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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 13:13


아침 9시에 버스에 올라 저녁 6시가 지나 내렸으니 아홉 시간이나 버스를 탔다. 부다페스트에서 클루지나코타라고 루마니아 북부에 있는 도시까지 이동했다. 그 도시에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다페스트로 가는 중간점에 있는 대도시이다. 거리로 340 킬로 쯤 된다는데 버스가 중간에 있 소도시를 모두 들러 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루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도중에 두번이나 큰 사고를 목격했다. 하나는 콘테이너 트럭이 급커브 길에서 뒤집힌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승용차 두대가 경사로에서 충돌했다. 두 차가 엄청나게 우그러진 것으로 보아 두차에 탄 사람은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버스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에 정차 했으며 여러 도시의 버스 터미날에 쉬어갔다.
나는 출입구 가까운 좌석에 앉은 덕분에 많은 만남과 작별을 목격했다. 부크레시티에서 탄 중년 여인이 기억난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글래머 스타일로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짙게. 하고 긴 숄로 멋을 낸 차림이었다. 그녀를 배웅하러 나온 여성은 그녀보다 몇살 젊어 보이는데 한눈에도 모델같다. 버스를 탄 여성은 한창 때를 지나 얼굴이 약간 이지러졌다. 성형수술을 한 것이 오래되 망가진 것 같다. 반면 그녀를 배웅나온 여성은 한창 때다. 찬 아침 공기에도 그둘은 차가 출발할 때까지 오래도록 함께 하며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 한다. 한동안 못볼 사정인가 보다. 추측컨대 두 여성은 같은 일에 종사했는데 한 사람이 그 일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 가는 것이다. 레스비언일 수도 있다. 버스가 출발하고도 두 사람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 한다.
가장 감정이 풍부한 만남과 헤어짐은 연인 사이이다. 어느 소도시에 버스가 정차하여 한 여성이 내리자 그녀를 마중나온 남자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다가 온다. 둘은 한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그것을 보는 나에게 까지 가슴이 따뜻해 온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몇번이고 키스를 하며 작별을 아쉬워 하는 커플도 여럿 보았다. 아버지가 멀리 떠나는 딸과 함께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마치 그 아버지가 나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멀리 떠나는 딸을 배웅하며 한편으로 든든해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험한 세상에 조심하라고 몇번이나 당부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문득 나에게도 있던 지독한 이별이 떠올랐다. 무엇을 모르던 한창 젊은 시절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와 만나는 나날은 설레이고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살았다. 세상에 두려울게 없었다. 어리석고 능력이 부족하여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오랫동안 세상 살아갈 기운을 다 잃은 듯 헤멨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그 후 어느 것에도 감흥이 없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됬다. 설레이는 삶을 갈구했지만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와 만남이 성사되어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안았을 것이다. 아니 더 힘들게 살게 됬을 수 있다. 그래도 다시 살라면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택하겠다. 몇년이 지나 유학을 떠나고 결혼을 임박하여 그녀의 어머니와 잠시 통화 했다. 나에게 무척 잘해준 분이기에 어린마음에 그냥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섭섭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던 일이 생생하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관찰하고 생각했다. 먹고 사는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것 같다. 먹고 사는 것 외에 바쁜 일이라면 단연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동물의 짝짓기 말이다. 짝짓기의 계절이 지나면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다. 그 아이들이 크면 또 짝짓기를 할테고. 내가 연애하면서 그렇게 설레었던 것은 짝짓기를 하도록 조건지어진 진화의 결과이다. 그때가 지나면 그런 감정은 다시 샘솟지 않는다. 그 시절을 그리워할 뿐.
사람들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듣던 음악을 일생 좋아 한다. 지금 나이든 사람은 7080 음악을 좋아하고 그 전에 나이든 사람은 뽕짝을 좋아한다. 이는 자신이 짝짓기 시절 귀에 들어오는 소리에 감정이 고정된 때문이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에 고정되듯이. 내가 마음이 허전하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은 사랑의 계절이 지나 버렸기 때문이리라. 지금 사랑하는 젊은이는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 처럼 설레고 날아갈 것 같이 하루를 살겠지.


2019. 5. 1. 09:34


어제는 일기를 건너 뛰었다. 소피아에서 부크레시티까지 밤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가급적 대낮에 이동하려 하지만 다른 수단이 마땅치 않아 그리했다. 역시 새벽에 버스를 내리고 나니 술취한 것 처럼 머리가 띵하다. 다행히 숙소에서 아침부터 머물도록 허락해 방에 들어가서 쉬면서 아침을 보내다.
어제 머문 소피아의 호스텔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타이완에서 온 까무잡잡하고 키 작은 젊은 여성이 인상 깊다. 그녀는 칠 개월째 여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단다. 태국에서 시작해 말레이지아 미얀마 방글리데시 인도 이런 식으로 하여 불가리아 까지 온 것이다. 돈은 별로 안들었단다. workaway 라는 사이트에서 일하면서 여행하는 자리를 찾아 한 곳에서 몇 주씩 머물며 지냈단다. 이 호스텔은 하루에 5시간 일주에 5일을 일하면 숙식을 제공한다. 지금 까지 국가간 이동은 주로 비행기로 하고 국내 이동은 히치 하이킹으로 했다. 앞으로 유럽의 쉥겐 지역으로 들어가면 모두 히치 하이킹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히치 하이킹을 하면 운전사와 대화를 하면서 문화와 삶의 방식을 잘 알 수 있어서 좋단다.
Dumpster Diving 라는 말을 들어 봤냐고 묻는다. 쓰레기 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인즉 먹을 만하지만 유효기간이 약간지나서 혹은 야채가 일부 상해서 버리는 것이 엄청 많은데 이 것을 재활용하는 것은 지구 환경을 지키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전공하고 3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는데 학적이 말소되는 2년 안에 복귀할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기에 어찌 될지 모른단다. 그녀는 눈이 빚나고 활발하고 말도 많이하고 발발거리며 일도 잘한다. 어디 가서나 환영 받을 거다.
 그곳에서 직업이 항공기 승무원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도 만났다. 그녀는 조금 나이가 들었는데 사람들을 안내하고 의사소통 하는 기술이 돋보인다. 서비스 기술이 몸에 배어 있어서이겠지만 워낙이 친절한 심성인 것 같다. 그녀도 그곳에서 두주간 일하며 머물고 있는데 이제 너무 오래 머문 느낌이라 집에 돌아가려고 한다. 항시 이동하는 직업인데 따로 여행이 필요 하냐니까 일과 여행은 다르단다. 그녀와 이야기가 통하는 것 같아 좀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일하느라 바쁘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자제했다. 남자와는 달리 여성과 이야기 할 때는 좀더 조심하게 된다. 그녀는 삶이 심드렁 한 나이에 접어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어딜 가도 신날게 없다.
부쿠레시티 숙소에서 드문 경험을 했다. 방을 함께 쓰는 시칠리아에서 왔다는 젊은 남자가 뉴질랜드에서 온 건장한 남자의 돈을 훔쳐서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이곳이 유럽 여행에 첫날이라는데. 나는 그 시칠리아에서 온 남자와 조금 이야기 해보고 신뢰가 가지 않아 오후에 시내 산책을 가며 귀중품을 모두 가지고 나가서 피해를 면했다. 어제 이야기 한 타이완에서 왔다는 여성은 텔레비에서 그리는 것 처럼 세상이 그리 험하지 않고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모두 친절하고 주장하지만 나는 사람이란 기회만 나면 거짓과 도둑질을 하는 심성을 타고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주장이 맞다면 그 많은 독재자와 부패는 생겨나지 않고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기에 그녀의 주장은 틀렸다.
불가리아와 이웃 인 루마니아는 퍽 달랐다. 부쿠레시티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흡사하다. 사람들의 발 걸음이 빠르고 시가가 붐비며 사람들이 긴장되 있다. 반면 소피아는 모든 것이. 느리다. 이렇다할 일거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공산국가라 그런지 공원이 많고 공공 조각상이 곳곳에 눈에 띤다. 반면 루마니아는 공산주의를 오래 전에 졸업하고 자본주의 경쟁으로 깊숙이 발을 들인 것 같다. 그들을 보며 일단 자본주의 경쟁의 빠른 리듬에 들어서면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데 하고 생각했다. 루마니아 사람들이 불가리아 사람보다 훨씬 세련되고 잘 살지만 웬지 불가리아 사람들의 삶에 정감이 간다. 물론 당사자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성의 댓가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이다. 모두가 따뜻하게 함께 사는 사회는 지구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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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9. 11:41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6시 반 경에 숙소를 나서다. 일요일 새벽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밤을 새고 놀다 피곤한 몸으로 길가에 널부러져 있는  젊은이들의 무리만 간간히 눈에 띤다. 4시간 반을 달려 불가리아의 소피아에 도착하다. 그 버스는 특이한 디자인이다. 밖에서 보면  웅장한 모습이고 안에서 전면을 보면 비행기의 조종석에 앉은양 전면이 넓게 펼쳐진다. 그런데 일단 달리니 사방에서 진동 소음이 난다. 머리위에 짐을 넣는 칸이 비행기의 것 처럼 덥개가 달려 있는데 정교하게 맞물리지 않아 소음을 낸다. 분명 공산권 국가에서 만든 것이다. 시장경쟁 체제에서는 이렇게 겉으로 웅장하고 속에는 실속이 없이 엉성한 것이 살아남을리 없다.
소피아의 숙소에서 한국인을 세명이나 만나다. 한사람은 젊은 청년으로 벌써 몇달간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는데 이층 침대에서 컴퓨터만 내리 혼자 들여다 본다. 다른 한명은 중년의 재미 한인 여성으로 미술을 한다는 것 같다. 또다른 한명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몇달간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는데 영어로만 간단히 인사했다. 외국 여행을 하다 숙소에서한국인을 만나면 가급적 말을 섞지 안으려 한다. 숙소에 다른 외국인들과는 활발하게 대화하지만 같은 한국인은 피한다. 한국인과 대화하며 자신의 배경과 현 상황이 노출되는 것이 피곤한 것이다. 한국인과 대화하면 익명성의 편안함을 지키기 어렵다.
숙소에 배낭을 두고 잠시 시내를 둘러보면서 공산권 국가의 분위기를 물씬 느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어두운 표정이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곳곳에 버인다. 중앙역 앞에 어머니가 아이를 않은 거대한 조각 탑이 보이길레 가까이 가보니 주변이 낡고 부서져서 초라하기 그지 없다. 오랫동안 유지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만들 때는 대단한 위업으로 선전했을텐데. 그뒤로 장갑차가 있고 곳곳에.경찰들이 삼삼오오 무리져 있다. 중앙로를 따라 위압적인 대형 건물이 연이어 있다. 건물위에는 주먹만한 문자 간판이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서 있다. 그것을 지휘하는 사람의 권위를 한껏 뽑내는 양. 광화문 광장에 세종문화회관 건물을 몇배 뻥튀기 하면 그리 될 것이다. 사람을 위압적으로 내리보는 그런 건물은 사람의 마음까지 위축시킨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실험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본능을 부정 했다. 모든 것을 위로부터 계획으로 통제하려 함으로서 각 개인의 자발성과 창의를 말살했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디자인이 성공할 수 없다. 그러한 체제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 할 동기나 창의를 발휘하여 개선할 동기가 없다. 권력을 쥔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의. 삶은 수동적이고 살 맛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루마니아의 부쿠레시티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버스터미날에서 물어보니 자정이 넘어 출발하는 버스가 한대 있을 뿐이란다. 낮에 이동하는 다른 편을 물어보니 화를 내며 응대하지 않는다. 역에가서 철도편을 물어보니 아침 8시 50분에 출발해 10시간 걸려 저녁 8시에 도착하는 편이 있단다. 그러면 11시간 걸리는 것 아니냐니까 대화를 끝내지 않았는데 화를 내며 창구를 닫는다. 내가 공손하게 물어봤는데 말이다. 뺨을 맞은 느낌이다. 철도편으로는 10시간이 걸리고 50십 플레브 약 25 유로 드는 반면 버스로는 6시간에 29플레브가 든다. 버스가 철도보다 훨씬 시간이 덜들며 40프로 정도 가격이 싸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버스터미널 밖에서 출발하는 플릭스 버스는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보다 1시간 정도 덜걸린다. 철도 계원이 11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이라고 한 이유도 나중에 깨달았다. 부쿠레시티는 여기보다 1시간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사람들이 사회주의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거리 산책을 나섰다. 숙소에서 오후에 잠을 자며 쉰뒤라 기운이 나서 모처럼 밤에 나선 것이다. 한참을 걷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보니 넓은 공원이 나타난다. 분수가 있고 정원이 조성되있고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보드를 타고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있고 거리의 악사들이 제법 그럴듯한 솜씨로 연주와 노래를 한다. 그 장소의 이름이 narional palace of culture  국민 문화의 궁전이다. 사회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잘한 것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재를 많이 만든 것이다. 도시가 크지 않은데도 지하철 노선이 복잡하며 지상으로는 전차가 자주 다닌다. 이 공원은 시민들 모두가 애용하는 것같다. 밤늦은 시각인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눈에 띤다. 젊은이들은 밤이 늦도록 불이 환한 분수가에서 논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사랑은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하며 아쉽지만 그곳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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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8. 11:02


아침 산책을 하면서 과일을 한가득 샀다. 토마토 사과 자몽을 담다보니  무거워졌는데 3유로란다. 이탈리아도 그랬지만 이곳 그리스도 농산물 가격이 저렴하다. 바다가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교회에서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리길래 올라가 보니 이른 아침인데 예배가 열리고 있다. 들어가 뒷자리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그리스 정교는  카톨릭 교회와 흡사하다. 신부가 무언가 주문을 끝 없이 왼다. 교회 현관 입구 양옆으로 거지가 진을치고 앉아 동전통을 내민다. 이 작은 도시에도 거지가 있는게 의아하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다섯명쯤 될까. 교회를 나와 언덕을 내려올려니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는 할머니가 보인다. 이곳에서도 교회는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 오는길에 기로라고 부르는 그리스식 버거를 샀다. 샤워를 마치고 숙소 발코니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먹으니 무척 맛있다.
그리스 반도의 북서쪽 끝에 있는 이곳에서 북동쪽 끝에 있는 테살로니카 까지가는데 4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가 잘 닦여 있는데 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 간간이 승용차만 지나갈뿐 트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험준한 산악 지역을 계속 달리다가 동쪽 끝에 이르러서야 평야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버스 여행은 모두 플릭스버스라는 회사를 이용했다. 몇년전 영국에 머물며 여행할 때만 해도 이회사가 그렇게 크지 않았았다. 유로라인 이라는 회사도 제법 컸는데 이번에 여행해 보니 이 회사가 장거리 버스 시장을 거의 장악한 것 같다. 어느 나라를 가던 터미널에  이버스 소속의 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플릭스 버스는 효율적으로 운용된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표를 예약하고 휴대전화에 티켓을 다운로드 받아 승차시에 운전사에게 그것을 보이면 운전사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큐알코드를 인식한다.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를 운전사에게 보이고 노인은 집에서 티켓을 프린트 해 오거나 터미날에서 표를 산다. 플릭스 버스의 운행 노선은 서유럽은 물론 동유럽 전지역에 거미줄 처럼 퍼져 있다. 현지 업체와 제휴하여 운영하기에 나라마다 서비스 품질이 조금씩 다르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려 하면 운행 시간에 따라 요금의 차이가 크고 출발 시각에 임박해서 예약하려면 가격이 비싸진다.
그리스는 이회사의 운행노선 지도에 안나온 나라이기 때문에  터미날에 가서 물어볼 때까지 버스를 타고 어디를 어떻게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가입해 있지만 장거리 버스 시장을 외국 업체에 개방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진다. 버스는 새것이었지만 차안에서 인터넷이 안되고 충전플러그가 없으며 화장실 문을 잠거 놨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부터 타고 오는 장거리 승객이 없어서이겠지만 화장실 청소를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네시간을 타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20분 정도 쉬는 시간에 볼일을 해결해야 한다. 톨게이트에서 어떤 여성이 운전수에게 사정을 하니 화장실에 다녀오게 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공유택시 사업을 택시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서 허용하지 않는데 분명 잘 못하는 것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교수들도 정년보장을 받으면 연구력이 떨어진다. 봉급을 훨씬 덜 받는 젊은 비정년의 교수들이 논문을  많이 쓴다. 경쟁이 없으면 신기술 개발 노력을 하지 않고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경쟁이 없다면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기득권의 장벽으로 이익을 보호하려 하기에 경쟁을 받아들여야 발전이 있다.
미국이 그렇게 문제가 많은 나라임에도 혁신과 신기술 개발이 그곳에 몰리는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더 경쟁을 허용하는 사회 시스템때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린다. 미국의 대학원이나 연구소에는 내국인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가 훨씬 더 많다. 새로운 기술과 운영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기존의 기득권 집단과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것이기에 경쟁을 차단하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유럽을 보면 미국보다 기득이권의 보호 장치가 더 단단하여 답답한 느낌이 든다. 유럽연합이 뭉치게. 된것도 미국과 경쟁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과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경쟁을 덜 허용하고 전통과 기득이권을 더 보호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테셀로니키의 터미널을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으로 이동하여 숙소까지 걸었다. 지도가 가르키는대로 언덕위에  달동네를 아무리 올라가도 숙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 숙소가 있다는게 이상하다.  인테넷에는 이 집의 평이 매우 좋았다. 힘들게 물어 물어 찾아가 체크인을 하며 주인과 이야기 하면서 답을 찾았다. 주인이 매우 유능한 사람이다. 여행자가 궁금해 할만한 것을 묻지도 않는데 상세히 이야기 하며 무엇보다 첫인사가 오느라고 수고했다 커피를 하겠냐 차를 하겠냐 이다. 그런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듣지 못랬다. 차를 마시면서 그와 또한명의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원 벤치에는 다른 여행자들이 마치 오랜 친구인 것 마냥 이야기를 나눈다. 그 중심에는 주인이 있다. 그는 수시로 사람들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분위기를 이끈다. 놀라운 것은 시내 관광을 하는 지도를 직접 인쇄하여 나눠준다는 점이다. 그 지도에는 이 숙소의 위치가 대문짝 만큼 표기되 있다. 그는 이런 산동네 구석에 있기 아까운 인재다.
 나도 그 숙소의 분위기에 동참해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저녁을 얻어 먹었다. 터키에서 온 사람이 우리나라의. 감자탕 비슷한 것을 한 냄비 끌였다. 이야기를 건네보니 그는 이 도시에서 일하며 장기 투숙하는 사람이었다. 맛좀 봐도 되겠냐고 했더니 앉으란다. 그날 저녁에는 방을 같이 쓰는 영국에서 온 젊은 커플과 세르비아에서 온 장기 투숙하는 남자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영국에서 온 커플은 지난 한달 동안 서유럽을 돌아다녔고 앞으로 두달더 동유럽과 터키를 여행할거란다. 그들은 숙소에서 저녁을 해먹었는데 둘 사이가 편안해 보였다.
세르비아에서 온 사람은 인상이 강하고 비속어를 써가며 격하게 말한다. 거친 사람들과 어울리며 영어를 배웠나보다. 비행기 조정에 관심이 많아 비행기를 조정하려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나에게도 비행기를 한번 운전해보란다. 자신의 나라에 가면 몇백 유로만 내면 간단한 교습을 받고 비행기를 조정할 수 있는데 한번 비행기를 조정해보면 중독될거란다. 그는 말하는 품으로보아 군에서 제법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분위기 좋은 호스텔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관찰할 수 있어 좋다. 방을 홀로 쓰는 호텔보다 호스텔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감자칩에 요구르트 소스를 듬뿍 뭍힌 먹거리를 사서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먹었다. 여러 사람들이 사먹기에 나도 샀는데 아무래도 바가지를 쓴 것 같다. 콜라 컵 규모의 것인데 3.2 유로를 냈다. 그 바로 옆 전통 시장에서 소시지를 600그램 사며 3유로를 냈는데 뭔가 이상하다. 나에게는 3 유로가 큰 돈이 아니지만 그래도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드니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리스는 우리나라의 10년전 모습과 흡사하다.




