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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해당되는 글 30건
2021. 6. 27. 11:27

David Buss. 2019. Evolutionary Psychology: The New Science of the Mind. Routledge. 402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대학 교재로 집필되었다. 적응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의 심리가 발달하였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기존의 모든 연구를 망라하여 소개한다.

진화 심리학은 인간 심리에 대해 기존의 심리학의 분과 학문과는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인지 심리학이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진화 심리학은 적응과 번식의 문제 영역에 따라 상이한 인지 구조를 주장한다. 식량을 획득하는 분야, 위험을 탐지하고 회피하는 분야, 짝을 찾는 분야, 등  각각의 분야에 맞추어 상이한 인지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 인간의 대상 인지와 기억, 문제 해결 능력, 언어 능력, 지능, 등이 보편적인 규칙에 따라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각 문제 분야에 따라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인간의 사회 관계에 적용되는 심리 기제 역시 적응과 번식이라는 문제에 맞추어 발달되었다. 인간의 도덕 감정이 대표적 예이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게 도적적 분노가 퍼부어지는 이유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함으로서 인간의 집단적 생존에 해가 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발달한 것이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라 상이하게 심리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은 발달 단계에 따라 해결해야 할 적응과 번식의 문제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와 심리를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접근은 개인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의 성격의 차이를 상이한 환경에 적응하고 번식하기 위해 개인이 택하는 전략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불안정한 성격과 무책임한 성적 방종을 일삼는 성격은 불안정한 성장 과정과 불리한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가장 이익이 되는 전략이기 때문에 발달한 것이다. 심리적 부적응과 심리적 일탈이라고 칭하는 문제들도 당사자에게는 현실적으로 가장 이익이 되는 적응일 수있다. 예컨대 실패에 부닥뜨려 의기소침하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불리한 현실에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추후의 기회를 노리는 현실적 방책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와 심리를 설명한다면, 심리학의 다양한 분과나 사회과학의 다양한 주제들이 일관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시이론인 진화론이 구체적 문제를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인간 세계의 많은 현상을 진화론으로 아우르는 것은 유망한 접근임에 틀림이 없다.

2021. 6. 13. 22:46

Martin Daly and Margo Wilson. 1983. Sex. Evolution, and Behavior. Willard Grant Press. 344 page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사회생물학 sociobiology의 교과서로 집필되었다. 후손을 생산하는 데서 유리함을 획득하는 것 evolutionary fitness 으로 생물체의 행동과 생존 방식을 설명할 수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란 결국 후손 생산을 많이 하기 위하여, 다시말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기 위하여 최선의 성 전략을 구사하는 존재 sexual strategist 이다. 

후손을 생산하기 위하여 부모가 얼마나 어떻게 투자하는가 parental investment 의 관점에서 암컷과 수컷 사이의 성적 관계를 분석한다. 암컷은 수컷과 비교하여 생산할 수 있는 후손의 수의 최대값에 제한이 있으며, 각각의 후손을 생식가능한 단계까지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반면 수컷은 생산할 수 있는 후손의 최대값에 제한이 없으며, 각각의 후손에게 크게 투자하지 않는다. 따라서 암컷은 짝을 고르는데 수컷보다 훨씬 더 신중을 기하며, 짝으로부터 후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자원을 획득하는데 주로 관심을 둔다. 반면 수컷은 짝을 고르는데 까다롭지 않으며, 가능한 한 많은 짝으로부터 많은 후손을 얻는 데에 주로 관심을 둔다.

수컷에게 암컷은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므로, 후손을 잘 만들 수있는 육체적 능력을 지니는지를 주로 본다.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고 자신이 배타적으로 암컷의 성을 독점하는 데 매우 큰 관심을 둔다. 암컷이 바람을 피워 다른 수컷의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엄청난 노력을 들여 암컷의 행동을 감시한다. 수컷의 질투는 암컷이 다른 수컷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지는 반면, 암컷의 질투는 수컷이 다른 암컷에게 자원을 나누어 주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수컷은 암컷을 독차지 하기 위하여 수컷 간에 치열한 경쟁을 한다. 따라서 수컷은 위험한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으며, 일찍 죽는 확율이 높다.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할수록, 수컷은 암컷보다 육체적으로 강하고 크다. 일부다처 동물의 경우 수컷 간에 경쟁이 매우 치열한 반면, 일부일처 동물은 상대적으로 수컷간 경쟁이 덜 심하다. 인간은 어느 정도 일부다처 동물이다. 암컷은,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한 수컷의 단독 짝이 되는 선택지와 능력이 뛰어난 수컷의 두번째 짝이 되는 선택지 중에서 후손을 재생산하는 데 유리한 쪽을 택한다.

동물은 기본적으로 친족을 타인보다 우대한다 nepotism. 이는 유전자를 후대에 퍼뜨리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친족은 타인과 달리 약간이라도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inclusive fitness. 자신과 혈연적 관계가 가까울 수록 수컷은 암컷이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타인과보다 훨씬 덜 한다.

암컷과 수컷으로 분화되어 교미를 통해 유전자를 교환하는 양성 생식 방식으로 후손을 만드는 것은 단성 복제 생식보다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그러나 양성 생식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대된다. 이는 해로운 병원체에 대해 면역력을 갖는 유전자를 진화적 선택을 통해 만들어냄으로서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 동물 세계에서는 환경이 우호적일 때에는 단성 복재 생식으로 단시간에 많은 후손을 생산하고, 환경이 불리할 경우에는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력이 높은 양성 생식 방식으로 번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신의 집단 밖의 개체와 성 관계를 통해 유전자를 섞을 경우 열성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나,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 내에서만 성관계가 계속 이루어지면 세대가 흐르면서 열성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족 구성원간의 성적 관계를 금하는 터부가 진화적 선택을 통해 발달하였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형제자매간에는 성적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데, 이는 유전자의 공유 그자체보다는 성장기를 같이 보내는 경우에 뚜렷이 나타난다.

