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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0. 22:53

   교과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책이다. 성장기에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은 일생동안 기억에 남아 있으며, 사회 구성원들 서로 간에 생각의 공통된 출발점이 된다. 그렇기에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 사회에 힘 있는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의 머리 속에 주입시키고 하는 것이 교과서에 담긴다.



http://www.economist.com/node/21564554

 

Textbooks round the world: It ain’t necessarily so

The textbooks children learn from in school reveal and shape national attitudes—and should provoke debate





 

   최근 한국 사회에서 교과서에 기독교의 창조론을 집어넣고자 하는 시도가 좌절되었다. 미국에서 종종 벌어지던 사건이 한국에서도 일어났지만 결과는 달랐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창조론을 과학 교과서에 넣는데 성공했으나, 한국에서는 실패했다. 한국의 기독교 세력은 미국만 같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와 지리 교과서는 그 사회의 집단적 편견을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입한다. 한국인은 단군의 자손으로 단일민족이며, 선조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을 이어받았으며, 우리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배운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면서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학창시절 한국사를 배우면서 무수한 연도와 이름을 외어야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었다. 왜 사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딴 것을 외우는데 내 삶을 낭비해야 할까? 나의 삶의 의미가 우리 민족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면서 의심하게 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왕왕있다. 미국의 교과서에서는 인간의 성에 대해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남녀 간에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며, 인간의 성이 사람들의 생애와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낙태를 많이 하는 나라이다.

 

   각 나라의 교과서에서는 자신의 나라가 최고라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특히 미국 사람의 경우 이러한 선민의식, 특별의식은 유별나다. 미국 사람들은 조상을 공유하지 않기에 ‘미국’이 표상하는 이념을 국민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국민들이 반드시 하나의 나라로 지켜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사회 집단들간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쉽게 쪼개질 것이다. 미국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미국사와 영어에 특히 비중을 많이 할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세계의 나라들이 역사 교과서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일본, 한국, 중국의 사람들에게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아이디어에 관해 물어보니 부정적인 답이 긍정적인 답보다 많았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인이 최고라는 생각, 조상의 축복 속에 번영하리라는 생각을 후손에게 주입시키고 시킬 것이다. 자신의 조상이 이웃을 괴롭히고 착취했으며, 전쟁을 벌여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후손에게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미국 사람들 역시 자신의 조상이 인디언과 흑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번번이 약속을 어고 비인간적으로 착취한 철면피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케 한다면 그에 대한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만 세상은 정의롭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자기 파괴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관해 알면 알수록 저들에게 천벌이 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과서에는 사회의 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기에 소외된 사람들은 관심에서 배제되어 있다. 교과서에서는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회는 강자의 논리에 따라 전개되며 이것이 사회의 발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본가는 중요한 일을 하며 그들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는 반면, 근로자들의 의견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주입받는다. 자본가와 근로자 모두 기업의 주인이므로 이들의 이익과 의견이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으로 아예 언급되지 조차 않는다.

 

  적자만이 생존한다는 사회진화론의 입장을 모든 역사 교과서는 은연중에 담고 있다. 세상은 잔인한 것이다. 땅속에 묻힌 미국 인디언에게는 후손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의로운 사회를 열망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내가 당면한 딜레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