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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해당되는 글 24건
2010. 8. 15. 22:26
   일전에 미대사관으로부터 현재 주한 대사인 스티븐스의 사진집을 받고 간담이 서늘해진 일이 있다. 그 사진집에는 그녀가 1970년대 중반 순수한 처녀시절에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예산의 한 시골 학교에서 머물면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는 그당시 가난하나 소박하게 살아가던 우리나라 농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한국과 그 사람들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한국의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던 그녀가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우리나라에 온 것이다. 그 사진을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마치 그녀가 나의 과거를 꿰뚤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근래에 미국 대학생들 중에 재학 중 일이년을 해외에 나가 공부하면서 현지인의 생각과 관습을 체험하고 익히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그곳의 대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지인의 입장에서 중동 문제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익히는 미국 학생이 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 계속 있었더라면 도저히 얻을 수없는 통찰력을 얻으며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 돌아가면 중동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문제해결을 위하여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할 수있으리라는 섣부른 자신감도 내비친다.

  일전에 미국에서 한달간 방을 임대해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집주인이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수년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척은 인도, 캐나다,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전화할 때 보면 대화 상대에 따라 인도말을 쓰기도 하고, 영어를 쓰기도 하고, 때때로 스페인어를 쓰기도 한다. 그의 고객 중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아서 스페인어를 배웠으며 직장에서는 종종 스페인어를 쓴다고 한다.

   미국에는 그야말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들은 적도 없는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이나 중앙아시아 사람을 여럿 만났다. 이들은 미국인이 되고자 열심이다. 다양성이 극에 달하면 문제도 많겠지만, 다양성은 미국을 활력있는 나라로 만든다. 세계화 시대에 자신의 국민 중에 세계 곳곳에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다. 한국과 거래하는 데 한국을 잘 아는 한국계 미국인을 활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현지인의 생각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미국인도 많다. 미개한 현지인의 말과 생각은 그저 무시하고 눌러버리면 그만일 뿐, 군사적인 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소위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오면 우방이고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니 더 무슨 말을 하랴. 중동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그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잘 아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미국은 세계 각양 각색의 사람들을 자신의 국민의 일부로 흡수하며, 미국 사람 중에는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현지인의 생각과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0. 8. 15. 15:34
    요즈음 미국은 9.11 테러가 났던 곳 근처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을 허용할지 하는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엇그제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의 라마단 축제를 맞아 미국내 이슬람 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미국인이 희생된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듯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여러 인종과 민족이 모인 다문화 사회이며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나라이므로 개인 소유지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은 미국의 국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해명했다.

   두가지 측면에서 오바마 발언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판을 생각해 볼 수있다. 하나는 미국이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많은 보수주의 백인들은 미국이 유럽을 뿌리로 하는 기독교 백인의 국가이어야 하며, 다른 피나 문화가 섞여이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톤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이다.

  두번째는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 속에 후세인이 있는 것을 두고
선거때 많은 미국 사람들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기독교도라는 증거가 엄청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믿을 수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들에게 오바마가 기독교도인지 여부가 마음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가 흑인이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은 정말 끈질기며 음험하기까지 하다. 정의, 형평, 사랑, 인권, 등 어떤 가치를 앞세워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말로는 다른 구실을 내세우면서 반대하지만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고집이 자리잡고 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를 아무래도 자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미국 백인중에는 참 많다. 형편없는 흑인들이 주위에 득실 거리고 이들을 내려다보고 살면서 자존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똑 같은 피부색의 흑인을 존경할 수있겠는가?  경제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그가 크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실패한 별볼일이 없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는 백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오바마를 바라보는 마음속은 착잡하며 이율배반적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정치를 잘하고 경제를 일으켜 세운다면 자신도 좀더 잘 살게 될 것이나, 그의 성공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 잘 할 수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그다지 기쁘지 않다. 