2019. 4. 28. 10:13


아침 산책을 하면서 과일을 한가득 샀다. 토마토 사과 자몽을 담다보니  무거워졌는데 3유로란다. 이탈리아도 그랬지만 이곳도 농산품 가격이 싸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교회에서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리길레 올라가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예배가 열리고 있다. 들어가 뒷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참석ㅈ그리스 정교는 확실히 카톨릭과 흡사하다. 신부가 무언가 주문을 끝도 없이 왼다. 교회 현관 입구 양쪽으로 거지가 진을치고 동전통을 내민다. 이작은 도시에도 거지가 있는게 의아하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다섯명쯤 될까. 교회를 나와 언덕을 내려오니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는 할머니가 보인다. 이곳에서도 교회는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것 같다. 숙소에 오는길에 기로라고 부르는 그리스식 버거를 샀다. 숙소 발코니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먹으니 무척 맛있다.
그리스 반도의 서북쪽 끝에 있는 이구메니챠에서 동북쪽 끝에 있는 테셀로니카 까지가는데 4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가 잘 닦여 있는데 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 트럭을 거의 보지 못했다. 길은 험준한 산악 사이를 계속 달리다가 동쪽 끝에 이르러서야 평야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버스여행은 모두 플릭스버스라는 회사를 이용했다. 몇년전에 영국에 머물며 여행할 때만 해도 이회사가 그렇게 크지 않았았고 유로라인 이라는 회사도 제법 컸는데 이번에 여행해 보니 거의 이회사가 장거리 버스 시장을 장악한 것 같다. 어느 나라를 가던 터미널에  이버스 소속의 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플릭스 버스는 매우 효율적으로 운용된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표를 예약하고 휴대전화에 티켓을 다운로드 받아 승차시에 운전사에게 그것을 보이면 운전사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큐알코드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운행된다.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를 보이고 노인은 집에서 티켓을 프린트해온다. 플릭스 버스의 운행노선은 서유럽은 물론 동유럽 전지역에 거미줄 처럼 퍼져 있다. 현지 업체와 제휴하여 운영하기에 나라마다 서비스 품질이 조금씩 다르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려 하면 출발 시각에 따라 요금의 차이가 크고 출발 시각에 임박해서 예약하려면 가격이 제법 올라간다.
그리스는 이회사의 운행노선 지도에 안나온 나라이기 때문에 실제 터미날에 가서 물어볼 때까지 버스를 타고 어디를 어떻게 갈지 알 수 없었다. 유럽연합에 가입해 있지만 장거리 버스 시장을 외국 업체에게 개방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서비스의 품질이 열악하다. 버스는 새것이었지만 차안에서 인터넷이 안되고 충전플러그가 없으며 화장실은 문을 잠그어 놨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타고 오는 장거리 승객이 없어서도 이유겠지만 화장실 청소를 하기 싫어서도 이유겠지. 네시간을 타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20분 정도 쉬는 시간에 볼닐을 해결해야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도 공유택시 사업을 택시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서 허용하지 안고 있는데 분명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교수들도 정년보장을 받으면 연구력이 떨어진다. 봉급을 훨씬 덜 받는 젊은 비전년의 교수들이 논문을 훨씬 많이 쓴다. 경쟁이 없으면 신기술 개발 노력을 할리가 없고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경쟁이 없다면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기득권의 장벽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기에 경쟁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이 그렇게 문제가 많은 나라임에도 혁신과 기술개발이 그곳에 몰리는 것은 다른 나라보다 더 경쟁을 허용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린다. 미국의 대학원이나 연구소에는 내국인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가 훨씬 많다. 새로운 기술과 운영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기존의 기득권 집단과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것이기에 걍쟁을 차단하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유럽을 들여다보면 미국보다 기득이권의 보호가 더 철저하여 답답한 느낌이 든다. 사실 유럽연합이 뭉치게. 된것도 미국과 경쟁을 의식해서이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과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경쟁을 덜 허용하는 기득이권과 전통을 더 보호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테셀로니키의 터미널을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으로 와 숙소까지 걸었다. 언덕길에 다닥다닥붙은 달동네를 아무리 올라가도 숙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 호스텔이 있다는게 이상하다.  인테넷에는 이 집의 평이 매우 좋았었다. 힘들게 물어 물어 찾아가 체크인을 하면서 주인과 이야기 하면서 해답을 찾았다. 주인이 매우 유능한 사람이다. 여행자가 궁금해 할만한 것을 묻지도 않는데 상세히 이야기 하고 무엇보다 첫인사가 오느라고 수고했다 커피를 하겠는지 차를 하겠는지 이다. 차를 마시면서 그와 또한명의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원 벤치에는 다른 여행자들이 마치 오랜 친구인 것 마냥 이야기를 나눈다. 그 중심에는 주인이 있다. 그는 수시로 사람들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분위기를 이끈다. 이런 산동네 구석에 있기 아까운 인재다.
 나도 그 분위기에 동참해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저녁을 얻어 먹었다. 터키에서 온 사람이 우리나라에. 감자탕 비슷한 것을 한 냄비 끌였다. 이야기를 건네보니 그는 이 도시에서 일하며 장기 투숙하는 사람이었다. 맛좀 봐도 되겠냐고 했더니 앉으란다. 그날 저녁에는 한방을 쓰는 영국에서 온 젊은 커플과 세르비아에서 와 장기. 투숙하는 남자 한명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영국에서 온 커플은 지난 한달 동안 서유럽을 돌아다녔고 앞으로 두달더 동유럽과 터키를 여행할거란다. 숙소에서 저녁을 해먹는데 둘 사이가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였다.
세르비아에서 온 사람은 인상이 강하고 슬랭을 써가며 말을 격하게 한다. 거친 사람들과 어울리며 영어를 배웠나보다. 비행기 조정에 관심이 많아 비행기를 조정하며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나에게도 비행기를 한번 운전해보란다. 한번 조정을 해보면 중독죌거란다. 그는 말하는 것으로보아 군에서 제법 시간을 지낸 것 같다. 분위기가 좋은 호스텔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관찰할 수 있어 좋다. 방을 홀로 쓰는 호텔보다 호스텔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오후에는 시내로 내려와 돌아다니면서 감자칩에 요구르트 소스를 듬뿍 뭍힌 먹거리를 사서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녀 천천히 먹었다. 여러 사람들이 사먹기에 나도 샀는데 아무래도 바가지를 쓴 것 같다. 콜라 컵 규모의 것인데 3.2 유로를 냈다. 그 바로 옆에 전통 시장에서 소시지를 600그램 샀는데 3유로를 냈는데 뭔가 이상하다. 나에게는 3유로가 큰 돈이 아니지만 그래도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드니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그리스는 우리나라의 10년전 모습과 흡사했다.




2019. 4. 27. 13:16



그리스로 가는 배편이 오후 1시인지라 아침 시간을 느긋하게 보냈다. 산책을 하고 숙소 침대에서 뭉기며 티브 채널을 돌렸다.  주인 아저씨가 다반에 아침상을 차려들고 방문을 두드린다. 오늘도 뭔가를 흘렸다. 숙소를 나와 한참 걸어간 후에야 충전기를 두고 온게 생각나 오던 길을 되돌아 갔으며 저녁 때 샤워를 할 때 치솔을 숙소에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집중력이 흐려진 것이다. 쉴 때가 됬다.
그리스의 이구멘치아로 가는데 7시간 반이 걸 렸다. 배를 타는 것은 처음 약간 흥미로울 뿐 비행기 여행과 마찬가지로 금방 지루해 진다. 사람들은 홀 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잠을 청한다. 승객은 많지 않다. 배는 제법 큰데 콘테이너 트럭을 실어 나르는데 주로 이용되는 것 같다. 아시아인은 나 혼자였다.
나는 결국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책을 넣어 온 것을 후회했는데 결국 용도가 있다. 글을 읽는 것이 직업인지라 여행하는 동안은 가급적 안보려 했는데. 오랜만에 글다운 글을 읽으니 반갑기도 하지만 내용이 머리에 잘 안들어 온다. 읽은 곳을 또 읽고 하며 힘겹게 나갔다.  Stephen Pinker 의 Language Instinct 라는 책인데 과거 이 사람의 책을 여러권 읽으면서 감탄했다. 나도 그처럼 통찰력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현실은 초라하기에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명예를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무위로 끝내고 돌아갔다. 어머니는 종종 밥만 끓이고 사는 것은 사나마나라고 했다. 나도 별 볼일이 없다. 배에서 뭉기며 내가 앉은 바로 앞 매점에서 일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일을 하기 싫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가 보는 것을 의식했는지 판매대 뒤로 숨는다. 나는 구멍가게에서 멍하니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때때로 저 사람의 어머니가 자식이 저러자고 귀한 애를 낳은 것은 아닐텐데 하고 생각한다. 사람이 소중하려면 그에 걸맞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진짜 모습을 보면 실망할 거다. 마지막에는 결국 나를 포기했다.
이구멘차의 호텔에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에 들어갔다. 시차가 한시간 앞당겨졌다. 이곳은 작은 항구도시이다. 숙소에 짐을 내려 놓고 시내를 잠시 돌았는데 바닷가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곳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 늦은 시각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먹고 마신다. 모두들 최고로 빼 입고 나온 모습이 눈에 띤다. 남성은 정장차림이고 여성은 공들여 멋을 냈다. 젊은이들은 데이트를 하고 중년 가장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식사를 한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와 이 늦은 시간에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게 특이하다. 아이들은 레스토랑 앞에서 뛰며 논다. 그들도 크면 그들 부모 처럼 밤늦은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길가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쌍쌍이 레스토랑에 앉아 희롱하며 논다. 좋은 시절이다. 그들을 보며 인생의 낙이 뭘까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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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6. 12:47



로마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 가니 차창 밖 풍경이  지금 까지와 완연히 다르다. 멀 리 언덕 위로 집과 마을이 보이고 올리브 밭 포도 밭 풀 밭이 번갈아 가며 계속 된다. 수로가 안보인다. 흙은 바짝 말라 있고 햇빛은 따갑게 내리 쬔다. 물이 귀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 들어섰다. 사막 같이 건조한 곳에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신기하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니 끝없이 이어진 평지가 펼쳐진다. 길이 곧아서 지평선을 보며 앞으로 간다. 지평선을 계속 쳐다보려니 최면에 빠진 것 마냥 졸려서 한동안 잤다. 깨어 보니 차는 여전히 그대로 달리고 있다. 이태리는 넓고 정 말 다양하다. 로마까지 오는 고속도로에는  콘테이너 트럭이 줄지어 있었는 데. 남으로 갈 수록 점점 줄더니 이제는 자취를 감췄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고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집들은 낧고 허름하다.
나는 탁 트인 공간을 무척 좋아한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가면 질식할 것 같아 얼 른 나온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혼자가 낫다. 내 속에 성난 괴물이 앉아 있다.  그것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도록 억누르지만 그래도 그것은 나의 행동과 사고를 움직이는 주인이다.

언제부터 그 괴물이 내 안에 자라기 시작했는지 어렴풋이 안다. 나는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순한 아이였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스르르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 때 사진을 보면 천진 난만하게 티없이 웃고 있다. 재잘거리며 웃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중3 때 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반장을 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급우들을 보게 됬다. 학교에 안 나오면 선생님이 나보고 걔 집에 가서 보고 오랬다. 지금도 그들의 가난이 떠오른다. 하꼬방 어두컴컴한 방안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수업시간에 잠만 잤는데 왜그러냐고 물으니 어차피 고등학교에 가지 않는데 공부는 왜 하냐고 했다. 담배를 피고 불로 팔을 지지면서도 나에게는 담배를 피지 말 라고 그랬다.
고등학교에 올 라가서는 정말 힘들었다. 시험을 계속 보는게 힘에 부쳤고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서 자습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우열반을 나누고 반에서도 성적순으로 자리를 정했는데 그 경쟁이 힘들었다. 나보다 낮은 성적의 아이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할까 의식하며 상위를 차지한 것에  미안해 했다. 말수가 줄었고 어머니가 나에게 음울한 아익라고 했다. 다시 뒤 돌아보기 싫은 시간이다. 대학에 가서는 교정에 항시 전경이 진을 치고 있고 데모와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억압을 느꼈다. 이영희의 베트남 전쟁을 분석한 글을 읽으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위선과 거짓과 부정의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태연히 아무일도 없는 양 지내는 것이 참을 수없었다. 부정의는 자연에 가까운 상태이고 인간은 제도를 통해 욕심을 제어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점차 머리로 이해했지만 가슴속에 도사린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그 부정의에 동참하기에 마음이 불편한 것이리라. 영화 대부의 주인공이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위해 넓은 공간을 찾는다. 넓게 열린 공간을 보면 환장한다. 물을 만난 물고기 처럼.

7시간을 달려 브린디시란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발뒤꿈치에 위치해 있다. 도시외곽에서 버스를 내린후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의아했다. 마치 핵폭탄 맞은 것 마냥 햇빛은 따갑게 내려 쬐는데 거리가 비어 있다. 상점은 모두 셔터를 내렸고 제법 큰 슈퍼마켓은 아직 4시 밖에 안됬는데 문을 닫았다. 바닷가 가까이 도시 중심으로 가니 그제야 사람이 보인다. 그리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먼곳에 왔는데 알고보니 이곳은 그리스 로마시대에 건설된 항구도시로 그당시 유적이 남아 있는 관광 도시였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 철시한 것이다.
숙소를 어렵게 물어 찾아가니 외따른 골목속에 있는 민박집이다. 현관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며누조그만 정원이 나타나고  계단을 올 라가면 또 조그만 정원이 나타난다. 비밀의 공간 같다. 칠십가까이 되보이는 할머니가 안내하는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결국 아들을 불러내서 간신히 필요한 몇 마디를 했다. 그녀석의 영어도 신통치 않아 의사소통이 힘들다. 이탈리아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던 영어로 물으면 이탈리아 말로 뭐라고 뭐라고 한다. 혼자 쓰는 방은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통나무 판자로 사방벽이 둘러치고 천장에 나무 서까래가 드러난 오래된 집이다. 주인 할머니가 쓸고 닦아 깨끗하고 단정하다. 손바닥 만한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화초를 가꾸고 있다.
수백년은 됬음직한 집 사이로 난 골목길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바닥에는 주먹만한 검은 색 돌이 깔려 있고 희고 넓은 대리석 조각으로 차도를 포장한 특이한 길이다.  가까이에 대리석이 많이 나나보다. 중세 때부터 그랫을 것 같은 길을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한참이나 싸돌아다녔다. 황혼녁에  비스듬이 벽에 비친 주황색 빛이 아름다웠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어지럼증이 찾아 올 무렵 어느 구석에서 피자집을 발견했다. 부부가 하는 조그만 가게 였는데 주민들이 계속 찾아와 피자를 찾아가고 인사만 건네고 가기도 간다. 피자를 주문했는데 한판에 4.5 유로란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듬뿍 얹고 종이처럼 얇은 프로슈토로 전면을 뒤덮은 피자이다. 약간 짰지만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조그만 홀 탁자에 앉아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먹었다. 손님이 뜸해진다. 반판을 배부르게 먹고 나머지는 싸왔다. 여러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오늘 마침내 가지고 다니던 외투를 차에 두고 내렸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버스가 떠난후. 인생은 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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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5. 11:46



