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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해당되는 글 15건
2019. 12. 27. 12:58

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하바드 법대 교수인 저자가 미국 사회에서 지난 수십년간 진행된 성과중심주의적 사회 체제로 변화하는 경향을 비판한 사회비평서. 1980년대 이래 미국 사회는 뛰어난 성과를 내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엄청난 보상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다. 최상층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하였지만, 중류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였다. 소득 불평등은 급속히 높아졌으며, 상위 5~10%와 나머지 90% 사이에 사회적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는 이차대전 이래 1970년대까지 상층은 물론 중류층과 하층의 소득도 꾸준히 향상되고 다수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던 시절과 대조된다.

근래에 엄청난 소득을 누리는 엘리트는 1950년대까지의 상층과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으며,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고 엄격히 자기 통제를 한다. 그들은 일의 세계에서 높은 생산성을 창출해낸다. 미국의 고급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며 미국의 기술혁신과 세계화와 경제성장을 선두에서 이끈다. 금융, 법, 의료, 연구개발, 대기업의 경영에 종사하며,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고 본인이 가져가는 성과도 엄청나다. 대학을 졸업하고 초봉 연2~3억이 보통이며, 월스트리트에서는 성과급 보너스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챙긴다.

이렇게 높은 성과를 올리는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려면 무서울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입시 경쟁을 방불할 정도로 이들은 유아시절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고 천문학적 비용을 교육에 퍼붓는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들은 자신의 소질이나 흥미는 무시한 채 일주에 50~80시간을 일한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대단하여 인간적이지 못한 삶을 산다. 이들은 일을 덜 하고 싶지만, 이들의 직장은 여유롭게 일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엄청난 경쟁속에서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노예나 다름없이 일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낙오되는 두가지 선택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엘리트와는 대조적으로 중류층은 소득이 정체되며 불안정한 직장에서 과거보다 일을 덜 한다. 엘리트 계층이 높은 기술을 구사하여 엄청나게 일하는 그늘에서 중류층은 단순 반복적인 일에 종사한다. 주요한 결정은 모두 엘리트 계층이 독차지 하기 때문에 중류층은 일에서 소외되며 해고와 채용이 용이한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엘리트 계층이 높은 성과를 거두며 결정을 독차지 하는 반면, 중류층은 지시된 일을 하는 지위로 전락한 것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힘입었다.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아 엘리트들은 중간관리층을 거치지 않고 조직의 구석구석을 통제하며, 세계화 덕분에 이들의 고급 기술은 전세계 사업장에서 몇배나 많은 생산성으로 증폭된다.

엘리트 계층은 각자가 보유한 기술과 각자가 올린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고 보상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들의 엘리트 지위는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 귀족 계층이 자식에게 재산을 직접 물려주는 방식으로 지위를 세습했다면, 요즘의 엘리트 계층은 엄청난 비용을 투입한 최고급 교육을 통해 높은 인적 자산을 축적하도록 해 고급 직업과 높은 지위를 획득하도록 하여 엘리트 지위를 세습한다.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엘리트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데 들이는 비용을 부모가 죽을 때 물려주는 유산 가치로 환산하면 8 ~16 백만달라, 한화로 90억 ~ 180억에 달한다. 요즘의 엘리트 부모가 고급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엘리트 지위를 세습하는데 들이는 비용은 과거 귀족 계층이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 가치보다 결코 적지 않다.

저자는 책의 후반에서 성과주의는 과거에 귀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화라고 비판한다. 과거에 귀족이 선천적인 우수성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면, 성과주의 사회의 엘리트는 뛰어난 능력과 높은 생산성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귀족의 선천적인 우수성이 거짓이듯이, 엘리트의 뛰어난 능력과 높은 생산성 또한 거짓이다. 요즈음 엘리트의 뛰어난 능력은 그들의 부모의 엄청난 교육 투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며, 그들의 높은 생산성은 높은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높은 생산성을 산출하도록 일의 세계를 조직하였기 때문이다. 중류층의 평범한 기술이 쓸모 없어지도록 일을 조직하지 않았다면, 엘리트의 기술 독점과 높은 생산성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과주의 체제가 문제가 많다면 이를 어떻게 불식시킬것인가? 소수의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사립학교를 규제해야 한다. 엘리트 학교들이 일정 비율 이상 중하층 출신의 자녀를 입학시키도록 규제하고, 소수 엘리트만 다니는 학교가 누리는 비영리 세금 감면 혜택을 중단해야 하며, 엘리트 학교의 등록금을 면세 조치하는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높은 기술을 가진 엘리트에게 결정과 보상이 집중되도록 되어 있는 일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의료계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의 영역을 넓히며, 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권한을 넓혀야 한다. 금융계에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이나 고위험 상품의 개발을 규제하여 보통 기술의 종사자가 담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법무 종사원에게 개방하여 법률 행위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 자체를 허물어뜨려야 한다. 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아무런 제안이 없다.

