식민지 내지 준식민지로 만들었다.
미국은 이념으로 뭉친 나라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의 조상으로부터 국가의 정통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 미국은 유럽의 봉건 질서를 부정하면서 만들어진 나라이다. 유럽의 전통적인 신분제도나 종교의 지배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건국 이념으로 건립되었다. 국가간의 관계에도 이러한 미국의 이념을 전파하려 한다. 미국은 유럽의 현실주의 정치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국가들 간 관계에서 개별 국가의 이익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나라의 주권은 존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념은 인류가 모두 지켜야 할 보편적 원칙이라고 굳게 믿으므로, 궁극적으로 모든 나라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승국이 된 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이상주의를 국제관계의 규범으로 만들려 했다.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이 그것인데, 이 기구는 미국의 의회에서 조차 인준되지 못하였고, 무엇보다 국제 규범을 위반하였을 때 이를 강제할 조치가 없었으므로 국제 평화를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제 2차 대전으로 유럽이 몰락한 후,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세계 질서를 만들고 강제할 수 있는, 세계 경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UN, IMF, World Bank 등이 그 산물이다. 냉전체제에서 소련과 경쟁을 벌이면서 미국은 미국의 이념을 전파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하여 현실주의 정치, 공작정치를 병행하였다. 제삼 세계에서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옹호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반군을 부추겨 콜럼비아로부터 파나마 운하를 빼앗아내고, 자주 민족적 독립을 저지하는 베트남 전쟁을 벌였다. 2차 대전후 미국의 국제관계는 공도 많지만 과실도 많다. 미국 덕분에 유럽과 일본이 다시 부상하였고,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 반면 미국의 간섭 때문에 중남미와 중동은 계속 정정이 불안하고 발전이 지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키신저는 21세기에 미국은 전환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와 같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기에는 힘에 부치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대신해 국제 질서를 주도해 나아갈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은 여전히 마지 못해 세계의 여러 문제에 간여하지만, 점차 개입의 범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단일 유럽이나 중국이 부상하면서 다자간의 관계, 즉 오랫동안 서구의 국제관계를 지배한 웨스트팔리아 체제가 다시 자리잡을 것이다.
이 책은 키신저의 경륜이 배어 있는 책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그러나 노년에 써서 그런지 분석의 예리함보다는 주마간산 식으로 전반적인 흐름을 해설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서구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은 그래도 깊이가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서술은 피상적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주어로 하는 문장을 구사하기에 말하는 내용이 바로 다가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저자의 명성만큼 그렇게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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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로, 1500년경부터 서구에서 강대국이 차례로 흥했다 쇠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 제국,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대영제국이 20세기 초까지 그 길을 밟았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소련이 그길을 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례에서 '경제력이 궁극적으로 군사력을 좌우하며 강대국의 힘의 배경이다'라는 명제를 주장한다. 두번째의 명제는, 한 나라의 국력이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그의 적의 군사력과 비교를 통해서만 강약을 가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 역시 그와 대비되는 다른 나라의 강점과 약점과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강대국이 될 수록 전세계 곳곳에 담당해야 할 안보의 부담이 늘어난다. 강대국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경제력이 정상적으로 감당할 수있는 정도를 넘어서 더 큰 군사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자원의 많은 부분을 군사력 유지에 써야 하는데, 이는 생산적 투자에 써야할 부분이나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써야 할 부분의 희생을 수반한다. 생산적 투자에 자원을 덜 투입하면 경제 성장이 늦추어지며,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쓰는데 자원을 덜 투입하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진다.
