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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4. 22:00

George A. Akerlof and Robert J. Shiller. 2009. Animal Spirits: How human psychology drives the economy, and why it matters for global capit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6 pages.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가 쓴 경제학 이론에 관한 학술적 성격의 고급 교양서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경제적 동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인다는 고전 경제학의 가정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동물적 감성(animal spirits)라 지칭하는 경제 행위에 비합리적 심리적 요인이 개입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들은 다섯가지의 비합리적 심리적 요인을 지적하는 데, 신뢰(confidence), 공정함(fairness), 부패와 그릇된 믿음(corruption and bad faith), 화폐에 대한 환상(money illusion), 이야기(stories)가 그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이 다섯개의 요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후반부에서 이 요인들을 동원하여 경제학의 핵심 질문에 답한다. '왜 경제가 공황에 빠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는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신뢰가 허물어지고 이것이 사람들 서로간 상승작용을 일으켜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부정하게 돈을 벌려는 욕심에서 금융기관은 모기지를 재가공하여 위험도가 높은 증권을 만들어 낸 한편, 사람들은 부동산이 계속 오르리라는 그릇된 믿음에서 자신의 가득 능력을 초과하는 부동산을 마구 샀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은 언젠가는 꺽이게 마련인데, 그러면 사람들은 빚을 값지 못하고, 위험도가 높은 증권은 부도가 나고, 금융기관이 망하고, 경제 전반에 신용이 경색되면서 심각한 불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저자는 정부가 나서서 위험한 금융 행위를 규제하는 규칙을 세우고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가격이 아니라 공정한 댓가라고 생각되는 선에서 임금을 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업이 넘쳐도 사람들은 어느 선 이하의 임금에는 일하려고 하지 않으며, 만일 이보다 낮은 임금에 일하면 속으로 불공정하다고 화를 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경기가 하강하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그에 맞추어 임금을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사람들은 구매력이 아니라 화폐로 표시된 금액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임금을 낮추는 것을 거부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보다 종업원에게 높은 임금을 제시함으로서 그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동기를 갖게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시장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임금이 정해진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실업은 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 미래를 대비한 저축은 그렇게 들쑥날쑥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미래의 필요를 미리 고려하여 저축 수준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미래 특히 은퇴 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현재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소비에 관해 주위의 영향을 받아 소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합리적 계산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아이디어에 따라 소비를 결정한다.

'왜 주식의 가격이나 기업의 투자가 변동이 큰가?' 하는 질문에 대해, 주식은 기업의 내재 가치를 반영하여 오르내리기보다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투기 심리에 따라 가격이 좌우된다. 기업의 투자 결정 역시 경제의 펀더멘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감성에 따라 내려진다. 두가지 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와 잘못된 믿음에 의해 좌우된다. 부동산 가격이 부침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 올라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으며 투자를 하고, 이러한 믿음이 꺼질 때 두려움에 휩싸여 팔아치우기에 폭락한다.

' 왜 흑인은 특별히 가난하게 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흑인과 백인 사이에 감정적인 단절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백인은 현 체제가 공정하다고 생각하기에 흑인의 빈곤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린다. 반면 흑인은 백인이 주도하는 사회의 불공정에 분노하기 때문에 자신의 향상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 '그들 대 우리'라는 대립적인 생각이 바로 이러한 단절을 만든다. 적극적 차별 개선 정책(Affirmative Action Program)은 바로 이러한 대립적인 생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조치이다. 흑인들은 이 정책을 통해 백인들이 흑인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를 접하게 되면서 두 집단 사이에 감정적 단절이 점차 허물어질 수 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만으로 경제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불황, 실업, 극심한 가격 변동, 낮은 저축율, 극심한 빈곤, 등 흔히 발생하는 경제 현상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심리적인 요인을 추가하여 설명할 때 이러한 경제 현상이 더 명쾌하게 이해 된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 근거한 고전 경제학 이론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비합리적 감정적인 요인에 의해 경제가 움직인다면 이러한 요인이 경제를 불안정하게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개입하여 규제하고 감독하는 것이 필수이다. 

이 책은 경제학 이론 수업에서 참고 교재로 쓰는데 적합하다. 대부분의 논의는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경제학계에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기에 저자는 이점을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은 경제 상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만, 전문적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그리 흥미롭게 읽히지는 않는다.

 

2019. 11. 22. 20:54

Daron Acemoglu and James A. Robinson. 2019. The Narrow Corridor: States, Societies, and the Fate of Liberty. Penguin Press. 496 pages.

Why Nations Fail 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저자의 후속작. 이전의 책이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에 촛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 책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는 원인을 분석한다. 고대부터 최근까지 시대를 망라하며 서구에서 아시아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는 책 초반에 자신들이 개발한 국가 발전이론을 소개한다. 밑으로 부터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고, 위로부터 국가의 조직과 행정력이 굳건하여, 이 두개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 견제할 때에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치체제가 발전한다. 이 두세력이 균형을 이룰 때 '견제된 국가' (shackled leviathan)이라 칭한다.  국가의 힘이 강력한 반면 사회의 힘이 약하다면 '독재적 국가'(despotic leviathan)로 흐르며, 반대로 사회의 관습과 조직은 강한 반면 국가의 힘이 약하다면 '무정부 상태'(absent leviathan)가 된다.  견제된 국가 체제에서만 국민의 자유는 보장된다. 반면 관습과 부족의 힘이 강한 무정부 상태에는 전통에 포획된 구속 상태에서 살기에 자유가 없으며, 독재적 국가에서는 독재자 집단의 권력 횡포에 눌려 국민의 자유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견제된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 두개의 세력이 어떻게 상호 타협을 잘 해가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동태적인 과정이다. 

국가와 사회간의 세력 관계는 자유만이아니라 경제발전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자유가 보장될 때에만 시장이 활성화되며 개인의 창의, 기업가 정신, 새로운 발명이 촉진되므로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바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견제된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독재적 국가나 무정부 상태에서는 변화로 인하여 기존 질서와 기득권이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견제된 국가 체제에서는 사회의 요구와 국가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므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서로 힘이 확대되는 경로를 밟는다. 사회로부터의 요구가 증가하고, 이에 대응하여 국가의 권력과 행정력이 확대되고, 이에 대하여 사회의 견제 장치가 치밀해지는 선순환을 거친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북구의 복지국가를 예로 든다. 그 나라들은 국가의 역할이 큰 대신 민간의 참여가 높아 서로 균형을 이룬다. 반대의 예로는 아프리카나 남미의 일부 나라들 처럼 국가의 행정력이 미약하고 사회가 분열되어 있어서 국가에 대한 요구나 국가에 대한 효율적인 견제가 가능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에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랄 만한 것이 없고, 사회의 조직도 미약하여 국가에 대해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유명무실한 국가'(Paper Leviathan) 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에 따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왜 정치경제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서유럽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게르만족이 민의를 반영하여 결정을 내리던 전통이 서유럽 사회문화 밑바닥에 흐르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이러한 바탕에 기반하여 상인과 산업자본가의 상승하는 세력이 왕권을 견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견제된 국가 체제를 낳았다.

반면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의 권력과 질서를 강조하는 법가 사상이나, 혹은 위정자의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이 전 역사 시기를 관통하였다. 중국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참여는 간헐적인 폭동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 다만 관습의 구속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독재적 국가 권력과 결합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 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할 뿐이다. 이러한 중국 체제에서는 기존의 관습이나 기존 지배층의 권위에 균열을 가져올 어떻한 변화도 거부한다. 근래 중국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이 일어난 것은 독재적 국가도 어느 정도까지는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창의와 변화에 대한 개방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중국은 그것이 없으므로 앞으로 갈수록 경제 발전이 지체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도 역시 카스트의 관습이 정치경제를 지배하는 상태이므로 국가의 역할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결과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며 경제발전에 장애로 작용한다.

저자는 미국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한다. 건국의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도입될 수있었던 이유는 남부의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타협에서 나온 것이다. 대공황 이후에 정부의 역할이 확대될 수있던 것은 진보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밑으로부터의 참여가 높아진 덕분이다. 근래에 세계화와 자동화로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불만이 높아지면서 사회와 국가의 균형에 틈이 생겼으며 그 틈으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머리를 들었다. 이들은 기존의 국가 제도를 비하하며 밑으로부터의 참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포섭하는 정치인이다. 과거에 히틀러가 1치대전 이후 독일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권력을 잡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국가와 사회간의 관계가 윈윈의 관계로 설정될 경우 민주주의가 전개되고 자유가 보장되지만, 둘간에 제로섬의 관계로 싸우게 될 때에 견제된 국가의 경로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과거에 그리스의 사례나 오늘날의 대중영합주의의 사례에서 보듯이 견제된 국가의 경로에 있던 나라들도 이 경로에서 이탈하여 독재적 국가의 상황으로 퇴행할 수있다.

이 책은 거의 전세계 주요 지역과 나라들의 역사를 망라하여 종횡무진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자신들의 이론이 분명하므로, 그렇게 다양한 사례와 시기를 예로 들고 있음에도 설명이 명쾌하다. 대단한 책이다. 몰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두번 읽을만하다.  

 

 

2019. 11. 16. 06:21

Robert Levine. 1997. A Geography of Time: the temporal misadventures of a social psychologist. Basic Books. 224 pages.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의 시간관념에 대해 연구하고 장기간의 여행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생각을 서술한 책이다. 미국인인 저자가 브라질의 대학에 취직하여 갔을 때 그곳 사람들과 접하면서 받은 충격에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국인의 시간관념은 엄격한 반면, 브라질 사람들은 느슨한 시간관념을 갖고 있다. 과거에 코리안 타임을 연상케 한다. 브라질 사람들의 삶의 속도는 미국인의 비해 느리다.

엄격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회는 산업화되었으며,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며, 평균적으로 잘 살며, 서구 문화권에 속한다. 반면 느슨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회는 산업화 정도가 덜하며, 집단주의 가치관이 지배하며, 소득 수준이 낮으며, 비서구 문화권이다. 전통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적인 화합을 효율성보다 중시한다. 전통 사회에서는 시간은 돈이라는 가치관을 경멸하며, 효율을 희생하더라도,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일이 계획한대로 성사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다.  시계에 따라 시간과 일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event)이 벌어지는 대로 따라간다. 물론 그런 사회에서는 설사 성사된다고 해도 일이 느리게 전개되며, 많은 경우 성사되지 않고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삶의 템포가 빠른 사회와 템포가 느린 사회 중 어느곳의 삶이 더 질이 높을까? 저자는 일견 느린 템포의 삶이 더 바람직하다는 뉘앙스의 서술을 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에서는 많은 일을 할 수 없고, 그 결과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지 못한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삶의 템포가 빠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삶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가 여행하고 경험한 비서구 전통사회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그의 입장은 순진한 낭만으로 보인다.

저자는 일본 사회를 이상적으로 본다. 일에 중독된듯 보이지만 서구와 달리 장시간 노동의 스트레스가 건강 악화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챙겨주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내가 속한 집단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며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견딜수 없는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개인을 파괴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반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나를 보살피고 내가 보살펴주는 나의 확대된 가족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이 개인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그는 일본의 과로사 문제를 언급하기는 한다.

긴장도가 높고 템포가 빠르게 살아가는 소위 A 형 인간이 반드시 건강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시간관념과 그가 속한 사회의 시간관념이 맞지 않을 때가 문제이다. 예컨대 삶의 템포가 느린 사회 출신의 사람이 서구의 빠른 템포의 사회에서 살려면 힘들며, 반대로 서구의 빠른 템포에 익숙한 사람 혹은 A 형 인간이 느린 템포의 사회에서 살려고 한다면 속터져서 살수 없다. 서구에서도 지역에 따라 삶의 템포가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성격과 그 사회의 관행이 부합하는 사회에서 살 때 행복할 수 있다.

저자는 문화적 상대주의의 입장이다. 각 사회와 문화의 고유한 시간관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화가 진전된 요즈음 별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아니다. 개인적인 일화나 여러 책으로부터 인용을 많이 하나, 서술이 산만하며, 피상적인 주장에 머물고 있다.

 

2019. 11. 9. 22:28

Richard Dawkins. 1995.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s of life. Basic Books. 161 pages.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저자가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보다 흥미있게 해설한 책이다. 생명의 진화란 유전자의 증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육체는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유전자의 생존과 후대에 증식이 생명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고통을 느끼는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공정한지, 건강하고 오래사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생물체의 어떤 기관의 목적이 무엇일까를 탐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한가지, 그 생물체가 담고 있는 유전자의 생존과 증식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유전자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만 진화의 방향을 몰고간다. 생명이란 정보의 덩어리 즉, 유전자 혹은 알고리즘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육체는 이 정보를 담는 수단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세대를 거쳐 복제 되며, 지리적인 격리 등 환경적 요인으로 유전자가 서로 다른 종으로 갈리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와 유전자가 근접할수록 보다 최근에 이 갈리는 과정에서 나누어졌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성염색체와 달리 어머니의 계통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복제되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거슬러 추적한 결과 소위 African Eve 라고 부르는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이 현대인 모두의 여자쪽 조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들의 후손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유전자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현생 인류의 최초의 조상은 아니다. 최초의 조상은 아마도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면 수컷이 암컷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은 후손 속으로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유전자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적 선택에서 가장 생존가능성이 높은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우리의 유전자보다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것은 그간의 생존 경쟁에서 패배하여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생물체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여진 것을 보고,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류이다. 진화의 과정은 유전자의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생물체의 시스템을 정교화시키는데, 현재 관찰되는 어떤 생물체의 정교함에 못미치는 전 단계를 다양한 생물체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벌꿀이 자신의 동료에게 먹이의 위치를 알리는 특징적인 춤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되어 만들어진 듯이 보이지만,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신호 체계의 복잡성을 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정 생물체의 유전자 증식의 목적에만 부합하도록 정교화된 경우를 흔히 본다. 특정 곤충의 감각 능력은 그들의 생존 욕구에 맞도록 진화되면서, 인간의 감각과 지능으로 볼 때에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의 효용함수, utility function 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선택을 말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에게 이익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그 종 전체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개는 소수의 수컷이 많은 암컷을 거느리기 때문에, 많은 수컷은 교미할 기회가 없이 죽는다. 종 전체의 유전자의 증식으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수컷대 암컷의 비율을 1:9로 하여 낭비되는 수컷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다. 그러나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수컷대 암컷의 비율이 5:5로 될 때에만 진화적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만일 성비가 1:9라면 모든 부모는 자식이 수컷이되도록 할 때 자신의 유전자의 증식이 최대화되므로, 암컷대비 수컷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전개될 것이다. 5:5가 되면 자식이 수컷이건 암컷이건 유전자의 후대 증식 가능성이 동일하므로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이 경우 만일 수컷을 낳으면 다수의 수컷은 교미를 하지 못하여 유전자의 증식이 제로이지만, 소수의 수컷은 많은 암컷을 거느리므로 유전자의 증식 비율이 크다. 따라서 수컷을 낳을 때 유전자 증식의 기대값은 암컷을 나을 때와 동일하게 된다. 

