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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 17:17

Victor W.Hwang and Greg Horowitt. 2012. The Rainforest: the secret to building the next Silicon Valley. Regenwald. 282 pages.

벤쳐 캐피탈리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와 밴쳐 업계를 분석한 책. 저자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천연림(rainforest)와 같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구성원이 기존의 관행에 얽매지 않고 서로 자유로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 받다보면 우연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것이 창출되는데, 이는 마치 천연림에서 잡초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이것이 사업으로 성사되기까지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이들 사이에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용이하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서로 소통과 협력을 쉽게 하도록 할지가 관건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좁은 범위의 집단 내에서만 소통을 하며 집단을 건너서는 적대적이다. 지역, 인간관계망, 문화, 언어, 불신 등에 의해 제한된 사회적 장벽은 집단간 접촉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를 높이기 때문에 생산적 소통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주체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유용한 자원을 교환할 때,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증명하듯이, 교환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 집단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사람 혹은 핵심적인 기관이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밴쳐 자본가, 컨설팅 회사나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변호사 등이 이런 위치에 있다. 다른 하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으며,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여 조합하고 적용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잘 축적되어 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서로 쉽게 관계 맺우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합리적 경제 원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는 도정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무모할만치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합리적 동기보다는 비합리적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성공의 확률이 지극히 적음에도 무모하리만치 열심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비합리적인 동기는 다음과 같다. 경쟁의 스릴, 남을 돕는다는 이타적 정신, 모험에 대한 갈망,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즐거움, 미래 세대에 대한 염려,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희망, 등이 그것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관계하는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 기존의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꿈을 꿀 것,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귀기울일 것, 상대를 신뢰하고 신뢰받을 것, 실험하고 또 함께 실험을 반복할 것, 모두에게 공정하고 상대를 이용해먹지 않을 것,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끈질기게 지속할 것,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제공할 것, 등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지배하는 규율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생태계를 새로이 구축할 것인가인데, 소수의 핵심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규율에 따라 실천을 한다면 점차로 이러한 규율과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생태계는 외부로부터 전체적으로 주입될 수 없다. 구성원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행위양식을 직접 실천하는 가운데 그들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행위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를 배우고, 이러한 행위와 배움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 이를 따라 롤모델이 형성되고, 신뢰가 통하는 집단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단순히 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생사를 좌우하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 투자가가 투자 수익만을 보고 이러한 과정에 자본을 참여하기는 어렵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사업이 성숙해가는 과정의 단계마다 그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조언과 도움을 제공하여 성공의 확률을 함께 높여 나가야만, 그의 투자가 결실을 거둘 수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이 초기단계의 투자를 가능케 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돈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성사시키는 일이다.

왜 미국의 서부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가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와 세운 나라이며, 서부는 미국 내에서도 동부의 기득권과 전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기회와 모험을 찾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서부에서는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진 누구인지(who you are)가 중요치 않다. 대신 그가 무엇을 하는가(what you do)가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미국의 서부는 세계에서 집단 종족주의(tribalism)가 가장 약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다양한 자원의 사람이 모여들고, 서로간에 자유로이 소통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우연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 밴쳐 사업에 깊숙이 간여한 사람이 풍기는 열정이 느껴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 참여한 사람 모두는 이러한 열정과 순수함이 없다면 밴쳐 사업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열정은 전염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열정의 씨앗이 퍼져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으로 조금씩 새로운 실리콘 밸리가 만들어질 수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시장의 원리만으로 안되고, 정부의 지원만으로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찾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에, 어디에서건 실리콘 밸리가 조성될 수는 있다. 새로운 것에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나 지역이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책은 체계적인 분석서라기보다 실천가의 견해를 피력한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며, 비유를 많이 들어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이론은 쉽지만 실제 그것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