강대국의 밑에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과 비교하여 군사력보다 생산적 투자에 더 많은 자원을 할애 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들 중 강대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나타난다. 그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고, 기존의 강대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극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교체는 결코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이 서구를 앞섰으나, 이후 서구가 앞서나가며 다른 문명을 복속시킨다. 가깝게는 유럽의 정치문화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유럽은 다양한 정치 집단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경쟁은 제도와 기술의 혁신, 경제 발전과 군사력의 성장을 낳았다. 반면 중국, 인도, 이슬람 지역에서는 강력한 단일 정치집단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문화를 뿌리내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득이권 집단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기존 질서에 위험 요소가 될 어떠한 것이라도 초기에 싹을 자르는 조치를 취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명나라 시기에 해외무역을 금지하면서 큰 배를 모두 없애고 새로 건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들 수있다.
유럽이 동양과 달리 다양한 정치 집단이 공존할 수있었던 것은, 산악과 바다와 강, 다양한 기후의 자연 환경이 단일 정치체제의 출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륙과 바다로 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와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는 산악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중상주의 정책에서 보듯이 경제력에서 서로 경쟁하며,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과 기술에서 서로 경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는 서구의 강대국들이 흥하고 쇠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영제국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여, 1760년대에 7년전쟁을 통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의 지배적인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합리적인 제도를 갖추지 못했으며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통적인 체제가 지배하였다. 이들 나라의 군사력은 컸지만 경제력이나 제도의 효율성에서 영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전세계의 산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축적하였고, 전세계에 식민지를 축적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이 다른 나라로 확대되면서 영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영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상대적인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경제성장의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 독일은 새로운 기술 혁신이 계속이루어지고, 통일을 통해 국토가 확장되면서 경제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국제질서에서의 기존의 지위가 독일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되었기에 독일은 1차대전을 일으켰으며, 결국 2차 대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독일의 도전은 중단된다.
한편 미국은 새로운 기술과 경형 혁신이 계속 이루어 지고,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용 자원의 절대 규모가 늘어났으며 19세기말에는 경제력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제 1, 2차 대전을 통해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였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폐허가 된 반면,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전쟁을 통해 더 증가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올라섰다. 소련은 두차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 후에도 상당한 국력을 남길 수있었으며 거대한 국토 덕분에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차대전이 종결된 시점에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은 최고에 도달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군사적인 우위가 최고점에 있었다. 이후 유럽의 선진산업국과 일본은 전전의 경제력을 회복했으며,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1970년대 초반에는 서구유럽 전체로 볼 때 미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복지확대와 베트남전쟁 때문에 재정적자가 누적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 마침내 유럽과 일본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했으며 무역적자가 누적되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강대국으로서 전세계에 군사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은 줄어들지 않으므로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되면서 서구와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으며, 경제력 대비 군사적 부담의 면에서 미국보다 더 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볼 때, 세계 질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다섯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강대국의 지위는 조금씩 쇠퇴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속도나 영토로 볼 때 앞으로 대단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지만, 미국이나 소련과 경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유럽의 통합이 진전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문제는 여러 나라들간 이견을 조율하는 비효율 때문에 아무리해도 미국 만큼의 강대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대단한 경제력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황이 변하면 이러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대단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소련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대단한 군사력을 비축하고 있고 엄청난 영토 덕분에 앞으로도 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의 질서는 국력이 충돌하는 무정부상태의 혼돈이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국제정치의 역학을 잘 이해할 수있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특히 1차 대전을 전후한 국제정치 역학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들 간에 상대적 관계를 통해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능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유럽의 정치경제가 지난 오백년간 전개되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도 인정하듯 유럽과 미국이외의 지역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오백년 동안 세계의 정치경제는 서구가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지만. 1991년에 일어난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소련 체제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오랜 정체를 겪은 현 시점에서 국제 정세는 1980년대 초반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책은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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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y A. Frieden. 2006. Global Capitalism: Its fall and rise in the twentieth century. W.W. Norton. 476 pages.
저자는 하버드의 정치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지난 백년간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팽창과 수축을 거듭한 과정을 기술한 경제사 책이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왜 지난 백년간 세계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겪었는지 경제적, 정치적 원인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내재된 문제를 진단한다.
