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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6. 22:41

  오늘 감동적인 글을 읽었다. 아틀랜틱 몬슬리 9월호에 나온 “Fear of a Black President"라는 제목의 글이다. 미국에서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흑인의 분노와, 흑인에 대한 백인의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노예제에 뿌리를 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비인간적인 차별은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여전히 감지된다. 흑인은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종주의는 많은 백인의 머릿속에 또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흑인들은 좌절과 분노로 자신을 파괴하는 한편, 범죄로서 주류의 질서에 저항한다. 백인은 흑인을 두려워하며 가급적 멀리하려 한다.


Atlantic_FearofBlackPresident.hwp



  이런 인종주의 사회에서 2008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인데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다른 선택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인 아들 부시의 오랜 실정과 경제 위기가 공화당의 계속된 집권을 어렵게 했으며, 민주당의 예비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역시 여성인데다 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점이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했다. 인종주의 사회에서 소수 인종인 흑인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지도자로 선출된 것은 정말 닥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사회는 초유의 사태에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흑인을 자신의 지도자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많은 미국인들은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거나 혹은 이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그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여 그의 정부가 실패로 끝나기를 바랐다.

  흑인은 백인에 대해 가슴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산다. 오바마는 흑인이다. 오바마는 이러한 분노를 어떻게 삭혔을까? 오바마는 영민한 사람이다. 백인에 대한 흑인의 분노의 감정을 절대 밖으로 표출해서는 안된다는 것, 존재 자체를 백인 주류사회에 눈치 채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흑인의 분노의 감정이 담긴 것으로 해석되게 오해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엄청난 비난과 반발이 퍼부어질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인종에 대한 언급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이다. 백인이라면 특별히 인종적인 함의가 있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을 발언도 흑인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대통령이기에 앞서 흑인이다. 백인에게 오바마의 발언과 행동은 흑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의심받기 쉽다.  그러한 의심은 여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그러한 발언을 한 취지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오바마는 이러한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을 때에는 자존심을 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전에 하바드 대학교의 흑인 교수가 자신의 집 앞에서 백인 경찰에게 가택 침입죄로 체포되었다. 열쇠를 집에 놓고 나와 문을 억지로 따려고 씨름하고 있을 때 지나치던 경관이 다가왔다. 그가 자신의 교수 신분증을 보이고 이곳에 오래 산 사람임을 거듭 말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그들 연행하여 경찰서에서 하루 밤을 재우고 풀어준 것이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아마도 경찰이 그의 학교나 이웃에 확인하여 웃고 지나갔을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한 경찰의 행동이 지나친 치안 행위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책임자로서 그의 발언은 지극히 온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백인 경관은 기자들을 향하여 자신은 조금도 잘 못한 것이 없다고 발언하여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그 경관이 자신의 말을 오해했다고 굽히고 들어갔고, 백악관에 경찰과 교수를 초청하여 맥주잔을 건네면서 화해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당시 의료보험 개혁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던 상황에서 여론이 인종 문제로 들끓어 올랐을 때 기꺼이 자신을 굽힘으로서 논란이 사그라들기를 바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책에서 인종주의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고 좌절과 분노의 나날을 보냈던가를 솔직히 썼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흑인으로서의 쓰라린 기억을 가끔씩 노출한다. 예컨대 최근에 플로리다에서 후드티를 입은 트레이본 마틴이란 순진한 청년이 경관의 추격을 받아 총 맞아 죽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손에는 스키틀이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아이스티만 들려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만일 아들이 있었다면 그도 트레이본처럼 보였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흑인으로서 쓰라린 감정의 정곡을 찌르는 발언아닌가?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의 인종주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미국의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우회 전략을 취한다. 미국의 어려운 사람 중에 흑인이 상대적으로 더 많으므로 이는 결국 흑인에게 혜택이 더 돌아간다. 이러한 인종 중립적인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을 특별히 우대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 그가 추진한 의료개혁의 주요 내용인, 모든 미국인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은 의료보험을 누리고 있는 중류층 백인보다는 지금까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정책이다. 미국의 백인들이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고 하는 데에는 인종주의적 의도도 바탕에 깔려있다. 

  흑인은 근본적으로 열악하다는 인종주의를 깨는 효과적인 전략은 그렇지 않은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음으로서 인종주의를 부정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그가 미국사회의 인종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음에도 그의 존재 자체가 인종주의를 무너뜨리는 증거로 작용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그는 누구보다 인종주의적 갈등이 촉발되어 일을 망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종주의적 백인 또한 이를 잘 알기에, 그의 발언이나 행동이나 그의 정책에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면 오랫 옛날 노예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종주의가 옮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흑인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될 수없으며, 설사 잘못되어 지도자로 선출되었더라도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에 직접 간여하면 그들의 계책에 말려들어 일이 잘 못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것을 오바마 대통령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과거에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 “Dreams from my father"을 읽을 때의 감동이 몰려왔다. 오바마는 지혜로우며 용감한 사람이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을 찾기 힘든 오늘날 그는 나에게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새삼 우러러 보인다. 역사도 그를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