동물의 번식 전략은 많은 개체를 낳는 대신 개별 후손의 성장을 위해 자원을 적게 투자하는 전략과, 반대로, 소수의 개체를 낳는 대신 개별 후손의 성장에 투자를 많이 하는 전략으로 구분된다. 곤충이나 물고기 중에는 전자의 전략 r-strategy 를 취하는 종이 많은 반면, 포유류 중에는 후자의 전략 K-strategy를 취하는 종이 많다. 포유류의 경우 후손을 모두 생식가능한 성체로 양육하는 데에는 부모의 노력이나 자원 환경의 제약이 큼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수를 출산하며, 양육환경이 불리할 때에는 의도적으로 영아를 살해한다. 인간은 영양상태가 부실하면 여성의 초경이 늦고 월경이 중단되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발현이다.

인간 남녀간의 성적 관계나 삶의 방식은 진화생물학적인 이론에 의해 많은 부분이 설명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농경이 시작되고,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단시간에 인간의 삶의 환경이 크게 변하였으므로, 과거 인류의 오랜 생존방식인 수렵채취방식의 삶을 통해 진화적으로 발달한 삶의 방식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행위와 삶의 많은 부분은 진화적으로 후손을 생산하는 관점 evolutionary fitness 에서 적절히 설명할 수있다.

이 책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대단한 혜안을 제공한다. 엄청난 경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서술하며, 교과서로 집필되었음에도 일반 독자에게 놀랄만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책을 읽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비약적으로 높아진 느낌이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한 다음 인간의 살인 homicide 을 분석하는 책을 집필했는데, 두 책은 사회생물학 sociobiology 이라는 일관되는 이론을 배경으로 인간을 매우 잘 설명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이 책을 일찌감치 읽었더라면 인생을 그렇게 헤메지 않았을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물론 젊은 시절에 읽었다면 이 책에서 서술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그런 것이다, 인생이란. 지나고 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거라는 것을, 지나고 나서 후회할 뿐이다.

2021. 5. 25. 17:16

Douglas Kenrick. 2011. Sex, Murder, and the meaning of life: A Psychologist investigates how evolution, cognition, and complexity are revolutionizing our view of human nature. Basic Books. 205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다. 이 책은 그의 연구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후손을 남기는 것이며,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몇개의 서로 다른 모듈을 가지고 세계를 인식하고 반응한다. 짝을 찾는 모듈,  자식을 키우는 모듈, 위험에 대응하는 모듈, 지위를 추구하는 모듈, 타인과 협동하며 연대하는 모듈, 등이다.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모듈이 작동하며, 각 모듈은 선택적으로 외부의 반응을 인식하고 각각 고유의 평가 기준과 행동 양식을 보인다.

인간은 발달 단계에 따라 수행 과제가 다르며 그에 맞는 모듈이 작동된다. 어릴 때에는 자신의 육체적 지적 능력을 키우는 과업에 몰두하며, 청소년기에는 짝을 찾는 과업에 몰두하며, 성인이 되어서는 배우자를 유지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과업에 몰두한다. 

진화적 이유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관심사가 다르다. 남자는 보다 많은 여성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진화적으로 이익인 반면, 여성은 소수의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이익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자녀 양육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배우자를 고르는데 더 까다롭다. 성관계는 후손을 보기 위해 짝을 찾는 행위의 일부일 뿐, 진화적 관심은 성관계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는데까지 확장되어 있다. 남자는 섹스의 대상에 대해 덜 까다로운 반면,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까다롭다. 남자는 여자의 육체적 매력, 즉 건강한 후손을 낳는 능력 이외에 다른 조건은 관심이 없는 반면, 여성은 남자의 자녀 양육 능력 즉 사회적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남성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경쟁적 성향을 보이는 반면, 여성은 자녀를 돌보기 위해 남을 돌보는 성향이 뚜렷하다. 이것이 남성이 여성보다 더 폭력적이며, 살인의 대부분을 남성이 저지르며, 남성이 주로 타인을 살해하는 상상을 하는 이유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 이론은 인간을 동물보다 상위의 존재로 상정함으로서 잘 못된 결론을 도출하였다. 저자는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 이론을 수정하여 제시한다. 최 상위에는 후손을 퍼뜨리는 것과 관련된 욕구가 차지하고 있다. 이에는 자녀 양육욕구, 배우자 유지 욕구, 짝을 찾는 욕구가 속한다. 그 밑에 단계에 사회적 욕구가 있다. 이에는 지위와 존경의 욕구, 남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가 배치된다. 맨 아래 단계에 생존의 욕구가 있다. 이에는 자기 방어의 욕구, 생리적 욕구가 속한다. 매슬로우와 비슷하게 이 욕구들은 위계를 이룬다.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동되는 반면,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동되지 않는다. 

과시적 소비나 창조적 활동은 모두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는 욕구의 발로이며, 이는 사회적 자원을 더 많이 획득함으로서 짝을 찾고 후손을 퍼뜨리는 데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이다. 진화적 관심과 동떨어진 매슬로우의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가당착이다. 진화적 번식이라는 동물로서의 삶의 목표와 존재를 초월하는 인간 고유의 욕구나 존재는 허구이다.