이야기는 19세기말 20세기 초반 서구에서 무역과 금융의 자유 이동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국가간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은 각 나라들이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에 전문화함으로서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높이며 부의 빠른 증가를 가능케 했다. 금본위제 덕분에 환율이 안정되고 국제간 자본이동이 활발해졌으며, 운송수단의 발달로 국제간 교역이 크게 증가하였다. 가장 먼저 산업화되었고 금융이 발달한 영국의 주도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시장의 통합이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장통합은 각 나라에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유발했다. 또한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미국과 독일은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 쳐서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을 추구하는 영국과 보호무역 주의를 추구하는 독일간에 세력 싸움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나라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미국이 특히 그러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유럽의 금융 위기를 불러왔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세계로 퍼졌다. 대공황 이후 서구는 전쟁 전의 시장 통합을 버리고 각자 도생을 추구하며 각국이 고립된 경제 체제로 후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IMF와 IBRD(World Bank)를 설립하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서구 세계에 점차 확대되었다. 미국은 시장 개방을 주도하면서 GATT를 통해 국제적으로 무역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국제 무역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2차 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 노력은 미국은 물론 서구 세계 전반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 자본의 효율성을 쫒아 국제 자본 이동이 활발해 졌으며, 국제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세계 시장에 참여한 모든 나라들에게 전문화의 이익이 높아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서구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미국 시장에서 미국 산업을 위협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확대된 복지지출과 베트남 전쟁의 전비 때문에 적자 재정에 빠져들었다. 이에 더하여 1973년 중동 산유국의 자원민족주의가 폭발하고 원유 가격이 폭등했을 때, 전세계 자본주의 전체에 불황의 골이 깊어 졌다.
미국은 1980년대의 구조조정으로 비효율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1990년대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 덕분에 생산성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 역시 미국보다는 정도는 덜하지만 구조조정을 겪었으며 이후 생산성의 향상을 기록하였다. 미국은 노동자의 세력이 약하여 사회보장 수준이 낮은 덕분에 경제 구조조정 이후 열악한 질의 일자리나마 높은 고용율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노동자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와중에도 높은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해야 했으며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하였다. 그 결과 유럽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실업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댓가를 치뤘다.
1980년대의 구조조정에 이어 1990년대의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과 운송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전에 볼수 없었던 정도로 세계경제가 통합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 자본투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전세계적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라 불리는 국제 분업 생산 체계는 생산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규모와 심도는 20세기 초의 국제화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혜택은 선진 산업국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넓게 미쳤다.
1970년대까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의 국가들과 인도는 국제 경제 체계에 연결되지 않고 각국이 자립적으로 발전하는 길을 추구했었다. 국제 경제에 종속되는 것은 이익보다 손해가 크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수입과 수출을 최소화하는 대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국제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발전 전략을 택하였다. 한국에서도 한때 '민족주의 경제론'이라 하여 이러한 발전 전략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국제경제에 연결되지 않는 고립적 산업화 노력은 자본부족, 기술부족으로 벽에 부딛쳤으며, 경제 불황에 정치적 불안이 중첩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소련을 필두로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중앙집중 계획 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된 결과 결국 1990년에 붕괴되고, 이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경제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세계는 선진 산업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즉 국제적 자본과 국제 무역에 크게 의존하여 경제를 운용하는 모델로 수렴하였다.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 자본과 선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며 비효율을 제거하고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 특화하게 함으로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갖는다. 반면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는 부문,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한 부문을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연결된 댓가는 냉혹하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은 국내의 경제 참여자의 복지를 위하는 것과 상충될 수있다. 국내 경제가 침체되면 정부는 이자율을 낮추고 돈을 풀고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해외 자본이 이탈할 위험이 커진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인위적으로 지원한다면, 국제 자본은 이 나라를 버리고 해외에 더 효율적인 곳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들은 선진국의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자본가에 대항하는 협상력이 떨어지고, 임금이 하락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반면 국제적 분업 생산 전략을 고도로 구사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높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생산성 향상과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수익을 독차지 하면서 높은 임금을 구가했다. 자본의 국제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자본을 가진 사람이나 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익은 크게 높아졌다. 그 결과 선진국의 소득 불평등은 크게 높아졌다.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장 제도를 통한 완충 기능이 약한 미국은 불평등 정도가 유럽보다 훨씬 심하다.