어째 수월하게 진행된다 했더니 신용카드가 결제되지 않아 다음 일정을 예약하지 못하게 됬다. 인테넷으로 무엇을 구입하려면 결제가 항상 문제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인터넷으로 카드 결제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구입을 꺼렸다. 근래 한국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이트에서 결제하려면 긴장된다.  해외 여행 을 하면서 카드가 잘될 지 확실치 않았는데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에 있는 딸애의 도움으로 어찌하여 급한 불은 껐다. 역시 미국 것은 되는데 한국 것으로는 안된다. 성인이 된 딸애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은게 처음인 것같다. 대견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걔의 인생에 내가 간여하지 않으려 한다. 인생은 혼자 개척할 때 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면서 약한 나라 사람의 서러움을 종종 목격한다. 어제 국 경을 통과할 때 내 옆에 앉은 알바니아 여자에게만 세관 경찰이 꼬치꼬치 캐묻고 결 국 여권을 가져가 조회했다. 한국이 부자 나라가 된 것을 해외 여행을 할 때 실감한다. 한국 관광객이 세계 곳곳을 누비기에 이제는 어디서 여권을 보자해도 위축되지 않는다. 태어나는 나라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데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선진국 사람들의 위세부리는 모습을 보면 속이 불편하다.
오늘은 버스 출발 시간에 여유가 있어 새벽에 주위를 산책했다. 나는 새로운 곳에 가면 새벽에 호젓이 산보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거닐면 힘이 난다. 볼 로냐의 중세 거리를 홀 로 걷는 시간은 참 좋았다.  간밤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청소하는 사람을 간간히 본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가게를 열 려고 준비하는 모습과 일찍 출근하는 사람을 만난다. 나도 서울에 돌아가면 저리 바쁘게 살겠지 생각하니 한가히 돌아다니는 이 시간이 더욱 맛나게 느껴진다. 일생에 자주 오지 않는 기회이다. 요긴하게 써야 할텐데. 모르겠다.
이탈리아로. 들어가면서 조금 긴장한다. 후진국은 질서가 잡혀 있지 않고 뭐가 잘 안된다. 문제를 호소해도 막무가내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나 달라 인터넷으로 결제가 잘 안되는 것이다. 숙소에도 인터넷이 잘 안되어 애를 먹었다. 문제를 설명해도 그냥 무시한다. 6시간을 타고 로마에 도착했다. 거리가 지저분 하고 주변이 잘 정돈되있지 않고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는게 딱 우리나라의 수준이다. 국민소득으로 따지면 이탈리아의 중부지방은 한국과 비슷하다. 이 나라는 남북의 소득 격차가 커서 북부는 서유럽의 부자나라못지 않지만 밑으로 내려갈 수록 사람들이 못사는게 느껴진다. 소득에 따라 사람들의 행태나 도시의 모습이 차이가 난다.
숙소를 나서 로마의 관광지를 돌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콜로세움을 마주하고 나도 이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은 잠시일 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인파 소음 물건파는 사람들의 호객 등 번잡하기 그지 없다. 지금이 관광철이 아닌데도 이러하니 관광시즌에는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로마에 대한 기억이 어떠냐고 물으면 더위와 소음과 인파속에서 길을 잃고 엄청 헤멨다고 대답할 것이다. 가로에는 안내 지도가 하나도 없어 길을 잃기 쉽상이다. 이 골목을 돌아도 비슷하고 저리로 가봐도 방향을 전혀 못잡겠다. 길을 물어보려 해도 주위가 모두 관광객이고 가게 점원에게 물으면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친절한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숙소에 돌아왔다. 인터넷 지도가 있어서 인지 사람들은 길을 묻지 않다. 모두 휴대폰만 들여다 보며 방향을 잡으려 한다. 그런데 내 휴대폰은 먹통 이니 고생한 것은 당 연하다.  숙소에 도착할 무렵에는 완전히 진이 빠졌다.
휴대폰 로밍을 하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방향감각이 좋다고 자부하는 것도 있지만 길을 잃고 헤메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흥미있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지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과 속사정을 보려면 겉으로 보이는 곳을 벗어나야 한다. 길을 잃고 헤매면 우연히 그런 모습을 마주친다. 물 론 엄청 걷는 것이 댓가이다. 과거 내 여행 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모두 그렇게 얻어진 것이다. 현지인들이 먹는 허름한 식당 에 들어가고 동네 교회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참석하고 힘들어하거나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갖가지 모습을 마치 동물의 생태를 관찰하듯 들여다 본다. 로마는 어디를 가나 뒷골목까지도 모두 관광지라 금방 나의 흥미를 잃었다. 어쨋든 힘든 하루였다.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치는 것이니  어려움도 감수해야 한다. 이것도 경험이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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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버스에 맞 추려고 새벽 5시 반에 숙소를 나섰으나 버스는 두시간 늦게 왔다. 아침 찬공기에 모두들 떨고 혹시 버스를 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왔다갔다 한다. . 나는 되는대로 할 심산이기에 느긋하게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며 기다린다. 내옆에 있는 인도에서 온 가족은 금장신구를  온몸에 두루고 있다. 다른편에 앉은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젊은 여인은 담배를 계속 피운다. 스트레스에 싸인 모습이 찌푸려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스위스에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험했다. 끝도 없이 긴 터널을 여러개 지나고 양 옆으로 깍아지른 절벽사이로 아슬아슬 하게 도로가 나있다. 빙하에 깍여져서 U자형 공간의 바닥을 지난다. 양옆 바위에는 옆으로 줄이 그어 있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스위스 국경을 지나니 바로 평야가 펼쳐진다. 스위스 사람들은 산속에만 사는 것이다. 7시간을 달려 오후 세시를 넘어서야 볼로냐에 도착했다. 오늘은 버스를 너무 오래 탔다.
숙소를 어렵게 찾았는데 특이하다. 오래된 건물 속에 들어있는 고급 아파트의 한층을 이렇게 싸구려 숙소로 쓰다니. 바닥이 모두 대리석으로 되있고 화장실에는 변기 옆에 비데용 변기가 따로 있고 거실에는 대리석 바가 차려져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한다. 23 유로를 냈다.
볼 로냐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중세시대의 투박한 벽돌 건물이 옛날 그대로 이다. 육중한 건물 사이로 난 습하고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꽤 걸었다. 바닥은 벽돌이나 자갈로 되있으며 이끼가 덮여 있어 미끄럽다. 그 건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 내가 묵은 숙소도 외관은 그런 중세 건물이지만 속은 현대식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골목길을 호젓이 걷고 아무도 없는 거대한 벽돌 건물에 둘러 싸인 공터에 앉아 과거를 상상해보는 것은 새롭다.
그곳에 앉아 문득 왜 이렇게 정신나간 사람 마냥 돌아다니는지 자연 생각이 미쳤다. 외로운 여행자로 아무도 모르게 이 구석에 걸터 앉아서 말이다. 많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 여행도 오래전부터 이리하리라고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글을 매일 쓰는 것도 여행 첫날 밤에 깨서 잠이오지 않아 시작한 것이다. 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냥 살다 가는거란 것을. 한 때  삶이 괴롭고 더이상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져 바다물에 빠져도 봤다. 그순간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어린 아이가 떠올라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나왔다. 내가 없으면 걔가 힘들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보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본다. 젊은 남녀 커플은 사랑의 열기에 들떠서 연신 서로 쓰다듬고 키스를 하지만 그 옆에는 삶에 지치고 몸이 무거운 노년의 무표정한 얼굴이 있다. 그들도 한 때 젊고 들뜬 시절이 있었으리라. 어머니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나의 어머니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꽃같은 모습의 젊은 시절이. 지금 저럽게 자유분방한 젊은이가 몇십년 후에는 또 저렇게 삶에 지친 모습으로 변하다니 허무하다. 그래서 부처는 출가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도 해답이 아닌 것 같다. 이세상에 있는 한 그 굴레에서 도피할 방법은 없다.
앞을 모르고 걸어간다. 확실한 것은 조만간 죽는다는 사실뿐. 그래서 삶에 두려움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탈출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안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개미나 소가 그렇듯이. 길을 걷다 고급 레스 토랑의 현관에서 죽은 참새를 발견했다. 나는 어릴 때 새가 죽으면 모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하늘로 올라가는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가되고 싶었다. 내가 새라면 갈매기의 꿈에나오는 새 처럼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 한껏 높이 올라가 보고 싶다. 나는 꿈을 많이 꿨는데 자유스런 해방감보다는 중력을 이기며 추락하지 않으려고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며 안타까와하다가 깼다. 그러면 그 느낌이 너무나 절실해서 깨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아 있다.
나의 삶은 이번 여행과 다르지 않다. 미리 계획한 여정이 없고 정신나간 놈 마냥 그냥 달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마라톤도 해봤지만 별거 없었다. 섹스는 더더군다나 더 별거 없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다음날의 일정을 잡는다. 이곳 볼로냐는 중세를 맛볼 수있는 독특한 곳이지만 날이 새면 다시 떠날 것이다.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떠돈다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한곳에 있는 것틀 참을 수 없어 발걸음을 옭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사는 거겠지. 이제는 나에게 의지하던 아이도 독립해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내 삶을 꼭 더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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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3. 11:46




새벽 여섯시에 버스에 올라 다섯시간을 타고 쮜리히에 도착하다. 스위스 국경 검색을 통과하자 마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좌우로 산이 보이는 계곡 사이로 구불구불 도로가 나있다. 작물을 재배하는 평지는 거의 없고 가파른 경사면을 맨맨하게. 밀고 초지를 조성해놨다. 산 경사면 곳곳에 집이보이고 마을이 있다. 지금까지 달려온 독일에는 좌우로 넓은 평 원이 보이고 숲과 경작지가 번갈 아 지나가고 인가가 전혀 없는 지역이 많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스위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든 산골에 인구밀도도 높게 살까.
나는 스위스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주위 유럽국가들의 끝없는 전쟁속에서 끈 질기게 독립을 지켜 온 것은 놀 랍다. 산골에 살았기에 가능 했을 것이다. 그 댓가는 억척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차창 밖으로 가파른 높은 곳에 밭을 일구고 집을 지은 것을 보면 꼭 저기서 저렇게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살 아야 하나 생각한다. 인간은 가장 큰 자연 파괴자이다. 스위스 곳곳에서 환경 을 생각한다고  자랑스럽게 밝히는 문구를 보지만 그들이 산골에 빽빽히 사는 것 자체가 엄청난 환경파괴이다.
스위스는 잘사는 나라다. 어딜 가든 깨끗이 정돈되 있고 그림같은 집과 마을과 가로를 만 난다. 어디서 그 돈이 나오는지 생각하게 된다. 스위스는 금융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첨단 기술 산업도 발 달했긴 하지만. 스위스의 은행은 철저한 비밀주의 원칙을 지켸 세계 전역에서. 검은 돈을 끌어 모았다. 독재자들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큰 돈을 모은 사람들은 이곳에 돈을 예치하고 발뻗고 잔다. 나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태인들이 맡긴 엄청난 액수의 저금을 이들은 조용히 꿀꺽했다. 박정희 대통령 의 부정한 돈도 이곳에 예치되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피를 짜낸 돈으로 이들은 잘 사는 것이다. 근래에 미국이 스위스 은행에서 돈세탁을 방지하도록 예금을 실명으로 하는 제도를 도입하라고 압력을 넣지만 이들은 발을 끌며 도입을 미루고 있다. 그렇게되면 스위스 은행의 매력은 사라질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과거에 주변 나라에서 용병 으로 많이 일했다. 지독한 사람들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정신 똑똑히 차리고 살 라고 말하곤 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산다는 말도 입에 달고 살았다. 전쟁통에 북한에서 맨몸으로 내려온 남편을 만 나 전처의 자식들까지 건사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어머니는 나를 매일 밥상 머리에  앉히고 국민학교 과정 을 모두 가르쳤다. 숙제를 안하면 수련장 을 다풀지 않으면 나가 놀 수 없었다. 내가 공부를 게을리 하면 어머니는 눈물 로 호소하며 나를 정신차리게 했다. 머리가 신통치 않은데도 이만큼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이다.
어머니는 본인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이루기를 바랐을 것이다. 내가 내 자식에게 바라듯이. 어머니 처럼 고생하지 말 라고. 어머니는 내가 훌륭한 일 을 이루기를 바랬다. 밥만 끌이고 살다 죽는 것은 가치 없다고 하며 열심히 노력해서 큰 뜻을 이루라고 했다. 이렇게 사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억척같이 살아서 뭐하냐고 속으로 항시 반항했다.
나는 술도 담배도 안하고 스포츠에 관심이 없으며 여자 권력 돈은 나와 무관하다. 명 예는 바랏지만 이루지 못해 마음을 접었다. 나 자신에게 때때로 묻는다. 무슨 재미로 사냐고. 왜 또하루를 더 살아야 하냐고.

끈질기게 악착같이 남의 돈까지 그러모아서 스위스 사람들은 부유하게 산다. 산골에서. 스위스는 이민자의 귀화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내머리에 차있기에 스위스의 부유한 거리와 아름다운 집을 보면서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쮜리히의 호숫가에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을 지나 더 걸으면 주민들이 나와 노는 곳을 만난다.  여느 풀밭처럼 사람들은 일광 욕을 즐기고 아이들은 뛰어 놀고 간간히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이 보인다. 물가에 풀밭을 지나 주거지역으로 들어가니 한가롭게 산책하는 노인이 많이 눈에 띤다. 까페에 나와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쮜리히 호수를 바라보는 집들은 세계 전역에서 은퇴한 부자들이 노후를 보내는 장소로 유명하다. 이들은 한창 때 엄청난 보수를 받는 지위의 사람들이었으리라. 지금은 불안정하게 걷는 그들을 보면서 그리 동정이 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만 혼자 잘먹고 잘사는 가술에 능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럴 능력도 못되지만 나만 잘먹고 잘 사는데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뭐하나 뜻있는 일을 이룬 것도 없는데. 그래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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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2. 11:34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숙소를 나서 하이델베르그 앞산을 올 랐다. 서울에 청계산 만한 높이로 두시간쯤 걸으면 정상 이다. 가는 길에 오래된 교회에서 노래 소리가 흘 러나오기에 들어가보니 성가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이 부활절 주일이라 특별히 성가 공 연을 준비하여 리허설 을 하는 것같다. 제단에서는 사제가 예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반시간 이상이나 앉아있었다. 예배시간이 가까와 오자 신도들이 하나둘 씩 자리를 채우길레 조용히 빠져나왔다. 어쩌다 교회를 가게되면 음악에 끌 려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다. 믿음은  다가오지 않지만 교회는 나에게도 효용이 있다.
 산정상 근처에는 나찌시대에 만든 노천 극장 이 있다. 산 모롱 이를 돌아서니 홀 연히 웅장한 극장 이 나타난다. 산의 경사를 이용해서 만들어서 무대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무대에 서면 앞으로 청중 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 쳐진 구조이다. 나찌가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1935년에.만들어져.이곳에서 대규모 청년 선전 집회가 열 렸단다. 해가 내리쬐는 계단 구석 그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방문객을 구경하고 가져온 점심을 먹고 나찌에 대해. 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히틀러는 젊을때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미술학도였다. 히틀러를 보면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사람의 앞날은 모른다. 백인이 유색인을 낮추어보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니 그 시대에 유대인을 싫어한 것은 이상할게 없다. 문제는 그러한 감정을 실행 에 옮겨 말살하려. 한것이 특이할 뿐이다. 독일이 전쟁 에 패해 경제가 파탄 났기에 사람들은 히틀러의  민족주의 선동 에 쉽게 혹했다. 지금까지 이웃으로 함께 살던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고 몰아낸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독일인은 그당시 자신의 삶이 고달프기에 이러한 주위사람들의 만행 에 동조하고 묵인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건 할 수있다. 그당시 독일사람들이 특별히 악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고  약자를 무시하고 이용해먹는 일은 우리 모두 기회만 허락된다면 언제라도 저지른다. 내가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마 남들도 그럴 것이다. 청문회에 서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으로 봐서 보통 사람들. 모두가 그러함에 틀 림이 없다. 그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아마 나도 그런 동조자의 일원이었으리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신이 용서한다는 교회의 장 치는 유용하다. 사람들은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싶어한다. 가난한 사람은 크게 나쁜 짓을 하지 않기에 부자보다 천국에 잘갈거라고 하지만 그들은 기회가 많지 않을 뿐 그들 역시일상적으로 소소한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할거다. 선진국이란 부정 을 저지를 기회를 차단하는 장치가 잘 갖추어져 사람들에게 좀처럼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이다. 물 론 힘있는 사람들은 그런 그물망으로 잘 올가매지지 않지만.
 그곳에. 앉아 주위의 독일 사람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그들 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로 여기서 흥분에 들떠 나찌에 충성을 맹서하고
 독일 민족을 구원한다는 대의에 감격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리라.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 하며 잘 살아가기는 힘들겠지.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헤겔이나 막스베버와 같은 대가가 있던 대단한 대학이지만 또 나찌에 동조하는 청년 운동이 활발했던 나찌 민족주의 운동 의 본산이다.
그렇게 잊혀지며 역사는 흘 러가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주위에 어린 자녀들과 같이온 가족이 간간이 눈에 띠었다. 그들은 나처럼 계단에 앉아 따뜻한 봄날을 즐기며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웃고 떠들다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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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나절을 라인강변에서 지내다 오후에 다섯 시간을 달려 하이델베르크 에 도착하다. 버스에서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씨름하는 흑인 엄마를 만나다. 위에 애는 다섯살이나 됬을까 막내는 두살이 못되보인다. 문제는 그 막내녀석이다. 안아달라고 계속 보채며 조금이라도 내려 놓으면 무지하게 울어댄다. 운전사가 여러번 그녀에게 아이를 울지 않게  달 래라고 주의를 주고. 이층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강하게 요구해도 그녀는 어찌어찌  버티며 자리를 지킨다. 어디서 탔는지  모르지만 애가 잠든 잠시의 시간을 제외하고 내리 애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지냈다.
버스 여행은 좋은 점이 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좋은 기회다. 좁은 공간에서 긴시간을 함께 있으면 그들이 남에게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차창으로 지나치는 풍광과 때때로 정차를 위해 들르는 도시의 모습을 훑어 보는 것도 매력이고.
중간에 버스안이 한가해져서 이층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그곳은 딴세상이다. 아래층에는 증노년에 아이를 동반한 유색인들이 많은데 위층은 이십대의 백인 젊은이들 천지다. 훨씬 자유롭고 애정 행각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곳이다. 아마 내가 이층 사람들 중 에 가장 나이가 많았을 거다.
 아래층 흑인엄 마는 주위의 눈총과 압력속에서 굴 욕을 삼키며 꾿꾿이 버텼지만 힘든 표정 이 역력하다. 운전수에게  당신은 아이들을. 모른다. 당신도 어린 때가 있지 않았느냐고 항변하지만.

이번 여행 은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난 이년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할 생각에서 감행했다. 치매로 고생하던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바람을 거슬 려. 모질게 굴은 나의 옹졸함을 후회하며 그간 많은 밤을 뒤척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지혜를 남겨 주었다. 유물을 정리하며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어머니의 일면을 알게 된거나 남긴 돈을 정리하면서 사람들 간에 이익갈등 은 적당히 좋게는  해겴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한단계 깊어지는 순간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내가 얼 마나 좁게 세상 을 보고 순진하게 살 아왔는지 내가 얼 마나 어리석은지 뼈속으로 절감한다. 그러고나니 세상 사는데 자신감이 조금더 든다.
어머니의 젊을  때. 모습은 여리게 보이는 데 어려운 환경 에서. 우리를  키우느라 강인하였다. 굴욕적인 순간  고민하고 주저하고 안타까워한 시간들이. 얼 마나. 많았을까. 어머니의 기대를 내동댕이친 기억이나 어머니를 배반한 일을. 떠올 리며 안타까와 한다.
그렇게 또한 세대가 지나가는 것이다. 엄 마를 그렇게 고생시키는 그 아이도 그런 사실 을 알 지. 못할. 것이다. 제가 잘났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어머니가 없는 나는 이제 고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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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0. 13:38



밤 한시에 인천을 출발하여 새벽 5 시에 암스테르담 공항 에 도착하다. 공항 로비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여섯시쯤 되니 마치 잠에서 깨어나온 유령들 처럼 번잡해 졌다.
네덜란드 는 극도로 실용주의 가 적용 되는 나라는 생각이 항시 함께 한다. 공항에서 출국장 바로 앞에 시내로 가는 기차표 매표기가 있고 바로위 스크린에 출발 시간과 승강장 안내가 연신 흐른다.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원칙 만 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회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무슨 낙에 살까. 예측치 못한 것이 때때로 있고 감정이 주위에 흐르는 삶이 긴장도 있고 재미있지 않을까? 꽉짜여진 매우 편리한 사회에서 이 사람들은 개미 처럼 규칙적으로 살고있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하는 곳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기는 하다. 암스텔담은 살기좋은 나라이지만 어쩐지 이렇게 살다 죽는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꿈이 있고. 흥분이 있고 실망 이. 있고 좌절의 쓴맛이 있는 삶이 편한 삶 보다 낫다.
버스로 4시간 쯤 달 려 뒤셀도르프 에. 도착하다. 금요일 오후라서 고속도로가. 막히고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룸메이트가 오늘이.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운이 없다고. 말을 건넨다. 그는. 함부르크에 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미로. 퍼즐 디자인을 하는데. 내일. 이곳에서  페즐관련.행사가.있어 이곳에. 왔단다. 그가 내일 소개할. 퍼즐 아이템. 하나를. 주면서 풀어 보라는 데. 결국 못풀었다. 퍼즐도 인생과 같아. 자꾸 경험이 쌓일수록 단계가 높아지고  흥미가 배가된단다. 인생 이. 과연 그런가? 경험이 싸여서 잘하게 되면 뭐하나. 시들해지던데. 영어로 been there done that. 그래서 나는. 올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 끗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약 간이지만 흥분이 있다.

햇빛이 따갑다. 라인 강가언덕에. 넓은. 잔디밭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며. 소일을. 하고있다. 친구들과 연인들과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혹은 멍청하니 앞을. 바라보며 논다. 아이들은 신나라. 주위를 뛰어 다니고. 남극에 펭귄. 무리가 모여있는 그곳이다.
그곳에 나무그늘에 세시간 쯤. 앉아 있으니. 찌푸렷던 얼굴이 펴지고 미소가. 번진다.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다. 남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서로에게. 그 기운이 전염된다. 소소한 행복?
내 주위에 가족과 함께온. 터키. 이민자들에게는. 이것이 무척. 값진 시간일. 것이다. 그들은. 희망 을. 품고. 산다. 그. 증거로. 내. 뒤에. 앉은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의. 배가. 남산 만큼. 불 러 있다.

** 태블릿으로 처음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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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4. 19:27

블로그를 다시 시작할 날을 벼른다.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채. 


지금은 직업 생활을 하느라 여유가 없지만, 

언젠가 머리와 가슴 속에서 울리는 글을 쓸 날이 오겠지.


어느 하루도 그 꿈을 잊은 일이 없다. 

오늘도 그 날을 준비하며 책상머리에 앉다. 

삶은 수월하지 않지만, 꿈이 있기에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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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8. 08:58

이리 저리 헤메고 다녀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리다 지쳐 버리다. 

그래도 살아 내야한다. 