태평양의 연어는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성장하여 원래 태어난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생식을 하고 나서는 바로 죽는 것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반면 대서양의 언어는 이러한 생식 과정을 한 생애 동안 여러번 반복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진화하였을까? 태평양 연어의 서식지인 강은 험하여 이를 거슬러 오르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지막 에너지를 다하여 강을 거슬러 오르고 생식을 한 다음 바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면서 강을 오르고 생식 이후에도 다시 살아가도록 하는 선택보다 유전자의 후대 증식의 관점에서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대서양의 연어가 서식하는 유럽의 강은 그리 험하지 않으므로 한 생애 동안 여러차례 강을 오르고 생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유전자의 증식에 합리적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얼마나 살고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고통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을 받으면서 짧게 살다 다음 세대를 낳고 죽는 것이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면서 유전자의 증식에 더효율적이라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진화한다.

우주에서 신성 supernova 은 몇 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하고 재로 변하는 별을 이른다. 에너지의 폭발과 유사하게 우주에서 정보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한 정보의 폭발은 지구에서만 발견된다. 지구에서 일어난 정보의 폭발의 시작은 미미하다. 정보를 자기복제하는 기제, 즉 생명체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정보의 자기 복제는 광물질의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유사하게, 화학적 결합체인 분자가 자신을 복제틀로 하여 자신과 대칭적인 동일한 존재를 생성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저자는 복제 폭탄 replicator bomb라고 부른다. 우리의 DNA를 구성하는 네가지 종류의 분자 A,T,C,G는 A가 T에 대칭적인 존재이며, C가 G에 대칭적인 존재이다. 이 네 종류의 분자가 무수히 엮어지면서 정보의 복잡성을 높여갔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기하급수적으로, 즉 2, 4, 8, 16, 이런 식으로 하면서 수를 늘렸으며 분자들이 덩어리를 구성하여 세포가 되고, 세포가 덩어리를 구성하여 개별 생물체가 된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하면서 ATCG의 조합을 조금씩 달리하게 되는 데, 이것이 종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기제이다. 다양한 종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복제의 효율성을 높여간다.

정보의 복제 속도가 높아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은 인간에 이르러, 지난 이삼백년간에 걸쳐 가속화되며 마침내 지구 행성 밖으로 정보를 보내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정보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끝은 어딘지 알지 못한다. 슈퍼노바의 경우처럼 지수적인 팽창을 하다가 결국 가용 자원의 극에 도달하여 폭발로 끝날 수있다. 혹은 정보가 행성 밖으로 이동하면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복제의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 우주로 나간 정보가 지구의 인간과 교신이 끊어진다면, 환경이 바뀌면서 생물체가 다른 종으로 정보의 강이 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 책을 두번째 읽었다. 과거에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조금더 이해되는 듯하다. 리차드 도킨스는 엄청난 사람이다. 냉정한 학자이면서 천재적인 명석함이 번득인다. 그의 책을 읽으면 경외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가 서술하는 것의 요지는 일견 단순한 듯 하면서 우주의 진리를 관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도킨스는 진화론에서도 특히 삶의 중심을 유전자에 두는 정말로 냉혹한 골수 진화론자이다. 그의 확신이 존경스럽다. 

2019. 11. 3. 21:13

Neil Shubin. 2008. Your inner fish: a journey into the 3.5 billion-year history of the human body. Vintage books.

시카고 대학의 고고생물학자인 저자가 우리 몸의 각 기관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면서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진화의 연결고리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지만, 동시에 어떻게 그런 발견에 이르게 됬는지 연구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 한다.

물 속에서 살던 동물이 육지로 올라오는 진화의 중간 단계 생물의 화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북극의 한 섬에서 저자가 찾는 대상의 화석을 찾는 작업을 생생히 묘사한다. 전 세계에서 저자가 찾는 생물군의 화석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추적하여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과학과 우연이 결합된 서사이다.

인간의 팔과 물고기의 지느러미의 구조를 해부학적으로 비교하고, 배아의 발달과정에서 인간의 팔과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발달하는 과정의 유사점을 보여준다. 이빨과 머리 털과 새의 깃털과 유방은 동일한 원시 피부조직으로부터 변이되어 나타난 형질이다. 배아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네 개의 아치 형상의 구조가 인간에게는 두개골과 목과 귀로 발달하고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발달한다.  인간과 근접할수록 유전자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되며, 물고기의 것으로부터 인간의 것으로 기관이 진화해온 과정은 유전자에서도 변화의 궤적을 읽을 수있다. 

물고기에서 진화의 시원을 한 단계 더 올라가 다세포 박테리아와 인간의 기관을 비교한다. 인간의 몸의 조직은 다세포 박테리아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와 세포를 결합하여 조직하는 방식 역시 박테리아 동일하다. 다세포 박테리아는 세포들 사이에 기능의 분화를 이루면서 전체의 생존을 돕는데 이는 인간의 다양한 기관과 유사한 원리이다. 지구의 생물계가 어떻게 단세포 박테리아에서 다세포 박테리아로 진화했는지에 대해, 지구의 대기중에 산소 농도가 증가하여 생물체들이 에너지를 더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콜라겐이라는 세포를 구성하는 복잡한 물질을 만들 수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각기관, 시각 기관, 청각 기관, 각각에 대해 물고기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후각 기관은 물고기보다 훨씬 더 많은 냄세를 판별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냄세 분자 각각을 판별하는 수천개의 유전자를 통해 냄세 판별기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이 냄세 판별기관을 제어하는 유전자의 상당수가 비활성화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의 감각의 70%를 시각에 의존하는데, 이는 육지에 사는 동물인 인간의 생존에서 냄세의 중요성은 쇠퇴한 반면 시각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칼라를 구별하는 시각 능력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지구 식물의 변화에서 단순한 색의 나무만 존재하다가 다양한 칼라의 식물, 예컨대 꽃과 열매 등이 많이 출현하게 되면서 칼라를 구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각 기관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동물의 기관이 돌연변이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긴 연결고리의 맨 끝에 있다. 이것은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원래 물에서 사는 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변이를 통해 뭍에서 사는 환경에 적응되도록 변화되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뭍에서 사는 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들었다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비효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의 머리와 목과 척추를 연결하는 신경 섬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는 원래 물고기의 머리와 아가미를 근처에서 연결하던 신경 조직이 변화되면서 복잡해진 것이다. 

인간은 유인원이 된 이후에도 진화 과정의 대부분을 수렵채취의 단계에서 생활했으므로 현대의 생활에 부적합한 몸을 갖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질병이나 문제를 바로 이러한 진화의 긴 연결고리를 통해 설명한다. 비만, 심장질환, 고혈압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이 수렵 채취에 적합하게 빚어진 몸에 맞지 않아서 일어나는 질병이다. 인간의 딸꾹질은 인간이 물고기와 올챙이로부터 진화해 온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잔재이다. 올챙이는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면서 동시에 폐로 공기호흡을 한다. 물을 흡입하여 아가미로 보내면서 동시에 폐를 막는 동작을 하는 데, 바로 이것이 인간의 딸국질과 동일한 동작이다. 딸꾹질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보았다. 저자는 인간의 몸은 생물의 역사를 온전히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반인의 흥미를 돋우도록 설명을 하지만, 인용하는 설명은 체계적인 연구 성과에 근거한 것들이다. 왜 그런지하는 의문을 해명하는 데 주력한다. 과학을 한다는 것이 실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논의하는 것은 매우 세세한 것들이다. 그런데 생물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에 이 세세한 것들이 핵심적인 증거가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과학활동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흥분을 읽는다.

2019. 10. 25. 13:36

Carl Benedikt Frey. 2019. The Technology Trap: Capital, labor, and power in the age of autom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366 pages.

경제사학자인 저자가 18세기의 산업혁명과 근래에 전개되는 정보기술 혁명을 비교하면서, 정보기술 혁명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한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두가지 다른 성격의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replacing technology)이며, 둘째는 기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enabling technology)이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기존 노동자의 저항에 직면하는데, 정치권은 노동자의 불만이 초래할 사회적 불안을 염려하여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는 조치를 취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술 발전이 더디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을 대체하는 신기술의 도입을 기존의 노동자와 정치권이 막았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산성을 높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제시되었지만, 이것이 실제 생산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기존의 지배층은 노동 생산성이 향상됨으로 거둘 수 있는 이익은 많지 않은 대신, 기존의 지배 체제가 노동자들의 폭동으로 흔들릴 때 치러야 할 위험과 희생이 크기 때문에, 기존 노동자들이 신기술을 폐지할 것을 요구할 때  번번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은 이전과 다른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부르조아 상공인은 토지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항해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들은 노동을 대체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로 이득을 얻는 집단이다. 반면 중세의 길드 조직에 뿌리를 둔 숙련 노동자들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보급되면 양질의 일자리를 잃는 집단이므로 격렬하게 신기술 도입에 반대했다. 19세기 초반 영국을 휩쓴 러다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은 방직업을 중심으로 일어 났는데, 이는 기존의 수공업적인 방직 생산을 기계 생산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방직 기술자들은 일자리를 잃은 대신, 방직 기계를 돌리는데는 아동이나 여성과 같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숙련 노동자를 억압하고 부르조아 상공인의 편에 섰다.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해외시장을 놓고 군사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국부를 축적하는 것이 이러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기와 내연기관이 개발되면서 전개된 소위 제 2차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백년 전에 전개된 산업혁명과 달리 기존의 노동자들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전기와 자동차는 기존의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전기는 기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면서 기존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동차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소비자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으므로 역시 노동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한편 19세기 후반 전개된 농업의 기계화는 기존의 농업 노동자의 일을 기계로 대체하였다. 그러나 농촌에서 쫒겨난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급속히 확대되는 보다 양질의 새로운 산업의 일자리에 흡수될 수 있었기에 농업의 기계화 역시 큰 저항 없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래 전개된 컴퓨터 및 통신기술의 보급과 세계화는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에서 교육수준이 낮거나 연령이 높은 노동자들은 기존에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낮은 임금의 서비스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실업의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이 산업 현장에 도입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다. 교육수준이 높은 고급 기술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기술이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향유하는데 비해, 교육 수준이 낮은 낮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기술로부터 갈수록 더 배제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교육수준이 낮은 기존 노동자의 저항이 예상되는데,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이나 유럽을 휩쓰는 포퓰리즘 정치인의 부상이 바로 이러한 징후이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생산에 적용되는가 여부는 기술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신기술이 도입될 때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과거 역사는 이러한 대응이 적절치 못할 때, 아무리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일 좋은 기술이라도, 단기적으로 노동자들의 큰 저항에 부딛쳐 좌절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책의 말미에서 근래에 인공지능의 보급으로 초래될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해 논의한다. 교육과 기술 훈련 투자를 높여 노동자의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기술 대체로 밀려나 실직하거나 열악한 일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나서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즉 신기술의 충격에 대해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여, 희생을 분담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책은 산업혁명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영국에서 노동 대체 기술이 어떻게 보급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반면 근래에 전개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는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과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저자의 주장과 같이 뚜렷이 구분될 수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만 단기적으로 사회적 저항에 부딛친다면 그러한 기술은 적용되기 어렵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보듯이, 이 상황이 19세기 초 영국이 처한 상황 즉, 격심한 국제경쟁의 상황과 유사하다면, 미국의 정치권이 생산성 향상을 초래하는 AI 기술의 보급을 노동의 편에 서서 막을리 없다. 미국의 지도층은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상공인의 편에 서서 국제경쟁에 우위를 차지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불평등이 확대되겠지만, 미국의 노동 계층은 개발도상국의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정치력을 크게 갖지 못할 것다.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 역시 입으로는 노동자의 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기업인의 편에서 미국 경제의 힘을 키우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미국은 중국과 같은 후발국의 추격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 혁명이 노동자의 반대에 부딛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미국의 낮은 기술의 노동자를 배제하고 그들의 반대를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낮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숫자가 많으므로 쉽게 배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저항과 갈등 미국의 정치와 경제의 효율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길게보면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선진국이 앞서가는 속도는 둔화되는 대신, 후발국 특히 중국의 추격이 지속되면서 선진국과 후발국간의 격차가 좁혀지게 될 것이다. 모든 개발도상국이 이러한 후발국의 열차에 같은 속도로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도 경제가 고도화될 수록 미국과 흡사한 갈등으로 경제와 정치의 효율성이 약화될 것이다.

2019. 10. 20. 12:38

Christopher Steiner. 2012. Automate This: How Algorithms took over our markets, our jobs, and the world. Penguin Group. 220 pages.

포브스의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그동안 쓴 글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흥미를 북돋우는 사례 중심으로 서술한다. 기존에 인간이 하던 분야에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변화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증권 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중심을 차지하며, 기타 분야는 서술의 양이나 깊이가 얕다.

헝가리 이민자인 토마스 피터피가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증권 거래에 알고리즘 거래 방식을 도입하여 엄청나게 큰 돈을 번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알고리즘 거래 전문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증권가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그의 회사는 특이하게도 엔지니어와 수학자를 주로 고용하여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키는데 전문인 회사이다. 알고리즘 거래와 연관된 이야기로, 시카고에서 뉴욕에 걸쳐 직선거리의 광통신을 깔아 속도를 매우 중요시하는 알고리즘 거래 회사를 상대로 크게 돈을 번 이야기를 한다.

두번째 사례로는 알고리즘으로 음악을 분석하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작품이 시장에서 성공할지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성공한 이야기와, 알고리즘으로 고전 음악을 작곡하여 인간이 만든 작품 못지 않은 호평을 받았으나 비판에 직면한 이야기를 한다.

세번째 사례로는 게임 이론을 적용한 알고리즘의 세계를 소개한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알고리즘으로 예측하여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이야기, 포커게임을 개발하거나, 신장이식 기부자와 수용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개발한 이야기를 한다.

네번째 사례로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하는 세계를 소개한다. 심리 검사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 자료를 이용해 NASA에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우주여행이나 업무에 적합한 성격의 사람을 가려내고 갈등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활용한다. 알고리즘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자료로 활용하는데 콜센터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데 적용하며, 고객을 분류하고 그에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데 사용한다. 사람들의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에서 쓰는 언어를 분석하여 고객이나 직원의 성격을 파악하고 문제의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적절한 세일즈 전략을 선택하는데 사용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의료 영역에서 환자를 진단을 하고 투약을 하는데 활용하며, 스포츠에서 선수를 선발하는데 사용하며, 법률회사에서 적절한 법규나 판례를 찾아내는 데 활용하는 등등.