이 책은 성과주의의 폐해에 대하여서는 길게 서술하지만, 그렇다면 성과주의의 대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짧게만 언급한다. 그가 제시한 대안들은 성과주의를 무력화시킬만큼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하간 높은 기술과 능력이 성장과 풍요를 낳은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스티브 잡스의 기술이 오늘의 스마트폰 문화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80대 20의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80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20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보상을 지급한다면 인센티브 체계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지속되지 못하고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공산주의의 말로를 똑같이 경험할 것이다.

저자는 소수의 엘리트가 그들이 누리는 높은 보상에 합당한 성과를 낸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일반 사원의 200배 이상의 성과를 내는지 의심스럽다. 금융기관의 딜러가 일반 사무직의 500배 이상의 성과, 혹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잘나가는 변호사가 일반 사원의 500배의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그렇게 높은 보상이 과연 그의 높은 능력이 만들어낸 생산성의 반영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즉 그가 그렇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며, 그의 높은 생산성은 그가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능력이 떨어지거나 혹은 부모가 그만큼 교육에 투자하지 않았던 직원이 상당히 기여하여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면, 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금융기관의 딜러, 전문의, 대형 법률회사의 변호사가 그렇게 높은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의사가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은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거나, 의사로 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거나, 의사가 특별히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다. 의사 직업에 진입하는 진입 장벽이 높이 쳐져 있으며, 의사의 서비스 가격을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바드 법대를 졸업한 사람이 초봉으로 수억을 받는 것은 하바드 법대를 나오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바드 법대라는 좁은 문이 졸업자에게 부여하는 독점적 시장가격 때문이다. 하바드 법대는 이러한 독점적 시장 가격을 관리하기 위해 학생수를 늘리기 보다 등록금을 높이고 기부금을 많이 받는 방식으로 독점의 프리미엄을 관리한다. 

이 책에서 엘리트들이 성과주의의 쳇바퀴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그의 주장 역시 의심스럽다. 그들은 그 생활을 선택했고 혜택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만일 그게 그렇게 지옥같은 생활이라면 왜 그들의 자녀에게 그러한 지위를 물려주려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저자는 성과주의의 폐해에 대하여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여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법대 교수인 자신의 삶이 빡빡하다는 데에 대해 궁시렁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성과주의 이념을 대체할 것이 현재로는 보이지 않는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과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보상한다는 원칙은 민주주의와 가장 잘 맞는다. 그 대안은 추첨에 따라 지위와 보상을 나누어준다는 것일터인데, 아직 사람들은 이러한 대안을 선택할만큰 성과주의의 부작용에 진저리를 내고 있지 않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양질의 교육 기회를 더 넒은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경쟁의 기회를 확대하여 성과주의의 혜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성과주의 자체는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공서열이나 성과급을 반대하는 주장은 바로 성과주의를 피하고 싶어하는 기득권자들의 억지이다. 성과주의가 가장 공정한 원칙이라는 것이 시대의 소리며, 시간이 갈수록 성과주의가 더 확산될 것이다.

2019. 12. 17. 16:16

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

 

2019. 6. 26. 11:36

Keith Payne. 2017. The Broken Ladder: How inequality affects the way we think, live and die. Penguin Books. 219 pages.