삶의 의미는 결국 후손을 널리 퍼뜨리는 목표와 연관이 있다. 자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후손을 퍼뜨리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때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자식을 위해 들이는 시간과 돈은 전혀 헛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자식이 잘 될 때 뿌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동물적 본성의 발로이다. 자신의 피붙이 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집단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때 보람을 느끼는 것도, 결국은 나의 자식이 그로 인해 덕을 볼 것이라는 무의식적 감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기여할 때 찾아온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주장을 지지한다.

이 책은 자신의 개인적 인생 역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연구 성과와 연관시키는 흥미로운 전개를 보인다. 캐쥬얼하게 이야기하는듯 하면서 이론적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껄렁한 배경과 인생 경로를 거쳐왔다고 말하면서 연구 결과가 무척 많은 것이 놀랍다. 저자의 통찰력이 묻어 나는 좋은 책이다.

2021. 5. 17. 18:49

Robert Trivers. 2011. The Folly of Fools: The Logic of deceit and self-deception in human life. Basic Books. 340 page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타인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상대를 속여서 자신의 자손을 퍼트리는데 유리함(fitness benefit)을 얻으려 한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모두 상대에게 실재의 자신보다 더 좋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 한다. 상대를 속이려는 노력은 상대의 속임수를 탐지하려는 노력과 대응되기 때문에, 속이는 행위와 속임수를 탐지하는 행위 모두 진화의 과정이 전개될수록 복잡해진다. 동물의 지능은 바로 이러한 속임수와 탐지하려는 게임의 산물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더 많이 더 잘 속인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타인을 더 잘 속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자신의 무의식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의식의 수준에서는 거짓을 아는데 머무르도록 함으로서, 상대에게 이 거짓 정보를 제시하여 속일 때 훨씬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거짓을 상대에게 제시하려고 하면, 우리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여 발각될 위험이 있다. 상대에게 나의 거짓을 발각시키지 않으려면, 자신 조차도 그 거짓 정보를 믿는 것이 이러한 비정상적 행위의 위험을 예방한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의 수준에서는 거짓 정보를 믿고 자신의 무의식은 진실을 알고 있으면, 심리적 모순으로 인한 정신적 댓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기만은 그렇게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상대를 속여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력은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관찰된다. 부모와 자식간에, 남자와 여자간에, 바이러스와 항체간에, 외래 정보를 해석하는 것에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거의 모든 활동에서 상대와 자신을 속인다.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상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성향이 있다. 그 결과 주식 투자나 중요한 결정에서 실재보다 상황을 과대평가함으로서 불이익을 보는 것도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많다. 비행기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 내세움으로서 사고의 위험을 높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의 자기 기만 성향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하거나, 전쟁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크게 낭패를 본 사례에도 반영된다. 미국의 인디언과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살육, 착취, 조작의 역사를 외곡한 것,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정당방위라고 외곡한 것, 미국이 거짓 구실을 들어 이라크를 침공한 것, 등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한다.

종교는 자기기만의 대표적 예이다. 거짓된 사실을 믿고, 이러한 믿음 공동체에 헌신하게 함으로서 종교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준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

저자는 사회과학을 자기기만적 학문이라고 비판한다. 연구 대상이 사회적 현상에 근접할 수록 객관적인 방법론을 저버리며 검증할 수 없는 것을 지식이라고 생산한다. 사회과학에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얻은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화학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화학은 생물학에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는 사회과학이 생물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컨대 경제학의 효용 utility 라는 개념을 버리고 진화적 이익, 즉 자손을 퍼트리는데에서 유리함을 인간 행동의 근본적 동기로 설정해야 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기만의 사례들이 나온다. 기존에 많은 연구를 종합한 성과는 있으나, 한 주제를 깊이 파면서 일관되게 논의를 전개하는 서술 방식에는 미치지 못한다. 서술이 축약적이라 읽으면서 이해가 불확실한 부분이 많으며,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삶 전체가 상대를 속이려는 노력이라는 점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더 많이 더 잘 속인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020. 6. 17. 17:54

David P.Barash. 2003. The Survival Game: How game theory explains the biology of cooperation and competition. Henry Holt & Co. 277 pages.

저자는 워싱턴 주립대 심리학과의 진화 생물학자로, 게임 이론을 설명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서 협력과 경쟁이 전개되는 원리를 이론적으로 및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삶은 게임의 연속이다. 제한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 배우자를 구하는 경쟁이 대표적이다. 2 x 2 매트릭스를 사용하면 개임에 참여한 참가자 개개인의 선택지의 조합에 따라 각각의 참가자에게 이익과 손실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있다.

첫번째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게임 이론에서 가장 바탕이 된다. 이 게임에 참여한 죄수 각자의 입장에서 볼 때 둘다 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협력(cooperate)하는 것보다 상대를 밀고하는 배반(defect) 할 때 각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더 크다. 이 게임에서 개인 각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상대를 배반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다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할 때 두 사람 모두 최악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호구(sucker)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를 배반하는 선택을 한다. 상대의 배반을 의심하기 때문에, 협력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선택하지 못한다. 독일과 연합국 간에 일차대전이 일어나게 된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상대에게 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거나, 혹은 상대와 앞으로도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협력을 선택한다.