마지막으로 월스트리트와 실리콘 밸리가 우수한 엔지니어와 수학자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양상을 서술한다. 1990년대 알고리즘 거래가 붐을 이룰때 월스트리트로 인재가 몰렸으나,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실리콘 밸리로 인재가 몰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알고리즘을 정교화하는 일은 돈은 많이 받지만 그들의 재능이 사회를 바꾸는 데 활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유감이라고 서술한다.

이 책에 나온 사례는 저자가 탐사보도 기사를 쓰기 위해 직접 인터뷰한 것에 바탕을 두었다.그래서 현장 감각이 살아 있으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논의의 깊이는 깊지 않으며,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열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알고리즘이 얼마나 어떻게 활용되며, 알고리즘 적용에서 어떤 문제를 노출하며, 어떻게 인간과 협업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증권 거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깊이가 있으나 다른 분야는 인상적인 서술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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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8. 13:50

Don Norman. 2013.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Basic Books. 298 pages.

인지심리학을 응용한 산업디자인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가 산업 디자인의 기본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물건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잘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인간의 심리적 속성을 무시하고 이것에 어긋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심리 속성에 잘 맞고 사용하기 편하도록 만든다는 원칙을 인간 중심 디자인 Human Centered Design 이라고 하며, 이것이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인간과 물건이 서로 잘 소통하면서 인간의 의도에 맞게 물건이 잘 반응하고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일을 반복해서 하는 데 쉬 실증을 내고 실수하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여러 숫자나 정보를 기억하는 데 한계가 크다. 만일 물건이 이러한 것을 사용자에게 요구한다면 사용자는 실수와 좌절하는 느낌을 거듭 받을 것이다. 기계는 반복적이고 논리적인 업무를 잘 수행하는 반면, 인간은 변화나 창의적인 생각하는 내는데 능하다.  인간과 기계가 서로 협업을 하면서 서로 잘하는 부분을 보완한다면 업무 수행 능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인간이 머리 속에 단기에 기억하는 용량이 매우 작기 때문에 인간이 필요한 정보를 모두 기억하여 물건을 사용하도록 설계해서는 안된다. 사용자가 많은 것을 기억해서 조작하도록 하면 실수를 하며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인간이 기억해야 하는 부분은 가급적 최소화 단순화하는 대신, 물건 속에 필요한 정보가 가급적 많이 녹아 있도록 해서, 물건이 사용자의 의도에 맞추어 알아서 작동하도록 설계 한다.

일단 어떤 물건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 비록 그것이 효율성에 약점이 있다해도 계속 수용되는 관성을 갖는다. 소비자들은 매우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므로, 이러한 관성은 깨기 어려우며, 변화는 점진적으로만 이루어진다. 과거에 그 물건이 개발될 때는 어떤 기능이 효율적이었더라도, 이후에 상황이 바뀌면 이것이 비효율적이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서 얻는 이득이 기존에 익숙한 것을 버리는 비용보다 많을 때에만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에 변화는 서서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물건을 개발할 때는 두개의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사용자가 어떤 욕구를 갖는지 파악하는 단계이며, 두번째는 그 욕구를 어떻게 물건이나 서비스로 적절히 구현해 낼지이다. 사용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길은 실제 기존에 유사한 물건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에서 참여 관찰을 하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를 파악해야 하며, 일단 신제품 개발의 대상이 될 소비자 욕구를 확정지은 다음에는 신제품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 단계를 거쳐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 한뒤 개선하는 과정을 여러번 반복해야만 제대로 된 물건이 만들어진다. 책상에 앉아서 소비자의 욕구를 추정하고 물건을 설계하여 시장에 내놓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신제품 개발의 현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쓰임새(usability)만을 고려하여 소비자가 쓰기에 좋도록 최선의 물건을 만든다는 원칙을 지킬 수 없다. 예산과 납기의 제한 속에서 신제품 개발이 이루어지며, 팔리는 것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소비자의 사용 가치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소비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사용을 방해하기 까지 하는 새로운 기능이 들어가는데, 이는 경쟁업체를 의식해 구매를 자극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되는 것이다.

업무 현장에서는 원칙대로 하면 일이 수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장치나 안전 절차를 많이 만들어 놓아도 이 안전 장치를 모두 지키면서 하면 일이 완수되지 않기에 일부러 안전 장치나 절치를 무시하고 일을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일이 잘 못되면 그렇게 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일이 잘 못되었을 때, 일을 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릇되다. 일이 잘 못되는 근본 원인은 일을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여러 원인이 중첩되어 일이 잘 못되기때문이다. 일이 잘못될 때 담당자를 문책하기보다 담당자가 그렇게 일을 하도록 만든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근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담당자만을 문책하고 덮어버리면, 뒤에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또 유사한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왜냐하면 물건 혹은 일 자체가 담당자의 잘못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일을 잘못한 담당자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일이 잘 설계되어 있다면 그가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근본 원인을 사람에게 귀착시키는 것은 그릇되다.

저자는 산업디자인 분야의 학자에서 출발하여 산업 현장의 디자인 전문가로 활동하고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러한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이 책은 디자인 이론과 산업 현장에서 전개되는 비즈니스 현실을 융합하여 어떻게 산업 디자인을 할 것인가 라는 실천적 질문에 답한다.  쉽게 쓰여져 있고 사례를 들며 설명하여 그의 논지가 빠르게 다가온다. 한국을 긍정적으로 여러번 언급하는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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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Floris Cohen. 2015. The Rise of modern science explained, a comparative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6 pages.

이 책은 서구의 과학혁명을 전공한 역사가의 방대한 저작을 일반 독자가 접근할 수있는 버전으로 축약하여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17세기에 서구에서 전개된 과학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왜 서구에서 그 시기에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17세기 과학혁명의 시원은 그리스의 자연 철학에서 부터 출발한다. 그리스의 자연 철학의 전통은 세갈래로 나뉘는데, 첫째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자연 철학으로 이는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연역적으로 자연과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 지향의 지식 체계이다. 둘째는 그리스인이 이주한 알렉산드리아에서 전개된 수리적 방법으로 자연과 세계를 설명하는 역시 이론 지향의 지식체계이다. 셋째는 그리스 시대 이후에 새로이 나타난 탐구 방식으로 면밀한 관찰을 통해 실용적 지식을 지향하는 지식 체계이다.

그리스의 자연 철학은 이슬람에 의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지식 체계를 확장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원인으로 저자는 11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인하여 자연에 대한 지적 탐구가 좌초되었으며, 외부 세계가 아닌 내부의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쪽으로 지적 활동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서구는 13세기까지 기독교의 종교적 독단이 지배하는 지적으로 암흑의 세계였다. 서구는 어떻게 이러한 종교적 독단의 족쇄에서 풀려나게 되었을까?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시작된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재발견하는 지적 움직임이 그 시작이다. 기독교의 독단적 권력은 16세기 초반까지도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기독교의 독단에 의해 억압되었으며, 이후의 학자들도 교회 권력의 탄압을 의식해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서유럽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었고, 로마 교회의 권력에 대항하는 세속적 군주의 힘이 점차 커지면서 학자들은 탐구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다.

저자는 왜 과학 혁명이 중국이 아닌 서유럽에서 일어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은 단일 권력에 의해 계속 지배되어 온 반면, 서구는 여러 나라에 의해 갈려 있었고, 또 그리스에서 이슬람으로, 그리고 북이탈리아에서 대서양 연안 지역으로 지적 활동의 중심이 바뀌고, 서유럽 내에서도 여러 나라로 나뉘어지면서, 중심이 바뀔 때 마다 새로이 해석되고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발전이 이루어진 반면, 중국은 이것이 불가능했던 것이 중국의 지적 발전을 저해했다. 또다른 차이로 서구 문명은 자연과 세계를 향한 외적인 지향을 추구하여 지적 활동은 물론 경제나 해외 탐험 등에서 새로운 발견을 추가하고 발전시킨 반면, 이슬람이나 아시아는 내적인 지향을 추구하여 지적 활동이나 경제가 확장성이 부족했다.

17세기에 들어 서구의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유래한 수리적 접근과 아테네로부터 유래한 자연철학적 접근을 융합하였으며, 거기에 관찰과 실험을 중심으로 한 베이컨의 경험주의를 융합하여 현대 과학방법론을 완성하게 되었다. 17세기에 이러한 지적이 발전이 이루어진 이유는 16세기에 종교혁명 이후 전유럽을 휩쓴 정치적인 혼란이 가라앉아 안정을 되찾았으며, 종교혁명 이후 교회로부터 독립하여 힘을 얻은 각국의 군주들이 과학발전을 통한 국력의 확장을 지원하려 한 것이 지식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말이 대표하듯이, 현대 과학은 지식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인간에게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적 지식이 실용적 응용을 통해 직접적 이익을 가져온 것은 18세기에 들어서 이지만, 이전에 지배하던 종교적 교리나 이론적 담론에서 벗어나 엄밀한 관찰과 실험을 동원한 객관적 검증을 통해 자연과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 탐구방식은, 발견이 새로운 의문점을 낳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발견을 낳는식으로 지식이 계속 확장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동일한 주제로 저자가 쓴 방대한 책을 요약한 것이라서 이 책 자체만 보면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다. 특히 문체가 난삽하여 읽어나가기가 어렵다. 복문에 복문이 중첩되고, 삽입구가 많고, 구문을 주어로 사용하는 문장들로 가득찬 글은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다. 천체와 물리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구체적 논쟁이 서술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디테일을 쫒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질문, 즉 왜 전통 사회의 지적인 정체를 극복하고 과학 방법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에서 여러 요인이 지적되었지만, 한마디로 하면 개방성과 다양성에서 서구가 동양을 앞섰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회가 폐쇄적 배타적이 되는 순간 지적인 활동은 정지한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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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30. 21:10

Charles Duhigg. 2012. The Power of Habit: Why we do what we do in life and business. Random House. 286 pages.

뉴욕타임즈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인 저자가 다양한 사례 연구 결과와 저자의 직접 인터뷰를 섞어서 사람과 조직의 습관과 관행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대중적인 심리학 책이다. 습관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의 행위의 대부분은 습관에 따라 진행된다. 습관은 세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는데 신호(cue), 관행(routine), 보상(reward)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신호를 접하면 루틴에 빠져드는데, 보상에 대한 갈망이 이러한 습관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저자는 습관을 세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첫째는 개인의 습관이며, 둘째는 조직의 관행이며, 셋째는 사회의 관습이다. 사람들은 보상에 대한 갈망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보상을 충족하도록 굳어진 루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습관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여, 어떤 보상을 추구하며, 어떤 신호에 접하여 나쁜 관행을 반복하는지 정확히 파악한다면, 루틴에 빠져드는 신호에 접해 다른 행위로 유사한 보상을 얻도록 훈련을 반복함으로서 나쁜 습관을 고칠 수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지가 있으면 신호에 접해 나쁜 루틴을 반복하는 대신 미리 계획한 다른 행위를 실행에 옮길 수있으며, 이것이 반복된다면 옛날의 나쁜 루틴은 새로운 루틴으로 대체된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을 알코홀릭 어너니머스 모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알콜중독에 빠진 사람이 이 모임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자신의 나쁜 습관을 분석적으로 검토하면서, 그가 어떤 신호에 반응하여 알콜을 마시게 되며, 어떤 보상을 추구하는지를 파악한다. 그 모임을 통해 집단으로부터의 지지라는 보상과 보다 큰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보상을 얻고, 술이 땡기는 금요일 저녁에 술을 먹는 대신 규칙적으로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 모임의 성공 요인이다.

조직이 나쁜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쁜 관행의 바탕이 되는 작은 관행(keystone habit)을 바꾸는 것이 유용하다. 알미늄 제련 대기업인 알코아의 사례에서 새로온 사장이 작업장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조직을 바꾸어나간다. 근본이 되는 관행을 바꾸면 이것이 여타 다른 나쁜 관행을 바꾸는 쪽으로 파급효과를 미친다. 문제는 무엇이 나쁜 관행의 바탕이 되는 작은관행이냐 하는 것인데,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것을 사전에 미리 알기는 어렵다. 조직의 나쁜 관행이 바뀐 다음에 돌아보니 그 때 그것을 바꾼 것이 변화의 촉발점이었다고 알게 될 뿐이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난 사후에 어떤 것이 변화를 이끄는 계기였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는 주장이다.

조직의 나쁜 관행을 바꾸는 것은 평상시에는 어렵지만 조직이 위기 상황에 몰렸을 때는 가능하다. 런던의 지하철 공사가 관료조직의 경직성에 매몰되 고객의 안전을 등한시하였는데, 큰 화재사건을 계기로 안전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관행을 바뀌었다. 사회의 관습을 바꾼 예로 미국의 민권운동의 촉발점이 된 몽고메리시의 버스보이콧 사건을 검토한다. 로자 파크가 가진 광범위한 관계망이 바로 개인적인 사건을 시전체의 보이콧 사건으로 확장시킬수있게 한 요인이었다고 분석한다. 로자 파크의 넓은 관계망은 버스보이콧이라는 대의를 널리 확장시켰으며, 이것을 수용하도록 흑인 공동체에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집단 압력은 사람들의 관행을 바꾸도록 만드는 중요한 힘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의지와 습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도박벽 때문에 파멸한 것을 그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도박이 가져오는 심리적 보상을 회피하기 힘들다고 하여도 선택의 여지가 개인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는 벌받아 마땅하다.

책의 부록에서 습관을 어떻게 바꿀 것이가에 대해 조언을 준다. 요지는 자신의 나쁜 습관이 작동되는 기제, 즉 신호와 보상을 면밀히 분석해, 어떻게 하면 나쁜 습관을 반복하게 만드는 신호를 접할 때, 다른 행위를 통해 유사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해보고 그중 성공하는 방법을 반복하면 나쁜 습관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망라하면서 얕은 수준의 설명을 쏟아내기에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과학 상식을 넓히면서 가볍게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저자의 분석이나 설명은 피상적이며, 자신의 주장에 맞는 면만 골라서 제시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크지 않다.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 베스트 셀러라거나 올해의 책이라고 추천하는 것이 다 내용이 풍부하지는 않음을 확인한다.

2019. 9. 28. 22:57

Matthew O. Jackson. 2019. The Human Network: How your social position determines your power, beliefs, and behaviros. Pantheon Books. 240 pages.

저자는 인간의 관계망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자로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학술 성과를 그래프와 함께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항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며, 이 관계망은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침을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로 보여준다.

먼저 관계망을 어떻게 측정하고 유형화할지에서 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유형은 다양한데, 중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지는 망이 있는가 하면, 고리 모양으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 망이 있다. 큰 집단 내에서도 분절된 망이 여럿 나타나는가 있는가 하면,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망으로 연결된 경우도 있다. 큰 집단 내에서 하부적인 작은 망이 여럿 존재한다.

