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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14. 17:13
    미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두배가 넘는 부자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불평등한 나라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의 비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대도시의 슬럼가는 대낮에도 들어가기가 겁나는 곳인데 혹시 가본 적이 있다면 정말 놀랄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이 사방에 있고 도로가 망가져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으며 잡초가 제멋대로 번성하고 쓰레기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다리나 터널의 벽에는 기괴한 모양의 낙서와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건물의 창문은 부서지거나 판지로 못을 쳐놓았으며, 사람이 살것 같지 않은 건물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굳게 닫쳐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허물어져 가는 건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걸어오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정말 무섭지 않을 수없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폐허의 모습 그대로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미국 남동부의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고 싸우다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다치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기사거리도 안되는데, '제삼세계 미국' (Third World America)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니 정말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요지인즉 정부에서 주는 주택보조수당(Housing Voucher)에 지원하기 위한 지원서를 나누어주기로 했는 데 이틀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여 당일에는 13000명이나 모였다는 것이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그늘하나 없는 땡볓아래 주차장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졸도한 사람이 속출하는가 하면 서로 먼저 받으려고 싸움이 벌어져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궁금한 것은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서 즉 종이쪼각 한장을 받으려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틀 전부터 줄을 서야 했는가이다.
그들이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도 생활형편 등을 심사하여 수혜 여부를 판단할텐데 말이다. 당국자의 말인즉 사실 주택보조수당 재원이 형편없이 적어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신청서를 제출하여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바보라서 이틀전부터 와서 무턱대고 줄을 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신청서를 터무니 없이 부족하게 나누어줄 것이 뻔하기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 수당은 컴퓨터로 신청자의 신상을 조회하여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과거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수혜자를 선정하였으면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도 아니고 신청서 용지를 받기위해 그렇게 이틀씩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며칠이나 걸어와서 경찰의 제지하에 아우성치면서 밀가루를 받는 모습과 중첩된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들의 처지는 노예였던 그들의 선조에게 대했던 백인 주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수모 쯤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 한번은 보건소에 방문해야 했는데, 사방에서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신청서만 쓰고는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이 반나절 이상을 지냈었다. 중류층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흔히 보는 번호표 발급기와 현재 서비스 받는 사람이 몇 번인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데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닐텐데.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경험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정치인 중에는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사람들에게 성공을 향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회의 낙오자들에게 어줍지 않은 동정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가혹한 사람들이다. 여하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달동네가 훨씬 살기 좋다. 물론 용산 참사같은 사건도 때때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사람을 만나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애틀랜타의 주차장 땡볕 아래에서 종이조각 한장을 얻기 위해 이틀동안이나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흑인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다.