정치학자 악셀로드는 상대가 도발하지 않는 한 항시 협력하면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tit-for-tat) 상대의 배반에 배반으로 맞받아치는 전략이 가장 손해를 적게 보는 전략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상대의 배반에 협력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상대의 협력에 배반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보다 열등한 전략이다. 상대의 배반을 응징하지 않으면 상대가 계속 도발을 감행하게 부축이며, 상대의 협력에 배반으로 대응하면 일시적으로는 나에게 이익이나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므로 결국 손해이다.

두번째의 게임은 '사회적 딜레마'(social dilemmas)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나의 상대가 집단인 경우이다. 경제학에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참여자 개개인에게는 이익이나 집단 전체로는 손해인 경우로, 공공재가 대표적 사례이다. 자신은 기여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 하는 행위(free riding)를 어떻게 제한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정부와 같은 권력이 참여자의 이기적 행위를 규제하고,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참여자에게 사회화를 시킴으로서 부분적으로 해결된다.  

세번째 게임은 '치킨 게임'(game of chicken)으로, 게임 참여자 모두 배반하면 파멸로 귀결되는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한쪽만 배반할 경우의 벌칙(sucker)이 둘다 배반할 경우의 벌칙보다 큰 반면, 치킨 게임에서는 둘 다 배반할 경우의 벌칙이 한쪽만 배반할 경우의 벌칙보다 크다. 일반적으로 끝까지 버티거나 혹은, 상대에게 내가 끝까지 버틸거라는 믿음을 주면 승리를 잡을 수있다.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대치했던 쿠바사태가 그에 해당한다.

인간의 세계보다 동물의 세계에서 게임 이론이 더 정확히 작동한다. 게임 이론으로 계산된 이익을 보는 쪽은 진화의 과정에서 더 많이 번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게임 이론에서 계산된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반드시 행동하지는 않는다. 한편 동물은 반드시 한 방향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을 바꾸어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어떤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게임이론이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숫컷이 한 배우자에게 충실하냐 혹은 바람둥이 성향을 보이느냐 여부, 상대에게 공격적일지 혹은 유순하게 물러설지 여부는, 상대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정된다. 게임 참가자에게 생존의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다 주는 행위 조합을 선택하는데, 게임 이론은 이 조합을 정확히 계산해 낼 수 있다.

인간은 게임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이익을 최대화하는 행위를 선택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는 합리적으로 이익을 계산해내는 것이 매우 복잡하여 어느 정도의 이익에서 만족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합리적인 이익 이외에 감정적인 동기가 인간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냉혹하게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는 합리성은 개인에게는 득이될지 모르나, 집단 전체에게는 득이 되지 않을 수있다. 인간은 정말 자신에게 중요한 사안에 관해서는 합리적으로 이익을 따져 결정하기보다, 직관과 감정이 명령하는 바를 따른다. 인간의 두뇌는 극단적 합리성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것이 아니라,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합리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해 왔다. 저자는 인간이 어느 정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본다.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어느 정도의 비합리성이 조합된 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동물은 자신의 선택의 합리성을 의식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이다.

이 책은 게임 이론과 진화 생물학의 전문 지식에 저자의 박학다식한 지식이 결합된 교양서이다. 저자는 문학, 철학, 정치, 역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동원하여 게임 이론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의 주영역인 동물의 행태에 관한 사례를 가장 많이 제시한다. 게임이론과 진화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게임 이론이 정확히 적용되나 인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주장에 의심이 간다. 개별 인간의 선택을 보면 게임 이론이 정확히 적용되지 않을지 모르나, 결과로 놓고 보면 인간의 세계도 결국 게임 이론의 합리적 선택과 진화에 따라 전개된 결과가 현재 우리의 삶이 아닐까? 인간의 감정이란 합리적 선택이 고도로 축약된 장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인간이 때로는 합리적 계산 대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즉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생존 가능성을 최대화(minimax)하는 행위일 수 있다. 인간의 사례에 게임이론을 적용할 때, 개별 행위자의 단기적 이익의 계산을 넘어서서 좀더 넒은 시간 단위와 넒은 범위에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진화의 결과 자의식과 감정을 가진 복잡한 존재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물계에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게임 이론과 진화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것을 위반하려 한 존재는 현재 지구상에 살아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 3. 11. 09:34

David Sloan Wilson. 2007.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Bantam Dell. 349 pages.

저자는 생물학자로 진화론을 적용하여 생물계만이 아니라 인간사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진화론은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가장 도움이 되는 형질이 선택적으로 후세에 전해져 생물이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환경이 바뀌면 바뀐 환경에 부적합한 형질은 도태되고, 대신 환경에 적합한 형질이 선택된다. 선진국 사람이 비만과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인간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에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버리고 새로운 형질로 바꾸지 못한 결과이다. 인간이 똑똑하다고 하지만 진화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인간의 호불호의 감정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진화의 과정은 엄청나게 정교한 생존 전략을 만들어 낸다. 놀라운 특이한 능력이나 정교한 생존전략은 생물체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복잡한 두뇌와 높은 학습능력 또한 인간의 의식적으로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특정 동물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고도로 특화된 기술을 탄생시킨다. 지구의 역사를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서 수많은 생물체는 생존 경쟁에 승리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인간의 경우에도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토태시켰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개별 생물체가 집단으로 뭉쳐서 단일 개체로 움직인 결과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획득하였다. 인간을 포함한 복잡한 유기체는 이러한 집단화의 산물이다. 집단화가 한단계 더 진전된 경우가 개미나 말벌과 같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를 넘어서 집단화하여 살아가는 사회적 생물은 덜 집단화한 생물보다 훨씬 생존에 유리하기에, 이러한 사회적 생물이 지구상 전체 동물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 사회적 동물은 집단내에서 유전자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생존 활동을 전개하며, 개체들 사이에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

인간 세계는 이러한 집단화가 새로운 단계로 진행된 것이다. 인간은 문화라 부르는 삶의 기술을 세대간 학습을 통해 전승한다. 문화는 인간에게 개체의 능력을 뛰어 넘어 엄청난 능력을 가져다 주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오랜 학습과정을 거친 후에만 정상적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사회적 동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의 집단화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경쟁에서 인간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 이유이다.