2016. 12. 8. 10:21

10. 맺음말: 미국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화제는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이면서 공화당의 노선에 반기를 들고, 미국의 지도자로서는 담기 힘든 막말을 마구 쏟아내었다.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남부와 중서부의 남성 백인 중하층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트럼프의 분노에 찬 고립주의 정책이나 인종주의적 발언에 환호했다. 최근 이와 연관된 흥미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노벨 경제학자 앵거스 디톤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래에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중년 남성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 중 술과 마약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 많다. 반면 여성이나 유색인의 건강은 개선되고 있다.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남성 중하층은 ‘70년대 후반 이래 미국 경제의 변화로 많은 것을 잃은 집단이다. 이들은 ’70년대까지 생산직 근로자로서 중류층의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이래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안정된 일자리를 잃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사회학자 앤드류 철린은 이들의 사망율이 근래에 높아진 이유를 준거집단 이론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이 괜찮은지에 대한 판단을 자신의 부모의 삶과 비교하여 내린다. 백인 남성 중하층의 부모 세대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았다. 반면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불안정하고 힘든 삶뿐이며, 그들의 자식 세대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한 나머지 건강을 해치며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하층 백인은 인종주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남부의 중하층 백인에게서 그러한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흑인의 지위가 개선되고 유색인 이민자가 대거 유입됨으로 인해 백인의 기득권을 크게 위협받았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 또한 중하층 남성의 기득권을 위협한다. 남부의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 역시 전통적인 가부장 질서가 허물어지고 합리적인 사고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한사코 반대하는 집단인데, 그들의 영향력은 근래로 오면서 위태로워지고 있다. 주류 집단의 기득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반면, 소수자의 권익은 향상되고 있다. 인종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는 대신 계층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백인으로 태어나면 유색인에 대해 특권을 누리지만, 이러한 기득권은 점차 약화될 것이다. 히스패닉계 백인이 늘어나고 아시아인과 혼혈의 백인이 많이 등장하면 백인의 배타적 특권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류층 백인과 동일한 사고와 생활양식을 보이는 중류층 흑인이 증가하면서 인종보다는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가 삶의 기회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여성의 지위 역시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과거 남성이 전유하던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늘고 있으며, 반대로 과거에 여성의 영역이던 양육과 가사에 남성의 참여가 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고위직에 진출하는 여성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는 만큼 사회 제도가 뒤 쫒아가고 있지는 않다. 어린 자녀를 가진 기혼 여성의 대다수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직장 일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장치는 미비하다. 의사결정의 위치에 오르는 여성이 늘면서 조금씩 양육과 가사의 책임을 남성과 사회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실질적인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혼을 미루거나 혼자 사는 여성이 증가할 것이며, 자녀를 적게 낳으려는 경향이 지속될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래 소득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이 무한히 확대될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는 제동이 걸릴 것이다. 소득 불평등의 확대를 가져오는 두 가지 요인, 즉 정부의 정책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및 세계화라는 요인 각각에 대해 살펴보자. 정부의 정책에 대해 미래를 예측하기는 비교적 쉽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도날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부상한 것에서 보듯이, 미국의 보통사람들은 높은 불평등에 대해 거부감을 강하게 표명하였다. 그동안 세계화의 결과 중하층 백인의 삶이 피폐해진 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든 보완하려는 노력이 기울여 질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와 같은 진보적인 정책이 가까운 미래에 다시 출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미국의 정치는 기업과 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이므로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큰 혼란이 없는 한, 이들의 기득권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책이 구사될 것이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견제할 노동자와 약자의 정치 세력이 미미함으로, 기업과 부자가 자신에게 손해가 나는 개혁을 자발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위기를 초래한 주범인 월가의 금융계는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아마도 경제위기의 골이 더 깊어져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뀔 수 있다.

2016년 선거에서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도날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트럼프의 당선은 그동안 미국의 변화에서 경시되었던 부분을 명백히 드러냈다. 근래에 미국 경제의 변화에서 뒤쳐진 중하층 백인의 좌절과 분노가 엄청나다는 점과, 백인의 인종주의는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변수라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성격이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조차 근래의 변화에 반대하는 욕구가 더 강하기에 그의 결함을 눈감아 주었다. 공화당은 지지층의 구성에 모순적인 요소가 있다. 공화당의 정책을 주도하는 집단은 기업과 부자이나 공화당의 지지층 중 다수는 백인 중하층이다. 공화당의 부자 감세 정책이나 교육과 복지 지출을 축소하는 정책은 백인 중하층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정책이다. 경제 사정이 나빠진 백인 중하층이 백인의 특권에 더 집착하여 극우적인 성향의 정치인인 트럼프에게 지지를 보냈다.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인 기업과 부자가 백인 중하층의 요구에 영합하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과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두 집단은 이익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백인의 점유율이 감소하고 이민자가 늘어나는 현실이 중하층 백인을 불안하게 하여 트럼프를 대거 지지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늘고 여성과 히스패닉 등 소수자의 지위가 향상되는 경향은 공화당에게 마이너스 요인이다.

지난 삼십여 년 간 불평등을 확대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이다. 이 요인 때문에 미국만이 아니라 선진 산업국 모두에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낮은 임금을 쫒아서 공장을 이전하고, 대신 선진 산업국에서 지식 노동자의 비중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근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인공 지능이나 인터넷에 기반 한 공유 서비스는 이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회사와 지식 노동자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줄 것이다. 반면 선진 산업국의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은 저임금 서비스직에 갖힐 수밖에 없다. 세계화로 인하여 전지구적인 노동시장에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들이 속속 진입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중하층 노동자의 삶은 크게 나아질 수 없다. 중국에 뒤이어 동남아와 인도의 노동자가 대규모로 전지구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인도 뒤에는 아프리카의 노동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선진국의 서비스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기는 어렵지만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아무리 정치적으로 압력을 가한다고 해도 임금이 크게 올라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일 여유가 있으며 그들을 짧은 시일 내 미국인으로 동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앞으로도 계속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민자는 고급 인력과 저임금 노동력의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용한 수단이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이민자의 유입이 일시적으로 줄겠지만, 미국 경제가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보이지 않는다. 쉐일 가스 개발로 에너지 비용이 낮아지면서 제조업의 부흥이 점쳐지며,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 개발이 미국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회귀하는 공장들은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지는 않겠지만, 정보통신 기술과 접목된 생산방식을 적용하여 높은 생산성을 올리며 기업에 큰 부를 안겨 줄 것이다.

미국에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의 개발이 집중되는 경향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세계의 인재가 미국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영어의 공용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의 인재들이 다른 언어보다는 영어권에 자신의 미래를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부상은 영어 세력권의 확장에 브레이크를 거는 요인이다. 중국은 인구가 크고 자체의 시장과 인력으로 경제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 영어권의 확장을 견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030년의 미래를 조망한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 규모가 10년 이내에 미국을 추월하며, 기술 개발에서도 선진 산업국에 비견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중국의 인재가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동력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와 다른 후속 개발도상국의 인재들이 계속하여 미국에 유학하고 미국인이 되어 미국의 과학 기술과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이 빠진 자리가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세계의 인재들은 미국으로 향할 것이며, 미국의 과학 지식과 기술은 세계를 앞설 것이며, 그와 함께 미국의 경제 또한 계속 성장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삼십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한동안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을 선도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기업과 부자들이 연이어 나타날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미국인의 삶은 1970년대 후반 이후 팍팍해졌는데앞으로 1950~60년대와 같이 긴장이 덜하고 여유 있는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분명한 사실은 미국 특유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인의 소득이 더 높아진다고 하여 여유 있는 삶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다. ’70년대 이후 남성 근로자의 임금은 감소하였지만 기혼 여성이 대거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여성의 임금이 높아지면서 미국인의 가구 소득은 계속 증가하였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의 삶을 보면 무척 분주하고 빡빡하다. 맞벌이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적 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근로자의 노동 시간이 긴 반면 여가 시간이 짧은 것은 기업과 부자의 영향력이 사회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거두기 위해 근로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권장하고, 광고와 상업화된 대중문화를 통해 더 많이 소비하도록 설득한다. 미국인의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하는, 거꾸로 말하면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많이 벌어야 하는 생활 방식은 현재 미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삶에 반대하는 세력은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삶의 리듬이 빨라지면서 생산성이 늘고 소득은 계속 증가하겠지만 미국인의 삶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삶이 될 것이다.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지 않는 중하층 사람들의 삶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진 산업국 중 예외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높은 미국의 특징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과 부자에 대응하는 노동자와 약자의 세력은 정보화와 세계화로 계속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민자가 계속 유입되는 한 미국인의 꿈 이념은 계속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복지 제도의 획기적 확충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은 앞으로도 큰 부를 축적한 사람이 연이어 나타나겠지만 또한 선진 산업국 중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것이다.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이 계속되는 한, 하층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억제될 것이고,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가난한 사람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자신이 낸 세금을 쓰는 것을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에서도 유럽과 같이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 득세하였다. 유럽의 극우 정당은 세계화를 저지하는, 즉 시장 통합에 반대하고 이민자를 차단하는 정강을 제시하여 세력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세계화로 인해 삶이 어려워진 중하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중하층 노동자의 규모가 크기에 최근 영국의 EU 탈퇴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보듯이 다수의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서구의 중하층 노동자들은 세계화로 인하여 코너에 몰려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성장의 과실이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기에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기성 정치계는 기업과 부자의 입장에서 세계화에 찬성한다. 트럼프는 이러한 기성 정치계에 막말을 퍼붓는 이단아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단기와 장기의 변화가 다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단기의 변화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몇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첫째, 그 동안 인종주의가 약화되던 경향에 일시적으로 제동이 걸릴 것이다. 소수자를 우대하거나 차별을 금지하는 정부의 정책은 폐기되거나 당분간 무력화될 것이다. 둘째, 그간의 세계화 경향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여 세계를 이끌어 온 무역 개방과 전 세계적 규모의 경제통합은 속도가 완화될 것이다. 무역 규제가 높아지고 이민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세계화에 반대하는 흐름이 자리 잡기 어렵다. 중하층 노동자 세력에 대응하는 미국의 기업과 부자의 힘은 유럽보다 훨씬 세다. 미국의 기업과 부자는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계에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했다. 트럼프의 당선에서 이들에 대한 저항이 큰 것을 확인했지만, 미국의 정치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중하층 노동자에게 실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하층 노동자들이 세계화를 저지하려고 하면 기업과 부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는 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세계화로부터 큰 이득을 얻기 때문에 세계화가 중단된다면 중하층 노동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이민을 엄격히 규제하자는 트럼프의 주장 또한 장기적으로 지지를 얻기 어렵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이민자의 유입을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 근래에 이민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는 불법 이민자에 관한 것일 뿐, 합법적인 이민자의 유입에 대해서는 반대가 크지 않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며, 고급 인재건 비숙련 노동자이건 이민자들이 미국의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데 미국인은 대체로 동의한다.

트럼프의 부상에서 보듯이 백인 중하층의 아우성은 큰 반향을 불러왔다. 부가 최상위 소수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중류층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백인 중하층 노동자를 넘어서 중류층 전반과 지식인들까지 가세하여 부의 재분배와 경제 체제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게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계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세계화의 속도 조절을 하겠지만, 미국의 특징, 즉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부모를 잘 못 만났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미국은 자조와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냉정한 사회라는 특징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2016. 12. 8. 10:19

1. 소개: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국 사회에는 크게 바뀌었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 초까지 지속된 풍요와 낙관의 분위기는 물러났다. 대신 ’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인의 삶은 긴장되고 바빠졌다. 미국인은 1950~60년대를 좋았던 옛날’(Good old days)이라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70년대 초반의 생활이 ‘70년대 후반 이후보다 더 잘 살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일시적인 불황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미국인의 소득은 꾸준히 상승하였으며, 근래로 올수록 더 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비록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삶은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왜 미국인의 삶은 1970년대 후반 이후 팍팍해졌을까?’ 하는 질문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다.

물론 1970년대 이후의 생활이 힘들어졌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미국인이 많다. 여성이나 흑인은 분명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삶은 근래로 올수록 더 나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중류층 백인 남성은 1950~60년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들에게 좋았던 옛날이란 교외의 넓은 집에 살면서 도심에 있는 직장에 출근했다가 이른 저녁에 귀가하면 따뜻한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상이 단조롭긴 하지만 직장 일이 그렇게 바쁘거나 힘들지 않았다. 지금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직장에서 잘릴 염려를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했기에 일찌감치 결혼하여 자녀를 여럿 나아 키웠다. 최소한 중류층 백인 남성에게 그때는 좋은 시절이다.

이러한 여유로운 삶의 방식은 197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가속화된 삶의 방식과는 분명 다르다. 197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전개된 삶의 방식을 살펴보자. 중류층 사이에서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삶이 바빠졌다. 가정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것이 무척 힘들기는 하지만, 다수의 기혼여성은 자녀가 어린 나이임에도 직장에 나가 일하는 생활을 선택했다. 직장 일은 절대 양이나 강도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세졌다.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해 졌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언제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몰라 불안하며, 중류층 사무직 근로자들도 언제 직장을 옮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시장가치를 항시 의식하며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게 되었다. 교육비와 의료비가 크게 상승한 반면 남성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하락하였다. 맞벌이가 늘면서 중류층의 가구 소득은 증가하였지만 빛 또한 늘었다. 사람들 사이에 소득 격차는 커지고 미래를 낙관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노년은 다가오지만 크게 저축해 놓은 것은 없고, 자기 책임으로 전환된 연금 투자 적립금도 많지 않아 미래가 불안하다. 결혼을 늦추고, 아이를 적게 낳고, 장시간 근로에 힘들어 하고, 실업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현재 우리 한국사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변화의 시점을 특정 년도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오래전에 시작된 변화가 특정 사건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 변화란 여러 요인이 중첩되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전개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여러 측면은 변화의 속도가 제각각이므로 전체를 포괄하여 변화의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1970년대 후반을 전환의 시점으로 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미국 사회는 1960년대에 큰 혼돈을 겪었다. 1963년에 의회를 통과한 흑인의 선거권을 보장하는 법률은 수백 년 간 내려온 인종 질서를 뒤집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남북전쟁 중인 1863년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흑인은 사실상 준 노예 상태로 묶여 있었다. 이 법률을 계기로 흑인은 수백 년 간의 속박 상태로부터 벗어나 법 앞에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현재에도 드러나지 않게 차별을 하는 경우는 많으며, 흑인의 열악한 경제적 지위는 법적인 평등만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흑인들은 법적 평등과 경제적 차등이라는 모순에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된 충격은 엄청났다. 남부의 백인들은 흑인의 지위 향상을 허용한 집권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이후 공화당의 충성스런 지지자가 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민주당은 남부 백인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에 1970년대 후반까지 40년 동안 집권당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남부는 1960년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해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 이래 공화당의 텃밭으로 바뀌었다. 공화당은 중간에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를 제외한다면,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30년 이상 백악관과 의회와 지방 정부를 장악하였다. 공화당의 집권 이후 부자 감세 조치가 연이어 시행됐으며, 이전 40년간 민주당 정부에서 도입한 소수자 인권보호나 교육의료 및 복지관련 제도는 크게 약화되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70년대 초까지 미국 경제는 매년 3~5%의 성장을 지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 모든 미국인의 삶이 나아졌다.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생활도 나아졌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 밀물이 되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표현은 이 시기를 적절히 묘사한다. 유럽의 선진 산업국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미국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 반면, 미국은 전후 유럽 부흥에 소요되는 물자를 만들어 내느라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미국제’ (Made in USA)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분위기는 1970년대를 거치며 바뀌었다. ‘70년대 초반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가 미국에 상륙하였으며, ’70년대 중반 미국은 전후 최초로 무역 적자를 기록하였다. 일본과 유럽 산업국의 생산성이 마침내 미국을 따라잡은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만든 물건은 투박하고 고장이 잘나는 열등한 물건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식이 바뀌었다. ‘70년대는 원유 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친 시기이다.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의 지배에 대한 산유국의 반란인 원유 파동은 1973년에 1차 위기에서 원유가격이 1 배럴에 3달러에서 12달러로 뛰더니, 19792차 위기에서는 다시 40달러로 뛰었다. 미국의 주유소에는 주유를 하려는 차량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카터 대통령은 털 스웨터를 입고 TV에 나와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차 대전 후 미국 경제의 호시절은 지나간 것이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걸친 극심한 인플레와 불황, 해마다 늘어나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을 완전히 바꿨으며 기업 경영 방식도 크게 바꾸었다. 1980년대 미국의 산업계에는 구조조정의 광풍이 휩쓸었다. 북부 지역의 공장을 폐쇄하고 남부 혹은 외국으로 생산기반을 이전하였으며, 기업은 핵심 역량을 제외한 부문을 외주로 돌렸다. 중간관리자를 대거 없애고 조직을 간소화 하였으며 해고와 고용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기업 간 생사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부 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회사가 통째로 경쟁 업체에 흡수되는 사례가 흔해졌다. 1980년대 이래 미국의 기업은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였다. 즉 이익이 나는 회사라도 이익과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다면 직원을 해고하거나 사업을 매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엄청나게 높아졌으나, 일반 근로자의 직업 안정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1970년대 후반은 미국 경제에 정보 통신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세계화가 전개된 시기이다. 컴퓨터가 기업의 업무에 널리 쓰인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이전에는 정부와 금융회사에서 부분적으로 컴퓨터를 썼으나 일반 기업체의 업무에는 활용도가 낮았다. 표준화된 컨테이너를 통해 해상 운송 효율이 높아진 것도 ‘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80년대 초 항공업계가 자유화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과 물류 운송이 일반화되었다. ’80년대 중반 이래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무 업무의 효율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90년대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난 호황이 찾아왔다. ’70년대 후반 중국이 개방하여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였으며, 선진국의 생산기반의 해외 이전에 힘입어 ‘80년대 이래 미국 시장에는 한국과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제품이 범람하였다.

2차 대전 후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소득 격차도 꾸준히 축소되었다. 빈곤율이 크게 감소하였으며, 사회보장과 의료혜택의 확대에 힘입어 노인 빈곤층이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후반 이래 현재까지 30년 이상 계속하여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근래로 올수록 성장의 과실이 최상위 소득자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들어, 최상위 10%보다는 최상위 1%에게, 또한 최상위 1%보다는 0.1%에게 부의 성장분이 집중되는 정도가 심해졌다. 반면 최저 임금은 1960년대 이래 계속 하락하였으며, 남성 근로자의 임금 또한 ‘70년대 후반 이래 하락하였다. 중간 소득층이 줄면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20세기 후반에 여성의 지위는 꾸준히 향상되었다. ‘50년대 후반 신뢰할만한 피임 수단이 널리 보급되면서 ’60년대에 성 개방 풍조를 가져왔다. 여성은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갖고 임신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1970년대는 여성운동의 시기이다. 남녀평등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려는 움직임이 ‘70년대 전 기간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였으며,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남녀 차별 관행을 고발하고 철폐하려는 여성계의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동안 여성의 교육 수준은 꾸준히 향상되었다. ‘50년대에만 해도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드물었으나, ’80년대 중반에는 대학에 다니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60년대에 중류층 여성은 결혼을 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하면 전업주부로 들어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80년대 이후에는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이 직장에 다니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크게 완화되었다. 여성의 독립적인 경제 능력이 높아지면서 불행한 결혼을 중간에 그만두는 이혼 사례 또한 꾸준히 증가하여, ’80년대 초에는 결혼 후 이혼 할 확률이 50%에 도달하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미국은 비교적 동질적인 사회였다. 1925년 이민법을 만들고 1965년 개정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미국에는 이민자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1970년 외국 출생자가 전 인구의 4%까지 떨어졌으며, 백인과 흑인이 인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후 매년 100~200만 명의 이민자들이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들어 온 결과, 최근 외국 출생자의 비율은 13%로 역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백인과 흑인만 살던 나라에 이전에는 드물었던 다양한 배경의 라티노와 아시아계가 더해지면서 미국은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변모하였다. ‘80~’90년대 미국에는 ‘WASP’라 일컬어지는 백인 남성 앵글로색슨 개신교도의 종주권에 도전하여 여성과 소수 인종·민족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다문화주의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0년대를 전후한 변화는 미국인의 종교 성향에서도 감지된다. 미국인은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다. 유럽은 19세기 중반 이래 세속화의 길을 걸어왔음에 비해, 미국에서는 ‘70년대 초까지 거의 모든 미국인이 기독교를 믿었다. 여론 조사에서 특정하게 믿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70년대 초까지는 전인구의 2%에 불과했다. 그러나 ’80년대 이래 교회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감지된다. 그 동안 미국의 교회는 낙태나 동성애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반인 중 종교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꾸준히 증가하여 최근에는 20%를 넘어섰으며, 동성애를 허용하는 의견에 절대 다수가 동의한다. 이제 미국인 중에 실제로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다섯 명에 한명 꼴에 불과하다.