국제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역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국제 경제와 연결된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중 중산층이 늘어난는 반면, 농촌이나 전근대적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산업화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낙후되었다. 도시와 농촌간, 근대적 산업 노동자와 전근대적 부문의 노동자간의 격차는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이다.
21세기에 들어 다시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후퇴하는 징후를 보인다. 선진국에서 세계화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서구의 각국은 비관세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자본 이동을 제한하고, 이민자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질 수록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낮아 세계화에 낙오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중국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미국인 중 중국의 부상을 반대하고 세계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 산업국에서 세계화가 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경제 효율성 증대의 혜택이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가는 한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세계화의 혜택을 다수가 배제된 채 소수가 독점하고, 소득 수준이 정체되거나 악화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세계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는 크게 힘을 받을 것이다.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쏠림 현상의 부작용으로 불황에 빠질 위험은 과거보다 더 커졌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저자는 20세기 경제사를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잘 정리하였다. 저자는 특히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아,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변화에서 금융의 측면에 많은 논의를 할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금본위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 벌어진 일이 많지만, 이책은 20세기 말까지만 커버하고 있어 아쉽다.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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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ia Goldin and Lawrence F.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미국에서 지난 백년간 교육 수준의 향상과 기술 발전의 관계를 수리적으로 분석한 학술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왜 백년전에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교육의 향상을 선도하는 나라였는데, 근래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산업국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19세기말 20세기 초반, 2차대전후 1970년대 초반까지, 1970년대 중반이후 21세기 초까지, 지난 백년간을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 미국인의 교육 수준과 교육 제도의 변화를 검토한다.
미국은 20세기초반까지 선진산업국들 중에서 교육수준이 독보적으로 높은 나라였다. 19세기초부터 공립 초등교육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말에는 공립 중등교육 운동이 벌어지면서 전국적으로 무상 중등학교가 확대되었다. 2차대전 무렵에는 중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당연시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물론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흑인에게는 2차대전 무렵까지도 중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유럽의 나라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중등학교는 소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으며, 공립 중등학교는 드물었다.
미국에서 공교육이 일찍이 확대된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는 지역자치의 전통이다. 공립학교는 지역의 주민들이 갹출한 재원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웃 지역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지역들간 경쟁을 유발시켰다. 내가 사는 지역에 양호한 교육 환경이 만들어 지면 그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에 좋은 공립 학교를 세우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는 유럽에서 공교육이 중앙집권적으로 구축된 것과 명확히 대조된다.
둘째는 평등을 추구하며 패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미국의 공교육의 원칙이다. 미국은 모든 주민들에게 지역의 공립학교에 무상으로 접근할 수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뒤쳐지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공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열어 두았다. 이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12~4세 무렵에 국가 자격시험을 치루어,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달라지도록 중등교육 과정에 차등을 둔 제도와 뚜렷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엘리뜨에게만 고급 중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하며, 나머지 사람에게는 중하위의 직업에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교육을 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중등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양질의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은 미국을 본받아 무상 공립 중등교육을 확대하였으며, 질 높은 중등교육을 선별적으로만 제공하던 제도를 많이 완화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 중등교육의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크게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중등교육을 이수하려고 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받게 되면서 중등교육의 이점은 줄어들었다. 대신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큰 보상을 가져왔으므로,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고등교육 즉, 대학 교육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대학간 자유경쟁의 결과 대학 교육의 질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은 미국보다 뒤쳐져 공립 중등교육이 보급되었으며, 이어서 고등교육이 확대되는 과정을 근래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 국민의 교육수준이 확대되던 장기 추세가 중단되었다. 고등교육의 이수는 80% 무렵에서 좀처럼 더이상 높아지지 않으며, 4년제 대학의 졸업율은 한때 70%까지 높아졌다가 60%초반대로 후퇴하였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노동시장에서 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큰 불이익을 받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4년제 대학을 중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미국의 기술 수준은 19세기 후반 이래 꾸준히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에서 인적자본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상승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비해 중등교육 이수자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중등교육을 졸업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컴퓨터와 생산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은 크게 높아졌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높은 임금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기술수준의 상승하면서 고급 인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에 비해 대학교 졸업자의 증가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고급 인력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급 인력의 임금이 크게 높아졌다. 대학원을 졸업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의 공급이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하므로 이들은 매우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누린다.