인간의 집단화에서 문제는 어떻게 집단 구성원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냐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률과 종교는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종교는 집단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도록 하며,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한다. 인간의 미적 감수성이나 도덕률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규정하며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삶의 보람을 느끼며,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집단의 대의에 헌신하고자 하는 인간의 감정은 진화의 산물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진화론을 생물계와 인간사에 적용하는 것을 주제로 강의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인간 현상에 대해 진화론을 적용하여 설명하는데, 생물체의 진화를 설명할 때에 비해 서술이 장황하고 논리가 허술하다. 후반부에는 저자의 개인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며, 맨 마지막 장은 본인의 성장과정을 썼다.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교수의 이야기이다. 나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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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 10:43

Randolph M. Nesse. 2019. 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Insights from the fronter of evolutionary psychology. Dutton. 269 pages.

저자는 'Why we get sick' 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정신 의학자로 이 책에서는 진화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설명한다. 정신 질환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정신 작용이 왜 그렇게 발달하였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사람들이 당면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고통과 불안은 그러한 상황이나 대상을 피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을 줄 때 이를 피하도록 우리를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제이다. 인간의 감정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작용하는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다.

진화적 자연 선택은 인간의 건강이나 행복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후대로 유전자의 번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건강이나 행복 추구와 유전자의 번식을 추구하는 것은 불일치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바람을 피며, 인간의 높은 두뇌작용과 욕망은 불안과 고통을 낳는다. 욕망은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우리를 몰아가지만, 그러한 욕망에 따를 때 우리는 마음이 평온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다. 불교에서 욕망을 없애면 번뇌가 사라진다는 가르침은 진화를 통해 선택되온 인간이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고통, 불안, 걱정은 정상적인 정신의 작용이다. 화재감지기와 유사하게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예비적으로 우리를 조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감정이 없다면 위험 상황에 무모하게 처신하다가 사라졌을 것이기에, 진화적 선택은 이러한 감정을 가진 유전자를 우리에게 남겼다. 우울증 또한 정상적인 것이다. 상황이 긍정적이면 기분이 뻗쳐서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고, 상황이 부정적이면 기분이 침잠하여 노력을 줄이도록 만든다. 의식상으로는 이러한 실패와 좌절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라도, 우울한 감정이 그를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헛되게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므로, 상황이 나쁠 때 우울한 감정이 들고 뒤로 물러나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낫다. 세상에는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달성하지 못할 상황이나 목표가 많으므로 우울증은 이에 대처하도록 하는 현실적인 기제이다. 불가능한 역경에 처해 우울증을 느끼며 물러서지 않고 계속 열심히 밀고나간 사람은 결국 쇠해서 퇴출되었을 것이기에, 그러한 유전자는 우리에게 남겨지지 않았다.

많은 정신적인 문제는 두뇌나 유전자의 특정한 결함이나 병원균과 같은 특정 요인 때문이 아니다. 삶을 힘들게 만드는 상황이 정신적 문제를 낳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가족이 학대를 한다거나, 직장 일이 좌절된다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핀다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거나, 신뢰하던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했다거나, 피할 수없는 곤경에 빠진 경우, 우울증, 집착, 질투, 슬픔, 분노 등이 심하게 나타난다. 원인이 되는 상황이 해결되면 정신적 문제가 사라진다. 약으로 이런 정신적 문제가 치료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심리적인 적응의 전략으로 진화적 선택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나의 의도를 숨기고 가장하고,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여 대응하는 복잡한 두뇌작용을 필요로 한다. 나의 의도를 상대에게 숨기는 효과적인 방법은 나 자신에게 나의 실제 의도를 숨기는 자기 기만이다. 진화적 선택은 인간이 자기기만을 능숙하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자기 기만은 완벽치 않기 때문에 비싼 비용을 유발한다. 자기 기만은 무의식을 억압하는데, 무의식의 감정과 생각이 외곡된 형태로 나타나 심리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인간의 성적인 행위는 유전자의 번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기에 종종 부적절한 성관계와 성욕구로 당사자를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의 강력한 질투심은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려는 진화적 선택이 만들어낸 감정이다. 거식증은 상대에게 육체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려는 욕망이 지나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인간의 감정이 어느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진화적 생존을 높이는 순기능을 초래하나, 감정이 지나칠 경우 당사자를 해치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왜 어떤 사람은 감정이 지나치게 흐르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유전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이 결합하여 그러한 변이를 낳는다.

다이어트를 할 수록 우리의 몸은 기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생리작용의 강도를 늦추고 영양소를 더 갈구하도록 만든다. 주위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 지금의 상황은 다이어트를 실패하도록 만드는 환경이다. 비만이란 우리의 조상이 살던 환경에 맞추어 만들어진 우리의 몸이 현대에 물질적으로 풍요한 상황과 맞지 않는 데서 발생한 문제이다.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는데 실패했다. 정신분열증과 자폐증은 복잡한 사고와 감정의 작용을 처리하도록 우리의 두뇌가 진화하면서 나타난 문제로 보인다. 우리의 두뇌를 창의적이고 똑똑하고 복잡한 것을 처리하도록 만들수록 소수에게지만 그것이 잘못될 위험성도 높아진다.