미국이 1970년대를 전후하여 크게 바뀌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서술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는 경제 환경의 변화를 먼저 꼽을 수 있다. 경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업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일자리 사정이 바뀌었고, 소득 분배 구조가 바뀌었다. 정보통신 기술과 운송 기술의 변화 역시 20세기 후반의 변화를 이끈 주요 요인이다. 컴퓨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 산업 전반의 생산 효율이 높아졌으며, 이와 더불어 운송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계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흑인과 여성의 지위 상승과 교육 수준의 향상은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는데, 경제 변화나 기술 발전과는 독립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2차 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변화로서 ‘70년대를 변화의 시점으로 특정할 수 없다. ’60년대 민권운동을 통해 흑인의 지위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지만, 사실 흑인의 지위 향상은 2차 대전 중 전투부대에서 흑인과 백인을 통합한 조치나, 그 훨씬 이전인 1930년대에 남부의 흑인이 북부로 대거 이전하여 도시 산업근로자가 되는 과정에서 이미 뚜렷이 시작되었다. 여성의 지위 향상 역시 2차 대전 중 전장에 나간 남성 노동자를 대신하여 많은 여성들이 산업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뚜렷이 나타났다. 물론 1920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다음의 장에서는 사회의 각 영역에서 20세기 후반에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왜 그러한 변화가 나타났는지 검토한다. 20세기 후반의 변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므로, 그러한 변화가 현재 어느 단계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추정해 본다. 각 장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이 주제를 가장 먼저 다루는 이유는 근래에 크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주제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높은 불평등은 미국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선진국이면서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미국 사회의 구조적 토대를 검토한다. 유럽과 대비하여 19세기 후반 이래 미국의 정치경제적 환경이 어떻게 기업가와 부자 중심의 체제를 만들게 되었는지 더듬어본다. 아울러 1970년대 후반 이래 왜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지 설명한다.

3장에서는 일과 소비의 문제를 다룬다. 근로 생활은 사람들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7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 환경이 바뀌고 기업과 일의 세계가 변하였다.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고 지식 노동의 비중이 증가하였다. 과거보다 직장 생활은 훨씬 긴장되고,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가정생활 역시 바빠졌다. ’80년대의 구조조정과 세계화의 여파가 미국인의 근로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한다. 소비는 일과 동전의 양면이다.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여가는 줄어드는 대신 소비는 늘어난다. 미국인이 소비를 많이 하는 데에는 소비를 장려하는 사회적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가족 문제를 다룬다. 미국인은 가족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여기지만 가족 구성원간의 유대는 과거보다 약해졌다.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되었으며, 근래에는 동거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핵가족이 여전히 이상적인 가족 형태이지만 혼자 살거나, 어머니만 자녀와 함께 살거나, 자녀 없이 사는 가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하며 자녀를 돌보는 가족이 자녀 성장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근래로 올수록 이러한 가족은 중류층 이상에서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중하층의 경우 경제생활이 불안정해지면서 가족생활이 불안정해지고, 이것이 다시 다음 세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70년대 이래 뚜렷해졌다. 소득의 양극화 못지않게 가족 관계의 양극화가 전개되고 있다.

5장에서는 여성 문제를 다룬다. 여성의 지위는 20세기 전 기간을 통해 꾸준히 향상되었다. 남성과 여성 간에 역할이 분리되는 정도 역시 점차 약해졌다. 직장과 집 모두에서 여성의 역할과 권한이 높아진 반면, 최근에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을 중심으로 양육과 가사 참여 비중이 늘면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독립적인 경제력을 지닌 여성이 출현한 것은 20세기 후반 두드러진 현상이다. 1960년대에 전개된 성 개방 풍조는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20세기 전 기간 동안 남녀 격차가 줄어든 추세는 ‘9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정체 상태에 있는데, 그 이유를 확인해 본다. 미국의 여성은 여전히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매우 힘든 줄타기 생활을 하고 있다.

6장에서는 인종 문제를 다룬다. 백인과 흑인으로 양분된 미국의 인종질서는 근래에 변화하고 있다. 중류층에 올라선 흑인이 늘고,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온 유색인 이민자가 증가하고, 혼혈을 주장하는 인구가 늘면서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한 한 방울의 피규칙은 허물어지고 있다. 중남미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인종 질서가 어떻게 바뀔지 네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 검토한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을 계기로 흑인의 법적 지위는 개선되었지만 인종 편견과 차별의 관행은 많이 남아있다. 흑인과 백인은 여전히 다른 세계에서 산다. 흑인은 흑인끼리 살며 백인은 흑인과 가까이 하는 것을 꺼린다. 흑인 중 3분의 1은 중류층 지위에 올라서 백인 중류층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활하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도심의 슬럼에서 비참하게 살며 좌절과 스트레스 속에서 마약과 범죄에 빠지며 자기 파괴적으로 생활한다. 다수의 흑인들이 이렇게 사는 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 검토한다.

7장에서는 교육 문제를 다룬다. 미국의 학교는 양극화되어 있다. 백인 중류층이 사는 교외의 학교는 교육 환경이 좋으며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높다. 반면 흑인 빈곤층과 근래의 이민자 자녀가 다니는 도심의 학교는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고등학교 중퇴자가 많으며 학교를 졸업하고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 개혁을 외치지만 미국의 교육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떤 개혁 정책이 제시되었으며, 왜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지 검토한다. 미국과 유럽은 교육 시스템이 다르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생이 동일한 교과과정을 배우는 반면, 유럽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 배우는 내용이 갈린다. 한편 미국의 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세계 각지의 인재들은 근래로 올수록 더욱 더 유럽보다 미국을 선택한다. 왜 고등학교까지 미국의 교육은 문제가 많은데,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그렇게 높은지 원인을 검토한다.

8장에서는 종교 문제를 다룬다. ‘미국인은 왜 종교적 믿음이 깊은가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유럽과 대비하면서 미국인의 종교적 토대를 검토한다. 미국의 교회는 이민자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발달했다. 미국에는 1만 명 이상의 신도를 가진 대형 교회가 많으며, 복음주의 교회 신자는 전인구의 4분의 1에 달한다. ‘주류 교회와 비교를 통해 기독교 근본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번성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미국의 교회는 공화당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남부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교회의 세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근래에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세속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도 유럽과 같이 세속화의 길을 갈 것인지 살펴본다.

9장에서는 인구 문제를 다룬다. 미국은 2040년경에 백인의 비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지만, 히스패닉계 백인을 포함하면 백인의 비중은 큰 변화가 없다. 다만 현재보다 좀 더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이행할 것이다. 미국은 다른 선진 산업국과 달리 인구 노령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은 이민자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근래에 이민자의 유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이민자는 미국 사회에 활력을 가져오며 미국의 성장을 이끄는 주역이다. 근래에 불법 이민자 규제 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분명치 않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이 계속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미국 인구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미국의 인구는 북부에서 남부로 많이 이동하였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촉발된 인구의 대이동은 미국의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0장에서는 앞에서 검토한 사회변화를 종합하여 미국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망한다. 경제적으로는 성장이 지속될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여성과 유색인의 지위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이 조금은 낮아지겠지만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이는 중하위 계층의 협상력이 매우 낮은 사회구조적 특성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도날드 트럼프의 부상을 계기로 하여, 미국에서도 유럽과 같이 중하층 노동자에 영합하는 극우 정치가 부상할 수 있을지 점검해 본다

2016. 12. 8. 10:11

 최근에 책을 하나 냈다. "혁신과 갈등, 미국의 변화"가 제목이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의 변화를 검토하는 고급 교양서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변화의 동력이 미국인의 삶을 바꾸어 놓았고 현재도 변화의 와중에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이다. 10년전에 "미국문화의 기초" 책을 구상할 때 이 책을 훗날 추가로 쓰리라 생각했는데 10년만에야 그 계획을 이룬 것이다. "미국문화의 기초"가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미국의 변화"는  현재의 미국 사회에 촛점을 맞추었다. 원고를 쓰는데만 2년쯤 걸렸다. 출판사 편집자와와 함께 작업한 세 번의 윤문과 교정 작업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일곱번을 고쳐썼다. 다음은 책의 목차이다. 출판사에서 정한 책의 가격이 제법 비싼 것이 흠이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제1장 소개: 197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국 사회는 크게 바뀌었다 / 9


제2장 선진국이면서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할까 / 21

1. 미국 사회는 어떻게 불평등한가? 25╷2. 미국은 왜 그렇게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을까 30╷3. 높은 불평등을 지탱하는 사회문화적 배경 45╷4. 지난 30년간 불평등이 확대된 이유 60╷5. 미국인의 낮은 불평등 인식 수준 66╷6. 높은 불평등의 사회

적 효과 70╷7. 불평등의 증가 추세는 언제 꺾일까 75


제3장 미국인의 일의 세계는 완전히 변했다 / 81

1. 1980년대의 구조조정과 일의 세계의 변화 82╷2. 사람을 상대하는 일 92╷3. 지식 노동자의 부상 100╷4. 좋은 일과 나쁜 일 111╷5. 많이 일하고 많이 소비하는 사회 123╷6. 소비를 장려하는 사회적 장치 128


제4장 안정된 가족은 중류층의 특권으로 변하고 있다 / 141

1. 핵가족은 미국인의 삶의 이상형이다 142╷2. 여성의 지위 향상이 가족의 변화를 이끌다 145╷3. 중류층 ‘동반자 가족’의 출현 150╷4.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152╷5.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된 사회 161╷6. 다양한 유형의 가족생활 166╷7.

가족생활의 미래 모습 173


제5장 가부장 질서의 붕괴는 어디까지 갈까 / 177

1. 성 역할의 변화 178╷2. 성 격차는 어떻게 왜 벌어지나 189╷3. 성 역할 분업 구조의 붕괴 197╷4. 성 개방은 여성 해방이다 202


제6장 미국의 인종 질서는 어떻게 바뀔까 / 209

1. 미국의 인종 질서는 변하고 있다 211╷2. 히스패닉의 영향 215╷3. 인종차별의 다양한 모습 226╷4. 흑인의 삶의 모습의 변화 232╷5. 백인의 특권은 감소하고 있는가 239╷6. 아시아계 이민자는 유럽계가 간 길을 더 빨리 가고 있다 244


제7장 미국의 교육은 무엇이 문제인가 / 251

1. 교육에 큰 투자를 하는 나라 252╷2. 미국 학생의 학교생활 256╷3. 미국 교육의 구조적 불평등 267╷4. 교육 체계를 둘러싼 논쟁 275╷5. 미국의 교육 개혁은 왜 성공하지 못할까 280╷6. 학교 교육의 능력주의의 이면 286╷7. 미국의 대학교는 왜

강한가 290


제8장 미국인은 왜 믿음이 깊은가 / 307

1. 미국인의 종교적 믿음의 특징 309╷2. 미국인이 특별히 종교적인 이유 316╷3. 왜 기독교 근본주의가 번성할까 327╷4. 미국은 유럽이 걸어간 길을 뒤따르는가 343╷5. 영적인 믿음과 개인주의적 신앙 348


제9장 인구는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 353

1.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354╷2. 미국은 인구 고령화를 어떻게 맞고 있나 360╷3. 미국인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365╷4. 미국은 앞으로도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일까? 369


제10장 맺음말: 미국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 377


 

2016. 8. 24. 15:00

Rodrik, Dani. 2011. Globalization Paradox: Democracy and the Future of the World Economy. New York: W.W.Norton. 284 page.

 

무척 잘 쓴 책이다. 요점을 정리하자면,

제이차대전후 세계는 브레튼우즈 체제라 불리는 유연한 금융시스템에 의해 움직였다. 이와 함께 하는 GATT 무역 체제 역시 유연한 체제였다. 여기서 유연함이란, 큰 틀에서 세계 금융과 무역의 질서를 규정해 주면서, 동시에 각 나라들이 자신의 국내 사정에 맞추어 세계 질서에서 벗어난 규정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는 여유를 말한다. 이러한 유연한 체제 덕분에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이 보호주의적인 정책 노선을 취하면서 세계 무역의 이익에 편승해 발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GATT를 이은 WTO 체제가 완전한 세계화, 즉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일관되게 따라야 하는 질서를 추구 하고 강요하면서 발생한다.

세계화는 이익과 비용을 동시에 수반한다. 국내 시장이 열리면 산업 재편이 발생하고 이러한 변화에서 손해를 보는 측과 이익을 보는 측으로 갈린다. 분배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비용이 시장통합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는 이익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가난한 나라의 경우 무조건적으로 보호 장벽을 여는 것은 손해가 더 크다. 세계 시장에 그대로 편입되면 영원히 가난한 나라의 지위에 고착될 수 있다. 유치산업의 발전을 위한 보호 장벽은 필요하다. 자국의 산업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면서 시장을 열어왔던 것이 선진국의 발전 과정이었고, 한국이나 중국이 밟아온 길이다. 그런데 WTO 체제는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장벽을 허물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에게 발전의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다.

각 나라는 자신들의 경제 주권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데, 경제통합의 이익은 국민 전체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나 엘리트나 다국적 기업의 이익은 경제통합 쪽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세계화의 손해가 더 크기에 세계화를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근래에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부상은 이러한 요구가 표출된 결과이다. 세계화를 무리하게 강요하면 이러한 반발 속에서 세계 질서가 붕괴되어 1930년대와 같은 상황에 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각 나라는 경제 주권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의 질서를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 이럴 때 세계화의 이익은 극대화될 수 있고, 세계 통합을 향해 현실적으로 진전할 것이다. 완전한 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론에 흐르는 것이다. 사정이 되는 나라들이 자신에게 맞는 정도의 세계화를 허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금융의 세계 통합은 매우 앞서있는데, 이는 한 나라의 금융 위험, 특히 투기자본의 위험을 전세계로 퍼트리는 역할을 하였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금융 세계화의 해악을 보여준 사건이다. 국제적인 질서를 주관할 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지나친 금융 세계화는 위험하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거의 완전한 금융통합은 각 나라의 사정에 맞게 각자의 규제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무역의 세계시장 통합 역시 더 통합을 진전시킨다고 하여 추가적인 이익이 얻어질 부분이 적다. 각 나라의 사정에 맞게 적절한 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는 쪽이 좋다. 그는 GATT 체제가 WTO 체제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의 세계화는 더 진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가 간 노동의 이동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를 조금 더 열어 놓는다면 모든 관계자에게 이익이 크리라고 주장한다. 특히 빈곤 국가에게 빈곤을 탈피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는 체계적인 외국인 노동자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5년의 기한을 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순환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이 돌아가서 자신의 나라에 제도 개선의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고, 선진국에도 노동효율을 높이기 때문에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 특히 선진국 비숙련 노동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주장하지만, 그는 이러한 피해는 크지 않으며, 어차피 이들은 변해야 할 운명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책이 정치적으로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한다그의 진단과 주장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세계화의 이익을 모두가 거두는 방향으로 현실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제안이 현재 선진국, 대기업, 엘리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방적인 세계화 흐름에 반대하기에, 얼마나 실제 적용될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화가 정치적으로 반발을 사고 있는 현실에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의구심이 든다. 각 나라가 각자의 사정에 맞추어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개방의 정도를 결정하도록 했다면, 현재 세계가 누리고 있는 정도의 세계화에 도달할 수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현재의 세계화에 대해 반발이나 비판이 많지만 지난 수십년간 이루어진 엄청난 경제적인 발전의 원인 중 하나는 세계화이다. 소득 분배라는 골치아픈 사회 문제를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세계화 덕분에 세계의 빈곤이 줄어들었으며 세계의 부가 엄청난 규모로 확장될 수있었다. 각 나라의 자율에 맡겼다면, 세계 나라들의 개방정도는 매우 미흡했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각나라의 다양한 요구를 절충하는 방향으로 각 나라들이 개방을 결정한다면, 세계의 기술 발전이나 선진 제도를 도입하는 정도는 매우 미흡할 것이다.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세계화는 세계를 좀더 나은 곳으로 보다 선진화된 쪽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세계화를 더디게 하는 세력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주장에 동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세계화의 현실을 꿰뚫어보면서 어떻게 형평성있는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공하는 책이다. 그의 논의가 19세기와 비교하면서 역사적인 통찰력을 더하기에 감명 깊게 읽었다. 두 번 읽을 만한 책이다.  

2015. 8. 8. 22:09

(5-1-4) 그리니치 빌리지의 뒷골목으로 난 정원건물 사이로 출구가 열린 정원이다정원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니 도심 한 가운데인데도 조용하고 아늑하다.


   몇 년 전 뉴욕 대학에서 방문 교수로 한여름을 보낸 일이 있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 앞 도서관에서 큰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정말 아름답다. 가까운 건물의 계단 형으로 올라가는 옥상도 멋있고 워싱턴 기념 아치를 통해 보이는 5번가도 무척 아름답다. 여름에는 오래된 건물 사이로 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5번가가 나무 가지로 울창하게 드리워져 있어 유럽의 옛날 도시를 보는 느낌이다.

   뉴욕 대학 도서관의 실내는 천장이 높고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드리워져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마호가니 책상이 반들반들 빛나고 책상마다 놓여 있는, 놋쇠로 만든 갓을 씌운 등이 환하게 빛을 발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등록금이 비싼 귀족 사립 학교는 과연 다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침 일찍 이곳에 와서 한적한 도서관의 분위기를 즐기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내려다보면서 하루를 계획하곤 했다. 자리를 잡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무거운 트레일러 가방을 끌면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고시생과 마찬가지로 책상 위에 한 무더기의 책을 쌓아 놓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한다. 7월 말의 어느 날 도서관에 오니 이들이 완전히 사라져 있어서 웬일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무렵 변호사 자격시험이 있다고 한다. 뉴욕 대학 도서관에서 보낸 여름은 내 일생에서 가장 호사한 시간이다.