관계망의 영향과 관련해 몇가지 주요 사례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첫째는 질병이 퍼지는 양상이다. 질병은 망의 연결점을 타고 관계망 전체에 빠르게 퍼진다. 중심 인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수평적인 관계망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감염되는 속도는 무척 빠르다. 둘째 사례는 금융 시장의 메카니즘이다. 인도의 소액 대출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런 담보가 없어도 관계망이라는 신뢰 보장 장치가 탄탄한 신용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성공하였다. 반면 2008년의 금융위기나 1930년의 대공황은 사람들과 금융 기관들간의 관계망을 통해 신용 붕괴의 두려움이 확산되면서 전체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금융 거래가 지나치게 소수의 대형 기관에 집중될 경우 위험의 분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 곳에서의 충격이 금방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된다. 금융 위기를 겪으면 위험이 분산되도록 집중을 규제하는 조치가 내려지나,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규제는 무력화되고 다시 금융이 집중되면서 큰 공황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세번째는 관계망은 불평등을 고착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관계망 형성의 기반은 homophily 즉 류류상종의 선호이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것이 관계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 것이 장래에 좋으리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성취하고 대학을 가게 되는지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기 때문에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중류층은 부모와 주변 사람들로 부터 이러한 유용한 정보를 꾸준히 얻고 이러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여 성공한다. 빈부의 격차가 세대간에 이어지는 것은 부를 직접적으로 물려주는 요인보다는 바로 이렇게 정보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요인이 훨씬 크다. 류류 상종은 거주, 일자리, 교육, 소비 등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성, 인종, 연령, 종교, 교육, 소득, 직업 등 중요 차원에 걸쳐 사람들의 교류 관계를 나누어 놓는데, 바로 이것이 불평등을 고착 시키고 확대하는 중요 원인이다.

네번째 사례는 친구나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이다. 사람들간에 관계망의 밀도가 높을 수록, 특히 공통의 친구가 있을 수록 서로 간 신뢰의 정도가 높고 안정된 거래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류류상종하기 때문에 자신과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것은 사람들의 의견을 양극화하는 경향을 낳는다. 특히 sns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화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세계화는 사람들간의 소통을 높이고 나라들간에 경제 의존도를 높임으로서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지적한다. 근래에 보호무역주의가 높아지면서 나라들간에 경제 의존도가 낮아지면 평화를 깨는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우려할 일이다.

이 책은 전문 학자가 자신의 연구 분야를 일반인에게 비교적 쉬운 용어로 설명하는 성격의 책이다. 저자가 일반인이 이해할수 있는 수준으로 전문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일반 교양서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240쪽의 본문을 쓰는데 주석과 참고문헌이 90쪽에 달하는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관계망이라는 주제는 흥미있고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흥미있는 예를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를 학술 연구 성과를 인용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지만, 많은 주제를 주마간산식으로 다루었다는 비판의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관계망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이해를 높이는 흥미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2019. 9. 24. 14:43

Naomi Klein. 2009. No Logo. 10th anniversary edition. Picador. 458 pages.

이책은 1990년대 중후반에 걸쳐 공정무역 fair trade를 구호로 선진국 사회 전반에 퍼졌던 다국적 기업과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배경과 전개 양상을 잘 서술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에서는 다국적 기업들이 선진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일을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에 넘겨버리고, 대신 브랜드와 같이 상징과 이미지를 다루는 일에 집중하는 경향을 서술한다. 어떻게 브랜드를 관리하는 일이 다국적 소비재 기업 활동의 핵심이 되는지 다양한 예를 동원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후반부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의 하청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 행위에 대해 선진국 소비자들이 가두 데모나 불매운동 등으로 압박하여 그들을 굴복시키는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는 나이키 스포츠 용구 회사를 대표적인 사례로 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운동화를 생산하는 일을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에 넘기는 대신, 그의 회사는 나이키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사업에 전적으로 몰입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1990년대 중반 동남아에서 이들의 제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아동 노동, 억압적인 고용관행, 착취적인 저임금이 서구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이는 1980년대 이래 선진국 회사들이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실업이 늘어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등 서구에서 탈산업화가 동반한 문제와 짝을 이룬다. 세계화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전에 없던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 주었지만 선진국 사람들의 눈에 그러한 일자리가 착취적 노동으로 비춘 것은 당연하다.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 공장의 착취적인 노동 상황에 대한 반발이 서구 사회에서 크게 탄력을 받은 것은, 기업의 윤리를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의 측면과 함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선진국 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함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운동이지만, 내면은 개발도상국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뺏긴데 대한 반발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으로 보면, 착취적 노동이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낫다. 공정무역을 주장하며 세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국제회의장에서 대규모 데모를 벌이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소비재를 취급하는 다국적 기업은 선진국 전반으로 퍼진 시민단체, 노동단체, 학생들의 불매 운동에 굴복하여 윤리 헌장을 도입하였으며, 개발도상국 공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저자는 다국적 기업들이 브랜드 구축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한 것이 바로 그들의 비윤리적 기업 행위에 대한 비판에 취약해진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1990년대 이전에도 기업은 비윤리적인 활동을 했으나 일반 시민들은 이를 응징할 수단이 제한되 있었다. 정치권은 대기업의 돈을 받고 그들의 편이었으므로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를 규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소비재를 취급하는 대기업이 제조 부문을 떨어버리고 브랜드를 가장 큰 기업의 가치로 만드는 순간, 그들은 소비자들의 비판에 취약해 진 것이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이러한 일반 시민의 저항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비윤리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다국적 기업의 행태에 얼마나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고 질문한다. 그러한 착취적 일자리가 지속되는 이유는 개발도상국의 빈곤에 있다. 착취적인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이상 그러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1990년대에 뜨겁게 전개됬던 공정무역 운동의 열기를 이제 선진국 사회에서 찾아볼수없다. 뒤돌아보면 1980년대 이래 세계화 과정에서 많은 저임금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으로 넘어온 덕분에 중국을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빈곤이 현저히 줄었고, 그것이 그 나라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를 하였다. 한국이 대표적인 예이며, 중국이 뒤를 잇고 있다. 공정무역 운동이 선진국 시민들에게 개발도상국의 비참한 삶의 현장에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이 반대한 세계화가 바로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개선시키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 물론 그 와중에 다국적 기업과 선진국의 엘리트들이 크게 돈을 벌면서 부의 집중이 더 가속화되기는 했지만.

2000년에 이 책이 출간되고 크게 관심을 모았으며,  출간 10년을 기념하여 길게 쓴 후기를 덧붙였다. 그 후기에서 저자는 이 운동이 얼마나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고백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비윤리적 활동의 배경인 자본주의와 신보수주의 정책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저항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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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6. 21:14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Collins. 402 pages.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동물의 위치에 올라섰다. 인간은 개체로 보면 어느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가 아니지만, 협동과 조직을 통해 집단으로서 개체의 능력을 뛰어 넘는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생물계를 지배하고 급기에 자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는 바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의 세계는 인간이 왜 그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반면 종교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력이 확장되면서 신의 존재는 과거와 같은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과학 기술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의 권능이 높아지면서 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인간 자신을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놓는 인본주의 Humanism 가 지배하게 되었다. 인본주의는 모든 옳고 그름, 좋고 나쁨,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판단의 중심에 인간의 생존과 감정과 체험과 행복을 두는 세계관이다.

인간의 능력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영생과 행복과 자연과 세계에 대해 더 큰 영향력 혹은 권력을 추구한다. 저자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적 능력과 생물학적 기능을 결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인간의 능력이 업그레이드된 초능력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 에너지 넘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살고, 더 지능이 높고, 더 집중을 잘하고,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 많은 복잡한 정보를 신속히 처리하고, 더 추상화된 생각을 할 수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기체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점차 고도화된 알고리즘의 덩어리이며, 삶이란 정보처리 과정이다. 우리의 삶이란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수록 고등동물이 되는 것이고, 인간의 두뇌는 생물계에서 정보처리를 가장 잘 하는, 다른 말로 하면 지능이 높은 존재이다. 생물체의 감정이란 것은 매우 효율적인 알고리즘이다. 예컨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정보처리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하는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가 더 많은 정보를 더 정확히 처리하게 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의사결정을 컴퓨터에게 점점 더 맡기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모순된 욕구와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컴퓨터로 구축된 정보처리 시스템이 더 정확히 나에 대해 알고 나의 복리를 위해 판단을 하는 경향이 높아질 것이다.

엄청난 양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더 시스템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 인본주의는 붕괴하게 된다. 그 시스템이 여전히 인간의 복리를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 이념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므로 컴퓨터의 판단이 인간의 어떤 부분에 봉사하는가가 불분명할 것이고, 시스템의 판단과 결정과 실행이 개별 인간의 복리에 반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컴퓨터에 기반한 정보처리 시스템은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유기체보다 한단계 앞서 나간 존재로 등극할 수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는 결국 알고리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물체가 가진 의식(consciousness)은 없지만 지능(intelligence)은 있는 무생물체의 알고리즘이 생물체의 알고리즘을 능가하는 세상이 올 수있다.

인간 사이에서 초능력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못한 보통 인간으로 구분된 위계가 형성된다면, 보통 인간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처리 시스템이 과거에 보통 인간이 하던 일을 모두 맡아서 처리할 것이고, 소수의 초능력 인간들만이 시스템에 의해 대체 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산과 전쟁에 보통 사람들의 기여가 중요하였기에 보통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나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이념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생산과 전쟁를 정보처리 시스템이 관장하게 되고 보통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면 이들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더이상 정당성을 확보할 수없다.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고 단순히 소비만 하는 존재라면 그들이 있어야 할 이유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권, 자유라는 개념이 내동댕이 쳐질 것이다. 초능력을 가진 인간은 보통 인간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은 나이임에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책, Sapiens 를 읽고 감탄했던 만큼 이 책이 놀라운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의 끝까지 가보고, 이를 용감하게 쓸 수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내용만이 아니라 문체 또한 부드럽게 그러나 논리적으로 명징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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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3. 10:50

Wilber Zelinsky. 2001. The Enigma of Ethnicity: Another American Dilemma. University of Iowa Press.

문화지리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인종민족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를 분석한 학술서이다. ethnicity 는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되는는데, 특징이 구별되는 집단을 ethnic group 민족 집단이라 하고, 그렇게 스스로 구별하고 주변 타자들이 구별을 짓는 특성을 ethnicity라 한다. ethnicity 는 주류 집단이 타자를 구분짓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주류 집단인 영국계는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민족 집단으로 구별짓고 편견과 차별을 가하였다. 독일계, 북유럽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랜드계, 유대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영국계 자신에 대해서는 이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ethnicity는 집단간에 권력의 차이, 위계적인 질서를 반영한다. 유럽의 영국이외 지역 출신의 이민자 후손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에스닉 집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백인 미국인이라는 개념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즉 ethnicity 가 탈색되고 주류 집단으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 이래 ethnicity에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다양한 민족 출신, 특히 이탈리아계나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자신의 민족성에 다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는 symbolic ethnicity 상징적 민족성일 뿐이다. 이는 삶의 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문화적 취향을 취사선택하는 것, 즉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에 불과하다. ethnicity 와 함께 따라다니던 열등함이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편히 택할 수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의 구속력은 미약하다.

중남미계, 아시아계, 특히 흑인들의 경우 ethnicity 의 구속은 가까운 시일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설사 사회경제적으로 백인 주류에 동화한다고 하여도,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적 특성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명찰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는 인종주의를 쉽게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종주의는 백인에게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백인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까운 시일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되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퍼지면서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문화를 진정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가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정 집단의 문화는 그 집단의 권력관계에서의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권력을 주도하는 집단과 이에 대응하는 하급의 집단이 존재하며 이는 문화적 다양성에도 투영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주류와는 다른 소수자의 문화가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그것이 주류가 아니고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래 특정 지역과 연관되지 않고 여러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새로운 다문화 개체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민족, 이인종간에 결혼이 증가하고, 이민자들이 본국과 미국의 양쪽에 발을 디디고, 이민초기부터 지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고, 이민자 밀집 거주지를 형성하지 않고 흩어져 살면서, 서로간에 사회문화적 교류를 하는 집단은 미국의 백인주류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소수자 민족집단의 전형에도 맞지 않는다.이들은 분명 주류와는 다른 ethnic group이지만 그렇다고 열등한 성격의 ethnicity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다양한 민족들이 이민을 오고 서로 섞이면서도 변형되고 약화된 형태로 자신들의 다양성을 지속해 가는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특정 주류 집단과 피로 연결된 이념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구심점은 계속 유지될 것이지만 관습, 가치관, 음식문화 등은 다양한 민족 문화가 섞이면서 변형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강점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미국 문화의 구성은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반발하는 백인들의 움직임 역시 강해해지고 있지만, 이들이 미국 문화의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낙관주의자이면서 미국을 사랑하는 감정이 연구에 녹아있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서이기는 하지만, 미국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학식이 녹아 있다. 저자는 정말 많은 사례를 구구절절 나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미학을 표현한다. 물론 그의 낙관적인 예상이 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있다. 도날드 트럼프의 예에서 보듯이. 장기적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주는 체제의 강점을 계속 살려나갈까? 저자는 다양성을 긍정적으로보지만, 유색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달가운 명찰이 아니다. 백인의 반발이 큰 폭력 없이 다양성의 확대라는 흐름으로 흡수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보듯이, 권력 다툼의 장에서는 평화적 타협과 조화라는 결과는 역사상 예가 없다.  미국의 백인이 ethnic group의 일원으로 바뀌는 것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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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ea Pearl and Dana Mackenzie. 2018. The Book of Why: the new science of cause and effect. Basic Books. 370 pages.

컴퓨터 과학자이며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과학 활동에서 인과관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탐색할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가, 혹은 어떤 요인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는가하는 문제는 질문하기는 쉽지만 답을 하기는 어렵다. 그에 답하는 첫번째 과정은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는 사건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있는 요인을 발견했다고 하여 그것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예컨대 아이들의 신발 치수와 아이들의 문자 해득력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신발치수가 문자해득력을 초래한다고 추리하는 것은 오류이다. 숨은 제 3의 변수, 이 경우에 아이의 연령이 신발치수와 문자 해득력에 영향을 미친다.