이 책은 주석만 70쪽이 넘으며 다양한 사례와 이론들이 제시된다. 대강의 줄거리는 분명하지만 상세한 이론과 설명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 정신 의학이 '왜 그렇게 되었나'라는 질문을 외면하고,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타당성이 부정된 상황에서- 증상에 대응하는데만 주력했던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인간의 정신 질환은 다른 질병과 달리 원인을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에 새삼 눈뜨며, 인간의 정신 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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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10. 21:44

Matt Ridley. 1993. The Red Queen: Sex an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 Harper. 349 pages.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인간의 성(sexuality)의 진화를 설명한 대중 과학서. 동화에 나오는 Red Queen의 비유를 사용하여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는 창과 방패의 비유와 유사하다. 종의 경쟁에서 한쪽이 앞서려고 변화하면 그에 맞추어 상대도 변화하여 따라맞추는 과정이 계속이어지는 과정이 진화이다.

생물계에서 암컷과 수컷간 선택하고 선택되기 위한 경쟁은 양쪽 모두를 변화시킨다. 성적인 선택(sexual selection) 경쟁에서 같은 성의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올라서게 하는 형질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반면 불리한 형질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기 때문에 후손에게 이어지지 못한다. 생물의 많은 형질은 오랜 세월 동안 성적인 선택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종의 상대 성에게 선택되기 위한 경쟁은 물리적인 생존을 위한 경쟁(natural selection)과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숫공작의 아름다운 날개는 암공작에게 선택되기 위한 경쟁이 낳은 산물이지만, 이것은 수컷의 물리적 생존 확율을 낮추는 요소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왜 무성생식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된 유성생식을 하여 후손을 만들까? 유성생식이 가져오는 유전자의 다양성 덕분에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무성생식은 후손을 빠르게 증식시키는 이점은 있지만 부모와 자손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유성생식은 암컷과 수컷이 교배를 해야만 후손을 만들기 때문에, 적절한 섹스 상대를 찾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후손에게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된다.무성 생식으로 부모와 그 후손이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면, 만일 이 생물체의 면역력을 뚫는 병원균 유전자가 나타날때 피해를 면할 수없다. 반면 유성생식으로 후손에게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되면, 병원균의 돌연변이로 후손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적다.

 어떤 생물체가 일부일처에서 난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짝짓기 행태 중 어느 것을 택하는가는, 군집해 사는지 혹은 각자 떨어져 사는지, 후손의 양육에 수컷이 간여하는지 혹은 암컷이 전적으로 혼자 담당하는지에 달려 있다.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군집해 살면 엄격한 일부일처는 어려우며 여러 상대와 섹스를 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행태가 자리잡는다. 후손을 양육하는 일을 암컷이 전적으로 담당하면, 암컷은 여러 수컷과 섹스를 하는 것보다 적은 수의 강한 수컷을 골라 섹스를 하는 것이 유리한 반면, 수컷은 가능한한 여러 암컷과 섹스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인간은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하며, 보조적으로 결혼 관계 밖의 상대와 바람을 핀다. 인간의 오랜 양육기간 때문에 여성은 자신과 자녀의 부양을 책임질 남자가 필요하며, 남성 역시 상대 여성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지 않고 오랫 동안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남기는데 유리하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일처 다부의 성향을 지니며, 여자는 일부일처의 성향을 지닌다.

남성은 여성에게서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여성은 남성에게서 부와 지위를 찾는다. 여성의 육체적 미는 건강한 후손을 만드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며, 남성의 부와 지위는 오랜 기간 동안 자녀를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특성의 차이를 낳는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공간감각이나 수리력이 높은 반면, 여성은 남을 잘 이해하고 교류하는 사회성과 언어능력이 앞선다. 남성은 낯선 여자와도 섹스를 쉽게 할 수있지만, 여성은 다양한 남성과 섹스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이 생물계에서 독보적으로 두뇌가 크고 지력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보다 배우자를 선택하고 선택받는 게임에서 인간관계를 읽는 기술이 고도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생물의 생존의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 퍼뜨리는 것이므로,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형질인 지력은 가장 우수한 배우자를 차지하는 게임에서 승리자가 되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동물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의 성질을 유추해내는 작업은 복잡하다. 실험을 통해 입증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유추한 가설에 대해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기에 논리를 쫒아가기가 버겁다. 이 작가의 스타일은 많은 사례와 논쟁을 계속하여 소개하고, 서술을 맛깔나게 하기 위해 이중부정과 이중 비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과학적 사실을 직설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서술하려고 이야기를 굴곡지게 하는 약점은 있지만, 흥미로운 주제와 관련된 상반된 논쟁을 모두 검토하는 부지런함은 살만하다. 인간의 성과 관련되 생각할 수있는 모든 주제를 건드린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동물의 행태에 관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인간의 성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2019. 11. 30. 22:36

Randolf M. Nesse and George C. Williams. 1996. Why We Get Sick? Vintage Press. 249 pages.