저자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때문에 임금의 격차가 크게 나게 되었음을 분석적으로 입증한다. 4년대 대학의 졸업자가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더라면 이들의 임금 프리미엄이 지금과 같이 높지 않을 것이므로, 소득 불평등도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결과, 낮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하거나 혹은 이민자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낮은 기술수준을 가진 근로자의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한 반면, 높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세계화로 효능이 더 커졌기 때문에 더 높은 보상을 누리게 되었다.
왜 미국인은 유럽인에 비해 중등교육의 탈락율이 높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가? 4년제 대학 중퇴자가 많은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대학에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둘째는 대학의 등록금이 매우 비싸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유는 중등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중등교육이 부실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주민의 소득과 인종에 따른 거주지 분리 현상이 교육의 지역자치 원칙과 만날 때, 가난하고 흑인이 사는 지역의 학교의 질은 매우 열악하게 된다. 둘째는 선생의 보수가 낮아 인재가 지원하지 않으며, 교사 노동조합이 능력이 부실한 교사의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셋째, 가난한 흑인과 미혼모 가정 배경의 아이는 어릴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교육과정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불이익을 누적해간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은 학교의 문제도 있지만, 빈곤 문제, 인종문제가 중첩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빈곤과 인종문제가 유럽의 선진산업국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유럽과 달리 어느 수준에서 향상을 멈추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결국 사회를 개선해야만 미국인의 교육 수준 향상도 이루어질 수있다. 과학 기술 수준은 계속 발전하고,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수준은 높아지는 데, 미국 사회가 이러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소득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확대될 것이다.
저자들은 책의 말미에 '미국이 과거에는 세계에서 교육수준의 향상을 선두에서 이끄는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주저앉게 되었냐고' 탄식하며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교육수준의 정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이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앞으로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없다.
이책은 과학기술의 향상이 교육 수준의 정체와 만나면서 임금 격차가 커졌다는 것을 수리적 입증한 학술서이다. 막상 저자가 책 서두에 제기한 왜 미국인의 교육수준의 향상이 중단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별도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기존에 많이 언급된 것을 마지막 장에서 간단히 정리하는 데 그친다.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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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P.Barash. 2003. The Survival Game: How game theory explains the biology of cooperation and competition. Henry Holt & Co. 277 pages.
저자는 워싱턴 주립대 심리학과의 진화 생물학자로, 게임 이론을 설명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서 협력과 경쟁이 전개되는 원리를 이론적으로 및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삶은 게임의 연속이다. 제한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 배우자를 구하는 경쟁이 대표적이다. 2 x 2 매트릭스를 사용하면 개임에 참여한 참가자 개개인의 선택지의 조합에 따라 각각의 참가자에게 이익과 손실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있다.
첫번째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게임 이론에서 가장 바탕이 된다. 이 게임에 참여한 죄수 각자의 입장에서 볼 때 둘다 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협력(cooperate)하는 것보다 상대를 밀고하는 배반(defect) 할 때 각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더 크다. 이 게임에서 개인 각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상대를 배반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다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할 때 두 사람 모두 최악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호구(sucker)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를 배반하는 선택을 한다. 상대의 배반을 의심하기 때문에, 협력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선택하지 못한다. 독일과 연합국 간에 일차대전이 일어나게 된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상대에게 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거나, 혹은 상대와 앞으로도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협력을 선택한다.