상관도를 보이는 요인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원인은 결과 이전에 발생해야 한다거나, 원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결과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특정 결과가 일어나야 한다거나, 등의 판별 기준이 있지만 이 모든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경우에도 우리는 원인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저자는 과학활동은 인과 모델을 가지고 데이터를 접근해야지, 데이터 자체를 분석한다고 하여 인과관계를 추출해 낼 수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통계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지, 인과모델 자체는 통계 방법이 제시할 수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과 모델로 세상을 파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컴퓨터는 인과관계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 원인을 특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과학활동의 핵심이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원인을 특정하기 위한 작업에서 부딛치는 어려움을 상세히 설명한다. 인과모델을 효율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인과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역설한다. 패스 분석이나 구조방정식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인과 모델을 탐색하는 데에는 반드시 원인에서 결과쪽으로 검증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이 될 요인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하는 방식, 즉 인과의 흐름을 거꾸로 되짚어가는 방식은 매우 유용하다. 베이즈의 조건부 확율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설정한 인과모델에서 결과에 해당하는 정보를 알면 알수록 원인을 더 정확히 특정할 확률을 높일 수있다. 우리의 사고 체계는 인과의 흐름에 따라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과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인들의 확율을 특정하는 것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과의 흐름에 따라서 통제된 실험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사건을 관찰하여 분석함으로서 원인을 특정하는 방식은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은 과학 방법론 책으로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일반 교양서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전문 학술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인과모델을 제시하고 어떻게 각각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내용이 어렵기에 논의를 쫒아가기 힘들고 이해 안되는 부분도 많지만, 책 내용의 십분의 일만 이해했음에도 나의 연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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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6. 15:02

Bee Wilson. 2019. The Way We Eat Now: How the food revolution has transformed our lives, our bodies, and our world. Basic books. 306 pages.

저자는 푸드 저널리스트로 서구 사회에서 음식 섭취와 관련해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최신 유행까지 다양하게 건드린다.  저자는 '음식 혁명'(food revolution)이라고 부르는 근래의 변화에 대해 비판적이다. 음식혁명이란 이차대전 이후 서구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필요 이상으로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고 가공식품 중심으로 식생활이 바뀌는 현상을 지칭한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는 1950년대까지 전통적인 식생활이 지속되었다. 전통적인 식생활이란 자연 재료를 구입하여 집에서 직접 요리하여 먹으며,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를 중심으로 하며, 기본적으로 적정한 영양분의 식사를 하며, 지금과 달리 영양 과잉에 기인한 질병으로 고생한 사람은 드물었다. 

현재 서구인의 식생활은 저자가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Global Standard Diet)'라고 지칭하는 유형을 보인다.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이란, 다국적 회사인 식품 가공 대기업이 생산하는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식생활이 이루어지며, 당분과 나트륨과 지방이 많은 자극적인 음식 위주이며, 세끼의 정규 식사가 불규칙해지는 대신 간식을 많이 하며, 과거에 비해 음식 재료가 소수로 제한되는 편중된 식생활이다. 콜라나 쥬스와 같은 당분이 과다한 음료나, 케이크나 쵸콜렛과 같이 당분이 과다한 음식이나, 햄버거, 피자, 프랜치 프라이, 닭 튀김과 같이 지방이 과다한 식품은 과영양상태를 초래하여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인류는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당분과 지방을 적극적으로 선호하도록 진화했다. 우리 몸의 영양 상태와 무관하게 단 것과 기름진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은 음식이 넘쳐흐르는 현대 사회에서 독으로 작용한다. 

식품 대기업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이용하여 더 많은 자극적인 음식, 즉 당분, 지방, 나트륨이 많은 음식을 구입하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서구에서 이러한 식품 대기업의 꾀임에 그래도 덜 넘어간 사람들은 중상류층에 한정된다. 가난할 수록 야채와 같은 일차 식품을 구입해 요리할 환경이 안되고 여유가 없기에 패스트푸드와 싸구려 스낵을 주식으로 삼는다. 반면 상류층은 건강을 신경써 야채를 먹으려고 노력하며, 당분과 나트륨과 지방이 덜 들어간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 기업의 힘이 세고 소득 불평등이 높으며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달한 미국에서 비만한 사람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0년대 이래 전개된 세계화로 인해 다국적 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서구를 넘어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은 개발도상국까지 침투되었다. 남미 국가들에서 다국적 식품 대기업의 세력은 엄청나며, 아프리카와 인도에서도 서구 대기업의 가공식품이 전통적으로 일차 식품을 요리하는 관습을 대체해 가고 있다. 햄버거, 피자, 프랜치 프라이, 케이크, 콜라와 같은 서구 대기업의 가공 식품은 전통 음식보다 고급으로 대접받고 부유한 서구 사회를 선망하기에 개발도상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까지 없는 돈을 짜내서 콜라를 사 마시고 전통식품보다 햄버거를 선호한다.  

이 책에서 한국을 이러한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이 세계를 휩쓰는 경향에 예외적인 국가로 소개한다. 김치를 주식으로 하고 채소를 많이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은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생활이 서구화되는 개발도상국의 변화에서 예외적인 존재라고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인의 육류 소비양은 엄청난데.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영국사람인 것을 반영하여 주로 영국과 미국의 식생활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비서구 사회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언급하며, 저자가 잘 모르고 쓴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결론으로 육류를 적게 먹고, 야채를 많이 먹고, 가공 식품을 멀리하고, 당분과 지방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세끼 식사를 충실히 하는 대신 간식을 피할 것을 권고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지만,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비만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식습관을 개선하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탕세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을 읽으므로서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 서구의 식생활을 점검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저자의 지적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근래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음식에 관한 유행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에 예쁘게 나오는 요리를 찾아다닌다거나, 몸에 좋다는 다이어트 음식이나 음료 등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게 된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이기에 읽기에 편하게 글을 쓴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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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e Silver. 2012. The Signal and The Noise. Penguin Books. 454 pages. 

저자는 선거예측 사이트인 FiveThirtyEight.com의 운영자로, 2012년 오바마가 선출된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50개 주의 선거결과를 모두 정확하게 예측해 냄으로서 하루 아침에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예측의 달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의 예측의 기술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의 예측 기술의 핵심은 베이즈 공리, 즉 조건부 확률 이론에 입각한 통계적 예측이다. 기존에 알고 있는 정보에 입각하여 확률적 예측을 한 후, 새로운 유용한 정보가 나타날때마다 예측 확률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청소년 시절 야구를 매우 좋아 하였으며 야구 결과를 예측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관심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야구 결과 예측모델을 개발하여 프로야구단에 판매하기까지 하였다. 미국 프로야구는 극도로 정량화된 세계이다. 선수 개개인의 타율, 출루율, 방어율, 투수의 삼진, 사구 비율 등과 같은 기초적인 지표에서부터 개개 선수가 어떤 위치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에 대해 상세한 지표가 개발되어 수십년간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는 선수 개개인의 평가와 선발에 사용되며, 팀의 승패를 예측하는데 이용된다. 스포츠 선수 트레이드 시장이나 스포츠 게임의 승패를 두고 내기를 하는 시장 또한 규모가 크다. 이 책에서는 야구의 선수의 업적과 게임의 승패를 예측하는데 관한 설명이 다양한 사례를 사용하여 자세히 제시된다.  

예측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유용한 정보이고 어느 것이 랜덤한 요소인지를 구분해내는 일이다. 그는 이를 신호와 소음이라고 지칭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들로부터 유용한 패턴을 추출하는 작업은 단번에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점차로 정확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지금까지의 가용 정보를 기반으로 가능성이 높은 패턴, 혹은 가설을 만들고, 전개되는 사건이 이 패턴에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지에 따라 점차적으로 조정을 해가는 작업. 이는 다름아닌 과학적 연구방법이다. 발생한 일 중 많은 부분은 랜덤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랜덤하게 발생한 것을 패턴으로 혼동하기 쉽다. 무엇이 랜덤한 요인이고 무엇이 유의미한 패턴에 의해 발생하는지 사전에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의 두번째 직업은 포커 도박사였다. 포커 게임은 게임이 진행되면서 상대의 패의 범위를 읽어내고, 자신이 가진 패의 승률을 면밀하게 계산하여 콜을 할것인지, 상대의 콜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죽을 것인지를 판단해 낸다. 저자는 한 때 상당한 돈을 따기도 했으나, 프로 도박사의 세계에서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깨닫고 손을 떼었다. 이 책에서 포커 게임의 원리와 전문 도박사들이 어떻게 승율을 따지는지에 대해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저자를 유명하게 한 것은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그는 뉴욕타임즈에 그의 예측 결과를 보고하는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의 정확도가 어느 다른 선거 예측전문가 보다 높게 나타나 단번에 눈에 띠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모든 여론 조사를 반영하고, 지난 수십년간 벌어진 모든 선거 결과와 여론조사의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선거 시점으로 다가갈수록 유용한 정보의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 랜덤한 요인의 작용은 줄어들기 때문에, 예측의 정확도는 얼마나 선거에서 멀어져 있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책에서는 선거 예측 모델은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는 선거 결과 예측에 관해 별도의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거나, 혹은 현재 잘 나가가고 있는 사업의 비밀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또다른 예측 사례는 기상예측, 지진 예측, 기후변화, 이다. 저자는 이 주제에 관해 쓰기 위해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풍부히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주식 시장의 예측 또한 제법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고 하는 펀드들이 얼마나 시장 평균에서 벗어나는지, 모든 가용한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고 하는 완전시장가설이 얼마나 타당한지, 주가의 변동에서 유용한 패턴과 랜덤한 요소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에 대하여 저자 나름의 설명이 제시된다. 이외 테러 발생 예측에 대한 설명도 별도의 장에서 전개한다. 

야구 승률 예측에서 시작하여 포커 도박사를 거쳐 선거 결과 예측으로 성공한 저자가 자신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예측의 기술에 대해 솔직히 설명한 이 글은 제법 흥미롭다. 확률 이론서나 통계 교과서처럼 수식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설명이 체계적이며 관련 이론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보유하고 실전에 적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사례를 설명하는 서술에서 읽을 수있다. 그가 예측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읽다보면 예측이란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한 이성을 필요로 하는데, 예측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준에 도달한뒤 조금 더 나아가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약간의 향상을 이룰 수있는 지난한 작업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엄청나게 노력하여 성과를 거둔 사람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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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 Sapolsky. 2004. Why Zebras don't get ulcers: the acclained guide to stress, stress-related diseases, and coping. 3rd ed. St. Martins Griffin. 419 pages.

생물학자이며 신경생리학자인 저자가 스트레스의 작동기제와 관련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 과학서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로 쓴 교양서라고 하지만 스트레스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모든 기존 논의를 상세히 비교 검토하기 때문에 학술서에 가깝다. 책 뒤에 주석만 100쪽에 달하며, 이 책에서 언급하는 실험과 연구와 주장의 강점과 약점, 한계에 대한 논의가 끝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저자는 계속 이어지는 전문 용어를 쫒아가기 바빴으며 때때로 나무 더미에 파뭍혀 숲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논의는 동물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전형적인 생리학적 방법을 쫒아 이야기를 진행한다. 동물은 생존이 달린 위기의 상황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것은 그 위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성격의 것이므로 그 위기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그 위기 때문에 죽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반면 인간이 처한 스트레스 환경은 동물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생존이 달린 극심한 위기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며, 물리적 결핍보다는 심리적 및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는 상황에 처하며, 충격의 성격이 단 시간에 높은 강도로 발생하다 곧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낮은 강도의 긴장이 지속된다.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에서 동물은 이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해 몸이 최고의 효율을 내도록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근육의 힘을 최고로 내기 위해 근육 조직에 혈액이 집중적으로 공급되고, 혈압이 높아고 맥박이 빨라지며,  에너지의 원천인 당분을 혈액에 풍부하게 공급한다. 반면 일상적인 신진대사 작용은 억제된다. 소화기관의 기능은 정지하고, 성기능은 중단되고, 면역체계는 작동을 멈추며, 몸에 손상된 조직을 고치고 조직을 성장시키는 기능은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두뇌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이 심장, 간, 신장 등 몸의 구석 구석에 이렇게 신진대사가 일어나도록 신호를 내린다. 이러한 비상 상황이 단기간 발생하다가 위기가 끝나면 글루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의 분비는 억제되며, 신진대사 작용은 평소 상태로 복귀한다. 반면 인간의 경우 낮은 강도로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이렇게 단기간의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작동하는 신진대사가 오랜 시간 지속되고 글루코코르티코이드 호르몬 레벨이 높은 수준에 머물면서 몸 전체에 무리를 가한다. 동물은 단시간에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의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이나 위궤양과 같은 지병에 걸리지 않지만, 인간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훼손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현대인이 당면한 모든 신체적 및 심리적 문제의 근원이다. 스트레스는 고혈압, 당뇨를 유발함은 물론 성기능을 감퇴시키고, 성장을 억제하며,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기억력을 저하시키며, 우울증을 유발하며, 궁극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스트레스의 영향에 관한 언급은 사실 별로 새롭지 않다. 저자는 유인원과 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의 생리적 및 심리적 기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논의의 상당부분을 자신의 동물 연구에서 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스트레스가 어떻게 동물과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기제를 생리학적으로 상세히 밝히고, 기존의 주장이 인과적으로 타당한지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을 지치지 않고 수행한다. 이 분야에 막연한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보다, 이분야에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으면서 좀더 세밀히 논의를 살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듯 하다. 

책의 전반부에서 스트레스의 생리적 기제에 대한 전문적 논의를 전개한 다음, 책의 후반부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신체적 변화와 스트레스의 인과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스트레스와 통증, 스트레스와 기억력, 스트레스와 노화, 스트레스와 우울증, 스트레스와 성격, 스트레스와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주요 주제이다. 이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빈곤과 불평등은 스트레스를 크게 유발하는 요인이며,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 심지어 엄마 배 속에서 경험한 것이 수십년 뒤 성인기와 노년기에 경험하는 스트레스 정도와 대응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대응하려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아서는 절대 안되며 좋은 성장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 결과 확인된 가장 확실한 진리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우울한 진리라고 누차 인정하지만, 여하간 진리는 냉혹한 것이다. 

맨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그렇다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줄이고, 어떻게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것이 좋겠는가 조언을 한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높을수록, 예상할 수있을수록, 스트레스를 풀 출구가 있을수록,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수록, 적절한 운동을 할수록, 스트레스를 낮출 수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 말은, 상황에 따라 이러한 조건을 만들기 힘들거나 혹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므로,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모든 것이 지나치면 해가되므로 적당히 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엄청난 연구를 한 결과 내리는 조언 치고는 너무나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한 것에 진리가 있다.   

몇 달 전 티브이를 보다가 홍혜걸 의학전문 기자가 이 책을 엄청나게 치켜세우는 것을 듣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거의 한달에 걸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다 읽었다. 중간에 이 책을 계속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다른 책을 읽으며 동시에 조금씩 읽어 나갔다. 수없이 나오는 전문 용어와 실험과 연구 결과와 세밀한 논쟁을 쫒아가는 것이 머리 아파, 후반에 이백 쪽 가량은 소리내서 읽다가 목이 쉬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인과적 관계를 엄밀히 검증하는 것, 의학적 찬반 논쟁, 객관적 학술 검증 논리에 익숙해 진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책 한 권을 마침내 끝냈다는 성취감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2019. 7. 11. 10:53

Leonard Mlodinow. 2008. The Drunkard's Walk: How randomness rules our lives. 219 pages. Vintage Books.