의학에 진화생물학을 결합한 진화의학 (Evolutionary Medicine) 분야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으로 의학자와 생물학자가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책의 첫 두 장은 진화와 진화의학 이론을 소개하며, 이후에는 구체적 질병이나 인간의 몸과 기능을 예로 들며 이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진화 의학이 자칫 현재의 질병과 대응 상태를 정당화 하는, 즉 진화의 결과 선택된 것으로 합리화될 것을 우려하여, 저자는 진화의학의 가설의 검증 가능성에 관해 먼저 논의하면서 진화 의학의 과학성을 역설한다. 

인간이 겪는 질병과 이에 대한 대응은 진화적 선택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감염성 질환, 부상, 독성 물질, 유전적 질환, 노화, 알러지, 암, 성인병, 정신병 등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설명을 제시한다. 건강한 상태에 대해서도 왜 그러한지를 설명한다. 성과 출산 양육, 장기의 구조와 기능 등이 그것이다.

인간과 병원균의 진화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병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진화론은 유용하다. 예컨대 병원균과 숙주의 관계는 유전자를 확산시키는 병원균의 전략에 따라 다양하다. 모기와 같은 매개체에 의해 감염되는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은 숙주의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증세를 유발하나, 사람들간에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병원균은 숙주가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다. 숙주가 죽어도 병원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지장이 없는 전파 경로를 갖는 병원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숙주에 훨씬 심한 해를 가한다. 병원균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숙주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병이 날 때 열이 높아지는 이유는 높은 온도가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감염성 병원균과 우리 몸의 방어 체계는 서로 간에 창과 방패와 같은 경쟁을 한다. 방어 체계가 높아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병원균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우리 몸은 다시 이것을 뛰어넘는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방어 체계는 다중으로 복잡하게 되었다.

어떤 유전 형질은 우리가 젊을 때에는 생존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나 나이가 들면 생존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요산 과다가 그것으로 젊은 나이에는 과다한 요산 분비가 방어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나, 나이가 들면 통풍과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구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수명이 30~40이었으므로 요산의 부작용이 발현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러한 유전적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기타 유전 병들 또한 과거 수명이 짧을 때에는 해를 끼치지 않고 이익을 주던 형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식이 종료되기 이전 젊은 나이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반면, 종료된 이후에 해를 끼치건 말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원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은 후에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용 기제가 복잡할 수록 시간이 지나면 오류가 발생하고 오류가 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모한 일이 잘 안되었을 때나 사회 위계에서 억압된 위치에 있을 때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울증은 그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데, 이는 주위 환경에 대해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일이 잘 안되는 상황이고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넘쳐서 날뛰는 것은 헛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길일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지위가 높아질 경우 우울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자연 세계의 생물체는 다양한 종류의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자신을 방어한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포식자로부터 도망 칠 수없으므로 먹히지 않는 수단으로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경우가 많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하는 이유는 독성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 배아 발달의 초기에 독성 물질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우리 몸의 기관이 오래 사용하면 망가지는 경향이 모든 기관에 고르게 전개되며 이를 노화 현상이라 한다. 즉 노화 현상은 특정한 질병이 아니며, 어느 특정 기관을 고친다고 하여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식활동이 지난 몸체는 버리고 다음 세대의 몸에서 유전자를 이어가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이익이다. 우리 개체의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래 살면서 생식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과 짧게 살면서 생식 하는 두가지의 전략이 있다. 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지 않는 반면, 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는 전략을 취한다. 어느전략을 취하건 유전자의 생존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암이란 우리 몸 세포의 자가 복제 기능이 통제를 벗어나 무자비하게 전개되는 현상이다. 우리 몸의 다양한 기관의 수많은 세포를 각 기능에 맞게 계속 자가 복제하여 갱신해야 일이 매우 복잡하기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유전자의 복제 기능에 오류가 나타난 것이 쌓이기 때문에 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암이 발생할 수 있다. 여성의 생식 기관, 즉 자궁, 유방, 난소에서 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구석기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여성은 아이를 자주 낳지 않고 수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월경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결과 발생한 문제이다. 즉 과거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몸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특정 물질에 대해 알러지가 왜 일어나는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면역활동이 왜 전개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특정 물질이 우리 몸에서 독성으로 잘못 인식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 물질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몸에 해로운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그 물질에 대해 거부 반응을 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성인병은 과거 구석기 시대에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우리 몸이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욕구에 따라 마구 먹고 운동을 하지 않은 결과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다양한 질병과 임상 사례를 들어 진화론에 바탕을 둔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진화 의학이 최근에 나타난 의학 분야로서 연구가 미흡하지만 이론적 설명력은 높다고 주장한다. 이론보다는 치료에 치중하는 의학의 경향 때문에 진화 의학은 발전이 더디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이해를 깊이 하도록 유도하면서 진화 의학의 발전을 촉구한다. 흥미로우면서 내용이 풍부하다. 두번 읽을만한 대단한 책이다.