사람들은 불평등을 각자 어떻게 체험할까. 이러한 개인적 체험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저자는 자신이 어릴 때 마음 속에 각인된 불평등에 대한 체험을 토대로 심리학 연구 결과를 엮으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불평등에 대한 기존 논의가 대부분 객관적인 불평등 수준에 집중해 있음에 반해, 이 책은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감정, 행동, 사고에 촛점을 맞추어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질을 타고난다. 극단적 결핍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항시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자신의 상대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비교는 의식의 수준에서는 물론 무의식 수준에서 항시 작동되는 심리적 기제이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광고는 이러한 사람들의 성질을 교묘히 이용한다. 자신의 비교 대상은 지리적으로 및 지위 면에서 자신과 근접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자신 간에 격차가 클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에서 삶의 상황이 열악할 때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감행하면서 진하게 살다가 일찍 죽는데,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종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생존 전략이다. 반면 삶의 상황이 양호할 때에는 가급적 위험을 회피하며 긴 안목에서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하며 오래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 또한 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최상위를 제외한 모두가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상황에서 삶을 영위해야 함으로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미래를 고려하기 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충동적인 삶을 선택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지역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비교하던 혹은 미국과 북유럽 사회를 비교하건 유사한 결과를 얻는다. 불평등이 높은 지역이나 나라일수록 삶이 긴장되고, 사람들은 위험을 회피하지 않으며, 단기적 시간 계획으로 살아간다. 그 결과는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폭력적이며, 범죄율이 높으며, 건강 수준과 평균 수명이 낮으며, 갈등이 심하다. 또한 불평등이 클수록 사람들은 종교에 몰입하며, 음모론과 같은 비합리적인 주장에 동조한다. 반면, 불평등이 낮을수록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으로 중도적인 성향이 강하다. 불평등한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지만, 현재의 불평등 수준은 이러한 긍정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한다. 남과 비교하려 하기 보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훈련을 하면, 상대적 비교가 낳는 비참한 느낌을 완화할 수있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어떻게 불평등을 줄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건조한 반면,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심리학 실험과 연구 결과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2012. 10. 14. 12:15

   미국 사회에서 지난 30년간 소득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하는 반면, 최상위 1%의 소득은 크게 증가하였다. 대기업 CEO의 연봉은 평균적인 근로자 임금의 수백 배에 달한다. 전 세계로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미국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 들었지만, 근래에는 미국이 유럽보다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http://www.nytimes.com/2012/10/14/opinion/sunday/the-self-destruction-of-the-1-percent.html?hp&_r=0

 The Self-Destruction of the 1 Percent

By CHRYSTIA FREELAND




   미국은 폐쇄적인 사회로 치닫고 있다. 저소득층의 자식이 상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상류층은 자식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가 과거보다 수월하다. 부자는 중류층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 기업의 인수 합병을 통해 경제력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정치자금을 무기로 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나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의 예에서 보듯이 거부들이 자신의 돈으로 대중의 여론을 조작하여 권력을 획득하려 한다. 미국의 선거는 어느 후보가 더 많은 돈을 모았는가에 좌우된다. 선거가 다가오면 엄청난 광고비를 써서 TV에 상대를 비방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광고전을 벌인다. 이러한 광고에서 제시하는 정보는 거짓말과 과장의 범벅으로 시청자의 냉정한 판단을 흐려 놓는다. 여론을 주도하는 미디어 자체가 영리를 추구하는 대기업으로 돈 있는 사람의 편이므로,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해서보다는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나팔수 역할을 한다.

   대기업은 공정한 경쟁을 두려워한다.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약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들 서로 간에 결탁하여 경쟁을 제한하려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경쟁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으려고 시장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놓는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게끔 교묘하게 처리한다. 세금으로 충당하는 엄청난 공적자금은 이들에게 돌아가며, 정부의 다양한 보조금의 수혜자 역시 이들이다. 