인간은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항시 패턴을 찾으려 한다. 패턴을 파악하여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일은 패턴, 즉 규칙에 따라 전개된다는 믿음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세상의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사는 사람은 체계적인 관찰을 통해 자연 현상의 규칙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으므로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체계적이며 경험적인 관찰이 타당한 탐구 방법으로 수용되면서 자연 현상의 규칙을 발견함과 함께, 세상은 랜덤한 요소, 즉 우연적 혹은 임의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확률적인 규칙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랜덤, 즉 임의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확률 이론과 통계학의 발전 과정을 짚어 본 과학사 책이다. 확률론은 수학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지만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확률론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도박사의 승률 계산에서부터 시작된 확률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복권의 구조, 스포츠의 승률, 증권 가격의 움직임, 재판에서 평가되는 증거의 타당성, 사업 성공의 확률, 측정의 오차, 속성의 분포, 등등. 우리 삶에서 확률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저자는 삶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확률의 원리를 적용하면서 통찰력을 제공하려고 한다. 

세상의 일은 개인의 능력, 환경적 요인, 랜덤한 요소, 이렇게 세가지가 결합되어 전개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랜덤한 요소를 과소평하하는 반면, 개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뮤츄얼 펀드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 이십년간 두드러지는 성과를 기록한 회사가 사실은 랜덤한 요소가 작용하여 그렇게 되었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수년 동안 뛰어난 사업 성과를 낸 회사가 CEO의 특출난 능력 때문이 아니라 랜덤한 요소 때문에 그리 될 수 있음을 입증힌다. 반대의 경우, 즉 수년 동안 부진한 성과를 기록한 회사 또한 CEO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랜덤한 요소 때문에 그리 될 수 있다. 세상일은 랜덤한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지나고 나서 보면 필연인 것 같고 규칙성을 추출해내지만, 그러한 사후적으로 추출한 규칙을 적용하여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하면 거의 빗나간다.  

우리의 삶에서 우연한 계기 때문에 인생의 진로가 바뀐 경우가 많은 것을 볼 때, 인생사에서 랜덤한 요소의 비중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랜덤한 요소를 거부, 내지 과소평가하는 반면 개인의 통제 가능성을 과대평가 하기 때문에, 일의 진정한 전개 원리를 외곡하여 인식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와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동원하여 우리의 현실 인식이 크게 외곡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세상사의 전개에서 랜덤한 요소의 비중이 그렇게 크다면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허사가 아닌가 하고 질문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랜덤한 요인 때문에 실패할 수 있고, 랜덤한 요인 때문에 성공할 수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여러번 시도한다면 결국 자신의 능력에 상응하는 성공의 확률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조금만 더 노력하였다면 거듭된 실패 끝에 성공이 찾아올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 중도에 중단하여 자신의 능력에 상응하는 확률적인 승률을 실현하지 못한다. 반면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은 단 한번의 시도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성공을 랜덤한 요인 때문에 거두기도 한다. 개별 사례가 랜덤하게 발생하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지만, 많은 수가 모일 때, 즉 여러번 반복될 때 확률적인 규칙성이 적용되므로, 이는 인간사에 희망을 준다. 여러번 실패한 사람이, 여러번 시도해본 사람이 결국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통찰력을 주는 흥미있는 읽을 거리이다. 

2019. 6. 26. 11:36

Keith Payne. 2017. The Broken Ladder: How inequality affects the way we think, live and die. Penguin Books. 219 pages.

사람들은 불평등을 각자 어떻게 체험할까. 이러한 개인적 체험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저자는 자신이 어릴 때 마음 속에 각인된 불평등에 대한 체험을 토대로 심리학 연구 결과를 엮으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불평등에 대한 기존 논의가 대부분 객관적인 불평등 수준에 집중해 있음에 반해, 이 책은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감정, 행동, 사고에 촛점을 맞추어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질을 타고난다. 극단적 결핍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항시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자신의 상대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비교는 의식의 수준에서는 물론 무의식 수준에서 항시 작동되는 심리적 기제이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광고는 이러한 사람들의 성질을 교묘히 이용한다. 자신의 비교 대상은 지리적으로 및 지위 면에서 자신과 근접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자신 간에 격차가 클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에서 삶의 상황이 열악할 때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감행하면서 진하게 살다가 일찍 죽는데,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종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생존 전략이다. 반면 삶의 상황이 양호할 때에는 가급적 위험을 회피하며 긴 안목에서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하며 오래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 또한 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최상위를 제외한 모두가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상황에서 삶을 영위해야 함으로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미래를 고려하기 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충동적인 삶을 선택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지역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비교하던 혹은 미국과 북유럽 사회를 비교하건 유사한 결과를 얻는다. 불평등이 높은 지역이나 나라일수록 삶이 긴장되고, 사람들은 위험을 회피하지 않으며, 단기적 시간 계획으로 살아간다. 그 결과는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폭력적이며, 범죄율이 높으며, 건강 수준과 평균 수명이 낮으며, 갈등이 심하다. 또한 불평등이 클수록 사람들은 종교에 몰입하며, 음모론과 같은 비합리적인 주장에 동조한다. 반면, 불평등이 낮을수록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으로 중도적인 성향이 강하다. 불평등한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지만, 현재의 불평등 수준은 이러한 긍정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한다. 남과 비교하려 하기 보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훈련을 하면, 상대적 비교가 낳는 비참한 느낌을 완화할 수있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어떻게 불평등을 줄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건조한 반면,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심리학 실험과 연구 결과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2019. 6. 19. 13:36

Michael Marmot. 2004. The Status Syndrome: How social standing affects our health and longevity. Henry Holt & Co. 271 pages.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건강 수준이 안좋다거나 수명이 짧다는 사실은 가끔씩 신문에 보도된다. 사실 사람들은 주변 경험으로부터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 수명의 차이는 인간의 도덕성에 위배되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사람들간 건강 불평등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논의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이 책은 저자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반세기 동안 계속하여 진행한 연구인  '화이트홀 연구'(Whitehall study)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화이트홀'이란 영국 런던에 정부 청사가 밀집한 지역의 이름인데, 정부 관료를 대상으로 왜 건강 수준이 직급에 따라 차이가 나는지 밝히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수없을 정도로 결핍한 상태라면 물질적 수준이 향상되면 건강 수준이 향상된다. 그러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된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의 건강 수준에 차이가 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유전자의 차이나 음식이나 생활습관의 차이를 원인으로 흔히 거론하는데, 저자는 조직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건강 수준에 차이가 나는 현상에 주목한다. 하위 집단은 바로 위의 상급 집단보다 건강 수준이 낮으며, 중간 지위 집단은 그보다 바로 상위의 집단보다 건강 수준이 낮으며 일찍 죽는다. 즉 위계 조직에서 상대 지위에 따라 건강 수준과 수명이 정확히 비례관계이다. 일반적으로 건강 수준이나 수명을 따질 때에는 건강이 안좋은 사람과 오래 사는 사람, 즉 건강 수준에서 양극단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저자는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 즉 위계적 조직이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국 정부의 관료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물질적인 기본 욕구는 모두 충족했다.  그에 따르면 위계 내에서의 상대적 지위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상대적 지위가 낮을 수록 일의 자율성 및 결정에 참여하는 정도는 떨어지는 반면, 지위가 올라갈수록 자율성과 참여 정도는 높아진다.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여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에 더하여 자율성과 참여의 정도에 따라 건강이 영향을 받는 관계가 단순히 최하위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관료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위계적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직접 명령을 받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이 조정할 수있는 정도는 사회적 지위에 좌우된다.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의 삶과 주변을 자신의 의지 대로 조정할 수있는 능력이 커지는 반면, 지위가 낮을 수록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힘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높을 수록, 조직의 위계적 성격이 뚜렷할수록 지위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는 정도도 커진다. 북유럽 국가들이 그들보다 소득이 높은 미국보다 건강수준이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 수준의 차이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한 책이므로 아무리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도록 쉽게 썼다고 해도 평이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평생의 연구 결과 얻은 핵심을 일반인에게 전달하겠다는, 그래서 사회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이 느껴진다. 건강 수준의 격차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다양한 이론과 연구 결과를 풍부하게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한걸음씩 펼쳐가는 노력이 엿보인다. 저자가 젊은 연구자였을 때 화이트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접한 뜻밖에 발견이 그의 이후의 일생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말이 다가온다. 마치 퀴리부인이 우연히 방사능을 발견한 것이 그녀의 이후의 일생을 결정했던 사례가 사회과학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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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6. 22:17

Philip E. Tetlock and Dan Gardner. 2015. Superforcasting: the art and science of prediction. Crown Publishers. 285 pages. 

심리학자인 저자가 수 년동안 진행한 연구 성과를 요약한 책이다. 그가 주도한 연구 프로젝트는 일 군의 일반 사람들에게 가까운 미래에 특정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구체적 확률치로 예측하도록 하여, 이 가능성 예측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있었는가를 분석한다. 미래 예측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다양한 출처의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며, 자신이 예측이 실패하였을 때 그 원인을 면밀히 검토하여 자신의 분석 방법을 점진적으로 개량하며, 직관에 의지하기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의지하여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을 면밀히 비교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요인에 대해 복잡하게 계산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싫어한다. 반면 예측의 달인은 끈질기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고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하여 개선해 나간다. 이는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이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려하지 않는 독단적 태도와 대조된다.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과 어긋나는 사실이 나타나도 자신의 견해를 애매한 표현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으며, 다양한 관련 자료를 모으는 노력을 거부하며,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하고 오류로부터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이 엉터리 예측을 반복하는 이유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에 대한 그의 지적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칸네만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저자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훈련을 통해 점진적으로 향상될 수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학문적인 연구의 성과를 배경으로 쓴 책 답게 논의가 체계적이며 메시지가 분명하다. 그가 언급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지적하자면, 우연을 인정하는 태도에 관한 언급이다. 세상의 일들은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하나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가 발생한 것은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연이 거듭되면서 여러 일이 여러 일을 낳은 것이므로, 미래란 기본적으로 불확실하다. 예측을 할 수있는 사안을 예측해야 하며, 예측을 할 수없는 사안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허사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에서 먼 미래일수록 예측은 허사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5년 내의 예측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나, 10년 후의 예측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이 책에는 근래에 발생한 정치 경제 사례를 풍부하게 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019. 6. 16. 10:42

Kwame Anthony Appiah. 2018. The Lies Than Bind: Rethinking Identity, creed, country, color, class, culture. Liveright publishing co. 219 pages.

저자는 영국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의 뉴욕대 교수로 있다. 이 책은 그가 BBC 라디오 강좌를 위해 쓴 원고를 보완한 것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하므로 전문용어나 이론적 논의를 최소화 하면서 정체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가나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의 전통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성장하면서 정체성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의 정체성, 즉 '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 간단히 답할 수없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사람들은 정체성을 본질적 특성의 반영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성, 종교, 민족, 인종, 계급, 문화 등 이 모든 정체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사람들을 묶어주는 거짓말' 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정체성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잘 못된 것일뿐 아니라 해악적인 요소를 포함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영한다. 

첫번째 장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예로 하여 이것이 본질적(essential) 특성의 반영인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construct) 것인지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구분되는 범주에 대해 이름을 붙이며 이 이름은 본질적인 무엇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남성은 여성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이 남성 여성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부분은 '성 역할'이라 지칭하는 사회적 성에 해당한다. 사회적 성 정체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지칭하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것으로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인종 또한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구분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피부색의 차이를 반영하지만, 그 핵심은 서구의 세계 지배의 산물이다.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한 종으로 인식하고 흑인을 노예로 지배한 역사를 통해 인종은 서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정체성 항목이 되었다.  

종교적 정체성은 인종과 엮여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도라는 정체성은 백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하며 서구 문명의 핵심이다. 민족 구분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여부가 핵심이지만, 서구에서도 19세기에야 비로서 형성된 구분이다. 그 전에는 한 나라에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으며, 언어의 구분 또한 애매하다. 따라서 민족은 매우 자의적인 구분이다. 가족이나 소규모의 부족 혹은 마을을 넘어선 큰 집단, 즉 서로 대면할 일이 없는 큰 집단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단일 정체성 집단으로 만든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정치적 과정의 소산이다. 계급은 경제적 자산의 다과에 따라 만들어진 범주인데 과거에는 귀족, 지주, 평민 이라는 신분으로 구분되었으며, 근대로 오면서는 교육 수준, 소득, 직업 으로 구성되는 사회경제적 지위로 대표된다. 사회경제적 지위는 지위 집단간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중시하는 경계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대학을 졸업했는지, 몸을 쓰지 않는 사무직에 종사하는지, 등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구분된다.  아무리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업적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해도 능력이나 업적 자체가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특정 계급 집단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교과서적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정체성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게 된다. 대립되는 논쟁을 소개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이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2019. 6. 5. 21:51

Michael Booth. 2014.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New York: Picador. 374 pages

이 책의 저자는 영국에서 성장하여 덴마크 부인을 만나 그곳에서 오랜동안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웬만큼 이해하였다. 그 바탕위에 모든 세계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인 "북유럽 사회는 어떻게 그렇게 모범적인가?" 하는 질문을 다각적으로 천착한다. 덴마크에서 시작하여, 아이슬랜드, 핀란드, 스웨덴으로 나아가면서 각각의 나라에 대해 서술한다. 북유럽 사회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글을 써온 기자의 통찰력과 풍부한 유머가 녹아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물론 영미 사정에 능통하지 않은 필자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고유명사와 구절이 많지만. 

저자는 북유럽 사회야 말로 지금까지 인류가 건설한 사회 중 가장 완벽하다고 인정한다. 완벽한 사회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높은 신뢰, 사회적 통합, 경제적 평등, 성평등, 합리주의, 겸손, 잘 균형잡힌 정치경제 시스템, 높은 삶의 질이 저자가 칭송하는 북유럽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풍요롭고, 안정되고, 합리적이고, 평등하고, 부당한 경우를 당하지 않는 삶을 살며, 그 들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말 합리적으로 방안을 찾아 조정하고 실천해 왔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사회와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은 이러한 자신의 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각자가 자신의 의무를 지고 필요한 희생과 타협을 회피하지 않는다.  북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이나 영국의 불평등하고 엉망인 모습은 뚜렷이 대조된다. 