2019. 11. 9. 22:28

Richard Dawkins. 1995.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s of life. Basic Books. 161 pages.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저자가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보다 흥미있게 해설한 책이다. 생명의 진화란 유전자의 증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육체는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유전자의 생존과 후대에 증식이 생명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고통을 느끼는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공정한지, 건강하고 오래사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생물체의 어떤 기관의 목적이 무엇일까를 탐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한가지, 그 생물체가 담고 있는 유전자의 생존과 증식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유전자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만 진화의 방향을 몰고간다. 생명이란 정보의 덩어리 즉, 유전자 혹은 알고리즘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육체는 이 정보를 담는 수단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세대를 거쳐 복제 되며, 지리적인 격리 등 환경적 요인으로 유전자가 서로 다른 종으로 갈리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와 유전자가 근접할수록 보다 최근에 이 갈리는 과정에서 나누어졌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성염색체와 달리 어머니의 계통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복제되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거슬러 추적한 결과 소위 African Eve 라고 부르는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이 현대인 모두의 여자쪽 조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들의 후손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유전자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현생 인류의 최초의 조상은 아니다. 최초의 조상은 아마도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면 수컷이 암컷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은 후손 속으로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유전자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적 선택에서 가장 생존가능성이 높은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우리의 유전자보다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것은 그간의 생존 경쟁에서 패배하여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생물체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여진 것을 보고,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류이다. 진화의 과정은 유전자의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생물체의 시스템을 정교화시키는데, 현재 관찰되는 어떤 생물체의 정교함에 못미치는 전 단계를 다양한 생물체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벌꿀이 자신의 동료에게 먹이의 위치를 알리는 특징적인 춤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되어 만들어진 듯이 보이지만,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신호 체계의 복잡성을 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정 생물체의 유전자 증식의 목적에만 부합하도록 정교화된 경우를 흔히 본다. 특정 곤충의 감각 능력은 그들의 생존 욕구에 맞도록 진화되면서, 인간의 감각과 지능으로 볼 때에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의 효용함수, utility function 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선택을 말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에게 이익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그 종 전체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개는 소수의 수컷이 많은 암컷을 거느리기 때문에, 많은 수컷은 교미할 기회가 없이 죽는다. 종 전체의 유전자의 증식으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수컷대 암컷의 비율을 1:9로 하여 낭비되는 수컷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다. 그러나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수컷대 암컷의 비율이 5:5로 될 때에만 진화적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만일 성비가 1:9라면 모든 부모는 자식이 수컷이되도록 할 때 자신의 유전자의 증식이 최대화되므로, 암컷대비 수컷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전개될 것이다. 5:5가 되면 자식이 수컷이건 암컷이건 유전자의 후대 증식 가능성이 동일하므로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이 경우 만일 수컷을 낳으면 다수의 수컷은 교미를 하지 못하여 유전자의 증식이 제로이지만, 소수의 수컷은 많은 암컷을 거느리므로 유전자의 증식 비율이 크다. 따라서 수컷을 낳을 때 유전자 증식의 기대값은 암컷을 나을 때와 동일하게 된다. 

태평양의 연어는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성장하여 원래 태어난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생식을 하고 나서는 바로 죽는 것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반면 대서양의 언어는 이러한 생식 과정을 한 생애 동안 여러번 반복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진화하였을까? 태평양 연어의 서식지인 강은 험하여 이를 거슬러 오르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지막 에너지를 다하여 강을 거슬러 오르고 생식을 한 다음 바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면서 강을 오르고 생식 이후에도 다시 살아가도록 하는 선택보다 유전자의 후대 증식의 관점에서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대서양의 연어가 서식하는 유럽의 강은 그리 험하지 않으므로 한 생애 동안 여러차례 강을 오르고 생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유전자의 증식에 합리적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얼마나 살고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고통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을 받으면서 짧게 살다 다음 세대를 낳고 죽는 것이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면서 유전자의 증식에 더효율적이라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진화한다.

우주에서 신성 supernova 은 몇 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하고 재로 변하는 별을 이른다. 에너지의 폭발과 유사하게 우주에서 정보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한 정보의 폭발은 지구에서만 발견된다. 지구에서 일어난 정보의 폭발의 시작은 미미하다. 정보를 자기복제하는 기제, 즉 생명체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정보의 자기 복제는 광물질의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유사하게, 화학적 결합체인 분자가 자신을 복제틀로 하여 자신과 대칭적인 동일한 존재를 생성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저자는 복제 폭탄 replicator bomb라고 부른다. 우리의 DNA를 구성하는 네가지 종류의 분자 A,T,C,G는 A가 T에 대칭적인 존재이며, C가 G에 대칭적인 존재이다. 이 네 종류의 분자가 무수히 엮어지면서 정보의 복잡성을 높여갔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기하급수적으로, 즉 2, 4, 8, 16, 이런 식으로 하면서 수를 늘렸으며 분자들이 덩어리를 구성하여 세포가 되고, 세포가 덩어리를 구성하여 개별 생물체가 된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하면서 ATCG의 조합을 조금씩 달리하게 되는 데, 이것이 종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기제이다. 다양한 종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복제의 효율성을 높여간다.

정보의 복제 속도가 높아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은 인간에 이르러, 지난 이삼백년간에 걸쳐 가속화되며 마침내 지구 행성 밖으로 정보를 보내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정보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끝은 어딘지 알지 못한다. 슈퍼노바의 경우처럼 지수적인 팽창을 하다가 결국 가용 자원의 극에 도달하여 폭발로 끝날 수있다. 혹은 정보가 행성 밖으로 이동하면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복제의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 우주로 나간 정보가 지구의 인간과 교신이 끊어진다면, 환경이 바뀌면서 생물체가 다른 종으로 정보의 강이 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 책을 두번째 읽었다. 과거에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조금더 이해되는 듯하다. 리차드 도킨스는 엄청난 사람이다. 냉정한 학자이면서 천재적인 명석함이 번득인다. 그의 책을 읽으면 경외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가 서술하는 것의 요지는 일견 단순한 듯 하면서 우주의 진리를 관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도킨스는 진화론에서도 특히 삶의 중심을 유전자에 두는 정말로 냉혹한 골수 진화론자이다. 그의 확신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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