   이슬람 교도를 자신과 같은 미국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심리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도를 이등 시민으로 간주하며, 자유 평등이라는 미국의 국시가 그들에게는 적용될 수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거 흑인 노예나 인디안에게는 미국의 헌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은 자유 평등을 실현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라서, 이들 보수주의 백인들도 결국 소수자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백인들은 애를 많이 낳지 않으므로 아무리 이민을 막는다고 해도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이며, 유색인이면서 성공한 사람이 늘면서 인종주의적 생각을 포기하는 백인들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이 아니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동등한 미국인으로 대접받는 날은 빠른 시일내에 오지는 않겠지만, 미국에서 보수주의 백인의 위세가 갈수록 약해질 것은 분명하다.


 
2010. 8. 14. 21:33
    대학은 산업인가 아닌가?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대학은 분명히 하나의 산업이며, 그것도 많은 이익을 내는 매우 큰 산업이다. 영국 대학들은 국내 학생에게는 소요 비용보다 낮은 등록금을 받는 대신 외국의 유학생에게 비싸게 거두어  재정의 균형을 맞춘다. 등록금 이외에도 외국 유학생이 먹고자는 데 쓰는 비용은 지역 경제에 중요한 수입원이다. 이것이 산업이라면 상품구성과 품질 관리는 어떻게 할지, 어떻게 마켓팅을 할지, 가격 정책은 어떻게 할지, 어떻게 비용 대비 이익을 극대화할지 , 등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영국의 대학교는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학교의 경영을 바라보며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데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영국의 대학교를 먹여 살리고 있기때문이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는 영어권 국가로서 수십만명의 외국 유학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시장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국 대학도 만만치 않은 수의 외국인을 받아들인다. 이들 나라에 학생을 보내는 송출 국가로는 중국과 인도가 다수를 점유하며 아시아와 중동 등 제 삼세계의 나라도 많은 유학생을 보낸다. 영국 대학의 걱정 중 하나는 과거에 자신의 교육을 소비하였던 나라들 가까이에서 지역의 유학생 수요를 흡수하는 경쟁자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지아, 등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교에 유학하는 이 지역의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조만간 중국은 유학을 꿈꾸는 우수한 학생들을 자국의 대학에서 흡수할 수있는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떻게 하면 자국에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수있을까? 조셉 나이 교수는 미국의 힘을 소프트 파워에서 찾는 데, 과학 기술과 문화에서의 매력과 우위가 군사적인 우위보다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미국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과학과 기술에 있다. 인터넷, 컴퓨터, 자동차,휴대전화, 전기, 등 우리가 이용하는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명되었거나 혹은 실용화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문제점을 흔히 지적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실용화시키는 능력에서 아직 미국을  따라갈 나라는 없다.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 생산의 중심에는 미국의 대학이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의 연구소는 불이 꺼지지 않으며 계속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근래에 새로운 발견 발명은 대부분 미국 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시작된다. 미국 문화의 흡인력은 또 어떻고 말이다. 세계의 영화관이 미국 헐리우드 영화로 도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이 아마도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사실 이들 나라에게 외국인 유학생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돈을 뿌려주는 것은 물론, 이들이 매우 열심히 공부하기때문에 자국 학생에게도 자극이 되어 대학의 수준을 우수하게 유지하는 데 촉매제가 된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돌아다니면 대학교의 국제적인 분위기는 저절로 조성된다. 세계화와 함께 선진국 기업들은  국제적인 사업과 국제적인 경쟁에 많이 참여하게 되고 이 나라 학생들은 교육 과정 속에서 이러한 국제적인 소양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외국인 유학생은 바로 이러한 교육 목적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자국에 돌아가면 자국에서 지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면서 미국 혹은 영국에 우호적인 의견과 생각을 전파하게 된다. 이들에게 익숙한 외국의 문물은 자신이 유학했던 나라일 것이므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이 나라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면서 사람들에게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미국이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등으로 제삼세계의 똑똑한 학생이나 언론인, 공무원, 정치가 등을 자국에서 공부하도록 지원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지도급 인사 중에 미국 정부의 돈으로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것이다. 자비를 들여서 공부한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거의 전부가 미국을 자신의 사고의 축으로 삼고 있다. 결과 한국에서 외국의 사례라고 하면 모두 미국을 인용한다. 어디 프랑스나 러시아의 사례를 언급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한다면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선호하겠는가? 프랑스 음식점이나 러시아 식당이 주위에 드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지도자를 자국에서 공부시키는 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지만 그 몇배로 수익을 보장받는 투자를 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산출되는 한,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들 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국민보다 외국인 유학생이 더 똑똑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데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 께름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똑똑한 외국 학생들에게 시민권을 주고 이들 나라에 남아서 계속 아이디어를 생산하도록 한다면 이들 나라의 대학과 산업은 계속 우위를 유지할 것이니,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외국학생이 본국 학생보다 더 잘하는 것이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나라 사람 중 다수가 똑똑한 외국인이 들어와 좋은 직장을 선점하고 자신들은 밀려나서 싸구려 일자리에서 해메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외국 유학생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만 이들이 자국에 남아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려고 안달한다. 