어떻게 북유럽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를 건설할 수있었을까? 그는 여러가지로 원인을 분석한다. 봉건제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오래전부터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였다는 역사적 배경,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자연환경은 불평등을 억제하며 협동을 장려한다는 점, 오랫동안 인종 민족적으로 동질적이었으므로 사람들 사이에 신뢰와 이해의 정도가 깊다는 점, 헌신적이며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계속 나타났다는 점 등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북유럽 사회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님을 곳곳에서 언급한다. 현재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매우 이질적인 배경의 이민자가 늘면서 본토인과의 통합에 어려움이 크며, 이들 사이에 격차가 크기 때문에 북유럽 사회의 근간인 사람들의 동질성과 신뢰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근래에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 집단이 세력을 확장해가는 것은 우려할만하다. 둘째는 출산율이 낮고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사회의 재정적 미래가 위협에 처해 있다. 덴마크는 가계의 빚이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높으며, 스웨덴은 1990년대 경제위기 때 복지제도를 과감히 축소하였음에도 복지재정 부담이 높다. 이미 개인의 조세 부담율이 50%에 달하여 더 이상 높일 여지가 없으므로 앞으로 복지재정이 불안해 질 수있다.  

저자는 북유럽 사회가 안정되고 신뢰수준이 높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규율에 순응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삶은 따분하고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개발도상국이나 심지어 미국 만해도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는가?  그렇지만 세대간 지위 이동의 가능성은 북유럽 사회가 미국을 포함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 북유럽에서도 여전히 부모를 잘 만나야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그 정도가 다른 사회보다 훨씬 덜하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만 요란할 뿐 세대한 지위이동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북유럽 사회는 미국을 포함한 다른 어떤 사회보다 개인의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  종교의 자유, 성의 자유, 낙태의 자유, 전통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심지어 가족 배경으로부터의 자유, 등 모든 면에서 북유럽은 개인을 가장 존중하는 나라이다.   

저자는 북유럽의 미래를 낙관하며 끝맺는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사회는 여전히 인류가 건설한 가장 완벽한 사회이며, 현재 당면한 문제는 지금까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한 과정을 고려할 때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스웨덴의 연구소에서 지낼 때, 그들과 이야기하며 느꼈던 그들의 자신의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떠올렸다. 우리 나라의 신문에는 늘상 정치인의 소아적이며 얄팍한 술수가 판치고, 미국에는 트럼프라는 어리석은 사람이 분탕질을 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북유럽이 계속 앞서 나가서 세계인의 등대가 되기를 기원한다.  흥미있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읽었다.     

    

   

2019. 5. 18. 22:24

Jonah Lehrer. 2009. How We Decide. Houghton Mifflin Harcourt. 265 Pages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결정하기란 어렵다. 특히 문제가 복잡해 질 수록 결정하기가 어렵다. 선택지가 많거나 관련되어 고려해야할 변수들이 많을 수록 어려워진다. 당면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많이 생각할수록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주장이 과거에는 지배했다.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의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장고끝에 악수둔다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저자는 과거의 철학자들이 이성을 우선시하고 감정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한 전통에 반기를 든다. 근래에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의 행위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옹호한다.

저자는 그 분야에 오랜 훈련을 쌓은 전문가들의 경우 많은 변수가 연관된 복잡한 문제를 대했을 때 이성보다는 느낌 혹은 직관이 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오래도록 경험을 축적했을 때, 그들이 문제를 접하여 받는 느낌이란 다름 아니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한 결과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은 동시에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질 경우 처리 능력에 제한에 부닥쳐 오류를 만들어 내는 부실한 컴퓨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오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고도의 컴퓨터이기 때문에 이성의 정보처리 한계를 뛰어 넘을 수있다. 우리의 감정이 이렇게 고도의 정보처리 컴퓨터가 된 것은 진화의 산물이다. 감정은 우리의 생존에 근접한 문제일수록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발휘하도록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정이 항상 올바른 결정으로 유도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복잡하지 않을수록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이 효과적이며, 과거에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문제일수록 이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 창의적인 접근방법을 찾아내는 데 효율적이다.  반면 문제가 복잡해 질수록 전문가의 느낌이나 직관이 큰 통찰력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범한 오류를 반추하여 개선할 점을 생각해 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혜를 축적하게 된다. 저자는 오류를 분석하여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인간을 동물보다 앞서게 하는 비결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무수한 예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쉽게 이해할 수있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예가 나오는데 이러한 예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친숙한 것들이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예로는 비행기 조종사의 결정, 풋볼 선수가 필드에서 벌이는 결정, 포커 선수가 포커판에서 전개하는 결정, 일반 사람들이 마트에서 쇼핑할 때 하는 결정, 자동차나 집을 구입하는 결정,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의 결정, 등이다. 이러한 예들은 거의 모두가 학술적인 연구결과와 함께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최근의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종횡무진하게 인용한다.  

근래에 연구의 조류가 감정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사실 감정이란 이성과 달리 그 과정을 분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경과학과 진화론을 결합하여 인간의 감정도 이성 못지 않게 충분히 효과적이고 유력한 문제해결 능력을 품고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그러나 무모한 감정적인 대처는 그야말로 무모함일 뿐이다. 오랜 경험과 반추를 통해 쌓여서 만들어진 능력은 감정의 영역일까 이성의 영역일까? 이 책은 이성과 감정을 양분하는 지적 전통은 틀렸다고 말한다.   

저자의 직업이 과학 기자라는 점이 백퍼센트 발휘된 결과물이다. 그 많은 연구들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예들을 수집한 저자의 부지런함에 놀라지 않을 수없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흥미있는 한편으로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2019. 5. 7. 16:27


어제는 힘든 하루였다. 하노버를 아침 7시에 떠나는 버스에 맞추어 일찍 터미널에 나갔으나 버스는 80분이나 연착했다. 버스에 타서도 고속도로가 막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네덜란드의 그로닝엔에 도착했다. 고속도로가 긴 구간에 걸쳐 한 방향을 막고 전면 재포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중간에 휴게소에서 45분이나 쉬었는데 운전사가 자신이 오늘 아침 6부터 운전을 했기 때문에 이제 쉬어야 한다고 하면서 휴게소로 들어갔다. 도중에 회사와 전화를 하여 다음 교대자와 연락을 취하는 것 같은데 차가 막혀 교대자가 있는 도시까지 갈래면 아직 멀었던 것이다. 승객들은 아무도 군소리를 하지 않고 차에서 얌전히 기다린다. 숙소에 빨리 가도 특별히 할일은 없었으나 여행이 막바지로 다가가면서 몸과 마음이 지친 것 같다. 허리가 뒤틀리고  차창 밖의 풍경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가야할 여정이 많이 남았다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한동안 마라톤을 뛴 일이 있다. 21킬로의 하프 마라톤을 여러해 동안 봄가을로 대회에 참가하여 뛰었는데 마지막 몇킬로가 무척 힘들었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뛰고 일단 반환점을 돌면 뛰는만큼 종착점에 가까워지는 것에 힘을 얻어 뛴다. 그런데 종착점이 이삼킬로 앞으로 다가오면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무척 힘들다. 그야말로 마지막 피를 짜내는 기분으로 어찌어찌 하여 끝낸다. 마라톤을 뛸 때마다 출발선에 서면 매번 끝까지 뛸수 있을지 불확실하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로닝겐 숙소에 도착해서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제 길을 헤메는 일은 끝났다. 이곳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책을 읽고 산보를 하며 슬슬 지내다 버스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암스텔담 공항으로 출국하면 된다. 다행히 이곳 숙소는 편안한 분위기이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것같은 공장 마당에 콘테이너를 들여와 숙소로 개조했다. 숙소가 세개의 콘테이너이고 콘테이너 두개를 마주 이어 붙인 것이 거실겸 부엌이다. 이외 화장실겸 샤워를 하는 콘테이너 하나와 창고와 주인이 잠을 자는 콘테이너가 따로 있다. 주인은 30살쯤 되보이는 젊은 여성인데 이곳을 끔찍히 아끼는 것같다. 내가 묶은 콘테이너 안에도 액자와 작은 화분이 여러개 있다. 저녁 9시가 넘어서까지 거실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녀의 남자 친구가 찾아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다. 그가 가고 나서는 라디오를 듣고 뜨게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눈을 떠서는 이곳에 바로 인접한 공원에 갔다. 입에 김이 서리고 손이 시리지만 견딜만하다. 공원은 꽤 넓었다. 간간이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을 마주칠 뿐이다.  이 나라가 물을 잘 관리한다는 사실은 공원에서도 보인다. 사방으로 좁은 실개천과 연못이 있다. 연못위로 아침햇살을 받으며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사슴 수십마리를 기르는 곳이 보인다. 야생 닭 비슷한 것도 함께 있는데 사슴과 닭이 함께 지내는 데 문제가 없다. 공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려고 노력하여 쓰러진 나무에서 이끼가 자라고 수풀이 우거져 있었지만 세심하게 관리한 흔적이 엿보인다. 길이 질척이는 곳은 두꺼운 철판을 깔아 다니기 편하게 해 놓았고 길과 실개천이 만나는 곳곳에 콘크리트로 납작한 원기둥 모양의 징검다리를 놨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열심히 일하고 힘들면 쉬고 일상에 지치면 기분전환삼아 여행을 하며 원기를 회복하면 다시 일에 몰두하는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뒷정리를 하며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아이가 독립하여 떠나고 허전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일에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불확실한 미래를 직시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 슬슬 사는 것은 없다.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하는 마음으로 정신 똑똑이 차리고 살라는 어머니의 말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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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6. 23:13


그예 버스를 놓쳤다. 아침 10시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삼십분이나 전에 나갔고 내가 타야 할 버스를 바로 눈 앞에서 빤히 바라보았음에도 그 버스가 출발하고 정류장에 사람들이 다 빠진 후에야 그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였음을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여러 요인이 겹쳤다. 간이 버스 터미날이라 안내가 부실한 점, 버스 전면에 보통 주요 중간 경유지를 디지털로 안내하는데 이 버스는 최종 도착지만 프린트로 붙여 놨다는 점, 운전사가 사람들에게 빠른 독일어로 중간 경유지를 외치는데 나는 전혀 알아 듣지 못한 점, 내 주변에 아랍어를 하는 흑인 청년 세명이 어찌나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법썩을 떨든지 주의가 분산된 것 이다. 그들 중 한명은 버스에 몰래 탑승하였으며 어떻게. 운전사가 알았는지 버스가 출발한 후에 다시 돌아와 그를 내려놓았다.
 
무엇보다 나의 선입견이 작용하여  똑바로 인식하는 것을 막았다. 나는 하노버로 가려고 하는데 버스는 뒤셀도르프가 행선지로 표기되어 있었다. 내 머리 속에서 뒤셀도르프는 드레스덴의 서쪽에 있고 하노버는 북쪽에 있기 때문에 버스티켓에 뒤셀도르프 행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것을 확인했음에도 잊어 먹었다. 버스를 놓치고 버스 회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 버스가 하노버를 지나 뒤셀도르프로 돌아가는 것이 맞단다. 버스 팃켓을 환불하고 두시간 뒤에 출발하는 버스 표를 새로 샀다. 이 Flixbus는 출발시간에 가까울수록 또 자리가 찰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창구에서 구입하면 구입수수료를 3 유로 추가로 내야 한다. 독일회사 답게 무섭게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원래  버스표를 34 유로에 샀는데 추가로 20 유로를 더 내고서야 다음 버스표를 살 수있었다. 계원은 나의 사정을 듣고 동정을 표했지만 원칙대로 철저히 처리한다. 12시에 파리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를 이번에는 제대로 타고 하노버에 6시가 넘어 내렸다.
하노버는 북부의 상업 도시인데 독일의 주요 도시들이 다 그렇듯 도심의 건물이 모두 현대식이다. 2차 대전에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새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모습을 보이는 건물도 있는데 이는 전후에 복구하면서 옛 건물의 외관을 살려 재생한 때문이다. 독일은 방문할 때마다 감탄한다. 가로가 잘 정돈되어 있고 조그만 것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효률적으로 마련해 놓았다. 사람들은 규칙을 잘지키며 성실하게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엉뚱하게 사기를 치려 하지 않으며 서로간에 신뢰도가 높다. 국토가 넓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물가가 싸고 공간이 넓고 녹지가 많다. 이런 조건이 모두 만족되니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대학 등록금은 무료이고 어느 도시를 가던 균등하게 삶의 질이 높다. 서구의 나라들 중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독일을 꼽겠다. 북구의 나라들도 독일과 유사한 분위기이나 그곳은 겨울이 길고 춥고 낮이 짧아 삶이 힘들다. 영국은 계급차이가 두드러져 마음이 편치 않다. 노동계층을 향한 중류층의 젠체하는 모습과 그들을 향한 노동계층의 적의와 자조적 태도는 지켜보는 나를 씁슬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마져. 든다. 프랑스는 오래 살아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감정적이며 합리성이 떨어져 독일만큼 풍요롭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다른 사회보다 지나치게 강조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 빈부의 차가 심하고 인종주의가 강하여 백인 중산층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은 힘들게 살아야 한다.
독일 사회를 볼 때마다 감탄하지만 오늘 경험했듯이 이 사람들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외부인인 나에게 냉담한 인상을 풍긴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한국과 같이 사람들이 감정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고 엉터리로 두리뭉수리 넘어가려고 하고 눈뜨고 코베일 까봐 조심해야 하는 사회와 독일은 정반대이다. 이사람들도 코너에 몰릴 때는 극단적인 행위도 한다. 유태인을 말살하려 했으니 말이다. 미국의 백인들처럼 인종주의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은 이들의 심성 밑에 깔려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친절하기는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인상을 받아 그리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월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숙소를 어렵게 찾아가니 이곳은 여행자를 위한 호스텔이라기보다 싸구려의 외국인 노동자 숙소이다. 공용 공간이 전혀 없이 침대만 여러개 있는 방과 공동 화장실겸 샤워실이 전부이다. 방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거나 말을 섞는 법이 없다. 큰 트렁크가 침대마다 옆에 놓여 있고 옷가지와 잡다한 물건들이 주변에 흩뜨러져 있는 수가 이들은 여행하며 잠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집을 떠나 이곳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중에 한국인 청년도 있었다. 한국을 떠난지 일년 반쯤됬다고 하는데 그 동안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웠으며 내일 중요한 취업 면접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전기 계통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도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과 같은 행색이다. 별로 예의를 갖출 생각을 않고 방에서 빤스 바람으로 지내며 큰 소리로 전화를 오래 한다. 동구에서 온 다른 사람도 그의 아내와 이야기하는 것인지 큰 소리로 전화를 한시간 이상이나 해서 내가 나가서 하던지 혹은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더니 나보러 나가라고 하며 화를 낸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구나 치부하고 더이상 괘념하지. 않았다. 삶이 힘들면 예의를 갖추는 것은 사치이다. 독일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규칙을 잘지키고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한다면 어느 사회나 이렇게 될텐데 하고 생각하며 다시금 부러워했다. 독일은 내 마음속에 진정한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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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5. 13:28