정치학자 악셀로드는 상대가 도발하지 않는 한 항시 협력하면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tit-for-tat) 상대의 배반에 배반으로 맞받아치는 전략이 가장 손해를 적게 보는 전략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상대의 배반에 협력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상대의 협력에 배반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보다 열등한 전략이다. 상대의 배반을 응징하지 않으면 상대가 계속 도발을 감행하게 부축이며, 상대의 협력에 배반으로 대응하면 일시적으로는 나에게 이익이나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므로 결국 손해이다.
두번째의 게임은 '사회적 딜레마'(social dilemmas)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나의 상대가 집단인 경우이다. 경제학에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참여자 개개인에게는 이익이나 집단 전체로는 손해인 경우로, 공공재가 대표적 사례이다. 자신은 기여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 하는 행위(free riding)를 어떻게 제한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정부와 같은 권력이 참여자의 이기적 행위를 규제하고,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참여자에게 사회화를 시킴으로서 부분적으로 해결된다.
세번째 게임은 '치킨 게임'(game of chicken)으로, 게임 참여자 모두 배반하면 파멸로 귀결되는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한쪽만 배반할 경우의 벌칙(sucker)이 둘다 배반할 경우의 벌칙보다 큰 반면, 치킨 게임에서는 둘 다 배반할 경우의 벌칙이 한쪽만 배반할 경우의 벌칙보다 크다. 일반적으로 끝까지 버티거나 혹은, 상대에게 내가 끝까지 버틸거라는 믿음을 주면 승리를 잡을 수있다.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대치했던 쿠바사태가 그에 해당한다.
인간의 세계보다 동물의 세계에서 게임 이론이 더 정확히 작동한다. 게임 이론으로 계산된 이익을 보는 쪽은 진화의 과정에서 더 많이 번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게임 이론에서 계산된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반드시 행동하지는 않는다. 한편 동물은 반드시 한 방향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을 바꾸어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어떤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게임이론이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숫컷이 한 배우자에게 충실하냐 혹은 바람둥이 성향을 보이느냐 여부, 상대에게 공격적일지 혹은 유순하게 물러설지 여부는, 상대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정된다. 게임 참가자에게 생존의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다 주는 행위 조합을 선택하는데, 게임 이론은 이 조합을 정확히 계산해 낼 수 있다.
인간은 게임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이익을 최대화하는 행위를 선택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는 합리적으로 이익을 계산해내는 것이 매우 복잡하여 어느 정도의 이익에서 만족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합리적인 이익 이외에 감정적인 동기가 인간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냉혹하게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는 합리성은 개인에게는 득이될지 모르나, 집단 전체에게는 득이 되지 않을 수있다. 인간은 정말 자신에게 중요한 사안에 관해서는 합리적으로 이익을 따져 결정하기보다, 직관과 감정이 명령하는 바를 따른다. 인간의 두뇌는 극단적 합리성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것이 아니라,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합리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해 왔다. 저자는 인간이 어느 정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본다.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어느 정도의 비합리성이 조합된 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동물은 자신의 선택의 합리성을 의식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이다.