   내 기억 속에서 뉴욕 대학과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분리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피곤하면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 나와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쉬곤 했다. 점심때는 집에서 싸가지고 온 샌드위치를 먹거나, 주변의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와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분수 옆 벤치에 앉아 먹고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피곤한 날에는 도서관에서 일찍 나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금요일 오후면 도서관이 텅 비고, 대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이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점심시간부터 벌써 무료 공연이 이어지고 주위에 사는 학생들과 주민이 공원에 나와 주말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밀며 나온 사람, 예쁘게 차려입고 데이트 하는 남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은퇴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듯 보이는 노부부, 배낭을 둘러맨 젊은 여행자,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며 호기심을 번득이는 관광객,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청소년, 분수 속을 좋아라 뛰어 다니는 어린이와 강아지. 이들 속에 섞여 있으면 왠지 내 가슴도 들떴다. 지금은 멀리 가버린 젊음을 다시 맛보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은 오후에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 앉아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관광객도 많이 오지만, 그보다는 주변에 사는 시민이나 대학생들이 와서 시간을 보낸다. 가운데 분수를 둘러싸고 있는 계단과 벤치에 앉아 사람들은 책을 보고,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남녀가 손을 잡고 앉아 포옹을 하고, 햇빛을 즐기며 넓은 하늘을 바라본다. 분수 광장 옆에는 거리 공연이 벌어진다. 젊은 흑인 팀이 정말 열심히 춤을 추고 구경꾼들은 박수를 치고 환성을 지른다. 몇 년 후에 다시 와 보았는데도 같은 얼굴의 흑인이 공연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에게 이곳의 거리 공연은 직장이다. 광장 한편에는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 있고 양쪽 벤치에 노인들이 앉아 있고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온 엄마나 아이 보는 아주머니 들이 잡담을 나누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한다. 그 너머에는 돌로 된 탁자를 가운데 놓고 노인들이 체스를 두고 있다. 그 중에는 내기 체스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체스 말을 정렬해 놓은 채 우두커니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여름철에는 주말마다 분수 광장 한편에서 연주회가 열린다. 뉴욕시와 기업의 협찬으로 이루어지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다. 공짜로 수준 높은 연주를 듣는다는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 상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다. 점심시간부터 공연 준비를 하느라 무대를 가설하고 의자를 정렬하고 통행을 막으면서 여유로운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때때로 뉴욕 대학 음악전공 학생들 몇몇이 평일 점심시간에 간단히 하는 연주가 더 흥미롭다. 그들의 연주를 가까이 다가가 듣는 사람도 있지만, 멀리 벤치에 앉아 흘러오는 음악을 들으며 점심을 먹을 때는 정말 꿈 같은 시간이다.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옛날 도시의 모습이 살아 있다. 구불구불한 길과 기억하기 힘든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중에 게이 스트리트라는 이름도 보인다. 4번가와 12번가가 교차하기도 하고, 특이한 이름의 도로가 한두 블록 이어지다가 중간에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 일쑤다. 주변으로 고층 건물이 올려다 보이지만 이곳에서만은 4~5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이 주를 이룬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목조 건물과 밖으로 철제 계단이 돌출된, 벽돌로 지은 아파트가 가로에 잇닿아 있다. 폭이 5미터도 안 되며 한 층에 방 하나만 있는 삼사 층의 주택도 눈에 띈다. 일전에 이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한 건물에 한 가구가 사는데, 이 층에는 부엌 겸 거실이 있고 삼 층과 사 층에 조그만 침실이 각각 하나씩 있다. 집안에 난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는 것도 나름 괜찮단다. 물론 장애가 있는 경우라면 이런 집에서 살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골목으로 출구를 빠끔히 내밀고 있는, 조그만 정원을 가진 오래된 집도 보인다. 정원에 들어가 보니 도심 한 가운데인데도 조용하고 아늑하다. 대로변에는 상점이 줄지어 있지만 뒤편의 좁은 거리에는 드라마에나 나옴 직한 고풍스러운 주택이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좁은 거리는 바닥에 작은 벽돌이 깔려 있어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길거리에는 오래된 가로수가 줄지어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맨해튼의 중심가가 바로 옆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동네 전체가 조용하다. 오래된 유럽의 구시가를 거니는 느낌이다.

   이렇게 오래된 동네에 누가 살까 궁금해 하는데, 사오십 대의 지적으로 보이는 훤칠한 남자가 캐주얼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온다. 산보를 가려나보다. 편한 옷이지만 점잖게 입은 할머니도 간혹 눈에 띈다. 식료품을 산 쇼핑백을 손에 들고 있다. 미국 교외의 전형적인 주택가와는 달리 어린 아이나 청소년이 돌아다니는 것은 보기 힘들다. 함께 다니는 남녀를 많이 보지만 자녀가 없는 부부이거나 동거하는 연인 사이로 보인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거리에서 보는 사람의 절반은 관광객으로 보이는데, 젊거나 중년 관광객이 많은 반면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광객은 거의 없다. 또 다른 부류는 주변에 직장이 있거나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이들의 차림새와 태도에서 보보스의 분위기를 읽는다. 어느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으며 자신의 머리로 먹고사는 자유분방한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그들은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비교적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태도이다.

   그리니치 빌리지 곳곳에 테이블을 밖에 내놓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그곳에서는 세련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한가한 여유를 즐긴다. 대로변에는 보헤미안 풍의 가게가 눈에 띈다. 펑크 스타일의 옷과 장신구를 파는 상점, 패션 드레스를 파는 부티크, 색다른 문양과 색채의 물건을 전시한 인테리어점, 독특한 그림을 걸어 놓은 화랑이 있다. 사실 이곳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왕창 사서 집안으로 나르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종이봉투나 쇼핑백에 들어갈 정도의 식료품을 사서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자동차 트렁크 한가득 식료품을 사서 실어 나르는 미국 중류층의 전형적인 소비문화와는 퍽이나 다른 분위기다. 차고가 없는 집이 대부분이고, 거리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으며 한가하게 거리를 산보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동성애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동성애 커밍아웃 운동이 시작된 곳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 그렇듯 동성애자의 폭동이 일어났던 스톤월 인은 생각보다 훨씬 조그만 가게였다. 지금도 영업을 한다는데 사람의 인적을 별로 찾을 수 없다. 현관 위에 걸린 무지개 문양의 깃발이 이곳이 동성애와 관련된 곳임을 말해줄 뿐이다. 그 맞은편 크리스토퍼 공원에 있는 동성애 기념 동상 주변에서도 동성애자를 볼 수 없다. 이곳 모퉁이의 게이 스트리트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동성애자는 이곳을 떠난 것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퇴근길에는 철망으로 둘러쳐진 거리 농구를 가끔씩 구경했다. 그곳 근처로 걸어가면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철망 너머 빠르게 움직이는 선수들의 격렬한 몸  놀림과 욕설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곳에서 움직이는 흑인 청년들을 보노라  면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연상된다. 울퉁불퉁한 근육질, 민첩한 몸놀림, 신속한 대시와 무지막지한 충돌, 엄청난 점프력. 이들의 건장한 육체를 보면서 한편으로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 가슴이 아팠다. 흑인이 동물로 취급되던 노예제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는 두뇌를 가진 인간이기보다 소나 말처럼 힘을 쓰는 동물로서 소유되고 착취되었다. 노예제 시절 유산 목록에는 가축이나 가구와 함께 노예의 이름이 기록되어 후손에게 상속되었다. 노예제는 흑인을 지능이 낮고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보는 고정관념을 미국 문화 속에 고착시켰다. 영화나 광고에서 흑인은 동물처럼 원초적인 욕정과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백인이 흑인보다 키가 크고 육체적으로 더 건장하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일 뿐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흑인은 육체적인 존재라고 느낀다. 문화적인 고정관념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예술가들이 살지 않는다. 이곳을 걷다 보면 문화계의 유명 인사를 만난다고 하는데 이들은 가난한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곳은 중류층이 사는 교외나 부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곳곳에서 자유로움과 다양성의 멋이 풍겨나기 때문이다. 순수한 보헤미안 주의와는 거리가 멀겠지만 , 판에 박힌 따분함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개성을 풍기며 다양성을 맛볼 수 있다. 일전에 어느 대도시의 교외에서 한동안 머문 적이 있는데 질식할 것 같은 단조로운 환경이 권태 그 자체였다. 기껏해야 인근 공원에서 바람을 쐬거나 도서관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거나 주말에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다였는데, 조금만 지나면 이 생활에 진력이 난다. TV를 즐겨 보는 것도 아니고 잔디를 기르는 데 취미도 없는 내게 교외의 생활은 인생 낭비다. 아무리 편리하고 풍요롭다고 해도 지적인 자극과 문화적인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집값이 무척 비싸다고 하니 아무나 살기는 어렵겠지만, 한적함이 묻어나면서 도시의 다양성과 문화생활이 바로 곁에 있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 4. 3. 05:21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7-1-3) 두보이스, 1918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귀인상이다흑인 최초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흑인 운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7-1-4) 마커스 가비, 1924짙은 고동색 피부두터운 입술뭉툭한 코투박한 복장전혀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나 그의 연설에 흑인들이 열광했다그는 흑인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는 흑인의 문예 부흥이 중심이지만 흑인의 지위를 높이는 사회 운동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그 당시 할렘을 중심으로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두 흑인 운동가, 두보이스(W.E.B. Du Bois)와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활동은 이후 흑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이며 그들의 운동 방식 또한 그들의 성격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이들의 생애와 흑인 운동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면 자못 흥미롭다.

두보이스는 1868년 보스턴에 엘리트 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쪽 가계는 노예제 시절 매우 예외적이었던 자유 흑인이다. 조상이 미국의 독립 전쟁에 참가해 자유를 획득했다. 그의 아버지 쪽 가계는 프랑스인과 흑인의 혼혈로 아이티에서 대지주였다. 두보이스는 지식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고급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한때 대학 교수를 했으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백인 사회의 위선과 불의를 고발하고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일에 매진했다. 그는 글뿐만 아니라 흑인 중류층을 중심으로 1909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를 만들었다.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등 사회 과학 전반에 걸쳐 그가 논의하지 않은 주제가 없을  만큼 지적인 활동 범위가 넓었다. 그는 흑인의 시민권 획득과 자결, 자조를 강조했는데 대체로 자유, 평등, 인권 등 유럽의 가치에 입각해 흑인의 지위 향상을 도모한 지식인이다. 그의 글과 활동은 이후 흑인 운동의 주류를 형성해 1950년대 민권 운동으로 연결되었으며, 그가 만든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는 흑인 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말년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다 FBI의 조사를 받았으며 해외에 출국한 뒤 입국이 거절되어 196193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가나에서 사망했다.

   마커스 가비는 지식인 두보이스와 달리 선동가이고 풍운아다. 그는 1887년 카리브 해에 있는 자메이카의 소도시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었으며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다. 중남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쇄공으로 일했고, 한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대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흑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사에서 일했으며,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유명한 연설자의 코너라고 이름 붙여진 연단에서 수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자메이카로 돌아와서는 세계 흑인 향상 협회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백인의 억압 때문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흑인이 아프리카에 있는 흑인과 단결해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의 발상이 엉뚱하지 않은가?

   그는 미국에 건너가 전국을 돌면서 흑인에게 연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조직의 미국 지부를 만들어 미국 흑인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사회 운동을 추진했다. 할렘을 근거로 흑인을 위한 신문을 발간했으며, 흑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의 흑인을 아프리카 서안에 위치한 라이베리아라에 단체로 이주하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의 흑인이 아프리카로 모두 건너가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웅대한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곳에 단체로 건너갈 선박을 구입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가 역설한, 아프리카로 단체 이주하는 계획에 실제 동조한 흑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조직에 400만 명이나 가입했으며 그가 연설하는 곳마다 흑인으로 넘쳐흐를 정도로 호응은 대단했다. 그는 천부적인 연설가였다. 마커스 가비가 불러일으킨 흑인 사회의 열광은 엄청났으므로 미국 정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FBI는 그를 감시하고 사소한 구실로 그들 잡아들였다. 미국 정부는 그의 계획이 사기라고 발표하고 3년간 수감한 후 자메이카로 강제 추방했다. 미국에서 추방된 후 그는 자메이카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의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다 1940년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다.

   마커스 가비가 미국에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다. 감옥에 갇힌 기간을 제외하면 불과 7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자취 는 이후 오래 지속되었다. 1960년대 말콤 엑스가 주도한 흑인 분리주의 운동으로 이어지며,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으로 대표되는 흑인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찾는 흑인 정체성 운동과, 흑인 민족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로 이어진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마커스 가비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가나의 국기는 마커스 가비가 조직한 세계 흑인 향상 협회의 깃발 문양을 빌려왔으며, 그가 제안한 아프리카인의 단결은 아프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frica)’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말콤 엑스가 흑인의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그의 부모가 마커스 가비가 조직한 세계 흑인 향상 협회의 회원으로 열렬히 활동하던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말콤 엑스는 할렘에서 활동하면서 분명히 마커스 가비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마커스 가비는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정책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한, 전 세계 흑인이 단결해 하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목표나 미국의 흑인이 아프리카로 돌아가 그들만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다. 반면 두보이스는 흑인 엘리트로서 백인 사회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활동을 많이 했다. 흑인들은 누구를 더 기억할까? 물론 실제 미친 영향력으로 보면 두보이스가 훨씬 크지만, 흑인에게 꿈을 가져다 준 사람으로 마커스 가비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  지 않다. 마커스 가비의 부름에 흑인들은 열렬히 응답했다. 그가 활동하던 때에 할렘의 흑인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킨 열광은 물론이고 현재도 흑인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컨대 힙합의 노랫말 가사에서 마커스 가비의 이름을 만난다. 마커스 가비는 실행자이기보다는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전설적인 선지자로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유사한 시기 할렘에서 활동한 이 두 인권 운동가는 외모에서부터 활동 성향까지 뚜렷이 대조적이다. 두보이스는 유럽인의 윤곽과 짙은 갈색 피부에 지적 풍미를 풍기는 세련된 엘리트의 모습이다. 반면 마커스 가비는 짙은 고동색의 피부에 아프리카 흑인의 두터운 입술과 뭉툭한 코를 지닌, 세련과는 거리가 먼 비서구적인 모습이다. 마커스 가비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열적인 연설가이기는 했지만 논리 정연한 주장을 폈던 것 같지는 않다. 두보이스의 글은 지금도 대학에서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으나 마커스 가비의 연설은 글로 출판된 것이 없다.

   마커스 가비는 조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가 만든 조직은 두보이스가 만든 조직에 비해 이상은 높지만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 한 일은 별로 없다. FBI가 그를 조사해 사기죄로 감옥에 집어넣었을 때, 그가 한 약속에 비해 실제 진척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기를 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상적인 약속을 실행에 옮기려 했으나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약속을 믿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가 사기를 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두보이스는 백인을 능가하는 지력을 이용해 백인에게나 흑인에게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다. 반면 마커스 가비는 흑인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마커스 가비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수의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흑인의 감정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백인 식민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억눌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흑인에게 흑인도 고유한 가치를 가진 존귀한 존재이고 아프리카의 뿌리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을 가져다주었다. 흑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후세 사람은 그들의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르게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두보이스는 흑인 연구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학자로서, 하버드 대학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있다. 그 연구소에는 그의 지적 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보존돼 있다. 반면 마커스 가비의 자취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할렘의 공원이 전부다. 그가 활동했던 할렘의 사무소나 집은 헐린 지 오래이며, 그의 유물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는 흑인 민중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2014. 6. 29. 15:55

앨리스 아일랜드와 인디언 박물관

_유럽 이민자의 꿈과 인디언의 슬픈 자취

(2-3-2a, 2-3-2b) 엘리스 아일랜드 입국 심사장의 과거와 현재. 1904년에 찍은 이 사진 속의 입국 심사장은 가축 출하장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백인 3분의 1의 선조가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 텅 빈 입국 심사장 홀에 서면 백 년 전 이곳에서 웅성대던 탄식과 환성이 환청처럼 들릴 것 같다.


   엘리스 아일랜드는 자유의 여신상과 한 짝이다. 엘리스 아일랜드는 자유의 여신상 옆에 있는 조그만 섬으로 1892년에서 1954년까지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입국 심사를 받던 곳이다. 1924년 이민법이 개정되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이 실질적으로 중단되기 이전까지 이곳은 유럽 특히 남유럽과 동유럽으로부터 오는 이민자로 붐볐다. 1,200만 명의 이민자들이 이곳을 통과했다. 현재 미국 시민의 3분의 1은 그들의 선조가 이곳을 통과해서 미국에 입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는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에 제한이 없어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미국에 갈 수 있었던 시절이다. 미국에 먼저 건너 온 사람들은 친척이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민을 권유했다. 한마을 사람 전부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경우도 있고, 일가친척이 순차적으로 모두 이민을 가기도 했다. 이민자는 독특한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친숙한 곳을 버리고 낯선 곳을 선택한 사람이다. 이민자는 자신의 모국에서 극도로 가난하지도 또 부자도 아닌 중간층의 사람이다. 자신이 사는 사회에서 중상류층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거나 반대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은 미국으로 떠날 심리적인 용기 또는 물질적 수단이 없다. 이민자들은 출신 국가는 서로 달랐지만 상대적으로 젊고 모험심이 강한 동질적인 성격의 사람들이었다.

   엘리스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 상태였다. 오랜 항해 끝에 이곳 입국 심사장에서 심사를 받고 이 섬을 떠났다. 이 섬에서 평균 두세 시간 정도 체류했는데, 그 시간은 그들에게 일생 잊을 수 없는 긴장과 초조의 시간이었다. 입국자의 2%는 입국이 거부되었다. 이들은 같은 건물에 있는 임시 수용소에 일시적으로 수용되거나 바로 출국 조치되었다. 질병이 가장 큰 사유였으며 범죄 경력자나 불온한 사상을 지닌 사람도 거부되었다. 현재 엘리스 아일랜드의 입국 심사장 건물을 찾으면 입국 심사가 이루어졌던 텅 빈 큰 홀이 가운데 있고 주위로 입국자의 소지품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백 년 전의 일이지만 이곳에서 입국을 거절당한 사람의 절망을 떠올린다.

   필자에게도 기억에 남는 입국 심사 경험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인지 뉴욕인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을 때였다.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장에서 별도의 방으로 따로 불려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심문을 받았다. 꿀릴 것이 없어서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사무실 한편에 아마도 입국을 거부당한 것으로 짐작되는 일군의 사람들이 경찰의 감시 하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은 미국에 가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만 일이십 년 전만 해도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초조와 긴장이 흘렀던 것을 기억한다. 거의 반나절 동안 대사관 담벼락을 따라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비자 면접관의 고압적인 질문 몇 마디에 조마조마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힐끗 쳐다보고 서류를 보면서 몇 마디를 툭툭 던지는 것에 굴욕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는 일은 아주 흔했다. 미혼 여자라고 거부당하고, 나이가 많다고 거부당하고, 직업이 분명치 않다고 거부당하고, 미국 방문 사유가 불분명하다고 거부당하고,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거부당하고……. 지금도 미국 공항에서 입국 심사관 앞에 서면 문득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국의 병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2-3-3) 맨해튼 남단 배터리파크에 있는 인디언 박물관 전경. 조각상 속의 인디언은 그리스 여신의 뒤에 숨어 있다. 건물의 대부분이 텅 비어 있는 이상한 박물관이었다. 인디언은 나에게 역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

 

   맨해튼의 남단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는 바로 옆에 인디안 박물관이 있다.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분관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세관 건물로 쓰였다. 웅장한 석조의 조각상과 대리석 외관에 비해 전시물은 신통치 않아 특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쪽에는 인디언의 역사와 유물을 전시해 놓고 다른 쪽에는 인디안 출신 예술가의 현대 작품을 전시하는데 건물 크기에 비해 실제 전시에 사용하는 공간은 크지 않다. 많은 공간은 그냥 텅 비어 있어 막막한 느낌이 든다. 뉴욕에서 인디언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밀려오는 곳의 바로 옆에 인디안 박물관을 세운 것은 아이러니이다. 인디언은 바로 이들 유럽 이민자들 때문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병균을 가져왔고, 그들의 땅을 탐내서 그들을 죽이고 몰아냈다. 미국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인디언은 왜 서부에서만 사는지 궁금했다. 백인이 만든 서부의 신화에 속아 넘어가서 인디언은 원래부터 서부의 야생에서만 사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인즉 인디언은 북미 대륙 전체에 걸쳐서 살았다. 특히 동부와 남부에 기후가 온화하고 땅이 비옥한 곳, 즉 현재 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주로 살았다. 그러나 유럽인이 동부에 정착하면서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살던 인디언은 죽거나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쫓겨났다. 현재 미국의 동부에서는 인디언을 볼 수 없다. 백인들은 침략자의 종교인 기독교와 서구인의 관습을 받아들인 인디언 부족마저도 서부로 쫒아냈다. 인디언들과 체결한 조약은 번번이 폐기되었고, 인디언은 사람이 살기 부적합한 서부의 황량한 건조지대로 내몰렸다. 흑인은 노예로 부려먹지만 인디언은 반항을 해 쓸모가 없다고 하며 아예 제거하려 했던 잔인한 사람들이다. 일전에 서부의 인디언 보호 구역을 방문했을 때 도로 포장도 안 된 진흙길로 연결된 부실한 집에서 비참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팠던 적이 있다.