과거에는 박사를 따면 시민권을 쉽게 얻고 직장도 쉽게 구할 수있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사실은 이들 덕분에 선진국 국민이랍시고 그나마 잘 살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똑똑한 외국인 유학생이 없었다면 실리콘 밸리는 생겨날 수없었으며, 근래에 눈만 뜨면 새로 들려오는 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미국의 몫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만큼 소프트 파워가 있는가? 우리나라의 대학은 똑똑한 학생들을 자국의 대학에 유치할만큼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가? 혹시 조만간 싱가포르나, 홍콩이나, 중국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이 줄을 서서 공항을 빠져나가지는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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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14. 17:13
    미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두배가 넘는 부자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불평등한 나라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의 비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대도시의 슬럼가는 대낮에도 들어가기가 겁나는 곳인데 혹시 가본 적이 있다면 정말 놀랄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이 사방에 있고 도로가 망가져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으며 잡초가 제멋대로 번성하고 쓰레기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다리나 터널의 벽에는 기괴한 모양의 낙서와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건물의 창문은 부서지거나 판지로 못을 쳐놓았으며, 사람이 살것 같지 않은 건물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굳게 닫쳐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허물어져 가는 건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걸어오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정말 무섭지 않을 수없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폐허의 모습 그대로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미국 남동부의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고 싸우다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다치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기사거리도 안되는데, '제삼세계 미국' (Third World America)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니 정말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요지인즉 정부에서 주는 주택보조수당(Housing Voucher)에 지원하기 위한 지원서를 나누어주기로 했는 데 이틀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여 당일에는 13000명이나 모였다는 것이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그늘하나 없는 땡볓아래 주차장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졸도한 사람이 속출하는가 하면 서로 먼저 받으려고 싸움이 벌어져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궁금한 것은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서 즉 종이쪼각 한장을 받으려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틀 전부터 줄을 서야 했는가이다.
그들이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도 생활형편 등을 심사하여 수혜 여부를 판단할텐데 말이다. 당국자의 말인즉 사실 주택보조수당 재원이 형편없이 적어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신청서를 제출하여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바보라서 이틀전부터 와서 무턱대고 줄을 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신청서를 터무니 없이 부족하게 나누어줄 것이 뻔하기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 수당은 컴퓨터로 신청자의 신상을 조회하여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과거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수혜자를 선정하였으면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도 아니고 신청서 용지를 받기위해 그렇게 이틀씩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며칠이나 걸어와서 경찰의 제지하에 아우성치면서 밀가루를 받는 모습과 중첩된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들의 처지는 노예였던 그들의 선조에게 대했던 백인 주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수모 쯤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 한번은 보건소에 방문해야 했는데, 사방에서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신청서만 쓰고는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이 반나절 이상을 지냈었다. 중류층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흔히 보는 번호표 발급기와 현재 서비스 받는 사람이 몇 번인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데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닐텐데.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경험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정치인 중에는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사람들에게 성공을 향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회의 낙오자들에게 어줍지 않은 동정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가혹한 사람들이다. 여하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달동네가 훨씬 살기 좋다. 물론 용산 참사같은 사건도 때때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사람을 만나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애틀랜타의 주차장 땡볕 아래에서 종이조각 한장을 얻기 위해 이틀동안이나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흑인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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