  부자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만 특별한 교육을 시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게 한다. 아래 계층과 접촉하거나 그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피한다. 미국 부자들이 자식을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과 한국의 부자들이 자식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것은 동일한 맥락이다. 부자의 자식들은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거나,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땅집고 헤엄치는 장사를 하거나, 해외 브랜드의 독점 수입을 통해 쉬운 돈벌이를 택한다. 그들은 공정한 경쟁이 무엇인지 체험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경쟁이 제한되고, 계층 이동이 차단되고, 부가 집중되고, 불평등이 높아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적대 관계가 깊어지고, 갈등이 높아지고, 폭력충돌이 빈발할 것이다. 범죄가 높아지고, 안전을 확보하는 데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열심히 살려는 동기를 상실하고, 인재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공급되지 않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결국 그 사회는 몰락한다. 첨부한 기사에서 과거에 베네치아가 그러한 길을 걸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수준이 매우 높음에도 그럭저럭 버텨온 것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이념이 강한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사람들은 더이상 미국을 매력적인 이민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면 미국에 인재가 모여들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가 승자독식의 게임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다고 하여도, 그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면 다른 사회로 옮겨갈 것이다. 미국 밖으로부터 인재가 모여들지 않는다면 세계의 창의를 주도하는 미국의 지위 또한 무너질 것이다. 미래의 스티브 잡스나 버락 오바마는 미국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2012. 3. 17. 12:30

   미국에서 중류층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조가 조직된 제조 산업에서 일하며 중류층 생활을 하던 생산직 근로자들은 외국으로 공장이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제조업의 메카였던 중서부 지역은 대량 실업과 인구 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다. 사무직이라고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 열 명이 하던 일을 이제 한명이 처리할 수 있고 단순 사무 업무는 외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은 국내에서 하던 혹은 멀리 인도에서 하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싼 임금을 찾아서 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콜센타나 자료 입력 등의 단순한 업무만 이전했다면, 근래에는 프로그래밍, 회계, 재고 관리, 인사, 고객 관리, 법률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사무직 업무들이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발도상국 대졸자의 임금은 미국인의 임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미국 대졸자의 생산성이 개발도상국 사람들보다 크게 높지 않으므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해외로 이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어에 문제만 없다면 개발도상국의 대졸자가 미국의 대졸자보다 생산성이 높은 경우도 많다.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목적은 국내에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므로 해외로 일자리를 이전하는 행위를 탓할 수 없다. 세계 전역에서 생산과 소비를 하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비경제적인 이유로 어느 특정국에 일자리를 몰아주는 것은 기업의 고객이나 주주의 기대에 어긋나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어찌보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 사람보다 생산성이 낮은데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아온 것이 문제이다. 과거에는 일자리의 이전이 불가능했으므로 두 나라 근로자들 사이에 보수의 비교가 어려웠지만 이제 일자리를 옮기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성과 보수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각자 실력과 노력에 맞게 유사한 수준의 보수를 받게 되는 것은 더 공평한 세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에 문제이지만. 

  결국 미국에 남는 일자리는 두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컴퓨터가 담당하기 힘든 창의적인 업무이며, 외국에서 대체할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다른 하나이다. 사무직이건 생산직이건 단순 반복적인 일자리는 싼 임금을 찾아서 조만간 대부분이 외국으로 이전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혁신과 높은 수준의 두뇌 활동을 요하는 연구와 개발, 디자인과 마케팅, 고급 기술과 기획 등의 일만이 해외 이전의 위험에서 자유롭다. 이것과 정반대의 성격의 일, 즉 점포에서 손님을 응대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애를 보는 일은 결코 해외로 이전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을 해외로 이전할 수는 없지만 대신 해외로부터 싼 임금도 마다 않는 사람을 국내로 들여와서 맡게 한다. 결국 중류층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의 중류층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은 미국인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선진국으로부터 이전하는 일자리는 기존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좋으므로 이 나라의 중류층을 늘이는데 일조한다. 인도와 중국의 중류층이 근래에 급속히 성장한 것은 미국 산업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즉 미국만 보면 소득 분배가 양극화된 것이지만, 미국과 인도와 중국을 함께 연결해서 보면 과거보다 소득 분배가 더 평준화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하간 미국으로 볼 때 소득구조가 양극화되는 것은 크게 우려되는 현상이다.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중류층이 줄어들면 부자 혹은 빈자에게 호소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호응을 얻는 반면 온건한 주장은 지지기반을 잃으므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빈부격차가 뚜렷해지면 사회적인 결속력이 줄어들고 범죄와 여러 사회문제들이 증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에 따라 구조적인 이유로 벌어지므로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반을 이전하여 경쟁력을 높이는 데 특정 업체만 국내에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본주의와 자유를 최고의 원리로 하는 미국으로서도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해결책은 없을까? 다음 글에서 해결책을 논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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