   19세기 초반에 선출된 잭슨 대통령은 미국의 영웅으로 숭앙받는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서부 변방에서 나온 서민 출신의 대통령이다. 그는 인디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토벌 전투를 지휘해 얻은 명성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인디언 토벌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은 죽은 인디언만이 착한 인디언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맨해튼 남단의 인디언 박물관을 방문하면 인디언의 슬픈 자취 바로 옆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역사는 승리자의 편이며 패배자에게는 참으로 냉혹하다. 인디언을 생각하면 미국이 부르짖는 인권이나 정의라는 것에 대한 공허함이 밀려온다.

 

 

2013. 11. 4. 16:59


(1-4) 뉴욕 시청 앞 공원. 맨해튼 시내에는 조그만 공원들이 곳곳에 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있는 이 공원을 우연히 지나면서 도심 공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대체 뉴욕의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기에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까? 어떤 사람들이 뉴욕에 오고 뉴욕에 와서 무엇을 하는지 해부해 보자.

뉴욕 사람 중 가장 많은 수는 이민자와 그 가족들이다. 그들이 뉴욕으로 이민 오는 이유는 물론 아메리칸 드림을 좆아서, 열심히 일해 성공하기 위해서다. 일 세대 이민자 대부분은 낮은 임금을 받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 중 일부는 미국 대학을 나와 사무직이나 전문직에서 일한다.

뉴욕의 이민자들은 민족에 따라 일 세대 이민자들이 주로 일하는 업종이 다르다. 중국인은 음식점에서 많이 일하며, 필리핀 여성은 병원에서 많이 일하고,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은 거리의 신문 판매대나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고, 동유럽 이민자는 택시 운전수나 아파트 수위를 많이 한다. 중남미인은 가정부나 아이 돌보는 일, 호텔의 청소, 접시 닦이, 조경 관리, 공사장 인부 등 하급 서비스 직업에 많이 종사한다. 한인은 세탁소, 식품점, 손톱 미용점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도 미국에 와서는 세탁소나 식품점에서 일한다. 일 세대 한인이 뉴욕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 중에서 그래도 고급 직종은 아마 델리일 것이다. ‘델리란 샐러드 종류의 다양한 요리를 해놓고 뷔페 형식으로 파는 음식점인데, 근래 많이 보인다.

뉴욕에 사는 이민자들은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다. 뉴욕은 이민자의 수도 많거니와 종류의 다양성에서도 다른 어느 도시와도 비교가 안 된다. 미국에 이민자가 많은 도시는 많지만 대부분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한정된다. 반면 뉴욕에서는 거의 모든 인종과 민족을 고루 볼 수 있다. ‘인종 전시장이라는 용어가 대변하듯 뉴욕은 정말 특이한 곳이다.

뉴욕 거리를 채우는 두 번째 부류는 관광객이다. 200847백만 명의 관광객이 뉴욕을 방문했다. 이중 미국 국내에서 온 사람이 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뉴욕시는 관광 수입으로 매년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는 345천억 원을 벌어들인다. 2001년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관광 산업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불과 이 년 후 다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 이후 관광객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뉴욕의 관광객은 특정 시즌 없이 일 년 내내 붐빈다. 여름휴가 때와 연말연시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기는 하지만 봄과 가을에도 뉴욕의 거리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뉴욕은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로마를 모두 한 곳에 합쳐 놓은 매력을 발산한다. 맨해튼에는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셀 수 없이 많다. 엄청난 돈과 인력, 재능이 투입된 것들이 한 곳에 몰려있어 어리둥절하다. 뉴욕에 오면 마치 시골사람이 서울에 온 것과 같은 어지러움과 활력을 동시에 느낀다.

뉴욕은 세계 유행의 중심지로, 곳곳에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고 매장을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정보를 소화하기 벅차다. 엄청난 정보와 상징의 폭탄 세례를 받는 것 같다. 뉴욕에서는 어느 곳에선가 항시 축제 또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과 전시회는 다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뉴욕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양성이다. 사람의 다양성, 음식의 다양성, 점포의 다양성, 장소의 다양성, 분위기의 다양성, 이벤트의 다양성 등 모든 면에서 뉴욕은 다른 어느 대도시보다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다양함 그자체가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과 산물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장터 같다.

뉴욕에는 말로만 듣고 텔레비전에서 보기만 했던 유명한 것들이 너무 많다. 뉴욕의 미디어가 미국과 세계인의 눈과 관심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곳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소비하는 미디어가 이곳을 동경하게 만든 것이다. 안방 TV와 영화관에서 보던 곳을 직접 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이곳에 올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도 뉴욕에 오면 촌사람이 된다. 초강대국 미국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뉴욕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사람이 서울에 와보고 싶어 하고, 영연방 사람이 런던에 와보고 싶어 하고, 프랑스 식민지 국가의 사람이 파리에 와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뉴욕에서 흔히 만나는 세 번째 부류는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온 젊은 연령의 단기 체류자다. 뉴욕에는 학교와 사설 학원이 아주 많다. 대학교만 해도 수십 개가 있으며 패션에서 연극,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가르치는 학원이 많다. 외국인이 많이 모인 곳이므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수를 셀 수 없다. 학생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연수를 하기 위해 뉴욕을 찾는 사람도 많다. 예컨대 뉴욕은 큰 병원이 많고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연수를 받는 의사와 수련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뉴욕에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연수생을 공짜에 가까운 임금으로 쓸 수 있으므로 이들의 채용을 선호한다. 미국 대학생들에게도 뉴욕의 인턴 자리는 꿈의 기회다. 비록 정규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뉴욕에서 지낼 수 있다면 무슨 일이건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과 유사한 부류로 아무런 안정된 일거리도 갖지 못하고 무작정 뉴욕에 머무는 사람도 흔히 만난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에서 연수생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최저 임금의 임시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뉴욕에서 머무를 기회를 모색한다. 소위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인데, 뉴욕에 최저 임금을 주는 임시직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마냥 시간을 끌며 엉거주춤 지내고 있다. 뉴욕에 정착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가지고 온 돈을 모두 소비하고 한 주 한 달을 연명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지칠 때까지 버티다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들을 만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젊다는 것이 자산이기는 하지만 처음에 벅차올랐던 희망이 시간이 지나 점차 가물가물해지고, 사람이 지쳐가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힘을 내서 시작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뉴욕 거리에서 만나는 네 번째 부류는 뉴욕을 방문한 비즈니스맨이다. 뉴욕은 비즈니스의 중심이므로 비즈니스맨들은 이곳에 출장 올 기회가 많다.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혹은 뉴욕 곳곳에서 항시 열리는 상업 전시회나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뉴욕의 그 많은 호텔이 항상 꽉꽉 차는 이유는 관광객도 있지만 이들 비즈니스맨 때문이다.

요컨대 새로운 꿈을 좆아서, 일자리를 찾아서, 관광을 하려고, 비즈니스를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뉴욕을 찾는다. 전 세계로부터 사람과 돈이 모이면서 곳곳에서 낡은 건물을 수리하거나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길거리 곳곳을 파헤치며 도로 공사를 하고, 부동산 값이 치솟는다. ‘프랜즈섹스 앤드 더 시티와 같은 TV 드라마에서 뉴욕의 생활이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관광객이 절반 이상의 자리를 채운다. 뉴욕의 유명세는 사람을 끌고 이것은 다시 더 많은 사람과 기능을 끌어들이는 집적 효과와 상승 효과를 낸다. 뉴욕은 할 일과 배울 것, 먹고 놀 것이 많고도 다양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며, 이는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오고 싶게 만든다.

 

2013. 1. 5. 20:09

  지난 여름에 출간된 책 "뉴욕사람들" (한울출판사, 2012)의 원고를 나누어서 실는다. 출판사와 계약할 때 온라인 판권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출판사의 허락없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계약위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온라인 책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이곳에 실는 원고의 모습은 출판된 책 처럼 아름답지는 않으므로 같은 원고이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돈을 벌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므로 관심있는 독자에게 읽을 기회를 주는 것이 판권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머리말과 목차이다. 


<머리말>


처음 외국 여행을 떠나면 사람들은 유명한 관광지를 돌기 바쁘다. 그런 단계가 지나면 이제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문화를 음미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여행 스타일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 홀로 떠돌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같이 엄청난 자연의 장관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사람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양식은 아기자기하고, 어디에 가든 내가 사는 방식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면을 발견한다. 다른 문화를 접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자각도 높아지기 마련인데, 뉴욕은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특이한 곳이기에 더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 책은 뉴욕을 모델로 미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찰한 글이다. 뉴욕 맨해튼을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들을 묘사하고, 뉴욕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들은 어떤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이야기한다. 덧붙여 그들이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 문화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뉴욕에서 필자와 유사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 책은 관광 안내서는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가고, 무엇을 먹고 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책에서는 뉴욕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비교하고 뉴욕의 관광지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뉴욕, 그리고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까지를 도모한다. 필자가 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한 미국학 관련 지식이 곳곳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현학적 논의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이 책을 여가 시간에 재미있게 읽는 가운데 미국인과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좋겠다.

오랜 과정을 거쳐 책이 만들어졌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2010년 교육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운 교육 테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학습개발원의 성경준 원장님께 감사한다. 연구 과정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의 김지환, 박주연, 한상민이 자료 조사를 도와주었으며, 뉴욕 현지에서는 박지영, 조남목이 도움을 주었다. 필자는 과거에 뉴욕에 살았지만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여러 번 뉴욕을 방문했다. 맨해튼 섬을 동서남북으로 걸어서 답사한 것만도 여러 번이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원고를 다듬어 출판하기까지 긴 길을 가야 했다. 한울의 신희진씨는 필자의 어색한 문구를 모두 고쳐주었다. 이 책의 출판을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음을 밝힌다


<목차>

 

머리말

 

1. 뉴욕의 화려한 부활

1. 우리가 뉴욕이라고 부르는 곳

2.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 1, 뉴욕

3. 뉴욕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뉴욕시는 네덜란드 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 뉴욕 문화 상징의 메카

1. 타임즈 스퀘어, 세계의 교차로

그랜드 캐년과는 또 다른 이유로 타임즈 스퀘어를 찾는다

2. 뉴욕의 대표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_전 세계 보물들의 총 집합소 구겐하임 미술관과 현대미술 미술관_현대미술의 색채와 서양인의 공공 관념

3. 관광지 순례

자유의 여신상_자유의 여신상이 표현하는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앨리스 아일랜드와 인디언 박물관_유럽 이민자의 꿈과 인디언의 슬픈 자취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_디즈니랜드에도 급행 티켓이 있다지만 록펠러 플라자_신이 낸 기업인, 록펠러 브루클린 다리_다리 위로 코끼리 행렬이 지나간 이유 유니온 스퀘어_광장에서 해바라기하는 사람들과 파머스 마켓

4. 뉴욕의 교회

세인트 패트릭 성당_억압당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꿈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_백년이 넘어서도 미완성인 교회 리버사이드 교회_화석화된 백인 교회 대 살아 있는 흑인 교회 그랜트 장군의 묘_미국 '시민 종교(Civic Religion)'의 지부

 

 3. 로어 맨해튼

1. 그라운드 제로, 911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그라운드 제로와 오바마 대통령

2. 월 스트리트와 유엔 본부

월 스트리트_화려한 만큼이나 위험한, 위험을 사고파는 곳유엔 본부_맨해튼 구석에서 괄시받는 서자

3. 이스트 빌리지, 오리지널 이민자 동네

이스트 빌리지에서 다양성의 매력을 발견하다

 

 4. 뉴욕의 터줏대감

1. 리틀 이탈리, 리틀 이탈리에는 이탈리아 인이 살지 않는다?

콜럼버스 데이 퍼레이드 참관기

2. 유태인의 딜레마, 성공했기에 사라지는 민족

내가 만난 유태인

3. 차이나타운, ‘황색 위협(Yellow Peril)’-인종 차별의 소산

군침 도는 먹거리 천지, 맨해튼 차이나타운 답사기

 

 5. 보보스 문화의 매력

1. 그리니치 빌리지, 맨해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보낸 한여름

2. 첼시와 미트패킹, 뉴욕 경제와 함께 부활한 새로운 매력의 발산지

옛 것을 재활용해 성공한 세 가지 사례

3. 센트럴 파크, 도심 한가운데 구현한 완벽한 인공 자연

생활 속의 자연, 센트럴 파크의 진가를 맛보다

 

6. 뉴욕의 상류층 대 소시민

1. 어퍼 이스트사이드, 소위 부자이며 유명한사람들의 동네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사는 부자들의 삶을 엿보다

2. 미드타운 이스트와 어퍼 웨스트사이드, 뉴욕 소시민의 생활

어퍼 웨스트사이 대 어퍼 이스트사이드

맨해튼 보통 사람들의 생활

3. 엘리트 대학 대 서민 대학

컬럼비아 대학교_전 세계 엘리트들의 치열한 경연장, 아이비리그 명문 사립대 뉴욕대_맨해튼 도심 속 낭만적인 대학 생활 뉴욕시립대_오고 싶어 하는 모든 학생들을 받아주는 대학 뉴스쿨_진보적이고 실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대학

 

7. 흑인 문화의 고향

1. 할렘, 흑인 사회 문화의 중심지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할렘을 걷다

2. 흑인 교회, 정신적 구원과 실질적 뒷받침이 함께 하는 곳

아비시니안 침례교회 방문기

3. 배드포드-스타이브샌트, 흑인만의 세상

할렘보다 진짜 흑인 문화가 숨 쉬는 곳, 배드스타이

  

8. 뉴욕의 마이너리티

1. 코리아타운, 한국 이민자들의 풍경

2. 이스트 할렘, 푸에르토리코인의 근거지

이스트 할렘 사람들의 사는 모습

3. 인도 사람들, 백인인가 아시아인인가?

4. 퀸즈, 세계 모든 나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

퀸즈로 가는 전철 풍경

 

 

2012. 11. 9. 11:58

  20세기 초반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서구인의 생활 방식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도시가 확장되고,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공간이 넓은 미국에서 자동차의 영향은 두드러진다. 미국인에게 자동차는 실용 이상의 그 무엇이다. 자동차를 벗어나지 않고 식사하고, 영화 보고, 사랑한다. 미국 문화에서 자동차를 타고 정처 없이 전국을 헤매며 여행하는 것은 젊음의 상징이다.


http://www.economist.com/news/business/21564821-carmakers-are-starting-take-autonomous-vehicles-seriously-other-businesses-should-too

The driverless road ahead

Carmakers are starting to take autonomous vehicles seriously. Other businesses should too





 

  운전사 없이 가는 자동차를 조만간 주위에서 볼 것 같다. 요즈음 외신에서는 생산의 기계화, 컴퓨터화하는 주요 분야로 운전의 자동화를 언급한다. 운전사가 필요 없는 자동차는 생산 방식과 삶의 양식 모두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고통이 감소되면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훨씬 더 넓어질 것이다. 잠을 자면서 혹은 다른 일을 하면서 이동하는 것이 일상화될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인간 운전수의 결함이 없기에 교통문제는 많이 해결될 것이다. 고질적인 도로 정체는 해결될 것이고 교통사고도 거의 없을 것이다. 운전수 없는 자동차는 직업과 산업의 양상을 바꾼다. 미래 자동차 산업의 상당 부분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차지할 것이다. 물류 운송에서 인간의 역할은 줄어들고, 교통경찰은 대부분 사라지며, 신호등 또한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다.

 

  필요로 할 때 언제 건 자동차가 스스로 올 것이기에 자동차 소유에 대한 개념도 바뀔 것이다. 현재 자동차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차장에서 머물고 있는데, 이렇게 비효율적인 소유 관행은 사라질 것이다.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자동차가 사용가능하다는 면에서는 지금과 차이가 없겠으나, 자동차 사용 비용은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다. 지위 과시용으로 큰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이런 시대에도 계속될까? 인터넷의 등장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과거보다 자동차에 덜 관심을 갖는다고 미국의 자동차 제조 회사들이 걱정하는 데, 운전수 없는 자동차의 등장은 자동차 제조회사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운전사가 없는 자동차의 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는 않는다. 지금도 컴퓨터로 제어되는 운전은 부분적이나마 실제 활용되고 있다. 자동으로 주차하는 기능이라던가, 충돌 위험에 처할 때 컴퓨터가 사람을 대신하여 충돌을 방지하는 기능은 고급차에 옵션으로 장착되고 있다. 구글은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자동차를 지금까지 1년 이상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차가 지금까지 사고를 딱 한번 냈는데 그것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동승한 운전자가 수동 운전 기능으로 바꾸어 운행했을 때에 발생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자동차가 나오면 그런 자동차를 타고 정처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싶다. 각자의 여행 취향에 따라 컴퓨터가 자동으로 길을 안내하면서 우리를 즐겁게 하리라 기대한다.  

2012. 10. 20. 22:53

   교과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책이다. 성장기에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은 일생동안 기억에 남아 있으며, 사회 구성원들 서로 간에 생각의 공통된 출발점이 된다. 그렇기에 교과서에 담긴 내용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 사회에 힘 있는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의 머리 속에 주입시키고 하는 것이 교과서에 담긴다.



http://www.economist.com/node/21564554

 

Textbooks round the world: It ain’t necessarily so

The textbooks children learn from in school reveal and shape national attitudes—and should provoke debate





 

   최근 한국 사회에서 교과서에 기독교의 창조론을 집어넣고자 하는 시도가 좌절되었다. 미국에서 종종 벌어지던 사건이 한국에서도 일어났지만 결과는 달랐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창조론을 과학 교과서에 넣는데 성공했으나, 한국에서는 실패했다. 한국의 기독교 세력은 미국만 같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와 지리 교과서는 그 사회의 집단적 편견을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입한다. 한국인은 단군의 자손으로 단일민족이며, 선조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을 이어받았으며, 우리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배운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면서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학창시절 한국사를 배우면서 무수한 연도와 이름을 외어야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었다. 왜 사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딴 것을 외우는데 내 삶을 낭비해야 할까? 나의 삶의 의미가 우리 민족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면서 의심하게 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왕왕있다. 미국의 교과서에서는 인간의 성에 대해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남녀 간에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며, 인간의 성이 사람들의 생애와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낙태를 많이 하는 나라이다.

 

   각 나라의 교과서에서는 자신의 나라가 최고라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특히 미국 사람의 경우 이러한 선민의식, 특별의식은 유별나다. 미국 사람들은 조상을 공유하지 않기에 ‘미국’이 표상하는 이념을 국민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국민들이 반드시 하나의 나라로 지켜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사회 집단들간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쉽게 쪼개질 것이다. 미국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미국사와 영어에 특히 비중을 많이 할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세계의 나라들이 역사 교과서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일본, 한국, 중국의 사람들에게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아이디어에 관해 물어보니 부정적인 답이 긍정적인 답보다 많았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인이 최고라는 생각, 조상의 축복 속에 번영하리라는 생각을 후손에게 주입시키고 시킬 것이다. 자신의 조상이 이웃을 괴롭히고 착취했으며, 전쟁을 벌여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후손에게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미국 사람들 역시 자신의 조상이 인디언과 흑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번번이 약속을 어고 비인간적으로 착취한 철면피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케 한다면 그에 대한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만 세상은 정의롭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자기 파괴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관해 알면 알수록 저들에게 천벌이 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과서에는 사회의 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기에 소외된 사람들은 관심에서 배제되어 있다. 교과서에서는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회는 강자의 논리에 따라 전개되며 이것이 사회의 발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본가는 중요한 일을 하며 그들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는 반면, 근로자들의 의견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주입받는다. 자본가와 근로자 모두 기업의 주인이므로 이들의 이익과 의견이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으로 아예 언급되지 조차 않는다.

 

  적자만이 생존한다는 사회진화론의 입장을 모든 역사 교과서는 은연중에 담고 있다. 세상은 잔인한 것이다. 땅속에 묻힌 미국 인디언에게는 후손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의로운 사회를 열망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내가 당면한 딜레마이다. 