이 책은 게임 이론과 진화 생물학의 전문 지식에 저자의 박학다식한 지식이 결합된 교양서이다. 저자는 문학, 철학, 정치, 역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동원하여 게임 이론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의 주영역인 동물의 행태에 관한 사례를 가장 많이 제시한다. 게임이론과 진화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게임 이론이 정확히 적용되나 인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주장에 의심이 간다. 개별 인간의 선택을 보면 게임 이론이 정확히 적용되지 않을지 모르나, 결과로 놓고 보면 인간의 세계도 결국 게임 이론의 합리적 선택과 진화에 따라 전개된 결과가 현재 우리의 삶이 아닐까? 인간의 감정이란 합리적 선택이 고도로 축약된 장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인간이 때로는 합리적 계산 대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즉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생존 가능성을 최대화(minimax)하는 행위일 수 있다. 인간의 사례에 게임이론을 적용할 때, 개별 행위자의 단기적 이익의 계산을 넘어서서 좀더 넒은 시간 단위와 넒은 범위에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진화의 결과 자의식과 감정을 가진 복잡한 존재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물계에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게임 이론과 진화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것을 위반하려 한 존재는 현재 지구상에 살아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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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Marmot. 2015.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ublishing. 346 pqges.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저자가 사람들 사이에 건강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며, 이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책의 첫 문장을 자신이 과거 수련의 시절에 의료 현장에서 부딛친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한다. '우리 의사들은 병원에 온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서, 그 병을 유발한 그 환경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 그들이 사는 환경이 그러한 병을 만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면, 의학적 치료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집이 없는 내원 환자의 병을 치료한 다음, 그를 다시 집이 없는 떠돌이 삶의 환경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러한 의문은 그의 주위 의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며, 결국 그가 공중보건학으로 전공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혹은 건강하지 못한 원인에 대응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되며, 이러한 원인을 유발한 원인, 즉 원인의 원인 'causes of the causes of illness'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의사들은 여러 조언을 한다. 영양이 균형된 식사를 하고, 야채를 많이 먹고, 담배를 끊고 술을 삼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고, 과로를 하지 말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사회관계를 폭넓게 원만하게 유지하고, 등등. 이러한 사항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의 몸은 탈이 난다. 즉 이러한 것들이 건강/불건강의 원인이다. 한 사회의 건강 수준은 의료 시설의 수준이 아니라,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의료적 치료는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는 것인데,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결정 요인이다.
즉 건강의 요인을 결정하는 요인은 사회적 조건이다. 빈곤, 불평등, 일, 삶에 대한 통제력이 건강을 만들어내는 주요 사회적 결정요인이다(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긍정적일 때에만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사회적 조건이 부정적이라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부정적으로 기여한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면, 각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는 영국의 공무원의 건강 수준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관료조직의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건강이 비례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상급자일수록 그의 하급자보다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 위계 내에서의 위치와 건강 수준 간의 이러한 관계는, 위계의 최상위에서부터 최하위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에 대한 통제력의 차이에 기인한다. 하급자는 상급자보다 일의 통제력이 덜하므로, 이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유발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건강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관계 역시 유사하게 분포되어 있다. 사회적 조건이 조금이라도 좋을 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건강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사안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은 인간의 생애 주기 전 과정에 펼쳐져 있다. 엄마의 뱃속에서, 유아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일의 현장에서, 노년기에, 이 각각의 인생 주기에서 어떤 사회적 조건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그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사회가 간여할 때,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복지 개입이 클 때, 한 사회에서 건강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북구의 복지국가에서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건강 격차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시장의 비중이 큰 사회에서 건강 격차보다 훨씬 작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즉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체제를 옹호한다. 사회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즉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건강의 불이익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회에서 크게 좁혀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몇가지 실질적 처방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사회적 약자의 권능을 높이는 (empowerment)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조직화하여 강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화, 직장에서 강력한 노동조합, 일반 시민들의 조직화를 지지한다. 둘째는 건강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객관적 증거를 널리 알려서 일반인과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변화를 추구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사회운동을 제창한다. 그 자신 국제기구 WHO를 통해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하는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사회적 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볼 때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건강 수준이 향상되었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서 긍정적 방향의 변화를 목격했기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돈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명백하다.