아침 8시 좀 넘어 버스에 올라 3시 경에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하다. 중간에 프라하에서 버스를 갈아타느라 한시간을 기다렸다. 프라하는 몇년 전에 방문했는데 사방에 건물이 올라가고 활기차다. 체코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포장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동유럽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에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아침 산책을 하다보니 숙소에서 좀 떨어진 옛 성까지 가게 되어 이를 둘러보느라 지체된데다가 어제 통성명을 한 싱가포르에서 온 청년과 대화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호스텔 부엌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그도 아침을 먹으려 들어와 함께하였다. 그는 영국 대학에서 전기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체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박사를 받고 일자리를 찾는 문제로 그와 길게 이야기 했다. 싱가 포르로 돌아가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문제 없으나 가급적 유럽에서 취직해 한 동안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문제는 유럽 시민이 아니면 좋은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전에 스웨덴 연구소에서 만난 중국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여성이었는데 결국 벨기에의. 조그만 대학에. 일자리를 구하긴 했지만 아쉬워했다. 이 청년은 영국에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현재 폴란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단다. 박사를 받으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폴란드에서는 영어만으로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어 정착을 주저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일자리를 잡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모양이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또다른 폴란드 청년은 현재 ING 은행에서 일 하고 있는데 그도 기회가 닿으면 서유럽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현재 다니는 직장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회사 아니냐니까 서유럽에서 일하면 훨씬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단다.
싱가포르 청년과 이야기하다 그가 내게 어떻게 현재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을 때 미래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당시에는. 취업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에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을 많이 접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세일즈맨을 지원했다. 부서 배치를 받을 때도 지원기능을 담당하거나 혹은 대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보다  중소기업 제품을 팔면서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에 배속되었다. 덕분에 회사 생활이. 온통 잔국을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 씨름하는 일로 채워졌다. 그가 물었다. 왜 4년이상이나  그 일을하다 직업을 바꾸었냐고. 그는 중간에 중단 없이 학업을 계속하여 올해 30세에 박사를 받게 되었는데 그도 한 때 취직할까 망설였던 모양이다.
직장에서 한가지 일을 3년 정도 하니 웬만큼 길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감이 왔다. 사람들이 무엇에 울고 웃으며 왜 갈등하고 일이 결국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된 것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무모한 청년이었지만. 그래서 본격적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할 수 있게 됬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어찌 전개될지 생각했는데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세일즈맨으로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주위에 중소기업 사장들을 보며 나중에 독립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가기로 마음을 먹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출장을 다니면서 영어단어를 외어 시험을 봤는데 나쁘지 않은 성적이 나왔고 몇몇 미국 대학에 지원했는데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이 있어 돈 문제도 해결되었다. 결혼 문제도 해결하고 가고 싶어 주위에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광고를 했지만 그일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자금을 집에서 조금이라도 댈 수 있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갈 마음을 먹었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완전히 막혀 있다고 생각했기에 취직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훗날 내가 제출한 유학관련 서류를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어가 엉망인데다가 내용이 부실하여 아것을 보고 어떻게 나를 선발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까지 살면서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이 있었다. 후회하는 일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중 가장 최근의 것은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고도 회사를 계속다녀  유학준비를 부실하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다.  내가 전공한 사회학은 대학에 취업 하기 어렵다. 박사를 받고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학교 평판에 따른 차별이 더욱 커서 결국 내 전공으로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인정에 끌려 막판까지 일하다가 미국 대학 학기가 시작하는 9월을 한달 앞두고야 직장에서 나왔다. 나중에 나의 관심은 사회학보다 경제학이 더 맞고 경제학을 전공했으면 순탄한 길을 가게 됬으리란 것을 깨달았지만 길은 오래 전에 갈라져 버렸다.
사실 인생의 갈림길은 좀더 이전에 나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때 인문계와 자연계 중 선택할 때 인문계를 선택했는데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문계와 자연계의 차이를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형과 누이가 인문계 쪽으로 갔으므로 별 생각 없이 선택했을거다. 국어나 역사보다는 수학이나 물리에 더 흥미를 느꼈고 성적도 더 좋았는데. 나중에 대학을 얼마쯤 다니고 나서 화학에  흥미가 발동했으나 전공을 바꿀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일이고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정답이 없어 지금도 어렵게 느낀다. 자연과학이 훨씬 친숙하고 흥미가 있다. 그 길로. 같으면. 마찬가지로 힘들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그와 주거니 받거니 하느라 시간가는 것을 깜박했다. 나는 무엇에 몰두하면 시간가는 것을 잊어먹어 곤경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순박해 보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서 과거 의 나를 떠올리며 호감이 갔다. 문득 시간이 꽤 지났음을 깨닫고 시계를 보니 버스 출발시간이. 20분밖에. 안남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죽어라하고 뛰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내가 탈 버스가 막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무척 추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찬 공기가 뼈속까지 시려온다. 사람들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 다닌다. 물어보니 오월에 이런 날씨가 특이한 것이 아니란다. 내일은 눈이 예보되어 있단다. 숙소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밖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음이 들리고 집이 쿵쿵 울려 나가 보았다. 끝이 안보이는 젊은이들의 무리가 군데군데 대형 스피커를 단 차량을 두고 행진을 한다. 무슨 일이냐니까 오늘이 tolerance day 즉 관용의 날이라 기념 행진을 한단다. 과거에 이날을 기념할만한 일이 있었냐니까 아무도 모른다. 분명히 뭔가 계기가 있었을텐데 그에 대한 기억은 중요치 않고 젊은이들이 모여 흥겹게 지내는 이벤트만 남았다. 중고등 학생 나이에서 부터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커플까지 다양하다.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마시며 떠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지나간다. 모두들 흥에 겨워 허리를 흔들흔들하며 걷는다. 그들을 따라가 보니 가까이에 있는 큰 공원에서 행진을 멈추고 모여 논다. 날씨가 추워서 밖에. 그렇게 오래 있는게 힘들텐데도 많이 참가했다. 펑크 복장을 한 히피 차림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듯한 대학생과 직장인으로 보인다. 스피커로 계속 무언가 계속 떠들기에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이웃과 주위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내용이한다. 그들의 풍요와 개방성과 자유로운 정신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어 추운 날씨에도 군중 틈에 끼어 꽤.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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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에 부다페스트에서 버스에 올라 오후 3시경에 체코의 브루노에 내리다. 지난 며칠간 버스를 오래 탔는데 오늘은 4 시간만 타니 훨씬 살 것 같다. 브루노는 체코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라는데 몇 백년 전 건물과 시가가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 거리에 많이 눈에 띤다. 폴란드가 이번 주말이 3일 연휴라 많이 왔다고 한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와 달리 아시아인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언덕에 중세 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성당이 있고 중세의 성이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 제법 온다고 한다. 골목이 복잡해 숙소를 바로 가까이에 두고도 찾는데 한참 걸렸다. 나는 중세의 성보다는 현재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궁금하다. 성당 앞 중앙 광장에는 장이 서 있는데 딸기와 블루베리가 제철인가보다. 내가 묵은 숙소도 외관은 옛날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현대식으로 수리한 모습이다. 계단이 가파르고 공간이 협소하다. 옛 건물답게 벽이 무척 두껍다. 
헝가리와 체코는 비슷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고 긴장한  표정이며 거리가 복잡하고 곳곳에서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 공사를 한다.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음식을 먹고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를 많이 핀다. 한마디로 한국과 유사한 느낌이다. 근래에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부유하고 세련되며 안정된 모습인 반면 체코와 헝가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특유의 무질서와 역동성을 느낄 수있다.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나 식습관은 다르지만 웬지 익숙하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한국에 와본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삼성 전화기 광고판을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며 현대 기아 자동차를 종종 거리에서 본다. 요즘 미국과 마찰로 크게 문제가 된 화웨이 전화기 광고를 훨씬 자주 본다. 내가 쓰는 태블릿도 화웨이. 제품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스마트폰의 위력을 절감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 항시 컴퓨터를 들여다 보기 때문에 평소에 가급적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SNS도 하지 않고 정보를 검색하는 일은 컴퓨터로 한다. 스마트 폰 세대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없다면 이렇게 여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다음 날의 여정을 짠다. 어느 도시로 이동할지 지도를 보며 생각하고 이동하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를 예약한다. 방문하는 도시의 지도를 다운로드하고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하여  저장한다. 이런 일을 모두 하는데 30분 남짓이면 충분하다. 나는 까다롭게 이것저것을 살펴 고르지 않는다. 웬만하다 싶으면 바로 결정한다. 그 덕분에 무지하게 시끄러운 술집 이층에서 자기는 했지만. 버스에서는 가급적 스마트폰을 보지 않지만 창밖을 보는 것이 무료해지면 지금 가는 도시나 나라에 대한 일반 정보를 위키피디에서 찾아 읽는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작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은 태블릿으로 한다. 여행은 노는 것이지만 놀러 다니는 일의 생산성이 엄청 높은 것이다
버스에서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잠을 잔다. 여행을 하면서도 항시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에서 떠나지 않는다. 기성 세대는 이런 요즘 젊은이들의 행태를 비판하지만 사실 스마트 폰은 엄청나게 다양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요술 방망이 이다. 젊은이들이 보는 동영상이나 이미지는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보다 훨씬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며 재미있다.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이 실제 현장의. 감동을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눈을 들어 밖을 쳐다보는 것으로 족하다. 감동을 주는 대단한 곳에 가면 그때 그것을 보면 되고. 스마트폰 덕택에 젊은이들의 정보의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질의 소비만이 풍요의 전부는 아니다. 물질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정보의 소비를 원한다. 누구나 배가 부르면 남들은 뭐하는지 재미있는 것은 뭐 없는지 찾게. 된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십년 남짓 전인 2007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이렇게 바꾸어 놓다니. 놀랄 일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정말 흥미진진한 변화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다가올 것이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이. 20세기 초이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 18세기 말이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신기술의 도입의. 초기 단계에는.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올지 모른다. 전기가 처음 발명된 19세기 말에 사람들은 이를 신기한 장난감 정도로 여기고 그 가능성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전자의 흐름을 이용하여 반도체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스마트폰을 만들어 이렇게 여행하게 되리라고 처음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생은 한번 밖에 살지 못한다. 지금 정보통신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보면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이므로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치부하며 뒷자리에 물러나 살다 죽고 싶지. 않다. 내가 다시 산다면 이런저런 일을 할텐데 하면서 아쉬워 하는 것은 부질없다. 인생은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나는 올해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머신러닝을 익혀 변화를 앞서서 이끄는 역할을 하려 한다. 이제. 몇 달 동안 열심히 하니 파이선 프로그램과 머신러닝의. 기본은 웬만큼 익힌 것 같다. 이제 스팸메일을 거르는 프로그램 쯤은 짤 수 있다.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낫설지 않고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던 것이. 점차 자연스레. 이해. 된다. 일단 올해에 일 천 시간을 투입하여 성과를 보고 다음 단계를 모색하려 하는데 이제 삼사백시간 정도 투입한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 좀 익숙해 지면서 이 머신러닝 기술을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적용할지 선례가 적어 고심하고 있다. 잠재력이 대단하다 것은 짐작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은 거친 수준이라 앞으로 갈길이 멀다.  구체적인 성과가 없으면 허사이다.
공부해 보니 이 기술이 아직 발전의 초입 단계라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고 응용 범위가 넓지 않다. 예컨대 deep learning의 범용 프로그램인 tensor flow나 그것에 토대를 둔 keras 는 구글에서 개발하여 공개한 것이 2015년이니 불과 4년 밖에 안됬다. 매년 프로그램을 개선하기에 몇 년전 책에 나온 프로그램을 돌리면 잘 돌아가지. 않는다. 구글의 번역 프로그램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속도를 보면 얼마나 변화가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의. 정보를 분석하여 연관 상품을 추천하는 머신러닝 기술을 핵심으로 성장한 Amazon은 회사가 출범한지 20년이.못됬는데 미국의 소매 유통시장을 뒤집어 놓았으며 유사한 기술로 성장한 Netflix는 그렇게 철옹성 같던 티브이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주역이 되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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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11시 버스에 올라타다. 부다페스트에 내린 것은 내 시계로 6시가 넘어서다. 루마니아에서 헝가리로 국경을 넘자 퍽 다른 풍경이 펼 진다. 고속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고 집들의 상태가 양호하다. 국경하나 건넌 것인데 사람들의 생활이 다르다. 헝가리 에서는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을 세시간 이상 달렸다. 하늘에. 뭉개구름을 하염없이 봤다. 이제 여행에 지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면 다시 잡아야 할 일 생각도 난다.
부다페스트는 생각보다 크고 화려한 도시였다. 거리에 자동차와 사람들이 붐비고 화려한 옛 건물이 많다. 이 도시는 과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일차대전에 패하고 각민족이 뿔뿔이 독립하면서 지금은 조그만 한 나라에 불과하지만 그 때는 중부 유럽을 호령하는 큰 나라였다. 관광객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소음이 크길레 다가가 보니 속도가 서울의 두배는 되는 것 같다.
버스터미날에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 찾아간 숙소는 유흥지역 한 가운데 있었다. 짐을 풀고 시내 산책을 나오니 숙소 주변의 술집과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메어 터진다. 문제는 내가 묵은 숙소의 아래 층이 큰 술집이라는 거다. 네모 모양의 건물 가운데 정원이 술과 댄스를 하는 곳이다. 서로 대화가 안될만큼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았으며 사람들의 대화 소음과 섞여 귀가 멍멍하다. 이 숙소를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우리 호스텔은 분위기가 끝내주며 부다페스트의 밤을 즐기는데 최적이다. 밤에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는 젊은이라면 우리에게 오라 고 소개 문구가 써 있어 그냥 광고인지 알았다. 숙소 침대에 누워도 소음이 대단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밑에 있는 것 같다.
워낙 피곤했기에 10시 경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소음 속에서도 금방 잠에 빠진 것 같다. 한 잠을 자고 깨어보니 소음은 여전하다. 시계를 보니 2시다. 다시 잠에 빠져 6시에 눈이 떴다. 몇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방에 들어와 부시럭 대는 통에 깬 것 같다. 그들은 밤을 새고 놀다 이제 들어와 침대에 들려 한다. 모두들 바로 코를 골며 잠에 빠진다. 그들의 에너지가 부럽다.
나는 지금까지 자정을 넘겨 놀아본적이 거의 없다. 술마시고 즐겁게 노는 사람이 부럽다. 나의 형은  술을 좋아해 사람들과 어울려 항시 술을 마시며 친구도 많다. 그는 하루의 피로를 술마시며 푼다고 한다. 나는 술이 몸에 받지 않아  조금만 마시면 몸에 발진이 돋고 머리가 어질하다. 맑은 정신으로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사람들과 오랜시간 이야기 하며 친해질 기회가 없다. 술을 마시고 긴장을 풀며 사람들과 허툰 이야기를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축복이다. 삶이 힘들고 지루한 것을  항시 직시하며 살기에 인생이 너무 길다. 나는 나의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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