2012. 10. 14. 12:15

   미국 사회에서 지난 30년간 소득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하는 반면, 최상위 1%의 소득은 크게 증가하였다. 대기업 CEO의 연봉은 평균적인 근로자 임금의 수백 배에 달한다. 전 세계로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미국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 들었지만, 근래에는 미국이 유럽보다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http://www.nytimes.com/2012/10/14/opinion/sunday/the-self-destruction-of-the-1-percent.html?hp&_r=0

 The Self-Destruction of the 1 Percent

By CHRYSTIA FREELAND




   미국은 폐쇄적인 사회로 치닫고 있다. 저소득층의 자식이 상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상류층은 자식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가 과거보다 수월하다. 부자는 중류층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 기업의 인수 합병을 통해 경제력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정치자금을 무기로 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나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의 예에서 보듯이 거부들이 자신의 돈으로 대중의 여론을 조작하여 권력을 획득하려 한다. 미국의 선거는 어느 후보가 더 많은 돈을 모았는가에 좌우된다. 선거가 다가오면 엄청난 광고비를 써서 TV에 상대를 비방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광고전을 벌인다. 이러한 광고에서 제시하는 정보는 거짓말과 과장의 범벅으로 시청자의 냉정한 판단을 흐려 놓는다. 여론을 주도하는 미디어 자체가 영리를 추구하는 대기업으로 돈 있는 사람의 편이므로,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해서보다는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나팔수 역할을 한다.

   대기업은 공정한 경쟁을 두려워한다.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약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들 서로 간에 결탁하여 경쟁을 제한하려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경쟁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으려고 시장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놓는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게끔 교묘하게 처리한다. 세금으로 충당하는 엄청난 공적자금은 이들에게 돌아가며, 정부의 다양한 보조금의 수혜자 역시 이들이다. 

  부자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만 특별한 교육을 시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게 한다. 아래 계층과 접촉하거나 그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피한다. 미국 부자들이 자식을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과 한국의 부자들이 자식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것은 동일한 맥락이다. 부자의 자식들은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거나,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땅집고 헤엄치는 장사를 하거나, 해외 브랜드의 독점 수입을 통해 쉬운 돈벌이를 택한다. 그들은 공정한 경쟁이 무엇인지 체험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경쟁이 제한되고, 계층 이동이 차단되고, 부가 집중되고, 불평등이 높아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적대 관계가 깊어지고, 갈등이 높아지고, 폭력충돌이 빈발할 것이다. 범죄가 높아지고, 안전을 확보하는 데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열심히 살려는 동기를 상실하고, 인재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공급되지 않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결국 그 사회는 몰락한다. 첨부한 기사에서 과거에 베네치아가 그러한 길을 걸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수준이 매우 높음에도 그럭저럭 버텨온 것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이념이 강한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사람들은 더이상 미국을 매력적인 이민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면 미국에 인재가 모여들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가 승자독식의 게임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다고 하여도, 그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면 다른 사회로 옮겨갈 것이다. 미국 밖으로부터 인재가 모여들지 않는다면 세계의 창의를 주도하는 미국의 지위 또한 무너질 것이다. 미래의 스티브 잡스나 버락 오바마는 미국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2012. 10. 11. 10:11

   우리나라의 안철수, 일본의 토루 하시모토,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파키스탄의 임란 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기성 정치권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서 각 나라의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과거에 정치를 하지 않았으므로 기성 정치권의 나쁜 관행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권자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http://www.economist.com/node/21563719

Fighting monsters: Political outsiders are challenging Asia’s traditional elites


   일본을 제외하고 민주주의의 역사가 깊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는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욕을 취하고, 반칙을 일삼고, 기업가와 결탁하여 자신들만의 특권 집단을 만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랏돈으로 자식에게 집을 사준 일이나, 부유층이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자식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행태를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혼인과 직장 이동을 통해 재벌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것, 국회의원이 되면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것, 판사와 검사는 재벌의 반칙 행위에 대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 정치인들은 서로 싸우면서 국민의 복리보다는 권력 획득에만 관심을 두고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한 한 통속이라는 느낌.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이라니, 하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보통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들 사이에도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려 한다.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반칙을 저지른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운전하면 뻔뻔하게 끼어들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흔히 본다. 기업들은 속임수를 써서 고객의 돈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곧이곧대로 규칙을 지키면 손해 본다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기에 기회만 닿으면 반칙을 저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전혀 반칙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성인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부패와 무능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다. 모두들 반칙을 저지르면 시스템 전체의 효율은 약화되는데, 바로 이것이 후진국인 이유이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한다. 능력이 있고, 떳떳하고 정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것을 성취한 사람을 찾는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그러한 갈망의 표현이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므로 사회의 관행과 완전히 동떨어져 행동할 수는 없다. 한국의 중상류층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기에, 안철수도 그러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남들이 하는 반칙의 행위에 손을 적셨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 문화가 술 접대를 하지 않고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는 관행이기에, 안철수도 룸살롱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면서 거래처를 접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군대가 상관이 부하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문화이기에, 안철수도 그러한 군대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는 혼자 할 수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정치를 하려면 세력이 필요하다. 기성 정치권과의 타협과 연대 없이 정치 아마추어들만 모여서 선거라는 게임에서 이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거가 그렇게 간단한 게임이었다면, 기성 정치인들이 이전투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 또한 어떻게든 기성 정치권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이 과정에서 기성 정치권의 요구에 일정부분 양보할 것이다.

   기성 정치권을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들 유권자이다. 유권자들이 그런 정치 관행을 용인하고 표를 통해 지지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그런 정치판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유권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안철수는 기존 유권자들의 관행과 타협을 모색할 것이다. 자신들의 좁은 집단 이익을 우선시 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전체의 대의를 생각하라는 구호는 별반 설득력이 없다. 사람들은 겉으로 말은 어떻게 하든 자신의 좁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유권자가 변해야 정치가 변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그 반대로, 정치가 변해야 유권자가 변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안철수가 우리나라의 정치판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과거보다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기성 정치권에 충격을 가져오는 신인 정치인의 등장은 성공하던 실패하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권자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듯이 정치권도 한 번에 바뀔 수 없다. 여하간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은 기성 정치권의 관행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민주화 된지 30년이 안되었는데, 이렇게 정치가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 좋은 징조이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변화가 우리나라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바퀴는 일단 굴러가면 좀처럼 되돌려 후퇴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니,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 기대하며 마음 편히 정치판의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본다. 

2012. 10. 7. 14:52

   사람들은 학교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하며 하루가 멀게 교육 제도를 바꾼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교육 제도를 자주 바꾸는 데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은 문제의 근원이   학교 교육 자체보다는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http://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2/10/why-kids-should-grade-teachers/309088/

 Why Kids Should Grade Teachers

By Amanda Ripley


   어느 사회나 학교 교육은 사회적인 성공의 중요한 통로이다. 과거 토지 소유나 신분이 지위와 권력의 기반이었을 때에는 학교 교육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요즈음 ‘지식 경제’(Knowledge Economy)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경제활동에서 지식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교육의 지위획득 기능은 더 커졌다.

   문제는 학생이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학교 자체가 아니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점에 있다. 사람들은 학교 교육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장치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어떤 가정 배경인가에 따라 교육 기회는 큰 차이를 보인다.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많은 부모의 자녀는 그렇지 못한 부모의 자녀보다 평균적으로 학업 성취도가 월등하게 높다. 일간 신문에서 서울대 학생의 부모의 상당수가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모든 초등학교 학급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보다 부모의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다.

   본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학업 성취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배경에 따라 성취가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을 사람들은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평등과 민주주의 이념은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 제도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이 자녀의 학업 성취로 고스란히 이전되는 것을 허용한다. 자신이 어떤 부모에게서 출생하는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사람들은 이런 부정의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없는 사람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불편해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맨날 떠들면서 이리저리 뒤집어보아도 이러한 근본적인 모순을 외면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아우성만 지속될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점에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종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열등한 지위에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 자녀의 낮은 학업 성취도는 미국 사회의 골칫거리이다. 유색인이 다니는 학교의 수준은 정말 열악하다. 학교의 시설은 낡고 부족하여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없는 환경이며, 선생의 수준이나 가르치려는 의욕은 낮으며, 학생의 배우려는 의지 또한 매우 낮다. 많은 유색인 학생들이 매일 집에서 복잡한 사건을 경험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학교에 오는 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머리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반면 중류층 백인이 다니는 학교는 좋은 시설과 안정된 가정 환경과 부모의 관심과 선생의 열의와 학생의 의지가 결합하여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인다.

   미국의 교육 개혁은 대체로 유색인 학교의 낮은 학업 성취도를 어떻게 끌어 올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중류층 학생의 학업 성취도 또한 국제 비교에서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서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다. 미국의 많은 교육학자들이 복잡한 방법론을 동원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매일 같이 새로운 제안을 들고 나오지만 그리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사실 효과를 보이는 개선책은 대체로 교육의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한 기사에서 지적하는 개혁 방안은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자녀의 학업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선생이 좋은가 여부는 학생의 학업 성취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떻게 선생의 질을 높일 것인가, 어떻게 나쁜 선생을 솎아낼 것인가, 어떻게 수업의 질을 개선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다른 방법보다 학생이 선생을 직접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높다.

   학생은 선생과 오랜 시간 함께하고 선생이 제공하는 교육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이므로 어느 외부 전문가보다 더 선생과 선생이 제공하는 교육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학생보다 선생에 대한 평가가 더 공정하기는 하지만 둘 사이에 편차는 매우 적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다른 학생들 간에도 선생에 대한 평가는 일관되다. 심지어는 유치원 학생들 조차도 자신의 선생을 잘 평가할 수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학생의 학업 성취도로 선생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선생의 질보다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방식으로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수준 차를 통제하여  학생의 학업성취도에 따라 선생과 학교의 질을 평가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공정성이 결여되어 반발을 낳는다. 우리나라에서 근래에 일제고사를 이용하여 학생의 성취도가 떨어지는 학교에 불이익을 주는 정책이 옳지 않다고 비판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학생들은 선생을 잘 알기 때문에 복잡한 질문을 하기보다는 단순하면서 직접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다음의 다섯 개의 문항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 이 수업을 듣는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한다.

2. 우리 반 학생들은 선생님의 통제를 잘 따른다.

3. 우리 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4. 이 수업에서 우리들은 거의 매일 많은 것을 배운다.

5. 이 수업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는다.


  학생은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안다. 물론 선생은 학생의 평가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평가받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평가가 자신이 받을 보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면 더더욱 평가를 기피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공적인 일이므로 공적인 절차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보상이 따르는 일에 대해 평가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평가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며,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기 어렵기때문이다. 학생의 평가가 오류투성이라면 모를까 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면 이것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평가는 학생은 물론 선생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학생들은 매우 냉정하며 공정하게 평가한다. 선생이 학생에게 관심을 덜 기울이거나, 수업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배우는 것이 많지 않은 수업은 학생들이 기피하며 낮게 평가한다. 학생의 이해도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면 반드시 낮은 평가를 받는다. 학생이 배우는 양과 수준과 속도에 관심을 기울이며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선생을 학생들은 선호하고 높은 평가를 내린다. 점수를 잘 주는 선생의 강의에 많은 학생이 몰리지만 그러한 강의에 대해 반드시 후한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한 강의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학생이 반드시 나온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선생의 강의를 평가할 때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다. 5 만점으로 평가했을 때 웬만큼 괜찮다고 생각하면 평균 4 점 이상이다. 평균 3.5점 이하를 받으면 학생이 선생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한학기를 가르치고 나서 선생인 나 자신에게 불만족했던 강의는 거의 반드시 4.0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학생들도 나와 동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선생이 학생의 평가를 받지 않았던 것은 우리사회의 권위주의적인 전통 때문이다. 사회적 권위가 합리성을 제약했다.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는 것이 선생의 권위에 대한 침해라고 반발하지만, 열심히 잘 가르치는 선생에게는 학생이 존경하고 좋은 평가를 내린다. 학생은 선생의 인간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수업을 통해 학생에게 한 일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인권 모독과는 상관이 없다. 학생들은 평가를 통해 선생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개선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교사 노조는 선생에 대한 학생의 평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는 이기적인 주장일 뿐이다. 대부분의 선생은 겉으로 드러내 말하지는 않지만 학생의 평가가 대체로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부 학생들이 엉터리로 평가하지만 학생 전체에 대해 평균을 내면 일부의 왜곡된 평가는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는 제도가 효과적으로 시행된다면, 전혀 준비하지 않고 수업에 임하는 선생이나, 학생의 학업 성취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선생은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런 무책임한 선생을 여러 명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수업을 매일 들으면서 느꼈던 좌절과 분노를 기억한다. 나는 그런 선생을 전혀 존경하지 않았으며, 어린 나이에도 그들을, 그리고 그런 수업을 억지로 들어야 하는 나를 불쌍하게 느꼈다. 그런 선생은 자신이 잘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자신도 잘 알기에 학생의 학업 성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 이루어진 어떤 교육개혁보다 더 혁명적이고 의미 있는 것이라는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12. 10. 5. 11:41

근래에 어느 곳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편집자가 내 글을 난도질 하여 최종 원고는 초고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 다음은 내가 처음에 쓴 초고이다. 



뉴욕은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 중 1위로 지목된다. 왜 세계 사람들은 뉴욕을 찾을까? 지금 뉴욕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도 항시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뉴욕은 사람들이 떠나고 빈곤과 범죄가 판치는 무서운 곳이었다. 그 당시 센트럴 파크는 대낮에도 걸어 다니기가 꺼려졌다. 1990년대에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뉴욕은 부활하였다. 인구가 늘고 유명 연예인과 부자가 뉴욕에 산다는 소문이 퍼지고 기업이 뉴욕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뉴욕은 모든 미국인이 한번쯤 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뉴욕의 생활이 다른 곳보다 풍족하고 편하기 때문은 아니다. 뉴욕의 집값은 미국에서 가장 비싸기에 모두들 조그만 아파트에서 옹색하게 산다. 뉴욕의 주차비는 엄청나기에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출퇴근한다. 미국의 상징인 무한한 풍요와 소비지상주의는 뉴욕 사람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뉴욕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다. 뉴욕은 예전부터 미국으로 이민자가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이들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뉴욕에 자신들만의 민족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19세기에 미국에 온 독일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태인, 등 유럽의 이민자들이 집단적으로 살던 곳은 지금도 자취를 남기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뉴욕으로 몰려왔다. 중국인, 인도인, 중남미인, 한국인, 베트남인, 러시아인, 중동인, 아프리카인, 등등. 뉴욕에서 만나기 힘든 나라 사람은 아마 북한이 유일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그것도 각각 적지 않은 수가 한 도시에 모여들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그들은 고유의 언어와 음식과 관습을 가지고 왔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은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 되어 혼란에 빠졌다고 하는데, 뉴욕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함 덕분에 융성하고 있다. 다양성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삶의 활력을 제공한다.

뉴욕의 삶은 지루할 겨를이 없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을 매일 접하는 것은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신선한 경험이다. 피부 색깔은 물론, 얼굴 표정, 옷 입는 스타일, 치장하는 방식, 등 외모에서 차이가 난다. 서로 알게 되면, 행동거지나 예의범절, 가족 관계,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 어제 본 티브이 드라마, 생각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나와 약간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길에서, 전철에서, 직장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슈퍼에서, 집주위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때때로 문득 느낀다.

아시아 사람은 예의가 바르고 성실하며, 흑인은 정이 많으며, 인도 사람은 계산이 빠르며, 동유럽 사람은 무뚝뚝하고 속을 알 수 없으며, 베트남 사람은 영리하며, 중남미 사람은 열심히 살지만 기분파다. 뉴욕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뉴욕의 음식 문화는 다양하다. 미국의 고유 음식이라고 하면 햄버거와 스테이크 정도일 텐데, 뉴욕에서는 특색 있는 요리를 싼 가격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길모퉁이 피자집은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를 화덕에 구워서 내놓으며, 그 옆 인도 음식점에는 인도 사람이 만드는 특이한 향의 카레 요리가 미각을 자극하며, 그 옆 중국 음식점에는 중국말을 하는 주방장이 만드는 중국 요리가 가지 수를 셀 수없이 많으며, 그 옆 멕시코 음식점에는 타코 요리가 싸고 맛있으며, 그 옆 타이 음식점에는 일전에 태국 여행에서 맛보았던 타이 요리를 타이 여인이 친절하게 서빙하며,... 무궁무진하다. 이들 음식점의 주요 요리만 돌아가며 먹어도 한 달 내내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이 모두가 그 나라 사람들이 고유의 재료로 만드는 ‘정통’ 요리이다.

뉴욕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대체 몇 개인지 셀 수 없이 많다.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이 있다. 인류 문명의 궤적을 보여주는 권위 있는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고전 미술 중심의 미술관, 최근의 작품을 전시하는 현대 미술관, 유태인 대학살 박물관, 중남미 문화 박물관, 소방 박물관, 금융 박물관, 디자인 박물관, 등등. 박물관과 미술관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아이디어를 집약해서 보여준다면, 뉴욕의 수많은 갤러리와 부티크는 아름다움이 요즈음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말해준다.

뉴욕에서는 거의 매일 어디에선가 큰 전시회가 열리고 다양한 주제의 행사가 펼쳐진다. 요즈음 한창 진행되고 있는 뉴욕 패션 주간의 행사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뉴욕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이 벌이는 민족 축제는 뉴욕 생활에 활기를 더한다. 이들은 맨해튼의 번화가에서 화려한 퍼레이드를 벌인다. 남녀노소가 함께 행진을 하면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고 구경꾼에게 손을 흔든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동네 전체에 만국기가 휘날리고, 흥겨운 음악이 거리에 넘치고, 노점 좌판에서는 민족 고유의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가게에서는 왕창 세일을 하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들이 서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이방인인 나도 왠지 즐거워진다.

타임 스퀘어는 뉴욕 도심에 있는 교차로 광장인데 가장 뉴욕다운 곳이다. 화려한 광고 전광판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집채만 한 전광판은 폭탄을 퍼붓듯 정신없이 이미지를 쏟아 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독수리가 날다가, 란제리만 입은 여인이 요염한 포즈로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일렬로 건장한 젊은이들이 행진한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촌사람이 명동에 처음 온 것 같은 표정으로 인파에 떠밀려 간다. 껴안고 키스를 하는 사람들, 광장 계단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움직이는 관광버스 지붕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며 에너지를 느끼고 즐거워한다.

뉴욕이 1990년대에 부흥하게 된 것은 미국이 지식경제로 이전하면서이다. 지식을 다루고 지식을 생산하는 전문직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다양성은 각광을 받는다. ‘창의적 계급’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아이디어가 삶의 핵심이다. 이들에게 단조로움이란 쥐약이다. 이들은 다양성을 접하면서 활력을 얻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뉴욕의 지역신문인 뉴욕 타임즈가 전국적으로 지식인들이 구독하는 신문이 된 것은 당연하다. 뉴욕은 아이디어 산출의 중심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적인 삶이라고 하면 교외에 잔디밭이 있고 주차장이 넒은 집에 살면서, 주말에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고, 풍족하게 소비하는 생활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은 편할지는 모르지만 단조롭고 지루하다. 교외는 호기심을 질식시키는 공간이다. 반면 뉴욕의 거리는 항시 사람으로 북적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는 곳이다. 뉴욕의 다양성을 탐내는 사람은 젊은이만은 아니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거리에서 한가하게 거니는 노인을 흔히 마주친다.

물론 뉴욕의 삶은 자극이 많기에 때로는 피곤하다. 한국 사람은 이런 삶에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서울과 다른 점은 뉴욕에는 사람의 다양성과 그것이 빚어내는 다양한 문화가 있다. 바로 그것이 뉴욕을 활기차고 호기심 넘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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