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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2. 10:24

박홍규, 박지원. 2019.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무리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사이드웨이. 461쪽.

이 책은 영남대 법학과 교수를 은퇴하고 농촌에서 지내는 박홍규와 작가 박지원간에 대담을 정리한 것으로 박홍규의 삶과 생각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한다. 박홍규는 노동법 분야에서 비주류의 목소리를 낸 참여형 학자이며, 엄청난 독서가로 그 자신 사상, 전기,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100권에 가까운 교양서를 저술하고 서양의 고전을 번역한 지식인이다.

그의 엄청난 독서 습관은 중학교때 부모와 떨어져 대구에서 혼자 살며 중고 책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저자는 아버지가 경북 지방의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면서 자식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에 일생 반발하였다. 주변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전통에 반항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패거리 문화, 권위주의 문화에서 이단아로 살기로 작정을 하고 이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의 일상은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채워진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잡다하게 읽는 독서 습관은 그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말해 준다. 독서는 기존의 권위와 위선에 의문을 제기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교과서만 달달 외우고, 시험에 치이고, 세속적 안정과 출세의 길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아웃사이더로 독서를 많이 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 고호를 존경한다.

그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하였다.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유의 개성을 만들어야만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기존 사회의 구조와 인간관계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각자가 자신의 영역을 갖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각자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개인주의 사회를 이상으로 여긴다. 남을 의식하는 사회, 체면 문화를 거부하며, 연줄을 찾아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한국 사회의 관행을 경멸한다. 힘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살자는 소아적 집단주의는 도덕적 타락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인데, 가족의 범위를 넘어 시야를 넓혀야 한다. 부모가 잘못하면 고발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분노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 중앙과 지방의 차별, 엘리트와 보통사람의 차별, 남성과 여성의 차별. 우리 사회에서 사회 개혁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 또한 자신들만의 패거리를 만들어 이익을 독차지하려 하고, 언행이 불일치 하는 삶을 사는 것에 분노한다. 우리 학계의 배타성과 위선에 학을 띠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권위주의 사회의 폭력성의 피해자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강압과 폭력을 참아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보다 배경이 좋고 성공했다는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하대를 참야야 했다. 지방 대학을 나오고 지방대 교수로 사는데서 오는 열등감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마음의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하바드 대학에 머물 때 서구와 비서구 주변부의 차별을 통감하여 이후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였다. 우리나라가 서구의 지성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양서 고전 번역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사회를 바꾸려면 각자가 자신부터, 주변에 구체적인 것부터 바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은퇴 이후에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다. 마지막 장에서 그의 아내가 대담에 참여한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여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며, 노력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부인을 배려한다거나 집안일을 돕는데에는 무관심하다. 그도 한국의 남성의 일원인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띤 것은 대담자의 풍부한 교양과 인터뷰 대상에 대한 엄청난 사전 연구이다. 딱딱한 주제를 논할 때에도 글이 부드럽다. 모국어로 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인문학적 접근의 한계를 느낀다. 박홍규라는 사람은 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패거리 문화를 거부하고, 고독한 지식인, 이단아로 살기를 선택했을까. 그의 엄청난 집착을 행간에서 읽으며, 잠재의식 속에 내재한 권위에 대한  반발과 자기 식으로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낀다. 그럼에도 그가 인정하듯 그의 한계는 어쩔 수 없기에, 다 읽고 난 후 쓸쓸한 느낌이 든다.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하기에 더 그러하리라. 제목을 잘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