이 책은 그의 이전 책 "Status Syndrome" 보다 좀더 실천 지향적이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고, 행간에서 그의 열정이 전달된다. 그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이다. 그의 논의는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마지막 몇개 장에서 전세계의 성공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부정적 사례인데, 그의 지적은 막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가장 부자 나라지만, 가장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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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경제생활을 인간의 본능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공격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과거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르는 사람(strangers)을 마주쳤을 때, 상대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기보다는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는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에 진화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어떻게 좁은 범위의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타집단의 사람에 대해, 두려워하고 피하거나 공격하기보다 서로 다가가 평화롭게 접촉을 유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상대에게 받은 호의를 되값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다. 인간은 거래의 본능이 있는데, 유사한 가치의 것을 교환하므로서 서로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온다. 인간은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대에게도 받은 것에 상응하는 것을 되주려는 성향을 보인다. 즉 인간의 호혜적 교환은 계산의 결과이기보다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이방인을 공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서로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은 이러한 성향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선택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등한 거래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정착시킨 덕분이다. 시장기구와 사유재산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거래 당사자가 계약을 존중하지 못하면 국가의 권력을 동원해 계약을 강제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위해서 필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깨어지기 쉽기 때문에 항시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안정적인 거래를 위협하는 요인을 방치하면, 금방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지배하려하는 인간의 본능이 고개를 든다.
한편 상대가 나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고 상응하는 것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발전시켰다. 거래의 공정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바로 이러한 본능이 서로가 잘하는 것을 각자 수행하면서, 각자가 생산한 것을 서로 교환함으로서 모두가 이익을 더하게 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분업을 통해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분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이를 터널 비젼, 즉 자신의 좁은 이익만을 돌보는 방식인데,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터널 비젼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전체의 이익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전체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선을 위해 일할 때 부의 총량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바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는 전체의 선을 위해 중앙집중적으로 계획하는 공산주의 체제보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결정하는 분권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이다. 명령과 복종에 의해, 혹은 이념에 추종하기 때문에 맺어진 정치적 관계보다는, 상호의 이익을 가져오는 상업적인 거래관계, 모두가 시장 가격의 신호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관계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분업의 효율은 다른 한편으로, 분업에 참여하는 구성 부분간에 조율이 어그러질 때 문제를 발생시킨다. 경제 불황은 바로 이 분업이 어그러진 결과이다. 2008년에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체는,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넘어 빚을 내어 집을 산 개인들이다. 위험한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위험이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개인 각자의 결정으로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도모하는 것, 즉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나타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은 국가의 조정을 통해 이러한 집합적인 일에 참여함으로서 개인 각자가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즉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관개사업을 하는 것이나,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와 성벽을 쌓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거래관계이다. 거래관계의 당사자 국가 간에 규모의 차이가 클 때, 그들간의 관계는 실용적인 대등한 거래관계로부터,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 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면서 다른 나라와 호혜적인 거래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는 데, 이는 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이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을 계속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근래에 미국이 자국이익 우선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보통의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자연적인 관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공격하던 본능을 극복하고 서로 거래를 하고 분업을 하면서 의존하는 경제관계로 발전시킨 것을 '위대한 실험'(Great Experiment)이라고 한다. 인간은 여전히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좁은 집단 범위에만 이익을 나누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주의(tribalism)적 성향이 강하기에 이러한 위대한 실험은 깨어질 위험성이 높다. 우리 가족, 우리 친족, 우리 지역, 우리 동창,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인종에 우선권을 주고 외부인에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성과는 이러한 본능을 자제하고 낮선 사람과 함께 일하고 낮선 사람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 결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취약하며, 실제로 무너지는 경우를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본다. 인간은 앞으로 진화해야 할 길이 멀다.
이 책은 경제 철학이다. 경험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술하고 설명한다. 프랑스 학자의 책 답게 주절이 주절이 말이 많다. 잡다하게 관계된 논의를 모두 망라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다. 자신의 주장을 명료히 하면서 직설적으로 쓰는 영미권의 학술 풍토와는 많이 다르다. 이를 모두 읽어내느라고 고생했다. 저자의 설명이 장황하여 따라가다보면 지치기에, 과연 이러한 서술방식이 효과적인지 의심스럽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은 생각이 자유분방하고 통찰력을 준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그것에 비해 각광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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